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성령의 사람
2013-10-2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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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지혜와 성령의 사람”
(행6:8~15)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안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6:8~15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찬양대 찬양 불렀던 것으로 인사합시다. 그리스도만 우리의 힘이 되시고 만족함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한날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고로 힘을 얻으시고 참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림으로 여러분 개인이 만족함의 축복을 누리는 응답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언제 일어나느냐, 우리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일치하게 될 때에, 우리 교회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일치하게 될 때에 환경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대 교회가 가졌던 비밀이 바로 그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 맞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로 어떤 응답이 왔느냐 하면 사도행전 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또 그 다음 온 응답이 있다면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일치하게 될 때에 말씀이 점점 왕성한 것은 물론이고 그 속에 참된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는 축복된 응답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헌신하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성령 인도 받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오늘 특히 이 자리에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들, 가장 성령의 인도 받는 자리로 인도됨을 믿습니다. 오늘도 최고로 축복 받고 은혜 받는 시간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지혜와 성령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은 하나님이 정말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어느 누구나 마음에 소원하는 바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하실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말로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그것을 모르면 성공한 것도 실패입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면 성공한 것도 실패이고, 훌륭해도 아무리 좋은 것도 그것을 모르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도 모든 것이 헛일이 되고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의 선택도 결정도, 계속해서 여러분의 걸음 속에 하나님의 증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진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일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가 말씀하고 있는 바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도 저와 여러분이 읽은 사도행전 6장 8절에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10절에 보면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은, 한 마디로 말하면 지혜와 성령의 사람, 다시 말해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서 나오는 지혜, 그것을 가진 사람이 바로 스데반이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세워지니까 그 성령의 사람을 아무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오늘 10절에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세상이 당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바로 성령의 사람은 세상이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진 않았습니다만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전체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7장 전체가 스데반에 대한 내용인데 마지막 부분에 스데반이 설교 한 번 하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할 때 7장 5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성령이 충만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보좌의 축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성령의 사람 스데반의 사역을 보면 설교 한 번 하고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늘날까지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서 오고 오는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가지고 응답 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인도 받는 모든 사역은 그 당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스데반이 정확한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 그리스도를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스데반은 진짜 한 번 죽더라도 제대로 죽는 죽음, 다시 말해 참된 축복이 무엇인지 아는 영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설교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죽음보다 그 죽음 이후가 더 위대한 사역이 되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그렇습니다. 죽음보다도 죽음 이후의 사역이 더 위대한 사역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스데반이 죽고 난 이후에 모든 지역으로 복음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의 문을 연 안디옥 교회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1장 19절에 보면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했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그리고 스데반의 죽음, 죽여도 된다는 그 증인의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회심하는 역사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로 성령의 사람의 죽음은 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응답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하면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 축복받는 그 응답의 주역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나는 실제로 힘이 없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우리는 조그마한 것에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힘 빠지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별스럽지 않은 자그마한 것에. 저는 제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떨 때는 별것 아닌 건데 기분이 한껏 좋아집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뭐 그것가지고 그러냐고 할지 모르지만 너무 기분이 낙심됩니다. 나도 모르게 우울에 빠집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조금 관리하고 하면 될 것인데 그게 안 되어서 어떨 때는 조금 관리가 되면 뭔가 기분이 좋고, 그래서 조금 수치를 보고 수치가 괜찮으면 거기 대해서 마음이 기쁩니다. 그런 제 자신을 보면서 아, 이것밖에 안 되는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은 실제로 힘이 없습니다. 자그마한 문제들 앞에서 연약하고 넘어지고 무너지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닙니까? 그래서 특별히 우리의 먹는 것, 입는 것, 의식주에 직면하게 되면 사실 우리가 힘이 없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잖습니까. 아무 힘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힘이 있어도 실제로 우리는 한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 사실을 잘 고백했습니다. 이사야서 40:30에 보면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인생, 이 땅에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다른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데 그야말로 세상은 어마어마합니다. 우습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글로벌화가 되어서 전 세계가 다 통하는 세상입니다만 강대국들 영향을 보십시오. 어마어마합니다. 그만큼 세상은 굉장합니다. 진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세상 앞에 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민수기 13장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이들의 고백처럼 "우리는 스스로 메뚜기같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세상이라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바벨탑이라는 사실이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아실 것은 세상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우습게 보아넘길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전혀 힘이 없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해서 나가라고 말씀하시고 성령충만 줄 것이니까 그것 가지고 너희는 땅 끝까지 증인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세상이 어마어마하고 굉장하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에 왜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을 우리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영적인 문제들을 만들어서 그 속에서 모든 인류를 빠트리고 있습니다. 이게 사탄의 일입니다. 이 사탄의 역사가 얼마나 완벽하냐? 믿는 자들에게도 어떻게 하든지, 고린도후서 11장 말씀에 보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믿는 자들을 미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게 사탄의 역사들입니다. 이 사탄의 역사들을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까? 절대로 인간으로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 이기는 방법이 있는데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면 사탄을 이기게 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룬 게 없게 되고 아무 것도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냥 성령이 아니라 '오직'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 영혼 속에 각인될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직' 될 때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들을 붙잡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도한 내용들을 보십시오. 거의 다 육신적인 기도가 아닙니까. 내 동기와 생각들 가지고, 내 욕심 채우기 위해서 한 육신적인 기도가 내 모든 삶입니다. 그런데 진짜 '오직'이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제목들이 붙잡혀지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직'이 되면 비로소 과거의 모든 운명에서 빠져나오고, 또 과거의 운명에서 빠져나와있지만 뭔가 모를 굴레와 틀 같은 얽매여 있는 부분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과거의 굴레와 틀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의 인도를 못 받고 있고 미래를 실패하는 겁니다. 그러면 언제 그 과거의 굴레와 틀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 '오직'이 되면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까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장례가 터지면 사실 네 다섯 건이 연달아 터져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연륜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 많은 성도들을 볼 때 하나교회 만큼 좋은 교회가 없고 좋은 성도들이 없습니다. 금요전도학교 때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교회가 지구상에서 최고로 좋은 교회이고 하나교회 성도가 지구상에서 최고로 훌륭한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면서 뭔가 기도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모두가 정말로 교회를 생각하면서 교회를 위해서 중심 가지고 기도하는 것인데, '뭔가 모를 저 틀 속에서 벗어나면 좋을텐데...'하는 겁니다. 우리도 모르게 틀을 내가 만들어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 언제 그 틀과 굴레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이 깨어지는 지 아십니까? '오직'이 될 때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나름대로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면 거의 과거에 연연하고 있고 거기에 붙잡혀서 그 상처들 때문에 오늘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언제 그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 진짜로 '오직'이 되어질 때입니다.
'오직'이 되어질 때 그 때야 비로소 미래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보여집니다. 미래를 향한 하나님이주시는 비전이 보여지고 거기에 강하게 역사하는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직'의 사람으로, '오직' 성령의 사람으로 승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성령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이 성령은 모든 것 곧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하면 "오직 성령"은 하나님과 통하는 겁니다. 누가 여러분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성령을 힙입으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20에 보면 "너희가 거룩한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모든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여러분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밀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성령의 비밀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한 번 보십시오. 75년 동안 육신적인 삶을 계속 추구했습니다. 어느날 아브라함이 굉장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육신적인 것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사실 지금까지 내가 다른 방향으로 살아왔었구나.'하고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 결단 가운데서 나중에 보면 자기 조카 롯과 이별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창세기 13:14-18에 보면 자기 조카를 떼어놓는 모습이 나옵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할 것이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고 하면서 조카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어디로 들어갔습니까? 창세기 13:18에 보면 상수리 나무 수풀 가운데 단을 쌓았습니다. 여러분, 그 전에는 아무리 아브라함이 살기를 몸부림쳐도 어려움이 계속 되었는데 그런데 아브라함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전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축복하셨는데 어느 정도로 축복하셨는가? 창세기 15:1에 보면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결단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에게 본격적인 영적인 축복들을 선언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를 다니면서 거의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 생활하면서도 세상 기준으로 살아가고, 세상 기준으로 교회를 섬기고, 세상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영적인 축복을 다 놓쳐버리고 육신적인 것만 기준 삼고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면 교회만 다닐 뿐이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에게는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이 영적인 축복을 전혀 보지 못하고 육신의 사람으로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 보면 영의 사람, 하나님의 통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산업인의 모델로 볼 수 있는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오바댜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었고,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뭐냐? 오바댜는 아합왕의 국내 대신이었습니다. 아합왕이 다스리는 때에 국내 대신으로 중요한 관직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오바댜는 어떤 사람이냐? 아합왕의 원수인 엘리야의 제자입니다. 사실 오바댜가 선지자 오십 명씩 백 명을 숨겨서 키웠습니다. 왕이 몰랐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엘리야의 제자요, 아합왕의 신하인데 사실 아합왕과 엘리야는 원수관계이고 대적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 주변에 얼마나 많은 적들이 있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 시대에 다니엘이 미궁에 빠지도록 왕을 부추겨서 조서를 붙이게 만들고 결국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려서 결국 사자 굴에 집어넣었던 그 적수가 있었던 것처럼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당시 왕정시대에 얼마나 많은 자리를 탐하는 적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자기 집에 백 명의 선지자들을 키웠습니다.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나중에 칠천제자가 일어나게 되고, 이들로 말미암아 나중에 열왕기하 6장에 보면 도단성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엄청난 축복의 역사의 발판이 되었던 사실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오바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 일을 감당했느냐? 바로 하나님과 통하는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했던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신을 따라가지 않고서도 육신을 정복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면 육신 따라가지 않고서도 육신을 정복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세상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하려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에서 어려움이 와요. 세상에서 했던 경험들, 세상의 기준들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해요.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어려움이 오고, 여기에서 착각하고, 여기에서 실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육신적인 것만 가지고 '어떤 면에서 맞다 안 맞다, 문제가 있다 없다, 응답을 받았다 안 받았다' 그렇게 빠질 수 있습니다. 또 평생 육신적인 것만 가지고 논쟁하고, 싸움하는 것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진짜 영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성령의 사람. 이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우리가 결국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율법에 종노릇하게 된다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7:5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다시 말하면 만약에 육신적인 것만 따르게 되면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를 지배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로마서 7:24에 보면 결국은 자기 안에 육신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들을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육신만 따르게 되면 결국은 곤고함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고백한 내용이에요. 바로 그 전에 보면 바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의 인도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 죄의 권세 아래 끌려가지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안에서 죄의 권세가 강해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 아래 복종하는 이 사실들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고백했느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무슨 말이에요? 결국은 육신 따라 살아가게 되면 인생이 영원히 곤고함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에요. 육신을 따라 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의 성취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제자가 되어지고, 제자 삼는 사역을 우리에게 맡기셨는데 우리가 육신에 속한 자가 되어지고 육신을 따라가게 되면은 말씀의 성취를 볼 수가 없어요. 로마서 8:4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진다는 사실. 반대로 말하면 영을 따라가지 않고 육신을 따라가는 자는 율법의 성취, 말씀의 성취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8:6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르게 되면 결국은 사망이 이른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결론짓는다면 육신적인 삶을 살아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행했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귀신들린 자를 내어 쫓으시니 거기에 많은 무리들이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다 도망갔어요. 그 무리들은 육신을 따르는 육신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시락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이 요한복음 6장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당장 사람들이 어떻게 나왔느냐? "우리의 왕으로 삼자." 이것이 육신 신앙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따로 산에 불러서 중요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함이라." 여러분,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는 응답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성령?
둘째로 오직 성령이란 무엇인가? 교회사에 보면은 오직 성령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쭉 비추어 보면 거의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은사 운동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이라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성부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인다면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상입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말씀 붙잡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말씀 붙잡는 것이 하나님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성경 전체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그 전체 말씀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이 성경 전체에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인생이 왜 망할 수밖에 없는가?' 인생의 열두 가지 부분들에 대한 답을 이야기 하고 있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계속해서 역사 속에 일곱 가지 재앙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고, 열두 가지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성경전체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들어와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 말씀 속에서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내 평생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시간마다 또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올 때마다 강단을 통해서 그때그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부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 다음에, 이 말씀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부터 모든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답은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되어지면 여러분 모든 배후에 저주와 재앙과 흑암의 세력들이 무너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셨는데 이 성령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성령을 가지고 다른 이름으로 보혜사라고 이야기 합니다. 보호하고, 우리에게 은혜주시고,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축복, 하나님이 당연히 주시기로 한 축복이 뭐냐? 성령을 약속하셨어요. 이 성령의 충만함의 비밀을 누리게 되면, 우리의 문제 해결하는 필연적인 축복을 오게 되어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절대적인 축복이 성령의 역사를 누리게 될 때 나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 성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그 말씀을 붙잡는 자에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시고, 구원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당연히 누려야 할 축복 성령의 역사,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절대적인 축복 성령의 역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필연적인 축복 성령의 역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많은 문제와 갈등들이 있잖아요. 그 부분들 속에서 육신적인 결정을 하지 말고 선택할 때에 정말 어떤 것이 성령의 인도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내가 어떻게 성령인도 받을까 고민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많은 문제와 갈등 속에서 그냥 쉽게 육신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어느 것이 성령의 인도일까? 선택 앞에서 그 고민들, 갈등들은 아무리 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와 이어집니다. 여러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고민, 염려, 갈등들은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근심하는 것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인도받기 위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이어진다는 사실.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성령의 축복입니다.
3.오직 성령의 삶
셋째로 오직 성령 인도받는 자의 삶이 어떤 삶이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16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아예 내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이것을 성령의 내주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16-17에도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영원히 우리 속에 함께하신다고 했습니다.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의 내주를 누리면, 우리의 모든 역사 속에 우리는 망할 수 없는 신분이 되어지는 것이고 우리의 모든 역사 속에 흑암이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내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세밀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특별히 선택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됩니다. 선택하는 부분에 있어서 내가 조금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나중에 더 큰 응답들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와 더불어 성령의 충만함. 이 성령의 충만함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나의 비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이 마지막에 보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순교하기 전에 스데반이 하늘의 보좌 우편에 서신 예수를 봤고, 그 영광이 충만하게 스데반에게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불안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현장인데 그런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령 충만함 속에서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평안과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그 현장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말이에요. 그것이 성령 충만함입니다. 모든 현장을 이길 수 있는 나의 비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나의 비밀이 무엇인가? 성령 충만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도록 하셨다는 것. 이 사실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고린도전서 3:3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너희는 어린아이와 같고 육신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영의 사람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영적인 축복의 역사들을 모르게 되면, 나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어떤 경우라도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대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쓰임 받은 사람은 하나같이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경우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성령의 사람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스데반은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영의 사람으로 영적인 큰 힘을 얻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현장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든 걸음속에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성령의 사람의 영적인 큰 힘을 얻고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주시는 참된 능력과 지혜로 현장을 정복하는 전도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0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지혜와 성령의 사람
(행6:8-15)
서론: 초대교회가 가졌던 비밀처럼,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의 사역이 방향 맞으면 ¹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하여지고 ²수많은 제자가 일어나며 ³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쓰시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행1;8의 증인, 행6:8,10, 7:55의 스데반)입니다. 하나님 없이 훌륭한 것, 좋은 것, 성공한 것들은 결국 실패한 것이 되지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선택과, 결정에도 계속 역사하십니다. 또한 보좌의 축복을 보게 되고, 그의 사역은 당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계속됩니다.(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복음의 전지역 확산, 세계선교를 위한 안디옥 교회 탄생, 사울의 회심). 그렇다면 지혜와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1) 우리 스스로는 실제로 힘이 없고, 조그마한 문제에도 흔들리며, 한계가 오기 때문입니다(사40:30).
1) 세상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함부로 우습게 볼 것이 아님(민13장의 정탐꾼의 고백)
2) 광명의 천사로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뜨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을 이길 수 없음(고후11장)
(2) “오직 성령”이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참된 기도제목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1) 나의 모든 과거(운명,굴레,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미래의 비전이 보여지며, 흑암조직이 무너짐
2) 하나님과 통하고(고전2:10) 모든 것을 알게 되며(요일2:20) 육신을 따라가지 않고 영적인 것을 이룰 수 있음
a. 아브라함 : 75년동안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다가 결단함(창13:14-18)
b. 오 바 댜 : 악한 아합왕 시대에 제자 100명 숨김으로 7천 제자와 도단성운동의 발판을 만듦(왕상18:1-6)
c. 바 울 : 육신만 따르면 곤고하고(롬7:25) 사망에 이르지만(롬8:6) 영을 따라가면 율법의 성취를 봄(롬8:4)
d. 예 수 님 : 오병이어 기적 후 제자들을 따로 모으심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6:63)
2. 오직 성령
(1) 성부 하나님 :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으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붙잡는 것이 하나님 만나는 것임(요1:1) - 내 평생이 주시는 말씀 & 그때그때 주시는 말씀
(2) 예수 그리스도 : 말씀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3) 성령의 역사 : 구원 받은 자에게 보혜사(보호하고 은혜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의 축복을 주십니다.
믿는 자에게 당연히 주신 축복, 문제를 해결하는 필연적 축복, 세상 이기는 절대적인 축복임
3. 오직 성령의 삶이란?
(1) 성령의 내주와 인도와 역사를 체험하라!!
1) 성령의 내주 : 이 축복을 누리면 현장의 흑암세력이 다 무너짐(고전3:16, 요14:16-17)
2) 성령의 인도 : 특별히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손해보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큰 응답)
3) 성령의 충만 : 모든 현장을 이길 수 있는 나만의 비밀(순교하기전 스데반의 천사와 같은 얼굴)
(2) 오직 성령의 삶을 누리지 못하면, 어린아이와 같고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고전3:3).
(3) 오직 성령의 삶을 누리면, 반드시 쓰임받고 어떤 경우도 이길 수 있습니다(요6:63).
결론: 오늘 본분의 스데반처럼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영적인 큰 힘을 얻으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과 지혜로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주간 현장 살리는 전도자로 이 축복 누리며 쓰임받기 바랍니다.
“지혜와 성령의 사람”
(행6:8~15)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안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6:8~15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찬양대 찬양 불렀던 것으로 인사합시다. 그리스도만 우리의 힘이 되시고 만족함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한날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고로 힘을 얻으시고 참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림으로 여러분 개인이 만족함의 축복을 누리는 응답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언제 일어나느냐, 우리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일치하게 될 때에, 우리 교회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일치하게 될 때에 환경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대 교회가 가졌던 비밀이 바로 그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 맞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로 어떤 응답이 왔느냐 하면 사도행전 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또 그 다음 온 응답이 있다면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일치하게 될 때에 말씀이 점점 왕성한 것은 물론이고 그 속에 참된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는 축복된 응답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헌신하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성령 인도 받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오늘 특히 이 자리에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들, 가장 성령의 인도 받는 자리로 인도됨을 믿습니다. 오늘도 최고로 축복 받고 은혜 받는 시간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지혜와 성령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은 하나님이 정말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어느 누구나 마음에 소원하는 바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하실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말로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그것을 모르면 성공한 것도 실패입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면 성공한 것도 실패이고, 훌륭해도 아무리 좋은 것도 그것을 모르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도 모든 것이 헛일이 되고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의 선택도 결정도, 계속해서 여러분의 걸음 속에 하나님의 증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진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일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가 말씀하고 있는 바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도 저와 여러분이 읽은 사도행전 6장 8절에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10절에 보면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은, 한 마디로 말하면 지혜와 성령의 사람, 다시 말해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서 나오는 지혜, 그것을 가진 사람이 바로 스데반이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세워지니까 그 성령의 사람을 아무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오늘 10절에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세상이 당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바로 성령의 사람은 세상이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진 않았습니다만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전체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7장 전체가 스데반에 대한 내용인데 마지막 부분에 스데반이 설교 한 번 하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할 때 7장 5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성령이 충만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보좌의 축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성령의 사람 스데반의 사역을 보면 설교 한 번 하고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늘날까지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서 오고 오는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가지고 응답 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인도 받는 모든 사역은 그 당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스데반이 정확한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 그리스도를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스데반은 진짜 한 번 죽더라도 제대로 죽는 죽음, 다시 말해 참된 축복이 무엇인지 아는 영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설교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죽음보다 그 죽음 이후가 더 위대한 사역이 되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사람은 그렇습니다. 죽음보다도 죽음 이후의 사역이 더 위대한 사역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스데반이 죽고 난 이후에 모든 지역으로 복음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의 문을 연 안디옥 교회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1장 19절에 보면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했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그리고 스데반의 죽음, 죽여도 된다는 그 증인의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회심하는 역사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로 성령의 사람의 죽음은 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응답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하면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 축복받는 그 응답의 주역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나는 실제로 힘이 없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우리는 조그마한 것에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힘 빠지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별스럽지 않은 자그마한 것에. 저는 제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떨 때는 별것 아닌 건데 기분이 한껏 좋아집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뭐 그것가지고 그러냐고 할지 모르지만 너무 기분이 낙심됩니다. 나도 모르게 우울에 빠집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조금 관리하고 하면 될 것인데 그게 안 되어서 어떨 때는 조금 관리가 되면 뭔가 기분이 좋고, 그래서 조금 수치를 보고 수치가 괜찮으면 거기 대해서 마음이 기쁩니다. 그런 제 자신을 보면서 아, 이것밖에 안 되는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은 실제로 힘이 없습니다. 자그마한 문제들 앞에서 연약하고 넘어지고 무너지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닙니까? 그래서 특별히 우리의 먹는 것, 입는 것, 의식주에 직면하게 되면 사실 우리가 힘이 없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잖습니까. 아무 힘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힘이 있어도 실제로 우리는 한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 사실을 잘 고백했습니다. 이사야서 40:30에 보면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인생, 이 땅에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다른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데 그야말로 세상은 어마어마합니다. 우습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글로벌화가 되어서 전 세계가 다 통하는 세상입니다만 강대국들 영향을 보십시오. 어마어마합니다. 그만큼 세상은 굉장합니다. 진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세상 앞에 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민수기 13장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이들의 고백처럼 "우리는 스스로 메뚜기같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세상이라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바벨탑이라는 사실이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아실 것은 세상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우습게 보아넘길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전혀 힘이 없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해서 나가라고 말씀하시고 성령충만 줄 것이니까 그것 가지고 너희는 땅 끝까지 증인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세상이 어마어마하고 굉장하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에 왜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을 우리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영적인 문제들을 만들어서 그 속에서 모든 인류를 빠트리고 있습니다. 이게 사탄의 일입니다. 이 사탄의 역사가 얼마나 완벽하냐? 믿는 자들에게도 어떻게 하든지, 고린도후서 11장 말씀에 보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믿는 자들을 미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게 사탄의 역사들입니다. 이 사탄의 역사들을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까? 절대로 인간으로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 이기는 방법이 있는데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면 사탄을 이기게 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룬 게 없게 되고 아무 것도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냥 성령이 아니라 '오직'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 영혼 속에 각인될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직' 될 때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제목들을 붙잡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도한 내용들을 보십시오. 거의 다 육신적인 기도가 아닙니까. 내 동기와 생각들 가지고, 내 욕심 채우기 위해서 한 육신적인 기도가 내 모든 삶입니다. 그런데 진짜 '오직'이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제목들이 붙잡혀지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직'이 되면 비로소 과거의 모든 운명에서 빠져나오고, 또 과거의 운명에서 빠져나와있지만 뭔가 모를 굴레와 틀 같은 얽매여 있는 부분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과거의 굴레와 틀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의 인도를 못 받고 있고 미래를 실패하는 겁니다. 그러면 언제 그 과거의 굴레와 틀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 '오직'이 되면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오래 되다 보니까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장례가 터지면 사실 네 다섯 건이 연달아 터져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연륜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 많은 성도들을 볼 때 하나교회 만큼 좋은 교회가 없고 좋은 성도들이 없습니다. 금요전도학교 때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교회가 지구상에서 최고로 좋은 교회이고 하나교회 성도가 지구상에서 최고로 훌륭한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면서 뭔가 기도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모두가 정말로 교회를 생각하면서 교회를 위해서 중심 가지고 기도하는 것인데, '뭔가 모를 저 틀 속에서 벗어나면 좋을텐데...'하는 겁니다. 우리도 모르게 틀을 내가 만들어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 언제 그 틀과 굴레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이 깨어지는 지 아십니까? '오직'이 될 때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나름대로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면 거의 과거에 연연하고 있고 거기에 붙잡혀서 그 상처들 때문에 오늘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언제 그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 진짜로 '오직'이 되어질 때입니다.
'오직'이 되어질 때 그 때야 비로소 미래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보여집니다. 미래를 향한 하나님이주시는 비전이 보여지고 거기에 강하게 역사하는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직'의 사람으로, '오직' 성령의 사람으로 승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성령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이 성령은 모든 것 곧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하면 "오직 성령"은 하나님과 통하는 겁니다. 누가 여러분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성령을 힙입으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20에 보면 "너희가 거룩한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모든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여러분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밀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성령의 비밀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한 번 보십시오. 75년 동안 육신적인 삶을 계속 추구했습니다. 어느날 아브라함이 굉장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육신적인 것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사실 지금까지 내가 다른 방향으로 살아왔었구나.'하고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 결단 가운데서 나중에 보면 자기 조카 롯과 이별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창세기 13:14-18에 보면 자기 조카를 떼어놓는 모습이 나옵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할 것이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고 하면서 조카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어디로 들어갔습니까? 창세기 13:18에 보면 상수리 나무 수풀 가운데 단을 쌓았습니다. 여러분, 그 전에는 아무리 아브라함이 살기를 몸부림쳐도 어려움이 계속 되었는데 그런데 아브라함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전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축복하셨는데 어느 정도로 축복하셨는가? 창세기 15:1에 보면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결단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에게 본격적인 영적인 축복들을 선언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를 다니면서 거의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 생활하면서도 세상 기준으로 살아가고, 세상 기준으로 교회를 섬기고, 세상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영적인 축복을 다 놓쳐버리고 육신적인 것만 기준 삼고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면 교회만 다닐 뿐이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에게는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이 영적인 축복을 전혀 보지 못하고 육신의 사람으로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 보면 영의 사람, 하나님의 통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산업인의 모델로 볼 수 있는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오바댜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이었고,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뭐냐? 오바댜는 아합왕의 국내 대신이었습니다. 아합왕이 다스리는 때에 국내 대신으로 중요한 관직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오바댜는 어떤 사람이냐? 아합왕의 원수인 엘리야의 제자입니다. 사실 오바댜가 선지자 오십 명씩 백 명을 숨겨서 키웠습니다. 왕이 몰랐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엘리야의 제자요, 아합왕의 신하인데 사실 아합왕과 엘리야는 원수관계이고 대적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 주변에 얼마나 많은 적들이 있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 시대에 다니엘이 미궁에 빠지도록 왕을 부추겨서 조서를 붙이게 만들고 결국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려서 결국 사자 굴에 집어넣었던 그 적수가 있었던 것처럼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당시 왕정시대에 얼마나 많은 자리를 탐하는 적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자기 집에 백 명의 선지자들을 키웠습니다.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나중에 칠천제자가 일어나게 되고, 이들로 말미암아 나중에 열왕기하 6장에 보면 도단성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엄청난 축복의 역사의 발판이 되었던 사실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오바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 일을 감당했느냐? 바로 하나님과 통하는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했던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신을 따라가지 않고서도 육신을 정복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면 육신 따라가지 않고서도 육신을 정복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세상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하려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에서 어려움이 와요. 세상에서 했던 경험들, 세상의 기준들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해요.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어려움이 오고, 여기에서 착각하고, 여기에서 실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육신적인 것만 가지고 '어떤 면에서 맞다 안 맞다, 문제가 있다 없다, 응답을 받았다 안 받았다' 그렇게 빠질 수 있습니다. 또 평생 육신적인 것만 가지고 논쟁하고, 싸움하는 것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진짜 영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성령의 사람. 이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우리가 결국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율법에 종노릇하게 된다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7:5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다시 말하면 만약에 육신적인 것만 따르게 되면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를 지배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로마서 7:24에 보면 결국은 자기 안에 육신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들을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육신만 따르게 되면 결국은 곤고함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고백한 내용이에요. 바로 그 전에 보면 바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의 인도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 죄의 권세 아래 끌려가지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안에서 죄의 권세가 강해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 아래 복종하는 이 사실들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고백했느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무슨 말이에요? 결국은 육신 따라 살아가게 되면 인생이 영원히 곤고함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에요. 육신을 따라 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의 성취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제자가 되어지고, 제자 삼는 사역을 우리에게 맡기셨는데 우리가 육신에 속한 자가 되어지고 육신을 따라가게 되면은 말씀의 성취를 볼 수가 없어요. 로마서 8:4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진다는 사실. 반대로 말하면 영을 따라가지 않고 육신을 따라가는 자는 율법의 성취, 말씀의 성취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8:6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르게 되면 결국은 사망이 이른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결론짓는다면 육신적인 삶을 살아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행했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귀신들린 자를 내어 쫓으시니 거기에 많은 무리들이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다 도망갔어요. 그 무리들은 육신을 따르는 육신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시락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이 요한복음 6장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당장 사람들이 어떻게 나왔느냐? "우리의 왕으로 삼자." 이것이 육신 신앙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따로 산에 불러서 중요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함이라." 여러분,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는 응답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성령?
둘째로 오직 성령이란 무엇인가? 교회사에 보면은 오직 성령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쭉 비추어 보면 거의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은사 운동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이라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성부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인다면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상입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말씀 붙잡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말씀 붙잡는 것이 하나님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성경 전체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그 전체 말씀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이 성경 전체에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인생이 왜 망할 수밖에 없는가?' 인생의 열두 가지 부분들에 대한 답을 이야기 하고 있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계속해서 역사 속에 일곱 가지 재앙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고, 열두 가지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성경전체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들어와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 말씀 속에서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내 평생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시간마다 또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올 때마다 강단을 통해서 그때그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부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 다음에, 이 말씀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부터 모든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답은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되어지면 여러분 모든 배후에 저주와 재앙과 흑암의 세력들이 무너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셨는데 이 성령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성령을 가지고 다른 이름으로 보혜사라고 이야기 합니다. 보호하고, 우리에게 은혜주시고,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축복, 하나님이 당연히 주시기로 한 축복이 뭐냐? 성령을 약속하셨어요. 이 성령의 충만함의 비밀을 누리게 되면, 우리의 문제 해결하는 필연적인 축복을 오게 되어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절대적인 축복이 성령의 역사를 누리게 될 때 나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 성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그 말씀을 붙잡는 자에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시고, 구원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당연히 누려야 할 축복 성령의 역사,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절대적인 축복 성령의 역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필연적인 축복 성령의 역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많은 문제와 갈등들이 있잖아요. 그 부분들 속에서 육신적인 결정을 하지 말고 선택할 때에 정말 어떤 것이 성령의 인도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내가 어떻게 성령인도 받을까 고민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많은 문제와 갈등 속에서 그냥 쉽게 육신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어느 것이 성령의 인도일까? 선택 앞에서 그 고민들, 갈등들은 아무리 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와 이어집니다. 여러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고민, 염려, 갈등들은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근심하는 것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인도받기 위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이어진다는 사실.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성령의 축복입니다.
3.오직 성령의 삶
셋째로 오직 성령 인도받는 자의 삶이 어떤 삶이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16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아예 내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이것을 성령의 내주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16-17에도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영원히 우리 속에 함께하신다고 했습니다.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의 내주를 누리면, 우리의 모든 역사 속에 우리는 망할 수 없는 신분이 되어지는 것이고 우리의 모든 역사 속에 흑암이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내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세밀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특별히 선택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됩니다. 선택하는 부분에 있어서 내가 조금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나중에 더 큰 응답들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와 더불어 성령의 충만함. 이 성령의 충만함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나의 비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이 마지막에 보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순교하기 전에 스데반이 하늘의 보좌 우편에 서신 예수를 봤고, 그 영광이 충만하게 스데반에게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불안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현장인데 그런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령 충만함 속에서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평안과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그 현장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말이에요. 그것이 성령 충만함입니다. 모든 현장을 이길 수 있는 나의 비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나의 비밀이 무엇인가? 성령 충만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도록 하셨다는 것. 이 사실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고린도전서 3:3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너희는 어린아이와 같고 육신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영의 사람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영적인 축복의 역사들을 모르게 되면, 나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어떤 경우라도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대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쓰임 받은 사람은 하나같이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경우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성령의 사람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스데반은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영의 사람으로 영적인 큰 힘을 얻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현장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든 걸음속에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성령의 사람의 영적인 큰 힘을 얻고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주시는 참된 능력과 지혜로 현장을 정복하는 전도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0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지혜와 성령의 사람
(행6:8-15)
서론: 초대교회가 가졌던 비밀처럼,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의 사역이 방향 맞으면 ¹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하여지고 ²수많은 제자가 일어나며 ³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쓰시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행1;8의 증인, 행6:8,10, 7:55의 스데반)입니다. 하나님 없이 훌륭한 것, 좋은 것, 성공한 것들은 결국 실패한 것이 되지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선택과, 결정에도 계속 역사하십니다. 또한 보좌의 축복을 보게 되고, 그의 사역은 당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계속됩니다.(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복음의 전지역 확산, 세계선교를 위한 안디옥 교회 탄생, 사울의 회심). 그렇다면 지혜와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1) 우리 스스로는 실제로 힘이 없고, 조그마한 문제에도 흔들리며, 한계가 오기 때문입니다(사40:30).
1) 세상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함부로 우습게 볼 것이 아님(민13장의 정탐꾼의 고백)
2) 광명의 천사로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뜨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을 이길 수 없음(고후11장)
(2) “오직 성령”이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참된 기도제목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1) 나의 모든 과거(운명,굴레,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미래의 비전이 보여지며, 흑암조직이 무너짐
2) 하나님과 통하고(고전2:10) 모든 것을 알게 되며(요일2:20) 육신을 따라가지 않고 영적인 것을 이룰 수 있음
a. 아브라함 : 75년동안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다가 결단함(창13:14-18)
b. 오 바 댜 : 악한 아합왕 시대에 제자 100명 숨김으로 7천 제자와 도단성운동의 발판을 만듦(왕상18:1-6)
c. 바 울 : 육신만 따르면 곤고하고(롬7:25) 사망에 이르지만(롬8:6) 영을 따라가면 율법의 성취를 봄(롬8:4)
d. 예 수 님 : 오병이어 기적 후 제자들을 따로 모으심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6:63)
2. 오직 성령
(1) 성부 하나님 :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으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붙잡는 것이 하나님 만나는 것임(요1:1) - 내 평생이 주시는 말씀 & 그때그때 주시는 말씀
(2) 예수 그리스도 : 말씀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3) 성령의 역사 : 구원 받은 자에게 보혜사(보호하고 은혜주시며 가르치시는 분)의 축복을 주십니다.
믿는 자에게 당연히 주신 축복, 문제를 해결하는 필연적 축복, 세상 이기는 절대적인 축복임
3. 오직 성령의 삶이란?
(1) 성령의 내주와 인도와 역사를 체험하라!!
1) 성령의 내주 : 이 축복을 누리면 현장의 흑암세력이 다 무너짐(고전3:16, 요14:16-17)
2) 성령의 인도 : 특별히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손해보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큰 응답)
3) 성령의 충만 : 모든 현장을 이길 수 있는 나만의 비밀(순교하기전 스데반의 천사와 같은 얼굴)
(2) 오직 성령의 삶을 누리지 못하면, 어린아이와 같고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고전3:3).
(3) 오직 성령의 삶을 누리면, 반드시 쓰임받고 어떤 경우도 이길 수 있습니다(요6:63).
결론: 오늘 본분의 스데반처럼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영적인 큰 힘을 얻으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과 지혜로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주간 현장 살리는 전도자로 이 축복 누리며 쓰임받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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