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후 깨닫는 진리
2008-04-2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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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대로 될지어다. 제가 말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또 그대로 될지어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성도들의 기도와 간구로 인해서 그동안 강단에 서지 못했으나, 오늘 하나님이 축복하신 응답 속에 이 강단에 말씀으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말씀 속에서 저들의 기도와 간구가 응답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미 응답된 사실을 찾을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모든 교우들 어디에 있든지 같은 은혜를 주시고 말씀을 통해 한 주간도 성취될 말씀에 설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체험 후 깨닫는 진리」라 고 말씀의 제목을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반드시 성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특별히 중요한 말씀 일수록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과정을 통해 깨닫도록 체험케 하시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성취 되어도 깨닫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 부활의 진리는 중요한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중요한 메시지는 반드시 체험 후 라야 성취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18장 34절에 보면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 말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죽음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도 상세히 말씀 하였어도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다 했습니다. 31절에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32절에,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심과 엄청난 고난을 당하심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실들을 제자들에게 말씀 했으나 한 마디도 깨닫지 못했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들이 다 이뤄진 것을 보면 어지간히 눈치 있는 사람은 걱정이라도 하겠는데, 십자가의 죽음 직전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했고 어느 정도까지 못 알아들었냐 하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다 성취된 것을 그들이 봤으나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았더라면 걱정이 되어서 반 죽었을 거라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귀한 계획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고난당할 쯤에 고난당할 것을 깨닫고 미리 예상하고 있다면 고난당하기 전에 아마 걱정하느라고 반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참 감사하게 하나님은 고난당하기 직전까지 전혀 모르게 하시고 갑자기 당하게 하시고 걱정하게 하시다가도 갑자기 회복되는 경륜들을 보게 됩니다.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앞에서 부딪치면 굉장히 데미지와 신체적 고통이 큽니다만 모르고 사고를 당하면 고통이 삭감되고 사고도 덜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아는 상황에서 당하게 되면 신체 조직이 사고를 당할 때, 사고를 당하기 전에 이미 몸이 경직되어서 훨씬 고통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당할 것을 알고 당하면 고통이 더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고통을 당하면 신체적으로도 괴로움이 덜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염려하고 고통이었겠습니까, 본문에 재미있게 표현 한 것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했습니다. 누가복음18장 33절에 보면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심지어 마태복음 28:16에 보면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미 부활하셔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났는데, 감사해서 경배까지 드렸으나 오히려 안 믿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원래 인간의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 열성적인 베드로가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나타나신 것을 알고 제자들 사이에 오신 것을 경험했습니다만,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에 예수님이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에서 낙심함으로 고향에 갔을 겁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과 일할 것이 없으니 고향에 가서 고기나 잡을란다” 했을 것입니다. 곁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따라 갔을 것입니다. 갈릴리 출신이기 때문이죠.
그날 밤에 고기를 잡는데,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새벽쯤 오셔서 “너희가 고기를 잡았느냐?” 라고 질문하셨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아봐라” 하셨습니다. 고기가 한 마리도 없어서 그물을 거둬들일 판인데, 베드로가 예감이 있었든지, 성격상 그랬든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깊은 데로 노를 저어서 갔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옆에서 도와 달라할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의 체험되지 못한 부분입니다.
그 후에 베드로가 한 번도 변함없이 오락가락하는 흔들림이 계속되다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확실히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베드로가 그토록 체험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봤고 부활 이후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못 믿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열정적인 베드로의 신앙이 바로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우리 자신과 연결시켜 보면, 사건과 순간에 부딪히면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왜 낙심하고 염려하는 이유가 뭡니까? 간단히 말해서 나와 내게 성령의 사실적인 인도를 받아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사실적인 역사가 현실적으로 나와 내게 인도하는 사실이, 체험되지 않으면 도저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도다 라고 성경에서 말씀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렇게 듣고 말하기도 하지만 안 믿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여러분과 제게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은 못 믿고 있고 안 믿으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경우, 특히 지식인층에서 많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에 여러분과 저가 성령의 사실적인 인도를 받지 못하면 흔들리게 되어 있고 어렵습니다.
이번 주에 제가 강단에 꼭 서야 되겠다고 결단한 것 배경이, 1, 2, 3, 4 전도회에서 치유에 대한 강의를 요청해서 부부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간 메시지를 못 전했기에 거절할 수도 없고 해서 오른손은 쓸 수 없으나 왼손으로 메시지 준비를 해보았습니다. 또, 치유총국에서 메시지를 부탁 받았기에 전도회에서 준비한 메시지를 그대로 드렸습니다.
열심히 뜨겁게 강의 하지 않고 앉아서 여유 있게 메시지 했는데도 강의 시간이 1시간 15분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메시지를 길게 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이 메시지 한 줄은 몰랐습니다. 치유 총국에서는 강의를 마치니 2시간 10분 동안 강의를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시계가 없어서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어요. 윤성주 목사님이 박 장로에게 “사모님에게 2시간 10분 걸렸다고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 하더라고요. 우리 집 사정을 대강 아는지 그러더라고요. 제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렇게 메시지를 했는데 우리교회 강단에서 30분 메시지하면 되는 것을 못 한다하면 죄인이다 싶어서 이번에는 꼭 메시지 전해야 하겠다 싶어서 강단에 오늘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그동안의 기도의 응답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그렇게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특별히 부활의 진리는 체험 이후라에 깨닫는 진리입니다. 제자들이 그전에는 아무도 못 깨달았습니다. 왜? 이 진리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 땅에는 어느 인간에게도 부활의 증거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계룡산에서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죽은 교주의 시체에 손도 못 대도록 하고 있다가 구더기가 나오도록 시체가 썩었는데 결국 그 후에 장사를 지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교주가 제자들에게 “다시 부활 할 테니, 내 시체는 건드리지 마라” 했는데 구더기만 가득 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없습니다. 오직 세상 역사에도 예수 그리스도만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설명할 때,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부활의 경험이 이 땅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증거로 살아나셔야 했고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믿습니다. 하나님 되신 증거자로 살아나심을 믿고,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이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란 사실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축복과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28장 16절에 보면 “11제자가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예수님의 살아나심이 퍼졌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그런 과정에서 미리 명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기뻐하고 경배하지만 “저분이 정말 예수인가?” 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일반인이 아니라 제자들입니다. 제자 이름은 안 밝혔어요. 밝혀놓았다면 쪽 팔리니까요.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제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참 우습고 인간이 별수 없는 준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중에도 이런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일마다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듣고 감사하고 하지만 주일날 와서 조용히 엎드릴 때 괜히 헛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한다는 이야기인데 여러분, 절대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바로 믿고 헌신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영육 간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못 봤다면 체험을 해야 합니다. 체험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하니까 신비적인 체험이 늘 바탕이 되어서 그렇게 오해하는데 말씀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체험하라는 것은 말씀 위에 내 신앙을 뿌리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이상한 체험을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절대로 말씀 위에 내 신앙에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말씀 통해 열매 맺도록 성취되는 말씀으로 체험되어야 합니다.
많은 말씀 중에 특별히 사도행전을 통해 보게 되는 중요한 말씀이 뭐냐면, 사도행전 1장 1절입니다. 데오빌로에게 말씀 을 전하는 배경에서 머리말로 “내가 먼저 쓴 글에는” 그것이 누구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먼저 썼다는 것은 누가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데오빌로에게 쓴 글입니다. 누가 복음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말했을 때, 치유의 역사와 능력의 역사와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곳마다 이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1절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복음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말씀이 시작하면서부터 기적이 시작되었고 오직 한 말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이 말씀 속에 축복과가 역사가 다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도 사람을 통해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을 때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기적과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데오빌로에게 말씀하시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말씀만 선포되면 끝입니다. 이 사실을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이이기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할 때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성취되는 말씀이 내게 체험되어지고 주인이 바뀌어지고 환경이 바뀌어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체험되지 않으면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못한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되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더라”
할렐루야! 이것이 확인되면 말하는 것마다, 이 사람은 어딜 가든지, 앉는 곳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요 이 체험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사도행전 1장 3절에 예수가 그리스도라 말한 곳에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느냐? 하나님의 나라가 참 평안으로 각 심령 속에 환경과 사건 속에서 일어나더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만 40일간 강론하셨습니다. 나는 간단히 한 마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이때까지 경험치 못했던 참 평안이 임합니다. 할렐루야! 불안하고 흑암 때문에 공허 속에 있는 사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임하면 참 평안이 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디를 갈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저희들이 지금 어느 곳에 갑니다. 가는 동안 교회와 교우들의 가정에 참 평안을 허락해 주시고 운전하는 자에게 참 평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면에서 손톱 밑에 가시만 찔려도 아파서 평안이 없는데, 가시를 빼고 나면 평안해지듯이 참 평안이 왔다는 것은 모든 문제 해결 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체험을 현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참 평안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 그 장소에 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내 안에 충만히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어져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마음에 계신다는 것에 대해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예수를 영접시키려는 것이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강제적으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시키려고 공갈까지 치기도 합니다. 그 배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달라지니까요. 성령이 역사하시니 그의 인생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도 평안과 감사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것보다 더 행복하고 귀한한 일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고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하면 노이로제 걸리고 평안 잃어버리면 죽으려고 자꾸 애쓰게 됩니다. 혹, 죽으려고 애쓰시는 분 있습니까? 회개하십시오. 그래서 아파트에서 밑에 내려다보기만 해도 “뛰어내리고 싶다” 하는 충동적인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뛰어내리면 머리가 깨어져서 죽는다 하니까 못하는데,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까지는 없는가 봐요. 죽는 사람이 머리가 깨어지든 안 깨어지든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마는 그럴 용기가 없는 것이겠죠.
부산에 가면 “자살바위”라고 태종대에 있잖아요. 철망을 길게 설치 해놨잖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충동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죽는 사람이 많았으면 바위에 글을 새겨 놓을 정도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십시오” 라고 말이죠. 사단은 한 번 더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고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죽고 싶다”라고 말하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죽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마십시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왜 죽어! 사단에게 속는 것인데” 라고 외치십시오. 그러면 흑암의 세력이 물러납니다. 할렐루야!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이름을 높이는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여기서 모든 문제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좋든 나쁘든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한번 다시 생각해보시고 한번 다시 눈을 떠 보십시오. 성령의 천지를 뒤흔드는 역사가 여러분의 인도자로 설 것입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성령의 크신 은혜와 역사로 인도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인하고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믿음의 눈을 뜨게 하여주옵소서. 이미 눈을 뜨게 하신 주의 종들에게 확신과 감사로 오늘 이 시간 이후에 충만케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하나님의 진리는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과정을 통해 깨닫도록 체험하게 하는 기회가 있습니다. 부활 메시지 같이 중요한 메시지는 반드시 체험 후라야 성취되고 깨닫게 됩니다.
1.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셨으나 제자들이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1)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성취된 것을 보아왔는데도 왜 한 마디도 못 깨달았겠습니까?
① 만약에 그들이 깨닫고 알았다면 걱정과 염려로 괴로워했을 것임 - 하나님의 계획
②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도 안 믿는 자가 있었음 - 인간의 원래 마음(마28:16-17, 요21:3-4)
③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예수님을 확실히 체험하고 그리스도라 증거할 사람이 없음(고전12:3)
2) 신앙생활 하다가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하고 낙심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 성령의 사실적인 인도를 받아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임
② 현실적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사실이 체험되지 않으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지속적으로 고백할 수 없음
③ 사람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안 믿으려 함
④ 이런 세대 가운데 우리는 성령의 사실적인 응답을 받지 못하면 흔들리게 됨
3) 부활의 진리는 반드시 체험 이후라야 깨닫는 진리입니다.
① 이 진리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임
② 이 땅에는 어느 인간도 죽었다가 살아난 부활의 증거가 없음
③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시란 증거로 다시 살아나셨음
④ 그리스도를 뵙고도 의심한 제자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중에도 신앙생활 하면서 의심하는 자가 있음
2.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십시오(사도행전의 세 가지 중요한 말씀).
1)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말씀만 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행1:1)
① 누가복음-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을 때 능력과 치유, 기적의 역사가 나왔음(행1:1)
② 사도행전-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을 때 기적과 역사들이 지속해서 나타났음(행1:3)
③ 이 사실이 체험되면 어딜 가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게 되며, 이것이 신앙생활임
2)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행1:3)
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참 평안이 임하게 됨
②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참 평안이 임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됨
3) 성령이 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이름을 높이는 제자가 됩니다(행1:8).
①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며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함
② 이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남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체험 후 깨닫는 진리」라 고 말씀의 제목을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반드시 성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특별히 중요한 말씀 일수록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과정을 통해 깨닫도록 체험케 하시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성취 되어도 깨닫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 부활의 진리는 중요한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중요한 메시지는 반드시 체험 후 라야 성취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18장 34절에 보면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 말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죽음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도 상세히 말씀 하였어도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다 했습니다. 31절에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32절에,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심과 엄청난 고난을 당하심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실들을 제자들에게 말씀 했으나 한 마디도 깨닫지 못했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들이 다 이뤄진 것을 보면 어지간히 눈치 있는 사람은 걱정이라도 하겠는데, 십자가의 죽음 직전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했고 어느 정도까지 못 알아들었냐 하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다 성취된 것을 그들이 봤으나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았더라면 걱정이 되어서 반 죽었을 거라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귀한 계획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고난당할 쯤에 고난당할 것을 깨닫고 미리 예상하고 있다면 고난당하기 전에 아마 걱정하느라고 반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참 감사하게 하나님은 고난당하기 직전까지 전혀 모르게 하시고 갑자기 당하게 하시고 걱정하게 하시다가도 갑자기 회복되는 경륜들을 보게 됩니다.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앞에서 부딪치면 굉장히 데미지와 신체적 고통이 큽니다만 모르고 사고를 당하면 고통이 삭감되고 사고도 덜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아는 상황에서 당하게 되면 신체 조직이 사고를 당할 때, 사고를 당하기 전에 이미 몸이 경직되어서 훨씬 고통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당할 것을 알고 당하면 고통이 더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고통을 당하면 신체적으로도 괴로움이 덜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염려하고 고통이었겠습니까, 본문에 재미있게 표현 한 것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했습니다. 누가복음18장 33절에 보면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심지어 마태복음 28:16에 보면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미 부활하셔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났는데, 감사해서 경배까지 드렸으나 오히려 안 믿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원래 인간의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 열성적인 베드로가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나타나신 것을 알고 제자들 사이에 오신 것을 경험했습니다만,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에 예수님이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에서 낙심함으로 고향에 갔을 겁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과 일할 것이 없으니 고향에 가서 고기나 잡을란다” 했을 것입니다. 곁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따라 갔을 것입니다. 갈릴리 출신이기 때문이죠.
그날 밤에 고기를 잡는데,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새벽쯤 오셔서 “너희가 고기를 잡았느냐?” 라고 질문하셨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아봐라” 하셨습니다. 고기가 한 마리도 없어서 그물을 거둬들일 판인데, 베드로가 예감이 있었든지, 성격상 그랬든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깊은 데로 노를 저어서 갔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옆에서 도와 달라할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베드로의 체험되지 못한 부분입니다.
그 후에 베드로가 한 번도 변함없이 오락가락하는 흔들림이 계속되다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확실히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베드로가 그토록 체험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봤고 부활 이후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못 믿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열정적인 베드로의 신앙이 바로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우리 자신과 연결시켜 보면, 사건과 순간에 부딪히면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왜 낙심하고 염려하는 이유가 뭡니까? 간단히 말해서 나와 내게 성령의 사실적인 인도를 받아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사실적인 역사가 현실적으로 나와 내게 인도하는 사실이, 체험되지 않으면 도저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도다 라고 성경에서 말씀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렇게 듣고 말하기도 하지만 안 믿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여러분과 제게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은 못 믿고 있고 안 믿으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경우, 특히 지식인층에서 많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에 여러분과 저가 성령의 사실적인 인도를 받지 못하면 흔들리게 되어 있고 어렵습니다.
이번 주에 제가 강단에 꼭 서야 되겠다고 결단한 것 배경이, 1, 2, 3, 4 전도회에서 치유에 대한 강의를 요청해서 부부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간 메시지를 못 전했기에 거절할 수도 없고 해서 오른손은 쓸 수 없으나 왼손으로 메시지 준비를 해보았습니다. 또, 치유총국에서 메시지를 부탁 받았기에 전도회에서 준비한 메시지를 그대로 드렸습니다.
열심히 뜨겁게 강의 하지 않고 앉아서 여유 있게 메시지 했는데도 강의 시간이 1시간 15분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메시지를 길게 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이 메시지 한 줄은 몰랐습니다. 치유 총국에서는 강의를 마치니 2시간 10분 동안 강의를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시계가 없어서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어요. 윤성주 목사님이 박 장로에게 “사모님에게 2시간 10분 걸렸다고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 하더라고요. 우리 집 사정을 대강 아는지 그러더라고요. 제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렇게 메시지를 했는데 우리교회 강단에서 30분 메시지하면 되는 것을 못 한다하면 죄인이다 싶어서 이번에는 꼭 메시지 전해야 하겠다 싶어서 강단에 오늘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그동안의 기도의 응답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그렇게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특별히 부활의 진리는 체험 이후라에 깨닫는 진리입니다. 제자들이 그전에는 아무도 못 깨달았습니다. 왜? 이 진리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 땅에는 어느 인간에게도 부활의 증거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계룡산에서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죽은 교주의 시체에 손도 못 대도록 하고 있다가 구더기가 나오도록 시체가 썩었는데 결국 그 후에 장사를 지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교주가 제자들에게 “다시 부활 할 테니, 내 시체는 건드리지 마라” 했는데 구더기만 가득 했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없습니다. 오직 세상 역사에도 예수 그리스도만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설명할 때,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부활의 경험이 이 땅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증거로 살아나셔야 했고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믿습니다. 하나님 되신 증거자로 살아나심을 믿고,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이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란 사실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축복과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28장 16절에 보면 “11제자가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예수님의 살아나심이 퍼졌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그런 과정에서 미리 명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기뻐하고 경배하지만 “저분이 정말 예수인가?” 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일반인이 아니라 제자들입니다. 제자 이름은 안 밝혔어요. 밝혀놓았다면 쪽 팔리니까요.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제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참 우습고 인간이 별수 없는 준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 중에도 이런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일마다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듣고 감사하고 하지만 주일날 와서 조용히 엎드릴 때 괜히 헛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한다는 이야기인데 여러분, 절대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바로 믿고 헌신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영육 간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못 봤다면 체험을 해야 합니다. 체험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하니까 신비적인 체험이 늘 바탕이 되어서 그렇게 오해하는데 말씀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체험하라는 것은 말씀 위에 내 신앙을 뿌리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이상한 체험을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절대로 말씀 위에 내 신앙에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말씀 통해 열매 맺도록 성취되는 말씀으로 체험되어야 합니다.
많은 말씀 중에 특별히 사도행전을 통해 보게 되는 중요한 말씀이 뭐냐면, 사도행전 1장 1절입니다. 데오빌로에게 말씀 을 전하는 배경에서 머리말로 “내가 먼저 쓴 글에는” 그것이 누구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먼저 썼다는 것은 누가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데오빌로에게 쓴 글입니다. 누가 복음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말했을 때, 치유의 역사와 능력의 역사와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곳마다 이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1절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복음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말씀이 시작하면서부터 기적이 시작되었고 오직 한 말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이 말씀 속에 축복과가 역사가 다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도 사람을 통해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을 때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기적과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데오빌로에게 말씀하시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말씀만 선포되면 끝입니다. 이 사실을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이이기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할 때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성취되는 말씀이 내게 체험되어지고 주인이 바뀌어지고 환경이 바뀌어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체험되지 않으면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못한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되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더라”
할렐루야! 이것이 확인되면 말하는 것마다, 이 사람은 어딜 가든지, 앉는 곳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요 이 체험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사도행전 1장 3절에 예수가 그리스도라 말한 곳에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느냐? 하나님의 나라가 참 평안으로 각 심령 속에 환경과 사건 속에서 일어나더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만 40일간 강론하셨습니다. 나는 간단히 한 마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이때까지 경험치 못했던 참 평안이 임합니다. 할렐루야! 불안하고 흑암 때문에 공허 속에 있는 사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임하면 참 평안이 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디를 갈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저희들이 지금 어느 곳에 갑니다. 가는 동안 교회와 교우들의 가정에 참 평안을 허락해 주시고 운전하는 자에게 참 평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면에서 손톱 밑에 가시만 찔려도 아파서 평안이 없는데, 가시를 빼고 나면 평안해지듯이 참 평안이 왔다는 것은 모든 문제 해결 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체험을 현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참 평안이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 그 장소에 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내 안에 충만히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어져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마음에 계신다는 것에 대해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예수를 영접시키려는 것이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강제적으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시키려고 공갈까지 치기도 합니다. 그 배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달라지니까요. 성령이 역사하시니 그의 인생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도 평안과 감사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것보다 더 행복하고 귀한한 일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고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하면 노이로제 걸리고 평안 잃어버리면 죽으려고 자꾸 애쓰게 됩니다. 혹, 죽으려고 애쓰시는 분 있습니까? 회개하십시오. 그래서 아파트에서 밑에 내려다보기만 해도 “뛰어내리고 싶다” 하는 충동적인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뛰어내리면 머리가 깨어져서 죽는다 하니까 못하는데,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까지는 없는가 봐요. 죽는 사람이 머리가 깨어지든 안 깨어지든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마는 그럴 용기가 없는 것이겠죠.
부산에 가면 “자살바위”라고 태종대에 있잖아요. 철망을 길게 설치 해놨잖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충동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죽는 사람이 많았으면 바위에 글을 새겨 놓을 정도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십시오” 라고 말이죠. 사단은 한 번 더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고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죽고 싶다”라고 말하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죽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마십시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왜 죽어! 사단에게 속는 것인데” 라고 외치십시오. 그러면 흑암의 세력이 물러납니다. 할렐루야!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이름을 높이는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여기서 모든 문제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좋든 나쁘든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한번 다시 생각해보시고 한번 다시 눈을 떠 보십시오. 성령의 천지를 뒤흔드는 역사가 여러분의 인도자로 설 것입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성령의 크신 은혜와 역사로 인도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인하고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믿음의 눈을 뜨게 하여주옵소서. 이미 눈을 뜨게 하신 주의 종들에게 확신과 감사로 오늘 이 시간 이후에 충만케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하나님의 진리는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과정을 통해 깨닫도록 체험하게 하는 기회가 있습니다. 부활 메시지 같이 중요한 메시지는 반드시 체험 후라야 성취되고 깨닫게 됩니다.
1.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셨으나 제자들이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1)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성취된 것을 보아왔는데도 왜 한 마디도 못 깨달았겠습니까?
① 만약에 그들이 깨닫고 알았다면 걱정과 염려로 괴로워했을 것임 - 하나님의 계획
②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도 안 믿는 자가 있었음 - 인간의 원래 마음(마28:16-17, 요21:3-4)
③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예수님을 확실히 체험하고 그리스도라 증거할 사람이 없음(고전12:3)
2) 신앙생활 하다가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하고 낙심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 성령의 사실적인 인도를 받아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임
② 현실적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사실이 체험되지 않으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지속적으로 고백할 수 없음
③ 사람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안 믿으려 함
④ 이런 세대 가운데 우리는 성령의 사실적인 응답을 받지 못하면 흔들리게 됨
3) 부활의 진리는 반드시 체험 이후라야 깨닫는 진리입니다.
① 이 진리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임
② 이 땅에는 어느 인간도 죽었다가 살아난 부활의 증거가 없음
③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시란 증거로 다시 살아나셨음
④ 그리스도를 뵙고도 의심한 제자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중에도 신앙생활 하면서 의심하는 자가 있음
2.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십시오(사도행전의 세 가지 중요한 말씀).
1)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말씀만 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행1:1)
① 누가복음-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을 때 능력과 치유, 기적의 역사가 나왔음(행1:1)
② 사도행전-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했을 때 기적과 역사들이 지속해서 나타났음(행1:3)
③ 이 사실이 체험되면 어딜 가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게 되며, 이것이 신앙생활임
2)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말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행1:3)
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참 평안이 임하게 됨
②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참 평안이 임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됨
3) 성령이 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이름을 높이는 제자가 됩니다(행1:8).
①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며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함
② 이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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