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성령의 역사(박지온p)
2015-06-2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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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8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구원과 성령의 역사
(엡2:1-8)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주신 본문 가지고 “구원과 성령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원로목사님 나오셔서 말씀 주실 때에 큰 은혜, 응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 속에 있게 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며 인도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 주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 인도 받는 것을 확인하는 큰 기쁨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말씀 보면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 선물이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리고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우리가 ‘신앙’이라 말할 때 무얼 자꾸 믿어야 하고 노력해야 하고 얻어야 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말하는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 종교는 우리가 노력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복음은, 무어라 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찾아오신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와 신앙은 많이 다릅니다. 종교와 복음. 그런데 이것을 많은 경우, 갈급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모하다가 오는 경우가 결국 종교로, 또 우상으로 빠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 특징이 기다리면 됩니다. 기다리면 됩니다. 그리고 신앙은 믿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어라 했습니까, “믿어지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저는 이 말이 너무 좋습니다. 믿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도 저절로 되어지고 그리고 하나님 은혜로 모든 일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내게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다릅니다. 왜 부지런해지느냐? 재미가 있으니까, 되어지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자꾸 안 되면, 노력해도 안 되면 하기 싫습니다.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새벽부터 찾아오느냐? 되어지니까. 그런데 새벽기도 늘 하던 사람이 새벽에 안 나오면 오히려 무언가 몸과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류목사님이 무시기도를 계속하다가 이 기도를 잠시만 빠져도, 특히 정시기도하는 것, 아침에 기도를 조금만 빠져도 종일 무언가 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표를, 되어지는 시간표를 기다리면 됩니다. 무엇을 하려고 애쓰고 그러지 마십시오. 기도는 되어지는 것입니다. 애를 쓰고 그러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저절로 됩니다.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기도하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애를 쓰다 보니 다른 방향으로 빠지게 됩니다, 다른 방향으로. 그러니 이것이 종교나 우상으로 빠지게 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어디에 더 많으냐? 기독교보다 밖에 훨씬 더 많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 별로 기도 안 합니다. 더군다나 다락방하는 사람들은 기도 안 합니다. 거의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다른 것하는 게 더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기도를 안 합니다. 왜? 기도를 안 해도 믿어지니까. 되어질 것을 믿으니까. 그런데 진짜 믿으면 기도하게 되는데 그것도 반쯤 믿는가 봅니다. 되어질 것을 믿기는 믿는데 반쯤 믿고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되어지는, 축복되어지는 그 큰 절대적인 무엇 속에? 계획 속에, 제가 늘 말하는 주권 속에 인도를 받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운명에 속해 있습니다. 운명은 역시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같이 비슷하게 보여도 운명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망하게 되는 운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손에 있는 자에게 있는 역사입니다. 결국 어디 갑니까?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허무하게 어디에 빠집니까? 지옥으로 직행합니다. 허무함 속에. 그러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얼마나 이 말씀이 무서운지요, 잘 나가다가 어느 날 죽을 때 아니구나, 몇 번 이런 생각을, 옛날에 더군다나 많이 했습니다, 죽음 직전에 있을 때. 그런데 사람은 죽음이 가까우면 환경도 생각도 다 바뀝니다. 내가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서 내 주변과 환경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내가 죽음이 가까운 때에 아마, 며칠 안 있으면 죽겠다, 얼마 안 있으면 죽겠다 그럴 때에 그래도 서울에, 덕평에 훈련 받으러 갑니다. 그때 가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무덤입니다. 이상합니다. 쌍묘가 많았습니다. 아마 먼저 죽는 사람이 그렇게 원하는지 늦게 가는 사람이 내가 죽으면 누구 옆에 묻어 달라 그러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면 많은 경우 거의 쌍묘입니다. 묘가 나란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이는 것이 그 때 내 형편이 빨리 죽는가보다, 죽음 직전에 있을 때 내 생각입니다. 묘가 많이 있는 걸 봅니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안 보입니다. 거의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보면 우습습니다. 아, 옛날에 내가 저거 보고 많이 생각을 했지, 그런데 이제는 그게 전혀 안 보입니다. 이제는 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산천이고 특히 요즘 많이 보이는 것이 녹음, 전부 산이 짙어서 너무 놓습니다. 녹음을 보고. 그러면 녹음과 함께 아주 기분이 상쾌해지는 산소 충만한 것, 그것이 보이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서 감사가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제 찬송, 찬양을 불렀는데 제가 치유할 때 제일 많이 불렀던 노래가 이 노래입니다. 왜? 가시가 있어도 좋고 엎어져도 좋고 자빠져도 좋고, 뭐라고 합니까? 감사할 뿐입니다. 왜?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 축복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중요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강사단 메시지를 잠깐 보니까 사람들이 무엇을 고하는 것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 안 받았다 여기에 굉장히 많이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했더니만 응답하셨더라, 참 하나님 감사하다. 그것은 감사가 아니라 오히려 이상하게 됩니다. 거기 계속 빠지면. 기도할 때 어려움이 와도 감사할 수 있어야 이것이 바로 믿는 진짜 신앙이요 복음입니다. 왜? 여러분이 죽는다고 하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여기 살았다는 것이 좋고 그렇고 할 게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응답받았다, 그것이 무엇이냐,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응답입니다. 축복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응답입니다. 뭐 받았다 안 받았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잘 됐다 못 됐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앉아 있다, 이것이, 뭐라고요? 응답 중의 응답입니다. 왜? 이 자리에 앉았다, 하나님의 축복의 주권 속에 앉아 있다, 그러면 반드시 나로 하여금,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시간표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자리에 앉았다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을 찾으면 됩니다. 그것이 시간표입니다.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안 됐을 때는,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운명 속에 있든지,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축복의 주권 속에 있든지 두 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그 주권이 축복의 주권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믿는 자들이, 특히 우리 복음 속에 있는 자들이 오늘 감사하는 것처럼 가시가 있어도 감사하고 넘어져도 감사하고, 왜 그럴 수 있느냐? 주권이라 그렇습니다. 문제가 온다 안 온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 오면 축복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사를 찾으면 모든 것이 치유가 됩니다. 모든 것이 불평으로 인도받았다, 그것은 사단의 인도이지 성령의 인도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라고 확신할 수 있는 큰 배경이 지금 내가 감사하고 있는가 아닌가. 무슨 문제가 와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런 문제 속에 주님,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이것이 저절로 나오면 그것이 가장 성령의 인도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라고 뭘 받았다, 뭔가 이상한 걸 보았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 바로 지금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볼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는 것도 감사한 것, 이것이 성령 인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언제이냐 하면 아플 때입니다. 유일한 시간이 실패했을 때입니다. 유일한 시간이 병들 때입니다. 하기는 너무 아플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기 귀찮고 아픈 것만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왜? 내가 아프면 무슨 소리가 먼저 나옵니까? 아야. 그러면 주여 소리도 그때는 잘 안 나옵니다. 주여 소리보다 먼저 아야. 힘든 소리가 나옵니다. 어쨌든 그때는 오직 내 아픈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큰 어려움 속에 들어갈수록 그게 오히려 감사한 우리 삶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특히 무엇이라 했느냐 하면 제가 좀 안 그렸는데 요새, 한 번씩 그려드릴 수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창조하신 분, 하나님이십니다. 창조하실 때 여러분과 저를 창조할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우리에게 오늘 본문 속에서 이 창조 속에 이 주권 속에 살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창조는 또 세상과는 또 다른 배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조 속에 있는 여러분이 계속해서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간다고 했습니까? 어디로? 예, 영원 속으로 갑니다. 천국이라고 하지만 더 천국 속에 들어가도 천국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천국이 지속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히 천국이 아니고 눈을 떴는데 지옥에 있다면, 기가 찹니다. 눈을 떴는데 아, 왔구나, 이것 감사할 일 아닙니까? 눈을 떴는데 아이고, 아니구나, 이렇게 되면 그 인생은 그래서 허망하다 그러는 것입니다. 헛된 것이 됩니다. 눈을 떴는데 영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24시 기도, 그 다음 25시는 영원이라고 했지요, 영원은 말하자면 천국입니다. 이 천국에서도 영원한 역사와 은혜,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늘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토록이라는 걸 잘 쓰고 그걸 또 좋아합니다. 왜? 이것이 어느 정도선에서 끝이 아닙니다. 계속.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 속에서 영원토록 살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눈을 떠도 감사하고 눈을 감아도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늘 우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자는 것은 무엇을 연습한다고요? 죽음을 연습한다고 합니다. 왜? 눈을 감았다가 그 이튿날 일어나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눈을 감았다, 그런 사람들 많은 경우에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다가 일어났다, 그러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영원한 생명 속에 일어납니다. 여러분, 자도 감사하고 또 일어나도 감사합니다. 아침에도 기지개켜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이러지 주여, 괴롭습니다 아니지 않습니까? 기지개켜면서 괴롭다 그러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기지개켜면서 상쾌해야지, 찌뿌듯하고 이상하면 여러분, 감사가 떨어진 것입니다. 좍 기지개를 켜면서 감사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게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 생활이 즐겁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무어라 했느냐 하면 6절 말씀 한 번 읽어 봅시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 어디? “하늘에 앉히시니.” 하늘에 앉히는 이 현장이 어디입니까?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오늘 하나교회 교인들에게 어떻게요? 하늘에 앉히사...
여러분 지금 어디에 앉았습니까? 교회 앉아 있는게 아니고 하늘에 앉히사 ...무엇으로? 성령으로. 여러분이 성령이 내 안에 확인되는 만큼 언제나 내가 있는 장소가 하늘입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이것이 확인 될수록 감사가 안 나오면 거짓말이지요. 제가 많은 괴로움 속에 죽음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도 누려야 된다는 말이 있지요.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왜? 죽음은 누릴 수 밖에 없지요. 고통도 누릴 수 밖에 없지요. 왜 이 고통 끝나면 아니야 이 고통과 함께 어딘가 영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셨지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러분과 내가 앉은 이 자리에 현실적으로 벌써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미래까지도 하나님 나라에 앉히셨습니다. 그래서 총신에 가면 배운것이 총신에서 무천년설을 제가 우리 교회에도 총신 출신이 많으니까 무천년설이 지금 천국입니다. 천국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이후에 성령으로 임할 때에 지금이 바로 천국입니다. 전천년설도 어떤 면에서 성경에서 많이 강조했어요. 그러나 사실은 무천년, 전천년, 그런데 후천년은 천국이 없다는 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이 없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좋아진다는 설이 후천년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이 없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천년도 무천년도 똑같이 수용하고 있는데 특별히 우리 총신에서는 옛날의 합동이지요. 우리가 지금 있는 개혁은 아니지만 개혁도 마찬가지로 거의 비슷한 배경이지요. 그러나 보면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어디로 성령으로 하늘에 앉히시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이것을 못 느끼는 만큼 우리는 우울해요. 느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확인되느냐 하면 그것이 다섯가지(구원의 축복) 설명을 하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렇게 설명을 해 나가도 아마 이 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될 수 있으면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서 간단히 하겠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축복을 받은 자가 지금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 축복을 받는 것이 영접과 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론에 있어서 상세히 기억해야 될 것이 성령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이 어디에 오세요? 내 안에 오신다고 하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시면 여러분과 저가 죽어요. 왜 ? 그 큰 영광스런 분이 내 안에 오시면 내가 터져버리지 그 큰 영광을 내가 품고 살아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내 안에 오시는 길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로부터 위에서부터 임합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영접할 때에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십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조금 구분을 해야 할 것은 성령의 감화라고 많이 씁니다. 성령의 감화라고 할 때는 성령의 감화가지고도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경우 배신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고, 영영 돌아오지 않고 딴 데로 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내 생각이고, 감화를 일단 받았다...하나님의 붙드신 자는 돌아오지 영영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감화만 받았을 때에 베드로처럼 배반을 하고 그렇게 사랑한다고 고백해 놓고 다른 소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아실 것은 오순절 성령이 기점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가지고 제가 이것을 가지고 목회 대학원에서 많은 것을 특별히 성령론에 대해서 많은 것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옛날에는 성령론을 체계적으로 아담 때부터 강의한 내용을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영배 교수라고 총신에서 제가 나간 후에 들어오셨어요. 그분이 들어오셔서 성령론을 강의 했습니다. 류목사님께서 특별히 초청하신 것 같아요. 성령론을 강의하시면서 아담 때부터 성령에 대한 역사를 강의해 나가셨어요. 분석을 해 나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많은 은혜를 받고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분 말씀이 감화를 받아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베드로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령감화를 받고 제자가 되었어요. 성령감화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배반하는 자리에 앞장섰어요. 자 우리가 고기 잡으러 가자 자기들을 따라 함께 12제자를 데리고 어디로 갔어요? 갈릴리 바다로 옛날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언제?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고서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옛날에 우리가 체험 하면은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면 성령체험, 방언 받는다 이런것도 있지만 지금 체험하면 누구를 체험해요? 그리스도를, 복음을, 구원을, 감격을 체험했느냐 안했느냐 그것이 성령의 바로 미터입니다.
여러분 성령세례 받는다, 성령충만 받는 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인지했던 것은 성령이 처음 금방 임할 때에 성령충만도 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는 진짜 생명 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령충만이 시간 가면 나태해져요. 그런데 기도하면 또 그것이 증가될 수 있어요. 그런데 오순절 성령이 체험되는 경우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복음이 확인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 다음에 미래에 천국이 확인됩니다. 이 체험이 확인되고 난 후에 베드로는 절대 변화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락방에서 많은 경우 갈등했던 부분들이 뭐냐 하면 믿었는데, 영접했는데 돌아가거든요. 지금도 아마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 있겠지요. 갈릴리로, 옛날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은 또 돌아옵니다. 올 때의 은혜를 뭐라고 그랬습니까?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했잖아요. 제가 많이 강조했던 것이..십자가의 생명이 그에게 있을 때는 딴 데로 헤메고 돌아다녀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반 죽여서라도 기어코 옵니다.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여기에 앉은 분들이 거의 그런 케이스에 해당이 되어요.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예수를 잘 믿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는 것이지. 그래서 초대교회에는 성령을 체험하고 강조하고 기도했던 기도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 현재 하나님 저를 구원시켜 주옵소서. 이런 기도 안하잖아요. 하나님 내게 능력을 주옵소서. 전도의 능력, 또 하나님이 선교의 능력...이것이 초대교회의 기도였고, 구원 받은 자 성령을 체험한 자의 기도가 능력입니다. 저절로 그렇게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성령의 감화로는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락방에서 영접하고도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다고 하는데도 그것은 감화이지요. 믿을 수 있는 그런 수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적인 용어를 오래 할 수는 없지만 다음 주에도 계속 제가 강단에 서야 하는데 그때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이 중심으로 다섯 개 부분을 중심으로 해석을 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여기에 오신 분들 중에서 이 말을 처음 듣는 분들이 더러더러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이래가지고는 무슨 말인지를 잘 몰라요. 상세히 설명하면 아 ! 그거구나..그래 되지요. 제가 많은 경우 듣는 이야기 중에서 이 설명 중에서 구원 받은 사람이 상당히 있더라고요. 구원 받은 것에 확신 가지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더라고요. 저에게 가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요. 그리고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확신이 생기면서 평안이 오더라고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아마 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오늘 나왔습니다마는 오늘 그 보다도 일단 개괄적인 이야기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이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완전한 복음에 대한 체험이 이루어집니다. 그때부터 그래서 이것을 이용한 것이 프리메이슨, 뉴에이지입니다. 그것을 데리고 가서 어디에? 악령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악령도 체험하면 거기에 빠져 버립니다. 올 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상종교 하는 사람들이 다른 것에 빠진 사람들이, 쉽게 말해서 남묘호랭계교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악령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 내 몸에 변화가 왔던지 무슨 변화가 왔던지 또 아니면 다른 종교도 방언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고 하면 완전히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프리메이슨이라든지, 뉴에이지가 바로 이것을 잡고 세상을 지금 차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이 체험되는데 왜 세상이 안 바뀌어지겠어요? 여러분들이 구하는 성령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들에게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겠느냐 너희가 구하는 성령을 왜 안 주겠느냐 그랬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사람들,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기도할게 뭡니까? 지금 내게 성령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성령의 역사 속에 있게 해 주옵소서. 쉽게 말해서 더 하나님 내게 성령충만을 주셔서, 성령을 체험하게 해 주소서...그래서 옛날에는 성령체험을 구체적인 이 체험을 뭐라고 했느냐 하면 성령세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세례는 바로 체험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세례가 되어져야 올 인 할 수 있습니다. 유일성이 뭔지 이해가 됩니다. 되어져야 오직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리스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체험이 안 되면 내게 확인이 안 되면 그리스도만 바라볼 수 없어요. 24시기도 이것이 되어야 나옵니다. 사람을 만나도 이것이 되어야 주여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과 내가 대화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인도하옵소서. 이것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무시기도가 자꾸 어렵다고 하는데 모든 사건, 일, 문제 계속해서 누구만 바라보면 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무시기도입니다. 여기서 응답으로 오는 것이 25시 기도입니다. 응답으로 오는 것이 뭡니까? 영원이라고 그랬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입니다. 지금 여러분과 저는 이미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더 응답을 받으려고 합니까? 축복 속에 있어요. 벌써...뭘 더 받으려고 합니까? 이것을 더 받으려고 나갈 때에 종교로 빠지거나 우상으로 빠집니다. 기도도 그런 식으로 나갑니다. 하나님 뭘 주옵소서...자꾸 이런 방향으로 그래서 이 사실이 어디에서부터 이루어졌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뭐라고요? 구원받은 자들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속에 지금 있습니다. 확신합니까? 할렐루야!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없어도 있어도 돈, 명예 구할 것 없어요. 없어도 있어요. 왜 감사하느냐 바로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요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될 때에 누리게 된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이 됩니다. 아픈 것도 아야! 하나님...아야! 주여 이렇게 나오지 아야 아야 아야...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기 때문에 저는 정말 죽음 직전에 있을 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 제가 깊은 터널 속에 있습니다. 천국으로 보이든지 나아서 세상을 다시 또 보든지" 항상 그랬지. 죽음이란 것, 절망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왜 지금 여러분과 저를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 교회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지금 역사하고 있습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2015년 6월 28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구원과 성령의 역사
(엡2:1-8)
서론: 신앙생활은 무조건 믿고 열심히 노력하고, 그래서 뭔가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입니다. 복음은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기에 은혜이며, 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신앙의 특징은 기다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억지로 함으로 다른 방향으로 빠지는 종교가 아니라, 믿어지고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 왜 부지런해지게 됩니까? 그것은 되어지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되어지는 시간표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고,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1. 절대적인 주권(계획) 속의 되어지는 삶
가. 불신자의 삶
1)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운명에 속한채로 시간이 갈수록 망하게 되어있음
2) 인생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은 실패가운데 허무하게 지옥으로 직행함
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축복의 주권속에 있는 삶 (이것은 은혜, 선물임)
1)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절대적인 계획 속에서 감사가 나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응답 중의 응답)
2) 참된 감사를 찾으면, 성령의 인도 속에서 치유가 시작됨 (질병과 실패는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는 축복)
2. 창조부터 영원토록
가. 오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는 성령으로 하늘에 앉히신 자리입니다.
1) 창조: 하나님께서는 주권 속에 살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심
2) 영원: 천국에서도 영원한 역사와 은혜 가운데 살도록 계획되어 있음
나. 구원과 성령의 역사
1) 영접: 칼빈의 5대 강령(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의 축복을 받은 것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위로부터 내 안에 오심(하지만 감화만으로는, 베드로처럼 갈릴리바다로 돌아갈 수 있음)
2) 성령세례: 절대 흔들리지 않는 구체적인 체험이기에, 이때부터 나의 삶을 올인 할 수 있음
오직과 유일성이 이해되어지고 24시, 25시, 영원의 비밀에 들어갈 수 있음
결론: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8절). 이것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9절).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존재입니다(10절). 그러기에 지금 이 속에 있는 우리는, 세상의 것(돈, 명예)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주간 지금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신 사실을 믿으며 절대주권 가운데, 되어지는 전도자의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무조건 믿고 열심히 노력하고, 그래서 뭔가를 얻어야 하는 종교생활에서 빠져나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되어지는 시간표를 기다리는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바로 성령으로 하늘에 앉히신 자리임을 믿으며, 구원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한주간 참된 감사가 회복되는 가운데, 죽음 앞에서도 누릴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구원과 성령의 역사
(엡2:1-8)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주신 본문 가지고 “구원과 성령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원로목사님 나오셔서 말씀 주실 때에 큰 은혜, 응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 속에 있게 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며 인도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 주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 인도 받는 것을 확인하는 큰 기쁨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말씀 보면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 선물이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리고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우리가 ‘신앙’이라 말할 때 무얼 자꾸 믿어야 하고 노력해야 하고 얻어야 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말하는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 종교는 우리가 노력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복음은, 무어라 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찾아오신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와 신앙은 많이 다릅니다. 종교와 복음. 그런데 이것을 많은 경우, 갈급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모하다가 오는 경우가 결국 종교로, 또 우상으로 빠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그 특징이 기다리면 됩니다. 기다리면 됩니다. 그리고 신앙은 믿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어라 했습니까, “믿어지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저는 이 말이 너무 좋습니다. 믿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도 저절로 되어지고 그리고 하나님 은혜로 모든 일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내게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다릅니다. 왜 부지런해지느냐? 재미가 있으니까, 되어지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자꾸 안 되면, 노력해도 안 되면 하기 싫습니다.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새벽부터 찾아오느냐? 되어지니까. 그런데 새벽기도 늘 하던 사람이 새벽에 안 나오면 오히려 무언가 몸과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류목사님이 무시기도를 계속하다가 이 기도를 잠시만 빠져도, 특히 정시기도하는 것, 아침에 기도를 조금만 빠져도 종일 무언가 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표를, 되어지는 시간표를 기다리면 됩니다. 무엇을 하려고 애쓰고 그러지 마십시오. 기도는 되어지는 것입니다. 애를 쓰고 그러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저절로 됩니다.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기도하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애를 쓰다 보니 다른 방향으로 빠지게 됩니다, 다른 방향으로. 그러니 이것이 종교나 우상으로 빠지게 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어디에 더 많으냐? 기독교보다 밖에 훨씬 더 많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 별로 기도 안 합니다. 더군다나 다락방하는 사람들은 기도 안 합니다. 거의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다른 것하는 게 더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기도를 안 합니다. 왜? 기도를 안 해도 믿어지니까. 되어질 것을 믿으니까. 그런데 진짜 믿으면 기도하게 되는데 그것도 반쯤 믿는가 봅니다. 되어질 것을 믿기는 믿는데 반쯤 믿고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되어지는, 축복되어지는 그 큰 절대적인 무엇 속에? 계획 속에, 제가 늘 말하는 주권 속에 인도를 받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운명에 속해 있습니다. 운명은 역시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같이 비슷하게 보여도 운명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망하게 되는 운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손에 있는 자에게 있는 역사입니다. 결국 어디 갑니까?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허무하게 어디에 빠집니까? 지옥으로 직행합니다. 허무함 속에. 그러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얼마나 이 말씀이 무서운지요, 잘 나가다가 어느 날 죽을 때 아니구나, 몇 번 이런 생각을, 옛날에 더군다나 많이 했습니다, 죽음 직전에 있을 때. 그런데 사람은 죽음이 가까우면 환경도 생각도 다 바뀝니다. 내가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서 내 주변과 환경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내가 죽음이 가까운 때에 아마, 며칠 안 있으면 죽겠다, 얼마 안 있으면 죽겠다 그럴 때에 그래도 서울에, 덕평에 훈련 받으러 갑니다. 그때 가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무덤입니다. 이상합니다. 쌍묘가 많았습니다. 아마 먼저 죽는 사람이 그렇게 원하는지 늦게 가는 사람이 내가 죽으면 누구 옆에 묻어 달라 그러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면 많은 경우 거의 쌍묘입니다. 묘가 나란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보이는 것이 그 때 내 형편이 빨리 죽는가보다, 죽음 직전에 있을 때 내 생각입니다. 묘가 많이 있는 걸 봅니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안 보입니다. 거의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보면 우습습니다. 아, 옛날에 내가 저거 보고 많이 생각을 했지, 그런데 이제는 그게 전혀 안 보입니다. 이제는 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산천이고 특히 요즘 많이 보이는 것이 녹음, 전부 산이 짙어서 너무 놓습니다. 녹음을 보고. 그러면 녹음과 함께 아주 기분이 상쾌해지는 산소 충만한 것, 그것이 보이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서 감사가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제 찬송, 찬양을 불렀는데 제가 치유할 때 제일 많이 불렀던 노래가 이 노래입니다. 왜? 가시가 있어도 좋고 엎어져도 좋고 자빠져도 좋고, 뭐라고 합니까? 감사할 뿐입니다. 왜?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 축복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중요한 역사입니다. 그래서 강사단 메시지를 잠깐 보니까 사람들이 무엇을 고하는 것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 안 받았다 여기에 굉장히 많이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했더니만 응답하셨더라, 참 하나님 감사하다. 그것은 감사가 아니라 오히려 이상하게 됩니다. 거기 계속 빠지면. 기도할 때 어려움이 와도 감사할 수 있어야 이것이 바로 믿는 진짜 신앙이요 복음입니다. 왜? 여러분이 죽는다고 하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여기 살았다는 것이 좋고 그렇고 할 게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응답받았다, 그것이 무엇이냐,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응답입니다. 축복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응답입니다. 뭐 받았다 안 받았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잘 됐다 못 됐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앉아 있다, 이것이, 뭐라고요? 응답 중의 응답입니다. 왜? 이 자리에 앉았다, 하나님의 축복의 주권 속에 앉아 있다, 그러면 반드시 나로 하여금,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시간표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자리에 앉았다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을 찾으면 됩니다. 그것이 시간표입니다.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안 됐을 때는,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운명 속에 있든지,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축복의 주권 속에 있든지 두 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그 주권이 축복의 주권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믿는 자들이, 특히 우리 복음 속에 있는 자들이 오늘 감사하는 것처럼 가시가 있어도 감사하고 넘어져도 감사하고, 왜 그럴 수 있느냐? 주권이라 그렇습니다. 문제가 온다 안 온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 오면 축복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사를 찾으면 모든 것이 치유가 됩니다. 모든 것이 불평으로 인도받았다, 그것은 사단의 인도이지 성령의 인도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라고 확신할 수 있는 큰 배경이 지금 내가 감사하고 있는가 아닌가. 무슨 문제가 와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런 문제 속에 주님,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이것이 저절로 나오면 그것이 가장 성령의 인도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라고 뭘 받았다, 뭔가 이상한 걸 보았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 바로 지금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볼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는 것도 감사한 것, 이것이 성령 인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언제이냐 하면 아플 때입니다. 유일한 시간이 실패했을 때입니다. 유일한 시간이 병들 때입니다. 하기는 너무 아플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기 귀찮고 아픈 것만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왜? 내가 아프면 무슨 소리가 먼저 나옵니까? 아야. 그러면 주여 소리도 그때는 잘 안 나옵니다. 주여 소리보다 먼저 아야. 힘든 소리가 나옵니다. 어쨌든 그때는 오직 내 아픈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큰 어려움 속에 들어갈수록 그게 오히려 감사한 우리 삶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특히 무엇이라 했느냐 하면 제가 좀 안 그렸는데 요새, 한 번씩 그려드릴 수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창조하신 분, 하나님이십니다. 창조하실 때 여러분과 저를 창조할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우리에게 오늘 본문 속에서 이 창조 속에 이 주권 속에 살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창조는 또 세상과는 또 다른 배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조 속에 있는 여러분이 계속해서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간다고 했습니까? 어디로? 예, 영원 속으로 갑니다. 천국이라고 하지만 더 천국 속에 들어가도 천국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천국이 지속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히 천국이 아니고 눈을 떴는데 지옥에 있다면, 기가 찹니다. 눈을 떴는데 아, 왔구나, 이것 감사할 일 아닙니까? 눈을 떴는데 아이고, 아니구나, 이렇게 되면 그 인생은 그래서 허망하다 그러는 것입니다. 헛된 것이 됩니다. 눈을 떴는데 영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24시 기도, 그 다음 25시는 영원이라고 했지요, 영원은 말하자면 천국입니다. 이 천국에서도 영원한 역사와 은혜,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늘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토록이라는 걸 잘 쓰고 그걸 또 좋아합니다. 왜? 이것이 어느 정도선에서 끝이 아닙니다. 계속.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 속에서 영원토록 살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눈을 떠도 감사하고 눈을 감아도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늘 우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자는 것은 무엇을 연습한다고요? 죽음을 연습한다고 합니다. 왜? 눈을 감았다가 그 이튿날 일어나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눈을 감았다, 그런 사람들 많은 경우에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다가 일어났다, 그러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영원한 생명 속에 일어납니다. 여러분, 자도 감사하고 또 일어나도 감사합니다. 아침에도 기지개켜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이러지 주여, 괴롭습니다 아니지 않습니까? 기지개켜면서 괴롭다 그러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기지개켜면서 상쾌해야지, 찌뿌듯하고 이상하면 여러분, 감사가 떨어진 것입니다. 좍 기지개를 켜면서 감사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게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 생활이 즐겁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무어라 했느냐 하면 6절 말씀 한 번 읽어 봅시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 어디? “하늘에 앉히시니.” 하늘에 앉히는 이 현장이 어디입니까?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오늘 하나교회 교인들에게 어떻게요? 하늘에 앉히사...
여러분 지금 어디에 앉았습니까? 교회 앉아 있는게 아니고 하늘에 앉히사 ...무엇으로? 성령으로. 여러분이 성령이 내 안에 확인되는 만큼 언제나 내가 있는 장소가 하늘입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이것이 확인 될수록 감사가 안 나오면 거짓말이지요. 제가 많은 괴로움 속에 죽음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도 누려야 된다는 말이 있지요.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왜? 죽음은 누릴 수 밖에 없지요. 고통도 누릴 수 밖에 없지요. 왜 이 고통 끝나면 아니야 이 고통과 함께 어딘가 영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셨지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러분과 내가 앉은 이 자리에 현실적으로 벌써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미래까지도 하나님 나라에 앉히셨습니다. 그래서 총신에 가면 배운것이 총신에서 무천년설을 제가 우리 교회에도 총신 출신이 많으니까 무천년설이 지금 천국입니다. 천국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이후에 성령으로 임할 때에 지금이 바로 천국입니다. 전천년설도 어떤 면에서 성경에서 많이 강조했어요. 그러나 사실은 무천년, 전천년, 그런데 후천년은 천국이 없다는 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이 없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좋아진다는 설이 후천년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이 없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천년도 무천년도 똑같이 수용하고 있는데 특별히 우리 총신에서는 옛날의 합동이지요. 우리가 지금 있는 개혁은 아니지만 개혁도 마찬가지로 거의 비슷한 배경이지요. 그러나 보면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어디로 성령으로 하늘에 앉히시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이것을 못 느끼는 만큼 우리는 우울해요. 느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확인되느냐 하면 그것이 다섯가지(구원의 축복) 설명을 하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렇게 설명을 해 나가도 아마 이 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될 수 있으면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서 간단히 하겠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축복을 받은 자가 지금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 축복을 받는 것이 영접과 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론에 있어서 상세히 기억해야 될 것이 성령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이 어디에 오세요? 내 안에 오신다고 하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시면 여러분과 저가 죽어요. 왜 ? 그 큰 영광스런 분이 내 안에 오시면 내가 터져버리지 그 큰 영광을 내가 품고 살아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내 안에 오시는 길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로부터 위에서부터 임합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영접할 때에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십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조금 구분을 해야 할 것은 성령의 감화라고 많이 씁니다. 성령의 감화라고 할 때는 성령의 감화가지고도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경우 배신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고, 영영 돌아오지 않고 딴 데로 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내 생각이고, 감화를 일단 받았다...하나님의 붙드신 자는 돌아오지 영영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감화만 받았을 때에 베드로처럼 배반을 하고 그렇게 사랑한다고 고백해 놓고 다른 소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아실 것은 오순절 성령이 기점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가지고 제가 이것을 가지고 목회 대학원에서 많은 것을 특별히 성령론에 대해서 많은 것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옛날에는 성령론을 체계적으로 아담 때부터 강의한 내용을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영배 교수라고 총신에서 제가 나간 후에 들어오셨어요. 그분이 들어오셔서 성령론을 강의 했습니다. 류목사님께서 특별히 초청하신 것 같아요. 성령론을 강의하시면서 아담 때부터 성령에 대한 역사를 강의해 나가셨어요. 분석을 해 나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많은 은혜를 받고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분 말씀이 감화를 받아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베드로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령감화를 받고 제자가 되었어요. 성령감화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배반하는 자리에 앞장섰어요. 자 우리가 고기 잡으러 가자 자기들을 따라 함께 12제자를 데리고 어디로 갔어요? 갈릴리 바다로 옛날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언제?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고서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옛날에 우리가 체험 하면은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면 성령체험, 방언 받는다 이런것도 있지만 지금 체험하면 누구를 체험해요? 그리스도를, 복음을, 구원을, 감격을 체험했느냐 안했느냐 그것이 성령의 바로 미터입니다.
여러분 성령세례 받는다, 성령충만 받는 다는 것은 책을 통해서 인지했던 것은 성령이 처음 금방 임할 때에 성령충만도 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는 진짜 생명 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령충만이 시간 가면 나태해져요. 그런데 기도하면 또 그것이 증가될 수 있어요. 그런데 오순절 성령이 체험되는 경우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복음이 확인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그 다음에 미래에 천국이 확인됩니다. 이 체험이 확인되고 난 후에 베드로는 절대 변화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락방에서 많은 경우 갈등했던 부분들이 뭐냐 하면 믿었는데, 영접했는데 돌아가거든요. 지금도 아마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 있겠지요. 갈릴리로, 옛날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은 또 돌아옵니다. 올 때의 은혜를 뭐라고 그랬습니까?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했잖아요. 제가 많이 강조했던 것이..십자가의 생명이 그에게 있을 때는 딴 데로 헤메고 돌아다녀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반 죽여서라도 기어코 옵니다.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여기에 앉은 분들이 거의 그런 케이스에 해당이 되어요.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예수를 잘 믿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는 것이지. 그래서 초대교회에는 성령을 체험하고 강조하고 기도했던 기도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 현재 하나님 저를 구원시켜 주옵소서. 이런 기도 안하잖아요. 하나님 내게 능력을 주옵소서. 전도의 능력, 또 하나님이 선교의 능력...이것이 초대교회의 기도였고, 구원 받은 자 성령을 체험한 자의 기도가 능력입니다. 저절로 그렇게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성령의 감화로는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락방에서 영접하고도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다고 하는데도 그것은 감화이지요. 믿을 수 있는 그런 수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적인 용어를 오래 할 수는 없지만 다음 주에도 계속 제가 강단에 서야 하는데 그때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는 이 중심으로 다섯 개 부분을 중심으로 해석을 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여기에 오신 분들 중에서 이 말을 처음 듣는 분들이 더러더러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이래가지고는 무슨 말인지를 잘 몰라요. 상세히 설명하면 아 ! 그거구나..그래 되지요. 제가 많은 경우 듣는 이야기 중에서 이 설명 중에서 구원 받은 사람이 상당히 있더라고요. 구원 받은 것에 확신 가지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더라고요. 저에게 가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요. 그리고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확신이 생기면서 평안이 오더라고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아마 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오늘 나왔습니다마는 오늘 그 보다도 일단 개괄적인 이야기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이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완전한 복음에 대한 체험이 이루어집니다. 그때부터 그래서 이것을 이용한 것이 프리메이슨, 뉴에이지입니다. 그것을 데리고 가서 어디에? 악령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악령도 체험하면 거기에 빠져 버립니다. 올 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상종교 하는 사람들이 다른 것에 빠진 사람들이, 쉽게 말해서 남묘호랭계교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악령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 내 몸에 변화가 왔던지 무슨 변화가 왔던지 또 아니면 다른 종교도 방언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고 하면 완전히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프리메이슨이라든지, 뉴에이지가 바로 이것을 잡고 세상을 지금 차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이 체험되는데 왜 세상이 안 바뀌어지겠어요? 여러분들이 구하는 성령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들에게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겠느냐 너희가 구하는 성령을 왜 안 주겠느냐 그랬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사람들,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기도할게 뭡니까? 지금 내게 성령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성령의 역사 속에 있게 해 주옵소서. 쉽게 말해서 더 하나님 내게 성령충만을 주셔서, 성령을 체험하게 해 주소서...그래서 옛날에는 성령체험을 구체적인 이 체험을 뭐라고 했느냐 하면 성령세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세례는 바로 체험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세례가 되어져야 올 인 할 수 있습니다. 유일성이 뭔지 이해가 됩니다. 되어져야 오직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리스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체험이 안 되면 내게 확인이 안 되면 그리스도만 바라볼 수 없어요. 24시기도 이것이 되어야 나옵니다. 사람을 만나도 이것이 되어야 주여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과 내가 대화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인도하옵소서. 이것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무시기도가 자꾸 어렵다고 하는데 모든 사건, 일, 문제 계속해서 누구만 바라보면 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무시기도입니다. 여기서 응답으로 오는 것이 25시 기도입니다. 응답으로 오는 것이 뭡니까? 영원이라고 그랬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입니다. 지금 여러분과 저는 이미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더 응답을 받으려고 합니까? 축복 속에 있어요. 벌써...뭘 더 받으려고 합니까? 이것을 더 받으려고 나갈 때에 종교로 빠지거나 우상으로 빠집니다. 기도도 그런 식으로 나갑니다. 하나님 뭘 주옵소서...자꾸 이런 방향으로 그래서 이 사실이 어디에서부터 이루어졌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뭐라고요? 구원받은 자들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속에 지금 있습니다. 확신합니까? 할렐루야!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없어도 있어도 돈, 명예 구할 것 없어요. 없어도 있어요. 왜 감사하느냐 바로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요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될 때에 누리게 된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이 됩니다. 아픈 것도 아야! 하나님...아야! 주여 이렇게 나오지 아야 아야 아야...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기 때문에 저는 정말 죽음 직전에 있을 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 제가 깊은 터널 속에 있습니다. 천국으로 보이든지 나아서 세상을 다시 또 보든지" 항상 그랬지. 죽음이란 것, 절망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왜 지금 여러분과 저를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 교회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지금 역사하고 있습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2015년 6월 28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구원과 성령의 역사
(엡2:1-8)
서론: 신앙생활은 무조건 믿고 열심히 노력하고, 그래서 뭔가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입니다. 복음은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기에 은혜이며, 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신앙의 특징은 기다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억지로 함으로 다른 방향으로 빠지는 종교가 아니라, 믿어지고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 왜 부지런해지게 됩니까? 그것은 되어지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되어지는 시간표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고,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1. 절대적인 주권(계획) 속의 되어지는 삶
가. 불신자의 삶
1)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운명에 속한채로 시간이 갈수록 망하게 되어있음
2) 인생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은 실패가운데 허무하게 지옥으로 직행함
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축복의 주권속에 있는 삶 (이것은 은혜, 선물임)
1)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절대적인 계획 속에서 감사가 나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응답 중의 응답)
2) 참된 감사를 찾으면, 성령의 인도 속에서 치유가 시작됨 (질병과 실패는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는 축복)
2. 창조부터 영원토록
가. 오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는 성령으로 하늘에 앉히신 자리입니다.
1) 창조: 하나님께서는 주권 속에 살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심
2) 영원: 천국에서도 영원한 역사와 은혜 가운데 살도록 계획되어 있음
나. 구원과 성령의 역사
1) 영접: 칼빈의 5대 강령(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의 축복을 받은 것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위로부터 내 안에 오심(하지만 감화만으로는, 베드로처럼 갈릴리바다로 돌아갈 수 있음)
2) 성령세례: 절대 흔들리지 않는 구체적인 체험이기에, 이때부터 나의 삶을 올인 할 수 있음
오직과 유일성이 이해되어지고 24시, 25시, 영원의 비밀에 들어갈 수 있음
결론: 우리는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8절). 이것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9절).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존재입니다(10절). 그러기에 지금 이 속에 있는 우리는, 세상의 것(돈, 명예)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주간 지금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신 사실을 믿으며 절대주권 가운데, 되어지는 전도자의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무조건 믿고 열심히 노력하고, 그래서 뭔가를 얻어야 하는 종교생활에서 빠져나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되어지는 시간표를 기다리는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바로 성령으로 하늘에 앉히신 자리임을 믿으며, 구원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한주간 참된 감사가 회복되는 가운데, 죽음 앞에서도 누릴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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