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네 소원대로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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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 15: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지난 시간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렇게 제목을 잡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마 한 주간동안 이 말씀이 우리 삶에서 사실적인 적용으로 인도 받고 살아왔던 것이, 아마 여러분 기도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체험되었을 줄로 믿습니다. 저도 이 메시지로 또 이번 치유 사명자 대회에서도 똑같은 배경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성질이 더러워서... '성질 더러운 것도 안심하라!' 그랬더니 굉장히 힘을 얻어요. 여기 오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질 더러워도 안심하세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더러우면 더러운 데로 계획이 있고, 좋으면 좋은 데로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쓰심에, 하나님의 계획에는 실수함이 없다하는 사실을 우리 한번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네 소원대로" 그랬습니다. '네 소원대로!'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오늘 여기 있어요. 이 '소원대로' 제일 좋아하는 단어고 또 제일 이 말씀이 아마 축복된 말씀이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소원대로 안 되어서 탈이고, 또 소원대로 된다 그래도 이 유익한 소원이 아니고, 어쩔 때는 애들의 소원들처럼 소원을 성취하게되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주안에서 네 소원대로 되라! 이런 배경을 오늘 먼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15장 오늘 읽은 본문에 2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소원대로 되는 배경은 뭐부터 해결해야 됩니까? 믿음이 회복되어야 됩니다. 소원대로 되도록 하나님께서 먼저 그 소원 전에 회복해야 될 일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회복하고 소원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재가 필요하더라 구요. 오늘 본문에서 그 전제를 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회복시키는 일에 공통적인 역사가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또 내 자신을 통해서 쭉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게 뭐냐하면 이 공통적인 특성이 그냥 소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믿음이 회복될 수 있는 소원이 회복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믿음이 회복되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고통을 인하여 믿음이 회복되더라"

제가 여러 성도들을 만나서 이 대화를 하는 중에서 많은 성도들 거의 다입니다. 거의 이 과정을 통해서 와요. 믿음이, 내가 어떤 때에 참 믿음이 회복이 되고, 내가 믿음이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할 때에 그 순간이 거의 언제냐? 아파 죽게 되었던지, 사업이 망해서 어려웠던지, 이런 여러 가지 꼭 고통을 통한 문제로 이루어지고, 그로 통해서 믿음이 회복되고, 그로 통해서 복음의 좀 눈이 열리고, 그로 통해서 말씀의 눈이 열렸던 사실들을 보게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여러분 아실 것은 고통이 온다! 그러면 뭐라고 생각해야 되느냐? 받아합시다. "소원대로 될지어다!" 소원성취에 전주곡입니다. 이렇게 이해가 된다 그러면 뭔가 여러분 고통이 있다! 무슨 소원을 이루어 주실까? 그렇게 생각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어떤 과정으로 뭔가 소원이 성취될 수 있는, 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회가 고통이더라! 여러 가지 어려움 들을 통해서...

그런데 고통을 받는다 그래도, 여러 가지 고통에 문제가 안 있습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가 제일 고통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 사람마다 다르더라 구요. 그렇게 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제가 이렇게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꼭 내 자신이 어렵고 힘들어서 오는 문제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흔히 이걸 가지고 인정이 없다 뭐 없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조금 그런 것 같아요. 목회 생활에서 제 나름대로 잘하든 못하든 제 마음속에 한가지 큰 어떤 생각의 줄기가 뭐냐하면, 오직 목회입니다. 교회! 여기에 전 마음이 쏟아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쏟아져 있으니까 어떤 결과가 오느냐하면, 내 가정사에 대해서 상당히 소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특별히 자녀들 문제조차도 이 큰 어떤 그 흐름에 있어서 자녀들은 곁가지라! 그런 어떤 과정에 있다 보니까, 어떤 문제가 오느냐 하면, 요즘조금 미안한 이야기들이 뭐냐하면, 응당히 보통 올 수 있는, 보통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인데, '목사님 세염이를 보내놓고 섭섭하죠...' 이러면 제가 섭섭하다고 그래야 될른지, 아니라 그래야 될른지, 실제로 안 그렇거든... 그건 뭐 밉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 좀 홀가분해요. 보내버리고 나니까! 왜? 이 뭔가 이 큰 내가 흐름에 내 마음이 전념할 수 있는 일에는, 그 일에 내가 시집보냈다! 일본 갔다! 전혀 뭔가 나한테는 영향이 별로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제게는 아마 이런 어떤 배경이 되어서 뭐 별로... 이제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들을 때에 좀 대답을 어떻게 해야 될른가? 너무 상식밖에 대답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시험들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좀 고민이 있더라 구요.

오늘 제가 이 기회에 드리고싶은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연단 해 나갈 때에, 믿음으로 연단 해 갈 때에 내게 직접 영향이 올 수 있는 문제로 나를 인도했지, 뭐 주변에 어떤 그 자녀들이나 이런 것을 건드리는 것을 별로 못 봤어요. 우리교회 문제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저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직접 나를 들어서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어떤 사실로 내가 믿음을 부여하기도 하시고, 또 어떤 생각을 하게도 하시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냐! 내게는 그렇게 되는 것을 봤습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너무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 통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몸보다 누구를 칩니까? 하나님께서 자녀를 건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어디에 제일 관심을 두고, 어떤 관심에 영향을 주었을 때에 고통스러우냐? 하나님이 너무 잘 아십니다. 각 개인에 따라서 이게 다르더라 구요. 그래서 혹시 여러분들이 어떤 문제나 사건에 고통스러운 문제가 오거든, '아, 내가 여기에 제일 관심을 지금 두고 있구나!' 그렇게 이해하면 되구요. 그러면 그걸 통해서 뭘 하느냐? 여기에 관심보다도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에 관심을 두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그러면서 뭘 하기 위해서? '네 소원대로 되리라!' 전주곡이다! 이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당하는 모든 문제,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손해 된다! 고통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 아닙니다. 축복과 은혜의 역사죠.

이게 조금 지나고 보면 바로 연결되는데도 사람들이 얼마나 모르느냐? 뭐 재주 있다, 뭐 깨닫는다, 뭐 그래도, 뭐 있는 것 같이 보여질 수 있을지 몰라도 한심한 것이 사람이더라 구요. 금방 드러난 문제조차도 이 깨닫지를 못해요. 오해하고, 뭐 미워하고, 시기하고, 갈등하는 이런 부분들이 거의 인간적인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아픈 곳을, 가장 아픈 곳이라는 것은, 가장 자기 자신이 관심을 갖고, 어떤 면에서 그런 문제는 믿음보다도,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내가 지금 어디에 가장 시선을 두고 있느냐 하면, 이런 문제에 하나님이 건드리는 겁니다. 그 건드리면서 어디로?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변에서 당하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아, 믿음이구나! 여기에 모든 것이 있구나!' 이것이 이해되면 돼요. 그래서 늘 우리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뭐 '다른 모든 것은 서론이다! 이제 본론이 문제다!' 여러분 지금 뭘 보느냐? 하나님의 관심과 맞느냐? 여기에 축복이 있지! 여기에 관심으로 돌리기 위한 하나님의 모든 문제지, 그 회복되는 데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데 가 있는데, 엉뚱한 짓을 한다! 안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모든 성도들의 지금 문제고, 그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관심이 다른데 가 있으니까! 기다리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들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 두 번째로 또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성취시켜 주실 수 있기 위해서 뭘 요구하시느냐? 그럴 때에 중요한 것은, 메시아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언약을 바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본문에 보면 무슨 말씀했느냐 하면, 22절에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바로 그랬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이 가나안 여인이 이방 여인입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이 오늘 가나안 여인이 복을 받는...

그러니까 뭐 열심히 기도했다!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언약을 붙잡았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메시아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시겠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바로 붙잡았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음을 여러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여러분 주의 백성들이, 왜 하나님께서 고난과 고통이 축복이 될 수 있느냐? 반드시 주안에서 특별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은 고난 통해서 뭘 깨달았느냐?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 통해서 그리스도의 언약과 약속을 반드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붙잡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뭐 고난 통해서 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가끔가다가 뭘 생각하느냐 하면, 어떤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설교를 들으니까, 상당히 뭔가 이 생각을 깊이 하고 뭔가 깊은 그런 어떤 그런 것이 느껴진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똑같은 평범한 것인데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이 시간을 통해서 드리고 싶은 것은,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거든요.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니까,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방면에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맡기실 때에, 그냥 맡긴 게 아니더라 구요. 요셉보세요. 그냥 맡겼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서 정확하게 하나님의 방향과 계획을 붙잡았을 때에, 하나님의 귀한 자리에 놓여졌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뭔가 돈을 줘도 이 방향을 알고, 알 것을 알아야 그 자리에 섰을 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바로 받아 나가지, 이것 모르면 맡겨 놓아도 문제로 그 사람이 뭔 짓을 할지! 하나님께서 맡겨놓고 걱정하시느라고 밤잠을 못 주무실 것 같아요. 알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서 먼저 이 시점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든지, 요셉이든지, 뭐 성경에 어느 누구도 똑같이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셨습니다. 언약을 바로 붙잡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모든 핵심의 해결에 방향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혹시 우리 생활과 삶에서, 또 전도라는 이 엄청난 축복과 역사의 배경 속에서, '왜, 내게 이런 문제가 오느냐?' 그렇게 볼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로 통해서 내게 뭘 요구하시느냐? 조금만 한번 관심을 둬 보세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역사가 보여지게 될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죠. 중요한 것이 고난을 통해서, 어려움 통해서, 이 사건 통해서, 이 문제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알 것은 바로 알게 하시는 언약에 눈이 열리게 하시는 축복의 기회다! 그 순간에 뭐라 고하십니까?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네 소원대로 되는 것이 다른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을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이 점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귀가 없습니까, 눈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뭘 모를 겁니까? 다 아십니다. 이게 안 되어요. 그 자리에 놓았을 때에 그 곳에 맡겨 주었을 때에 그 일을 위해서 맡겼을 때에 내가 위임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루어 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향,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 그게 뭡니까? 메시아! 하나님의 약속, 언약이 바로 안 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다른 일로 자꾸만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안되면 노력할수록, 애를 쓸수록, 고생할수록, 수고할수록, 더 어두워집니다. 더 어두워 져요. 왜? 그런 시간에 여러분 조용히, '하나님 내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뭘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뭘 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고 뭔가 그것을 못 깨닫고, 다른 방면으로 이해를 하려고 그러면 잠시간 혹시 수단 쓰고 방법 쓰면, 그 고난이 잠시 없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다음에 더 큰 문제로 그에게 닥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생겨서 고난을 받다가, '이 교회 못 있겠다!' 다른 데 안 갑니까! 가는 사람 붙잡고 꼭 하는 이야기가 저주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이 문제로 못 이기면 거기에는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걸 잘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는 그 사람에게, 그 문제 통해서 뭘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시는데, 그걸 다른 방면으로 해결하려고 그러면 더 큰 문제가 그 앞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그저 예사롭지 않게 듣고 넘어가면 아마 여러분 평생 오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평생 이 문제를 못 깨달으면, 이걸 가지고 우리가 뭐라고 그러는지 압니까? 영적인 문제에 걸렸다! 그겁니다.

영적 문제, 영적 문제! 다른 게 아닙니다. 이 문제 보여줘도, 보이기를 원하셔도 못 깨닫는 게 가장 큰 영적 문제 예요. 이게 봐도 모르니 이보다 더 큰 영적 문제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영적 문제에 특징이 뭐냐? 말씀을 들어도 못 깨닫습니다. 말씀을 말해도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이것보다 더 큰 영적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 좀 마음에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중요한 것은, 이걸 정확하게 모르게 되면 해결이 안 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내 아들이 귀신 들렸다!' 했죠. 귀신 들렸을 때에 이 귀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메시아! 다시 말해서 창세기 3장에 묶이는, 내 아들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정확한 답은 메시아! 이방여인에 깨달은 눈입니다. 이 일에 우리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응답하시고 역사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내 문제다! 네 문제다! 하기 이전에 완전히 덮인 문제가 이 문제입니다. 지금 현장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에, 우리가 사는 생활에 어떤 면에서 귀신들렸다! 이 정도가 아닙니다. 귀신들린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다 여기 있어요. 현장에서 뭐 이혼을 비롯해서, 그 다음에 문제를 비롯해서, 자녀의 문제를 비롯해서, 그 다음에 우리 생각들이 전부 귀신들린 생각이 다른 게 아닙니다. 정상적인 생각이 아닌데... 그래서 제가 오늘 뭔가 치유 메시지에서 조금 드린 문제들이, 귀신들렸다! 하나님을 모르게 하는 것이 귀신의 역사거든요. 사단의 역사거든요.

그러니 귀신들린 역사 속에 어떤 문제가,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고, 우리 자신이 못 깨닫는 문제가 있느냐하면, 이게 참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열심 내는, 너무 열심 내는 것도 하나님을 못 깨닫게 만들어요. 이게 귀신이 역사 하는 고차원적인 수단입니다. 너무 열심 내는 것! 열심만 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알 것을 바로 알고, 방향을 바로잡고, 열심을 내야죠. 그 다음에 뭐든지 된다고 믿는 것도 문제거든요. 뭐든지 그건 합리성이 없어요. '믿습니다! 됩니다!' 되기는 뭐가 돼요. 지금 안되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정확하게 복음을 바로 붙잡고, 되고 안 되고를 판단할 수 있어야 되는데, 이게 안되니까 사고력이 이상해져버립니다.

그리고 또 뭐든지 안 된다고 사람 볼 때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게 제일 많은 것이 묵은 디이들, 교인들이 제일 많습니다. 차라리 안 믿는 사람들이 술 한잔 먹고 나면 뭐든지 된다 싶은데, 교인들은 뭐 술을 먹나 뭐든지 된다고 할 수가 없어요. 계속해서 안 된다 거리고 있으니까, 이건 사단이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이게 고차원적인 술책입니다. 오늘 여러분 맨 정신 진짜 차려야 됩니다. 참 복음 붙잡고...

이것이 뭐냐하면 사단의 통로가 되고, 이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막아버리니까, 문제 중에 문제 아닙니까! 사단이, 귀신이 들렸다! 더 무서운 겁니다. 왜? 이런 사람들은 멀쩡해요. 이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도 줄 수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막혀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막혀버려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건에 귀신의 역사가 나옵니다. 사단의 인도를 받아버리면, 통로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해방 받을 수 있는 길 오직 누구입니까? 흑암과 사단의 운명에서 해방시키는 창세기 3장에, 구체적으로 해방시키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보세요. 현장에 점술과 그 다음에 걸핏하면 윤회설을... 이게 지금 TV를 통해서도 들었다 그러면 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윤회설! 그래서 우리 요즘 보면요. 복음이 안 들어가면 신 불신간에 이상하게, '뭐, 전생에 인연이 어떠니...' 그러고 우리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이야기들이, '아 저것도...' 그 배경이 전부 윤회설 배경입니다. 인연은 무슨 인연! 옛날에 우리는 죽음과 멸망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귀신 속에 붙잡혀 살아왔던 저들인데, 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에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노력하고 애쓰면 애쓸수록 다른 방향이 나옵니다.

그래서 정말 보세요. 전부 여기에 귀신 장난, 귀신 문화로 가득 찼습니다. 돌았다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내 자녀가 귀신들렸나이다!' 고통하는 이 사람의 고통이상으로 현실적으로 오늘 우리가 참 복음에 눈이 열리면 전부 이런 문화 이런 배경으로 진짜 성도라면 고통을 받아야 됩니다. 진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이런 배경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축복하십니다. 그때에 비로소 뭐냐?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우리 성도들이 이 눈이 안 열리면... 여러분 지금 평안합니까? 세상 볼 때에, '참 좋다!' 싶습니까? 그리고 참 복음에 역사 속에 내가 서서 일한다는 사실에 감사 안하고, 감격 안 한다! 그리고 주의 일을 맡겨졌을 때에, 정말 약속잡고 하고 싶은 이런 뜻을 갖지 못합니까? 여러분 진짜 귀신들렸습니다. 잘 알아야 됩니다.

제가 이번에 우리 목사님 통해서 그러더라 구요.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전도 회에서 일해야 될 사람들이 자꾸 안하고 뭔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 귀신들렸습니다!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이 바르지 않아요.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를 다 놓치고 어디 가서 복을 받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성도들이! 벌써 우리 마음에 완전히 흑암이 깔려있습니다. 그렇게 '복음, 복음!' 그래도 이 생각으로 자꾸 나가는 겁니다.

내게 주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내게 주어졌을 때에, 그리고 이 일로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내가 언약 바로잡고 방향 바로 나갔을 때에, 그곳에 하나님이 뭐라 그랍니까? '네 소원대로 될찌어다!' 물론 어려움도 있겠죠. 힘든 일도 있겠죠. 그걸 피해서 어디로 갈 겁니까? 요나 처럼, 마침 길이 열리는 것 같지만, 그 길은 열리는 게 아니고 그건 죽으러 가는 겁니다. 내가 공갈치는 것이라고 이해하지 마세요. 여러분 잘 들어야 됩니다. 우리 생각조차 벌써 빚나가고 있어요. 지금!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요나처럼 마침 이게 잘 안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런 게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상해요. 그래서 여러분과 제게 믿음이 회복되라는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처음 들으면 낙망하기 꼭 좋은 대답입니다. 23절에 보면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옆에서 듣기에 민망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없어요. 받아합시다. "무 응답이 최고의 응답이다!" 엉뚱한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무슨 응답을 합니까! 엉뚱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무슨 응답을 합니까! 아무 말도 안 해야지.

그래서 여러분들이 뭘 이해를 하셔야 되느냐 하면요. 예수님께서 아무 말도 안하고 계실 때에 최고의 응답입니다. 뭘 듣는 이야기보다도 안 듣는 게 차라리 좋습니다. 그때는 뭐합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 그래서 흔히 그르잖아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그러는데, 저는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해외 나가서 문제가 있으면 가정에 연락을 하지., 안 그러면 별로 연락할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집에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편안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붙일 수 있는 일이 될는지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그게 응답하시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이렇게 기도할까요, 저렇게 기도했는데 왜 하나님이 아직까지 안 되었습니까?' 다 성취됩니다. 시간표에 따라서... 다만 지금이 시간표가 안되어서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내 소원대로 될지어다!' 시간표가 안 되었을 뿐입니다. 지금 이루어질 그 순간에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더군다나 그뿐 아닙니다. 24절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데 뭐라고 말하느냐? 이건 낙심치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너하고 상관없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방인이거든요. 지금 이스라엘 집에 보냈지, 언제 내가 이방인 집에 보내었느냐! 기가 찬 일입니다. 이건 뭐라 그럴까, 도저히 이방인으로서는 도저히 이것은 소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잘 들어야 됩니다. 지금 가나안 여인, 이방인 여인! 그런데 예수께서 이방인에게 '나는 상관이 없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내가 왔지!' 이것은 뭘 말씀하느냐 하면, 전통적으로 전혀 이방인들에게 이 말은 전혀 해당이 안됩니다. 그러니까 가장 낙심스러운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나왔죠.

우리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혹시 어떤 기도 또 어떤 시간에 진짜 낙심될 수 있는 응답이 왔느냐? 반응이 왔느냐? 이때 조심해야 돼요. 이게 믿음입니다. 받아합시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참, 얼마나 갚진 축복의 메시지인지 몰라요. 그래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땅과 세계를 바꾸실 귀한 축복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지금 현실로 보기에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게 초대 교회의 역사예요. 현실로 보기에는 전혀 안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누가 역사 했습니까? 성령으로 역사 하셨습니다. 우리가 못할 줄 알고, 전혀 불가능할 줄 알고, 우리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당신의 영으로 역사 하셨습니다. 이게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늘 저는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서 큰 소리 치는 배경이 이겁니다. 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재물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있기 때문에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여기에 모든 답이 있어요. 그게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우리 교역자들에게 혹시 치유에도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은, 뭐 약속을 잘 믿고 복음을 잘 알았다. 그런 배경보다도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이것만 붙들어도 목회는 성공한다! 그랬습니다. 이것만 붙들어도 성공한다! 이겁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며, 나와 우리를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축복하시기를 원하신다! 이것 하나만 붙들어도 이것 하나만 믿음 가져도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혀 얼토당토 않는, 전혀 소망이 없는 이야기를 우리 주님이 하셨어요. 보세요. 그래도 이 여자가 안 물러갔습니다.

저는 이걸 이렇게 보면서, 오늘 아침에도 이걸 묵상하면서 웃음이 나오더라 구요. 이걸 상상을 한번 해 봤어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 말씀하시면서, 이 이방 여인이 그래도 뭐라 그랬습니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가는, 주님 앞에 나가는 것보고, '예수님께서 속으로 싱긋이 안 웃었겠나!' 하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 구요. 여러분 지금 이렇게 보시면서 우리 주님께서 언약잡고, 여러분들이 뭐 얼토당토 않는, 되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것 같아도, 우리 주님의 마음에 맞을 때에 어떤지 아십니까? 주님께서 싱긋이 웃고, 입으로는 '안 된다! 내가 이스라엘에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지, 이방인을 위해서는 안 왔다! 안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주님께서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고 계신다! 이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문제는, 더욱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15장 27절에 보면,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런데 그 앞에 더 문제를 말씀했어요. 26절에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방인을 개라고 그랬거든요. 이스라엘이... 그러니 전통적인 그것을 인용하시면서 자녀의 떡, 그러니까 자식에게 주었던 떡을... 떡이 음식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우리는 떡이라 그러면 그저 별식이지만, 거기에는 주식이에요. 서양에 빵이 주식이듯이, 이스라엘에 떡이라 그러면 주식입니다. 밥을 줘놓고 밥을 뺏어 가지고 개한테 던지는 미친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자식에게 주었던 떡을 뺏어 가지고 어떻게 개한테 줄 수 있느냐? 이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이방 여인, 도저히 가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이 가나안 여인이 하는 이야기가, 다같이 한번 받아합시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러면 예수님이 할말이 없어요. 여러분 진짜 믿음가지고 나가면, 우리 예수님께서 더 이상 다른 소리를 하실 수가 없어요. 그래서 믿음이 크도다, 믿음이 내 소원대로 되게 하겠다! 믿음에 모든 문제 해결된다! 배경이 그겁니다. 우리가 '한다, 못한다!' 이게 아닙니다. 정말 언약을 잡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만 믿는다면 이게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다 떨어지게 되고, 괴로움과 고통에 빠지게 되는 이 사실들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때에 24절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그렇게 잘라 말씀을 했고, 그 다음에 자녀의 떡을 취해서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더 엄격하게 배제하는, 도저히 더 이상 소망조차도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말씀을 했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너무 너무 이상한 것으로 이 취급을 받았거든요. 그 배경이 뭐냐하면 여기에 이제 치료하는 핵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핵이 나오죠. 그게 바로 뭐냐하면, '자녀의 떡을 취해서 개들에게 던지지 못한다! 그랬을 때에 그 말이 뭐냐하면, 너무 멸시와 천대와 이건 뭐 자존심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자존심이 여기서 다 깨집니다.

저는 그 이번에 치유메시지를 들으면서 나는 류 목사님이 그런 배경이 있었을 줄을 몰랐어요. 왜? 어릴 때에 그렇게 방탕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그렇게... 말하자면 깡패 보스로 나갔던 배경이 있느냐? 조금만 그저 언뜻, 동네 청년들에게 '누구하고 놀지 마라!' 이런 정도로 이야기되었을 정도니까! 그 배경이 나는 사뭇 그렇게 깊이 몰랐으니까! 몰랐는데, 왜냐하면 그 자신이 옛날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전혀 이 어떤 그 생활 해결능력이 없을 때에 뭐냐하면 모자원이라고, 고아원 비슷한 어머니와 아들이 모자원이라는데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때 이 6.25 직후에 먹을 수 없고, 살수 없으니까! 그런데 거기 들어갔데요.

거기 들어가서 뭐가 무너지느냐 하면, 다른 사람은 거기에서 적응도 잘하는데, 본인은 모든 자존심이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자긍심, 자존심!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이때부터 헝클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제일 먼저 계속해서 메시지 아닙니까! 회복시키는 배경이 뭐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자존심 회복 시켜주는 것이 청소년 일으키는 첫 번째 문제다. 첫 번째 과제다. 그 이야기가 본인이 그곳에서,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온갖 못된 짓을 다 했다. 그 배경이 나오더라 구요. 상당히 중요합니다.

문제는 뭐냐하면 자존심, 자긍심, 이게 무너져 버리면 뭔 짓을 못합니까! '나는 개보다 못하다!' 그래가지고 자기 자신, 진짜 뭔가 이건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 이런 어떤 배경에 섰을 때에 뭔 짓을 못합니까? 여기 지금 문제가 있거든요. 여러분 잘 알아야합니다. 사회에 나가서라도, 어디에 나가서라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여기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아무리 술자리에 갔더라도,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만되면 어떤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이왕 버린 몸!' 그래가지고 온갖 짓 다 안 합니까! 여러분 이왕 버린 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 몸입니다. 비록 인간은 이상하고 지금은 있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게 참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뭐냐하면,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방법이에요. 치료하는 방법이 이렇게 무너지고, 이렇게 보잘것없는 이런 사실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뭐 자신이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래서 '너는 개다!' 그랬을 때에, 이방 여인이 뭐라 그랍니까? '옳소이다, 맞습니다, 사실입니다!' 이 긍정이 그렇게 어렵더라 구요. 나는 교회에서 보면서, '너는 개다!' 그럴 때에, '맞습니다! 나는 참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짜 소용없는 인간입니다!'이게 안되더라 구요. '너는 개다! 내가 왜 개냐!' 이게 거의 다입니다. 고쳐질 수 없는 근본적인 핵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여기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해야 됩니다. 이게 회복이 안 되어요. 마땅히 올 수 있는 사람이 온 줄로 압니다. 천만에 말씀, 어쩌다가 여기 왔습니까! 늘 그런 이야기 안 합니까? 어쩔 때 강단에 있으면서, 참 도저히 내가 여기에 설 수 없는데, 이러면 내 자신이 벌써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올 수 있는 줄 알고... 그러면 목사가 되었다! 장로가 되었다! 집사가 되었다! 이 일을 맡았다! 어쩌다가 내가 이 자리에 섰고, 이 일을 감당하게 되었느냐? 감동해야 됩니다.

이게 조금, '어떻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어떻게 이 문제를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아도 성이 나는데... 여기까지 와서 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해야 되겠느냐! 여기 와서 내가 멸시를 받아야 되겠느냐!' 전부 이것이 문제입니다. '개다!' '옳소이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게 모든 치료에 핵입니다. 말하자면 극점입니다. 여기서 돌아서지 못합니다. 걸핏하면 그냥 눈 부릅뜨고 대드는 게 전부 이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네 소원대로 되게 하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이게 아무나 또 하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자격이 있어야 이걸 합니다. 자격도 없이 이걸 해 놓으면 돌아버리니까! 그래서 이걸 아무나 안 하는 겁니다.

여기에 중요한 문제죠. 한번 받아합시다. "여기까지 와서, 교회까지 와서 멸시를 받아야 되겠나!" 워낙 못 깨달으니까, 교회까지 와서 멸시를 받아야지! 그때에 '옳소이다, 자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눈이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이 감사로 나가게 될 때에 네 소원대로 될찌어다! 실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어쩌다가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까? 어쩌다가 주님의 교회를 지을 수 있다는 자리에 왔습니까? 이게 이해가 안 되면 하나님 허락지 않습니다. 해 놓아도 나중에 '내가 했다!' 이렇게 되는 거죠.

여러분 다윗이 늘 우리가 그런 말 안 합니까! 다윗이 성전을 짓고 싶어도 못 지었다! 허락지 않았다! 이것을 보통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이 보통 축복과 은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 바로 붙들어야 합니다. 비로소 여기에서 기도응답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말씀했죠. 기도응답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런 배경에서 27절에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뭐라 그랬느냐하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뭐라 구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함으로...

여러분 어떤 멸시도, 어떤 천대도, 어떤 문제도, 어떤 고난도, 어떤 어려움도, '주여, 내가 받아 마땅합니다! 내가 받아 마땅합니다!' 진심으로 그 자리에서 여러분, '옳소이다!' 이 사실만 이루어지게 되면 나오는 게 뭔지 압니까? 감사가 나옵니다. '내가 받아 마땅합니다! 주여 내가 받아 마땅합니다!' 이 순간이 '네 소원대로 될찌어다!' 주께서 응답하시는 응답의 가장 핵입니다. 왜? 내가 무엇 때문에, 뭐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입니까? 이게 전부... 아직까지도 멀었다는 이야기예요. 여러분 오늘 정말 메시지 잡고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세요.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하나님이 은혜의 역사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선택해서, 주고싶고, 주고싶고, 주고싶습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어요. 주려고 그러면 엉뚱하게...

너무 축복된 자리에 있습니다 만은, 이 사실이 안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우리 마음속에 구체적으로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이럴 때에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이럴 때에 첫 번째 오는 축복이 뭡니까? 7절 말씀이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놓고, 불안하고, 염려스럽고, 고통스럽고, 그렇거든 그게 응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가장 큰 응답이, '옳소이다!' 이렇게 되면 평안해집니다. '받아 마땅합니다!' 평안해 집니다. 나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어떤 경험에 있어서 혹시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이상하고, '때려죽일 놈!' 그러고, 덤벼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가도, '맞아, 받아 마땅하다!' 그 소리 들어도, 열 번들어도, 이래버리면 평안해져버립니다. 첫 번째 주님의 축복이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다음에 다가오는 것이 뭡니까? 응답의 역사로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네 소원대로 될찌어다!' 오늘 약속을 붙잡고 한 주간도 하나님께서 엄청난 세계 복음화에 선교와 전도에 여러분 세워주시고, 지금 축복과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중요한 경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 사실을 조금만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에 응답이 어디로 통해서 오느냐? 어떻게 오느냐? 오늘 약속하신 말씀 속에, 벌써 그 줄이 다 보여졌습니다. 이제 한 주간 이 축복과 은혜를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소원대로 되어지기 위해서는 믿음부터 회복되어야 합니다.

● 본론
1. 소원대로 성취되는 공통적인 특성
(1) 고통을 인하여 믿음이 회복됩니다.
① 고통하는 시간을 통해 소원이 성취될 수 있는 믿음이 회복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② 사람마다 관심을 가지는 부분에 따라 고통을 느끼는 부분이 다릅니다.
③ 고통스러운 문제가 오면, 자신의 관심을 돌이켜 믿음 회복으로 방향을 맞추십시오.
(2) 언약을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① 이방 여인은 예수님을 언약의 메시야로 알고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②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을 통해서 언약을 깨닫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③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④ 이방 여인은 자신의 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메시야를 볼 수 있었습니다.
⑤ 우리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언약의 메시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⑥ 어렵고 힘든 일 속에서도 마음과 생각을 언약에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3) 무응답 중에도 믿음을 고백합니다.
① 이방 여인이 도움을 요청하는 엉뚱한 상황에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② 우리가 엉뚱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③ 멸시를 받으면서까지도 이방 여인이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④ 응답이 없을 때,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럴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십시오.
⑤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는 무응답 중에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⑥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빌4:6)

2. 소원대로 성취되는 결과
(1)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2) 응답의 역사가 소원대로 성취되어집니다.

● 결론
세계 복음화의 전도와 선교의 역사 속에 세워주셨으므로, 우리가 믿음을 회복하고 소원대로 성취되는 응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제목
우리의 부족이나 연약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셔서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 이루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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