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족합니다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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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오늘 건축에 대한 것을 아마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난번처럼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아마 좀 보여 드리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지난번에는 임시로 그 건축 설계를 준비를 해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만은, 이번에 아마 건축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건축 설계 자료를 정식으로 결정하고 그리고 또 구체적인 설계는 또 들어가겠습니다 만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모양의 교회로, 어떤 내용의 교회로 설계가 되어지는가를 말씀드리고 아마 기도하려고 그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아마 오늘 이 예배 마치고 난 후에 잠깐 모형도도 보고 이제는 그 확정 내지는 외형은 거의 뭐 여러분들이 특별히 온 교인들이 '뜯어고치자!' 안 그러면 그대로 확정이 되고 내용은 조금 각 부서에 의견을 따라서 또 수정하도록 그렇게 되겠습니다.
하나 하나 이렇게 건축이 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그 크신 사실을 날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확신이 되고 또 감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 설계를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그렇게 세밀하게 설계를 하더라 구요. 세밀하게... 그래서 그 설계하는 과정이 아마 그 대략 설계가 마쳤습니다 만은, 그걸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이 한 2개월, 3개월 또 걸린다 그래요. 이제 확정이 되었기 때문에 아마 11월 달까지 건축 설계를 완전히 마친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뭐 얼마 들어가고, 뭐가 얼마 들어가고 구체적으로 그렇게 설계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모양이나 모든 면이 그 다음에 설계하고 난 후에 교회가 건축되어지는 과정에서 어렵다 힘들다 상관없이 일단은 그대로 되어집니다. 우리 그 건축 위원들이 전국에, 또 경북 중심으로 해서 또 돌아다니면서, 어떤 교회는 설계를 완성하고 이제 그 건축을 하도록 맡겼는데 사업체가 건축을 맡아서 하다가 부도가 나서 거의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붙들고 건축을 했는데도 설계 도면대로 하니까! 또 그대로 나오기도 하고...
하는 과정에서 문제나 사건들이 나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어코 설계를 하고 설계대로 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어렵고 힘든 사건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 설계대로 이어집니다. 나는 그 이 과정 속에서 또 설계도를 집에 저 개인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또 그 설계를 다 완성하고 그 설계대로 계략 설계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일 먼저 받고는 여기에 와 가지고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만은, 갖다 놓고 하나님 뭐 내가 압니까? 우리 뭐 압니까? 설계는 이렇게 해 놓았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인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참 감사를 했습니다.
인간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힘들어도 기어코 설계를 해 놓으면 설계대로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짓는다는 목표가 바로 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를 그냥 내 보내지 않습니다. 벌써 박 지 온 그럴 때는 목사가 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송현교회 목사가 되게 하시고, 송현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루어 가시겠다. 누가 설계합니까? 하나님이 다 설계하십니다.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바로 이 속에 들어옵니다. 이걸 가지고 모든 문제 해결자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 속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뭐 조금 아프다! 조금 힘들다! 계획입니다. 나는 그 몸이 아프다 이럴 때에 이걸 통해서 사실상 많은 것을 깨달았다 보다도, 뭔가 그동안 희미했던 부분이 굉장히 확인되는 것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걸 통해서 제가 전국에 특별히 치유 사명자 대회나 치유하면서 전 세계까지 나가서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내가 고백할 수 있었던 배경이 내가 아픈 것을 통해서 이 사실을 믿었다기보다도 사실로 와서 부닥쳤습니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여주신 그런 역사!
그래서 바울이 일평생 그 뭔가 괴로운 그런 문제! 사단의 가시!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좌우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전 세계에 이루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 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설계변경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분명히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뭔가 문제가 있다. 계획입니다. 가만히 돌아보세요. 그 일 때문에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내게,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사실을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굳이 고난 받아야 우리가 눈이 열린다. 그 말 안 해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우리의 성품 잘 아시잖아요. 인도를 해 나가시는 그런 과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뭘 또 한번 붙들어야 되느냐 하면요. 그리스도를 모르면 아무리 경건해도 종교입니다. 종교인 그러면 우상 숭배라! 우상 숭배라 말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종교인이다! 그랬습니다. 종교인이라는 것은, 뭐 우리가 자장 대표적인 종교인이다! 다른 것이 없어요. 뭐 똑같습니다. 불교인이나 그 다음에 우리 그 무속배경! 다 똑같이 종교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역시 종교인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생활을, 혹은 착한 일을 많이 해도 모든 것이 종교인입니다. 뭐가 없으면? 그리스도가 없으면 희미한 만큼 그리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니 우리 예수 이름 붙잡았다! 그래도 희미한 만큼, 그리스도가 희미한 만큼, 뿌리를 내리고 체질이 안 된 만큼 이렇게 빠져나갑니다. 종교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고 위기를 만나게 될 때에 기도는 하지만 특색이, 그러니 종교인 특색이 늘 그 어려운 것 같아요. 문제 만나면 기도는 해요. 기도는 하지만 기도하면서 인본주의 씁니다. 대책세우고 기도하면서 막 기도하는 중에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될 것인데 자기 수단을 쓰고, 기도하면서 막 방법 생각하고 그리고 막말로 해서 기도하면서 싸우고... 부부 싸움 할 때에 보세요. 확실히 기도하면서 싸웁니다. 우리 남편 막 '좀 바꾸어 달라!' 그러고 자기가 바꿔야 되는 것은 모르고, 기도하면서... 이게 종교인의 특색이더라 구요.
왜? 하나님 앞에 기도로 맡겨버리면 되고 그 손에 우리가 의지해 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과 권세를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국은 뭐냐? 불신앙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의 배경이 뭐냐?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참 불쌍하다기보다도 우리가 정말 기도하고 말세에 교회와 우리 자신들이 참 기도해야 될 것이 복음이 체질이 안 되고 복음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하면서도 종교 속으로 빠지는 겁니다. 복음이 안 되는 것만큼 빠지는 겁니다.
빠지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하면, 꼭 중요한 문제가 부닥치면 '아니네!' 다른 데로 갑니다. 사건이 부닥치면 다른 데로 갑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슴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불평과 불만이 자꾸 나오고 이런 것이 나오면요. 종교인입니다. 예수 믿어도 그것은 복음이 바로 안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얼마나 사단이 말세에 계속해서 우리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일이기 때문에, 참 이 복음의 역사를 확실히 붙잡고 그 누릴 수 있는 가장 축복된 길을 하나님이 말씀 하셨는데,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데로 히브리서 4장에 나오는 말씀 아닙니까! 은혜의 보좌 앞에 날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 그럴 때에 또 새 힘 얻는 것이 다 복음입니다. 우리가 한번 들었다! 날마다 아무런 문제없다! 아닙니다. 늘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날마다 말씀 듣고 날마다 말씀들을 때마다 새 힘 얻고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음에 뿌리내리는 중요한 길이요. 하나님이 축복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안 되게 될 때에 결국은 어떻게 오느냐 하면요. 교회 속에서 이런 어떤 그 복음에 뿌리가 내리지 못할 때에 결국은, 결정적인 어떤 순간이 왔을 때는 착한 일을 하기 위해 애를 썼고, 노력도 하고, 선한 일도 하고 그랬지만 어떤 문제가 있느냐? 결정적인 그런 어떤 문제가 왔을 때에 사악함으로 빠져 버립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대표적인 사건이 뭐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다윗에 반대되는 사울의 문제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겸손했고 그리고 왕으로 뽑힐 정도로 칭찬 받았고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은 뭡니까? 복음을 확실히 붙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그 역사를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뭡니까? 자기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에 자기가 염려하고 자기 자식을 염려하고 후대를 염려하면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축복을 받은 그리고 그렇게 국가에 대해서 헌신 충성하는 다윗을 죽이려고 몸부림치며 따라다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은 뭐가 들어왔습니까? 악신이 붙었습니다. 이 종교인 배경은 뭡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왜 사악함이 빠지느냐?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참 주의해야 될 것은, 복음에 뿌리를 놓치고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큰 교회 세웠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의 뿌리를 놓치면 놓칠수록 어떤 문제가 오느냐? 교회 안에서 평안을 못 얻고 말씀을 바로 붙잡지 못하고 이렇게 될 때에 사단의 배경이 되니까! 교회가 결정적인 문제가 올 때에 사악함에 빠져버립니다. 이 교회 싸우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여러분 제 정신으로 싸우는지 압니까! 바로 이 배경입니다.
그래서 정말 그 앞으로 교회가 건축되어진다! 그럴 때에 나는 밤에 늘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때에 끝까지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일단 우리 교회에 왔다!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복음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이 설 수 있는 교인들 이게 바로 축복 중에 축복이다! 이 이상 더 다른 것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말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그러면, 이 말 이외에 더 할말이 없구나! 그래서 오늘도 제가 메시지를 들고 나와서 뭔가 생각을 하면서 다른 말이 필요 없구나! 여기서 치유가 나오고 여기서 모든 기도 응답이 나오게 되는구나! 이것이 지속되지 않는 한 내가 잘 하는 것 같지만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알면서...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제목을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나는 만족합니다!" 이랬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성경을 그대로 옮기려고 그러니 너무 길어 가지고 '나는 만족합니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솔직히 만족합니까? 대답이 시원찮네! 무슨 불평이 이렇게 많습니까! 사람이 뭔가 이렇게 만족하고 감사가 안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사악해지게 되어있어요.
제가 이 뭔가 몸이 안 좋고 어떤 경우냐 하면, 밥맛이 없어지더라 구요. 밥맛이 없어지니까 나도 모르게 뭐,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건 다 떠나 버리고... 그래서 사람이 뭔가 밥맛이 없고 이러니까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잖아요. 그러면 아침에 밥을 이렇게 받게 되면 밥맛이 없어지니까! 그 옛날에 잘 먹던 밥인데도... 그리고 정성스럽게 밥맛이 없으면 신경 써서 안 해 놓습니까! 그러면 괜히 숟가락 가지고 푹푹 찔러 보고 그리고 또 '반찬이 뭐 이러냐!'생전 안 하던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옆에서 보면서 그렇게 준비해 와서 그러면요. 진짜 신경질 나는가 봐요. 그러니 또 한마디하거든요. 그러면 또 붙는 거지...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사건이 안 되면요. 범사에 우리의 삶은 불평과 싸움과 문제로 터져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세워놓고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느냐? 내가 너를 만든 것은, 창조한 것은 나를 내가 찬송을 받으시기로 여러분 통해서 이사야에서 말씀한 것처럼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 찬양을 하시기 위해서, 찬송을 받기 위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은, 이 사실이 확인이 안 되니까! 늘 뭔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된 은혜를 못 누리니까, 뭐냐? 불평과 불만과 많은 뭐 닥치는 데로...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죽기까지 절대로 무슨 사건이 생겨도 불평을 안 해야 되겠다. 사실은 제가 불평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늘 뭔가 이 비판자가 되니까! 제가 이 중직자 가정에서 보는 게 비판이고 또 들리는 것도 뭔가 교회에 대해서 중직자 가정이나 이렇게 있으면요. 자연적으로 평신도는 단순하게 뭐 그렇게 보는데, 어릴 때부터 뭐 주변에 들려 오는 것이나 앉으면 뭐 그런 이야기 나오니까! 여러분 아마도 그 교회 평신도는 잘 모르는데요. 중직자들 모여 보세요. 뭐 교회에 대해서 그렇게 말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부터 들으니까! 그걸 나는 그때는 모두 걱정하면서 하는 이야기 같지만은, 나한테 들릴 때는 그런 것이 들리면서 뭐가 오느냐 하면, 교회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비판의식을 가집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아들어야 될 것이 뭐냐하면, 교회에 대해서 주변에 이런 계속해서 비판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요, 아무리 내가 은혜 받고 싶어도 나도 모르게 머리가 이 구조자체가 비판하는 구조로 바꾸어집니다. 고쳐야 됩니다. 절대 축복이 안 됩니다. 그래서 물론 제가 늘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그 비판 구조가 있기 때문에 설교 할 때에 죄 지적은 참 잘 합니다. 꼭 꼬집어서! 그러면 여러분도 아마 들으면 '맞아, 맞아!' 그렇지만은 대안이 없어요. 또 하나님의 축복이 안 됩니다.
그래서 죄 지적은 하나님의 은혜 받으면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설교 할 때에 이걸 없애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가더라 구요. 여러분들에게 죄 지적하는 것! 이것은 내가 뭐라 그럴까? 안 한다기보다도 복음적인 것이 아니더라 구요. 이 비판하게 되고 이러니까! 그렇게 되면 자꾸 설교가 비판하는 설교를 듣게 되면 여러분들도 그런 것만 자꾸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절대로 비판하는 이야기는 안 해야 되겠다. 혹시 누가 비판하는 소리 옆에서 하거든 하지마라 그래요. 그걸 들으면 뭐가 되느냐?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되요. 불신앙이 와요. 누가 들어오느냐? 사단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잘못해도! 잘못하면 기도하면 되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돼요. 하나님께서 그걸 다 이루어 주시는 것이죠.
그러면 여러분 자식들이나 혹은 그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여러분 잘 아셔야합니다. 이것이 되면요.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고 그 다음에 늘 그렇게 하면 비판할 일이 없어져 버려요. 비판하려고 보니까 비판이 나오는 것이지. 체질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지. 안 그러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남편요 비판할 것 뭐 있습니까! 그렇게 수고하면 땀흘리면서 자식들을 위해서 아내 위해서 애쓰는 것 보면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게 안 보이거든요. 비판하면 그 머리가 없어져 버립니다. 아내 위해서 눈만 뜨면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비판하는 눈이 없어져 버려요. 그런 게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에서 기도할 때마다 뭐냐?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참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예수 믿고 생각이 안 바꾸어졌다! 그것은 복음이 안 되어서 그래요. 복음이 뿌리가 내리면 여기서 모든 것이 그렇게 나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부족함이 없다라는 나는 만족하다라는 이 말이 어디서,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이냐? 다윗처럼 고생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장인한테, 그리고 나라에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쫓겨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이 시편이 이런 감사와 이런 만족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 것이냐! 그러니 다윗의 이 어려움 속에서 23편을 이렇게 나올 때에 도대체 이 말이 어디서 나올 것이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 첫 번 말씀 보면 바로 그 말씀이 나오죠. 1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뭐라 그랬습니까? 관계입니다! 다윗은 이 부족함이 없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뭡니까? 관계가 확실하게 깨달아 진 겁니다. 이걸 가지고 믿음이라 그러죠. 여호와와 다윗의 관계 무슨 관계입니까? '목자와 양의 관계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구약 시대 때는 양은 목자의 음성밖에 몰라요. 그리고 목자가 가는 데로 따라갑니다. 양에게는 자기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양을 깊이 연구는 못해도 이렇게 성경학자들이 해석한 바로서는 양은 아주 지독한 근시래요. 그래서 여러분 양떼를 끌고 갈 때에 양은 앞에 가는 양의 뒷발만 보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이스라엘 그 쪽 지역에 갔을 때에 저 산에 뭐냐하면, 줄이 쭉 나있어요. 줄이! 양은 이렇게 흩어져 가는 것이 아니고 양은 쭉 한길로 가더라 구요. 줄이 있을 때 가는데 보니까 산에 이렇게 가면 산 중턱으로 여러 갈래의 줄이 있어요.
줄이 있는데 그 줄이 왜 생기냐 하면요. 양이 딱 앞장선 그 조장인가 봐요. 조장을 하나씩 세우는데 조장만 딱 세워 놓으면 그 뒤만 따라갑니다 뒤에 것이 그 다음 그 뒤에 것은 앞의 발끝만 보고 따라 갑니다. 그러면 또 다른 조장은 밑에 줄에... 그래서 발자국이 여러 개 나지 않아요. 쭉 쭉 마치 그 토끼 길처럼 산에 줄이 서 있는 것을 봤습니다. 지독한 근시라서 그래요. 그리고 양은 목자가 딱 인도하면 인도하는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양과 목자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너무 속성을 잘 압니다. 우리는 그걸 잘 모르지만 너무 잘 알거든요.
그래서 그 다윗이 뭔가 다른 아내를 취하고 이제 그 비유를 들 때에 양의 비유를 들어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그러면서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가보니까요 같이 자요 여러분 우리는 그 개새끼나 같이 자고 있지, 뭐 그런걸 상상을 못하거든요. 요즘은 뭐 돼지 새끼도 같이 자더라 만은, 아직까지 뭐 이해가 잘 안되겠습니다 만은, 그런데 그들은 양을 품고 낳으면요. 진짜 새끼를 집에서 놓고 그래요. 그래가지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하더라 구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배경을 너무 알기 때문에 목자 잘 만났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뭐까지 한다고 그랬습니까? 생명까지 내어놓는다! 그랬거든요. 이 배경을 잘 알기 때문에 목자와 양이다. 양으로서는 최고의 목자가, 좋은 목자 선한 목자 만났다! 다 끝나 버립니다. 양의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뭐라 그랬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목자와 양의 관계! 이 관계가 다윗에게는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옛날에는 목자와 양의 관계라 그럴 때에 시대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려 나가실 때에 개개인에게 인간을 다스려 나가는 역사였고 이스라엘을 선택했습니다. 나라를 선택해서 이스라엘의 국부입니다. 나라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신다고 그럴 때에 성령도 나라 위에, 말하자면 각 사람 위에 안에 아니고 그냥 이렇게 함께 나라 전체를 이끌어 가시는 그런 어떤 배경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파라클레토스' 라는 원래 말이 성령이라는 것인데 '안에' 라는 말보다도 그 말이 옆에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마 그런 배경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성령이 어디입니까?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성령이 왔다 갔다 하십니다. 기분 좋으면 오고 이게 안 되겠다 싶으면 떠나가고... 그래서 다윗이 범죄하고 난 후에 가장 염려했던 기도가 '하나님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가지 마옵소서!' 이 기도가 다윗의 기도였습니다. 왜? 성령 거두어 가면 다윗은 안 되는 줄 아니까! 이런 배경에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늘 관계, 관계 말씀을 했습니다 만은 모든 문제가 여기서부터 해결이 됩니다. 이게 잘되어야 돼요.
여러분과 저는 지금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무슨 관계입니까? 무슨 관계입니까? 아버지! 아저씨 아니죠. 혹시 여러분 기도할 때에 '아저씨!' 그럽니까? 아니잖아요. '아버지!' 믿어 버려야 돼요. 이 신앙이 확실히 와져야 여기서 믿는 만큼 확인되는 만큼 해결되는 겁니다. 이것이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오늘날 문제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천지 만물을 다 다스리시고 나와 여러분 오장 육부를 운행하시고 다스리시는 분 아닙니까! 그러면 뭐가 문제입니까? 이게 안 되니까! 이게 불신앙이 돼요. 이게 절대로 안 믿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안 믿는 배경은 아닙니다 만은, 워낙 안 믿는 것이 체질이 되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지 만은, 제가 기고할 때 이렇게 보면요. 뭘 느끼느냐 하면, 아버지는 그러니까 아침에 아들이 딱 눈을 뜨면서 아버지를 흔들어 가지고 '아버지 맞아!' 어머니를 흔들어 가지고 '어머니 맞아!' 이렇게 묻는 아들이 없습니다. 응당히 뭐, 아버지면 아버지고 어머니는 어머니고... 너무 믿기 때문에 너무 태연하죠. 아버지, 어머니 함께 계신다! 그걸로 끝입니다. 우리는 뭔가 이게 안되니까 막 악을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기도 할 때에 물론 그렇게 기도한다 나쁘다 이전에 정말 믿으면 뭐 그렇게 기도할 필요가 없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뭐냐하면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말끝마다 아버지를 붙이더라 구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아버지가 얼마나 안 믿어지기에 한번 꼽아 봤어요. 아버지 소리 몇 번 하는지! 제가 이 말하는 배경은 여러분 솔직히 아버지라 그러면서도 이 관계가 바로 안 되어있습니다. 안 믿어요. 믿었다. 다 끝난 것 아닙니까! 여기서 모든 문제, 구체적으로 해결됩니다. 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그리스도 확실히 붙잡고 여기에 뿌리내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체질이 되어야 여기서부터 자연스럽게 전체가 다 해결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것이 해결 된 것 같고 쉽게 된 것 같지만 이게 잘 안되더라 구요. 그래서 이 관계가 되면요. 자연적으로 뭐냐? 목자와 양의 관계다. 목자만 인도하는 데로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다른 것들을 것도 없어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 혹시 그 뭐 아이들을 키워봤지만은 그런 배경을 조금만 가지게 되면요. 우리 기도하는 문제도 거기서부터 다 해결되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면 성경 말씀을 읽게 되는 것도 자연적으로 하나님 말씀 듣는 것, 여러분 주일날 봐서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시간입니까? 들려지게되어 있어요. 왜? 못 들으면 다른 길로 가게 되니까! 인도 받을 수 있게 이건 생명 걸고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오늘 듣는 은혜가 다르고 내일 듣는 은혜가 다릅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 은혜 주시는 역사 ! 바로이게 오늘 성경 그대로 날마다 담대하게 나가는 역사! 그래서 주일날 계속해서 자꾸 모이느냐? 바로 이 배경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모임에 하나님이 왜, 축복하시고자 약속했느냐? 이 말이거든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까! 류 목사님이 1부 예배인가, 2부 예배인가? 그러더라 구요. 울산에 가서 나이 많은 목사님인데 제가 아는 늙으신 목사님이신 것 같아요. 큰 교회를 지으시고 그랬습니다 만은, 아마 몸이 안 좋은데 암이 몸에 이제 들어왔는데, 그런데 그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수술하시고 또 살이 다 빠졌습니다. 그런데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대로 제가 옮기면 의사가 '세 가지로 약속하자!' 그러더랍니다. 약속하면 해결이 된다! 위암, 아마 수술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첫째 '온 사방에서 말하는 의사가 많은데 절대 다른 의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마라 내 이야기만 들어라!'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뭐냐하면요. 두 번째가 '뭐든지 음식을 먹을 때에 반만 먹어라!' 위를 좀 잘라 냈거든요. 절대 많이 먹지 마라! 셋째가 '자극 있는 음식은 먹지 말라!' 그렇게 이 약속만 지키면 당신 건강은 회복됩니다. 이러더랍니다. 그러면서 메시지 속에서 뭐냐하면, 첫 번째가 마음에 남더라 그래요.
나도 이게 실감이나요. 제가 이 몸이 아프고 이러니까요. 얼마나 의사가 많은지 몰라요. 내가 의사가 가서 어떻게 했다. 그것은 말도 묻지도 않아요. 그런 것은... 그러면서 이 사람은 절대 이러면 낳습니다. 이러면 낳습니다. 바른 사람이 어찌 여기 저기 그리고 다 좋아요. 들어보니까! 말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속이는 사단의 이야기는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로 풍성한지 모릅니다. 오직 한 분의 말! 그 말만 들어야 됩니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 이 시간 말씀들을 때에 누가 뭐래도 강단에서 말씀이 임했느냐! 한 주간 딱 잡고 기도하세요. 다른 것은 듣지 마세요. 그거 들으면 죽는 겁니다. 이걸 딱 잡고 계속해서 기도하세요. 왜?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이 내게 축복하신 말씀으로 오늘 임하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누가 거역하랴!" 왜? 복 주신다는 하나님인데 누가 반대합니까! 세상이 없어도 소용없어요. 오늘 여러분 이것 하나만 붙잡고 나가 도요. 흔들릴 이유가 없어요. 여러분과 저를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 벌써 다 세우셨습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성경에 보면 이렇게 나오더라 구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를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렇게 되면 뭐가 오느냐 하면요. 자연스럽게 그 분이 나를 인도하시는 역사 속에 서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오면 누가 인도하십니까? 말씀으로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인도하시게 될 때에 그 인도하심에 풍성합니다. 그 인도하심이 여기에서부터 치유가 나옵니다. 여기서 치유가 나옵니다.
제가 이 요즘 뭐 여유보다도 너무 절박한 이 사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이제 희락이를 보면서 자기 어머니가 있으면 마음놓고 놀고 그리고 잠도 자고 그래요. 그리고 또 뭐 불안해하지도 않고 그런데 일단 없다! 그럴 때는 불안해합니다. 염려하고 그리고 조금 문제생기면 뭔가 상처받기도 하고 그런 게 있어요. 저희 어머니 있으면 괜찮아요. 여러분 치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사실로 믿습니까! 삶입니다. 치유가 여기서부터 나오는 겁니다. 저절로 됩니다.
오늘 여러분 이 말씀 듣는 동안에 하나님이 내 인생에 완전히 나와 함께 계시는 구나! 치유입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는 동안에도 뭐가 나오느냐 하면요. 이 치유가 사실화되면 여러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기도더라 구요. 기도! 그래서 저는 그 기도라는 말을 많이 기도한다, 기도한다! 그러지만 사실은 제가 지금에 와서 고백을 한다! 그러면 조금 이상할지 모르지만 내가 인생에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고 많이 한다는 소문도 듣고 그랬지만은, 그래서 뭐 산으로 들로 기도한다! 그러고 심지어는 뭐 강단에 가서 들어 누워서 자기도 하고 그랬지만은 내 일생에 그렇게 힘들었던 부분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다락방을 하고 난 후에 되어진다는 배경을 가지고 기도는 되어진다. 기도는 저절로 된다는 그런 배경! 또 그 다음에 기도 속에서 뭔가 보니까,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걸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그 사실이 되기까지 사실은 어떤 면에서 한 10여 년 동안 나는 기도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교인들한테 여러분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 장로님들이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는 확실히 확신하건대 여러분도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 신앙생활의 기도라고 봅니다. 이것만되면 다 됩니다. 이게 안 되는 배경이 뭐냐? 앞에 부분이 바로 안 돼요. 관계가 바로 안 되어 있어요.
그 다음에 뭐냐? 치유가 안 되어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기도가 됩니다. 이게 안 되면 기도가 되어질 수 없어요. 기도가 되느냐! 앞에 부분이 되는 만큼 기도가 됩니다. 기도가 되는 만큼 앞에 부분이 되는 겁니다. 이게 연관성이 있더라 구요. 그런데 제가 기도에 대해서 조금 말씀하고 싶은 것은 너무너무 자연스러운 배경인데, 그 동안 이게 되어진다는 배경이 잘 안 되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 하셨다는 말씀이 이게 실제가 잘 안되거든요. 받아합시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이미' 몰라요?, 알아요?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그러면 기도는 또 뭐냐? 그러니 있어야 될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시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신다. 이것이 뭐냐? 치유가 되어야 이것이 옵니다.
그러면 제가 이 아이를 데리고 지난번에 화원에 가 가지고 이렇게 유모차를 밀고 가지 못하고 이제 데리고 갔다가 내려오는데 아이가 가는 데로 내 눈이 따라 다니는 겁니다. 눈이 따라다녀요. 계속! 그리고 조금 이제 위험하다 싶으면 가까이 가서 안을 준비를 합니다. 넘어지면 붙잡을 준비를 하구요. 그때에 지가 어떻게 넘어졌다! 막 고함을 지르고 안 그럽니까! 그러면 얼른 붙잡고...
나는 기도에 대해서 이 말씀하면서 여러분 확실히 드리고 싶은 것은 기도가 어떻게 되어지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을 따라다니는 눈이 있어요. 밤낮 없이! 나는 자고있지만 밤낮 없이 그리고 어디든지 성령께서 눈동자처럼 하나님이 따라다닙니다. 따라다니셔요. 그 눈이 계속 따라 다녀요. 그러다가 위태한 부분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더 다급하게... 넘어졌다! '아' 그러는 순간에... '아' 그러는 것이 뭐냐? 기도입니다. 기도!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는 기도는 특권이요. 기도는 의무라고 붙일 필요가 없어요. 기도는 특권이에요. 내가 문제 생겼다, 사건 생겼다! 그 길로 하나님 앞에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관계만 바로 되어 있으면 이게 저절로 나와요. 종교인들은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고 자기수단 쓰지만은 복음을 확실하게 붙잡은 사람은 기도하면 끝입니다! 왜? 완전히 담당해 줄 것을 믿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권찰들한테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기도인데 이 기도가 안 된다는 배경 때문에 왜? 전에는 계속해서 내가 기도를 뺏어냈고 얻어내었고 안 주면 금시 했고 이랬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개념이 뭐냐하면, 뭐든지 생기면 얻어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고 그 다음 뭐가 일이 되면 내가기도 많이 해서 그렇구나! 이리 돌아갑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하던지 적게 하던지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나를 이끌어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니까! 뭐든지 얻어내려고 그럽니다. 안 주면 신경질 내고, 안 주면 눈 부릅뜨고 왜 안주냐고 고함지르고 그랬거든요. 그러니 찬양이 안 나와요. 기도 많이 하면 찬양이 저절로 나와야 되는데 찬송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게 되면 저절로 된다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또 그렇게 만들더라 구요.
내가 그게 안되니까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얼마나 나쁜 하나님으로 만들었습니까! 늘 그런 마음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하나님 안 주면 하나님 안 준다고 고함을 지르고 안주면 또 굶죠! 굶다 안되면 그냥 막 죽기로 작정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악하신?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안 주려고 애를 쓰시는 분이 되어 가지고 굶어가면서 뺏어 내어야 됩니까! 이게 뭔가 우리 관념에서 기도라는 관념이 너무 잘못 되어 있어요. 기도는 찬양과 기쁨과 감사로 누리는 부분인데 이게 안 되거든요.
그래서 기도를 안 했습니다. 안 해도 되는가 보자! 오기도 있고 한 10여 년 간 어떤 면에서 제 생활이 여러분 보다시피 제가 새벽 기도를 안 나간다! 그게 안 나가는 배경 속에서 이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 한번 봅시다! 까짓 거 뭐 지금까지 기도해도 그것도 안 되는데 진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신다고 다 그랬는데 하나님이 한번 마음대로 한번 해 보세요. 그랬더니 우리 장로님들 그리고 건축위원들 막 이렇게 그러고 뭔가 이 애쓰고 그러는 동안에도 사실 나는 기도 안 했습니다. 저 옥상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도 뺏어 내려는 기분이 자꾸 들어 가지고 우리 교인들이 막 부자 되게 해라! 자연적 이게 나와요. 그래가지고 그것도 접어놓아 버렸습니다. 이게 기도가 아니다 싶어 가지고...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내가 마음에 요즘 들어서 느끼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게으르고 아무것도 노력 안 하고 기도 안 하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내 자리가 내 서있는 자리가 송현교회라는 이제 우리 설명을 들으시면 알지만 참 아름다운 교회를 이렇게 설계를 해 놓았더라 구요. 그 교회 건축에 박 지 온! 나를 한 복판에 세워 놓았다. 내 기도한다 안 한다 상관없이 하나님이 다 준비하시고 이루어 놓았더라 구요. 그러면서 뭘 느끼느냐? 기도할 때마다 나는 이제 그 문제 당할 때에 어려움 당할 때에 '아' 소리만 내면 금방 와서 하나님께서 보호하듯이, 인도하시듯이, 들어주시듯이 여러분 기도하게 할 때마다 뭡니까! 응답을 준비하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다 드릴 것을 약속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너무 절실하게 믿어져요. 그러면 문제 있을 때 여러분 뭐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것 없죠. 기도하면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요즘 이제 힘을 얻는 데로 참 기도하는 것에 힘써야 되겠다! 라는 이런 마음들이 또 전처럼 막 부르짖고 기도한다!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들으신다는 사실적인 어떤 믿음이 와져야 됩니다. 이 새벽기도에 대한 문제가 재해석이 되고요. 여러분 철야 기도도 그런 면에서 재해석이 됩니다. 그리스도 뿌리내리고 정말 기도하게 되면 기도하는 만큼 힘이 나옵니다. 기도하는 만큼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기도하는 만큼 풍성해집니다. 삶이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충만해지게 됩니다.
이걸 우리가 그냥 기도라는 그 사실들이 먼저 관계성이 바로 회복이 안 되고 치유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이 확인 안 되면 이 기도라는 것이 늘 우리는 조급하게 되고 어렵게 되고 그래서 맨 날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고 기도할 때마다 뭔가 우리는 수단 쓰고 방법 쓰고 안 되면 불평하고 이런 식으로 종교성을 가진 기도로 끝나게 돼요. 기도라는 것이 바로 조금만 이해되면 너무 필요한 부분만 아니고 쉽고 감사할 부분입니다. 너무 감사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 그러면 금방 안아 주시죠. 그러면 웃으면서 감사할 뿐이죠. 그러면 또 찬양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거룩하신 그 계획 속에 하나님의 자녀로 세웠고 부름 받았고 이 일에 사용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게 감사입니다. 찬양이 나오고요. 정말 기쁨이 나오고 하나님의 그 축복과 역사가 정말 감사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마지막으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여기서 이제 진정한 사명이 나와요. '아, 그렇다면 내가 이런 축복을 받았으니 내가 앞으로 살아야 될 것이 뭐냐?' 다윗은 보면 뭐라 그랬느냐 하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5절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저는 이것을 전도라는 것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만은, 사명 그럴 때에 전도와 그 다음에 또 뭐냐하면, 여러분 앞으로 사명! 그러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재림 준비하는 겁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러분 그 영과 그 축복과 은혜를 이미 여러분과 저는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때는 이 놀라운 축복을 나와 같이 항상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는 이게 사명입니다. 전도와 그리고 마지막 이 재림의 때에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를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다른 것보다도 이 재림의 역사를 준비하는 것 너무 귀중하죠. 그리고 이것이 조금만 눈이 열리게 되면요. 기쁨으로 교회생활 핍박이 온다. 어려움이 온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전도가 된다 안 된다. 이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른 일이고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신다고 그랬으니 확인만 되면 문제없습니다. 왜? 역사 속에서 전도하면서 핍박 안 받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그에게서 그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인생을 보세요. 똑같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조금 느낄 만 해요.
뭐냐하면 바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깨달았을 때에 모든 병 문제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에게 가시가 있었느냐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왜냐하면 그걸로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이 일평생 변치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귀중한 축복이 되더라 구요. 바울이 고백했잖아요. 자고 하지 않도록 겸손하도록 자고 하지 않도록 그 다음에 그때마다 항상 어디입니까? 어려운 문제 있을 때마다 하늘나라 바라보도록...
오늘 아침에 우리 집에서 이 장이 나쁜지 장 속에 암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어째든 빨리 가면 되는 거지! 이러니까 섭섭했는지 어쨌는지 '나도 뭐 빨리 가고 싶어요!' 그러더라 구요. 공갈치는 건지 아마 진짜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받아 가지고 나도 또 뭐 근심스러운 말이면 괜찮은데 나도 받아 가지고 나도 빨리 갔으면 좋겠다. 이 배경이 그냥 나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건강을 잃고 힘들어보니까요 세상사는 것이 힘들더라 구요. 그러면 늘 힘들 때마다 뭐냐하면, 빨리 갔으면 좋겠다. 빨리 하나님 앞에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항상 무슨 문제가 있으냐 하면 사명 못하고 가면 이 꾸중들을 것 같고 하늘 그 영광의 축복의 상을 놓치면 이것도 또 좀 뭔가 안타까운 것보다도 좀 그렇고 그렇다는 것보다도 분하고 이상하고 이러니까 사명을 다 해야 되겠는데 그러면서 만약에 내가 너무 건강하고 너무 좋다. 이제는 죽는다! 그러면 좀 겁낼 것 같아요. 아이고 좀 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아마 혹시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그럴 겁니다. '나는 좀 더 살아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좀 하지 싶어요. 그래서 안 죽으려고 많이 애를 쓰는 것 같아요. 다 죽어 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죽어 가니까! 얼른 갈라 그러고 그리고 이걸 도피해서는 안 되죠.
제가 바울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복음 전파에 쉽지는 않잖아요. 세상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흑암권세에 사로잡힌 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을 늘 보니까! 하나님 나라, 그 영광의 배경을 봤기 때문에 소원이라! 죽던지 살던지 그러니까 이 소망 속에서 이걸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고통과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해야 되겠다! 전도라 그랬습니다. 이걸 말하지 않으면 그건 절망입니다. 그러면 '내가 화로다!' 안 그랬습니까! 여러분 이 눈이 열리면 모든 문제가 이 배경에서 이 세상 것이 좋아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 늘 하는 말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 어떻게 들을까 싶어서 내가 좀 마지막에 말을 어떻게 머리가 돌아가 가지고 그런 말이 나올까 싶은 생각도, 염려도 되고 그렇습니다 만은, 솔직히 그런 배경 들으니까 무슨 마음이 있냐 하면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잠잘 수 있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뭐 그렇게 먹는 것 마시는 것 잠자는 것! 길거리 가 앉아 있어도 그 일이 되면 끝난 것 아닙니까!
여러분 거지들이 이상하더라 구요. 이 뭔가 이 집나가 가지고 한 3일 이상 지나고 또 3달 이상만 지나 버리면 집에 들어갈 마음이 안 생긴데요. 그게 영적 배경입니다 만은, 왜 그러냐? 걱정이 없어진데요. 잠자는 걱정이 있나 먹는 것 걱정이 있나 뭐 없어진데요. 그러면 안 들어가고 싶다고 그래요. 그렇다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조금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슴에 담고 있다 싶으면 이 땅에 사는 것은 걱정이 안 됩니다. 먹는 것은 어떻게든 먹을 것이고 잠자는 것도 어떻게든 잘 거고 그러면 어디든지...
그래서 내가 길 거리에 나가도 좋다. 참 복음 바로 잡고 이 사실 바로 잡고 나간다면 만족이다! 이것만 되어버리면요. 어떤 문제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복음이 되면 되는 만큼 뭐가 옵니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감사 해야죠. 그때마다 문제 생기면, 뭐하면 됩니까?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도 내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그냥! 그러니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지금도 안 그렇습니까! 이것이 확정되면요. 눈만 깜아도, 눈을 떠도 문제 생기면 자연적 내 입에서 '아버지!' 이게 안 된 사람은 엄마! 소리 나오지 만은, 눈만 깜아도... 그러면 저절로...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문제나 사건, 특별한 문제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크게 할 것 없어요.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과 명철로 주시는 데로 결정하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할 정도가 아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와 사건을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확인되는 만큼 절대로 딴 짓 안 합니다. 절대로 이리 저리 옮길 필요도 없고 마음이 흔들리 것도 없고요.
그리고 이것이 안 되면 뭐가 문제냐? 배경이 사단의 배경이기 때문에 사악해 진다! 이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이걸 놓치게 되면 교회가 사악해집니다. 교회가 이것을 붙잡게 되면 교회는 너무 축복이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교회 올 때마다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 겁니다. 오늘 이 메시지 들으면 여러분 정말 행복하다!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아내 볼 때도 행복하고...
그래서 제가 오늘 그런 시각으로 성가대를 그렇게 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메시지를 준비하고 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옷도 보니 예쁘고 얼굴도 보니 예쁘고... 전에는 뭐 보통 그렇게 봤는데, 그 여러분이 보면서 오늘 어쩐지 모르게 인사를 하는데요. 전부 귀하다! 이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핍박받았습니까! 얼마나 여러분 핍박받으면서 삽니까! 여기 앉았다는 사건조차도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제 앞으로 더 위대한! 그래서 받아합시다. "남은 시간에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이 증거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 계획을 믿고 나아가면 문제들을 겪을 때에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아무리 경건해도, 기도를 많이 해도,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종교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비록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고 인본주의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와 사건에 부닥치면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며 사악함으로 빠집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고백했는데, 양은 시력이 매우 약해서 목자를 따르고 목자는 철저히 양을 돌봅니다. 특히 선한 목자는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양을 지킵니다.
☞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 진실로 이 고백이 터져나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얻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공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강단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철저히 붙잡으십시오.
[3] 치유의 축복 속에 기도하며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 성령께서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풍성함 속에서 치유가 나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사실로 믿는 것이 바로 치유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치유가 사실로 이루어질 때,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치유가 되어지는만큼 기도가 되어집니다.
☞ 기도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부터 성령께서 눈길을 떼지않고 우리를 따라다니시며 위태로울 때는 즉각적으로 도우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위태로울 때 우리를 도우실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 부르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도우실 분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도우시므로, 기도는 진실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가져옵니다.
☞ 이러한 축복 가운데 진정한 사명이 나옵니다. 우리의 사명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을 준비하며 지금도 하나님을 떠나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치유와 기도가 바르게 되면,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핍박을 받아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으로 가득차며 감사와 찬송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아버지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선한 목자가 되셔서 나를 양같이 철저히 돌보아 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나를 치유하시고 나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사명 감당하게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오늘 건축에 대한 것을 아마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난번처럼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아마 좀 보여 드리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지난번에는 임시로 그 건축 설계를 준비를 해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만은, 이번에 아마 건축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건축 설계 자료를 정식으로 결정하고 그리고 또 구체적인 설계는 또 들어가겠습니다 만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모양의 교회로, 어떤 내용의 교회로 설계가 되어지는가를 말씀드리고 아마 기도하려고 그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아마 오늘 이 예배 마치고 난 후에 잠깐 모형도도 보고 이제는 그 확정 내지는 외형은 거의 뭐 여러분들이 특별히 온 교인들이 '뜯어고치자!' 안 그러면 그대로 확정이 되고 내용은 조금 각 부서에 의견을 따라서 또 수정하도록 그렇게 되겠습니다.
하나 하나 이렇게 건축이 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그 크신 사실을 날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확신이 되고 또 감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 설계를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그렇게 세밀하게 설계를 하더라 구요. 세밀하게... 그래서 그 설계하는 과정이 아마 그 대략 설계가 마쳤습니다 만은, 그걸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이 한 2개월, 3개월 또 걸린다 그래요. 이제 확정이 되었기 때문에 아마 11월 달까지 건축 설계를 완전히 마친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뭐 얼마 들어가고, 뭐가 얼마 들어가고 구체적으로 그렇게 설계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모양이나 모든 면이 그 다음에 설계하고 난 후에 교회가 건축되어지는 과정에서 어렵다 힘들다 상관없이 일단은 그대로 되어집니다. 우리 그 건축 위원들이 전국에, 또 경북 중심으로 해서 또 돌아다니면서, 어떤 교회는 설계를 완성하고 이제 그 건축을 하도록 맡겼는데 사업체가 건축을 맡아서 하다가 부도가 나서 거의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붙들고 건축을 했는데도 설계 도면대로 하니까! 또 그대로 나오기도 하고...
하는 과정에서 문제나 사건들이 나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어코 설계를 하고 설계대로 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어렵고 힘든 사건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 설계대로 이어집니다. 나는 그 이 과정 속에서 또 설계도를 집에 저 개인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또 그 설계를 다 완성하고 그 설계대로 계략 설계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일 먼저 받고는 여기에 와 가지고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만은, 갖다 놓고 하나님 뭐 내가 압니까? 우리 뭐 압니까? 설계는 이렇게 해 놓았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인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참 감사를 했습니다.
인간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힘들어도 기어코 설계를 해 놓으면 설계대로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짓는다는 목표가 바로 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를 그냥 내 보내지 않습니다. 벌써 박 지 온 그럴 때는 목사가 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송현교회 목사가 되게 하시고, 송현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루어 가시겠다. 누가 설계합니까? 하나님이 다 설계하십니다.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바로 이 속에 들어옵니다. 이걸 가지고 모든 문제 해결자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 속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뭐 조금 아프다! 조금 힘들다! 계획입니다. 나는 그 몸이 아프다 이럴 때에 이걸 통해서 사실상 많은 것을 깨달았다 보다도, 뭔가 그동안 희미했던 부분이 굉장히 확인되는 것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걸 통해서 제가 전국에 특별히 치유 사명자 대회나 치유하면서 전 세계까지 나가서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내가 고백할 수 있었던 배경이 내가 아픈 것을 통해서 이 사실을 믿었다기보다도 사실로 와서 부닥쳤습니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여주신 그런 역사!
그래서 바울이 일평생 그 뭔가 괴로운 그런 문제! 사단의 가시!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좌우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전 세계에 이루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 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설계변경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분명히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뭔가 문제가 있다. 계획입니다. 가만히 돌아보세요. 그 일 때문에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내게,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사실을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굳이 고난 받아야 우리가 눈이 열린다. 그 말 안 해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우리의 성품 잘 아시잖아요. 인도를 해 나가시는 그런 과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뭘 또 한번 붙들어야 되느냐 하면요. 그리스도를 모르면 아무리 경건해도 종교입니다. 종교인 그러면 우상 숭배라! 우상 숭배라 말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종교인이다! 그랬습니다. 종교인이라는 것은, 뭐 우리가 자장 대표적인 종교인이다! 다른 것이 없어요. 뭐 똑같습니다. 불교인이나 그 다음에 우리 그 무속배경! 다 똑같이 종교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역시 종교인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생활을, 혹은 착한 일을 많이 해도 모든 것이 종교인입니다. 뭐가 없으면? 그리스도가 없으면 희미한 만큼 그리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니 우리 예수 이름 붙잡았다! 그래도 희미한 만큼, 그리스도가 희미한 만큼, 뿌리를 내리고 체질이 안 된 만큼 이렇게 빠져나갑니다. 종교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고 위기를 만나게 될 때에 기도는 하지만 특색이, 그러니 종교인 특색이 늘 그 어려운 것 같아요. 문제 만나면 기도는 해요. 기도는 하지만 기도하면서 인본주의 씁니다. 대책세우고 기도하면서 막 기도하는 중에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될 것인데 자기 수단을 쓰고, 기도하면서 막 방법 생각하고 그리고 막말로 해서 기도하면서 싸우고... 부부 싸움 할 때에 보세요. 확실히 기도하면서 싸웁니다. 우리 남편 막 '좀 바꾸어 달라!' 그러고 자기가 바꿔야 되는 것은 모르고, 기도하면서... 이게 종교인의 특색이더라 구요.
왜? 하나님 앞에 기도로 맡겨버리면 되고 그 손에 우리가 의지해 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과 권세를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국은 뭐냐? 불신앙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의 배경이 뭐냐?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참 불쌍하다기보다도 우리가 정말 기도하고 말세에 교회와 우리 자신들이 참 기도해야 될 것이 복음이 체질이 안 되고 복음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하면서도 종교 속으로 빠지는 겁니다. 복음이 안 되는 것만큼 빠지는 겁니다.
빠지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하면, 꼭 중요한 문제가 부닥치면 '아니네!' 다른 데로 갑니다. 사건이 부닥치면 다른 데로 갑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슴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불평과 불만이 자꾸 나오고 이런 것이 나오면요. 종교인입니다. 예수 믿어도 그것은 복음이 바로 안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얼마나 사단이 말세에 계속해서 우리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일이기 때문에, 참 이 복음의 역사를 확실히 붙잡고 그 누릴 수 있는 가장 축복된 길을 하나님이 말씀 하셨는데,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데로 히브리서 4장에 나오는 말씀 아닙니까! 은혜의 보좌 앞에 날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 그럴 때에 또 새 힘 얻는 것이 다 복음입니다. 우리가 한번 들었다! 날마다 아무런 문제없다! 아닙니다. 늘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날마다 말씀 듣고 날마다 말씀들을 때마다 새 힘 얻고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음에 뿌리내리는 중요한 길이요. 하나님이 축복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안 되게 될 때에 결국은 어떻게 오느냐 하면요. 교회 속에서 이런 어떤 그 복음에 뿌리가 내리지 못할 때에 결국은, 결정적인 어떤 순간이 왔을 때는 착한 일을 하기 위해 애를 썼고, 노력도 하고, 선한 일도 하고 그랬지만 어떤 문제가 있느냐? 결정적인 그런 어떤 문제가 왔을 때에 사악함으로 빠져 버립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대표적인 사건이 뭐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다윗에 반대되는 사울의 문제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겸손했고 그리고 왕으로 뽑힐 정도로 칭찬 받았고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은 뭡니까? 복음을 확실히 붙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그 역사를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뭡니까? 자기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에 자기가 염려하고 자기 자식을 염려하고 후대를 염려하면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축복을 받은 그리고 그렇게 국가에 대해서 헌신 충성하는 다윗을 죽이려고 몸부림치며 따라다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은 뭐가 들어왔습니까? 악신이 붙었습니다. 이 종교인 배경은 뭡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왜 사악함이 빠지느냐?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참 주의해야 될 것은, 복음에 뿌리를 놓치고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큰 교회 세웠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의 뿌리를 놓치면 놓칠수록 어떤 문제가 오느냐? 교회 안에서 평안을 못 얻고 말씀을 바로 붙잡지 못하고 이렇게 될 때에 사단의 배경이 되니까! 교회가 결정적인 문제가 올 때에 사악함에 빠져버립니다. 이 교회 싸우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여러분 제 정신으로 싸우는지 압니까! 바로 이 배경입니다.
그래서 정말 그 앞으로 교회가 건축되어진다! 그럴 때에 나는 밤에 늘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때에 끝까지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일단 우리 교회에 왔다!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복음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이 설 수 있는 교인들 이게 바로 축복 중에 축복이다! 이 이상 더 다른 것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말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그러면, 이 말 이외에 더 할말이 없구나! 그래서 오늘도 제가 메시지를 들고 나와서 뭔가 생각을 하면서 다른 말이 필요 없구나! 여기서 치유가 나오고 여기서 모든 기도 응답이 나오게 되는구나! 이것이 지속되지 않는 한 내가 잘 하는 것 같지만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알면서...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제목을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나는 만족합니다!" 이랬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성경을 그대로 옮기려고 그러니 너무 길어 가지고 '나는 만족합니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솔직히 만족합니까? 대답이 시원찮네! 무슨 불평이 이렇게 많습니까! 사람이 뭔가 이렇게 만족하고 감사가 안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사악해지게 되어있어요.
제가 이 뭔가 몸이 안 좋고 어떤 경우냐 하면, 밥맛이 없어지더라 구요. 밥맛이 없어지니까 나도 모르게 뭐,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건 다 떠나 버리고... 그래서 사람이 뭔가 밥맛이 없고 이러니까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잖아요. 그러면 아침에 밥을 이렇게 받게 되면 밥맛이 없어지니까! 그 옛날에 잘 먹던 밥인데도... 그리고 정성스럽게 밥맛이 없으면 신경 써서 안 해 놓습니까! 그러면 괜히 숟가락 가지고 푹푹 찔러 보고 그리고 또 '반찬이 뭐 이러냐!'생전 안 하던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옆에서 보면서 그렇게 준비해 와서 그러면요. 진짜 신경질 나는가 봐요. 그러니 또 한마디하거든요. 그러면 또 붙는 거지...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사건이 안 되면요. 범사에 우리의 삶은 불평과 싸움과 문제로 터져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세워놓고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느냐? 내가 너를 만든 것은, 창조한 것은 나를 내가 찬송을 받으시기로 여러분 통해서 이사야에서 말씀한 것처럼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 찬양을 하시기 위해서, 찬송을 받기 위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은, 이 사실이 확인이 안 되니까! 늘 뭔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된 은혜를 못 누리니까, 뭐냐? 불평과 불만과 많은 뭐 닥치는 데로...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죽기까지 절대로 무슨 사건이 생겨도 불평을 안 해야 되겠다. 사실은 제가 불평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늘 뭔가 이 비판자가 되니까! 제가 이 중직자 가정에서 보는 게 비판이고 또 들리는 것도 뭔가 교회에 대해서 중직자 가정이나 이렇게 있으면요. 자연적으로 평신도는 단순하게 뭐 그렇게 보는데, 어릴 때부터 뭐 주변에 들려 오는 것이나 앉으면 뭐 그런 이야기 나오니까! 여러분 아마도 그 교회 평신도는 잘 모르는데요. 중직자들 모여 보세요. 뭐 교회에 대해서 그렇게 말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부터 들으니까! 그걸 나는 그때는 모두 걱정하면서 하는 이야기 같지만은, 나한테 들릴 때는 그런 것이 들리면서 뭐가 오느냐 하면, 교회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비판의식을 가집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아들어야 될 것이 뭐냐하면, 교회에 대해서 주변에 이런 계속해서 비판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요, 아무리 내가 은혜 받고 싶어도 나도 모르게 머리가 이 구조자체가 비판하는 구조로 바꾸어집니다. 고쳐야 됩니다. 절대 축복이 안 됩니다. 그래서 물론 제가 늘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그 비판 구조가 있기 때문에 설교 할 때에 죄 지적은 참 잘 합니다. 꼭 꼬집어서! 그러면 여러분도 아마 들으면 '맞아, 맞아!' 그렇지만은 대안이 없어요. 또 하나님의 축복이 안 됩니다.
그래서 죄 지적은 하나님의 은혜 받으면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설교 할 때에 이걸 없애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가더라 구요. 여러분들에게 죄 지적하는 것! 이것은 내가 뭐라 그럴까? 안 한다기보다도 복음적인 것이 아니더라 구요. 이 비판하게 되고 이러니까! 그렇게 되면 자꾸 설교가 비판하는 설교를 듣게 되면 여러분들도 그런 것만 자꾸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절대로 비판하는 이야기는 안 해야 되겠다. 혹시 누가 비판하는 소리 옆에서 하거든 하지마라 그래요. 그걸 들으면 뭐가 되느냐?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되요. 불신앙이 와요. 누가 들어오느냐? 사단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잘못해도! 잘못하면 기도하면 되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돼요. 하나님께서 그걸 다 이루어 주시는 것이죠.
그러면 여러분 자식들이나 혹은 그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여러분 잘 아셔야합니다. 이것이 되면요.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고 그 다음에 늘 그렇게 하면 비판할 일이 없어져 버려요. 비판하려고 보니까 비판이 나오는 것이지. 체질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지. 안 그러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남편요 비판할 것 뭐 있습니까! 그렇게 수고하면 땀흘리면서 자식들을 위해서 아내 위해서 애쓰는 것 보면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게 안 보이거든요. 비판하면 그 머리가 없어져 버립니다. 아내 위해서 눈만 뜨면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비판하는 눈이 없어져 버려요. 그런 게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에서 기도할 때마다 뭐냐?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참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예수 믿고 생각이 안 바꾸어졌다! 그것은 복음이 안 되어서 그래요. 복음이 뿌리가 내리면 여기서 모든 것이 그렇게 나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부족함이 없다라는 나는 만족하다라는 이 말이 어디서,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이냐? 다윗처럼 고생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장인한테, 그리고 나라에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쫓겨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이 시편이 이런 감사와 이런 만족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 것이냐! 그러니 다윗의 이 어려움 속에서 23편을 이렇게 나올 때에 도대체 이 말이 어디서 나올 것이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 첫 번 말씀 보면 바로 그 말씀이 나오죠. 1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뭐라 그랬습니까? 관계입니다! 다윗은 이 부족함이 없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뭡니까? 관계가 확실하게 깨달아 진 겁니다. 이걸 가지고 믿음이라 그러죠. 여호와와 다윗의 관계 무슨 관계입니까? '목자와 양의 관계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구약 시대 때는 양은 목자의 음성밖에 몰라요. 그리고 목자가 가는 데로 따라갑니다. 양에게는 자기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양을 깊이 연구는 못해도 이렇게 성경학자들이 해석한 바로서는 양은 아주 지독한 근시래요. 그래서 여러분 양떼를 끌고 갈 때에 양은 앞에 가는 양의 뒷발만 보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이스라엘 그 쪽 지역에 갔을 때에 저 산에 뭐냐하면, 줄이 쭉 나있어요. 줄이! 양은 이렇게 흩어져 가는 것이 아니고 양은 쭉 한길로 가더라 구요. 줄이 있을 때 가는데 보니까 산에 이렇게 가면 산 중턱으로 여러 갈래의 줄이 있어요.
줄이 있는데 그 줄이 왜 생기냐 하면요. 양이 딱 앞장선 그 조장인가 봐요. 조장을 하나씩 세우는데 조장만 딱 세워 놓으면 그 뒤만 따라갑니다 뒤에 것이 그 다음 그 뒤에 것은 앞의 발끝만 보고 따라 갑니다. 그러면 또 다른 조장은 밑에 줄에... 그래서 발자국이 여러 개 나지 않아요. 쭉 쭉 마치 그 토끼 길처럼 산에 줄이 서 있는 것을 봤습니다. 지독한 근시라서 그래요. 그리고 양은 목자가 딱 인도하면 인도하는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양과 목자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너무 속성을 잘 압니다. 우리는 그걸 잘 모르지만 너무 잘 알거든요.
그래서 그 다윗이 뭔가 다른 아내를 취하고 이제 그 비유를 들 때에 양의 비유를 들어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그러면서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가보니까요 같이 자요 여러분 우리는 그 개새끼나 같이 자고 있지, 뭐 그런걸 상상을 못하거든요. 요즘은 뭐 돼지 새끼도 같이 자더라 만은, 아직까지 뭐 이해가 잘 안되겠습니다 만은, 그런데 그들은 양을 품고 낳으면요. 진짜 새끼를 집에서 놓고 그래요. 그래가지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하더라 구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배경을 너무 알기 때문에 목자 잘 만났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뭐까지 한다고 그랬습니까? 생명까지 내어놓는다! 그랬거든요. 이 배경을 잘 알기 때문에 목자와 양이다. 양으로서는 최고의 목자가, 좋은 목자 선한 목자 만났다! 다 끝나 버립니다. 양의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뭐라 그랬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목자와 양의 관계! 이 관계가 다윗에게는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옛날에는 목자와 양의 관계라 그럴 때에 시대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려 나가실 때에 개개인에게 인간을 다스려 나가는 역사였고 이스라엘을 선택했습니다. 나라를 선택해서 이스라엘의 국부입니다. 나라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신다고 그럴 때에 성령도 나라 위에, 말하자면 각 사람 위에 안에 아니고 그냥 이렇게 함께 나라 전체를 이끌어 가시는 그런 어떤 배경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파라클레토스' 라는 원래 말이 성령이라는 것인데 '안에' 라는 말보다도 그 말이 옆에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마 그런 배경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성령이 어디입니까?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성령이 왔다 갔다 하십니다. 기분 좋으면 오고 이게 안 되겠다 싶으면 떠나가고... 그래서 다윗이 범죄하고 난 후에 가장 염려했던 기도가 '하나님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가지 마옵소서!' 이 기도가 다윗의 기도였습니다. 왜? 성령 거두어 가면 다윗은 안 되는 줄 아니까! 이런 배경에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늘 관계, 관계 말씀을 했습니다 만은 모든 문제가 여기서부터 해결이 됩니다. 이게 잘되어야 돼요.
여러분과 저는 지금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무슨 관계입니까? 무슨 관계입니까? 아버지! 아저씨 아니죠. 혹시 여러분 기도할 때에 '아저씨!' 그럽니까? 아니잖아요. '아버지!' 믿어 버려야 돼요. 이 신앙이 확실히 와져야 여기서 믿는 만큼 확인되는 만큼 해결되는 겁니다. 이것이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오늘날 문제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천지 만물을 다 다스리시고 나와 여러분 오장 육부를 운행하시고 다스리시는 분 아닙니까! 그러면 뭐가 문제입니까? 이게 안 되니까! 이게 불신앙이 돼요. 이게 절대로 안 믿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안 믿는 배경은 아닙니다 만은, 워낙 안 믿는 것이 체질이 되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지 만은, 제가 기고할 때 이렇게 보면요. 뭘 느끼느냐 하면, 아버지는 그러니까 아침에 아들이 딱 눈을 뜨면서 아버지를 흔들어 가지고 '아버지 맞아!' 어머니를 흔들어 가지고 '어머니 맞아!' 이렇게 묻는 아들이 없습니다. 응당히 뭐, 아버지면 아버지고 어머니는 어머니고... 너무 믿기 때문에 너무 태연하죠. 아버지, 어머니 함께 계신다! 그걸로 끝입니다. 우리는 뭔가 이게 안되니까 막 악을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기도 할 때에 물론 그렇게 기도한다 나쁘다 이전에 정말 믿으면 뭐 그렇게 기도할 필요가 없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뭐냐하면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말끝마다 아버지를 붙이더라 구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아버지가 얼마나 안 믿어지기에 한번 꼽아 봤어요. 아버지 소리 몇 번 하는지! 제가 이 말하는 배경은 여러분 솔직히 아버지라 그러면서도 이 관계가 바로 안 되어있습니다. 안 믿어요. 믿었다. 다 끝난 것 아닙니까! 여기서 모든 문제, 구체적으로 해결됩니다. 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그리스도 확실히 붙잡고 여기에 뿌리내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체질이 되어야 여기서부터 자연스럽게 전체가 다 해결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것이 해결 된 것 같고 쉽게 된 것 같지만 이게 잘 안되더라 구요. 그래서 이 관계가 되면요. 자연적으로 뭐냐? 목자와 양의 관계다. 목자만 인도하는 데로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다른 것들을 것도 없어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 혹시 그 뭐 아이들을 키워봤지만은 그런 배경을 조금만 가지게 되면요. 우리 기도하는 문제도 거기서부터 다 해결되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면 성경 말씀을 읽게 되는 것도 자연적으로 하나님 말씀 듣는 것, 여러분 주일날 봐서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시간입니까? 들려지게되어 있어요. 왜? 못 들으면 다른 길로 가게 되니까! 인도 받을 수 있게 이건 생명 걸고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오늘 듣는 은혜가 다르고 내일 듣는 은혜가 다릅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 은혜 주시는 역사 ! 바로이게 오늘 성경 그대로 날마다 담대하게 나가는 역사! 그래서 주일날 계속해서 자꾸 모이느냐? 바로 이 배경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모임에 하나님이 왜, 축복하시고자 약속했느냐? 이 말이거든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까! 류 목사님이 1부 예배인가, 2부 예배인가? 그러더라 구요. 울산에 가서 나이 많은 목사님인데 제가 아는 늙으신 목사님이신 것 같아요. 큰 교회를 지으시고 그랬습니다 만은, 아마 몸이 안 좋은데 암이 몸에 이제 들어왔는데, 그런데 그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수술하시고 또 살이 다 빠졌습니다. 그런데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대로 제가 옮기면 의사가 '세 가지로 약속하자!' 그러더랍니다. 약속하면 해결이 된다! 위암, 아마 수술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첫째 '온 사방에서 말하는 의사가 많은데 절대 다른 의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마라 내 이야기만 들어라!'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뭐냐하면요. 두 번째가 '뭐든지 음식을 먹을 때에 반만 먹어라!' 위를 좀 잘라 냈거든요. 절대 많이 먹지 마라! 셋째가 '자극 있는 음식은 먹지 말라!' 그렇게 이 약속만 지키면 당신 건강은 회복됩니다. 이러더랍니다. 그러면서 메시지 속에서 뭐냐하면, 첫 번째가 마음에 남더라 그래요.
나도 이게 실감이나요. 제가 이 몸이 아프고 이러니까요. 얼마나 의사가 많은지 몰라요. 내가 의사가 가서 어떻게 했다. 그것은 말도 묻지도 않아요. 그런 것은... 그러면서 이 사람은 절대 이러면 낳습니다. 이러면 낳습니다. 바른 사람이 어찌 여기 저기 그리고 다 좋아요. 들어보니까! 말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속이는 사단의 이야기는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로 풍성한지 모릅니다. 오직 한 분의 말! 그 말만 들어야 됩니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 이 시간 말씀들을 때에 누가 뭐래도 강단에서 말씀이 임했느냐! 한 주간 딱 잡고 기도하세요. 다른 것은 듣지 마세요. 그거 들으면 죽는 겁니다. 이걸 딱 잡고 계속해서 기도하세요. 왜?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이 내게 축복하신 말씀으로 오늘 임하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누가 거역하랴!" 왜? 복 주신다는 하나님인데 누가 반대합니까! 세상이 없어도 소용없어요. 오늘 여러분 이것 하나만 붙잡고 나가 도요. 흔들릴 이유가 없어요. 여러분과 저를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 벌써 다 세우셨습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성경에 보면 이렇게 나오더라 구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를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렇게 되면 뭐가 오느냐 하면요. 자연스럽게 그 분이 나를 인도하시는 역사 속에 서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오면 누가 인도하십니까? 말씀으로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인도하시게 될 때에 그 인도하심에 풍성합니다. 그 인도하심이 여기에서부터 치유가 나옵니다. 여기서 치유가 나옵니다.
제가 이 요즘 뭐 여유보다도 너무 절박한 이 사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이제 희락이를 보면서 자기 어머니가 있으면 마음놓고 놀고 그리고 잠도 자고 그래요. 그리고 또 뭐 불안해하지도 않고 그런데 일단 없다! 그럴 때는 불안해합니다. 염려하고 그리고 조금 문제생기면 뭔가 상처받기도 하고 그런 게 있어요. 저희 어머니 있으면 괜찮아요. 여러분 치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사실로 믿습니까! 삶입니다. 치유가 여기서부터 나오는 겁니다. 저절로 됩니다.
오늘 여러분 이 말씀 듣는 동안에 하나님이 내 인생에 완전히 나와 함께 계시는 구나! 치유입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는 동안에도 뭐가 나오느냐 하면요. 이 치유가 사실화되면 여러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기도더라 구요. 기도! 그래서 저는 그 기도라는 말을 많이 기도한다, 기도한다! 그러지만 사실은 제가 지금에 와서 고백을 한다! 그러면 조금 이상할지 모르지만 내가 인생에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고 많이 한다는 소문도 듣고 그랬지만은, 그래서 뭐 산으로 들로 기도한다! 그러고 심지어는 뭐 강단에 가서 들어 누워서 자기도 하고 그랬지만은 내 일생에 그렇게 힘들었던 부분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다락방을 하고 난 후에 되어진다는 배경을 가지고 기도는 되어진다. 기도는 저절로 된다는 그런 배경! 또 그 다음에 기도 속에서 뭔가 보니까,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걸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그 사실이 되기까지 사실은 어떤 면에서 한 10여 년 동안 나는 기도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교인들한테 여러분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 장로님들이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는 확실히 확신하건대 여러분도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 신앙생활의 기도라고 봅니다. 이것만되면 다 됩니다. 이게 안 되는 배경이 뭐냐? 앞에 부분이 바로 안 돼요. 관계가 바로 안 되어 있어요.
그 다음에 뭐냐? 치유가 안 되어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기도가 됩니다. 이게 안 되면 기도가 되어질 수 없어요. 기도가 되느냐! 앞에 부분이 되는 만큼 기도가 됩니다. 기도가 되는 만큼 앞에 부분이 되는 겁니다. 이게 연관성이 있더라 구요. 그런데 제가 기도에 대해서 조금 말씀하고 싶은 것은 너무너무 자연스러운 배경인데, 그 동안 이게 되어진다는 배경이 잘 안 되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 하셨다는 말씀이 이게 실제가 잘 안되거든요. 받아합시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이미' 몰라요?, 알아요?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그러면 기도는 또 뭐냐? 그러니 있어야 될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시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신다. 이것이 뭐냐? 치유가 되어야 이것이 옵니다.
그러면 제가 이 아이를 데리고 지난번에 화원에 가 가지고 이렇게 유모차를 밀고 가지 못하고 이제 데리고 갔다가 내려오는데 아이가 가는 데로 내 눈이 따라 다니는 겁니다. 눈이 따라다녀요. 계속! 그리고 조금 이제 위험하다 싶으면 가까이 가서 안을 준비를 합니다. 넘어지면 붙잡을 준비를 하구요. 그때에 지가 어떻게 넘어졌다! 막 고함을 지르고 안 그럽니까! 그러면 얼른 붙잡고...
나는 기도에 대해서 이 말씀하면서 여러분 확실히 드리고 싶은 것은 기도가 어떻게 되어지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을 따라다니는 눈이 있어요. 밤낮 없이! 나는 자고있지만 밤낮 없이 그리고 어디든지 성령께서 눈동자처럼 하나님이 따라다닙니다. 따라다니셔요. 그 눈이 계속 따라 다녀요. 그러다가 위태한 부분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더 다급하게... 넘어졌다! '아' 그러는 순간에... '아' 그러는 것이 뭐냐? 기도입니다. 기도!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는 기도는 특권이요. 기도는 의무라고 붙일 필요가 없어요. 기도는 특권이에요. 내가 문제 생겼다, 사건 생겼다! 그 길로 하나님 앞에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관계만 바로 되어 있으면 이게 저절로 나와요. 종교인들은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고 자기수단 쓰지만은 복음을 확실하게 붙잡은 사람은 기도하면 끝입니다! 왜? 완전히 담당해 줄 것을 믿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권찰들한테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기도인데 이 기도가 안 된다는 배경 때문에 왜? 전에는 계속해서 내가 기도를 뺏어냈고 얻어내었고 안 주면 금시 했고 이랬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개념이 뭐냐하면, 뭐든지 생기면 얻어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고 그 다음 뭐가 일이 되면 내가기도 많이 해서 그렇구나! 이리 돌아갑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하던지 적게 하던지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나를 이끌어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니까! 뭐든지 얻어내려고 그럽니다. 안 주면 신경질 내고, 안 주면 눈 부릅뜨고 왜 안주냐고 고함지르고 그랬거든요. 그러니 찬양이 안 나와요. 기도 많이 하면 찬양이 저절로 나와야 되는데 찬송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게 되면 저절로 된다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또 그렇게 만들더라 구요.
내가 그게 안되니까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얼마나 나쁜 하나님으로 만들었습니까! 늘 그런 마음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하나님 안 주면 하나님 안 준다고 고함을 지르고 안주면 또 굶죠! 굶다 안되면 그냥 막 죽기로 작정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악하신?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안 주려고 애를 쓰시는 분이 되어 가지고 굶어가면서 뺏어 내어야 됩니까! 이게 뭔가 우리 관념에서 기도라는 관념이 너무 잘못 되어 있어요. 기도는 찬양과 기쁨과 감사로 누리는 부분인데 이게 안 되거든요.
그래서 기도를 안 했습니다. 안 해도 되는가 보자! 오기도 있고 한 10여 년 간 어떤 면에서 제 생활이 여러분 보다시피 제가 새벽 기도를 안 나간다! 그게 안 나가는 배경 속에서 이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 한번 봅시다! 까짓 거 뭐 지금까지 기도해도 그것도 안 되는데 진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신다고 다 그랬는데 하나님이 한번 마음대로 한번 해 보세요. 그랬더니 우리 장로님들 그리고 건축위원들 막 이렇게 그러고 뭔가 이 애쓰고 그러는 동안에도 사실 나는 기도 안 했습니다. 저 옥상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도 뺏어 내려는 기분이 자꾸 들어 가지고 우리 교인들이 막 부자 되게 해라! 자연적 이게 나와요. 그래가지고 그것도 접어놓아 버렸습니다. 이게 기도가 아니다 싶어 가지고...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내가 마음에 요즘 들어서 느끼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게으르고 아무것도 노력 안 하고 기도 안 하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내 자리가 내 서있는 자리가 송현교회라는 이제 우리 설명을 들으시면 알지만 참 아름다운 교회를 이렇게 설계를 해 놓았더라 구요. 그 교회 건축에 박 지 온! 나를 한 복판에 세워 놓았다. 내 기도한다 안 한다 상관없이 하나님이 다 준비하시고 이루어 놓았더라 구요. 그러면서 뭘 느끼느냐? 기도할 때마다 나는 이제 그 문제 당할 때에 어려움 당할 때에 '아' 소리만 내면 금방 와서 하나님께서 보호하듯이, 인도하시듯이, 들어주시듯이 여러분 기도하게 할 때마다 뭡니까! 응답을 준비하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다 드릴 것을 약속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너무 절실하게 믿어져요. 그러면 문제 있을 때 여러분 뭐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것 없죠. 기도하면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요즘 이제 힘을 얻는 데로 참 기도하는 것에 힘써야 되겠다! 라는 이런 마음들이 또 전처럼 막 부르짖고 기도한다!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들으신다는 사실적인 어떤 믿음이 와져야 됩니다. 이 새벽기도에 대한 문제가 재해석이 되고요. 여러분 철야 기도도 그런 면에서 재해석이 됩니다. 그리스도 뿌리내리고 정말 기도하게 되면 기도하는 만큼 힘이 나옵니다. 기도하는 만큼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기도하는 만큼 풍성해집니다. 삶이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충만해지게 됩니다.
이걸 우리가 그냥 기도라는 그 사실들이 먼저 관계성이 바로 회복이 안 되고 치유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이 확인 안 되면 이 기도라는 것이 늘 우리는 조급하게 되고 어렵게 되고 그래서 맨 날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고 기도할 때마다 뭔가 우리는 수단 쓰고 방법 쓰고 안 되면 불평하고 이런 식으로 종교성을 가진 기도로 끝나게 돼요. 기도라는 것이 바로 조금만 이해되면 너무 필요한 부분만 아니고 쉽고 감사할 부분입니다. 너무 감사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 그러면 금방 안아 주시죠. 그러면 웃으면서 감사할 뿐이죠. 그러면 또 찬양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거룩하신 그 계획 속에 하나님의 자녀로 세웠고 부름 받았고 이 일에 사용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게 감사입니다. 찬양이 나오고요. 정말 기쁨이 나오고 하나님의 그 축복과 역사가 정말 감사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마지막으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여기서 이제 진정한 사명이 나와요. '아, 그렇다면 내가 이런 축복을 받았으니 내가 앞으로 살아야 될 것이 뭐냐?' 다윗은 보면 뭐라 그랬느냐 하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5절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저는 이것을 전도라는 것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만은, 사명 그럴 때에 전도와 그 다음에 또 뭐냐하면, 여러분 앞으로 사명! 그러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재림 준비하는 겁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러분 그 영과 그 축복과 은혜를 이미 여러분과 저는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때는 이 놀라운 축복을 나와 같이 항상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는 이게 사명입니다. 전도와 그리고 마지막 이 재림의 때에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를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다른 것보다도 이 재림의 역사를 준비하는 것 너무 귀중하죠. 그리고 이것이 조금만 눈이 열리게 되면요. 기쁨으로 교회생활 핍박이 온다. 어려움이 온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전도가 된다 안 된다. 이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른 일이고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신다고 그랬으니 확인만 되면 문제없습니다. 왜? 역사 속에서 전도하면서 핍박 안 받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그에게서 그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인생을 보세요. 똑같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조금 느낄 만 해요.
뭐냐하면 바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깨달았을 때에 모든 병 문제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에게 가시가 있었느냐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왜냐하면 그걸로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이 일평생 변치 않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귀중한 축복이 되더라 구요. 바울이 고백했잖아요. 자고 하지 않도록 겸손하도록 자고 하지 않도록 그 다음에 그때마다 항상 어디입니까? 어려운 문제 있을 때마다 하늘나라 바라보도록...
오늘 아침에 우리 집에서 이 장이 나쁜지 장 속에 암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어째든 빨리 가면 되는 거지! 이러니까 섭섭했는지 어쨌는지 '나도 뭐 빨리 가고 싶어요!' 그러더라 구요. 공갈치는 건지 아마 진짜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받아 가지고 나도 또 뭐 근심스러운 말이면 괜찮은데 나도 받아 가지고 나도 빨리 갔으면 좋겠다. 이 배경이 그냥 나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건강을 잃고 힘들어보니까요 세상사는 것이 힘들더라 구요. 그러면 늘 힘들 때마다 뭐냐하면, 빨리 갔으면 좋겠다. 빨리 하나님 앞에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항상 무슨 문제가 있으냐 하면 사명 못하고 가면 이 꾸중들을 것 같고 하늘 그 영광의 축복의 상을 놓치면 이것도 또 좀 뭔가 안타까운 것보다도 좀 그렇고 그렇다는 것보다도 분하고 이상하고 이러니까 사명을 다 해야 되겠는데 그러면서 만약에 내가 너무 건강하고 너무 좋다. 이제는 죽는다! 그러면 좀 겁낼 것 같아요. 아이고 좀 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아마 혹시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그럴 겁니다. '나는 좀 더 살아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좀 하지 싶어요. 그래서 안 죽으려고 많이 애를 쓰는 것 같아요. 다 죽어 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죽어 가니까! 얼른 갈라 그러고 그리고 이걸 도피해서는 안 되죠.
제가 바울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복음 전파에 쉽지는 않잖아요. 세상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흑암권세에 사로잡힌 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을 늘 보니까! 하나님 나라, 그 영광의 배경을 봤기 때문에 소원이라! 죽던지 살던지 그러니까 이 소망 속에서 이걸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고통과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해야 되겠다! 전도라 그랬습니다. 이걸 말하지 않으면 그건 절망입니다. 그러면 '내가 화로다!' 안 그랬습니까! 여러분 이 눈이 열리면 모든 문제가 이 배경에서 이 세상 것이 좋아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 늘 하는 말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 어떻게 들을까 싶어서 내가 좀 마지막에 말을 어떻게 머리가 돌아가 가지고 그런 말이 나올까 싶은 생각도, 염려도 되고 그렇습니다 만은, 솔직히 그런 배경 들으니까 무슨 마음이 있냐 하면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잠잘 수 있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뭐 그렇게 먹는 것 마시는 것 잠자는 것! 길거리 가 앉아 있어도 그 일이 되면 끝난 것 아닙니까!
여러분 거지들이 이상하더라 구요. 이 뭔가 이 집나가 가지고 한 3일 이상 지나고 또 3달 이상만 지나 버리면 집에 들어갈 마음이 안 생긴데요. 그게 영적 배경입니다 만은, 왜 그러냐? 걱정이 없어진데요. 잠자는 걱정이 있나 먹는 것 걱정이 있나 뭐 없어진데요. 그러면 안 들어가고 싶다고 그래요. 그렇다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조금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슴에 담고 있다 싶으면 이 땅에 사는 것은 걱정이 안 됩니다. 먹는 것은 어떻게든 먹을 것이고 잠자는 것도 어떻게든 잘 거고 그러면 어디든지...
그래서 내가 길 거리에 나가도 좋다. 참 복음 바로 잡고 이 사실 바로 잡고 나간다면 만족이다! 이것만 되어버리면요. 어떤 문제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복음이 되면 되는 만큼 뭐가 옵니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감사 해야죠. 그때마다 문제 생기면, 뭐하면 됩니까?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도 내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그냥! 그러니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지금도 안 그렇습니까! 이것이 확정되면요. 눈만 깜아도, 눈을 떠도 문제 생기면 자연적 내 입에서 '아버지!' 이게 안 된 사람은 엄마! 소리 나오지 만은, 눈만 깜아도... 그러면 저절로...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문제나 사건, 특별한 문제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크게 할 것 없어요.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과 명철로 주시는 데로 결정하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할 정도가 아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와 사건을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확인되는 만큼 절대로 딴 짓 안 합니다. 절대로 이리 저리 옮길 필요도 없고 마음이 흔들리 것도 없고요.
그리고 이것이 안 되면 뭐가 문제냐? 배경이 사단의 배경이기 때문에 사악해 진다! 이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이걸 놓치게 되면 교회가 사악해집니다. 교회가 이것을 붙잡게 되면 교회는 너무 축복이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교회 올 때마다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 겁니다. 오늘 이 메시지 들으면 여러분 정말 행복하다!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아내 볼 때도 행복하고...
그래서 제가 오늘 그런 시각으로 성가대를 그렇게 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메시지를 준비하고 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옷도 보니 예쁘고 얼굴도 보니 예쁘고... 전에는 뭐 보통 그렇게 봤는데, 그 여러분이 보면서 오늘 어쩐지 모르게 인사를 하는데요. 전부 귀하다! 이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핍박받았습니까! 얼마나 여러분 핍박받으면서 삽니까! 여기 앉았다는 사건조차도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제 앞으로 더 위대한! 그래서 받아합시다. "남은 시간에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이 증거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 계획을 믿고 나아가면 문제들을 겪을 때에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아무리 경건해도, 기도를 많이 해도,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종교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비록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고 인본주의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와 사건에 부닥치면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며 사악함으로 빠집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고백했는데, 양은 시력이 매우 약해서 목자를 따르고 목자는 철저히 양을 돌봅니다. 특히 선한 목자는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양을 지킵니다.
☞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 진실로 이 고백이 터져나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얻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공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강단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철저히 붙잡으십시오.
[3] 치유의 축복 속에 기도하며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 성령께서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풍성함 속에서 치유가 나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사실로 믿는 것이 바로 치유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치유가 사실로 이루어질 때,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치유가 되어지는만큼 기도가 되어집니다.
☞ 기도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부터 성령께서 눈길을 떼지않고 우리를 따라다니시며 위태로울 때는 즉각적으로 도우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위태로울 때 우리를 도우실 아버지 하나님을 찾아 부르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도우실 분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도우시므로, 기도는 진실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가져옵니다.
☞ 이러한 축복 가운데 진정한 사명이 나옵니다. 우리의 사명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을 준비하며 지금도 하나님을 떠나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치유와 기도가 바르게 되면,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핍박을 받아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으로 가득차며 감사와 찬송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아버지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선한 목자가 되셔서 나를 양같이 철저히 돌보아 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나를 치유하시고 나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사명 감당하게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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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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