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선고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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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3: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마 2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 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마 23: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제목을 '멸망의 선고'라고 삼았습니다. 37절부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러면서 멸망을 선고하는 이런 배경이 나옵니다 만은, 바로 이렇게 된 이유들이 여덟까지 화로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이렇게 여덟까지 화로, 13절 이하부터 쭉 나오는 메시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8복에 대비해서 여덟까지 화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여덟까지 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뭔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좀 뭉뚱그려서 뭔가 개괄적인 면을 좀 정리를 해야 되겠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지금 이것을 그냥 넘길 것이 아니고, 중요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신 메시지, 또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그런 기회로 삼아야되겠습니다.
8복을 강의 할 때도 중요한 것은, 복음을 빼버리면 그 8복은 완전히 도덕입니다. 그래서 그 8복을 구체적으로 누리고, 그 8복을 하나님 은혜로 효과적으로 우리 개개인에게 성취되는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 속에 그것이 이루어지고 오늘 똑같이 8가지 화도 똑같이 뭐냐하면, 생명이 없을 때에 오는 화입니다. '생명이 없을 때에 빠져 가는 사단의 통로다!' 그렇게 이해하면 더욱 쉽겠죠. 그래서 이 8가지 화는 생명이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죄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저지른 이 죄악들 곧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렀던 그 죄악들 때문에 결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탄식과 함께 이 멸망의 역사가 선포됩니다.
이 멸망의 역사에 선고조차도, 그것조차도 역사에 보면, '하나님의 축복된 주권적인 역사다!' 그렇게 또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뭘 좀 붙잡아야 되느냐 하면, 정말 예수 믿고 복음 없다! 이것만큼 불행스러운 게 없어요. 모든 불행은 여기에 다 있어요. 그냥 일반적으로 뭐 그냥 '복 받았다, 안 받았다!' 이런 것보다도 복음을 받았느냐? 이것은 뭐 엄청난 축복과 은혜다! 그러나 복음이 없느냐? 그것은 엄청난 저주다! 복음과 연결된 것은 그냥 받는다! 큰복이지만, 그 다음에 반대방향으로, 반대편으로 그것은 또 엄청난 저주다! 그렇게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8가지 죄악, 8가지 화! 저주 속에 빠졌던 생명 없는 그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이 여덟까지 죄를 짓게 되는... 뭐 하나로 뭉뚱그려서 말한다 그러면, 이들이 무슨 죄에 빠지느냐? '생명이 없다!' 그럴 때에 외식에 빠진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께서 "(마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에 외식이라는 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원문에서는 배우라는 말입니다. 종교 배우다! 외식할 때에 종교 배우에 빠진다! 배우라는 것은 사실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사실 재미있는 것은 이 배우들도 인기를 얻습니다. 또 환호를 받습니다. 똑같이 이 종교배우들도 아주 역할만 잘하면 환호를 받습니다. 아주 인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종교배우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과 상관없이 그것은 엄청난 그런 이 저주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마디로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이 '종교배우다! 외식이다!' 하는 이 말속에 모든 악한 성격이 요약되어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외식한다!'는 말속에, 사단의 역사에 모든 악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전부 통로입니다. 쉽게 말해서 교회 나왔다 정말 참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를 썼다! 노력한다! 또 아니면 일반적으로 뭐 도덕적이다! 뭐 어떻다! 그렇게 할수록 참 생명 없이 종교배우로 노력한다! 그러면 환호를 받을 수 있고,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악한 것이 없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게 왜, 악하냐? 왜, 그렇게 되느냐? 하는 것은 이제 쭉 다음에 설명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설명을 7가지로 하나에 보면 두 가지가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설명을 하려고 그러면 7가지로 나누어줄 수 있는데, 그것을 먼저 말한다 그러면, 첫 번에 이 생명이 없이 내가 신앙생활 한다고 그럴 때에, 자기도 모르게 '복음에 원수가 된다!' 그랬습니다. 생명이 없이 열심을 낸다! 복음에 원수다! 그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제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전도를 하고, 정말 복음 전하는데 방해된다, 장애 된다! 또 그 다음에 이걸 반대한다! 그게 간단한 이유가 아닙니다. 이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좀 강조해버리니까 뭐가 나오느냐 하면, 반대 급부로 아주 엄청난 그런 어떤 판단이 되는 이건 것이 되어요.
그래서 우리 다락방을 하게 되고, 또 그 다음에 이 전도한다는 것에 방향을 맞추어 있는 여러분들이 초기에 그랬던 그런 어떤 잘못들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왜 잘못하면 이런데 빠질 수 있어요. 이런데 빠질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만... 그런데 '빠졌다!' 정 죄 해버리고 판단해 버리니까, 문제가 오는 것이 되었는데, 13절 말씀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메시아를 전하고, 이 구원을 온 세상에 전해야될 사명을 가진 자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걸 가르쳐 주어야 되요. 그런데도 참 생명, 말하자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로 가져야 될 참 생명이 그들에게 없으니까, 이 메시아를 가로막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니까! 복음을 막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까지 막았습니다. 그 결과가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이제 말한 것처럼 종교에 열심 내고, 생명 없이 열심 내게되면 이런 결과가 와 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조금 다음 구절 말씀에 보면, '한 생명을 얻으려고 들과 산으로 쫓아다니면서 그래 놓고도 얻어놓으면 자기보다 더 악한 자를 만든다!'그랬습니다. 결과가 그렇게 되어 버려요. 참 생명이 없어지게 될 때에 여러분들이 이 시간에 늘 그럽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여기에 감사 정도가 아니고 엄청난 축복이 우리가 실제로 체험되고 날마다 이 삶의 역사 속에 우리가 살아야 그 다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요.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이제 말씀한 것처럼 반대로 8가지 화가 나온다! 이겁니다. 이게 참 비참한 문제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안된데 열심을 내면 열심을 낼수록 더 이상하게 되어버린다. 이런 문제가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게 참 쉬운데도 예수 믿는 게 왜 그렇게 어렵게 보여지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여러분 어린 아이가 자라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참 쉽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자랍니다. 뭐만 있으면? 생명만 있으면 자랍니다. 문제는 죽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자라날수가 없어요. 거기다가 죽었는데 자라나도록 팔다리 당기면 빠져버리는 것이지, 그게 자라날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이 종교라는 것이 잘못 오해가 되고 있으면 여기에 이런 문제가 와요.
정말 예수 믿는 것이 생명 가지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없으면 뭔가 내가 하려고 애를 써야 돼요. 여러분 호흡하는 것을, 호흡을 일부러 하려고 애를 쓰면 이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밤에 자면서 호흡하려고 그러면 눈뜨고 깨어서 잠도 못 자고 호흡해야 됩니다. 그런데 생명 있는 자는 저절로 하게 되어있어요. 밤에 자도 하게 되고, 어려워도 하게 되고, 좋아도 하게 되고... 그런데 그것이 어려우냐? 저절로 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참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로부터 오는 그 하나님의 역사로, 그 힘으로, 오직 그분 바라보고... 지난주에 제가 메시지 한 것처럼 모든 문제 우선해서 신앙이 우선되어지는 이것이 내 체질이 되었다! 내 모든 것이 되었다! 저절로 되어지는 겁니다. '쉽다, 어렵다!' 그것과 상관없어요. 그래서 참 복음이 되면 복음에 축복을 함께 누리는 자들,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안되면 복음에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향한 화로 선언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해주시고 있는 것이, '종교와 경건을 자신의 이익과 탐욕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랬습니다. 복음이 안 되어있으면 내가 예수 믿는 것도 인간 욕심을 채우는 방편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그저 듣고, '그럴 것이다!' 그게 아니고, 정말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 뭡니까? 그래서 가끔 세례 받을 때에, '예수 믿는 목적이 뭐냐?' 이러면 뭐 나름대로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 대답을 잘 못해요. 여러분 왜 예수 믿습니까? 사람에 제일 되는 목적이 뭡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왜 그렇게 욕심을 자꾸 냅니까!
쉽게 말해서 기도하는데, 자꾸 그렇게 한번 해 보라 안 그럽니까! 녹음 한번 해보세요. 뭐라고 기도하는지! 내가 예수 믿는 것을 빙자해 가지고 전부 욕심으로 구합니다. 뭐 '하나님,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뭐 내놔라, 뭐 없다!' 욕심내지는 전부 불평입니다. '하나님, 왜 이럽니까! 어쩌다가 이렇게되었습니까!' 당연하지, 그렇게 된 것도 약과다! 우리가 진짜 이 신앙이 안되어요.
그런데 이 말씀은 몇 절을 가리켜서 말하느냐 하면, 14절입니다. 사실은 14절인데, 성경에는 23장 14절에 보면 우리 현재성경에는 가지고 있는데는 그 14절에 뭐라고 그래놓았어요? '(없음)'그래놓았어요. 이것은 우리 성경이 갖고 있는 사본은 14절은 기록이 안 되어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본이 많이 있습니다. 사본의 종류가...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사본에는 이게 안 나와있는데, 다른 많은 사본에는 이게 14절에는 어떻게 나와 있느냐 하면, 그 밑에 난 외주에 "1. 어떤 사본에, 14절에 막12:40과 눅20:47과 유사한 구절이 있음"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내용을 한번 읽어드리면, "(막 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또 "(눅 20:47)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에게 이 말을 합니다. 그 다음에 서기관들에게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어떤 권리까지 주었느냐 하면, 재산을 관리하기 힘드는, 재산을 관리하는데 무식해서 못한다거나 이런 어떤 사람들에게 그때 당시에 법으로 그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맡겼어요. 그러면 주로 이것이 잘 안 되는 분들이 여자분들이, 뭐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비슷하죠. 남자들은 공부시키는데, 여자들은 공부를 잘 안 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더군다나 이 과부가 되어 버리면 관리할 수 있는 그게 안되어요. 돈은 많은데도 관리할 수 없는 과부들이 많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관리를 누가 하느냐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그들이 성직자요, 그것도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는 사회적인 배경에서 그들에게 법적으로도 맡기고, 그들에게 이 일을 맡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신뢰한다!'는 그런 배경에서 어떤 신뢰하는 사람에게 더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중에도 정말 신뢰를 받는 사람! 그래서 이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 더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때 택한 것이 뭐냐? '외식'이라 안 그럽니까! 외식이라고 할 때에 어떻게 했느냐? '시장바닥에서 다 남이 보는, 전부 보는데서 오랫동안 기도한다!' 그래요. 그래서 어떤 그 학자들은 보니까, '3시간 이상을 매일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집에 골방에 앉아서도 3시간동안 힘든데, 시장바닥에 서서 3시간 기도하는 것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뭘 하느냐? 경건하게 산다는, 경건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참 그때 당시에 어떤 풍습이라든가, 그런 어떤 경건주의, 경건 생활이 요즘 우리가 봐서도 그것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예요. 그래서 이 부분을 주경 하면서 어떤 분이 뭐라고 해석을 했느냐 하면, 마치 경건이라는 날개로 저 높이 올라가는데 그러나 그 눈은 독수리처럼 뭘 보느냐? 저 땅에 기어다니는 잡아먹을 것을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그의 눈은 욕심을 가지고 땅의 것을 찾는다!
이 배경은 뭐 특별히 성직자들이나 오래 믿은 묵은 디이 들이나 뭐 여러 가지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은, 저는 그런 어떤 적용보다도 우리 개개인으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애를 쓰는 배경이 나도 모르게... 정말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 구원의 역사에 참 생명을 주신 역사에 감사해서 보다도 이런 경건 생활을 하면 할수록 다른 욕심을 가지고 살피는 눈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많은 경우 빠지게 되는 함정입니다. 이것이 뭐냐하면, 이걸로 끝나면 되는데 뭐냐하면 사단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더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사단이 들어오는 통로가 열리고, 사단이 들어오는 이런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에, 경건하게 사는데도 자꾸만 내 가정에 재난이 오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느냐?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들어오는 흑암에 세력들이 여기에서 일어나게 되는 배경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영적 싸움에 있어서 들어오는 배경이 뭔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만 이걸 알면, 저는 그 정신문제 있는 사람들도 그렇더라 구요.
메시지를 받게 되고 메시지를 듣게 되면 어떤 힘이 오느냐 하면, '내가 이렇게 약해지면 들어오는 구나!' 하는 통로를 알아요. 그러면 정신문제 있는 사람들이, '아, 이게 들어오는 통로구나!' 이것만 깨달아도 정신문제가 극복이 됩니다. 그러니 알기만 해도 됩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영적 문제는 알기만 해도 해결된다!" 알기만 해도 해결되어요. 그런데 진짜 영적 문제 있는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 게 또 특징이라! 이 못 알아들어요. 이상하게, 이상한 게 아니고 정상이지! 그걸 가지고 뭐라 그러느냐 하면, 받아합시다. "잡혔다!" 뭐에 잡혔어요? 사단에게 잡혔다! 이겁니다. 이상하게 못 알아들어요. 그러니까 꼬집어 줘도 못 알아들어요. 못 알아듣고, 오히려 오해를 하는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 허물이 지적될 때에, '아, 맞다!' 알아듣는 수준이 참 이건 생명 안 가지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게 바로 되어야 이걸 알아듣습니다. 그걸 알아듣는 것만 해도 그건 축복 중에 축복이에요. 부부 싸움할 때는 주로 못 알아들으니까, 싸움하는 것이거든요. 암만 지적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여러분 부부 싸움하는 사람일수록 영적 문제가 많습니다. 그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건 '잘했다, 못했다!'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조용히 한번 깊이 살펴 볼 수 있는 그런 문제인 것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는 복음에 원수로 살지만 그들의 파벌이나 그들의 이익집단을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합니다. 어떤 면에서 안 믿는 자들이 자기의 어떤 이익이나 이런 것을 위해서는 더 철저히, 열심히 노력하고, 오히려 이단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성경에 15절에 보면, "(마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그랬습니다. 참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참 두려워해야 될 부분입니다. 우리가 정말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뭐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할 것도 없어요. 저절로...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 오고 난 후에 바울이 그의 생애를 완전히 하나님께 드렸던 배경이 그것이거든요. 정말 좋은 것을 좋은 줄 알면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삶이 얼마나 좋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랑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전도라는 배경이, '전도는 복 받는다!' 그 배경이 아니고,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이 전도하는 것이지,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복 받으려고 전도한다! 그건 말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전도할 수 있다고 하는 복이 엄청난 복입니다. 전도, '복 받기 위해서 전도하러 가야지!' 이것은 벌써 복 받는 게 아니죠. 그런 어떤 개념하고는 벌써 다른 개념이에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적인 이익집단을 만들기 위해서도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사회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복음 가지고 조금만 하나님 앞에 섰다! 그러면 진짜 복음 가지고 선 자들의 삶이 안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도 모르게 보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보면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과 이익을 더욱 추구하기 위해서 뭘 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거짓말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흔히 거룩한 거짓말이라 그러는데 그건 거룩한 거짓말 붙이면 안되고 그건 악한 거짓말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붙일만한데 거짓말하면 더 악한 것이죠. 이건 엄청난 그런 문제가 되죠. 그래서 23장 16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소경 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성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먹고삽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재단으로 맹세한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그게 진짜 맹세예요.
그런데 성전에 재물, 금으로, 예물로 맹세하면 하는 것은 뭐냐하면, 이건 자기들도 모르게 뭘 강요하느냐 하면, 예물을 강요하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헌금을 많이 내어놓고 기도하면 복 받는다 하는 그런 식입니다. 헌금을 많이 내어놓고 맹세하면 효과가 더 있고, 적게 내어놓고 맹세하면 그것은 효과가 없다! 그런 이야기거든요. 뭐냐하면 많은 경우 백성들로 하여금 헌물을 많이 드리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참 축복의 배경으로, 참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 역사 속에 있는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들이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기 위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일조를 많이 드린다! 적게 드린다! 문제가 아닙니다. 어저께 어떤 목사님이, '목사님, 요사이 불경기가 되어 가지고 어떤 분이 사업을 했는데 사업을 했는데도 수입이 없어서 십일조를 못 합니다!' 이러더라 그래요. 그래서 십일조라는 문제에 근본을 놓쳤다! 특히 뒤에 좀 설명이 나옵니다 만은, 수입이 있다, 없다! 이런 배경 이전에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 얼마 벌었다! 안 벌었다! 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 같은 경우에는 전부 다 드렸는데, 그리고 브리스가 부부도 마찬가지로 다 드렸는데, 하나님 앞에 내가 복음 위해서는 내 생명도 아깝지 않게 다 드립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뭘 말하느냐! 어떤 사람은 벌든지, 안 벌든지 한 달에 딱 정해놓고, 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사람들도 있더라 구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십일조가 아니고, 10에 9는 드리고 하나만 가지고 살더라 구요. 여러분 하나만 가지고 살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면 그건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많이 드렸다, 적게 드렸다!' 이걸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뭐냐? 십일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내게 주셨구나!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먹는다!' 이 믿음을 내가 물질 받았을 때에 그 물질을 하나님 앞에 하나를 떼어 드림으로 인해서 날마다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오해를 했습니다.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뭐냐? 사소한 곳에는 엄격하고, 보다 근본적인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23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바리새인들이 여기에 이건 뭐 너무 확실한 거니까! 십일조는 막 강조를 하면서도 십일조를 하게 되는,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배경! '어째서 내가 십일조를 하느냐?' 이것은 지금 강조를 못했거든요. 십일조 한다고 그럴 때는 그냥 '얼마 한다!' 그걸로 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여러분들이 지금 교회 나와서 내가 십일조를 적게 드리든지, 많이 드렸든지, 감사라든지, 그 다음에 내가 하나님 앞에 헌금을 형편이 있어서 많이 드렸든지, 못 드렸든지 간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늘 우리 하나님 앞에 드릴 때에 그게 고백이거든요. 이 믿음이 안 된 상황은 그것은 드렸다! 그걸로 자랑할게 없다! 이겁니다. 드려서 되는 건 아닙니다. 많은 경우 드리고도 이렇게 악하게 외식하게 되고, 그 다음에 드리고도 이런 사람들이 어떤 경우가 생기느냐 하면, 자기들도 모르게 좀 어렵고 힘들어도, 어렵고 힘든 척을 안 합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외식하는 이런 사람일수록 망하면 절대로 망한 척 하지 않습니다.
그래가지고는 돈을 뒤로는 다 자꾸 꾸어 가지고 가고,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주면서도 절대로 그런 사람은 피해를 주는 것처럼 안 합니다. 그래서 교회문제가 이런 사람들은 문제더라 구요. 나중에 터지니까,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던지, 그런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정말 생명이 있을 때에 정말 생명, 생명 주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먹고산다, 마신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오늘 생명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좋고 나쁜 것, 높고 낮음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그 하나님 앞에 내가 얻고 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지, 이게 안되면 자꾸 다른 것이 나와요.
그 다음에 여섯 번째 외식으로 치중해서 내면은 소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3장 25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이것은 겉과 속, 그래서 외식은 죽은 사람일수록, 생명이 없을수록 이게 나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참 재미있는 것은 옛날 같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이렇게 자꾸 오는 것 같아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미국도 그렇고 가깝게는 일본도 보니까 그렇더라 구요. 제가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그럴 때에 시체가 되면 그걸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니고, 딱 시체를 화장 시켜요. 근사하게 분도 바르고, 연지도 찍고, 입술에도 루즈를 바르고,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하면, 관에다가 넣는데 그 앞에는 유리로 해서 얼굴이 보여지도록 그렇게 관을 만들더라 구요. 그리고 이제 안 썩도록 뭔가 드라이 아이스도 넣고 그래가지고 하는데,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추세가 보이더라 구요.
옛날 우리 풍습에는 일단 돌아가셨다! 꽁꽁 묶어 가지고, 그것도 많이 묶는 것을 자랑해서 일곱 가닥으로 꽁꽁 묶고 발로 밟아 가지고 그렇게 묻어버렸는데, 외국 같은 경우에는 다 화장을 시킵니다. 시체는 화장을 시킬수록 속은 더 섞습니다. '죽었다!' 그럴 때는 아무리 겉을 깨끗이 해도 속은 더 섞습니다. 생명을 잃었을 때에는 이건 비참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 믿었다! 안 믿었다! 그 정도가 아니고 정말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 없는 신앙생활, 이건 시간 갈수록, 치장할수록, 경건 생활할수록, 뭐 십일조 하려고 애쓸수록, 노력할수록, 점점 더 비참해진다!
그래서 오늘 날 복음 없은 그런 신앙인들, 그래서 오는 것이 이 땅이 망하고, 이 땅이 어려운 거 아닙니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축복이 안되니까, 재난과 재앙들이 계속해서 들이닥치고, 결국은 지금현재 여러분 보세요. 교회가 무너지게 되고, 세상이 무너지게 되는 이런 엄청난 문제들이 지금 닥쳐오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시점에서, 여러분 지금 이런 시점에서 여러 가지 모든 문제가 터질 때에 지난주에도 제가 강조를 했습니다 만은, 한가지 빨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바로 그 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오늘도 내 안에 오시옵소서!' 그분을 통해서 정말 축복하실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생명의 사실을 누릴 수 있는 이 신앙이 회복 안되면 우리는 점점 외식이 되어요. 점점 종교 배우가 됩니다. 점점 더 꾸미게 됩니다. 사실이 없으니까 꾸밀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 연기 잘합니다. 이것이 하루 이틀 가고 1년, 2년 가고 3년, 4년 가고 점점 시간 갈수록 점점 잘합니다.
나는 목사가 되어 가지고 참 어려웠던 것이, 처음 전도사 때에 제가 뭔가 교회 담임을 하고 있을 때에는, 부부싸움하고 있는 도중에 교인들이 찾아와서, '전도사님!' 할 때만큼 괴로운 때가 없어요. 그때는 문열면 싸우던 얼굴을 해 가지고 문을 여는데, 지금쯤은 여러분들이 우리 집에 와서 '목사님!' 그러면서 찾아왔어도 절대로 내가 싸우는 얼굴로 문열고 그렇게 얼굴 보이는 일은 거의 없지 싶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제는 수십 년 하다보니까 완전히 늘어 가지고 얼굴 바꾸는데는 도사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느냐? 정말 사실이 없이 신앙생활하면 시간 갈수록 외식에 도사가 됩니다. 이것만큼 비참한 것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참 기쁨이 없는데 기쁜 척 하려고 하니까, 어렵습니다. 기쁜 척 안 하고, 걱정 안 하는 척, 그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니까 걱정하고 자꾸만 늘 우울해 하고 보이고 이러면, '저 사람 신앙 없다!' 소리 하니까, 그렇게 말이라도 안 들어야 되니까! 얼마나 어렵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말세에 그렇지 않아도 자꾸 세상이 어려워지거든요.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때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앙에 역사, 믿음 회복입니다. 다른 게 없어요. 참 생명이 여러분 회복되고, 내가 기쁘게 노력해서가 아니라 기뻐지고, 감사하고, 찬양이 나오고, 이것이 내 삶에서 저절로 이루어져야 참 된 신앙 생활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있는 선지자들은 미워하고 죽은 선지자들을 위해서는 비석을 쌓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말하면서 참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어렵지만 너무나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한 것이 뭐냐하면, 29절에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마 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랬습니다. '선지자를 조상들은 죽였지만 내가 만약에 그때 있었다면 나는 안 그랬으리라!' 그러면서도 지금 의인 중에 의인이요, 메시아 중에 메시아인 말하자면 메시아 바로 그분이신 누구를 핍박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현재 모순이거든요.
그런 마음이 들어요. 저는 절대로 우리 교인들은 안 그러리라고 나는 믿고 있거든요. 다른 교회 목사님은 좋아 보이는데 본 교회 목사님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안 좋아 보여... 다른 교회 목사님은 존경 스러운데 우리 교회 목사님은 맨 날 대하고 맨 날 들으니까 뭐 그저 그래... 조금 더 이제 그 사실적으로 우리가운데 이렇게 해석을 한다 그러면 이것이 그저 지나가는 말일 것 같지만 여러분들에게 축복되는 메시지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뭐 박 목사가 좋게 보였던지 나쁘게 보였던지 간에 내게 축복해주시는 메시지는 박 목사가 지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되느냐? 지금 은혜 받는 훈련이 안되어 있으면 이 어려운 시대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 남을 수가 없어요.
제가 우리 딸아이 이야기를 가끔 해요. 하는데 그 하게 된 배경이 걱정이 되어서 하거든요. 뭐냐하면 정리된 교회, 우리 교회에 있다가 다른데 가보니까, 개척교회고 이러니까 아무래도 뭔가 이 목사님이 주도해서 마음대로 하고, 또 뭔가 하고 이러니까, 쭉 뭐 기관이 이렇게 하는 것하고 다르니까! '아, 저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 게 자꾸 오잖아요. 오니까 어떤 게 있느냐 하면, 그렇게 오니까 자꾸 강단의 메시지에 은혜를 못 받게 되는 문제가 생기더라 구요. 그래서 요전 앞에 한번 전화가 왔을 때에, '네가 어떤 위기에도, 어떤 상황에도 살아남고, 이 세대에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네가 이 믿음을 가져야 된다!' 그러면서 설명을 좀 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목사님이 어떻든지, 교인들이 어떻든지,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하고 있던지, 그래서 막 심지어는 보기도 싫은 사람이 되었다 할지라도, '강단에서 메시지 전할 때에 그 메시지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왜, 그러냐 하면요, 외국에서 살면 외국에서 사는 자체가 병이 옵니다. 영육 간에 오더라 구요. 지난번에도 왔다가 갔는데, 왜 왔다가 갔느냐 하면, '오라!' 그래서 왔다 갔어요. 거기 가니까 꽃이 만발하고 또 기후가 안 맞으니까, 생전에 없던 알레르기 증세가 나오는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 닮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일단 막 콧물이 나오고 그러니까, 그래서 이걸 치료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왔다 갔어요.
왔다가 갔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콧물 나고 애를 먹었는데 한국에 딱 나왔다! 없어져 버렸어요. 그게 기후 차이에요.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이 풍토에는 적응이 되어 있는데, 외국에는 적응이 안되었어요. 그러니까 이 병이 나오는 겁니다. 거기다가 메시지를 못 들었다! 영혼에 병까지 옵니다. 여러분 외국 가 있는 사람들은 정말 자기 본 강단에서 말씀 못 들으면, 말씀에 은혜 못 받으면 그건 죽습니다. 말씀 못 받는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말씀 못 받게 되면 누가 옵니까? 흑암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개인도 영육 간에 병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가정이 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외국에, 한국에서 간 사람들의 가정이 많이 깨어지는 것이 이게 문제거든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누가 어떻든지 상관없습니다. 박 목사가 어떻든지, 상관없습니다. 이 자리에 서서 말할 때에 제가 소설책을 번역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다른 이야기를 제가 섞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어떤 환경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위기에서든지 살아 남을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자!' 그게 뭡니까? 지금 이 시간 은혜 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강단에 은혜 받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구역에서, 지금 앉아있는 구역에서 은혜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 앉아있는 다락방에서 은혜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여러분 말씀이 들어갔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씀 받는 순간, 순간 흑암들이 꺾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여러분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복잡한 시대 아닙니까!
보세요, 교회 들어와서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해보세요. 신앙 다 떨어집니다. 송현교회 오면 엄청 좋은 교회로 소문은 많이 나 있어요. 들어와 보죠, 이상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비록 우리 교회뿐 아니라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옛날 목사님들이 말이 있어요. 옛날말로 '통시 똑같다!' 그래요. 요즘 사람들은 알아들으면 알아듣고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고... 그 말은 '교회 다를 게 없다!' 그 말입니다. 잘 알아 들어야됩니다.
집사님들 모여서 이야기하죠, 집사님들 모여서 이야기한번 녹음해놓아 보세요. 그게 신앙 떨어지는 이야기들만 하지, 신앙 주는 이야기 잘 안나옵니다. 더군다나 더 문제는 장로님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 보면, 그건 신앙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고 열 받히는 이야기만 합니다. 왜? 교회를 걱정하게 되니까! 자연적으로 교회 걱정이 나오게 되죠. 그뿐 아닙니다. 노회 가서 목사님 이야기하는 것 들어보세요. 여러분 조금 있는 신앙도 다 떨어져 나갑니다.
여러분 정말 이 말세에 '참 믿음을 보겠느냐?'하는 이런 시대에, 오늘 어떤 위기에서든지, 어떤 문제에서든지 지금 은혜 받는 믿음이 회복되어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은혜 받는 이 축복된 순간이 여러분 어디에서 제일 확인되느냐? 초 신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감격에 간증할 때에, 이건 은혜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마 우리 교인들은 많이 이해하잖아요. 내가 데려온 신자가 신앙 고백하는 것을 들을 때에, 세례 받는 걸 볼 때에, 학습 받는 것을 볼 때에, 믿음이 저절로 쑥쑥 자랍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그러든지 상관없어요. 현장 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전했더니만, 죽음과 멸망에서 흑암 권세가 떠나가는 사실을 볼 때마다, '아, 예수 그리스도 뿐이구나!'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일을 가지고 뭐라 그럽니까? 교인들이 현장 잃어버리면 지금 은혜 받는 일이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빨리 300미션 홈, 3000제자 찾는다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는 뭐 교회 부흥되기 위해서 한다! 이게 아니고 우선 여러분과 제가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도, 현장에 복음 전할 수 있는 눈이 안 여리면 회복이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되어지면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들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귀가 번쩍 번쩍 열려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저절로... 제가 이렇게 보면 고개 끄덕 끄덕 하는 사람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에요. 다 알아요. 누가 눈감고 조느냐! 다 알아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누가 은혜 받고 있느냐! 지금 은혜 받는 게 다른 게 없어요. 이 축복된 역사,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으로 이 말세의 세대에 우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마지막 예루살렘 멸망을 선고했습니다. '멸망을 선고하는 것으로 세상이 망하느냐?'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나는 이걸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회복하자!'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하나님은 예루살렘 멸망을 선고했지만, 그 예루살렘 멸망 선고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선고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전 세계를 살리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고 이어서 이방인으로 구원이 넘어왔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러분 로마에 흉노족이 쳐들어 왔을 때에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그것이 오히려 전 세계가 복음화 되어 가는 축복의 역사로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겁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주권!'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하나님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되어지는데, 이걸 딱 붙들어야 됩니다. 여러분 주권 신앙 그럴 때에, 이게 잘못되어져서 아마 믿음이 옳게 안 되는 것 같아요. 뭐냐하면요, 하나님의 주권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내 마음대로 한다! 내게 와서 내 일과 삶을 내 마음대로 하신다!' 그런 배경이 아니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축복의 계획을 세우시고, 여러분과 저를 주권 적으로 인도하신다! 이 이야기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축복하실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그게 이어서 주권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마음대로... 그래가지고 '하나님, 왜 이럽니까!' 덤벼들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이 일을 이루셨다!'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계획이 성취되는 구나!' 그 말은 뭡니까? 내게 축복 주시기 위한 계획입니다. 이것이 주권 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걸 조금 순종만 해도 축복 받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러는 것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순종 안 하려고 마치 세계적인 사명을 타고 나온 사람처럼 대들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 이게 문제거든요.
오늘도 여러분 이 방향에 조금만 맞추어놓고,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이런 8가지 방향! 여러분 조금만 눈뜨고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조금만 맞추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세우시는 그 주권적인 역사를 조금만 보세요. 오늘도 이 사건과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하실 역사로 인도하시는 구나! 조금만 알고 방향 맞추어 나가면 생각만 해도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역사 하시는 사실이 한 주간도 체험되고, 한 주간도 역사 되어질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이 일에 참여한 여러분들이 이 사건을 체험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7절부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면서 멸망을 선고하십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13절부터 나오는 8가지의 화로서 밝히고 있습니다. 생명으로부터 8가지 복이 온 것처럼, 8가지 화는 생명이 없을 때 오는 화이며, 생명이 없을 때 빠져드는 사단의 통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8가지 화는 생명이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죄악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들 때문에 결국 탄식과 함께 멸망의 역사가 선고된 것입니다.
정말 예수를 믿고 복음이 없는 것만큼 큰 불행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8가지 화 속에 빠졌던 생명 없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한 마디로 외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의 역할을 하는 배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 배우들은 환호를 받고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결국은 저주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외식이라는 말 속에 모든 악한 성격이 요약되어 있고, 사단의 모든 악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참 생명이 없다면 교회에 나와서 신앙 생활을 할려고 노력할수록 환호를 받을 수 있고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만큼 악한 것이 없습니다.
1. 생명이 없이 신앙 생활을 할 때 복음의 원수가 됩니다.
(1) 13절에 보면, 메시야를 믿고 가르쳐야 할 바리새인들이 참 생명이 없으니까 오히려 메시야를 가로막았습니다.
(2) 바리새인들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막기까지 했습니다.
(3)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때 다른 문제들도 해결됩니다.
① 구원의 축복을 체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을 낼수록 더 이상하게 됩니다.
(4) 어린 아이가 생명만 있으면 자라는 것처럼, 예수 생명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① 신앙 생활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하늘로부터 오는 힘으로 모든 것이 저절로 되어집니다.
(5) 복음이 되면 복음의 축복을 함께 누리는 자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누리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의 원수가 됩니다.
2. 종교와 경건을 자신의 이익과 탐욕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1) 복음이 없으면 예수 믿는 것도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방편으로 삼습니다.
(2) 정말로 신앙 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①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② 예수 믿는 것을 빙자해서 전부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불평만 늘어놓지는 않습니까?
(3) 본문 14절에 (없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다른 사본을 참조해 보면, 마가복음 12장 40절과 같은 말씀인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심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재산 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과부 등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었었습니다.
② 그들이 그렇게 하게 된 배경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믿을 수 있는 성직자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③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높이 인정받는 외식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④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날개치며 올라가면서도 눈은 땅에 있는 먹이를 찾는 독수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우리 자신이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배경이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구원에 감사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른 욕심을 가지고 살피는 눈으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① 이것은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됩니다.
②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열리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 영적 싸움에 있어서 사단이 들어오는 배경이 무엇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 영적 문제는 알기만 해도 해결됩니다.
㉢ 진짜 영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약한 틈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꼬집어 줄 때 오해하기까지 합니다.
㉣ 허물을 지적할 때 알아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 가능하며, 이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3. 복음의 원수로 살지만, 그들의 파벌이나 이익 집단을 위해서는 열심을 냅니다.
(1) 안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더욱 열심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15절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참으로 두려워 해야 합니다.
(3) 정말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저절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풍성함을 말하는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4) 복음이 없는 이익 집단도 열심을 내는데,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4.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이익을 더욱 추구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1) 16절부터의 말씀을 보면, 성전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먹고 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물을 강조합니다.
① 헌금을 많이 내고 맹세하면 효과가 더 있다는 말입니다.
② 백성들로 하여금 헌물을 많이 드리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2) 자기의 이익을 찾기 위해서 근본적인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3) 십일조의 근본은 그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①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내게 주셨구나’,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먹는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5. 사소한 것에는 엄격하고, 보다 근본적인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1) 23절에 보면, 예물은 강조하면서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고 책망합니다.
(2) 십일조는 강조하면서도, 십일조를 하는 배경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① 십일조는 얼마를 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②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3) 외식하는 사람일수록 망해도 망한척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4) 정말 생명이 있을 때 생명 주신 하나님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6. 외식으로 치중해서 내면에 소홀하게 됩니다.
(1) 24-25절에 보면 겉은 깨끗이 하되,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했습니다.
① 생명이 없을수록 이것이 나옵니다.
(2) 외국의 경우, 시체를 화장(化粧, beauty make-up)을 시켜서 관에 넣고 유리로 덮어서 보이도록 합니다.
① 생명이 없는 시체는 화장을 시킬수록 속은 더 썩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 생활은 치장할수록 점점 더 비참해집니다.
(3) 복음 없는 신앙인들 때문에 재난과 재앙이 계속해서 들이닥쳐서 망하는 것입니다.
①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②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점점 더 외식하게 됩니다.
① 자신이 없으니까 꾸밀 수밖에 없습니다.
② 사실적 체험 없이 신앙 생활을 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외식하게 됩니다.
(5)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앙의 역사는 믿음의 회복입니다.
(6) 참으로 기뻐지고 찬양이 나오는 것이 삶 속에서 저절로 나와야 참된 신앙 생활이 되어집니다.
7. 함께 있는 선지자들은 미워하고, 죽은 선지자들은 존경합니다.
(1) 29절부터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죽였지만 자기들이라면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2) 다른 교회 목사님은 좋아보이는데, 우리 교회 목사님을 그렇지 않습니까?
① 강단의 메시지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이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② 어떤 위기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단의 메시지 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③ 말씀을 받지 못하면 흑암의 세력이 들어와서 개인과 가정이 깨어집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이 들어가면 흑암이 사라집니다.
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금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는 믿음이 회복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3) 복음을 전해서 새신자에게 믿음이 생겨나는 것을 볼 때 은혜가 저절로 넘칩니다.
①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을 잃으면 지금 은혜 받는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② 이 축복된 역사가 말세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뒤에 전 세계를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방으로 구원이 넘어갔습니다. 로마에 흉노족이 처들어왔을 때, 그 사건은 전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주권 신앙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신다’라는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의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주권적으로 인도하신다’라는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계획을 세워놓으셨다는 것이 주권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께 덤벼들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계획이라는 사실을 믿고 순종하시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8가지 방향을 눈뜨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권적인 역사를 조금만이라도 바라보십시오. 조금만 방향을 맞추고 생각만 해도 축복하시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八福)과 마태복음 23장의 팔화(八禍)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음(5장 3절)
교만한 자는 천국문을 닫음(22장 13절)
2.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음(5장 4절)
3.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음(5장 5절)
남을 실족케 하는 자는 화를 당함(22장 15절)
4. 의에 주린 자는 배부를 것임(5장 6절)
물질을 얻기에 탐하는 자는 비게 됨(22장 16~22절)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음(5장 7절)
작은 일에 대해서도 자비롭지 못한 자는 화입음(22장 24절)
6.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5장 8절)
겉은 깨끗하되 속은 더러운 자는 저주받음(22장 25~26절)
7. 화평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워짐(5장 9절)
외식하고 형식에 치우친 자들은 화받음(22장 27~28절)
8. 의를 위해 핍박당하는 자는 천국을 얻음(5장 10~12절)
의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마귀의 자녀들로 불리움(22장 29~33절)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마 2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 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마 23: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제목을 '멸망의 선고'라고 삼았습니다. 37절부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러면서 멸망을 선고하는 이런 배경이 나옵니다 만은, 바로 이렇게 된 이유들이 여덟까지 화로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이렇게 여덟까지 화로, 13절 이하부터 쭉 나오는 메시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8복에 대비해서 여덟까지 화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여덟까지 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뭔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좀 뭉뚱그려서 뭔가 개괄적인 면을 좀 정리를 해야 되겠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지금 이것을 그냥 넘길 것이 아니고, 중요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신 메시지, 또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그런 기회로 삼아야되겠습니다.
8복을 강의 할 때도 중요한 것은, 복음을 빼버리면 그 8복은 완전히 도덕입니다. 그래서 그 8복을 구체적으로 누리고, 그 8복을 하나님 은혜로 효과적으로 우리 개개인에게 성취되는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 속에 그것이 이루어지고 오늘 똑같이 8가지 화도 똑같이 뭐냐하면, 생명이 없을 때에 오는 화입니다. '생명이 없을 때에 빠져 가는 사단의 통로다!' 그렇게 이해하면 더욱 쉽겠죠. 그래서 이 8가지 화는 생명이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죄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저지른 이 죄악들 곧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렀던 그 죄악들 때문에 결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탄식과 함께 이 멸망의 역사가 선포됩니다.
이 멸망의 역사에 선고조차도, 그것조차도 역사에 보면, '하나님의 축복된 주권적인 역사다!' 그렇게 또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뭘 좀 붙잡아야 되느냐 하면, 정말 예수 믿고 복음 없다! 이것만큼 불행스러운 게 없어요. 모든 불행은 여기에 다 있어요. 그냥 일반적으로 뭐 그냥 '복 받았다, 안 받았다!' 이런 것보다도 복음을 받았느냐? 이것은 뭐 엄청난 축복과 은혜다! 그러나 복음이 없느냐? 그것은 엄청난 저주다! 복음과 연결된 것은 그냥 받는다! 큰복이지만, 그 다음에 반대방향으로, 반대편으로 그것은 또 엄청난 저주다! 그렇게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8가지 죄악, 8가지 화! 저주 속에 빠졌던 생명 없는 그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이 여덟까지 죄를 짓게 되는... 뭐 하나로 뭉뚱그려서 말한다 그러면, 이들이 무슨 죄에 빠지느냐? '생명이 없다!' 그럴 때에 외식에 빠진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께서 "(마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에 외식이라는 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원문에서는 배우라는 말입니다. 종교 배우다! 외식할 때에 종교 배우에 빠진다! 배우라는 것은 사실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사실 재미있는 것은 이 배우들도 인기를 얻습니다. 또 환호를 받습니다. 똑같이 이 종교배우들도 아주 역할만 잘하면 환호를 받습니다. 아주 인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종교배우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과 상관없이 그것은 엄청난 그런 이 저주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마디로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이 '종교배우다! 외식이다!' 하는 이 말속에 모든 악한 성격이 요약되어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외식한다!'는 말속에, 사단의 역사에 모든 악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전부 통로입니다. 쉽게 말해서 교회 나왔다 정말 참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를 썼다! 노력한다! 또 아니면 일반적으로 뭐 도덕적이다! 뭐 어떻다! 그렇게 할수록 참 생명 없이 종교배우로 노력한다! 그러면 환호를 받을 수 있고,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악한 것이 없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게 왜, 악하냐? 왜, 그렇게 되느냐? 하는 것은 이제 쭉 다음에 설명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설명을 7가지로 하나에 보면 두 가지가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설명을 하려고 그러면 7가지로 나누어줄 수 있는데, 그것을 먼저 말한다 그러면, 첫 번에 이 생명이 없이 내가 신앙생활 한다고 그럴 때에, 자기도 모르게 '복음에 원수가 된다!' 그랬습니다. 생명이 없이 열심을 낸다! 복음에 원수다! 그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제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전도를 하고, 정말 복음 전하는데 방해된다, 장애 된다! 또 그 다음에 이걸 반대한다! 그게 간단한 이유가 아닙니다. 이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좀 강조해버리니까 뭐가 나오느냐 하면, 반대 급부로 아주 엄청난 그런 어떤 판단이 되는 이건 것이 되어요.
그래서 우리 다락방을 하게 되고, 또 그 다음에 이 전도한다는 것에 방향을 맞추어 있는 여러분들이 초기에 그랬던 그런 어떤 잘못들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왜 잘못하면 이런데 빠질 수 있어요. 이런데 빠질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만... 그런데 '빠졌다!' 정 죄 해버리고 판단해 버리니까, 문제가 오는 것이 되었는데, 13절 말씀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메시아를 전하고, 이 구원을 온 세상에 전해야될 사명을 가진 자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걸 가르쳐 주어야 되요. 그런데도 참 생명, 말하자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로 가져야 될 참 생명이 그들에게 없으니까, 이 메시아를 가로막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니까! 복음을 막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까지 막았습니다. 그 결과가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이제 말한 것처럼 종교에 열심 내고, 생명 없이 열심 내게되면 이런 결과가 와 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조금 다음 구절 말씀에 보면, '한 생명을 얻으려고 들과 산으로 쫓아다니면서 그래 놓고도 얻어놓으면 자기보다 더 악한 자를 만든다!'그랬습니다. 결과가 그렇게 되어 버려요. 참 생명이 없어지게 될 때에 여러분들이 이 시간에 늘 그럽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여기에 감사 정도가 아니고 엄청난 축복이 우리가 실제로 체험되고 날마다 이 삶의 역사 속에 우리가 살아야 그 다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요.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이제 말씀한 것처럼 반대로 8가지 화가 나온다! 이겁니다. 이게 참 비참한 문제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안된데 열심을 내면 열심을 낼수록 더 이상하게 되어버린다. 이런 문제가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게 참 쉬운데도 예수 믿는 게 왜 그렇게 어렵게 보여지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여러분 어린 아이가 자라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참 쉽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자랍니다. 뭐만 있으면? 생명만 있으면 자랍니다. 문제는 죽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자라날수가 없어요. 거기다가 죽었는데 자라나도록 팔다리 당기면 빠져버리는 것이지, 그게 자라날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이 종교라는 것이 잘못 오해가 되고 있으면 여기에 이런 문제가 와요.
정말 예수 믿는 것이 생명 가지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없으면 뭔가 내가 하려고 애를 써야 돼요. 여러분 호흡하는 것을, 호흡을 일부러 하려고 애를 쓰면 이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밤에 자면서 호흡하려고 그러면 눈뜨고 깨어서 잠도 못 자고 호흡해야 됩니다. 그런데 생명 있는 자는 저절로 하게 되어있어요. 밤에 자도 하게 되고, 어려워도 하게 되고, 좋아도 하게 되고... 그런데 그것이 어려우냐? 저절로 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참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로부터 오는 그 하나님의 역사로, 그 힘으로, 오직 그분 바라보고... 지난주에 제가 메시지 한 것처럼 모든 문제 우선해서 신앙이 우선되어지는 이것이 내 체질이 되었다! 내 모든 것이 되었다! 저절로 되어지는 겁니다. '쉽다, 어렵다!' 그것과 상관없어요. 그래서 참 복음이 되면 복음에 축복을 함께 누리는 자들,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안되면 복음에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향한 화로 선언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해주시고 있는 것이, '종교와 경건을 자신의 이익과 탐욕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랬습니다. 복음이 안 되어있으면 내가 예수 믿는 것도 인간 욕심을 채우는 방편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그저 듣고, '그럴 것이다!' 그게 아니고, 정말 여러분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 뭡니까? 그래서 가끔 세례 받을 때에, '예수 믿는 목적이 뭐냐?' 이러면 뭐 나름대로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 대답을 잘 못해요. 여러분 왜 예수 믿습니까? 사람에 제일 되는 목적이 뭡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왜 그렇게 욕심을 자꾸 냅니까!
쉽게 말해서 기도하는데, 자꾸 그렇게 한번 해 보라 안 그럽니까! 녹음 한번 해보세요. 뭐라고 기도하는지! 내가 예수 믿는 것을 빙자해 가지고 전부 욕심으로 구합니다. 뭐 '하나님,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뭐 내놔라, 뭐 없다!' 욕심내지는 전부 불평입니다. '하나님, 왜 이럽니까! 어쩌다가 이렇게되었습니까!' 당연하지, 그렇게 된 것도 약과다! 우리가 진짜 이 신앙이 안되어요.
그런데 이 말씀은 몇 절을 가리켜서 말하느냐 하면, 14절입니다. 사실은 14절인데, 성경에는 23장 14절에 보면 우리 현재성경에는 가지고 있는데는 그 14절에 뭐라고 그래놓았어요? '(없음)'그래놓았어요. 이것은 우리 성경이 갖고 있는 사본은 14절은 기록이 안 되어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본이 많이 있습니다. 사본의 종류가...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사본에는 이게 안 나와있는데, 다른 많은 사본에는 이게 14절에는 어떻게 나와 있느냐 하면, 그 밑에 난 외주에 "1. 어떤 사본에, 14절에 막12:40과 눅20:47과 유사한 구절이 있음"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내용을 한번 읽어드리면, "(막 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또 "(눅 20:47)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에게 이 말을 합니다. 그 다음에 서기관들에게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어떤 권리까지 주었느냐 하면, 재산을 관리하기 힘드는, 재산을 관리하는데 무식해서 못한다거나 이런 어떤 사람들에게 그때 당시에 법으로 그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맡겼어요. 그러면 주로 이것이 잘 안 되는 분들이 여자분들이, 뭐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비슷하죠. 남자들은 공부시키는데, 여자들은 공부를 잘 안 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더군다나 이 과부가 되어 버리면 관리할 수 있는 그게 안되어요. 돈은 많은데도 관리할 수 없는 과부들이 많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관리를 누가 하느냐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그들이 성직자요, 그것도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는 사회적인 배경에서 그들에게 법적으로도 맡기고, 그들에게 이 일을 맡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신뢰한다!'는 그런 배경에서 어떤 신뢰하는 사람에게 더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중에도 정말 신뢰를 받는 사람! 그래서 이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 더 사회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때 택한 것이 뭐냐? '외식'이라 안 그럽니까! 외식이라고 할 때에 어떻게 했느냐? '시장바닥에서 다 남이 보는, 전부 보는데서 오랫동안 기도한다!' 그래요. 그래서 어떤 그 학자들은 보니까, '3시간 이상을 매일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집에 골방에 앉아서도 3시간동안 힘든데, 시장바닥에 서서 3시간 기도하는 것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뭘 하느냐? 경건하게 산다는, 경건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참 그때 당시에 어떤 풍습이라든가, 그런 어떤 경건주의, 경건 생활이 요즘 우리가 봐서도 그것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예요. 그래서 이 부분을 주경 하면서 어떤 분이 뭐라고 해석을 했느냐 하면, 마치 경건이라는 날개로 저 높이 올라가는데 그러나 그 눈은 독수리처럼 뭘 보느냐? 저 땅에 기어다니는 잡아먹을 것을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그의 눈은 욕심을 가지고 땅의 것을 찾는다!
이 배경은 뭐 특별히 성직자들이나 오래 믿은 묵은 디이 들이나 뭐 여러 가지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은, 저는 그런 어떤 적용보다도 우리 개개인으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애를 쓰는 배경이 나도 모르게... 정말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 구원의 역사에 참 생명을 주신 역사에 감사해서 보다도 이런 경건 생활을 하면 할수록 다른 욕심을 가지고 살피는 눈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많은 경우 빠지게 되는 함정입니다. 이것이 뭐냐하면, 이걸로 끝나면 되는데 뭐냐하면 사단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더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사단이 들어오는 통로가 열리고, 사단이 들어오는 이런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에, 경건하게 사는데도 자꾸만 내 가정에 재난이 오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느냐?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들어오는 흑암에 세력들이 여기에서 일어나게 되는 배경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영적 싸움에 있어서 들어오는 배경이 뭔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만 이걸 알면, 저는 그 정신문제 있는 사람들도 그렇더라 구요.
메시지를 받게 되고 메시지를 듣게 되면 어떤 힘이 오느냐 하면, '내가 이렇게 약해지면 들어오는 구나!' 하는 통로를 알아요. 그러면 정신문제 있는 사람들이, '아, 이게 들어오는 통로구나!' 이것만 깨달아도 정신문제가 극복이 됩니다. 그러니 알기만 해도 됩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영적 문제는 알기만 해도 해결된다!" 알기만 해도 해결되어요. 그런데 진짜 영적 문제 있는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 게 또 특징이라! 이 못 알아들어요. 이상하게, 이상한 게 아니고 정상이지! 그걸 가지고 뭐라 그러느냐 하면, 받아합시다. "잡혔다!" 뭐에 잡혔어요? 사단에게 잡혔다! 이겁니다. 이상하게 못 알아들어요. 그러니까 꼬집어 줘도 못 알아들어요. 못 알아듣고, 오히려 오해를 하는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 허물이 지적될 때에, '아, 맞다!' 알아듣는 수준이 참 이건 생명 안 가지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게 바로 되어야 이걸 알아듣습니다. 그걸 알아듣는 것만 해도 그건 축복 중에 축복이에요. 부부 싸움할 때는 주로 못 알아들으니까, 싸움하는 것이거든요. 암만 지적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여러분 부부 싸움하는 사람일수록 영적 문제가 많습니다. 그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건 '잘했다, 못했다!'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조용히 한번 깊이 살펴 볼 수 있는 그런 문제인 것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는 복음에 원수로 살지만 그들의 파벌이나 그들의 이익집단을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합니다. 어떤 면에서 안 믿는 자들이 자기의 어떤 이익이나 이런 것을 위해서는 더 철저히, 열심히 노력하고, 오히려 이단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성경에 15절에 보면, "(마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그랬습니다. 참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참 두려워해야 될 부분입니다. 우리가 정말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뭐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할 것도 없어요. 저절로...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 오고 난 후에 바울이 그의 생애를 완전히 하나님께 드렸던 배경이 그것이거든요. 정말 좋은 것을 좋은 줄 알면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삶이 얼마나 좋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랑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전도라는 배경이, '전도는 복 받는다!' 그 배경이 아니고,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이 전도하는 것이지,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복 받으려고 전도한다! 그건 말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전도할 수 있다고 하는 복이 엄청난 복입니다. 전도, '복 받기 위해서 전도하러 가야지!' 이것은 벌써 복 받는 게 아니죠. 그런 어떤 개념하고는 벌써 다른 개념이에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적인 이익집단을 만들기 위해서도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사회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복음 가지고 조금만 하나님 앞에 섰다! 그러면 진짜 복음 가지고 선 자들의 삶이 안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도 모르게 보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보면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과 이익을 더욱 추구하기 위해서 뭘 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거짓말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흔히 거룩한 거짓말이라 그러는데 그건 거룩한 거짓말 붙이면 안되고 그건 악한 거짓말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을 붙일만한데 거짓말하면 더 악한 것이죠. 이건 엄청난 그런 문제가 되죠. 그래서 23장 16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소경 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이건 뭘 말하느냐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성전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먹고삽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재단으로 맹세한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그게 진짜 맹세예요.
그런데 성전에 재물, 금으로, 예물로 맹세하면 하는 것은 뭐냐하면, 이건 자기들도 모르게 뭘 강요하느냐 하면, 예물을 강요하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헌금을 많이 내어놓고 기도하면 복 받는다 하는 그런 식입니다. 헌금을 많이 내어놓고 맹세하면 효과가 더 있고, 적게 내어놓고 맹세하면 그것은 효과가 없다! 그런 이야기거든요. 뭐냐하면 많은 경우 백성들로 하여금 헌물을 많이 드리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참 축복의 배경으로, 참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 역사 속에 있는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들이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기 위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일조를 많이 드린다! 적게 드린다! 문제가 아닙니다. 어저께 어떤 목사님이, '목사님, 요사이 불경기가 되어 가지고 어떤 분이 사업을 했는데 사업을 했는데도 수입이 없어서 십일조를 못 합니다!' 이러더라 그래요. 그래서 십일조라는 문제에 근본을 놓쳤다! 특히 뒤에 좀 설명이 나옵니다 만은, 수입이 있다, 없다! 이런 배경 이전에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 얼마 벌었다! 안 벌었다! 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 같은 경우에는 전부 다 드렸는데, 그리고 브리스가 부부도 마찬가지로 다 드렸는데, 하나님 앞에 내가 복음 위해서는 내 생명도 아깝지 않게 다 드립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뭘 말하느냐! 어떤 사람은 벌든지, 안 벌든지 한 달에 딱 정해놓고, 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사람들도 있더라 구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십일조가 아니고, 10에 9는 드리고 하나만 가지고 살더라 구요. 여러분 하나만 가지고 살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면 그건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많이 드렸다, 적게 드렸다!' 이걸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뭐냐? 십일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내게 주셨구나!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먹는다!' 이 믿음을 내가 물질 받았을 때에 그 물질을 하나님 앞에 하나를 떼어 드림으로 인해서 날마다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오해를 했습니다.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뭐냐? 사소한 곳에는 엄격하고, 보다 근본적인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23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바리새인들이 여기에 이건 뭐 너무 확실한 거니까! 십일조는 막 강조를 하면서도 십일조를 하게 되는,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배경! '어째서 내가 십일조를 하느냐?' 이것은 지금 강조를 못했거든요. 십일조 한다고 그럴 때는 그냥 '얼마 한다!' 그걸로 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여러분들이 지금 교회 나와서 내가 십일조를 적게 드리든지, 많이 드렸든지, 감사라든지, 그 다음에 내가 하나님 앞에 헌금을 형편이 있어서 많이 드렸든지, 못 드렸든지 간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늘 우리 하나님 앞에 드릴 때에 그게 고백이거든요. 이 믿음이 안 된 상황은 그것은 드렸다! 그걸로 자랑할게 없다! 이겁니다. 드려서 되는 건 아닙니다. 많은 경우 드리고도 이렇게 악하게 외식하게 되고, 그 다음에 드리고도 이런 사람들이 어떤 경우가 생기느냐 하면, 자기들도 모르게 좀 어렵고 힘들어도, 어렵고 힘든 척을 안 합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외식하는 이런 사람일수록 망하면 절대로 망한 척 하지 않습니다.
그래가지고는 돈을 뒤로는 다 자꾸 꾸어 가지고 가고,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주면서도 절대로 그런 사람은 피해를 주는 것처럼 안 합니다. 그래서 교회문제가 이런 사람들은 문제더라 구요. 나중에 터지니까,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던지, 그런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정말 생명이 있을 때에 정말 생명, 생명 주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먹고산다, 마신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오늘 생명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좋고 나쁜 것, 높고 낮음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그 하나님 앞에 내가 얻고 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지, 이게 안되면 자꾸 다른 것이 나와요.
그 다음에 여섯 번째 외식으로 치중해서 내면은 소홀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3장 25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이것은 겉과 속, 그래서 외식은 죽은 사람일수록, 생명이 없을수록 이게 나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참 재미있는 것은 옛날 같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이렇게 자꾸 오는 것 같아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미국도 그렇고 가깝게는 일본도 보니까 그렇더라 구요. 제가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그럴 때에 시체가 되면 그걸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니고, 딱 시체를 화장 시켜요. 근사하게 분도 바르고, 연지도 찍고, 입술에도 루즈를 바르고,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하면, 관에다가 넣는데 그 앞에는 유리로 해서 얼굴이 보여지도록 그렇게 관을 만들더라 구요. 그리고 이제 안 썩도록 뭔가 드라이 아이스도 넣고 그래가지고 하는데,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추세가 보이더라 구요.
옛날 우리 풍습에는 일단 돌아가셨다! 꽁꽁 묶어 가지고, 그것도 많이 묶는 것을 자랑해서 일곱 가닥으로 꽁꽁 묶고 발로 밟아 가지고 그렇게 묻어버렸는데, 외국 같은 경우에는 다 화장을 시킵니다. 시체는 화장을 시킬수록 속은 더 섞습니다. '죽었다!' 그럴 때는 아무리 겉을 깨끗이 해도 속은 더 섞습니다. 생명을 잃었을 때에는 이건 비참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 믿었다! 안 믿었다! 그 정도가 아니고 정말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 없는 신앙생활, 이건 시간 갈수록, 치장할수록, 경건 생활할수록, 뭐 십일조 하려고 애쓸수록, 노력할수록, 점점 더 비참해진다!
그래서 오늘 날 복음 없은 그런 신앙인들, 그래서 오는 것이 이 땅이 망하고, 이 땅이 어려운 거 아닙니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축복이 안되니까, 재난과 재앙들이 계속해서 들이닥치고, 결국은 지금현재 여러분 보세요. 교회가 무너지게 되고, 세상이 무너지게 되는 이런 엄청난 문제들이 지금 닥쳐오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시점에서, 여러분 지금 이런 시점에서 여러 가지 모든 문제가 터질 때에 지난주에도 제가 강조를 했습니다 만은, 한가지 빨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바로 그 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오늘도 내 안에 오시옵소서!' 그분을 통해서 정말 축복하실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생명의 사실을 누릴 수 있는 이 신앙이 회복 안되면 우리는 점점 외식이 되어요. 점점 종교 배우가 됩니다. 점점 더 꾸미게 됩니다. 사실이 없으니까 꾸밀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 연기 잘합니다. 이것이 하루 이틀 가고 1년, 2년 가고 3년, 4년 가고 점점 시간 갈수록 점점 잘합니다.
나는 목사가 되어 가지고 참 어려웠던 것이, 처음 전도사 때에 제가 뭔가 교회 담임을 하고 있을 때에는, 부부싸움하고 있는 도중에 교인들이 찾아와서, '전도사님!' 할 때만큼 괴로운 때가 없어요. 그때는 문열면 싸우던 얼굴을 해 가지고 문을 여는데, 지금쯤은 여러분들이 우리 집에 와서 '목사님!' 그러면서 찾아왔어도 절대로 내가 싸우는 얼굴로 문열고 그렇게 얼굴 보이는 일은 거의 없지 싶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제는 수십 년 하다보니까 완전히 늘어 가지고 얼굴 바꾸는데는 도사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느냐? 정말 사실이 없이 신앙생활하면 시간 갈수록 외식에 도사가 됩니다. 이것만큼 비참한 것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참 기쁨이 없는데 기쁜 척 하려고 하니까, 어렵습니다. 기쁜 척 안 하고, 걱정 안 하는 척, 그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니까 걱정하고 자꾸만 늘 우울해 하고 보이고 이러면, '저 사람 신앙 없다!' 소리 하니까, 그렇게 말이라도 안 들어야 되니까! 얼마나 어렵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말세에 그렇지 않아도 자꾸 세상이 어려워지거든요.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때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앙에 역사, 믿음 회복입니다. 다른 게 없어요. 참 생명이 여러분 회복되고, 내가 기쁘게 노력해서가 아니라 기뻐지고, 감사하고, 찬양이 나오고, 이것이 내 삶에서 저절로 이루어져야 참 된 신앙 생활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있는 선지자들은 미워하고 죽은 선지자들을 위해서는 비석을 쌓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말하면서 참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어렵지만 너무나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한 것이 뭐냐하면, 29절에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마 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랬습니다. '선지자를 조상들은 죽였지만 내가 만약에 그때 있었다면 나는 안 그랬으리라!' 그러면서도 지금 의인 중에 의인이요, 메시아 중에 메시아인 말하자면 메시아 바로 그분이신 누구를 핍박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현재 모순이거든요.
그런 마음이 들어요. 저는 절대로 우리 교인들은 안 그러리라고 나는 믿고 있거든요. 다른 교회 목사님은 좋아 보이는데 본 교회 목사님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안 좋아 보여... 다른 교회 목사님은 존경 스러운데 우리 교회 목사님은 맨 날 대하고 맨 날 들으니까 뭐 그저 그래... 조금 더 이제 그 사실적으로 우리가운데 이렇게 해석을 한다 그러면 이것이 그저 지나가는 말일 것 같지만 여러분들에게 축복되는 메시지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뭐 박 목사가 좋게 보였던지 나쁘게 보였던지 간에 내게 축복해주시는 메시지는 박 목사가 지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되느냐? 지금 은혜 받는 훈련이 안되어 있으면 이 어려운 시대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 남을 수가 없어요.
제가 우리 딸아이 이야기를 가끔 해요. 하는데 그 하게 된 배경이 걱정이 되어서 하거든요. 뭐냐하면 정리된 교회, 우리 교회에 있다가 다른데 가보니까, 개척교회고 이러니까 아무래도 뭔가 이 목사님이 주도해서 마음대로 하고, 또 뭔가 하고 이러니까, 쭉 뭐 기관이 이렇게 하는 것하고 다르니까! '아, 저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 게 자꾸 오잖아요. 오니까 어떤 게 있느냐 하면, 그렇게 오니까 자꾸 강단의 메시지에 은혜를 못 받게 되는 문제가 생기더라 구요. 그래서 요전 앞에 한번 전화가 왔을 때에, '네가 어떤 위기에도, 어떤 상황에도 살아남고, 이 세대에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네가 이 믿음을 가져야 된다!' 그러면서 설명을 좀 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목사님이 어떻든지, 교인들이 어떻든지,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하고 있던지, 그래서 막 심지어는 보기도 싫은 사람이 되었다 할지라도, '강단에서 메시지 전할 때에 그 메시지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왜, 그러냐 하면요, 외국에서 살면 외국에서 사는 자체가 병이 옵니다. 영육 간에 오더라 구요. 지난번에도 왔다가 갔는데, 왜 왔다가 갔느냐 하면, '오라!' 그래서 왔다 갔어요. 거기 가니까 꽃이 만발하고 또 기후가 안 맞으니까, 생전에 없던 알레르기 증세가 나오는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 닮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일단 막 콧물이 나오고 그러니까, 그래서 이걸 치료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왔다 갔어요.
왔다가 갔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콧물 나고 애를 먹었는데 한국에 딱 나왔다! 없어져 버렸어요. 그게 기후 차이에요.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이 풍토에는 적응이 되어 있는데, 외국에는 적응이 안되었어요. 그러니까 이 병이 나오는 겁니다. 거기다가 메시지를 못 들었다! 영혼에 병까지 옵니다. 여러분 외국 가 있는 사람들은 정말 자기 본 강단에서 말씀 못 들으면, 말씀에 은혜 못 받으면 그건 죽습니다. 말씀 못 받는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말씀 못 받게 되면 누가 옵니까? 흑암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개인도 영육 간에 병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가정이 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외국에, 한국에서 간 사람들의 가정이 많이 깨어지는 것이 이게 문제거든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누가 어떻든지 상관없습니다. 박 목사가 어떻든지, 상관없습니다. 이 자리에 서서 말할 때에 제가 소설책을 번역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다른 이야기를 제가 섞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어떤 환경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위기에서든지 살아 남을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자!' 그게 뭡니까? 지금 이 시간 은혜 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강단에 은혜 받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구역에서, 지금 앉아있는 구역에서 은혜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 앉아있는 다락방에서 은혜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여러분 말씀이 들어갔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씀 받는 순간, 순간 흑암들이 꺾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여러분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복잡한 시대 아닙니까!
보세요, 교회 들어와서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해보세요. 신앙 다 떨어집니다. 송현교회 오면 엄청 좋은 교회로 소문은 많이 나 있어요. 들어와 보죠, 이상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비록 우리 교회뿐 아니라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옛날 목사님들이 말이 있어요. 옛날말로 '통시 똑같다!' 그래요. 요즘 사람들은 알아들으면 알아듣고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고... 그 말은 '교회 다를 게 없다!' 그 말입니다. 잘 알아 들어야됩니다.
집사님들 모여서 이야기하죠, 집사님들 모여서 이야기한번 녹음해놓아 보세요. 그게 신앙 떨어지는 이야기들만 하지, 신앙 주는 이야기 잘 안나옵니다. 더군다나 더 문제는 장로님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 보면, 그건 신앙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고 열 받히는 이야기만 합니다. 왜? 교회를 걱정하게 되니까! 자연적으로 교회 걱정이 나오게 되죠. 그뿐 아닙니다. 노회 가서 목사님 이야기하는 것 들어보세요. 여러분 조금 있는 신앙도 다 떨어져 나갑니다.
여러분 정말 이 말세에 '참 믿음을 보겠느냐?'하는 이런 시대에, 오늘 어떤 위기에서든지, 어떤 문제에서든지 지금 은혜 받는 믿음이 회복되어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은혜 받는 이 축복된 순간이 여러분 어디에서 제일 확인되느냐? 초 신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감격에 간증할 때에, 이건 은혜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마 우리 교인들은 많이 이해하잖아요. 내가 데려온 신자가 신앙 고백하는 것을 들을 때에, 세례 받는 걸 볼 때에, 학습 받는 것을 볼 때에, 믿음이 저절로 쑥쑥 자랍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그러든지 상관없어요. 현장 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전했더니만, 죽음과 멸망에서 흑암 권세가 떠나가는 사실을 볼 때마다, '아, 예수 그리스도 뿐이구나!'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일을 가지고 뭐라 그럽니까? 교인들이 현장 잃어버리면 지금 은혜 받는 일이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빨리 300미션 홈, 3000제자 찾는다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는 뭐 교회 부흥되기 위해서 한다! 이게 아니고 우선 여러분과 제가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도, 현장에 복음 전할 수 있는 눈이 안 여리면 회복이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되어지면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들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귀가 번쩍 번쩍 열려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저절로... 제가 이렇게 보면 고개 끄덕 끄덕 하는 사람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에요. 다 알아요. 누가 눈감고 조느냐! 다 알아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누가 은혜 받고 있느냐! 지금 은혜 받는 게 다른 게 없어요. 이 축복된 역사,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으로 이 말세의 세대에 우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마지막 예루살렘 멸망을 선고했습니다. '멸망을 선고하는 것으로 세상이 망하느냐?'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나는 이걸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회복하자!'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하나님은 예루살렘 멸망을 선고했지만, 그 예루살렘 멸망 선고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선고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전 세계를 살리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고 이어서 이방인으로 구원이 넘어왔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러분 로마에 흉노족이 쳐들어 왔을 때에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그것이 오히려 전 세계가 복음화 되어 가는 축복의 역사로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겁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주권!'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하나님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되어지는데, 이걸 딱 붙들어야 됩니다. 여러분 주권 신앙 그럴 때에, 이게 잘못되어져서 아마 믿음이 옳게 안 되는 것 같아요. 뭐냐하면요, 하나님의 주권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내 마음대로 한다! 내게 와서 내 일과 삶을 내 마음대로 하신다!' 그런 배경이 아니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축복의 계획을 세우시고, 여러분과 저를 주권 적으로 인도하신다! 이 이야기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축복하실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그게 이어서 주권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마음대로... 그래가지고 '하나님, 왜 이럽니까!' 덤벼들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이 일을 이루셨다!'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계획이 성취되는 구나!' 그 말은 뭡니까? 내게 축복 주시기 위한 계획입니다. 이것이 주권 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걸 조금 순종만 해도 축복 받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러는 것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순종 안 하려고 마치 세계적인 사명을 타고 나온 사람처럼 대들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 이게 문제거든요.
오늘도 여러분 이 방향에 조금만 맞추어놓고,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이런 8가지 방향! 여러분 조금만 눈뜨고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조금만 맞추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세우시는 그 주권적인 역사를 조금만 보세요. 오늘도 이 사건과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하실 역사로 인도하시는 구나! 조금만 알고 방향 맞추어 나가면 생각만 해도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역사 하시는 사실이 한 주간도 체험되고, 한 주간도 역사 되어질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이 일에 참여한 여러분들이 이 사건을 체험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7절부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면서 멸망을 선고하십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13절부터 나오는 8가지의 화로서 밝히고 있습니다. 생명으로부터 8가지 복이 온 것처럼, 8가지 화는 생명이 없을 때 오는 화이며, 생명이 없을 때 빠져드는 사단의 통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8가지 화는 생명이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죄악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들 때문에 결국 탄식과 함께 멸망의 역사가 선고된 것입니다.
정말 예수를 믿고 복음이 없는 것만큼 큰 불행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8가지 화 속에 빠졌던 생명 없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한 마디로 외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의 역할을 하는 배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 배우들은 환호를 받고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결국은 저주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외식이라는 말 속에 모든 악한 성격이 요약되어 있고, 사단의 모든 악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참 생명이 없다면 교회에 나와서 신앙 생활을 할려고 노력할수록 환호를 받을 수 있고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만큼 악한 것이 없습니다.
1. 생명이 없이 신앙 생활을 할 때 복음의 원수가 됩니다.
(1) 13절에 보면, 메시야를 믿고 가르쳐야 할 바리새인들이 참 생명이 없으니까 오히려 메시야를 가로막았습니다.
(2) 바리새인들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막기까지 했습니다.
(3)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때 다른 문제들도 해결됩니다.
① 구원의 축복을 체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을 낼수록 더 이상하게 됩니다.
(4) 어린 아이가 생명만 있으면 자라는 것처럼, 예수 생명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① 신앙 생활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하늘로부터 오는 힘으로 모든 것이 저절로 되어집니다.
(5) 복음이 되면 복음의 축복을 함께 누리는 자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누리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의 원수가 됩니다.
2. 종교와 경건을 자신의 이익과 탐욕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1) 복음이 없으면 예수 믿는 것도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방편으로 삼습니다.
(2) 정말로 신앙 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①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② 예수 믿는 것을 빙자해서 전부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불평만 늘어놓지는 않습니까?
(3) 본문 14절에 (없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다른 사본을 참조해 보면, 마가복음 12장 40절과 같은 말씀인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심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재산 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과부 등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었었습니다.
② 그들이 그렇게 하게 된 배경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믿을 수 있는 성직자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③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높이 인정받는 외식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④ 경건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날개치며 올라가면서도 눈은 땅에 있는 먹이를 찾는 독수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우리 자신이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배경이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구원에 감사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른 욕심을 가지고 살피는 눈으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① 이것은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됩니다.
②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 사단이 틈타는 통로가 열리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 영적 싸움에 있어서 사단이 들어오는 배경이 무엇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 영적 문제는 알기만 해도 해결됩니다.
㉢ 진짜 영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약한 틈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꼬집어 줄 때 오해하기까지 합니다.
㉣ 허물을 지적할 때 알아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 가능하며, 이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3. 복음의 원수로 살지만, 그들의 파벌이나 이익 집단을 위해서는 열심을 냅니다.
(1) 안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더욱 열심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15절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참으로 두려워 해야 합니다.
(3) 정말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저절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풍성함을 말하는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4) 복음이 없는 이익 집단도 열심을 내는데,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4.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이익을 더욱 추구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1) 16절부터의 말씀을 보면, 성전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먹고 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물을 강조합니다.
① 헌금을 많이 내고 맹세하면 효과가 더 있다는 말입니다.
② 백성들로 하여금 헌물을 많이 드리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2) 자기의 이익을 찾기 위해서 근본적인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3) 십일조의 근본은 그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①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내게 주셨구나’,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먹는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5. 사소한 것에는 엄격하고, 보다 근본적인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1) 23절에 보면, 예물은 강조하면서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고 책망합니다.
(2) 십일조는 강조하면서도, 십일조를 하는 배경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① 십일조는 얼마를 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②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3) 외식하는 사람일수록 망해도 망한척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4) 정말 생명이 있을 때 생명 주신 하나님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6. 외식으로 치중해서 내면에 소홀하게 됩니다.
(1) 24-25절에 보면 겉은 깨끗이 하되,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했습니다.
① 생명이 없을수록 이것이 나옵니다.
(2) 외국의 경우, 시체를 화장(化粧, beauty make-up)을 시켜서 관에 넣고 유리로 덮어서 보이도록 합니다.
① 생명이 없는 시체는 화장을 시킬수록 속은 더 썩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 생활은 치장할수록 점점 더 비참해집니다.
(3) 복음 없는 신앙인들 때문에 재난과 재앙이 계속해서 들이닥쳐서 망하는 것입니다.
①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②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점점 더 외식하게 됩니다.
① 자신이 없으니까 꾸밀 수밖에 없습니다.
② 사실적 체험 없이 신앙 생활을 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외식하게 됩니다.
(5)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앙의 역사는 믿음의 회복입니다.
(6) 참으로 기뻐지고 찬양이 나오는 것이 삶 속에서 저절로 나와야 참된 신앙 생활이 되어집니다.
7. 함께 있는 선지자들은 미워하고, 죽은 선지자들은 존경합니다.
(1) 29절부터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죽였지만 자기들이라면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2) 다른 교회 목사님은 좋아보이는데, 우리 교회 목사님을 그렇지 않습니까?
① 강단의 메시지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이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② 어떤 위기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단의 메시지 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③ 말씀을 받지 못하면 흑암의 세력이 들어와서 개인과 가정이 깨어집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이 들어가면 흑암이 사라집니다.
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금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는 믿음이 회복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3) 복음을 전해서 새신자에게 믿음이 생겨나는 것을 볼 때 은혜가 저절로 넘칩니다.
①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을 잃으면 지금 은혜 받는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② 이 축복된 역사가 말세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뒤에 전 세계를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방으로 구원이 넘어갔습니다. 로마에 흉노족이 처들어왔을 때, 그 사건은 전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주권 신앙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신다’라는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의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주권적으로 인도하신다’라는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계획을 세워놓으셨다는 것이 주권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께 덤벼들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계획이라는 사실을 믿고 순종하시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8가지 방향을 눈뜨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권적인 역사를 조금만이라도 바라보십시오. 조금만 방향을 맞추고 생각만 해도 축복하시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八福)과 마태복음 23장의 팔화(八禍)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음(5장 3절)
교만한 자는 천국문을 닫음(22장 13절)
2.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음(5장 4절)
3.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음(5장 5절)
남을 실족케 하는 자는 화를 당함(22장 15절)
4. 의에 주린 자는 배부를 것임(5장 6절)
물질을 얻기에 탐하는 자는 비게 됨(22장 16~22절)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음(5장 7절)
작은 일에 대해서도 자비롭지 못한 자는 화입음(22장 24절)
6.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5장 8절)
겉은 깨끗하되 속은 더러운 자는 저주받음(22장 25~26절)
7. 화평케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워짐(5장 9절)
외식하고 형식에 치우친 자들은 화받음(22장 27~28절)
8. 의를 위해 핍박당하는 자는 천국을 얻음(5장 10~12절)
의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마귀의 자녀들로 불리움(22장 29~33절)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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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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