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속의 불신앙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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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지난 시간은 한 주간 상당히 좀 벅찬 한 주간이었습니다. 비행기 관계로 화요일 날 자동차로 서울에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고, 수요일 날 이어서 치유 사명자 때문에 또 거기에 제가 운전을 해 가지고 금요일 날 아침까지, 오전 상당히 늦게까지 교회 도착을 하니까! 5시 반, 조금 힘든 마음이 있었습니다 만은, 저녁에 철야 예배를 인도를 하고 어저께 지나고 오늘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감사하다는 것, 이것이 뭐 치료가 되고 조금 건강이 회복이 되니까 감사하다! 이것보다도 마음속에 참 복음만이 모든 것의 해결이구나! 이 복음에 대한 사실을 또 현장과 내 생활 속에서 점점 확인되는 것이 참 감사하고...
그래서 마음으로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내게 확인 시켜준 또 그분에게 감사가 되고 또 여러분도 구체적으로 이 사실을 확인하고 교회 와서 은혜 받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참으로 감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른 이 하나, 하나의 모든 역사들이 내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에 계획이 계셔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귀한 것을 귀한 줄로 모른다 그러면 참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축복된 은혜의 약속이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현실적으로 여러분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귀한 줄로만 알아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어요.
오늘 잠깐 1부 예배 마치고 집에 가서 제가 TV를 잠깐 켜니까! 그 옛날 그릇인데, 그 그릇을 하나 내어놓았어요. 뭐 사람들이 이렇게 앉아 가지고 감정가를 매기도록 하고 제일 감정가가 근사한 사람을 뭐 이렇게 상을 주고 그런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런데 그 감정가를 매기는데 제가 봐도 그릇이 꼭 개 밥 그릇 같아요. 뭐 청자도 아니고 백자도 아니고 하얀 것도 아니고 또 푸른 것도 아니고 아이보리 색깔인데 그게 뭐 꺼칠꺼칠하게 되어 있고 완전히 그 뭐 개밥그릇을 던져 놓았다가 가지고 온 것 같은 그런 그릇인데, 이제 그 교수도 한 분 나와 있고 세분이 매기는데 30만원 매기고, 50만원 매기고, 한 사람이 아마 그 김 학 래 씨인데 뭐, 객기를 부려 가지고 300만원을 매겼더라 구요.
그런 감정가를 매겨 놓고 그런데 주인이 나와서 자기도 이게 자기 아버지로부터 받았는데 뭐 옳게 가치도 모르겠고, 또 그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똑같은 이 그릇을 또 하나를 자기가 깨었데요. 깬 배경이 뭐냐하면, 소꿉놀이 할 때에 그 사금 팔이라 그러죠 옛날에, 그것가지고 소꿉놀이하고... 사기 그릇입니다. 그런데 그걸 자기는 좀 보니까, 소꿉놀이 때 섰답니다. 그런데 그걸 깨고 난 후에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꾸지람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귀하게 여기고 그런걸 물려받았기 때문에, 뭐 귀한 줄도 모르고...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뭔데 싶어 가지고 이제 내어놓은 겁니다. 내어놓았는데 나도 놀랐어요. 30만원, 50만원, 객기로 300만원 쓴 사람이 있는데 전문가들이 와서 쭉 분석을 하면서 감정가가 얼마나 나오느냐? 1,200만원이 나오더라 구요. 본인이 놀라 가지고 입을 딱 벌리고 1,200만원 깨어 먹은 겁니다. 깨어 자기고 소꿉놀이에 쓴 겁니다.
그걸 보면서 무슨 마음이 드느냐? '맞아! 오늘 내가 믿음 속에 불신앙!'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그게 믿음에 바로 내용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처럼 늘 옆에 있으면서도 그 귀한 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 습관 따라서, 그 다음에 인식 따라서, 그 다음에 사상 따라서, 우리 뭐 풍습 따라서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그러니 뭐 교회 열심히 다니는 것, 교회 믿고 그냥 또 우리 노회를 믿고, 총회를 믿고, 그 다음 또 우리가 아는 데로 뭔가 전통을 믿고, 그 열심을 내고 살아왔던 배경 그것을 한마디로 제가 오늘 뭐냐하면, 믿음 속에 불신앙이라! 그렇게 자랐습니다.
사실은 안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분명히 뭐 귀중한 것이라고 아버지께 물려받았지 만은, 안 믿고는 그게 귀중한 줄도 모르고 놔두는 겁니다. 그러니 이걸 제가 이제 부부 치유에서 가정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번에 그 부부치유 가서 보면서 제가 이 목요일 날 '부부치유 강사!' 라 그래서 제가 상당히 미안한 것은, 부부 치유 강사가 될 만한 자격이 내가 없거든요. 문제가 있었다면 여러분들이 그저 귀 넘어 듣고 그렇게 한 것으로 알지 만은, 제가 뭐 싸웠다 그러고 뭐 한다! 그러면 '아, 우리 목사님!'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가 봐요. 낭만적으로 생각하는가 봐요. 심각했거든요.
요즘도 뭔가 이 우리 류 목사님 메시지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뭘 던졌는데 나았다. 왜, 그러는 지도 모르는데 나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 나오면 일단 나를 쳐다보고 한번 발을 찝쩍거려요. 그런 과정에 있던 제가 어떤 면에서 이번에도 부부 치유하는 그 세미나에 가서 메시지하고 또 여기 와서 이제 부부 치유한다니까! '내가 참 이상하다!' 이런 생각이 들만큼 참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면서 그 부부치유 오시 분들이 한결같이 중요한 이야기가 뭐냐하면, '내 남편이 참 그렇게 귀한 줄 모르고 내 부인이 그렇게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는 겁니다. 가서 들어보니까 뭐 엉망인 사람이 너무 많아요. 남편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 집에서도 나를 딱 보고 고맙다고 하더라 구요. 나 같은 사람도 참 드물다 하는 것이 아니고 나 같은 사람과 같이 살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다! 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뭐냐하면, 부부 안에서 문제 생긴 것 보면요. 그것은 호강에 빠진 문제입니다. '너무 좋은 남편, 너무 좋은 아내!' 같이 있으면서도 괜히 뭐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게 가치를 몰라서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이 가치를 깨닫게 되는 배경이 우리가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말씀한 것처럼 우리의 어떤 유교적인 배경과 전통가지고, 뭐 가부장적인 전통과 배경가지고, 말씀이 아닌 것 가지고 내가 아내를 대하고 남편을 대하고 자식을 대하고 이러다 보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믿는다고 예수 믿는다 그러면서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겁니다. 말씀에 의지한 신앙이 아니니까, 믿음 속에 불신앙입니다. 믿는다 그러면서도 다 불신앙! 믿으면 믿을수록 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더 뭔가 이런 문제를, 이런 잣대를 가지고 우리가 '가정을 잘 다스려 간다!' 그러면 더 큰 문제가 생기거든요. 왜? 사단의 배경이 이런 겁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모든 종교 배경, 사단의 배경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는 믿음 장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특별히 히브리서 11장에 믿음 장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 11장에 나오는 배경에서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사실이지 그냥 붕 떠있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그냥 막연한 것이 아니다. 사실적인 것이다. 실제적인 것이다. 우리가 가치를 알았을 때에 실제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여러분 그 아마 이분이 절대로 이제는 그 사발을 깨어 가지고 소꿉놀이 안 할겁니다. 절대로 안 할겁니다. 그러니까 내 아내가 귀하다는 사실을 말씀에 의해서 우리가 발견되는 만큼 뭡니까? 귀하게 여겨지고 귀하게 대접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마 거기다가 그 그릇을 1,200만 원짜리! 볼 때마다 대우가 달라집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늘 그저 이 뭔가 내가 물려받았고, 뭐 전부터 살아왔고 그 다음 말씀! 뭐 성경 늘 한 2, 3만 원짜리 옆에 놔두고 늘 보고 그러니까, 이게 별로 아닌 것 같고 설교도 늘 주일날마다 목사님 하시는 것이다! 이러니까 귀한 것을 몰라요. 그래서 우리 그 집회 참석하면, '오늘은 5억 짜리 설교를 한다!' 그러더라 구요.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5억은커녕 1,000원짜리도 안 되겠다!' 이런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뭐냐하면, 주일날 정말 하나님이 이 말씀대로 성취될 말씀이 임하신다는 사실을 가치만 우리가 인정을 해도요. 이게 엄청난 여러분 자세가 바꾸어져 버립니다.
아마 이 말씀 듣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 준비하고, 미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 가치만큼 한 주간 역사가 되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요.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미리 이 메시지를 듣고 말씀을 듣기 위해서, 잠이 올 사람들은 아예 토요일 날 한숨씩 자고 그렇게 올 것 아닙니까! 토요일 날 밤늦게 까지 계속해서... 더군다나 주일 쉰다고 빨래하고 뭐하고 다 한다고 늦게까지! 이래가지고 그것도 생전 안 나오던 새벽 기도도 나왔지...
이러니까 주일날 왔다! 감기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러니 오후 되면 완전히 가버려! 제가 오후에 이 아침부터 와서 봉사하는 사람들 보면, 오후에 눈을 못 떠! 정말 말씀! 그 말씀이 뭐 30만 원짜리 정도만 이해를 해도 달라질 겁니다. 이게 30만원이겠어요. 1,200만원이겠어요. 엄청난 은혜에 축복과 가치를 우리가 믿음을 회복하는 만큼 깨닫게 되거든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오늘 이 사실적인 믿음을 회복하는 것을 말씀회복이라 그랬습니다. 왜? 말씀은 창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회복되면 변화가 나오고요. 여러분 가정에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절 보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이 사실적인 것을, 사실적인 믿음이 뭘 믿는 것이 믿음이냐? 3절 말씀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 회복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믿음 없는 자와 함께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해 놓고 하나님이 일을 하지 않고 계신다면, 믿음 회복하기까지 기다립니다. 그 믿음이 말씀을 믿는 겁니다. 그래서 정 하나님의 일은 급하고 바쁘시고 일은 해야 되는데 정 안 하신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성경에 보면 '한 귀때기씩 때린다!' 그랬어요. 이걸 가지고 '징계' 라 그랬습니다. 징계! 징계는 내가 사생 자에게 아버지가 될 때는 남의 아들을 징계하지 않습니다. 징계 받는 사람은 빨리 깨달아야 될 것은, 이게 '징계다! 하나님 앞에 맞았다!' 싶거든 감사하십시오. 정말!
왜? 지금까지 제가 쭉 겪어 오면서 뭘 맞았다 싶고, 징계를 받았다 싶을 때에 그건 축복과 은혜의 통로이지, 한번도 손해 된 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역사를... 왜? 그렇게 해서 믿음을 회복시켜 놓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도 주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도 주십니다. 역사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실이 우리가 조금만 이해가 되면요. 말씀! 바로 여기에 모든 우리 믿음에 근거가 나오게 될 때에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누가 복음 24장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제자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왜? 말씀을 믿는다 그럴 때에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믿는다 그럴 때는 어떻게 믿어야 될 것이냐? 이 막연하거든요. 그러니 믿어라! 말씀대로 살아라! 한번 받아합시다. "말씀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말씀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다." 또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이루신다." 할렐루야! 믿습니까! 여러분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만 믿어도 엄청난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뭐 우리 속에... 그러니까 지금까지 믿음 속에 불신앙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믿는다 그러면서 엉뚱한 것을 믿어요. 제가 얼마나 그러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박 목사가 바람 피웠다!' 그러면 잘 믿어요. 그냥 아마 이 말이 어디서 나오던지 한마디만 나왔다! 쫙 돌아 버립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깨어도 설교할 때는 박 목사님 말씀, 그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 잘 안 믿어요. 왜, 잘 안 믿느냐? 잘 안 믿는 증거! 졸음이 오니까, 잘 믿는다 그러면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그 말씀을 잘 안 믿는다는 배경 속에 뭐냐하면요. 그 말씀 붙잡고 한 주간 기도할 때에 기도가 나옵니다. 거의 보면요.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이 잘 없어요. 이것만되었다 그래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는 배경이 그것이거든요. 그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신구약 66권을 믿어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니까 그 믿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갈등이 와요. 뭘 믿어야 되는지. 전부 말씀인데 뭘 어떻게 믿어야 되는지.
그 다음에 말씀을 믿을 때에 여러분 보세요. 뭐 어떤 것은 이렇게 해라! 어떤 것은 저렇게 해라! 뭐, 상당히 헤깔리는 겁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그랬는데 사는 것 보면 영 다르거든요. 그러면서 전부 여러분한테 물어보면, 그래도 나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다 그러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이렇게 하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하고 이렇게 나오니까! 헤깔려요. 그래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뭐냐하는 것을, 그 다음에 성경에서 말씀해 주었어요.
4절 말씀입니다. 4절 말씀 다같이 시작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여러분 그 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 잘 알죠. 정성이 있다, 없다! 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제사의 중요한 것이 뭡니까! 피입니다. 피! 그게 바로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것이 말씀을 믿는 믿음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오늘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만은, 누가복음 24장, 이건 묵은디이한테 주신 말씀이고 여러분과 저한테 주신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믿음 속에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 뭐라 그랬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그 광경을 본 제자들 중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너무 낙심해서 이제 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인 줄 모르고 벌써 이제 눈이 어두워 졌으니까, 예루살렘에 된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러니 '무슨 일로 걱정하며 오느냐?'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왔다면서 그것도 모르느냐?' 이러면서 예수님을 오히려 힐책하고 그런 배경이 나오죠.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겁니다. 그때에 24장 25절 보면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러면 더디 믿었다는 것은 지금 현재 어떻게 믿는 겁니까? 안 믿는 겁니까? 안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선지자들의 말이나 구약배경에서 많은 말씀을 했지만은 그 말씀을 지금 안 믿었어요. 그러니 말씀을 왜? 이 사람들이 특별히 유대인들은 말씀을 믿는 사람들로는 유명합니다. 철저하게 지금현재 유대인들은 훈련을 받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서 말씀을 안 믿는다! 그랬어요. 뭐,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또 '말씀을 더디 믿는다, 지금 현재 안 믿는다' 그랬습니다. 지금 열심히 믿고 있지만 불신앙 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배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6절 다같이 한번 봅시다. 26절 다같이 시작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그 다음 26절 시작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아멘. 바로 무슨 말씀이냐 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 속에 모든 말씀이 나왔을 때에 성경 속에 나와있는 모든 말씀을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누구에 대한 설명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셨다!' 메시아의 역사, 그리스도의 역사를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느냐? '자세히 설명했더라!' 그랬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설명했더라!' 이겁니다. 여러분 말씀을 자세히 설명했다는 것은, 말씀이 완전히 역사성을 갖고 있고 사실성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고 믿어도 사실이고 역사성을 가지고 믿어라!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과 역사성을 가진 자세히 설명한 핵심이 뭐냐? 그리스도라 그 배경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다! 이것이 내 마음속에 왔다! 이것이 믿어진다! 모든 성경을 해석하고 모든 성경을 믿는 핵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다 연결됩니다. 다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 가슴속에 왔다! 그럴 때에 그때부터 뭐가 나오느냐? 이 말씀을 따라서 여러분생애와 생활과 사건이 변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역사로 변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변화하고 일에 큰 능력의 역사가 은혜의 역사로 주께서 변화 할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 부부 치유에 있어서 여러 가지 부부에 대한, 치유에 대한 내용이 앞에 부분에서 정말 우리가 말씀 아닌 다른 것에 많이 습관이 되어 있다. 다 긍정을 하죠. 그런데 부부에 문제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가 성 문제입니다. 이것이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연세가 많은 분들일수록 이걸 입 밖에 내는 것조차도 경건을 해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경건을 해치는 것으로... 그러니 교회는 뭐 이런걸 전혀 내어놓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그 성경에서 이 사실을 깊이 좀 들어가 보면요. 번역상도 문제가 있으나 엄청나게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아가서입니다. 아가서! 그래서 저는 젊은 부부들이 아가서를 좀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 다음에 연세가 든 분들도 아가서를 읽어서 연세가 들었지 만은 하나님 앞에 새로운 그 인생을 살아보시라!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 가지고 조금 제가 이 문제를 터치를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올 것이냐? 조금 생각을 했어요. 생각을 했는데, 왜 그러냐 하면, 너무 이 문제가 지금까지 덮어놓은 부분이기 때문에 덮어놓은 부분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다른 배경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세요. 얼마나 부부를 오해 시켜 놓았느냐 하면, 글이 나올 때에 우리나라 옛날 글 속에서 부부에 대한 어떤 것을 말하면서 이 '변강쇠' 라는 이런 이상하게 오해를 시키는 그런 글을 만들어 내고 그 다음에 여러분 인터넷이나 이런데 들어가 보면요. 도저히 이것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무슨 뭐... 이것은 그렇게 표현을 해 놓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뭐냐하면, 여러분들이 제가 이걸 분명히 말씀하게 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이 들어오더라 구요. 이 질문이 들어와요.
그러면 특별히 한국 사람에게서 제가 느끼는 것은 뭘 느끼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과 제게 말씀이 너무 신기하고 오묘하기 때문에 나와 우리에게, 또 내게 우리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은 임하게 될 때에 바로 그 체질과 사건과 일과 모든 형편 따라서 가장 알맞게 적용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이 적용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훈련이 너무 안 되어 왔고 그런 사단의 배경 때문에 뭔가 시키는 데로 하는 그런 배경 이게 적용이라는 것을 잘 못해요.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라!' 그러면 그렇게만 하는 걸로만 생각을 합니다. 뭔가 이렇게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내게 이렇게 적용이 되고, 우리 가정에 이렇게 적용이 되고 하는 이 인도를 못 받아요.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 그 상담 문제도 좀 문제다 싶어요. 그 상담 문제도 바로 못해주면요. '이렇게, 이렇게 해라!' 그러면요. 우리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그렇게 하라는 그것만 가지고 붙들고 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정에 이렇게 말씀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해서 적용하는 훈련이 잘 안 되어있어요. 이 말씀 의지해서 하는 이 훈련이 너무 안 되어 왔으니까!
그래서 저는 그 여러분들에게 제 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앞으로 또 우리 세미나를 좀 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은, 가정에서 세미나 할 때에 '뭐, 또 박 목사님이 신기한 이야기를 좀 하는가!' 싶어서 궁금증을 가질까 싶고, 우리 여러 안 들은 분들이 '뭐, 목사님 참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러면 뭐, 이상한 생각을 할까 싶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제가 좀 미리 이런 내용이상 더 할게 없어요. 뭔 이야기냐 하면, 여러분들이 그런 문제는 책이 많아요. 그런데 붕 띄워놓은 책이 나와 가지고... 생물학적인, 정확한, 과학적인 그런 책들을 참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말씀에 의해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걸 누구한테 물어 가지고 한다! 그것은 그때부터 또 갈등이 와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보세요.
그러면서 한 가지 드릴 것은 전혀 지금까지 어떤 인식을 깨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 하면, 조금만 이상한 말이 나오면 강단에서 그렇게 경건치 못한 이야기가 나오느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냐?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문제는 전혀 이건 터치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 부부치유에 있어서 어떤 그 부인이 이 강의를 하고 난 후에 고백을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자기가 어릴 때에 그 옛날에 어릴 때에 거의 안 그랬습니까! 각방을, 이런 형편이 안 되니까! 그 부모하고 같이 자는데 꼭 그런 문제가 있을 때는 어머니가 계속 거절하는 것으로만 들었습니다. 그 잠자리에서... 그러니까 그것이 딱 뭔가 머리에 베여 있는 겁니다. 머리에 베여 있어서 지금도 결혼하고 난 후에 그 부분에서 계속해서 자기 남편을 거부를 하는 겁니다. 거부를 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이렇게...
여러분 이 얼마나 병들었겠어요. 문제가 이 심각하게 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 이야기를 하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회개를 한다고 그러더라 구요. 비단 그뿐 아닙니다. 여기 계시는 여자 분들 거의 다 그렇습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런 배경이 다 나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 제가 이 부부치유를 한다 그러니까 박 목사님 또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궁금해할까 싶어서 여러분들이 더 적용을 하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입니다. 부모를 떠나 그 육체가 뭐라 그랬습니까? 한 몸이 된다! 그랬죠. 여기에 하나님께서 큰 축복에 극치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그 다음에 그 부모를 떠나서 육체가 하나 된다고 그럴 때에 여러분과 제가 반드시 또 따라와야 될 것이 있습니다. 뭐가 하나되어야 됩니까?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영이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 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이걸 앞에 것만 이야기하고 뒤에 것을 이야기 안 하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문제가 배제되고 육체의 하나를, 한 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게 될 때에 이것은 쾌락으로 흐릅니다. 쾌락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반드시 한 몸이 된다는 것으로 하나가 될 때에 여기에 전제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내가 결혼한 남자와 하나이지,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하나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 우리 예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아주 상세히 말했더라 구요. 남자가 창기와 합하면 창기와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가 된다! 그랬습니다. 이 고린도 서에 잘 나와 있죠. 하도 이런 문제가지고 초대 교회에도 많이 나왔으니까! 그런데 남녀가 부모를 떠나서 한 몸이 되는 속에서 거기에서 인간에게 주신 참 아름다운 행복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그래서 제가 이걸 조금 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싶어요. 여러분 그 여자들이 행복하다라는 말을 고백하는 때가 언제냐 하면요. 남자의 품에 안겼을 때입니다. '행복하다!' 그런 마음이 나오거든요. 그러니 보통 때는 '행복하다!' 이게 잘 안됩니다. 그러나 실컷 싸워 놓고도 품에 안겨 있을 때는 '행복하다!' 그럽니다.
여러분 그 성경에는 하나님의 정말 큰 역사와 귀중한 축복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육신 적인 문제가지고 설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가서는 그런 어떤 것을 가지고 암시적으로 설명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이런 부분을 말씀하면서 뭐라 그랬느냐?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하노라!' 그랬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비밀인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하노라 그랬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 하면요. 여러분들이 정말 뭐 부부가 정말 행복하게 하겠다! 뭐, 부부를 치유한다! 그런 배경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늘 영광에 대해서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때에 부부가 이 축복 속에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나 되는 것은 따라 오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에 받아합시다. "참 행복하다!" 여러분 예수를 영접했을 때 행복하다는 소리를 안 합니까! 행복하다는 소리를 여러분 하지만 얼굴에 보면 정말 행복하다라는 마음이 안 들 때가 있어요. 그냥 좀 편안하니까, 행복하다.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워낙 모르니까 부부가 하나될 때에 오는 그런 것을 말하면서 영적으로 하나되는 행복을 거의 다 놓쳤습니다. 여러분 이만하면...
그래서 결혼을 한 사람이 복음을 이해하는 것하고 결혼을 안 한 사람이 복음을 이해하는 것하고 달라요. 뭐 결혼해도 부부가... 뭐, 사랑스러운 부부가 말씀을 이해하는 것하고, 맨 날 싸우는 부부가 말씀을 이해하는 것하고 달라요. 말씀 따라서... 그래서 정말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고 부부가 영적으로 하나 되었을 때에 오는 행복이 이해가 되었다 그럴 때는 받아합시다. "다른 남자들은 전혀 눈에 안 들어온다!" 내어놓아도 괜찮습니다. 받아합시다. "다른 여자들은 전혀 눈에 안 들어온다!" 어떤 장소에 내어놓아도 상관없습니다. 이 사실이 안 되기 때문에 뭐냐? 헤깔리는 겁니다. 계속 헤깔려요.
여러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럴 때에 정말 행복하다라는 것이 말하자면, 그런 배경을 가지고 표현을 했는데 이것이 꼭 그런 어떤 순서를 거쳐서 오는 것이냐?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사실을 깨닫고 알게 될 때 영적인 그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우리 속에 체험되고 그 다음에 이 부부생활이나 가정생활 통해서 점점 그게 배가되는 겁니다. 우리 삶에서 그러면 이게 삶에서 뭐가 됩니까? 자기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참 귀중하다 아닙니다! 더 이상 없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1,200만 원짜리 나오는 그 맨 날 죽 그릇 같은 이상한 것 별로 안 봤더니만 '정말 귀하구나!'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금요일 날 우리 그 여자집사님이 한 분 나와서 뭔가 이 간증을 했습니다. 다른 우리 가신 분들도 고백할 것은 많을 겁니다. 그런데 뭐 다 할 수 없어서 일단 본인이 이건 너무 표현을 좀 해야 되겠다 싶어서 그 뭔가 잘 나와서 하고 하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그런데 간증을 했습니다. 간증을 했는데 제가 그 간증을 들으면서도 뭘 생각을 했느냐 하면, '여러분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정말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서게 될 때에 가정만큼 행복한 데가 없고요. 여러분 부모 자식관계 보다 더 행복한 게 없고요. 그리고 우리의 일가친척 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안 될 때는... 그리고 여기에 이르게되면요. 사랑하는 교회 이게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가 교회를 건축했다. 세계를 안고 우리가 한 사람 영접했다. 바로 세계 많은 사람들을 다 안게 되는 이런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거든요. 그러면 말씀을 이제 마지막으로 좀 맺으면서 뭘 드리고 싶으냐 하면, 이 사실이 그냥 뭐 간단하게 그렇게 '해야 되겠다!'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걸 너무 아시고 우리 인간에게 철저하게 모든 문제 이전에 이것부터 해결하고 주신 것이 구약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전부 뭐냐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불신앙! 이 문제 해결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른 말로 말하면 우상으로 그렇겠죠.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어제 핵심에도 이 말씀 나왔어요. 20장 1절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0장 2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한번 받아합시다.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리가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전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른 것이 바로 이제 뭐냐하면, 우리가 이 체질이죠. 그 다음에 전통이죠. 그 다음에 저와 여러분 가정 문제에 있어서는 유교배경, 불교배경, 미신배경! 이런 배경 전부 다른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상 화되어서 우상이 되고 이건 또 뭔가 지식도 우상이 되고 전부 이런 걸로 통해서 이게 전부 자리를 딱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말하면서 제일 먼저 선언한 것이 '다른 것이 네게 있게 말지니라' 말씀 이외에는 정말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을 믿어야 되는데 믿지 말아야 될 것을 믿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없애고 말씀 이외에는 다른 것이 있게 말지니라 이것이 십계명 첫 번입니다. 그것이 전부 하나님께 대해서 일 계명과 이 계명, 삼 계명, 사 계명, 오 계명... 전부 이걸로 나갑니다. 그러니 뭐 다른 요소가 아니에요, 이 요소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내 가정에 우리 교회에 내 안에 우상만 없애면 된다!" 이게 십계명도 전도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와 여러분에게 지금 너무 다른 것으로 꽉 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이 십계명에서 '다른 것으로 있게 말지니라!' 그러는데 이 다른 것으로 있게 말지니라 하는 말씀 속에서 다른 것을 못 있도록 뭐냐? 완전히 몰아낼 수 있는 배경이 뭐냐하면, 다른 것이 없더라 구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 외에는 여기에서 이 해결이 안 됩니다.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5절 말씀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랬는데, 문제는 이 문제가 부활로 체험이 되어야 됩니다. 체험이 되어야 돼요. 체험된다! 그럴 때에 여러분 구원에 대한 체험을, 말씀을 금요일 날 좀 드렸습니다 만은, 좀 집고 넣어가야 될게 우리가 이 축복과 은혜가 뭐 조금 전에 기쁘다 행복하다. 이런 어떤 배경정도가 아니고 엄청나게 그 큰 축복의 배경이 구원의 축복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지난날에 그 어릴 때에 그 유행가를 뭔가 이 TV에 흘러간 노래를 보는데 뭐 '♪할말은 많으나 돌아서는 내 마음 검은 장갑 낀 손~' 그게 우리 정서에 맞거든요. 옛날에 그러니 할 말은 많지만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 유교적인 배경에서 훈련을 받았거든요. 그게 참 정서에 맞아서 그런지 옛날에 우리 그 성장 할 때에 한참 그 노래를 저음으로 해서 많이 불렀어요. 그런데 그게 옛날 생각이 나서 약간 연애는 안 해 봤지만 연애 같은 것은 한번 해 봤거든요. 그러니 그게 너무 뭔가 이 옛날 아득한 추억이 좀 살아나면서 몇 번 불렀죠. 그러고 난 후에 그 이튿날 아침에 딱 일어나니까! 제일 먼저 나오는 노래가 '♪할말은 많으나 검은 장갑 낀 손~' 이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역사 아니면 도저히 몰아 낼 수 없어요. 바울이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안 주셨던 특별한 은혜를 주셨어요. 왜냐하면 이방인 전도는 생명 걸고 해야 되는데 유대인 전도가 아닙니다. 이방인을 전도하자면, 그 큰 어려움을 감당하고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뭘 보여 주셨냐 하면, 천국을 보여 주었습니다. 삼층 천에 갔다 왔습니다. 나는 베드로가 무식하기 때문에 이방인 전도 못하고 유대인 전도만 했다 그런 어떤 배경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만은, 나는 중요한 핵심이 여기다 싶어요. 바울은 하늘 그 영광을 봤어요. 그러고 난 후에 자기의 인생의 모든 것을 여기에 맞추어 버렸습니다.
왜 너무 너무 좋은데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하는 너무 너무 좋은 곳을 보니까! 그러니까 내가 잠깐 옛날에 추억에 기뻐서 옛날에 추억이 좋아서 향수에 약간 젖었던 것도 한번 딱 들어 왔을 때에 그 이튿날부터 당장 그 노래가 나오는데 여러분 그 영광을 보고 난 후에 바울의 고백이 뭔지 압니까? 살아도, 죽어도, 먹어도, 마셔도, 입어도, 누워도, 일어나도, 잠자도! 오직 내 안에서 누구만?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리라!' 이 배경이 나옵니다.
여러분 정말로 예수그리스도로 행복하다! 이럴 때에 뭐 가정 문제, 이런 문제!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그 축복과 은혜가 나에게 우리 가정에 이것이 이루어 졌다 이럴 때에 여러분 그때에 뭐 다른 문제 들어올 이유가 없죠. 그래서 다른 것이 들어와서 내 가슴속에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그 나라보다도 우선 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져 버려요. 자연적으로 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자꾸 다른 것이 들어와서 다른 것이 우선 되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를 건축하면서 교회 이제 그 건축헌금을 작정을 안 해 놓았습니까! 돈이 생기면 아마 이렇든, 저렇든 '내가 하나님 앞에 이 축복된 역사에 쓰임 받는다!' 이럴 때에 '우리 교회를 건축한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셔서 이 축복과 은혜를 주시는 구나!' 그런 것이 조금만 마음에 있어도 돈이 생기면 다른데 쓸 때 있어도 우선해서 뭘 생각합니까? '건축헌금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자연스럽게 오는 겁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그래서 하도 답답해서 커피하나를 마셔도 상쾌하니까! 그게 나오는데 갖은 핍박을 받아 가면서 지금 까지 먹고 있는데... 그런데 요즘은 핍박하다, 하다 안 되어서 안 합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바울의 심령 속에서... 이것처럼 구원에 대해서 조금만 깨닫고 그것이 사실이 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 문제 들어 오라 그래도 들어올 자리도 없어요. 나는 죽고 예수그리스도 충만하게 되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뭐가 나옵니까? 기도응답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하라고 그래도 이게 안 되면 기도가 안 나와요.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이 바로 이때부터 뭐냐? 체험되게 되면 말씀이 성취되었는데 그때는 여러분 부활을 믿어라! 부활의 역사에 증거가 하나되어라!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체험되어야 부활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골로새서 3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러면서 뭐라고 하느냐?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요. 위에 것을 생각한다 따라 옵니다. 이게 안 되면 여러분 아무리 해도 땅에 것을 보게 되어있어요. 지금 이것이 해결 안된 상황에서 뭐 부부가 어떻다 뭐다! 인간적인 생각이고 쾌락적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더 이상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전부 주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 다음에 3절 보면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여러분 부활의 생명에 역사가 체험되게 될 때에 모든 게 살아나 버립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것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는 그 간단한 말 같은 그 속에 그 말씀이 성경 전체를 커버해 버리는 사실적인 믿음이 와 버립니다. 그때마다 성경 읽을 때에 연결되는 겁니다. 이때부터 뭐가 나오는지 압니까? 무조건 감사가 나와요.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무조건!
그래서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이 바울이 이 사실이 안 되면 이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무조건 감사입니다. 감사밖에 더할 길이 없어요. 무조건 기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이 말속에는 '기뻐하라!' 그럴 때는 기뻐할 일이 업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기뻐하라 그랬습니다. '감사하라!' 물론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지만은 거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 사실 배경이 안 되면요. 감사할 일이 없어요. 왜? 그렇게 귀한 부인도 감사는커녕 원망스러운데, 그렇게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기 몸을 희생해 가면서 직장에 가면서 그렇게 해서 아껴주는 남편도 원망이 먼저 나오는데, 감사가 안 되는데 이 배경이 안 되면요. 감사가 안 나옵니다.
이게 되고 나면요. 말씀과 연결되면서 전부 '아, 너무 귀하구나!' 위에서부터 받아 가지고 무심코 가지고 있었는데 1,200만 원짜리다 야 신기하구나! 말씀에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때에 모든 문제가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치유가 되었다 이럴 때에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감사! 그러면 감사는 뭐의 감사가 나오느냐? 말씀이 임하면 그러니 말씀이 임하면 무조건 뭡니까? 아멘! '참 감사합니다. 아멘!' 여러분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뿐 아니고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오게 돼요.
내가 워낙 아멘 고함을 지르지 마라!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 가지고 앞으로 차츰 차츰 이제 점점 더 나올 꺼니까!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아예 첫 번부터 훈련시키는 건데 그러면 설교하기가 복잡해져요. 정신이 없어져요. 그래서 우선 여러분 '아멘' 하면 고개만 끄덕이고 눈만 깜짝이고 나는 아니까! 그랬더니만 다른 사람들이 와 가지고 '아멘' 을 워낙 안 하니까 힘이 든다 그러는데 잘 알아요. 여러분 말씀 받습니다. '아멘, 참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할렐루야!' 치유에는 그러더라 구요. 그런데 뭐가 나오느냐? 찬송이 나오도록 되어 있어요. 찬송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찬송이! 자연적으로 찬송이 나오도록 되어 있어요.
여러분 가정에 눈을 떴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문제와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이 배경에서 이제는 내가 나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이 문제 주신 하나님도 큰 계획을 가지고 이 문제를 주셨습니다. 이 문제 주신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이 문제 주실 때에 나와 내 가정에 큰 계획가지고 주셨습니다. 막 말로 해 가지고 '이상한 아내' 맡겼습니다. 큰 계획이 있습니다. 이게 지나놓고 보면 알 듯도 한데 메시지가 없으니까! 이게 말씀이 안 깨달아 지니까! 이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씀을 늘 잘 들어야 되는 배경이 이겁니다. 주일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이해가 될수록 뭐가 되느냐? 그 '말씀만 새겨들어야 되겠다!' 그 말이 아니고 이 말씀과 연결되어서 여러분 삶 전체가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서 말씀 전체가 연결이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때부터 뭐가 나오느냐? 찬양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감사가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눈뜨면 노래하는 아내를 보고 기분 나빠할 남편이 어디 있습니까! 입이 이만큼 나와있을 때에 기분 나쁘지! 아내가 그 다음에 '남편이 참 ,감사하구나! 저런 아래를 주신 하나님이 참 감사하다!' 이렇게 되면요. 아내는 그 남편이 더 감사해집니다. 이것은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사람일수록 점점 더 배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배경이, 그 안 되는 배경이 믿음 속에 불신앙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엉뚱한 것을 믿고 너무 다른 것을 믿고 믿어야 될 것은 절대로 안 믿어요. '절대로' 라는 말은 이상합니다 만은, 안 믿어요. 이것이 오랜 우리의 체질이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부부여 말씀으로 돌아가자! 교인들이여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바로 그 말씀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과 제게 지금 성령으로 오셔서 모든 문제 해결했습니다. 걱정과 염려는 다 맡기십시오.
이 문제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엄청난 희생이 아니라 생명 걸어 버렸습니다. 바로 그 주님은 창조 주시오. 바로 그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요. 그 분은 못하실 것이 없는 분입니다. 다만 여러분과 제게 모든 문제 해결하신 이 주님을 '믿어라!' 고만 했습니다. 믿으라고 했어요.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어떠냐? 정 안 믿어지느냐? 고백하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느니라 다른 일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믿고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과 저를 세워서 세계복음화의 엄청난 자리에 세우셔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바꾸어 가시고 만들어 가시는 것을 보면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 속에서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경제적인 문제, 이런 문제 이러니까 '경제 내게 주옵소서!' 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믿도록 하시고 이렇게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고 그러면서 그 다음 문제는 다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믿음속의 불신앙
☞ 복음을 바르게 아는 것, 복음의 귀중함을 아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 많은 성도들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고,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습관, 인식, 사상, 전통 등의 다른 것을 따라 열심을 내고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의지하지 않은 신앙을 '믿음속의 불신앙'이라 합니다.
☞ 믿음은 사실이지, 막연하게 붕 떠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치를 알고 믿음을 회복하는 만큼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 주일에 듣는 말씀이 내 삶 속에 성취될 말씀이라고 믿어지고 그 가치가 느껴질 때, 예배드리는 태도와 말씀을 듣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2]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말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믿음 없는 자와 함께 일하시지 않으시며 우리가 말씀 믿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만 믿어도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자임을 믿는 믿음이 말씀을 믿는 믿음의 중심입니다.
☞ 하지만 우리 속에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닌, 우리의 체질, 사고방식, 지식, 전통 같은 다른 것들이 꽉 차있고, 이것이 사상, 우상이 되어 자리잡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 정말로 믿어야 될 것만 믿고, 말씀 이외에는 다른 것들이 있지 않게 해야하는데,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3]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바울은 하늘의 영광을 직접 보고, 자신의 생애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바쳤습니다.
여기에서, 살아도 죽어도 먹어도 마셔도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만 존귀케 되는 배경이 나옵니다.
☞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우선될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 이 때부터 기도응답이 나오고, 말씀이 사실적으로 체험이 됩니다.
☞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성취되는 것이 이해될수록, 말씀이 삶 전체에 연결되며 찬양과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다른 것으로 꽉 차 있는 우리에게, 믿음이 회복되게 하시고 반드시 성취될 말씀을 붙잡도록 하심을 감사합니다. 내 삶의 모든 방향을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맞출 수 있도록 믿음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난 시간은 한 주간 상당히 좀 벅찬 한 주간이었습니다. 비행기 관계로 화요일 날 자동차로 서울에 올라갔다가 또 내려오고, 수요일 날 이어서 치유 사명자 때문에 또 거기에 제가 운전을 해 가지고 금요일 날 아침까지, 오전 상당히 늦게까지 교회 도착을 하니까! 5시 반, 조금 힘든 마음이 있었습니다 만은, 저녁에 철야 예배를 인도를 하고 어저께 지나고 오늘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감사하다는 것, 이것이 뭐 치료가 되고 조금 건강이 회복이 되니까 감사하다! 이것보다도 마음속에 참 복음만이 모든 것의 해결이구나! 이 복음에 대한 사실을 또 현장과 내 생활 속에서 점점 확인되는 것이 참 감사하고...
그래서 마음으로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내게 확인 시켜준 또 그분에게 감사가 되고 또 여러분도 구체적으로 이 사실을 확인하고 교회 와서 은혜 받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참으로 감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른 이 하나, 하나의 모든 역사들이 내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에 계획이 계셔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귀한 것을 귀한 줄로 모른다 그러면 참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축복된 은혜의 약속이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현실적으로 여러분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귀한 줄로만 알아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어요.
오늘 잠깐 1부 예배 마치고 집에 가서 제가 TV를 잠깐 켜니까! 그 옛날 그릇인데, 그 그릇을 하나 내어놓았어요. 뭐 사람들이 이렇게 앉아 가지고 감정가를 매기도록 하고 제일 감정가가 근사한 사람을 뭐 이렇게 상을 주고 그런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런데 그 감정가를 매기는데 제가 봐도 그릇이 꼭 개 밥 그릇 같아요. 뭐 청자도 아니고 백자도 아니고 하얀 것도 아니고 또 푸른 것도 아니고 아이보리 색깔인데 그게 뭐 꺼칠꺼칠하게 되어 있고 완전히 그 뭐 개밥그릇을 던져 놓았다가 가지고 온 것 같은 그런 그릇인데, 이제 그 교수도 한 분 나와 있고 세분이 매기는데 30만원 매기고, 50만원 매기고, 한 사람이 아마 그 김 학 래 씨인데 뭐, 객기를 부려 가지고 300만원을 매겼더라 구요.
그런 감정가를 매겨 놓고 그런데 주인이 나와서 자기도 이게 자기 아버지로부터 받았는데 뭐 옳게 가치도 모르겠고, 또 그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똑같은 이 그릇을 또 하나를 자기가 깨었데요. 깬 배경이 뭐냐하면, 소꿉놀이 할 때에 그 사금 팔이라 그러죠 옛날에, 그것가지고 소꿉놀이하고... 사기 그릇입니다. 그런데 그걸 자기는 좀 보니까, 소꿉놀이 때 섰답니다. 그런데 그걸 깨고 난 후에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꾸지람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귀하게 여기고 그런걸 물려받았기 때문에, 뭐 귀한 줄도 모르고... 그런데 도대체 이게 뭔데 싶어 가지고 이제 내어놓은 겁니다. 내어놓았는데 나도 놀랐어요. 30만원, 50만원, 객기로 300만원 쓴 사람이 있는데 전문가들이 와서 쭉 분석을 하면서 감정가가 얼마나 나오느냐? 1,200만원이 나오더라 구요. 본인이 놀라 가지고 입을 딱 벌리고 1,200만원 깨어 먹은 겁니다. 깨어 자기고 소꿉놀이에 쓴 겁니다.
그걸 보면서 무슨 마음이 드느냐? '맞아! 오늘 내가 믿음 속에 불신앙!'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그게 믿음에 바로 내용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처럼 늘 옆에 있으면서도 그 귀한 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 습관 따라서, 그 다음에 인식 따라서, 그 다음에 사상 따라서, 우리 뭐 풍습 따라서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그러니 뭐 교회 열심히 다니는 것, 교회 믿고 그냥 또 우리 노회를 믿고, 총회를 믿고, 그 다음 또 우리가 아는 데로 뭔가 전통을 믿고, 그 열심을 내고 살아왔던 배경 그것을 한마디로 제가 오늘 뭐냐하면, 믿음 속에 불신앙이라! 그렇게 자랐습니다.
사실은 안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분명히 뭐 귀중한 것이라고 아버지께 물려받았지 만은, 안 믿고는 그게 귀중한 줄도 모르고 놔두는 겁니다. 그러니 이걸 제가 이제 부부 치유에서 가정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번에 그 부부치유 가서 보면서 제가 이 목요일 날 '부부치유 강사!' 라 그래서 제가 상당히 미안한 것은, 부부 치유 강사가 될 만한 자격이 내가 없거든요. 문제가 있었다면 여러분들이 그저 귀 넘어 듣고 그렇게 한 것으로 알지 만은, 제가 뭐 싸웠다 그러고 뭐 한다! 그러면 '아, 우리 목사님!'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가 봐요. 낭만적으로 생각하는가 봐요. 심각했거든요.
요즘도 뭔가 이 우리 류 목사님 메시지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뭘 던졌는데 나았다. 왜, 그러는 지도 모르는데 나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 나오면 일단 나를 쳐다보고 한번 발을 찝쩍거려요. 그런 과정에 있던 제가 어떤 면에서 이번에도 부부 치유하는 그 세미나에 가서 메시지하고 또 여기 와서 이제 부부 치유한다니까! '내가 참 이상하다!' 이런 생각이 들만큼 참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면서 그 부부치유 오시 분들이 한결같이 중요한 이야기가 뭐냐하면, '내 남편이 참 그렇게 귀한 줄 모르고 내 부인이 그렇게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는 겁니다. 가서 들어보니까 뭐 엉망인 사람이 너무 많아요. 남편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 집에서도 나를 딱 보고 고맙다고 하더라 구요. 나 같은 사람도 참 드물다 하는 것이 아니고 나 같은 사람과 같이 살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다! 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뭐냐하면, 부부 안에서 문제 생긴 것 보면요. 그것은 호강에 빠진 문제입니다. '너무 좋은 남편, 너무 좋은 아내!' 같이 있으면서도 괜히 뭐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게 가치를 몰라서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이 가치를 깨닫게 되는 배경이 우리가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말씀한 것처럼 우리의 어떤 유교적인 배경과 전통가지고, 뭐 가부장적인 전통과 배경가지고, 말씀이 아닌 것 가지고 내가 아내를 대하고 남편을 대하고 자식을 대하고 이러다 보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믿는다고 예수 믿는다 그러면서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겁니다. 말씀에 의지한 신앙이 아니니까, 믿음 속에 불신앙입니다. 믿는다 그러면서도 다 불신앙! 믿으면 믿을수록 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더 뭔가 이런 문제를, 이런 잣대를 가지고 우리가 '가정을 잘 다스려 간다!' 그러면 더 큰 문제가 생기거든요. 왜? 사단의 배경이 이런 겁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모든 종교 배경, 사단의 배경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는 믿음 장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특별히 히브리서 11장에 믿음 장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 11장에 나오는 배경에서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사실이지 그냥 붕 떠있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그냥 막연한 것이 아니다. 사실적인 것이다. 실제적인 것이다. 우리가 가치를 알았을 때에 실제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여러분 그 아마 이분이 절대로 이제는 그 사발을 깨어 가지고 소꿉놀이 안 할겁니다. 절대로 안 할겁니다. 그러니까 내 아내가 귀하다는 사실을 말씀에 의해서 우리가 발견되는 만큼 뭡니까? 귀하게 여겨지고 귀하게 대접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마 거기다가 그 그릇을 1,200만 원짜리! 볼 때마다 대우가 달라집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늘 그저 이 뭔가 내가 물려받았고, 뭐 전부터 살아왔고 그 다음 말씀! 뭐 성경 늘 한 2, 3만 원짜리 옆에 놔두고 늘 보고 그러니까, 이게 별로 아닌 것 같고 설교도 늘 주일날마다 목사님 하시는 것이다! 이러니까 귀한 것을 몰라요. 그래서 우리 그 집회 참석하면, '오늘은 5억 짜리 설교를 한다!' 그러더라 구요.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5억은커녕 1,000원짜리도 안 되겠다!' 이런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뭐냐하면, 주일날 정말 하나님이 이 말씀대로 성취될 말씀이 임하신다는 사실을 가치만 우리가 인정을 해도요. 이게 엄청난 여러분 자세가 바꾸어져 버립니다.
아마 이 말씀 듣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 준비하고, 미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 가치만큼 한 주간 역사가 되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요.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미리 이 메시지를 듣고 말씀을 듣기 위해서, 잠이 올 사람들은 아예 토요일 날 한숨씩 자고 그렇게 올 것 아닙니까! 토요일 날 밤늦게 까지 계속해서... 더군다나 주일 쉰다고 빨래하고 뭐하고 다 한다고 늦게까지! 이래가지고 그것도 생전 안 나오던 새벽 기도도 나왔지...
이러니까 주일날 왔다! 감기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러니 오후 되면 완전히 가버려! 제가 오후에 이 아침부터 와서 봉사하는 사람들 보면, 오후에 눈을 못 떠! 정말 말씀! 그 말씀이 뭐 30만 원짜리 정도만 이해를 해도 달라질 겁니다. 이게 30만원이겠어요. 1,200만원이겠어요. 엄청난 은혜에 축복과 가치를 우리가 믿음을 회복하는 만큼 깨닫게 되거든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오늘 이 사실적인 믿음을 회복하는 것을 말씀회복이라 그랬습니다. 왜? 말씀은 창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회복되면 변화가 나오고요. 여러분 가정에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절 보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이 사실적인 것을, 사실적인 믿음이 뭘 믿는 것이 믿음이냐? 3절 말씀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 회복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믿음 없는 자와 함께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해 놓고 하나님이 일을 하지 않고 계신다면, 믿음 회복하기까지 기다립니다. 그 믿음이 말씀을 믿는 겁니다. 그래서 정 하나님의 일은 급하고 바쁘시고 일은 해야 되는데 정 안 하신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성경에 보면 '한 귀때기씩 때린다!' 그랬어요. 이걸 가지고 '징계' 라 그랬습니다. 징계! 징계는 내가 사생 자에게 아버지가 될 때는 남의 아들을 징계하지 않습니다. 징계 받는 사람은 빨리 깨달아야 될 것은, 이게 '징계다! 하나님 앞에 맞았다!' 싶거든 감사하십시오. 정말!
왜? 지금까지 제가 쭉 겪어 오면서 뭘 맞았다 싶고, 징계를 받았다 싶을 때에 그건 축복과 은혜의 통로이지, 한번도 손해 된 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역사를... 왜? 그렇게 해서 믿음을 회복시켜 놓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도 주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도 주십니다. 역사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실이 우리가 조금만 이해가 되면요. 말씀! 바로 여기에 모든 우리 믿음에 근거가 나오게 될 때에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누가 복음 24장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제자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왜? 말씀을 믿는다 그럴 때에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믿는다 그럴 때는 어떻게 믿어야 될 것이냐? 이 막연하거든요. 그러니 믿어라! 말씀대로 살아라! 한번 받아합시다. "말씀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말씀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다." 또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이루신다." 할렐루야! 믿습니까! 여러분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만 믿어도 엄청난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뭐 우리 속에... 그러니까 지금까지 믿음 속에 불신앙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믿는다 그러면서 엉뚱한 것을 믿어요. 제가 얼마나 그러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박 목사가 바람 피웠다!' 그러면 잘 믿어요. 그냥 아마 이 말이 어디서 나오던지 한마디만 나왔다! 쫙 돌아 버립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깨어도 설교할 때는 박 목사님 말씀, 그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 잘 안 믿어요. 왜, 잘 안 믿느냐? 잘 안 믿는 증거! 졸음이 오니까, 잘 믿는다 그러면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그 말씀을 잘 안 믿는다는 배경 속에 뭐냐하면요. 그 말씀 붙잡고 한 주간 기도할 때에 기도가 나옵니다. 거의 보면요.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이 잘 없어요. 이것만되었다 그래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는 배경이 그것이거든요. 그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신구약 66권을 믿어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니까 그 믿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갈등이 와요. 뭘 믿어야 되는지. 전부 말씀인데 뭘 어떻게 믿어야 되는지.
그 다음에 말씀을 믿을 때에 여러분 보세요. 뭐 어떤 것은 이렇게 해라! 어떤 것은 저렇게 해라! 뭐, 상당히 헤깔리는 겁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그랬는데 사는 것 보면 영 다르거든요. 그러면서 전부 여러분한테 물어보면, 그래도 나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다 그러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이렇게 하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하고 이렇게 나오니까! 헤깔려요. 그래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뭐냐하는 것을, 그 다음에 성경에서 말씀해 주었어요.
4절 말씀입니다. 4절 말씀 다같이 시작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여러분 그 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 잘 알죠. 정성이 있다, 없다! 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제사의 중요한 것이 뭡니까! 피입니다. 피! 그게 바로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것이 말씀을 믿는 믿음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오늘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만은, 누가복음 24장, 이건 묵은디이한테 주신 말씀이고 여러분과 저한테 주신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믿음 속에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 뭐라 그랬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그 광경을 본 제자들 중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너무 낙심해서 이제 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인 줄 모르고 벌써 이제 눈이 어두워 졌으니까, 예루살렘에 된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러니 '무슨 일로 걱정하며 오느냐?'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왔다면서 그것도 모르느냐?' 이러면서 예수님을 오히려 힐책하고 그런 배경이 나오죠.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겁니다. 그때에 24장 25절 보면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러면 더디 믿었다는 것은 지금 현재 어떻게 믿는 겁니까? 안 믿는 겁니까? 안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선지자들의 말이나 구약배경에서 많은 말씀을 했지만은 그 말씀을 지금 안 믿었어요. 그러니 말씀을 왜? 이 사람들이 특별히 유대인들은 말씀을 믿는 사람들로는 유명합니다. 철저하게 지금현재 유대인들은 훈련을 받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서 말씀을 안 믿는다! 그랬어요. 뭐,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또 '말씀을 더디 믿는다, 지금 현재 안 믿는다' 그랬습니다. 지금 열심히 믿고 있지만 불신앙 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배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6절 다같이 한번 봅시다. 26절 다같이 시작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그 다음 26절 시작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아멘. 바로 무슨 말씀이냐 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 속에 모든 말씀이 나왔을 때에 성경 속에 나와있는 모든 말씀을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누구에 대한 설명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셨다!' 메시아의 역사, 그리스도의 역사를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느냐? '자세히 설명했더라!' 그랬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설명했더라!' 이겁니다. 여러분 말씀을 자세히 설명했다는 것은, 말씀이 완전히 역사성을 갖고 있고 사실성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고 믿어도 사실이고 역사성을 가지고 믿어라!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과 역사성을 가진 자세히 설명한 핵심이 뭐냐? 그리스도라 그 배경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다! 이것이 내 마음속에 왔다! 이것이 믿어진다! 모든 성경을 해석하고 모든 성경을 믿는 핵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다 연결됩니다. 다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 가슴속에 왔다! 그럴 때에 그때부터 뭐가 나오느냐? 이 말씀을 따라서 여러분생애와 생활과 사건이 변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역사로 변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변화하고 일에 큰 능력의 역사가 은혜의 역사로 주께서 변화 할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 부부 치유에 있어서 여러 가지 부부에 대한, 치유에 대한 내용이 앞에 부분에서 정말 우리가 말씀 아닌 다른 것에 많이 습관이 되어 있다. 다 긍정을 하죠. 그런데 부부에 문제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가 성 문제입니다. 이것이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연세가 많은 분들일수록 이걸 입 밖에 내는 것조차도 경건을 해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경건을 해치는 것으로... 그러니 교회는 뭐 이런걸 전혀 내어놓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그 성경에서 이 사실을 깊이 좀 들어가 보면요. 번역상도 문제가 있으나 엄청나게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아가서입니다. 아가서! 그래서 저는 젊은 부부들이 아가서를 좀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 다음에 연세가 든 분들도 아가서를 읽어서 연세가 들었지 만은 하나님 앞에 새로운 그 인생을 살아보시라!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 가지고 조금 제가 이 문제를 터치를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올 것이냐? 조금 생각을 했어요. 생각을 했는데, 왜 그러냐 하면, 너무 이 문제가 지금까지 덮어놓은 부분이기 때문에 덮어놓은 부분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다른 배경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세요. 얼마나 부부를 오해 시켜 놓았느냐 하면, 글이 나올 때에 우리나라 옛날 글 속에서 부부에 대한 어떤 것을 말하면서 이 '변강쇠' 라는 이런 이상하게 오해를 시키는 그런 글을 만들어 내고 그 다음에 여러분 인터넷이나 이런데 들어가 보면요. 도저히 이것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무슨 뭐... 이것은 그렇게 표현을 해 놓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뭐냐하면, 여러분들이 제가 이걸 분명히 말씀하게 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이 들어오더라 구요. 이 질문이 들어와요.
그러면 특별히 한국 사람에게서 제가 느끼는 것은 뭘 느끼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과 제게 말씀이 너무 신기하고 오묘하기 때문에 나와 우리에게, 또 내게 우리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은 임하게 될 때에 바로 그 체질과 사건과 일과 모든 형편 따라서 가장 알맞게 적용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이 적용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훈련이 너무 안 되어 왔고 그런 사단의 배경 때문에 뭔가 시키는 데로 하는 그런 배경 이게 적용이라는 것을 잘 못해요.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라!' 그러면 그렇게만 하는 걸로만 생각을 합니다. 뭔가 이렇게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내게 이렇게 적용이 되고, 우리 가정에 이렇게 적용이 되고 하는 이 인도를 못 받아요.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에 그 상담 문제도 좀 문제다 싶어요. 그 상담 문제도 바로 못해주면요. '이렇게, 이렇게 해라!' 그러면요. 우리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그렇게 하라는 그것만 가지고 붙들고 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정에 이렇게 말씀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해서 적용하는 훈련이 잘 안 되어있어요. 이 말씀 의지해서 하는 이 훈련이 너무 안 되어 왔으니까!
그래서 저는 그 여러분들에게 제 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앞으로 또 우리 세미나를 좀 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은, 가정에서 세미나 할 때에 '뭐, 또 박 목사님이 신기한 이야기를 좀 하는가!' 싶어서 궁금증을 가질까 싶고, 우리 여러 안 들은 분들이 '뭐, 목사님 참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러면 뭐, 이상한 생각을 할까 싶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제가 좀 미리 이런 내용이상 더 할게 없어요. 뭔 이야기냐 하면, 여러분들이 그런 문제는 책이 많아요. 그런데 붕 띄워놓은 책이 나와 가지고... 생물학적인, 정확한, 과학적인 그런 책들을 참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말씀에 의해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걸 누구한테 물어 가지고 한다! 그것은 그때부터 또 갈등이 와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보세요.
그러면서 한 가지 드릴 것은 전혀 지금까지 어떤 인식을 깨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 하면, 조금만 이상한 말이 나오면 강단에서 그렇게 경건치 못한 이야기가 나오느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냐?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문제는 전혀 이건 터치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 부부치유에 있어서 어떤 그 부인이 이 강의를 하고 난 후에 고백을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자기가 어릴 때에 그 옛날에 어릴 때에 거의 안 그랬습니까! 각방을, 이런 형편이 안 되니까! 그 부모하고 같이 자는데 꼭 그런 문제가 있을 때는 어머니가 계속 거절하는 것으로만 들었습니다. 그 잠자리에서... 그러니까 그것이 딱 뭔가 머리에 베여 있는 겁니다. 머리에 베여 있어서 지금도 결혼하고 난 후에 그 부분에서 계속해서 자기 남편을 거부를 하는 겁니다. 거부를 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이렇게...
여러분 이 얼마나 병들었겠어요. 문제가 이 심각하게 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 이야기를 하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회개를 한다고 그러더라 구요. 비단 그뿐 아닙니다. 여기 계시는 여자 분들 거의 다 그렇습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런 배경이 다 나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 제가 이 부부치유를 한다 그러니까 박 목사님 또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궁금해할까 싶어서 여러분들이 더 적용을 하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입니다. 부모를 떠나 그 육체가 뭐라 그랬습니까? 한 몸이 된다! 그랬죠. 여기에 하나님께서 큰 축복에 극치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그 다음에 그 부모를 떠나서 육체가 하나 된다고 그럴 때에 여러분과 제가 반드시 또 따라와야 될 것이 있습니다. 뭐가 하나되어야 됩니까?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영이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 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이걸 앞에 것만 이야기하고 뒤에 것을 이야기 안 하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문제가 배제되고 육체의 하나를, 한 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게 될 때에 이것은 쾌락으로 흐릅니다. 쾌락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반드시 한 몸이 된다는 것으로 하나가 될 때에 여기에 전제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내가 결혼한 남자와 하나이지,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하나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 우리 예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아주 상세히 말했더라 구요. 남자가 창기와 합하면 창기와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가 된다! 그랬습니다. 이 고린도 서에 잘 나와 있죠. 하도 이런 문제가지고 초대 교회에도 많이 나왔으니까! 그런데 남녀가 부모를 떠나서 한 몸이 되는 속에서 거기에서 인간에게 주신 참 아름다운 행복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그래서 제가 이걸 조금 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싶어요. 여러분 그 여자들이 행복하다라는 말을 고백하는 때가 언제냐 하면요. 남자의 품에 안겼을 때입니다. '행복하다!' 그런 마음이 나오거든요. 그러니 보통 때는 '행복하다!' 이게 잘 안됩니다. 그러나 실컷 싸워 놓고도 품에 안겨 있을 때는 '행복하다!' 그럽니다.
여러분 그 성경에는 하나님의 정말 큰 역사와 귀중한 축복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육신 적인 문제가지고 설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가서는 그런 어떤 것을 가지고 암시적으로 설명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이런 부분을 말씀하면서 뭐라 그랬느냐?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하노라!' 그랬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비밀인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하노라 그랬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 하면요. 여러분들이 정말 뭐 부부가 정말 행복하게 하겠다! 뭐, 부부를 치유한다! 그런 배경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늘 영광에 대해서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때에 부부가 이 축복 속에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나 되는 것은 따라 오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에 받아합시다. "참 행복하다!" 여러분 예수를 영접했을 때 행복하다는 소리를 안 합니까! 행복하다는 소리를 여러분 하지만 얼굴에 보면 정말 행복하다라는 마음이 안 들 때가 있어요. 그냥 좀 편안하니까, 행복하다.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워낙 모르니까 부부가 하나될 때에 오는 그런 것을 말하면서 영적으로 하나되는 행복을 거의 다 놓쳤습니다. 여러분 이만하면...
그래서 결혼을 한 사람이 복음을 이해하는 것하고 결혼을 안 한 사람이 복음을 이해하는 것하고 달라요. 뭐 결혼해도 부부가... 뭐, 사랑스러운 부부가 말씀을 이해하는 것하고, 맨 날 싸우는 부부가 말씀을 이해하는 것하고 달라요. 말씀 따라서... 그래서 정말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고 부부가 영적으로 하나 되었을 때에 오는 행복이 이해가 되었다 그럴 때는 받아합시다. "다른 남자들은 전혀 눈에 안 들어온다!" 내어놓아도 괜찮습니다. 받아합시다. "다른 여자들은 전혀 눈에 안 들어온다!" 어떤 장소에 내어놓아도 상관없습니다. 이 사실이 안 되기 때문에 뭐냐? 헤깔리는 겁니다. 계속 헤깔려요.
여러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럴 때에 정말 행복하다라는 것이 말하자면, 그런 배경을 가지고 표현을 했는데 이것이 꼭 그런 어떤 순서를 거쳐서 오는 것이냐?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사실을 깨닫고 알게 될 때 영적인 그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우리 속에 체험되고 그 다음에 이 부부생활이나 가정생활 통해서 점점 그게 배가되는 겁니다. 우리 삶에서 그러면 이게 삶에서 뭐가 됩니까? 자기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참 귀중하다 아닙니다! 더 이상 없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1,200만 원짜리 나오는 그 맨 날 죽 그릇 같은 이상한 것 별로 안 봤더니만 '정말 귀하구나!'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금요일 날 우리 그 여자집사님이 한 분 나와서 뭔가 이 간증을 했습니다. 다른 우리 가신 분들도 고백할 것은 많을 겁니다. 그런데 뭐 다 할 수 없어서 일단 본인이 이건 너무 표현을 좀 해야 되겠다 싶어서 그 뭔가 잘 나와서 하고 하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그런데 간증을 했습니다. 간증을 했는데 제가 그 간증을 들으면서도 뭘 생각을 했느냐 하면, '여러분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정말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서게 될 때에 가정만큼 행복한 데가 없고요. 여러분 부모 자식관계 보다 더 행복한 게 없고요. 그리고 우리의 일가친척 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안 될 때는... 그리고 여기에 이르게되면요. 사랑하는 교회 이게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가 교회를 건축했다. 세계를 안고 우리가 한 사람 영접했다. 바로 세계 많은 사람들을 다 안게 되는 이런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거든요. 그러면 말씀을 이제 마지막으로 좀 맺으면서 뭘 드리고 싶으냐 하면, 이 사실이 그냥 뭐 간단하게 그렇게 '해야 되겠다!'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걸 너무 아시고 우리 인간에게 철저하게 모든 문제 이전에 이것부터 해결하고 주신 것이 구약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전부 뭐냐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불신앙! 이 문제 해결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른 말로 말하면 우상으로 그렇겠죠.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어제 핵심에도 이 말씀 나왔어요. 20장 1절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0장 2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한번 받아합시다.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리가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전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른 것이 바로 이제 뭐냐하면, 우리가 이 체질이죠. 그 다음에 전통이죠. 그 다음에 저와 여러분 가정 문제에 있어서는 유교배경, 불교배경, 미신배경! 이런 배경 전부 다른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상 화되어서 우상이 되고 이건 또 뭔가 지식도 우상이 되고 전부 이런 걸로 통해서 이게 전부 자리를 딱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말하면서 제일 먼저 선언한 것이 '다른 것이 네게 있게 말지니라' 말씀 이외에는 정말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을 믿어야 되는데 믿지 말아야 될 것을 믿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없애고 말씀 이외에는 다른 것이 있게 말지니라 이것이 십계명 첫 번입니다. 그것이 전부 하나님께 대해서 일 계명과 이 계명, 삼 계명, 사 계명, 오 계명... 전부 이걸로 나갑니다. 그러니 뭐 다른 요소가 아니에요, 이 요소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내 가정에 우리 교회에 내 안에 우상만 없애면 된다!" 이게 십계명도 전도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와 여러분에게 지금 너무 다른 것으로 꽉 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이 십계명에서 '다른 것으로 있게 말지니라!' 그러는데 이 다른 것으로 있게 말지니라 하는 말씀 속에서 다른 것을 못 있도록 뭐냐? 완전히 몰아낼 수 있는 배경이 뭐냐하면, 다른 것이 없더라 구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 외에는 여기에서 이 해결이 안 됩니다.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5절 말씀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랬는데, 문제는 이 문제가 부활로 체험이 되어야 됩니다. 체험이 되어야 돼요. 체험된다! 그럴 때에 여러분 구원에 대한 체험을, 말씀을 금요일 날 좀 드렸습니다 만은, 좀 집고 넣어가야 될게 우리가 이 축복과 은혜가 뭐 조금 전에 기쁘다 행복하다. 이런 어떤 배경정도가 아니고 엄청나게 그 큰 축복의 배경이 구원의 축복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지난날에 그 어릴 때에 그 유행가를 뭔가 이 TV에 흘러간 노래를 보는데 뭐 '♪할말은 많으나 돌아서는 내 마음 검은 장갑 낀 손~' 그게 우리 정서에 맞거든요. 옛날에 그러니 할 말은 많지만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 유교적인 배경에서 훈련을 받았거든요. 그게 참 정서에 맞아서 그런지 옛날에 우리 그 성장 할 때에 한참 그 노래를 저음으로 해서 많이 불렀어요. 그런데 그게 옛날 생각이 나서 약간 연애는 안 해 봤지만 연애 같은 것은 한번 해 봤거든요. 그러니 그게 너무 뭔가 이 옛날 아득한 추억이 좀 살아나면서 몇 번 불렀죠. 그러고 난 후에 그 이튿날 아침에 딱 일어나니까! 제일 먼저 나오는 노래가 '♪할말은 많으나 검은 장갑 낀 손~' 이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역사 아니면 도저히 몰아 낼 수 없어요. 바울이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안 주셨던 특별한 은혜를 주셨어요. 왜냐하면 이방인 전도는 생명 걸고 해야 되는데 유대인 전도가 아닙니다. 이방인을 전도하자면, 그 큰 어려움을 감당하고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뭘 보여 주셨냐 하면, 천국을 보여 주었습니다. 삼층 천에 갔다 왔습니다. 나는 베드로가 무식하기 때문에 이방인 전도 못하고 유대인 전도만 했다 그런 어떤 배경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만은, 나는 중요한 핵심이 여기다 싶어요. 바울은 하늘 그 영광을 봤어요. 그러고 난 후에 자기의 인생의 모든 것을 여기에 맞추어 버렸습니다.
왜 너무 너무 좋은데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하는 너무 너무 좋은 곳을 보니까! 그러니까 내가 잠깐 옛날에 추억에 기뻐서 옛날에 추억이 좋아서 향수에 약간 젖었던 것도 한번 딱 들어 왔을 때에 그 이튿날부터 당장 그 노래가 나오는데 여러분 그 영광을 보고 난 후에 바울의 고백이 뭔지 압니까? 살아도, 죽어도, 먹어도, 마셔도, 입어도, 누워도, 일어나도, 잠자도! 오직 내 안에서 누구만?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리라!' 이 배경이 나옵니다.
여러분 정말로 예수그리스도로 행복하다! 이럴 때에 뭐 가정 문제, 이런 문제!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그 축복과 은혜가 나에게 우리 가정에 이것이 이루어 졌다 이럴 때에 여러분 그때에 뭐 다른 문제 들어올 이유가 없죠. 그래서 다른 것이 들어와서 내 가슴속에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그 나라보다도 우선 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져 버려요. 자연적으로 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자꾸 다른 것이 들어와서 다른 것이 우선 되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를 건축하면서 교회 이제 그 건축헌금을 작정을 안 해 놓았습니까! 돈이 생기면 아마 이렇든, 저렇든 '내가 하나님 앞에 이 축복된 역사에 쓰임 받는다!' 이럴 때에 '우리 교회를 건축한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셔서 이 축복과 은혜를 주시는 구나!' 그런 것이 조금만 마음에 있어도 돈이 생기면 다른데 쓸 때 있어도 우선해서 뭘 생각합니까? '건축헌금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자연스럽게 오는 겁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그래서 하도 답답해서 커피하나를 마셔도 상쾌하니까! 그게 나오는데 갖은 핍박을 받아 가면서 지금 까지 먹고 있는데... 그런데 요즘은 핍박하다, 하다 안 되어서 안 합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바울의 심령 속에서... 이것처럼 구원에 대해서 조금만 깨닫고 그것이 사실이 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 문제 들어 오라 그래도 들어올 자리도 없어요. 나는 죽고 예수그리스도 충만하게 되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뭐가 나옵니까? 기도응답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하라고 그래도 이게 안 되면 기도가 안 나와요.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이 바로 이때부터 뭐냐? 체험되게 되면 말씀이 성취되었는데 그때는 여러분 부활을 믿어라! 부활의 역사에 증거가 하나되어라!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체험되어야 부활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골로새서 3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러면서 뭐라고 하느냐?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요. 위에 것을 생각한다 따라 옵니다. 이게 안 되면 여러분 아무리 해도 땅에 것을 보게 되어있어요. 지금 이것이 해결 안된 상황에서 뭐 부부가 어떻다 뭐다! 인간적인 생각이고 쾌락적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더 이상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전부 주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 다음에 3절 보면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여러분 부활의 생명에 역사가 체험되게 될 때에 모든 게 살아나 버립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것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는 그 간단한 말 같은 그 속에 그 말씀이 성경 전체를 커버해 버리는 사실적인 믿음이 와 버립니다. 그때마다 성경 읽을 때에 연결되는 겁니다. 이때부터 뭐가 나오는지 압니까? 무조건 감사가 나와요.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무조건!
그래서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이 바울이 이 사실이 안 되면 이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무조건 감사입니다. 감사밖에 더할 길이 없어요. 무조건 기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이 말속에는 '기뻐하라!' 그럴 때는 기뻐할 일이 업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기뻐하라 그랬습니다. '감사하라!' 물론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지만은 거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 사실 배경이 안 되면요. 감사할 일이 없어요. 왜? 그렇게 귀한 부인도 감사는커녕 원망스러운데, 그렇게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기 몸을 희생해 가면서 직장에 가면서 그렇게 해서 아껴주는 남편도 원망이 먼저 나오는데, 감사가 안 되는데 이 배경이 안 되면요. 감사가 안 나옵니다.
이게 되고 나면요. 말씀과 연결되면서 전부 '아, 너무 귀하구나!' 위에서부터 받아 가지고 무심코 가지고 있었는데 1,200만 원짜리다 야 신기하구나! 말씀에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때에 모든 문제가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치유가 되었다 이럴 때에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감사! 그러면 감사는 뭐의 감사가 나오느냐? 말씀이 임하면 그러니 말씀이 임하면 무조건 뭡니까? 아멘! '참 감사합니다. 아멘!' 여러분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뿐 아니고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오게 돼요.
내가 워낙 아멘 고함을 지르지 마라!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 가지고 앞으로 차츰 차츰 이제 점점 더 나올 꺼니까!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아예 첫 번부터 훈련시키는 건데 그러면 설교하기가 복잡해져요. 정신이 없어져요. 그래서 우선 여러분 '아멘' 하면 고개만 끄덕이고 눈만 깜짝이고 나는 아니까! 그랬더니만 다른 사람들이 와 가지고 '아멘' 을 워낙 안 하니까 힘이 든다 그러는데 잘 알아요. 여러분 말씀 받습니다. '아멘, 참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할렐루야!' 치유에는 그러더라 구요. 그런데 뭐가 나오느냐? 찬송이 나오도록 되어 있어요. 찬송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찬송이! 자연적으로 찬송이 나오도록 되어 있어요.
여러분 가정에 눈을 떴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문제와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이 배경에서 이제는 내가 나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이 문제 주신 하나님도 큰 계획을 가지고 이 문제를 주셨습니다. 이 문제 주신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이 문제 주실 때에 나와 내 가정에 큰 계획가지고 주셨습니다. 막 말로 해 가지고 '이상한 아내' 맡겼습니다. 큰 계획이 있습니다. 이게 지나놓고 보면 알 듯도 한데 메시지가 없으니까! 이게 말씀이 안 깨달아 지니까! 이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씀을 늘 잘 들어야 되는 배경이 이겁니다. 주일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이해가 될수록 뭐가 되느냐? 그 '말씀만 새겨들어야 되겠다!' 그 말이 아니고 이 말씀과 연결되어서 여러분 삶 전체가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서 말씀 전체가 연결이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때부터 뭐가 나오느냐? 찬양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감사가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눈뜨면 노래하는 아내를 보고 기분 나빠할 남편이 어디 있습니까! 입이 이만큼 나와있을 때에 기분 나쁘지! 아내가 그 다음에 '남편이 참 ,감사하구나! 저런 아래를 주신 하나님이 참 감사하다!' 이렇게 되면요. 아내는 그 남편이 더 감사해집니다. 이것은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사람일수록 점점 더 배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배경이, 그 안 되는 배경이 믿음 속에 불신앙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엉뚱한 것을 믿고 너무 다른 것을 믿고 믿어야 될 것은 절대로 안 믿어요. '절대로' 라는 말은 이상합니다 만은, 안 믿어요. 이것이 오랜 우리의 체질이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부부여 말씀으로 돌아가자! 교인들이여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바로 그 말씀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과 제게 지금 성령으로 오셔서 모든 문제 해결했습니다. 걱정과 염려는 다 맡기십시오.
이 문제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엄청난 희생이 아니라 생명 걸어 버렸습니다. 바로 그 주님은 창조 주시오. 바로 그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요. 그 분은 못하실 것이 없는 분입니다. 다만 여러분과 제게 모든 문제 해결하신 이 주님을 '믿어라!' 고만 했습니다. 믿으라고 했어요.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어떠냐? 정 안 믿어지느냐? 고백하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느니라 다른 일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믿고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과 저를 세워서 세계복음화의 엄청난 자리에 세우셔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바꾸어 가시고 만들어 가시는 것을 보면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 속에서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경제적인 문제, 이런 문제 이러니까 '경제 내게 주옵소서!' 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믿도록 하시고 이렇게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고 그러면서 그 다음 문제는 다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믿음속의 불신앙
☞ 복음을 바르게 아는 것, 복음의 귀중함을 아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 많은 성도들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고,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습관, 인식, 사상, 전통 등의 다른 것을 따라 열심을 내고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의지하지 않은 신앙을 '믿음속의 불신앙'이라 합니다.
☞ 믿음은 사실이지, 막연하게 붕 떠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치를 알고 믿음을 회복하는 만큼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 주일에 듣는 말씀이 내 삶 속에 성취될 말씀이라고 믿어지고 그 가치가 느껴질 때, 예배드리는 태도와 말씀을 듣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2]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말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믿음 없는 자와 함께 일하시지 않으시며 우리가 말씀 믿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만 믿어도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자임을 믿는 믿음이 말씀을 믿는 믿음의 중심입니다.
☞ 하지만 우리 속에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닌, 우리의 체질, 사고방식, 지식, 전통 같은 다른 것들이 꽉 차있고, 이것이 사상, 우상이 되어 자리잡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 정말로 믿어야 될 것만 믿고, 말씀 이외에는 다른 것들이 있지 않게 해야하는데,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3]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바울은 하늘의 영광을 직접 보고, 자신의 생애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바쳤습니다.
여기에서, 살아도 죽어도 먹어도 마셔도 오직 내 안에서 그리스만 존귀케 되는 배경이 나옵니다.
☞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우선될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 이 때부터 기도응답이 나오고, 말씀이 사실적으로 체험이 됩니다.
☞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성취되는 것이 이해될수록, 말씀이 삶 전체에 연결되며 찬양과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다른 것으로 꽉 차 있는 우리에게, 믿음이 회복되게 하시고 반드시 성취될 말씀을 붙잡도록 하심을 감사합니다. 내 삶의 모든 방향을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맞출 수 있도록 믿음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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