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구라 하느냐?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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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 질문이다!' 그렇게 제목을, 다른 말로 말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역시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두 가지 사람에게, 두 종류의 사람에게 하셨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첫 번째는 16장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 다음에 16장 15절에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첫 번째 질문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제목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말은 안 믿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두 번째는 그러면 '믿는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너희는 나른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이 두 번째 질문입니다. '위대한 두 가지 질문이다!' 그렇게도 붙여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가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럴 때에 '주는 메시아입니다!' 그리스도시다라는 말은, '주는 메시아입니다!' 그 말은, '나의 생명이요, 나의 주인이시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당신은 메시아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입니다!' 하는 말속에서 또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께서 특별히 앞에,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거든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으로 서 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다니엘 서에 있는 사상입니다 만은, 그럴 때에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럴 때에, 이 베드로가 뭐라 그랬느냐?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 고백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두 가지,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서 있는 예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고, 또 믿는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다니엘서 7장 13절에 보면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예수님이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만은, 오늘 여기에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와 있는 사실을 예수께서 전제를 하시면서, 그러나 하나님으로 이 땅에 왔지만, 무슨 몸으로 왔어요? 완전한 사람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서 있는 나를 세상 사람들이 누구라 하느냐?' 그런 질문입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보면,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할렐루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신 그 질문 속에, 사람으로 서 있는 나를 인간의 아들로, 말하자면 마리아에게서 난, 열 달 동안 태 속에서 있던 동정녀에게서 난 나를 사람들이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고,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럴 때에 여기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이 16장 14절에 보면,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여기에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그 당시에 사람이신 예수님께 대해서 최대한의 존경과 높이는 이해를 여기에서 발표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실 것은, 여기에 나오는 더러는, 더러는 그러면서 견해가 각종 다른 견해를 나타내면서 말씀하시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람들은 최대한의 존경과, 그리고 높이는 생각으로, 호의적인 생각으로 대답을 한 것을 제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비평과 비난과, 또 사단의 왕이라고 하는 이런 어떤 비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 서민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이런 좋은 평판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 알아야 될 것이 뭐냐하면, 제자들이 이런 말할 때에, 그저 한 두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다니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악의 적인 비평이 아니고, 통속적인 서민들, 일반 그때 당시에 서민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평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듣고 있는 사실들을 말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절대로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될 것이,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오해할 때는 엄청난 분쟁이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유대인들이 알지 못했고,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 때에,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상당한 다툼과 분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오해를 비롯해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복음 11장 51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뭐라 그랬습니까?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진리를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그것은 사람사람 사이에 의견이 일치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교회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좋아하고, 아무리 예수님을 기뻐하고, 아무리 예수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모였다 할지라도, 예수를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진리로 바로알지 못하면 교회 안에는 이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분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 오늘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교회 분쟁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서 얼마나 엄청난 분쟁이 나왔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결과까지 왔느냐? 에베소 도적 회의 같은, 세계 적으로 참 그리스도인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이런... 길목을 지켜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때려죽이는 이런 엄청난 문제까지 있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오해 되어서, 바로 이해되지 않았을 때에 얼마나 많은 경우, 초대교회의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이해하고 깨닫는 전도자들에게 수많은 죽음과, 그리고 수많은 핍박을 가했던 사실이 역사의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중동 저쪽으로 가면 종교 분쟁이 바로 그런 분쟁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알지 못할 때에, 교회 안에서까지 분쟁이 나왔던 것이 바로 종교분쟁입니다. 그게 대표적으로 마호메트교와 그 다음에 이스라엘교가 서로 다투는 문제가 이 중동에 분쟁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물론 여러분과 제가, '세상이 하나 된다! 뭘 하나 된다!' 백번, 천 번 말해도 '교회가 하나 된다! 세상이 하나 된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진리로 하나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말세에,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라는 복음에 이해가 바로 안 되면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이점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참 진리로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는 점점, 점점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이런 문제가 역사요, 현실이요, 실제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점을 우리가 바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그 배경은 물론 진리를 알지 못할 때에, 진리의 반대는 비 진리입니다. 비 진리의 주관자가 사단의 배경이요. 진리의 주관자가 하나님의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간단한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엄청난 해결구도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좋게 이해한... 우리도 자칫 예수를 그리스도로, 정말로 하나님으로, 모든 문제 해결 자로, 지금 참 복음에 모든 문제의 핵이요, 중심인 사실이 이해가 안 될 때에 여러분도 저도 빠지는 배경이 다음에 문제들입니다. 좋게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결국 이런 문제에 빠지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뭐냐하면, 더러는 세례요한! 그러니까, 다 통일이 안 된다고 그랬거든요. 마땅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아무리 예수를 좋게 보려고 그래도, 이게 진리가 진리로 바로 보여 지지 않으면 이렇게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절에 보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뭐냐하면, 헤롯 대왕이 세례요한을 향해서 한 말입니다. 그리고 또 세례요한 이후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 하실 때에 헤롯에 대한 이해입니다. 뭐냐하면 '순교자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정말 생명을 내건 순교자다!' 이것은 사회 사람으로서는 최대의 존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를 말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한 구실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복음 떠나서는 참 된 정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가 TV토론을 가만히 들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다 맞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다 안 맞는 소리입니다! 언젠가는 그 결과를 보게 되겠습니다 만은, 결과를 보나마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맞고, 영원히 진리는 복음 이외에는 나올 것이 없어요.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만은, 다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뭐 경제문제, 혹은 수도 이전문제, 여러 가지 모든 문제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틀린 이야기가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노력을 한다 그래도 복음으로 하나가 안되어 있으면, 절대로 인간의견과 생각은 견해는 좋게 보려고 그래도 하나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하물며 교회 안에 복음 깨닫지 못하고, 복음이 그 교회의 주가 안되고, 복음이 중심이 안되고, 복음이 내 생에 전부 판단과 삶에 원천이 안 된다! 그러면, 근원적으로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어요. 가정도 똑같습니다. 복음으로 가정에 주가 안되어 있다면, 가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남편도 예수 그리스도 통해서 하나님 바라보게 되고, 아내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바라보고, 자식들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바라보고, 복음으로 가정에 하나가 안되어 있다 그러면, 가정은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길이 없어요. 그래서 말세에 여러 가지 모든 문제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은, 오늘 다른 불행이 아닙니다. 복음이 안되어 있고, 복음이 되어있다 그래도 내 가정과, 내 개인에게 구체적인 해답이 안되어 있습니다. 알기는 알아도 대강대강 알고 있고, 진짜로 알지 못한데서 나오는 불행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 이때 당시에는 순교자는 먼저 부활한다는 그런 개념이 유대 사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사회에 있었다는 것을 배경으로 이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죽은 그 영이 예수의 영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는 그런 배경입니다. 그 다음에 엘리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구약에 예언한 엘리야를 먼저 보낸다는 그런 성경에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래서 엘리야가 많은 기적을 이스라엘에 행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적을 행하고 계시니까, '엘리야다! 엘리야의 영이 이 땅에 예수로 오셨다!' 가장 아주 존경하는 견해입니다 만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요. 틀린 견해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레미야! 그랬습니다. 예레미야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눈물 흘리고, 너무 조국을 향해서 사랑했던 선지자입니다. 예수님도 중간 중간에 눈물 흘리고, 민족과 국가를 사랑한 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다!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선지자중 하나다! 그렇게 말씀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를 기대하기도 하고, 또 큰 선지자가 오기를 또 소원하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게 이해하고 있는 그런 중에서, 선지자! 이 '하나님께서 보내려고 하는 이스라엘에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하나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다 좋은 이야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들은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이해다!' 성경에 대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해다!' 그랬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께서 뭐라고 그랬느냐? '예수를 믿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에 중요한 말씀이, 제일 먼저 베드로가 한 말씀 아닙니까! 우리는 여기에 위대한 신앙의 고백이라고 하는데, 먼저 뭐라고 그랬느냐? '주님은 메시아입니다!' 이 고백입니다. 이 메시아라는 말은 뭐냐하면, 구약에 보내시려고 계획하신, 구약에 보통 선지자와 같은 그런 수준의 선지자가 아니고, 구약에 특별히 보내시려고 약속하신 예언된 메시아입니다. 바로 그 이야기거든요. '주는 그리스도 시요' 라는 말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과 메시아라는 말이 똑같은 언어입니다. 그래서 그 헬라말로 '크리스토스' 메시아다! 똑같이 히브리말로 메시아고, 그리스어로 '크리스토스' 입니다. 똑같은 말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삼 직을 가지고 보내실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이걸 깨닫습니까!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이 대답을 들으시고서 첫 번째 하신 것이,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뭐라 그랬어요? '네 지식이나 네 생각으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알에 하셨다!' 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오늘 새삼스럽게 이해되어야 될 것이, 아무리 여러분 스스로 지식이 있고, 지혜 있고, 아무리 대대로 예수 믿고 살았다 할지라도, 은혜 받지 않고서는 예수를... 구약이, 그리고 성경이 일찍이 예언한 '메시아!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을 죽었다 깨어도 못 깨닫는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어쩌다가 이 은혜와 축복을 깨달았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주는 그리스도 시다! 정말 믿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이 말의 고백이 그렇게 위대한 고백인 것을 이 깨달아야 됩니다.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하면서도 이것이 이 세상이 얼마나 위대한 고백인가 이걸 모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늘 우리가 듣는 이야기 아닙니까! '홍해가 갈라졌다!' 그보다도 더 몇 백, 몇 천 배 위대한 고백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이 메시아시구나!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시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 사실 자체가 위대한 기적입니다. 이 역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뭐가 나오느냐? 흑암 세력에 공격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가지고, '구원의 확신이다!' 자꾸 그렇게 말하는데, 다른 게 아닙니다.
여러분 '어쩌다가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게 되었느냐! 어쩌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내가 모시게 되었느냐! 어쩌다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고, 제사장으로 오시고, 선지자로 오셔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단의 손에서부터, 운명과 죄악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도저히 하나님을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길에서, 예수를 그리스도 만났느냐! 예수를 깨닫고, 예수를 통해서 내가 이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되었는가!' 하는 사실이 순간, 순간 이해 정도가 아니고, 감격이 되어야 됩니다. 정말 이 구원의 축복! 이 은혜의 축복! 뭐 꼭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가 그렇게 내게는 자유와 기쁨과 힘과 생명과 감격이 개개인에게 성령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괜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때에, 성령으로 나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구체적인 산 증거가 되는 증인의 역사로 임해야 됩니다. 매였던 마음과 생각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죽음과 멸망에서 해방되는 구체적인 해방의 역사요, 진리의 역사요, 힘의 역사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어져야 됩니다. 이해가 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체험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찬송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것이 깔려지지 못하면, 이런 것이 뿌리가 내리고, 이런 것이 기초가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뜻하심이 여러분 가슴과 여러분 생각에 이해가 되어질 수가 없죠. 그리고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그 말씀이 여러분 가슴과 마음속에 살아서, 그것이 붙들려 질 수가 없죠. 그래서 말씀은 항상 살아있고, 그 살아있는 말씀을 붙들고 나갈 때에, 말씀은 항상 기적과 역사를 동반해 나가는데, 이것이 내 생활과 삶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겁니다.
이런 표현을 또 들 수가 있습니다. '말씀은 살았다!' 그러면 '말씀은 죽는다는 말이냐?' 말씀을 들었을 때에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으면, 그 말씀이 내게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든다 그러면, '야, 점심 먹으러 가자!' 그러면 '그러면 나도 밥 먹어야 되니까 가자!' 같이 가면, 점심 먹으로 가자는 그 말은 그 사람에게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구체적으로 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말이 그에게는 힘이 되고, 구체적인 뭡니까? 점심을 먹게 되고, 힘을 얻게 되고, 또 모든 활동에 증거가 되는 거잖아요.
여러분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여러분이 선포할 때에, 그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역사는, 내가 그 말씀을 받고, 그 말씀가지고 현장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삶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성취가 되는 겁니다. 그게 역사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때에 말씀을 살아 운동력이 있다는 사실이 고백되어지는 겁니다. 말씀을 들었으나, 말씀이 와서 들려지지도 못합니다. 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뭐가 안되어요? 영이 같은 영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뭐가 안됩니까? 근본 예수 그리스도 그 생명의 원천이 다르기 때문에, '예수를 세례요한이다! 예수는 이 땅에 위대한 사람이다! 예수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정도로 끝나는 그런 삶에서는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생명과 능력으로 역사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간단한 말 같아도 강단에서 나오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그 말씀이, 내게 뜻이 되고, 생명이 되고, 힘이 되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임하게 될 때에, 한 주간에 삶 자체가 전부 힘이 됩니다! 자체가 전부 능력이 되는 겁니다! 역사가 되는 겁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성경이 원천적으로 '예수님 그분은 왕이요, 예수님 그분은 제사장이요, 예수님 그분은 선지자이시다! 흑암에 세력을 깨뜨리시고, 저주와 재앙에서 완전히 해결하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구체적인 길이시다!' 이 사실이 생명과 능력과 힘으로, 사실로 와 땋게 됩니다. 이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
것이 안 되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아, 맞아!' 그래도 문고리 잡고 나가는 순간에 흑암의 세력에 잡혀 버립니다! '잊어버린다!' 그 말입니다. 한 주간 말씀이 계속해서 기도의 제목으로 나온다는 말이 다른 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 말씀이 살아있어요. 그 말씀이 내게는 살아있습니다. 그 말씀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그 말씀이, 내가 내 마음속에서 그 말씀대로 성취되는 구체적인 뭐가 나옵니까? 사실이 나옵니다. 이 응답의 역사가 오늘 여러분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메시지 속에 구체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고,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과 여러분 스스로, '정말,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되어 있고, 이 고백이 사실적인 고백으로 내게 이루어지고 있느냐?' 이 사실이 오늘 확인되어야 됩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물음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에서 그쳐집니다. 예수님 존경해도 소용없습니다! 좋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높여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로 예수를 찬양해도 소용없습니다! 상관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메시아십니다! 예수님 그분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생명이십니다!'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영원한 해방이요. 영원 저주와 죽음과 멸망에서 완전한 해방이요. 승리의 이름이 되십니다. 모든 문제 해결 자로, 그 분의 이름이 여러분과 저의 가슴에 새겨지는 정도가 아니고, 현장에서 성취되는 이름으로 역사 하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예수님께서 두 번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나님의 자녀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본론
1.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1) 사람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대답했습니다.(14절)
(2) 사람들은 예수님께 최대한의 존경과 높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 그러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로 분쟁이 따랐습니다.
(4) 예수를 메시야로, 그리스도로, 진리로 알지 못하면 교회 안에서도 분쟁이 생깁니다.
(5) 세상이 하나되는 길은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밖에 없습니다.
(6)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되지 않으면, 인류의 역사에 분쟁이 끊일 수 없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각자 자신의 의견대로 주장하며 분쟁하게 됩니다.
(8)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으로 하나되지 않으면, 가정과 교회가 나누어지게 됩니다.
2.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1) 베드로는 '주님은 그리스도(메시야)입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16절)
(2)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약에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3) 베드로가 이것을 알게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4) 은혜를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5) 내가 '주는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대한 기적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참으로 이해되고 체험될 때, 구원의 축복에 감격할 수 있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말씀으로 선포될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현장에서 성취되는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 결론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진실로 나의 주와 메시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계속해서 마음 속에 붙잡음으로, 말씀이 현장에서 살아 역사하는 사실을 체험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기도제목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참으로 나를 구원하신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나의 주님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기를 간절히 소망하오니, 나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나의 참 자유와 능력이 되시는 주님을 내 삶의 현장 속에서 체험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마음껏 올려드리기를 소원합니다.
(마 16: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 질문이다!' 그렇게 제목을, 다른 말로 말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역시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두 가지 사람에게, 두 종류의 사람에게 하셨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첫 번째는 16장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 다음에 16장 15절에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첫 번째 질문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제목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말은 안 믿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두 번째는 그러면 '믿는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너희는 나른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이 두 번째 질문입니다. '위대한 두 가지 질문이다!' 그렇게도 붙여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가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럴 때에 '주는 메시아입니다!' 그리스도시다라는 말은, '주는 메시아입니다!' 그 말은, '나의 생명이요, 나의 주인이시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당신은 메시아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입니다!' 하는 말속에서 또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께서 특별히 앞에,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거든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으로 서 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다니엘 서에 있는 사상입니다 만은, 그럴 때에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럴 때에, 이 베드로가 뭐라 그랬느냐?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 고백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두 가지,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서 있는 예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고, 또 믿는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다니엘서 7장 13절에 보면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예수님이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만은, 오늘 여기에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와 있는 사실을 예수께서 전제를 하시면서, 그러나 하나님으로 이 땅에 왔지만, 무슨 몸으로 왔어요? 완전한 사람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서 있는 나를 세상 사람들이 누구라 하느냐?' 그런 질문입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보면,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할렐루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신 그 질문 속에, 사람으로 서 있는 나를 인간의 아들로, 말하자면 마리아에게서 난, 열 달 동안 태 속에서 있던 동정녀에게서 난 나를 사람들이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고,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럴 때에 여기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이 16장 14절에 보면,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여기에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그 당시에 사람이신 예수님께 대해서 최대한의 존경과 높이는 이해를 여기에서 발표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실 것은, 여기에 나오는 더러는, 더러는 그러면서 견해가 각종 다른 견해를 나타내면서 말씀하시는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람들은 최대한의 존경과, 그리고 높이는 생각으로, 호의적인 생각으로 대답을 한 것을 제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비평과 비난과, 또 사단의 왕이라고 하는 이런 어떤 비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 서민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이런 좋은 평판을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 알아야 될 것이 뭐냐하면, 제자들이 이런 말할 때에, 그저 한 두 사람의 말을 들은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다니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악의 적인 비평이 아니고, 통속적인 서민들, 일반 그때 당시에 서민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평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듣고 있는 사실들을 말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절대로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될 것이,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오해할 때는 엄청난 분쟁이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유대인들이 알지 못했고,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 때에,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상당한 다툼과 분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오해를 비롯해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복음 11장 51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뭐라 그랬습니까?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진리를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그것은 사람사람 사이에 의견이 일치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교회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좋아하고, 아무리 예수님을 기뻐하고, 아무리 예수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모였다 할지라도, 예수를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진리로 바로알지 못하면 교회 안에는 이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분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 오늘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교회 분쟁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서 얼마나 엄청난 분쟁이 나왔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결과까지 왔느냐? 에베소 도적 회의 같은, 세계 적으로 참 그리스도인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이런... 길목을 지켜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때려죽이는 이런 엄청난 문제까지 있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오해 되어서, 바로 이해되지 않았을 때에 얼마나 많은 경우, 초대교회의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이해하고 깨닫는 전도자들에게 수많은 죽음과, 그리고 수많은 핍박을 가했던 사실이 역사의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중동 저쪽으로 가면 종교 분쟁이 바로 그런 분쟁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알지 못할 때에, 교회 안에서까지 분쟁이 나왔던 것이 바로 종교분쟁입니다. 그게 대표적으로 마호메트교와 그 다음에 이스라엘교가 서로 다투는 문제가 이 중동에 분쟁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물론 여러분과 제가, '세상이 하나 된다! 뭘 하나 된다!' 백번, 천 번 말해도 '교회가 하나 된다! 세상이 하나 된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진리로 하나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말세에,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라는 복음에 이해가 바로 안 되면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이점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참 진리로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는 점점, 점점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이런 문제가 역사요, 현실이요, 실제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점을 우리가 바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그 배경은 물론 진리를 알지 못할 때에, 진리의 반대는 비 진리입니다. 비 진리의 주관자가 사단의 배경이요. 진리의 주관자가 하나님의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간단한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엄청난 해결구도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좋게 이해한... 우리도 자칫 예수를 그리스도로, 정말로 하나님으로, 모든 문제 해결 자로, 지금 참 복음에 모든 문제의 핵이요, 중심인 사실이 이해가 안 될 때에 여러분도 저도 빠지는 배경이 다음에 문제들입니다. 좋게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결국 이런 문제에 빠지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뭐냐하면, 더러는 세례요한! 그러니까, 다 통일이 안 된다고 그랬거든요. 마땅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아무리 예수를 좋게 보려고 그래도, 이게 진리가 진리로 바로 보여 지지 않으면 이렇게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절에 보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뭐냐하면, 헤롯 대왕이 세례요한을 향해서 한 말입니다. 그리고 또 세례요한 이후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 하실 때에 헤롯에 대한 이해입니다. 뭐냐하면 '순교자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정말 생명을 내건 순교자다!' 이것은 사회 사람으로서는 최대의 존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를 말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한 구실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복음 떠나서는 참 된 정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가 TV토론을 가만히 들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다 맞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다 안 맞는 소리입니다! 언젠가는 그 결과를 보게 되겠습니다 만은, 결과를 보나마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맞고, 영원히 진리는 복음 이외에는 나올 것이 없어요.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만은, 다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뭐 경제문제, 혹은 수도 이전문제, 여러 가지 모든 문제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틀린 이야기가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노력을 한다 그래도 복음으로 하나가 안되어 있으면, 절대로 인간의견과 생각은 견해는 좋게 보려고 그래도 하나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하물며 교회 안에 복음 깨닫지 못하고, 복음이 그 교회의 주가 안되고, 복음이 중심이 안되고, 복음이 내 생에 전부 판단과 삶에 원천이 안 된다! 그러면, 근원적으로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어요. 가정도 똑같습니다. 복음으로 가정에 주가 안되어 있다면, 가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남편도 예수 그리스도 통해서 하나님 바라보게 되고, 아내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바라보고, 자식들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바라보고, 복음으로 가정에 하나가 안되어 있다 그러면, 가정은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길이 없어요. 그래서 말세에 여러 가지 모든 문제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은, 오늘 다른 불행이 아닙니다. 복음이 안되어 있고, 복음이 되어있다 그래도 내 가정과, 내 개인에게 구체적인 해답이 안되어 있습니다. 알기는 알아도 대강대강 알고 있고, 진짜로 알지 못한데서 나오는 불행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 이때 당시에는 순교자는 먼저 부활한다는 그런 개념이 유대 사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사회에 있었다는 것을 배경으로 이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죽은 그 영이 예수의 영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는 그런 배경입니다. 그 다음에 엘리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구약에 예언한 엘리야를 먼저 보낸다는 그런 성경에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래서 엘리야가 많은 기적을 이스라엘에 행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적을 행하고 계시니까, '엘리야다! 엘리야의 영이 이 땅에 예수로 오셨다!' 가장 아주 존경하는 견해입니다 만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요. 틀린 견해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레미야! 그랬습니다. 예레미야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눈물 흘리고, 너무 조국을 향해서 사랑했던 선지자입니다. 예수님도 중간 중간에 눈물 흘리고, 민족과 국가를 사랑한 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다!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선지자중 하나다! 그렇게 말씀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를 기대하기도 하고, 또 큰 선지자가 오기를 또 소원하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게 이해하고 있는 그런 중에서, 선지자! 이 '하나님께서 보내려고 하는 이스라엘에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하나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다 좋은 이야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들은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이해다!' 성경에 대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해다!' 그랬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께서 뭐라고 그랬느냐? '예수를 믿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에 중요한 말씀이, 제일 먼저 베드로가 한 말씀 아닙니까! 우리는 여기에 위대한 신앙의 고백이라고 하는데, 먼저 뭐라고 그랬느냐? '주님은 메시아입니다!' 이 고백입니다. 이 메시아라는 말은 뭐냐하면, 구약에 보내시려고 계획하신, 구약에 보통 선지자와 같은 그런 수준의 선지자가 아니고, 구약에 특별히 보내시려고 약속하신 예언된 메시아입니다. 바로 그 이야기거든요. '주는 그리스도 시요' 라는 말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과 메시아라는 말이 똑같은 언어입니다. 그래서 그 헬라말로 '크리스토스' 메시아다! 똑같이 히브리말로 메시아고, 그리스어로 '크리스토스' 입니다. 똑같은 말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삼 직을 가지고 보내실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이걸 깨닫습니까!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이 대답을 들으시고서 첫 번째 하신 것이,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뭐라 그랬어요? '네 지식이나 네 생각으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알에 하셨다!' 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오늘 새삼스럽게 이해되어야 될 것이, 아무리 여러분 스스로 지식이 있고, 지혜 있고, 아무리 대대로 예수 믿고 살았다 할지라도, 은혜 받지 않고서는 예수를... 구약이, 그리고 성경이 일찍이 예언한 '메시아!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을 죽었다 깨어도 못 깨닫는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어쩌다가 이 은혜와 축복을 깨달았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주는 그리스도 시다! 정말 믿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이 말의 고백이 그렇게 위대한 고백인 것을 이 깨달아야 됩니다.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하면서도 이것이 이 세상이 얼마나 위대한 고백인가 이걸 모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늘 우리가 듣는 이야기 아닙니까! '홍해가 갈라졌다!' 그보다도 더 몇 백, 몇 천 배 위대한 고백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이 메시아시구나!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시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 사실 자체가 위대한 기적입니다. 이 역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뭐가 나오느냐? 흑암 세력에 공격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가지고, '구원의 확신이다!' 자꾸 그렇게 말하는데, 다른 게 아닙니다.
여러분 '어쩌다가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게 되었느냐! 어쩌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내가 모시게 되었느냐! 어쩌다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고, 제사장으로 오시고, 선지자로 오셔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단의 손에서부터, 운명과 죄악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도저히 하나님을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길에서, 예수를 그리스도 만났느냐! 예수를 깨닫고, 예수를 통해서 내가 이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되었는가!' 하는 사실이 순간, 순간 이해 정도가 아니고, 감격이 되어야 됩니다. 정말 이 구원의 축복! 이 은혜의 축복! 뭐 꼭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가 그렇게 내게는 자유와 기쁨과 힘과 생명과 감격이 개개인에게 성령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괜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때에, 성령으로 나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구체적인 산 증거가 되는 증인의 역사로 임해야 됩니다. 매였던 마음과 생각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죽음과 멸망에서 해방되는 구체적인 해방의 역사요, 진리의 역사요, 힘의 역사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어져야 됩니다. 이해가 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체험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찬송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것이 깔려지지 못하면, 이런 것이 뿌리가 내리고, 이런 것이 기초가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뜻하심이 여러분 가슴과 여러분 생각에 이해가 되어질 수가 없죠. 그리고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그 말씀이 여러분 가슴과 마음속에 살아서, 그것이 붙들려 질 수가 없죠. 그래서 말씀은 항상 살아있고, 그 살아있는 말씀을 붙들고 나갈 때에, 말씀은 항상 기적과 역사를 동반해 나가는데, 이것이 내 생활과 삶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겁니다.
이런 표현을 또 들 수가 있습니다. '말씀은 살았다!' 그러면 '말씀은 죽는다는 말이냐?' 말씀을 들었을 때에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으면, 그 말씀이 내게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든다 그러면, '야, 점심 먹으러 가자!' 그러면 '그러면 나도 밥 먹어야 되니까 가자!' 같이 가면, 점심 먹으로 가자는 그 말은 그 사람에게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구체적으로 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말이 그에게는 힘이 되고, 구체적인 뭡니까? 점심을 먹게 되고, 힘을 얻게 되고, 또 모든 활동에 증거가 되는 거잖아요.
여러분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여러분이 선포할 때에, 그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역사는, 내가 그 말씀을 받고, 그 말씀가지고 현장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삶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성취가 되는 겁니다. 그게 역사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때에 말씀을 살아 운동력이 있다는 사실이 고백되어지는 겁니다. 말씀을 들었으나, 말씀이 와서 들려지지도 못합니다. 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뭐가 안되어요? 영이 같은 영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뭐가 안됩니까? 근본 예수 그리스도 그 생명의 원천이 다르기 때문에, '예수를 세례요한이다! 예수는 이 땅에 위대한 사람이다! 예수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정도로 끝나는 그런 삶에서는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생명과 능력으로 역사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간단한 말 같아도 강단에서 나오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그 말씀이, 내게 뜻이 되고, 생명이 되고, 힘이 되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임하게 될 때에, 한 주간에 삶 자체가 전부 힘이 됩니다! 자체가 전부 능력이 되는 겁니다! 역사가 되는 겁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성경이 원천적으로 '예수님 그분은 왕이요, 예수님 그분은 제사장이요, 예수님 그분은 선지자이시다! 흑암에 세력을 깨뜨리시고, 저주와 재앙에서 완전히 해결하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구체적인 길이시다!' 이 사실이 생명과 능력과 힘으로, 사실로 와 땋게 됩니다. 이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
것이 안 되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아, 맞아!' 그래도 문고리 잡고 나가는 순간에 흑암의 세력에 잡혀 버립니다! '잊어버린다!' 그 말입니다. 한 주간 말씀이 계속해서 기도의 제목으로 나온다는 말이 다른 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 말씀이 살아있어요. 그 말씀이 내게는 살아있습니다. 그 말씀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그 말씀이, 내가 내 마음속에서 그 말씀대로 성취되는 구체적인 뭐가 나옵니까? 사실이 나옵니다. 이 응답의 역사가 오늘 여러분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메시지 속에 구체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고,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러분과 여러분 스스로, '정말,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되어 있고, 이 고백이 사실적인 고백으로 내게 이루어지고 있느냐?' 이 사실이 오늘 확인되어야 됩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물음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에서 그쳐집니다. 예수님 존경해도 소용없습니다! 좋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높여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로 예수를 찬양해도 소용없습니다! 상관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메시아십니다! 예수님 그분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생명이십니다!'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영원한 해방이요. 영원 저주와 죽음과 멸망에서 완전한 해방이요. 승리의 이름이 되십니다. 모든 문제 해결 자로, 그 분의 이름이 여러분과 저의 가슴에 새겨지는 정도가 아니고, 현장에서 성취되는 이름으로 역사 하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예수님께서 두 번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나님의 자녀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본론
1.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1) 사람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대답했습니다.(14절)
(2) 사람들은 예수님께 최대한의 존경과 높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 그러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로 분쟁이 따랐습니다.
(4) 예수를 메시야로, 그리스도로, 진리로 알지 못하면 교회 안에서도 분쟁이 생깁니다.
(5) 세상이 하나되는 길은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밖에 없습니다.
(6)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되지 않으면, 인류의 역사에 분쟁이 끊일 수 없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각자 자신의 의견대로 주장하며 분쟁하게 됩니다.
(8)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으로 하나되지 않으면, 가정과 교회가 나누어지게 됩니다.
2.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1) 베드로는 '주님은 그리스도(메시야)입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16절)
(2)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약에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3) 베드로가 이것을 알게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4) 은혜를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5) 내가 '주는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대한 기적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참으로 이해되고 체험될 때, 구원의 축복에 감격할 수 있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말씀으로 선포될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현장에서 성취되는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 결론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진실로 나의 주와 메시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계속해서 마음 속에 붙잡음으로, 말씀이 현장에서 살아 역사하는 사실을 체험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기도제목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참으로 나를 구원하신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나의 주님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기를 간절히 소망하오니, 나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나의 참 자유와 능력이 되시는 주님을 내 삶의 현장 속에서 체험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마음껏 올려드리기를 소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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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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