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이
2026-06-28 15: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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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8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이
(히12:1-2)

 
서론: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2절은 히브리서 전체의 주제 성구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전체 13번에 걸쳐서 복음과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예수보다,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으니 다른 것 아닌 그리스도만 누려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 교회 교인들만이 아닌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이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에 다른 것 누리려고 하지 말고 복음만 누려야 된다는 사실을 히브리서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경주를 하라
  가. 핍박과 환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현장에서 승리한 증인들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하게 하옵소서(히12:1).
  나. 믿음의 경주를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걸림돌을 치우고, 나도 모르게 자기 합리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영적 싸움 하게 하옵소서.
  다. 나 중심과 문제에 빠져 교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알고 끝까지 참고 견디며 승리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히12:3).
 
 2. 누구를 바라보느냐?
  가. 사탄과 흑암의 권세를 꺾으시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완전히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하옵소서.
  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다른 것으로 각인된 것에 벗어나,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히12:2).
  다. 나에게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신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제자로 서게 하옵소서(롬5:8).
 
결론: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단어이고, 믿음은 인간의 단어입니다. 내가 믿지만 믿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눈과 귀와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되고, 어느날 보이고, 듣고, 믿어지게 됩니다. 믿음의 시작이 그리스도이고, 믿음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뿌리와 믿음의 줄기, 믿음의 열매도 그리스도입니다. 내 믿음의 목표와 방향, 모든 삶의 초점과 완성도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월 28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이”
(히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아멘.
         히12:1-2

  ■ 우리의 상황이 우리를 누른다 할지라도, 또 어떤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그 모든 상황들을 역전시키는 귀중한 비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비밀이 바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기도하게 될 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예배하게 될 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보좌의 배경으로 역사하시는 그 능력의 역사가 우리의 모든 삶을 역전시키는 귀한 축복된 응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모든 삶을 역전시키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 바라보시고, 그 분께 모든 시선을 고정하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 오후 예배 마친 후에 우리 산업선교 리더 모임이 있었습니다. 매월 셋째 주 예배 다 마친 후에 산업인들 중심으로 모여서 잠시 말씀을 같이 나누고 포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거기서 40일 집중훈련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 리더들이기 때문에 같이 좀 나누었습니다. 말씀을 나눈 후에 마치고 포럼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장로님 한 분이 ‘교회에서 목사님이 40일 집중 훈련 할 수 있도록 좀 지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을 주셨어요. 그리고 또 다른 분이 말씀하기를 40일 집중 훈련을 자기도 딸과 함께 하려고 몸부림치는데도 불구하고 잘 안되어진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 성도들이 메시지를 듣고 있다 할지라도 진짜 집중할 수 없는 시간들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좀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간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다 할지라도, 어떤 환란이 있다 할지라도 내가 오직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행복합니다. 로마서 16장의 인물들이 바울을 도와서 세계복음화 하는 인물들로 나오죠. 그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은 사실은 오직을 발견한 사람이었어요.
 어느 정도로 오직을 발견했나? 모든 재산을 다 내어놓아도 상관없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위해서 목까지도 내어 놓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오직을 발견한 겁니다. 오직을 발견한 자에게는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을 발견하게 되면 예배가 살아나게 되고, 말씀이 들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구나! 라는 것들로 붙잡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오직에 대한 답이 내려지는 것을 가지고 40일 집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왜 굳이 40일이냐? 아니 40일 아니고, 30일해도 괜찮아요. 또 50일 해도 괜찮아요. 40일 집중의 기준은 뭡니까? 오직에 대한 답이 나오는 것이 기준입니다. 그 일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응답으로 받고, 교회 차원에서 정말 40일 집중 훈련에 함께 인도를 받아야 되겠다 라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인도하기 위한 부분들이 아닙니다. 하다가 못해도 상관없어요. 또 도전해 보면 되는 거고,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제대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정말 여러분 오직에 대한 답이 내려져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1차적으로 다음 주부터 40일 집중을 교회 차원에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1차를 언제까지 하느냐? WRC, HRC 전까지 우리 40일 집중 훈련에 1차적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아침 시간에는 기도수첩이나 3오늘 가지고 또 함께 새벽기도를 가지고 함께 인도를 받고요. 밤 시간에는 여러분 있는 현장에서 망대, 여정, 이정표를 놓고 기도문을 써 가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인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피택자들은 아마 이미 조가 준비되어 있죠. 조 중심으로 카톡을 이용해서 공유를 하고, 모든 현장에 다락방부터 지교회까지 현장에서는 현장의 귀중한 지도자들과 함께 소통을 하고, 우리 렘넌트들은 담임 교사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40일 집중에 같이 인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WRC와 HRC를 앞두고 40일 집중 훈련에 들어가고, 또 추석 연휴를 지나고 나서 2차로 또 인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피택자들 임직식을 앞두고 한 주 특별 새벽기도를 통해 결단하는 시간들을 좀 갖고자 합니다.
 프로그램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또 교회에서 뭔가 밀어 붙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아,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을 찾으라는구나!’라는 응답으로 받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안내받을 수 있도록 자세한 내용들을 우리 로비 포스터로 만들어 붙일 것이고, 주보 속지에 함께 인도받도록 나갈 겁니다.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제대로 교회 신앙생활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편하고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어렵고 힘든 겁니다. 진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 속에 들어가면 오히려 신앙생활은 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찾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미션에 대한 부분들을 가지고 인도를 받으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결단하는 그런 시간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목은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했어요. 히브리서의 주제성구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라고 결론 맺고 있으니까 히브리서 11장이 주제 성구 아닌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또 믿음의 장이니까 당연히 주제 성구가 되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히브리서 11장이 주제성구가 아니고, 오늘 본문이 히브리서 전체 13장까지를 놓고 주제 성구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히브리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전체 13번에 걸쳐서 복음,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예수보다,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자꾸 다른 것으로 누리려고 하니까 그리스도만을 누려야 될 것이 아닌가 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를 통해서 히브리 기자가 히브리 교회 교인들에게만 한 말씀이 아니죠.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이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라는 겁니다. 다른 것 누리려고 하지 말고 복음만 누려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름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편지이고, 핍박받고 환란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편지로 보낸 것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1. 믿음의 경주를 하라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반드시 해야 될 부분들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라는 거에요. 오늘 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그게 믿음의 경주입니다. 그러면서 1절 마지막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했습니다. 1절 시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서, 이어서 하는 말들이죠.
 히브리서 11장은 어떤 내용입니까? 1절에서 2절은 믿음의 정의를 말하고 있고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말하고 있고요.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알아야 된다. 그리고 그가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 7절까지 보면은 아벨과 에녹과 노아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다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이삭, 야곱 이렇게 믿음의 선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을 쭉 이야기하면서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붙잡고, 현장에서 승리한 증인들이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미 그들이 우리에게 증인들이 되어 있다 라는 거에요.
 그래서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했습니다. 그 사실을 붙잡고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해야 될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동선수가 원형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에 그 속에서 많은 관중들이 박수와 함께 격려의 환호성을 보냅니다. 오늘 1절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그것을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믿음의 경주를 해야 된다 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구약 시대에 승리했던 믿음의 선진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리고 지금 이 성경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가 바로 1세기입니다. AD 65년에서 AD 70년 사이에 히브리서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1세기의 신약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자, 구약에 승리했던 믿음의 증인들, 또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신약 시대의 사람들, 또 오늘 우리 시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환란 받고, 핍박 받는 모든 환경들, 그 조건들은 같은 조건입니다. 차이가 있다면은 믿음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는 오실 메시아를 약속으로 붙잡고, 그 믿음 가지고 승리한 사람들이고요. 신약 시대와 오늘 우리는 오실 메시아가 아니라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진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오늘 제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오실 메시아를 약속으로 잡고, 믿음으로 산 사람이 있고,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까?
 모세가 말하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 율법에서 말씀하는 실제가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성경을 읽어보면 더 나은 제사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더 나은 제사장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더 나은 제물이 그리스도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와 제물과 제사장이 나오죠. 이 부분들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계속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비교해 가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구약 시대 사람들보다도 더 축복을 받았음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이미 우리에게 있다 라는 것, 약속만 붙잡았는데 승리한 그 증인들이 우리에게 둘러서 있다 라는 것, 그 속에서 우리가 오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 말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정말로 믿음의 경주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세 가지를 없애야 합니다. 오늘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몸에 모든 걸림돌이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치워버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수영 선수가 수영복하고 수모만 쓰잖아요? 아무리 좋은 반지라도 끼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걸이라도, 진주 목걸이라도 끼지 않아요.
 그냥 걸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공기의 저항력을 없애기 위해서 모든 것 다 벗어버리고, 수영복과 수모만 쓰잖아요. 여러분 달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자랑하기 위해서 시계를 차고, 금반지를 끼고, 목걸이를 하고 달리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마라톤을 할 때 달리기 선수들은 털까지도 다 깎아낸다고 합니다. 공기의 저항력을 없애기 위해서 털까지도 다 깎아버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에 모든 무거운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삶에 나도 모르게 군더더기들이 너무나 더덕더덕 붙어 있어요. 그리고 얽매이기 쉬운 죄는 무엇입니까? 잘못된 습관입니다. 내가 늘 덫에 걸리는 유혹들, 그게 바로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가 우리 안에 어떻게 나타나느냐? 그걸 벗어버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나타나기에 벗어 버리라고 하느냐? 나도 모르게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부분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죄 된 부분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배경, 그 영향 속에 있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들 생기면은 전부 자기를 합리화시키고 있어요. 철저하게 나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를 합리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는 겁니다. 그게 믿음의 경주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여기 얽매이기 쉬운 죄가 나오죠. 그리스도께서 참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시고,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해방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늘 죄의 권세 아래 끌려다녔어요. 죄가 힘이 있어서 우리도 모르게 원치 않게 죄의 권세 아래로 끌려가는 겁니다. 이를 악물고 결단한다 할지라도 안 되게,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죄를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예수 이름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떨쳐버리고, 매일 영적 싸움을 싸우고 거기에 믿음의 경주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내로서 당한 경주를 하라.”, 여러분 인내가 무엇입니까? 끝까지 견디고, 참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버티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관건이 있다면 얼마나 버티느냐입니다. 우리는 옳음을 알고도 끝까지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병입니다. 포기하고, 목표도 수정하게 되고, 또 안 되니까 편법도 이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끝까지 가지 못하는 거에요. 오늘 3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것을 생각하라.”
 여기에 참으신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게 바로 인내입니다. 우리는 문제만 당하면 좌절하고, 실망하고, 낙심하고, 넘어지고, 포기합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높은 산들이 깎여져야 돼요. 우리 안에 나 중심한 교만한 마음들이 깎여져야 돼요. 골짜기마다, 웅덩이마다 메꿔져야 합니다. 여기에 골짜기는 무엇을 말합니까? 나도 모르게 낙심하는 겁니다. 여러분 교만하는 것이나 낙심하는 것이나 창세기 3장의 영향 속에 있는 거에요. 마귀의 함정이에요. 교만이나 낙심하는 거나 같은 거에요 수준은. 결국 나 중심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거기서 포기해버립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뭐냐?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자리에서 믿음의 역사를 지금 당장 증거가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 붙잡고 견디는 겁니다. 당장 증거가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 붙잡고 버티는 겁니다. 그게 바로 승리의 길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이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이 말은 오직 의인은 버티고, 견딤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이에요.
 정말로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 하나교회의 모든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이미 주신 증거를 붙잡는 겁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붙잡고,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우리의 주어진 자리에서 약속하신 자리에서 미련하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견딤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누구를 바라보느냐?
 두 번째입니다, 믿음의 경주의 방향입니다. 목표라고 할 수 있나요. 누구를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하느냐?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입니까? 사탄과 흑암의 권세를 꺾으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있는 모든 자리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여러분 넘어져도 상관없어요. 무너져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새 힘을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면은 잠시 잠깐은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 바라보면 잠시 잠깐은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잠시 잠깐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니에요. 결국 한계가 오고, 그 후에 다른 문제들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야 돼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야 돼요. 여러분 물고기는 어디에 있어야 된다고요? 물 속에, 나무는 땅에, 새는 공중을 날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때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무언가 힘이 빠지고, 잘 안된다? 하나님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바라볼 때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자꾸 다른 것을 바라보느냐? 이미 우리 안에 각인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에게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 따라서 보게 되거든요. 무엇에 관심 있냐? 그것 따라서 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각인된 그것 가지고 우리는 보는 겁니다. 왜 세상 바라봅니까? 왜 자신 바라보면 실망하고, 힘 빠지고, 나빠집니까? 왜 그렇습니까? 왜 성공을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아갑니까? 이미 내 안에 나, 세상, 성공 중심한 것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 바라보고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면 볼수록 사실은 세상 속에서 힘 빠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믿음의 주라고 하죠. 이 믿음의 주라는 말은 믿음의 시작이란 말이에요. 다른 말로 믿음의 창시자라는 말입니다. 또 온전케 하신다 했죠. 믿음의 끝이 온전케 하시는 겁니다. 완전하게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에 흠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완전한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완전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흠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완전한 것입니다. 믿음의 주라는 말은 믿음의 시작이 주님이시라는 말이고요. 온전케 하신다는 말은 믿음을 끝내시는 분이 바로 주님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내시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6절에 말씀하고 있죠.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가 있다. 그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신다. 시작하시는 이가 있고, 끝내시는 이가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축복 속에 서 있는 겁니다. 내가 내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믿음으로 시작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끝내게 하시는 그 축복 속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습니다. 내가 있고, 없고 상관없습니다. 내가 연약하고, 부족하고 상관없습니다. 믿음의 시작과 끝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상관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누구라고 말을 하고 있나요? 아브라함입니다. 원래 불신앙 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 동네에 살고 있던 사람이요, 우상숭배 하던 사람입니다. 거기서 엄청난 가정의, 가문의 일들을 당했죠.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날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래서 그 말씀 붙잡고 나와서 걸어가는 과정 속에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새로운 축복을 준비해 놓고 떠나라는데 떠나질 못했어요. 그게 롯을 데리고 나온 겁니다. 분명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는데 자기 마음에 그래도 조카 롯, 아버지도 없는데 챙겨야 될 것 아닌가? 뭔가 나름대로 동정심이 있었겠죠.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라는 겁니다. 떠나지 못했어요.
 그리고 당장 눈앞에 기근이 다가왔어요. 그리고 애굽에 내려가게 되고, 자기 마누라를 누이라고 속여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어요. 자식을 줄 것이다 말씀했는데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을 취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이 하갈을 통해서 나온 이스마엘입니다. 온갖 어려움들을 당했죠.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 속에 여러가지 이런저런 문제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22장에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는 겁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안 겁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불신앙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다 버리고, 이삭을 데리고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나아가게 된 겁니다. 이미 아브라함이 도로 받을 것을 알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주셨죠. 이삭 대신 수양을 준비해 놓은 사실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왜 믿음의 조상이라 하느냐?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의 작품인가를 설명해 주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아브라함 되게 하신 사실입니다.
 한 사람 더 예를 들까요? 모세입니다. 40년 동안에 애굽의 왕궁에서 그 당시에 최고가는 학문을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자기 동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것을 보고 결국 살인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죠.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 도망갔습니다. 아무도 대화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치고 양치는 것이 가지였습니다. 말조차 잊어버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혀가 둔해졌어요.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여러분 말도 자꾸 해야 늡니다. 그렇잖아요? 말 안 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혼자 있어도 말 안 하기 때문에 말을 자꾸 못하는 겁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말할 상대가 있습니까? 이 모세가 바로 왕에게 하나님께서 가라 할 때 모세가 하나님께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나는 입이 뻣뻣합니다, 혀가 둔한 자입니다. 일리 있습니다. 말을 워낙 안 했으니까 잊어버린 겁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결국은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만난 바 되었습니다. 타지 않는 불꽃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보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지팡이를 갖고 나갑니다. 나가는 걸음에 하나님께서 그 마른 막대기 지팡이를 왜 가지고 나가겠습니까? 내 인생이 마른 막대기 같지만은 하나님께서 너를 쓰시겠다 라는 말이에요.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끝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다. 여기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기쁨입니다. 다른 말로 미래의 영광입니다. 그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구원의 역사와 함께 구원 속에 숨겨진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참으셨다.
 구약 시대, 신약 시대,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죠. 십자가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표시로 십자가를 사용한 겁니다. 십자가의 형벌이 가장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조차도 개의치 않았다 말씀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쁨을 위하여. 무슨 기쁨입니까? 구원의 기쁨, 구원 속에 있는 생명의 축복의 기쁨, 그 일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축복된 사랑이 얼마나 우리에게 임하고 있는 지를 눈을 여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하고 있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정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구원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셨다 라는 겁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이 간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에게 구원의 생명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을 가지고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제자 한 사람 세워지게 될 때 모든 현장을 살리는 증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단어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단어에요. 내가 믿는 것이기 때문에 나로부터 시작된다 착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지만은 그 믿음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내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그래서 비밀입니다. 믿음 자체가 신비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눈과 귀와 마음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어느 날 믿음이 있으면 보이고, 듣고,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시작이 그리스도라면 믿음의 완성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뿌리도 그리스도요, 믿음의 줄기도 그리스도요, 믿음의 열매도 그리스도입니다. 내 믿음의 목표와 방향도 그리스도입니다. 내 모든 삶의 초점도 그리스도입니다. 완성도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믿음의 경주를 하는 전도 제자의 기도
1.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붙잡게 하옵소서. 
2.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모든 것을 버리게 하옵소서.
3.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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