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을 막아라!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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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21:4)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저희 집에 아들이 지 엄마한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버지가 교회에서 월급 받나?' 그러더라 구요. 제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사례 받는 줄을 전혀 몰랐던 모양입니다. 어쩌다가 그걸 본인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왜 교회에서 월급을 받느냐?'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제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 수고를 하고 그래서 얻어지는 이 소득을 가지고 한달, 한달 그렇게 살아간다!' 이렇게 설명을 해 줬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참 재미가 있습니다. '아빠도 예배드리고 나도 예배드리는데, 왜 아빠는 월급 받고 나는 왜 월급을 주지 않느냐? 불공평하지 않느냐?' 이래가지고 자기는 월급 안 준다고 상당히 화를 내더랍니다.
여러분 이 예배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이 진짜로 감사가 되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막 달려오다가도 안 들어오는 분들이 있더라 구요. 실컷 잘 와놓고 돌아서는 이런 분들 참 많습니다. 저는 우리 청년부들에게 메시지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교육관 4층이 청년부 실이거든요. 아이들이 나름대로는 은혜 받겠다고 오다가 어떤 아이들은 2층까지 올라오다가 돌아가는 아이들, 3층까지 올라오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는 아이들, 심지어는 4층까지 올라왔다가 문을 빼꼼히 열다가 뭔가 마음이 또 달라졌든지, 또 돌아서는 아이들 참 많더라 구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오시고 은혜 받는 것도 여러분들의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여러분 이 은혜의 역사가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또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은 제가 의자가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데 엉덩이에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아니나 다를까 하고 보니까, 여름철에 껌 있죠. 껌이 찐득하게 붙어 가지고, 이 겨울이면 좀 나은데 이 여름에 쭉쭉 늘어나잖아요. 이게 붙어 가지고 상당히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더라 구요. 그래서 이제 손으로 떼어봤는데요. 이게 막 얽히고 섥여가지고 이 손으로도 잘 안되고, 심지어는 얼룩이 더 심해지는 이런 모습들을 봤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성도들 속에 이것 하나가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가지를 않습니다. 빠져나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우리 성도들을 엄청난 고통과 멸망으로 몰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뭘까요? 불신앙입니다. 이 불신앙이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가지를 못합니다. 우리 한 개인과 성도들을 완전히 망치고, 그러면서 완전히 한 인생을 실패시킬 때까지, 끝까지 붙어있는 것이 뭐냐하면, 이게 불신앙입니다.
여러분 거머리 잘 아시죠. 제가 옛날에 그 대민 지원을 갔더랬습니다. 벼이삭을 심는 그런 일을 했었는데, 한참 심는 도중에 뭔가 다리 종아리 쪽에 따끔한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 뭔가 싶어서 보니까, 거머리가 두 마리나 붙어 가지고 이게 제 피를 쭉쭉 빨아먹고 있는 겁니다. 손으로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이게 잘 떨어지지를 않더라 구요. 그래서 이제 거머리한테 한 단어를 더 붙이죠. 뭐라고 합니까? '찰거머리!' 찰 싹 달라붙었다 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찰거머리! 이 거머리가 한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저와 여러분 속에 불신앙이 들어왔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이 불신앙이 지금 자리잡고 있습니까! 이 불신앙이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합니까!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들을 누리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인가 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자리에 지금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불신앙이 지금 자리잡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서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가만히 보십시오. 왜 이스라엘 역사가 그토록 처참하게 멸망을 했습니까? 힘이 센 블레셋 민족 때문 에요? 아모리 족속 때문에, 여리고 민족 때문에 그렇게 망했습니까? 저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게 철저하게 망했던 그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 바로 그들 속에 일어난 불신앙이, 불신앙의 역사 때문에 얼마나 처참한 모습으로, 그러면서 완전히 망하는 그 날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이 성도에게 파고드는 최고의 통로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바로 이 불신앙입니다. 일단 믿지 못하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끝나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믿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도록 사용하는 그 도구가 뭐냐하면, 그게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27절에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 이들이 이런 속에서 뭘 믿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어찌하여 네 원통한 사정을 내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철저하게 불신앙 속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죽으라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믿으려고 애를 써도, 아무리 힘을 쓰고 공을 드려도 전혀 믿지 못하는 사람! 참 불쌍합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믿어지고, 예수님의 부활도 믿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어지고... 여러분 진짜 믿어지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내 자신에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 이것을 믿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지금 휴가철입니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엄청난 그런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답답한 환경 속에, 또 더운 이런 환경 속에 왜 들어오셨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어지고, 그리스도의 죽음도 믿어지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참 주인이시라는 사실이 믿어지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이런 하나님의 역사들이 믿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자유주의 신학자들 있죠. 신 신학자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니까 온갖 이야기를 다 꺼냈습니다. '성경은 설화다! 하나님 말씀은 신화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가짜다! 허구다!' 이래가지고 온갖 비아냥을 다 드러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이죠.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중요한 역사들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 신학자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아니냐! 어떻게 홍해가 갈라지고, 어떻게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어떻게 큰 역사들이 일어나느냐? 신화다! 설화다!' 이래가지고 '문서설, 죄의 피비설' 해 가지고 믿지 않으려고 막 발버둥을 치는 이런 모습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 감사한 것은 저는 믿어지니까 감사합니다. 아니 죽으라고 안 믿어지는데, 그런데 저는 하나님 말씀도 믿어지죠. 그리스도의 축복도 믿어지죠. 참 믿어지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속에 들어오는 불신앙을 철저하게 막아야됩니다. 이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는 신앙의 역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모든 기독교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불신앙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갈등이 일어납니다. 삶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지금 모르고 있습니다. 이게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불신앙이 들어와 있습니까? 이 불신앙을 막아 보십시오. 이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절대로 내 자신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 역사 하는 불신앙을 이겨내지 못하면 교회 건축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 건축! 중요하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 돈이 문제입니까? 경기가 어려워지고, 그래서 살아가는 게 힘들고, '돈을 모으는 게 참 힘들다!' 그래서 교회 건축을 못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 불신앙에서부터 빨리 벗어나십시오.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여러분의 개인 속에, 교회 전체 속에 일어나는 그 불신앙의 문제가, 그게 문제이지! 절대로 물질과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실패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에는 이 불신앙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 자신들이 잘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 했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두들겨 맞았구나! 그래서 실패했구나! 그래서 포로로 끌려갔구나!' 잘 압니다. 그런데 그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지금 우리도 밟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억울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경이 지금 무엇 때문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더 이상 과거의 불신앙의 역사를 밟지 마라!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깨달아라! 그리스도의 역사를 제대로 알라!'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개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졌던 그 불신앙 속에 우리 자신도 점점 빠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불신앙의 역사를 빨리 깨닫지 못하고 이것을 막지 못하면, 저도 망할 수 있고, 여러분도 망할 수 있고 절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본문 민수기를 통해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놓쳤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백성 속에 역사 했던 불신앙의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 나갔느냐?' 오늘 이 사실을 한번 확인하고, 더 이상 우리는 그 불신앙의 역사를 밟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속에 우리 자신들이 제대로 세워 져야 될 것입니다.
첫 번째입니다. 민수기 20장에 보시면 '므리바의 물'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앞에 20장 2절에 한번 보십시오. 거기에 보시면,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여기서 회중은 누구를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말하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여러분 오늘 이 본문에 말씀을 보시면서 뭐 조금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제가 2주전에 설교에 메시지의 제목을 벽을 넘어서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가로막힌 모든 벽들을 넘어서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막고 있는 최고의 벽이 뭡니까? 의식주의 벽이라고 했죠. 먹고사는 문제! 먹을 것, 마실 것, 사는 것!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 보십시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쭉 광야 생활을 진행하다가 어디까지 왔느냐 하면, 가데스 바네아 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 가데스에 머무는 동안에 물이 떨어졌습니다. 상당히 목이 갈 했겠죠. 그때에 백성들의 마음에서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들과 함께 우리를 굶어죽게 하시는 구나! 우리를 목이 말라서 죽게 하시는 구나!' 철저하게 이 육신적인 문제 때문에 엄청난 불신앙이 그 속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에는 우리 속에 찾아 들어오는 것이 뭡니까? 그게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홍해를 건너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물이 없어서 주리게 만들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그 하나님께서 먹을 것이 없어서 망하게 만들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공박하니라!' 모든 불평 원망들이 그 속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앞에 민수기 20장 5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입니다.
무화과도 없다! 포도도 없다! 석류도 없다! 마실 물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 같은데, 완전히 정 반대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뒤에 보시면 하박국 3장입니다. 여기에 보시면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 반대죠. 17절, 18절입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아멘.
참 보십시오. 여러분 같은 상황입니다. 똑같은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석류도 없다! 무화과도 없다! 포도도 없다! 마실 물도 없다! 그런데 이 하박국서에 보시면, '무화과나무가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도 없고, 우리에 양이 없어도 나는 구원에 하나님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속에 철저하게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에는 이 불신앙 때문에 구원의 축복까지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때문에, 먹고사는 육신적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이 구원의 축복을 지금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전부다 아우성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필요하겠죠. 그렇지만 내 삶 속에 진짜 구원받은 감격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육신적인 이유도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이런 불신앙 속에 우리가 빠져들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사건 때문에, '므리바의 물' 사건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난 줄 압니까?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더 처참한 것은 지도자 모세도 범죄를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하고 쭉 진행을 해 왔는데 순간, 순간 불평하거든요. 그래서 이 므리바의 물 사건 때문에, 그때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자가기 가지고 있는 지팡이 있죠. 이걸 가지고 반석을 한번만 쳐야 되는데, 몇 번 쳤습니까? 두 번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했습니다. '모세야, 너도 더 이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구나!' 이스라엘 속에 일어난 불신앙 때문에 백성들도 범죄 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도 범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그리던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이게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민수기 16장에 보시면 고라의 반역사건이 일어납니다. 레위 자손인 고라죠. 또 르우벤 자손 중에 엘리압, 다단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라와 엘리압, 다단 이런 사람들이 아주 이름 있고 힘있는 족장들 250명과 더불어서 모세에게 대항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 고라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너희만 레위 지파냐? 나도 레위 지파다! 너만 똑똑하냐? 나도 똑똑하다!' 이래가지고 수많은 세력들을 규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권위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됩니다. 언 듯 보면 모세를 향해서 도전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땅이 갈라졌습니다. 고라의 세력에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때 사건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께서 중요한 표적을 하나 줬습니다. 그 표적인 뭘까요? 아론의 지팡이에 뭐가 났습니까? 싹이 돋아났습니다. 지팡이는 마른 나무 막대기입니다. 아무런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른 나무막대기에 싹이 돋아났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임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인생도 하나님이 권위에 도전해서 살아남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언 듯 생각하면, 우리가 기분이 나쁘고 내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고 뭔가 자꾸만 주동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만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불신앙의 역사라면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 내가 실수로 뱉은 이 말 한마디가 모든 회중 속에 불신앙을 불러일으켰다! 여러분 이것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도 불신앙 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그렇게 쭉 이끌어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불신앙이 들어오면 전체 질서가 무너집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명심하셔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가 지금 하나로 쭉 뭉쳐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불신앙의 기운이 들어오면 이 속에 있는 모든 질서들, 모든 축복들이 갈갈이 찢겨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불신앙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또 불평을 합니다. '물이 없다!' 심지어는 '만나도 지겹다!' 여러분 잘 아시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갔을 때에 죽지 않도록 하늘에서 내려진 신령한 음식이 뭡니까? 그게 만나 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진짜 맛있는 과자가 내려져 있거든요. 그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기름 썩인 꿀 같은 과자다!' 먹고 나니까 너무 맛있어 가지고, '이게 뭐냐?'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만나 입니다. 입에 살살 녹거든요. 너무 맛있어 가지고 '이게 도대체 뭐냐?' 그게 만나 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의 음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속에 불신앙이 들어오니까, 또 원망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원망을 했느냐 하면, '이 박한 식물이 싫다!' 5절에 보십시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박한 식물이 뭡니까? 만나입니다. 신령한 양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급을 했던 그 만나!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그 만나를 가지고, '우리는 싫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런 자리에까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참 불신앙이 무섭습니다. 이 불신앙은 내 개인도 망하게 하고, 우리의 가정도 망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교회도 망하게 합니다. 여러분 왜 인생 속에 고통이 찾아왔습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창세기 3장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창세기 3장 사건을 뭐라고 했습니까? 불신앙의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앙하여 그때 일어나 사건이 뭐냐하면, 그게 창세기 3장 사건! 그리고 이 창세기 3장을 통해서 저주, 재앙, 죽음의 고통이 끊임없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오늘날 이 땅에 왜 재앙과 죽음과 고통이 역사가 자꾸만 끊이지 않느냐? 우리 조금 전에 장로님이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왜, 부자!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부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느냐?' 결국에는 창세기 3장 사건! 다시 말하면 불신앙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거역해서 일어난 사건이 뭡니까? 그게 불신앙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불신앙의 역사가 지금도 저와 여러분 속에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는 불신앙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망한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또 그 전철을 밟아야 되겠습니까? 더 이상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제목을 "불신앙을 막아라!" 왜냐하면, 이것이 사는 길이기 때문에, 불신앙이 조금도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개인이나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가정에, 또 우리 교회 속에 조금이라도 불신앙이 들어오면 안됩니다. 들어오면 즉시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에, 그때에 물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겉에다가 틈틈이 바른 것이 뭡니까? 역청을 발랐습니다. 왜냐하면 건축을 하다보면 물이 조그마한 틈새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전혀 물이 틈타지 못하도록 그 틈새에 뭐를 발랐습니까? 역청을 발라 가지고 밖에 더러운 물, 오염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왜냐하면 오염된 물이 들어오면 전염병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 방주 안에 살고 있는 사람도, 동물도 다 죽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염된 물이 들어오지 말아야 되겠죠. 그래서 역청을 발라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림에 있어서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 불신앙이 조금만 들어와도, 그 불신앙이 전체를 완전히 장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불신앙을 막아라!"
결론입니다. 어떻게 하면 불신앙을 막을 수 있느냐?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첫째는 여러분 어쨌든 은혜 받으십시오. 지난주 메시지 기억나십니까? 산이 잠기고, 집이 잠기고,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은혜 받으면 됩니다. 아무리 불신앙이 급속하게 들어와도 진짜 여러분들이 은혜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살아남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9절 말씀에 보시면,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어떻게 되어요? "살더라!" 이게 복음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화가 나가지고 불 뱀을 보냈습니다. 그 불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몸이 퉁퉁 불어터지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전부다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너는 저 높은 장대에 놋 뱀을 매어 달아라! 그리고 저 놋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다 살아날 것이다!'이걸 보고 우리는 '복음'이라고 하고 '은혜'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들어오는 사람! 그 사람은 반드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신앙을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 불신앙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뭐냐하면, 성령 충만하십시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시면,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어떻게요? '권능을 받고...' 끝났습니다. 여러분 얼마만큼 여러분은 성령 충만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만이 90% 성령 충만하시면 90% 불신앙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 불신앙이 들어와 있습니까! 그 1% 때문에 성령 충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의 인격이나, 생각이나, 모든 삶 자체가 어느 정도 성령 충만하냐? 이게 불신앙을 이길 수 있는 중요한 해답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 항상 기도제목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자리 잡아야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영적 싸움을 싸우십시오. 이게 불신앙을 이길 수 있는 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 속에 불신앙을 집어넣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사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즉 말하자면 영적 전쟁, 영적 싸움이 제대로 안되면 결코 불신앙을 이겨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래께 금요 전도 학교 때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적 싸움을 쭉 이야기를 하면서 딱 중요한 단어를 하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필연적인 영적 싸움!' '필연적'이라는 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그런 차원이 아니죠. 필연적이라는 말은 꼭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싸움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영적 싸움을 제대로 못하면 무너집니다. 필연적인 영적 싸움이 되어지지 못하면 순식간에 사단의 역사가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하고, 염려가 일어나고, 모든 사업들이 망하고, 모든 관계 자체가 힘들어 지고, 그렇다면 이 불신앙을 이기는 영적 싸움이 필연적으로 이루어 져야 됩니다. 이게 여러분의 삶 속에 완전히 자리 잡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한번 불신앙을 막아 보자는 것입니다. 내 개인 속에 들어오는 불신앙도 막아보고, 또 내 가정 속에 일어나는 불신앙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 교회 속에 들어오는 이 불신앙, 이것도 철저하게 막아내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제가 불신앙을 듣기 지겹도록 이야기했습니다. 메시지 서론을 꺼내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불신앙, 불신앙...' 듣기 싫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부담이 될 정도로 '불신앙, 불신앙!'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막으면 살고, 막지 못하면 죽습니다. 살고 죽는 일입니다. 여러분! 불신앙, 우리는 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불신앙을 여러분 막을 수 있습니까? 삽니다. 그런데 여러분 속에 침투하고 있는 이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저도 죽고, 여러분도 죽고, 교회도 죽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신앙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 사실이 실감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불신앙을 막기 위해서 내 개인이 먼저 은혜 받자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연적인 영적 싸움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들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필연적인 영적 싸움! 그래서 철저하게 불신앙을 막고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의 삶 속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철도 추돌 사건이 대구에서 일어났습니다.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대구에 본격적인 전도운동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건이 대구에 일어났을 때 대구의 성도들이 제대로 복음 운동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 불신앙은 우리를 철저하게 망하게 합니다.
(1) 우리에게 불신앙이 오면 성도들이 고통과 멸망으로 빠져나갑니다.
① 엉덩이에 붙어있는 껌처럼 불신앙은 떨어뜨리려고 할수록 떨어지지 않습니다.
② 성도를 철저하게 망하게 하고 실패시키는 날까지 철저하게 찰거머리처럼 붙어있습니다.
③ 어느 순간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④ 과거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망한 이유는 그들 속에 일어난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⑤ (사 40:27)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⑥ 신학자들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지 않기에 성경이 신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⑦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및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믿어집니까?
(2) 불신앙을 철저하게 막아야 합니다.
①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② 성도는, 현실은 현실대로 또 헌금은 헌금대로 3-4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③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모든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④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속에 있었고 고통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불신앙에 빠져있습니다.
2. 과거 이스라엘 백성속에 불신앙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 민수기 20장에 므리바 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① 가데스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의 백성이 물이 부족하자,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② (민 20: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 인도하여 악한 곳으로 보내었느냐
③ 성도가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의식주 문제입니다.
④ (하박국 3장)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소출도 없더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라
⑤ 불신앙의 역사 속에서 사단의 통로에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⑥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도 불신앙 때문에 실수를 하여 반석을 두 번 치게 됩니다.
⑦ 불신앙의 결과로 모세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2) 민 16장에 고라의 반역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① 이름있고 힘있는 족장 250명이 합세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을 하게 됩니다.
② 이것은 지도자에 대한 불신앙이며,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③ 고라의 반역에 대한 표적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④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임재했으니,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라는 이야기입니다.
⑤ 불신앙이 들어오면 전체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3) 민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도 없고, 만나도 지겹다고 불평했습니다.
① 먹고 살 수 없을때, 신령한 양식으로 하나님이 만나를 보내주셨습니다.
② 5절에 너무 맛있었다고 표현했던 만나를 "박한 식물" 이라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합니다.
(4) 근본문제는 창 3장의 문제입니다.
① 저주, 재앙, 죽음이 이 문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3. 불신앙의 틈을 막는 방법이 있습니다.
① 노아가 방주를 지을때, 역청을 모든 틈새에 바른 이유는 세상 것이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였습니다.
(1)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① 세상이 타락했을 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② 불뱀에게 당해서 죽어갈때,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아라"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③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2)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① (행 1:8)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만큼 불신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② 99% 성령충만하게 되면 99% 은혜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100%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3) 영적싸움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① 엡 6장에 우리의 씨름은 세상의 싸움이 아닌 영적 싸움입니다.
②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기도의 싸움속에서 영적 싸움을 싸워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③ 필연적인 영적 싸움이 될 때, 모든 불신앙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개인의 불신앙, 교회의 불신앙. 가정의 불신앙이 있으면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여러분들 한분 한분이 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② 성령 충만을 받고, ③ 영적 싸움을 하십시오. 그러면 완전한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저희 집에 아들이 지 엄마한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버지가 교회에서 월급 받나?' 그러더라 구요. 제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사례 받는 줄을 전혀 몰랐던 모양입니다. 어쩌다가 그걸 본인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왜 교회에서 월급을 받느냐?'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제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 수고를 하고 그래서 얻어지는 이 소득을 가지고 한달, 한달 그렇게 살아간다!' 이렇게 설명을 해 줬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참 재미가 있습니다. '아빠도 예배드리고 나도 예배드리는데, 왜 아빠는 월급 받고 나는 왜 월급을 주지 않느냐? 불공평하지 않느냐?' 이래가지고 자기는 월급 안 준다고 상당히 화를 내더랍니다.
여러분 이 예배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이 진짜로 감사가 되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막 달려오다가도 안 들어오는 분들이 있더라 구요. 실컷 잘 와놓고 돌아서는 이런 분들 참 많습니다. 저는 우리 청년부들에게 메시지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교육관 4층이 청년부 실이거든요. 아이들이 나름대로는 은혜 받겠다고 오다가 어떤 아이들은 2층까지 올라오다가 돌아가는 아이들, 3층까지 올라오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는 아이들, 심지어는 4층까지 올라왔다가 문을 빼꼼히 열다가 뭔가 마음이 또 달라졌든지, 또 돌아서는 아이들 참 많더라 구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오시고 은혜 받는 것도 여러분들의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여러분 이 은혜의 역사가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또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은 제가 의자가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데 엉덩이에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아니나 다를까 하고 보니까, 여름철에 껌 있죠. 껌이 찐득하게 붙어 가지고, 이 겨울이면 좀 나은데 이 여름에 쭉쭉 늘어나잖아요. 이게 붙어 가지고 상당히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더라 구요. 그래서 이제 손으로 떼어봤는데요. 이게 막 얽히고 섥여가지고 이 손으로도 잘 안되고, 심지어는 얼룩이 더 심해지는 이런 모습들을 봤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성도들 속에 이것 하나가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가지를 않습니다. 빠져나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우리 성도들을 엄청난 고통과 멸망으로 몰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뭘까요? 불신앙입니다. 이 불신앙이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가지를 못합니다. 우리 한 개인과 성도들을 완전히 망치고, 그러면서 완전히 한 인생을 실패시킬 때까지, 끝까지 붙어있는 것이 뭐냐하면, 이게 불신앙입니다.
여러분 거머리 잘 아시죠. 제가 옛날에 그 대민 지원을 갔더랬습니다. 벼이삭을 심는 그런 일을 했었는데, 한참 심는 도중에 뭔가 다리 종아리 쪽에 따끔한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 뭔가 싶어서 보니까, 거머리가 두 마리나 붙어 가지고 이게 제 피를 쭉쭉 빨아먹고 있는 겁니다. 손으로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이게 잘 떨어지지를 않더라 구요. 그래서 이제 거머리한테 한 단어를 더 붙이죠. 뭐라고 합니까? '찰거머리!' 찰 싹 달라붙었다 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찰거머리! 이 거머리가 한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저와 여러분 속에 불신앙이 들어왔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이 불신앙이 지금 자리잡고 있습니까! 이 불신앙이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합니까!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들을 누리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인가 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자리에 지금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불신앙이 지금 자리잡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서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가만히 보십시오. 왜 이스라엘 역사가 그토록 처참하게 멸망을 했습니까? 힘이 센 블레셋 민족 때문 에요? 아모리 족속 때문에, 여리고 민족 때문에 그렇게 망했습니까? 저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게 철저하게 망했던 그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 바로 그들 속에 일어난 불신앙이, 불신앙의 역사 때문에 얼마나 처참한 모습으로, 그러면서 완전히 망하는 그 날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이 성도에게 파고드는 최고의 통로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바로 이 불신앙입니다. 일단 믿지 못하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끝나거든요. 그래서 어쨌든 믿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도록 사용하는 그 도구가 뭐냐하면, 그게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27절에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 이들이 이런 속에서 뭘 믿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어찌하여 네 원통한 사정을 내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철저하게 불신앙 속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죽으라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믿으려고 애를 써도, 아무리 힘을 쓰고 공을 드려도 전혀 믿지 못하는 사람! 참 불쌍합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믿어지고, 예수님의 부활도 믿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어지고... 여러분 진짜 믿어지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내 자신에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 이것을 믿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지금 휴가철입니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엄청난 그런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답답한 환경 속에, 또 더운 이런 환경 속에 왜 들어오셨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어지고, 그리스도의 죽음도 믿어지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참 주인이시라는 사실이 믿어지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이런 하나님의 역사들이 믿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자유주의 신학자들 있죠. 신 신학자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니까 온갖 이야기를 다 꺼냈습니다. '성경은 설화다! 하나님 말씀은 신화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가짜다! 허구다!' 이래가지고 온갖 비아냥을 다 드러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이죠.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중요한 역사들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 신학자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아니냐! 어떻게 홍해가 갈라지고, 어떻게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어떻게 큰 역사들이 일어나느냐? 신화다! 설화다!' 이래가지고 '문서설, 죄의 피비설' 해 가지고 믿지 않으려고 막 발버둥을 치는 이런 모습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 감사한 것은 저는 믿어지니까 감사합니다. 아니 죽으라고 안 믿어지는데, 그런데 저는 하나님 말씀도 믿어지죠. 그리스도의 축복도 믿어지죠. 참 믿어지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속에 들어오는 불신앙을 철저하게 막아야됩니다. 이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는 신앙의 역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모든 기독교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불신앙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갈등이 일어납니다. 삶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지금 모르고 있습니다. 이게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불신앙이 들어와 있습니까? 이 불신앙을 막아 보십시오. 이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절대로 내 자신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 역사 하는 불신앙을 이겨내지 못하면 교회 건축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 건축! 중요하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 돈이 문제입니까? 경기가 어려워지고, 그래서 살아가는 게 힘들고, '돈을 모으는 게 참 힘들다!' 그래서 교회 건축을 못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 불신앙에서부터 빨리 벗어나십시오.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고, 지금 여러분의 개인 속에, 교회 전체 속에 일어나는 그 불신앙의 문제가, 그게 문제이지! 절대로 물질과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실패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에는 이 불신앙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 자신들이 잘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 했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두들겨 맞았구나! 그래서 실패했구나! 그래서 포로로 끌려갔구나!' 잘 압니다. 그런데 그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지금 우리도 밟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억울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경이 지금 무엇 때문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더 이상 과거의 불신앙의 역사를 밟지 마라!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깨달아라! 그리스도의 역사를 제대로 알라!'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개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졌던 그 불신앙 속에 우리 자신도 점점 빠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불신앙의 역사를 빨리 깨닫지 못하고 이것을 막지 못하면, 저도 망할 수 있고, 여러분도 망할 수 있고 절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본문 민수기를 통해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놓쳤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백성 속에 역사 했던 불신앙의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 나갔느냐?' 오늘 이 사실을 한번 확인하고, 더 이상 우리는 그 불신앙의 역사를 밟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속에 우리 자신들이 제대로 세워 져야 될 것입니다.
첫 번째입니다. 민수기 20장에 보시면 '므리바의 물'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앞에 20장 2절에 한번 보십시오. 거기에 보시면,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여기서 회중은 누구를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말하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여러분 오늘 이 본문에 말씀을 보시면서 뭐 조금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제가 2주전에 설교에 메시지의 제목을 벽을 넘어서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가로막힌 모든 벽들을 넘어서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막고 있는 최고의 벽이 뭡니까? 의식주의 벽이라고 했죠. 먹고사는 문제! 먹을 것, 마실 것, 사는 것!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 보십시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쭉 광야 생활을 진행하다가 어디까지 왔느냐 하면, 가데스 바네아 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 가데스에 머무는 동안에 물이 떨어졌습니다. 상당히 목이 갈 했겠죠. 그때에 백성들의 마음에서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들과 함께 우리를 굶어죽게 하시는 구나! 우리를 목이 말라서 죽게 하시는 구나!' 철저하게 이 육신적인 문제 때문에 엄청난 불신앙이 그 속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에는 우리 속에 찾아 들어오는 것이 뭡니까? 그게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홍해를 건너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물이 없어서 주리게 만들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그 하나님께서 먹을 것이 없어서 망하게 만들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어서 공박하니라!' 모든 불평 원망들이 그 속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앞에 민수기 20장 5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입니다.
무화과도 없다! 포도도 없다! 석류도 없다! 마실 물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 같은데, 완전히 정 반대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뒤에 보시면 하박국 3장입니다. 여기에 보시면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 반대죠. 17절, 18절입니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아멘.
참 보십시오. 여러분 같은 상황입니다. 똑같은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석류도 없다! 무화과도 없다! 포도도 없다! 마실 물도 없다! 그런데 이 하박국서에 보시면, '무화과나무가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도 없고, 우리에 양이 없어도 나는 구원에 하나님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속에 철저하게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에는 이 불신앙 때문에 구원의 축복까지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때문에, 먹고사는 육신적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이 구원의 축복을 지금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전부다 아우성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필요하겠죠. 그렇지만 내 삶 속에 진짜 구원받은 감격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육신적인 이유도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이런 불신앙 속에 우리가 빠져들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사건 때문에, '므리바의 물' 사건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난 줄 압니까?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더 처참한 것은 지도자 모세도 범죄를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하고 쭉 진행을 해 왔는데 순간, 순간 불평하거든요. 그래서 이 므리바의 물 사건 때문에, 그때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자가기 가지고 있는 지팡이 있죠. 이걸 가지고 반석을 한번만 쳐야 되는데, 몇 번 쳤습니까? 두 번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했습니다. '모세야, 너도 더 이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구나!' 이스라엘 속에 일어난 불신앙 때문에 백성들도 범죄 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도 범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그리던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이게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민수기 16장에 보시면 고라의 반역사건이 일어납니다. 레위 자손인 고라죠. 또 르우벤 자손 중에 엘리압, 다단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라와 엘리압, 다단 이런 사람들이 아주 이름 있고 힘있는 족장들 250명과 더불어서 모세에게 대항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 고라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너희만 레위 지파냐? 나도 레위 지파다! 너만 똑똑하냐? 나도 똑똑하다!' 이래가지고 수많은 세력들을 규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권위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됩니다. 언 듯 보면 모세를 향해서 도전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땅이 갈라졌습니다. 고라의 세력에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때 사건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께서 중요한 표적을 하나 줬습니다. 그 표적인 뭘까요? 아론의 지팡이에 뭐가 났습니까? 싹이 돋아났습니다. 지팡이는 마른 나무 막대기입니다. 아무런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른 나무막대기에 싹이 돋아났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임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인생도 하나님이 권위에 도전해서 살아남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언 듯 생각하면, 우리가 기분이 나쁘고 내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고 뭔가 자꾸만 주동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만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불신앙의 역사라면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 내가 실수로 뱉은 이 말 한마디가 모든 회중 속에 불신앙을 불러일으켰다! 여러분 이것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도 불신앙 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그렇게 쭉 이끌어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불신앙이 들어오면 전체 질서가 무너집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명심하셔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가 지금 하나로 쭉 뭉쳐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불신앙의 기운이 들어오면 이 속에 있는 모든 질서들, 모든 축복들이 갈갈이 찢겨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불신앙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또 불평을 합니다. '물이 없다!' 심지어는 '만나도 지겹다!' 여러분 잘 아시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갔을 때에 죽지 않도록 하늘에서 내려진 신령한 음식이 뭡니까? 그게 만나 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진짜 맛있는 과자가 내려져 있거든요. 그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기름 썩인 꿀 같은 과자다!' 먹고 나니까 너무 맛있어 가지고, '이게 뭐냐?'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만나 입니다. 입에 살살 녹거든요. 너무 맛있어 가지고 '이게 도대체 뭐냐?' 그게 만나 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의 음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속에 불신앙이 들어오니까, 또 원망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원망을 했느냐 하면, '이 박한 식물이 싫다!' 5절에 보십시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박한 식물이 뭡니까? 만나입니다. 신령한 양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급을 했던 그 만나!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그 만나를 가지고, '우리는 싫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런 자리에까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참 불신앙이 무섭습니다. 이 불신앙은 내 개인도 망하게 하고, 우리의 가정도 망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교회도 망하게 합니다. 여러분 왜 인생 속에 고통이 찾아왔습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창세기 3장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창세기 3장 사건을 뭐라고 했습니까? 불신앙의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앙하여 그때 일어나 사건이 뭐냐하면, 그게 창세기 3장 사건! 그리고 이 창세기 3장을 통해서 저주, 재앙, 죽음의 고통이 끊임없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오늘날 이 땅에 왜 재앙과 죽음과 고통이 역사가 자꾸만 끊이지 않느냐? 우리 조금 전에 장로님이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왜, 부자!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부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느냐?' 결국에는 창세기 3장 사건! 다시 말하면 불신앙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거역해서 일어난 사건이 뭡니까? 그게 불신앙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불신앙의 역사가 지금도 저와 여러분 속에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는 불신앙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망한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또 그 전철을 밟아야 되겠습니까? 더 이상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제목을 "불신앙을 막아라!" 왜냐하면, 이것이 사는 길이기 때문에, 불신앙이 조금도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개인이나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가정에, 또 우리 교회 속에 조금이라도 불신앙이 들어오면 안됩니다. 들어오면 즉시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에, 그때에 물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겉에다가 틈틈이 바른 것이 뭡니까? 역청을 발랐습니다. 왜냐하면 건축을 하다보면 물이 조그마한 틈새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전혀 물이 틈타지 못하도록 그 틈새에 뭐를 발랐습니까? 역청을 발라 가지고 밖에 더러운 물, 오염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왜냐하면 오염된 물이 들어오면 전염병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 방주 안에 살고 있는 사람도, 동물도 다 죽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염된 물이 들어오지 말아야 되겠죠. 그래서 역청을 발라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림에 있어서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 불신앙이 조금만 들어와도, 그 불신앙이 전체를 완전히 장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불신앙을 막아라!"
결론입니다. 어떻게 하면 불신앙을 막을 수 있느냐?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첫째는 여러분 어쨌든 은혜 받으십시오. 지난주 메시지 기억나십니까? 산이 잠기고, 집이 잠기고,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은혜 받으면 됩니다. 아무리 불신앙이 급속하게 들어와도 진짜 여러분들이 은혜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살아남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9절 말씀에 보시면,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어떻게 되어요? "살더라!" 이게 복음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화가 나가지고 불 뱀을 보냈습니다. 그 불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몸이 퉁퉁 불어터지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전부다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너는 저 높은 장대에 놋 뱀을 매어 달아라! 그리고 저 놋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다 살아날 것이다!'이걸 보고 우리는 '복음'이라고 하고 '은혜'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들어오는 사람! 그 사람은 반드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신앙을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 불신앙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뭐냐하면, 성령 충만하십시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시면,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어떻게요? '권능을 받고...' 끝났습니다. 여러분 얼마만큼 여러분은 성령 충만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만이 90% 성령 충만하시면 90% 불신앙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 불신앙이 들어와 있습니까! 그 1% 때문에 성령 충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의 인격이나, 생각이나, 모든 삶 자체가 어느 정도 성령 충만하냐? 이게 불신앙을 이길 수 있는 중요한 해답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 항상 기도제목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자리 잡아야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영적 싸움을 싸우십시오. 이게 불신앙을 이길 수 있는 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 속에 불신앙을 집어넣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사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즉 말하자면 영적 전쟁, 영적 싸움이 제대로 안되면 결코 불신앙을 이겨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래께 금요 전도 학교 때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적 싸움을 쭉 이야기를 하면서 딱 중요한 단어를 하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필연적인 영적 싸움!' '필연적'이라는 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그런 차원이 아니죠. 필연적이라는 말은 꼭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싸움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영적 싸움을 제대로 못하면 무너집니다. 필연적인 영적 싸움이 되어지지 못하면 순식간에 사단의 역사가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하고, 염려가 일어나고, 모든 사업들이 망하고, 모든 관계 자체가 힘들어 지고, 그렇다면 이 불신앙을 이기는 영적 싸움이 필연적으로 이루어 져야 됩니다. 이게 여러분의 삶 속에 완전히 자리 잡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한번 불신앙을 막아 보자는 것입니다. 내 개인 속에 들어오는 불신앙도 막아보고, 또 내 가정 속에 일어나는 불신앙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 교회 속에 들어오는 이 불신앙, 이것도 철저하게 막아내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제가 불신앙을 듣기 지겹도록 이야기했습니다. 메시지 서론을 꺼내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불신앙, 불신앙...' 듣기 싫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부담이 될 정도로 '불신앙, 불신앙!'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막으면 살고, 막지 못하면 죽습니다. 살고 죽는 일입니다. 여러분! 불신앙, 우리는 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불신앙을 여러분 막을 수 있습니까? 삽니다. 그런데 여러분 속에 침투하고 있는 이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저도 죽고, 여러분도 죽고, 교회도 죽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신앙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 사실이 실감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불신앙을 막기 위해서 내 개인이 먼저 은혜 받자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연적인 영적 싸움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들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필연적인 영적 싸움! 그래서 철저하게 불신앙을 막고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의 삶 속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철도 추돌 사건이 대구에서 일어났습니다.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대구에 본격적인 전도운동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건이 대구에 일어났을 때 대구의 성도들이 제대로 복음 운동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 불신앙은 우리를 철저하게 망하게 합니다.
(1) 우리에게 불신앙이 오면 성도들이 고통과 멸망으로 빠져나갑니다.
① 엉덩이에 붙어있는 껌처럼 불신앙은 떨어뜨리려고 할수록 떨어지지 않습니다.
② 성도를 철저하게 망하게 하고 실패시키는 날까지 철저하게 찰거머리처럼 붙어있습니다.
③ 어느 순간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④ 과거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망한 이유는 그들 속에 일어난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⑤ (사 40:27)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⑥ 신학자들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지 않기에 성경이 신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⑦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및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믿어집니까?
(2) 불신앙을 철저하게 막아야 합니다.
① 불신앙을 막지 못하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② 성도는, 현실은 현실대로 또 헌금은 헌금대로 3-4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③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모든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④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속에 있었고 고통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불신앙에 빠져있습니다.
2. 과거 이스라엘 백성속에 불신앙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 민수기 20장에 므리바 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① 가데스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의 백성이 물이 부족하자,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② (민 20: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 인도하여 악한 곳으로 보내었느냐
③ 성도가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의식주 문제입니다.
④ (하박국 3장)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소출도 없더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라
⑤ 불신앙의 역사 속에서 사단의 통로에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⑥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도 불신앙 때문에 실수를 하여 반석을 두 번 치게 됩니다.
⑦ 불신앙의 결과로 모세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2) 민 16장에 고라의 반역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① 이름있고 힘있는 족장 250명이 합세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을 하게 됩니다.
② 이것은 지도자에 대한 불신앙이며,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③ 고라의 반역에 대한 표적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④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임재했으니,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라는 이야기입니다.
⑤ 불신앙이 들어오면 전체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3) 민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도 없고, 만나도 지겹다고 불평했습니다.
① 먹고 살 수 없을때, 신령한 양식으로 하나님이 만나를 보내주셨습니다.
② 5절에 너무 맛있었다고 표현했던 만나를 "박한 식물" 이라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합니다.
(4) 근본문제는 창 3장의 문제입니다.
① 저주, 재앙, 죽음이 이 문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3. 불신앙의 틈을 막는 방법이 있습니다.
① 노아가 방주를 지을때, 역청을 모든 틈새에 바른 이유는 세상 것이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였습니다.
(1)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① 세상이 타락했을 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② 불뱀에게 당해서 죽어갈때,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아라"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③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들어오게 됩니다.
(2)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① (행 1:8)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만큼 불신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② 99% 성령충만하게 되면 99% 은혜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100%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3) 영적싸움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① 엡 6장에 우리의 씨름은 세상의 싸움이 아닌 영적 싸움입니다.
②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기도의 싸움속에서 영적 싸움을 싸워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③ 필연적인 영적 싸움이 될 때, 모든 불신앙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개인의 불신앙, 교회의 불신앙. 가정의 불신앙이 있으면 막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여러분들 한분 한분이 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② 성령 충만을 받고, ③ 영적 싸움을 하십시오. 그러면 완전한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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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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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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