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예수님의 족보
2004-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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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마 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 1: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 1: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마 1: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마 1: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마 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마 1: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마 1: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마 1: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마 1: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를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마 1: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마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옛날부터 쭉 했지만은 구체적으로 좀 어떤 마음을 갖고 전도라는 것에 방향을 맞추어서 나가는 이런 시간이 벌써 우리는 10여 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들어와서 왜 잘나가다가 또 안되고, 또 우리 개인이 노력하는데 왜 이 잘 안 되느냐? 이런 문제들로 고민을 하는 것이 지금 우리 분위기고 또 저도 여기서 그런 어떤 마음으로 섰습니다.

그래서 그 요즘에 지난번에 메시지를 또 들어보니까! 뭐냐하면, 조금 뭔가 잘되면, 앞서가 버리고 또 못되면, 낙심해 버리고 그러니까 뭐냐? 교만해 버리고 낙심해 버리고... 이렇게 해서 그 배경이 뭐냐? 근본적인 것이 안 되었다! 이래서 한 달에 한번씩은 지 교회나 아마 우리 목회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마 그런 적용을 할 것 같아요. 특별히 평신도 지 교회는 옛날에 기초부터 좀 해야 되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내 개인적으로 뭘 느끼느냐 하면, 조금 잘 되면 뭔가 막 '나 같은 사람 없다!' 싶은 생각이 들고 조금 못 되면, 안 되면 또 낙심해 버리고 그런 것이 아마 그 성경대로의 믿음이 회복되면 그것은 해결이 되겠다 싶어요. 여러분과 제가 어차피 안 되는 사람들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인데 이 자리에 된다고 서 있는 사실 자체가 그게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된다고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그 오늘 이 시간에는 좀 마태복음 서를 통해서 지금까지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그 배경이 뭐냐? 워낙 우리가 다른 것에 습관이 되었고 체질이 다른 것으로 꽉 차 가지고 문제만 생기면 그걸로 돌아가니까! 그래서 지난번부터 조금 중심으로 해서 말씀으로 돌아가야 된다!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야 된다! 이걸 조금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의지해서 막상 살아가려고 말씀, 말씀 하니까! 뭐냐? 말씀이 붕 떠나 있어요. 저도 이 메시지를 증거하면서 '아, 이 부분을 좀 우리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되겠다!' 싶어요. 왜? 전도라는 방향이 너무 급하니까! 계속 전도, 전도 메시지 딱 나오면 본문과 상관없이 전도방향, 전도메시지가 그냥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구체적으로 우리가 전도 방향을 잡았으니까! 잡았다기보다도 알기라도 알았으니까, 구체적으로 삶이 말씀에 의지하지 않으면 역시 또 다른 것이 나옵니다. 우리 체질이라는 것이 이게 안 되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말씀으로 돌아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따라야 되겠다. 이렇게 있어서 이번 주부터 마태복음 서를 아침 예배에 강해를 좀 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른 복음서도 바쁘지 만은, 가장 지금 현재 시급한 것이 '마태복음!' 그러면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거니까! 하나님의 방향이 가장 확실하게 보여지고 또 예수님, 그 분이 누구 신가를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니까! 이 마태복음서부터 강해해 나가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이 되고... 저는 그 마태복음서 강해를 하려고 쭉 생각을 하면서 좀 전국에 말씀이 나오는, 마태 복음서를 강해하는 분들에 대해서 좀 조사도 하고 그렇게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참 말씀을 잘 전하고 참 잘해요.

그래서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우리가 이 복음,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에 의지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세밀하게 말씀에 의지하는 그런 그 어떤 방향들이 이미 되어 있습니다 만은, 그게 구체성이 좀 못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느끼는 것은 거의 뭐가 빠졌느냐 하면, 세계복음화! 말하자면 전도라는 이 핵심이 말하기는 말해도 희미하고 확실하게 나오는 부분들이 좀 적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한다, 못한다! 이전에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으로 '뭐냐?' 하는 하나님의 확실한 방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말씀에 의지한 이런 삶이 구체적으로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시작을 합니다.

진정한 그 지도자가 되고 세계적으로, 또 세계적으로 역사 속에 위대한 신앙에 사상과 그 다음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의인이 아닙니다. 의인이 아니고 그 다음에 깨끗한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가 자칫 이렇게 빠지거든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냐?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에 역사!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아브라함 역시 뭐 '의인이다, 의인이다!' 말했지 만은, 그건 뭐 '믿음으로 의롭다!' 그랬지. 아브라함의 그 의인이다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그 어려운 일이거든요. 하는 일을 보면 너무 엉터리인데...

제가 안 그랬습니까! '나도 아브라함보다 낮다!' 왜? 어떤 방면에 내가 한 아내를 두고 지금까지 살았는데, 아브라함은 아내를 몇이나 두고 또 그것도 아내를 뭔가 잃을까! 싶어 가지고 자기가 죽을까! 싶어서 팔아먹기도 하고 뭐 남한테 넘겨주기도 하고... 요즘에 박 목사가 내 아내를 남한테 넘겨줬다. 이건 인간 꼴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엄청난 역사를 했습니다. 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뭘 한다, 안 한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이 회복 안 되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지금 우리가 앞으로 큰 일을 한다! 어떤 계획을 세운다! 믿음부터 회복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뭘 할 때에 이것이 가장 우선적인 문제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문제가 뭐냐하면, 아주 믿음의 사람이냐! 그러면서 뭘 하느냐? 뭐 깨끗하다, 정결하다! 그런 것이 아니고 뭐냐하면,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윗을 통해서 잘 보잖아요. 다윗은 아마 왕으로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아브라함 다음으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 큰 뜻을 이루어 가시는데, 다윗이 뭐 깨끗하다! 뭐 깨끗한 것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왜? 다윗만큼 지저분한 사람 없어요. 그런데 다윗이 정말 진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일이나 사건 당할 때마다 너무 너무 진실했거든요.

그러니 여러분 잘 알다시피, 다윗이 부름을 받을 때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지고 이곳에 왕이 될 사람이 있는데 말하자면, 내가 기름을 부으러 왔다! 이렇게 했을 때에 다윗만 빼놓고 몽땅 다 불렀어요. 그 말이 뭐냐하면, 다윗은 형제들의 어떤 수준에 끼지도 못했어요. '너는 저리 가라!' 그래가지고 다 지나보고 나니까 하나님이 다 아니다 그랬어요. 그래서 '또 아들이 없느냐?' 그러니까 있기는 있는데 시원찮은 게 하나 있습니다. 이런 식이거든요. '그러면 시원찮아도 좋다 불러 와라!' 불러왔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다윗에게 기름 부었습니다. 그게 뭐냐? 진실합니다. 정직합니다.

그래서 그 다윗의 그 신앙고백이나 다윗의 시편을 보면 참 그 고백이 너무 정직해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래서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앞으로 우리 하나님 앞에 뭘 잘해서 인간의 수단 방법 아닙니다. 진실하게 정직한 사람을,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일을 맡기시고 쓰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뭐 수단 조금 부리고 이렇게 하는 것, 그건 하나님의 첫 번부터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뭔가 마음에 그게 바른 생각이었다고 확실히 나는 믿습니다. 뭐냐하면, 말 잘한다. 목회 잘한다. 나는 이것을 원치 않아요. 워낙! 뭔가 이 뭐라 그럴까, 목사님들이 말을 참 잘하시더라 구요. 그래서 원했던 것이 '아버지여 말을 좀 못해도 좋습니다. 진실하게 해 주옵소서!' 그런데 이 말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못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또 말을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 같아요. 제 중심에는 진실하게 정직하게 내가 하나님 앞에 좀 뭐 인정머리 없고 다 괜찮습니다. 좀 진실해야 되겠다.

그래서 저는 그런 마음을 갖고 그런 배경에서 나는 하나님이 쓰신다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어떤 면에서 '뭐 잘한다, 못한다.' 이게 아닙니다. 진실해야 됩니다. 정직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제가 늘 말합니다. 신령하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 아닙니까! 예를 들 때에 그 다음에 진정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정직하다는 말에 상당히 통하는 것 같아요. 그 말에 그 다음에 진실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믿음이라는 말로도 되지만은...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에 우리의 연약과 부족을 참 그대로 고백할 수 있는 진실이 없으면, 여러분 예배라는 자체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 여러분들이 내가 이 자리에 나올 자격도 없는 놈이 이 자리에 나왔다! 이것만 깨달아도 이런 진실만 있어도 하나님이 그 시간에 역사 하십니다. 나올 만큼 나왔는데 뭐 자격이 되는데, 뭐 설교가 그러냐? 이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참 부족한데 주님 앞에 어쩌다가 나를 이 자리에 세웠습니까! 솔직하고 이런 진실만 있어도 여러분 은혜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뭐 신앙의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쓰신다. 그러니 신앙의 사람, 정말 믿음, 믿는 것! 그러면 뭘 믿음이라고 그러고, 뭘 진실하다고 그러느냐? 어떤 자리에 설 때에 진실하게 되느냐? 이걸 먼저 우리가 따로 알아야 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아마 구체적인 그런 방향 설정이 될 것 같아요. 근본적인 전도라는 방향은 되었으나 정말 성경을 이해할 때에 어떻게, 어떤 자세로, 어떤 배경으로 이해해야 되느냐? 그럴 때에 제가 이 철야 예배 때도 조금 언급을 했습니다 만은, 이걸 꼭 여러분들이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뭐냐하면요. 신앙이라고 그럴 때에, 그리고 믿음의 사람이라 그럴 때에 뭘 믿느냐? 어떤 속에서 진실해질 수 있느냐? 그런 배경에서 제일 첫 번째로 신앙! 믿는다, 믿음 회복한다! 그럴 때에 뭘 회복해야 되느냐? 받아합시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나의 주권자시다!" 믿습니까? 진짜 믿습니까! 그러면 왜 자꾸 그럽니까! 왜 자꾸 쓸 때 없는 걱정하고, 쓸 때 없는 일을 벌리고, 쓸 때 없는 수단 부리고... 뭐 늘 하는 말이지만 '머리도 좋지도 안은 머리 가지고 자꾸 굴린다.' 안 그럽니까! 왜 자꾸 이렇게 되느냐? 이게 안 믿어져요. 문제만 생겼다! 자기 생각으로 빠져 버립니다. 여러분과 저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확립되지 않는 곳에는 신앙이라는 말이, 말이 아닙니다. 그건 말이 아니에요. 여러분 마음대로 하는데 뭘 신앙이라고 그럽니까! 그리고 뭐 믿습니다.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을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건! 그걸 가지고 우리는 종교라 그러고 우상이라 그랬어요. 이것이 해결이 안 되고 먼저 해결이 안 되면 여러분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쓴 것도 전부 우상으로 빠져 버립니다. 종교로 빠져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돼요. 그러니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어떤 열심도 노력도 신앙이라고 붙일 수 없어요. 그것은 욕심이라고 붙여 야죠. 그래 가지고 우상이다, 종교다! 자꾸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 밖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처음 십계명도 나 이외에는 뭡니까? 다는 것이 없어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주권! 하나님만 우리 속에 우리 마음에 모시고 있는 것! 이게 신앙에 배경입니다. 이것이 회복 안 되면 신앙이라는 사실 자체가 안 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가 조금 그 발견되는 내용들을 우리가 보게 될 때에 오직 하나님 한 분 단독 사역이 이걸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성취하시고 그게 바로 성령의 구체적인 내용이에요.

여러분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 이것을 말하고 있죠. 이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회복될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합니다. 뭐냐하면 그 전능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그 다음에 예배하고 난 후에 내가 뭘 해서 안 되니까! 해서 되도 않는 것이니까! 뭘 하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니까! 예배했다! 그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 따라 오는 것이 예배와 함께 따라 오는 것이 기다림입니다. 여러분 뭘 한다 안 한다. 받아합시다. "예배드리고" 뭐 하면 돼요? 기다리면 돼요. 막 그렇게 지금까지 막 못 기다려 가지고 못 기다린다고 하는 것이 안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 모세에 홍해를 건너는 입장을 가만히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은, 이것은 절대 주권인 하나님을 못 믿으면 그 앞에서 가만히는 못 있어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 못 있습니다. 그건 뭐 그냥 오금이 저려서 못 있어요. 이 표현이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 보다 더 이상한 표현이 나오면 이상할 것 같고...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그 사실을 믿고, 예배하고 기다리고 그 다음에 우리 앞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때에 뭐 합니까?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 그러니까 열리면 그대로 그 길을 걸어나가면 됩니다. 그러니까 뭐냐? 따라나가면 됩니다. 그러니 예배와 기다림과 순종이 우리 삶에 전부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루십니까!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영혼, 기다리는 영혼에 하나님이 친히 성령으로 임재 하시고 신앙을 통해서, 이 신앙을 통해서, 이 신앙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뭡니까? 내 일에 역사 하십니다. 역사 하도록 되어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뭐 전도한다 뭐 한다. 다 순종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 속에 따라 오는 문제가 되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가 회복된다고 그럴 때에 믿음 회복이라 그럴 때에 뭘 회복해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자이심을 믿는 믿음을 회복하자! 이겁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받아합시다. "두 번째로 성경을 절대적으로" 뭐라 구요.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만되어도 얼마나 감사할 일이지만, 이 사실 자체가 안 되어요. 오늘날에는 성경은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이다! 그 말씀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데... 그러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다!' 안 믿어요. 하나님 말씀보다 이웃사람 말을 더 잘 믿고요. 하나님 말씀하는, 강단에서 메시지보다 옆에 사람 말을 더 잘 믿어요. 어쩌면 그렇게 잘 믿는지 몰라요. 강단에서 실컷 말해도 옆에서 한 마디만 속삭이면 '야, 이 김 집사야! 아니다. 야, 이래라!' 한마디에 녹아 버립니다.

이걸 뭐 내 입에서 어떤 때는 저걸 가서 막 한 주먹씩... 그래가지고 된다 그러면 진짜 하겠어요. 그래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단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못 믿게 하도록 자꾸 이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 잘 들어야 돼요. 그래서 더군다나 이 말세에 사단이 발악하잖아요. 그러니까 거짓말 믿고, 거짓 선지자들 말 믿고, 엉뚱한 말 믿고 이것이 이 말세에 역사 중에 역사입니다. 그래서 뭐 자기 중심이니까, 자기 귀가 가려운 데로,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데로 설교도 그렇게 따라 갔다! 그러고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어떤 면에서 설교가 참 힘들다! 싶어도 앉아서 듣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그 쓴 소리, 그 별로 좋지도 안은 소리! 듣고 있다는 것은 그러니 딱딱한 소리 뭐 듣고 있다는 것! 얼른 생각하기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다! 그러고 뭐 그 다음에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럴 대에 다른 사람들은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 이럴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말 듣고 아 맞아! 여러분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이게 돌아가는 이야기입니까! 지금 절대주권자를 이야기하는데... 왜 상대적입니다. 이것은 뭘 말하면 '그럴 수도 있지!' 이리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그게 절대적으로 무너지니까! 그 다음에 부모의 문제도 무너집니다. 부모의 절대 이 뭔가 부모입장이, 부모의 직위가 무너져 버려요.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입장이 무너지니까 모든 질서가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이게 오늘날 세상의 문제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절대적인 성경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성경도 다 없애 버렸잖아요. 미국이 저렇게 된 것도 너무 신학자들이 말하잖아요. 케네디 대통령이 천주교 출신 아닙니까! 천주교 출신을 미국이 대통령으로 뽑은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데 케네디가 첫 번째예요. 들어와서 뭐냐? 천주교에서는 말씀을 안 믿습니다. 말씀이라는 이걸 그들이 그렇게 안 따라갑니다. 왜? 그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성경 말씀을 가르쳤던 초등학교로부터 모든 학교의 성경을 다 없애 버렸습니다. 그게 오늘날 결과입니다. 말씀을 없앤 결과입니다. 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을 내가 인용했을 뿐 아니고 그게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버리고... 왜냐하면,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위대한 의지를 성경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뭐로 아느냐?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안 보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죠.

고린도 전서 4장 6절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하려 함이라" 여러분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리 잘하고 아무리 머리가 있어도 아무리 뭘 하고 싶어도 말씀보다 앞서가지 말라는 겁니다. 기록한 말보다 앞서가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된다 안 된다 상관없습니다. 말씀과 함께 가면 됩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로 받아합시다. "절대 적으로 하나님이 나와 우리와 세상을 예정하셨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러분과 제가 이 자리에 앉았다! 뭐 때문에, 하나님이 예정해서 시간 되고 때가 될 때에 낳고 살아가다가, 그 다음에 뭐 아무데나 막 부닥치는 것 같아도 그게 다 과정일 뿐이지! 하나님의 예정 속에 때가되매 예수 안 믿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들어 가지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비로소 좀 말하니까 알아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여러분과 저를 이 자리에 앉도록 계획하셨다! 그게 지금 이 에베소서에서 하는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혹시 초 신자가 여기에 오셨다! 그러면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앉기까지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앉기까지 '뭐가 어렵다, 힘들었다!' 그건 과정일 뿐이지! 괜찮습니다. 안 망합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역사죠.

그래서 이런 절대적인 이 예정교리! 참 중요하죠. 이걸 가지고 신학에서는 계시 의존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여러분 예정 교리다! 예정이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논리적인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따라오는 겁니다. 앞에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이게 따라 올 수 없어요. 하나님 주권을 인정 안 하는데 무슨 예정이 따라 옵니까! 자기 마음대로이지, 따라 올 수 없어요.

그 다음에 성경 전체를 통하는 여러분 은혜라는 것이 뭐냐하면, 바로 예정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이게 조금만 이해되면 나 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밀히 알고 인도하시고 이 자리에 앉게 하시느냐? 은혜로다! 이게 은혜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예정이다. 간단히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 자체가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 중에 나와 여러분을 선택하고 이 자리에 함께 하셨다! 깨닫는 즉시 은혜로다! 이게 여기에 나옵니다. 은혜라는 것! 예정교리가 이해 안 되면, 은혜라는 말이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바울이 뭐라 그랬습니까! 도저히 나는 복음을 전하는 사신으로 설 수 없는 것을 너무 잘 알거든요. 그래서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와 같고 죄인 중에 괴수와 같고...' 그런데 오늘에 바울이, 이 복음 증거 자로 서 있던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뭐라고 그랬습니까? 은혜로다! 배경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신 사실입니다. 그게 이해가 안 되면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 말이 나올 수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왔다! 하나님의 너무 놀라운 은혜거든요. 그런데 그 너무 놀라운 은혜를 바로 뭡니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 일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는 겁니다.

자 그러면 상당히 조금 어려운 문제가 나와요.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랬죠.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하면, 이 예정교리라는 것이 참 어려워요. 안 믿는 사람에게는 이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어요. 제가 그 부 목사로 있을 때도 그렇고 전도사로 있을 때도 그렇고 대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우리 중, 고등부도 했었지만 특별히 대학생들을 붙들고 제가 이 가르칠 때에 제일 의문 나는 것이 예정론입니다. 별걸 다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종종 그런 이야기를 안 묻습니까! 그러니까 뭐 이 망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때는 내가 이제 전도사 때입니다 만은, '그러면 전도사님 화장실 가는 것도 예정했습니까?' 그러는 겁니다. 왜?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전부다! 그래서 또 나는 한 수 더 떠서 '그래 화장실 가는 것도 하나님 예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는다!' 그걸 또 교리다! 이러면 곤란하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는다. 이렇게 하면 자기는 할 말이 없죠. 그래가지고 웃기는 이야기들이 나왔던 것들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믿음을 회복한다기보다도 믿음을 조금 가지면서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면서 느끼는 것은, 나도 이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 설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 자리에 서느냐? 하나님의 예정교리! 제가 오늘에 있게 된 배경! 물론 나는 그동안 그 아버지 문제, 어머니 문제, 그런 문제를 조금 언급을 했습니다 만은, 제가 오늘에 여기 있는 배경 속에 그저 나를, 만들어 나를 나 되게 만든 배경 속에 첫 번째가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뭔가 하나님이 예정하고 계획함 속에서 나를, 오늘의 나를 성장을 시켜 줬더라 구요.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어머니는 신비적입니다. 아주 신비적으로 기도하고 그 다음에 신비적이니까! 믿음조차도 뭐냐? 된다, 안 된다! 상관없이 뭔가 딱 마음에 오면 지나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주 합리성입니다.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란 배경은 신비와 합리 속에 갈등하면서 자랐어요. 두분 싸움 틈바구니에서 갈등하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얼마나 안 맞았느냐? 아버지, 어머니 서로 맞대고 한 상에 밥도 안 잡수는 배경에서... 그러니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잡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잡수고... 그러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상관없이 기도하시고... 뭐 상관없어요.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마음에 '어머니가 조금 너무 했다!' 싶은 게 아버지 방에 가지도 않아요. 밤새도록 교회 살아요. 그런 속에서 내 속에 뭐가 있느냐? 두 가지가 나오더라 구요. 두 가지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신비 배경이 나오고, 그 다음에 또 뭐냐하면, 합리배경이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할 때는 이 합리성 배경이 아주 소심하게 만들어요. 뭐든지 따져 가지고 소심하게 만들고 완벽주의로 만들고... 그래서 왔던 것이 제가 구체적으로 나타났던 것이 고등학교 때부터 이 정신문제! 말하자면 그게 소위 요즘 노이로제라고 하는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이 늘 막 씻고 하는 그런 문제! 나는 다른 것보다도 씻는 걸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 '미친년 씻어 줘야된다!' 는 말이... 내가 그걸 봤거든요. 우리가 그 참 중학교 다닐 때 아이를 하나 낳아 놓고 이건 씻는 정도가 아니고 물에 담가 놓고 맨 날 씻어도 보통 씻는 게 아니고 죽어버렸어요. 얼마나 씻었던지! 그래서 그 문제 때문에 상당히 제가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고심을 많이 하면서 이것을 극복한 것이 나는 신비 배경입니다. 여기 들어가서, 막 집중해서 들어가고...

여러분 그 신비주의 들어가는 것이 영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여기 빠집니다. 수단 안하고 순수하게 되니까! 이 기도만 해야 되니까! 그리 빠졌는데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참 감사한 것은 나한테 두 가지 나오더라 구요. 그렇게 소심하면 뭔가 큰 결단을 못합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뭔가 어머니의 그 영향을 받아서 기도하고 뭔가 탁 들어오면 결단해 버립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교회 건축할 때도 아무것도 없는 이 바탕에서 그냥 '하나님이 하셨다!' 오니까! 그 다음에 뭐 결단해 버리는 겁니다. 결단 해 놓고는 또 뭐냐? 세밀한 이 합리성을 가지고 아버님의 영향이 또 내 안에 역사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통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이 오늘에 나를 세우기 위한 뭡니까? 계획 속에서 하나 하나 이루어 가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 저를 보면 장로님들이 그걸 많이 느꼈을지 몰라요. 박 목사 참 무모하다. 어떤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막 하거든요. 그건 내 어머니의 믿음에 신비배경에서... 그러면서 나는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소심한지 막 선언 해 놓고는 집에 와서는 안 될 것 같다, 안 될 것 같다! 불신앙에 빠져 가지고 고민 많이 합니다. 일단은 내가 소심하고 이러는 것은 신비의 어떤 그 내가 믿음이 회복되면서 이것이 회복되어 나가는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내가 이 다락방에 와서도 누구보다도 소심하게 뭐든지 따지고 이렇게 했던 것이 아마 여러분이 보통 뭐 다락방에 목사님 잘 따라 왔으니까! 그렇다 싶을지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비판한 것이 내 자신입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려오던 그런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자녀들 위해서 기도하고, 뭐 Remnant 한 것! 그 이야기를 보통 들을지 모르지 만은, 나는 이런 면에서 부모들이 기도하고 부모들이 하는 모든 그런 일들이 벌써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축복하시는 모든 과정이지. 그리고 여러분 부모들이 뭐 되었다, 안되었다! 이것과 상관없습니다. 믿음은 되었다!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어디에,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 이끌어 가시는 과정 속에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좀 말할 수가 있어요. 우리 성도들이 경건하고 겸손한 훈련을 하는데는 예정의 교리 이상 더 이상 좋은 게 없어요. 말하자면 내가 뭘 좀 잘했을 때 교만해져 버립니다. 그 다음 내가 조금 안 되면 낙심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예정적이고 확인되어 있으면 신학적으로, 이것이 분명히 믿음이 계획이 되어있으면 전능하심이 되고 그러면 성경이 절대적이 되고 여기서 따라오는 예정 교리가 이해가 되면 뭐가 되느냐? 잘 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계획이 과정 속에 있는 것이고... 안 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과정 속에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이런 배경에서 뭐를 말하고 싶으냐 하면, 나의 생애가 영원 전부터 축복으로 예정이 되고 영광으로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과 권세에 영광으로 완성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내가 알 게 될 때에 내게 닥치는 것은 하나님의 최선의 계획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때 우리 영혼은 감사와 찬송으로 폭발한다! 그랬습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조금만 어렵고 힘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느냐고 이렇게 빠져 버리거든요.

그러면 조금만 어려운 문제, 힘든 문제, 이런 문제 생기면 하나님이 뭘 계획하셨나? 무슨 일을 이룰 것이냐?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의 역사를 보게 될 때에 찬송이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안 그러면 절대로 아닙니다. 그 다음에 못해도 절망하고 실망해도 내가 이 실망하고 절망하게 하는 배경이 뭐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 절망 속에 감사가 나오고...

그래서 이 사실을 너무 깨닫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감사와 찬송입니다. 바울이 진짜 감사할 수 없는 그런 배경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최선의 예정 속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이다. 감사 나옵니까! 이게 뭔가 실망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볼 때에 나는 너무 감사한 것은, 여러분 교회를 건축한다! 이랬을 때에 여러분 기도한다. 그래서 교회 건축하기 때문에 하는 말 가지고 릴레이 기도를 지금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제 명분이 되니까!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여러분 기도를 시킬 때에 벌써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역사입니다. 이게 하나님 계획이고...

그래서 저는 그 어머니의 기도를 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머니가 일단 우리한테 알도록 하고 기도해 주신 것은 다 이루어 졌거든요. 형제들도 다 이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맏아들에 대한 기도는 안 이루어 졌다고 어머니께서 그렇게 괴로워하시고 그랬는데 맏아들은 뭐냐? 맏아들도 목회를 원했어요. 어머니가 맏아들은 목회를 원했는데 결국 맏아들이 지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단에 이제 공장에다가 교회를 세워놓고 매주 목요일마다 메시지 전하고 목회를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그저 나에게 대해서, 막내에 대해서 어떻게든 목사를 만들기 위한 그런 노력들이 그냥 이루어 졌어요. 그냥! 내게도 이루어지고...

나는 도저히 안될 것 같은데, 안 될 것 같은데도 망할 것 같은 데도 그런 것이죠.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셨어요. 그대로 그러면서 우리 가정에 일어난 모든, 일어난 사건들이 마치 야곱이 후손들에게 기도 할 때에 곧 이루어 진 것처럼 다 이루어지더라 구요. 여러분 뭔가 교회 건축이라는 그런 것 가지고 릴레이 기도를 해 나갈 때에 여러분 교회 건축합니까? 여러분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여러분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뭐 할 것 아닙니까! 이건 너무 축복된 시간이에요. 전부 준비 다 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도 시킬 때에 이미 벌써 성취하실 약속을 주신 겁니다.

저는 건강문제도 요즘 와서 상당히 내가 지금 뭔가 건강하다! 이러기가 좀 힘들어요. 지난 한 주간 동안 '아, 이 희락이가 와 가지고...' 또 저희 집사람이 보니까, 힘드니까! 나한테 거들어 달라고 그래서 조금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러다가 또 아침에 토요일부터, 아침부터 일어나 가지고 저는 토요일 오전에는 좀 자고 제 몸을 풀고 이렇게 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일어나 가지고 벌써 금요일 날도 조금 제가 무리한 것 같고 그러니 뭐 이빨이 지글지글한 게 뭔가 몸살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더라 구요. 어제는 뭐 본격적으로 막 이빨이 아프고 '주여 이걸 또 어떻게 될 겁니까!' 내일은 주일날이고 강단에서야 되겠고... 그래서 또 저녁에 부랴부랴 또 이제 우리 손 집사님께 찾아갔더니만, 주사 두 대 맞고 오늘 섰습니다.

그러나 뭘 말하고 싶으냐 하면, 하나님께서 교회 건축한다는 이런 것을 나에게 말년에 안 주었다! 그러면 나는 안주를 합니다. 조금 문제 있어도 '할 일 없는 사람인데 뭐!' 앉아 가지고, 주저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니 이 계획이 되어있으니까! 뭐냐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좀 문제 있으면 자주 또 엎드리게 되고, 또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세계복음화의 엄청난 이 역사 속에 세워 주셨다는 이 사건이 오늘 여러분과 제게 긴장하게 만드는 사건 자체도 뭡니까?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이루어 가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나는 말년에 하나님 앞에 큰 교회를 건축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에 교회 건축의 복이다! 이전에 바로 그 교회 건축에 배경을 가지고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있고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도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뭡니까? 계획을 하나 하나 이루어 가는 성취의 과정입니다. 이것이 이해되면요. 여러분 그 릴레이 기도라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진짜 릴레이 기도 한번 해 보세요.

자녀 위해서 한번도 기도 안 하고, 물론 기도 안 해도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안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 이루어 나갈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뭘 하느냐? 그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여러분 부모의 기도도 가정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게 계획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붙잡히게 되면요. 자녀들 위해서 기도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절대로 성취가 됩니다. 그것도 욕심을 내어 가지고 '세계 제일가는 부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건 아니고 성경을 잡고 참 하나님의 자녀를 향해서 구체적으로 일해나가는 이런 문제들...

그러면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서 오늘 본문으로, 마태복음서로 돌아가서 마태복음서 1장 1절에 보면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랬거든요. 이런 배경을 깔고 여러분들이 지금 마태복음 서를 이해를 해 나가셔야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후손이요. 우리가 이렇게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하게 말씀한 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럴 때에 여기에 강조한 것은, 예수님의 족보다! 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다, 아브라함의 족보다, 다윗의 족보다. 그런 이야기보다도 예수님의 족보다! 그 이야기를 강조한 겁니다.

그러니 원문에서는 뭐 앞에 나오고 뒤에 나오고 그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만은, 우리가 그것까지 따질 필요는 없고 예수님의 족보다!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족보를 굳이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말로, 다윗의 어떤 그 가문을 빌려서 말했느냐? 예수님의 족보인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구속 자로 이 땅에 왔을 때에 표식이 뭐냐하면, 아브라함의 가문으로, 다윗의 가문으로 오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다윗의 가문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가문이 아닙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앞에 부분을 합쳤기 때문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요. 여기 많은 실수가 나왔어요. 나도 그 평소에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만은, 아브라함의 후예다! 나는 뭐냐하면, 선택받은 백성이다! 이래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범했던 것과 똑같은 범죄를 오늘날 교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게 앞에 이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

그래서 무슨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히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후예이다! 이래가지고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이방인들은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죽일 놈들로, 짐승으로 정죄를 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우리 다락방에 전도 조금 잘하고 뭘 하면,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보잖아요. 그게 다 그런 배경이에요. 나는 되었다! 너는 아니다! 이런 원리입니다. 그래서 처음 초기에 조금 되니까, 전부 아니다! 이겁니다.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나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그게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어요. 우리가 조금 알아야 될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명분상 그 가문으로 예수를 보내 주겠다. 이 약속이 이제 신약에 와서 성취되는데, 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때에 이 가문으로 왔다는 것이 증거가 되어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아를 보내신 사실이 증명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일단 그렇게 예언하신 것이거든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예언이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느냐? 여러분 한번 역대 상 17장 11절에 "네 수한이 차서 네가 열조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러면 다윗에게 약속한 것이 씨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왕가, 다윗이 청중의 영원한 나라가 되고 그게 아닙니다. 그 씨로 말미암아 영원한 나라가 된다!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그 약속대로 다윗의 왕가가 계속해서 형통하고 막 그랬느냐? 아니거든요. 다 망해버렸습니다. 포로 되고 다 망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윗 이, 유대인들이 이것을 이해를 못 해 가지고 지금도 다윗 왕가의 후손 중에 전 세계를 살릴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게 복음 모르는 유대인들의 실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그 나라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다윗의 혈통이다! 그게 아닙니다. 다윗의 왕가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똑같은 배경입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보면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네 가문을 통해서가 아니고 너의 무엇으로 말미암아 씨로 말미암아 그랬어요. 중요한 것이 씨로 말미암아! 아브라함 가문에서 막 형통한다 그 말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물론 얼른 듣기에는 그렇게 나와요. 창세기 22장 17절에 보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6장 3절에 보면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절에 보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그랬거든요.

그러니 얼핏 생각하면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번창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천하만민이 전부가 이스라엘 백성이고... 아닙니다. 요즘 이스라엘 백성은 망하기 직전입니다. 그게 되는 게 아닙니다. 육신 적인 그런 걸 말하지 않아요. 그러면 네 씨를 통해서 네 씨가 천하 만민을 바다의 모래 수 같이 하늘에 별 수와 같이 번성하게 되는 배경이 뭐냐? 그렇게 약속한 것이 뭐냐?

그걸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갈라디아서 3장에 있습니다. 그걸 한번 찾아봅시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입니다. 앞에 지금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 약속을 말하죠. 약속을 16절에 보면 다같이 시작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할렐루야! 뭐를 말씀했어요? 바다 모래 수처럼, 뭐 여럿을 가르쳐 설명한 것이 아니고 앞에 여러 자손들 말한 것이 아니고 누구를 가르쳐 하나를 가르쳐 말씀했는데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족보가 예수를 만든 게 아닙니다. 다윗의 씨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천하 만민을 구원하게 하시고 천하만민의 구원을 주시기 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서 그 예수로 말미암아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씨로 내 심령에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를 복음화 하리라! 뭡니까? 하늘의 별수와 땅에 모래 수처럼 번성하게 하리라! 그래서 그들이 가는 곳에, '그들이 축복하는 곳에 축복 주고 그들을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마! 만민을 제자로 삼아 세우시리라!' 이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첫 절부터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증거로 다윗의 가문에서, 그 다음에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육신 적으로는 그렇게 해 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실적으로는 뭡니까? 예수그리스도!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뭡니까? 하나님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 이스라엘 화되고, 자꾸 아브라함 화되는 것! 이건 뭔가 그리스도가 희미하게 되어 버리면 자꾸 놓쳐 버리고 자꾸 돌아가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것이 세계 만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씨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있을 때에 비로소 여러분들이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 통해서 어디를 정복합니까? 세계를 정복해 나갈 것이다. 이 약속을 하나님이 마태복음 첫 장, 첫 절에 이 약속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걸 증거로 오셨다는 성취를 보여 주신 메시지가 예수님의 족보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 말이 아닙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내가 '아, 나는 뭘 누리고 너는 아니다!' 그게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누가 이룹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여러분과 제게 언제까지? 만민에게까지! 전 세계까지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이 일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약속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죠. 이 사실을 조금만 여러분 이해한다기보다도 붙들었다! 교만할 것도 없고 그리고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 오늘 1장 16절에 말씀입니다. 16절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시작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아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이걸 우리는 강조했지만 사실은 좀더 깊이 뭘 말합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말합니까? 이 16절에 말이에요. 예수님은 육신적 아브라함의 후손은 맡습니까? 육신적 아브라함의 족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 다음에 육신적 다윗의 족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계획이요, 약속하신 자녀로 누구에게? 마리아에게 잉태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면 마리아에게 잉태하신 이 예수를, 왜 다윗의 족보에다가, 아브라함의 족보에다가 넣었느냐? 마리아라는 여자가 누구하고 결혼했어요, 정혼했어요? 요셉하고 정혼했습니다. 이것이 약속을 성취해나가는 과정 아닙니까! 요셉이 누구의 후손입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 왕가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온 것은, 족보에 들어간 것은 요셉과 정혼했다는 이유 때문에 들어간 것뿐이지. 아브라함의 후손과, 다윗의 후손과 전혀 상관이 없는 별다른 성령의 잉태에서 동정녀로,,, 이 말하자면 여자의 몸을 빌렸지만 여자와도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께서 요한복음서에 보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렇게 말씀했거든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계획! 구체적으로 이루는 일에 마태복음서가 성취했다는 그 약속을 증거 해 주는 족보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붙잡는 것은 이걸 붙잡는 거죠.

그래서 오늘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여러분과 저를 세계복음화 할 수 있는 어떤 길도 없고, 어떤 방법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바로 붙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보세요.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로를 예언할 때에 이삭을 낳을 때도 아브라함 어떤 면에서 육신의 씨로 그렇게 오지만, 이삭 자체도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족보와 상관이 없어요. 왜? 아브라함도 뭐, 남자 기능이 없어져 버리고 또 사라도 경수가 끊어져 버렸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느닷없이 약속한 것 아닙니까! '다음 내년 이맘때에 내 아들을 낳는다!' 이래 놓으니까! 사라도 웃었고 아브라함도 웃었어요. 사라도 뭐 경수가 끊어졌는데, 이제 무슨 아들을 낳습니까! 씩 웃었고 그러니 뭐 네가 왜 웃느냐? 그래서 사라가 웃음이라 그랬죠. 그러면서 뭐라고 하느냐?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 다음 해에 누구를 낳았어요? 이삭을 낳아서 안았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게 예수 그리스도! 인간 족보는 다 무너졌습니다. 어떤 면에서 다윗 왕가도 무너지고, 아브라함도 다 무너졌습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날 이스라엘 다 무너졌습니다. 제일 고난받고 이 땅에 번성은커녕, 제일 망해 가는 것이 유다 민족입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 언약을 잡은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이 땅은 점점 그 언약을 잡고 나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수와 땅에 모래 수와 같이 이 땅을 완전히 바꾸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그때에 여러분과 제가 함께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맞이하러 나갈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는 과정에 여러분과 제가 세워졌습니다. 사건이 터졌다! 일이 터졌다! 과정일 다름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말씀을 의지하는 체질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 사역을 하면서 너무 쉽게 빠져버리는 교만과 낙심의 배경은 근본적인 것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경대로의 믿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우리의 잘못된 체질을 말씀에 의지하는 체질로 바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 세상에 위대한 영향을 끼친 믿음의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느냐가 문제입니다.

☞ 그리고, 정직하고 진실한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윗은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맡기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연약과 부족을 그대로 고백할 수 있는 진실이 없으면 예배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연약을 진실로 고백하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3]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① 우리의 신앙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나의 주권자시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의 단독 사역으로 예정, 구원, 성취하심을 모두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회복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응답을 기다리고,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② 우리의 신앙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③ 우리의 신앙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나와 세상을 예정하셨다(엡1:4-5)'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셨고 인도해 가십니다. 여기에서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우리가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성취하실 것임을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족보로서, 구세주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문을 통해 오시리라는 약속을 이루었다는 증거를 밝힌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씨를 약속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말한 것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었습니다(갈3:16).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씨로 심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고,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을 때, 교만할 필요도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구원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심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 인도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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