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치 말라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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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마 10: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오늘 말씀에 제목을 "염려치 말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성경 속에서 메시지의 내용이 오늘 '염려치 말라' 지난주에 또 뭐라 그랬습니까? '권능을 주신다!' 그 다음 또 뭡니까? '무서워 말라!' 전부 이런 내용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계속 염려하지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권능을 주신다!'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시느냐? 그러고 볼 때에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아마 우리 교인들이, 아마 굉장히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걱정을 하는가 보다! 아니 우리 교인들이 아니고, 이 땅에 아마 그런가 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지금 현재 이 땅에, 쉽게 말해서 염려할 수밖에 없고, 걱정할 수밖에 없고, 무서워 할 수밖에 없고, 두려워 할 수밖에 없고, 이런 것이 지금 이 땅에 현실적인 환경이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10장 18절에 보면,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염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사는 이 땅입니다.
특별히 이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의 주변 환경이 무서워지고, 염려할 수밖에 없고, 어려운 그런 환경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당연하게 그런 환경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대 전제가 안 되면 여러분 살아 남지를 못해요. 신앙 생활하는 자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먼저 이 시간에 좀 인정을 해야 될 것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뭐 사건이 생기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아, 올 것이 왔구나! 당연하구나!' 인정을 하라! 이겁니다. 먼저! 먼저 이 환경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16절 보면, 한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6절 다같이 시작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아멘! '내가 너희를'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과 저입니다. 복음 들고 세계 복음화 해야 될 일꾼들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뭐라 그랬어요? '양을 이리 가운에 보냄과 같도다!' 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읽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도저히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오돌오돌 떨고 살아야 돼요. 지금 한번 보세요. 이리 라는 것은 늑대 아닙니까! 늑대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잘 못 보는데 뭐냐하면, 이게 떼로 몰려다닙니다.
여러분 아마 영화나 이런 것을 통해서 봤죠. 특별히 저 뭐 러시아나, 저 벌판 이런 황무지 같은 데는 이런 늑대들이 떼로 몰려다니죠. 그래서 제가 "닥터 지바고" 봤는가... 한번 보면서 뭐냐하면, 그 늑대 때가 그냥 떼로 몰려오는 겁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막 몰려옵니다. 그런데 상상해 보세요. 그 가운데 양을 한 마리 던졌다! 늑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또 양입니다. 어떻게 되겠어요. 이건 뭐 염려한다! 근심한다!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공포에 오돌오돌 떨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이와 같은 환경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리 가운데 양이 한 마리 들어갔다! 그건 뭐 그냥 금방 짖어져 죽는 거죠. 아마 뼈다귀도 안 남고 죽을 겁니다. 그런데 살고 있다! 그건 기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예수 믿고, 예수는 그리스도 시다! 그러고, 송현 교회 교인이다! 그러고, 주일날 버젓이 성경찬송 들고 오는 것은, 이건 기적입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뼈다귀도 안 남고 다 사라져야 되는데, 이게 지금현재,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다! 우리가 현재 믿음가지고 교회 모이고 있다! 찬송 부르고 있다! 이게 지금 기적입니다. 왜? 이런 기적이 하나님이 은혜 안 주시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기적이다! 그런 배경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까지 왔다! 이것은 기적이지, 인간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혹시 처음 오신 분들이 있습니까! 어쩌다가 여기 왔습니까! 될 수가 없어요. 아마 여기 오기까지 지난 과거를 보세요. 도저히 올 수 없는 자들일 겁니다. 예수라 그러면 이를 갈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건 기적이지, 그냥 나오는 문제들이 아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서 또 한가지 절대적인 전재가 되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런 배경입니다. 여러분 이리 속에 양이 살아간다! 그건 뭐 엄청난 기적이죠. 도움이라는 어떤 그런 배경이 없으면 가능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 믿고 산다는 것은 강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 속에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수 믿고 산다! 그런 강력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이게 안 되면 우리는 '예수 믿고 산다! 뭐 세계복음화다!' 하기야 예수 믿고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세계복음화 한다고 전도하러 어디 나갑니까! 여러분 감히 전도하러 나간다는 사실자체가 이게 기적 아닙니까! 생각을 해 보세요. 이 축복과 역사가 지금 우리 속에 사실적으로 누려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고,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누린다!' 그러니까, 누리는 것이 나하고 상관없이 보일는지 모르지 만은, 이곳에 왔다는 자체가 여러분 누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엄청난 누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강조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이제 전제를 했습니다. 위험이 오고 고통이 올 때에, 또 문제가 오고 힘든 일이 생길 때에 왜 이런 일이 오느냐? '당연하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당연하다! 이걸 확실히 인식해야 됩니다 여러분 이 인지를 해야 돼요. 올 때에 왜 왔느냐? 올게 왔는 것이지! 그 당연하게 오는 것이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못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도움을 믿지 않을 때에 당연히 오는 것이지, 거기에 당연히 사건이 생기지, 우리는 순간만 고개 돌려도, 당연히 문제와 사건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 신앙의 체질이 가득 차 가지고, 뭐 한순간입니다. 늘 불 신앙하고 살아가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 수준과 상관없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 다른 게 없거든요.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바로 인식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것이 왔구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가! 온 만큼 자연스럽게 이것이 인식이 되고, 인지가 되면 기대가 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보장해 주실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왔다! 그럴 때에 이 문제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결이 되어 나갈 것인가? 기대가 되는 것이죠. 이런 어떤 배경들이 바로 이해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여러분들이 아실 것은, '염려치 말라!' 그랬을 때에 염려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또 그런 문제가 왔을 때에 올 것이 왔구나! 그러면서 당황하지 말라! '당황하지 말라! 조급하지 말라! 정신병이 왔다! 육체에 병이 왔다!' 올 것이 왔습니다.
지금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로 뭔가 병 안 들고 사는 것이지, 조그마한 바이러스 하나만 들어와도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 아닙니까! 지난, 제가 말씀 드린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우리 어떤 목사님, 다락방에서 주로 합숙훈련을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밤중에 막 빙빙 빙빙 돌아가 정신이 없어 가지고 밤중에 응급실에 갔어요. 뭐 큰 병인가 싶어서 그 가보니까, 응급실에 가서 진찰한 결과 바이러스가, 감기 바이러스가 어디 있느냐? 여기 달팽이관에 침범을 했어요. 그러니까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조그마한 게 들어와도 그런데 이 주변에는, 우리 주변에는 막 온통 바이러스 투성이고 병균 투성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살고 있거든요. 무슨 병이 걸렸다! 무슨 사건이 생겼다! 올게 왔구나! 손 한번 안 씻으니까 왔다! 그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실수해도 들어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지금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을 아마 확실하게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이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올게 왔다!' 그러면 또 하나님께서 이 오는 것을 통해서 나와 여러분에게 계획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오고,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만 붙잡게 되면 뭐가 없어지느냐? 조급하고, 당황하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하는 것이 없어져 버립니다. 여러분 정신병에서 가장문제 되는 것이 뭐냐하면, 조급해지는 겁니다. 막 다급해지고... 제가 늘 그 저녁 예배 때마다 조금 이 치유에 대한 문제를 말씀을 드리면서, 어떤 그 뭔가, 이게 정신적인 문제가 딱 마음에 올 때에, 제일 내 심령을 답답하게 만들고, 이걸 급증과 이 뭔가 증폭해 주는 것이 뭐냐하면, 조급함입니다. 막 답답하게 느껴져요. 답답해도 '답답해지는구나!' 그러면서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렇게 되면 평안해져 버려요.
그냥! 큰일났구나! 왜 이러느냐! 나만 왜 이러느냐? 나한테만 이런 문제 생기느냐?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그러면 더 죽어 버려요. 그런다고 해서 유익이 되는 것이, 요만큼도 없거든요. 내게 사건과 일이 일어나면, '올 것이 왔구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늦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나와 내 가정과 우리에게 어떤 계획을 이루실 것인가? 기다리자!' 그러면 치료될 것은 치료되고, 지나갈 것은 지나가고, 그렇잖아요. 감기 걸렸다! 시간 되면 나가는 겁니다. 막 빨리 나으려고 약 먹고 하면 더 지쳐요. 그냥, 그냥 나가는 겁니다. 받아합시다. "때가 되면 나갈지어다!" 때가 되면 나가요. 그러면 슬프면 슬픈 데로, 아프면 아픈 데로, 오직 한번 약속 딱 잡고 바라보면, 때가되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사실이 확인될 수밖에 없는 축복을 이미 여러분과 제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10장 19절 말씀 보면요.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많은 설명을 안 해도 이게 여러분 다 해결된 말씀 아닙니까! 그래서 왜 염려치 말고, 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이렇게 느긋하다 못해 평안히 살수밖에 없는 삶이 누려져야 되느냐?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오늘 여기에 나타난 말씀 속에서, 엄청난 축복의 말씀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한 주간뿐만 아니라, 여러분 평생에 계속 될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늘 확인해야 될 것이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게 확인되는 만큼 뭐가 이루어지느냐? 하나님의 손에 내 자신을 의뢰할 수가 잇습니다. 맡길 수가 있습니다. 맡기는 만큼 누구의 인도를 받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너의 장래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리라!' 잠언 서에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인도 받지 못하는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이 믿음이 우리 자신 속에, 사실적으로 이해가 되는 때에, 구체적인 누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5장 10절, 13절에 보면 분명히 말씀했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럴 때에 지금까지 이 말씀을 정상적으로 말씀을 통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약점입니다. 신비적으로 받아 드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이죠. 말하자면 체험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식을 하려고 그러고 덤벼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체험적으로 이 체험을 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라 인식시키려고 하는 그런 것들이 주로 뭐냐하면, 옛날 과거에 신비적인 배경이고, 이것이 또 더 깊이 들어가면 종교적인 배경으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그냥 어떤 체험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서, 기도를 많이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생각한번 바꾸어 버리면 돼요. 그리고 뭔가 자세만, 방향만 바꾸어 버리면 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받아합시다.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엄청난 변화를 주시는데, 그 말씀, 그 약속을 믿고, 영접하고, 내 안에 받아들일 때에, 성경은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 그랬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기도 많이 했다!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뭐 방언 백 번, 천 번해도 이상한 사람은 많았는데, 이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약속하신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내가 영접했더니,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 그렇게 말씀한 것이 성경에 분명한 말씀입니다. 이 확신이 사실적으로 있어야 되죠.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뭐라 그랬어요? '생명이 없어요.' 백 번, 천 번 체험했다! 야단쳐도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뭐 나타나는 것이 이상하게, 뭐 희한하게, 뭐 또 생긴 것이 뭐 같이 이상하게 생겼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그 속에 있을 때에 그에게는 뭐가 있다 그랬습니까? 생명이 있다!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뭐 자꾸 것 붙잡고, 다른 어떤 이상한 현상들, 어떤 일어나는 징조들 붙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내게 징조가 일어났다, 없다! 상관없습니다. 지금 내게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그래서 그 지난 수요일 날 메시지 들어보니까, 그러더라 구요. 미국에 목사님 손자가 있고, 손녀가 있는데, 큰놈한테는, 손자한테는 '예수님 어디 계시냐?' 그러니까, 가슴을 두드리고 그 밑에 이제 난 딸은 얼마 안되죠. 손녀한테는 '예수님 어디 계시냐?' 그러니까 배꼽을 두드려요. 그건 그들의 수준입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다 큰놈이, 내 아들이 '예수님 어디 계시냐?' 그랬더니 가슴을 두드리면, 그건 약간 미친놈이죠.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 말씀을 붙잡고 내 안에, 그리고 순간 우리가 희미하고 연약할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내가 지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뭐로? 권세를 주셨다! 누가 말했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약속입니다. 절대로 한번 약속하시면 변경치 아니하시고, 우주는 혹시 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이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에 법칙을 주었고, 그 법칙은 지금까지 바꾸어지지를 않습니다. 여름이 올 때에 겨울이 오는 법이 없어요. 여러분은 여름에 눈이 펑펑 옵니까! 그럴 수가 없어요. 이제 앞으로 말세가 되면, 그럴 증조가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주님이 오실 증거로...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게 없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된 역사, 변치 않는 하나님의 역사로 분명히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 사실을 사실적으로 붙잡으면 됩니다.
혹시 마음에 염려 근심이 있습니까? 먼저 이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내 안에 예수께서 오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하는 이때에 중요한 것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 말씀 배경이 뭐라 그랬습니까? '네가 입으로 말할 때에 염려하지 말라! 어렵고 힘들고 공경에 처했을 때에 변명하려고, 뭔가 말 잘하려고 생각지 말라!' 왜? 네게 말하게 하는 이는 너희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랬거든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에 누가 역사 합니까? '성령께서 오신다!' 그랬습니다.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적 임재가 여러분 속에 성령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늘 하라 안 그럽니까! 그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셨습니다. 임재라 그랬습니다. 이걸 가지고, '내주 하신다!' 그랬습니다. 성령은 한번 오셨다가 가는 법이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왜 자꾸 걱정합니까! 갔는가 싶어서 걱정하고, 떠났는가 싶어서 걱정하고, 하나님이 안 도와줄까 싶어서 걱정하고, '염려치 말라!' 그랬습니다. 한번 오시면 영원히 여러분과 저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여기에 말씀해 주신 것이 뭐냐하면,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염려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를 할 수밖에 없고, 나올 수밖에 없어요. 자꾸 나오니까, 염려하지 말라! 그랬거든요. 아마 여러분 가정 생활, 사회생활, 직장 생활하면서 조금만 불 신앙으로 눈 돌리면, 전부 염려 투성이 입니다. 저는 신문을 보다가 자꾸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와서 조금만 이상한, 불 신앙하면 자꾸 이상한 말이 나옵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어요. 자식을 봐도, 이웃을 봐도, 그 다음에 아내를 봐도, 남편을 봐도, 그 나오는 것은 조금만 불 신앙하면, 전부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환경이요. 그런 상황에 대한 사실을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염려가 나왔을 때에 염려하지 말라는 이유 속에는, 염려가 나올 때마다 뭘 해야 됩니까? 그 염려를 하나님께라!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라! 네가 할 이유가 없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도라 그랬어요. 기도라 그랬습니다. 염려가 나올 때마다 그 염려를 금방 뭘 해야 됩니까? 기도하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맡겨라! 기도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많은 말씀을 했죠. 특별히 우리 무시기도, 정시기도! 정시기도는 리듬을 타는 것이다! 뭐 그런 말씀을 했는데, 나는 정시기도는 하나님과 방향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봅니다. 그 다음에 무시기도는 하나님과 방향 맞춘 사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내가 지금현재 하나님과 방향이 맞게 되어 있느냐? 무시기도 입니다.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데, 성경은 많은 경우 기도에 대해서 엄청난 축복을, 축복이라고 말하기 보다 응답을 약속해 주신 것이죠. 요한 복음 14장 14절 보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랬습니다. 받아합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 이게 약속이거든요. 무엇이든지 그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에 뭐 이것은 될 것 같아서 기도하고 이것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기도 안하고 그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도 자신도 모르게 '도저히 이것은 안 될 것 같다!'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구요. '아, 이것은 될 것 같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상관없어요.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누가 응답합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 오는 만큼 뭡니까? 기쁨이 온다! 그랬습니다. 감사가 온다!
그래서 저는 요즘 새삼스럽게 뭘 느끼느냐하면, 여러분들이 그 기도할 때에 어떤 사건이 이루어 졌다고 기쁜 게 아니고,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하는,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제가 그 국민일보에도 그런 말이 나왔더라 구요. 중보 기도에 대해서 요즘 어떤 교단에서는, '중보 기도 할 필요가 없다! 중보 기도라는 말 자체가 그런 어패가 있다!' 왜? 중보는 예수님 이외에 누가 중보 하느냐? 이래가지고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중보 기도하는 것, 그 자체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교단들이 있더라 구요. 그런 교단에서 보수적인 성향이 있더라 구요.
그런데 사실상 어떤 면에서 여러분 중보 기도라는 그 말 자체에 뜻이, 지난번에 제가 조금 설명을 드렸죠. 중보 기도한다는 말 자체가 그 사람에게 뭐 어려움이 있으니까, 그 사람의 사실이나, 일이나,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기도한다 생각하는 게 중보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중보 기도한다!' 그럴 때에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원죄가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그에게 이루어지는 이 축복이 중보 기도에 배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보 기도한다!'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그 사람 위해서 일이 되고 안되고, 그 사람 축복 받고 안 받고, 이런 것을 가지고 기도한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여러분과 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손에 그 사람을 의탁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없어요.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옵소서!' 그 사람에게 다른 거 없어요. 여러분 어떤 경우 '중보 기도한다!' 그럴 때에 뭐 이상한 그런 또 중보 기도가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 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니까, 다리가 하나 부러지게 하옵소서!' 그런다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 백 번 해봐야 소용없어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옵소서!' 그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죠.
여러분 사실은 중보 기도가 안 했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아브라함 같은 경우에도 롯을 위해서 엄청난 중보 기도가 나왔다! 성경은 많은 경우 있습니다. 그 많은 경우 기도가 그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이루어졌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하나님의 방향을 따라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 기도에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식들에게 향해서 막 중보 기도한다고, 뭐 '하나님 뭘 하게 해주고...' 그 이전에 하나님 뜻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면 성령 충만하게 해 주옵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정말로 세계 복음화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식이 될 수 있도록...
문제는 그런 방향에 기도입니다. 뭐 '세계 제일가는 갑부가 되게 하시고...' 다 갑부 되어버리면 누가? 물론 어떤 면에서 그런 문제도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근본적인 여러분 배경이 잘 이해가 되어지고 이루어 져야되죠.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문제는 염려가 안 나온다는 게 아니거든요. 염려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올 때마다 기도응답의 역사로 이어지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응답을 주신다. 우리는 응답을 주신다! 그럴 때에 자꾸 우리기도에서 착각하고, 지금까지 응답을 하나도 못 받았다 싶고, 기도해도 안 된다 싶은, 기도의 실패 감이 상당히 많거든요. 많은 경우 거의 이런 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기도는 했는데, 기도는 안되더라!' 이런 것으로 참 많습니다. 기도가 '응답을 받는다!' 그랬는데, '하는 것마다 응답 받았다!' 그러는데, 또 응답 받는다고 말씀했는데, 나는 한번도 응답을 못 받았다!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될 것이, 응답을 주신다는 응답은 도대체 뭐냐? 뭐가 주로 응답이냐? 그럴 때에 잘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20절에 보면,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선 응답이 뭐냐? 제일 핵심적인 중요한 것을, 여러분 전제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응답 중에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 이 사실을 사건과 일마다 인식할 수 있다! 그러면 그게 응답 중에 응답이에요.
뭐가 이루어 졌다! 성취되었다! 그러면 문제가 생겨요. 예를 들어서 보세요. 우산 장수는 비가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맨 날 하나님 오늘도 비가 오게 하옵소서. 그런데 또 소금 장수는 비가 오면 안 되잖아요. 오늘 비가 오지 않게 하옵소서. 이러면 둘 다, 한 사람은 비가 오게 해달라! 한 사람은 비가 오지 말게 해 달라! 그러면 이 사실 자체가지고 응답이라 그러면 곤란하거든요. 왜? 비가 올 때는 와야 되고, 안 올 때는 안 와야 되거든요. 그러면 비가 오고, 안 오고 하는 그렇게 비가 적당히 이 땅에 오게 하고, 안 오게 하는 이걸 가지고 신학적으로 일반은총이라 그럽니다. 일반 은총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누구에게든지 다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실 차제를 가지고 우리는 기도응답에 문제로 연결시켜 버리면요. 여러분 이 땅에 악한 사람에게 다리몽둥이 다 부러져야 돼요. 그 악하다는 개념이 어떤 사람은 이런 개념이고 어떤 사람은 저런 개념입니다. 나올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손에 잇는 것이지 인간 차체에 놓치 않습니다. 왜? 인간 자체가 파괴된다! 본질상 진노이기 때문에 거기에 기도 안 되는 응답 받는다 그러면, 이 땅은 당장 파괴가 되던지 지구가 이상해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기도응답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기도응답 그럴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먼저 '아, 하나님이 이 사건 속에서, 이 문제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이 사실이 인지되는 만큼 응답이 옵니다. 이 사실이 이해가 되고, 이 사실이 받아들여지는 만큼, 확실한 응답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가지고 희미하게 생각하고, 여기에 대한 확실한 어떤 해답이 없으면 기도라는 자체가 잘 안 되죠.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형편과, 사정과, 일과, 사건과, 모든 것 잘 아십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말씀하죠.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십니다. 부모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닙니다. 나도 아닙니다. 내가 잘 알 것 같죠? 천만에 말씀! 어떤 면에서 자기 자신을 자기가 제일 모릅니다. 알아도 엉뚱하게 알고 있어요. 가장 확실하게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정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시냐? 객관적으로 성경이 뭐라 그랬습니까? 여러분 머리털 하나도 다 세신다! 그랬습니다. 여기 계신 분, 내 머리털이 몇 개냐, 혹시 알아요? 아무리 대머리라 그래도 머리 털 하나 계산하고 있는 분은, 세상 천지에 없더라 구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흔히 그런 말합니다. 왜 이런 문제 생기느냐? '아, 우연이겠지!' 아닙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절대 안 떨어집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고 사는 문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모든 문제, 왜, 모릅니까? 하나님이 잘 아시는 정도가 아니고, 너무 잘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9편 1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 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시 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오늘 여러분 무슨 말하고 왔는지, 앞으로 오늘 무슨 말할지, 하나님 다 아십니다. 이상한 소리하고 여기 와서 앉았는 것도 아시고, 빨리 회개하세요. 하나님이 그걸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다 아십니다. '다 아신다!' 그랬어요. 여러분 그래서 너무 이 사실을 알게된 바울이 '명철이 한이 없다! 지혜가 무한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그 역사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거죠. 그리고 똑같은 139편에 보면,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벌써 거기에도 또 하나님이 계세요. 하나님의 낮을 피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줄 압니까? 어디 가든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벌써 내가 올 줄 알고 내 모든 상황과 일들을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
심지어는 내가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벌써 거기도 계시고,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옥 갈 수 없지만 지옥 간다 그래도..." 누가 같이 갑니까? '하나님이 같이 가신다!' 그랬습니다. 기가 막힌 사건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옥 갈 수 없지만 지옥 간다! 그래도 하나님이 거기도 같이 가겠다! 그랬습니다.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뭘?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뭘 약속했느냐? 자녀가 되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했습니다. 어디서든지, 어디 가든지!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함께 인도하심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약속했다, 함께 한다!' 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거기에 모든 해답이 다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자녀를 키워보면서 여러분 아마 다 느낄 겁니다. 느끼는 것은, 아버지가 자녀의 필요한 부분을 알았다! 그럴 때에 자녀가 굳이 달라, 안 달라 할 것도 없어요. 저절로 따라 옵니다. 그리고 뭐 자식이 조금 뭐 아버지한테, 이렇게 잘해주고 좀 아버지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러면, 그 것보다도 훨씬 그 자식을 풍성하게 갚아준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이걸 모르는 아이들, 이걸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아빠가 과자 하나 달라고 그러면 절대로 안주고 혼자 먹죠. 꼭 지금 비슷해요.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의 역사에 길을 몰라요.
엉뚱한 것! 그러니 뭐 헌금하라, 뭐 하라! 그건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나와 여러분을 통해서 기뻐하시는 것이 뭐냐? 조금만 해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5분만 축복하시면, 1분만 축복하시는 게 아니고, 1초만 잠깐 축복하셔도 세계 재벌을 만드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워낙 이상한 소리만 하고, 이상한 불 신앙만 가지고, 하나님 바라보고 원망만 잔뜩 해대니까, 축복해 줘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에요. 될 일이 아니고 축복해 줬다! 그러면 더 망하게 되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것뿐이지, 엄청난 이 은혜의 축복을 하나님이 약속할 때에 뭐라 그랬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다 끝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누가 같이 계십니까? 박 목사가 함께 합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리라! 그 분이 누구입니까? 전능하신 분, 나의 아버지 시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과 저는 엄청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핵심에도 비전이 나오고, 요즘 비전이 나오더라 구요. 이건 김동훈 목사님이 오셔 가지고 비전이 있으면 안 늙는다! 그러더라 구요. 비전이 있으면 나이가 많고, 또 연세가 많이 들어도 괜찮다! 비전만 가져라! 그래서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전이 없어서 늙느냐!' 나를 보고 요즘 많이 늙어간다! 그러거든요. 그래서 엄청난 비전, 다른 게 아닙니다. 비전이 뭐냐? 성경에 여기 약속했습니다. 23절 한번 다같이 봅시다. 23절 다같이 시작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할렐루야!
우리의 비전은 뭡니까? 우리의 비전은 여러분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구름이 조금만 떠도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인가! 그리고 주님이 오시게 될 때에, 오시기 전에 성경은 뭐라 그랬습니까? 세계 복음화! 완전 복음화 시켜놓고 주께서 오실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과 저를,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바로 세계 복음화라는 비전입니다. 세계복음화의 비전! 이게 연결되는 겁니다. 우리 자식들이 그냥 걸핏하면, 우리 조그마한 꼬마들 뭐 압니까? '세계복음화 하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하잖아요.
그게 다른 게 아닙니다. 그 기도가 나쁘냐? 조만한 게 뭐 세계복음화 하겠냐? 비전입니다. 당장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를 하시고 약속을 해 놓았어요. 하나님께서 엄청난 그 속에, 모든 축복과 승리가 그 속에 다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시고, 그 속에 다 약속된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 비전을 가지고 나갈 때에, 오늘 본문에 말씀했죠. 이리저리 도망쳐 다녀야 되고, 몰려 다녀야 되고, 이런 역사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때로는 신자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성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통이 온다! 그것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 때문에 성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야 됩니다. 병들고 힘들다! 절대로 그 '병들고 힘들다!' 소리하지 마시고, 병들고 힘든 사건 또 여러 가지 문제로 통해서 힘든다는 사건이 나올 때에, 불 신앙으로 빠지지 마세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뭐라 그랬습니까? 성공하도록 계획해 놓았습니다. 기어코 그 사건, 사건이 여러분 실패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성공된 축복과 역사를 체험하게 만드실 것을 성경이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요셉을 불러 놓고 얼마나 문제가 계속 되었습니까? 노예로 팔리죠. 그 노예 때문에 성공하는 겁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감옥에 들어간 것 때문에 성공하는 겁니다. 그 사건 하나 하나가 요셉에게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과정이라는 말을 여러분 들으면 오늘도 식상해 질 것 같아서 이 말 안 쓰겠습니다. 그 것 때문에 성공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축복 받도록,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받아합시다. "나는, 우리는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높이신다!" 내가 높이고 네가 높인 게 아닙니다. 혹시 사람에게는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시고, 여러분을 세계복음화에 일꾼으로, 하나님이 기어코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어 놓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어려운 문제에 있거나, 내게 고질 스러운 병든 문제나, 이런 사건이나, 이런 문제 있거든, 그것 자랑하지 마세요. 자연적으로... 왜, 그러냐 하면요. 제가 아파 보니까, 자꾸 그 말이 나오더라 구요. 흔히 뭐냐? 병 이야기 밖에 안 나와요. 나는 그것은 나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불 신앙으로 빠져 가는 사단에게 속는 겁니다. 그 자랑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에게 어떻게 귀한 역사와 계획을 이루시는가, 바로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축복하시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이거든요. 고난 때문에 승리하게 되고, 고난 때문에 믿음에 역사와 사실이 확인 되게 되고, 고난 때문에 이런 축복과 은혜 속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 성경에 약속입니다. 그게 다니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성경전체에 모든 인물들인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뭐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것이 안 되니까, 너무 일이나 사건에 찌들려 있어요.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불 신앙에 찌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를 당해서 계속해서 안 된다는 것에 찌들려 있는 것이 바로 문제거든요. 이걸 가지고 우리는 종교에 빠졌다! 그럽니다. 여러분 종교에 빠졌다는 것은 기도해도 안되더라! 예수 열심히 믿어도 안 되더라! 그럴 수밖에 없어요. 복음에 확실한 뿌리를 못 내리면 그런 것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에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당장 당하는 것이 고난인 것 같지만, 그 고난보다도, 그 고난 통해서 하나님께서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 나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요.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 문제 속에서 뭐하면 되느냐? 주님만 붙잡아 버리면 되는 겁니다. 언약을 붙잡고 계속해서 방향을 맞추어 버리면 된다!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이 사실을 바로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나는 그 풍랑을 만난 배도 타 봤고, 배를 타보면서 느끼는 것은, 바다 위에 배가 지나갈 때에 물이 배속에 들어와 가지고 빠져버리면, 그러면 다 끝입니다. 그러나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동안에는 모든 곳이 길입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여러분 시험이 오고, 고난이 오고, 풍랑이 일어 날 때에 그곳에 빠져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불 신앙으로 낙심하면 끝입니다. 낙심만 하지 아니하면, 이 풍랑 인연하여서 뭐가 됩니까! 더 빨리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이것이 안되니까, 자꾸 실패에 빠지는 겁니다. 지금 나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 일, 문제, 큰 비전을 가지시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세우셔서 세계까지, 세계 복음화에 역사까지 계획하신 이 뜻을 분명히 붙잡아야 됩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아 식구가 물 때문에 살았습니다. 홍수 때문에 노아 식구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아실 것은, 노아 식구 외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물 때문에 뭐했습니까? 빠져 죽었습니다. 어려움과 고통과, 혹은 때에 따라서는 병든 것과 풍랑이 일어나고, 사건이 생길 때에 불 신앙하게 되면, 바로 그 사건 때문에 죽을 수 있습니다. 멸망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언약잡고, 확실하게 되는 그 순간, 그 사건 때문에 살아납니다. 그 사건 때문에 축복으로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엄청난 교회 건축을 앞두고, 여러 가지 모든 문제에서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느냐? '아, 사단이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그릇을 키우시는 중대한 축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좁아 터진 마음으로 큰 교회 지어봤자! 어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엄청난 그런 계획을 세우시고, 이제 마음 문 활짝 열고, 비전을 주셔서 세계를 살려야 될 그런 일꾼들로 하나님이 먼저 그릇을 만들어 줄 겁니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 기도하고, 각 이 기관들마다, 개인이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 들으시고 지금 응답하고 계십니다. 엄청난 축복과 역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음만 조금 여시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빠질 것이 아니라, 그것 붙잡고 언약 화시켜 나가버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확신과 담력을 가지고, 주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건, 그것이 축복과 은혜의 기회요. 주신 문제, 그것이 내가 빠질 문제가 아니고 축복을 받을 은혜의 길인 것을 확인하시면서 하나님이 지금도 이 사건, 이 일을 통해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확실한 믿음 가지시고, 승리하시는 말씀의 성취가 한 주간도 계속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문제가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세상은 염려할 수밖에 없고, 걱정할 수밖에 없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올 때, 일단은 '올 것이 왔구나.' 라고 인정하십시오.
☞ 이러한 환경에서 '믿음'이 대전제가 되어지지 않으면 신앙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사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주일이 되어서 교회에 찾아온다는 것부터가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 정리하면, 위험이나 고통이 올 때, '그것이 당연하다' 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는 불신앙의 체질이 강하므로 문제가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험이나 고통이 올 때, 오히려 '이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결되어질 것인가?' 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만 받게 되면, 조급함과 당황함과 염려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 먼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사실이 확인되는만큼,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만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어떤 기적이나 징조를 통해서 찾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 때문에, 내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3]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 이 세상에서는 조금만 불신앙을 가지면, 염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염려가 나올 때마다, 그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것은 응답을 받게 되고, 그 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인을 얻게 되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 우리는 '기도 응답'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사건 속에서도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응답 중의 응답입니다.
[4] 우리는 엄청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의 비전은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시기 전에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세계 복음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고통이 올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성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문제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시고, 세계 복음화의 일꾼으로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마 10: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오늘 말씀에 제목을 "염려치 말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성경 속에서 메시지의 내용이 오늘 '염려치 말라' 지난주에 또 뭐라 그랬습니까? '권능을 주신다!' 그 다음 또 뭡니까? '무서워 말라!' 전부 이런 내용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계속 염려하지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권능을 주신다!'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시느냐? 그러고 볼 때에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아마 우리 교인들이, 아마 굉장히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걱정을 하는가 보다! 아니 우리 교인들이 아니고, 이 땅에 아마 그런가 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지금 현재 이 땅에, 쉽게 말해서 염려할 수밖에 없고, 걱정할 수밖에 없고, 무서워 할 수밖에 없고, 두려워 할 수밖에 없고, 이런 것이 지금 이 땅에 현실적인 환경이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10장 18절에 보면,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염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사는 이 땅입니다.
특별히 이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의 주변 환경이 무서워지고, 염려할 수밖에 없고, 어려운 그런 환경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당연하게 그런 환경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대 전제가 안 되면 여러분 살아 남지를 못해요. 신앙 생활하는 자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먼저 이 시간에 좀 인정을 해야 될 것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뭐 사건이 생기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아, 올 것이 왔구나! 당연하구나!' 인정을 하라! 이겁니다. 먼저! 먼저 이 환경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16절 보면, 한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6절 다같이 시작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아멘! '내가 너희를'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과 저입니다. 복음 들고 세계 복음화 해야 될 일꾼들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뭐라 그랬어요? '양을 이리 가운에 보냄과 같도다!' 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읽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도저히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오돌오돌 떨고 살아야 돼요. 지금 한번 보세요. 이리 라는 것은 늑대 아닙니까! 늑대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잘 못 보는데 뭐냐하면, 이게 떼로 몰려다닙니다.
여러분 아마 영화나 이런 것을 통해서 봤죠. 특별히 저 뭐 러시아나, 저 벌판 이런 황무지 같은 데는 이런 늑대들이 떼로 몰려다니죠. 그래서 제가 "닥터 지바고" 봤는가... 한번 보면서 뭐냐하면, 그 늑대 때가 그냥 떼로 몰려오는 겁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막 몰려옵니다. 그런데 상상해 보세요. 그 가운데 양을 한 마리 던졌다! 늑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또 양입니다. 어떻게 되겠어요. 이건 뭐 염려한다! 근심한다!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공포에 오돌오돌 떨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이와 같은 환경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리 가운데 양이 한 마리 들어갔다! 그건 뭐 그냥 금방 짖어져 죽는 거죠. 아마 뼈다귀도 안 남고 죽을 겁니다. 그런데 살고 있다! 그건 기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예수 믿고, 예수는 그리스도 시다! 그러고, 송현 교회 교인이다! 그러고, 주일날 버젓이 성경찬송 들고 오는 것은, 이건 기적입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뼈다귀도 안 남고 다 사라져야 되는데, 이게 지금현재,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다! 우리가 현재 믿음가지고 교회 모이고 있다! 찬송 부르고 있다! 이게 지금 기적입니다. 왜? 이런 기적이 하나님이 은혜 안 주시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기적이다! 그런 배경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까지 왔다! 이것은 기적이지, 인간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혹시 처음 오신 분들이 있습니까! 어쩌다가 여기 왔습니까! 될 수가 없어요. 아마 여기 오기까지 지난 과거를 보세요. 도저히 올 수 없는 자들일 겁니다. 예수라 그러면 이를 갈고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건 기적이지, 그냥 나오는 문제들이 아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서 또 한가지 절대적인 전재가 되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런 배경입니다. 여러분 이리 속에 양이 살아간다! 그건 뭐 엄청난 기적이죠. 도움이라는 어떤 그런 배경이 없으면 가능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 믿고 산다는 것은 강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 속에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수 믿고 산다! 그런 강력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이게 안 되면 우리는 '예수 믿고 산다! 뭐 세계복음화다!' 하기야 예수 믿고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세계복음화 한다고 전도하러 어디 나갑니까! 여러분 감히 전도하러 나간다는 사실자체가 이게 기적 아닙니까! 생각을 해 보세요. 이 축복과 역사가 지금 우리 속에 사실적으로 누려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고,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누린다!' 그러니까, 누리는 것이 나하고 상관없이 보일는지 모르지 만은, 이곳에 왔다는 자체가 여러분 누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엄청난 누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강조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이제 전제를 했습니다. 위험이 오고 고통이 올 때에, 또 문제가 오고 힘든 일이 생길 때에 왜 이런 일이 오느냐? '당연하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당연하다! 이걸 확실히 인식해야 됩니다 여러분 이 인지를 해야 돼요. 올 때에 왜 왔느냐? 올게 왔는 것이지! 그 당연하게 오는 것이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못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도움을 믿지 않을 때에 당연히 오는 것이지, 거기에 당연히 사건이 생기지, 우리는 순간만 고개 돌려도, 당연히 문제와 사건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 신앙의 체질이 가득 차 가지고, 뭐 한순간입니다. 늘 불 신앙하고 살아가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 수준과 상관없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 다른 게 없거든요.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바로 인식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것이 왔구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가! 온 만큼 자연스럽게 이것이 인식이 되고, 인지가 되면 기대가 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보장해 주실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왔다! 그럴 때에 이 문제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결이 되어 나갈 것인가? 기대가 되는 것이죠. 이런 어떤 배경들이 바로 이해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여러분들이 아실 것은, '염려치 말라!' 그랬을 때에 염려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또 그런 문제가 왔을 때에 올 것이 왔구나! 그러면서 당황하지 말라! '당황하지 말라! 조급하지 말라! 정신병이 왔다! 육체에 병이 왔다!' 올 것이 왔습니다.
지금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로 뭔가 병 안 들고 사는 것이지, 조그마한 바이러스 하나만 들어와도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 아닙니까! 지난, 제가 말씀 드린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우리 어떤 목사님, 다락방에서 주로 합숙훈련을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밤중에 막 빙빙 빙빙 돌아가 정신이 없어 가지고 밤중에 응급실에 갔어요. 뭐 큰 병인가 싶어서 그 가보니까, 응급실에 가서 진찰한 결과 바이러스가, 감기 바이러스가 어디 있느냐? 여기 달팽이관에 침범을 했어요. 그러니까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조그마한 게 들어와도 그런데 이 주변에는, 우리 주변에는 막 온통 바이러스 투성이고 병균 투성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살고 있거든요. 무슨 병이 걸렸다! 무슨 사건이 생겼다! 올게 왔구나! 손 한번 안 씻으니까 왔다! 그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실수해도 들어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지금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을 아마 확실하게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이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올게 왔다!' 그러면 또 하나님께서 이 오는 것을 통해서 나와 여러분에게 계획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오고,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만 붙잡게 되면 뭐가 없어지느냐? 조급하고, 당황하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하는 것이 없어져 버립니다. 여러분 정신병에서 가장문제 되는 것이 뭐냐하면, 조급해지는 겁니다. 막 다급해지고... 제가 늘 그 저녁 예배 때마다 조금 이 치유에 대한 문제를 말씀을 드리면서, 어떤 그 뭔가, 이게 정신적인 문제가 딱 마음에 올 때에, 제일 내 심령을 답답하게 만들고, 이걸 급증과 이 뭔가 증폭해 주는 것이 뭐냐하면, 조급함입니다. 막 답답하게 느껴져요. 답답해도 '답답해지는구나!' 그러면서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렇게 되면 평안해져 버려요.
그냥! 큰일났구나! 왜 이러느냐! 나만 왜 이러느냐? 나한테만 이런 문제 생기느냐?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그러면 더 죽어 버려요. 그런다고 해서 유익이 되는 것이, 요만큼도 없거든요. 내게 사건과 일이 일어나면, '올 것이 왔구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늦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나와 내 가정과 우리에게 어떤 계획을 이루실 것인가? 기다리자!' 그러면 치료될 것은 치료되고, 지나갈 것은 지나가고, 그렇잖아요. 감기 걸렸다! 시간 되면 나가는 겁니다. 막 빨리 나으려고 약 먹고 하면 더 지쳐요. 그냥, 그냥 나가는 겁니다. 받아합시다. "때가 되면 나갈지어다!" 때가 되면 나가요. 그러면 슬프면 슬픈 데로, 아프면 아픈 데로, 오직 한번 약속 딱 잡고 바라보면, 때가되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사실이 확인될 수밖에 없는 축복을 이미 여러분과 제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10장 19절 말씀 보면요.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많은 설명을 안 해도 이게 여러분 다 해결된 말씀 아닙니까! 그래서 왜 염려치 말고, 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이렇게 느긋하다 못해 평안히 살수밖에 없는 삶이 누려져야 되느냐?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오늘 여기에 나타난 말씀 속에서, 엄청난 축복의 말씀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한 주간뿐만 아니라, 여러분 평생에 계속 될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늘 확인해야 될 것이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게 확인되는 만큼 뭐가 이루어지느냐? 하나님의 손에 내 자신을 의뢰할 수가 잇습니다. 맡길 수가 있습니다. 맡기는 만큼 누구의 인도를 받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너의 장래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리라!' 잠언 서에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인도 받지 못하는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이 믿음이 우리 자신 속에, 사실적으로 이해가 되는 때에, 구체적인 누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5장 10절, 13절에 보면 분명히 말씀했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럴 때에 지금까지 이 말씀을 정상적으로 말씀을 통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약점입니다. 신비적으로 받아 드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이죠. 말하자면 체험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식을 하려고 그러고 덤벼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체험적으로 이 체험을 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라 인식시키려고 하는 그런 것들이 주로 뭐냐하면, 옛날 과거에 신비적인 배경이고, 이것이 또 더 깊이 들어가면 종교적인 배경으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그냥 어떤 체험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서, 기도를 많이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생각한번 바꾸어 버리면 돼요. 그리고 뭔가 자세만, 방향만 바꾸어 버리면 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받아합시다.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엄청난 변화를 주시는데, 그 말씀, 그 약속을 믿고, 영접하고, 내 안에 받아들일 때에, 성경은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 그랬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기도 많이 했다!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뭐 방언 백 번, 천 번해도 이상한 사람은 많았는데, 이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약속하신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내가 영접했더니,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 그렇게 말씀한 것이 성경에 분명한 말씀입니다. 이 확신이 사실적으로 있어야 되죠.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뭐라 그랬어요? '생명이 없어요.' 백 번, 천 번 체험했다! 야단쳐도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뭐 나타나는 것이 이상하게, 뭐 희한하게, 뭐 또 생긴 것이 뭐 같이 이상하게 생겼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그 속에 있을 때에 그에게는 뭐가 있다 그랬습니까? 생명이 있다!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뭐 자꾸 것 붙잡고, 다른 어떤 이상한 현상들, 어떤 일어나는 징조들 붙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내게 징조가 일어났다, 없다! 상관없습니다. 지금 내게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그래서 그 지난 수요일 날 메시지 들어보니까, 그러더라 구요. 미국에 목사님 손자가 있고, 손녀가 있는데, 큰놈한테는, 손자한테는 '예수님 어디 계시냐?' 그러니까, 가슴을 두드리고 그 밑에 이제 난 딸은 얼마 안되죠. 손녀한테는 '예수님 어디 계시냐?' 그러니까 배꼽을 두드려요. 그건 그들의 수준입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다 큰놈이, 내 아들이 '예수님 어디 계시냐?' 그랬더니 가슴을 두드리면, 그건 약간 미친놈이죠.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 말씀을 붙잡고 내 안에, 그리고 순간 우리가 희미하고 연약할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내가 지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뭐로? 권세를 주셨다! 누가 말했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약속입니다. 절대로 한번 약속하시면 변경치 아니하시고, 우주는 혹시 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이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에 법칙을 주었고, 그 법칙은 지금까지 바꾸어지지를 않습니다. 여름이 올 때에 겨울이 오는 법이 없어요. 여러분은 여름에 눈이 펑펑 옵니까! 그럴 수가 없어요. 이제 앞으로 말세가 되면, 그럴 증조가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주님이 오실 증거로...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게 없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된 역사, 변치 않는 하나님의 역사로 분명히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 사실을 사실적으로 붙잡으면 됩니다.
혹시 마음에 염려 근심이 있습니까? 먼저 이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내 안에 예수께서 오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하는 이때에 중요한 것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 말씀 배경이 뭐라 그랬습니까? '네가 입으로 말할 때에 염려하지 말라! 어렵고 힘들고 공경에 처했을 때에 변명하려고, 뭔가 말 잘하려고 생각지 말라!' 왜? 네게 말하게 하는 이는 너희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랬거든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에 누가 역사 합니까? '성령께서 오신다!' 그랬습니다.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적 임재가 여러분 속에 성령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늘 하라 안 그럽니까! 그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셨습니다. 임재라 그랬습니다. 이걸 가지고, '내주 하신다!' 그랬습니다. 성령은 한번 오셨다가 가는 법이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왜 자꾸 걱정합니까! 갔는가 싶어서 걱정하고, 떠났는가 싶어서 걱정하고, 하나님이 안 도와줄까 싶어서 걱정하고, '염려치 말라!' 그랬습니다. 한번 오시면 영원히 여러분과 저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여기에 말씀해 주신 것이 뭐냐하면,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염려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를 할 수밖에 없고, 나올 수밖에 없어요. 자꾸 나오니까, 염려하지 말라! 그랬거든요. 아마 여러분 가정 생활, 사회생활, 직장 생활하면서 조금만 불 신앙으로 눈 돌리면, 전부 염려 투성이 입니다. 저는 신문을 보다가 자꾸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와서 조금만 이상한, 불 신앙하면 자꾸 이상한 말이 나옵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어요. 자식을 봐도, 이웃을 봐도, 그 다음에 아내를 봐도, 남편을 봐도, 그 나오는 것은 조금만 불 신앙하면, 전부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환경이요. 그런 상황에 대한 사실을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염려가 나왔을 때에 염려하지 말라는 이유 속에는, 염려가 나올 때마다 뭘 해야 됩니까? 그 염려를 하나님께라!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라! 네가 할 이유가 없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도라 그랬어요. 기도라 그랬습니다. 염려가 나올 때마다 그 염려를 금방 뭘 해야 됩니까? 기도하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맡겨라! 기도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많은 말씀을 했죠. 특별히 우리 무시기도, 정시기도! 정시기도는 리듬을 타는 것이다! 뭐 그런 말씀을 했는데, 나는 정시기도는 하나님과 방향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봅니다. 그 다음에 무시기도는 하나님과 방향 맞춘 사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내가 지금현재 하나님과 방향이 맞게 되어 있느냐? 무시기도 입니다.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데, 성경은 많은 경우 기도에 대해서 엄청난 축복을, 축복이라고 말하기 보다 응답을 약속해 주신 것이죠. 요한 복음 14장 14절 보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랬습니다. 받아합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 이게 약속이거든요. 무엇이든지 그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에 뭐 이것은 될 것 같아서 기도하고 이것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기도 안하고 그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도 자신도 모르게 '도저히 이것은 안 될 것 같다!'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구요. '아, 이것은 될 것 같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상관없어요.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누가 응답합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 오는 만큼 뭡니까? 기쁨이 온다! 그랬습니다. 감사가 온다!
그래서 저는 요즘 새삼스럽게 뭘 느끼느냐하면, 여러분들이 그 기도할 때에 어떤 사건이 이루어 졌다고 기쁜 게 아니고,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하는,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제가 그 국민일보에도 그런 말이 나왔더라 구요. 중보 기도에 대해서 요즘 어떤 교단에서는, '중보 기도 할 필요가 없다! 중보 기도라는 말 자체가 그런 어패가 있다!' 왜? 중보는 예수님 이외에 누가 중보 하느냐? 이래가지고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중보 기도하는 것, 그 자체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교단들이 있더라 구요. 그런 교단에서 보수적인 성향이 있더라 구요.
그런데 사실상 어떤 면에서 여러분 중보 기도라는 그 말 자체에 뜻이, 지난번에 제가 조금 설명을 드렸죠. 중보 기도한다는 말 자체가 그 사람에게 뭐 어려움이 있으니까, 그 사람의 사실이나, 일이나,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기도한다 생각하는 게 중보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중보 기도한다!' 그럴 때에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원죄가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그에게 이루어지는 이 축복이 중보 기도에 배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보 기도한다!'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그 사람 위해서 일이 되고 안되고, 그 사람 축복 받고 안 받고, 이런 것을 가지고 기도한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여러분과 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손에 그 사람을 의탁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없어요.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옵소서!' 그 사람에게 다른 거 없어요. 여러분 어떤 경우 '중보 기도한다!' 그럴 때에 뭐 이상한 그런 또 중보 기도가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 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니까, 다리가 하나 부러지게 하옵소서!' 그런다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 백 번 해봐야 소용없어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옵소서!' 그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죠.
여러분 사실은 중보 기도가 안 했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아브라함 같은 경우에도 롯을 위해서 엄청난 중보 기도가 나왔다! 성경은 많은 경우 있습니다. 그 많은 경우 기도가 그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이루어졌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하나님의 방향을 따라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 기도에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식들에게 향해서 막 중보 기도한다고, 뭐 '하나님 뭘 하게 해주고...' 그 이전에 하나님 뜻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면 성령 충만하게 해 주옵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정말로 세계 복음화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식이 될 수 있도록...
문제는 그런 방향에 기도입니다. 뭐 '세계 제일가는 갑부가 되게 하시고...' 다 갑부 되어버리면 누가? 물론 어떤 면에서 그런 문제도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근본적인 여러분 배경이 잘 이해가 되어지고 이루어 져야되죠.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문제는 염려가 안 나온다는 게 아니거든요. 염려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올 때마다 기도응답의 역사로 이어지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응답을 주신다. 우리는 응답을 주신다! 그럴 때에 자꾸 우리기도에서 착각하고, 지금까지 응답을 하나도 못 받았다 싶고, 기도해도 안 된다 싶은, 기도의 실패 감이 상당히 많거든요. 많은 경우 거의 이런 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기도는 했는데, 기도는 안되더라!' 이런 것으로 참 많습니다. 기도가 '응답을 받는다!' 그랬는데, '하는 것마다 응답 받았다!' 그러는데, 또 응답 받는다고 말씀했는데, 나는 한번도 응답을 못 받았다!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될 것이, 응답을 주신다는 응답은 도대체 뭐냐? 뭐가 주로 응답이냐? 그럴 때에 잘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20절에 보면,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선 응답이 뭐냐? 제일 핵심적인 중요한 것을, 여러분 전제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응답 중에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 이 사실을 사건과 일마다 인식할 수 있다! 그러면 그게 응답 중에 응답이에요.
뭐가 이루어 졌다! 성취되었다! 그러면 문제가 생겨요. 예를 들어서 보세요. 우산 장수는 비가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맨 날 하나님 오늘도 비가 오게 하옵소서. 그런데 또 소금 장수는 비가 오면 안 되잖아요. 오늘 비가 오지 않게 하옵소서. 이러면 둘 다, 한 사람은 비가 오게 해달라! 한 사람은 비가 오지 말게 해 달라! 그러면 이 사실 자체가지고 응답이라 그러면 곤란하거든요. 왜? 비가 올 때는 와야 되고, 안 올 때는 안 와야 되거든요. 그러면 비가 오고, 안 오고 하는 그렇게 비가 적당히 이 땅에 오게 하고, 안 오게 하는 이걸 가지고 신학적으로 일반은총이라 그럽니다. 일반 은총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누구에게든지 다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실 차제를 가지고 우리는 기도응답에 문제로 연결시켜 버리면요. 여러분 이 땅에 악한 사람에게 다리몽둥이 다 부러져야 돼요. 그 악하다는 개념이 어떤 사람은 이런 개념이고 어떤 사람은 저런 개념입니다. 나올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손에 잇는 것이지 인간 차체에 놓치 않습니다. 왜? 인간 자체가 파괴된다! 본질상 진노이기 때문에 거기에 기도 안 되는 응답 받는다 그러면, 이 땅은 당장 파괴가 되던지 지구가 이상해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기도응답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기도응답 그럴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먼저 '아, 하나님이 이 사건 속에서, 이 문제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이 사실이 인지되는 만큼 응답이 옵니다. 이 사실이 이해가 되고, 이 사실이 받아들여지는 만큼, 확실한 응답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가지고 희미하게 생각하고, 여기에 대한 확실한 어떤 해답이 없으면 기도라는 자체가 잘 안 되죠.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형편과, 사정과, 일과, 사건과, 모든 것 잘 아십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말씀하죠.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십니다. 부모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닙니다. 나도 아닙니다. 내가 잘 알 것 같죠? 천만에 말씀! 어떤 면에서 자기 자신을 자기가 제일 모릅니다. 알아도 엉뚱하게 알고 있어요. 가장 확실하게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정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시냐? 객관적으로 성경이 뭐라 그랬습니까? 여러분 머리털 하나도 다 세신다! 그랬습니다. 여기 계신 분, 내 머리털이 몇 개냐, 혹시 알아요? 아무리 대머리라 그래도 머리 털 하나 계산하고 있는 분은, 세상 천지에 없더라 구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흔히 그런 말합니다. 왜 이런 문제 생기느냐? '아, 우연이겠지!' 아닙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절대 안 떨어집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고 사는 문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모든 문제, 왜, 모릅니까? 하나님이 잘 아시는 정도가 아니고, 너무 잘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9편 1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 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시 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오늘 여러분 무슨 말하고 왔는지, 앞으로 오늘 무슨 말할지, 하나님 다 아십니다. 이상한 소리하고 여기 와서 앉았는 것도 아시고, 빨리 회개하세요. 하나님이 그걸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다 아십니다. '다 아신다!' 그랬어요. 여러분 그래서 너무 이 사실을 알게된 바울이 '명철이 한이 없다! 지혜가 무한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그 역사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거죠. 그리고 똑같은 139편에 보면,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벌써 거기에도 또 하나님이 계세요. 하나님의 낮을 피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줄 압니까? 어디 가든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벌써 내가 올 줄 알고 내 모든 상황과 일들을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
심지어는 내가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벌써 거기도 계시고,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옥 갈 수 없지만 지옥 간다 그래도..." 누가 같이 갑니까? '하나님이 같이 가신다!' 그랬습니다. 기가 막힌 사건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옥 갈 수 없지만 지옥 간다! 그래도 하나님이 거기도 같이 가겠다! 그랬습니다.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뭘?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뭘 약속했느냐? 자녀가 되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했습니다. 어디서든지, 어디 가든지!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함께 인도하심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약속했다, 함께 한다!' 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거기에 모든 해답이 다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자녀를 키워보면서 여러분 아마 다 느낄 겁니다. 느끼는 것은, 아버지가 자녀의 필요한 부분을 알았다! 그럴 때에 자녀가 굳이 달라, 안 달라 할 것도 없어요. 저절로 따라 옵니다. 그리고 뭐 자식이 조금 뭐 아버지한테, 이렇게 잘해주고 좀 아버지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러면, 그 것보다도 훨씬 그 자식을 풍성하게 갚아준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이걸 모르는 아이들, 이걸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아빠가 과자 하나 달라고 그러면 절대로 안주고 혼자 먹죠. 꼭 지금 비슷해요.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의 역사에 길을 몰라요.
엉뚱한 것! 그러니 뭐 헌금하라, 뭐 하라! 그건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나와 여러분을 통해서 기뻐하시는 것이 뭐냐? 조금만 해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5분만 축복하시면, 1분만 축복하시는 게 아니고, 1초만 잠깐 축복하셔도 세계 재벌을 만드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워낙 이상한 소리만 하고, 이상한 불 신앙만 가지고, 하나님 바라보고 원망만 잔뜩 해대니까, 축복해 줘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에요. 될 일이 아니고 축복해 줬다! 그러면 더 망하게 되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것뿐이지, 엄청난 이 은혜의 축복을 하나님이 약속할 때에 뭐라 그랬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다 끝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누가 같이 계십니까? 박 목사가 함께 합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리라! 그 분이 누구입니까? 전능하신 분, 나의 아버지 시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과 저는 엄청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핵심에도 비전이 나오고, 요즘 비전이 나오더라 구요. 이건 김동훈 목사님이 오셔 가지고 비전이 있으면 안 늙는다! 그러더라 구요. 비전이 있으면 나이가 많고, 또 연세가 많이 들어도 괜찮다! 비전만 가져라! 그래서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전이 없어서 늙느냐!' 나를 보고 요즘 많이 늙어간다! 그러거든요. 그래서 엄청난 비전, 다른 게 아닙니다. 비전이 뭐냐? 성경에 여기 약속했습니다. 23절 한번 다같이 봅시다. 23절 다같이 시작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할렐루야!
우리의 비전은 뭡니까? 우리의 비전은 여러분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구름이 조금만 떠도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인가! 그리고 주님이 오시게 될 때에, 오시기 전에 성경은 뭐라 그랬습니까? 세계 복음화! 완전 복음화 시켜놓고 주께서 오실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과 저를,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바로 세계 복음화라는 비전입니다. 세계복음화의 비전! 이게 연결되는 겁니다. 우리 자식들이 그냥 걸핏하면, 우리 조그마한 꼬마들 뭐 압니까? '세계복음화 하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하잖아요.
그게 다른 게 아닙니다. 그 기도가 나쁘냐? 조만한 게 뭐 세계복음화 하겠냐? 비전입니다. 당장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를 하시고 약속을 해 놓았어요. 하나님께서 엄청난 그 속에, 모든 축복과 승리가 그 속에 다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시고, 그 속에 다 약속된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 비전을 가지고 나갈 때에, 오늘 본문에 말씀했죠. 이리저리 도망쳐 다녀야 되고, 몰려 다녀야 되고, 이런 역사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때로는 신자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성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통이 온다! 그것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 때문에 성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야 됩니다. 병들고 힘들다! 절대로 그 '병들고 힘들다!' 소리하지 마시고, 병들고 힘든 사건 또 여러 가지 문제로 통해서 힘든다는 사건이 나올 때에, 불 신앙으로 빠지지 마세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뭐라 그랬습니까? 성공하도록 계획해 놓았습니다. 기어코 그 사건, 사건이 여러분 실패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성공된 축복과 역사를 체험하게 만드실 것을 성경이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요셉을 불러 놓고 얼마나 문제가 계속 되었습니까? 노예로 팔리죠. 그 노예 때문에 성공하는 겁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감옥에 들어간 것 때문에 성공하는 겁니다. 그 사건 하나 하나가 요셉에게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과정이라는 말을 여러분 들으면 오늘도 식상해 질 것 같아서 이 말 안 쓰겠습니다. 그 것 때문에 성공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축복 받도록,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받아합시다. "나는, 우리는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높이신다!" 내가 높이고 네가 높인 게 아닙니다. 혹시 사람에게는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고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시고, 여러분을 세계복음화에 일꾼으로, 하나님이 기어코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어 놓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어려운 문제에 있거나, 내게 고질 스러운 병든 문제나, 이런 사건이나, 이런 문제 있거든, 그것 자랑하지 마세요. 자연적으로... 왜, 그러냐 하면요. 제가 아파 보니까, 자꾸 그 말이 나오더라 구요. 흔히 뭐냐? 병 이야기 밖에 안 나와요. 나는 그것은 나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불 신앙으로 빠져 가는 사단에게 속는 겁니다. 그 자랑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에게 어떻게 귀한 역사와 계획을 이루시는가, 바로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축복하시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이거든요. 고난 때문에 승리하게 되고, 고난 때문에 믿음에 역사와 사실이 확인 되게 되고, 고난 때문에 이런 축복과 은혜 속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 성경에 약속입니다. 그게 다니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성경전체에 모든 인물들인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뭐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것이 안 되니까, 너무 일이나 사건에 찌들려 있어요.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불 신앙에 찌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를 당해서 계속해서 안 된다는 것에 찌들려 있는 것이 바로 문제거든요. 이걸 가지고 우리는 종교에 빠졌다! 그럽니다. 여러분 종교에 빠졌다는 것은 기도해도 안되더라! 예수 열심히 믿어도 안 되더라! 그럴 수밖에 없어요. 복음에 확실한 뿌리를 못 내리면 그런 것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에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당장 당하는 것이 고난인 것 같지만, 그 고난보다도, 그 고난 통해서 하나님께서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 나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요.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 문제 속에서 뭐하면 되느냐? 주님만 붙잡아 버리면 되는 겁니다. 언약을 붙잡고 계속해서 방향을 맞추어 버리면 된다!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이 사실을 바로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나는 그 풍랑을 만난 배도 타 봤고, 배를 타보면서 느끼는 것은, 바다 위에 배가 지나갈 때에 물이 배속에 들어와 가지고 빠져버리면, 그러면 다 끝입니다. 그러나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동안에는 모든 곳이 길입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여러분 시험이 오고, 고난이 오고, 풍랑이 일어 날 때에 그곳에 빠져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불 신앙으로 낙심하면 끝입니다. 낙심만 하지 아니하면, 이 풍랑 인연하여서 뭐가 됩니까! 더 빨리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이것이 안되니까, 자꾸 실패에 빠지는 겁니다. 지금 나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 일, 문제, 큰 비전을 가지시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세우셔서 세계까지, 세계 복음화에 역사까지 계획하신 이 뜻을 분명히 붙잡아야 됩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아 식구가 물 때문에 살았습니다. 홍수 때문에 노아 식구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아실 것은, 노아 식구 외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물 때문에 뭐했습니까? 빠져 죽었습니다. 어려움과 고통과, 혹은 때에 따라서는 병든 것과 풍랑이 일어나고, 사건이 생길 때에 불 신앙하게 되면, 바로 그 사건 때문에 죽을 수 있습니다. 멸망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언약잡고, 확실하게 되는 그 순간, 그 사건 때문에 살아납니다. 그 사건 때문에 축복으로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엄청난 교회 건축을 앞두고, 여러 가지 모든 문제에서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느냐? '아, 사단이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그릇을 키우시는 중대한 축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좁아 터진 마음으로 큰 교회 지어봤자! 어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엄청난 그런 계획을 세우시고, 이제 마음 문 활짝 열고, 비전을 주셔서 세계를 살려야 될 그런 일꾼들로 하나님이 먼저 그릇을 만들어 줄 겁니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 기도하고, 각 이 기관들마다, 개인이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 들으시고 지금 응답하고 계십니다. 엄청난 축복과 역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음만 조금 여시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빠질 것이 아니라, 그것 붙잡고 언약 화시켜 나가버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확신과 담력을 가지고, 주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건, 그것이 축복과 은혜의 기회요. 주신 문제, 그것이 내가 빠질 문제가 아니고 축복을 받을 은혜의 길인 것을 확인하시면서 하나님이 지금도 이 사건, 이 일을 통해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확실한 믿음 가지시고, 승리하시는 말씀의 성취가 한 주간도 계속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문제가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세상은 염려할 수밖에 없고, 걱정할 수밖에 없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올 때, 일단은 '올 것이 왔구나.' 라고 인정하십시오.
☞ 이러한 환경에서 '믿음'이 대전제가 되어지지 않으면 신앙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사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주일이 되어서 교회에 찾아온다는 것부터가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 정리하면, 위험이나 고통이 올 때, '그것이 당연하다' 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는 불신앙의 체질이 강하므로 문제가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험이나 고통이 올 때, 오히려 '이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결되어질 것인가?' 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만 받게 되면, 조급함과 당황함과 염려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 먼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사실이 확인되는만큼,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만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어떤 기적이나 징조를 통해서 찾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 때문에, 내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3]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 이 세상에서는 조금만 불신앙을 가지면, 염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염려가 나올 때마다, 그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것은 응답을 받게 되고, 그 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인을 얻게 되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 우리는 '기도 응답'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사건 속에서도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응답 중의 응답입니다.
[4] 우리는 엄청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의 비전은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시기 전에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세계 복음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고통이 올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성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문제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시고, 세계 복음화의 일꾼으로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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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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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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