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안식일의 주인
2004-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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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2: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마 12: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 1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마 12: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2:9)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마 12: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 12: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마 12: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 12: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 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마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마 12: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마 12: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마 12: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마 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마 우리 살아있는 동안에 어느 날보다도 중요한 것이 주일날입니다. 이것을 옛날에는 안식일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안식일에 대한 시비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놓칠 수 없어서 좀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을 좀 분석을 해가면서 좀 봐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우리 눈들이 복음이 안 되면 헛된 것을 보도록 되어있는 게, 그게 상식인 것 같아요. 그 헛된 것들로 빠지게 되는 배경이 이제 종교 생활로 빠지고, 복음이 안되면 우상으로 빠지고, '복음 됐다, 됐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안 되면, 우상으로 빠진다! 그러면 다른 것은, 다른 것을 더 위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빠지게 되고, 그렇게 빠지게 되면 배경으로 안식을 지킨다는, 말하자면 주일을 거룩이 지킨다는 사실은, 자동적으로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사실이 된다는 사실은 복음이 되어야 되고, 복음이 되면 그 다음에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풀려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일을 말씀을 통해서 말씀 듣고, 또 설교시간 통해서 말씀이 붙잡혀 지고, 또 말씀에 은혜를 받고, 이것이 그저 보통 일이 아니고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말씀이 여기서 풀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문제를 가지고, 근본적으로 유대인들이 이 사실이 안되었기 때문에, 다른 것에 열심을 내고, 다른 것에 열심을 내다보니까 실컷 만들어 놓고는 헛일하게 되는,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안식일에 대한, 말하자면 주일에 대한 개념이 바로 안 열리고, 쉽게 말해서 예배라는 사실이 바로 안되면, 말씀을 받고, 말씀을 받는 이 순간이 제대로 안 되면, 어떤 면에서 산다는 것도 늘 헛된 삶을 살고, 또 어떤 것이 중요하다, 나쁘다! 그 이전에 방향이 전혀 다른 것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하게 되는 이런 모습을 우리가 발견해야 되는 겁니다.

유대인들의 그 선생님들이 하나님이 주신 그 계명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석하는 것보다도, 그 유대인들의 선생이라면 다른 게 아니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축이 된 게 아닙니까! 그 모든 하나님의 주신 계명을 그들의 뜻을 따라서, 그 계명들을 해석을 한 것이 바로 타락이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지적하신 것이 이제 우리 주로 산상수훈에 주님께서 많은 문제들을, 이제 중요한 부분들을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말씀대로, 사실은 제가 오늘 본문에 중점적으로 좀 말할 것이 1절부터 8절까지 읽은 부분이 되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보면, 그 사계명인 안식일에 중요한 의미를 바로 해석하도록 말씀하신 것이 오늘 주 내용이 되겠습니다. 먼저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복음이 바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을 때에,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예배의식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천주교의 예배의식! 굉장히 예배의식이 아주 장엄하죠. 중요하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 뭐 의식으로 봐서는, 차라리 예배를 드릴 때에 천주교에 가면 예배를 드리는 기분이 난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하잖아요. 뭐 우리는 예배시간에 와 가지고, 뭐 이야기도 하고, 이웃사람들 보기도 하고, 말도 걸기도 하고, 주보도 뒤적거리고 있는데, 거기가면 그런 게 아니잖아요. 무릎 딱 꿇고, 뭔가 경건하게 그렇게 자세를 갖고, 그렇게 폼을 잡고, 예배를 드리는데, 미사를 드리고 합니다. 그 다음에 뭔가 의식을 아주 구체적으로 이렇게 진행을 시켜 나가는 것을 볼 수 가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그리고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을 만난다 그럴 때에, 하나님 만난다는 것이 그냥 뭐 교회 왔다 갔다는 것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내 가슴에 닮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배 자에게 지금 중요한 것이 목사로 통해서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그 말씀이 뭐 어떻게 준비되어 왔던지 간에,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질 수 있는 은혜가, 예배의 가장 중요한 축복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하나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온 모든 성도들이 목회자를 통해서, 말하자면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여 질 때에,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는 은혜! 이게 예배 성공의 중요한 핵심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되어져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예배 의식을 복음이 바로 안 되어 졌을 때에, 차라리 어떤 면에서 그 말씀은, 그리고 실제로 어떤 그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사실보다도 나변의 것에 눈이 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그 의식을 더 중요시 해버리고, 어떤 폼을 더 중요시 해버리고, 모양을 더 중요시하고, 때에 따라서는 어떤 열심이라든가, 때에 따라서는 어떤 그 우상숭배 나오는, 구제라든가 이런 어떤 다른 것에 관심을 쏟아 부어 버리는, 이런 문제들이 나오게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뭔가 타락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배라는 것에 대해서, 그 예배에 중점 되는 중심, 곧 복음에 대한 것이 눈이 안 열리니까! 뭐냐하면, 그 예배드리기 위한 나변의 문제, 뭘 하지 마라! 뭘 하지 마라! 심지어는 이제 안식일에는 어느 수준의 거리는 가지 마라!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뭐 어떤 수준의 거리를 가면 어떻습니까! 그런 문제까지, 뭐 안식일에는 뭘 하지 마라! 여러 가지 많은 말이 있었죠.

그래서 이런 어떤 개념들이 우리가 복음을 딱 붙잡기 전에는, 옛날에는 거의 이 유대 식 배경에서 어떤 안식이라 하지 마라! 율법적인 그러니 율법이라 붙였는데, 율법도 아니에요, 이건 개 법이라! 완전히 이상한 것을 거기 붙여 가지고, 거기에 따라서 뭔가 하고 있는 것이 안식을 지키고, 그것이 예배라는 것으로 통했거든요. 그러니 예를 들어서 이걸 너무 악평한다고 듣지 마시고, 여러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복음이 안 되어 버리면, 그럴 수 있어요. 그 자체를 붙잡고 살수 있으니까! 말하자면, 주일날 일 안 한다! 그래서 일 안 한다고 해서 예배를 잘 드렸다! 그것은 아니거든요. 성경에 일 안하고 빈둥빈둥 실컷 누워 자도 그것은 예배다! 그런 개념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주일날 뭔가 돈 안 쓴다, 돈 안 쓴다고 그런 개념이 아니거든요. 주일날 또 필요하면 돈을 써야 되죠. 그리고 참 하나님이 돈 쓰기를 원하시면 돈을 써야 되는 문제, 그런 어떤 개념으로 살았다는 말이죠. 그리고 주일날 뭔가 이 어느 거리를 가지 않는다! 이래서 옛날에는 그런 거리를 가지도 않았죠. 사실상 그 주일 개념에 있어서 부산에 그 메시지 듣고, 그렇게 가기 위해서 자동차 타고 어느 시간 간 것, 옛날에 개념은 말하자면, 옛날 주일성수의 개념에서는 상상을 못해요. 왜 버스 타고 가는 것조차도 꺼렸으니까!

그러니 차를 타고 뭐 부산까지 같다가온다! 그것은 죽었다가 깨어도 생각이 안 되는 겁니다. 가다가 졸음이 와서 커피한잔 뽑아 먹었다! 그건 더군다나 생각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막 졸음을 참고, 커피를 안 빼어먹고 하루를 지냈다! 그것을 가지고 안식일을 지켰다! 이런 개념은 이 말이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참 복음이 안되면, 그렇게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참 복음이 안되면 그것가지고 시비를 걸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범했으니까, 안식일을 범했다! 이것이 지금 유대인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걸고 들어오는 이 안식일에 대한, 예배에 대한 이 개념에 이 반항입니다. 이것을 지금 예수님께서 설명을 잘 해주시고있는 것이죠.

여러분 그 잘 알다시피 부모 공경을 잘 못했던 사람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부모님이 돌아가신 자리에서 제일 많이 웁니다. 그냥 통곡을 하고, 땅을 치고 울더라 구요. 그런데 제가 그 임종을 많이 겪어봐서, 제일 많이 통곡하고 우는 자녀들 보면, 틀림없이 살아 계실 때에 잘 공경을 못했던 분들입니다. 살아 계실 때에 최선을 다해서 공경했던 분들은 그렇게 울지를 않아요. 그리고 복음 붙잡고 따라 가게 되면 오히려 마음에, '참 잘하셨다! 참 잘 가셨다!' 이래가지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지, '왜 벌써 죽었느냐!'고 고함을 지르고, 더 살면 자기 때문에 더 고생인데도, 그런 식으로 나오는 일들이 참 많더라 구요.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뭐냐하면, 돌아가신 후에 제사를 또 많이 주장합니다. 막 내가 살았을 때에 효도 못했기 때문에, 제사를 잘 드리면 효도를 하는 줄 알고, 그게 귀신 불러 망하는 줄은 모르고, 그런 식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무슨 문제를 가르치느냐 하면, 핵심을 놓쳐 버리면 전혀 다른 것으로 엉뚱한 일에 열심을 투자하고, 노력을 투자하고, 결국은 뭐냐하면, 핵심을 놓쳐 버리면 망할 방법에 빠져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중요한 교회에 예배에 대한 핵심을 놓쳐 버리면, 중요한 이 축복에 방향을 놓쳐 버리면, 우리 생활 전체가 다른 데로 빠져 버립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께서 여기에 중요한 부분으로 지적을 하시고 말씀을 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본성이다 그렇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제가 어떤 그 노인 분이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돈을 대학에 투자를 했습니다. 다! 수억을 대학에다가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어넣고 한 이야기가 있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자기가 이북에서 넘어올 때에 자기 아들과 같이 내려오지 못해서, 그러니까 지금쯤은 그 대학에 아이들이, 그 연령의 자기 아들인데, 그러니까 그 아들에 어떤 그런 생각이, 지금까지 자기가 벌어온 모든 돈을 그 대학에 넣을 수 있는, 그런 어떤 계기가 되었다! 라는 그런 이야기를 제가 종종 듣고 신문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의 어떤 그 인간 심리가 되고, 또 당연한 이야기죠.

그리고 또 잘못한 일이 많은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그 자기도 모르게 좀 선행을 하는 것을 뭔가 이 본성으로 그렇게... 그래서 전에 선행하는 사람들 뒤를 조사해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 그 뒤를 조사해 보면, 다른 게 아닙니다. 뭔가 꾸린 사람들이 많이 돈을, 사기 치기도 하고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면을 보면서,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돈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돈들이, 이것이 참 복음 적인 배경이 되어야 그 헌금과 헌신이 복이 되는 겁니다. 지속적으로 복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자기 위안으로 끝날 뿐이지, 뭐 그것도 필요할 수 있기는 있어요. 자기 위안이 되는 것은 잠시간, 하나님의 진실한 축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뭐 헌금한다고 그럴 때에, 헌금 강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왜? 가장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에 복음이라는 사실을 붙잡고 보면, 여러분 헌금이다 내 집짓기 전에는, 내 교회 짓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어떤 면에서 후대 키우는 일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후대 키워서, 신학생들 바로 안 잡아 놓으면, 바로 안 길러 놓으면 복음화 된다는 이 사실은 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마침 참 장로님들과 함께 의논해서 3억이라는 돈을 헌금할 수 있는, 건축헌금에서 빼어서 지금 헌금하고 있거든요. 먼저 할 수 있다는 것은, 이건 참 감사 할 일이고, 우리가 어떤 면에서 중요하고 축복된 결단이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먼저 그 대전에 올라가서 여러 사람 만나면서 뭔가 이런 이야기가, 우리는 현금으로 건축위원회에서 총신 헌금을 동참을 했다! 그러니까 모두 놀라요. 상당히 자극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 임마누엘 교회가 10억 해서, 은행대출 해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우리 3억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교회들이 내가 사실은 임마누엘 10억 했다 그러니까, 눌려 가지고 3억밖에 못 했다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또 뭐라 그러느냐 하면, 그 송현 교회 3억 했다니까, 우리 또 눌려 가지고 얼마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서, 이렇게 웃고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만은, 이게 눌린다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중요한 것이 우리 후손 키운다는 것은, 우리 장래가 여기 다 있습니다. 잘되고, 못된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참 하나님의 계획이다! 축복이다! 그래서 헌금하는 것이 축복 받는다! 안 받는다! 이런 개념 자체가 아닙니다. 그 여러분들이 헌금하면, 얼마나 축복 받는다! 안 받는다! 이런 개념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영원하신 축복, 그 대열에, 그 흐름에, 그 방향에 나와 여러분이 섰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 핵심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이 땅에, 세계 복음 화에, 놀라운 역사 속에 우리가 섰다는 그런 부분! 그래서 여기 헌금에 대해서 막 축복 받아라! 뭐 받아라! 이렇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사실 저는 없어요.

그런데 감사한 것은, 모든 그 뭔가 복음을 붙잡은 사람들 가슴속에, 이 총신에 대한 헌금은 참 마음에 뜨겁게 담고 있더라 구요. 아마도 오늘 여기에 말씀 보니까, 주보에다가 우리 대구은행 계좌로 해놓았습니다 만은, 대구은행 계좌로 들어와도 아마 전부다 명단이 다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신문에 다 나오지 싶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 이제 1억 이상 내는 사람들은, 우리교회에 1억을 내어도 역시 그 1억 이상 헌금 낸 사람들은 평생 회원으로 자손만대에 총신가면 장학생이 되고, 장학금을 받고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아마, 그 다음에 다른 어떤 혜택들도 물론 여러 가지 나옵니다 만은, 제일 큰 것은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냐 하면, 정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가 섰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내가 얼마 뭘 했다! 얼마 뭘 안 했다! 이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러니 이건 축복이다! 아니다! 붙일 명분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섰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과 그 역사에 흐름 속에 같이 이어져 간다는 사실자체가 복이요. 이것이 모든 문제 해결 자이신 주님의 역사 속에, 우리를 세우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성취시키는 역사이지, 뭔가 내가 이것 했다, 저것 했다! 거기에 개여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특별히 오늘 말씀을 기억을 하셔야 되겠습니다.

골로새서 2장 2절 보면,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시간이 가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전도해라! 뭐해라! 다 중요한 말이요. 또 우리가 구체적으로 해야 될 말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개인,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를 확 내려서,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개인이 응답 받고, 내 개인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실적인 증거를 가질 때에,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보화라 이겁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풀려나가는, 이것이 안되면서, 자꾸만 다른 것을 살피고, 다른 것을 요구할 때에 이것을 가지고 뭐라 그러느냐? 기복신앙이다!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참 복음이라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안식이라고 하는 것이, 다시 말해서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예배를 회복한다! 다 아닙니까! 예배를 회복한다는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 이것은 인간의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악한 흑암의 세력은 개인에게 교회에서 예배회복하지 못하도록, 절대적인 방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이 예배 회복한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여기서 다 해결되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그 자폐아 캠프를 할 때에, 4회 째입니다. 네 번째라는 말이죠. 6개월마다 한번씩 하죠. 여름에 한번하고 여름 방학 때, 겨울 방학 때 한번 하는데, 이번에 아마 우리 자폐 아이들이 50, 60명, 그 다음에 부모들이 50, 60명, 그 다음에 천사 도움이가 한 50, 60명, 그 다음에 건강한 사람들과 또 다른 아이들이 또 많이 참석해서 합쳐서 200명이 넘게 참여를 했습니다. 참여했는데, 아마 첫 번에도 한 200명 가까이 참여를 했습니다. 역시 한 50명 자폐아! 첫 번에 예배를 드릴 때에 네 번째가 되니까, 한 1년 반전입니까? 그런 어떤 시간밖에 안 흘렀죠.

그때에 제가 기억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면, 제가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떠드는지, 뭐 그러니 이 아이들이 모여 놓으니까, 2/3가 괴성을 지르고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막 책상 밑으로 뒹굴고,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이 내 앞에 있었는데, 내가 앉은 책상에 왔다, 갔다 거리는 겁니다. 서 가지고 막 건너뛰면서, 그러니까 이제 윤성주 목사 이야기는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내 생애에 예배를 마쳐야 될 것인가? 이 말씀을 해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 메시지를 하면서도 고민하고, 이렇게 어려운 메시지를 전해 보기는 처음이라고 그러더라 구요. 그럴 겁니다.

여러분 아마 그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가 좀 안될 겁니다 만은, 그러니 여러분 2/3가 고함을 지르고, 괴성을 지르는데, 괴성을 질러도 보통 '아∼'가 아니고, 이건 여러분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그리고 막 땅으로 기고, 위로 뛰고, 사람 타 넘고 그러는데, 힘은 있어 가지고 보통 일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이 1년 반전입니다. 우리가 네 번째이니까, 그 정도입니다. 이번에 내가 놀란 것이 한 둘 정도,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이 한둘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학생들은, 그 다음에 아이들은 정상 아이들이 드리는 예배처럼, 보다더 조용하게, 한시간인데 그것도 메시지를 한시간 딱 하는데, 한시간 동안 앉아있어요. 앉아 가지고 메시지를 딱 듣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붙이기보다도, 그것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그 그러니까 이제 일단 첫 시간을 그렇게 예배드리고, 나누어서 그 다음부터는 부모들에게 메시지 전하고, 그 다음에 유년주일 담당, 그 전담 교사들 와 가지고 주일학교 자폐아 아이들을 맡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드리는데 와서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 이제 찬양 인도하던 전도사님이 이번에 와서 놀란 것은, 이 아이들에게 정상인보다 훨씬 더 조용하게, 확실하게 예배가 회복되었더라! 이 말씀을 하더라 구요.

그리고 예배가 회복되는데, 그런데 그 예배가 회복되는 말속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칫 오해할 수 있어요. 찬송을 부를 때는 보면 어떤 경우가 있느냐 하면, 이 아이들이 예배가 너무 좋으니까, 찬송이, 이 노래하는 것이 너무 좋으니까, 아이들이 찬송 부를 때는, 정상인들은 가만히 앉아 가지고 찬송 안 부릅니까! 이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서 펄펄 뛰어요. 막 뛰면서 찬송을 부릅니다. 그 다음에 말씀들을 때는 조용히 앉아서 말씀 듣고, 그 다음에 이 아이들이 뭐라고 그러느냐? '다음에 꼭 오겠다!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 이 캠프가 너무 좋다!' 그래서 처음에 그 2/3정도 뭐 떠들었다고 하는 것은, 귀를 보통 반 이상이 귀 막고 안 들어요.

나는 그 사단의 역사가 무섭다는 것을 메시지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 싫어합니다. 반 이상이 귀를 막고 안 듣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몇이 귀를 막고 있다가 떼었다는 것을 봤다 그러는데, 윤 목사님이 한 두 사람 정도가 귀 막고 있다가 떼었다고 그러는데, 다 끝까지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떼고, 그러더랍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역사는, 사단의 역사가 예배를 못 드리게 하는 것이 엄청난 주목적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들어가면 깨어지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예배가 회복이 안 됩니다. 여러분 예배가 회복되었다는 사실차제가 뭐냐? 이미 벌써 축복이 임했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미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임했다는, 그런 역사를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 참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도저히 이것은 세상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하나님께서 이 구체적인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으로 돌아와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예수님께 대하여 2절 말씀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그렇게 지금 이의를 걸죠.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뭐냐하면, 밀밭사이로 가는데, 제자들이 뭐 배가 되게 고팠던 모양이죠. 밀밭사이를 지나가면서 아마 밀을 이삭을 뽑아 가지고, 비벼 가지고, 아마 식사대용으로 상당히 배가 많이 고팠는 것 같습니다. 먹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지금 예수님께 말씀을 하죠.

그때 2절에 물으니까, 3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21장 6절에 보면,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그랬습니다. 다윗이 이제 쫓겨가면서 너무 배가 고파서 이제 제사장을 찾아갔더랬는데, 평소에 이제 자기를 돕던 제사장을 찾아갔더랬는데, 마침 먹을 것이 없어서 제사장은 제사에 물려낸 진설병을 다윗과 그에게 주었더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건 예외적인 그런 사건입니다 만은, 그러면서 그 사실을 하나님이 죄로 정치 않았다! 그런 배경을 설명을 하죠. 그런데 반대로 여기 보면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출애굽기 29장 33절에 보면, "속죄물 곧 그들을 위임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데 쓰는 것은 그들은 먹되 타인은 먹지 못할지니 이는 성물이 됨이며" 원래는 그것을 타인이 못 먹도록, 제사장 외에는 못 먹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은, 그것을 먹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시아라는 왕이 좀 교만해져 가지고 역대하 26장 16절 보면, "(대하 26:16)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이때에 웃시야가 문둥병이 들었더라 그랬습니다.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을 범할 때에 즉시 하나님께서 그 거룩 범한 자에게 벌을 내리신 것이 구약에 증거다! 그런데 다윗은, 그리고 그 배고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순간에 제사장이 거룩한 떡을 빌려 줬을 때에, 그것이 범죄로 여겨졌을 때는, 하나님께서 즉시 어떻게 합니까? 즉시 그에게 벌하십니다. 그런데도 다윗과 그 일행들을, 그런 벌을 내리지 아니했다! 그게 오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되죠.

그러면 더 문제는 뭐냐하면, 그 밑에 구체적으로 더 나올 수 있습니다 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비상 수단이, 오늘 여기에서 조금 뭔가 의미를 가지고 이해를 해야 될 부분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것은, 아마 제자들이 주일 성수를 위해서, 말하자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뭐 바쁜 일에 있었던지 뭐 준비하다가 못했던지 간에, 아침을 먹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을 못 먹고, 아니면 금식하는 절기였을는지 모르지 만은, 주로 금요일에 금식하는 절기가 되니까, 어쨌든 밥을 못 먹고 출발했습니다.

그런 중에서 이들이 너무 시장한데, 이 시장한 것을 뭔가 해결해야 될텐데, 해결할 길이 없고 시간이 없습니다. 왜? 안식일 시간이, 예배 시간이 지금 바쁜데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마침 밀밭사이로 지나가게 하셨더라!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필요를 이루시기 위해서, 그 하나님의 필요를 이루시는 일에, 하나님의 의무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그 사람들의 가는 길에, 필요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마침 밀밭사이로 지나가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렇게 어떤 주경 학자들이 이해를 하고 써 놓은 것을 제가 봤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그 뜻을 붙잡고, 그 다음에 그 방향을 맞추어 나가게 될 때에,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최소한의 모든 필요는 주님이 채워 주신다는 배경입니다. 여러분 지금현재 세계 복음화 할 때에 인간적으로 봐서는 전혀 공급받을 수 없는 그런 위치와 자리에 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그리고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는 일에 여러분과 저를 세워서 그 뜻을 의무로 감당하기를 원하는 마음만 가지고 출발해도, 그 출발하는 모든 길에 하나님이 필요를 공급하시는 섬리와 역사를 배경으로 약속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복음 위해서 살아간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지, 사람이 책임져 주는 것 아닙니다. 저는 지난 과거를 조금 돌이켜 보면서, 그 다음에 조금 뭔가 이 극단적인 그런 어떤 순간 순간들이 좀 닥쳐왔고, 심지어는 뭐 굶을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들이 닥쳐왔다 싶어도, '주여, 이 일을 위해서는 내가 굶겠습니다!' 작정만 했는데도, 굶어 가지고 고통받을 수 있는 환경이 올 수 있는데도, 그런 것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이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나는 너무 많이 겪었거든요. 여러분들이 정말 복음 붙잡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향했을 때에, 기업이나 직장이나 거기에 삶이나 사업이나 모든 것이 거기서 풀려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의 동기나 이상한 것을 가지고 듣는 게 아니죠.

그래서 산업선교! 그래도 요즘 말씀을 자꾸 하고, 우리 교역자 산업 선교회에서 전체 적으로 안 이룹니까! 문제는 뭐냐하면, '돈을 벌겠다!' 그 문제보다도 이런 믿음과 방향을 먼저 바로 잡자는 그것이 바로 산업선교의 중요한 핵입니다. 그걸 찾고 나면 축복은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실 겁니다. 그리고 정말 우리 교회가 참 복음의 역사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그 계획 속에 세워졌다 누가 책임집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인간이 책임지고, 내가 책임지고 그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 만약에 내가 책임지겠다! 어쩔 겁니까? 사람이! 하나님이 책임지겠다! 하나님은 미쁘시니, 하나님은 믿을 만 하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 여기서 모든 것이 보장이 되고, 모든 것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이 일이 오늘 중요한 이런 말씀 속에... 그래서 최소한 말하자면 제자들이 밀밭사이로 가서 밀로 통해서 배를 채우는 것, 제자들로 봐서는 최소한의 어떤 그 양식 공급이죠. 양식공급이나 그들에게는 또 그것을 만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로 통해서 계획하셨다는 사실까지 학자들에 의해서, 좀 오늘 해석을 한 것을 제가 소개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또 여기에 나오는 말씀이 뭐냐하면, 그 다음에 나온 말씀입니다. 12장 5절이죠.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안식을 범한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려질 수 있는데, 그게 옛날에는 제사장들이 제자를 드릴 때에, 그 옛날에 드리는 제사는 바로 오늘 예배 아닙니까! 예배는 뭐냐하면 양을 잡고, 소를 잡고, 그 다음에 피를 흘리고, 그 다음에 끊어 가지고 내장은 갖다가 버리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고, 이런 것이거든요. 원래 주일날 그때 당시에 말한 데로 안식일 날에 뭐 짐승을 잡는다거나, 가죽을 벗긴다거나, 그 다음에 뭘 막 치우고 일을 한다거나, 이런 것들은 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못하게되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그것을 못해요.

그런데 성전에서 제사 드리기 위해서 이제 백성들이 양을 끌고 오잖아요. 그러면 그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누가 그 일을 해야 됩니까? 제사장들이 양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그 다음에 각을 뜨고, 그것을 태우고, 태우고 난 후에는 제를 같다가 다른데 버리고, 이걸 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통 사람들이 이것을 안식일에 했다 그러면, 신성 모독 죄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죄 중에 큰 죄입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안식일에 제사장이 했을 때는 뭐라 그랬어요? 죄가 안 된다! 이걸 잘못해석하면 안식일 날 내가 예배드리고 전도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 이런 이상한, 엉뚱한 그런 발상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은, 여러분 바로 붙들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 살릴 일에 여러분과 저를 세웠습니다. 그 생명 살리는 일을 위해서 때에 따라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라는 개념과는 다른 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부분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하셔야 되요.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안식일에 어떤 일을 했을 때에, 또 아니면 내가 어떤 그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누를 끼치고, 이런 것과 연결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죠. 참 생명을 살리고 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런 귀중한 일을 감당하는 일에는, 여기에는 보통 평범한 상식으로서는 죄라고 정할 수 있는 문제조차도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이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한 이것을 오늘 여기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안식을 범한다는 것만큼, 큰 무서워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스데반을 죽일 때도 안식일을 모독했다! 그래서 신성모독입니다. 돌로 때려 죽였던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왜 그러면 그렇게 될 수 있었느냐? 중요한 핵이 이제 복음으로 돌아와야 되죠. 12장 6절 말씀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뭐라 그랬습니까? "여기 있느니라" 하물며 성전 안에서 그렇게 너희들이 명한 데로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죄라고 해당하는 그것도 성전 안에서 했기 때문에 이것은 상관없다는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지 아니하셨는데, 하물며 성전보다 더 큰이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 뜻을 행할 때에 그 그리스도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성전보다 더 큰 그리스도 그 분이 나인데,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는 제자들을 너희가 어떻게 나무라느냐?' 그런 말씀입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읽고 뭘 느끼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전 자체이신 누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누구에게? 우리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임하실 때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부요 하심이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임하십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 해결이라는 사실이 저절로 나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자꾸 불 신앙에 빠지는 것이 문제거든요.

제가 자폐 치유 캠프에서 느낀 것이 뭐냐하면, 제가 이 병원을 통해서 와지는 느낌이 제일 어려운 문제가 뭐냐하면, 분명히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그 풍성함으로 내게 오셨는데, 자꾸 뭐가 있느냐 하면, 조금 아프다! 조금 힘들다! 그러면 당장 어디로 빠지느냐 하면, 불 신앙입니다. 아이고 또 안되겠구나! 불 신앙으로 빠지게 되면 누구의 통로가 됩니까? 금방 흑암의 세력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서 실패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폐아 치유에서 느낀 것이 아이들이 잘 변화가 되어 가는 것 같다가도, 또 엉뚱한 짓 하거든요. 그러니까 변함 없이 늘 뭐냐하면, 끊임없이 좌절하게 되고, 끊임없이 실망하게 되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것이 그게 어머니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 해결 받았다! 문제는 부모들만 불 신앙 안 하면 됩니다. 아이들이 이렇든 저렇든, 주를 바라봐야 되는 것이지, 아이를 바라보고, 사건과 일에 절망하고 실망하죠. 이게 보통 우리가 빠지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오늘 분명히 붙잡아야 됩니다. 복음을 붙잡고, 복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사건이거든요. 어떤 문제나, 어떤 사건이나 지금 절망과 실망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사건과 문제조차도 우리는 사건 보는 것이 아니고 누구를 봅니까? 바로 사건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바로 그 사건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불 신앙이 올 이유가 없고, 불 신앙이 올 필요가 없죠.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합니까?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복음에 뿌리다! 복음이라! 그러면 무슨 고구마처럼 뿌리가 내리는 것인가, 그게 아니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그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세계 복음 화라는 축복과 은혜 속에 완전히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믿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완전히 바탕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을, 하나님이 그 세계복음화의 축복 속에 기어코 성취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회가 건축된다고 할 때에 이런 저런 말도 있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있고, 이런 저런 염려도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는 것이죠. 인간이 이룬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는 그 대열에서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대열에서 빠져나간다! 이건 불행 중에 불행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대열에 서서, 정말 어떤 문제 이전에 하나님 바라보고 사람보지 말라! 이겁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여러분 뭔가 건축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한다! 그럴 때에 뭔가 '이렇게 해 주십시오, 저렇게 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말하면, 사실 건축 위해서 기도하라고 모였을 때에, 메시지 듣고 다른 말 할 것 없어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제일 끝입니다. '주여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이 있사오니 뜻대로 하옵소서. 다만 우리가 눈이 어두워 그 뜻을 볼 수 없는 것 불쌍히 여기시고 뜻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뜻을 볼 수 있는 축복과 은혜를 주옵소서!' 왜? 하나님의 뜻을 세계 복음화에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교회를 하나님이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가 불 신앙되면 못 보는 겁니다. 불 신앙되면 큰일났구나! 안되겠구나! 이리 빠지니까!

그래서 오늘 이점을 조금만 붙잡게 되면, 주께서 오늘 말씀하신 예배에 중요한 방향과 배경, 그리고 이 예배를 구체적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정하신 주일날, 안식일 날, 예배시간! 여러분 이 시간 믿음으로 조금만 붙들어도 우리 한 주간에 생애가 승리하게 될 것이고, 예배시간이 회복되는 자체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는 회복이 안 되니까! 오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받아지게 되는 순간, 성령께서 여러분 한 주간도 계속해서 능력으로 역사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안식일은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석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해석한 것이 바리새인들의 큰 오류였습니다.

☞ 복음이 바르게 뿌리내리지 못하면, 예배 의식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으로 정해진 방법과 절차에 따라 예배 의식에 참여하는 것에만 매였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예배의 형식에 매여 예배의 본질을 잊었던 것입니다.

☞ 안식일은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 예배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말씀을 나의 가슴에 담을 때, 가장 축복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에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 사단은 우리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능히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 이번 치유 사명자 대회 때, 아이들의 예배 모습이 지난해 보다 많이 좋아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단에게 방해를 받던 아이들에게 그동안 계속해서 말씀이 들어감으로 예배가 회복되어진 것입니다.


▣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선 일꾼

☞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러 가면서 배고픔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밀밭 사이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최소한의 필요로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나아갈 때, 먹고 마시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양을 잡아서 태우는 것은,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죄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일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생각해야 할 부분들도 있습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기에 죄로 여겨지지 않는 일도 있었다면, 성전보다 더 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는 일을 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연약한 모습이나 주변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고, 불신앙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건을 볼 것이 아니라, 모든 사건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일하시며 나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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