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성도의 축복(2)
2004-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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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가 성도에게 주신 축복이라 그렇게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번에 조금 제가 몇 가지로 문제점을 제기를 했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못 만나는데서 문제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참된 가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오직 한길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 그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그 길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그리스도! 간단하게 부르는 것 같아도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그 말씀 속에 있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지막 부분에 제가 말씀할 때에 이미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 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번 다 같이 받아합시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 해결 자다!" 해결 자다! 그랬는데 뭐가 안 되어요? 해결이 안 되어요. 여기서 이제 갈등이 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이 해결자라는 사실을 믿고, 그 내가 일평생 나를 또 우리를 위해서 이미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현실에서 누리면 된다! 그랬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뭐라 그랬어요? 기도라 그랬습니다. 기도는 뭘 얻어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여러분과 제게 일평생 그 하나님의 축복하신 언약의 약속을 이미 받은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마다 다 준비해놓은 그 사실을 누리면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그럴 때에 자꾸 우리가 뭔가 맛을 내려고 그러고, 뭔가 자꾸 빛을 우리가 비추려고 그러는데, 이것은 존재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뭘 하라! 하지 마라! 그런 차원이 아니거든요. 빛은 가만히 있어도 뭔가 빛이 나오는 것이죠. 그러면 소금은 이미 소금이다! 그랬는데 소금은 짠맛을 이미 지니고 본질적으로 벌써 이미 다 된 겁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아마 우리 신앙생활에서 잘 적용이 안 된다기보다도 근본적으로 이에 어떤 확신과 더욱더 분명한 그런 그 본질적인 사실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에 문제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아마 지금까지도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 세상에 소금이다! 그럴 때에 어디로 늘 하느냐 하면, '하나님 우리가 짠맛을 내게 하옵소서!' 뭐 이런 식으로 하는데, 이미 벌써 짠맛을 갖고 있는 소금이다! 그랬는데 그건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나와요. 사건과 일에 들어가면 소금은 물에 들어가면 녹게 되고요. 어떤 것에 부닥치면 그것은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다! 일부러 오늘 본문에 말씀한 것처럼 이 뭔가 등불을 켜 가지고 말 아래 둔다는 것은, 여러분 그 한 대, 두 대 세는 큰 그 곡식 세는 단위가 뭡니까? 한말 두말 아닙니까! 일부러 등불을 켜놓고 그 말을 거꾸로 엎어두지 않는 한 그렇잖아요. 그냥 빛을 켜면 빛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빛은 켜놓고 말로 엎어놓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엎어놓는 것이 아니고 빛은 등불을 켜놓고 어떻게 놓는다 그랬습니까? 제 자리에, 제 위치에 가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미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꾸 우리는 뭐냐? '빛을 비추게 하옵소서! 뭔가 말 아래 갖다가 엎어놓고 빛을 비추게 하옵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사실 자체가 우리가 설자리에 서고, 나갈 자리에 나가고 현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잡고 서면 되는 이런 부분이 자꾸 뭔가 우리는 노력을 해야 되고, 힘써야 되고 애써야 되고 하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가는 우리의 본질이 이게 없어지지 않아요.

여러분 기도한번 보세요. 하나님 뭘 하게 하옵소서. 뭘 되게 하옵소서. 받아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완전히 해결됐다!" 해결됐다! 그랬는데 이 해결된 것이 뭐냐? 내가 하므로 해결된 것이 아니고 받아합시다. "되어진다!" 되어집니까? 이게 문제가 안 되거든요.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안 되어지거든요. 그래서 되어진다는 것도 어디로 자꾸 들어가느냐 하면, 내 생각과 내 계획으로 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또 붙잡고 있는 겁니다. 이게 내 생각이 이루어져야되고, 내 생각대로 안 되면 되어지는 것도 아니고 되어져도 되어지는 게 아니에요. 이리로 빠지니까, 이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 이제 갈등이 오고 모든 문제가 오거든요. 받아합시다. "안 되어져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안되어지고, 아프고, 슬프고, 엎어지고 실패해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소금은 어디 떨어져도 소금은 소금입니다. 그리고 빛은 어디에 놓아도 빛은 빛입니다. 이 점이 우리가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이 뭔가 우리가 확실히 자리 잡아야 됩니다. 이걸 먼저 이해를 하려고 한다 그러면 조금 구원에 대해서 바로 좀 알아야 되겠다 싶어요.

구원에 대해서 구원받았다! 안 받았다! 이런 문제가 상당히 우리에게는 심각한, 성도에게는 문제이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사실을 조금 설명을 해야 되겠어요. 한번 받아합시다. "구원은 하나님이 완성하셨다!" 이미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어요. 구원받았으면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구원받았다. 안 받았다 하는 것은 이것은 절대로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뭐 수고와 애씀을 통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서 여러분 구원문제는 종교라는 것과 전혀 다른, 종교는 내가 애써서 하나님을 만나러 찾아가는 것이지만은, 구원은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한 거예요? 찾아 오셨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 사람 구원받았다! 안 받았다! 그 사람 행동이 어떻다! 아니다!' 이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계시라 그랬죠.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 온 것을 계시라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1장 6절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그랬습니다. 구원 주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구원 주시고 그냥 '네가 한번 해봐라!' 그런 것이 아니고 구원 주시고, 구원을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아니고 영원토록 완성했다! 그랬습니다. 완성했습니다. 구원은 미완성이 아니고 구원은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사망에서 어디로? 생명으로, 뭐라 그랬습니까? 옮겼고 그랬습니다. 이게 옮길 것이다가 아니고 옮겼고...

여러분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완성되었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가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믿는 것으로 아니고 어떻게요?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믿는 것과 믿어지는 것을 조금 설명을 했어요. 믿으려고 애쓰는 것하고, 믿어지는 것하고는 본질적으로 달라요. 믿어지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아무리 믿으려고 그래도 안 믿어지는 것 어떻게 합니까? '믿어진다! 믿는다!' 그러는 것은 엄청난 역사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고 홍해가 갈라졌다! 아니면 해가, 그 다음에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렀다! 그 문제하고 다른 겁니다. 더 큰 문제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 믿어진다! 그리고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 가지고 '아멘' 그러고 고개가 끄떡거려진다! 간단한 것 같지만 홍해 갈라진 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게 그냥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게 왜? 하나님이 은혜 안 주시면 절대로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경이 성령으로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이 안 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미 여러분 이 자리에 와 앉았다! 고개를 들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렸다! 그걸 가지고 우리는 '은혜라!' 그럽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겁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그러는 것이죠.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우리가 우리대로 두면 안 되기 때문에 이 일을 구체적으로 증거 하시기 위해서 누구를 보냈습니까? 성령이 오셨다! 여러분에게 증거로 여러분에게 성령이 오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하면서 중요하게 말씀을 구체적으로 좀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완성하셨다! 그럴 때에 우리가 그때부터 뭘 믿어집니까? 하나님의 주권 적인 역사! 여러분의 생애를 하나님이 하시죠. 여러분의 죽고 사는 문제를 누가 하신다 구요?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여기서 행복해 지는 것이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시고, 하나님이 행불행을 다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시고, 은혜 주시는 것!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하시는데, 그 하나님 못 만났다? 여기서 인생이 불행해 진다! 그랬습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셨는데, 그런데 그 하나님을 못 만났다? 이게 불행이라! 그랬습니다. 그 하나님을 만났다. 그때부터 축복과 은혜요. 평안과 안식이 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의 자녀라 그랬죠. 그런데 그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오는 길이 유일한데 누구라 그랬어요? 예수 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그 하나님의 믿음으로 들어오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라! 그리고 그 주권 속으로 들어오는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주권으로, 내 생각과 내 뜻으로 말고 주권으로 인도해 나가는 역사가 누구의 역사라 그랬습니까? 성령의 역사라! 우리는 성령의 인도 받으면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권 속에서 성령의 인도 받고 나가게 되는 그 순간부터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인도 받는 사실만 누리면 됩니다. 이걸 기도라 그랬어요. 그러면 내게 준비되어 있는 모든 현장과 현실에 그저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실을 기도로 찾아 누리면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라는 것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고 생활이 되어지는 것이죠. 내가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생활이라는 것은 생활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꼭 어떻게 눈감고 앉아있다! 그게 아니고 내 생활 전체가 뭡니까? 기도화 되는 겁니다. 우리는 대게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어떤 사업을 놓고, 어떤 일을 놓고, 그 사업을 잘 하고, 그 일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대게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뭐 철야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예를 들어서 '우리 아들 이번에 입학 시험을 치는데 입학시험 합격하기 위해서...' 그때 되면 이제 주로 새벽기도에 많이 나오게 되죠. 생전에 안 나오다가 그런 식으로 그래가지고... 뭔가 일이 잘 되게 하옵소서. 무슨 큰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 놓고 또 산에 가서 기도한다거나... 뭐 이런 식으로 기도를 했어요.

그게 아니고, 무슨 일이 잘 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 속에 일을 집어넣고, 기도 속에 공부도 집어넣고, 기도 속에 사건을 집어넣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속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져 가는, 이게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니 기도 속에 하나님께서 이 일과 사건을 맡기실 때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요. 그게 뭐냐? 기도 속에 그 계획을 찾아만 내면 돼요. 그래서 이 일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이 너무 거꾸로 되어 가지고 너무 깊이 이게 박혀 있어요. 그래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아, 이걸 어떻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이미 기도하고 문제 생긴다! 문제 생기는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 속에 문제 집어넣어 버리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 그 문제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이 보여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찾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죠.

막상 제가 얼마나 이것이 잘못된 체질이 되어 있느냐 하면요. 참 어렵다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왜 그러냐 하면, 제가 이 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그것도 보통 그저 감기 같은 게 걸렸다! 뭐 약 하나 먹고 낫는다! 이렇게 되니까 그저 별로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데, 죽고 사는 문제다! 싶은 문제가 걸려서 당장 현실이 어려워지게 될 때에 문제가 뭐냐하면, 기도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한다기보다도, 하나님의 계획도 없어져 버리고, 믿음도 없어져 버리고, 뭐가 보이느냐 하면, 아픈 것 밖에 안 보여요. 고통스러운 것 밖에 안 보여요.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아픈 것이 더 커져 버리고, 이게 인간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정말 우리가 참 복음 속에 들어가서 내게 이 사건이 와졌을 때에 이 사건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뭐냐? 기도 속에 이것이 사건과 기도 속에 들어가 버리면 이렇게 보여지는데 그게 잘 안 되거든요. 여러분 정신적인 문제가 온다! 뭐 어떤 사건이 온다! 그럴 때에 믿음으로 언약을 잡고 기도 속에 이 사건이 들어가게 되면, 이 사건이 하나님이 내게, 우리에게, 우리 가문에, 가정에 무슨 계획으로 주셨느냐? 그게 발견됩니다. 그게 발견되면 그때부터 그 발견된 모든 사건 하나 하나가 축복과 은혜로 연결되어 지는 겁니다. 그것이 자꾸 안되니까, 사건이 오게 되면 뭐냐하면, 사건을 해결하려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 사건이 없어지게 하려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문제가 오면 '하나님, 어떤 어려움, 하나님, 이 어려움이 없어지게 하옵소서!' 없어져서 될 일이 아닌데, 그게 있어야 일이 되는데, 그걸 우리는 자꾸 없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거든요. 그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과 상관없는 이런 문제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생겨지게 된 현실들이 성도들에게 이것이 바로 안 되니까 고통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전체가 안 되니까 오는 것이 뭐냐하면, 구원은 받았지 만은 구원의 확증이 없어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거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죽는다는 문제를 딱 갖고 서게되니까, 어떤 것이 오느냐 하면, '죽는구나! 정말 천국 가겠나?' 여러분 이 갈등이 들어오는데 참 어려워요. 이 갈등이 여러분 목사 생활 벌써 내 평생을 했는데, '진짜 내가 죽으면 천국 가겠나? 너 구원받았나?' 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불러 놓고는 이 갈등이 들어오는 순간에, 여러분 모든 문제가 무너져 버립니다. 구원에 대한 갈등! 이것이 거의 우리 성도들의 입장입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가 왔다! 어려운 사건이 왔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된 바탕이 안 되면 '내가 천국 가겠나? 안 가겠나?' 이것보다도 하나님의 인도의 확신이 없어져 버려요. 그러면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자연적으로 구원의 갈등이 오니까 뭐가 오느냐 하면, 중요한 것이,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 갈등이 이제, 이런 믿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그걸 가지고 '임마누엘, 임마누엘!' 안 그랬습니까! 임마누엘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안 서게 되면요. 믿기는 믿어요. 그런데 이 확신이 삶에 없어지게 되면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게 안 되는 겁니다. 무 덮어놓고 믿어요. '믿습니다!' 그럽니다. 그래서 무 덮어놓고 믿는 걸 무슨 믿음이라 그랬어요? 지난번에 우리 진화론 강의 할 때 들었죠. 무 덮어놓고 믿는 것을 뭐라 구요? '위대한 믿음이라!' 위대한 믿음 가지고는 어떨 결에 될지 모르지만 잘 안됩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적고 큰 내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건이 안 됩니다. 이게 인간의 갈등입니다.

여러분이 아마 뭐 신앙생활이 '어렵다! 힘들다!' 다른 게 아닙니다. 적고 큰 문제가 오면 적은 문제에,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게 지금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적은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 적은 사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 다 이루신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계획하신다!' 이런 어떤 믿음에 있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구나! 하나님이 이루셨구나!' 그럴 때에 뭡니까?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옵니다. 그런데 적은 사건인데도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면, '하나님 어디계시냐?' 여기에 이제 갈등이 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좀 문제가 어렵다! 쉽게 말해서 이렇게 합시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이 건강이 안 좋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만... 작은 문제입니다. 회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뭐냐? '아,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구나! 하나님이 응답하셨구나!' 기쁨이 옵니다. 평안이 옵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지 내 기도는 안 들어줘요. 그러면 이게 갈등이 오게 되거든요. 임마누엘이라고 그러는 문제가 간단한 것 같지만 우리 생활 전부 아닙니까! 그래서 이 사건이 구체화되는 역사가 뭐냐하면, 기도입니다. 기도! 그래서 이 사실이 구체화되는 역사 현장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 말을 구체적으로는 안 했지만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케 하기 위해서 옛날에 신비할 때는 어디로 갔습니까? 교회 오면 무조건 산으로 끌고 갔어요. 끌고 가 가지고 무릎 꿇려놓고 무 덮어놓고 그냥 눌려 가지고 기도해서 체험을 시켰습니다. 여러분 중요합니다. 조금만 체험을 하고 나면 하나님이 내 기도 들으셨고 하나님이 지금 내게 오셨다. 체험하게 되면 뭐가 오느냐 하면, 각 신이 와요. 그리고 적은 문제나 큰 문제나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기도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옛날에 필요했어요. 어떤 면에서 지금 여러분이 현장에 들어간다는 말이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어디서 체험되느냐? 현장입니다. 현장의 사건 속에서 체험이 됩니다. 사건과 일 속에서 체험이 됩니다. 이 사건과 현장이 바로 여러분과 저를 뭘 하게 만드느냐? 여러분 현장에 들어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뭐가 나옵니까? 기도가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없다고 그럴 때에는 어디서냐? 하나님 앞에 특별히 기도의 시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여러분 개인 기도가 된다고 하는 말이 바로 현장에 집결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게 안 되니까 뭡니까? 체험이 안 되니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고, 지금 이 사건 속에 계시고, 지금 이 문제 속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기도로 통해서 우리가 찾아 누린다는 것이 체험되게 됩니다. 하나 하나 체험되어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 정시기도 한다! 무시기도 한다! 그런 사건 만날 때마다 예수님이 모든 문제 해결하셨다! 이게 오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가 나올 때에 그 일과 사건 속에서 저절로 기도가 나오게 되면 체험이 되어지게 됩니다. 평안과 안식이 오게 되죠.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놀라운 역사가 나오게 되죠.

이렇게 되면, 체험되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뭐가 나오느냐 하면, 그때부터 안 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왜 안 되느냐? 왜 구원의 확신이 없고 왜 구원의 축복과 역사를 못 누리게 되느냐? 하는 이 문제가 오게 되는데,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치유라 그럽니다. 왜 이게 안 되느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다! 그러면 그때부터 뭔가 내 문제가 보여지게 돼요. 사건이 보여지게 되고, 아픔이 왔다! 문제가 생겼다! 슬픔이 왔다! 그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문제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게 됩니다. 이걸 가지고 보여지는 만큼 치유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 하나 고쳐지는 문제가 나오죠.

그런데 치유가 나오는 배경에서는 중요한 것이, 제가 이렇게 뭐 치유에 그 자리에 있으니까 그런지 모르지만 여러분 영적 문제, 영적 문제! 그러는데 대게 보면 우리 다락방에서 영적 문제라는 것을 많이 말하고 있지만, 영적 문제를 많이 못 느껴요. 영적 문제를 본다고 하는 것보다도 거의 여기에 감각이 없어요. 그런데 거의 지금 현재 문제가 어디 걸려 있느냐? 영적 문제입니다. 영적 문제인데, 우리 영적 문제가 오는 배경이 뭐냐? 우상 배경이거든요. 우리 민족 자체가 우상 구더기 속에 살거든요.

그러니까 거의 우리 가문이나, 가정이나, 거의 영적 문제가 이 영적 문제로 내려오고 있는데, 영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교회 왔을 때에 이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수한 노력이 나오는데, 이 노력이 복음으로 바로 인도를 못했을 때에 빠지는 길이 뭐냐? 신비주의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어떤 면에서 영적인 문제! 이런 배경이 많이 있었고, 내 자신이 그런 배경이 많이 있었던 것이 뭐냐? 바로 이 문제입니다. 어떤 수단이나 이런 것이 있는 사람들은 뭐 수단을 부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순수하고 그런 사람들이 대게 영적 문제 가지고 있어서 영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 보니까! 신비주의 빠집니다. 신비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영적 문제를 가지고, 그 영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신비주의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리로 빠져 버립니다. 우리가 그 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교회에 성격이 더러워서 뭐 문제가 되는 것보다도, 뭐 이상하게 사람이 뭐 그렇다! 물론 영적인 배경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은, 그런 사람이 영적 문제 해결하려고 빠지다 보니까! 신비로 빠졌습니다. 그래서 신비로 빠진 사람이 교회 문제를 일으켜요. 그렇게 되면 많은 영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과 동화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비해서는 나는 즉각 손을 쓴다거나, 즉각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또 그렇게 또 안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인 흐름으로 잘못되어 가게 될 때는 손을 댔습니다. 그 사람들은 오래 놔두면 다른 사람들이 영적 문제에 피해를 보게 됩니다. 즉각 손을 대어줍니다. 그런 심정으로 왔어요.

왜 그러냐 하면, 거의 영적 문제를 갖고 있고 그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로 모이느냐? 교회로 모입니다. 거의 교회로 모입니다. 그러면 영적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영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신비에 빠져 버리면, 영적 문제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람과 대번 연결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교회 오게 될 때에 그 사람들이 약간만 좀 이상하게 나가면 즉각 제재해 준다거나 손을 봐줘요. 안 그러면 피해가 엄청나게 커져 버려요. 우리 다락방 안에도 그런 뭐 사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흐름이 이상해져 버립니다. 그게 문제가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여러분들이 '예수는 그리스도 시다!' 복음에 대한 확실한 참 해결 자이신 그리스도! 어떤 신비적인 역사는 있지만 신비주의로 빠지지 않는 속에서 확실한 내용이 바로 전달되어지고, 이 사건이 우리 가슴에 담아지게 되는 그 순간, 순간 영적 문제가 신비롭게도 해결되게 되면서 정상이 됩니다. 정상적이 된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바로 기억해 놓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뭐 자연적 갈등이 생기고, 막 갈급증이 생기고, 뭐 그냥 그리스도 없으면 안 된다! 열심히 생기고, 그런데 '내가 잘 믿는다! 참 내가 신앙생활 잘한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영적인 문제가 있구나!' 그 다음에 그 영적인 문제가 해결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신앙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사람이 처음에는 막 갈급하고 열심을 내던 것이 좀 희미해집니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번 받아합시다. "제대로 인간이 되어가는구나!" 철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영적 문제 가지고 교회 왔을 때 은혜를 받게 되면요. 죽을 똥 살 똥 모르고 막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간 되면 차츰 차츰 열심히 떨어지는데, 열심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게 정리되어집니다. 처음에 여러분 막 그냥 정신 없이 그냥 뛰어다니는 것은 그것은 미친 것이지, 그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다락방에도 가만히 보면서 처음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뭐 열심히 없다 싶을지 모르지만, 그게 맨 정신이 돌아온 겁니다. 성장과정입니다. 이게 여러분 바로 이해가 되어야 돼요. 내가 영적 문제가 있을 때에 처음 그리스도를 접하게 되면 갈급 증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정없이 뛰어다니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점점 시간이 되면서 정리가 되면 내 정신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게 신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복음으로 정리가 되어 가는 것임을 바로 이해가 되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또 우리가 치유가 되어야 될 문제들이 뭐냐하면요. 중요한 것이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되느냐 하면, 현실에서 뭐 자꾸 '현장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는데' 현장이라는 것이 어느 특정한 지역의 현장이 아니고 받아합시다. "내 가정이 현장이고 교회가 현장이고 내가 있는 곳이 현장이다!" 이걸 가지고 현장이라기 보다도 현실이라 그랬어요. 현실 여러분 내 현실이 어디 있느냐? 여기에서 뭐가 되느냐? 바로 이 현장에서 승리해야 되는데, 현장에서 실패 해 버리거든요. 그리고 현장이라 그러니까 조금 이상하게 들리고 자꾸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한번 받아합시다. "현장은 나의 삶을 말한다!" 삶이 복음화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삶이 복음화 되는데 삶이 복음화 안 되어요. 삶이 엉뚱한 데로 자꾸 빠져나갑니다. 부부간에 삶이, 가정의 삶이, 직장의 삶이, 교회 안에 삶이, 삶이 달라지게 되어요. 이게 달라진다는 것은, 달라지기를 애써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빛이다. 뭘 발하게 되어 있어요?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금이다! 뭐라 그랬어요? 짠맛을 내게 되어 있어요. 삶이 저절로 달라집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달라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에 내 삶 자체가 바꾸어지기 때문에... 왜? 본질이 바꾸어지니까! 바꾸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가 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빛이다! 소금이다! 그럴 때에 이걸 구체적으로 삶으로 연결시키면 뭘 말합니까? 착한 행실! 착한 행실이라고 하는 것은 달라졌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지 본질은 그대로 변화하지 않았는데 내가 착한 행실을 애쓴다! 그럴 때에 이걸 가지고 종교라 그럽니다. 점점 더 문제가 오고, 점점 더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 다음 단계가 뭐냐하면요. 이렇게 될 때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면 사건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되는데, 이게 안되니까! 애쓰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때로 내가 있거든요.

그대로 있는데 애쓰고 노력하다 보니까 불평밖에 안 나옵니다. 막 수고롭게 불평 스럽고 이 달라지고 나면 나오는 것이 어떻게 된 것이 어디 사건이 나한테서 나오느냐 뭐가 나옵니까? 한번 받아합시다. "볼수록 내가 신기하다! 이해가 됩니까? 내가 신기해 져요. 어떻게 내가 이게 어떻게 내가 이렇게 되었느냐? 신기해 집니다. 어떻게 내가 예배드릴 때에 맨 날 졸고만 그랬는데 어떻게 오늘 눈을 뜨고 앉았느냐! 내가 봐도 신기해 지죠. 이렇게 바꾸어집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뭐냐? 과거에서부터 해방됩니다. 과거에서부터...

그래서 여러분 주로 영적인 문제가, 개인적으로 영적 문제가 있다! 그럴 때에 주로 뭐냐? 과거 문제, 과거문제 해방 받지 못하고 과거에 어떤 악한 습관들이, 불 신앙의 습관들이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주로 이제 과거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그럴 때에 과거에 이제 불 신앙에 악한 습관들이 실제로 남아있기 때문에, 과거의 어떤 내 환경을 통해서 오는 불 신앙의 습관들이 있기 때문에, 오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목사님들 설교 속에서, 목사님이 자꾸 어디 나가서 돌아다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사모님이 '어떻게 맨 날 그렇게 자꾸 돌아다니고 그러냐! 목사가...'

그런데 그 목사님이 한번은 이런 고백을 하더라 그래요. 고아원에서 둘이 만나서 결혼을 한 사이인데, '내가 어릴 때에 어머님이 나가셨데요. 그래서 늘 어머님을 기다리는 것이 과거에... 그래서 해가 뉘엿뉘엿하면 어머니를 더 기다리는 겁니다. 밤 되면 애들이 더 어머니를 기다리잖아요. 그래서 해가 뉘엿뉘엿 지면 자기도 모르게 밖을 나가요. 어머니를 밖에서 기다린다는 겁니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도 어머니를 기다리는 그 심정이 자기도 모르게 뭐냐? 방랑객이 되었어요. 계속 돌아다니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 어머니 기다리기 위해서 밖에 나가는 사람 없습니까! 과거에서부터 과거의 상처에서부터 해방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영적 역사 속에 붙잡혀 있습니다. 혹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게 '잘못되었다! 고쳐라!' 그래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해를 해 주고요. 그 다음에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말미암아 그에게 참 평안과 안식이 오도록 해 줘야 됩니다. 사단에서 완전히 해방 받아야 됩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상처가 참 많아요. 여러 가지 문제로 과거에 대한 상처가 많습니다. 뭐 제가 여러분 상처에 대해서 일일이 다 지적을 못하고, 또 일일이 형편을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렇게 말하면 과거에 대한 상처가 너무 많아요. 나도 내 개인에 대해서 이말 하면서 과거에 대한 상처 너무 뚜렷하게 있더라 구요. 그래서 그것이 언제까지 나오느냐? 계속해서 내 가정을 괴롭히는 요인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그것이 사단의 이 지배받는 줄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완전히 해방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과거에 내가 느끼고 받았던 그 상처와 그 생각에서부터 완전히 해방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과거에 상처받아 가지고 거기에 눌릴 필요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지금은 사장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하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하인은 어디 딱 가면 늘 보이는 것이 뭡니까? 빚 자루고, 방 쓸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살던 사람이 사장이 되었거든요. 사장이 되어 가지고도 문을 딱 열고 들어오면 옛날 생각에 사로잡혀 가지고 빚 자루 들고, 자꾸 뭐 쓸고 이러면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장은 문 딱 열고 들어오면서 어질러져 있으면 시키면 돼요. 그러면 사장 자리에 앉아 가지고 결재해야 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과거에 여전히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요. 하인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요. 그러면 이게 집안 꼬락서니가 안 되어요. 그 회사는 회사 꼬락서니가 안됩니다.

여러분 사단에 매여서 종노릇하던 생각들이 다 없어져야 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는 왕이요, 제사장입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왕이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인데, 왕의 자리에 앉아야지 어디로 갑니까? 자꾸 종노릇하는 자리에 자꾸 슬슬 깁니다. 자꾸만 눌립니다. 자꾸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자꾸 이상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 지어다!' 여기에 참 평안과 안식과 당당함이 여기서 이루어 져야 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가지 남았어요. 이제는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이것이 해결되어져야 뭐가 나오느냐? 이것이 해결이 안 되니까, 가장 중요한 우리는 누구의 인도를 받아요? 성령의 인도를 받는데, 앞에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성령의 인도가 안 되어집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를 못합니다. 자꾸 돌아가니까! 성령의 인도를 못 받게 되면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무서운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는 아주 무서운 문제가 생깁니다. 무슨 말이냐?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못 받게 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집니다. 여러분 이것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내가 성령의 인도를 못 받게 되면 내 주관이 세어져 버립니다. 내 욕심 속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니까 뭐냐하면요. 복음인데도 성령의 인도 못 받으면 열심 내는 만큼 비 복음이 됩니다. 복음 아닌 것이 되어요. 성령의 인도 못 받게 되면요. 참 좋은 일을 했는데도 복음 적이 아닙니다. 항상 뭐가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뭔가 교회 위해서 하는데도 중심이 뭐냐? 나를 위해서, 내 중심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내 생각을 위해서... 그래서 가장 이기주의 집단이 뭐가 되느냐? 교회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 못 받는 교회는 가장 이기주의적, 가장 극단적인, 이기적인 집단으로 빠져버립니다. 그게 지금 현실적인 문제죠.

그래서 여러분 조금 문제가 있어요. 보수주의 교회에 있어서 사회운동이 잘 못되는 사회운동 하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를 못 품는 이유가 뭡니까?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져 버립니다. 우리가 다락방 속에서도 여러분 우리가 이 복음이 바로 되게 되면, 성령의 인도 받게 되면 성령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세상과 그리고 전 세계를 복음화 해야 됩니다. 복음화 하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정복해야 된다는 말속에는 뭐냐? 수용해야 됩니다. 구체적으로 수용해야 되고 뭔가 보는 눈이 옛날하고 달라야 됩니다. 내 생각과 내 욕심으로 너무 나를 이끌어 가던 그것이 없어져 버려야 합니다. 누구의 인도로? 객관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기도의 삶이 안 되어지게 되면 성령의 인도가 안 될 뿐 아니라, 그 다음에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성령의 인도 못 받게 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이상하게 기도응답 받게 되는 이런 문제!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이상하게 왜 자꾸 신비, 신비 문제를 말하느냐? 성령의 인도 못 받게 되면, 기도하게 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나옵니다. 기도하면서도 이기주의가 나옵니다. 그때에 생겨지는 다툼과 싸움은 못 말리는 싸움이 됩니다.

오늘 여러분 참 성도로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가 너무나 위대한데 마지막으로 내 생각과 욕심 다 버리고 조금만 하나님의 계획 맞추어서 내게 다 준비하신 지금 현재 내게 주어진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뭡니까? 조금 더 살피게 되면 성령의 인도 받게 되는 동시에 엄청난 축복과 역사가 여러분이 바로 그 사건 속에서, 그 일속에서, 그 문제 속에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이 보여지게 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도의 본질

☞ 빛은 가만히 있어도 비추어지고, 소금은 이미 본질적으로 짠맛을 지니고 있습
니다. 그러므로, 빛은 제자리에 놓여지기만 하면 비춰지게 되는 것이며, 소금은 필요한 곳에 넣기만 하면 짠맛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우리는 구원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즉, 우리는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거하시기 위해서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면 되는데, 그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2] 올바른 기도

☞ 우리는 기도 속에 일과 사건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우리의 일과 사건을 맡기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 그러나, 이러한 체험과 확신이 없게 되면, 점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갈등이 계속해서 쌓여가면 구원의 확신 조차도 흔들리게 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라는 확신도 없어지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올바른 기도입니다.

☞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체험을 하게 되면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 때부터 '왜 구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3] 성도의 삶

☞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영적 문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인도를 받지 못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정확하게 전해야 합니다.

☞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면, 삶이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삶, 교회의 삶, 직장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즉, 성도는 본질적으로 빛이 나고 짠맛이 나게 되는 변화가 삶 속에서 이루어져서 착한 행실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게 되며 과거의 문제로부터 해방받게 됩니다. 이제 왕의 신분이 되었으므로, 과거의 문제에 매여 종처럼 살아가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참 안식을 누리며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 영적 문제와 과거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해야 하므로, 우리의 고집을 버리고 세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의 삶을 통해 성령의 인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구원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모든 삶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적 문제와 과거의 문제를 치유받고 왕의 신분을 당당히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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