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베드로의 고백(1)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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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26: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마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마 2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 26: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오늘 본문에서 제목을 "베드로의 고백"이라고 이렇게 잡았습니다. 긴 시간보다도 짧은 시간에 중요한 포인트를 붙잡고 한 주간도 기도의 제목이 성취되고, 말씀이 성취되는 이런 체험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베드로의 고백이라는 말씀의 배경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베드로가 어떻게 신앙생활에 승리를 했고, 또 신앙생활에 구체적인 축복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지난주까지 가룟 유다의 실패와 그 비참한 말년을 보면서 우리 마음속에 신앙의 방향과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새겨야 되겠습니다.

지난주까지 가룟 유다의 깊은 신앙고백은, 그건 열두 사도 중에 한사람 이였던 가룟 유다의 신앙을 보면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던 여인을 향해서,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면 굉장히 유익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런 가룟 유다의 신앙의 표현들, 그리고 모든 열두 제자들도 가룟 유다의 어떤 면에서 신뢰하며 따라왔던,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가룟 유다! 예수님의 회계를 맡았던 그리고 열두 제자들이 전혀 가룟 유다에 대한 신뢰를 보면서, 그러나 그 신뢰 이후에 가룟 유다의 그 신앙고백이 결국은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지 못했던 그런 결과로 비참한 마지막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17절에 보면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배경이 뭐냐하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난 후에 너무 마음에 괴로워서 전해지는 데로, '자살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 방법이 '목을 메달고 떨어져서 창자가 터졌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은, 어쨌던 그 가룟 유다의 최후가 너무 비참한 그런 최후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지난주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 사람은 어떠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구요?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자리, 또 중직자, 또 성도의 자리, 좋은 교회, 말씀을 잘 듣고 말씀 속에 설 수 있는 그런 축복된 자리에 앉아 있을 수록, 누구하고 방향을 맞추어요? 하나님과 지금 현재에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방향을 맞추지 아니하면 더욱 악한 결과를 볼 수가 있다는 이런 무서운 사실을 조금 말씀을 통해서 깨우치고, 또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바른 방향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경우도 가룟 유다 못지않는 별 다름이 없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말하자면 가룟 유다나 베드로나 어떤 면에서 신앙생활은 거의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는 데로, 베드로도 예수님을 그냥 배반한 정도가 아니고 맹세하며 부인까지 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그 마지막 부분이 순교로서 생명을 건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졌다는 사실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베드로가 어떤 고백으로 통해서 이런 축복된 신앙의 마지막까지의 삶이 이루어 졌느냐? 하는 것이, 고백을 잘했다, 못했다! 이전에 그 베드로의 고백에서 보여지는 신앙의 진의를 좀 살펴보기를 원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마태복음 26장 31절에 보면,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죠. 이럴 때에 뭐라고 다른 제자들보다도 원래 이 베드로의 성격상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33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 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앞의 배경에 31절에 예언하신 말씀도 구약에 이미 기록된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스가랴에 나오는 말씀을 가지고 인용해서 예언했죠. 스가랴13장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스가랴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이루어질 일로 예수님께서 적용을 하셨습니다. 과연 그 예언의 말씀대로 목자를 쳤다! 결국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되는 이때에 제자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위급해서 홑이불을 덮어쓰고 도망을 쳤다고 해서 마가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왜 너무 급해서 자다가 정신 없이 도망을 치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도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이렇게 너무 황급하게 예수께서 전혀 제자들이 상상치 못할 문제를 당하고 나니까, 이 제자들이 너무 당황해서 예수님을 그동안 따라다니며 먹고 마시면서 신앙을 깊이 고백을 했지만, 아무도 예수님과 끝까지 순교를 함께 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베드로가 33절에 말씀한 것처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러니까 34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5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그랬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뭘 느끼는가하면, 베드로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정말 내가 주를 위해서 죽을지언정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 이렇게 진실한 말로 대답을 했죠.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거짓말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똑같이 주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대로 뭘 느끼느냐하면, 신앙생활 속에서 지금 이 베드로의 고백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뭐냐하면 말씀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그 뜻이 성취되지! 내 느낌이나, 내 감정이나, 내 기분이나, 내 결단이나, 내 욕망이나, 내 욕심이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지금 고백이 뭐냐하면, 좋은 뜻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깊은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어떤 걸 보게 되느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말씀대로의 성취보다도 내 느낌과 내 감정과 나의 어떤 생각의 고백을 하게 될 때에 훨씬 더 깊은 신앙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쭉 내려오면서 느낀 것이 뭐냐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참 은혜를 입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이 은혜 참 감사하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어떤 문제가 이루어졌다! 이럴 때에 내 감정과 내 느낌이 겹쳐져서 신앙의 고백이 될 때는 굉장히 깊은 신앙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바로 그런 고백이거든요. 내가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주와 함께 죽겠나이다!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 신앙생활 할 때에 신비에 대한 문제를, 말하자면 신비주의죠. 신비주의나 왜 감정적인 신앙생활, 교회에 나와서도 왜 인간적으로 감정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물론 좋은 감정으로 신앙생활 할 때에 좋은 고백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러나 왜 그걸 주의시키고, 또 신비주의에 대해서 자꾸 그러느냐? 신앙은 절대로 내 생각과 내 뜻과 내 기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신앙고백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그렇게 신앙고백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 깊이 기도하고 할 때에 어떤 겁니까? 참 주님 앞에 내가 순교를 하겠습니다.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감정의 어떤 기복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고, 그것은 다 헛된 고백입니다. 왜? 감정과 느낌으로, 생각으로 신앙고백해서 성취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여기서 깊은 어떤 뿌리를 내리지 아니하면 다른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되죠. 그래서 베드로가 이 감정의 고백이 이 느낌과 자기의 어떤 결단으로 하는 고백이 얼마나 허무하게 되는 것이냐? 바로 그 뒤에 나타나게 되는 배경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잡아가게 될 때에, 베드로도 그렇게 바로 직전에 고백하고 난 후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그랬는데도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지, 자기의 감정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이게 이해가 안되니까 바로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해 놓고는 바로 이어서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하고 예수님을 떠났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에 속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들입니다.

많은 경우 거의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깊이 다니고, 교회생활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떠냐 하면, 인간적인 감정 속에 고백이 거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니 '교회 오니까, 좋더라, 나쁘더라! 교회 오니까, 사랑이 있더라, 없더라!' 거의 전부 이런 경우입니다. 여러분 교회라는 곳은 이상한 사람, 희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왜? 바로 우리 자신들이 이상하고 희한하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러면서 다른 사람은 안 그렇기를 원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다른 게 아니죠. 왜? 교회라는 곳은 그런 죄인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구원받고, 축복 받는 곳이 교회라는 단체 아닙니까! 교회 와서 '아, 이 사람 좋더라! 교회 참 좋더라!' 교회 참 재미있더라! 이런 것은 그건 자기 생각의 고백이고, 느낌의 고백이지! 그건 성경에 말씀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교회 와서 많은 사람들이 속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교회에는 뭐가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것이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 사실이 바로 되지 않으면, 우리가 많은 경우 축복을 받고도 축복을 놓치게 되는 이런 배경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을 보게 되면 베드로가 결국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이런 어떤 감정적인 신앙고백과 아울러서 그에게 있어서 어떤 면이 있었느냐하면, 말씀을 따라서 말씀대로 신앙을 고백했던 그의 신앙고백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 4절에 보면,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밥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베드로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처음 초기에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그 배경이 뭐냐하면, 베드로가 감정에 의해서 따라간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말씀에 의지해서 행동했더니 축복이 왔다! 축복에는 엄청난 결과가 왔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이런 배경을 듣고 있죠.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날 때부터 어부의 가정에서 어부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도 고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느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원래 바다는 그 바다도 그렇고 모든 고기가 사는 곳이 육지 가까운 곳에 있지 깊은 바다는 잘 없습니다. 제가 바다에서 조금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물고기는 바다, 특별히 그 갈릴리 바다의 경우에는 아주 물이 맑은 바다입니다. 그래서, 물이 맑고 그래서 저녁에 그물을 치죠. 대개 보면 물고기를 잡을 때에 저녁에 이제 나갑니다. 그리고 또 너무 물이 맑아서 그물을 치면 낮에는 되지 않습니다. 또 얕은 데만 물가로 먹이를 찾아서 고기들이 나오지 깊은 데는, 더군다나 낮에는 잘 없죠.

그런데 베드로가 너무 잘 알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그러니까, 저는 구지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밥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다고 했는데, 여기에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한 말속에 뼈있는 말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깊은 바다에 지금 낮에 그물을 내려도 안될 줄 알지만, 자기의 경험이거든요. 그런 어떤 내용이 그 속에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내가 말씀 따라서 해 보겠습니다!' 그런 배경입니다. 여기에 뭐 '아! 예, 고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리겠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말씀을 따라서 그물을 내렸더니만 고기가 얼마나 잡혔느냐하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더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이와 비슷한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은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난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는 끝났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이 다 헛일이다! 그러면서 또 실수를 범하는데, 베드로가 '나는 고향에 가서 고기나 잡으련다!' 그러니까, 다른 제자들도 뭐라고 그럽니까? '우리도 같이 갈련다! 할 것도 없고 이제 고기나 잡아먹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서 고향으로 전부 내려갔습니다. 갈릴리 바다죠.

내려갔을 때에 예수께서 또 그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것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또 한 마리도 못 잡았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오른편에 내려라!' 그때는 '말씀에 의지해서' 이 말은 없어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두말하지 않고 어떻게 했느냐? 말씀을 따라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너무 고기가 많이 잡혀왔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서 뭘 느끼는가하면, 베드로 속에 그가 상당히 감정적인 것이 있고, 또 그 다음에 결단을 빨리 하고, 또 낙심도 잘하고 그런 베드로였지만, 그래서 항상 베드로가 어떤 면에서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행동할 때에, 즉흥적인 행동, 감정적인 행동, 그런 느낌을 가지고 행동했던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와 함께 거하면서, 쭉 그의 인생을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확실하게 붙잡았던 것이 뭐냐하면, '감정 가지고는 아니구나! 느낌가지고도 아니구나!' 그래서 뭘 붙잡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구나! 이것이 이루어지는구나!' 그러나 알게 모르게 베드로에게 이것이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오늘 길게 말씀을 못 드리고, 여러분들이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확실히 믿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를 향한 하나님은 내 느낌과 내 감정에 따라서 나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붙잡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때부터 하나님은 내 느낌과 내 감정과 상관없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축복과 은혜를 약속하셨고, 허락하셨다! 믿습니까? 이 사실이 내가 감정과 느낌에서 자꾸 흔들릴 것이 아니고, 이 사실이 확인되고 자리잡는 그때부터 우리에게는 사실적인 축복과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게 성경의 약속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때에 따라서 특별히 요즘 경제라든가 사회문제, 우리가 말세를 당해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 또 특별히 우리나라의 정치, 행정문제! 이런 문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하면, '큰일났다! 이래서 되겠느냐?' 이런 말을 많이 듣거든요. 그래서 저는 신문을 이렇게 읽으면서, '정치가 이대로 얼마나 가겠느냐?' 하는 이런 어떤 그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는 정도가 아니고 많이 있어요. 그러나 그때마다 항상 내 마음에 뭘 붙잡느냐하면, 정치가 이상해져 가지고, 뭔가 이 막말로 해 자기고 나라가 엎어지든 자빠지든지,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국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왜? '전도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배경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가정에 깊은 여러 가지 모든 사건과 일들이 닥쳐 올 때에, 우리가 붙잡아야 될 것은, '이러다가 되겠나? 이러다가 우리가 일이 되겠느냐? 이러다가 내 생활이, 내 생애가 온전히 끝나겠느냐?' 이런 마음이 느껴질 때가 많이 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했느냐?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뭐라 그랬어요? '또 나를 믿으라!' 그리고, 마태복음 11장 28절 이후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뿐 아닙니다. '이런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지 너희가 구할 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있어야 될 것을 먼저 하나님이 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뭐라 그랬어요? '모든 것을 주신다!' 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이 염려와 이 사건 속에 지금 있어도 그건 내 느낌이지, 하나님은 나를 여러분을 그렇게 버려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이에요.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 내가 이래가지고 하나님 앞에 뭘 받겠느냐? 받아합시다. "의심해도 역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의심하는 하나님의 자녀! 늘 염려하는 하나님의 자녀! 늘 걱정하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가지 여러분 확실히 붙잡을 것은, 베드로처럼 우리가 감정 따라서 너무 좋은 일이 생겨서, 막 '하나님 내 생애를 걸고, 하나님 앞에 내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안 해도 좋습니다. 아니면 어떤 문제와 어떤 사건 때문에, '하나님, 큰일났습니다! 내가 이래가지고 뭐가 되겠습니까! 난 끝났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여러분 확실히 붙잡아야 될 것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약속을 붙잡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지, 느낌과 내 감정에 따라서 이리저리 일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야 됩니다.

이 말세에, 더군다나 어려운 이 시대에, 더더군다나 뭔가 이 건축하는 과정 속에서 뭘 느끼느냐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 교인들이, '아 이 경기가 어려운데...' 경기가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역사! 우리는 그 속에 있을 때에 뭐에 의해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을 따라서 축복하시지, 말씀밖에 여러분 기분과 느낌을 따라서 복 주시고,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 이 말씀 붙잡고 한 주간 기도할 제목입니다. 여러분 먼저 마음이 왔다갔다 변하지 않토록 말씀에 딱 붙들려서 언약 속에, 확인 속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가 흔히 자꾸만 낙심하고, 또 이렇게 어려운, 조금만 문제 있으면 이상한 마음을 갖고 흔들리게 됩니다. 받아합시다. "나는 흔들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요, 약속이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지해서" 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말씀을 확실히 붙잡고 베드로가 처음 시작했을 때에, 그 처음에 역사 속에서 말씀에 의지해서 베드로가 따랐더니 축복 받았는데, 중간에 오늘 마지막 부분에 와서 너무 자기 감정과 느낌대로, '나는 죽을지언정 안 하겠다!'고 말씀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거기서 베드로의 실패가 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주님께서 살아나신 십자가 이후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 두말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다시 한번 베드로는 신앙을 확인하고, 그의 인생을 복된 영광스러운 역사로 마지막까지 살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말씀에 의지한 신앙에 고백이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축복된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야 합니다.
(1) 가룟 유다는 사람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습니다.
(2) 그러나 그의 방향이 예수 그리스도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비참한 마지막을 맞게 되었습니다.
(3)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후 너무나 괴로워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4) 예수님께서도 가룟 유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축복된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야 합니다.
(6) 축복된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방향을 맞추지 않으면 비참하게 됩니다.

2. 베드로는 감정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1) 베드로도 가룟 유다와 별로 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2) 베드로도 예수님을 맹세하며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3) 그러나 베드로는 순교로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축복된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4) 베드로는 어떠했기에 끝까지 축복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까?
(5) 스가랴의 말씀을 예언으로 적용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때 모든 사람들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그 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 베드로는 진실한 마음으로 죽을찌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9) 다른 제자들도 진실로 베드로의 고백을 함께 했습니다.

3. 감정적인 고백이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1) 말씀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지 나의 느낌이나 결단이나 욕망이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2) 사람들은 말씀대로의 성취보다도 자신의 느낌과 감정과 생각의 고백에 훨씬 더 깊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느낌과 감정과 생각으로 한 신앙 고백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성취됩니다.
(4) 베드로는 자신의 느낌과 감정으로 고백한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가를 체험했습니다.
(5)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습니다.
(6)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7) 교회는 구원받고 축복받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곳입니다.
(8) 베드로가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적인 고백뿐만 아니라, 말씀을 따른 그의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1) 베드로는 감정에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서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눅5:4).
(2) 갈릴리 바다는 낮에 깊은 물에서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없었습니다.
(3)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낮에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한 말에는 위대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5)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6)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에 고향으로 가서 고기나 잡겠다고 했습니다.
(7)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 갔을 때 예수님이 이미 그곳에 계셨습니다.
(8) 그 때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9) 베드로에게는 감정적인 것이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붙잡았습니다.

5. 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1) 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를 향한 하나님은 나의 느낌과 감정에 따라 나를 버리거나 붙잡지 않으십니다.
(3) 하나님은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를 영원토록 붙잡으십니다.
(4)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확신을 가질 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5) 현재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염려와 걱정이 들 수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6)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약속을 지키십니다.
(7) 내가 아무리 의심하고 염려해도, 나는 여전히 (의심하고 염려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8)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9) 하나님은 말씀하신 약속에 따라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6.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갑시다.
(1)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2) 비록 내가 흔들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3)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을 확실히 붙잡고 나아갑시다.
(4) 베드로가 잠시 감정에 싸여 약속을 놓쳤지만,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축복된 생애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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