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누가 내 형제들이냐?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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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2: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마 12: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마 12: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마 12: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오늘 제목을 "누가 내 형제들이냐?"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12장 전체에, 앞에 부분부터 기적과 이적으로, 그 다음에 메시아 되심이 확증되고 있는 그런 시간입니다. 본인이 참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사실들을 증거로 말씀하시고 있는 그런 장면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 형제들, 또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을 직접 찾아왔을 때에 한 말씀입니다. 12장 46절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그랬습니다.

47절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그렇게 보고를 하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마 12:48)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제자들을 가리켰습니다. 혈육과는 상관이 없는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49절에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에 대한 기준이 어디서 왔느냐 하는 말씀을 50절에 말씀하죠.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아멘.

오늘 우리 마음을 좀 열어야 될 것이, 사람들은 그 혈육간에 관계가, 이건 뭐 아마 본능적으로 그렇죠.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셨으니까! 관계에 너무 집착해 버리면 진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형제요, 자매요! 또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이루어진 그리스도안에 참 형제요, 자매요! 하는 이런 어떤 배경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우리 마음에 정말 하나님 앞에 이 축복의 은혜를 심어야 되겠습니다.

이게 안 되면, 모이면, 가깝고 친하면, 한 그룹이 되고, 파당이 되고, 또 조금 나가서는 괜히 좀 친하다고 그러면서 뭐 의형제를 삼고, 이렇게 해서 '엄마하자, 동생하자!' 이런 식으로 하는데, 교회 안에 그런 것은 절대로! 절대로 라고 붙여도 돼요. 절대로 그런 개념은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뭐 좀 친하다고 형제가 되고, 또 친하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그 다음에 혈육이기 때문에 형제요, 자매다! 그게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이 너무 지나쳐 버리면 그 다음에 문제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가 오죠.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이번에 그 월드컵 할 때에 참 재미나는 현상은, 세계가 놀랐던 현상이 있어요. 우리 한국에 있는 사람이 이걸 굉장히 자랑으로 여기는데, 자랑보다도 이상한 것으로 우리는 봐야 합니다. 이 자성을 해야 돼요. 뭐냐하면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나와 가지고 거리 응원을 하고, '대한민국!' 부르짖고 이렇게 했거든요. 그것이 다만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 뭐냐하면,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배경이 되죠. 도저히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또 세계적으로 이런 것이 상상이 잘 안 되는 내용입니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뭐냐하면, 뭔가 이것을 가지고 우월적인 어떤 그런 개념을 가지고, 막 '이런 일이 세계에 없었다!' 미친 사람들의 생각들입니다. 그것은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것은 단순하게 형제요, 자매요! 이런 어떤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있었던 것이지, 그리고 감정도 통하니까! 저는 그 제 형님이 병원에 가셨다! 그러면 저도 그 병원에 가면 뭔가 병, 고혈압이니까, 그때도 고혈압은 별로 스스럼없이 그냥 채질이 같으니까! 그 약을 그대로 지어먹어요. 그래서 어디 가서 한자리에 앉아 가지고 제가 혈압 약을 안 가지고 왔으면, '형님 하나 주세요!' 그러고 제가 먹고, 왜? 체질이 같으니까! 형제요, 자매요, 체질과 감정이 비슷해요. 그렇게 나오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늘 우리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만은, 세계화가 안 되는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세계화가 안 되어요. 그것 때문에 한국 사람만큼 양자를 못 들여요. 양자들이면 반 죽여 놓아요. 쉽게 말해서 자기 새끼는 사랑하고, 피 안 섞였다고... 이게 이상하게 잘 안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만큼 다른 아이를 갖다가 길리 우는 일이 잘 안 되는 데가 없어요. 그래서 그 고아들을 자꾸 수출하잖아요. 미국에서는 가지고 가는데, 데려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는 겁니다. 자기 민족이 낳은 아들도 핏줄이 섞여있지만 이게 뭐냐하면 자기 핏줄, 혈육! 말하자면 자기 가정, 가족! 이게 안되면 허락지 않는 겁니다. 이래서 이런 면에서 상당히 베타 적이 되고, 이래서 세계화가 안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여러 사람들 위에 수용이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오느냐? 큰 민족, 큰 나라가 안되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마음에 좁아져 가지고 우리 교회가 성장하자! 그러면 이런 어떤 구체적인 것이 해결되어야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일원으로 한민족, 한 가정, 한마음이 될 때는 해결되는 것이죠. 그러니 복음 안에서가 아니면 뭐가 크게 된다는 것은, 이것은 이해가 안되고 해결이 안 되는 그런 문제죠. 그래서 오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런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또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된다고 또 뭔가 자꾸 행위에다가 또 목적을 두거든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맨 정신으로 좀 뭔가 가슴과 마음을 좀 식히고 냉철한 마음으로 말씀을 좀 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뭐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그런 문제를 우리 많이 들었습니다 만은, 암만 들어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행한다 그래놓고도 전부 자기 뜻대로 다 하니까! 이게 어떻게 뭐 말로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뭔가 출석 부르면서 체크해야 되느냐? 그것도 힘든 일이고, 오늘 정말 하나님 앞에서 좀 말씀을 구체적으로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다! 그럴 때에 제일 먼저 우리가 믿음을 회복해야 될 것이, 그리고 믿어야 될 바탕이 뭐냐하면, 늘 제가 이 강단에 설 때마다 늘 그런 배경에서 설명을 하고 말씀을 이해하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한다!" 이 부분이 안 되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시편 90편 1절 보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쳐가 되셨나이다" 2절에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이 이 땅과 세계를 주관하시고, 완전히 인도하시고, 지배하시고, 보존하시는 겁니다. 그 중에 여러분과 저를 특별한 계획을 세워서, 그 계획 속에 우리를 불러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나가시는 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체질이 되어야 된다! 본질이 되어야 된다! 그렇게 좀 설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만은, 쉽게 말해서 이것이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 사상의 믿음이 습관 되지 아니하면 이 잘 이해가 안 돼요. 뭔가 한다고 계획해 놓고도 다른 것으로 흘러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목사가 이 일에 확실히 믿음이 회복되어야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중직자가 되는데 이게 안 되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이 안되면 자기 생각이 나오고, 자기 결단이 나오고, 자기 마음이 나오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에 장애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중직자들 특별히 제자! 여러분 제자, 제자! 그럴 때에 다른 것이 없어요. 이것이 이루어지면 제자가 되는 겁니다. 제자라 그러면서 전부 자기 욕심대로 다 하는데 무슨 제자가 이럽니까! 그런 사람들을 열심히 뛸수록 손해가 와요. 열심히 뛸수록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는 것이 되니까! 그러니까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전체가 하나님의 뜻 그럴 때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회복이 안되면 자기 중심과 자기 뜻을 따라서 행하는 결과가 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축복과 은혜는 다 놓치게되는 불행을 보게 됩니다.

이걸 가지고 고신 측에서는 '코란데오'라 그래가지고 늘 뭐냐? 습관적으로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게 하나님의 주권이 이해가 안 되면 이 말이 나올 수 없거든요. 그게 우리 개인의 삶에 습관이 되어야 된다! 체질이 되어야 된다! 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좀 구체적으로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역사가 안되면 신앙역사의 승리가 나올 수 없죠.

그래서 성경 역사에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이 배경입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가지고 도망치는 중입니다. 뭐 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했다! 그러니까, 이건 뭐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옳게 상상도 못하고, 생각도 못했던 일이니까! 갑자기 쳐들어오니까! 신도 옳게 못 신고, 맨발로 갔다 안 그랬습니까! 그러다가 시내를 건너는 그러는 중에 사울의 후손인 시므이가 와 가지고, 이제는 다윗이 끝났다 싶었기 때문에, 아마 그랬는가 보죠. 막 욕을 하며, 저주를 하면서 그렇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옆에 있던 요압 장군이, '왕이여 내가 한칼에 처치해 버릴까요.' 하니까! 그때에 한말이 중요한 말입니다. '놔둬라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내 아들도 나를 반대하는데 하물며 시므이가 반대할 수 없겠느냐!' 그러면서 뭐냐? '그렇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지금 이 어려운 형편을 보고, 나를 또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왕궁에 돌아오게 하시면 또 돌아오지 않겠느냐!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마지막 그 늙을 때에 했던 배경이거든요. 그때에 여러분 우리가 보는 데로 다윗이 잘못 생각해서 복잡하게 되어질 수 있는 문제지만,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 고백과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나중에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게 지금 우리가 잘 이해가 되어야 되고 이해 전에 완전 신앙에 배경이 되어야 되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요셉이라 그러면 너무 이런 문제는 확실하게 잘 보여주시죠.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갔을 때에, 또 요셉이 감옥에 갔을 때에, 이 모든 과정들! 그래서 총리 대신이 되는 그런 모든 과정들도, 요셉도 똑같은 일로 고백을 했습니다. 창세기 45장 4절에 말년에 이 모든 일들을 과정을 겪은 후에 요셉이 형들 앞에 고백한 것이 아닙니까!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행한 일들을 지적을 해 주죠. 애굽에 판자라!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누가 했느냐? 하는 그런 배경이 나옵니다. 5절 말씀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말하자면 애굽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이 팔았지만 당신들이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과 후손들을 그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하나님께서 당신들 앞서 이곳에 보내셨나이다. 감옥에 보내고 노예로 팔았고 그게 당신들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그렇게 확실하게 말씀한 것이 보여집니다. 6절에 보면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창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할렐루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문제 아닙니까! 요셉이 이를 갈면서 덤벼들어도 시원찮을 그런 일이지만은, 일생에 문제를 고통과 괴로움 속에 처박아 넣었던 형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요셉이 확실하게 당신들이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먼저 보내셨나이다! 누가 했어요?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지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일들이 많이 있어요. 왜, 나는 이렇습니까?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하셨다!" 그 다음에 답은 또 하나님이 내 주시는 겁니다. 이 믿음이 되어야 하나님이 그 다음에 답을 내어 주시지, 이 믿음이 안 되는데 자꾸 '하나님 응답해 주옵소서!' 뭘 응답합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복음 붙잡고 기도한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결과를 스스로 초래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45장 8절에 보면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고, 하나님이 나를 총리 대신을 삼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결론입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엄청난 배경과 엄청난 역사가 이곳에 깔려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이라! 신학적으로 그렇게 요약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모세도 똑같이 바로 이 배경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성공하고 승리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궁에 있을 때에 얼마나 환경이 좋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안 섰어요. 바로 앞에 서 있고, 사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계획과 엄청난 뜻이 있지만 그것을 못 보니까, 애굽을 구원하는 일을 실패했습니다. 멀리 미디안으로 도망쳤죠.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 갔을 때에 비로소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에 다시 내려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 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다윗 같은 경우도 똑같은 고백입니다.

그러니 지금 제가 이런 예를 자꾸 드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복 주시옵소서!' 그런 배경이 아니라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 서면 복 받게 되는데, 그 하나님 앞에 서는 믿음의 배경이 이 배경이, 이겁니다. 여기에 서게되면 복 받는다! 안 받는다!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이 계획과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여러분 복 주시마 하고 작정했는데, 이게 안 되는 겁니다. 자꾸 자기 욕심, 자기 생각,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범사에 이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하면 할수록 예수 믿는다고 고생만 하고, 일은 일대로 안 되는 것이 이게 신앙인들의 모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 짓는 다윗에게 마지막 부분이죠. 역대상 29장 11절에 보면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다! 이겁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12절에 보면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부자도 되게 하시고, 가난뱅이도 되게 하시고, 강하게도 하시고, 약하게도 하시고, 전부 주의 손에 있나이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뭐 지금 자기가 하는 것 같지만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좀 잘 되면 교만해져 버리고, 조금 안되면 낙심해져 버리고, 이것이 바로 문제거든요. 그러면서 14절에 보면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헌금을 많이 해 놓고도 겸손할 수 있는 필요가 여기 나옵니다. 안 그러면 조금만 뭐 해 놓으면 이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 총신 매입과 함께 입주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 가지 뭐 이야기들 속에서 잘했다, 못했다! 그리고 감사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러면서 워낙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뭐 공로를 위해서 뭔가 이 아무개 이름을 가지고 무슨 회관을 짓던지 해야 안 되겠냐! 그러고, 이런 우스운 이야기도 나오고, 또 총회장님이 뭐라 그러냐 하면,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러더라 구요. 절대로! 그러면서 어느 교회 가니까, 무슨 뭐 기념관이 있고, 누구 이름을 가지고 기념관이 있고 이러는데 그건 되지도 않은 일이다. 이러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내가 뭘 했다, 안 했다!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나를 쓰신 것뿐이고, 나는 그 일에 행한 것뿐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 속에 모든 이 과정 속에서 여러분 진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붙잡아야 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속에 정말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지금 나와 여러분들이 현재적으로 누림이 지속되어질 수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고, 세계를 보존, 인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시냐? 어떤 하나님이시냐! 이 이야기가 안되면 오히려 믿을 수가 없죠. 그 하나님이 나를 망하게 하고, 나를 죽이게 하는 하나님이요. 나를 지옥에 보내는 하나님으로 이해가 되면 곤란하거든요. 그래서 흔히... 왜, 지금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내 뜻을 버리지 못하고 있느냐 하면 바로 이 어떤 하나님이냐?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주로 그런 것 같아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렸다! 그러면, 하나님께 모든 걸 바쳤다! 그러면, 굉장히 슬프게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이 신학교 갈 때에 어떤 분이 사업 다 내버리고 신학교 간다고 눈물 철철 흘리며, 하나님 이제 내가 전부 다 버리고 신학교에 갑니다. 다 버리기는 뭘 다 버립니까! 그게 다 받는 배경인데, 그렇게 이해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 절대로 못 맡기는 것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께 다 맡겨 놓으면, 나를 하나님이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갈 것 같아 가지고, 그래서 절대로 하나님께 못 맡기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어떤 경우에 내가 하나님께 다 맡기면 하나님이 나를 어떤 곳으로 갈지 잘 모른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잘 못 맡긴다는 이야기입니다. 늘 배경이 하나님께 맡기면 완전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시고, 하나님 축복과 은혜로 인도하신다는 구체적인 배경이 안 되니까! 못 맡겨요. 하나님께 다 맡겼다! 그래놓고는 하나님 나를 데리고 가다가 저 구렁텅이에 안 빠지겠나 싶어 가지고 또 내 마음대로 하고, 하나님께 못 맡기고, 이런 배경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하나님께 다 맡기려고 그랬더니만, '주여 하나님 마음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이 다 맡아서 하옵소서!' 그래놓고도 뭐냐? '아프리카는 보내지 마옵소서!' 이런 배경이, 우리가 이런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 보내던지, 어디에 보내던지! 왜? 하나님이 나를 아프리카에 보낼 때는 그곳이 가장 축복으로 나와 내게 복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내는 것인데, 이 못 믿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해놓고는 이렇게 해 주옵소서, 저렇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다 맡깁니다.

그래놓고는 자기가 구체적으로 하나님 이 문제는 이렇게 인도하시고, 저 문제는 저렇게 인도하시고, 자기가 간섭 다 해 버리고, 하나님이 완전히 뭡니까? 하수인으로, 종으로만 부려먹으려고 하니까! 그러니까 뭐냐? 여러분 기도 들으면 하나님 열받쳐서 응답보다는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있지 싶어요. 하나님이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 해 주옵소서. 그것도 맡겨야 되는데, 그게 안 되거든요. 하나님이 이건 이렇게 하시고, 내 아들은 이렇게, 이렇게 성공하게 하시고, 이렇게, 이렇게 잘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 맡기면 맡긴 것이지, 자기가 다 해버리는 겁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 하나님의 뜻대로 배경이 어떤 배경이냐? 어떤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맡길 수 있느냐? 이 믿음이 해결되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은,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일단 어떤 하나님이냐? 그럴 때에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되거든요. 하늘과 땅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하신 겁니다. 그 중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창조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알아야 될 것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특별한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그 특별한 존재가 뭐냐? 뭐 그렇다고 해서 뭐 우리가 아주 미남, 미녀대로 창조했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다!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창조하실 때에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요.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28절에 다 맡겼어요. 그런데 맡긴 배경이 뭐냐? 하나님의 인격을 따라 창조했다. 그리고서는 이 땅에 모든 것들을 사람의 손에 맡겼어요.

이걸 가지고 우리가 보면 다른 모든 것들, 짐승이나 모든 세상에 삼라만상 풀이나 나무들과는 달리 오직 유일하게 사람에게 인격을 주셨고 누구에게? 천사에게 인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서 행하도록 할 때에, 사람은 기계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이제 문제도 따라오고, 여기에 축복도 따라 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축복이요. 못 깨달으면 문제가 오는 거죠. 왜 그러느냐? 인격을 주었다는 것은, 선택의 권리를 주었어요. 그러니까 인격을 준 그때부터 사람에게 뭐냐? 타락할 수 있는 여지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 천지는 타락할 것이 없어요. 왜? 기계적으로 인격이 없어요.

그러면 예를 들어봅시다. 봄이 되면 나뭇잎이 돋아납니다. 가을이 되면 다 떨어지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식물들은 죽은 것 같이 되죠. 그것은 인격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기계적입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순서를 만들어 놓았어요. 그러나 사람은 인격이기 때문에 겨울이라 그래서 손발이 다 떨어져 가지고 어디 바위 밑에 앉아 있는 게 아닙니다. 겨울도, 여름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우리대로 겨울도, 여름도 선택해서, 그래서 너무 추우면 따뜻한 데로 갈 수 있는 선택도 있고, 또 더운데 못 견디면 추운 데로 올 수 있는 선택의 여지도 있고, 이 사람은 그렇게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선택에 여지가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는 그때부터 사람은 타락의 문제가 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창세기 3장에 보면 타락의 문제가 오면서, 하나님이 벌써 뭐냐? 중요하게 준비해 놓은 것이 뭐냐하면, 구원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 타락하자마자 구원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타락하는 것이 결국 뭐냐하면, 간단히 말씀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 선악과 따먹는 것 아닙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사단이 꼬드겨서...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자기가 주인 되는 것은 사단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그것은 사단에게 속이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자유다! 그러지 만 그것은 사단에 속은 겁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 전부, 사단의 노예로 사는 겁니다. 이제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하는 배경이 뭐냐? 타락입니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게 타락이거든요. 타락이 되는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이 인간의 모습을 미리 아시고 3장에 보면 뭐로 합니까? 구원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구원을 약속해 주시는데, 그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확실하게 여러분 붙잡아야 됩니다. 내가 타락하면서 하나님을 떠났던, 하나님의 주권을 떠났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할렐루야!

이게 바로 되어야 이해가 바로 되어야 돼요. 그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왔다! 그래놓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그것은 구원과 상관이 없어요. 그건 구원받았다! 그래도 구원문제는 하나님의 주권 적인 역사니까! 구원의 축복을 못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붙잡고,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주시면서, 타락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떠났던 여러분들에게, 인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온 그때부터,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는 순간,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는 순간, 여러분과 저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삶에 방식이, 어떤 문제나 어떤 사건 앞에서도 우리는 사람 앞에서는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섭니다. 이 사실이 구원받은 여러분과 저의 삶이 되어야 되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순간에 그때부터 하는 일들마다 축복과 은혜로 인도 받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창세기 13장 18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이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죠. 예배! 그리고 단을 쌓고 하는 것은,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구약에 제단은, 번제는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이 축복과 은혜가 시작이 된 거죠.

그런데 창세기 13장 14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계획과 뜻을 가지고 본토친척 아비 집을 다 떠나라 그랬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생각대로 롯을 못 버린 것은, 롯을 데리고 나온 것은 자녀가 없기 때문에 양자로 후대를 삼으려고 해서 데리고 나온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롯도 떠나 보내고 다 떠나 보내라 그랬는데, 안 보냈던 겁니다.

그런데 이로 통해서 너무 어렵고 힘들게 되는 문제가 생기니까,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막 싸우고 이런 분쟁이 생기게 되니까, 비로소 하나님께 다 맡기고, 후생이 없으면 없었지, 그래 좋다! 다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들어가게 되는 그때에 아브라함이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시작이 된 겁니다. 그러나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시작이 된 것이,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이 되었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졌죠. 그런데 그의 삶이 아직까지 완전 하나님의 주권 속에 못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확인되는 것이 언제냐 하면, 아브라함이 창세기 22장 1절에 보면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거죠. 그 삶을 시험하십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한참 가다가 7절에 보면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랬을 때에 아브라함이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완전 하나님께 의뢰하는 이 고백이 그 아브라함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축복으로 바꾸어 놓는 그런 열매를 가져오는 대답입니다. 그때에 2장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그랬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이 준비해 놓았다!' 문제는 뭐냐하면, 아브라함은 아들을 드리라고 하면 아들을 드립니다. 누구를 해도 좋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았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과 저의 인생은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따라서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찾으면 돼요. 내 뜻을, 내 욕심을 이루려고 하지 마세요. 여기에서 갈등이 오고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참 재미있는 통계가 나왔어요. 그게 뭐냐하면 고신 측에서 발표한 말이라고 그렇게 이해는 합니다 만은, 어떤 한 교수님이라고 한 분이 미국에 사례를 발표하면서 가장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을 쭉 조사를 했는데, 그 정신적인 문제, 정신에 있어 가지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목사님들이다! 이런 발표가 되었어요. 뭐냐?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그 안에서 안식하고, 평안해야 될 사람들이 그게 안되니까, 가장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이 있는 사람들이 목사님들이다! 미국에...

똑같이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모르게 되면 누구보다도 갈등하게 되는 것이 교인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과 축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 찾아 누리면 누구보다도 불안한 것이 교인들입니다. 이게 지금 바로 이해되어야 돼요. 그래서 교인들만큼 걱정이 많고, 교인들만큼 근심이 많은 게 없어요. 교회는 실컷 나오는데, 이 축복과 은혜, 근본적으로 이 축복과 은혜를 놓치게 되면 교인들만큼 불쌍한 사람들이 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뭐라 그랬습니까?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부활이 없고, 축복이 없다 그러면 이런 하늘나라의 영광이 없다! 그러면 이 땅에서 교인들이 제일 불쌍하다!'그랬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어도 옳게 못 믿으면 진짜 예수 믿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신앙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뭐냐? '너같이 예수 믿으면 아무것도 안 믿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하면 옛날에 전도하면 뭡니까? '너나 잘 믿어라! 너같이 되고 싶지 않다!' 이겁니다. 참 성도들이 축복을 잃어버리고, 참 성도들이 진짜 신앙에 본질을 잃어버리면 이렇게 빠지게 됩니다. 갈등하고, 괴로워하고, 걱정하고, 걸핏하면 염려하고, 고통하고... 그래서 교회 싸움은 아무도 못 말린다고 안 그럽니까! 재판 판사도 못 말리고, 검사도 못 말립니다. 그러니까 판, 검사들이 교회 싸움 났다! 안 하려고 합니다. 안 맡으려고 그래요.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인 이 축복과 은혜가 회복되어지는 이런 놀라운 역사를 우리가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런 축복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붙잡게 될 때에 성경에서 오늘 말씀했죠. 14절에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그래놓고는 이제 수양을 번제로 드렸잖아요. 그래 놓고는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그랬습니다.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께서 다 이루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나와 여러분에게 인격을 주신 하나님! 그 인격이 너무 더러워 타락한 것도 아시고, 구원의 역사와 약속을 주시고, 그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 다시 들어오게 하시고, 이때부터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믿으면 현장 현장마다 다 응답이 준비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찾아 누리면 됩니다.

이제 이 축복과 은혜에 눈을 열고 현장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또 하나님이 내게 붙인 자들에게 말씀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받게되는 순간, 순간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일 같으나 전부 축복과 은혜로 누려지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누림이라 그랬습니다. 이 누림은 이 누림이라는 단어조차도 미국에 없어요. 일본도 없어요. 오직 한국에만 주신 큰 축복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되어요. 왜? 하나님이 앞으로 한국을 통해서 세계복음화 해야 되니까! 그 말은 여러분 통해서 세계 복음화 해야 됩니다. 세계 복음화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선택했기 때문에, 여러분 현장 현장마다 하나님 여호와 이레!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찾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친이며 형제라고 부르셨던 기준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바탕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3) 이것이 안되면 자기 생각이 드러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4)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이 성공했던 배경이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했던 것이었습니다.
(5) 다윗이 시므이에게 욕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를 내버려 두었습니다.
(6) 벌벌 떨고 있는 형들에게 지난날 형들이 저지런 일들에 대해서 말할 때, 요셉은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루신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7) 모세가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달아났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고,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다윗도 모든 일이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거듭 거듭 고백했습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때

☞ 우리는 무엇보다도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라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교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인격을 따라서 창조하셨습니다.
(2) 인격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여 따를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습니다.
(3) 그런데, 인격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타락하였습니다.
(4) 이와 같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타락입니다.
(5) 하나님은 이렇게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구원자를 약속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6) 타락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7)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선 순간,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8) 이때부터 우리는 모든 일에서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9) 내 뜻과 내 계획을 이루려고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고 참된 축복을 누리십시오.
(10)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인격을 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믿으면, 모든 현장에서 준비해 두신 축복을 누리게 되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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