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권세를!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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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마 21: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마 21: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것이요
(마 21:2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마 21:27)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마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오늘 이 부활절 감사예배 참 즐겁고 감사한 일이죠. 이런 시점에서 제목의 말씀을 23절 말씀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 그랬습니다. 이 말은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행하시고, 그 다음에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성전에 들어오셔서, 성전에 그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 바리새파 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사하고 있는 그 장사의 상을 엎고,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시면서, 큰 소리로 노를 발하시면서 성전 청소를 하셨는데, 그 청소를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청소하실 때에, 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도대체 네가 무슨 권리로 이러느냐?' 그 말입니다. '무슨 권세로 이러느냐!' 그리고 '네가 이럴 수 있도록 누구한테 임명장을 받았느냐? 대 제사장한테 받았느냐? 아니면 바리새인들한테 받았느냐? 네가 어떤 국가에 공인된 사람들한테 이 권리를 받고 이런 짓을 하느냐?' 이런 물음이 바리새인들의 물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로, 세리 요한의 예를 들면서 대답한 것이 뭐냐? 내가 바리새파나 대 제사장이나 인간에게 받은 권세가 아니고, 내가 받은 권세는 뭐라 그랬습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권세다!' 세례요한의 예를 들면서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하늘로부터 온 권세다!' 오늘 여러분들이 감히 부활절 예배에, '할렐루야' 부르고, 그 '할렐루야' 부를 때에 감히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있는 이 권세가 도대체 어느 권세냐? 무슨 권세냐? 그게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 축복과 이 권세가 예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어야 되는데, 그런데도 그 예수 그리스도 이름 듣고 싱글벙글 웃고 감사할 수 있는 이 권세가 도대체 무슨 권세냐? 무슨 권세입니까? 하늘로부터 온 권세입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온 권세는 바로 부활의 권세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활의 생명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보라, 새로운 피조물이로다!' 부활의 생명, 부활의 권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감히 앉아서... 오늘 뭐 이렇게 부활절 헌금을 한다고 그러더라 구요. 헌금 봉투를 들고 앉아 있는데, 아마 여러분 이 봉투만 봐도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이 부활절 헌금을 드릴 수 있는 권세를 가졌느냐?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미국 당국에다가 세금을 낼 수 있는 권세가 아무나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불법으로 이민 가 가지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다가 정식으로 시민권을 받고 한번 세금 내어 보세요. 그 감격이 보통 감격인줄 압니까! 아무나 세금 내는 줄 압니까! 여러분 세금을 낸다고 할 때는 엄청난 권세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금 낼 수 있는 권세! 그게 쉬운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뭡니까? 그의 인생을 보장받는 권세입니다. 여러분 미국에는 세금 낸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노후가 전부 다 보장됩니다.
우리나라에도 바로 그런 문제죠. 그래서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도 세금을 스스로 내더라 구요. 왜 그러냐 하면, 사고가 났다! 그러면 일단 세금 계산해 가지고 보상받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면 노동자 일당으로 세금을 환산해 가지고 보상을 받더라 구요. 엄청난 목사의 자격이 세금 안 냈다는 이유로 국가에서는 영 푸대접을 받는 겁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 정말 '예수 믿었다!' 그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이요. 또 그 배경 속에, 바로 그 축복의 배경이 뭐냐? 부활의 권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나라의 영광이 임했다는 이 축복의 영광이 이해가 되게 됩니다. 바로 이 축복과 은혜를 받고 있는 여러분들이 이 권세를 받아서, 그러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드리면서 드리고 싶은 것은, 참 복음을 바로 받고 복음의 생명을 바로 누리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저에게 누구보다도 이 권세를, 이 축복을 받았다! 그럴 때는 우리 본인이 개인이 감사와 감격을 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은혜 주셨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이 권세를 받으면 내가 먼저 만족하게 된다!" 내가 먼저 만족하게됩니다. 내 개인이 만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 믿고 나면 '내가 좋다!' 예수 믿고 나면 '교회 위해서 일한다!' 뭐 '이웃 위해서 일한다! 국가 위해서 일한다!' 다 거짓말입니다. 뭐가 안되면 거짓말입니까? 내게 먼저 만족이 없고, 내게 먼저 이 권세를 누리는 축복이 이해가 안되면 그 다음에 일은,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배고픈데, 이웃사람에게 떡 한 조각 어떻게 나누어줍니까? 배고픈데 지가 먹기도 바쁜데... 손님이 열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은, 밥 한 그릇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걸 열 사람한테 나누어 줄 수가 없어요. 화장실에게 가서 지가 먼저 먹고 나와야지! 손님이 열 사람 찾아왔습니다. 밥은 20그릇 있습니다. 그건 썩지 않기 위해서도 빨리 내어놓아야 돼요. 먼저 하나님의 법도는, 그리고 복음의 원리는, 그리고 부활의 생명은, 먼저 '너와 내 집!'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찾아왔느냐?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울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있잖아요. 이 부활의 축복과 이 생명을 누리는 자! 먼저 뭐냐? 농부의 비유를 들면서 말했습니다. 농사를 짖는 자는 농사를 짖되 제일먼저 추수의 기쁨을 누가 먼저 누립니까? 왕이 누리는 게 아니고, 농부 자신이 누리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부활의 생명을 받았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 십자가의 그 영광스러운 역사!
여러분 사실상 어떤 면에서 십자가는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고, 가장 곤혹스럽고,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생명으로 그 십자가가 나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때에, 그 십자가의 치욕스러운 것은 십자가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누려지게됩니다. 이 생명의 축복이 바로 오늘 여러분과 제가 예배드리는 예배의 중심이요, 예배의 사실입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지금 이 시간 여러분 사실로 누려져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누가 이 권리를 주었느냐?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이 권세와 권능은 먼저 우리에게 구경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누리라고 주었습니다. 이 사실이 누려져야 비로소 여기서 모든 것이 해결되고 모든 것이 나오도록 되어있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이 부활의 축복의 역사를 구경만 하지 마시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바른 생명, 바른 복음을 받게 될 때에 반드시 개인이 먼저 만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이기주의자로 태어납니다. 욕심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자기 목적을 자기 동기로 가지고 태어납니다. 여기에 오신 여러분들도 바로 예수 믿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의 거의 전부가 시작이 뭐냐?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믿는다!'는 이 배경입니다. 그런데 참 예수 그리스도 이 권세와 축복을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과 역사가 인간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목표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원리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받아합시다. "먼저 나에게 참 만족과 기쁨으로 복음은 시작된다!" 할렐루야! 그래야 그 다음에 넘어갈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이웃도 보게 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도 보게 되고, 그 다음에 선교도 보게되고, 그 다음에 전도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령 충만이다!' 비유를 뭐 늘 그렇게 했습니다 만은, 물리적인 비유는 이상합니다 만은, 먼저 컵에다가 물을 부었을 때에 그 컵에 물을 따르고 난 후에 계속해서 물을 따를 때에, 컵이 넘치게 될 때에 뭔가 이웃에게 다른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모자라서 막 쟁취하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에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넘치는 영향을 따라서 우리는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다!' 그럴 때에 먼저 우리가 축복 받을 때에 막 모자라서 빼앗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네가 만족하고 너의 집이 만족하고 사회가 만족된다!' 이것이 복음의 윤리요,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과 우리의 부분의 연약함을 아시고, 이 사실을 채워주십니다. 주님 앞에 나갔을 때에 먼저 우리에게 참 만족, 참 기쁨 거기에서 모든 해답을 하나님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참 어려움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그 어려움은 그냥 어려움을 당한 것이 아니고, 복음 때문에, 그리스도의 그 권세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바울은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의 가는 곳곳마다 바울이 고백한 것은, 감사라는 말이요, 찬송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보다도 어려움을 많이 당한 바울은 누구보다도 만족한 고백을 어디든지 제일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이 이유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다메섹 도상으로 올라가면서 율법을 통해서, 뭔가 일평생 허덕이면서 구하던 바울에게 복음이 임했습니다. 그 복음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이 비추어졌을 때에 바울은 너무 놀라서 '주여, 뉘시오니이까!' 그럴 때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분명히 죽었거든요. 그것도 몇 일전에, 얼마 전에 그런데 바울은 그 대답을 듣는 순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부활의 생명이 바울 속에 오게 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바울에게는 물밀 듯이 터져 나오는, 샘솟듯이 터져 나오는 새 생명의 능력과 감사와 기쁨이 체험 된 것이 바울의 생애입니다. 바로 이로 통해서 바울의 가는 생애마다 넘치는 기쁨과 감사가...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 우리에게 고백을 잘 했죠. '내가 풍부에도 처하고, 비천에도 처하고, 핍박에도 처하고, 어려움에도 처해 있었다! 그러나 내게 부활의 생명으로 능력주실 때에 내가 만족했다! 만족할 뿐 아니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 이웃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이게 바울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붙잡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갔다 그랬는데, 장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여러분 잘 알다시피 고린도서에 나타난 삼층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활의 역사로 주신 새 생명과 새 나라의 축복을 깨달은 바울은 그 인생이 너무 만족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찬양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그의 생애가 바로 선교와 전도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답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뭘 깨달아야 되느냐 하면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바로 받고, 참 부활의 생명을 내가 가졌다! 그럴 때에, 환경과 사건과 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윤리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은 근원적으로 부활의 생명을 받은, 부활의 권세를 받은 개개인에게 뭘 줍니까? 만족함을 주십니다. 감사가 터져 나오도록 해 주신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능히 이루실 줄을 우리가' 뭐라 그랬어요? '확신하노라!' 그랬습니다. 우리 속에 이 모든 것이 생명과 능력의 기반인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이 이해가 될 때에 그때부터 뭐냐? 눈이 이웃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이해되게 될 때에, '내가 로마에도 가야 하리라! 복음은 능히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한다!'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창세기 37장에 비전을 받게 됩니다. 39장에 요셉에게 이 놀라운 축복과 생명이 이해된 요셉에게 먼저 누구에게? 확실한 축복의 역사가 이해가 되었느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뭐라 그랬습니까? '형통했더라!' 그랬습니다. 받아합시다. "요셉의 모든 일이 만족했다!" 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평안이 온다는 말이 이 기본입니다. 이 배경이 내게 만족이 없으면 평안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주를 찬양한다!' 그럴 때에, 그냥 '찬양합시다!' 그런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영혼에 풍성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만족과 감격이 옵니다. 그래서 모든 하는 일에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 어둡기 때문에 감사가 아닙니다. 근원적인 만족과 감사가 나옵니다.
저는 초기에 예수를 믿고 뭐 어릴 때부터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런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참 갈급한 마음이 있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부활의 생명과 그 역사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에, 내게 찾아온 첫 번째 것이 뭐냐하면, 그 날 밤에 전 우주가 내 것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전 우주가! 그리고 막 풍성한 어떤 그런... 부족하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때는 어느 정도로 가난했느냐 하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구두를 지금 돌아가신 누님이 구두를 저한테 한 켤레 사주었어요. 구두를 사 주었는데 그 구두를 벌써 몇 년 동안 신고 다녀서 내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뒤꿈치가, 원래 제가 팔자걸음 아닙니까! 뒤꿈치가 이게 똑바로 땋았으면 좋은데, 한쪽만 땋아 가지고 완전히 삐뚤어요. 한쪽은 가죽 있는데 까지 땋았는데, 한쪽은 새것이에요. 이것을 신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에 양복이 없어 가지고 양복을 물들였는데, 위에 것을 검은 것이라야 봄, 가을, 겨울, 여름 다 입거든요. 그렇게 입었던 양복 한 벌 가지고 입었던 때입니다.
그런 때인데 늘 가난하고 늘 갈급 했던 그런 심정이었어요. 너무 희한한 것 있죠. 뭔가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은혜 주셨어요. 만족합니다. 온 우주가 내 것입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때 산입니다. 일어나니까 노루가 건너편 산에서 펄쩍 펄쩍 뛰어다닙니다. 그 다음에 나무가 흔들리고, 그때 그 4월 달이 되어서 요즘보다 조금 더 지난 철입니다. 그러니까 잎이 뾰족뾰족 나오고 그러잖아요. 입이 확 폈던 것보다도 뾰족뾰족 나올 때, 그때가 더 이쁘더라 구요. 그때 내 느낌이 뭐냐하면, 온 삼라 만상이 나를 위해서 있는 것 같아요. 받아합시다. "삼라만상은 주의 것이로다!" '곧 내 것이로다!' 주의 것이라는 생각은 나지도 않고 내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다! 첫 번째 주신 은혜가 만족입니다. 만족한 겁니다. 그러니까 허덕이는 것이 없어져 버려요. 가득한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여러분 부활의 권세!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막 돈을 내면서도 지금 뭔가 부활의 헌금을 할 때에 이건 아무나 주는 권세가 아닙니다. '아버지, 이 헌금 내는데 돈 많이 주시옵소서!' 그게 아니고, '만족하고 내게 넘치는 은혜 속에서 하나님 드립니다! 내게 풍족하게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믿음이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헌금 내는 것도 이게 은혜 안 받으면 도저히 못 냅니다. 만원 내는 것 아까워서 절대로 못 냅니다. 낼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만족하게 주셨다!' 이게 되면 이걸 내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이 축복 속에 조금 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면 '돈 만원, 이 큰걸 어떻게 드리나!' 천원짜리 내면서도 막 자기에게는 전부 다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인데, 어떻게 드립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조금 밖에 드리지 않는 것 미안합니다!' 이렇게 됩니다. '내게 주신 건강과, 내게 주신 지혜와, 내게 주신 축복과, 가정과, 자식들과, 가문에 영광 이 축복된 은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오늘 내게 헌신하는 것 너무 적습니다! 미안합니다!' 이것이 만족한 성도들의 헌신의 자격입니다. 그때부터 헌신이, 내가 드리는 헌신이 요만큼 드려놓고 '많이 했다!' 싶고 이게 나올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했던 헌신이, '주여, 너무 부족한 것뿐입니다. 너무 연약한 것뿐입니다. 받은 것이 너무 많으니까 만족합니다!' 그러니까 허덕이는 게 없어져 버려요. 뭔가 이렇게 막 한 모퉁이가 텅 빈다는 것이 없어져 버려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구요. 돈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가, 지갑에 뭔가 넣어 다니다가 한 10만원쯤 돈이 들었다! 뭔가 갑자기 돈 쓸 일이, 한 5만원쯤 쓸 일이 갑자기 생겼다! 그러면 5만원쯤 쓰고 나면 뭐가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괜히 이상하게 나가면 불안한 심정이 들 때가 있어요. 모든 것을 주님이 주셨다! 그리고 만족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어디에서 부활의 권세 속에! 왜?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어디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이 생명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생명을 받는 순간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다!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은혜 속에서 만족하게되더라! 그때부터 가는 장소와 사건과 만남이 기쁨과 감사로 이어지게 되어있는 것을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아는 것으로 끝나 가지고는 일이 안되어요. 다시 말씀합니다. 부활의 생명이 오늘 체험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가 반 세겔 낼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 그런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권세와 권능과 그 영광의 역사가 체험되는 순간에 뭐라 그랬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소위 말하자면 우리말로 쥐뿔도 없는 베드로가, '주여, 내가 초막 셋을 짓겠으니!' 무슨 돈이 있어서 짓습니까? 여기 뭐가 나옵니까?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적은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헌신도 그냥 받은 것에 비해서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여기에 언약의 축복과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비로소 여러분 뭐가 보이느냐? 미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내가 만족하게 되고 넘치게 되는 역사가 보여지게 될 때에 나로 통해서 행하실 뭡니까? 세계 복음화라는 미래에 나와 여러분을 향한 언약이 보여지게됩니다. 여기서 뭔가 선교와 전도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여기서 여러분들이 뭐가 나옵니까? 미래에 여러분과 제게 주실 하나님의 축복이, 부활의 권세를 통해서 주시는 언약의 역사가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뭐가 됩니까?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게 뭡니까? 미래가 보여져야 됩니다. '아, 하나님이 이걸 주셨구나!' 이것을 주셨다는 사건이 뭡니까? 이 미래의 역사가 보여지게 되는 순간 엘리야 처럼 저 동편에 구름이 손바닥만한 것이 떴을 때에 뭘 봤습니까? 큰 소나기를 봤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미래에 주실 하나님의 언약이, 내게 주신 이 축복과 역사가 비로소 눈이 뜨여지게 될 때에, 나로 통해서 넘치는 하나님의 역사가 뭐가 나옵니까? 미래에 세계 복음화라는 역사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여기에 진정한 헌신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린다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요, 내가 헌신한다는 것은 소모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여러분 무슨 소리하는지 압니까? '하나님, 내가 주를 위해서, 교회 위해서 헌신했는데 나는 뭡니까!' 이럽니다. '뭐긴 뭐라...' 드릴 것은 뭐가 있어서 드렸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것은 너무 많은데... 그래서 다윗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기쁘게 드립니다!' 거기에 미래를 향한 놀라운 성전 건축에 영광이 드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건축한다는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 속에, 여러분 참여하신 부활의 권세를 가진 여러분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역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 하나님이 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감히 당당하게, 떳떳하게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메시아'곡을 불러도 하나도 얼굴하나 안 변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배짱 누가 주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나는 예배시간에는 메시아를 불러도 안 일어섰으면 좋겠어요. 괜히 복잡하더라 구요. 앉아서 감상하는 게 좋겠어요. 왜? 하나님의 자녀들,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들, 오늘 내가 안 일어나게 한 것도 괜찮다 싶어요. 1부에는 일어났습니다.
좋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 찬양을 들을 수 있는 권세를 가졌느냐?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의 권세! 가정에 떳떳하게 가장으로, 떳떳하게 아내로, 어머니로 떳떳하게 자식으로, 그 다음에 내가 사업장에 사업주로 혹은 이 일을 감당하는 이 일에 떳떳하게, 되지도 못한 내가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 믿어라!' 전하는 전도자로 누가 이 권세를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무슨 권세로? 부활의 생명으로! 이 새 생명의 역사로 여러분과 제가 한 주간도 닥치는 일과 사건 속에서 이 놀라운 기적이 미래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고 채찍을 휘두르며 노를 발하여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시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께 '네가 어떤 권리로 이런 짓을 하느냐?'라고 따집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예를 들며 '내가 받은 권세는 하늘로부터 온 권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권세도 하늘로부터 온 권세요, 이것은 부활의 생명으로 말미암은 권세입니다.
● 본론
1. 부활의 권세를 누리면, 먼저 개인 자신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1) 농사를 지어서 거둔 수확을 농부가 먼저 취하는 것처럼, 부활의 생명과 축복을 먼저 나와 내 집이 누리게 됩니다.
(2) 복음을 받을 때 먼저 자신이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는 원리입니다.
(3) 물이 컵에 차서 넘칠 때, 그 물이 컵 주위를 적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바울이 다메섹으로 올라가던 중 빛을 받고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바울은 참 만족을 알고 감사와 찬양이 넘쳐, 그의 인생이 전도와 선교로까지 이어졌습니다.
(5) 요셉이 비전을 받게 된 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의 모든 일이 형통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요셉에게는 참 만족과 기쁨이 넘쳐 났고, 결국 그의 비전이 성취되는 자리에까지 이어졌습니다.
2. 만족과 기쁨으로 부활의 권세를 이웃과 세계를 위해 누립시다.
(1) 부활 감사 헌금을 하는 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에 만족하며 기쁨으로 드리는 누림의 권세입니다.
(2) 나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체험할 때, 내가 가는 모든 곳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 흐르며, 나를 통해 이루실 세계 복음화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3) 생명과 부활의 권세를 가지고 미래의 언약을 바라보는 기쁨과 감사함이 넘칠 때, 성전 건축도 축복의 누림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 결론
하나님께서 주신 부활의 권세로 교회와 직장에 당당하게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먼저 우리 개인 자신과 가정에 만족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쁨으로 이웃을 바라보며 세계 복음화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제목
◎ 부활의 권세로 나 자신이 먼저 참된 만족을 얻도록
◎ 이웃을 위해 부활의 권세를 누리도록
(마 21: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마 21: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것이요
(마 21:2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마 21:27)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마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오늘 이 부활절 감사예배 참 즐겁고 감사한 일이죠. 이런 시점에서 제목의 말씀을 23절 말씀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 그랬습니다. 이 말은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행하시고, 그 다음에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성전에 들어오셔서, 성전에 그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 바리새파 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사하고 있는 그 장사의 상을 엎고,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시면서, 큰 소리로 노를 발하시면서 성전 청소를 하셨는데, 그 청소를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청소하실 때에, 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도대체 네가 무슨 권리로 이러느냐?' 그 말입니다. '무슨 권세로 이러느냐!' 그리고 '네가 이럴 수 있도록 누구한테 임명장을 받았느냐? 대 제사장한테 받았느냐? 아니면 바리새인들한테 받았느냐? 네가 어떤 국가에 공인된 사람들한테 이 권리를 받고 이런 짓을 하느냐?' 이런 물음이 바리새인들의 물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로, 세리 요한의 예를 들면서 대답한 것이 뭐냐? 내가 바리새파나 대 제사장이나 인간에게 받은 권세가 아니고, 내가 받은 권세는 뭐라 그랬습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권세다!' 세례요한의 예를 들면서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하늘로부터 온 권세다!' 오늘 여러분들이 감히 부활절 예배에, '할렐루야' 부르고, 그 '할렐루야' 부를 때에 감히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있는 이 권세가 도대체 어느 권세냐? 무슨 권세냐? 그게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 축복과 이 권세가 예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어야 되는데, 그런데도 그 예수 그리스도 이름 듣고 싱글벙글 웃고 감사할 수 있는 이 권세가 도대체 무슨 권세냐? 무슨 권세입니까? 하늘로부터 온 권세입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온 권세는 바로 부활의 권세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활의 생명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보라, 새로운 피조물이로다!' 부활의 생명, 부활의 권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감히 앉아서... 오늘 뭐 이렇게 부활절 헌금을 한다고 그러더라 구요. 헌금 봉투를 들고 앉아 있는데, 아마 여러분 이 봉투만 봐도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이 부활절 헌금을 드릴 수 있는 권세를 가졌느냐?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미국 당국에다가 세금을 낼 수 있는 권세가 아무나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불법으로 이민 가 가지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다가 정식으로 시민권을 받고 한번 세금 내어 보세요. 그 감격이 보통 감격인줄 압니까! 아무나 세금 내는 줄 압니까! 여러분 세금을 낸다고 할 때는 엄청난 권세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금 낼 수 있는 권세! 그게 쉬운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뭡니까? 그의 인생을 보장받는 권세입니다. 여러분 미국에는 세금 낸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노후가 전부 다 보장됩니다.
우리나라에도 바로 그런 문제죠. 그래서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도 세금을 스스로 내더라 구요. 왜 그러냐 하면, 사고가 났다! 그러면 일단 세금 계산해 가지고 보상받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면 노동자 일당으로 세금을 환산해 가지고 보상을 받더라 구요. 엄청난 목사의 자격이 세금 안 냈다는 이유로 국가에서는 영 푸대접을 받는 겁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 정말 '예수 믿었다!' 그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이요. 또 그 배경 속에, 바로 그 축복의 배경이 뭐냐? 부활의 권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나라의 영광이 임했다는 이 축복의 영광이 이해가 되게 됩니다. 바로 이 축복과 은혜를 받고 있는 여러분들이 이 권세를 받아서, 그러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드리면서 드리고 싶은 것은, 참 복음을 바로 받고 복음의 생명을 바로 누리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저에게 누구보다도 이 권세를, 이 축복을 받았다! 그럴 때는 우리 본인이 개인이 감사와 감격을 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은혜 주셨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이 권세를 받으면 내가 먼저 만족하게 된다!" 내가 먼저 만족하게됩니다. 내 개인이 만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 믿고 나면 '내가 좋다!' 예수 믿고 나면 '교회 위해서 일한다!' 뭐 '이웃 위해서 일한다! 국가 위해서 일한다!' 다 거짓말입니다. 뭐가 안되면 거짓말입니까? 내게 먼저 만족이 없고, 내게 먼저 이 권세를 누리는 축복이 이해가 안되면 그 다음에 일은,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배고픈데, 이웃사람에게 떡 한 조각 어떻게 나누어줍니까? 배고픈데 지가 먹기도 바쁜데... 손님이 열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은, 밥 한 그릇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걸 열 사람한테 나누어 줄 수가 없어요. 화장실에게 가서 지가 먼저 먹고 나와야지! 손님이 열 사람 찾아왔습니다. 밥은 20그릇 있습니다. 그건 썩지 않기 위해서도 빨리 내어놓아야 돼요. 먼저 하나님의 법도는, 그리고 복음의 원리는, 그리고 부활의 생명은, 먼저 '너와 내 집!'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찾아왔느냐?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울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있잖아요. 이 부활의 축복과 이 생명을 누리는 자! 먼저 뭐냐? 농부의 비유를 들면서 말했습니다. 농사를 짖는 자는 농사를 짖되 제일먼저 추수의 기쁨을 누가 먼저 누립니까? 왕이 누리는 게 아니고, 농부 자신이 누리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부활의 생명을 받았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 십자가의 그 영광스러운 역사!
여러분 사실상 어떤 면에서 십자가는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고, 가장 곤혹스럽고,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생명으로 그 십자가가 나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때에, 그 십자가의 치욕스러운 것은 십자가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누려지게됩니다. 이 생명의 축복이 바로 오늘 여러분과 제가 예배드리는 예배의 중심이요, 예배의 사실입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지금 이 시간 여러분 사실로 누려져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누가 이 권리를 주었느냐?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이 권세와 권능은 먼저 우리에게 구경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누리라고 주었습니다. 이 사실이 누려져야 비로소 여기서 모든 것이 해결되고 모든 것이 나오도록 되어있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이 부활의 축복의 역사를 구경만 하지 마시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바른 생명, 바른 복음을 받게 될 때에 반드시 개인이 먼저 만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이기주의자로 태어납니다. 욕심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자기 목적을 자기 동기로 가지고 태어납니다. 여기에 오신 여러분들도 바로 예수 믿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의 거의 전부가 시작이 뭐냐?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믿는다!'는 이 배경입니다. 그런데 참 예수 그리스도 이 권세와 축복을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과 역사가 인간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목표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원리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받아합시다. "먼저 나에게 참 만족과 기쁨으로 복음은 시작된다!" 할렐루야! 그래야 그 다음에 넘어갈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이웃도 보게 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도 보게 되고, 그 다음에 선교도 보게되고, 그 다음에 전도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령 충만이다!' 비유를 뭐 늘 그렇게 했습니다 만은, 물리적인 비유는 이상합니다 만은, 먼저 컵에다가 물을 부었을 때에 그 컵에 물을 따르고 난 후에 계속해서 물을 따를 때에, 컵이 넘치게 될 때에 뭔가 이웃에게 다른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모자라서 막 쟁취하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에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넘치는 영향을 따라서 우리는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다!' 그럴 때에 먼저 우리가 축복 받을 때에 막 모자라서 빼앗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네가 만족하고 너의 집이 만족하고 사회가 만족된다!' 이것이 복음의 윤리요,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과 우리의 부분의 연약함을 아시고, 이 사실을 채워주십니다. 주님 앞에 나갔을 때에 먼저 우리에게 참 만족, 참 기쁨 거기에서 모든 해답을 하나님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참 어려움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그 어려움은 그냥 어려움을 당한 것이 아니고, 복음 때문에, 그리스도의 그 권세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바울은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의 가는 곳곳마다 바울이 고백한 것은, 감사라는 말이요, 찬송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보다도 어려움을 많이 당한 바울은 누구보다도 만족한 고백을 어디든지 제일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이 이유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다메섹 도상으로 올라가면서 율법을 통해서, 뭔가 일평생 허덕이면서 구하던 바울에게 복음이 임했습니다. 그 복음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이 비추어졌을 때에 바울은 너무 놀라서 '주여, 뉘시오니이까!' 그럴 때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분명히 죽었거든요. 그것도 몇 일전에, 얼마 전에 그런데 바울은 그 대답을 듣는 순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부활의 생명이 바울 속에 오게 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바울에게는 물밀 듯이 터져 나오는, 샘솟듯이 터져 나오는 새 생명의 능력과 감사와 기쁨이 체험 된 것이 바울의 생애입니다. 바로 이로 통해서 바울의 가는 생애마다 넘치는 기쁨과 감사가...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 우리에게 고백을 잘 했죠. '내가 풍부에도 처하고, 비천에도 처하고, 핍박에도 처하고, 어려움에도 처해 있었다! 그러나 내게 부활의 생명으로 능력주실 때에 내가 만족했다! 만족할 뿐 아니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 이웃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이게 바울의 배경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붙잡고 3년 동안 아라비아에 갔다 그랬는데, 장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여러분 잘 알다시피 고린도서에 나타난 삼층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활의 역사로 주신 새 생명과 새 나라의 축복을 깨달은 바울은 그 인생이 너무 만족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찬양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그의 생애가 바로 선교와 전도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답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뭘 깨달아야 되느냐 하면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바로 받고, 참 부활의 생명을 내가 가졌다! 그럴 때에, 환경과 사건과 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윤리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은 근원적으로 부활의 생명을 받은, 부활의 권세를 받은 개개인에게 뭘 줍니까? 만족함을 주십니다. 감사가 터져 나오도록 해 주신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능히 이루실 줄을 우리가' 뭐라 그랬어요? '확신하노라!' 그랬습니다. 우리 속에 이 모든 것이 생명과 능력의 기반인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이 이해가 될 때에 그때부터 뭐냐? 눈이 이웃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이해되게 될 때에, '내가 로마에도 가야 하리라! 복음은 능히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한다!'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창세기 37장에 비전을 받게 됩니다. 39장에 요셉에게 이 놀라운 축복과 생명이 이해된 요셉에게 먼저 누구에게? 확실한 축복의 역사가 이해가 되었느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뭐라 그랬습니까? '형통했더라!' 그랬습니다. 받아합시다. "요셉의 모든 일이 만족했다!" 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평안이 온다는 말이 이 기본입니다. 이 배경이 내게 만족이 없으면 평안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주를 찬양한다!' 그럴 때에, 그냥 '찬양합시다!' 그런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영혼에 풍성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만족과 감격이 옵니다. 그래서 모든 하는 일에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 어둡기 때문에 감사가 아닙니다. 근원적인 만족과 감사가 나옵니다.
저는 초기에 예수를 믿고 뭐 어릴 때부터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런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참 갈급한 마음이 있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부활의 생명과 그 역사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에, 내게 찾아온 첫 번째 것이 뭐냐하면, 그 날 밤에 전 우주가 내 것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전 우주가! 그리고 막 풍성한 어떤 그런... 부족하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때는 어느 정도로 가난했느냐 하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구두를 지금 돌아가신 누님이 구두를 저한테 한 켤레 사주었어요. 구두를 사 주었는데 그 구두를 벌써 몇 년 동안 신고 다녀서 내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뒤꿈치가, 원래 제가 팔자걸음 아닙니까! 뒤꿈치가 이게 똑바로 땋았으면 좋은데, 한쪽만 땋아 가지고 완전히 삐뚤어요. 한쪽은 가죽 있는데 까지 땋았는데, 한쪽은 새것이에요. 이것을 신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에 양복이 없어 가지고 양복을 물들였는데, 위에 것을 검은 것이라야 봄, 가을, 겨울, 여름 다 입거든요. 그렇게 입었던 양복 한 벌 가지고 입었던 때입니다.
그런 때인데 늘 가난하고 늘 갈급 했던 그런 심정이었어요. 너무 희한한 것 있죠. 뭔가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은혜 주셨어요. 만족합니다. 온 우주가 내 것입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때 산입니다. 일어나니까 노루가 건너편 산에서 펄쩍 펄쩍 뛰어다닙니다. 그 다음에 나무가 흔들리고, 그때 그 4월 달이 되어서 요즘보다 조금 더 지난 철입니다. 그러니까 잎이 뾰족뾰족 나오고 그러잖아요. 입이 확 폈던 것보다도 뾰족뾰족 나올 때, 그때가 더 이쁘더라 구요. 그때 내 느낌이 뭐냐하면, 온 삼라 만상이 나를 위해서 있는 것 같아요. 받아합시다. "삼라만상은 주의 것이로다!" '곧 내 것이로다!' 주의 것이라는 생각은 나지도 않고 내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다! 첫 번째 주신 은혜가 만족입니다. 만족한 겁니다. 그러니까 허덕이는 것이 없어져 버려요. 가득한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여러분 부활의 권세!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막 돈을 내면서도 지금 뭔가 부활의 헌금을 할 때에 이건 아무나 주는 권세가 아닙니다. '아버지, 이 헌금 내는데 돈 많이 주시옵소서!' 그게 아니고, '만족하고 내게 넘치는 은혜 속에서 하나님 드립니다! 내게 풍족하게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믿음이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헌금 내는 것도 이게 은혜 안 받으면 도저히 못 냅니다. 만원 내는 것 아까워서 절대로 못 냅니다. 낼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만족하게 주셨다!' 이게 되면 이걸 내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이 축복 속에 조금 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면 '돈 만원, 이 큰걸 어떻게 드리나!' 천원짜리 내면서도 막 자기에게는 전부 다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인데, 어떻게 드립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조금 밖에 드리지 않는 것 미안합니다!' 이렇게 됩니다. '내게 주신 건강과, 내게 주신 지혜와, 내게 주신 축복과, 가정과, 자식들과, 가문에 영광 이 축복된 은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오늘 내게 헌신하는 것 너무 적습니다! 미안합니다!' 이것이 만족한 성도들의 헌신의 자격입니다. 그때부터 헌신이, 내가 드리는 헌신이 요만큼 드려놓고 '많이 했다!' 싶고 이게 나올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했던 헌신이, '주여, 너무 부족한 것뿐입니다. 너무 연약한 것뿐입니다. 받은 것이 너무 많으니까 만족합니다!' 그러니까 허덕이는 게 없어져 버려요. 뭔가 이렇게 막 한 모퉁이가 텅 빈다는 것이 없어져 버려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구요. 돈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가, 지갑에 뭔가 넣어 다니다가 한 10만원쯤 돈이 들었다! 뭔가 갑자기 돈 쓸 일이, 한 5만원쯤 쓸 일이 갑자기 생겼다! 그러면 5만원쯤 쓰고 나면 뭐가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괜히 이상하게 나가면 불안한 심정이 들 때가 있어요. 모든 것을 주님이 주셨다! 그리고 만족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어디에서 부활의 권세 속에! 왜?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어디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이 생명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생명을 받는 순간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다!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은혜 속에서 만족하게되더라! 그때부터 가는 장소와 사건과 만남이 기쁨과 감사로 이어지게 되어있는 것을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아는 것으로 끝나 가지고는 일이 안되어요. 다시 말씀합니다. 부활의 생명이 오늘 체험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가 반 세겔 낼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 그런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권세와 권능과 그 영광의 역사가 체험되는 순간에 뭐라 그랬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소위 말하자면 우리말로 쥐뿔도 없는 베드로가, '주여, 내가 초막 셋을 짓겠으니!' 무슨 돈이 있어서 짓습니까? 여기 뭐가 나옵니까?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적은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헌신도 그냥 받은 것에 비해서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여기에 언약의 축복과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비로소 여러분 뭐가 보이느냐? 미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내가 만족하게 되고 넘치게 되는 역사가 보여지게 될 때에 나로 통해서 행하실 뭡니까? 세계 복음화라는 미래에 나와 여러분을 향한 언약이 보여지게됩니다. 여기서 뭔가 선교와 전도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여기서 여러분들이 뭐가 나옵니까? 미래에 여러분과 제게 주실 하나님의 축복이, 부활의 권세를 통해서 주시는 언약의 역사가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뭐가 됩니까?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게 뭡니까? 미래가 보여져야 됩니다. '아, 하나님이 이걸 주셨구나!' 이것을 주셨다는 사건이 뭡니까? 이 미래의 역사가 보여지게 되는 순간 엘리야 처럼 저 동편에 구름이 손바닥만한 것이 떴을 때에 뭘 봤습니까? 큰 소나기를 봤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미래에 주실 하나님의 언약이, 내게 주신 이 축복과 역사가 비로소 눈이 뜨여지게 될 때에, 나로 통해서 넘치는 하나님의 역사가 뭐가 나옵니까? 미래에 세계 복음화라는 역사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여기에 진정한 헌신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린다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요, 내가 헌신한다는 것은 소모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여러분 무슨 소리하는지 압니까? '하나님, 내가 주를 위해서, 교회 위해서 헌신했는데 나는 뭡니까!' 이럽니다. '뭐긴 뭐라...' 드릴 것은 뭐가 있어서 드렸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것은 너무 많은데... 그래서 다윗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기쁘게 드립니다!' 거기에 미래를 향한 놀라운 성전 건축에 영광이 드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건축한다는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 속에, 여러분 참여하신 부활의 권세를 가진 여러분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역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 하나님이 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감히 당당하게, 떳떳하게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메시아'곡을 불러도 하나도 얼굴하나 안 변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배짱 누가 주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나는 예배시간에는 메시아를 불러도 안 일어섰으면 좋겠어요. 괜히 복잡하더라 구요. 앉아서 감상하는 게 좋겠어요. 왜? 하나님의 자녀들,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들, 오늘 내가 안 일어나게 한 것도 괜찮다 싶어요. 1부에는 일어났습니다.
좋습니다. 어떻게 감히 그 찬양을 들을 수 있는 권세를 가졌느냐?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의 권세! 가정에 떳떳하게 가장으로, 떳떳하게 아내로, 어머니로 떳떳하게 자식으로, 그 다음에 내가 사업장에 사업주로 혹은 이 일을 감당하는 이 일에 떳떳하게, 되지도 못한 내가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 믿어라!' 전하는 전도자로 누가 이 권세를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무슨 권세로? 부활의 생명으로! 이 새 생명의 역사로 여러분과 제가 한 주간도 닥치는 일과 사건 속에서 이 놀라운 기적이 미래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고 채찍을 휘두르며 노를 발하여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시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께 '네가 어떤 권리로 이런 짓을 하느냐?'라고 따집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예를 들며 '내가 받은 권세는 하늘로부터 온 권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권세도 하늘로부터 온 권세요, 이것은 부활의 생명으로 말미암은 권세입니다.
● 본론
1. 부활의 권세를 누리면, 먼저 개인 자신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1) 농사를 지어서 거둔 수확을 농부가 먼저 취하는 것처럼, 부활의 생명과 축복을 먼저 나와 내 집이 누리게 됩니다.
(2) 복음을 받을 때 먼저 자신이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는 원리입니다.
(3) 물이 컵에 차서 넘칠 때, 그 물이 컵 주위를 적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바울이 다메섹으로 올라가던 중 빛을 받고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바울은 참 만족을 알고 감사와 찬양이 넘쳐, 그의 인생이 전도와 선교로까지 이어졌습니다.
(5) 요셉이 비전을 받게 된 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의 모든 일이 형통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요셉에게는 참 만족과 기쁨이 넘쳐 났고, 결국 그의 비전이 성취되는 자리에까지 이어졌습니다.
2. 만족과 기쁨으로 부활의 권세를 이웃과 세계를 위해 누립시다.
(1) 부활 감사 헌금을 하는 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에 만족하며 기쁨으로 드리는 누림의 권세입니다.
(2) 나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체험할 때, 내가 가는 모든 곳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 흐르며, 나를 통해 이루실 세계 복음화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3) 생명과 부활의 권세를 가지고 미래의 언약을 바라보는 기쁨과 감사함이 넘칠 때, 성전 건축도 축복의 누림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 결론
하나님께서 주신 부활의 권세로 교회와 직장에 당당하게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먼저 우리 개인 자신과 가정에 만족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쁨으로 이웃을 바라보며 세계 복음화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제목
◎ 부활의 권세로 나 자신이 먼저 참된 만족을 얻도록
◎ 이웃을 위해 부활의 권세를 누리도록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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