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이미 얻은 해답
2004-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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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행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9: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행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 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행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 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행 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행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행 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인사하겠습니다. 안녕하십시오. 평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주간도 주의 은혜를 따라 주안에서 인도함을 따라 살다가 또 거룩한 성 일에 말씀 앞에 세우셨사오니 하나님 어렵고 험난한 시대에 주의 종들에게 모든 해답되시는 그 축복의 그리스도를 확인하고 믿음으로 우리 남은 생애를 풀어 가실 그 은혜의 역사를 찬양하며 이 일에 쓰임 받는 복음의 사신들로 주 앞에 서게 됨을 감사를 드리며 이 일을 구체적으로 나와 내 생활에 누리며 참 삶에 증인으로 증거 할 수 있도록 종들에게 말씀 통해서 새 힘 주시고 은혜 입혀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부족한 종을 축복하시고 말씀을 주시고 주께서 저들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한 주간도 응답하는 말씀으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연 약과 상관없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 일에 쓰임 받고 있음을 감사를 드립니다. 영광을 주께 돌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제목을 이미 얻은 해답이라 이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감기로 좀 힘들었고 그래서 오늘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흑판을 좀 드러냈습니다. 그냥 제가 흑판을 쓰게 되면 힘이 배나 듭니다. 흑판 기록하는 것하고 시간이 상당히 소모가 많이 돼요. 제가 체력이 조금 딸리는 것 같아서 그냥 좀 가만히 서서 저도 좀 편하게 메시지를 전하면 좋겠다 싶어서 그래서 오늘 흑판을 들어내고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또 이것도 하나님 앞에 응답이다 그렇게 믿습니다. 나는 처음에 올라서면서 죄송합니다. 그럴라 그러다가 하나님 응답인데 뭐 죄송할까...

그리고 특별히 오늘 당 회 모임을 2시 30분에 시작을 하겠습니다. 그 당 회의 모임은 우리 10월 달로 만기가 되고 11월 달에 각 파트별로 새로 선교 위원회가 조직이 되는데 각 선교회에서 선교 연령들을 조정하는 일을 오늘 마쳐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각 선교회에서 그 11월 달에 새로 총회를 할 때는 그 연령 따라서 그렇게 하도록 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다음주쯤 되어서는 선교 연령이 어떻게 조정이 되는 가는 발표가 되고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이 너무 많이 선교 그 연령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단위를 좀 짧게 잘라서 그렇게 좀 소단위로 나눌 그런 계획입니다.

그러면 아마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활동하는데 있어서 한 사람도 누락됨이 없이 각 파트별로 속한 사람들이 발굴이 되어서 금년도에는 이 선교기관들을 좀 활용을 한 다기보다도 지금까지는 선교 기관들이 자꾸 뭔가 밖으로 나 갈려고 하고 뭔가 도울 기회가 없나 싶고 보니까 자기부터 안 되었는데 자꾸 다른 사람부터 보니까 이게 더 안 돼요. 그래서 자신들이 일어설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고 그 다음에 우리 교회 안에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괜히 밖으로 기웃 기웃하고 있어요. 그래서 각 구역별로 선교 위원회를 한번 맡겨볼 작정입니다.

그러니까 1구역에는 제 1선교회다. 여 2선교회다. 제 2구역에는 여 3 선교회다.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그래서 캠프 중심으로 해서 구역별로 해서 여러분 구역을 심방 한다. 그것은 우리 전도사님들이 있으니까 캠프중심으로 해서 구역을 구체적으로 돌고 그 다음에 선교위원회에서 각 선교 파트가 뭘 이 밖으로 나가서 뭘 남 도와준다 이전에 가장 안 되는 게 우리 자신이 안 되고 있어요. 복음이 안 되고 복음이 이해가 안 되는 만큼 자신도 안 되고 가정도 안 되고 후손도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도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선교 위원회가 각 선교 파트가 자신이 복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실제로 눈을 좀 뜰 수 있는 그런 계획을 가지고 좀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계획을 잡아봅니다.

그것은 이제 제일 시급한 문제가 각 선교 위원회에서 기도 중심으로 해서 기도 프로그램을 좀 잡을 때에 우 가서 어디 기도한다 그런 식으로 하지 말고 개개인이 기도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좀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 아니면 교인들이 자기 선교 위원회에 의해서 기도일지를 만든다 든 지. 그 다음에 성경일지를 만든 다든지 이렇게 해 가지고 구체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도를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 계신 사실이 구체적으로 내 사실로 누려지는 사실이 체험 될 수 있도록 이렇게 개개인이 좀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배경에서 오늘은 좀 그런 그 선교 위원을 좀 생각하면서 조금 기도하면서 어떻게 이들을 좀 인도해 볼 것인가 그러다가 배경을 좀 방향을 좀 잡았습니다. 그래서 금년도에는 뭐 지금 누구를 돕자! 뭘 하자! 그 이전에 교회 안에 도울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돕기 이전에 자신이 살아나야 합니다. 돈을 백 만금을 쓴다 할 지라도 자신이 구원 없이 쓰는 것은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돈을 써도 내게 돈을 써도 그렇고 교회 돈을 써도 그렇고 구원 받고 복음의 눈이 열려서 돈을 써야 복이 됩니다. 그게... 그것이 안 되면 참 원망이 돼요. 그래서 교회 목사님께 조금 드린다 싶어도 참 감사하다 이래야 그것이 복이 되고 그 다음에 그때부터 뭐냐 산업의 통로가 열립니다.

어제 우리 장일령 국장님 와서 메시지 전하는 중에도 우리가 십일조를 해도 참 하나님 앞에 감사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이 내게 하나님 것을 드릴 수 있는 힘을 주셔서 주 앞에 드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럴 때 뭐냐 산업에 통로가 열립니다. 이것은 축복이 되는 겁니다. 그게 안 되고 뭔가 하나의 의무적으로 아니면 형식적으로 또 아니면 뭔가 내가 잘 해야지 하는 것으로 하면 이것이 종교가 되고 그러면 거기에 뭔가 사단이 전부 틈타고 들어와요. 그래서 문제가 가장 좋은 돈이지만 가장 좋은 돈이 쓰여지는 곳에 시험보다도 이게 고통보다도 축복과 은혜가 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이것부터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고는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늘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 첫 번째 우리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등록을 하셨을 때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이런 부분들이 많아요. 제가 돈을 10만원, 20만원, 100만원, 200만원 어떤 경우에는 더 많이 그럴 때에 제가 그것을 선 듯 받지를 않습니다. 주시는 분은 참 감사함으로 주신다 그래도 나는 그 분을 알 때까지는 안 받아요. 왜냐하면 내가 그 분이 정말 복음이 되어 가지고 이 감사함으로 그리고 또 내가 그걸 받았을 때에 그 분에게 복이 되고 내게도 복이 될 수 있어야 된다. 이 기준이 안 서면 개인적으로 안 받습니다. 뭐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안 받습니다. 또 적은 돈이라도 받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복이 안 되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것이 되고 나면 그것은 피차에 복이 되니까! 그때는 주고받는 것이 기쁨이요. 감사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혹시 봉사를 하고 싶고 교회 뭐 돈을 내고 싶고 십일조를 낸다고 할 지라도 내 자신이 복음에 눈이 안 열리고 기쁨으로 이게 안 되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뭔가 나는 그 개인적으로 그런 것이 안 되어서 내가 거절했다. 그럴 때는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그것을 억지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시고 기다리고 기도하시면 돼요.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로 인도하시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피차 복이 되고 피차 받고 주는 즐거움이 있어야 되는 데 그게 안 될 때는 고통이에요.

그래서 뭐 어떤 경우에 제가 이 일 때문에 처음 온 분들이 참 너무 감사하다 그래서 봉사하고 싶어도 제가 거절해서 시험 든 사람도 있더라 구요. 뭐 다른 교회 가기도 했습니다 만은, 저도 그 너무 그럴 때는 그랍니다. 당신이나를 언제 알고 내가 당신을 언제 알았다고 그라느냐? 내가 알기 전에는 아직까지는 아니다. 허락할 때까지는 내가 알고 충분히 감사함으로 내가 부담 없이 받아야 되지 그러기 전에는 아니다 이게 모든 교회의 기관이나 돈을 쓰는 모든 기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이 남을 돕고 어떤 교회를 돕는다 그럴 때에 할지라도 여러분 기관이 먼저 살아서 이 복음의 눈이 열려 가지고 정말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그럴 때에 하나님이 복음이 된 자에게 축복하고 복음이 된 자가 일을 하는 그 일에 우리가 헌신하고 물질도 그 다음에 경제도 모든 헌신을 할 때에 그것이 축복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복음이 된 곳에 몸을 담을 때에 그 교회에 오는 그 자체가 복이 되는 겁니다. 이게 안 되게 될 때에는 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라고 그러니 많이 내면 많이 내게 될수록 교만해 지게되고 많이 내면 많이 낼수록 거기에 사단이 역사 하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시면서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도 즐거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 억울한 이야기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그 기관이 뭘 돕는다. 뭘 한다. 그럴 때에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곳에 투자하고 기뻐하는 곳에 내가 헌신하고 기뻐하는 곳에 내가 드리고 이것이 되어지고, 그 다음에 받는 사람도 정말 하나님 앞에 참 즐겁고 감사함으로 그렇게 되어 지는 일이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전에 오늘 말씀 좀 드리고 싶은 것은 기관에서 조금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만은 복음이라는 것만큼 쉬운 것이 없다. 너무 쉬운 것이 복음인데 그런데 우리 인식에는 복음, 신앙생활 한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지금까지 여러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신앙생활 잘 하려고 별 짓을 다 했으니까! 그래서 남은 것은 상처밖에 안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오래 예수 믿은 사람들이 복음 못 깨달으면요.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배경이 이런 배경입니다.

결국 여러분들이 복음의 눈이 못 뜨여지고 우리 자손들에게 이 눈이 안 여리게 된다 그러면 결국 뭡니까? 결국 재난과 재앙에서 끝이 나 버립니다. 이것이 안 되면 모든 것이 막히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되기 전에 뭐냐 하면 복음 바로 내 노력과 내 힘쓰는 것 애쓰는 것과 상관없이 누가 이루어 주는 겁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 모든 것 다 준비 하셨고 그걸 그 이루신 것을 누리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누릴 수 있는 자격이 뭐냐 하면 신분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의 누가 돼요. 여러분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대가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어요. 아들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아직 죄인 되어 있을 때에 아무 것도 모를 때에 여러분과 제가 이 죄와 사망에서 눌려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죄의 대가를 친히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달려서 다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죄와 사망과 죽음과 고통에서부터 해방 받게 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축복된 해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그래서 받아들이면 그 때에 누가 하느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계시고 그 때는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다 이루신다는 사실이 이게 믿어져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다! 그러면서도 자녀 아닌 삶을 얼마나 산지 몰라요. 여러분 그 참 어렵고 어려운 것이요. 생판 이웃의 아저씨를 앞에 갔다 놓고 야! 너희 아버지다. 믿느냐? 믿어라! 이러면 이것은 안됩니다. 이건 믿으려고 그러면 죽을 고생을 합니다. 믿으려고 그래도 안 되고 믿는다고 고백해도 소용이 없어요. 안 되는 겁니다.

이웃의 아저씨를 앞에 갔다 놓고 너의 아버지다. 야! 믿어라. 믿는다 그래라! 그러면 일이 됩니까? 자기 아버지를 앞에 세워 놓고 야, 아들이 너의 아버지다! 참 좋지. 너의 아버지다! 믿느냐? 그것은 믿느냐? 안 믿느냐? 물을 것도 없어요. 그 아버지 앞에 있는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뭡니까? 그저 감사하고 믿는다는 정도가 아니고 믿어지는 정도가 아니고 그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움이요, 감사요, 기쁨인데 거기에 믿느냐? 믿어라! 이럴 것도 없어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참 그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믿어라! 믿습니까? 믿어라! 이게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 아버지! 평안이 와 버려야 돼요. 아버지! 모든 문제 다 끝났어요. 안식과 평안과 감사가 그대로 터져 나오는 겁니다. 왜? 그 다음에 모든 문제는 아버지 안에서 누리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어렵다! 힘들다! 그 말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뭐라 그랍니까! 가지가 나무에 붙어만 있으면 된다 그랬어요. 이 가지가 붙어 있으려고 뒤틀고 몸부림치고 이러면 오히려 떨어져요. 가만히 붙어 있으면 돼요. 그런데 붙어 있으면 모든 줄기에서부터 뿌리에서부터 나무가 다 공급을 해 줍니다. 그러면 주는 데로 받아먹으면 되는 겁니다. 줄 때에 좋니, 나쁘니 할 것도 없어요. 믿고 받아먹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가지가 잎이 그 다음에 꽃이 그 다음에 열매가 맺히고 저 절로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 안에 섰을 때에 성령으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 다 해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이루십니다. 성령으로 그러면 그 이루신 사실을 누리고 감사하면 돼요. 그 누리게 될 때에 비로소 뭐가 나오느냐? 참 감사다! 참 기쁘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냐 하면 지금 이 엄청난 축복과 역사를 한 마디로 말해서 구원받았다. 구원받았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따라 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제가 좀 설명을 드렸습니다.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리라." 이 하나님의 평강이 내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판단과 생각과 모든 것을 인도해 버립니다. 이게 안 되었을 때에 불안과 염려가 올 때에 오판이 나와 버리고 잘 못된 생각이 나와 버리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보면은 크게 다른 것도 다른 것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사람들이 실수를 많이 해요. 왜 실수를 많이 하느냐? 한국사람들이 조급합니다. 느긋함이 없어요. 그래서 뭐냐 하면 느긋함이 없고 조급하니까 뭐냐? 결정적으로 뭐냐 한발만 잘 차면 되는데 너무 급해 가지고 빨리 차 버린다던가, 이상하게 찬다는 게 삐뚤 게 차 버리고 그렇게 되거든요. 그러니 문제는 맨 날 다 가 가지고는 헛일하고 허탕 치고 마는 겁니다. 그게 다른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 내 안에 평강이 와 있다는 사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전 인생에 승리하느냐? 실패하느냐? 관건입니다. 모든 생각과 판단이 거기서 다 좌우해 버립니다. 여러분 구원이 내게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참 안식이 있다. 무슨 문제가 일어나도 다 이 안에서 해결되는 것을 다 보게되는 그때부터 평안이 왔다. 모두 여기서 엄청난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 대 주제가 뭐냐 하면요. 이것이 흐르는 대 주제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의 대 주권자가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이 땅에 나오고 싶어서 나왔습니까? 부모를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선택합니까? 나다 보니까 이상한 부모 만났다. 그래도 부모는 부모요. 나다보니 좋은 부모 만났다. 감사할 뿐이요. 그래서 나는 너무 감사한 것은 뭐냐 하면요. 내가 믿는 부모 밑에서 났고 그리고 어쨌든 간에 우리 부모님이 아버지 어머니 신앙갈등 있었다. 그것은 갈등일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뭐 이상하게 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내가 자라났다. 그것은 복중에 복이거든요.

여러분에게 가장 축복된 것은 구원이다. 하나님이나를 정상적으로 뭐 이상하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생활과 사건과 일에 응답 받도록 인도해 주신다. 이 사실이 딱 바탕이 되었다. 그것이 어떤 문제나 사건을 당할 때에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믿는 만큼 누려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이 쉽다! 그 정도가 아니고 신앙 생활은 감사할 뿐이다. 참 찬송한다. 참 영광이구나! 기쁨이구나! 그래서 여러분 이 시간에 여기에 와서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맞다! 그래 참 평안하다. 그게 보통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이 왔다는 자체가 전 인생을 완전히 좌우하는 축복 중에 축복이다.

그런데 이 큰 축복을 받고 앉아 있으면서도 모르고 앉았다. 그것도 등신! 그것 가지고 등신이라 그랍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그런 것 가지고 감사도 없다. 그만큼 더 답답한 게 어디 있습니까? 기가 찰 노릇이거든요. 그래서 오늘 이 배경에서 여러분들이 정말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럴 때에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을 때에 아버지가 하는 일을 다 누리면 되거든요. 아들이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서 뭐! 이렇다, 저렇다 불평하고 할 것이 없거든요. 그냥 감사함으로 누리면 됩니다. 아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가지고 아직 철도 없는 게 아빠 오늘 어떻게 살래! 그건 미친놈이지. 그건 병원에 데려가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 주여 오늘도 하루를 인도하신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이나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찬송합니다. 이러면 될 것인데, 주여 오늘도 어떻게 살 까요. 이러면요. 여러분 다른 사람이 병원에 먼저 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자신이 병원에 먼저 가야돼요. 이게 안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 돕는다. 뭘 내어서 물질을 낸다. 다 헛수고입니다. 그것이요. 그것 가지고 뭐냐? 그게 안 되어서 뭘 노력한다. 애쓴다. 그럴 때에 그걸 가지고 우리가 종교라 그랬어요. 종교라 그랍니다. 그것은 애쓰면 애쓸수록 문제가 더 붙어 버려요. 왜? 거기에는 바로 배경이 종교에는 하나님의 배경이 아니기 때문에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에 거기에 문제가 더욱 따라 오게 됩니다.

제가 몇 일 전에 추석 전에 젊을 학생 때에 아주 좀 뭐라 그럴까? 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고 밖에 대해서도 그렇고 참 불만이 많은 사람이에요. 심지어는 당 회에까지 와서 나한테 항의를 하고 그랬던 학생입니다. 그 다음에 그 배경이 내가 대강 알아요. 하여튼 신비주의 할 때는 제가 학생들 끌고 가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요. 은사를 받쳐줄라고 무척 애를 썼거든요. 그때는 뭐 진짜 내 진심으로 있는 힘을 다 해서 했거든요. 그런데 이 학생에게 은사를 받쳐 줄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특별히 그때는 주암 산에 가 가지고 밤새도록 막 눌리고 그 다음에 뚜드리고 흔들고 이래도 은사는커녕 입도 안 돌아가요. 그리고 나오는 말이 "아! 나는 암만 해도 안 되네." 그러더라 구요. 절망입니다. 그때는 방언을 받아야 뭐가 되는 줄 알았으니까! 얼마 후에는 다른 교회 가버렸어요. 하다가, 하다가 안 되니까! 가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그때에 신비할 때에 여러분 방언이나 받아야 뭔가 신비를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뭘 좀 체험이 되어야 되니까! 뭔가 좀 보여야 할만하니까! 그게 없을 때는 뭔가 이 기도해도 하는 둥 마는 둥 뭐 그렇거든요. 그러니 그렇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런데 다른데 돌아다니다, 돌아다니다 왔어요. 와 가지고 이 복음가지고 계속 그 동안 메시지 들으면서 그 옛날에 상처가 다 치유되고 지금은 집사가 되었습니다. 이 성가대에 앉아 있어요. 아마 이 말을 지금 듣고 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여러분 여기에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겁니다. 그 전에는 노력하는 것만큼 문제가 생깁니다. 노력할수록 더 고통스러워요.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노력하면서 나오는 것에는 노력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뭐가 나오느냐? 불평과 원망이 자꾸 터져 나옵니다.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 복음이 안 되고 율법적으로 그게 율법적이라는 말이 다른 게 아니거든요. 종교에 빠지게 되면 자연적으로 교회가 차가워져요. 뭔가 교회가 이상하게 텐션이 많고 뭔가 이상하게 다른 사람 자꾸 보는 눈이 열리고 자기를 보는 눈은 자꾸 더 어두워지게 되고 감사는 없어지고 원망은 자꾸 나오게 되고 참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눈이 열리면요. 이상한 짓 하는 옆에 집사를 보고도 주여 감사합니다. 어쩌다가 나는 은혜를 받아 가지고 복음을 알고 난 후에 저렇게 삐뚤어지지 않는 생각 이상한 생각하지 않는 것 참 암만 생각해도 감사하거든. 안 그러면 나도 똑같이 그렇게 될 거거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가 나오지 원망이나 뭔가 저 사람에게 판단이 안 나오게 되어 있어요. 왜?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이 복음이 안 되면 자꾸 그런 부분들이 나오죠.

그래서 복음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 오늘 제가 하고싶은 말씀이 본문이 모든 현실이 위기가, 위기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복음 받지 못했을 때에 온 바울은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본 아나니아는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위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씀에 제목대로 복음이 되고 나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이 눈이 열려 버립니다. 받아합시다. "아, 이미 응답이구나!" 할렐루야! 이미 응답으로 와 있습니다. 이미 응답으로 와 있어요.

여러분 보세요. 이 응답 주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먼저 사울에게 먼저 뭘 깨닫게 만들었냐 하면 '아! 예수님은 살아서 부활하셨구나!' 복음을 깨달았죠. 죽은 줄 알았는데 부활하셨구나! 생명의 주인이시구나!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에 여러분 이걸 깨달았다 그러면 뭐가 잘 돼야 될 것 아닙니까! 성경에 뭐라 그러냐 하면 눈이 멀어 버렸어요. 나는 이게 얼마나 감사하지! 바울이 눈이 안 멀었으면요. 그 다음 2차, 3차 사건이 복음의 사건으로 인도가 안됩니다. 그 교만한 것이요. 이때는 교만한 것이지. 눈이 안 멀고 눈을 멀쩡하게 뜨고 더 환상을 보고 이상을 봤으면요. 막, 봐라! 그러면서 이상한 소리할는지 모르는데 눈이 멀어 버렸어요.

여러분 한번 경험해 보세요. 다른 건강 다 잃어도 눈이 안 멀면 그때는 충격 들 받습니다. 다를 건강 다 안 잃어도 어느 날 뭔가 갑자기 충격 받고 와서 눈이 딱 멀었다. 충격 받습니다. 앞이 캄캄해집니다. 여러분 진짜 아득해 집니다.

저는 저의 집사람이 그 눈이 안에 핏줄이 터져 가지고 참 지금 저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되는데 불평을 하니까 좀 내 마음이 그래요. 그러니까 완전히 눈이 멀어버렸으니까! 이 안에 동자 안에 핏줄이 터지면 밖으로는 몰라요. 동자 안에 핏줄이 터지니까 피가 까맣게 동자를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눈이 안 보이는 거죠. 그 때에 다락방 초기 아닙니까! 나도 그렇게 어렵고 힘들 때인데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합니까! 내 버릴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러니 데리고 다니기는 다녀야 되겠고...

그러니까, 내가 손을 잡고 데리고 다니는 것 아닙니까! 손을 잡고 다니니까! 그때 다른 사람들은 그랬어요. '아! 참 부럽다.' 그래요. 남 속도 모르고... 왜 부럽냐 하면, 이렇게 손을 잡고 내려가면서 뭘 했느냐 하면 눈이 안 보이니까 여기는 구덩이다. 여기는 계단이다. 일일이 소근, 소근 이야기 해 주거든요. 그런데 이 다른 사람들은 사랑노래를 부르는 줄 알고 '아! 부럽다.' 하고 그러더라 구요.

그때 내가 기억에 남는 것은 류 목사님 사모님이 저쪽에서 가만히 보시더라 구요. 내가 언덕을 올라오면서 보더니만 우리 기도원에 갔을 때인데 벧엘 기도원에... 목사님 참 부럽습니다. 그래 내가 사모님 심정을 알거든요. 왜 그 말하는가! 여러분 이말 하면 대강 알 겁니다 만은 부러운 게 아니거든요. 지금 현재 눈이 안 보여 가지고 앞을 지금 더듬거리고 있는데 손을 잡고 구덩이 있다는 소리 안 해주면 넘어져 버리거든요. 구덩이다 그러면 조심해서 걸으니까!

여러분 진짜 캄캄한 것이요. 눈멀었다 싶을 때에 진짜 앞이 아득하더라 구요. 본인도 진짜 아득합니다. 그러니 뭐 집중해서 하나님 앞에 메어 달리는 거죠. 그러면서 메시지 들어야 산다는 생각에 거기에 또 쫓아다니는 겁니다. 처음에 미쳤을 때에 우리가 안 그랬으면요. 나 자신도 그렇게 아마 우리 집에서 안 그랬으면 메시지 들으려고 그렇게 안 다녔을 겁니다. 그러니까 뭐 미쳤지! 참 말씀을 들어야 되겠다. 그게 마음에 있으니까! 그것 붙잡고 다니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이 바울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부활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면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체험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현실적으로 눈이 멀어버렸어요. 캄캄해져버렸습니다.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보세요. 이것이 응답 중에 응답입니다. 나도 지나오고 나면서 나도 그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미친 듯이 달라붙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도 체면이 있지 이제 다 늙어 가지고 뭐라고 이제 노회에서 욕하는 것이 그것이거든요. 봐라 이 박지온 목사 류 목사의 꼬봉이 되어 가지고 맨 날 졸병처럼 따라 다닌다 안 그랍니까! 내가 그래 안 그랬으면 나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나도 체면이 있지 안 그랍니다. 내가 답답하니까 메시지 들으려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바울이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러면요. 아나니아에게 절대로 무릎 안 꿇습니다. 복음 받기 위해서 절대로 마음문 안 열립니다. 대 율법의 사도가 절대로 안 그랍니다. 그럴 수가 없어요. 여러분 복음 받게 되는 즉시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현장에 나타나는 위기는 모든 응답의 현장입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 버리면요. 그때부터 현장에 아픔도 늘고 괴로움도 늘고 슬픔도 느는데 그것은 괴로움이 괴로움 아니고 슬픔이 슬픔 아닙니다. 응답 중에 응답이다. 이 사실이 와야 돼요.

그래서 저는 그 바울을 보면서 그 대 석학이 이름 없는 아나니아에게 무릎을 꿇게 된 배경이 뭐냐하면 이겁니다. 눈이 멀어버렸어요. 눈이 멀면 앞이 캄캄한데 어떻게 합니까! 눈이 멀었는데 무슨 학식이 필요 있고 눈이 멀었는데 길 가는데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어디 방정식이 필요하면 뭐가 필요합니까? 그때는 앞을 인도하는 사람을 두루 찾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보면 뭐라 그러냐 하면 간단하거든요. 여기 보면은 7절입니다.
"(행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행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그런데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사흘 동안입니다.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그러니까 뭡니까 얼마나 충격을 받았든지 식음을 전폐했다 그랬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 눈 깜고 한번 1시간만 더듬거리면 살아 보세요. 이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라는 게 이해 할려면요. 눈 깜고 1시간이 아니라 30분만 더듬거리며 집에 돌아다녀 보세요. 어떨 것인가! 그런데 눈을 순간에 충격을 받아 가지고 눈이 멀어 버렸습니다. 그래 놓으니까 밥맛이 있겠어요. 먹을 마음이 있겠어요. 식음을 전폐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이때는 누가 이리 오라 그러면 이리 따라가고 저리 오라 그러면 저리 따라가고 그러니까 오라 그라는 데로 가라 그라는 데로 가는 겁니다. 그때에 10절에 보면은 하나님이 누구를 준비했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이런 일들을 다 계획하시고 현장에 이 엄청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바울을 이렇게 꺾어 놓고는 그 눈을 막아 놓고 누구를 보냈느냐? 아나니아! 아무 이름 없는 아나니아를 보냈습니다.

그 다음에 아나니아도 봅시다. 아나니아를 가라 그러니까! 사울이라는 사람은요. 소문이 나 가지고 어린아이까지 다 아네. 기독교인들을 잡아죽이는 사람으로... 그러니까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11절에 "(행 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행 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절에 아나니아가 깜짝 놀라 가지고 뭐라 그랬냐 하면요. "(행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행 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할렐루야!

아나니아는 전혀 안 된다 그랬는데 뭐냐? 하나님은 가라 그랬어요. 가는 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죽으러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하나님 그러면 나 죽으라고 보내는 겁니까?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주님이 가라 그러면 가서 이미 모든 응답을 준비했기 때문에 가라 그라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라는 일이 생기거든 다 준비해 놓은 일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라 그랍니다. 그리고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취하라는 겁니다. 그게 기도 제목이에요.

제가 우리 황 집사님이 공부를 좀 해야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도 사 오셨어요. 황명희 집사님! 벌써 가실 분인데 내가 알기만 해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우리가 임종까지 드리고 제가 한번은 동산병원에 가 가지고 예배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돌아왔는데 또 살아났어요. 그런데 회갑이다! 그래요. 그러면서 목사님 오실 수 있습니까 이래요. 그래 내가 죽어 기어가더라도 거기는 가야 된다. 다른 데는 못 가더라도 왜? 그게 산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셨어요. 살려 주셨는데 어디까지 복음의 눈 뜨이니까 살려 주시더라 구요. 옛날에 갔더라면 어쩔 뻔했어요. 그렇게 많은 충성 헌신 많이 했습니다. 내가 들어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일이 쉽고 축복이요, 은혜라는 것을 아마 요즘 더욱 깨달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스럽던 그것이 기도 응답이었다는 사실이 요즘 깨달아 질 겁니다. 사실은 이 말을 거기에 가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오늘 여기에 먼저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에 일어난 사실들이 바로 이게 큰 문제구나 했던 것이요. 하나님은 전부 기도 응답으로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 이게 여러분과 제게 벌써 응답했습니다. 이걸 보는 눈이 열렸다! 그때부터 여러분에게도 제게도 우리 모든 사람에게도 뭡니까? 형통해 집니다. 모든 문이 여기서 다 열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아나니아에게 하나님이 가라 그래서 바울에게 안 갔습니까? 가서 딱 보니까 가는 것 자체가 위기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지금 눈이 멀었다. 위기입니다. 이것보다도 큰 위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의 삶에 엄청난 위기거든요. 눈멀어서 한 평생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보통 위기가 아니거든요. 위기라는 말은 두 가지 뜻입니다. 참 위험스럽다. 그런데 위기일 때가 기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뭘 합니까? 응답의 기회요. 축복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위기는 큰 축복의 기회입니다. 위험스러운 일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현재 내 문제는 나에게 큰 문제다. 엄청난 위기다. 그러면서 또 내게 주는 것은 교회와 연관되니까 교회도 엄청난 위기다. 그리고 교회가 1년, 2년 동안 침체된 이 사건 속에서 교회가 사실상 위기입니다. 우리 교회가... 진짜 위기입니다. 이상하게 뭔가 이 복음에 대해서 활발하게 못 나가니까! 뭐냐하면 옛날로 옛날에 율법적인 체질로 옛날에 또 불평스러운 마음으로 옛날에 감격하던 그 감격이 다 살아지고 이미 차츰 차츰 왜? 그게 통로가 되니까! 그래서 우리 노력과 우리 수고가 다 헛된 것으로 돌아가는 사단에 이런 배경들이 지금 자꾸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이런 역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맞다! 오늘의 이 문제는 큰 축복과 은혜의 현실적인 기회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이 문제는 큰 축복과 은혜의 현실적인 기도 응답의 기회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기회입니다. 불 신앙으로 받아들일 때는 모든 불평과 사단의 통로가 열리는 현장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 눈이 열리고 믿어지게 되면 이때에 여러분을 대하고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마다 뭡니까?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이 다 해결되었다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내가 가는 모든 산업과 그 다음에 내가 가는 모든 일들과 내가 가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십일조든지 감사든지 헌신이든지 축복이든지 복음이 된 그곳에 라야 뭐가 되느냐? 실질적으로 드리는 곳에 감사가 나오고 감격이 나오고 축복이 나오지 그것이 안 된데에서는요. 드리는 만큼 교만이 나오고 자만이 나오고요. 드리는 만큼 뭐가 나옵니까? 종교적인 배경이 나옵니다. 그리고 노력 이후에 나오는 반드시 뭡니까? 더 고통과 눌림과 괴로움이 따라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다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보세요. 바울이 눈이 열리자 말자! 그전에 아나니아를 딱 준비해 놓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나니아가 준비된 그런 상황에서 사울을 딱 보냈습니다. 그러니 눈이 멀어 버렸습니다. 딱 둘이 만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나니아를 보내서 그 머리에 손을 얹고 머리에 손을 얹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기도하자 말자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게 참담하던 바울의 그 고통스러운 캄캄하던 흑암의 세력들이 완전히 싹 물러가 버렸습니다. 비늘이 벗겨져 버렸습니다. 현실적인 응답이에요.

여러분 응답이라 그럴 때에 다른 게 아니거든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 사실 자체가 응답이거든요. 그게 내게 누려진다고 그럴 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해결 하셨을 때에 사단과 흑암과 어둠의 세력이 완전히 해결되었거든요.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하게 될 때에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일이 내일이 되는 겁니다. 내 사건이 되는 겁니다. 내 안에 역사 하는 현실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역사와 축복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개인적으로 교회 적으로 가정적으로 문제가 딱 일어나게 되면요. 전에는 아 누구 때문이야! 뭐가 문제냐? 그렇게 살폈지만 아, 기도 제목이구나! 기도를 시작하는 그 순간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오늘 바울이, 아나니아가 바울을 찾아가서 기도하는 순간에 흑암의 그늘이 무너져버렸습니다. 흑암의 비늘이 벗어져 버렸습니다. 그 순간 동서남북, 오대양 육대주를 살리는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여러분과 제게 약속된 기도응답이요. 하나님이 해결하시고자 원하시는 축복의 기도응답이요. 현실적으로 이 약속과 역사가 여러분과 제 앞에 놓여져 있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는 게 아닙니다. 될수록 이런 일에는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겸손해 지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나올수록 겸손해 져야 됩니다. 옛날에는 역사가 나올수록 교만해 져요. 자랑하게 되고 그러면 시비가 붙게 되고 그러나 이렇게 되면 역사가 나올수록 겸손해 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진짜 일꾼다운 일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옛날에는 일꾼이 나왔을 때에 겸손하게 한다고 했어도 자꾸 다른 문제가 나와요. 자꾸 교만에 빠지게 되고 다른 사람을 시기하게 되고 시기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나오 게 되고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그때부터 흑암 권세가 무너지는 그 순간부터 겸손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되니까, 흑암이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비늘이 벗어지기 시작하니까, 안 보이는 게 보여지기 시작하니까 감사와 감격으로 완전히 열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바울이 아나니아를 받아들이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무식하던지, 뭐 무식하던지 유식하던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받아들이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그대로 받아 들어버립니다. 복음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사람 용납하는 것은 복음의 눈이 열리면 사람 용납하는 것 문제가 아니에요. 이게 안 될 때에 문제가 오죠. 그래서 좋든지 나쁘든지 복음 되면요. 사람 용납하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눈이 열리는 순간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보이는 순간에 그에게는 아나니아가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고 기쁘고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이때부터 만남과 그 다음에 서로 아는 사이 그 다음에 보는 사이 느끼는 사이가 즐거움의 대상이 됩니다. 감사의 대상이에요. 그렇지 않으면요. 우리가 성도들과 성도들 사이에 비비고 부딪기는 사이가 고통스럽습니다.

복음이 되고 나면 만남과 그 다음에 우기가 현장에서 또 부딪기는 사이들이요. 정말 기쁨과 삶에 축복과 응답과 해답의 문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여러분들이 모든 문제에 나뿐 아니라 우리 후손까지 열립니다. 여기에 모든 축복이 약속이 되어 졌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개인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교회도 어두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축복을 먼저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게 하시고 마지막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바울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울에게서 우리가 받고 싶어 하는것은요. 바울이 이런 기회를 받고 복음에 눈이 열리고 난 후에 당장 어디로 갔느냐? 복음을 당장 전했는데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사실이 바로 증거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 받은 자의 특성입니다. 전도를 한다 안 한다 그게 아닙니다. 그래 여러분 전도 캠프를 하라, 하라 그래가지고 한다. 그 배경 이전에 여러분 자신이 자신에게 대해서 전도 캠프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이 가는 곳마다 이런 실질적인 이런 고백들이 터져 나오게 될 때에 하나님이 이제 새로 오는 밀레니엄인데 사실 1001년 시작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위기를 뚫고 가는 게 아니고 위기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과 역사가 오늘 바울에게 준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뭡니까! 눈이 떠져버렸어요. 눈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적으로 우리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눈이 열리고 건강이 열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이 이제 구체적으로 응답되는 사실이 보여지는 고백들이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말씀잡고 주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한 음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교회에 주께서 위기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위기가 왔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역사를 이루고자 주님 앞에 섰사오니 우리 눈이 열리게 하시고 눈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 흑암 권세가 사라지며 흑암 권세가 주 예수 그리시도의 놀라운 기도의 문이 열리게 하시고 기도가 되어지며 기도의 응답 받아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구체적인 사실 속에서 성취되게 이루어지도록 축복해 주시고 역사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감격함으로 기뻐하며 찬양함으로 영광을 주 앞에 돌립니다. 주님의 귀중한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주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눈이 멀어서 충격 받고 고통받고 위기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래서 우리가 현장에서 우리의 자신들이 위기가 왔고 우리 자신들의 부족함을 또 우리 자신들의 한계가 느껴졌고 우리 자신들이 더 이상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절망속에 빠졌을 때에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주 앞에 세우실 기도의 사실적인 응답을 다 준비해 놓으신 것을 보는 눈을 열어 주셔서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눈이 열려지고 이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새롭게 개인 개인이 기도 응답 속에서 체험되게 하시고 교회가 기도 응답 속에서 체험되게 하시고 우리 기관이 이 기도 응답 속에서 체험되어 져서 우리의 고백이 되고 우리 기관의 고백이 되고 우리 교회의 고백이 되도록 주여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지금은 우리를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위로 충만 교통하심이 모인 무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 자신과 선교 기관이 먼저 복음이 확립된 후에야 헌신과 충성이 축복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확립되지 않은 채로 무엇을 할 경우에는 감사함을 잃게 되고, 문제가 따라오게 됩니다.


[1] 복음은 매우 쉬운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루신 축복된 해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나뭇가지는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나무가 공급하는 것을 받아서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성령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시므로 그것을 받아 누리고 감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바르게 인도합니다.


[2] 복음이 먼저 확립되어야 합니다.

⊙ 복음이 먼저 되어지지 않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원망과 비판과 불평이 나오게 되고, 문제가 계속 생겨나게 됩니다.

⊙ 복음이 먼저 확립되어지고 나면, 모든 현실의 위기가 위기가 아니라 응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바울은 주의 빛을 받고 나서 오히려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는데 현실적으로는 눈이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응답 중의 응답이었습니다. 만약 이 일이 없었다면 복음 받기 위해서 바울이 아나니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현장의 모든 어려움이 응답 중의 응답이 됩니다.


[3] 위기 속에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바울을 찾아가라고 했을 때, 아나니아에게는 큰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 오는 위기는 참으로 위험스럽기도 하지만 또한 큰 축복의 기회입니다. 나와 가정과 교회에 위기가 오는 것은 오히려 참으로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을 찾아가서 기도하자마자 바울의 눈에서 흑암의 비늘이 벗겨지고 세계를 살릴 수 있는 눈이 열리는 구체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 겸손해야, 감사할 수 있는 축복된 만남이 열리게 됩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내게 먼저 복음이 확립되어지게 하셔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나와 가정과 교회에 위기가 찾아올 때, 주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하소서. 내 앞을 가로막는 흑암의 비늘을 벗기시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소서. 주의 큰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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