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2007-03-0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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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총신주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영상물로도 나갔습니다만, 가만히 보니 총신학생들에 대해서 기도가 별로 안 나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초임 이사장에 있을 때는 기도가 좀 나갔습니다만, 지금은 책임이 다 넘어갔다 싶어서인지 기도가 별로 안 나가요. 사실은 총신생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들이 진짜 세계 살릴 렘넌트입니다. 또 총신에서 교수 요원으로 파송한 자들을 위해 기도할 구체적인 홍보가 없었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기도부탁 드리는 것은 지금 아들 박세광 목사가 총신교수요원으로 파송되어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을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로 잡았습니다. 마6:30에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시며, 꾸지람도 하시고 확실한 축복의 메시지로 말씀하십니다. 6:31-32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두 살 난 아이가 "엄마, 내일 밥을 어떻게 먹어?"하면서 걱정하고 있으면 병원을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 살 난 아이는 완전히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부모에게 맡겨 버렸기에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밥이 없으면 부모가 해줄 것을 믿고 밥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르는 겁니다. 그런데 두 살 난 아이가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한다면 이는 정상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두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런 것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 이방인이라고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어떻게 살까? 어떻게 잘까? 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대로 채워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왜냐하면 있어야 될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이 더욱 정확하고 확실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하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진짜 믿어야 합니다. 정말 믿습니까? 정말 맞습니까? "하물며"라는 말은 앞의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강조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기도하시면서 응답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기도에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기도가 잘 안된다 하는 질문을 잘 안 해요. 그런 질문을 하면 이상해질까 싶어서 마음으로는 의문을 갖고 있지만 안합니다. 그러나 렘넌트들은 이런 질문을 이메일로 류목사님에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도응답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절대로 응답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렘넌트들은 아직 기도에 응답 받을 수준이 아니기에 기도응답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에 응답 없어도 조금만 기다리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기도응답의 중요한 길을 말씀드리며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누구에게 기도응답 하시느냐? 받아합시다. "구원 받은 자에게, 생명 받은 자에게" 하나님과 아버지의 관계가 되어져야 된다는 것을 예수님의 기도 속에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 제가 교회에서 기도를 가르칠 기회가 많지 않으나 기도에 관해 언급하면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로 기도의 서두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다 끝난 것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라는 소리가 잘 안 나오는가 봅니다.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기도는 아들이 아버지께 구하는 구원 받은 자의 기도이며 생명 얻은 자의 기도입니다. 확실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자관계가 아니면 응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아들에게는 적은 것을 구해도 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부모의 도리입니다. 요20:31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 얻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여러분이 부자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함께 하시는 누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막3:14에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모든 축복이 여기서부터 다 나갑니다. 그래서 함께 있다는 이 사실을 류목사님은 전부 기도로 연결했습니다. 함께 있는 순간이 어느 순간입니까? 바로 이 순간 말씀 듣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있습니다. 이것을 류목사님은 전부 기도로 인도를 받습니다. “주십시오.” 하는 기도보다도 더 큰 은혜가 하나님이 우리와 말씀으로 함께 있고, 공예배로, 정시예배로, 또 실제 예배 속에 함께 있는 이 축복이 기도라 합니다. 이것을 기도로 누리라 말씀했습니다.
창39:2에 보면 요셉에게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기도가 뭐 내 놓아라 하는 게 아닙니다.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면 형통케 되도록 됩니다.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지 욕심을 채우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에 함께 하는 것에 모든 축복이 있고 또 하나님의 역사 속에 여러분의 기도가 계속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의 특징도 이 입니다. 시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목자는 양과 늘 함께 있습니다. 다윗이 기록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방 이 말을 알아차렸습니다. 양과 목자 사이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군병들에게 쫓기는 최고의 어려움 속에서 이 시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섰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이며 형통케 하시는 역사가 여기서 나옵니다.
여러분과 제가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에 대해서 마6장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6:1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 다음에 또 구하는 것은 6:2에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래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6:4에 특별히 구제에 대해 더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그 다음에 5절에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에 대해 두 번이나 언급합니다. 그러면 응답하시는 기도는 생명관계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6:6에 한 번 더 말씀하시는 것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러분, 기도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이 공중기도입니다. 이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잘 하려고 적어 나온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원래 기도는 적어서 나와 읽는 기도는 아닙니다. 간단히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겁니다. 교인들 앞에 잘 한다, 못 한다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제가 공중기도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공중 기도 너무 오래하지 마세요. 한 2~3분. 왜? 오늘 이 시간에 꼭 하나님 앞에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나열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설교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라는 자체가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겁니다. 이게 오해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뭔가 잘 하려고 사람을 의식한다면 그건 잘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면 벌써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공중기도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혼자 하는 건 그래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데, 이 공중기도는 사람 앞에 서 있거든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서야하거든요. 이 기도에 승리한다면 다 된 겁니다.
또 공중기도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했사옵나이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진행형이 기도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계속합니다. 젊은 분들이 시제가 확실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전에 한 걸 두고 "기도했사옵나이다."하는데 참 듣기 싫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어냐 하면 함께 하심을 누리는 사실을 기도라고 합니다. 여기에 모든 것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생명관계를 모르고 우리는 딴 마음 갖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다입니다. 거기에 형통하심과 축복도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특별히 베드로를 통해 기도시간에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지속해서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기에 모든 역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의할 것이 육신적으로 기도하지 마십시오. 약4:3에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육신으로 구하는 건 잘못 구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은 육신적인 것이 참 많습니다. 지난번 핵심 때 "진짜 기도응답은 기도의 제목을 없애는 것"이라 했습니다. 기도원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는데 친구를 잠깐 만나서 무엇 때문에 기도원에 와서 금식하며 기도하느냐 물었더니 "요즘 내가 기도제목이 너무 많아서 기도의 제목을 없애려고 기도하러 왔다."고 했다 합니다. 이해가 좀 안 되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입니다. 이게 기도 중 기도입니다.
여기다 우리가 기도가 잘못되는 배경이 육신적으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뭘 내놓으라 하는 게 문제입니다. 기도 속에 육신적으로 꼭 필요한 것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에 감사하고 모든 기도의 초점을 여기에 두면 다 달라집니다.
요즘은 교회 와서 기도하면서 뭔가 기도의 제목이 자꾸 없어집니다. 제가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아들이 유학 가 있으니까 자연적으로 엎드리면 마음이 생각이 납니다. 전에는 이렇게 이렇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요즘은 어떻게 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목사가 되고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맡아주시기에 할 말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공부하는 것도 맡아주실 것이니까. 전에는 "다니엘의 몇 배의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했는데 이제는 다 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다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면 기도제목 없어지는 재미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동안 쓰임 받으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넘어갈 것은 제가 65세 때 그만둔다고 얼마나 고함지르고 공언을 했습니까? 올해가 65세 입니다. 그만둬야 될 게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당회에 사표를 냈습니다. 지난주에 그랬더니 당회에서 “65세에 사표를 내는 것은 무효라면서 다락방에서 허락하는 연세까지 하시면 됩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만장일치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결정한 걸 제가 굳이 안한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그래서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제가 굳이 안한다고 이 시기에 나가면 당회와 여러분과 다락방 내외에서 욕할 일입니다.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나갔냐?". 교회가 아직까지 여러 일도 많고, 빚도 많은데 이걸 다 후임에게 넘겨주고 빠져나갔다하면 그게 칭찬들을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실상 사표는 내어도 나갈 마음은 없었어요. 여러분이 저를 욕한 건데 그 일을 제가 뭣 하려 합니까? 그리고 제가 류목사님한테도 사실은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팔팔할 때가 요 때입니다. 마치고 내려가면 풀이 죽어 버립니다. 월, 수, 금에는 투석을 하느라 제가 전혀 일을 못합니다. 그 다음날은 또 힘이 좀 생기고. 그래서 메시지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솔직히 나갈 마음이 있어서 류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싶어 조용히 물었습니다. 여러 말씀이 있었지만 "박지온 목사는 다락방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못하면 가만히 있어도 좋습니다."하는 말씀에 할 말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다락방 연세가 얼마입니까? 힘이 있어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감당하고 쓰임 받을 때까지거든요. 저는 지금 생각으로는 70이상, 그보다 더 버틸까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데까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생명까지 드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설교가 다른 어느 시기보다 좀 색다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신적인 기도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이 사실을 누리십시오. 그게 기도라 했습니다. 정시기도 때, 무시기도 때, 그리고 메시지 듣는 동안에도 계속 누립니다. 테이프 가져가서 집에서 듣는 동안에도 누리는 겁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의 역사가 임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의 기도입니다. 행1:4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약속이 뭡니까? 성령 충만, 그 성령 충만이 뭡니까? 너와 함께 하겠다 하신 약속입니다. 마지막에 제자들을 앞에 놓고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들과 항상 함께 하시리라"입니다. 그래서 다락방에서는 주일날도 주일이고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전부 주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시면 다 여기에서 해결하게 됩니다.
행3:1에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기도하는 시간에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그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기적의 역사를 지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순간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누구의 역사가 나옵니까? 성령의 역사가 나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 아버지여 축복된 역사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오늘에 하나님의 쓰임 받는 손에 역사됨을 감사합니다. 주께서 저들 삶에 함께 하시고 주님이 친히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모두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1) 두 살 난 아이가 밥걱정을 하지 않듯이 성도는 의식주를 두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마6:30-32).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을 다 아시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3)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마6:33).
2. 기도응답에는 중요한 길이 있습니다.
1)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누구에게 기도응답 하시는가?
① 구원 받은 자, 생명 받은 자에게
② 부자관계에 있는 자에게(요20:31)
3)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① 제자들을 불러 함께 있으심(막3:14)
②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가 형통케 자가 됨(창39:2)
③ 다윗의 기도의 특징도 임(시23편)
3. 잘못된 기도가 무엇인지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1) 응답이 없는 기도는?
① 보이려고 하는 기도(마6:1)
② 외식하는 기도(마6:2)
2) 응답하시는 기도는 생명관계의 기도입니다.
3) 은밀한 중에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마6:6).
4) 육신적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약4:3).
5)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행1:4).
행3:1에서 기도하는 시간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 순간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제목을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로 잡았습니다. 마6:30에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시며, 꾸지람도 하시고 확실한 축복의 메시지로 말씀하십니다. 6:31-32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두 살 난 아이가 "엄마, 내일 밥을 어떻게 먹어?"하면서 걱정하고 있으면 병원을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 살 난 아이는 완전히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부모에게 맡겨 버렸기에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밥이 없으면 부모가 해줄 것을 믿고 밥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르는 겁니다. 그런데 두 살 난 아이가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한다면 이는 정상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두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런 것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 이방인이라고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어떻게 살까? 어떻게 잘까? 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대로 채워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왜냐하면 있어야 될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이 더욱 정확하고 확실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하면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진짜 믿어야 합니다. 정말 믿습니까? 정말 맞습니까? "하물며"라는 말은 앞의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강조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기도하시면서 응답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기도에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기도가 잘 안된다 하는 질문을 잘 안 해요. 그런 질문을 하면 이상해질까 싶어서 마음으로는 의문을 갖고 있지만 안합니다. 그러나 렘넌트들은 이런 질문을 이메일로 류목사님에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도응답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절대로 응답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렘넌트들은 아직 기도에 응답 받을 수준이 아니기에 기도응답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에 응답 없어도 조금만 기다리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기도응답의 중요한 길을 말씀드리며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누구에게 기도응답 하시느냐? 받아합시다. "구원 받은 자에게, 생명 받은 자에게" 하나님과 아버지의 관계가 되어져야 된다는 것을 예수님의 기도 속에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 제가 교회에서 기도를 가르칠 기회가 많지 않으나 기도에 관해 언급하면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로 기도의 서두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다 끝난 것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라는 소리가 잘 안 나오는가 봅니다.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기도는 아들이 아버지께 구하는 구원 받은 자의 기도이며 생명 얻은 자의 기도입니다. 확실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자관계가 아니면 응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아들에게는 적은 것을 구해도 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부모의 도리입니다. 요20:31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 얻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여러분이 부자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함께 하시는 누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막3:14에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모든 축복이 여기서부터 다 나갑니다. 그래서 함께 있다는 이 사실을 류목사님은 전부 기도로 연결했습니다. 함께 있는 순간이 어느 순간입니까? 바로 이 순간 말씀 듣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있습니다. 이것을 류목사님은 전부 기도로 인도를 받습니다. “주십시오.” 하는 기도보다도 더 큰 은혜가 하나님이 우리와 말씀으로 함께 있고, 공예배로, 정시예배로, 또 실제 예배 속에 함께 있는 이 축복이 기도라 합니다. 이것을 기도로 누리라 말씀했습니다.
창39:2에 보면 요셉에게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기도가 뭐 내 놓아라 하는 게 아닙니다.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면 형통케 되도록 됩니다.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지 욕심을 채우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에 함께 하는 것에 모든 축복이 있고 또 하나님의 역사 속에 여러분의 기도가 계속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의 특징도 이 입니다. 시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목자는 양과 늘 함께 있습니다. 다윗이 기록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방 이 말을 알아차렸습니다. 양과 목자 사이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군병들에게 쫓기는 최고의 어려움 속에서 이 시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섰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이며 형통케 하시는 역사가 여기서 나옵니다.
여러분과 제가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에 대해서 마6장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6:1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 다음에 또 구하는 것은 6:2에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래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6:4에 특별히 구제에 대해 더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그 다음에 5절에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에 대해 두 번이나 언급합니다. 그러면 응답하시는 기도는 생명관계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6:6에 한 번 더 말씀하시는 것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러분, 기도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이 공중기도입니다. 이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잘 하려고 적어 나온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원래 기도는 적어서 나와 읽는 기도는 아닙니다. 간단히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겁니다. 교인들 앞에 잘 한다, 못 한다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제가 공중기도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공중 기도 너무 오래하지 마세요. 한 2~3분. 왜? 오늘 이 시간에 꼭 하나님 앞에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나열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설교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라는 자체가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겁니다. 이게 오해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뭔가 잘 하려고 사람을 의식한다면 그건 잘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면 벌써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공중기도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혼자 하는 건 그래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데, 이 공중기도는 사람 앞에 서 있거든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서야하거든요. 이 기도에 승리한다면 다 된 겁니다.
또 공중기도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했사옵나이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진행형이 기도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계속합니다. 젊은 분들이 시제가 확실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전에 한 걸 두고 "기도했사옵나이다."하는데 참 듣기 싫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어냐 하면 함께 하심을 누리는 사실을 기도라고 합니다. 여기에 모든 것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생명관계를 모르고 우리는 딴 마음 갖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다입니다. 거기에 형통하심과 축복도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특별히 베드로를 통해 기도시간에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지속해서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기에 모든 역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의할 것이 육신적으로 기도하지 마십시오. 약4:3에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육신으로 구하는 건 잘못 구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은 육신적인 것이 참 많습니다. 지난번 핵심 때 "진짜 기도응답은 기도의 제목을 없애는 것"이라 했습니다. 기도원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는데 친구를 잠깐 만나서 무엇 때문에 기도원에 와서 금식하며 기도하느냐 물었더니 "요즘 내가 기도제목이 너무 많아서 기도의 제목을 없애려고 기도하러 왔다."고 했다 합니다. 이해가 좀 안 되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입니다. 이게 기도 중 기도입니다.
여기다 우리가 기도가 잘못되는 배경이 육신적으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뭘 내놓으라 하는 게 문제입니다. 기도 속에 육신적으로 꼭 필요한 것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에 감사하고 모든 기도의 초점을 여기에 두면 다 달라집니다.
요즘은 교회 와서 기도하면서 뭔가 기도의 제목이 자꾸 없어집니다. 제가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아들이 유학 가 있으니까 자연적으로 엎드리면 마음이 생각이 납니다. 전에는 이렇게 이렇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요즘은 어떻게 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목사가 되고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맡아주시기에 할 말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공부하는 것도 맡아주실 것이니까. 전에는 "다니엘의 몇 배의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했는데 이제는 다 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다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면 기도제목 없어지는 재미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동안 쓰임 받으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넘어갈 것은 제가 65세 때 그만둔다고 얼마나 고함지르고 공언을 했습니까? 올해가 65세 입니다. 그만둬야 될 게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당회에 사표를 냈습니다. 지난주에 그랬더니 당회에서 “65세에 사표를 내는 것은 무효라면서 다락방에서 허락하는 연세까지 하시면 됩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만장일치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결정한 걸 제가 굳이 안한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그래서 감사함으로 받았습니다. 제가 굳이 안한다고 이 시기에 나가면 당회와 여러분과 다락방 내외에서 욕할 일입니다.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나갔냐?". 교회가 아직까지 여러 일도 많고, 빚도 많은데 이걸 다 후임에게 넘겨주고 빠져나갔다하면 그게 칭찬들을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실상 사표는 내어도 나갈 마음은 없었어요. 여러분이 저를 욕한 건데 그 일을 제가 뭣 하려 합니까? 그리고 제가 류목사님한테도 사실은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팔팔할 때가 요 때입니다. 마치고 내려가면 풀이 죽어 버립니다. 월, 수, 금에는 투석을 하느라 제가 전혀 일을 못합니다. 그 다음날은 또 힘이 좀 생기고. 그래서 메시지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솔직히 나갈 마음이 있어서 류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싶어 조용히 물었습니다. 여러 말씀이 있었지만 "박지온 목사는 다락방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못하면 가만히 있어도 좋습니다."하는 말씀에 할 말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다락방 연세가 얼마입니까? 힘이 있어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감당하고 쓰임 받을 때까지거든요. 저는 지금 생각으로는 70이상, 그보다 더 버틸까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데까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생명까지 드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설교가 다른 어느 시기보다 좀 색다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신적인 기도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이 사실을 누리십시오. 그게 기도라 했습니다. 정시기도 때, 무시기도 때, 그리고 메시지 듣는 동안에도 계속 누립니다. 테이프 가져가서 집에서 듣는 동안에도 누리는 겁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의 역사가 임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의 기도입니다. 행1:4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약속이 뭡니까? 성령 충만, 그 성령 충만이 뭡니까? 너와 함께 하겠다 하신 약속입니다. 마지막에 제자들을 앞에 놓고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들과 항상 함께 하시리라"입니다. 그래서 다락방에서는 주일날도 주일이고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전부 주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시면 다 여기에서 해결하게 됩니다.
행3:1에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기도하는 시간에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그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기적의 역사를 지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순간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누구의 역사가 나옵니까? 성령의 역사가 나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 아버지여 축복된 역사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오늘에 하나님의 쓰임 받는 손에 역사됨을 감사합니다. 주께서 저들 삶에 함께 하시고 주님이 친히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모두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1) 두 살 난 아이가 밥걱정을 하지 않듯이 성도는 의식주를 두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마6:30-32).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을 다 아시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3)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마6:33).
2. 기도응답에는 중요한 길이 있습니다.
1)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의문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누구에게 기도응답 하시는가?
① 구원 받은 자, 생명 받은 자에게
② 부자관계에 있는 자에게(요20:31)
3)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① 제자들을 불러 함께 있으심(막3:14)
②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가 형통케 자가 됨(창39:2)
③ 다윗의 기도의 특징도 임(시23편)
3. 잘못된 기도가 무엇인지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1) 응답이 없는 기도는?
① 보이려고 하는 기도(마6:1)
② 외식하는 기도(마6:2)
2) 응답하시는 기도는 생명관계의 기도입니다.
3) 은밀한 중에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마6:6).
4) 육신적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약4:3).
5)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행1:4).
행3:1에서 기도하는 시간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 순간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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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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