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의 의
2004-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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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3: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마 3: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우리 교회에 지금까지 1년 내에 한번도 그런 기적은 없었는데, 2부보다 1부가 오늘 훨씬 더 많이 왔습니다. 기적이에요. 그것도 아마 1부에 오신 분들은 최소한 우리 교회에 예배라도... 그건 '예배라도' 이지 예배라도 드리고 가고싶다! 그래서 아마 1부에 오셔서 고향으로 많이 가신 것 같아요. 2부 예배도 그럴 분이 있을 줄로 압니다 만은, 일단은 성령의 인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가라고 장려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의' 라 그랬습니다. 상당히 그 오늘은 좀 뭔가 우리가, 혹시 여러분 지금까지 메시지를 쭉 들으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다! 인도다! 메시지를 쭉 들으면서 조금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뭔가 해결 안 되는 부분들이 좀 남아 있을 겁니다. 또 남게 되고요.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실제로 응답하셔서 그 뭔가 미진하고 '이것은 이상하다! 잘 안 된다!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무 귀중한 말씀이라서 또 어느 것이 뭐 귀중 안 할 수 있습니까 만은, '참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합니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섰습니다.

성령의 인도 없이는 또 이해도 안 될 그런 말씀이죠. 왜냐하면 여기 하나님의 의라 그럴 때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또 '모든 일, 모든 의!'라 이럴 때는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의라는 것에서 모든 의라 그럴 때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바로 의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은,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정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왔었고, 하나님이 인도가 왔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적인 역사가 계속 설명이 되고 그랬습니다 만은, 여러분 정말 그 하나님의 의를 따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통치 받는 우리가 도대체 어떤 관계이고, 어떤 자리에서야 되는가! 그래서 이것이 이해가 되면, 해결되면 기도응답이라는 것은 저절로 와집니다. 이건 뭐 와진다는 그런 배경 이전에 벌써 다 된 겁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 해결자다!' 늘 말씀을 하는데, 나는 늘 가면 해결이 안 되고 늘 헤매고 있는 이런 문제들 어떻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문제가 오느냐? 이런 것이 아마 구체적으로 말씀 속에서 오늘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배경은 오늘 말씀이 예수님께서 이제 그 공적으로 나타나시기 전에 세례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그런 과정까지 나오죠.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신 일에 준비하는 그런 메시지가 나옵니다. 그런 중에서 우리 3장 2절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그렇게 했고 그 회개라는 말씀은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고, 돌이키는 것 아닙니까! '뭐, 우리 작년에 회개했던 것 올해도 또 한다!' 그런 배경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그런 배경!

그 다음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반드시 하나님께로 여러분 돌아왔다! 그러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바꾸어집니다. 변화가 옵니다. 만약에 변화가 오지 않는다 그러면 그건 뭐 안 돌아왔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뭐 전도한다! 안 한다! 이전에 돌아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무슨? 문제가 구체적으로 되어지고 일이 이루어지죠. 그러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 배경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그럴 때에 어디에 들어간다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배경입니다. 왕이라는 것은, 통치라는 배경이 바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뭐 이 땅에서 우리 통치라 그러면 대통령이 있고, 그런 어떤 배경이 아니고 또 국가가 있고, 그런 배경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졌다! 그 배경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나라라 그랬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그래서 적은 간섭도 비로소 우리가 이 일에 눈이 열리면 감사할 수밖에 없죠. 우리는 하나님의 간섭에 감사할 수 있는 이 눈이 안 열리면 여러분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늘 다른 것이 나와요. 그래서 차라리 사단에게 메여 살던 그때가 그립고 좋아지는 이런 이상한 역현상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면서 이 땅에 죄 없으신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일에 나오셨어요. 세례 요한에게 나가서 나한테도 세례를 달라고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이분이 누구 신지를 벌써 영감을 통해서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어떻게 세례를 주겠느냐? 도저히 세례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라는 것은, 요한의 세례라는 것은, 회개의 세례입니다! 죄 씻는다는데 상당히 중점이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의, 세례의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물세례를 준다고 그럴 때에, 뭐 물을 찍어 가지고... 사실은 여러 가지로 이 세례에 대해서도 뭐 교파가 나누어지고 이랬어요. '퐁당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된다!' 이래가지고 그 침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다! 뭔가 이 상징이기 때문에 물만 뿌려도 된다!' 그래서 세례에서 여러 가지 이제 나옵니다. 만약에 꼭 침례를 말한다하면 보통 물 가지고는 안 되고 어디가야 됩니까? 요단강까지 가야 돼요. 그것도 옛날에 그때 흘러갔던 물을 다시 끌어 와야 되는데 그건 다 상징이에요. 물세례 준다는 것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필요합니다! 곧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 고백이 세례의 고백입니다.

제가 물세례 준다고 그래서 물 이렇게 찍어 가지고 물 이렇게 머리에 잠깐 얹어 주는데는, 이것은 의미가 뭐냐하면, 머리까지 뭔가 이렇게 물에 잠겨졌다는 것보다도 완전 뭐냐? 옛날 사람이 죽었다! 이겁니다. 물에 빠뜨려 죽었다! 그 다음에 이 로마서 6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세례는, 그러면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구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그것이 세례에 대한 중요한 의미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때 당시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러 왔다! 그러면 '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 세례 요한이 그것을 알고 죄 없으신 예수님한테 세례를 주겠다고 그러시겠습니까! 안 되죠.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세례를 줄 수 있습니까? 이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우리가 이렇게 해서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하리라!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하리라! 그래서 여기는 뭐 하나님의 공의와 연결되고 다 연결됩니다 만은, 그런 부분에 신학적인 부분에 설명을 하려고 그러면 시간이 없어서 안되고요. 이렇게 말씀했을 때에 단지 여러분이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이 땅에서 오시게 된 배경이 창세기 3장에 죄인 된 여러분과 저의 문제를 직접 하나님이 해결하지 않으면 내게 안 되기 때문에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는데, 이 땅에 오셨다면 누가 되어야 됩니까? 참 인간이 되어야 됩니다! 무슨 말씀인줄 알죠. 참 인간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것은, 성육신 한 것은, 참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뭐? 육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셨다! 그런 배경이 안 됩니까! 그렇게 오셨다면, 참 인간이 되셨다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은 참 인간이 되시는 모든 과정을 지금 겪고 있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께서 죄는 없지만, 참 인간이 겪어야 될 모든 과정! 그러니까 죄인이라는 고백조차도 예수께서 지금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회개의 세례를 지금 받으신 거죠. 받으시면서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시니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너는 네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렇게 증거가 나올 수 있죠.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셔야 되느냐?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되는데, 이제 그 첫 번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 의가 이루는 과정에서 첫 아담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고 그 첫 아담에게 첫 번째 시험이 악한 사단의 시험이, 들어온 시험이 뭐냐하면, 창세기 3장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해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떠나라! 하나님을 떠나라!' 그게 이제 창세기 3장 아닙니까! 그럴 때에 아담이 실패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범죄하고 그 범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아담에게 속한 아담의 후예는 전부 뭡니까?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대표의 원리입니다.

아담이 범죄 했는데, 그러면 내가 왜! 나는 도적질도 안 하고 거짓말도 안 했는데, 하긴 많이 하고 돌아다니지 만은, 그러면 금방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 도적질도 안하고 거짓말도 안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도 그러면 왜, 죽느냐? 죄인으로 죽느냐? '죄인이다!' 라는 원죄의 배경이 있다는 그 배경이 뭐냐? 아이가 죽는다는 자체가 벌써 뭡니까? 죄인이라는 배경입니다. 죄 없다! 그러면 죽을 이유가 없죠. 그래서 죽는 이유는 뭐냐하면, 아담이 범죄 하는 동시에 사망이 뭐라 그랬습니까? '왕 노릇하리라!' 사망이 지배해 버렸습니다. 그 후로 인간은 육신이 나왔다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낳다 죽는다는 것은 벌써 사망의 지배를 받았다는 그런 이야기죠.

그래서 뭐 이 문제 가지고 아이도 뭐, 나면 아이도 첫 번부터 나면, 첫 번부터 뭐 성선설이라든가, 이런 뭐 배경들이 있더라 구요. 아주 착하게 난다! 아예 악하게 난다! 이런데 성경은 '악하다! 착하다!' 그런 배경과 상관없이 태어나자 말자 아담의 후예로 나는 자에게는 뭐가 있습니까? 원죄라!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 다음에 크고 성장할 때마다 죄인이기 때문에 응당히 따라오는 뭡니까? 이것은 따라오는 죄악! 이런 것이지 죄인이라는데 대해서는 이설이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 잘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는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럴 때에 죄 문제가 해결된다는 그것도 뭐냐? 원죄의 근본적인 죄가 해결된다! 창세기 3장이 해결된다! 이런 배경입니다. 뭐 도적질 안 한다. 뭘 안 한다. 이런 배경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에 와서 혹시 모릅니다. 마음으로 무슨 죄를 범했던지 안 그러면 또 육체적으로 무슨 죄를 범했던지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창세기 3장! 죄인이 뭐로 변합니까? 의인으로 변한다! 의인으로 바꾸어졌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내가 사망에서 어디로? 생명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다! 옮겨졌다! 믿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누리는 축복과 은혜의 배경입니다.

이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그냥 버려 둘 수 없어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예수그리스도 못 박히심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확정하여 주셨다!' 그랬습니다. 바로 그 로마서 5장에 보면 그렇게 하는 배경이 대표원리로 이 사용을 합니다. 아담을 통해서 인류가 전부 망했듯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부 이 땅이, 생명이 왕 노릇 한다! 대표로 주신 겁니다. 그 대표에서 지금현재 여기에, 예수께서 나오신 겁니다. 인간대표! 인간, 말하자면 아담은 사망의 대표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오셔서 무엇의 대표입니까? 생명의 대표입니다. 그것을 대표의 원리라 그럽니다.

성경에 우리 여러분 로마서 5장 한번 찾아봅시다. 쭉 여러분 보셔야 되니까 뭐 여러 가지 대표 원리는 비유를 들 수 있고 들 수 있습니다 만은, 다른 것은 뭐 들어봐야 소용이 없고 로마서 5장 12절 말씀부터 우리 한번 교독을 해 봅시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여기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랬는데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담을 말합니다. 아담을 말하고...

그 다음에 14절입니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그렇죠 아담처럼 선악과 안 따먹고 아담처럼 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뭐 거역하고 그렇지 않았지만은,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죄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뭐라 구요? "표상이라!" 하나님께서 뭔가 대표 원리에 있어서 아담을 주시고 그 다음에 오신 아담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이 땅에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계기를 말씀했죠. 표상이라!

그 다음에 15절 다같이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오실 자의 표상이 누구라 그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이 왕 노릇하는 이 축복이 있다고 약속했죠. 또 16절에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할렐루야!

한 사람이 범죄해서 사망이 왕 노릇했어요. 그런데 한 사람! 그로 말미암아 생명이 왕 노릇하리라! 한 사람 누구라 그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18절"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할렐루야! 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시는 그 예수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의가 이 땅에 다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세례 받는 사건으로 공적 역사가 지금 시작이 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적인 역사가 이 한 사람 그 의를 이루시는 그 역사가 세례 받는 것을 통해서 그 것이 벌써 시작해서 공적으로 그것이 이루어진다. 세례는 공적으로 '내가 사람이다! 완전 사람이다!' 라는 사실이 이렇게 증거가 되고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음을 봅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 땅에 오셔 가지고 아담이 해결하지 못했던, 아니 아담이 빠졌던 그 범죄에서, 예수께서 그 범죄를 완전히 해결하시고 생명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또 대표적인 원리에서 아담은 창조함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이 다스림의 약속에서 거역을 하게 되죠. 거역하게 되는 배경에 누가 들어옵니까? 개입합니까? 사단이 개입을 합니다. 사단이 개입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라! 그게 뭐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단순한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아담이 꼬임을 받아 가지고 범죄 하게 됨을 통해서 여러분과 제가 범죄를 하게 되는 이런 일이 이 땅에 왔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되는데 한 사람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리고서는 바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즉시, 이 공적인 역사가 시작된 즉시, 똑같은 배경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누가 찾아옵니까? 누가 역사 합니까? 사단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사단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이 하나님께서 뭔가 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이 너무 확실하게 나옵니다.

예수께서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에, 사단이 찾아왔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사단의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완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생명의 왕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인도하시는 구체적인 역사가 벌써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게 되게 이것이 진행이 되는 과정이죠. 그러니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시험을 받는데, 사단이 와서 사단이 시험을 하지 않습니까! 시험할 때에 중요한 것은 문제는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 버려라!' 그 다음에 '하나님의 명령을 버려라!' 그 다음에 뭐냐하면, 하나님 섬기지 말고 누구를 섬리라고 그랬습니까? '나를 섬겨라!' 첫 번과 같은 배경이 나옵니다. 그럴 때에 예수께서 이 사단의 역사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잘 들어보셔야 합니다.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사단의 유혹 속에서 범죄 함을 통해서 저주와 죽음이 왕 노릇 하는 이 엄청난 이 재앙의 역사 속에 여러분과 제가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자,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로 여러분과 제가 빠졌던 그 곳에서 예수그리스도 그 분으로 통해서 창세기 3장에 사단이 찾아와서 인간에게 짊어지웠던 그 죄악의 멍에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벗기시고 예수께서 승리 하셨습니다. 그 승리하시는 과정 속에서 예수님이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그 완전한 승리가 어디까지 이어집니까?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서 죽으시고 그 다음에 죽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끝나버리면 여러분과 저는 승리할 수 없어요.

죽었다가 다시 거기서 피를 흘리시고, 완전 메시아의 피 흘리는, 양의 재물! 말하자면, 영원한 재물 되시기 전에 구약에 묘사된 양의 재물, 피 흘리는 재물이 되셔서 죽으셨다가 다시금 어떻게 했어요? 부활하셨습니다. 이것까지 끝나도 안됩니다. 부활하셔서 여러분과 제게 그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누구로? 성령으로 내 안에 우리 안에 사실적으로 오셔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인도하시는 바로 장본인이 되십니다. 바로 그 분이... 그 분을 누리고, 그 분을 통해서, 그 분에 의해서 이것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때부터 뭐가 오느냐?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가 응답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 많은 교인들이 어떤 문제가 나오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 지시고, 나를 위해서 생명 주시고, 나를 위해서 구원주가 되시고, 나를 위해서 고통을 다 참으셨다! 이 예수님이 죽으셨다! 이런 배경으로 해 가지고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 죽으시고, 나를 위해서 다 해 주셨는데 나는 지금 뭘 할까?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런 배경으로 신앙이 이어집니다. 그래가지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데 나도 이렇게 해야지, 나도 이렇게 해야지!' 보상 심리입니다.

그래서 뭔가 헌신이나 충성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내가 예수님 위해서 아무것도 못해서 '예수만큼 나는 안 돼!' 예수님처럼 자라자는 그런 경우 속에서 막 예수께서 내게 하신 일이 너무 위대한데, 내가 예수님처럼 내가 예수님께 뭔가 보답하고 뭔가 예수께 이렇게 해야된다. 이런 것으로 우리 신앙생활이, 뭔가 보상적인 신앙 생활이, 우리 가운데 열심히 있다고 할 때에 거의 다입니다. 거의 다 이걸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응답도 열심히 뭘 전도하고 열심히 뭘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기도응답이 잘 되고 열심히 안 하면 기도응답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 보통 우리 교인들 생각할 때에 '목사님은 기도응답 잘 받을 것이고 나는 뭐 기도응답 못 받을 것이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 많아요. 똑같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래요. 그러니 내가 뭘 하는 만큼, 내가 뭐 예수님께 대해서 '내가 막 보상하는 만큼, 내가 하는 만큼 나한테 보상해 주고 뭔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뭐가 오느냐? 예수 그리스도 위해서, 이 예수 그리스도 이 역사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전하라! 그랬으니까 전도하러 갈 때는 막 전도! 얼굴을 막 붉히면서 그 다음에 얼굴에 미소를 띄워가면서, 막 애교를 떨어가면서 천사처럼 합니다. 돌아왔다 마귀처럼 무서워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도 어떤 면에서 여러분 잘 알잖아요. 강단에 섰다. 참 여러분 강단에 선 박 목사 징그럽죠... 이면에 있는 나를 전혀 못 생각합니다. 집에 가면 나는 폭군인데... 요즘에는 많이 변했다! 그러더라 만은, 마찬 가지예요. 그래서 전도하고 간증하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진짜 저 사람 천사 같습니다. 없어요! 천사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 사람일수록 더 무섭습니다. 더 성질 더러울 수 있습니다. 뭐가 안 되느냐? 우리가 근본 배경이 안 됩니다. 뭐가 안 되느냐? 여러분과 제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십자가 지시고 다 열어놓고 두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분이 내게 오셔서, 그 다음에 내 조직 속에서, 내 생각 속에서, 내 기관 속에서, 내 움직임 속에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뭐가 됩니까? 하나가 됩니다. 그게 뭐냐? 성령으로 오셔서 이것이 완성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멀리보고 아 그렇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천사 나팔소리와 함께,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늘 그 말을 말씀했잖아요. 예수님이 저 멀리 어디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딴따라~' 그러면서, 나팔불면서 모여라! 그게 아니고 이미 여러분과 제게 성령으로 오셔서 내 생각이 되시고, 내 인격이 되시고, 내 조직 속에서, 내 건강 속에서, 내 판단 속에서, 예수그리스도 충만하게 구체적으로 인도해 나가시다가 그 날이 와서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벌써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 받아서 어디까지? 천국까지 가는 겁니다.

여러분 뭐 지금 세상이 어떻다 이럴 때에 겁내는 것 없죠. 두려워 할 것도 없어요. 저 뭐 미국에 터졌다! 그럴 때에 우리는 두려워 할 것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제 일을 이루어 나가시는 구나!' 예수께서 친히 나와함께 계시는 사건 속에서 두려워하고 염려할 것 없잖아요.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뭔가 구원주 식으로 약속하고, 그것을 이루어 놓고는 떠나버리고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분과 제게 지금 사실적으로 오셔서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실체와 사실로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성경이 뭐라 그러냐 하면요. 이 사건을 누리고 이것이 배경이 안 된 상황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님이 나를 위해서 생명까지 주셨는데 내가 뭘 해야 되겠다! 이렇게 될 때에 종교로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참 묘하게 돼요. 우리도 모르게 그래서 뭔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좀 열심히 하면, 좀 편안하고... 그와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설명하시면서 뭐라 그랬냐하면요. 골로새서 2장 19절에 보면, 그런 관계를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배경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어떤 관계를 말씀 할 때에 뭐 우리를 인도하는, 구원시키는 일을 다 해놓고는 떠나고 우리와 상관없는 그런 분이 아니고 여러분과 저를 구체적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내 인격이 되고, 내 판단이 되고, 내 생각이 되고 구체적으로 그렇게 하시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몸으로 비유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게 되는 그 순간에 벌써 우리는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라 그랬습니다. 성전이라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이 성전에 여러분 모일 때에 사람이 쭉 모였다! 이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몸으로...

그 다음에 그 몸에 실제적으로 머리되신 분, 인도하시는 주관자가 누구냐?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교회에 뭐가 되셨어요? 머리가 되셨다. 그러니 머리에서 명령하면 전부다 움직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관계를 유기적인 관계라 그럽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우리가 연결된 것,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서 성령의 영감 설을 말할 때에 여러 가지 영감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계적 영감이라 그럽니다. 기계적 영감이라 그럴 때는 내 의지와, 내 생각과, 내 판단과, 내 지식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쓰는 겁니다. 마음대로! 하나님이 직접 내 손을 잡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막 써내려 갑니다. 로마서도 써 내려가고, 고린도 전서도 써내려 가고 이걸 가지고 기계적 영감이라 그럽니다.

유기적 영감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느냐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생각, 판단! 그 다음에 가문 배경, 모든 것이 전부 녹아 내려서, 녹아 내려서 이것을 전부 뭔가 활용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함께,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이것이 함께 녹아 내려서 그것이 기본이 되어 가지고 표출이 됩니다. 표현이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유기적인 영감이라! 그러면 우리 인간과의 관계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서 머리에서 '먹어야 되겠다!' 생각을 안 합니까? 그러면 '먹어야 되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손이 물을 먹어야 될 것 아닙니까! 들고 꾹꾹 밀어 넣습니다. 그러면 나는 먹어요. 먹었습니다. 그러면 전혀 이 손은 뭔가 내가 지금 물먹는 일에 큰일을 해 내었다! 생각 안 합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이거든요. 전혀 이것은 개면 적으로 내가 뭘 했다!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냥 머리에서 나오면 같이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먹습니다. 그러면 입은 막 먹어놓고는 내가 이 먹었으니까! 그러고 이것도 자랑할 것도 없어요. 모든 기관이 이걸 먹고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전체가 힘을 얻습니다. 손이 힘을 잃게 되면 손이 아프면 다른 기관도 아픕니까? 안 아픕니까? 다 아픕니다.

여러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중요한 것은 손이 일을 했다고 손만이 자랑하고 그럴 수가 없죠. 우리가 복음에 의해서 정말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면, 내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가지고, 내 마음이 열려서 가게 되는 모든 그런 과정 속에서, 생각과 마음과 느낌과 심지어는 모든 조직 할 것 없이, 전체적으로 모든 전 인격이 그리스도로 녹아서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생각과 뜻과 명령들이 바로 누가? 하나님이 내려 주는 겁니다.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말세에 저절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뭐냐하면요. 간증을 해도 내가 예수그리스도 간증한다고 그럴 때도 간증하는 사람이 막 내가 잘했다. 안 합니다. 내가 물 먹였다고 손을 이렇게 흔드는 사람 봤어요? 내가 막 밥 먹었다고 입만 살이 퉁퉁 부어 가지고 이만큼 나온 것 봤어요? 살쪄도 전체가 다 찌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을 했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전 인격 속에서, 전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의 뜻과 같이 전 인격 속에서 녹아 내립니다. 그 다음에 그로 통해서 터져 나오는 전도가 비로소 참된 전도입니다. 그럴 때에, 전도할 때에 싹 웃고 돌아서서 딴 짓 하는 것이 아니고 전도할 때에 역시 감사하고 기쁜 것처럼 내가 전도하지 않는 생활 속에도 똑같이 뭡니까? 삶 자체가 전부 기쁘고 감사하고 찬송입니다.

이 눈이 열려지게 될 때에, 이때부터 뭐가 나오느냐? 내 생각은 전부 기도가 되는 겁니다. 내 느낌이 전부 감사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때부터 뭐냐?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되는 그 순간에 전에는 기도응답을 받아야 되겠다 그 말이 아니고 이런 생활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그때부터 가는 걸음마다 벌서 이루어 졌어요. 성취되었어요. 다 이루어 졌습니다. 나는 가기도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았어요. 그러면 이 눈이 열리게 될 때에 그때부터 '다 되었네, 다 이루어 졌네!' 뭐가 나옵니까? 감사밖에 나올 수 없죠. 감사밖에...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주셨다. '그 분 떠났다! 나와 멀리 계신다!' 그 말이 아닙니다. 그 분이 오셔서 구체적으로 내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분 누린다! 안 그럽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역사와 그 축복과 인도를 완전히 받도록 사실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뭐 세포가 되고 말하자면, 말이 좀 어폐가 됩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지... 그런 게 그 다음에 생각이 되고 판단이 되고 전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안에 녹아 내리는 겁니다. 이런 축복과 역사가 바로 뭐가 되느냐? 오늘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제게 이것이 사실이 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뭐가 되느냐? 자꾸 종교로 빠져요.

그래서 이렇게 되면 뭐냐하면, 관계가 자연스럽게 예수께서 내게 막 이렇게 하시는데 '나는 뭘 합니까? 나는 뭐 해야 되겠는데...' 이런 것도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초 신자도 예수 영접했다? 뭘 그 상관없어요. 그냥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이웃에 있는 아이를 참 예쁘다고 맨 날 머리를 쓰다듬어 줘도 그 아이가 구하고, 그 아이가 바라고 그 아이의 모든 요구를 채워주지는 않습니다. 예쁘다! '참, 예쁘다!' 그러고 말죠. 그러나 내 생명을 낳게 되는 순간 쉽게 말해서, 내 아들을 낳게 되는 순간 그때부터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쓰다듬어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심지어는 뭐 저 같은 경우에는 아이를 낳아 놓고 그때는 무슨 마음인지... 하여튼 집안도 안 돌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래 가지고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 안 되어 있으면서도 신비 배경이 되어 가지고 애들 우는 것도 싫고 그 다음에 그 때부터는 뭐냐? 우리 집사람하고는 완전히 별거해 가지고 '너는 저 방에 있거라, 나는 여기 있을게! 내가 준비하는데 장애 되지 마라!' 아이들이 조금 컸을 때에 내 방에 들어오면, '들어오지 마라, 가라!' 그러고 아예 문도 못 열게 하고 이렇게 해도 말하자면, 내가 내 입장에서 내가 내 아이에 대해서 필요와 내 아이에 대한 모든 것들은 나는 책임을 졌습니다. 관계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속에 내 안에 성령으로 사실이 되었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이런 관계가 이루어지면서 모든 것이 여기서 녹아 나는 겁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내가 뭘 구했으니 들었다? 아닙니다. 내가 뭘 이걸 잘해 가지고, 뭐 헌신했더니만 이게 왔다?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기적인 관계가 맺혀지는 순간에 다시 말해서 내가 너에게 내 생명 주는 순간에 나와의 관계가,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구체적으로 그의 모든 필요와, 그의 모든 간구와, 그의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되는 겁니다. 내 마음이 자기 마음이 되고 자기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에게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라 그랬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해가 안 되니까 하나님은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안 좋은 것은 안 받아들이고 이런 식입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여러분 자꾸 뭔가 율법적인 배경에서 내가 뭘 잘하면 응답할 것 같고, 내가 못하면 응답 안 할 것 같고, 이상한 짓을 해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저게 내 인간인가! 저게 네 인간인가? 사단의 역사인가?'

그래서 성경에 말씀했잖아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 하시는 말씀이 꼭 그것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없이 아버지라 그랬으니까! 그렇게 되면 뭐가 안 되느냐? 구체적으로 이런 관계 속에 이루어지지 않고, 인격이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응답하실 그런 관계가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너는 사단을 너희 아비라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니까, 하나님과 상관없다. 나 없이 별 짓을 다하고, 별 소리를 다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나님 할아버지라! 그래도 하나님은 안 듣는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거든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보여줘도 몰라! 아닌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조금 이해가 될 때에 여러분 비로소 뭐가 보이느냐? '아, 하나님의 뜻이구나!' 사건 속에, 일 속에 하나님의 손이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조금만 다스림 속에 하나님의 손이 같이 하시는 구나! 기쁨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뭐가 나옵니까? 전도라는 것은, 곧 전도할 때만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내 삶 전체가 생각과 느낌과 마음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는 하나님의 그 은총을 누리는 삶이 되면서 전도라는 열매가 되는 것뿐이고, 하나의 오는 과정일 뿐이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채워주시고 역사 하시고 이루시는 겁니다. 그 그리스도가 확인되는 만큼, 나한테서 능력과 권세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추석 명절 전입니다. 확실히 사람을 만난다. 뭘 만난다. 내가 막 전도할 때에 하나님 힘주시고... 아닙니다. 전도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유기적인 머리로서 나의 온몸 전체에 구체적으로 뭡니까? 힘줄이 붙고, 살이 연결되고, 근육이 연결되어서 여러분과 저는 완전히 하나님의 응답 받을 수밖에 없는 관계가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응답하시고 역사 하는 것 아닙니까! 뭐 지금 응답해 주옵소서 역사 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는 벌써 우리 차원이 아닙니다. 그러면 감사밖에 안 나오죠. 가보니 벌써 여기도 계셨네, 가보니까 여기도 계셨네, 벌써 다 이루어 주셨네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에 터져 나오는 것 아닙니까! 우리 교회에 이 교회를 이제 매각을 할 때에 뭐 10억이라 그러고 15억 받자! 그러고 여러 사람들이 막 마음은 있는데, 특별히 우리 다락방에서 마음은 있는데 이 돈이 잘 안되니까 구체적으로 이게 거리가 잘 안되더라 구요. 그런데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별로 뭐 그런 것도 아닌데 또 이 반 나누어서 교회하고 사택하고 나누어서 판다는 것은, 아예 우리 생각도 안 했고 그런데 누가 이 거래를 시작을 했습니다. '김 희 식' 목사님이 '해주십시오!' 이렇게 했단 말이죠. 그러니 우리 교인들이 이 건축 위원회도 그렇고 김 목사라 그러는 데는 그만 힘이 없어져 가지고 '고만 좋다 뭐 해버려라!' 다른 데서 말할 때에 '우리는 왜 해 달라니까 안 해주고...' 왜, 그러냐?

뭐가 안 되는 겁니까? 관계입니다. 김 목사와 우리 교회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입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사단의 자식들 아무리 뭘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지금 잘 들어야 돼요. 이것이 자꾸 곤란하게 되면 이것은 잘못되어집니다. 왜, 신비주의를 자꾸 배경으로 하느냐? 성령의 역사는 뭔가 와 가지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속삭이면서 '이것해라, 저것 해라!' 나를 끌고 다니는 역사는 성령의 역사 아닙니다. 잘 알아들어야 돼요.

성령의 역사는 뭐라 그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의 인격이,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판단이, 우리의 모든 결정이, 우리의 모든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녹아 있는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내가 '원한다, 안 한다!' 그게 상관없어요. 하나님의 마음이 내 안에 왔을 때에 내 모든 마음이 하고싶다.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해야 되겠다. 나도 모르게...

여러분 동기 정도가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생명 건다는 말을 들어봤습니까? 나는 '생명 건다!' 는 말이 조금 어색해요. 왜 그러냐? 예수 그리스도 확인 안 되면, 생명 건다는 말이 그 실감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하고싶다 그래서 하는 겁니다. 하면서 뭐가 나옵니까? 하면 할수록 감사와 기쁨! 헌신도 기쁨! 내가 막 돈을 투여해도 기쁨! 내가 막 몸을 투여해도 기쁨! 그 헌신과 그 모든 일에 내게 예수그리스도로 통해서 그 은혜들 속에서 그 은혜를 누리고 사는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이 뭐냐? 감사로, 찬송으로, 기쁨으로, 드리면 드릴수록 감사로, 찬송으로, 기쁨으로 그렇게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악한 영이 뭐냐하면요. 오늘 혹시 뭔가 나는 안 그럴려고 그랬는데 뭐 성령이 나를 강제로 이끌고 갔다. 그것은 악한 영이에요. 다른 영이에요. '안 그럴려고 그러기는 뭐 안 그래' 안 그럴려고 하면 그것은 악령이지! 성령의 역사는 내게 임하셨다. 말씀하실 때에 내 마음과 생각과 뜻이 전체가 뭡니까? 기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 보세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서 여러분 보시면, 나는 안 그럴려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손이 막 흔들고, 발도 막 뛰어다니고 이래서 되었다! 아닙니다. 내가 즐겁게, 내 전심을 다해서 이루어 졌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모든 판단으로 결정할 때에 복음에 유익 된 것이 있느냐? 좋다. 다 버려도 좋다! 판단합니다. 그러면 결정합니다. 내 자신이 기쁨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어야 됩니다. 이게 잘 이해가 못 되어 가지고 뭐 자꾸 끌려 다니면서, 자꾸 성령의 인도를 받는 줄 압니다. 막 귀에 뭐가 들려지고 내 마음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나서 해 버리고, 해놓고 나면 후회하고, '내가 왜, 이러냐!' 그것은 전부 순간, 순간 속이는 겁니다. 여러분 절대로 기도하면서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인격에, 그리고 내 생각에, 내 삶에, 내 모든 기관에 구체적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약한 부분, 부족한 부분들,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채워 가시고 그러면 성령의 역사는 병 안 낳게 하냐? 그런 역사 아닙니다.

들어오시게 되면, 내 속에 들어오셔서 모든 부분을 그 역사 속에 이루어 가는데, 그 역사 속에 이루어 갈 때에 내가 '이게 낳다, 이게 낳다!' 그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그 사실 자체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 만날 때 내가 잘하겠다! 상관없어요. 오늘도 성령 충만 주시고 성령의 인도 주시옵소서. 여러분 생각이 다 응답되는 하나님의 배경의 역사입니다. 그때부터 뭐가 나옵니까? 내게서 조용히 기도하는 기도마다 어떻게 됩니까? 믿어지게 됩니다. 이루어집니다. 성령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의는 참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예수께서 하나님이면서 죄 없으신 몸으로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가셨습니다. 그 때, 세례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세례가 죄를 회개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므로, 예수께서 세례받으시려는 것을 막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그렇게 하여서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하겠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 예수께서는 죄인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시면서도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참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모든 과정을 다 이루기 위해서 세례 요한의 세례도 기꺼이 받으셨던 것입니다.


[2] 대표의 원리

☞ 첫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떠남으로 범죄하여 모든 인류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전인류에게 사망이 찾아온 것을 '대표의 원리'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참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되신 것도 바로 '대표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모든 문제가 이미 해결된 사실을 누리게 됩니다.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여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내가 중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 성령께서 나에게 오셔서 내 안에 함께하십니다.

☞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나의 몸은 성전이 됩니다. 즉, 머리되신 예수께서 나의 전인격에 함께하시며 다스리시므로 나의 전인격이 힘을 얻게 되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됩니다. 이 때부터 나의 모든 생각이 기도가 되며,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응답이 되어, 감사함이 넘치게 됩니다.

☞ 내가 무엇을 구했으니까, 내가 무엇을 잘 했으니까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로 맺어짐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렇게 응답받을 수밖에 없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누릴 때,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판단 등의 전인격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므로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삶 속에서 전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내 아버지,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주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나의 전인격을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셔서 나를 다스리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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