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의지하여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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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5: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눅 5: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되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눅 5: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눅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눅 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상당히 많은 갈등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과, 또 우리 하나님 말씀이 증거 하는 내용들이 뭔가 이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이 부합되지 않았을 때에, 여기에는 상당한 혼란과 갈등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흔히 그런 말들을 합니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히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거짓말도, 또 술, 담배도 못하고, 그래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느냐?'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는, 뭐 사업을 할 때는,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둘러대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함께 먹어주고, 함께 그렇게 놀아주고, 이게 되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게 안되면 사회생활이 전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주장하는 것이 뭐냐하면, '참, 예수 믿는 사람들 답답하다! 술자리에 옳게 같이 안 하죠, 함께 먹지 않죠, 함께 놀아주지 않죠!' 그러니까 불신자들의 그런 시각으로 봤을 때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상당히 답답하고 불쌍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제게도 불신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한번은 그 친구가 저를 보고 그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야, 니는 무슨 재미로 사노!' 상당히 저를 불쌍하게 보더라 구요.
측은하게 보는 그런 눈빛으로 제게 말을 하는데, '니는 뭐 술을 먹을 줄 아나, 담배를 피울 줄 아나, 그렇다고 뭐 여자들하고 같이 그렇게 뭐 재미있게 놀아나기를 하나!' 그래서 '나는 너를 보니까,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상당히 저를 보고 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렇게 보더라 구요. 속으로 '니나 잘해라!' 뭐 마음대로 사는 것 같은데요, 뭐 자기도 엉망이거든요. 그런데 도리어 저보고 불쌍한 것처럼, 술 못 먹고, 담배 못 피운다고, 또 여자들하고 놀아나지 않는다고, 그것 때문에 저를 불쌍한 시각으로 그렇게 바라본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인데, 제 위에 고참하고 저 대공초소에 근무를 하러 올라 갔더랬습니다. 올라가서 이제 여장을 풀고 잠시 쉬고있는데, 그 고참이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야, 술 할 줄 아나? 못합니다. 담배 피울 줄 아나? 못합니다. 여자하고 자봤나? 못 자봤습니다!' 그때에 고참이 하는 말이요, 딱 한마디 '자살하겠다!' 여러분 이게 군대 용어입니다. 이해를 하시고 들으십시오. 이게 군대에서는 하여튼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그러면 한심하다는 표현으로, '자살하겠네!' 그러는데, 지금 군에 들어오는 모든 젊은 동료들이 술 먹고, 담배하고, 여자들하고 난잡하게 그런 시간들을 가지죠. 그런데 전혀 술 못 먹죠, 담배 못하죠, 또 여자하고 안자봤다! 그러지, 이러니까 자살하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느냐?' 그 말이겠죠. 하여튼 이것들이 불신자들의 상식들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수많은 불신자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런 질문을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보셔야 됩니다. 여러분 진짜 여러분들이 믿음의 사람이 맞고, 잘 믿는 사람이라면, 불신자들이 봤을 때에, '야, 저것들 세상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여러분들이 믿음에 자리에 제대로 서야 됩니다. 함께 먹어주고, 함께 놀아주고, 함께 놀아나니까! 그런 말할 이유가 없죠. 여러분 세상살이 해 보셨지 않습니까! 함께 먹어주고, 입어주고, 놀아주면요, 전혀 그런 말이 없습니다. 함께 뭐 재미 좋은데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신앙에 순결을 지키고, 믿음으로 제대로 딱 무장을 하시면, 뭔가 불신자들이, '야, 저기는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혹시 들 수가 있어야지, 어떤 면에서 그게 잘 믿는 표시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했습니까?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분명히 성경은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이 말은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져라! 더 이상 세상에 들어가지 마라!' 그 말이 아닙니다. 구별하라는 말입니다. 너무 함께 먹고 마시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보니까, 예수 믿는 표시가 전혀 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을 본받지 마라!' 그 말은 구별되게 살아라! 함께 더불어 살되, 그렇지만 예수 믿는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나타나도록 제대로 하번 신앙생활 해봐라!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판결하도록 하라!
어떻습니까? 세상을 따라가자니 신앙 양심에 걸리고, 또 신앙 따라 가자니 세상 적으로 마음대로 놀 수가 없고, 갈등이 없습니까? 우리 특히 남자 분들은 상당한 갈등이 있습니다. 함께 먹어줘야 되는데, 함께 놀아 줘야 되는데, 그런데 뭔가 모르게 또 찜찜합니다. 또 그렇다고 완전히 Open을 하려고 하니까, 뭔가 또 신앙 양심에 걸리죠. 그러니까 이렇게도 안되고 저렇게도 안되고... 그래서 신앙생활이 제대로 안되면 어떤 면에서 이중고를 겪습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경질 나고 스트레스가 받히면, 마음껏 먹고 놀고, 고함 지르고, 그래 라도 되죠.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고민은 고민대로 합니다. 풀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여 가지고, 상당한 고통을 겪는 것이 지금 오늘날에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정신을 바짝 차리시고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성경에 보시면 인간상식, 세상상식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명령을 받아들은 이 아브라함이 히브리서 11장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떠나갔다' 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상식의 하나님께서 상식 없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상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상식의 하나님께서 상식 없는 명령을 아브라함에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전에도 제가 한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에 이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자기가 살던 고향을 떠나가면 죽습니다. 왜? 씨족단위, 부족단위로 그렇게 딱 맺혀져 있기 때문에, 만일 내 고향을 떠나가면 그 사회를 정복하던지, 반대로 정복을 당하던지! 이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아브라함이 아버님 모시고, 형님 모시고, 잘 살고 있습니다.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렇게 명령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집을 마련해 두고, '아브라함아 저쪽에 가면 기와집 같은 그런 큰 궁궐이 있다! 거기 가면 참 더 잘 살수 있다!' 그래가지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그래서 떠나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상식의 하나님께서 전혀 상식 없는 그런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네가 우상동네에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땅은 우상 동네입니다. 갈데아 우르! 이 지역은 우상을 만들어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는 그런 지역, 완전히 우상 바닥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아브라함이 살아 왔고, 또 살아간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상동네는 안 된다! 떠나가라!'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과정 속에서 뭔가 전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는 말이죠.
요한 복음 2장에 보십시오. 요한복음 2장에 보시면, 여러분 잘 아시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일어났던 엄청난 기적!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도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물이 포도주가 됩니까! 옛날에 과학 시간에 배워보셨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다는 것은 화학 변화입니다. 성분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그런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물이 변해서 포도주로 되었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래저래 상식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합니다. '내가 예수를 좀 믿고 싶어도, 교회 좀 다니고 싶어도 성격에 안 맞다! 전혀 인간 상식에 맞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보고, 어떻게 교회에 들어가겠느냐? 어떻게 믿겠느냐?' 그래가지고 상당히,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상식이 잘 통하는 천주교가 상당히 인기가 있습니다. 술도 먹으라고 하죠. 담배도 피우라고 하죠. 심지어는 제사도 지내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지금, 오늘날의 천주교가 상당히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 현대인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좋습니다. 왜? 상식이 통하니까요. 그런데 교회 들어오면 담배하지 마라고 그러지, 술도 먹지 마라 그러지, 싸우지 마라 그러지, 뭐 전부다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그래서 '교회는 너무 답답하다! 너무 꽉 막혔다!' 이래가지고 교회를 회피하는 이런 일들이 지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합니다. 그야말로 오늘은 이 상식에 맞지 않는 말들, 여러분 그런 위주로 지금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 이 본문에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그런 말씀을 합니다. 4절에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깊은 데로 가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 배경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자기 동료들과 함께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 약이 바짝 올라 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를 했으면 그래도 몇 마리는 건져야 되는데,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고 그랬습니다. 짜증이 나겠죠. 지금 신경질이 나 있습니다. 약이 지금 바짝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사실 예수님보다는 베드로가 바다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 이 베드로는 어릴 때부터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어디에 가면 고기가 많고, 어디에 가면 어떤 종류가 있고, 다 잘 압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이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라고 그럽니다. 여러분 이것은 상식적으로, 저도 여러분도 잘 압니다. 고기가 얕은 곳에 있습니까? 깊은 곳에 있습니까? 얕은 곳에 있죠. 또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그런 곳에 고기가 많습니다. 이 깊은 곳에는 고기가 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경험 많은 이 베드로에게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말을 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여러분들이 이런 제한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 지금 내 경험에 비추어보니까,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거절하겠죠. 저도 그때 그 상황이라면, 이런 예수님의 제한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베드로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5절에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되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가 뭐라고 고백을 했습니까? '밤이 되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너무 위대한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여러분 진짜로 우리의 신앙이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내 이치, 내 상식, 내 경험,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 만은 말씀이라면 따라갈 수 있는 자세! 여러분 이게 되어집니까? 여러분 우리는 늘 말씀, 믿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생기고 위기가 오면,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것으로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내 경험, 내 지식, 내 이치, 내 상식, 그런 수준으로 우리가 지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내 상식과 내 경험과는 맞지 않아도,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은 반드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에 맞게 자기의 상식, 또 자기의 모든 체험했던 그 경험, 다 던져버렸습니다. 단순하게 말씀으로 들어갔을 때에, 여기에 최고의 응답과 축복이 함께 따라 왔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상식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렸을 때에, 그때에 아브라함의 모든 대처방안! 그게 뭡니까? 창세기 12장 4절에 보십시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떠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위기가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준비된 그런 상태도 아닙니다. 상당히 불안합니다. 그런데 이런 명령을 받아들은 아브라함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말씀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이게 아브라함이 믿음에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답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릴리 가나에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그 기적이 일어났던 배경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던지, 그대로 하라!'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이죠. '분명히 예수님께서 너희들에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말씀을 할지라도 그대로 해라!' 여기에 물이 포도주가 되어오는 이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들은 말씀의 역사가 아니면 밤이 맞도록 수고합니다. 오늘 이 원리를 꼭 기억을 하십시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이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면, 반드시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엄청난 고통이 그 속에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의 상황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말씀을 붙잡지 못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요, 그야말로 수고하는 인생, 전혀 소득 없는 인생으로 그렇게 자꾸만 고통 속에 빠져갑니다. 혹시 입니다. 지금 뭔가가 안 되는 분들이 계십니까? 세상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다고 그렇게 느껴지십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없으면 엄청난 열심은 하는데, 그런데 더 큰 고통은 자꾸만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무엇 때문에 나오셨습니까? 결국에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 믿음! 이 믿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 믿음도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믿음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합니다. 여기 보시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떠났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에 아들의 칭함을 거절했다! 믿음으로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줬다! 믿음으로 누구누구는... 믿음으로 누구누구는... 그래서 전부 다가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렇게 말씀들을 쭉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말씀이라는 단어로 한번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며 순종했다! 말씀으로 모세는 바로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구나! 말씀으로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 줬구나! 무슨 말입니까? 말씀과 믿음은 같은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했다! 믿음에 순종했다! 사실은 똑같은 말입니다. 그만큼 이 말씀 자체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 말씀 자체가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복음에 핵심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 갈 때에 온전한 축복이 누려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말씀 속에 서 계십니까? 이 시간 지금 여러분들의 귀에 말씀이 들려 지십니까? 눈을 감으시면 안됩니다. 아무리 잠이 오셔도 아무리 피곤하셔도 이 순간만은 여러분들이 눈을 크게 뜨셔야 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말씀은 생명을 말합니다. 여러분 속에 지금 말씀이 들려 지십니까?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위치에 있어도 말씀이 귀에 들려지지 않으면, 여러분 속에 생명에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말씀 속에 있습니까? 삽니다! 말씀을 떠나가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죽느냐? 사느냐?' 가장 중요한 그 기로에 서 있는데, 우리가 말씀이 귀에 들려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도 죽고, 우리의 육도 죽고,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에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여러분 꿀이 달죠. 참 맛있습니다. 요즘은 뭐 꿀을 잘 안 먹습니다 만은, 옛날에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설탕도 좋았는데, 그 설탕은 다 뒷전에 물려 내어놓고, 꿀이 있으면 얼마나,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말씀에 의미를 이 꿀에 비유했습니다. '주의 말씀에 맛이 어찌 그리 내게 단지요. 내게 꿀보다 더 다니이다!' 우리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음식이 참 입에 맞고 맛있으면, '참, 달다!' 그러죠. 음식이 안 답니다. 사실은 안 단데, 그런데 달다는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음식이 그만큼 맛있고 입에 맞다는 말이죠. 좀 속된 말로 '입에 쫙 쫙 달라붙는다!'고 말하죠. 그만큼 맛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맛있습니까? 여러분의 입술에 쫙 쫙 달라붙을 정도로 그렇게 말씀이 사모가 되어 지십니까?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 듣는 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드십니까? 말씀 듣는 한 30분 자체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듭니까! TV 연속극 있을 때는 2시간, 3시간 봅니다. 그런데 말씀 듣는 30분은 견디지를 못합니다. 온 전신이 쑤시고, 어쩌다가 목사님 설교가 한 5분 정도 길어지면 막 신경질이 일어나고,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말씀 속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모든 것 투자를 합니다. 심지어는 몇 일 밤을 지새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육적으로는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만은, 영적으로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베드로의 고백을 보면서 참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인생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인생들입니다. 이렇게 수고를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 큰 것을 손에 쥐었습니까? 여러분들이 수고하고, 노력하고, 투자를 해 가지고 엄청난 것을 얻었습니까?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는데, 지금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게 지금 베드로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 TV를 봤습니다. '동물에 세계'인데요. 암사자 한 마리가 열심히 사냥을 했습니다. 사냥을 해 가지고 소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얼마나 신났겠습니까! 먹으려고 하는데, 그때에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가 나타났습니다. 빙빙 돌아가면서 이 먹지 못하도록 그렇게 방해를 하더라 구요. 그래서 막 그것들하고 실랑이를 벌이면서 막 쫓아내고, 그런 와중에 독수리 떼가 하늘 위에 모여있습니다. 빙빙 돌아가면서 또 먹지 못하도록... 그 독수를 쫓아내는 사이에 수사자 한 마리가 와 가지고 그걸 덥석 집어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하는 이 수 사자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는 이 암사자! 멍하더라 구요.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을힘을 다 해 가지고 그 먹이를 잡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빼앗겨버렸습니다. 얼마나 허탈합니까! 이게 우리 인생들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열심히 투자를 하고,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그렇게 투자를 해 놓았는데, 그런데 지금 손에 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돈 몇 푼에... 천만입니다. 지금 우리 인생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인생들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들이 죽자 사자 젊었을 때에 있는 힘을 다해서 돈을 법니다. 그런데 조금 크고 나면 아들한테 빼앗깁니다. 딸한테 빼앗깁니다. 심지어는 시집간 딸이 와서 또 빼앗아 갑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좀 숨겨 놓더라 구요. 좀 괜찮습니다 만은, 어쨌든 다 빼앗아 갑니다. 남는 게 없습니다.
이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는데, 얻은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때 베드로가 말씀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잡는 순간,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6절에 보십시오. "그리한즉" 이 그리한즉 하는 말은, 예수님께 순종했다는 말이죠. 이때에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참 멋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해 가지고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그물을 내렸을 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배가 완전히 파선될 정도로 그만한 엄청난 역사가 이 속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기적과 역사들, 그런 응답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시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는 역사보다도 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에 베드로가 엄청난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말씀에 순종하는 그 순간에 지금까지 몰랐던 위대한 사실이 발견되어 집니다. 그 내용이 결론적으로 있습니다. 8절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그러니까, 막 고기가 잡히고, 배가 막 빠지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참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고기가 잡히고, 역사가 일어난 그 순간에 베드로가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장에 예수님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무슨 말이냐? 지금까지 자기의 모든 경험을 완전히 땅에 지금 내려놓았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발견했습니까?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는 말입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지금 왜 베드로가 예수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지금까지 몰랐던 위대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는 말이죠. 마태복음 16장 16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엄청난 사실! 다시 말씀드리면, 모든 만물에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베드로가 발견합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당장에 고기를 많이 잡았다! 그물이 찢어졌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큰 발견이 무엇입니까? 만물에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인생의 모든 주인 되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계십니다.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만 오늘 제대로 발견하시면 수 십억을 번 것보다도 여러분들은 더 큰 횡재를 만났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가 발견되어 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바로 뒤에 뭐라고 했습니까? "(눅 5:8)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함과 동시에 두 번째 발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을 주장했고, 노력을 주장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나는 아무런 존재가 아닙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그런 고백을 합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때에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들이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은혜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발견됨과 동시에 내 자신이 발견되어 집니다. 그 속에 엄청난 은혜의 역사가 임했다는 말이죠. 여기에 생명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꼭 그리스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발견하십시오. 이게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되니까, 또 하나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10절에 보십시오.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이제 역사가 일어나니까, 놀랐죠. 그때에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사명 발견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발견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또 뭐가 발견되어집니까? 사명입니다. 사명! '지금까지는 네가 고기를 낚았지 만은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완전한 사명이죠.
그래서 오늘 이 세 가지는 항상 따라다닙니다. 전혀 그리스도를 모르는데, 내가 사명 발견할 수 있습니까? 내 자신도 모르는데,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안되거든요. 첫째는 먼저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지고, 두 번째로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이냐?' 이걸 깨닫게 되고, 그때에 더불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명이 그 속에 발견됩니다.
여러분 참 좋습니다. 오늘 말씀에 순종하고 나니까, 네 가지 축복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힙니다. 육신의 축복이죠.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졌습니다. 세 번째는 내 자신도 발견되어졌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사명도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면요. 횡재를 얻습니다. 횡재를! 좀 제가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죠. 여러분 무슨 뜻인지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말씀에 제대로 들어오시면 엄청난 역사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죽도록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내가 노력해서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수고하고, 내가 노력하고, 내가 투자하고, 그래서 사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신앙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 하셔야 됩니다. 주님께서 찾아 오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십시오. 내 힘, 내 경험, 내 노력, 전부다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따라 가십시오. 그리스도를 따라 갈 때에, 여기에 모든 축복들이 여러분의 삶에 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따라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이와 동시에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상식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를 떠나라는 상식 없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상식 밖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부의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경험이나 상식 밖의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본론
1. 우리의 신앙이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1)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는 위대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2) 나의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아도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3)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은 내 상식과 경험과는 맞지 않아도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4) 그 때 최고의 응답과 축복이 따릅니다.
(5)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 순종하였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6) 가나의 혼인 잔치에 일어났던 기적도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 말씀을 듣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1) 말씀 속에 생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말씀을 떠나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습니다.
(4) 우리 인생은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고통이 찾아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5)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모든 상황이 변화되는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3. 말씀에 순종할 때, 놀라운 축복을 받고 위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할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육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 베드로는 기적을 체험했을 때, 만물의 주인이신 위대한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2) 베드로는 또한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죄인일 뿐임을 발견하였습니다.
(3) 베드로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 결론
나 자신의 힘, 경험, 노력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 기도제목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나의 생각이나 고집을 내려놓고, 말씀 속에서 세밀히 인도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눅 5: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되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눅 5: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눅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눅 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상당히 많은 갈등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과, 또 우리 하나님 말씀이 증거 하는 내용들이 뭔가 이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이 부합되지 않았을 때에, 여기에는 상당한 혼란과 갈등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흔히 그런 말들을 합니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히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거짓말도, 또 술, 담배도 못하고, 그래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느냐?'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는, 뭐 사업을 할 때는,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둘러대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함께 먹어주고, 함께 그렇게 놀아주고, 이게 되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게 안되면 사회생활이 전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주장하는 것이 뭐냐하면, '참, 예수 믿는 사람들 답답하다! 술자리에 옳게 같이 안 하죠, 함께 먹지 않죠, 함께 놀아주지 않죠!' 그러니까 불신자들의 그런 시각으로 봤을 때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상당히 답답하고 불쌍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제게도 불신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한번은 그 친구가 저를 보고 그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야, 니는 무슨 재미로 사노!' 상당히 저를 불쌍하게 보더라 구요.
측은하게 보는 그런 눈빛으로 제게 말을 하는데, '니는 뭐 술을 먹을 줄 아나, 담배를 피울 줄 아나, 그렇다고 뭐 여자들하고 같이 그렇게 뭐 재미있게 놀아나기를 하나!' 그래서 '나는 너를 보니까,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상당히 저를 보고 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렇게 보더라 구요. 속으로 '니나 잘해라!' 뭐 마음대로 사는 것 같은데요, 뭐 자기도 엉망이거든요. 그런데 도리어 저보고 불쌍한 것처럼, 술 못 먹고, 담배 못 피운다고, 또 여자들하고 놀아나지 않는다고, 그것 때문에 저를 불쌍한 시각으로 그렇게 바라본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인데, 제 위에 고참하고 저 대공초소에 근무를 하러 올라 갔더랬습니다. 올라가서 이제 여장을 풀고 잠시 쉬고있는데, 그 고참이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야, 술 할 줄 아나? 못합니다. 담배 피울 줄 아나? 못합니다. 여자하고 자봤나? 못 자봤습니다!' 그때에 고참이 하는 말이요, 딱 한마디 '자살하겠다!' 여러분 이게 군대 용어입니다. 이해를 하시고 들으십시오. 이게 군대에서는 하여튼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그러면 한심하다는 표현으로, '자살하겠네!' 그러는데, 지금 군에 들어오는 모든 젊은 동료들이 술 먹고, 담배하고, 여자들하고 난잡하게 그런 시간들을 가지죠. 그런데 전혀 술 못 먹죠, 담배 못하죠, 또 여자하고 안자봤다! 그러지, 이러니까 자살하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느냐?' 그 말이겠죠. 하여튼 이것들이 불신자들의 상식들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수많은 불신자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런 질문을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보셔야 됩니다. 여러분 진짜 여러분들이 믿음의 사람이 맞고, 잘 믿는 사람이라면, 불신자들이 봤을 때에, '야, 저것들 세상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여러분들이 믿음에 자리에 제대로 서야 됩니다. 함께 먹어주고, 함께 놀아주고, 함께 놀아나니까! 그런 말할 이유가 없죠. 여러분 세상살이 해 보셨지 않습니까! 함께 먹어주고, 입어주고, 놀아주면요, 전혀 그런 말이 없습니다. 함께 뭐 재미 좋은데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신앙에 순결을 지키고, 믿음으로 제대로 딱 무장을 하시면, 뭔가 불신자들이, '야, 저기는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혹시 들 수가 있어야지, 어떤 면에서 그게 잘 믿는 표시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했습니까?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분명히 성경은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이 말은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져라! 더 이상 세상에 들어가지 마라!' 그 말이 아닙니다. 구별하라는 말입니다. 너무 함께 먹고 마시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보니까, 예수 믿는 표시가 전혀 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을 본받지 마라!' 그 말은 구별되게 살아라! 함께 더불어 살되, 그렇지만 예수 믿는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나타나도록 제대로 하번 신앙생활 해봐라!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판결하도록 하라!
어떻습니까? 세상을 따라가자니 신앙 양심에 걸리고, 또 신앙 따라 가자니 세상 적으로 마음대로 놀 수가 없고, 갈등이 없습니까? 우리 특히 남자 분들은 상당한 갈등이 있습니다. 함께 먹어줘야 되는데, 함께 놀아 줘야 되는데, 그런데 뭔가 모르게 또 찜찜합니다. 또 그렇다고 완전히 Open을 하려고 하니까, 뭔가 또 신앙 양심에 걸리죠. 그러니까 이렇게도 안되고 저렇게도 안되고... 그래서 신앙생활이 제대로 안되면 어떤 면에서 이중고를 겪습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경질 나고 스트레스가 받히면, 마음껏 먹고 놀고, 고함 지르고, 그래 라도 되죠.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고민은 고민대로 합니다. 풀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여 가지고, 상당한 고통을 겪는 것이 지금 오늘날에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정신을 바짝 차리시고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성경에 보시면 인간상식, 세상상식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명령을 받아들은 이 아브라함이 히브리서 11장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떠나갔다' 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상식의 하나님께서 상식 없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상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상식의 하나님께서 상식 없는 명령을 아브라함에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전에도 제가 한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에 이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자기가 살던 고향을 떠나가면 죽습니다. 왜? 씨족단위, 부족단위로 그렇게 딱 맺혀져 있기 때문에, 만일 내 고향을 떠나가면 그 사회를 정복하던지, 반대로 정복을 당하던지! 이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아브라함이 아버님 모시고, 형님 모시고, 잘 살고 있습니다.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렇게 명령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집을 마련해 두고, '아브라함아 저쪽에 가면 기와집 같은 그런 큰 궁궐이 있다! 거기 가면 참 더 잘 살수 있다!' 그래가지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그래서 떠나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상식의 하나님께서 전혀 상식 없는 그런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네가 우상동네에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땅은 우상 동네입니다. 갈데아 우르! 이 지역은 우상을 만들어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는 그런 지역, 완전히 우상 바닥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아브라함이 살아 왔고, 또 살아간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상동네는 안 된다! 떠나가라!'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과정 속에서 뭔가 전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는 말이죠.
요한 복음 2장에 보십시오. 요한복음 2장에 보시면, 여러분 잘 아시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일어났던 엄청난 기적!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도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물이 포도주가 됩니까! 옛날에 과학 시간에 배워보셨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다는 것은 화학 변화입니다. 성분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그런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물이 변해서 포도주로 되었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래저래 상식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합니다. '내가 예수를 좀 믿고 싶어도, 교회 좀 다니고 싶어도 성격에 안 맞다! 전혀 인간 상식에 맞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보고, 어떻게 교회에 들어가겠느냐? 어떻게 믿겠느냐?' 그래가지고 상당히,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상식이 잘 통하는 천주교가 상당히 인기가 있습니다. 술도 먹으라고 하죠. 담배도 피우라고 하죠. 심지어는 제사도 지내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지금, 오늘날의 천주교가 상당히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 현대인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좋습니다. 왜? 상식이 통하니까요. 그런데 교회 들어오면 담배하지 마라고 그러지, 술도 먹지 마라 그러지, 싸우지 마라 그러지, 뭐 전부다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그래서 '교회는 너무 답답하다! 너무 꽉 막혔다!' 이래가지고 교회를 회피하는 이런 일들이 지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합니다. 그야말로 오늘은 이 상식에 맞지 않는 말들, 여러분 그런 위주로 지금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 이 본문에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그런 말씀을 합니다. 4절에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깊은 데로 가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 배경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자기 동료들과 함께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 약이 바짝 올라 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를 했으면 그래도 몇 마리는 건져야 되는데,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고 그랬습니다. 짜증이 나겠죠. 지금 신경질이 나 있습니다. 약이 지금 바짝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사실 예수님보다는 베드로가 바다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 이 베드로는 어릴 때부터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어디에 가면 고기가 많고, 어디에 가면 어떤 종류가 있고, 다 잘 압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이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라고 그럽니다. 여러분 이것은 상식적으로, 저도 여러분도 잘 압니다. 고기가 얕은 곳에 있습니까? 깊은 곳에 있습니까? 얕은 곳에 있죠. 또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그런 곳에 고기가 많습니다. 이 깊은 곳에는 고기가 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경험 많은 이 베드로에게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말을 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여러분들이 이런 제한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 지금 내 경험에 비추어보니까,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거절하겠죠. 저도 그때 그 상황이라면, 이런 예수님의 제한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베드로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5절에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되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가 뭐라고 고백을 했습니까? '밤이 되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너무 위대한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여러분 진짜로 우리의 신앙이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내 이치, 내 상식, 내 경험,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 만은 말씀이라면 따라갈 수 있는 자세! 여러분 이게 되어집니까? 여러분 우리는 늘 말씀, 믿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생기고 위기가 오면,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것으로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내 경험, 내 지식, 내 이치, 내 상식, 그런 수준으로 우리가 지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내 상식과 내 경험과는 맞지 않아도,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은 반드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에 맞게 자기의 상식, 또 자기의 모든 체험했던 그 경험, 다 던져버렸습니다. 단순하게 말씀으로 들어갔을 때에, 여기에 최고의 응답과 축복이 함께 따라 왔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상식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렸을 때에, 그때에 아브라함의 모든 대처방안! 그게 뭡니까? 창세기 12장 4절에 보십시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떠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위기가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준비된 그런 상태도 아닙니다. 상당히 불안합니다. 그런데 이런 명령을 받아들은 아브라함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말씀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이게 아브라함이 믿음에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답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릴리 가나에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그 기적이 일어났던 배경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던지, 그대로 하라!'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이죠. '분명히 예수님께서 너희들에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말씀을 할지라도 그대로 해라!' 여기에 물이 포도주가 되어오는 이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들은 말씀의 역사가 아니면 밤이 맞도록 수고합니다. 오늘 이 원리를 꼭 기억을 하십시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이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면, 반드시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엄청난 고통이 그 속에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의 상황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말씀을 붙잡지 못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요, 그야말로 수고하는 인생, 전혀 소득 없는 인생으로 그렇게 자꾸만 고통 속에 빠져갑니다. 혹시 입니다. 지금 뭔가가 안 되는 분들이 계십니까? 세상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다고 그렇게 느껴지십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없으면 엄청난 열심은 하는데, 그런데 더 큰 고통은 자꾸만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무엇 때문에 나오셨습니까? 결국에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 믿음! 이 믿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 믿음도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믿음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합니다. 여기 보시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떠났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에 아들의 칭함을 거절했다! 믿음으로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줬다! 믿음으로 누구누구는... 믿음으로 누구누구는... 그래서 전부 다가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렇게 말씀들을 쭉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말씀이라는 단어로 한번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며 순종했다! 말씀으로 모세는 바로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구나! 말씀으로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 줬구나! 무슨 말입니까? 말씀과 믿음은 같은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했다! 믿음에 순종했다! 사실은 똑같은 말입니다. 그만큼 이 말씀 자체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 말씀 자체가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복음에 핵심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 갈 때에 온전한 축복이 누려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말씀 속에 서 계십니까? 이 시간 지금 여러분들의 귀에 말씀이 들려 지십니까? 눈을 감으시면 안됩니다. 아무리 잠이 오셔도 아무리 피곤하셔도 이 순간만은 여러분들이 눈을 크게 뜨셔야 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말씀은 생명을 말합니다. 여러분 속에 지금 말씀이 들려 지십니까?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위치에 있어도 말씀이 귀에 들려지지 않으면, 여러분 속에 생명에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말씀 속에 있습니까? 삽니다! 말씀을 떠나가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죽느냐? 사느냐?' 가장 중요한 그 기로에 서 있는데, 우리가 말씀이 귀에 들려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도 죽고, 우리의 육도 죽고,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에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여러분 꿀이 달죠. 참 맛있습니다. 요즘은 뭐 꿀을 잘 안 먹습니다 만은, 옛날에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설탕도 좋았는데, 그 설탕은 다 뒷전에 물려 내어놓고, 꿀이 있으면 얼마나,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말씀에 의미를 이 꿀에 비유했습니다. '주의 말씀에 맛이 어찌 그리 내게 단지요. 내게 꿀보다 더 다니이다!' 우리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음식이 참 입에 맞고 맛있으면, '참, 달다!' 그러죠. 음식이 안 답니다. 사실은 안 단데, 그런데 달다는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음식이 그만큼 맛있고 입에 맞다는 말이죠. 좀 속된 말로 '입에 쫙 쫙 달라붙는다!'고 말하죠. 그만큼 맛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맛있습니까? 여러분의 입술에 쫙 쫙 달라붙을 정도로 그렇게 말씀이 사모가 되어 지십니까?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 듣는 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드십니까? 말씀 듣는 한 30분 자체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듭니까! TV 연속극 있을 때는 2시간, 3시간 봅니다. 그런데 말씀 듣는 30분은 견디지를 못합니다. 온 전신이 쑤시고, 어쩌다가 목사님 설교가 한 5분 정도 길어지면 막 신경질이 일어나고,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말씀 속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모든 것 투자를 합니다. 심지어는 몇 일 밤을 지새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육적으로는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만은, 영적으로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베드로의 고백을 보면서 참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인생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인생들입니다. 이렇게 수고를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 큰 것을 손에 쥐었습니까? 여러분들이 수고하고, 노력하고, 투자를 해 가지고 엄청난 것을 얻었습니까?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는데, 지금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게 지금 베드로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 TV를 봤습니다. '동물에 세계'인데요. 암사자 한 마리가 열심히 사냥을 했습니다. 사냥을 해 가지고 소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얼마나 신났겠습니까! 먹으려고 하는데, 그때에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가 나타났습니다. 빙빙 돌아가면서 이 먹지 못하도록 그렇게 방해를 하더라 구요. 그래서 막 그것들하고 실랑이를 벌이면서 막 쫓아내고, 그런 와중에 독수리 떼가 하늘 위에 모여있습니다. 빙빙 돌아가면서 또 먹지 못하도록... 그 독수를 쫓아내는 사이에 수사자 한 마리가 와 가지고 그걸 덥석 집어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하는 이 수 사자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는 이 암사자! 멍하더라 구요.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을힘을 다 해 가지고 그 먹이를 잡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빼앗겨버렸습니다. 얼마나 허탈합니까! 이게 우리 인생들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열심히 투자를 하고,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그렇게 투자를 해 놓았는데, 그런데 지금 손에 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돈 몇 푼에... 천만입니다. 지금 우리 인생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인생들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들이 죽자 사자 젊었을 때에 있는 힘을 다해서 돈을 법니다. 그런데 조금 크고 나면 아들한테 빼앗깁니다. 딸한테 빼앗깁니다. 심지어는 시집간 딸이 와서 또 빼앗아 갑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좀 숨겨 놓더라 구요. 좀 괜찮습니다 만은, 어쨌든 다 빼앗아 갑니다. 남는 게 없습니다.
이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밤새도록 수고했는데, 얻은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때 베드로가 말씀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을 붙잡는 순간,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6절에 보십시오. "그리한즉" 이 그리한즉 하는 말은, 예수님께 순종했다는 말이죠. 이때에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참 멋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해 가지고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그물을 내렸을 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배가 완전히 파선될 정도로 그만한 엄청난 역사가 이 속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기적과 역사들, 그런 응답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시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는 역사보다도 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에 베드로가 엄청난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말씀에 순종하는 그 순간에 지금까지 몰랐던 위대한 사실이 발견되어 집니다. 그 내용이 결론적으로 있습니다. 8절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그러니까, 막 고기가 잡히고, 배가 막 빠지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참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고기가 잡히고, 역사가 일어난 그 순간에 베드로가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장에 예수님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무슨 말이냐? 지금까지 자기의 모든 경험을 완전히 땅에 지금 내려놓았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발견했습니까?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는 말입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지금 왜 베드로가 예수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지금까지 몰랐던 위대한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는 말이죠. 마태복음 16장 16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엄청난 사실! 다시 말씀드리면, 모든 만물에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베드로가 발견합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당장에 고기를 많이 잡았다! 그물이 찢어졌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큰 발견이 무엇입니까? 만물에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인생의 모든 주인 되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계십니다.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만 오늘 제대로 발견하시면 수 십억을 번 것보다도 여러분들은 더 큰 횡재를 만났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가 발견되어 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바로 뒤에 뭐라고 했습니까? "(눅 5:8)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함과 동시에 두 번째 발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을 주장했고, 노력을 주장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나는 아무런 존재가 아닙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그런 고백을 합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때에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들이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은혜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발견됨과 동시에 내 자신이 발견되어 집니다. 그 속에 엄청난 은혜의 역사가 임했다는 말이죠. 여기에 생명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꼭 그리스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발견하십시오. 이게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되니까, 또 하나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10절에 보십시오.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이제 역사가 일어나니까, 놀랐죠. 그때에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사명 발견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발견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또 뭐가 발견되어집니까? 사명입니다. 사명! '지금까지는 네가 고기를 낚았지 만은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완전한 사명이죠.
그래서 오늘 이 세 가지는 항상 따라다닙니다. 전혀 그리스도를 모르는데, 내가 사명 발견할 수 있습니까? 내 자신도 모르는데,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안되거든요. 첫째는 먼저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지고, 두 번째로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이냐?' 이걸 깨닫게 되고, 그때에 더불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명이 그 속에 발견됩니다.
여러분 참 좋습니다. 오늘 말씀에 순종하고 나니까, 네 가지 축복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힙니다. 육신의 축복이죠.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졌습니다. 세 번째는 내 자신도 발견되어졌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사명도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면요. 횡재를 얻습니다. 횡재를! 좀 제가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죠. 여러분 무슨 뜻인지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말씀에 제대로 들어오시면 엄청난 역사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죽도록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내가 노력해서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수고하고, 내가 노력하고, 내가 투자하고, 그래서 사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신앙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 하셔야 됩니다. 주님께서 찾아 오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십시오. 내 힘, 내 경험, 내 노력, 전부다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따라 가십시오. 그리스도를 따라 갈 때에, 여기에 모든 축복들이 여러분의 삶에 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따라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이와 동시에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상식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를 떠나라는 상식 없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상식 밖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부의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경험이나 상식 밖의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본론
1. 우리의 신앙이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1)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는 위대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2) 나의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아도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3)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은 내 상식과 경험과는 맞지 않아도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4) 그 때 최고의 응답과 축복이 따릅니다.
(5)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 순종하였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6) 가나의 혼인 잔치에 일어났던 기적도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 말씀을 듣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1) 말씀 속에 생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말씀을 떠나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습니다.
(4) 우리 인생은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고통이 찾아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5)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모든 상황이 변화되는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3. 말씀에 순종할 때, 놀라운 축복을 받고 위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할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육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 베드로는 기적을 체험했을 때, 만물의 주인이신 위대한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2) 베드로는 또한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죄인일 뿐임을 발견하였습니다.
(3) 베드로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 결론
나 자신의 힘, 경험, 노력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 기도제목
나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나의 생각이나 고집을 내려놓고, 말씀 속에서 세밀히 인도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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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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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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