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비밀(1)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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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마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마 13:50)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제목을 "세 가지 비밀"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지난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복음에 가치를 깨닫는 만큼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이 나오고, 영향 정도가 아니고,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으로 인도 받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비밀이라 그럽니다. 비밀이 드러나 버리면 비밀일수 없는 것이죠. 이 세 가지 비밀은 예수님을 비밀이라! 그렇게 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오늘 비유를 들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가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로 비밀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엄청난 하늘에 보화로 예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런 어떤 비유들이 바로 밭에 감추인 보화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9절에 보면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만 함께 하신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충만이 함께 하신다! 그런 배경이니까, 여기에 그냥 어떤 한 부분이 아니고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어떤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보죠.
요한복음 1장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이 축복과 은혜가 약속이 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에 보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랬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이다!' 그 말씀이 사실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보화, 모든 문제, 모든 충만! 이렇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뭐가 비었다, 뭐가 비었다!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이 된다는 정도가 아니고 충만하게 되어진다!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으면 이 모든 비밀로 통해서 오는 풍성과 보화와 이 충만이 우리 것이 된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축복과 이 은혜가 노천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비밀이다! 그랬습니다. 비밀이라도 어느 정도냐? 꽁꽁 감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오늘 밭에 감추인 보화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구체적으로 진주의 비밀! 그 다음에 바다에서 그물을 올리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을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야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문제를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비밀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이 비밀의 축복과 은혜를 깨닫고 이 자리에 와 앉았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늘 그런 말씀합니다. '늘 너무 너무 축복이다! 은혜다!' 깜박 넘어 가야 되는데, 잘 안 넘어가는 게 오히려 큰 문제다! 그런 생각으로 늘 저는 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쉽게 말해서 이 축복과 이 은혜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영접으로 시작이 되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랬습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해방이 시작이 됩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어두움의 세력이 꺾이기 시작합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 속으로 들어간 놀라운 역사가 이제 시작이 됩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하나님은 천군 천사로 통해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듣기 시작합니다. 이런 점들을 오늘 우리가 확실히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비유를 가만히 보면 참 재미나는 것이 뭐냐하면, 시작이 얼마나 미약하냐? 하는 것이 비유 속에 감추어져 있는 또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여러분 오늘 그 메시지, 그 13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그 엄청난 충만을 뭐로 비유했느냐? 씨앗으로 비유했어요. 여러분 씨앗이라는 것은 아주 적을 겁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그 시작이 아주 미미합니다. 그래서 씨를 뿌려놓고 흙으로 덮어 버리면 전혀 표가 안 나죠. 시작이 아주 미약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간 따라서 엄청나게 결실이 나온다는 것을 설명을 해 주시고 있죠.
그래서 더군다나 오늘 비유 속에서 쭉 그 과정을, 이전에 내용을 보면 씨앗 중에 어떤 씨앗이라 그랬습니까? '겨자씨라!' 그랬습니다. 겨자씨는 눈에도 잘 안보여요. 그래서 제가 성지순례 갔을 때에 겨자씨를 몇 개 가지고 왔는데, 하도 적어서 어디가 버렸는지 흔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찾지를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에게 한번 보여 줬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아요. 여러분 단비 씨를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단비 씨가 참 적더라 구요. 그보다 훨씬 적어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바람에도 날아가고, 뭐 이런 어떤 정도로 그렇다 구요. 그런데 그 겨자씨하고 비유된 것이 바로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 씨가 땅에 떨어져서 이 결실 할 때에 어느 정도냐 하면, 큰 나무처럼 되어진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새도 와서 깃들고, 또 사람들도 그 그늘아래 쉴 정도로 그렇게 큰 나무로 성장한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비밀이 그 큰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시작이 얼마나 미약하냐? 희미하냐? 그래서 더 비밀일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희미한 이 시작 때문에, 시작조차도 할 수가 없는 이런 사건들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번창이 이 복음 속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는 것이,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서, 신앙생활 속에서 너무나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 시작이 엄청난 결실로 인도해 가는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풍성함과 충만함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밭에 감추인 보화다! 그랬습니다. 복음은 감추어진 비밀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복음은 신구약이라는 밭에 감추어져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약의 계명 속에 감추어져 있다! 구약의 율법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렇게도 표현을 했습니다. 저는 그 참 아주 절실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이 구약에 엄청난 그 율법시대, 율법주의! 율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은, 그 속에, 사실은 여러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복음을 알고 들여다보면 전부 복음입니다. 율법 배경 속에 전부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율법만 드러났지, 여기 사실적인 비밀인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복음의 엄청난 그 축복된 은혜를 알지 못하는 때가 너무 많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랬습니다. 또 비유를 말한다면 마치 복음은 우물 속에 감춘 물과 같다! 그랬습니다. 그냥 그 물을 그냥 지나치며 봐서는 도저히 맛볼 수도 없습니다.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서, 물을 길어 올려서 구체적으로 맛볼 수가 있는 겁니다. 뭐 여기에는 여러 가지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은, 이렇게 복음은 외형적으로 봐서는 전혀 잘 못 느낍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빠져갈 수 있습니다.
또 소위 그렇게 말할 수 있죠. 복음의 신약시대! 특별히 오늘날 시대에 종교 속에 감추인 비밀입니다. 많은 경우 예수 그리스도 이 복음의 역사를 알고자 노력했지만 종교로 빠지고, 종교의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더 이상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이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 그렇게 설명했어요. '복음은 마치 유방 속에 감추어져 있는 젖과 같다!' 그랬습니다. 그냥 만져 가지고는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먹어야, 빨아먹어야 맛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 듯 보기에는 복음은 화려하지도 않고, 언 듯 보기에는 뭔가 복음을 통해서 뭔가 이루어진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질지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서 사람이 살고, 왜? 생명이기 때문에, 그 물을 통해서 인류가 살고, 생물이 살고, 그 젓을 통해서 한 생명이 영원한 행복과 축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힘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언 듯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깊은 속에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오늘 강조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가치를 발견할 수가 없었고, 발견한다 그래도 껍질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깨달았다! 종교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율법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배경들이 지금까지의 배경들입니다. 우리가 신구약 말씀은 읽지만, 말씀을 읽고 있으면서도 복음의 진정한 가치가 이해되고, 깨닫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뭔가 깨달았다는 이런 어떤 착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복음에 많은 비용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정성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바로 그런 내용이죠. 보물을 발견하고 난 후에, 그 보물을 발견하고 난 후에, 너무 기뻐서 그 감추인 보물을, 밭을 사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발견되기 전까지는 복음에 많은 비용이, 복음을 향한 많은 어떤 애착과 간절한 심정이 나와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뭔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 만은, 사실적인 행동이 그 속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뭔가 신앙생활을 해 오는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이 사실을, 감추어진 이 구체적인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껍질에, 말하자면 종교 속에 그치고, 또 어떤 면에서는, 형태 속에서 그냥 밭만 보고 있는 이런 어떤 사실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축복된 밭을 보면서 그 깊은 속에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보물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 보물을, 이 축복의 비밀을 철학으로 이해를 하고, 또 어떤 면에서 불 신앙으로 이해를 하고, 어떤 다른 우화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성경을 보고 우화다! 그러고, 성경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수준에서는 보물을 발견할 수도 없고, 그의 생애를 바칠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유대인들에게 향한 말씀이죠. 성경을 영생을 얻는 줄 알고, 분명히 보물이 감추어진 줄 알고, 연구하고, 상고하지만 예수님과 상관이 없었어요. 그저 율법 속에 머물렀고, 계명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보물의 주체가 바로 나다!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이 간단한 논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은혜 받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어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임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은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분명히 예수님이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진정한 축복과 은혜 속에 들어올 수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참 듣기에는 뭐 그럴듯하게 들려질지 모르지만, 이게 사실로 와지지 않아요. 마치 우물을 긷는 것처럼 사실로 두레박을 내려야 되고, 마치 젖을 먹는 것처럼, 어린 아이가 젖을 실제로 먹어야 되는데, 그런데 뭔가 그냥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그냥... 그래서 우상적인 대상으로 구한다고,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적인 실제를 붙잡지 못하고, 그냥 막연한 게 기도하고 있는 이런 모습들이 거의 지금 우리가 보는 그런 모습입니다.
저는 늘 외부로부터, 우리 교인들보다도 외부로부터 이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중에서 치유에 대한 문제들을 자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한 사모님이 전화를 했어요. 뭘 했느냐 하면, 이 전화기를 들자말자 목이 메여서 말을 못하고 웁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사모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에 거의 다가 뭐냐하면, 목회가 안 된다는 배경이거든요. 저는 답이 안되어요. 뭐 답을 할 수가 없어요. 뭐 이렇게 하면 됩니다. 저렇게 하면 됩니다. 할 수가 있습니까!
왜냐하면, 목회라는 것은 목회를 해 나가는 사람의 근본적인 자질에 따라서 벌써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목회에 자질이 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기도하십시오, 성령 충만 받으십시오!'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 복음에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기도한다! 한번 두 번 기도해서 된다는 게 아닙니다. 하루, 이틀, 삼일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그때부터 마치 성경이 말씀한 것처럼 씨를 뿌렸다! 그러면 싹이 나고,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맺히고, 열매가 맺히고, 사람이 누웠다가 일어나고, 잤다가 일어나면, 그런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게 변화가 오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뭐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일 힘든 것이 목회에 대해서 질문하면 제가 답이 없어요. 대답을 해도 뭔가 그들이 딱 받아들이기에는 좀 힘들어요. 그래서 '기도하십시오, 먼저 사모님이 변해야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답은 맞는 답인데, 사실적으로 이게 얼마나 받아들이느냐? 그건 의문입니다. 왜? 복음은 비밀이기 때문에, 그 받아들여서 시작이 되면 그때부터 역사가 나오는데, 이게 잘 안되더라 구요.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잘 안 되는 부분이, '강단에서 기도하십시오, 은혜를 받으십시오, 성령 충만 받으십시오!' 전부 이런 배경입니다. 시작만 하면 미약한데, 이 미약한데 속아 지는 겁니다. 시작만 하면 엄청난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 시작조차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그런 전화를 걸어서 똑같은 뭐 배경입니다. 아주 대답하기 힘든 내용이에요. 제가 다른데서 사모님들이나 목사님들이 전화할 때는 절대로 신분을 잘 안 밝히는 게 아니라, 안 밝힙니다. 나도 알기도 원치 않고, 그래서 아마 우리 경상도 지역은 아닌 것 같고 어느 지역인지 잘 모르겠어요. 말은 상당히 부드럽고 아주 그런 말이... 경상도 억양은 쥐어박는 억양 아닙니까! 그러면 대번에 아는데, 16년, 한 20년 가까이 목회를 했는데, 20명을 넘어본 적이 없데요. 그런데 계속해서 개척입니다. 사모님은 상당히 영리하고 훌륭하신 데, 말을 해 보니까 머리가 좀 돌아가시는데, 목사님이 아마 조금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모님이 뭔가 애도 쓰고, 좀 그런 것도 있는데, 목사님은 별로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모이면 모이는 데로 예배드리고, 안 오면 안 드리고 놔두고, 심방도 안가고 그러면서 또 안되면 옮기고, 지금도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다 쳐도 20명이 안된데요. 그러니까 10명 미만이죠. 그걸 16년 20년을 계속했으니, 사모님이 알만합니다. 왜? 한번도 목사님이 뭔가 사모님 보시기에 잘한다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되면 사모님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병 다 듭니다. 다른 것보다도 목회에 너무 답답하면, 애만 태우면 사모의 병은 이상하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병이 들어와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건 뭐 이해될 수 없는...
그래서 그 늘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안 합니까! '사모님이 빛도 없이 뭐도 없이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요. 그 배경입니다. 그건 뭐 정신적인 문제도 오고, 그 다음에 육체적인 문제도 오고, 참 힘듭니다. 그러니까 이걸 누구한데 말할 수도 없는 문제고, 그나마 이게 치유라는 걸보고, 신문에 보고, 전화를 걸고는 뭔가 말하는 순간 그만 터져 나온 겁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냥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또 거기서 대답을,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거죠. 그건 목사님보다도 사모님이 바꾸어지면 됩니다. 울고, 지금 목사님 때문에 고민하고, 목사님 때문에 지금 전화하고 있는데, '사모님이 변화가 되면 된다!' 그러니까, 더 억울하잖아요. 세상이 이런 억울함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 문제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가 오늘 본문에, 이 비밀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거기서 구체적으로 뭐냐하면, 기도가 시작된다! 뭐 그게 적은 것 같지만 정시기도, 무시기도! 이제 조금 기도가 시작되면 마치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것처럼, 많은 것이 아니지만 계속 올리면 다라이가 되기도 하고, 드럼통에 채워지기도 하고, 계속 올리게 되면 풍부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귀중한 축복 속에 계속 시작이 되는 그 순간부터, 기적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뭐냐? 풍성함이 체험이 됩니다. 성령 충만! 그걸 모르는 게 아니더라 구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그게 잘 안 됩니다. 왜? 답답한 인간생각밖에 더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날 메시지 속에서 참 마음에 위로보다도, 참 믿음이 생기는 것이 뭐냐하면요. 마가 요한 다락방을 설명하더라 구요. 핵심에 설명하시는데, 뭘 설명하느냐 하면, 엄청난 복음을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해요. 그 어마어마한 바리새인들이 하나도 못 깨닫고, 성경에 있는 신약들을 하나도 못 깨달아요. 저는 오늘의 현실도 똑 같아요. 왜냐하면, 여러분 교회에 진짜 하나님 열 받히게 만드는 것은 신앙인 들이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기는 밀쳐놓아 버렸고, 하나님이 저기는 간섭 안 합니다. 지 마음대로 놔두어 버렸어요. 로마서에 말씀했어요. '자기들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었다!' 그랬습니다. 버려 둔 것이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참 하나님의 영 마음에 안 드는 짓을 찾아가며 해요. 그 중에 특별히 성경을 바꾸어서 지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 뭐냐하면, 목사님들입니다. 제일 하나님 열 받히게 하는 것이 목사님들입니다. 그 중에 또 더 열 받히게 만드는 것이 신학자들입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신학자들, 그 신학자들이 무슨 이야기하느냐?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그러고 성령을 철학적인 배경으로만 이해를 하고,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불 신앙의 중요한 내용들을 먼저 그 신학자들이 다 만들어놓았습니다.
여러분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게 만든 그 신학자들을 통해서 그 나라가 다 죽습니다. 독일을 비롯해서, 미국을 비롯해서, 지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뭐냐?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열심히 성경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이 비밀을 알지 못하고, 이 비밀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종교에 머물러 있고, 계명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가장 열 받히게 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차라리 몰라도 좋습니다. 이 비밀을 깨닫고, 단순히 하나님 앞에 나가는 순간, 무릎꿇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이 되는데, 이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 말로 잘 하지만, 알지만 왜?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걸 구체적으로 비밀을 사실적으로 내게 가져오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가지고 누려지지 않는 이런 모든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어렵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초대교회에 설명을 하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바리새인들이 그때는 뭐 바로 종교법이니까! 초대교회 모이면 재산몰수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 전하면 사형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 전하면 사형정도가 아니고, 그래도 자꾸 복음을 전하니까, 복음 전하는 사람 때려잡기 위해서 결사대까지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런 중에서 제대로 타산을 가지고, 뭔가 계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들 수가 없죠.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어떤 경우냐 하면, 초대교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실상 마가 다락방 하는 것은, 숨어서 모인 곳이 다락방입니다. 그래서 이걸 2층에 숨어서 모인 곳이 다락방입니다. 우리 같으면 지하실이겠는데, 땅파고 집을 지은 게 아니고, 그때는 이제 위로 2층, 우리가 말하자면 보실입니다. 보실이라 그러면 알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방 만들어 놓고 거기다가 이제 뭐 잡동사니 넣어 놓는 그런 경우죠. 거기서 모여 가지고 기도를 했던 것이 그게 마가 요한 다락방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워낙 돈이 없고, 뭔가 자기들이 어디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다락방에 모였던 것이죠. 그렇게 모여있는 사람들이, 그 다음부터 모인 사람들이 어떤 경우냐 하면, 지지리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에 상황을 보면 너무 너무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것이죠.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그래서 44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모인 사람들이 먹을 것조차 없으니까, 그리고 쓸 것이 없으니까, 모든 물건을 통용합니다. 공용이 되어 버렸습니다. 통용하고 또 보면 너무 먹을 것이 없었고, 너무 가진 것이 없으니까,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참 이 초대교회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요. 우리 먹고 살 생활이 안되니까, 그 중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내어놓았어요. 다 내어놓아서 그저 있는 것들을 서로 나누어서 쓰기도 하고, 왜 숨어서 서로 사니까, 가지고 온 사람들은 공용이 된 것이죠. 그렇게 된 겁니다.
그 다음에 잘 아는 데로 6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그리고 6장 2절에 보면,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모여도 전부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하는 일이 뭐냐하면 밥 먹여 주는 겁니다. 그게 초대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하면, 복음을 받고 복음을 통해서 모여든 사람들이, 뭔가 계산하고 있는 사람들은 올 수가 없어요. 어차피 굶어 죽을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그 표현이 뭐냐하면요. 차리리 밖에 사는 것보다 감옥에 들어가 사는 것이 먹을 것이 다 해결되니까,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이판 사판만 모였다! 그랬어요. 맞습니다. 어쩔 수 없는,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초대교회에 모였습니다. 100%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 털털이들만 모였던 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쭉 이렇게 지나오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하면요. 진짜 복음을 받고, 진짜 복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까지, 지식이 있고, 돈이 있고, 있는 동안에는 잘 안되더라 구요. 어떤 면에서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조차도 다 없어지고, 다 떨어 먹고, 건강도 뭔가 하나, 붙들고 있는 그런 것조차도 다 없어 졌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나를 잡아가세요!' 하고 엎드리는 곳이 교회란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히려 뭔가 하면 완전 자기를 포기했을 때에, 하나님뿐입니다. 이랬을 때에 비로소 신앙이 들어가더라 구요. 이게 지금까지 거의 교회의 성장 형태입니다.
초대교회에 말할 것도 없죠. 왜? 그 이상의 사람들이 올 수가 없는 배경입니다. 다시 말씀해서 뭐냐? 이런 사람들이 모였는데 보세요. 5,000명씩, 3,000명씩 제자가 일어납니다. 마케도니아를 비롯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기적처럼 막 번져 나갑니다. 자기 모든 재산을 다 던져놓고, 흩어진 사람들, 스데반 이후에, 순교이후에 예루살렘에 핍박이 극심하게 되니까, 모든 것 다 던져놓고 흩어졌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성령의 충만입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능으로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나는 그 사모님에게, 혹시 이 설교를 들을 수 있는지 모르지 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낙심할 수 있는 남편이 오히려 100%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길이 된다면 축복의 길입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것이 축복의 차선이 될 수 있습니다. 왜? 내가 죽고, 내게 있는 것이 부정이 될 때에, 그래서 빌립보서에 보면 바울이 자기가 갖고 자기가 자랑할수 있는 모든 것이 뭘로 여겼다 그랬습니까? 배설물로 여겼을 때에 그의 인생은 정말로 하나님의 큰 계획과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11절에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그랬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제 완전히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의지하고 나가게 될 때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고백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뭔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지지리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안 되었습니까? 좋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적은 것이라도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시작하면 됩니다. 참 하나님의 비밀을 붙잡고 시작하면 됩니다. 하루에 한번씩 기도하기 시작합시다. 아니면 교회까지 못 나와도 좋습니다. 집에 앉은 상황도 좋습니다. 오래 못해도 좋습니다. 짧은 시간도 좋습니다. 참 예수 그리스도, 그 엄청난 비밀의 역사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이루리라!'는 말씀했습니다. 당당하게 말씀했습니다. 시작하는 그 속에서, 시작은 미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루 밤 자고 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엄청난 축복과 역사가, 나도 모르게 눈을 떴을 때 비로소 1년, 2년 지났을 때에, 아니 10년 지났을 때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과 역사가 사실로 와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이 사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여기에 투자할 수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5편 3절에 보면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그랬습니다. 복음을 얻기 위해서, 복음의 역사를 얻기 위해서, 내가 받지도 않았지만은, 이 사실을, 이 비밀을 조금만 깨닫고 자신의 것으로 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것으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자신의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 일을 위해서, 작업만 해도 즐거워지더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받고, 조금 이해가 되면 아직까지도 내가 얻고, 내가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 비밀을 얻기 위해서, 이 보화를 얻기 위해서, 이 축복된 비밀의 역사를 알고, 다 덮어놓고, 그때부터 자기 있는 소유를 파는 과정도 기뻐하며 팔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과정도 기뻐하면서 포기할 수 있습니다. 왜?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사실을 확신했고, 사실로 그것을 가져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조금만 알게 되면 여러분 당하는 어려움과 일들 속에서도, 그래서 적은 이런 일이지만 비밀의 축복과 역사를 내가 소유한다! 안 그러면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 받을 수 있는 과정 속에서만 있어도, 기도하는 시간, 찬송 부르는 시간에, 또 우리가 예배드리는 순간에, 기쁨과 감사로 와 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오늘 여러분과 제게 시작은 미약하지만, 우리가 시작하는 그 시작부터 이 축복 속에 서 있다는 그 사실이 즐겁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들어가면 히브리서 12장 15절 말씀처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잊지 못할까 싶어서, 이 사실이 조금만 이해되면 마음에 이제는 다른 게 아닙니다. 은혜 속에서 떨어질 것이 두려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나는 것이 두려워 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러면 그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이 때부터 뭐냐? 전도와 선교라는 것이 저절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부터 흑암과 어둠의 세력이 떠나가기 시작되는 겁니다. 그 시작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엄청난 축복으로 여러분 현실적으로 와 있게 될 것입니다. 눈을 뜨면 준비된 하나님의 축복이 보여질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밭에 감추인 보화
☞ 예수님 안에 엄청난 축복과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골1:19).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골2:3). 그러므로 우리 가정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뿐만아니라,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 이 축복과 은혜가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비밀을 알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 축복과 은혜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되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되어졌습니다. 그 즉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받았고, 흑암의 세력이 물러갔습니다.
⊙ 처음에는 작은 것처럼 보이나...
☞ 하늘 나라의 비밀을 씨에 비유했었는데, 작은 씨와 같이 복음의 비밀은 시작이 매우 미약합니다. 씨는 작고 미미해서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엄청나게 나타납니다. 그 작은 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어 쉴 정도의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이 시작이 너무 미미해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조차 하지 않는 안타까움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번창은 놀랍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미미한 믿음의 순간들이 시작되어 계속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큰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 복음은 신구약이라는 밭에 감추어져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
들이 그 속에 감추어진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봅니다. 심지어는 성경 학자들이 이 축복된 비밀을 보면서도 철학이나 도덕적 차원으로 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재를 붙잡지 못하고 여전히 껍데기 속에서 헤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은혜가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길이시다'는 복음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감추인 보화를 발견할 수 있는 한 걸음
☞ 비록 별것 아닌 것 같고 적은 것 같지만 정시 기도와 무시 기도를 계속할 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충만하게 넘치는 때가 옵니다. 그 때에는 성령 충만의 사실을 누리게 됩니다.
☞ 복음을 받고 복음으로 모인 초대 교회 성도들은무엇인가 계산을 하고 찾아올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조차도 얻기 힘든 형편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수천명의 제자들이 모이고, 복음이 기적처럼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왜입니까? 바로 성령의 충만 때문입니다.
☞ 적은 것 같지만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기도하기를 시작하면 됩니다. 그것이 계속되어질 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상상할 수 없는 큰 축복을 받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비밀입니다.
(마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마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마 13:50)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제목을 "세 가지 비밀"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지난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복음에 가치를 깨닫는 만큼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이 나오고, 영향 정도가 아니고,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으로 인도 받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비밀이라 그럽니다. 비밀이 드러나 버리면 비밀일수 없는 것이죠. 이 세 가지 비밀은 예수님을 비밀이라! 그렇게 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오늘 비유를 들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가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로 비밀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엄청난 하늘에 보화로 예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런 어떤 비유들이 바로 밭에 감추인 보화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9절에 보면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만 함께 하신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충만이 함께 하신다! 그런 배경이니까, 여기에 그냥 어떤 한 부분이 아니고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어떤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보죠.
요한복음 1장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이 축복과 은혜가 약속이 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에 보면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랬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이다!' 그 말씀이 사실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보화, 모든 문제, 모든 충만! 이렇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뭐가 비었다, 뭐가 비었다!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이 된다는 정도가 아니고 충만하게 되어진다!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으면 이 모든 비밀로 통해서 오는 풍성과 보화와 이 충만이 우리 것이 된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축복과 이 은혜가 노천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비밀이다! 그랬습니다. 비밀이라도 어느 정도냐? 꽁꽁 감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오늘 밭에 감추인 보화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구체적으로 진주의 비밀! 그 다음에 바다에서 그물을 올리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을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야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문제를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비밀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이 비밀의 축복과 은혜를 깨닫고 이 자리에 와 앉았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늘 그런 말씀합니다. '늘 너무 너무 축복이다! 은혜다!' 깜박 넘어 가야 되는데, 잘 안 넘어가는 게 오히려 큰 문제다! 그런 생각으로 늘 저는 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쉽게 말해서 이 축복과 이 은혜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영접으로 시작이 되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랬습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해방이 시작이 됩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어두움의 세력이 꺾이기 시작합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 속으로 들어간 놀라운 역사가 이제 시작이 됩니다. 권세를 받는 즉시 하나님은 천군 천사로 통해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듣기 시작합니다. 이런 점들을 오늘 우리가 확실히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비유를 가만히 보면 참 재미나는 것이 뭐냐하면, 시작이 얼마나 미약하냐? 하는 것이 비유 속에 감추어져 있는 또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여러분 오늘 그 메시지, 그 13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그 엄청난 충만을 뭐로 비유했느냐? 씨앗으로 비유했어요. 여러분 씨앗이라는 것은 아주 적을 겁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그 시작이 아주 미미합니다. 그래서 씨를 뿌려놓고 흙으로 덮어 버리면 전혀 표가 안 나죠. 시작이 아주 미약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간 따라서 엄청나게 결실이 나온다는 것을 설명을 해 주시고 있죠.
그래서 더군다나 오늘 비유 속에서 쭉 그 과정을, 이전에 내용을 보면 씨앗 중에 어떤 씨앗이라 그랬습니까? '겨자씨라!' 그랬습니다. 겨자씨는 눈에도 잘 안보여요. 그래서 제가 성지순례 갔을 때에 겨자씨를 몇 개 가지고 왔는데, 하도 적어서 어디가 버렸는지 흔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찾지를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에게 한번 보여 줬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아요. 여러분 단비 씨를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단비 씨가 참 적더라 구요. 그보다 훨씬 적어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바람에도 날아가고, 뭐 이런 어떤 정도로 그렇다 구요. 그런데 그 겨자씨하고 비유된 것이 바로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 씨가 땅에 떨어져서 이 결실 할 때에 어느 정도냐 하면, 큰 나무처럼 되어진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새도 와서 깃들고, 또 사람들도 그 그늘아래 쉴 정도로 그렇게 큰 나무로 성장한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비밀이 그 큰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시작이 얼마나 미약하냐? 희미하냐? 그래서 더 비밀일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희미한 이 시작 때문에, 시작조차도 할 수가 없는 이런 사건들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번창이 이 복음 속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는 것이, 여러분 신앙생활 속에서, 신앙생활 속에서 너무나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 시작이 엄청난 결실로 인도해 가는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풍성함과 충만함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밭에 감추인 보화다! 그랬습니다. 복음은 감추어진 비밀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복음은 신구약이라는 밭에 감추어져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약의 계명 속에 감추어져 있다! 구약의 율법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렇게도 표현을 했습니다. 저는 그 참 아주 절실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이 구약에 엄청난 그 율법시대, 율법주의! 율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은, 그 속에, 사실은 여러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복음을 알고 들여다보면 전부 복음입니다. 율법 배경 속에 전부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율법만 드러났지, 여기 사실적인 비밀인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복음의 엄청난 그 축복된 은혜를 알지 못하는 때가 너무 많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랬습니다. 또 비유를 말한다면 마치 복음은 우물 속에 감춘 물과 같다! 그랬습니다. 그냥 그 물을 그냥 지나치며 봐서는 도저히 맛볼 수도 없습니다.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서, 물을 길어 올려서 구체적으로 맛볼 수가 있는 겁니다. 뭐 여기에는 여러 가지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은, 이렇게 복음은 외형적으로 봐서는 전혀 잘 못 느낍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빠져갈 수 있습니다.
또 소위 그렇게 말할 수 있죠. 복음의 신약시대! 특별히 오늘날 시대에 종교 속에 감추인 비밀입니다. 많은 경우 예수 그리스도 이 복음의 역사를 알고자 노력했지만 종교로 빠지고, 종교의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더 이상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이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 그렇게 설명했어요. '복음은 마치 유방 속에 감추어져 있는 젖과 같다!' 그랬습니다. 그냥 만져 가지고는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먹어야, 빨아먹어야 맛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 듯 보기에는 복음은 화려하지도 않고, 언 듯 보기에는 뭔가 복음을 통해서 뭔가 이루어진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질지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서 사람이 살고, 왜? 생명이기 때문에, 그 물을 통해서 인류가 살고, 생물이 살고, 그 젓을 통해서 한 생명이 영원한 행복과 축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힘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언 듯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깊은 속에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오늘 강조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가치를 발견할 수가 없었고, 발견한다 그래도 껍질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깨달았다! 종교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율법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배경들이 지금까지의 배경들입니다. 우리가 신구약 말씀은 읽지만, 말씀을 읽고 있으면서도 복음의 진정한 가치가 이해되고, 깨닫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뭔가 깨달았다는 이런 어떤 착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복음에 많은 비용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정성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바로 그런 내용이죠. 보물을 발견하고 난 후에, 그 보물을 발견하고 난 후에, 너무 기뻐서 그 감추인 보물을, 밭을 사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발견되기 전까지는 복음에 많은 비용이, 복음을 향한 많은 어떤 애착과 간절한 심정이 나와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뭔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 만은, 사실적인 행동이 그 속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뭔가 신앙생활을 해 오는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이 사실을, 감추어진 이 구체적인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껍질에, 말하자면 종교 속에 그치고, 또 어떤 면에서는, 형태 속에서 그냥 밭만 보고 있는 이런 어떤 사실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축복된 밭을 보면서 그 깊은 속에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보물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 보물을, 이 축복의 비밀을 철학으로 이해를 하고, 또 어떤 면에서 불 신앙으로 이해를 하고, 어떤 다른 우화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성경을 보고 우화다! 그러고, 성경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수준에서는 보물을 발견할 수도 없고, 그의 생애를 바칠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유대인들에게 향한 말씀이죠. 성경을 영생을 얻는 줄 알고, 분명히 보물이 감추어진 줄 알고, 연구하고, 상고하지만 예수님과 상관이 없었어요. 그저 율법 속에 머물렀고, 계명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보물의 주체가 바로 나다!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이 간단한 논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은혜 받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어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임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은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분명히 예수님이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진정한 축복과 은혜 속에 들어올 수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참 듣기에는 뭐 그럴듯하게 들려질지 모르지만, 이게 사실로 와지지 않아요. 마치 우물을 긷는 것처럼 사실로 두레박을 내려야 되고, 마치 젖을 먹는 것처럼, 어린 아이가 젖을 실제로 먹어야 되는데, 그런데 뭔가 그냥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그냥... 그래서 우상적인 대상으로 구한다고,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적인 실제를 붙잡지 못하고, 그냥 막연한 게 기도하고 있는 이런 모습들이 거의 지금 우리가 보는 그런 모습입니다.
저는 늘 외부로부터, 우리 교인들보다도 외부로부터 이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중에서 치유에 대한 문제들을 자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한 사모님이 전화를 했어요. 뭘 했느냐 하면, 이 전화기를 들자말자 목이 메여서 말을 못하고 웁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사모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에 거의 다가 뭐냐하면, 목회가 안 된다는 배경이거든요. 저는 답이 안되어요. 뭐 답을 할 수가 없어요. 뭐 이렇게 하면 됩니다. 저렇게 하면 됩니다. 할 수가 있습니까!
왜냐하면, 목회라는 것은 목회를 해 나가는 사람의 근본적인 자질에 따라서 벌써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목회에 자질이 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기도하십시오, 성령 충만 받으십시오!'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 복음에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기도한다! 한번 두 번 기도해서 된다는 게 아닙니다. 하루, 이틀, 삼일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그때부터 마치 성경이 말씀한 것처럼 씨를 뿌렸다! 그러면 싹이 나고,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맺히고, 열매가 맺히고, 사람이 누웠다가 일어나고, 잤다가 일어나면, 그런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게 변화가 오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뭐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일 힘든 것이 목회에 대해서 질문하면 제가 답이 없어요. 대답을 해도 뭔가 그들이 딱 받아들이기에는 좀 힘들어요. 그래서 '기도하십시오, 먼저 사모님이 변해야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됩니다!' 답은 맞는 답인데, 사실적으로 이게 얼마나 받아들이느냐? 그건 의문입니다. 왜? 복음은 비밀이기 때문에, 그 받아들여서 시작이 되면 그때부터 역사가 나오는데, 이게 잘 안되더라 구요.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잘 안 되는 부분이, '강단에서 기도하십시오, 은혜를 받으십시오, 성령 충만 받으십시오!' 전부 이런 배경입니다. 시작만 하면 미약한데, 이 미약한데 속아 지는 겁니다. 시작만 하면 엄청난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 시작조차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그런 전화를 걸어서 똑같은 뭐 배경입니다. 아주 대답하기 힘든 내용이에요. 제가 다른데서 사모님들이나 목사님들이 전화할 때는 절대로 신분을 잘 안 밝히는 게 아니라, 안 밝힙니다. 나도 알기도 원치 않고, 그래서 아마 우리 경상도 지역은 아닌 것 같고 어느 지역인지 잘 모르겠어요. 말은 상당히 부드럽고 아주 그런 말이... 경상도 억양은 쥐어박는 억양 아닙니까! 그러면 대번에 아는데, 16년, 한 20년 가까이 목회를 했는데, 20명을 넘어본 적이 없데요. 그런데 계속해서 개척입니다. 사모님은 상당히 영리하고 훌륭하신 데, 말을 해 보니까 머리가 좀 돌아가시는데, 목사님이 아마 조금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모님이 뭔가 애도 쓰고, 좀 그런 것도 있는데, 목사님은 별로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모이면 모이는 데로 예배드리고, 안 오면 안 드리고 놔두고, 심방도 안가고 그러면서 또 안되면 옮기고, 지금도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다 쳐도 20명이 안된데요. 그러니까 10명 미만이죠. 그걸 16년 20년을 계속했으니, 사모님이 알만합니다. 왜? 한번도 목사님이 뭔가 사모님 보시기에 잘한다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되면 사모님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병 다 듭니다. 다른 것보다도 목회에 너무 답답하면, 애만 태우면 사모의 병은 이상하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병이 들어와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건 뭐 이해될 수 없는...
그래서 그 늘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안 합니까! '사모님이 빛도 없이 뭐도 없이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요. 그 배경입니다. 그건 뭐 정신적인 문제도 오고, 그 다음에 육체적인 문제도 오고, 참 힘듭니다. 그러니까 이걸 누구한데 말할 수도 없는 문제고, 그나마 이게 치유라는 걸보고, 신문에 보고, 전화를 걸고는 뭔가 말하는 순간 그만 터져 나온 겁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냥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또 거기서 대답을,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거죠. 그건 목사님보다도 사모님이 바꾸어지면 됩니다. 울고, 지금 목사님 때문에 고민하고, 목사님 때문에 지금 전화하고 있는데, '사모님이 변화가 되면 된다!' 그러니까, 더 억울하잖아요. 세상이 이런 억울함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 문제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가 오늘 본문에, 이 비밀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거기서 구체적으로 뭐냐하면, 기도가 시작된다! 뭐 그게 적은 것 같지만 정시기도, 무시기도! 이제 조금 기도가 시작되면 마치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것처럼, 많은 것이 아니지만 계속 올리면 다라이가 되기도 하고, 드럼통에 채워지기도 하고, 계속 올리게 되면 풍부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귀중한 축복 속에 계속 시작이 되는 그 순간부터, 기적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뭐냐? 풍성함이 체험이 됩니다. 성령 충만! 그걸 모르는 게 아니더라 구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그게 잘 안 됩니다. 왜? 답답한 인간생각밖에 더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날 메시지 속에서 참 마음에 위로보다도, 참 믿음이 생기는 것이 뭐냐하면요. 마가 요한 다락방을 설명하더라 구요. 핵심에 설명하시는데, 뭘 설명하느냐 하면, 엄청난 복음을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해요. 그 어마어마한 바리새인들이 하나도 못 깨닫고, 성경에 있는 신약들을 하나도 못 깨달아요. 저는 오늘의 현실도 똑 같아요. 왜냐하면, 여러분 교회에 진짜 하나님 열 받히게 만드는 것은 신앙인 들이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기는 밀쳐놓아 버렸고, 하나님이 저기는 간섭 안 합니다. 지 마음대로 놔두어 버렸어요. 로마서에 말씀했어요. '자기들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었다!' 그랬습니다. 버려 둔 것이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참 하나님의 영 마음에 안 드는 짓을 찾아가며 해요. 그 중에 특별히 성경을 바꾸어서 지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 뭐냐하면, 목사님들입니다. 제일 하나님 열 받히게 하는 것이 목사님들입니다. 그 중에 또 더 열 받히게 만드는 것이 신학자들입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신학자들, 그 신학자들이 무슨 이야기하느냐?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그러고 성령을 철학적인 배경으로만 이해를 하고,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불 신앙의 중요한 내용들을 먼저 그 신학자들이 다 만들어놓았습니다.
여러분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게 만든 그 신학자들을 통해서 그 나라가 다 죽습니다. 독일을 비롯해서, 미국을 비롯해서, 지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뭐냐?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열심히 성경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이 비밀을 알지 못하고, 이 비밀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종교에 머물러 있고, 계명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가장 열 받히게 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차라리 몰라도 좋습니다. 이 비밀을 깨닫고, 단순히 하나님 앞에 나가는 순간, 무릎꿇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이 되는데, 이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 말로 잘 하지만, 알지만 왜?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걸 구체적으로 비밀을 사실적으로 내게 가져오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가지고 누려지지 않는 이런 모든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어렵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초대교회에 설명을 하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바리새인들이 그때는 뭐 바로 종교법이니까! 초대교회 모이면 재산몰수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 전하면 사형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 전하면 사형정도가 아니고, 그래도 자꾸 복음을 전하니까, 복음 전하는 사람 때려잡기 위해서 결사대까지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런 중에서 제대로 타산을 가지고, 뭔가 계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들 수가 없죠.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어떤 경우냐 하면, 초대교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실상 마가 다락방 하는 것은, 숨어서 모인 곳이 다락방입니다. 그래서 이걸 2층에 숨어서 모인 곳이 다락방입니다. 우리 같으면 지하실이겠는데, 땅파고 집을 지은 게 아니고, 그때는 이제 위로 2층, 우리가 말하자면 보실입니다. 보실이라 그러면 알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방 만들어 놓고 거기다가 이제 뭐 잡동사니 넣어 놓는 그런 경우죠. 거기서 모여 가지고 기도를 했던 것이 그게 마가 요한 다락방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워낙 돈이 없고, 뭔가 자기들이 어디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다락방에 모였던 것이죠. 그렇게 모여있는 사람들이, 그 다음부터 모인 사람들이 어떤 경우냐 하면, 지지리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에 상황을 보면 너무 너무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것이죠.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그래서 44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모인 사람들이 먹을 것조차 없으니까, 그리고 쓸 것이 없으니까, 모든 물건을 통용합니다. 공용이 되어 버렸습니다. 통용하고 또 보면 너무 먹을 것이 없었고, 너무 가진 것이 없으니까,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참 이 초대교회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요. 우리 먹고 살 생활이 안되니까, 그 중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내어놓았어요. 다 내어놓아서 그저 있는 것들을 서로 나누어서 쓰기도 하고, 왜 숨어서 서로 사니까, 가지고 온 사람들은 공용이 된 것이죠. 그렇게 된 겁니다.
그 다음에 잘 아는 데로 6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그리고 6장 2절에 보면,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모여도 전부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하는 일이 뭐냐하면 밥 먹여 주는 겁니다. 그게 초대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하면, 복음을 받고 복음을 통해서 모여든 사람들이, 뭔가 계산하고 있는 사람들은 올 수가 없어요. 어차피 굶어 죽을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그 표현이 뭐냐하면요. 차리리 밖에 사는 것보다 감옥에 들어가 사는 것이 먹을 것이 다 해결되니까,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이판 사판만 모였다! 그랬어요. 맞습니다. 어쩔 수 없는,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초대교회에 모였습니다. 100%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 털털이들만 모였던 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쭉 이렇게 지나오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하면요. 진짜 복음을 받고, 진짜 복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까지, 지식이 있고, 돈이 있고, 있는 동안에는 잘 안되더라 구요. 어떤 면에서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조차도 다 없어지고, 다 떨어 먹고, 건강도 뭔가 하나, 붙들고 있는 그런 것조차도 다 없어 졌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나를 잡아가세요!' 하고 엎드리는 곳이 교회란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히려 뭔가 하면 완전 자기를 포기했을 때에, 하나님뿐입니다. 이랬을 때에 비로소 신앙이 들어가더라 구요. 이게 지금까지 거의 교회의 성장 형태입니다.
초대교회에 말할 것도 없죠. 왜? 그 이상의 사람들이 올 수가 없는 배경입니다. 다시 말씀해서 뭐냐? 이런 사람들이 모였는데 보세요. 5,000명씩, 3,000명씩 제자가 일어납니다. 마케도니아를 비롯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기적처럼 막 번져 나갑니다. 자기 모든 재산을 다 던져놓고, 흩어진 사람들, 스데반 이후에, 순교이후에 예루살렘에 핍박이 극심하게 되니까, 모든 것 다 던져놓고 흩어졌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성령의 충만입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능으로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나는 그 사모님에게, 혹시 이 설교를 들을 수 있는지 모르지 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낙심할 수 있는 남편이 오히려 100%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길이 된다면 축복의 길입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것이 축복의 차선이 될 수 있습니다. 왜? 내가 죽고, 내게 있는 것이 부정이 될 때에, 그래서 빌립보서에 보면 바울이 자기가 갖고 자기가 자랑할수 있는 모든 것이 뭘로 여겼다 그랬습니까? 배설물로 여겼을 때에 그의 인생은 정말로 하나님의 큰 계획과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11절에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그랬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제 완전히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의지하고 나가게 될 때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고백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뭔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지지리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안 되었습니까? 좋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적은 것이라도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시작하면 됩니다. 참 하나님의 비밀을 붙잡고 시작하면 됩니다. 하루에 한번씩 기도하기 시작합시다. 아니면 교회까지 못 나와도 좋습니다. 집에 앉은 상황도 좋습니다. 오래 못해도 좋습니다. 짧은 시간도 좋습니다. 참 예수 그리스도, 그 엄청난 비밀의 역사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이루리라!'는 말씀했습니다. 당당하게 말씀했습니다. 시작하는 그 속에서, 시작은 미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루 밤 자고 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엄청난 축복과 역사가, 나도 모르게 눈을 떴을 때 비로소 1년, 2년 지났을 때에, 아니 10년 지났을 때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과 역사가 사실로 와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이 사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여기에 투자할 수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5편 3절에 보면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그랬습니다. 복음을 얻기 위해서, 복음의 역사를 얻기 위해서, 내가 받지도 않았지만은, 이 사실을, 이 비밀을 조금만 깨닫고 자신의 것으로 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것으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자신의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 일을 위해서, 작업만 해도 즐거워지더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받고, 조금 이해가 되면 아직까지도 내가 얻고, 내가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 비밀을 얻기 위해서, 이 보화를 얻기 위해서, 이 축복된 비밀의 역사를 알고, 다 덮어놓고, 그때부터 자기 있는 소유를 파는 과정도 기뻐하며 팔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과정도 기뻐하면서 포기할 수 있습니다. 왜?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사실을 확신했고, 사실로 그것을 가져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조금만 알게 되면 여러분 당하는 어려움과 일들 속에서도, 그래서 적은 이런 일이지만 비밀의 축복과 역사를 내가 소유한다! 안 그러면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 받을 수 있는 과정 속에서만 있어도, 기도하는 시간, 찬송 부르는 시간에, 또 우리가 예배드리는 순간에, 기쁨과 감사로 와 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오늘 여러분과 제게 시작은 미약하지만, 우리가 시작하는 그 시작부터 이 축복 속에 서 있다는 그 사실이 즐겁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들어가면 히브리서 12장 15절 말씀처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잊지 못할까 싶어서, 이 사실이 조금만 이해되면 마음에 이제는 다른 게 아닙니다. 은혜 속에서 떨어질 것이 두려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나는 것이 두려워 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러면 그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이 때부터 뭐냐? 전도와 선교라는 것이 저절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부터 흑암과 어둠의 세력이 떠나가기 시작되는 겁니다. 그 시작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엄청난 축복으로 여러분 현실적으로 와 있게 될 것입니다. 눈을 뜨면 준비된 하나님의 축복이 보여질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밭에 감추인 보화
☞ 예수님 안에 엄청난 축복과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골1:19).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골2:3). 그러므로 우리 가정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뿐만아니라,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 이 축복과 은혜가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비밀을 알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 축복과 은혜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되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되어졌습니다. 그 즉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받았고, 흑암의 세력이 물러갔습니다.
⊙ 처음에는 작은 것처럼 보이나...
☞ 하늘 나라의 비밀을 씨에 비유했었는데, 작은 씨와 같이 복음의 비밀은 시작이 매우 미약합니다. 씨는 작고 미미해서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엄청나게 나타납니다. 그 작은 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어 쉴 정도의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이 시작이 너무 미미해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조차 하지 않는 안타까움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번창은 놀랍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미미한 믿음의 순간들이 시작되어 계속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큰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 복음은 신구약이라는 밭에 감추어져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
들이 그 속에 감추어진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봅니다. 심지어는 성경 학자들이 이 축복된 비밀을 보면서도 철학이나 도덕적 차원으로 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재를 붙잡지 못하고 여전히 껍데기 속에서 헤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은혜가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길이시다'는 복음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감추인 보화를 발견할 수 있는 한 걸음
☞ 비록 별것 아닌 것 같고 적은 것 같지만 정시 기도와 무시 기도를 계속할 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충만하게 넘치는 때가 옵니다. 그 때에는 성령 충만의 사실을 누리게 됩니다.
☞ 복음을 받고 복음으로 모인 초대 교회 성도들은무엇인가 계산을 하고 찾아올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조차도 얻기 힘든 형편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수천명의 제자들이 모이고, 복음이 기적처럼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왜입니까? 바로 성령의 충만 때문입니다.
☞ 적은 것 같지만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기도하기를 시작하면 됩니다. 그것이 계속되어질 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상상할 수 없는 큰 축복을 받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비밀입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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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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