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정신치유는 시대적 과제
2004-05-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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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국에도 복음 메시지가 들어가서 증거되는 과정 중에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합리주의라고 합니다. 이 합리주의 속에 빠져있는 한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기도가 안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름대로 자기 이성에 빠져있기 때문에 기도가 안됩니다. 그러므로, 거꾸로 생각하면 기도가 되면 다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신치유는 시대적 과제’라는 말은, ‘정신문제는 시대적 문제’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1. 불신앙

시대적으로 일어나는 정신문제는 바로 ‘불신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니까, 장로니까, 집사니까 잘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묵은디들이 변화된 면도 많이 있지만 이들에게서 나오는 문제는 ‘따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바로 불신앙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불신앙을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역사하십니다.
아침에 산보를 하면서 교인들이 교회에 가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습니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도 절대로 안 믿을 사람들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더 안 믿을 사람인데...’라는 생각에 멈칫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불신앙을 깨기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역사하시는지 모릅니다.
어제 현기증이 나서 혈압을 재어보니 240-130으로 매우 높게 나왔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위험한 상황까지 갔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살아있으니 얼마나 기적입니까? 그래서, 제 딸이 ‘아빠 핏줄은 정말 질기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혈압이 매우 높아지는데도 위기에 부닥치지 않는 순간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는 사실을 깨닫곤 했습니다. 정말로 저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얻은 중요한 것이 ‘이렇게 이끌어 가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교인들이 아침에 교회에 오는 것을 보며 할 일이 많은 벅참을 느낍니다. 오늘 아침에도 혈압이 어제와 똑같이 매우 높았는데도 현기증은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일은 해야 되고 믿지는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신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왜 이러냐?’라는 생각이 ‘하나님께서 기어코 나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다’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불신앙은 모든 시대에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신앙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성과 합리성입니다.

문명과 과학이 발달될수록 이성과 합리성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성과 합리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일평생 고생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하늘에 닿도록 높은 대를 쌓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술은 놀라운 것입니다. 정말로 문명과 기술이 발달했던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저주스러운 징계를 내렸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던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될수록 인간은 더욱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자동차가 발달되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자동차로 인해 죽는 사람의 수가 어떠한 전염병으로 인해 죽는 수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의 현장에서 헤어짐이라는 큰 고통을 주셨습니다. 말을 나누어 전세계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결국 언어가 다르니까 서로 통하지 않게 되고, 서로 통하지 않으니까 싸움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웃과 싸운다는 것은 사단의 역사이고, 정신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러낸 것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선민을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택하여 함께하는 자들이 얼마나 축복받는 민족인가를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이성과 합리성에 매여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1-3)’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함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대를 잇기위해서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한 배경이 바로 합리성입니다. ‘내가 아들을 못 낳을 것이니까 조카 롯을 양자로 삼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씨에 대해서도 언약을 주셨는데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한 뒤 기근이 오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것도 바로 아브라함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합리성을 고치는 과정이 바로 고난입니다. 고난이 아니고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못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의 혈압은 250에서 260을 넘어섭니다. 다만 너무 염려하실까 싶어서 20정도 낮추어서 240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기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문제만 생기면 이성과 합리성에 빠집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가다가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 양치는 일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으로서도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롯을 아브라함 곁에서 떠나게 만드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이성적 판단으로 끝까지 붙잡으려고 했던 롯을 떠나보내는 과정에 다툼이라는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정에 싸움이 나온다면 불신앙의 배경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롯이 떠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녀가 하나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16절에서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들도 없고 조카 롯마저 떠나보냈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속을 하시자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라고 다시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창15:2)’라고 화를 내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 주면서 무엇을 준다고 하느냐고 화를 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하면서 정작 어려움이 계속 있으니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더욱 덤벼들며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창15:3)’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너무 믿지 않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끌고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창15:6)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시고 축복하셨습니다.(창15:6-7)
그런데, 또 다시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15:8)’라며 믿지 못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사에서 다른 것은 모두 배를 갈라 둘로 나누어 놓았지만, 비둘기는 배를 가르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사는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이 예배를 잘못 드린 배경은 언약이 이해되지 않아서입니다. 우리도 언약이 확인되지 않으면 가정 예배가 잘 되어지지 않습니다. 가정 예배는 비둘기처럼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대예배 뿐만 아니라 가정 예배나 개인 예배도 모두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21)’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진짜로 신경질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로 인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언약 속에서 예배가 안되면 모든 것이 안되고 정신병이 옵니다.
이러한 언약을 받았지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아내 사라가 잉태하지 못하자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창16:1-16) 분명히 언약을 주셨는데도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부부가 합작을 해서 불신앙을 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안주시면 인간은 믿어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방법이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빗나갈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 정신병이 됩니다.
창세기 17장에서 드디어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먼저 선포하시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시고, 이름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아들은 주지 않고 열 받는 소리만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약속은 철떡같이 말하면서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6-8)’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아내의 이름을 ‘사래’에서 열국의 어미라는 뜻으로 ‘사라’라고 바꾸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철썩같이 계속해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초월적인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계속 말해도,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합리성에 빠져서 믿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엎드려 심중에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고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빠져 불신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정신병입니다. 우리의 본성이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들의 이름까지 ‘이삭’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도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18:14)’라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확인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라.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만 되면 모든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못 믿으니까 이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말한 것은 기어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시고 계획하신 일은 하나님 자신이 이루십니다.’ 아브라함이 믿든 믿지 않든, 기어코 이성과 합리성에서 빠져나와 믿을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 후에도 물론 아브라함은 많은 불신앙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와 공의를 이루십니다. 즉, 나의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가 네게 약속한 일을 내가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는다, 안 믿는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전도가 되어지도록 만드십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성과 합리성에 빠져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치유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성과 합리성은 모든 세대에 흐르는 정신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주여, 믿습니다.’라고 믿는 모습을 조금만 보여도 하나님은 사정없이 축복을 주십니다.
영육간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능자, 창조주’로 돌아가면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성과 합리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오직 은혜로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만드시고 축복을 쏟아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모든 계획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고백을 조금만 해도 축복을 쏟아부으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축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2. 불신앙의 종류

(1) 범죄, 마약, 돌출, 지나친 부정적 생각, 지나친 긍정적 생각, 지나친 열심, 고정 관념 등이 모두 불신앙입니다.
(2) 악몽, 환상, 환청, 눌림, 점 등이 모두 불신앙입니다.
(3) 정신분열, 귀신의 실제적 역사, 통제 불가능, 기이한 질병, 가문의 질병 등이 모두 불신앙입니다.

3. 어떻게 해야 치유됩니까?

(1) 구원받아야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을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새창조의 능력이 임합니다. 그 때에 육신 치유, 환경 치유도 나옵니다.

(2) 영적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았으면, 그리스도가 바로 깨달아져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영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다.

(3) 이 때부터 영적 치유가 자연스럽게 따라나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여기에서 기도밖에 할 것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창조주, 전능하신 분이 오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남이 잘했다, 못했다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면 됩니다. 기도하면 평안이 임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려고 하면 스스로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4) 이렇게 되면, 환경은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기도만 하면 됩니다. 환경과 여건도 하나님이 다 이루십니다.

(5) 육신 치유는 따라서 옵니다.
마약을 먹는 이유는 힘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안과 감사와 안식이 있으면 육신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마약이 필요없어집니다. 신앙 생활을 잘 하면 건강이 옵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건강한 상태에서는 이성과 합리성에 빠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살살 건드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말씀을 듣고, 상대방을 살리는 창조주, 전능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서 그리스도만 말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이 구원받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도 치유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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