2부 예배

내가 있어야 할 현주소
2026-09-20 20: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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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26년 9월 20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내가 있어야 할 현주소
(행11:19)

  
서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틀린 말, 틀린 생각, 틀린 곳에 있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될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누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와 우리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의 결론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이 임하는 것이 전부이고, 말씀을 붙잡는 순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렘1:4). 하나님이 말씀을 성취하시고, 말씀을 붙잡은 결과로 세계복음화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배만 잘 드려도 다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절대 주권 속에 있는 영원한 시간표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렘1:5). 이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복음을 회복하고 찾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나와 우리 교회가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1. 공생애 - 예수님께서 알리신 현주소
  가. 예수님이 공생애를 통해서 말씀하신 그 언약을 붙잡고 따라가게 하옵소서(마11:28, 마4:19, 막3:13-15).
  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된 복을 깨닫게 하시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주신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마16:16-19). 
  다. 복음을 정확하게 아는 자로 나의 의가 드러나지 않게 하시고, 나를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옵소서(마17:8).
  
 2. 분별하는 시간표가 옴
  가. 분위기와 여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감람산에서 주신 언약을 붙잡게 하옵소서(행1:3).
  나. 보좌의 배경에서 일어나는 망대, 여정, 이정표를 흐름을 보는 눈을 열어주시고, 그 길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다. 바울과 로마서 16장의 일꾼들이 섰던 대열에 서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그 언약을 붙잡고 오늘 그 자리에 있게 하옵소서.
  
 3.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이루어짐
  가. 로마서 16장의 사람들이 237 나라, 5천 종족 살리는 일에 쓰임 받은 그 시간표를 보며, 나의 현주소를 점검하게 하옵소서.
  나. 아침에 모든 시작을 성령 인도 받는 속으로 들어가며, 낮에 만남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밤에 세계복음화의 미래를 향한 계획과 작품을 남기게 하옵소서.
  다. 나의 배움과 경험이 유익하지 않음을 깨닫고, 오직 위의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빌3:8-21, 4:13).
  
결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늘 점검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복음이 나타나지 않고, 변질된 시대 속에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들을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복음의 본질을 찾고 회복하라고 부르셨다는 것과 승리의 축복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롬16:20). 한 주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늘 확인하고, 주신 축복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월 20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내가 있어야 할 현주소”
(렘1:4-5)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아멘.
         렘1:4-5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정말로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느 누구든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 부르는 자는 구원받겠다 했어요. 예수 이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했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그 능력의 이름이 여러분에게 붙잡혀짐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가장 축복된 최고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열심히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만큼 뭔가 응답과 축복이 와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왜 나는 응답이 없는가?’ 이런 생각들 가운데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남은 시간들이 많이 있는데 이 남은 시간 우리가 무엇을 그러면 중요한 것들을 붙잡고 나가야 될 것인가? 그런 생각들도 많이 가지게 되죠. 우리에게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은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내가 있어야 할 현주소’입니다. 우리는 자꾸 엉뚱한 데 있으면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다. 또 교회 다니면서도 거의 틀린 말, 또 틀린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될 수가 없는 것이죠. 틀린 곳에 있으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패한 아담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몰라서 물은 것입니까?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도망길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선교하라고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축복된 사명을 놓쳐버린 요나에게 왔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 라고 말씀하신 내용들입니다.
 여러분 내가 내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누리고 있느냐? 그것이 바로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결론부터 가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고,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결국은 망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말씀했어요. 1장 4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이게 다입니다. 말씀이 임하는 이것 때문에 우리가 예배하는 것이고, 말씀이 임하는 이것 때문에 우리가 설교 듣고,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말씀이 임한 그 자체가 응답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았다는 말은 응답을 붙잡았다는 말이에요. 변화는 그다음에 일어나요. 제가 말씀을 붙잡은 순간에 변화는 그다음에 일어나는데 그 성취는 하나님이 시키신다 라는 것, 말씀을 붙잡았다는 그 결과로 결국은 결과는 세계복음화로 열매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였다? 그게 끝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배만 잘 드려도 다 끝난다 라는 사실이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에 말씀하고 있죠. 예레미야를 언제 부르셨느냐? 바로 태에서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 말씀했어요.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 말씀했어요. 어떻게 성별하였느냐?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죠.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표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오늘 내가 있다 라는 것, 그러면 거기에서 모든 응답과 축복은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정말로 이번 한 주간 어떤 자리에 어떤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당하든지 간에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추석 명절 통해서 많은 또 친척들을 만나게 될 것이죠.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한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다른 차원의 응답들이 여러분에게 누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어디 있는가? 그 현주소를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복음을 주셨죠. 그런데 그 복음을 놓쳐버리고, 그리고 종살이하고, 또 회복하게 되고, 또 종살이하고,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류는 복음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소수의 몇몇 사람이 복음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때그때마다 또 회복시킨 하나님의 역사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안 전하니까 망하게 되고, 전하면 또 회복시키고,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주소였습니다.
 여러분 중세 시대는 어떠했습니까? 교황과 황제가 권력 싸움이 일어났어요. 황제가 성직자를 임명하게 되니까 교황이 그 황제를 파면시켜 버렸어요. 나중에 이 황제가 교황 앞에 찾아가서 무릎 꿇고 빌었어요. 성직자를 파면하고 할 정도로 교회가 그만큼 돈과 권력으로 강했던 시대가 중세 시대였습니다. 출세하려면 교회를 가야 돼요. 전도가 필요 없어요. 황제가 다 교회 가니까 출세하려면 당연히 거기에 줄 서야 되니까 교회를 가야 되는 겁니다. 교회는 완전히 힘을 잃게 된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중세 시대의 현주소는 돈과 권력에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어떠합니까? 여러분 지금 전 세계가 어떤 현주소 가운데 빠져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생존입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먹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운영해 나가고, 목사도 목회하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나쁜 말입니다마는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 뭘까요? 여러분이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분명히 답이 내려지게 되어 있어요. 시대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여러분이 어디에 있어야 되는가? 그 답을 붙잡아야 합니다. 복음을 회복하고, 복음을 찾는 그 자리에 여러분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복음을 다 놓치고 살아갑니다. 복음이 없어지고, 복음이 안 나타나는 그런 시대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사역이 있다면 복음의 본질을 찾는 거에요.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겁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나와 우리교회가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진짜 복음의 본질을 찾고, 회복하는 그 자리에 있으면은 내가 무엇을 하고, 안 하고 그거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축복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있어야 될 복음의 본질을 찾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그 현주소를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고, 또 초대교회에 있었던 그 현주소를 알아야 될 것이고, 로마를 복음화 했던 로마 시대의 그 현주소를 우리가 확인해야 될 것입니다.

1. 공생애 - 예수님께서 알리신 현주소
 예수님이 공생애 3년을 지나셨죠. 거기에서 예수님께 알리신 현주소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처음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그렇게 지고 사느냐?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쉬게 할 것이니까 다 내게로 오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에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말씀하셨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수거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따라가게 될 때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13절에서 15절에 말씀하고 있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도 하게 하며 또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곳에 있어야 돼요 사실은.
 그리고 산상수훈을 통해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죠. 잘못 알고 있는 모든 틀린 것들을 바꾸는 말씀을 하셨어요. 유대인들이 부자가 된 것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산상수훈의 5장에 보면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어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하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하고요. 복에 대해서 쭉 설명하면서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모든 생각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말씀하신 거에요. 진짜 복이 무엇이냐를 설명하신 것이죠.
 그리고 마태복음 6장에 보면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자꾸 기도하는 것을 기도하지 말라 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데 선생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주기도문을 말씀하셨죠. 이건 꼭 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까 기도에 대해서 가르친다 이야기하면서 하신 말씀이에요. 
 그러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 죄 지은 자를 너희들이 죄 용서함 받은 것처럼 용서하라. 그리고 이방인처럼 무엇을 달라고 하지 말라 했습니다. 구원받았느냐? 그렇다면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했어요.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지고 기도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한 거에요. 꼭 그렇게 해야 된다 라는 그게 아니에요. 기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기도할 부분들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를 하신 것이죠.
 그리고 예배드리고 신앙생활에 무엇인가를 마태복음 7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 드리는 것,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걸 제대로 모르니까 교회 안에 싸움이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싸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신자와 똑같은 복을 달라고 하지 말라고 말씀했어요. 거지처럼 달라고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하는 곳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공생애의 마지막을 다 가면서 아주 중요한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거의 마지막이 다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대체 제자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런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이 질문을 했겠습니까? 역시나 다르게 답이 나왔어요.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은 것이죠. 
 내가 그렇게 본다 라고 이야기하기가 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그렇게 예레미야, 엘리야, 또 세례 요한,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한 겁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죠. 우리가 눈물 흘리고, 이런 것들을 가지고 신앙생활이라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비 운동 한 사람이에요. 세례 요한은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일한 사람입니다. 또 선지자는 무엇입니까? 경건하게 사는 종교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성향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성령의 감동을 입은 베드로가 이야기했어요. 주는 그리스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다. 그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너를 반석같이 만들겠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러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천국 열쇠를 주신다 말씀했습니다. 사실 이것이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제자들을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셨죠. 마태복음 17장에 나온 내용 아닙니까? 변화산상에서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나타났고, 엘리야가 나타났고,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모세는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율법의 대표로 봅니다. 엘리야는 신비 운동의 대표로 보고 있습니다. 능력의 선지자라고 그 대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세는 율법의 대표라기보다도 정확하게 복음을 안 사람이에요. 모세에 의해서 창세기 3장 15절, 원 복음이 기록되었잖아요? 율법의 대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은 복음을 정확하게 안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자기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 겁니다. 율법의 핵심은 뭡니까?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겁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알았으니까 자기를 나타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모세, 엘리야 그것을 복음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결국 갈보리산에서 십자가 처형을 예수님께서 받게 되죠. 이게 예수님의 3년 공생애 시간들이었습니다.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요. 심지어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조차도 도망갔어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여자 몇 명 따라왔어요. 어떤 면에서 모성애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온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는 모습을 뒤따라오면서 울었다 라고 누가복음에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어떤 면에서 그 여자들이 가진 마음들은 모성애의 마음으로 예수님이 고난당하는 부분을 보면서 운 겁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울지 말라.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 여러분 지금 제가 예수님이 공생애 때 일어난 일들을, 그 가운데 일어난 고백들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도대체 나는 여기에 어디에 있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때 그리스도께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행하셨어요.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졌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죽음에서 살아나신 겁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로 말미암아 다른 시간표를 허락하신 거에요. 그게 마가 다락방에 임한 시간표.

2. 분별하는 시간표가 옴
 어떤 면에서 공생애 3년의 마무리는 갈보리산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시간표가 나오게 되었는데 분별하는 시간표가 오게 된 것입니다. 거의 마가 다락방에서 눈치를 못 챈 것이죠.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된 것인데 눈치를 못 챈 겁니다. 눈치를 못 챘다는 말은 분별하는 시간표를 놓쳤다는 말이에요. 그 사건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사도행전 11장 1절에서 18절 사건 아시죠?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한 것을 가지고 그것이 맞니, 안 맞니? 라고 지금 싸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교회 분위기가 그러했어요.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분위기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여론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고, 말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마가 다락방교회, 초대교회는 그 분위기에 따라서 결국 중요한 변화의 시간표를 놓쳐버리게 된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감람산에서 시작하신 사건을 보게 됩니다. 감람산에서 주신 언약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세계복음화 할 사람이라면 붙잡아야 될 언약이에요. 이게 바로 감람산입니다. 감람산에서 무엇을 말했습니까? 보좌의 배경에서 일어나는 망대와 여정과 이정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냥 망대, 여정, 이정표가 아니에요. 사도행전 1장 3절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말씀했죠. 보좌의 배경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좌의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망대, 그 보좌의 여정 속에서 가는 여정, 그 보좌의 여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그 이정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망대의 흐름을 잘 봐야 합니다. 그러면 여정은 따라올 수밖에 없고, 이정표는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보좌의 망대, 여정, 이정표가 세워지기까지 베드로가 어느 정도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어디까지 쓰임 받았느냐?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까지 그게 베드로가 쓰임 받았어요. 베드로의 역할이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되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땅끝을 누구에게 맡기셨습니까? 베드로는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까지였어요. 땅끝을 누구에게 맡기셨냐? 바로 로마서 16장의 인물이 나오게 된 그 배경에 있는 바울에게 땅끝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 바울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중직자 아나니아를 세웠죠. 그래서 사도행전 9장 10절에 보면은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자가 이미 그 지역에서 말씀 운동을 펴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땅끝을 향한 축복의 시작을 중직자로 말미암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 하나교회 중직자들이 받아 누려야 될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아나니아를 통해서 이 바울에게 중요한 미션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게 되는 사실을 보게 돼요. 그래서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귀한 계획들을 아나니아를 통해서 듣게 되어지죠. 그리고 이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결국 로마서 16장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를 통해서 바울에게 중요한 미션이 전달되어 지고요. 그 미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쓰실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이었어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모든 족속들에게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다 말씀했어요. 이렇게 부름받은 바울의 역사를 이어서 그 대열에 함께 섰던 사람들이 바로 로마서 16장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응답받을 사람들은 이 대열 속에 서 있어야 합니다. 보좌의 배경을 가지고 망대, 여정, 이정표를 주님께서 지금도 이루고 계시는데 이 언약을 바울이 붙잡았고, 로마서 16장의 일꾼들이 붙잡았다면은 오늘 우리가 그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분명히 감람산에서 다른 시간표를 하나님이 허락하셨어요.

3.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이루어짐
 그리고 마지막입니다. 이때부터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현주소를 로마서 16장의 사람들, 거기에 하나님은 현주소를 두었다 라는 사실이에요. 도저히 세상이 이해 못하는 시간표가 온 것이죠. 여러분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리는 그 축복된 역사에 쓰임 받은 사람들이 로마서 16장의 사람들입니다. 결국 로마서 16장에 쓰임 받은 사람들은 그 시간표를 어디에 두었습니까? 여러분 메시지들을 좀 정리하셔서 여러분 깊이 한번 생각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바울을 중심으로 한 팀들이 이루어진 사역 현장들이 사실은 사도행전 13장, 16장, 19장에 나와요. 모든 현장에 들어갈 때 시작이 뭐냐? 성령 인도 받는 거에요.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4절에 말씀하고 있고, 사도행전 16장 16절에서 18절에 말씀하고 있고, 사도행전 19장 1절에서 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침이 무엇이어야 되느냐? 성령의 인도 받는 겁니다. 모든 시작이 무엇이어야 되느냐? 세계복음화의 시작이 무엇이어야 되느냐? 성령 인도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 인도 받아 나가는 그 걸음 속에 나타난 낮 시간에 일어난 역사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죠. 성령의 인도 받으니까 당연히 성령의 역사가 체험되어지죠. 그 성령의 역사는 어떠한 역사로 일어났습니까? 그 지역에 네피림이 완전히 꺾여지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5절에서 11절까지 보면은 마술사가 완전히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고, 마술사가 총독으로 예수 믿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바울 팀에 들어가서 예수 이름을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그 마술사에게 들어 있던 귀신을 쫓아내고, 총독으로 예수 믿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나요. 유대인 가운데 거짓 선지자 마술사가 있었다 했어요. 미신 가운데 빠진 현장이죠.
 그리고 사도행전 16장 16절에서 18절에는 무엇이 나옵니까?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이 그 주인에게 점을 쳐서 이롭게 했었어요. 그런데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바울이 치유하는 사건이 나와요. 점술에 빠진 현장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네피림을 꺾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0절부터 20절에 보면은 에베소 지역에 아데미 신상들도 있고, 많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그 에베소 지역입니다. 우상에 빠진 그 현장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네피림을 꺾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게 성령의 역사에요. 
 그리고 성령의 인도 받고, 성령의 역사가 낮 시간에 이루어지니까 밤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이 뭡니까? 거기에 성령의 열매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13장 12절에 총독이 예수 믿게 되어지고, 사도행전 16장 19절부터 30절에 보면 사실 복음 전하는 이 바울 팀이 감옥에 들어갔는데 감옥에서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켰죠. 모든 차꼬들이 풀려졌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벌벌 떨었습니다,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 그때 이 바울과 그 팀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간수와 간수의 집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에베소 지역의 우상의 역사들이 무너지니까 사도행전 19장 21절에 보면 바울이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했어요. 로마서 16장에 나왔던 귀중한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열매를 가진 정확한 3캠프의 축복을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매일 아침을 성령의 인도받는 속에 시간들을 인도받으시길 바랍니다. 낮 시간의 만남 속에서 여러분 현장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네피림이 꺾여지는 그 역사들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밤 시간은 무엇입니까? 세계복음화 미래를 놓고, 계획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정말로 여러분이 누려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 역사, 열매를 날마다 누려가야 합니다. 이걸 어떻게 세상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축복을 누린 로마서 16장 인물들은 결국 로마를 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기에 쓰임 받았던 바울의 중요한 고백을 우리가 한번 봐야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21절에 나온 내용들이죠. 바울은 중요한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이 참 부끄럽다고 했어요. 내가 모르고 많은 것을 배우고 살았다 라고 고백했어요. 알고 보니까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불신자처럼 땅의 것을 찾지 않는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했어요. 땅의 것이 아니라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간다 했어요. 여러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간다는 말은 이미 땅의 것은 해결 받은 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고백을 빌립보서 4장 13절에 했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에게는 사실적인 야망이 필요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세상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많이 합니다. 나름대로 야망을 가지고, 야망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야망 가지고 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결국 전쟁만 일으킨 겁니다. 우리는 야망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10절에 보면 바울에게 몸에 질병이 왔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를 당했죠. 세 번이나 간절하게 그 질병이 자기에서 떠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 속에서 바울은 깊은 기도의 비밀 속에 들어갔어요. 셋째 하늘까지 보게 되는 깊은 기도의 비밀까지 들어갔어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상황이 와도 상관없다 라는 거에요. 정말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은 문제와 사건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들을 보여주시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바울이 세계를 뒤집은 현주소는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없다 라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께 잡혔다 라는 것, 내 주소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다 라는 것, 거기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병든 자리 그 자리에서.

 여러분 오늘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님들 정말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는가? 말씀 들는 가운데서 여러분 나름대로 점검하시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내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서론에 말씀 드렸습니다. 복음 나타나지 않는 시대입니다. 복음이 변질되어 졌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와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찾고 회복하라는 거에요. 거기에 일어나는 응답입니다. 로마서 16장 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여러분 이 승리의 축복이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확인함으로 말미암아 누려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있어야 할 현 주소를 아는 전도 제자의 기도
1. 오직 복음의 본질을 찾고 회복하는 곳에 나와 교회가 있게 하옵소서.
2. 보좌의 배경인 망대, 여정, 이정표의 길로 가게 하옵소서.
3. 로마서 16장의 대열에 서서 237, 5천 종족 살리는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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