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풍성한 은혜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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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롬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오늘 제목을 '풍성한 은혜' 라는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본문 로마서 6장에는 성례주일마다 문답하기 직전에 제가 이 말씀을 먼저 묵상하고 또 문답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그 로마서 6장에 오늘 그 6장에 전체가 다 축복된 말씀입니다 만은, 14절까지 우리 보는 중에, 14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로마서 6장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저는 이 말씀을 참 사랑한다기보다도 너무 좋아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디에 있어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저는 그 신학교 다는 중에서 워낙 지금도 뭐 저를 향해서 대구 율법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저는 대구 율법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되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든 뭐가 되었든 상관이 없어요. 문제는 율법이라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우리가 바로 서야 규모가 됩니다. 여러분 사는 삶이 규모가 아니면 그걸 은혜 떼어내 버리면 율법이 됩니다. 은혜가 바로 이루어지면 율법은 삶이 되죠. 그래서 옛날에 하도 그 제가 매여있는 많은 그런 상황에서 제 일생에 두 가지 은혜라는 말에 두 가지로 제게 눈을 열게 해 주신 기회가 있어요.

그 첫 번에 은혜에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이 그때 신학교 재학시절입니다. 책을 보는 중에 어떤 누가 소개를 한 것도 아니고 제 마음에 율법이라는 것과 은혜라는 것, 복음이라는 것 이것이 상당히 마음에 갈등을... 알고는 있습니다 만은, 구체적인 그런 어떤 조화가 안 되어 가지고 책을, 제가 제목을 살펴보는 중에 '율법과 은혜' 라는 책을 봤어요. '율법과 은혜!' 여러분 혹시 아마 구할 수 있으면 구해서 읽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많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했어요. 그때에 은혜에 대한 굉장한 그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번은 다락방에 들어와서 언약이라는 문제가지고 그 역시 은혜입니다. 언약이라는 것과 율법이라는 것! 그래서 종교와 언약, 종교와 복음! 제가 언약이라는 것을 가지고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체가 언약이구나! 여기서 이제 상당히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복음' 그러고 '언약' 그러고 '은혜'라 그러면 여기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해방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해방이라는 것! 그래서 오늘 본문에 첫 번 보면 6장 1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러니까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죄에서 해방 받는다. 죄 감이 더 많아지면 은혜라는 것이 더욱 은혜가 될 수 있다.

뭐 이런 것으로 잘못하면 해방이라는 것! '은혜' 라는 말이 오해 될 수가 있다는 것이 상당히 오랫동안 풀려지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은혜' 라! 그때에 '해방' 이라 이래가지고 신학교 당시에도 상당히 그 뭔가 해방이라는 문제 가지고 갈등이 오더라 구요. 그래서 제 친구, 아주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만은, 이 한 분은 그때에 역시 이 책을 통해서 피차 그 상당한 그런 교재를 나누고 있었을 때인데 너무 이 책에 감동을 받아 가지고 무조건 해방이다! 매였던 것에서부터 해방이다! 이래가지고 주일날 뭔가 매이는 것도 다 해방이다. 그러니까 Anty Nomia 무 율법주의자가 된 겁니다.

그래서 교회를 참 그 아주 목회를 잘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벌써 한 800명, 1000명! 서울에서 큰 교회를 이룩해 놓고는 어디로 빠졌느냐 하면, '해방이니까 매이지 않는다!' 이래서 주일날도 목사가 주례해 주러 다니고 이래가지고 결국 그 교회에서 배척을 받아 나갔습니다. 그 후에 아마 회복을 못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이 목사 일을 이 축복의 직임을 못하고 그때 낙심하고 교회를 떠난 이후에 아직까지 소식이 제가 연결이 안됩니다. 아마 목회가 회복이 되었으면 소식이 연결이 될 건데 아직 안 되고 있어요. 늘 참 그 너무 너무 성실한 분인데, 너무 성실하게 그 율법 속에서 자기가 착실히 뭔가 규율을 지켜나가던, 거기서 해방인 것에만 충격을 받아 가지고...

그런데 이제 그 신학 당시니까 벌써 신학교 당시에 졸업하고 목사 받아 가지고 얼만 안 있어서 그렇게 큰 교회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메시지가 너무 좋았죠. 그런데 해방이라는 것이 어디로 흘렀느냐 하면, 방탕으로 흘러 버렸어요. 여러분 그 해방이라는 것이 잘못 이해가 되면 방탕이 됩니다. 은혜라는 것만 강조되고 잘못 이해되면 방탕으로 흘러버립니다. 이것이 삶과 연결 될 때는 엄청난 사단의 통로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런 배경에서 여러분 너무 축복된 자리에 있으면서도 엉뚱한 일로 사단의 유혹에 문이 열려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은혜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 이것이 방탕으로 문이 열리면서 삶이 안 되는 부분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주셨는데도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실적인 축복이 안 된다 그럴 때에 반드시 거기에는... 나는 뭐가 안 되느냐? 기초적인 문제가 안 된다! 그렇게 봐요. 여러분 그 마태복음 6장 33절이죠. 한번 받아합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뒤에는 뭡니까?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어떻게요? "더하시리라!" 그랬습니다.

더하기라는 말은 없는데서 뭘 붙인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미 뭐가 있는데서 붙이는 것을 더하기라 그럽니다. 더한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는데 어디에서 더합니까? 복음에다가 더해진다! 그 이야기죠.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것은 복음을 위해서는, 복음을 내가 붙잡기 위해서는 뭘 하라 그랬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어떻게요? 구하라! 그랬습니다. 구하라! 왜? 사단은 복음의 역사를 희미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속해서 계속 복음을 붙잡고있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구해야 됩니다. 이건 노력이라기보다도 이걸 붙잡고 가야 돼요.

사실 어떤 면에서 생명을 말하자면, 죽음의 그런 사지에서 뭔가 이렇게 공중으로 끌려올라 갈 때에 헬리콥터에 끌려올라 간다고 할지라도 그 헬리콥터의 뭘 붙듭니까? 구원의 줄, 생명의 줄을 붙잡고 올라가잖아요. 이 올라가는 일에, 이 붙잡는 일을 소홀히 해버리면 떨어져 버려요.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요. 이 구원 과정에서 이렇게 죽음에서나 불 속에서 구원과정에서 어디서 모두 이제 고통을 당하느냐 하면, 말하자면 죽게 되느냐 하면, 이걸 붙잡고 있는 기초체력이 안 되어 가지고 죽는 수가 많답니다. 붙잡고 올라가다가 힘이 없어 가지고, 손을 붙잡고 있지 못해서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걸 증명을 하고 싶거든 집에 가서 이렇게 뭡니까?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5번을 못한다! 그러면 여러분도 소망 없습니다. 올라가다가 다 떨어질 사람입니다. 적어도 우리 5번 이상 10개 정도는 충분히 해야 돼요. 그리고 여러분 또 이걸 증명하려 그러면 간단합니다. 철봉대에 딱 매달려 가지고 한번도 턱걸이가 안 된다. 문제 있습니다. 제가 그 요즘 저는 이걸 10번 정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게 힘이 없어져 버렸어요. 전혀 안 돼요. 안 되는데 옛날에 그 너무 힘없을 때도 앞산에 올라가서 시험을 해 보니까 한번은 되더라 구요. 요즘에는 한번도 안 돼요.

무슨 문제냐 하면 계속해서 여러분 체력이 떨어집니다. 계속해서 여러분 구원에 대한 확인과 이 축복의 역사가 계속해서 침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구원역사를 계속 구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에다가 이것이 확인되는 만큼 뭐냐?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시리라. 이 배경을 지금 현재 여러분 놓쳐요. 그리고 이것이 벌써 어떻게? 거꾸로 되어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꾸로 합니다. 뭐냐하면, 너희는 먼저 그랬는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는 것이 먼저가 안되고 두 번째 나오는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게 거꾸로 돼요. 먼저 구해야 될 것은 놔두고 모든 것 주시옵소서. 그건 밤새도록 철야해도 안 됩니다. 여기에 우리의 어려움이 나오는 겁니다.

오늘 이 순서를 분명히 해 버리면요. 한 주간 막말로 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진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말이 이해가 잘 되어야 돼요. 가만히 있다 그럴 때에 구원까지 다 놓치고 가만히 있다 그 말이 아닙니다. 뭘 붙잡으라고요? 구원의 축복! 이 은혜 붙잡고 살아가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더해진다. 구원의 축복에 의해서 더해지는 겁니다. 축복이 확인되는 만큼 더해지는 겁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오늘 해방이라는 사실을 좀 이해를 해야 되겠어요.

로마서 8장 1절 한번 찾아봅시다. 로마서 8장 1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나니" 너무 기적적인 말씀 아닙니까! 어디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절대로 정죄 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아따 용기도 좋다! 오늘도 거짓말 실컷 하고 와 놓고, 뭐 아이들하고 실컷 거짓말 해 놓고 또 와서 의인입니다!' 이런 배짱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이게 배경이에요. 이게 얼마나 위해한 역사입니까! 여러분 오늘도 죽으면 어디에 갑니까? 별 짓 다 해놓고도 천국 간데! 그 배경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엄청난 축복!

그래서 여러분 지금 현재 그 기존교회나 우리가 다른 어떤 그, 다른 사람들을 혹시 뭐 잘 믿는 천주교회나 잘 믿는 불교에 열심 있는 사람들 한번 물어보세요. 여러분들이 지금 오늘밤에 당장 죽으며 천국 갈 수 있느냐? 어루면요. 이 대답 안 해요.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대답을 잘 못해요. 그런데 뭐 같이 사는 기독교인들은 확실하게 대답하거든! 그게 뭐같이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서는 뭐를 말씀해 주느냐 하면, 그 이유를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이죠. 다같이 시작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멘.

우리가 왜 이런 축복과 은혜를 받아놓고 삶이 안 되고 삶이 무너지느냐? 다락방에 오신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어떤 목사님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목사님 제가 속았습니다! 뭐가 속았느냐? 나는 메시지가 너무 좋아서 왔는데 메시지는 실제로 너무 좋은데 들어와서 보니 뭐가 아니냐?' 메시지가 다르더라! 이겁니다. 뭐가? 삶이 다르더라 이겁니다. 삶이 왜 그러느냐 하면, 해방 받았다! 그러는데 해방이 아니고 방탕이에요. 이게 바로 이해가 안 되면 이리로 돌아갑니다. 해방 받았다 그러는데 방탕이에요.

이것을 잘못 여러분 이해해 버리면 또 목사님 그 율법이 아니냐? 율법이라 그래도 좋습니다. 여러분 확실히 붙잡아야 됩니다. 이것이 이해 안 되면요. 다락방이라고 좋다고 들어와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뭐가 안 되느냐? 도대체 이런 사람들이 있느냐? 방탕으로 흐르는 삶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이리 돌아가요. 그래서 초기에 이것이 이해가 안된 그런 상황에서 뭐냐하면, '해방이다!' 이래가지고 그 동안 아마 '술을 굉장히 먹고 싶었던 모양이라!' 그게 누가 그렇게 먹고 싶었느냐? 목사님들하고 먹고 싶었던 모양이라! 그러니 뭐 둘러않아 가지고 뭐, '한잔하자!' 이랬죠.

나도 해방이다! 그래가지고 한잔 해 봤거든요. 체질이 안 맞더라 구요. 옛날에도 체질에 안 맞는 건 알았지 만은 혹시 해방 받았으니 은혜로 또 체질이 맞을 줄 모른다 싶었는데 한잔만 들어갔다 그러면 머리가 아파 못 살아요. 지금도 여러분 나한테 술은 절대로 가져오지 마세요. 한잔 들어갔다 그러면 머리 아파 못 살아요.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체질이 안 맞아요. 그런데 체질이 맞는 사람은 상당히 좋은가봐 이래가지고 상당히 초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 해방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해서 그렇다. 잘못 이해해서...

여러분 아마 간단한 이야기이지만은, 그래서 지금은 이것이 다 정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요즘 그 한때 대학부에서 대학부 지도하는 사람이 대학부에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서 다락방하고 '내가 예수그리스도 영접했다!' 그러면 해방이다. 그러면 모든 규범에서부터 해방되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 교회 안에서 이 영향을 받아 가지고 우리 대학부들이 실컷 잘 믿고 처음에 입학해 가지고 술 안 먹었다고 자랑하면서 그걸 하나님이 지혜 주셔서 잘 빠져나왔다고 간증도하고 이러 던 놈이 요즘에는 한잔씩 한다 그러더라 구요. 왜? 이해를 못해서 그래요. 그게 지옥 간다! 잘못했다!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해를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이 바로 2절에 그 대답을 안 해 놓았습니까! 오늘 이 말씀하면서 오늘 또 '우리 목사님 절대로 술 못 먹고 담배 못 피게 하네! 나는 지금 담배끊으면 죽겠는데...' 잡수세요. 실컷 일찍이 죽으시려 그러면, 담배 피우면 일찍 죽는다 안 그럽니까! 그만큼 영향이 있더라 구요. 술 먹는 것도 그만큼 영향이 있고요. 그런데 잘 알아야 됩니다. 알면, 이해가 되면 돼요. 오늘 본문에서 뭐라 그랬느냐?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았는데 그런데 해방을 받아 가지고 어느 법으로 들어왔습니까?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왔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죄와 사망에서부터 벗어났다.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벗어난 그것으로 끝나면 방탕이 됩니다. 어디로 들어오느냐? 생명의 성령의 법안으로 들어왔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 창세기 3장을 회복한다. 그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면 무슨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뭘 만들었습니까? 에덴동산을 만들었어요. 나는 창세기 3장에 에덴동산을 잊어버린 것이 얼마나 원통하고 그래요. 만약에 아담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3장이 없었다면 여러분과 저는 지금쯤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진짜 행복하죠. 행복한 건 꽃피고 새 운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행복이 와야 돼요.

여러분 뭘 잘 먹고 잘 산다고 행복이 옵니까? 아니거든요. 근본적으로 행복이 오는데, 그 행복을 깨뜨리는 경우가 뭐냐하면, 사단입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원죄라 그러죠. 그걸 뱀이 아니고 뱀을 이용해서 사단이 아담 하와에게 들어 온 거죠. 인간 세계 속에 개입이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 뭐 뱀을 보기만 하면 '저게 사단이다!' 이래가지고 그런 생각 그것조차도 우리가 잘못이 있거든요. 뱀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사랑한다 구요. 뱀을 애완동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 징그러운 걸 몸에 칭칭 감고 돌아다닙니다. 심지어는 제가 TV를 보다 보니까, 동물의 세계에 보니까 뽀뽀를 다해요. 뱀 입에다가 혀를 낼름거리면서 뽀뽀를 하는데 나는 참 징그럽더라 구요. 그런데 그걸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건 사단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뱀 입에 뽀뽀했다고 사단 될 것 같으면 그건 그런 이해가 잘못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뱀을 통해서 창세기 3장, 인간 속에 사단의 역사가 개입이 된 것이고 그러면 죽음과 사망과 저주의 역사가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중요하거든요. 이걸 가지고 원죄라 안 그럽니까! 원래 이 축복을 회복한다는 배경이 뭐냐하면,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의 축복을 주시면서 중요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뭔 이야기냐? '하나님의 주권을 순종해라!' 그래서 주권의 상징으로 선악과를 주신 겁니다. 너희들이 내 주권에 순종하는 표로 '먹지 마라!' 그러면 말 들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게 안 먹는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에, 말씀에 순종한다는 표로 이 선악과를 주었어요.

여러분 뭐 하나님께서 선악과, 사과 같은걸 하난 따먹었다고 해서 인간을 다 죽였다. 얼마나 잔인합니까! 어떤 우리 학생들이 그러더라 구요. 목사님 너무했지 않습니까! 뭐라 그러느냐 과실 하나 따먹었다고 인간을 이렇게 괴롭힌다 그러면 하나님 그 이상한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런 차원이 아니죠. 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의 주권! 왜냐하면, 축복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역했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축복과 은혜와 감사와 형통과 풍성을 주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내가 거역했습니다. 거역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거역할 때에 오는 것이 뭐냐하면 저주와 고통의 법으로, 그 축복의 법을 선악과 그 법을 떠났을 때에 반대 급부적인 역사가 나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저주와 죽음과 고통을 주는 법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게 선악과 따먹는 축복과 은혜에 대한 거역입니다. 그래서 어디로 갔습니까? 죄와 사망의 법으로 들어갔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회복한다는 것은 뭡니까? 그렇게 들어간 죄와 사망의 법에 있던 인간들이, 이걸 원죄 아닙니까? 원죄를 갖고 타고 난 이 땅에 문제 아닙니까! 비로소 이 일을 구체적으로 해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생명의 역사로 성령의 역사로 여러분과 저를 바로 일으켜 주셨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회복했다는 것은 죽음과 그러니까 사망의 법에서부터 너를 해방했다는 배경 속에 이것이 다시 어디 갔습니까? 다시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 속으로 들어갔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게 모두 이해가 안되더라 구요. 그래서 해방 받았다 그러면 지 마음대로 간다 이겁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주일날 10시와 12시 우리 두 번 예배드리잖아요. 예배드리는데 해방 받았다. 내 마음대로 가면 안 되냐? 이래가지고 어슬렁, 어슬렁 1시에 왔다. 그게 사명 없이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 주시기 위해서 10시에 복을 주시겠다. 만남을 주시겠다 약속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붙잡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됩니까? 그 법 속으로 들어와야 됩니다. 11시에 와야 됩니다. 또 그 다음에 12시에 예배드린다면 12시안으로 들어와야 됩니다. 12시에 들어와야 이 축복의 법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현재 지금 이 시간 예배드리는 것 아닙니까! 이걸 떠났다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해방이라는 부분이요, 이렇게 잘못 오해가 될 때에 엄청난 저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조금 확대되었을 때에 무슨 문제가 나오느냐 하면, 사단의 역사는 내가 하는 것처럼 다 만들어 놓고 내가 한다고 하면서 사단은 그 배경을 누가 합니까? 자기가 다 합니다. 사단이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우리 은혜 받은 사람들의 첫 번 출발입니다. 그 다음에 이 출발점에 있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어지는 만큼, 그 만큼 뭡니까? 능력과 권세가 나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속에 들어오고 은혜에 율법 속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뭐가 나오느냐 하면, 내가 죽고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삽니다. 그러면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옛날에 사단을 따라가던, 그런 사단의 법 속에 따라가던 구습은, 그런 생각들은, 그런 것들은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죽었고 그 다음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생각과 뜻이 누구의 뜻을 따라 갑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사람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 뜻을 따라가면 갈수록 나는 죽게 되요. 저절로, 저절로 죽게 돼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신앙에 시작이면서 신앙에 절정입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내가 죽고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불러놓고는 꼭 말씀하는 것이 뭐냐? '따라오너라!' 그 다음에 '성령 충만하게 되리라. 성령을 받게 되리라' 전부 뭡니까? '되어진다!' 라는 말로 쭉 이어집니다.

그 다음에 또 말씀했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뭡니까? '되어진다!' 라는 말로 모든 복음의 역사가 나옵니다. 받아합시다. "복음의 역사는 하나만 잡으면 되어진다" 믿습니까? 이것이 와져야 합니다. 진짜 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이 안 되게 될 때에 뭐냐하면, 복음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이것이 안 되게 될 때에 성경은 종노릇한다고, 그렇게 되면 그걸 가지고 뭐냐? 종교에 빠진다. 그랬습니다. 종교에 빠진다!

여러분 지금 되어지고 있습니까? 되어지고 있는 확실한 사실을 갖고 있습니까! 그게 안 되면 되어지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종교가 됩니다.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너무 쉽다, 안 그럽니까!' 너무 쉬워요. 너무 쉽고 이것은 되어진다는 것이지, 내가 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어디서 오느냐? 중심에서부터, 가장 중심에서부터 오는 것이지. 외부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누가 내 안에 오십니까? 바로 영접하면 성령께서 내 안에 오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것은 성령의 임재 속에서 비로소 시작이 됩니다. 그때부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시작이 됩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절정에 이릅니다. 그때에 신앙의 역사는 되어지는 역사가 사실적으로 여러분 삶에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안 될 때는 내가 하려고 애를 씁니다. 노력합니다. 그 배경이 이게 안 될 때는 내가 하려고 애를 쓰는 배경이, 뭐가 그런 배경이 되느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충만함으로 내 안에 생수가 강같이 솟아나는 실제적인 구원의 역사에 사실적으로 붙잡고 그 안에 누리는 축복이 안 되게 때문에 오는 겁니다. 이게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169장, 한번 찬송 찾아보세요. 많이 이 찬송을 불렀어요. 옛날에 성령 받고 할 때에 169장... 제가 이 찬송을 잘 이렇게 가슴 때문에 잘 안되니까 제가 찬송 부르는 것이 참 잘 안되더라 구요. 부르다가도 성이 나서 못 부르고 조금 올리려 그러면 딱 막혀버리고 이런데 조금 찬송이 되니까요. 참 너무 기쁘고 감사해요. 제가 이 시간 있는 데로 다 불렀으면 좋겠는데 맛만 보겠습니다. 169장 1절하고 5절을 부르겠습니다.

1.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성령 강림함이라 정결한 맘 영원하도록 주의 거처 되겠네
주님 주시는 참된 평화가 내 맘속에 넘치네 주의 말씀에 거센 풍랑도 잠잠하게 되도다
5. 놀라우신 주의 은혜로 주의 낯을 보겠네 평화로운 안식처에서 영원토록 쉬겠네
주님 주시는 참된 평화가 내 맘속에 넘치네 주의 말씀에 거센 풍랑도 잠잠하게 되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이게 어디에서 나와야 됩니까! 외부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여러분 영혼 속에 여러분 내적으로 이게 와져야 됩니다.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이 바울에게 우연히 나온 게 아닙니다. 왜? 바울의 주변에는 기뻐할 일이 없어요. 인간적으로 봐서 그 다음에 바울의 주변에는 감사할 일이 없어요. 너무 핍박당하고 어려움 당하고 있으니까! 바울의 주변에는 워낙 바쁘니까! 기도할 여가도 없어요. 그런데 바울은 이 사실이 이루어졌습니다. 무엇으로 내면에서부터...

그래서 우리가 자칫 뭐냐하면, 내가 힘쓰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때에 나도 모르게 뭐가 됩니까? 종교로 흐른다! 이럴 때에 우리가 증거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겁니다. 뭐냐하면, 외부적으로 잘 될 때에 기쁘냐? 외부적으로 뭔가 잘 이루어질 때에 즐거우냐? 감사하냐? 이걸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의 수준이 곧 신앙의 수준이에요. 외부적으로 아무런 상관없이 여러분 감사하냐? 기쁘냐? 즐거우냐? 그런 겁니다.

여러분 아침에 딱 나오니까 교회 오기 전에 뭔가 하늘에서부터 딱 뭔가 떨어졌어요. 돈이 1억입니다. 아마 기뻐 가지고 입이 이만큼 되어서 올 겁니다. 여러분 돈이 하늘에서부터 안 떨어져도 교회 오는 것이 여러분 정말 감사하냐? 하나님 만나는 기쁨이 있느냐? 이것이 바로 이해되어 버리면요. 여러분 종교냐? 아니면 복음이냐? 간단합니다. 이것이 이해되면 밖으로 구할 때에 뭘 구하느냐?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것 이루어 주옵소서. 저것 이루어 주옵소서.' '아, 저놈 참 못된 놈! 하나님이 어떻게 손을 좀 봐주십시오.' '저것 내가 죽이고 싶은데 하나님 어떻게 손을 좀 봐 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나갈 것이 없어요.

복음 딱 잡게 되면요. 그런 모든 문제가 전혀 내게 문제가 안 됩니다. 죽이고 싶은 것도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뭐, 이상하게 밉게 보여도 미운 게 아닙니다. 외부와 상관없이 여러분이 내 속에 기쁨의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하는 일들이 강처럼 흘러나옵니다. 노래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생애였습니다. 이 땅에 사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이점이 이해가 안 되면 복음 놓치고 이점이 이해가 안되면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자체가 종교로 빠지게 되어 있어요. 종교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잘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면 어떻고, 종교면 어떠냐? 예수 믿고 열심히 하면 안 되느냐? 아닙니다. 왜 자꾸 열심히 한다는 말이 조금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교회 분위기로 되느냐? 이 이야기입니다. 종교배경이 되었을 때에 반드시 종교 배경은 누가 뒤에 배경입니까? 사단이 역사 합니다. 열심히 하지만 개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컷 헌신하고 충성하고 열심히 해 놓고는 허망에 빠져 버리고 허무에 빠져버리고 이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되어 버리면요. 안 되어도 기뻐요. 상관없습니다.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뭔가 잘 했다 막 교만이 나올 것도 없어요. 안 되어도 교만이 안 나올 것도 없어요. 전도캠프 같다 오셔서 점검하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한번은 전도캠프 같다 오더니만 우리 집에서 시무룩해 있어요. 왜 그러냐 물어봤더니만, '워낙 영접이 안 된다!' 그래요. 왜 그러냐? 비단 우리 집사람뿐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영접 한번 했다. 힘나잖아요. 그런데 안 같다 오면 그게 그렇게 힘 빠집니다. 그 다음에 막 억척스럽게 들어옵니다. 그 날은 영접하고... 받아합시다. "하늘에서 사단이 번개같이 떨어져도 기뻐할 이유는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구원의 역사입니다. 일어났던지 안 일어났든지, 심지어는 사단이 하늘에서 막 번개처럼 땅에 떨어져 천둥처럼 소리내고 죽었더라도 내가 구원의 축복을 못 누리면 그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의 축복 그 감격과 은혜! 내 속에 생수가 강같이 흘러 나리니,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이 내 안에 있으면 모든 문제는 그 다음에 따라 붙는 것이지, 따라붙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이것 주옵소서. 저것 주옵소서.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게, 한번 다시 여러분이 아마 녹음기를 같다놓고 기도 내용을 좀 들을 필요가 있다 싶어요. 뭘 내가 기도했는가 들으면 영락없어요. 거의 뭡니까? 이것 해 달라고 야단하고 하나님 아픈 것, 이것 치료해 달라고...

물로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주라! 하나님 아픈 것 치료 안 해주면 하나님 손해입니다. 손해는 지가 손해지 하나님 손해 없어요. 그 우리 배경이 거의 그런 배경으로 흐릅니다. 여러분 가정에 남편 통해서 핍박받는다! 가문 통해서 핍박받는다1 여기 우리 사도행전 5장이죠. 사도들이 핍박받는데 쓰임 받게 되었다. 감사해서 어쩔 줄 몰랐거든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되어 버리면요.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거기서 따라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배경이 오늘 본문에 설명입니다. 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어떻게 본문에 말씀했느냐? 로마서 우리 6장 한번 돌아가서 봅시다. 6장 3절 다같이 시작"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아멘. 우리가 예수와 하나 되었다. 그럴 때에 예수와 하나 되었다는 그 말씀 배경 속에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설명을 조금 더 나가서 5절에 같이 시작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할렐루야! 뭔 이야기냐 하면, 여러분 지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될 때에 영접했습니다.

그럴 때에 누가 내 안에 오십니까? 백 번, 천 번해도 성령이 내 안에 임하셔야 성도가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암만 입으로 내가 예수그리스도 영접했다! 그래도 진짜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지 않으면, 중심으로 이 영접하지 않으면, 누가? 성령이 안 들어오십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뭐가 되느냐 하면, 단 한가지 당장 여러분 마음에 생각과 마음이 옛날로 여전합니다. 변화가 안 와요.

여러분 성령이 내 안에 오셨다! 그러면 첫 번 나오는 것이 내 마음에 성령이 임하시는 첫 번째 증거가 마음과 생각이 바꾸어져 버려요. 바꾸어지는데 뭐냐? 간단한 겁니다. 뭐냐? 내가 죽고 누가 살아나요?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산 다는 그 말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 가겠다는 마음이 나와버립니다.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나와 버립니다. 이건 절대로 옛날에는 안 나오더라 구요. 나올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때부터 들립니다. 말씀이 이해가 되어야 따라가니까! 그때부터 이해가 돼요. 여러분 말씀이 이해가 안 됩니까! 성령의 인도 못 받고 있어요. 안 됩니다. 주일날 와서 말씀 받고자 했을 때에 여러분 마음은 원했지 만은 잘 안 들어옵니까! 기도하십시오. 진짜 기도하십시오. 그게 안 되면 지속해서 이게 인도가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뭐냐? 성령이 내 안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내 안에 오시기까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 단지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뭐냐? 여러분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는 말이 다른 말이 아니고 6절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 예수가 여러분과 저를 대신해서 창세기 2장 17절에 "죄의 삯은 사망" 이라고 언도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그 심판 앞에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사망의 심판을 대신해서 죽으셔야 됩니다. 죽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다시 살아났다는 그 말씀이 뭐냐하면, 여러분 죽었다고 해서 그대로 죽으므로 끝내 버리면 여러분과 저를 죽음과 멸망에서, 사망의 권세로부터 다시 살려 낼 수 있는 그런 불의 가 안 되죠. 그 메시야의 자격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죽음 속에서 완전히... 그러니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닙니까! 죽었다가 다시, 바로 죽으시게 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법률 앞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이시라는 이유로 여러분과 저의 구주 되신 다라는 그런 자격자로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 살리신 그 영을 우리가 믿을 때에 그 영이 여러분과 저를 바로 영생하게 하시는 새 생명 주시는 생명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안 믿으면 성령의 생명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가 내 안에 오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영접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왕, 제사장, 선지자로 오신 그 예수님께서 왕, 제사장, 선지자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사건을 믿을 때에, 그리고 이 사실을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셨구나!' 하는 사실을 믿고 내가 입으로 고백할 때에 누가 임하십니까?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 보면 오늘 로마서죠. 로마서 6장에 11절 말씀 보면, 다같이 시작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할렐루야! 여기에 '여길 지어다' 하는 말은 여기 상당히 재미있는 그런 말씀입니다. 내가 살았다. 완전히 산 자다.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삶이 내가 하나님 앞에 뭔가 살았다! 이런 것이 아직까지 그렇잖아요.

그런데 '여길지어다!' 하는 것은 내가 그렇지만은 믿는다! 그 이야기입니다. 내가 인정해 버립니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인정한다는 것이 참 중요하죠. 받아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부심이 중요하다." 이것이 여러분 인생 전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 되는 겁니다. 그때에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따라오니까! 유대인들이 어디 가든지 절대로 고난과 고통 속에서 망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 배경이 딱 하나 중요한 문제를 다스리라 그러면요. 하나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유대인들의 자부가 이상해요.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것 때문에 이 사람들은 뭐냐 하면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이 외에는 다른 민족은 다 짐승이다.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뭐, 메시지 속에 안 그럽니까! 실제로 제가 뭔가 유대인들이 그냥 평범한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모르겠어요. 줄을 서는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유대인들이 입는 뭔가 머리에 가만 모자 쓰고 이렇게 도포입고 있는 율법 바리새인들 이 사람들은 절대로 줄을 서도 짐승들하고 같이 안 섭니다. 옆에 섭니다. 그건 진자 봤어요.

이게 자부입니다. 아무리 고통과 어려움 속에도 '여호와의 백성이다!' 이게 대단한 겁니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끌려 다니면서 그렇게 죽음과 멸망의 고통이 다가와도 그리고 실제로 나라를 다 잃고 그렇게 수 천년동안 헤맸어도 기어코 나라를 찾고 지금 저기 싸움하는 것 보세요. 유대인들은 나라를 찾아도 이 배경 때문에 싸움을 계속 할 겁니다. 이제 뭐 어떤 사람은 3차 전쟁이 거기서 안 터지냐 싶은데 왜? 짐승들하고 같이 못 살아요. 그러니까 그냥 뭐, 서로 피차 싸움이 나오는 거죠. 그 자부가 오늘날 유대인들의 나라를 지켜주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여러분 제가 간단한 말인 것 같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 구원의 축복에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제가 어느 곳에 같다가 놓아도 그걸 누린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은 자부만 해도 뭔가 뚫고 나가는데,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내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는 실질적인 하나님의 사실이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사실로 우리에게 증거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성령의 놀라운 역사의 증거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 여러분들이 뭔가 다락방 한다. 별소리 다 듣고 살지만 전혀 혹시라도 여러분 마음속에 걱정이 되고 근심이 되고 왜 이러냐 이렇게 싶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누려야 됩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가 처음에는 상당히 부담이 되더라 구요. 시간 갈수록, 아닙니다. 왜, 세계 역사가 한번도 진리를 이겨 나가는 수가 없습니다. 한번도 처음에는 이기는 것 같아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기어코 뭡니까? 이 땅과 민족과 세계를 여러분 통해서, 저를 통해서 복음화 시켜나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증인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나오는 문제가 아닙니까! '교회를 짓는다!' 그럴 때에 여러분 주의 해야됩니다. 문제는 이 배경이 아니면 여러분과 제가 교회를 지을 이유가 없어요. 이게 아니면 우리가 투자한다? 그건 뺏기는 겁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이 세계복음화에 나를 쓰신 것 감사합니다. 그 다음에 충만한 약속이 여기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게 이루어 져야 돼요.

메시지 속에 그런 예화를 하나 들더라 구요. 촬스 7세가 성전 건축에 너무나 감사해서 자기 재물을 자기 사재를 털어서 성전을 건축했어요. 성전이 조그마한 성전이었는데, 그런데 성전 건축하고서는, 성전 건축하고 난 후에 조그마한 비석 보통 우리는 머릿돌이라 그러는데 비석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촬스 7세가 세운 교회다! 표식을 해 놓았어요. 그리고 그 날 밤에 너무 기분이 좋아 가지고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나타나셨는지 방법은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야, 그 촬스 7세라는 그 말 지워라. 그리고 거기다가 진센 돌프라고 써라!'

꿈을 꾸고 나니 기분 나쁘잖아요. 자기가 사재를 털어서 진짜 헌신했는데 그 많은 돈을 들어서 멋지게 지었는데... 그 이튿날 또 꿈을 꾸었습니다. 또 똑같은 꿈이었습니다. 두 번째 꾸고 나니 심각해지잖아요. 그 다음에 또 그 이튿날에도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 개꿈은 한번만 하지 두 번, 세 번 안 합니다. 그러니까 뭐가 되느냐? 그때부터 이 사람이 자기 주변에, 왕궁 주변에 진센 돌프가 있나 한번 찾아 봤습니다. 없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지을 때 적은 교회, 조그마한 교회 지을 때에 있었던 교인들 중심으로 찾아보는데 뭐가 나오느냐 하면, 조그마한 어린 아이 하나가 진셀 돌프라는 이름이 있어요.

그래서 이 학생을 불러놓고는, 어린 아이를 불러 놓고는 물었습니다. '야, 네가 교회 지을 때에 뭘 했는 일이 있느냐?' 물으니까, 아이가 무슨 일을 했겠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 없느냐? 한번 생각해 봐라! 뭐, 조그마한 일이라도 했는 게 없느냐?' 이러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계속 물으니까, '한번 이야기 해 봐라. 적은 거라도 했는 게 있으면 이야기 해 봐라!' 이러니까 가만히 이렇게 생각하더니만 하나있다 그러더랍니다.

뭐냐? 제가 그 교회에 있으면서 교회를 건축하니까 너무 감사하고 너무 기쁘고 너무 좋아서 내가 이 기쁨을 내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일할 수도 없고 돈도 내가 많이 바칠 수도 없고 이래가지고 하루는 인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인부들에게 찬물을 떠 가지고 한 그릇씩 같다 줬답니다. 그리고 돌아왔어요. 여러분 그걸 듣고는 촬스 7세가 많은 것을 깨닫고 당장 그의 머릿돌을 빼 버리고 거기다가 진센돌프라는 이름을 바꾸어 넣었습니다. 지금도 유럽에 가면 진센 돌프 교회가 그대로 있습니다. 촬스 7세가 지은 교회당입니다. 지금까지 그대로 그 이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왜 제가 이런 말씀을 하느냐? 여러분 이 땅에서 내가 뭘 많이 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꾸 생각을 해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중심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원의 역사가 감격해서 이 사실을 붙잡고 그 다음에 기도하고 그 다음에 나가는 이런... 거기다가 모두 붙여진다고 자꾸 말해도 이게 자꾸 돌아가는 겁니다.

뭔 이야기냐? 내가 여기에 많은 돈을 들어서 지었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응답이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께서는 진정 교회를 짓는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하는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진 이 사실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 하는 구나! 그러니까 뭐냐하면, 내가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지었습니까? 진센 돌프에 기도가 지었습니다. 그 어린이를 하나님이 기뻐하고 하나님께 소원한 그 어린이의 기도가 이루어진 겁니다.

이때쯤 되면 여러분 뭔가 내가 뭘 다음에 말할 것인가 대강 짐작할겁니다. 짐작으로 끝내주시고요. 마지막으로 여러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은, 한 사람 예만 한번 딱 들어보십시다. 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이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자연적으로 우리 삶이 연결됩니다. 연결되는 삶에서 우리는 다윗을 예로 들어봅시다. 시편 37편입니다. 37편 우리 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는 교회 일을 하면서 이걸 많이 봐요. 뭘 많이 보느냐 하면, 교회 안에 장로님들이나 중직자들이나 이런 일들을 또 그 다음에 교회 목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막 비방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구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 교회 개혁하면서, 개혁 어떤 단체를 만들어 가지고 반대하고 이렇게... 그 다음에 뭐 심지어는 어떤 면에서 교회가 세습제를 없애야 된다고 이런 뭐, 반대하고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습니다. 그 교회가 세습제를 취했다 할 지라도 당회에서 결정하고, 그 세습제 목사 아들을 그 교회에 후임자로 세웠다 할 지라도 교인들이 다 투표해서 세우는 겁니다. 이건 모두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아들이 훌륭해서 세울 수 있다 그러면 얼마든지 되죠. 물로 그 아들을 뭔가 이 세우는 일에 조금 부족한데, 그냥 수단을 써서 세웠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거죠. 그건 뭐 세습제가 아니라도 문제가 되는 것이죠. 제가 세습제를 하는 어떤 교회 중에서 여러 몇몇 교회를 보면서 세습제를 했을 때에 원목보다, 자기 아버지 목사보다 훨씬 목회 잘하는 분이... 아무 문제없이 교회가 얼마나 더 은혜롭게 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못하게 되었을 때에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 뭐 수단 방법을 해 가지고 이상하게 하구요. 그런 문제가 있는데 근거를 굳이 따진다 그건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하는 것은 그런 것에 대해서 불평 이전에 저는 신문을 보면서 뭘 보느냐 하면, 진짜 악한 사람이 있더라 구요. 진짜 신물나고, 진짜 악한, 하나님과의 예의 상이 아니면 한 주먹씩 쥐어박아 버리면 싶을 생각이 날 정도로 악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도 여러분 오늘 다윗을 통해서 고백한 것이 뭐냐하면, 정말 구원의 축복을 알고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구원의 역사를 바로 가진 자의 삶의 자세가 뭐냐? 이것이 확인되면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행악 자를 보고 참 죽어야 마땅할 사람들일 지라도 '불평하지 마라!' 그랬습니다.

제가 이 오늘 이 말씀을 좀 묵상하면서 제가 좀 회개를 했어요. 이제 내가 신문 들어도 절대로 다른 소리 안 하겠다! 하지 말아버렸어요. 하물며 교회 안에 조금 뭐 이상하다! 뭐다! 절대로 불평하지 마세요. 필요가 없어요. 아무런 그럴 이유가 없어요. 불평하면, 그 뒤에 나오면 여러분도 저도 같은 동료가 되어버립니다. 같은 악한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불평하면서 가정에서 자란 후손들은 절대로 신앙이 바로 안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중직자의 가정에서 우리 후손들이 잘 안된 배경이 이겁니다. 나부터 시작해서 내가 부모로부터 그렇게 뭔가 나쁜 그런 소리를 내가 안 들었다고 싶은데도 뭐냐하면요. 교회 안에 비판 이야기 너무 강했던 배경이,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당했던 배경이, 그게 불신앙 때문에 절대로 하지 마라! 이걸 하지 마라! 하기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안 되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하지 마라! 먼저 그렇게 이야기한 거죠.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왜 그렇게 이야기했느냐? 하나님이 하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왜? 복음만 바로 붙잡고 있으면 그 다음에 2절 보십시다. 2절 다같이 시작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렐루야!

누가 다 합니까? 여러분과 제가 염려 할 것이 없다니까요. 아무 염려할 것 없어요. 남편조금 뭐, 이상하다고 해서 '저놈의 인간 이상한데 하나님이 손 좀 안 봐주나!' 진짜 하나님이 손 봐버리면 어쩌렵니까! 전혀 할 것 없어요.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바꾸실 것이고, 변화시킬 것이고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 중요한 것은 뭘 내가 한다는 배경 아닙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면 하나님이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렐루야!

구원 기뻐하고, 구원 감사한 것 내 안에 정말 생수가 강같이 흐르는 역사 간단합니다. 외부적으로 잘됐다 못됐다.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외부적인 문제에 내 눈이 가게 되면 그때부터 뭐냐? 나는 나도 모르게 종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 내 놔라! 저것 내 놔라!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안 되었다, 잘 되었다!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심령 기쁘고 즐겁습니다. 바로 그것이 잘 안되었을 때마다 우리는 확인하는 것이 예수님이 네게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왕으로 왔습니다. 사망의 왕권이 해결되었습니다. 지금 죽어도 어디가요? 대답을 잘 하시네. 안 하시는 분들은 자신도 없네. 천국 갑니다.

그뿐 아닙니다. 지금 죽어도 어떻게 합니까? 우리 죄와 저주의 문제를 다 해결하신 주님 때문에 우리는 문제없습니다. 죄 없는 자가 천국 갑니다. 의인입니다. 지금 죽어도 우리는 상관없습니다. 왜? 하나님을 만나는 바른길을 우리는 벌써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생각만 해도 이 축복의 역사를 가지고 기도만 해도 어떻게 되어요? '네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은혜는 해방이지 방탕이 아닙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롬8:2)

☞ 은혜는 해방입니다. 그러나, 해방에 대해서 오해하면 사단의 통로가 열려 삶이 방탕으로 깨어집니다.


[2]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갑시다.

☞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동산 가운데 선악과를 두고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에게 속은 인간은 그것을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역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저주와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인간이 죄와 사망의 법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해방하셨습니다.

☞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빠져나와 생명의 성령의 법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즉, 해방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빠져나와 생명의 성령의 법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 생명의 성령의 법 속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내가 죽고 내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갈2:20) 예전에 사단을 따라 살던 구습을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되어집니다.


[3]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 성령의 충만한 역사는 우리 영혼 속에 내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외적인 것에 상관없이 내가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감사와 기쁨이 강같이 넘쳐흐릅니다. 이것을 놓치면 신앙 생활이 종교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내가 죽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야하겠다는 생각과 마음이 생겨납니다.

☞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먼저 내적으로 구원의 감격이 넘쳐흐르고, 모든 다른 일들은 되어지는 삶으로 인도받아야 합니다. 또한, 악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기뻐해야 합니다.(시37:1-4)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 안으로 옮겨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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