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비밀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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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마 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마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마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마 18: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마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 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 18: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마 18: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오늘 제목을 "용서의 비밀"이라 그렇게 삼았습니다. 바로 성경은 우리 교인들에게 '용서하라!' 이런 강요를 했어요. '용서하라!' 심지어 어느 정도로 용서하라고 하느냐? '원수도 용서하라!' 원수도 용서할 정도가 아니고 반대로, '원수도 사랑하라!' 그랬습니다. 어떤 말보다 말 안 되는 말이 이 말입니다. 도저히 이건, 아무리 우리 인간사회에서 조금만 미워도, 사람 얼굴만 쳐다봐도 닭살이 돋는 그런 형편에 용서라는 이게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뭐 우리가 말로 손을 잡고, '미안하다!' 그래도 혹시 말로는 될지 몰라도, 속으로는 '죽일 놈!' 그러고, 이렇게 되는데, 그게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여기에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성경이 오늘 마지막 35절에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아멘. 이 중심으로, 그건 거짓말이 아니고, 가면도 아니고, 진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 되는데, 안 하면 여러분과 제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는다!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또 나에게 이것은 뭐 하나님과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안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정말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한가지 그 비유를 든다면, 내가 10억을 빚져 있다가 이 10억 빚을 진 사람에게, '좋다! 내가 10억을 탕감해 줬다! 끝냈다!' 그래가지고 기분이 너무 좋아 가지고 나오다가 나한테 100원 빚진 사람을 보고, '막, 미안합니다! 100원 내가 진짜 몇 일만 있으면 갚아주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럴 때에, 나는 10억을 탕감 받은 내가 100원 빚진 그 사람보고, 너무 좋아 가지고 '야, 치워라 됐다!' 이렇게 될 것 아닙니까! 아마 여러분 여기 계신 분들이 10억 탕감 받고, 10억이 아니라 천만 원만 탕감 받고 나오다가 100원 빚진 사람이 와 가지고, '미안합니다! 100원 몇 일 후에 갚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너무 기분 좋아 가지고, '야, 관둬라! 됐다!' 충분히 그럴 겁니다. 예를 든다면 적은 문제가 그런 문제입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에 감격이 없으면 모든 문제가 안됩니다. 이건 신앙생활도 안되고, 응답도 안되고, 모든 게 안됩니다. 모든 비밀이... 구원에 비밀! 그래서 용서라는 속에 다 있습니다. 용서가 왜 안 되느냐? 그러면 누가 용서할 수 있느냐? 그 용서의 비밀에 첫 번째가 뭐냐하면,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용서할 수 있고, 구원받아도 모르면 용서가 안돼요. 구원의 확신 있는 자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신앙생활은 다 풀리고, 축복과 은혜 모든 것이 여기서 다 나옵니다.
뭐 '하나님, 내게 은혜 주옵소서! 축복해 주옵소서! 세계 적인 부호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게 백 번, 천 번해봐라! 구원받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안되었는데, 신분이 안 바뀌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 바로 중요한 의미를 오늘 좀 두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을 쭉 읽어보면, 뭐 여기에 '어린아이가 되어라!'고 하는 문제라든가, 지금 여기에 이 문제도 전부 뭐와 연결되느냐 하면, 실제적인 어떤 그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말하면서 영적인 문제를 지금 해결해 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영혼의 문제,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해 주는 것이죠.
그래서 조금 그 뭔가 수자적인 개념을 조금 이해를 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24절에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그랬습니다. 1만 달란트 그랬는데, 이 달란트라는 이 배경이, 우리 뭐 돈과 화폐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좀 이해가 안 되죠. 그래서 이것을 조금 설명하려고 그러면, 그때 유대인들이 1년에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 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히 짐작이 가죠. 1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입니다. 그러면 1만 달란트, 800달란트 생각을 해보세요.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다음에 데나리온과 달란트에 대한 숫자개념은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입니다. 그러면 대강 이제 우리 돈으로 이게 환산이 잘 안되니까! 우리 돈으로는 환산을 못하겠고, 그때당시의 화폐단위로 이렇게 환산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 그러면 1만 달란트,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년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라 그러면, 1만 달란트 그것은 한 개인으로서는 백 번 죽었다 깨도 값을 수 없는 돈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 한 데나리온, 그저 한 데나리온은 이것은 미미한 숫자다! 그래서 제가 알기 쉽게 100억을 탕감 받고 오면서 100원을 '갚는다! 못 갚는다!' 이 문제를 제가 알기 쉽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은, 그리고 원수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이게 와져야 되죠. 말하자면 100억을 탕감 받았는데, 100원짜리 못 갚았다고 그럴 때에, 진심으로, 중심으로 '괜찮다! 관둬라!' 이게 나오는 것이지, 그게 안된 상황에는 똑같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여러분들이 신분이 바꾸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실적으로 받아서, 그래서 구원의 축복과 역사가 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게 확인되어야 뭐가 나오느냐? 용서라는 것이 사실적으로 나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중심으로 안 나와요. 조금 뭐 잡고, 내가 구원의 큰 은혜를 받았으니까! 이 사람은 나와 관계를 해결해야 되겠다! 그래서 손 붙잡고 '미안합니다!' 그래도 중심으로 안됩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 사실이 안되면 그게 안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먼저 우리가 뭘 깨달아야 되느냐 하면, 1만 달란트 빚진 사람처럼, 여러분과 저가 평생을, 두 번, 세 번 살아도 갚을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게 구원 역사의 첫 번째 문제 아닙니까!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뭐라 그럽니까? 원죄라 그럽니다. 원죄!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분과 제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이해가 안되면 은혜라는 말이 이해가 안되죠.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무조건 받았습니다. 값없이 받았는데, 이 값없이 받았다는 것은 어떤 가격으로 따질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참 이게 은혜 안 주시면, 이게 감각이 안 오는 문제 같아요.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면서, 쫙 기지개를 켜면서 '감사합니다! 공기를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 본적이 없어요. 왜? 너무 큰 것을 받아 버리면 감사가 안 느껴져요. 늘 뭐 그저 호흡하고 살지만, 감사가 안 느껴집니다.
또 그렇잖아요. 그것보다 공기문제는 떠나서라도 너무 부모의 은혜를 받고 사니까! 자식들이 우리 부모님 은혜 감사하다! 이게 안나와요. 너무 크게 되기 때문에 이 안나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큰산도 멀리서 보면, '아 산이 높구나!' 이게 보이지만 산 가까이 있으면 새 파란 것 밖에 안 보여요. 큰 지도 적은 지도 몰라요. 이처럼 우리가 너무 큰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받고있는 현장에서는 이게 미쳐 깨달아지지 않는 겁니다.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런 비유를 자주 안 들었습니까! 부모가 매일 아침, 매끼마다 반찬 준비해 가지고 줘도 감사한 줄 모르고, 또 투정만 하던 아이도 앞집 아주머니가 과자하나만 줘도, '감사합니다!' 그러고 받거든요.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과자 하나하고, 일평생 자기에게 뭐 계속 먹이고 입혀주는 데도 감사소리 안 하거든요. 맨 날 감사는커녕 오히려 뭐라 그럽니까! 투정만 합니다. '밥 맛 있느니, 없느니!' 이런 식이죠. 그런데도 앞집 아주머니가 과자하나 줘도, 물 한 그릇만 마셔도, '고맙습니다!' 그러잖아요. 꼭 우리가 이 식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 감사할 줄 몰라요. 왜? 근본 이게 이해가 안되어요. 감각이 안 와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1만 달란트 빚진 사람, 그 다음에 한 데나리온 빚진 동관에 대한 문제! 이게 여러분과 제가 절실한 현실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용서할 수 있다, 없다! 이건 말이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한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고,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 되어있다! 이겁니다. 우리가 용서한다, 안 한다! 이게 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왜? 비교도 안 되는 은혜와 축복을 내가 받고 있기 때문에, 이게 근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근거 때문에 여기 나오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 안에서 뭐 우리 교회가 참 사랑스러워야 되고, 뭐 어떻게 해야 되고,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신분인 자리에 모인 것이지, 교회 안에서 '용서해라! 뭐해라!' 이것을 강요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거든요. 이미 여러분 교회 앉았다! 구원의 축복과 은혜가 감격이 되면 감격이 되는 만큼 모든 문제가 여기서 다 나와버립니다. 뭐 나올 것이 없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이렇다, 저렇다!' 나온다는 자체가 뭐냐? 확실하게 말합니다. 복음이 안되었던지, 복음이 되었다 그래도 확신이 없습니다. 여기서 빚어지는 모든 문제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 일들이 번져 나오는 모든 문제는, 그리고 이 복음 이외에 나오는 모든 문제는, 복음만 확인되면 확인될수록 그 안에 다되어 버립니다. 다른 것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늘 우리가 서론만 하다가 마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늘 말도 안 되는 짓만 하다가 신앙생활을 마치는 겁니다. 진짜 붙들지 못할 때에 오는 모든 문제가 여기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그런 나변의 문제가지고 살아갈 신분이 아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미 벌써 이런 놀라운 축복과 역사가 이 신분으로 확인되어 있어야 여기서 모든 문제가 나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사실이 높아지고, 커지고, 확인될수록 다른 여러 문제는 아무리 나온다 그래도 그건 비교가 안되니까! 생명 살았다. 생명과 뭐가 비교됩니까! 그런 비교될 문제가 아니죠. 이 안에서 다 해결해야 될 문제가, 오늘 여러분과 제가 진짜 확인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러면 먼저 백 번, 천 번 자꾸 설명해도 그 설명입니다 만은, 여러분과 제가 원죄가 해결되었다는 말이, 그것이 '원죄 해결이다! 받은 우리는 해결 받았다! 참 감사하구나!' 그 정도로 끝나는데, 이 원죄 해결이라는 문제가 여러분이 일평생 살아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일평생이 수백 번 거듭된다! 그래도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오직 누가?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을 바쳤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건 우리 인간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시고, 흑암과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꺾고, 저주와 고통의 세력을 완전히 해결하고, 여러분과 제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기만 해도, 그 은혜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영접하기만 해도,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게 요한복음 1장 12절 아닙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뭡니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 신분이 바꾸어져야 모든 문제가 나온다! 여기서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뭐 '사업 잘되게 해 주옵소서, 뭐 잘되게 해 주옵소서!' 이것도 신분이 안 되었는데, 뭘 잘되게 한다는 겁니까! 우리가 지금 교회 건축을 크게 앞두고 있습니다. 건축기도하면서 먼저 제가 늘 강조했던, '개인의 교회와 가정교회가, 직장교회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 오는 문제는, 뭐 따라서 오는 문제예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여기서 오는 문제가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전부 연결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좀 뭔가 이해되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이것은 회개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신앙생활하면서 너무 '하나님의 자녀다!' 여기만 강조를 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그런 회복하는 관계가 회계라는 겁니다. 이것을 그래서 회개라는 말이 우리는 옛날에 또 도덕적으로 돌아가 가지고, 뭐 잘못된 것! 그 다음에 뭐 밤 따먹고, 감 따먹고, 이웃에 고구마 훔쳐먹은 것! 이런 회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 우리의 삶을 어떻게? U턴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인간적으로 돌아왔던, 육신의 욕심으로 돌아왔던 내 생각을 어디로? 영적으로, 그 다음에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회개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내 생각과 마음 전체가 누구를 향하느냐? 하나님의 계획을 향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그 다음에 내 삶이 교회 중심이 되고, 말씀 중심이 되고, 또 주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그리고 모든 삶이 뭐가 되느냐? 우선 되는 것! 말하자면 생활과 사건에서부터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모든 순서의 절차가 먼저 우선 되어야 될 것이, 하나님! 말씀! 이렇게 되지 않는 데서 문제가 온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 사실과 이 축복이 바로 어디서 오느냐? 구원과 구원의 확신, 그 다음에 이 사실이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배경이 회개! 이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인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죠. 우리는 흔히 회개라는 것이, 너무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만 강조하다가 보니까, 이것을 흔히 놓일 때가 많아요. 회개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삶이 된다면서 다른 도덕적인 차원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따라오는 문제예요.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차원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원의 확신이 왔다!' 그러면 따라오는 것이 뭐냐? 회개, 사죄의 확신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내게 속죄해 주신다는 확신이 오면서, 그때부터 뭐가 오느냐? 인간과의 관계는 실수가 따르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사람과 살다보면요, 부부간도 실수가 오고, 형제지간도 오고, 부모자식간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뭐가 나오느냐? 거기에서 회개라면 이게 이상합니다. 말하자면 서로서로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해 다오!' 이 말이 어디서 근거되느냐? 앞에 부분이 근거가 되고 이것이 깔려지지 아니하면, 그 다음에 뒤에 문제가 따라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관계에서 참 행복과 축복이 뭐냐하면, 용서라는 겁니다. 그 용서의 배경이 뭐냐하면, 사과하고, 그 다음에 서로 용서를 구하는 이 삶에서 인간 삶에 행복이 나옵니다. 진짜 감사가 나오죠. 이 기쁨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우리 인간 생활 속에, 특별히 가장 가까운 가정 속에서도 행복이 안 나옵니다. 진짜 행복이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이 부부관계도, 부부사이에 처음 뭔가 이 부부사이에는 별로 그런 것을 못 느껴요.
제가 이 결혼 예비학교를 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제가 이렇게 보니까 젊은 청년들이 결혼을 앞두고, 이제 예비학교에 와 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예 이것을 버려야 행복이 온다!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고생문이 훤하다!' 이것을 아직까지 전혀 모르고... 왜? 너무 행복한 어떤 꿈을 꾸고 앉았어요. 가만히 보니까, 얼굴이 뭐 결혼하면 뭔가 그럴 것 같아서... '그게 아니다!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진짜 싸움이 나온다!' 싸운다는 것도 여러분 사실은 어떤 면에서 부부간에 싸움이 진짜 싸움이지, 다른 사람하고 싸우는 것은 싸우는 것도 아니에요. 부부간에 같이 맞대고 평생을 지금 얼굴 맞대고 싸워야 되는 형편인데, 이 싸움이 보통싸움이 아닌데, 그러니 보니까 막 행복하고 그런 줄 아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결혼하면, '남편이 나를 위해서 뭐 어떻고, 여자가 나를 위해서 어떻고... 다 꿈꾸지 마라! 나를 위해서 사는 그 순간 그때부터 끝난다!' 그래서 결혼은 연예의 무덤이라 안 그럽니까! 사랑의 무덤이고, 기쁨의 무덤이 결혼이지! 제가 너무 비참하게 이야기 해버려서 우리 아이들이 얼굴이 멍하더라 구요. 막 부풀어 왔는데, 그러나 결혼해서 '좋다, 나쁘다!' 이것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언제? 이제 아이 둘 셋 낳고 중년이 넘어서, 그때 가서 남편이 아내 손을 잡고, 거칠거칠한 손을 잡고, '참, 미안하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무슨 그런 말씀하느냐! 내가 사랑 받아서 미안하다!' 서로 용서하고 과거문제를 생각하면서 '내가 너무 학대했다! 너무 미안하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나옵니다. 그전에 행복하다! 다 거짓말입니다. 행복하다고 전부 자기중심에서 행복하다는 것인데. 그게 진짜가 안되거든요. 무슨 말씀을 하고싶으냐? 여러분 진실한 용서가, 오랜 시간 후에 부부가 손잡고 살아가면서 그때에 당신의 과거를 포용하고, 나의 과거를 포용 받을 때에, 그리고 그 과거를 사랑하게 될 때에, 여기에 진실한 행복이 나옵니다. 참된 축복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참 보기 좋다는 것이, 부부가 결혼식하고, 팔짱끼고 가는 것이, 뒷모습을 보면서 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팔짱끼고 나갈 때에, 결혼식 막 마치고 팔짱끼고 딴 딴따다 거리고 안 합니까! 그리고 막 행진곡이 안 나갑니까! 나갈 때에 잘 살아야 될 것인데, 걱정이 나오지!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노부부가 손을 딱 잡고 거니는 그런 광경은, 뒷모습을, 혹은 옆모습을 보면서, '야, 참 행복하다!' 그런 느낌을 느껴보거든요.
무슨 말씀이냐? 여러분 진실한 행복은 어디에 있느냐? 용서 안에 있습니다. 이런 바탕이 어디서 오느냐? 근본적인 구원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무슨 죄악이라도 무슨 문제라도 하나님께 들고 나가면 해결된다는 확신이 배경이 될 때에, 너와 나 사이에 용서가 나오고, 사죄가 나오고, 그 다음에 사과가 나오고, 그 다음에 여기에 진실한 회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뭐가 나오느냐? 여러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았다는 확신과 사실이 오게 되는 동시에, 신앙생활에 기쁨이 옵니다. '주여, 정말 나 같은 죄인이 이 큰 은혜와 축복을 주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격합니다. 이것은 아마 당해보지 못하면 이해가 안됩니다.
여러분 가끔가다가 뭔가 하나님 앞에 이 기도해서 나오는 것도 나오는 것이지만, 뭔가 저는 풀쩍, 풀쩍 2층으로 뛰어올라가면서 가끔 순간적으로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어요. '주여, 어째서 이같이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이 큰 은혜를 주셨습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얼마나 감사하고 기쁨이... 그래서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터져 나오잖아요. 이 사실들이 확인될수록, 여러분 신앙생활은 여기서 활력이 나오고, 새 힘이 나오고, 여기서 치료가 나오고, 여기서 진실한 축복과 은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 속에서 비로소 뭡니까? 여러분 닭살이 돋던 사람도 손목을 잡을 때에, 그게 근원적으로 없어진다! 중심으로 용서할 수 있고, 중심으로 이게 되어지는 것이죠. 이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런 관계가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뭐냐하면, 사랑이라는 것, 말하자면 성도 교재라는 것이 여기서 자꾸 정진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이 진실한 성도의 관계는 늘 기분 좋고, '늘 좋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 잘해주기 때문에, 성도가 좋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미움 속에 있다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사랑 깨닫고, 다시 한번 손을 잡았을 때에 옛날보다도 다른 이 관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신앙 생활 속에서, '네가 나한테 잘해주니까!'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 교회와 가지고 시험 드는 문제가 바로 그 문제거든요. 하나님의 앞에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코란데오라 그래서, 고신 측에서는 옛날에 어떤 이 표어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다!' 이것이 그들의 표어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과 제가 그들의 표어뿐 아니고, 성경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와 내가 있지, 하나님 없는데서 너와 내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신분, 바뀐 자녀로서 너와 내가 있습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비로소 모든 것이 나온다고 그럴 때에, 오늘 더 중요한 말씀은 기도응답이라는 것이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피로써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하나님 기도 응답해 주옵소서! 기도 응답해 주옵소서!' 그러나 그래서 응답을 받았다! 그럴 때는 문제가 와요.
저는 무슨 문제를 느끼느냐 하면, '하나님이 만약에 이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그러면 참 어려운 일이 생길 뻔했다!' 싶어요. 나한테는 괜찮은데 너한테는 어려움이 생기고, 나한테는 괜찮은데 이민족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나한테는 괜찮은데 이 지구상에는 세계에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습니까! '일제시대에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면 일본은 왕창 망했습니다. 하나도 뼈가 남지 않고 다 죽어야 되죠. 여러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영원한 축복과 은혜의 기도응답은 용서의 배경입니다. 이 뿌리입니다. 여기서 모든 응답이 다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뭐냐? 생각이 정상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그 다음에 정상이 되면서 뭐냐? 평안이 옵니다. 예를 들어서 보세요.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원수가 졌어요.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 얼굴만 봐도 뭐가 나옵니까? 닭살이 돋아요. 그것은 옆에도 못 가는 거죠. 그러면 생각만 해도 이것은 그냥 이가 갈립니다. A라는 사람의 인생은 B라는 사람을 통해서 평생 불안하게 되고, 그 다음에 포로가 되고, 그 다음에 구속이 되고, 억압이 되고, 모든 것이 여기에 눌립니다.
그러나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과 맺은 이 원한 관계를 무조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이 내게 은혜 주셨는데, 나도 무조건 다 용서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뭐냐? '해방 받았다!' 행방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그럴 때에 그때부터 B라는 사람 얼굴 보면, '사랑스럽다! 좋다! 기쁘다!' 뭐가 옵니까? 생각과 마음이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너무 너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문제는 정상이 아닙니다. 일평생 원한 관계에서 생각합니다. 느낍니다. 그러니까 그 결정과, 그 다음에 그 모든 소원들은 결코 정당한 것이 아니죠.
제가 이 무협지를 읽어보면서 느끼는 것은, 아버지의 원수 때문에, 그 원수를 갚아야 된다는 것으로 자식은 평생 살더라 구요. 그래가지고 생명을 걸고 무예를 익히고, 그래가지고 생명을 걸고 그 원수 갚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모든 삶이 그것과 연결됩니다. 삶이 옳겠어요? 생각이 바르겠어요? 결국 불행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에, 해방 받았을 때에, 더러 그것을 '용서했다!'라든가, 이런 것으로 해결했을 때에, 그때부터 뭡니까? 너무 자유로운, 평안한 인생을 살아가는걸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용서라는 문제가 간단한 것 같지만, 모든 평화와 기쁨과 감사의 근원입니다. 이게 안되면, 그때에 이게 안 되는 만큼 눌리게 됩니다. 이게 안 되는 만큼 불안하게 됩니다. 이게 안 되는 만큼 응답의 길이 다 막혀버립니다. 이게 안 되는 만큼 모든 응답들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여러분은 이미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지, 지금 용서가지고 따질 그런 신분이 아닙니다.
이 사실이 조금만 이해되고, 이게 마음에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의 확신이 조금만 내 마음에 있으면, 우리가 원죄의 해결을 받았다! 내가 일평생 아니라 수백 평생을 살아도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이 흑암의 세력을 꺾으시고 내게 축복과 은혜로 임하셨다! 그래서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결했음이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나 자신이 이런 모든 것에서부터 해방 받았다! 평화가 옵니다! 그때부터 감사가 오고, 기쁨이 오잖아요.
내가 그 전에 아무 게 얼굴만 봐도 위축이 되고, 뭔가 분노가 일어나고, 구속을 받고, 포로가 되고, 압박을 받던, 사단의 포로가 되던, 모든 문제가 이 축복이 이해가 되고, 해결되면서부터 그 얼굴 봐도 포로가 된 것이 없어져 버려요. 위축이 된 것이 없어져 버리고, 압박되던 것이 없어져 버리고, 참 평화와 안식이, 그때부터 내 생각과 마음이 뭡니까? 정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이 바로 기도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생각과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모든 응답이 도처에 준비되어 있다! 이게 성도의 삶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삶으로 벌써 신분이 바꾸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관계가 여기서 다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이 이루어지면 뭐가 나오느냐? 여러분 그릇이라는 문제가 다른 게 아닙니다. 용서를 얼마나 하고 사느냐? 그릇이 크다, 적다가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얼마나 포용하느냐? 그대로 됩니다. 얼마나 덮어 주느냐? 그게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만한 것도 못 참고, 사람은 정직하고, 똑똑하고, 참 좋은데, 이게 안 된다! 그릇이 안되어요. 결국은 뭐냐? 포용이 안되니까!
그래서 저는 이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은, '목회 그릇이 된다!' 다른데 아니더라 구요. 그리고 교회의 그릇이 된다! 다른 게 아니더라 구요.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송현교회 왔을 때도 어떤 사람도 왔다! 수용되어야 됩니다. 왔다! 평안해 져야 됩니다. 그러면 부흥되지 마라 그래도 저절로 됩니다. 이상하게 여기 왔다! 포용되는 것보다 이상하게 눈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이러면 왔다가도 다 나갑니다.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사람 별다른 사람 없습니다. 인간 별 인간 없어요. 쉽게 말해서 장로님도 인간이고, 목사도 인간입니다. 얼마나 여러분들이 복음 속에서 정말 여러분 우선이 뭐가 되어있고, 정말 중심이 뭐가 되어있고, 참 생명이 뭐가 되어 있느냐? 이것이 바로 되어있다. 그러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다 포용되게 됩니다. 그 안에서 응답의 모든 응답들이 다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가 저 사람 미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것이 아니고, '아버지, 구원의 감격이 내 안에 넘치게 해 주옵소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원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뿐 아니라 자손만대에 축복주시고, 그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신 것 감사합니다! 이 감격이 내 안에 오게 하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전도라는 것이 이 감격이 이루어져야! 참, 약한 자를 향해서 뭐가 됩니까? 나도 모르게 증인이 되는 것이지! 이게 안 되는데, 무슨 감사로 증인이 됩니까! 될 수가 없죠. 여러분과 저는 이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입니다. 이건 뭐 '지켜야 된다!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에요. 그런 문제는 비교가 안돼요.
뭐가 비교가 됩니까! 교회 안에서도 뭔가 참 복음이 다른 것과 비교될 수 없어요. 우리는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해결은 여기서부터 출발됩니다. 이미 모든 것에 응답 받은 신분으로 서 있습니다. '하나님,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이미 받았습니다. 이미 응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오늘부터 여러분 삶에서 한 주간도 실제로 이루어지고, 내가 '용서해 주옵소서! 미워서 죽겠습니다!'가 아니고, '주여, 감사합니다! 나를 이 축복 속에 세우신 하나님, 저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 속에 살게 하신 하나님!' 이 축복과 은혜가 나도 모르게 이어지는 순간순간 그로 통해서 눌림 받았던 내가, 그로 통해서 완전 해방 받게 되는 감격이 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성경은 ‘원수도 사랑하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진실로 우리가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35절). 이 용서의 비밀이 구원 안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받은 자와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에게서 참된 용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본론
1. 구원의 감격 속에서 진실한 용서가 나올 수 있습니다.
(1) 당시 1년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였고,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었습니다.
(2)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함께 본문을 살펴보면, 우리 속에 구원의 감격이 없다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평생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원죄의 문제를 값없이 은혜로 해결 받은 우리는, 진실로 한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4) 구원의 은혜에 감격할 수 있는 만큼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구원의 은혜와 구원받은 자신의 신분을 확인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는 통로가 바로 회개입니다.
(1) 회개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켜 모든 생활과 사건에서 하나님과 말씀을 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2)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으로 돌이키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인간관계의 참된 감사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참된 회개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용서의 관계 속에서 진실한 사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3. 기도 응답도 구원의 감격 속에서 나오는 진실한 용서로부터 옵니다.
(1) 내가 원죄로부터 용서받은 그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부터 나오는 진실한 용서 속에서 생각과 마음에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참된 용서는 모든 평화와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요, 모든 응답의 원천입니다.
(3) 마음과 생각에 평안을 얻을 때부터 모든 마음과 생각이 정상적으로 되며, 그것이 바로 기도 응답입니다.
● 결론
우리의 그릇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넓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우선순위가 바르게 되고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넘쳐날 때, 용서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 기도제목
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② 용서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마 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마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8: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마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마 18: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마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 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 18: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마 18: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오늘 제목을 "용서의 비밀"이라 그렇게 삼았습니다. 바로 성경은 우리 교인들에게 '용서하라!' 이런 강요를 했어요. '용서하라!' 심지어 어느 정도로 용서하라고 하느냐? '원수도 용서하라!' 원수도 용서할 정도가 아니고 반대로, '원수도 사랑하라!' 그랬습니다. 어떤 말보다 말 안 되는 말이 이 말입니다. 도저히 이건, 아무리 우리 인간사회에서 조금만 미워도, 사람 얼굴만 쳐다봐도 닭살이 돋는 그런 형편에 용서라는 이게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뭐 우리가 말로 손을 잡고, '미안하다!' 그래도 혹시 말로는 될지 몰라도, 속으로는 '죽일 놈!' 그러고, 이렇게 되는데, 그게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여기에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성경이 오늘 마지막 35절에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아멘. 이 중심으로, 그건 거짓말이 아니고, 가면도 아니고, 진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 되는데, 안 하면 여러분과 제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는다!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또 나에게 이것은 뭐 하나님과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안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정말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한가지 그 비유를 든다면, 내가 10억을 빚져 있다가 이 10억 빚을 진 사람에게, '좋다! 내가 10억을 탕감해 줬다! 끝냈다!' 그래가지고 기분이 너무 좋아 가지고 나오다가 나한테 100원 빚진 사람을 보고, '막, 미안합니다! 100원 내가 진짜 몇 일만 있으면 갚아주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럴 때에, 나는 10억을 탕감 받은 내가 100원 빚진 그 사람보고, 너무 좋아 가지고 '야, 치워라 됐다!' 이렇게 될 것 아닙니까! 아마 여러분 여기 계신 분들이 10억 탕감 받고, 10억이 아니라 천만 원만 탕감 받고 나오다가 100원 빚진 사람이 와 가지고, '미안합니다! 100원 몇 일 후에 갚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너무 기분 좋아 가지고, '야, 관둬라! 됐다!' 충분히 그럴 겁니다. 예를 든다면 적은 문제가 그런 문제입니다.
쉽게 말해서 구원에 감격이 없으면 모든 문제가 안됩니다. 이건 신앙생활도 안되고, 응답도 안되고, 모든 게 안됩니다. 모든 비밀이... 구원에 비밀! 그래서 용서라는 속에 다 있습니다. 용서가 왜 안 되느냐? 그러면 누가 용서할 수 있느냐? 그 용서의 비밀에 첫 번째가 뭐냐하면,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용서할 수 있고, 구원받아도 모르면 용서가 안돼요. 구원의 확신 있는 자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신앙생활은 다 풀리고, 축복과 은혜 모든 것이 여기서 다 나옵니다.
뭐 '하나님, 내게 은혜 주옵소서! 축복해 주옵소서! 세계 적인 부호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게 백 번, 천 번해봐라! 구원받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안되었는데, 신분이 안 바뀌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 바로 중요한 의미를 오늘 좀 두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을 쭉 읽어보면, 뭐 여기에 '어린아이가 되어라!'고 하는 문제라든가, 지금 여기에 이 문제도 전부 뭐와 연결되느냐 하면, 실제적인 어떤 그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말하면서 영적인 문제를 지금 해결해 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영혼의 문제,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해 주는 것이죠.
그래서 조금 그 뭔가 수자적인 개념을 조금 이해를 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24절에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그랬습니다. 1만 달란트 그랬는데, 이 달란트라는 이 배경이, 우리 뭐 돈과 화폐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좀 이해가 안 되죠. 그래서 이것을 조금 설명하려고 그러면, 그때 유대인들이 1년에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 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히 짐작이 가죠. 1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입니다. 그러면 1만 달란트, 800달란트 생각을 해보세요.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다음에 데나리온과 달란트에 대한 숫자개념은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입니다. 그러면 대강 이제 우리 돈으로 이게 환산이 잘 안되니까! 우리 돈으로는 환산을 못하겠고, 그때당시의 화폐단위로 이렇게 환산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 그러면 1만 달란트,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년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라 그러면, 1만 달란트 그것은 한 개인으로서는 백 번 죽었다 깨도 값을 수 없는 돈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이 한 데나리온, 그저 한 데나리온은 이것은 미미한 숫자다! 그래서 제가 알기 쉽게 100억을 탕감 받고 오면서 100원을 '갚는다! 못 갚는다!' 이 문제를 제가 알기 쉽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은, 그리고 원수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이게 와져야 되죠. 말하자면 100억을 탕감 받았는데, 100원짜리 못 갚았다고 그럴 때에, 진심으로, 중심으로 '괜찮다! 관둬라!' 이게 나오는 것이지, 그게 안된 상황에는 똑같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여러분들이 신분이 바꾸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실적으로 받아서, 그래서 구원의 축복과 역사가 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게 확인되어야 뭐가 나오느냐? 용서라는 것이 사실적으로 나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중심으로 안 나와요. 조금 뭐 잡고, 내가 구원의 큰 은혜를 받았으니까! 이 사람은 나와 관계를 해결해야 되겠다! 그래서 손 붙잡고 '미안합니다!' 그래도 중심으로 안됩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 사실이 안되면 그게 안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먼저 우리가 뭘 깨달아야 되느냐 하면, 1만 달란트 빚진 사람처럼, 여러분과 저가 평생을, 두 번, 세 번 살아도 갚을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게 구원 역사의 첫 번째 문제 아닙니까!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뭐라 그럽니까? 원죄라 그럽니다. 원죄!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분과 제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이해가 안되면 은혜라는 말이 이해가 안되죠.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무조건 받았습니다. 값없이 받았는데, 이 값없이 받았다는 것은 어떤 가격으로 따질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참 이게 은혜 안 주시면, 이게 감각이 안 오는 문제 같아요.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면서, 쫙 기지개를 켜면서 '감사합니다! 공기를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 본적이 없어요. 왜? 너무 큰 것을 받아 버리면 감사가 안 느껴져요. 늘 뭐 그저 호흡하고 살지만, 감사가 안 느껴집니다.
또 그렇잖아요. 그것보다 공기문제는 떠나서라도 너무 부모의 은혜를 받고 사니까! 자식들이 우리 부모님 은혜 감사하다! 이게 안나와요. 너무 크게 되기 때문에 이 안나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큰산도 멀리서 보면, '아 산이 높구나!' 이게 보이지만 산 가까이 있으면 새 파란 것 밖에 안 보여요. 큰 지도 적은 지도 몰라요. 이처럼 우리가 너무 큰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받고있는 현장에서는 이게 미쳐 깨달아지지 않는 겁니다.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런 비유를 자주 안 들었습니까! 부모가 매일 아침, 매끼마다 반찬 준비해 가지고 줘도 감사한 줄 모르고, 또 투정만 하던 아이도 앞집 아주머니가 과자하나만 줘도, '감사합니다!' 그러고 받거든요.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과자 하나하고, 일평생 자기에게 뭐 계속 먹이고 입혀주는 데도 감사소리 안 하거든요. 맨 날 감사는커녕 오히려 뭐라 그럽니까! 투정만 합니다. '밥 맛 있느니, 없느니!' 이런 식이죠. 그런데도 앞집 아주머니가 과자하나 줘도, 물 한 그릇만 마셔도, '고맙습니다!' 그러잖아요. 꼭 우리가 이 식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 감사할 줄 몰라요. 왜? 근본 이게 이해가 안되어요. 감각이 안 와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1만 달란트 빚진 사람, 그 다음에 한 데나리온 빚진 동관에 대한 문제! 이게 여러분과 제가 절실한 현실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용서할 수 있다, 없다! 이건 말이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한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고,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 되어있다! 이겁니다. 우리가 용서한다, 안 한다! 이게 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왜? 비교도 안 되는 은혜와 축복을 내가 받고 있기 때문에, 이게 근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근거 때문에 여기 나오는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 안에서 뭐 우리 교회가 참 사랑스러워야 되고, 뭐 어떻게 해야 되고,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신분인 자리에 모인 것이지, 교회 안에서 '용서해라! 뭐해라!' 이것을 강요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거든요. 이미 여러분 교회 앉았다! 구원의 축복과 은혜가 감격이 되면 감격이 되는 만큼 모든 문제가 여기서 다 나와버립니다. 뭐 나올 것이 없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이렇다, 저렇다!' 나온다는 자체가 뭐냐? 확실하게 말합니다. 복음이 안되었던지, 복음이 되었다 그래도 확신이 없습니다. 여기서 빚어지는 모든 문제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 일들이 번져 나오는 모든 문제는, 그리고 이 복음 이외에 나오는 모든 문제는, 복음만 확인되면 확인될수록 그 안에 다되어 버립니다. 다른 것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늘 우리가 서론만 하다가 마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늘 말도 안 되는 짓만 하다가 신앙생활을 마치는 겁니다. 진짜 붙들지 못할 때에 오는 모든 문제가 여기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그런 나변의 문제가지고 살아갈 신분이 아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미 벌써 이런 놀라운 축복과 역사가 이 신분으로 확인되어 있어야 여기서 모든 문제가 나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사실이 높아지고, 커지고, 확인될수록 다른 여러 문제는 아무리 나온다 그래도 그건 비교가 안되니까! 생명 살았다. 생명과 뭐가 비교됩니까! 그런 비교될 문제가 아니죠. 이 안에서 다 해결해야 될 문제가, 오늘 여러분과 제가 진짜 확인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러면 먼저 백 번, 천 번 자꾸 설명해도 그 설명입니다 만은, 여러분과 제가 원죄가 해결되었다는 말이, 그것이 '원죄 해결이다! 받은 우리는 해결 받았다! 참 감사하구나!' 그 정도로 끝나는데, 이 원죄 해결이라는 문제가 여러분이 일평생 살아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일평생이 수백 번 거듭된다! 그래도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오직 누가?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을 바쳤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건 우리 인간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시고, 흑암과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꺾고, 저주와 고통의 세력을 완전히 해결하고, 여러분과 제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기만 해도, 그 은혜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영접하기만 해도,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게 요한복음 1장 12절 아닙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뭡니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 신분이 바꾸어져야 모든 문제가 나온다! 여기서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뭐 '사업 잘되게 해 주옵소서, 뭐 잘되게 해 주옵소서!' 이것도 신분이 안 되었는데, 뭘 잘되게 한다는 겁니까! 우리가 지금 교회 건축을 크게 앞두고 있습니다. 건축기도하면서 먼저 제가 늘 강조했던, '개인의 교회와 가정교회가, 직장교회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 오는 문제는, 뭐 따라서 오는 문제예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여기서 오는 문제가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전부 연결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좀 뭔가 이해되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이것은 회개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신앙생활하면서 너무 '하나님의 자녀다!' 여기만 강조를 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그런 회복하는 관계가 회계라는 겁니다. 이것을 그래서 회개라는 말이 우리는 옛날에 또 도덕적으로 돌아가 가지고, 뭐 잘못된 것! 그 다음에 뭐 밤 따먹고, 감 따먹고, 이웃에 고구마 훔쳐먹은 것! 이런 회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 우리의 삶을 어떻게? U턴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인간적으로 돌아왔던, 육신의 욕심으로 돌아왔던 내 생각을 어디로? 영적으로, 그 다음에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회개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내 생각과 마음 전체가 누구를 향하느냐? 하나님의 계획을 향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그 다음에 내 삶이 교회 중심이 되고, 말씀 중심이 되고, 또 주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그리고 모든 삶이 뭐가 되느냐? 우선 되는 것! 말하자면 생활과 사건에서부터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모든 순서의 절차가 먼저 우선 되어야 될 것이, 하나님! 말씀! 이렇게 되지 않는 데서 문제가 온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 사실과 이 축복이 바로 어디서 오느냐? 구원과 구원의 확신, 그 다음에 이 사실이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배경이 회개! 이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인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죠. 우리는 흔히 회개라는 것이, 너무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만 강조하다가 보니까, 이것을 흔히 놓일 때가 많아요. 회개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삶이 된다면서 다른 도덕적인 차원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따라오는 문제예요.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차원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원의 확신이 왔다!' 그러면 따라오는 것이 뭐냐? 회개, 사죄의 확신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내게 속죄해 주신다는 확신이 오면서, 그때부터 뭐가 오느냐? 인간과의 관계는 실수가 따르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사람과 살다보면요, 부부간도 실수가 오고, 형제지간도 오고, 부모자식간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뭐가 나오느냐? 거기에서 회개라면 이게 이상합니다. 말하자면 서로서로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해 다오!' 이 말이 어디서 근거되느냐? 앞에 부분이 근거가 되고 이것이 깔려지지 아니하면, 그 다음에 뒤에 문제가 따라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관계에서 참 행복과 축복이 뭐냐하면, 용서라는 겁니다. 그 용서의 배경이 뭐냐하면, 사과하고, 그 다음에 서로 용서를 구하는 이 삶에서 인간 삶에 행복이 나옵니다. 진짜 감사가 나오죠. 이 기쁨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우리 인간 생활 속에, 특별히 가장 가까운 가정 속에서도 행복이 안 나옵니다. 진짜 행복이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이 부부관계도, 부부사이에 처음 뭔가 이 부부사이에는 별로 그런 것을 못 느껴요.
제가 이 결혼 예비학교를 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제가 이렇게 보니까 젊은 청년들이 결혼을 앞두고, 이제 예비학교에 와 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예 이것을 버려야 행복이 온다!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고생문이 훤하다!' 이것을 아직까지 전혀 모르고... 왜? 너무 행복한 어떤 꿈을 꾸고 앉았어요. 가만히 보니까, 얼굴이 뭐 결혼하면 뭔가 그럴 것 같아서... '그게 아니다!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진짜 싸움이 나온다!' 싸운다는 것도 여러분 사실은 어떤 면에서 부부간에 싸움이 진짜 싸움이지, 다른 사람하고 싸우는 것은 싸우는 것도 아니에요. 부부간에 같이 맞대고 평생을 지금 얼굴 맞대고 싸워야 되는 형편인데, 이 싸움이 보통싸움이 아닌데, 그러니 보니까 막 행복하고 그런 줄 아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결혼하면, '남편이 나를 위해서 뭐 어떻고, 여자가 나를 위해서 어떻고... 다 꿈꾸지 마라! 나를 위해서 사는 그 순간 그때부터 끝난다!' 그래서 결혼은 연예의 무덤이라 안 그럽니까! 사랑의 무덤이고, 기쁨의 무덤이 결혼이지! 제가 너무 비참하게 이야기 해버려서 우리 아이들이 얼굴이 멍하더라 구요. 막 부풀어 왔는데, 그러나 결혼해서 '좋다, 나쁘다!' 이것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언제? 이제 아이 둘 셋 낳고 중년이 넘어서, 그때 가서 남편이 아내 손을 잡고, 거칠거칠한 손을 잡고, '참, 미안하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무슨 그런 말씀하느냐! 내가 사랑 받아서 미안하다!' 서로 용서하고 과거문제를 생각하면서 '내가 너무 학대했다! 너무 미안하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나옵니다. 그전에 행복하다! 다 거짓말입니다. 행복하다고 전부 자기중심에서 행복하다는 것인데. 그게 진짜가 안되거든요. 무슨 말씀을 하고싶으냐? 여러분 진실한 용서가, 오랜 시간 후에 부부가 손잡고 살아가면서 그때에 당신의 과거를 포용하고, 나의 과거를 포용 받을 때에, 그리고 그 과거를 사랑하게 될 때에, 여기에 진실한 행복이 나옵니다. 참된 축복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참 보기 좋다는 것이, 부부가 결혼식하고, 팔짱끼고 가는 것이, 뒷모습을 보면서 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팔짱끼고 나갈 때에, 결혼식 막 마치고 팔짱끼고 딴 딴따다 거리고 안 합니까! 그리고 막 행진곡이 안 나갑니까! 나갈 때에 잘 살아야 될 것인데, 걱정이 나오지!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노부부가 손을 딱 잡고 거니는 그런 광경은, 뒷모습을, 혹은 옆모습을 보면서, '야, 참 행복하다!' 그런 느낌을 느껴보거든요.
무슨 말씀이냐? 여러분 진실한 행복은 어디에 있느냐? 용서 안에 있습니다. 이런 바탕이 어디서 오느냐? 근본적인 구원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무슨 죄악이라도 무슨 문제라도 하나님께 들고 나가면 해결된다는 확신이 배경이 될 때에, 너와 나 사이에 용서가 나오고, 사죄가 나오고, 그 다음에 사과가 나오고, 그 다음에 여기에 진실한 회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뭐가 나오느냐? 여러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았다는 확신과 사실이 오게 되는 동시에, 신앙생활에 기쁨이 옵니다. '주여, 정말 나 같은 죄인이 이 큰 은혜와 축복을 주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격합니다. 이것은 아마 당해보지 못하면 이해가 안됩니다.
여러분 가끔가다가 뭔가 하나님 앞에 이 기도해서 나오는 것도 나오는 것이지만, 뭔가 저는 풀쩍, 풀쩍 2층으로 뛰어올라가면서 가끔 순간적으로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어요. '주여, 어째서 이같이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이 큰 은혜를 주셨습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얼마나 감사하고 기쁨이... 그래서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터져 나오잖아요. 이 사실들이 확인될수록, 여러분 신앙생활은 여기서 활력이 나오고, 새 힘이 나오고, 여기서 치료가 나오고, 여기서 진실한 축복과 은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 속에서 비로소 뭡니까? 여러분 닭살이 돋던 사람도 손목을 잡을 때에, 그게 근원적으로 없어진다! 중심으로 용서할 수 있고, 중심으로 이게 되어지는 것이죠. 이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런 관계가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뭐냐하면, 사랑이라는 것, 말하자면 성도 교재라는 것이 여기서 자꾸 정진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이 진실한 성도의 관계는 늘 기분 좋고, '늘 좋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 잘해주기 때문에, 성도가 좋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미움 속에 있다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사랑 깨닫고, 다시 한번 손을 잡았을 때에 옛날보다도 다른 이 관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신앙 생활 속에서, '네가 나한테 잘해주니까!'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 교회와 가지고 시험 드는 문제가 바로 그 문제거든요. 하나님의 앞에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코란데오라 그래서, 고신 측에서는 옛날에 어떤 이 표어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다!' 이것이 그들의 표어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과 제가 그들의 표어뿐 아니고, 성경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와 내가 있지, 하나님 없는데서 너와 내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신분, 바뀐 자녀로서 너와 내가 있습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비로소 모든 것이 나온다고 그럴 때에, 오늘 더 중요한 말씀은 기도응답이라는 것이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피로써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하나님 기도 응답해 주옵소서! 기도 응답해 주옵소서!' 그러나 그래서 응답을 받았다! 그럴 때는 문제가 와요.
저는 무슨 문제를 느끼느냐 하면, '하나님이 만약에 이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그러면 참 어려운 일이 생길 뻔했다!' 싶어요. 나한테는 괜찮은데 너한테는 어려움이 생기고, 나한테는 괜찮은데 이민족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나한테는 괜찮은데 이 지구상에는 세계에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습니까! '일제시대에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면 일본은 왕창 망했습니다. 하나도 뼈가 남지 않고 다 죽어야 되죠. 여러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영원한 축복과 은혜의 기도응답은 용서의 배경입니다. 이 뿌리입니다. 여기서 모든 응답이 다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뭐냐? 생각이 정상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그 다음에 정상이 되면서 뭐냐? 평안이 옵니다. 예를 들어서 보세요.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원수가 졌어요.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 얼굴만 봐도 뭐가 나옵니까? 닭살이 돋아요. 그것은 옆에도 못 가는 거죠. 그러면 생각만 해도 이것은 그냥 이가 갈립니다. A라는 사람의 인생은 B라는 사람을 통해서 평생 불안하게 되고, 그 다음에 포로가 되고, 그 다음에 구속이 되고, 억압이 되고, 모든 것이 여기에 눌립니다.
그러나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과 맺은 이 원한 관계를 무조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이 내게 은혜 주셨는데, 나도 무조건 다 용서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뭐냐? '해방 받았다!' 행방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그럴 때에 그때부터 B라는 사람 얼굴 보면, '사랑스럽다! 좋다! 기쁘다!' 뭐가 옵니까? 생각과 마음이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너무 너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문제는 정상이 아닙니다. 일평생 원한 관계에서 생각합니다. 느낍니다. 그러니까 그 결정과, 그 다음에 그 모든 소원들은 결코 정당한 것이 아니죠.
제가 이 무협지를 읽어보면서 느끼는 것은, 아버지의 원수 때문에, 그 원수를 갚아야 된다는 것으로 자식은 평생 살더라 구요. 그래가지고 생명을 걸고 무예를 익히고, 그래가지고 생명을 걸고 그 원수 갚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모든 삶이 그것과 연결됩니다. 삶이 옳겠어요? 생각이 바르겠어요? 결국 불행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에, 해방 받았을 때에, 더러 그것을 '용서했다!'라든가, 이런 것으로 해결했을 때에, 그때부터 뭡니까? 너무 자유로운, 평안한 인생을 살아가는걸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용서라는 문제가 간단한 것 같지만, 모든 평화와 기쁨과 감사의 근원입니다. 이게 안되면, 그때에 이게 안 되는 만큼 눌리게 됩니다. 이게 안 되는 만큼 불안하게 됩니다. 이게 안 되는 만큼 응답의 길이 다 막혀버립니다. 이게 안 되는 만큼 모든 응답들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여러분은 이미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지, 지금 용서가지고 따질 그런 신분이 아닙니다.
이 사실이 조금만 이해되고, 이게 마음에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의 확신이 조금만 내 마음에 있으면, 우리가 원죄의 해결을 받았다! 내가 일평생 아니라 수백 평생을 살아도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이 흑암의 세력을 꺾으시고 내게 축복과 은혜로 임하셨다! 그래서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결했음이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나 자신이 이런 모든 것에서부터 해방 받았다! 평화가 옵니다! 그때부터 감사가 오고, 기쁨이 오잖아요.
내가 그 전에 아무 게 얼굴만 봐도 위축이 되고, 뭔가 분노가 일어나고, 구속을 받고, 포로가 되고, 압박을 받던, 사단의 포로가 되던, 모든 문제가 이 축복이 이해가 되고, 해결되면서부터 그 얼굴 봐도 포로가 된 것이 없어져 버려요. 위축이 된 것이 없어져 버리고, 압박되던 것이 없어져 버리고, 참 평화와 안식이, 그때부터 내 생각과 마음이 뭡니까? 정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이 바로 기도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생각과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모든 응답이 도처에 준비되어 있다! 이게 성도의 삶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삶으로 벌써 신분이 바꾸어졌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관계가 여기서 다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이 이루어지면 뭐가 나오느냐? 여러분 그릇이라는 문제가 다른 게 아닙니다. 용서를 얼마나 하고 사느냐? 그릇이 크다, 적다가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얼마나 포용하느냐? 그대로 됩니다. 얼마나 덮어 주느냐? 그게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만한 것도 못 참고, 사람은 정직하고, 똑똑하고, 참 좋은데, 이게 안 된다! 그릇이 안되어요. 결국은 뭐냐? 포용이 안되니까!
그래서 저는 이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은, '목회 그릇이 된다!' 다른데 아니더라 구요. 그리고 교회의 그릇이 된다! 다른 게 아니더라 구요.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송현교회 왔을 때도 어떤 사람도 왔다! 수용되어야 됩니다. 왔다! 평안해 져야 됩니다. 그러면 부흥되지 마라 그래도 저절로 됩니다. 이상하게 여기 왔다! 포용되는 것보다 이상하게 눈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이러면 왔다가도 다 나갑니다.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사람 별다른 사람 없습니다. 인간 별 인간 없어요. 쉽게 말해서 장로님도 인간이고, 목사도 인간입니다. 얼마나 여러분들이 복음 속에서 정말 여러분 우선이 뭐가 되어있고, 정말 중심이 뭐가 되어있고, 참 생명이 뭐가 되어 있느냐? 이것이 바로 되어있다. 그러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다 포용되게 됩니다. 그 안에서 응답의 모든 응답들이 다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가 저 사람 미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것이 아니고, '아버지, 구원의 감격이 내 안에 넘치게 해 주옵소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원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뿐 아니라 자손만대에 축복주시고, 그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신 것 감사합니다! 이 감격이 내 안에 오게 하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전도라는 것이 이 감격이 이루어져야! 참, 약한 자를 향해서 뭐가 됩니까? 나도 모르게 증인이 되는 것이지! 이게 안 되는데, 무슨 감사로 증인이 됩니까! 될 수가 없죠. 여러분과 저는 이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입니다. 이건 뭐 '지켜야 된다!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에요. 그런 문제는 비교가 안돼요.
뭐가 비교가 됩니까! 교회 안에서도 뭔가 참 복음이 다른 것과 비교될 수 없어요. 우리는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해결은 여기서부터 출발됩니다. 이미 모든 것에 응답 받은 신분으로 서 있습니다. '하나님, 주시옵소서!' 아닙니다! 이미 받았습니다. 이미 응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오늘부터 여러분 삶에서 한 주간도 실제로 이루어지고, 내가 '용서해 주옵소서! 미워서 죽겠습니다!'가 아니고, '주여, 감사합니다! 나를 이 축복 속에 세우신 하나님, 저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 속에 살게 하신 하나님!' 이 축복과 은혜가 나도 모르게 이어지는 순간순간 그로 통해서 눌림 받았던 내가, 그로 통해서 완전 해방 받게 되는 감격이 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성경은 ‘원수도 사랑하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진실로 우리가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35절). 이 용서의 비밀이 구원 안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받은 자와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에게서 참된 용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본론
1. 구원의 감격 속에서 진실한 용서가 나올 수 있습니다.
(1) 당시 1년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로마에 바치는 세금이 800달란트였고,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었습니다.
(2)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함께 본문을 살펴보면, 우리 속에 구원의 감격이 없다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평생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원죄의 문제를 값없이 은혜로 해결 받은 우리는, 진실로 한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할 수밖에 없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4) 구원의 은혜에 감격할 수 있는 만큼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구원의 은혜와 구원받은 자신의 신분을 확인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는 통로가 바로 회개입니다.
(1) 회개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켜 모든 생활과 사건에서 하나님과 말씀을 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2)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으로 돌이키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인간관계의 참된 감사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참된 회개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용서의 관계 속에서 진실한 사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3. 기도 응답도 구원의 감격 속에서 나오는 진실한 용서로부터 옵니다.
(1) 내가 원죄로부터 용서받은 그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부터 나오는 진실한 용서 속에서 생각과 마음에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참된 용서는 모든 평화와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요, 모든 응답의 원천입니다.
(3) 마음과 생각에 평안을 얻을 때부터 모든 마음과 생각이 정상적으로 되며, 그것이 바로 기도 응답입니다.
● 결론
우리의 그릇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넓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우선순위가 바르게 되고 구원의 확신과 감격이 넘쳐날 때, 용서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 기도제목
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② 용서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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