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1)
2004-05-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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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막 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막 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본문 말씀에서 16절에 보면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막 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랬습니다. 나를 따르라! 하나님의 소원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임마누엘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함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셔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갈 수는 없죠. 우리 수단과 우리 방법으로, 철학으로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을 복음이라고 그랬습니다. 복음! 도저히 이건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이것을 뭐라 그랬어요? 종교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종교 생활하는 사람들이 훨씬 신앙생활 잘하는 것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력하고 애를 써도 될 수 없어요. 역사 속에서 철학으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고, 문학으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고, 어떤 방법으로도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속에 오셨습니다. 그게 가장 크게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이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사람 속에 오셨다!" 이걸 뭐라고요? 복음이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 속에 오셨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래서 이 역사가 구체적으로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이것을 우리가 크리스마스라고 그럽니다. 그 다음에 이것이 여러분과 제게 개인적으로 이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오순절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순절 성령으로 말씀에 보면 사도행전 2장 이후에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하셨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로 예배를 드릴 때,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누구에게? 전체 적으로도 중요하지만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내주라 그러죠. 개인적으로 성령이 내주 하셨다! 구약에는 성령이 오셨다가 또 가실 수도 있고 그렇지만, 신약에는 한번 오셨다! 그러면 절대로 어떻게 한다 구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겠다! 절대로 혼자 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긍정하고, 또 믿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얼마나 인정하고 믿느냐에 따라서 뭐가 나옵니까? 힘이 나간다! 그랬습니다. 힘이 나가고 여기에 능력이 나가고, 얼마나 현실적으로 사실적으로 믿느냐? 믿는 만큼 여기에 우리가 사실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제가 하나님을 떠난 것 같고,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중에도 절대로 하나님 떠났다! 없다! 그건 내 감정이지,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혼자 있다 할 때에 혼자가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 있어요?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계신다!' 이 사실을 믿는 만큼 문제는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바울처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다 하나님의 평안과 응답이 임하실 것을 약속한 것이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뭐부터? 마음과 생각에 먼저 임하고, 또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제일 먼저 오는 것이 뭡니까? 평화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고, 마음이 기쁘고, 또 마음이 평화롭고 감사한 마음이 생기죠.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하시는 증거 중에 증거가 되는 것이죠.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걸로 통해서 모든 일이 거기서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뭔가 내가 예수를 믿어도 불안하다! 그건 아직 믿음이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지식으로 믿고 있지만,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오신 사실이 인정이 안되고, 긍정이 안되어서 늘 혼자 있으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포증이 생기고, 무서움증이 생길 때도 혼자 있다는 생각이 오는 거지, 함께 계신다는 이것만 깨닫고 이해가 되면 공포, 두려움 나올게 없어요. 밤중에 너무 무서워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고, 뭔가 이 너무 공포증이 있는 것도 그건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 문제가 아니고 영적 문제가 벌써 와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장소와 어떤 자리에 있던지 뭐가 와 있어요? 내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된다! 이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셨다!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 성령께서 오순절 역사를 통해서 각 사람에게 임하셨다! 그러면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되느냐? 함께 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요구하는 것이 있어요. 찾아오셔서 그 다음부터는 함께 있는 방법이, 임마누엘의 역사를 누리는 방법이,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때부터 함께 하시는 그분을 어떻게 해야 된다 그랬습니까?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배짱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함께 하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따라만 가면 되요. 수천 마리의 양 무리들이 어떻게 한사람의 목자에 의해서 먹고 마시고 생존할 수 있느냐? 그것은 딱 한가지 법칙입니다. 따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따라갈 수 있는 기능이 뭐 여러 가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양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연구해 본 바는 없습니다 만은, 그냥 성경을 통해서 그저 많이 나왔고, 주경 학자들의 기록에 의한다면 양은 지독한 근시안이랍니다. 멀리도 못보고, 바로 거의 앞의 가까운 곳밖에 못 본다 그럽니다. 그래서 양은 그렇게 많은 떼들이 한꺼번에 쭉 떼를 지어서 뭔가 목자의 인도를 받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뭐냐하면, 바로 앞에 가는 양의 뒷 발꿈치만 보고 따라 간데요. 그러니까 양은 흩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앞의 한 놈만 잘못가면, 뒤에는 전부 그대로 다 갑니다. 하나 죽으면 다 죽어 버리는 겁니다. 그것이 양의 특성이래요. 그러니까 목자가 잘 인도하면 그냥 그 양은 전혀 의심 없이 단순하게 그렇게 따라 가 버립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어려운 것이 없다! 바로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오셨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하시느냐? 나를 따라오너라! 간단한 겁니다. 따라만 가면 되는 겁니다. 뭐 멀리 볼 것도 없고, 잘 볼 것도 없고, 뭐 할 것도 없고 말씀 따라서 꼬박꼬박 가면 돼요. 옆을 못 봐도 되고, 멀리 못 봐도 됩니다. 왜? 반드시 목자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이니까! 반드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게 행복과 축복을 약속하시고 인도하시니까! 앞만 보고 가면 돼요. 그러니 많이 살피고, 먼저 많은 선지식이 들어와 있는 게 문제라 안 그럽니까! 문제는 신앙생활에 다른 것이 들어와 있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무식한 것이 났다! 안 그럽니까! 알량한 지식가지고 딴 생각하다가 곁길로 빠지는 것! 그건 신앙상태에서 문제가 되는 거죠.

다만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셨습니다. 그때부터 나와 함께 하실 때에 함께 하는 증거로, 함께 하는 역사로 뭡니까? 따라만 가면 된다! 나를 따르라! 그렇게 약속하신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3장 14절에 보면 '열둘을 먼저 택하시고' 그러면서 먼저 뭐라고 하느냐?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그 다음에 그에 따라서 '보내사 전도도 하시고 귀신도 쫓아내게 하시고...'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함께 있는데서, 그 다음부터는 함께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따라가는 길에, 주님이 준비하시는 역사가 전도와 능력과 권세로 인도하시는 것을 약속해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먼저 우리가 신앙생활에 자꾸 임마누엘 하라! 만나면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교회도 걸핏하면 문화가 되어 가지고, '임마누엘교회!' 어디 임마누엘, 어디 임마누엘... 임마누엘 참 좋은데, 임마누엘을 입으로는 많이 하는데, 따라가지는 않아요. 맨 날 등은 돌리고 임마누엘 그러고, 그러니까 이것이 제일 답답한 문제죠.

그래서 오늘 조금 생각하고 싶은 것은, 오늘 렘넌트! 총신 키우는 일에 우리가 동참한다! 또 그 다음 우리가 요즘 계속해서 말씀하는 것, 렘넌트 공동체! 그래서 우리는 렘넌트 키워야 된다! 쉽게 말해서 아이 때부터 문화를 바꾸어야 된다! 치유해야 된다! 그 이야기입니다. 왜, 아이들 때부터냐? 그래야 이 문화가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문화로 끌고 가지 아니하면,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문화로 바꾸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태가 우리 체질이, 생각들이 개선되지 아니하면 이건 신앙생활이 옳게 안되도록 되어있어요. 그래서 그런 문제를 조금 짚어 보고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지금 문화, 문화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치유가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교회에서 치유가 상당히 많은 경우, 치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 치유를 말하면서 그렇게 치유에 대한 귀중성을 잘 모르더라 구요.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체질이 안 된 것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치유입니다. 체질이 안된 것을 왜 그렇게 체질이 안 되느냐? 여러분과 제게는 근본문제로 통해서 이게 비뚤어 졌거든요. 체질도 근본문제로 통해서, 이 비뚤어 진 것이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문제 아닙니까! 그게 뭐냐하면, 사단으로 통해서 불순종의 체질로 바꾸어 졌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모든 문화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문화로 자꾸 발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순종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요. 말세가 될수록 이게 점점 더 어렵습니다. 사단이 지금도 교묘하게 그런 문화로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 해 오면서 이 불순종의 문화 속에 있는 우리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지식으로 알지만, 이게 불순종의 문화와 불순종의 체질이 치유가 안되니까, 순종하고 싶어도 이게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알고 내가 순종하고 싶어도 그 체질을 통해서 누가 또 다시 방해를 하느냐? 흑암 세력이 자꾸 와서 방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 1절에서 20절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인간문화는 하나님 불순종하는 문화다!" 그게 지금 성경에서 쭉 내려오는 문화거든요. 불순종하는 문화 속에서 나오는 것이, 불신자의 망하는 역사가 나오거든요. '불신자의 6가지 상태는 불신자의 6가지 망하는 순서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당장 무슨 체질이 치유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망하는 문화 속에 망하는 체질로 지금 길들여져 있는 겁니다. 이것이 치유가 안되니까, 내가 알고 있기는 알고 있지만 그 순간, 순간 흑암의 세력이 통로로 들어온다는 것을 알죠. 그러니까 우리가 성공하고 싶고, 또 축복을 받고 싶어도 다른 결과들이 나오는 사실들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망하는 문화다! 이게 당장 영적 문제 속에서 우상문제, 우상문화가 전부 거기에 속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우리 속에 나오는 것이 우상문화, 그 다음에 불 신앙의 여러 가지 문화들! 이것도 쭉 보면 그 나라나 시대, 그 연령층에 따라서 많이 다르더라 구요. 예를 든다 그러면, 제가 지금도 밖에 나가면 옛날 어른들은 노인이 다 되었는데도 목사님을 상당히 존경해서, 높여서 그런 게 아니라 체질적으로 목사님 앞에서는 것이 부끄럽고, 목사님 앞에서는 것이 두렵고 뭔가 이래요. 그래서 지금도 제가 나가면 노인 분들은 남자 분들은 그래도 덜한데, 여자 분들은, 어떤 분들은 숨어버려요. 인사하는 것도, 서는 것도 부끄러워해요.

그런데 그것이 뭐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뭔가 중요한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사상이 깔려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더욱 강합니다. 그래서 남자 앞에서는 것도 그렇지만, 목사님 앞에서는 것이 두렵다! 그런 게 안 있습니까! 어른들은 그런데 일단 목사님이 말씀한마디하면, 마음에 체질적으로, '순종해야 된다!' 이게 깔려있어요.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뭔가 메시지를 전하면, 목사님이 말씀하면, '그건 목사님 말씀인데 들어야지!'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일수록 이게 희미해 져요. 자기 마음과 생각이 안 맞으면 절대로 안 들어요. 그래서 인사도 어른들은 부끄러워하면서 인사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렇게 부끄럽다! 두려워한다! 그런 게 없어요. 뭐 두려워한다 이런 것은 어떤 면에서 다른 의미가 아니고, 인사를 해도 물론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으나, 거의 고개도 많이 숙이는 것이 아니고, 안녕하십니까! 고개만 까딱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는 어른들에게 목사가 한마디 딱 하면, 설교 말씀 중에도 한마디하면, '목사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들어야 된다!' 이런 의식보다도 평가를 해 가지고, '옳다 싶으면 듣고, 안 그러면 안 듣는다!' 이런 생각입니다.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서 문화의 배경이라고 붙인 것은 뭐냐하면, 연세가 많은 분들은 유교문화권이라는, '무조건 순종해야 된다!' 그 다음에 '권위에 따라가야 된다!' 이런 문화가 몸에 베어있어요. '어른을 존경해야 한다!' 이런 게 베여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그런 문화와 또 차이가 많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어느 것이 어려우냐? 제가 쭉 겪어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른들이 훨씬 신앙생활하기가 쉽습니다. 체질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내가 그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게 설득시키기까지, 나도나를 설득시켜야 돼요. 그래야 따라갈 수 있으니까! 그 기간이 얼마나 긴지 몰라요. 어려워요. 힘듭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 제가 그저께 만나 가지고, '우리 젊은 사람들이 앞으로 목회를 하려고 하면...' 뭔가 목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와 가지고 우리 젊은 목사님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물론 다 중요한 사건이지만,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부탁하던 데로 갑절의 영감을 요구한 것이 그냥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진짜 앞으로는 젊은 세대로 내려갈 수록, 젊은 목사일수록 어른들보다 갑절에 은혜를 안 받으면 목회하기 힘들다! 인간의 말로 설득시켜서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니까 어떤 젊은 목사님이 그렇다면서, 뭐 강단꾸미는 이런 일을 하다가 의자를 어디에 놓고 하는데, 목사님이 무심히 그냥 지나가는 생각으로, '이건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러니까 어른들은 뭐라고 하느냐하면,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했을 때는 반드시 의미를 갖고 있을 것 아니냐! 그대로 하자!' 이러고, 젊은 사람들은 또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그렇게 뭐 하려고 그러느냐?' 당장 의견이 상반 되더래요. 그런데 그 말이 재미있잖아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했을 때는 의미를 갖고 있을게 아니냐!' 이건 어른들이 한 말이고,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 생각에 뭐 하려고 그러느냐 아직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반응이 나오더랍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참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맞는 게 아니라 그건 문화의 차이입니다. 앞으로 영권 없으면 해 나갈 수 없어요. 이게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하나 뿐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이런 문화 차이에서는 개인과 세대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에서도 똑같은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문, 가풍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 같지만, 이게 후손들에게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 없다하는 무서운 하나의 문화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가정에서 아무렇게나 생각하지만, 내가 한다는 어떤 그 생각이나, 어떤 그 체질들이 바로 문화로 자식들에게, 이걸 뭐 유전이라 그러면서 말하지만 이게 전달이 되더라 구요. 그때로 또 따라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가만히 보세요. 아이들 하는 것 보면 꼭 지아비 닮았습니다. 뭐 나무랄 필요가 없어요. 부모가 뭐 자식이 이러니 저러니 할 필요 없어요. 문화를 바꾼다고 할 때에 영권이 아니면 힘든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권이라는 것이 도대체 뭡니까? 묻더라 구요. 무조건 기도한다는 것도 힘들고, '영권이 뭡니까?' 늘 영권이라고 하는데, '영권이 뭡니까?' 왜 기도하라고 그러면 뭐로 빠지느냐 하면, 옛날에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도 빠지는데, 그런데 그것도 연결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문제, 여러 가지 문제로 자꾸 힘들게 되거든요. 왜 자꾸 세대가 내려가니까 부모 생각보다도 자식 생각에 문화의 차이가 있으니까! 이게 안 통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빗나가는 학생들이 있고 고민을 하는데, 할 것 없습니다. 다른 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간단한 예를 들었습니다. 왜? 그것도 연결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만 아니거든요. 제가 전도사시절의 이야기를 이미 했습니다 만은, 또 이해가 될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어떤 시골에 가니까 연세가 84세가 되는 장로님이 전도사에게 '님'도 잘 안 붙이고 제직회에도 안 세우고, 하기야 신학교에 다닐 때니까 그래요. 그래서 이걸 말로 싸워서는 될 일도 아니고 어떻게 하느냐... 왜? 교역자가 제직회를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은 행정적인 인도가 안 되거든요. 그러면 교역자가 그 장로님으로부터 '님'자가 안 붙어진다 그러면 그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벌써 정신적으로 지도가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84세 된 연세가 많은 노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마음으로 생각하다가 이건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가 겨울인데, 작정을 하고는 금식을 시작했어요. 겨울 방학 때에 금식을 시작했는데, 열흘을 금식을 하고 나서는 제직들을 다 불렀습니다. 다 불러 가지고 장로님이 한 분 뿐이셨는데 기도를 시켰습니다. 기도를 시키니까 이 장로님이 막 기도하시다가 통곡을 하시면서, "하나님 이 죄인은 나이 80이 넘어도 주를 위해서 한끼도 굶어본 적이 없는데 이 젊은 전도사가 무슨 죄가 있어 가지고 (죄가 있어서 굶는 줄 아는 모양이에요.)이렇게 굶느냐고..." 그러고는 통곡을 하더라 구요. 그때 같이 좁은 방에 모여있던 제직원들이 같이 참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는 그냥 헤어졌어요.

그런데 신기하죠. 그 다음달부터 제직회에 사회로 세우더라 구요. 그 다음부터 전도사라고 하던 사람이 전도사님이라고 '님'자가 붙어요. 그 다음에 학교 갔다오면 어김없이 앞 연못에서 낚시해온 자라탕을 만들어 가지고 준비해 놓고 계시고... 제가 뭘 대접받는다는 이 문제가 아닙니다. 뭔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 영권 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자녀들에게, 그 다음에 우리 후손들에게, 그 다음에 세대차이가 난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문제 가지고 막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서 보세요. 영권 입니다. 말을 '듣는다, 안 듣는다!'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뭐가 바꾸어지느냐? 자연적으로 그 가정과 가문에 뭔가 신앙의 체질이 바꾸어 져요. 신앙의 체질이 바뀌어진다는 것을, 나는 '신앙에 문화가 바꾸어진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런데 저는 그렇게 말씀하고 싶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체질이 바뀌어 지고...' 여러분 체질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늘 요즘 무시 기도라는 체질로 자꾸 이야기합니다. 기도를 한다, 안 한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기도가 계속 된다는 체질 자체가 여기에 모든 것이 다 붙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 영권이 붙게 돼요.

우리가 '주님을 바라본다! 주님이 나에게 임하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내게 임하셨을 때에,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체질이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따르라!' 여기에 모든 축복과 역사와 능력이 함께 따라오는 것인데, 이것이 왜 안 되느냐? 안 되는 것이 우리의 문화 자체가 안 되어 있어요. 말하자면 체질 자체가 안 되는 겁니다. 이걸 치료하는 것을 치유라 붙이고 싶어요. 이번에 우리교회에서 마침 치유 사역자를 위한 훈련을 한다고 그러는데, 여러분 사역자들만 치유 받아보세요. 그래서 우리 훈련받는다 게 전부 이런 겁니다. 뭐냐하면 문화 바꾸는 겁니다.

제가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임마누엘이 최고 어려운 것이다! 이 임마누엘 하는 역사를 위해서 한 인간을 망하게도 하고, 고통 속에 빠지게도 하고, 어려움 속에 빠지게 되는 거죠. 그건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것이거든요. 왜? 워낙 임마누엘이 안되니까! 여러분들은 뭐냐하면 하나님 따라가는 체질이 워낙 안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여러 가지 우리가 훈련 속에 참여하고, 훈련 속에 있으면서 뭐냐? 중요한 것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문화로 바꾸어지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쉽습니다. 왜? 체질이 그렇게 되면 어려운 것이 아니죠. 이것이 어른이 되어 버리면, 굳어져 가지고 잘 안되니까! 언제부터? 어릴 때부터! 그 다음에 문화로, 불신앙의 문화를 완전히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문화로 바꾸어나가자! 이것이 안되면 신앙생활 하는 일에 너무 굴곡이 많게 됩니다. 조금 가다가 빗나가고, 조금 가다가 빗나가고... 이것이 안되니 그런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어렵게 되고 고통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지금 신앙생활 속에서 간단한 것 같아도 왜 지속이 중요하고 왜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하냐? 그런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은 한번 뭘 했다고, 우상 섬기는 것처럼 한번 빌었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늘 저는 그 개업예배를 드릴 때도 한번예배 드렸다고 잘되고, 못 되고 가 아니다! 일단 예배를 시작했느냐! 지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뭔가 이런 배경에서 그 십일조든지, 선교헌금이든지, 한번 지속해서 해보세요. 성경에 말씀을 따라서,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조용히 나도 모르게 언젠가 열려지는 역사가 나옵니다. 한번, 두 번 했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특별히 신앙생활에는...

그래서 어제 상당히 젊은 우리 목사님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전에는 도저히 상상도 못했다고 그래요. 십일조, 십 이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쭉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 교회에서 부 목사로 있다가 훈련받고 나간 분들은 나가면서 여기서 배운 데로 하니까, 나가자마자! 물론 우리 교역자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 같더라 구요.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한테 구체적으로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다 그래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십 이조는 선교헌금 하고, 십 삼조는 주일헌금하고, 그렇게 한다 그래요. 그러면서 뭐냐하면, '돈을 어떻게 썼다!' 그러면서 뭐 십일조 떼고, 십 이조 떼고, 그 나머지는 돈 계산에 넣지 말아야지 그것까지 넣어 가지고 계산하면 되냐! 그러고 그건 아예 계산에 넣지 말아야 돼요. 왜? 가자마자 떼 놓아야 하니까!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 일이 처음에는 굉장히 어렵게 들리더래요. 그러니까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우리 교회 있다가 개척하신 분이, '그게 뭐 어렵냐고, 가면서부터 시작했다고...' 그런데 처음 가니까 처음에는 얼마 나오는데, 지금은 몇 배가 나온데요. 선교헌금도 그러면서 얼마든지 하고도 남는다고 그래요. 그게 되더냐? 그러데요. '되고 말고 가 어디 있냐고 가자마자 당장 시작했다고...' 그런데 대게 뭐냐하면 이걸 이야기하면 헌금에 시험 들까 싶어서 말을 못하겠더래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신기하더랍니다. 왜? 되더라는 겁니다. 되더라는 그 말은 돈을 내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이 뭡니까? 생명이 있는 자는 말씀을 따라 가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복음으로 생명이 들어오게 되면, 순종하고 따라가는 문화가 생겨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처음에 십일조 내는 것만 해도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십일조 내는 것도 어려운데 여기다가 십 이조를 내라고 하니까! 이건 더 어려운 겁니다. 여기다가 십 삼조까지 내라고 하니까! 이건 뒤로 나자빠지는 겁니다. 그런데 생명이 있으면 따라가는 겁니다. 왜? 그런 문화가 되어있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따라하는 순간순간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간증들을 쭉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하면서, '나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요. 중요한 것은, 우리교회에서 쭉 자랐던 사람들은 나가서 그게 몸에 베어 있으니까, '내가 그러니까 한다!' 이런 식으로 쉬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렇게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래요. 그렇게 어려운데, 결단을 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 체험이 되더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그저 늘 듣는 말이라서, '목사님은 응당히 하는구나!' 그것하고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에, 뭔가 만들어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놓고, 인간을 하나님의 인격으로 만들어놓고, 여기다가 모든 축복을 준 것이 창세기 1장27절, 28절 아닙니까!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정복하고, 다스리고, 승리하라고 그렇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안 만들어 놓고, 이런 그릇을 안 만들어 가지고는 주지 못하죠. 줘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이게 하나님의 원리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우리가 '후대를 살린다! 렘넌트를 살린다!'고 할 때에 우리 자신들이 후대와 렘넌트를 살릴 수 있는 의식구조가 되어야 됩니다. 말하자면 그 후대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교회에 들어오면, '후대 살린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겁니다. 우리교회 들어오면, '선교헌금은 응당히 해야 된다!' 이것과 같이 응당히 마음속에 그렇게 생각이 되어버리면 모든 문제는 거기서 수용이 됩니다. 그것이 안되면 범사에 뭔가 이상하게 되죠.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특별히 염려하는 것이 그것이거든요. 지금 국가적으로 뭐가 문제냐 하면, 무조건 맹종한다는 이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순종적인 체질이 되느냐? 반항적인 체질이 되느냐? 전체 분위기가 달라져버립니다. 지금 오늘 세대가 뭐냐? 반항체질이 문화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데모 세대'라고 안 그럽니까! 그러니 이게 어려운 것이 범사에 모든 것에 뭔가 한마디 딱 하면, 권위에 대해서 이 순종적인 체질이 아니고, 반항적인 체질로 무조건 반대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 다음에 걸핏하면 이게 나오거든요. 어디까지 그러느냐? 국가에까지 이게 나오더라 구요.

여러분 이것이 좋다, 나쁘다 이전에 뭐가 우려가 되느냐 하면, 반항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 반항 체질이 되고, 이 반항하게 되는 모든 배경에는 분명히 그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이지! 그래서 어떤 국가적인 권위와 국가적인 상황에서도 뭔가 자꾸 반항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옳든, 아니든 문화적으로 병든 문화입니다. 이런 시대에 똑같이 어디로 들어왔느냐? 교회까지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잘 살피세요. 우리가 영권 회복 안 하면 교회 안에도 엄청난 사단의 놀이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문제를 광고를 통해서나 메시지를 통해서, 내가 나도 모르게 문화적으로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문화로 내 마음에 베여있으면, 나도 모르게 말씀을 듣는 동안에 쉽게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안되면 듣는 순간에 뭐든지 꼬깃꼬깃 분석을 합니다. '저길 따라가야 되나? 안 따라가야 되나?' 내 자신에게 설명하려 하다가 다 놓쳐버려요. 이게 잘 안돼요. 그러면 그게 설명이 잘 안 되느냐? 범사에 체질적으로 따라가도록 반항적으로 훈련이 되어있는데, 이게 문화가 되어 있는데, 이런 배경에서 말씀을 따라간다! 너무 어렵죠.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말씀을 붙잡게 될 때에, 딱 기도제목 붙잡고 단순히 기도할 수 있는 배경이 뭐냐? 믿음이 와야 하는데, 이게 아니면 자꾸 부정하는 믿음으로, 부정하는 체질로, 이게 너무 어렵다기보다도 신앙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걸 사단이 안 놓치거든요.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그걸로 다 들어오게 되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날 말세에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물론이고 교회적으로도 앞으로 점점 교회가 커지고 성장해 가면서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길은, 근본 창세기 3장이 해결 안 되면, '주님을 따라간다! 주님이 오셨지만 따라간다!' 이게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따라간다!' 이를 위해서 뭐냐? 계속해서 우리가 24시간 기도! 뭐든지 생기면 기도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이게 따라와야 합니다. 그래야 뭐가 되느냐? 여러분도 저도 모르게 영적인 이 반항의 세력과 역사들을 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오는 것이 여러분과 제게 평화와 안식이 오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자신이 갈등하다가 시간 다 보냅니다. 순종이라는 것이 따라 올 수가 없어요. 그리고 '복음이다! 말씀이다!' 그럴 때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는, 권위에 순종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문화적인, 체질적인 치유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됩니다. 이게 안되면 가정과 가문을, 조용히 사단은 그걸 통해서 망가뜨려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 사실들을 오늘 우리가 구체적으로 좀 이해를 하셔야 되죠.

특별히 이 대구라는 도성이 좀 이상한 도성이잖아요. 늘 듣는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있는 사람이 대구오면 한 2년, 3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합니다. 다른 교회는 예를 안 들겠습니다. 우리교회입니다. 한 적어도 2년 이상이 되어야 겨우 적응을 합니다. 왜? 안 받아 주려고 그래요. 자기들끼리만 모여 가지고 외지에서 오면 안 받아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되었으니 천만 다행이죠. 안 그러면 이게 힘듭니다. 다른 교회에서도 새 교인이 들어오면 금방 이게 융화가 안돼요. 기존 교인들끼리 모여 가지고, 안되면 나중에 뭐냐? 점점 이 골이 깊어지면 늦게 오는 사람과 처음 온 사람들끼리 갈라지기까지 합니다.

대구라는 곳이 참 이상합니다. 잘 용납을 안하고 용서를 안 합니다. 이 대구라는 곳이 특별히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남자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남 칭찬 안 합니다. 그리고 뭘 들으면 남 칭찬보다도 일단 다른 사람이 칭찬하면, '저 사람 잘못하는 것이 뭐냐?' 그것부터 먼저 생각해 가지고, 까 내리려고 그러지! 이게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도 우리 집에 음식 잘한다, 못한다는 소리를 잘 안 했거든요. 그 다음에 칭찬은 물론 안 하죠. 좋은 점이 있어도 칭찬 잘 안 하죠. 그런데 서울에 가면 달라요. 어떠냐 하면, 구역질 날 정도로 높이더라 구요. 그게 왜냐? 내가 체질이 안되어 있으니까, 남을 높이면 괜히 구역질이 나려고 그래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을 칭찬은 절대로 안하고, 잘못한 것만 냅다 고함을 지르고, 쥐어박고 이러니 더 빗나가는 것이죠. 대구는 빗나가면 확실히 빗나가고 나갔다하면 잘 들어오지도 않아요.

우리의 앞으로 세대에 점점 우리 자신부터 영권 회복이 필요합니다. 영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체질적으로 우리가 순종적인 문화, 특별히 말씀에 순종하려는 문화! 이게 이상하게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말씀에 순종은 더 안 하려고 그래요. 체질적으로 어떻게 교회가 교육을 일부러 하는 것도 아닌데, 하여튼 이상해요. 팀 사역하는지도 몰라요. 처음에 믿으면 순종하려고 그러는데, 조금만 시간이 가면... 그러니 제직원도 3년까지는 그런데로 괜찮다가 3년만 지나면 이상해집니다. 특별히 대구가 더합니다. 그게 팔공산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대구에 있는 여러분과 제가 더 영권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오늘 '나를 따라 오너라!' 그래서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뭔가 신앙을 남긴다! 그 보다도 내 후손들에게 문화를 바꾸어나가야 되겠다! 내가 내 자녀들에게 이 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되겠다! 그래서 뭔가 우리 교회에 들어오면 선교라는 부분은 좀 되어왔는데, 근간에 선교보다 다른데 좀 많이 쓰고 했습니다 만은, 우리교회에 들어오면 일꾼 살린다는, 그런 체질이 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송현 교회는 들어오면, '제자 살린다! 일꾼 살린다! 사람 살리는 교회다!' 이런 어떤 문화적인 체질치유가 되어져야 지속적으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 설 수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를 기르신 것이나, 그 다음에 엘리사나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귀히 여기시고, 불 말과 불 병거로 보호하신 이유가 뭡니까? 후대에 문화를 바꾸는 일에 쓰임 받았을 때에, 그들로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적인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직접적인 간섭을 해 주셨던 사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 받아합시다.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달리하신다!" 여러분 '주님을 따라가야 되겠다! 그리고 내 후손들을 살려야 되겠다!' 제가 이 말을 하면서도 체질적으로 안 되어 있어요.

우리가 지금 현재 '렘넌트, 렘넌트!' 말은 얼마나 합니까! 하지만 렘넌트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없어요. 지금현재 우리가 겨우 장학금 모으는 것! 그것도 산업선교에서 시작을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모여요. 그래서 이것도 다음 번부터는 나도 장학금 모으는데 내든지 해야겠다! 왜? 뭔가 생각을 돌려야지! 그래서 생각으로 따라가야지! 이게 안되면 모아지지를 않아요. 먼저 번에 장학금 열심히 산업선교회에서 고생해 가지고 500만원인가 600만원 모아서 얼마 안 남았지 싶어요. 그래봐야 뭐 50만원씩, 50만원씩 뭐 얼마 주겠습니까? 조금만 여러분들이 생각만 달리해도 달라져버립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여러분 총신에 우리가 아이를 키운다! 렘넌트 키운다! 별로 관심 없어요. 그리고 뭔가 거리가 멀어서, 덕평이 어딥니까? 안보이니까, 별로 관심이 없어요. 우리교회의 제자들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문화권을 바꿀 요원을 키워야 됩니다. 그래서 만원씩 한 달에 한번씩 후원회원을 만든다! 워낙 지금까지 그걸 안 해 놓으니까 별로 생각이 없어요. 아마 혹시 작정을 했다고 해도 거의 다 잊어버릴 겁니다. 돌아가면 잊어버리고 왜 그러냐하면, 체질이 너무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송현 교회 제자다! 렘넌트다! 구체적으로 이런 면에 있어서 말씀을 따라갈 수 있는, 뭔가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방향을 좀 붙들어야 되겠다! 그것이 그저 잠깐 지나가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 마음에 지속될 수 있는 체질치유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 중에 특별히 오늘 "나를 따르라!"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시면서 제일 먼저 주님이 축복하신 것이 뭡니까? 제자들을 키웠던 겁니다. 일꾼들을 키웠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일군 키운다! 제자 키운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래서 여러분들이 눈만 뜨면 일꾼 키우는데 투자할 수 있는 눈이 좀 열려야 되겠다! 우리가 훈련받는 문제도 훈련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뭔가 옆에서 도와주고 투자하고... 그래서 신학원, 선교사 훈련원! 일단 훈련을 받는 것과 안 받는 것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주님을 지속해서 따라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체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신학원 졸업생은 한 명씩 꼭 내 후계자를 세워놓고 나올 수 있도록...

오늘 다락방을 잠깐 이렇게 보면서 감사하게 늘어나는데, 한 500개, 600개 자꾸 늘어나더라 구요. 적어도 우리 수준에서 1,000개 이상 다락방이 나와야 됩니다. 동삼 제일교회에서 처음 시작할 때에, 조그마한 교회에서 벌써 1,000개가 얼마 안되어서 나왔었는데 이게 확산이 되어야 되죠. 그래가지고 뭔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 눈만 뜨면 뭐부터 해야 되느냐? 다락방! 하나님의 말씀운동! 그래서 거기서 내가 응답을 받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응답을 받게 하시는 이런 눈들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뭔가 기회만 있으면, '내가 이렇게 변화되었으니 저 사람도 그렇게 해야 되겠는데...' 이렇게 해서 서로 서로 제자 키우는 일에, 정말 사람 키우는 일에, 정말 사람 살리는 일에 전도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여기서 모든 것이 나오니까! 그렇게 하면 뭐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리하면" 뭐라 그랬습니까?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 오게 되어 있어요. 이걸 안 하고, 오는 것도 '왜, 안 오냐고...' 그러니까 힘드는 거죠.

그래서 오늘 길게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후대를 향한 체질, 내가 제자를 향한 체질, 제자를 키우는 체질, 이런 면에 주님이 그렇게 하셨고, 나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축복과 은혜에 원천이구나! 이것 잡고 하나님 앞에 한 주간 여러분들이 이런 눈을 가지고 주변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바라볼 때에, 주님께서 은혜로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정하는 만큼 힘이 생깁니다.
- 16절에서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시고, 17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함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야 합니다.
-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은 종교입니다.
-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이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며,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 이 신앙이 개인적으로 완성되는 사건이 오순절 때 일어났던 성령 임재의 사건입니다.
-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 내가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따라서 힘이 생깁니다.
- 내가 믿는 만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 하나님이 떠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나와 함께 계십니다.
- 그러므로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평화가 임합니다.
- 평화 속에서 모든 일들이 풀려집니다.
- 혼자라는 생각에서 공포와 두려움이 나오지, 함께 있음을 느낄 때는 평화를 누립니다.
-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개인적으로는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 나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단순하게 따라가면 됩니다.
- 함께 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 함께 하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 수천 마리의 양들이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은 목자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 양은 지독한 근시여서 바로 앞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 많은 떼가 목자의 인도를 받아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앞에 가는 양의 뒷발꿈치를 따르기 때문이랍니다.
- 양은 목자가 인도하면 의심없이 단순하게 따라갑니다.
-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단순하게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 옆을 보지 못해도, 멀리 보지 못해도, 말씀을 따라가면 됩니다.
-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이 반드시 좋은 풀밭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 막3:14에 보면, 열둘을 택하시고, 먼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 그 뒤에 전도와 능력과 권세가 뒤따랐습니다.
- 참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는 ‘임마누엘’을 입으로 말은 하지만, 따라가지는 않는 것입니다.

■ 후손과 렘넌트들을 위해 문화를 바꾸는 치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 아이들 때부터 문화를 바꾸고, 치유해야 합니다.
-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문화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치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체질로 바꾸어나가는 것이 치유입니다.
- 우리에게는 근본 문제 때문에 체질이 비틀어져 있기 때문에 치유가 쉽지 않습니다.
-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체질이 비틀어져 있습니다.
- 문화가 불순종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불순종의 문화 속에서 따라가는 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 인간 문화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문화입니다.
- 불순종하는 문화 속에서 불신자가 망하는 6가지 상태가 나옵니다.
- 성공하고 싶어도 실패하게 되는 우상 문화 속에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망하는 문화 속에 망하는 체질로 길들여져 있는 문제를 치유받아야 합니다.
- 어른들은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체질을 가지고 있으나, 젊은이들은 권위에 잘 순종하지 않는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 어른들은 따라가는 체질이나, 젊은이들은 설득으로 이해되는 부분만을 받아들이는 체질입니다.
-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문화 차이가 점점 더 커집니다.
- 영권이 아니고서는 불순종의 문화 속에서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자녀와 후손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 가정과 가문의 신앙의 문화가 바꾸어집니다.
- 성령이 임하시면 체질이 바꾸어집니다.
-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기도를 계속하는 체질에 영권이 생겨납니다.
-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따라가는 체질로 바꾸는 것이 치유입니다.
- 하나님을 따라가는 체질이 너무나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치유되어야 합니다.
- 이 일이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 계속해서 따라가기만 하면 따라가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 후대와 렘넌트를 살릴 수 있는 의식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 후대와 렘넌트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 말씀을 따르는 체질 변화로 영권을 가지고 후대와 렘넌트를 살립시다.
- 오늘날은 반항 체질이 문화가 되어 있습니다.
- 범사에 권위에 대해서 순종하지 않고 반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 반항하는 체질이 되는 배경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기 보다는 악령의 역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하나하나 따져보며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 설명하려고만 하면 갈등 속에서 지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체질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 이러한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과 교회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 체질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려는 문화가 이루어질수록 영권이 생겨납니다.
- 영권이 있어야 가정과 교회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달리하십니다.
- ‘주님을 따라가야 되겠다.’, ‘내 후손들을 살려야 되겠다.’라는 마음을 가집시다.
- 총신에서 공부하는 렘넌트를 키우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주님은 ‘나를 따라오너라’고 부르시고,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 우리도 일꾼 키우는 곳에 투자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주님을 지속해서 따라갈 수 있는 체질과 문화를 가질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합니다.
-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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