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내것이 네것이다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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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 15: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눅 15: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눅 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눅 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 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오늘 메시지 제목을 내 것이 네 것이다 그렇게 했습니다. 이걸 간단하게 말해서 한번 받아합시다. "내게 네 꺼다!" 그 이야기입니다. 옆에 사람보고 한번 인사합시다. "내게 네 꺼다!" 이걸 아무나 인사하면 큰일나요. 잘 생각하고 하셔야지. 이 인사할 수 있는 조건이 따라옵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아무나 이렇게 인사했다가 큰일나게요. 여기 이런 인사할 수 있는 조건이 오늘 여기에 기록이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성경은 사실상 이것을 조금 확인을 해야되고 또 우리가 현재 이 사실이 확인이 안 될 때에 바로 이 엄청난 축복을 가지고 있으나 둘째아들 탕자처럼, 이런 비참한, 너무 서글픈 인생이, 너무 좋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살아가게 되는 이런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을 좀 말씀으로 살펴야 되겠습니다.

그저께 저희 누님이, 제일 막내 누님이 서울에 권사님으로 계시는 분이 90에 하나 모자라요. 아마 금년 하반기 11월 가면 90이 되시는데 위독하시다는 소리를 듣고서 오늘 어제 토요일 날 조금 힘들 것 같고 그래서 그 아침에 일찍이 소식을 들었는데, 삼 형제가 대구에 있고 하나가 서울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오전에 우리 그 마지막 동생이, 박 목사 동생은 가서 보고 여기 세 사람이 마침 노회 중에는 우리 장 형님인 백씨하고 5시 이후에 출발해서 갔습니다. 금방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겠다!' 그래서 금요일인데 힘들겠다 그래서 부랴부랴 살아있을 때 얼굴이라도, 동생들을 그 보고 싶다! 이래서 가서 돌아가시기 전에 가야 되겠다! 그래서 빨리 올라갔습니다.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내려오는 중에 이제 다 장로님들이니까! 이야기하고, 또 뭐 목사니까, 나오는 이야기는 교회들 이야기 아닙니까! 교회들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참 너무 가슴 아픈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어요. 아주! 우선 그 누님은 오늘 새벽1시에 돌아 가셨어요. 화요일 날 장지가 아마 군위인데, 장례식을 장지에서 하관이 되도록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오면서 이야기 속에서 노회의 어려움 교회의 싸움들 뭐 이런 이야기들을 또 장로니까! 교회 이야기는 걱정하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너무 엄청난 그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고 하기는 뭐 다 이미 예상도 하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은, 옛날에는 교회 싸움은 주로 남자들이 안 했습니까 만은, 요즘은 여자들이 앞장 서 가지고 하시더라 그래요. 그래서 결국 노회까지 나와 가지고 노회 장로까지 끄집어내려 가지고 하니까! 노회 까지 하다가 중단도 하고 남자들이 싸울 때는 좀 덜한데 여자들이 나와서 그러면 못 말립니다!

그러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도대체 저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가 있느냐?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복음이 있느냐? 그리고 오늘날 교회 목사님들이 정말 나는 나 데로 목회를 한다! 그러면서 정말 저 분들 속에 그리스도가 복음이 되도록 목회를 했느냐? 그렇다 그러면 어떻게 저렇게 악할 수가 있느냐? 참 교회 싸움에 나는 악하다는 것은 세상 어떤 상식으로도 통하지 않는 그런 악한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나를 한번 돌이켜 보세요. 나도 이렇게 보고 우리 교회들이 여러분 얼굴들을 쭉 내가 생각을 하면서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싶어요. 아마 여러분들이 뭐 다 내어주고 쫓겨 나갔으면 나갔지 그렇게 싸우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자칫 복음에서 떠나 어떤 인간의 욕심이라든가 다른 것이 앞설 때에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말세에 이 흑암의 세력들이 범람하는 이때에 참 우리가 복음으로 무장이 안 되고 복음으로 바로 안 되어 있으면 이것은 엄청난 비극이 온다는 것이 뭐 사단은 말세가 되어서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발악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뭐 틈만 있으면 가정도 기어 들어오고 그냥 뭐 그냥 교권을 통해서 들어오고 별 수단을 다해서 들어오는 겁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이 참 큰 시간마다 순간마다 복음 이외에는 다른 것을 말할 수 없겠구나!

왜? 그 복음 아니면 그 사단이 결박되지 않는데! 그 사단이 물러가지 않는데! 사단은 뭐 우리 잘합시다! 노력합시다! 뭐 우리 찬송한번 잘해봅시다. 찬송 잘 못한다고 앞에선 사람들이 괴로움을 좀 많이 갇는 것 같아요. 1부 예배도 조금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교회 찬송이 힘이 없데 오후에 찬송한다고 와 놓으니까! 찬송 안 한데, 입 가만히 다물고 앉았고...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지 모르니까! 그리고 곡이 안 올라가요 곡을 내었다. 반 영감 소리를 하고 앉아있는데 그러니 이게 또 힘들어요. 요즘 찬송이 얼마나 빠릅니까! 그냥 찬송이 너무 빨라 가지고 말이 안 따라 가 가다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어요.

그래서 1부 예배도 제가 부탁을 했습니다. 찬송을 인도하는 사람이 제발 공중에 여러 사람들이 가사를 묵상해 가면서 할 수 있도록 좀 천천히 불러라! 젊은 사람들은 얼마나 빨리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주기도문하고 뭐 이렇게 전능하신 그러는데 나는 늘 가정예배 드릴 때마다 내가 맨 날 늦어! 벌써 나보다 앞서 가버려 그리고 그 자리 따라가면 내가 숨이 가파서 못 가요. 오늘 부탁을 일부러 했더니만 일부러 이 몸의 소망 부를 때에 천천히 부르더라 구요. 얼마나 은혜가 되는 줄 몰라요. 찬송을 왜 그렇게 빨리 부르는지. 가사는커녕 생각할 여가도 없어요.

그리고 그 복음 송을 부르는데도 좀 이렇게 전체 노인들도 여러 사람들도 입을 벌려서 찬양을 부를 수 있도록 좀 곡도 좀 쉽고 좀 평범한 곡을 선택하고 그래야 되는데... 젊은 사람들은 잘 부르는 곡이에요.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이러니 정신이 없어 가지고 올라가다가 말고 '끽' 소리나지! 내려가다가 말고 내려가지도 않지! 이러니 찬송이 참 잘 안 된다. 그러나 정말 여러분 가사가 마음에, 가사를 담고 마음에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거든요.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찬송 부르는 동안에 우리 치유 사명자 대회 가면 찬송 부르는 동안에 참 치유가 되거든요. 치유가 되고 또 우리에게 기쁨이 회복되고 그런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오가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에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소식을 내가 그런 소식을 접하지 않고 산다는 것도 감사하고 또 막상 그런 소식을 접하게 되니까! 제가 너무 마음이 아픈 겁니다. 그래서 과연 내가, 우리교회가 내가 하는 이런 어떤 생각들! 정말 지금 이런 시점에서 뭘 해야 되겠느냐? 복음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그래서 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 왜? 그리스도가 아니면 흑암의 세력들이 끊기지가 않아요. 그런 문제들이 나오게 되고 우리가 또 놓여져 있는 현실을 바로 알고 또 깨닫고 하는 은혜를 입지 아니하면 참 문제가 되겠다. 왜? '내 것이 네 것이로되!' 이게 벌써 여러분과 제게 주는 현실이거든요.

그러면서 둘째아들에게가 아닌 맏아들에게 주신 메시지가 바로 여러분과 제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깨달아지지 않고 지금 현재 있으면서 이 사실이 깨달아지지 않고 모르고 있을 때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불평과 원망! 너무 좋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너무 좋은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 불평과 원망과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교회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조금만 불평하고 원망 있을 때는 건드리면 뭐가 나오느냐? 그게 나오거든요. 막 터져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어느 시기보다도 이런 문제가 가득해요.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요. 전혀 없습니다. 국가에 대한 감사도 없어요. 그리고 뭔가 내가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한 가정에 대한 감사가 없거든! 왜? 아이들한테 물어보면요. 전부 부모하고 같이 있는 것도 불평하고 형제들하고 같이 있는 것도 불평하고 전부 사회 구석구석이 불평입니다. 옛날에는 뭐, 사은회라는 것도 있고 뭐 '스승의 노래!' 그러고 뭐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것도 있고... 요즘에는 없어요. 감사가 어디 있습니까! 인터넷에 올라가 보면 온통 욕뿐인데...

그러니까 지금 이런 것에 완전히 사단이 타작을 해 놓았어요. 완전히! 타작이 뭔지 압니까! 완전히 사단이 타작을 해 놓았어요. 그런 중에 교회도 타작을 해 놓았어요. 여러분과 저까지 타작을 하고 있다면,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시점에서 좀 고린도의 사실을 확인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간절해요. 우리가 정말 이 시기에 우리만이라도 좀 정신차려야 되겠다.

본문에 있는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이거든요. 첫 아들도, 맏아들도, 둘째 아들도 은혜 받는 것은 똑같은 겁니다. 은혜 주는 것은 똑같은 겁니다. 똑같은 건데! 하나님께서 이 맏아들에게도 똑같이 첫아들이나 둘째아들이나 똑같이 은혜를 주셨는데... 그러니 은혜 주신, 이미 은혜를 받은, 맏아들이 이 은혜를 은혜로 모르고 사는 겁니다. 이게 이제 문제거든요. 둘째 아들은 은혜 받으면 뭐 똑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아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 은혜 받은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은혜를 은혜로 모르니까! 여기서 이제 불평이 나오더라 구요.

바로 그 은혜가 뭐냐?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 나는 새삼스럽게 이번에 가만히 생각하면서 이것이 확인되어요. 뭐냐하면,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라는 사실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러니 예수로 사는 삶 자체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핍박이 있다, 어려움이 있다! 그 자체가 전부 은혜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핍박받는 송현교회로 왔다!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이게 잘 된다, 못된다가 아니고 이게 은혜 중에 은혜예요.

그래서 우리의 시각이 보통 은혜 받은 사람들이 이걸 못 누리고 이걸 못 깨달으니까! 어떤 경우냐 하면,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귀한 축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성경이 뭐라 그랬냐 하면요. 100배, 60배, 30배라고 그러더라 구요. 하나님의 축복을 마태복음 13장 23절에도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이렇거든요. 그 다음에 7장 15절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러면서 16절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금 성경이 여러분과 제게 확인 시켜 주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미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를 믿었을 때에 바로 그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자체에서 여기서 좋은 나무가 되었느냐? 아니면 나쁜 나무가 되었느냐? 나무에 대한 본질적인 시비입니다. 이것이 나쁜 나무가 아무리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해도 그건 헛수고입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종교생활이라 그랬거든요. 자꾸 '좋은 열매를 맺자! 노력하자! 애쓰자!' 그건 안 되거든요. 좋은 열매는 근본적으로 애를 써도 맺을 수 없는 것이 뭡니까? 나쁜 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무입니다. 나무 그러면 내가 좋은 나무가 되었다! 시간만 되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여기 보면 포도나무다! 포도나무를 심었을 때에 포도나무가 심어졌다면 포도나무가 아무리 애를 써 가지고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맺도록 노력한다! 애를 쓴다!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성경이 뭘 말하느냐 하면, 포도나무는 포도나무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열매를 맺게 된다! 지금 네가 어떤 나무냐?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나무입니까? 이게 지금 본질적으로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뭘 잘한다, 못한다! 여기에 자꾸 두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 지금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면 그로 통해서 오는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축복인데 그 축복을 축복으로 모르게 될 때에 불평이 나옵니다. 한가지 예를 듭시다. 나는 요즘 쭉 뭔가 이렇게 뉴스를 본다든가, 안 그러면 드라마를 본다든가, 뭔가를 이렇게 보면서, 글을 본다든가 그럴 때에 거의 지금 드라마 소재도 어떤 것이 많으냐 하면, 정신문제! 참 많습니다.

그 다음에 알콜 중독에 대한 문제도 다루죠. 그런데요. 그냥 알 콜 중독도 안 그렇습니까! 자다가 일어나는데 덜덜 덜덜 떨면서 술을 마셔야지 정신이 나고 이래가지고 그 사람의 이 정신이 안 정이 안 되니까! 늘 불안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나 전부 이건 이상하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나는 뭔 생각을 해 보느냐 하면요. 감사하면서 기도하고 오늘도 하루를 성령이 인도해 주옵소서. 그리고 시간 되면 밥 먹고 그러다가 마음에 편안하게 이제 이 인도를 안 받습니까! 일어났다! 막 불안하고 어제 밤에 막 잠 못 자고 눈이 발갛게 해 가지고 신경질 내고 막... 내가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편안합니다. 참 기쁨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게 너무 평범한 것 같은데도 너무 큰 축복입니다. 이걸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미 이 자리에 있지만은 감사한 줄 거의 몰라요.

오늘 아침에 예배드리는 시간에 '야, 예배당에 교회 가야죠.' 늦게 온다고, 늦었다고 막 신경질 내고 짜증내고... 받아합시다. "신경질 내고 짜증내도 교회 온다는 이 누림이 엄청난 축복이다!" 그걸 지금 모르고 있어요. 어쨌든 이 온다는 사실! 와서 있다는 사실이 이것이 여기서 모든 문제가 풀어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정신적인 문제 있는 사람들, 늘 그 치유 메시지에 안 그럽니까! '공적 예배에 참석만 해라! 다른 것 열심히 하려고 하지말고 공적 예배에 참석만 해라!' 그러면 치유가 되게 되어 있어요.

어저께 류 목사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느냐 하면, 어떤 그 국회의원이라든가 그런 분이 너무 한 주간 동안 정치, 사회에서 막 시달리다가 정신이 없을 정도랍니다. 그러면 교회 와서 멍하니 있다가 가도 메시지를 듣고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았다만 가도 평안하데요. 한 주간 평안 하더래요. 여러분 이걸 보통으로 들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뭐 형편이 좋다 나쁜다! 이것과 상관없이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는 사실 자체 속에서 내 생각과 마음이 주일날 교회 나오고 교회 나갈 때...

그래도 나가기 싫어 가지고 옆 눈짓 해가면서... 그래도 교회 나오고 어떻게든 생각이 교회 나오고, 와 가지고 뭐 어떻든 메시지를, 현실이 뭐 어떻든 간에 개찰하던지, 더럽든 말든 간에 그래도 은혜 받는다고 고개 끄덕이고 귀에 말씀이 들어오고 그러다 뭐 그로 통해서 판단하고 살아가고 이게 평범한 것 같으나 그런 어떤 믿음의 삶에 가장 기초적인 그러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자체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없어요. 이게 안 되었다!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거든요.

여러분 어떻게 여럿이 모였을 때도, 나는 그런 생각을 이번에 해 봤어요. 내 친구들이나 뭐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어떤 사람이 되도 않은 소리를 하거든요. 이 판단이 뭔가 이게 잘못 되어 가지고 뭐 이상하게 해 가지고 그 다음에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뭔가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런 어떤 마음이나 이런 것 때문에 막 이러고 그런데 내 속으로 참 인간 되도 안 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불안해 못 견디거든요. 그 사람들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드러내지도 않아도 괜찮고 말 안 해도 편안하고 앞에 설치지 않아도 괜찮고 그리고 또 생각이 뭔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 미친놈이다!' 하는 생각도 안 하고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아 이 은혜가 얼마나 귀중하냐? 여러분 지금 현재 여기 와서 가정생활 정상으로 하고 그리고 가정에서 여보 그럴 때도 예 그러고 대답 제대로 하고 아이들보고 웃고 웃을 마음이 생기고 이런 게 우리가 보통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가정에 평안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정에 온.... '참 다른 사람이 뭐 평안하다 뭐 감격한다!' 안 그래도 그 감격한다고 할 것도 없어요.

감격한다! 그러니까 너무 거리가 먼지 잘 감동이 안 가는가봐! 예수 그리스도 감격하지만 너무 처음에 감격해 가지고... 감격도 몰라! 그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감격해 가지고 이게 뭔가 습관이 되어 가지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 어지간히 감격 해 가지고는 감격을 못 느끼는가 봐! 그게 평범하게 지나가는 과정이지만 바른 생각하고 바른 판단하고 바르게 살아가고 바르게 느끼고 밤에 잠 잘 자고 아침에 잘 일어나고 그 다음에 이웃 보면 웃고, 그 다음에 형제들 보면 기뻐하고 교회가면 아무개 집사 웃고 이렇게 하는 것이 평범한 것 같지만은 이 은혜 속에서 내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걸 좀 깨달아야됩니다. 이걸 깨달아야 돼요.

이것을 주었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살아가거든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괴로움 받고 불안과 고통과 염려 속에 살아가는데, 이 큰 평안을 주었는데, 늘 이것이 안 되니까 뭐냐?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게 깨달아지지 않거든요. 그러니 왜, 나는 이게 안 되느냐? 왜 나는 이게 안 되느냐? 안 된다는 그런 배경이 어떤 배경이냐 하면,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이 주신 이, 평범한 축복인 것 같지만 엄청난 축복인데... 이걸 놓치게 될 때에 뭐냐하면, 이 울타리 안에 없는 다른 밖에 사람들을 보고 그걸 자꾸 판단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100배, 60배, 30배 결실을 얻는다!' 그럴 때에 이걸 뭔 생각을 하느냐 하면, 주로 우리 생각에 돈을 100배나 받는다! 뭔 일하면 100배나 잘 된다! 이런 식으로 자꾸 생각을 하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네게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서 여러분과 제게 뭡니까! 실제로 생명의 역사가 30배, 60배, 100배 이걸 꼬집어서 뭐라 말하면 차라리 어떤 면에서 전도라는 것으로 또 연결 시킬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항상 뭐냐 하면요. 기도할 때에 30배, 60배, 100배! 그럴 때에 꼭 복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보다도 뭐냐하면, 인간적인 것, 세상 적인 것에다가 기준을 해 가지고 '주여 30배, 60배, 100배의 주시옵소서. 주기는 뭘 줘! 줬다가 어쩌려고!' 이런 식으로 자꾸 돌아가더라 이겁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뭐냐 하면요.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과 은혜를 너무 너무 귀중한 것인데 다 놓치는 겁니다. 우리는 30배, 60배, 100배 할 것도 없어요. 누가? '내게 네 꺼다!' 이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박 목사가 '내게 네 꺼다!' 그랬다면 박 목사가 내 꺼 그러면 내께 있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갖고 계신 분! 그 분이 여러분과 제게 내게 네 꺼다! 이래야 일이 되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 관계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내게 네 꺼다!' 하는 그런 배경에서 뭐냐하면, 한 분이 뭐냐를 바로 알아야 됩니다. 오늘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뭐가 되었어요? 자녀다! 그래서 내게 네 것이 되는 것이지 이게 안 된 상태에서 내게 네 꺼다! 큰일나게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오늘 일부러 옆에 사람보고 인사하라는 배경이 그겁니다. 실감해 보라고... 옆에 인사해 보니 다르잖아요. 내게 네 꺼다! 그랬다가 이상하잖아요. 기분이... 하나님 앞에 참 내게 네 것이 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이것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그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면요. 잠깐 이 나무에 대한 말을 했지만은 우리가 30배, 60배, 100배를 아무리 맺고 싶어도 맺을 수가 없어요. 그게 지금 문제입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이 뭐 30배, 60배, 100배! 막 맺게 해 주옵소서! 아무리 야단해도 안 되게 되어있어요. 그게 안 되게 되어있어요. 그걸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어요. 이걸 조그만 늘 우리가 전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뭡니까! 전도를 못해요. 아예 우리 신분 문제입니다. 좋은 나무가 아닌데 거기다가 좋은 나무 열매를 아예 맺을 수가 없어요. 이 이야기가 지금 현재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는 뭐냐하면요. 예수님이 특별히 그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다! 왜?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는데 나를 보내신 나를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것이니까! 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뭐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밑에서 낳고 우리가 바람 피운 적이 없는데 무슨 그런 이상한 말을 하느냐! 이렇게 시비를 안 합니까!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뭡니까? 마귀의 자녀다! 이겁니다. 신분이 바뀌는 거죠.

우리가 열매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 뭐냐? 근본이 아직 바로 안 되어 있어요. 자꾸 체질을 이야기하는 그것은 지금 우리 교회 안에서 이것을 진짜 바로 못 붙잡으면요. 우리도 어느 순간 문제 부닥치면 그리로 또 돌아가 버립니다. 정말 그리스도 모든 문제 다다! 그것이 내게 사실이 되고 이때부터 뭐냐하면, 이때부터 우리가 공적으로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 그때부터 뭡니까? 내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시간 시간마다 나갈 수가 있게 되고, 나갈 때마다 내 생각과 마음이 참 하나님 앞에 지금 축복하시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고 찬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찬양이 안 된다는 배경이요. 진짜 오늘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오후에 찬양을 얼마나 열심히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좀 일찍 나와 보려고 그러는 데요. 찬양이 안 된다! 진짜 위태로운 이야기입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나올 이유가 없죠.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면 우리가 찬양 부를 때에 그 찬양의 메시지 하나 하나가 감사가 네게 오게 되면요. 눈물이 나게 되어 있어요.

내가 자꾸 눈물을 왜 안 흘리려고 그러고 왜 눈물을 억제하려 그러냐 하면요. 하도 우리가 감정에 잘 싸이고 특별히 한국인의 문제는 약점이 감정이기 때문에 눈물 때문에 다른 것이 주가 되어 버려요. 참 하나님의 은혜의 배경을 바로 깨닫고 내가 눈물은 안 흘려도 눈물 흘리는 것 보다 더 진하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배경! 이게 쉬운 문제 아닙니까! 이 확신이 확인이 안 되면 또 문제가 생기면 내게 네 것인데도 뭡니까? 이 맏아들 문제처럼 '나한테는 양 새끼 한 마리도 안 주고' 내게 네 것인데 감사가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잘 아셔야합니다. 뭘 많이 받았다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것이지만 간단한 것이지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평안과 안식이다! 안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것, 주의 이름으로 어려움 받는 것, 주의 이름으로 고통받는 것, 이 사실 자체조차도 뭡니까? 누린다! 이겁니다. 이것이 이해가 될 때에 입에서 나오는 것이 뭡니까? 감사 정도가 아닙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인생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여기 탕자가 바로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이런 축복을 받았지 만은 늘 불안과 불평과 불만! 제가 이 교회 건축을 앞에 놓고 교회 건축을 말하게 되니까, 우리도 모르게 자꾸 이상하게 빠져요. 그래서 제가 인터넷에 들어가서 제가 쭉 보니까 뭔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템플 대학교 그 러셀 코널 박사가 조사한 갑부들, 부자들을 한 4,000명을 대상으로 해 가지고 조사를 했는데 세 가지 특징이 나오더라! 그렇게 보고가 나왔어요.

첫 번째 특징이 뭐냐하면,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고 그랬습니다. 두 번째는 그 목표를 위해서 '부지런하다!' 이겁니다. 전심으로 달립니다. 세 번째가 뭐냐? 그 목표를 향해서 달리는 과정 속에서 옆에서 주변의 문제 전혀 개의치 않고, 원망 안하고 '환경에 대해서 전혀 탓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 가지 특징으로 나왔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우선 마음에 부닥치는 것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왜? 부지런한 것은 따라오는 겁니다. 목표 안 정하고 그렇게 되면 부지런해질 수가 없죠. 이건 따라 오는 겁니다. 세계복음화 하라는 확실한 비전이 바로 되어야 됩니다. 방향이죠. 그 다음에 이것이 되면 그 다음에는 따라 오는 것 아닙니까! 거기서 기도가 따라오게 되고 다른 것이 다 따라오게 됩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뭐냐하면,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 뭐가 어렵다, 힘들다! 이것에 대해서 탓하지 않습니다. 요즘 말하면 뭐 IMF다! 상황, 사건이 어떻다! 상관없습니다. 전혀! 네 탓이다 내 탓이다. 상관없습니다. 왜? 만약에 그런 목표에서 쭉 나가게 될 때에 일어나는 모든 과정 속에서 그 목표를 이루는 하나님이 인도의 과정일 뿐이지 여기에 관여 안 합니다. 그게 믿음의 중요한 핵심이거든요.

그러니 우리 성도들이 어떠냐 하면 우리 성도들도 모르게 이 하나님의 구체적인, 아주 신분관계를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그 역사 속에 우리가 되어져 가는 이 사건이 이해가 안 되면 문제가 생기면, 뭐 때문에 안 돼요? 너 때문에 아닙니다. 교회에 어떤 사람이 반대하고 상관없습니다. 또 어떤 일이 뭐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위해서 나와 여러분을 몰아가는 과정에서 그 하나의 과정에 나왔을 뿐이지 그러면 그걸로 통해서 뭐냐? 더 다른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로 계획된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이지, 그게 사실이 되고 핑계 댈 이유가 아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우리 교회 건축에 헌금을 하고 이래 놓으니까! 어디로 자꾸 돌아가려고 하냐 하면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교회 건축으로만 자꾸 돌아가려고 합니다. 푯대를 거기 맞추려고 그래요. 여러분 교회 건축은 세계복음화의 과정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겠습니까? 이게 과정이지, 거기에다가 다 맞추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교회 건축은 하나님의 축복의 은혜를 놓치게 되는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교회를 잘 지었다! 부흥된다! 그러면 이상해져 버립니다. 마음이! '아, 우리 교회가 어떻고...' 여러분 교회, 내 교회 아닙니다. 누구의 교회입니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이고 뭘 하기 위해서?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여러분과 제게 뭘 주었습니까? 교회 건축을 허락해 주신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푯대가 되어져야 되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이게 안 되니까 뭐가 되느냐 하면요. 물론 내가 이해는 해요. 그러나 우리 마음이라도 그렇게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약간 돈이 부족하고 없고 어렵고 힘들 때에 당장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선교헌금을 비롯해서, 뭐 다른 어떤 것들을 비롯해서 그만 여기다가만 맞추려고 그럽니다. 여기다가... 조금 부족하면 큰일났구나! '아, 여기 맞추어야되는데...'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때에 부족함도 아시고 풍부함도 아시고 애타는 것도 아시고 감사도 아시고 하나님이 이루신다!" 뭐해서? 목표를 맞추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목표에 맞아서 하나님의 목표를 따라가게 될 때에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십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좋은 나무로 쉽게 말해서 감람나무다! 감람나무라 그러면 이해가 잘 안되니까! 감나무다! 까짓 거... 감람나무가 감나무는 아닙니다. '우리 목사님 감람나무를 감나무라!' 그러더라 이라지 마시고요. 감나무다! 감나무로 심어졌으면 반드시 바람이 불던지, 비가 오던지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때를 따라서 기어코 언젠가는 뭐가 맺힙니까? 감나무 열매가 맺혀져요. 맺혀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세웠다! 세계복음화의 귀한 자리에 앉혔다! 좋은 나무로 심어졌다! 누가 이룹니까? 시간표에 따라서 저절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 자리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이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세워진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에 우리는 뭐냐? 누려나가면 됩니다. 누려 나가면 돼요.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뭐냐? 감사와 찬송이 나옵니다. 바로 맏아들이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너무 좋은 자리에 세웠고 너무 좋은 자리에 앉혔고 어떤 면에서 좀 '아, 나는 돈도 없는데 어쩌다가 이 개척하는 일에, 교회 건축하는 교회에 와 가지고 혼이 나느냐!' 이 사실 자체부터 뭐냐? '하나님 어쩌다가 내가 이 건축하는 교회 와 가지고...' 오다 보니 왔잖아요! 여러분 그냥 어쩌다 보니 왔잖아요!

내가 어떻게 큰 축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축복의 역사를 이루는 과정에,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과정에 이 큰 은혜를 내게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된다! 그럴 때에 여기에 모든 것이 따라 오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안 될 때에 여러분 모든 것을 가지고도 놓친 이 탕자와 똑같은 배경입니다. 내 것이 네 것이지만 내 것을 네 것으로 못 누린 죄악이 탕자입니다.

여러분 우리 평신도로 살아가면서 참 교인으로 살아가는 것, 성도로 살아가는 것 혹시 집사를 받았습니까? 집사로 살아가는 것, 혹시 중직자가 되었습니까? 중직자로 살아가는 것, 이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현실적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걸 깨닫는 바가 있어야 됩니다. 이걸 깨달은 만큼 여러분과 제게, 우리 입에서 뭐가 나옵니까?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고 주님께 영광이 나갑니다. 이걸 깨닫는 만큼, 우리 생활과 삶에 기쁨이 나갑니다.

그래서 조금만 마음을 두면요, 우리가 누리는 복이 엄청나거든요. 너무나 크거든요. 어쩌다가 바른 정신을 갖게 되고, 어쩌다가 여러분 맨 정신도 갖게 되고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 맨 정신으로 이 자리에 나오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진짜 입니까? 진짜 감사합니까? 너무 지금 세상이 이상하잖아요. 멀쩡한 것 같은데 맨 정신이 아니라! 부부간에도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형제 자매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니 이렇든 저렇든 원수처럼 대해야 되는 이런 사건이 너무 많은데... 그래도 목사님 볼 때에 맨 정신으로 '목사님!' 평신도 볼 때에 '평신도다!' 우리 집사님들 볼 때에 '아, 아무개 집사!' 우리 장로님들도 '아, 장로님!' 맨 정신으로 그래도 하나님 앞에 교회 생활 할 수 있다는, 그 교인이 나를 세워 주셨다는 것 이것은 너무 감사한 겁니다. 이런 축복과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놓쳐 버린 것이 바로 지금 맏아들 탕자의 모습이다. 그런 배경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제게서 너무 감사한 것은, 나는 우리가 들어오면 맨 날 들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왕으로 오시고, 제사장으로 오시고, 선지자로 오시고 여러분과 제게 실제로 그 언약의 이름을 붙잡고 기도할 때마다 모든 문제 해결되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되어질 수밖에 없는 뭡니까? 존재로 세워 주신 것! 그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이야기를 매주 와서 듣고, 다락방에서 듣고, 가정 예배 때 듣고 이 듣는 다는 것이 참 축복이더라 구요.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그 정치인처럼 멍하니 앉아서 왔다가도, 주일날 왔다 가는 것이 그렇게 평안해 지더랍니다.

호주에서 발표된 내용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너무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까, 전체 기물들이 늘 파손이 되고... 너무 그러니까, 그 너무 파손되는 그 곳에 뭐냐하면, 베토벤의 음악을 틀어 줬데요. 틀어 놓았데요. 계속 틀어놓으니까! 놀랍게도 70%이상이 그것이 없어지더라! 그래요. 베토벤의 음악 틀어놓으니까! 그래서 '전 역마다 다 틀어놓겠다!' 하는 그런 발표가 나왔다! 그래요. 우리가 그런걸 이미 잘 듣고 있습니다. 소도 고전을, 옛날에 좋은 노래를 들으면 젖이 잘 난다! 그래요. 그 다음에 나무들도 좋은 노래 틀어놓고 나면요. 이상하게 뭐 귀도 없고 한데 잘 자란다! 그래요. 그건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발표한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좋은 노래가 아니고 이상한 노래, 요즘 나온 노래입니다. 그 뭐 랩인가? 뭐 락인가? 이상한 것 발광하는 노래 안 있습니까! 그걸 틀어 놓았더니만 짐승들이 같이 발광을 하더랍니다.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닙니다. 사실을 기록을 해 놓은 것을 봤어요.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나도 그 춤을 추려고 해도 잘 못 주거든요. 꼭 반대로, 하여튼 이상한 춤! 그러니 요즘 나는 젊은 사람들이 왜, 참 어려우냐? 여러분 문명이 왜 자꾸 저주의 문명으로 빠지느냐? 이게 전부 사단의 배경 아닙니까! 젊은 사람들이 계속 이걸 듣고 앉았습니다. 여러분 짐승도 발광하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러니 자신들이 발광 안하고 견딥니까!

그래서 뭐냐하면요. 계속해서 워크맨! 요즘에 그 귀에다가 꽂고 다니면서 안 듣습니까! 그걸 듣고, 그런 노래를 듣고 다닐 때에 이것은 연구하는 사람이 나온 겁니다. IQ가 40% 이하가 저하가 된다! 그래요. 머리가 나빠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뭘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 와서 뭘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뭘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음악을 들어도 좋게 된다는데, 여러분 근본 적으로 살릴 생명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럴 때에 이건 뭐 살아나는 정도가 아니죠.

오늘 와서 혹시 눈 반쯤 감고 있다가 가도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들었습니다! 생명입니다. 듣는 만큼 역사가 나옵니다. 다른 것을 들어서가 아닙니다. 들어도 예수 그리스도, 참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들을 때마다 회복이 되고 모든 문제 해결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 사건이 내 마음에 올 때에, 머리에 생각과 판단과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지고 그러면 뭡니까? 한 걸음, 한 걸음 뭔가 눈에 보일 듯 말 듯 뭡니까? 생각이 달라지거든요.

여러분 '내일 가면 나는 죽겠다!' 그러면요. '내일 되면 죽겠다! 나는 소망 없다!' 이렇게 되면요. 보는 것마다 판단이 죽겠다는 배경으로 판단이 됩니다. 그런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일은 참 즐거운 일인데, 내일은 인생에 참 행복한 일이 오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것을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서 뭐든지 나가게 되면요. 뭐든지 보는 것마다 그런 방향으로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게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는 이 생각만 가져도 여러분 진짜 행복이 온다! 그 이야기를 간단하게 듣지 마세요. 그리고 이 메시지 가지고 이 사실이 내 마음에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마다 모든 판단이 뭐가 되느냐? 긍정적인 판단! 말로 아닙니다. 진짜 사실적인 판단! 그리고 희망적인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생각도 그렇게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늘 제가 그런 말씀 안 합니까! 죽겠다는 마음을 갖고 이 등산 할 때에 가보니까요. 가을되어서... 특별히 여름 때는 요즘은 이제 지나가서 건강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을쯤 되었다! 물이 떨어지는 것도, 귀뚜라미 우는 것도, 전부 죽겠다는 문제와 연결이 되어요. '슬프구나! 인생이 이렇구나! 가는 것인데... 많이 살아봐야 70도 안 되는데...' 내가 그런 생각할 때에 전부 보는 것이나 이게 전부 이렇게 돌아갑니다.

여러분 제가 미래에 오늘 죽어도, 내일 죽어도 그리고 10년 더 산다! 20년 더 산다! 상관없이 뭡니까! 여러분과 제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나라가 내게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나라를 내가 지금 누리고 삽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영광을 지금 내가 누리고 사는 중요한 배경이 뭐냐?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바른 관계 이루어져 가지고 '내게 네 꺼다!' 라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되니까! 이 관계가 이루어져 가지고 그 관계를 지금 현재 속에 내가 누리고 살아가는 배경이 뭡니까? 기도입니다.

볼 때마다, 사건마다 아버지 이런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 알잖아요. 내 마음 알고 아버지 마음 알잖아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내가 하나님 마음 내 마음 내가 알잖아요. 그래서 베드로가 뭐라 그랬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자꾸 물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아시지 않습니까!' 이랬거든요. 그럴 때 여러분 판단과 생각이요. 정확하게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상하게 나가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 남보다 앞서 판단하고 남보다 참 명확한 판단 지혜로운 판단, 명철과 총명이 여기서 나오게 안 됩니까! 하나님이 모든 걸 해결해서 축복과 은혜로 임하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뭐 이상하게 붕 뜨게 한다! 그 말이 아닙니다. 나무가 중요합니다. 무슨 나무냐? 나는 좋은 나무로 하나님이 심겨주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생명의 씨앗을 심겨 주었습니다. 지금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여러분과 제게 성령으로 임하여 주실 것입니다. 지금 현재 나와 동행하시고 나와 여러분을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잘했다, 못했다!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부족한 것이 많고, 지금 이상한 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좋은 나무냐?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 관계를 확인하고 지금 현재에 만약에 희미하다면, '주여, 또 한번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와 계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성령이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내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고 역사 하실 것을 믿습니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하셔야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30배, 60배, 100배 되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될 때에 이제는 교회 밖에 멸망한 사람들을 보고 우리가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우리는 평가할 필요가 없잖아요. 또 평가 해 봐야 소용도 없고... 멸망한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아, 저 사람 참 이상하네! 희한한 짓을 하네!' 할 것 없어요. 이상한 짓을 하든 희한한 짓을 하든지... 우리가 시험받는 것이 여기입니다. 우리가 축복 받을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축복 받을 은혜를 못 보니까, 뭘 보느냐? 자꾸 다른 것을 봅니다. 다른 걸 자꾸 다른 걸 봐요. 그러니 이상한 것만 자꾸, 갈등만 생기는 겁니다.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오늘도 '내게 네게 아니라!' 뭐 그걸 보고 갈등할 것 없어요.

그 다음에 무슨 나무냐? 하나님이 주신 이 은총의 축복을 확인하도록... 그게 안된 생각에서는 뭐든지 못 일어납니다. '아, 믿는 사람이 저럴 수 있느냐! 믿는 사람이 저럴 수 있느냐!'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백 번, 천 번해도 그런 열매가 안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가지고 시비를 따질 것 없어요. 가시나무 밑에 가서 아무리 무화과 딴다고 해봐도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진작 '아, 가시나무구나!' 포기 해 버리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이 진짜 축복되는 근원적인 문제를 놓쳐 놓고는 자꾸 다른 일하고 다른 기대하고 노력하고 애쓰고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또 한번 '주 예수 그리스도! 내 중심 속에 오시옵소서.' 그리고 이 안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과 역사를 '내 것이 네 것이로되!' 이 풍성한 약속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그 하나하나 속에 하나님 앞에 핍박도 감사하고 교회 생활하는 자체가 감사하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이 은혜 속에 살아가는 자체가 감사하고... 왜? 도저히 믿고 살아 갈 수가 없는데, 그리고 송현교회라는 교회 와서 전도한다고 하도 못하지만 집적거리게 된 것도 감사하고 이걸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다! 감사하게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가지고 나간다!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막 갈등하고 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좋은 나무로 심었다면 되어지는 것이고 나쁜 나무로 있다면 백 번, 천 번해도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맏아들의 확인입니다. 너무 축복된 자리에 있어서 염소 새끼도 얻어먹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처참한, 불쌍한 몰골이 바로 뭐냐? 큰 창고 앞에서 굶어죽는 생쥐와 똑같은 모습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에요.

조금만 생각 바꾸어 버리면, 조금만 마음 바꾸어 버리면 감사 정도가 아닙니다. 얼마나 기뻐해야 될 자들이, 맨 날 이것이 안되고 너무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서 안 믿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악하게 살아가는 이 세대 속에, 사단의 노예 속에 살아간다는 것! 이게 처참한 일 아닙니까! 이 세대에 여러분과 제가, 그래도 송현교회 여러분만이라도 우리들만이라도 이 시대에 주께서 원하시는 이 축복을 누리며 맏아들에게 약속하신 '내 것이 네 것이 아니냐!' 는 이 약속을 누리며 살아가는 기쁨과 감격이 말세에 주의 종들에게 이루어 주옵소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먼저 되어져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 본문에서 이미 은혜를 받은 맏아들이 은혜를 은혜로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께 불평을 했습니다.

☞ 우리가 이미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좋은 나무가 되었으므로,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내것이 네 것이다'라는 축복의 말을 누릴 수 있는 조건입니다.

☞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 30배, 60배, 100배의 개념을 하나님의 기준보다는 인간적인 기준으로 요구하게 되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우리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2] 선한 목표를 가질 때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 교회 건축은 세계 복음화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 건축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우리의 푯대는 세계 복음화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세계 복음화의 선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로 심어지면 하나님께서 시간표에 따라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우리가 세워졌음을 확인하고, 누려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때 감사와 찬양이 터져나옵니다.


[3] 감사와 찬양을 드릴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받아 누리지 못하고, 그것을 감사하지 못한 것이 맏아들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평범하게 누리는 것들이 모두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는 축복도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해야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새 힘을 얻고, 평안을 얻고,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되고,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공예배에 참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범한 가정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고 찬송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4] 기도하는 가운데 열매가 맺어집니다.

☞ 하늘 나라의 영광을 지금 현실 속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길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좋은 나무로 심어주셨기 때문에, 지금은 부족하고 연약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삶이 되면, 하나님께서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어주실 것입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으로 나를 좋은 나무로 만드심을 감사드리며,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어주셔서 영광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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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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