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이보다 더 좋은 것
2026-05-03 16: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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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3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이보다 더 좋은 것
(히6:4-12)

  
서론: 오늘 본문은 흔들리는 히브리인들을 향해서 그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더 좋은 것이 있으니 타락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6:4-8).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당시에 구원의 축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축복을 잊어버리고, 더 좋지 않은 것과 나쁜 것에 빠져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비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축복을 놓침으로 더 좋지 않은 것을 붙잡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승리하며 나갈 수 있습니다. 참된 소망은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은 인생의 12가지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나오며, 이때 소망의 풍성함을 누리며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됩니다.
  
 1. 구원의 참된 확신 속에서의 소망
  가.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엉뚱한 삶을 살며, 기도가 안 되고, 영적 싸움을 싸울 힘이 없지 않는지 말씀을 통해 점검하고, 회복하게 하옵소서.
  나. 틀리고 잘못된 확신, 경험과 체험, 감정과 기분에 빠져 재앙을 당하지 않고, 근원이 해결되었음을 믿고 참된 확신을 가지게 하옵소서.
  다. 지금도 변함없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과 구원
  가. 참된 왕, 참된 선지자, 참된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누림으로 일어난 증거를 자녀와 후대들에게 증거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엡2:2, 6-7).
  나.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보좌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며, 지금도 흑암과 사탄의 역사를 꺾을 수 있는 그리스도를 나의 배경을 누리게 하옵소서.
  다. 하나님의 자녀로 어떤 것에도 속지 않고, 모든 삶이 성령의 인도 속에 있게 하옵소서(요14:16, 요14:26-27, 요16:13, 고전2:10).
  
결론: 핍박과 갈등 속에서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붙잡아야 합니다. 절대 한 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끊어질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 붙잡고 있으면 결국은 열매가 나오게 됩니다(히6:7-8). 실수하고 넘어져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완전하기에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습니다(요6:39-40, 롬8:39). 참된 소망이 없는 시대에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된 구원의 확신 속에서, 이 땅에 소망 없는 자들에게 소망의 이유를 전달하는 전도자(벧전3:15)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월 3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이보다 더 좋은 것”
(히6:4-12)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아멘.
         히6:4-12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이라서 우리 어린아이들이 찬양대로 같이 나왔습니다. 정말로 햇살이고, 빛이고, 예쁜 복음 안에서 너무나 귀중한 우리 후대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에도 나옵니다마는 가장 귀중한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전달하는 그런 우리 어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것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걸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바르게 전달해야 되고, 우리 아이들이 세상 것 맛보기 전에 그것이 먼저 심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 거기에 대한 중요한 언약들을 또 새롭게 붙잡고 확인하는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 세계 선교사 합숙이 있었고, 또 세계 선교사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선교대회도 지난주에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교회 안에서는 중남미 15개 나라의 귀중한 제자들이 집중 훈련에 함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 중남미 팀들이 같이 참여했습니다마는 오늘 또 다른 교회에 같이 예배를 드리러 출타 중이고, 여기에 코스타리카 우리 목사님 내외분만 이 자리에 함께 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사 합숙과 대회 또 하나 선교대회를 지나면서 또 중남미 집중 훈련들을 인도받으면서 우리가, 우리교회가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이구나! 라는 것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우리교회도 마찬가지로 어떤 면에서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영적 재앙 시대 사실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전도와 선교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교회를 부르셨구나! 라는 것들을 깨달으면서 정말로 거기에 대한 축복과 거기에 대한 감사함이 하나님 앞에 고백되어지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 되어서 기도로 또 물질로, 여러 모양으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또 헌신해 주심에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우리 선교사님들도 물론이지만 중남미의 귀중한 제자들이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미션을 붙잡은 자로 또 재파송 되어질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이들을 통해서 중남미 현장에 1천 망대를 세워 나가는 그런 축복의 응답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게 이분들이 누릴 축복이지만 그 일을 놓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있는 우리 또한 그 축복 가운데 서 있고, 누릴 축복이에요. 너무나 감사한 역사들을 우리는 지금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계속해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타락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게 4절부터 8절까지 나오고 있고요. 왜 타락하지 말라고 하느냐?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더 중요한 것,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과 비교해도 비교 우위에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 안 되는 좋은 것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잡았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구원에 속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당시에 히브리인들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버리고, 그보다 더 훨씬 나쁜 것들, 못한 것들을 택하는 그런 움직임들이 자꾸만 히브리인 중에 확산되어지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매 시간마다 우리가 같이 살펴본 내용이죠. 여기에 히브리인들은 유대교에서 예수를 믿고 개종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더 좋은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면 갈수록 그 축복을 잊어버리고, 더 좋지 않은 것, 더 나쁜 곳으로 자꾸 빠져드는 그런 분위기가 확산되어지는 상황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셨죠. 그 이름 안에 모든 축복인 구원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도 이 좋은 것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과 함께 구원의 축복을 놓쳐버리고, 더 좋지 않은 것들을 붙잡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소망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지금 이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불신앙이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혼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참된 소망이 있나요? 그런데 참된 소망은 이보다 더 좋은 것 바로 구원 속에 있을 때에 정말로 세상 속에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승리하며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인 것이죠. 물론 세상적인 것으로 어떤 면에서 소망, 희망, 나름대로 동기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망과 희망과 동기들을 가진 사람은 그걸 가지지 않는 사람들보다 삶의 모든 모습들을 지켜보면 더 열심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농부가 농사를 심을 때에 정말로 추수의 소망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농사 짓잖아요. 학생들은 공부할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할 것인가? 나름대로 그러한 목표를 세워놓고 열심히 공부하고, 또 노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근원을 바꾸지 않은 데서 나오는 소망과 동기들은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근원을 바뀌지 않는 동기는 주인이 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재앙 가운데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원이 해결됨에서 나오는 참된 소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근원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은 인생의 12가지 문제가 모든 사람들의 근원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그 가운데는 참된 소망이 나올 수가 없어요.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은 인생의 12가지 문제 속에 있는 사람들이 열심을 내면 낼수록, 또 동기를 가지면 가질수록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면서 고통과 재앙의 역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원이 해결되어지는 참된 소망을 가지게 될 때 그 참된 소망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것들을 이기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11절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했습니다. 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으로 소망의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까? 무엇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어집니까? 거기에 대한 답이 바로 9절입니다. 오늘 제목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 구원 속에 참된 소망이 풍성함의 역사를 누리게 되고, 약속들을 기업으로 누리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1. 구원의 참된 확신 속에서의 소망
 그래서 우리는 먼저 구원의 참된 확신 속에서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거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확신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현장에 사람들 만나보면은 확신 없이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확신 없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확신 없다는 그것이 드러난 것이 결국은 엉뚱한 삶을 살게 되어져요. 열심을 내긴 내는데 엉뚱한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돼요.
 그리고 정말로 우리가 기도가 되어지면 다행인데 기도가 안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확신이 없으니까 기도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엉뚱한 일에 몰두하고, 기도가 안 되어지니까 가장 중요한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응답은 영적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된 응답이 있습니다. 그 영적 싸움은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과 흑암과의 싸움이죠. 그 흑암과 사탄과의 싸움에서 절대적인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된 구원의 확신 가질 때에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제일 공격하는 성도들의 통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염려입니다. 왜 염려가 일어납니까? 확신이 없으니까 염려되는 거죠.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주께 다 맡겨버리라. 주께서 너희를 돌보심이라.” 말씀했습니다. 내 염려를 맡겨야 되느냐? 8절에 그 답을 말씀하고 있어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했어요. 염려하는 자를 심방하면서 결국은 흔들리게 하고, 무너뜨리게 되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살펴보면 확신 가졌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 틀린 확신을 가지는데 잘못된 확신을 붙잡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틀린 확신, 잘못된 확신 속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점점 가면 갈수록 맹신 가운데 빠져들고, 미신 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결국에 가서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나름대로 어떤 확신이 없으니까 나름대로 어떤 경험했던 것들, 체험했던 것들을 가지고 확신을 삼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감정과 기분을 가지고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 또한 나중에 재앙의 역사들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확신이 있게 되어지면, 근원의 문제가 해결되는 속에서 나오는 참된 확신이 있게 되면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여유 있는 삶이 되어지고, 서두를 필요도 없는 것이죠. 진짜 참된 확신을 가지게 되면 참된 소망이 그 속에 나오게 되는 것이고, 그때부터 참된 응답들이 시작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 어디에서 확신을 가져야 합니까? 지금도 변함없이 성취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확신들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3절부터 나머지 부분들을 성경 쭉 읽어보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에 근거한 확신들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비록 기분과 감정들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말씀에 근거한 확신 속에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체험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말씀에 근거한 확신 가지면 하나님의 역사와 응답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믿어지면 모든 것이 응답으로 누려진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말씀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잖아요? 요한복음 1장 11절에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마는 영접지 아니하였다 했어요. 12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었다.”, 체험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경험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정말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면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젊은 대학생 1명이 무디 전도자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실컷 열심히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았습니다. 그래놓고 이 대학생이 무디 선생에게 와서 질문을 해요. ‘선생님 나는 예수를 믿는데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자 무디 전도자가 성경을 딱 펴가지고 읽으라고 보여줬습니다. 그게 요한복음 5장 24절이었어요.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을 찾아서 읽도록 했습니다. 이 친구가 이 말씀을 그대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맞느냐 물었습니다. ‘몰라요.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또다시 무디가 요한복음 5장 24절을 그대로 또 읽으라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안 믿어진다 했어요.
 그러니까 이 무디가 그 청년을 향해서 버럭 화를 내면서 ‘아니 하나님의 말씀에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다고 했는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했는데 네가 교만해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 받지 않느냐?’라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 순간에 청년이 깜짝 놀라서 그 순간에 모든 불신앙이 떨어져 나가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라고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신학을 들어가게 되었고, 나중에 무디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다음 목회자로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하러 다닐 때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부분들을 강조를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윌버 채프먼이라는 사람입니다. 무디 다음으로 전도 운동 속에 자기가 쓰임 받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인 목회자죠.
 여러분 우리가 어떤 기분과 감정을 따라서 믿는다, 안 믿는다? 그게 기준이 되어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 경험과 어떤 체험을 통해서 그게 기준이 되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말씀에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다고 했잖아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했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그 근거로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 가운데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절, 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 영생은 누가 주었다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었다. 여러분의 수준과 능력과 상관없는 겁니다. 여러분의 열심과 상관없는 겁니다. 여러분 체험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생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 했어요.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리고 이 영생을 누가 소유하고 있습니까? 12절에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 영생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 영생을 누가 소유하지 못했습니까?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중요한 말씀의 증거를 붙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에요.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생 얻는 그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우리가 체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경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뭔가를 체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그래서 불건전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모르면서도 체험할 수 있잖아요? 방언도 할 수 있고, 능력도 행할 수 있고, 아니 점쟁이도, 무당들도 능력 행하고 어떤 기적을 행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굳이 그 이름 아니고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한 것, 물론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응답의 어떤 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게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라는 사실이에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붙잡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과 특권
 두 번째 입니다. 구원의 확신 가운데 가질 수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 있다면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축복과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 가운데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이 그 어떤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 속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자범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와 상관없이 오게 되는 원죄 문제를 우리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자기와 상관없이 저주와 재앙을 받게 되는데 그 근원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분은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참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임 바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짐을 지고, 사탄의 짐을 지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에베소서 2장 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풍속을 따른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공중에 권세 잡은 자가 있다 했습니다.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말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 속에 있으니까 세상을 살아가면 살아가는 만큼 세상의 짐과 사탄의 권세 아래 매여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왕으로 오셔서 이 모든 세상의 짐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지는 귀한 축복의 역사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지옥 배경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지옥의 모든 배경을 그리스도께서 해결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에베소서 2장 6절에 보면은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함께 하늘에 앉히셨단 말은 무슨 말입니까? 지옥의 권세, 지옥의 문들을 하나님께서 닫으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에요. 내가 그 참된 왕, 참된 제사장, 참된 선지자의 축복을 누리게 될 때에 참된 죄에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하나님을 떠난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 증거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그 축복된 증거가 내 자녀에게, 또 다음 후대에게 계속된 증거로 해방된 축복의 증거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여러분만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 후대들이 그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고, 우리 자녀들이 또한 자자손손 그 축복 가운데 그 엄청난 축복의 비밀들을 누린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의 배경들을 바꾸셨습니다. 우리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 가진 주님이 우리의 배경입니다. 보좌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 주님이 우리의 배경입니다. 지금도 흑암의 역사들을 무너뜨리고 사탄의 역사들을 꺾을 수 있는 그리스도 그 이름이 우리의 배경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보좌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의 배경이 되셔서 우리를 승리토록 하시는 그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속지 말고,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됩니다. 우리 삶의 방법은 뭐냐? 성령의 인도입니다. 우리의 배경이 바로 하늘과 땅의 배경이고, 보좌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 우리의 배경이고, 그리스도 그 이름이 우리의 배경이라면은 우리의 삶의 방법은 뭐냐? 성령의 인도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에 말씀하고 있죠. 16절, 17절에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시겠다. 그게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 말씀했어요.
 14장 26절, 27절에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 그리고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니까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우리에게 넘쳐나는 것이죠. 그게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성령의 역사가 내게 임하게 될 때 장래의 일을 알게 된다 했어요. 여러분 정말로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게 될 때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보면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한다 했어요. 이 축복의 비밀을 여러분 누리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이름 속에 있는 구원의 축복이에요.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한 사람만 증인으로 삼을까요? 그게 바울이었어요. 바울은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나를 본받으라 했어요. 빌립보서 4장 15절에 보면 나를 본받으라.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기뻐하고 기뻐하라 했어요. 바울이 가졌던 것이 무엇입니까? 4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되었다.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했어요.
 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것을 향해서,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서 나간다.”, 바울은 이 축복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하늘과 땅의 권세 가지신 주님이 보좌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그 축복의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걸 알기 때문에 이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그 어떤 것보다도 세상에 비교가 안 되는 가장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구원 속에 나오는 참된 소망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히브리인들에게 시간 가면 갈수록 내부적인 핍박들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갈등들이 올 수밖에 없었죠. 갈등하다 갈등하다 결국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히브리 기자가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붙잡으라 말합니다. 너희들이 율법과 전통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라는 사실이에요. 유대교에서 자꾸 회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하지 않다 라는 것, 율법을 붙잡고 전통으로 돌아가야 된다 라는 것,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다 라는 것, 완전한 이름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떠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오늘 4절에서 8절에 보면은 반어법을 사용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 4절에서 8절을 놓고 신학자들의 이런저런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구원받고도 죄를 범하면 구원받지 못하고 구원이 취소된다, 이렇게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또 반대로 말하는 신학자들이 있고, 오늘 읽은 4절에서 8절까지 읽어보면은 이걸 여러분 헷갈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절대 한 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끊어질 수 없다는 사실, 하나님의 강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4절에서 8절에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우리 자녀들 속 썩이는 자녀들이 있죠. 부모들이 화가 나면 어떻게 합니까? ‘호적에서 파낼 거다.’, 진짜 호적에서 파냅니까? 자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데 말 안 들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의미로 오늘 본문에서 갖고 있는 거에요. 분명히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 붙잡으라는 것, 그리스도 붙잡고 있으면 결국은 열매가 나온다 라는 것, 그게 7절, 8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 구원에서 우리가 떨어져 나갈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없느냐? 하나님이 붙잡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했어요. 그러면서 40절에 말씀하고 있죠.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말씀 했어요.
 여러분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인 로마서 8장 39절에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다 라는 것. 데살로니가후서 3장 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는 미쁘시기 때문에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리라.”, 저와 여러분을 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입니다. 이게 우리의 자리입니다. 7장 25절 저와 여러분이 있는 자리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할렐루야! 여기에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서 뭐 하신다고요? 간구하시느라, 로마서 8장 26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말이죠. 그가 온전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라고 말씀했어요.
 참된 소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참된 소망은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나오는 것이 참된 소망인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속에서 나오는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 소망을 전달하는 전도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
 세상 그 어디에도 참된 소망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뭔가 희망과 동기들, 세상적인 기준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면 살아가는 만큼 더 큰 영적 문제 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에요. 참된 소망은 이보다 더 좋은 것, 구원 속에서 나오는 소망입니다. 이 참된 소망을 가진 자로서 소망에 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가지고 있는 전도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것을 가진 전도 제자의 기도
1. 근원이 해결됨에서 나오는 참 소망으로 모든 것을 응답으로 누리게 하옵소서.
2. 지금도 성취하고 계시는 말씀에 근거한 확신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3.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축복과 배경을 누림으로 소망을 전달하는 전도자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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