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치유할 수 있는가?
2004-05-06 00:00:00
관리자
조회수 32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치유를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부제를 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슨 일을 했느냐?' 혹은 '무슨 일을 하느냐?'에 신경을 썼습니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살면 우리의 삶은 허무에 빠지게 됩니다. 누군가의 비문에 '먹다, 살다, 죽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무슨 일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 대해서도 복음으로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에 초점을 두고 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볼 때에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성공할 사람이 성공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을 주께 복종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치유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치유를 할 수 있습니까? 간단히 말씀드려서, 치유 받은 사람이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이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신앙 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가정의 모든 문제가 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아무나 가서 메시지를 전한다고 치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메시지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평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과 몸이 해방 받고 가벼워지는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치유 받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에 힘이 실려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전도의 사실이 체험된 사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모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실 때는, 이미 우리에 대해서 다 아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완벽하게 준비시키십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염려하지 말고 생긴대로 살면 됩니다.
지금까지 목회 생활을 해오면서 제 자신의 성질이 안 좋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과거의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성질이 너무 좋아도 일이 안 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끊을 때는 끊고, 때릴 때는 사정없이 때려야 됩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성질이 좋은 사람은 매정하게 끊지 못합니다. 매정할 때는 딱 잘라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일이 제대로 안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대구에 내려올 때도 40일 기도하고 사정없이 떠나왔습니다. 온 교인들이 다 붙잡았으나,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떠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닥칠 모든 일을 실제적으로 다 준비하시므로 지금 이렇다, 저렇다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의 길에 세우셨으면, 치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 깊이 문제가 해결되고 저주의 세력이 빠져나갈 때 치유되는 것이지, 무엇을 했다, 안 했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교회와 가정과 직장의 삶에 치유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치유가 실제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또 다시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자신이 치유 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치유는 우리가 무엇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서 누가 치유할 수 있습니까? 치유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치유는 어떻게 받습니까?
1. 언약
먼저 언약을 붙잡아야 됩니다. 언약의 실제적인 내용은 "함께 하시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창조'부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창1:27). 이것이 창조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떠나서 점점 다른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의 별 것들을 다 섬깁니다. 땅, 바다, 호랑이, 여우, 개, 고양이 등 모든 것들을 섬깁니다. 하나님과 교제해야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니까 모든 곳에 귀신이 침투해서 완전히 귀신 문화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것이므로 진짜 재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많은 것에서 재미를 찾습니다. 그런 것들은 잠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과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1) 그리스도
함께 하는 구체적인 역사를 위해서 구약에서는 메시야의 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소와 양의 피를 흘렸습니다. 피만 흘렸는데도 하나님께서 국가적으로 완벽히 지키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심의 이 언약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개개인에게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말세에 성령의 역사가 바로 이해되지 않으면 아무리 다락방을 잘 해도 결국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함께 하신다'에서 모든 문제가 풀려나가야 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유지하고 보존하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에게는 사명으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삼으시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천국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복음 전하는 사명을 주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2) 부활
죽으신 그리스도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셔야 하니까, 그 사망의 권세를 잡은 사단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에 재림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재림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도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의 체험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에 이 부활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음부까지 갔다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3) 지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마태복음 1장은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메시야 사역이 함께 하심의 임마누엘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신앙 생활이 올바르게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상한 모습일지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속에 모든 것이 다 녹아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4) 성령
성경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를 믿었다. 구원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실이 성령으로 내게 체험될 때에 기적의 역사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것 자체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사실을 삶 속에서 체험할 때에 전도의 역사가 실제로 나타납니다. 이 때부터 능력이 나타납니다.
(5) 세계 복음화
왜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나옵니까? 성령의 역사 없이는 세계 복음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실제적인 사실이 이해 안되니까 오해에 빠집니다. 자기 중심적인 욕심으로 오해하고 신비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혹은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보수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엉뚱한데 빠지는 것보다는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이 좀 더 낳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다 채우십니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에 준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언약이 안되면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에 문제가 생깁니다. 문화라는 환경은 정말로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하십니다. 어떤 환경과 어떤 문제 속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정말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늑대 우리 속에 든 아이와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철저히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단의 소굴에서도 성령의 임재하심은 천군 천사를 통해 지키심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단,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역사가 나오는 것이지 우리의 소원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실제적인 성령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위기 중에 있을 때에도 가장 확실한 때에 천군 천사를 보내서 보호하시고 보존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함께'라고 할 때는 인도하심이 동시에 이해되고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체험될 때에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필요 없어집니다. 이것이 안될 때에 정신병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함께 하시며 인도하여 세계 복음화를 하시는 것입니다.
2. 기도(행1:13-14)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단, 기도할 때에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잡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갑니다. 다락방 안에서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되고, 전도가 안 되게 됩니다.
(1) 정시 기도
1) 성령의 실재를 붙잡아야 합니다. 사건과 연결되고 사건이 풀려지고 전도의 문이 열리는 쪽으로 기도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우리의 동기를 버려야 됩니다.
2) 말씀을 붙잡고 묵상해야 합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가 바르게 인도 받게 됩니다. 그 때에 천군 천사가 역사하게 됩니다. 말씀을 안 붙잡으면 다른 생각으로 빠지게 됩니다.
3) 태아와 영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진짜 세계 복음화를 하려면 태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이 한 세대를 바꾸는 자들이 됩니다. 그들을 나실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문이 된다는 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이 책임은 주로 여자들에게 있습니다. 아이가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어머니 본인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면 일평생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복음이 바로 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시 기도할 때에 태아와 영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 무시 기도
무시 기도에 대해서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무시 기도한다고 하루 종일 엎드려만 있다면 문제입니다. 무시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바탕 위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실질적인 역사가 삶 속에서 나오게 됩니다. 연애를 할 때에 어디에 있든지 마음이 항상 애인에게 가 있는 것처럼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시 기도가 됩니다. 이것이 24시간 기도입니다. 이것이 되면 너무 편안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양심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시 기도입니다. 실제로 무시 기도 속에서 계속해서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체험되지 않을 때에 갈등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인도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체험되어도 달라질 것입니다.
현실에 와서는 기도의 응답이 나와야 합니다. 수준이나 환경이나 사람에 따라서 기도 응답은 각자 다릅니다. 그러나 그 파장은 엄청납니다. 현장에서 언약 잡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무슨 일을 했느냐?' 혹은 '무슨 일을 하느냐?'에 신경을 썼습니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살면 우리의 삶은 허무에 빠지게 됩니다. 누군가의 비문에 '먹다, 살다, 죽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무슨 일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 대해서도 복음으로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에 초점을 두고 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볼 때에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성공할 사람이 성공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을 주께 복종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치유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치유를 할 수 있습니까? 간단히 말씀드려서, 치유 받은 사람이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이 영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신앙 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가정의 모든 문제가 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아무나 가서 메시지를 전한다고 치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메시지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평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과 몸이 해방 받고 가벼워지는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치유 받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에 힘이 실려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전도의 사실이 체험된 사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모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실 때는, 이미 우리에 대해서 다 아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완벽하게 준비시키십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염려하지 말고 생긴대로 살면 됩니다.
지금까지 목회 생활을 해오면서 제 자신의 성질이 안 좋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과거의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성질이 너무 좋아도 일이 안 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끊을 때는 끊고, 때릴 때는 사정없이 때려야 됩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성질이 좋은 사람은 매정하게 끊지 못합니다. 매정할 때는 딱 잘라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일이 제대로 안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대구에 내려올 때도 40일 기도하고 사정없이 떠나왔습니다. 온 교인들이 다 붙잡았으나,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떠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닥칠 모든 일을 실제적으로 다 준비하시므로 지금 이렇다, 저렇다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의 길에 세우셨으면, 치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 깊이 문제가 해결되고 저주의 세력이 빠져나갈 때 치유되는 것이지, 무엇을 했다, 안 했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교회와 가정과 직장의 삶에 치유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치유가 실제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또 다시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자신이 치유 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치유는 우리가 무엇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서 누가 치유할 수 있습니까? 치유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치유는 어떻게 받습니까?
1. 언약
먼저 언약을 붙잡아야 됩니다. 언약의 실제적인 내용은 "함께 하시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창조'부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창1:27). 이것이 창조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떠나서 점점 다른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의 별 것들을 다 섬깁니다. 땅, 바다, 호랑이, 여우, 개, 고양이 등 모든 것들을 섬깁니다. 하나님과 교제해야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니까 모든 곳에 귀신이 침투해서 완전히 귀신 문화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것이므로 진짜 재미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많은 것에서 재미를 찾습니다. 그런 것들은 잠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과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1) 그리스도
함께 하는 구체적인 역사를 위해서 구약에서는 메시야의 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소와 양의 피를 흘렸습니다. 피만 흘렸는데도 하나님께서 국가적으로 완벽히 지키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심의 이 언약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개개인에게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말세에 성령의 역사가 바로 이해되지 않으면 아무리 다락방을 잘 해도 결국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함께 하신다'에서 모든 문제가 풀려나가야 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유지하고 보존하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에게는 사명으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삼으시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천국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복음 전하는 사명을 주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2) 부활
죽으신 그리스도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셔야 하니까, 그 사망의 권세를 잡은 사단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에 재림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재림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도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의 체험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에 이 부활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음부까지 갔다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3) 지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마태복음 1장은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메시야 사역이 함께 하심의 임마누엘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신앙 생활이 올바르게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상한 모습일지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속에 모든 것이 다 녹아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4) 성령
성경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를 믿었다. 구원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실이 성령으로 내게 체험될 때에 기적의 역사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것 자체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사실을 삶 속에서 체험할 때에 전도의 역사가 실제로 나타납니다. 이 때부터 능력이 나타납니다.
(5) 세계 복음화
왜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나옵니까? 성령의 역사 없이는 세계 복음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실제적인 사실이 이해 안되니까 오해에 빠집니다. 자기 중심적인 욕심으로 오해하고 신비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혹은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보수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엉뚱한데 빠지는 것보다는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이 좀 더 낳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다 채우십니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에 준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언약이 안되면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에 문제가 생깁니다. 문화라는 환경은 정말로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하십니다. 어떤 환경과 어떤 문제 속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정말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늑대 우리 속에 든 아이와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철저히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단의 소굴에서도 성령의 임재하심은 천군 천사를 통해 지키심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단,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역사가 나오는 것이지 우리의 소원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실제적인 성령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위기 중에 있을 때에도 가장 확실한 때에 천군 천사를 보내서 보호하시고 보존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함께'라고 할 때는 인도하심이 동시에 이해되고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체험될 때에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필요 없어집니다. 이것이 안될 때에 정신병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함께 하시며 인도하여 세계 복음화를 하시는 것입니다.
2. 기도(행1:13-14)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단, 기도할 때에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잡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갑니다. 다락방 안에서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되고, 전도가 안 되게 됩니다.
(1) 정시 기도
1) 성령의 실재를 붙잡아야 합니다. 사건과 연결되고 사건이 풀려지고 전도의 문이 열리는 쪽으로 기도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우리의 동기를 버려야 됩니다.
2) 말씀을 붙잡고 묵상해야 합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가 바르게 인도 받게 됩니다. 그 때에 천군 천사가 역사하게 됩니다. 말씀을 안 붙잡으면 다른 생각으로 빠지게 됩니다.
3) 태아와 영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진짜 세계 복음화를 하려면 태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이 한 세대를 바꾸는 자들이 됩니다. 그들을 나실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문이 된다는 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이 책임은 주로 여자들에게 있습니다. 아이가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어머니 본인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면 일평생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복음이 바로 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시 기도할 때에 태아와 영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 무시 기도
무시 기도에 대해서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무시 기도한다고 하루 종일 엎드려만 있다면 문제입니다. 무시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바탕 위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실질적인 역사가 삶 속에서 나오게 됩니다. 연애를 할 때에 어디에 있든지 마음이 항상 애인에게 가 있는 것처럼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시 기도가 됩니다. 이것이 24시간 기도입니다. 이것이 되면 너무 편안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양심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시 기도입니다. 실제로 무시 기도 속에서 계속해서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체험되지 않을 때에 갈등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인도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체험되어도 달라질 것입니다.
현실에 와서는 기도의 응답이 나와야 합니다. 수준이나 환경이나 사람에 따라서 기도 응답은 각자 다릅니다. 그러나 그 파장은 엄청납니다. 현장에서 언약 잡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