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운동이 필요한 환자
2004-05-06 00:00:00
관리자
조회수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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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엄청난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건강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 때에 건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와 가정이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정서가 통해야 건강한 사회와 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입맛이 없을 때, 반찬이 맛있냐고 물어보면 참으로 곤욕스럽습니다. 그 때에는 서로 정서가 통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의 문제는 교회의 분위기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한두 사람이 은혜 받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가 같이 받아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임함도 한두 사람에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들을 때 모두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한두 사람이 약할 때에 전체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치유에서 왜 말씀 운동이 필요합니까? 모든 성도들이 함께 말씀을 받을 때, 함께 치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서가 무르익으면 서로 다 통하게 되고 지속되어집니다. 이것이 안되면 은혜를 받는 것 같은 데도 전체는 병이 들게 되고 의사 소통이 안됩니다. 정말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이 축복의 전부라는 사실이 회복되어야 참으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먼저 불신앙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정말 은혜 받을 자격이 되고 은혜를 받아야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바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혜 받으면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치유에서 말씀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불신앙이 해결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눈이 열리면, 자연히 불신앙이 해결되고 자연스럽게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표적을 주셨지만,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음에 대한 불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도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분명히 약속하고 명령하셨지만 깔고 있는 불신앙으로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양을 먹일 풀 때문에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의 싸움이 벌어지고 나서야, 이 사실을 깨닫게 되어 조카 롯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이러한 불신앙이 잘 해결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자신의 불신앙을 잘 보지 못하는데 이것이 모든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어제 제 나름대로는 중노동을 했습니다. 2시에 집을 나서서 핵심에 참석하고, 류목사님과 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다니니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엄청난 시간을 나갔다 온 것이었지만 가능했습니다. 물론, 지금 약간의 여파가 남아 있지만 괜찮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약속을 하고 허락하고 성취시키는데, 이것을 보는 눈이 없어서 사단이 틈타서 개인과 가정을 옭아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개개인마다 환경과 사정에 따라서 다 각각의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오직 은혜를 받을 때에 깨달아 집니다.
불신앙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말씀 운동' 밖에 없습니다. 말씀 운동이 요구되는 사람은 모두 다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는 만큼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다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인 문제에서 그것이 드러나는데도 인식이 잘 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믿기 때문에 교회에 오지만, 구체적으로 믿지 못합니다. 메시지가 이렇게 분명하게 전해지는 곳이 없습니다. 다른 선교 단체가 열정은 있지만, 메시지 만큼은 다락방이 정말 대단하다고 합니다. 다락방이 말씀은 너무 좋은데 행정은 엉망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옵니다. 다락방에 있어서 삶과 성장에 있는 갈등을 보고, 그것이 심화되니까 말씀까지 부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기존 교회들이 다락방 메시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씀만은 분명하다는 증거입니다. 저도 여러 가지로 행정적인 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얻은 결론은 역시 아무리 봐도 이 일밖에 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지를 아는 정도도 환경과 처지에 따라 개개인에게 강도가 다릅니다. 매주 말씀을 듣게 되고, 들을 때마다 '아멘' 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1. 말씀 운동 = 그리스도 운동
(1) 그리스도 운동은 불신앙 해결 운동입니다. 누구에게든지 깔려 있는 바탕이 불신앙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만큼 축복가 은혜의 문이 열리고,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언제, 얼마만큼 깨닫느냐가 중요합니다. 불신앙은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입니다.
(2) 불신앙이 깔리면서 나오는 것이 죄입니다.
(3) 그렇게 하는 배경이 바로 사단의 역사입니다. 여러 가지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사실상 이 배경은 하나입니다. 모두 같이 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지식, 돈, 건강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유일한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자세가 달라집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에 누워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어서, 정식으로 일어나 앉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불렀을 때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그 이름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근본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분량만큼 자세가 나타나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믿음을 회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의 과정 중에서는 수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그 배경이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그리스도이지만, 믿음 없는 부르짖음은 소용없습니다. 과정 중에 불신앙의 배경이 해결되고 믿음이 회복될 때에 그 결과로 '그리스도'가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2. 말씀은 힘입니다.
(1)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증거하며, 창세기 1장 1절에서 3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힘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믿는 만큼 생활 속의 모든 문제에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붙들고 믿는 만큼 창조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말씀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말씀을 붙잡으며 기도하면, 그 말씀이 성취되어 집니다. 에스겔서에서 골짜기의 해골들이 말씀이 떨어지자 그대로 성취되어 군대가 되었습니다. 말씀 속에 창조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더디 믿게 되면, 바로 눈 앞에 있는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리스도의 역사가 마음에 부닥쳐서 믿어지면 그 순간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사건과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기면, 말씀이 다시 희미해지곤 합니다.
3. 말씀 운동의 결과
(1) 말씀 운동의 결과를 기복적으로 여겨 보여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열매와 결과로 오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말씀 운동의 결과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2) 그 때에 성령이 임재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도 성령 임재는 확인되어져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바로 그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조건을 달지 말고 성령 충만이면 다 된 것입니다.
(3) 전도가 따라서 나옵니다. 말씀 운동의 결과가 모두 전도 운동으로 연결됩니다.
4. 바른 말씀 운동
정신질환자에게 올바른 말씀 운동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진짜 그리스도 운동을 해야 되겠구나.'라고 느껴야 됩니다. 우리 나라에 교인들이 많은데도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캄캄한 곳에는 촛불 하나만 켜도 환해집니다. 비율로 따진다면, 20명 안에 1명 정도는 교인이 되고도 남습니다. 20명이 모인 곳에 촛불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밝아지는데, 이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어느 하나도 말씀 운동이 제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말씀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엉뚱한 것을 하게 될 뿐입니다. 정말 말씀 운동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운동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1) 영적 전투
바른 그리스도 운동을 하려면,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오는 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축복과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내 삶의 환경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약속을 이미 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구원 역사와 비유되기 때문에 이미 구원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때는 피나는 싸움을 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언약 받은 사람은 반드시 현장에서 영적 싸움이 이루어집니다. 해결된 것을 구체적으로 누리는 과정으로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하나 하나 싸움을 해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싸움하러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계획을 해서 가나안을 각 지파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미 언약으로 주셔서 구체적으로 각 지파와 개개인이 소유할 것을 계획해 놓으시고는, 들어가서 전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을 믿고 들어가서 전투한 자들은 다 취했습니다. 그러나, 언약을 믿지 않는 불신앙 한만큼 남아 있어서 이스라엘 후손 대대를 괴롭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오늘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영적 전투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이를 위해 무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자의 현장마다 적합한 무장이 있습니다. 사건과 환경에 따라서 계속 무장해서 영적 전투를 함으로 이미 주신 언약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 전투를 바로 하지 못하면 딴 것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제는 예수의이름으로 영적 전투를 해야 되겠다라는 것을 깨닫기만 해도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영적 전투에 실패하고 흑암 권세에 덮이는 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반대로, 조금 고통스러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지면 됩니다. 영적 전투에서 완전 치유가 다 나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과 소망이 있으면 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치료되면, 외부적인 조건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2) 환경
이 축복의 말씀이 모든 환경에도 상관하지 않게 합니다.
(3) 음식
음식이 참으로 중요하지만, 어떤 것을 먹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4) 운동
음식이나 운동도 바른 말씀 운동이 이루어지고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5) 교회 분위기
교회가 복음의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정과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모든 축복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받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운동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바른 말씀 운동을 통해 영적 전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잘 나가다가도 엉뚱한 곳에 빠지게 됩니다. 절망 속에서는 손 끝조차도 움직이기 싫어지고,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부정적으로 됩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으면, 금방 죽어가면서도 '괜찮다'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선하고 가장 완벽합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합시다.
그렇다면, 치유에서 왜 말씀 운동이 필요합니까? 모든 성도들이 함께 말씀을 받을 때, 함께 치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서가 무르익으면 서로 다 통하게 되고 지속되어집니다. 이것이 안되면 은혜를 받는 것 같은 데도 전체는 병이 들게 되고 의사 소통이 안됩니다. 정말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이 축복의 전부라는 사실이 회복되어야 참으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먼저 불신앙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정말 은혜 받을 자격이 되고 은혜를 받아야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바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혜 받으면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치유에서 말씀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불신앙이 해결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눈이 열리면, 자연히 불신앙이 해결되고 자연스럽게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표적을 주셨지만,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음에 대한 불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도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분명히 약속하고 명령하셨지만 깔고 있는 불신앙으로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양을 먹일 풀 때문에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의 싸움이 벌어지고 나서야, 이 사실을 깨닫게 되어 조카 롯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이러한 불신앙이 잘 해결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자신의 불신앙을 잘 보지 못하는데 이것이 모든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어제 제 나름대로는 중노동을 했습니다. 2시에 집을 나서서 핵심에 참석하고, 류목사님과 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다니니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엄청난 시간을 나갔다 온 것이었지만 가능했습니다. 물론, 지금 약간의 여파가 남아 있지만 괜찮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약속을 하고 허락하고 성취시키는데, 이것을 보는 눈이 없어서 사단이 틈타서 개인과 가정을 옭아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개개인마다 환경과 사정에 따라서 다 각각의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오직 은혜를 받을 때에 깨달아 집니다.
불신앙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말씀 운동' 밖에 없습니다. 말씀 운동이 요구되는 사람은 모두 다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는 만큼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다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인 문제에서 그것이 드러나는데도 인식이 잘 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믿기 때문에 교회에 오지만, 구체적으로 믿지 못합니다. 메시지가 이렇게 분명하게 전해지는 곳이 없습니다. 다른 선교 단체가 열정은 있지만, 메시지 만큼은 다락방이 정말 대단하다고 합니다. 다락방이 말씀은 너무 좋은데 행정은 엉망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옵니다. 다락방에 있어서 삶과 성장에 있는 갈등을 보고, 그것이 심화되니까 말씀까지 부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기존 교회들이 다락방 메시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씀만은 분명하다는 증거입니다. 저도 여러 가지로 행정적인 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얻은 결론은 역시 아무리 봐도 이 일밖에 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지를 아는 정도도 환경과 처지에 따라 개개인에게 강도가 다릅니다. 매주 말씀을 듣게 되고, 들을 때마다 '아멘' 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1. 말씀 운동 = 그리스도 운동
(1) 그리스도 운동은 불신앙 해결 운동입니다. 누구에게든지 깔려 있는 바탕이 불신앙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만큼 축복가 은혜의 문이 열리고,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언제, 얼마만큼 깨닫느냐가 중요합니다. 불신앙은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입니다.
(2) 불신앙이 깔리면서 나오는 것이 죄입니다.
(3) 그렇게 하는 배경이 바로 사단의 역사입니다. 여러 가지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사실상 이 배경은 하나입니다. 모두 같이 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지식, 돈, 건강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유일한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자세가 달라집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에 누워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어서, 정식으로 일어나 앉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불렀을 때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그 이름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근본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분량만큼 자세가 나타나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믿음을 회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의 과정 중에서는 수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그 배경이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그리스도이지만, 믿음 없는 부르짖음은 소용없습니다. 과정 중에 불신앙의 배경이 해결되고 믿음이 회복될 때에 그 결과로 '그리스도'가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2. 말씀은 힘입니다.
(1)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증거하며, 창세기 1장 1절에서 3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힘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믿는 만큼 생활 속의 모든 문제에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붙들고 믿는 만큼 창조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말씀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말씀을 붙잡으며 기도하면, 그 말씀이 성취되어 집니다. 에스겔서에서 골짜기의 해골들이 말씀이 떨어지자 그대로 성취되어 군대가 되었습니다. 말씀 속에 창조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더디 믿게 되면, 바로 눈 앞에 있는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리스도의 역사가 마음에 부닥쳐서 믿어지면 그 순간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사건과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기면, 말씀이 다시 희미해지곤 합니다.
3. 말씀 운동의 결과
(1) 말씀 운동의 결과를 기복적으로 여겨 보여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열매와 결과로 오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말씀 운동의 결과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2) 그 때에 성령이 임재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도 성령 임재는 확인되어져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바로 그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조건을 달지 말고 성령 충만이면 다 된 것입니다.
(3) 전도가 따라서 나옵니다. 말씀 운동의 결과가 모두 전도 운동으로 연결됩니다.
4. 바른 말씀 운동
정신질환자에게 올바른 말씀 운동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진짜 그리스도 운동을 해야 되겠구나.'라고 느껴야 됩니다. 우리 나라에 교인들이 많은데도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캄캄한 곳에는 촛불 하나만 켜도 환해집니다. 비율로 따진다면, 20명 안에 1명 정도는 교인이 되고도 남습니다. 20명이 모인 곳에 촛불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밝아지는데, 이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어느 하나도 말씀 운동이 제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말씀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엉뚱한 것을 하게 될 뿐입니다. 정말 말씀 운동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운동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1) 영적 전투
바른 그리스도 운동을 하려면,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오는 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축복과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내 삶의 환경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약속을 이미 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구원 역사와 비유되기 때문에 이미 구원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때는 피나는 싸움을 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언약 받은 사람은 반드시 현장에서 영적 싸움이 이루어집니다. 해결된 것을 구체적으로 누리는 과정으로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하나 하나 싸움을 해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싸움하러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계획을 해서 가나안을 각 지파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미 언약으로 주셔서 구체적으로 각 지파와 개개인이 소유할 것을 계획해 놓으시고는, 들어가서 전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을 믿고 들어가서 전투한 자들은 다 취했습니다. 그러나, 언약을 믿지 않는 불신앙 한만큼 남아 있어서 이스라엘 후손 대대를 괴롭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오늘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영적 전투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이를 위해 무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자의 현장마다 적합한 무장이 있습니다. 사건과 환경에 따라서 계속 무장해서 영적 전투를 함으로 이미 주신 언약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 전투를 바로 하지 못하면 딴 것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제는 예수의이름으로 영적 전투를 해야 되겠다라는 것을 깨닫기만 해도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영적 전투에 실패하고 흑암 권세에 덮이는 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반대로, 조금 고통스러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지면 됩니다. 영적 전투에서 완전 치유가 다 나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과 소망이 있으면 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치료되면, 외부적인 조건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2) 환경
이 축복의 말씀이 모든 환경에도 상관하지 않게 합니다.
(3) 음식
음식이 참으로 중요하지만, 어떤 것을 먹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4) 운동
음식이나 운동도 바른 말씀 운동이 이루어지고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5) 교회 분위기
교회가 복음의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정과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모든 축복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받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운동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바른 말씀 운동을 통해 영적 전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잘 나가다가도 엉뚱한 곳에 빠지게 됩니다. 절망 속에서는 손 끝조차도 움직이기 싫어지고,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부정적으로 됩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으면, 금방 죽어가면서도 '괜찮다'가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선하고 가장 완벽합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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