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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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창 50:15)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창 50: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창 50: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의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창 50: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창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우리나라 옛날에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마을 끝에 있는 소씨 집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쪽 끝에서 소문이 어떻게 났느냐? '소가 아들을 나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소문 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기적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내가 사실이 안 되면 다 헛일이 되고 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어제 저녁에도 미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심장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벌써 다 아는데, 그런데 이제 심장이 나쁜 것보다도 더 악화된 곳이 '폐가 나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더 위험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데, 목사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러더라 구요. '그래 심장이 나쁘니까, 능막에 물이 차서 폐가 좀 힘들었다! 그런 것이지. 심장이 치료되면 그것도 해결되는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문제는 그 애착이 있고 관심이 있기 때문에 똑같은 사건을 들려 오는 것으로 들을 때에 이렇게 쓸 때 없는 걱정을 하게 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 앞에 새삼 감사한 것은, 우리 교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또 그 속에 걱정도 끼쳐서 걱정한 것도 되지만,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박 목사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별것 아닌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자리에 세우셨는가!' 하는 그런 감사가 참 많습니다. 심지어는 뭐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 중에서 통성으로 기도하기도하고 그런 교회가 한 두 교회도 아니고, 그런 어떤 소식을 들으면서 뭔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때에 제가 마음에 뭐냐하면, '아, 소문만 듣지 말고 정말 하나님의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내게 중요한 갱신의 기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제 핵심 중에서 '목사가 먼저 은혜를 받아야 교인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목사가 은혜를 받고 목사가 은혜를 얻어야,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교인들이 힘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가 힘없고 목사가 은혜 받지 못하면, 교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원리가 그래요. 말씀이 강단을 통해서 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강단이 막혀 버렸는데, 그게 되지를 않죠. 그래서 오늘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가 뭐냐?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가 뭐냐?

그래서 그 동안에 제가 잠시동안 이렇게 지나오면서 찡하게 마음에 느끼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가장 이 땅에서 어려움 없이 만사 형통했던 사람의 모범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던 배경이 뭐냐하면, 누구보다도 엄청난 충격적인 사건이 그에게 있었어요. 그게 창세기 22장 아닙니까! 뭐냐하면 창세기 2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죠. 아브라함이 이제 번제를 드리려고 나무하고 취해 가지고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올라갑니다.

올라갈 때에 22장 7절에 보면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보통 평소에는 양을 가지고 번제 할 불하고 나무하고 가지고 가는데 그 날 따라서 나무하고 불만 가지고 가고 번제를 드릴 어린양은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늘 따라다니면서 봤던 일이라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 8절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올라갔죠. 산에! 모리아 산까지 올라갔는데, 그때에 9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그러니까 어린양도 없는데, 그냥 단을 쌓고 묵묵히 이제 아버지 하는 것을 지금 보고 있죠.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 놓고 그 다음에 돌아서서는 그 아들을 다짜고짜 묶어 가지고 단 위에 눕혔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많은 것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죠. 느닷없이 그렇지 않아도 양은 어디에 있느냐? 궁금해 있는데, 느닷없이 돌아서서 자기에게 결박을 지워서 그냥 번제단 위에 눕혀 놓았습니다. 그리고서는 22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서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나무 위에 놓았는데" 10절에 보면 "손을 내밀어" 그리고는 당장 그 순간이 그렇게 긴 순간이 아니죠. 당장 뭐냐하면 칼을 들어서, 자기 아들을 찔러서 번제를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 다 마찬가지지 만은, 제가 사실상 어떤 그 죽음의 고비에서 진짜 정신적으로 생각으로 오게 된 부분이 여러 부분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러니 이제 이번에 생각이, 사실은 수술대에까지 올라가서 수술한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는 아들 불러 가지고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우리는 책임 안 진다!' 는 도장도 찍고 그리고는 수술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죽는다하는 그런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에, 상당히 전에 느끼지 못했던 그런 어떤 그 느낌들이 오더라 구요. 그렇게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이제 내 안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아하!' 수술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갈급 하게 하나님을 찾는 배경도 이해가 되고 그리고 참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것도 좀 이해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바로 죽음 직전입니다. 지금! 얼마나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는 순간에 칼을 내리 찌르려고 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급하게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리고서는 '네 아들 이삭을 죽이지 말라!'

11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여러분 수양이 이 지금 이삭을 대신해서 수양을 잡아 가지고 번제를 드리는 이걸 아마 이삭이 눈 여겨 안 봤겠습니까! 전에는 양을 잡아서 번제를 드리는 것도 보통 봤지만, 바로 지금 지가 누웠던 그 자리에 수양을 대신해서 번제를 드릴 때에 아브라함은 깊은 인상과 깊은 느낌을 가지고 언약이라는 부분이 이삭의 가슴속에 깊이 박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아마도 이삭이 그 이후에 뭐 까만 색인지 하얀색인지 모르지만 수양만 봐도 가슴에 느낌이 달랐을 겁니다. 우리는 그렇잖아요. 이런 충격을 받으면 약간 뭐 비슷한 것만 봐도 느낌이 달라집니다. 보통 그 양들이 우는 소리 보통 들어도 이삭에게는 보통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 약속! 하나님께서 이삭에 가슴속 깊이 충격으로 심어주었습니다.

저는 뭐 심장병, 심장! 그런 문제를 누가 말해도 보통으로 들었죠. 왜냐하면 제가 그런 것을 못 느꼈을 때는, 그리고 막상 어떤 병인가 하는 것도 잘 모르고요. 그리고 심근경색! '가슴에 통증으로 아프다! 죽음에 이른다! 순식간에 간다!' 별로 못 느끼는 거죠. 그런데 이제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으면서 이렇게 사실적으로 나한테 그런 문제가 생기고 난 후에, 그 다음에 좀 힘들 때에 걸음, 걸음을 순간, 순간을 호흡하는 것이 곤란하더라 구요. 어렵고요. 그러니까 순간 순간이 늘 죽음의 공포 속에 있을 정도로 그런 어떤 그 영향이 나오더라 구요.

그래가지고 전에 같으면 누가 심장병으로 죽었다! 아무렇지도 않죠. 그런데 누가 심장병으로 죽었다! 나도 저렇게 죽을 것인가? 심장병이 어떻다 그러면 나도 그럴 것인가? 상당한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했던 충격이 오더라 구요. 충격이 오면서 오늘 내가 이삭을 바라보면서 바로이것이구나! 여러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내가 죽어야 될 자리에, 내가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 바로 예수님이 나 대신해서, 내가 죽을 자리에 내가서야 될 자리에 예수께서 서셨구나! 예수께서 죽으셨구나! 예수께서 죽으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고 그 고백으로 오늘 내가 살았구나!'

이것이 소문 듣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왔다! 그럴 때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예'자만 들어도 충격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힘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지난주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시나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되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주신다' 는 경우가 아니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도저히 그런 어떤 모든 문제에서부터 해결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28절 보니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사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절에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물론 제가 건강할 때는 뭐 '피곤하다! 곤비하다!' 뭐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보통 느껴지더라 구요. 그런데 몸이 쇠약해지게 되니까, 피곤하면 눈뜰 힘조차, 기력조차 좀 힘들더라!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눈을 뜨고 앉아서 사람을 쳐다보는 것조차도 힘이 들더라 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왕으로 오셔서 흑암의 세력을 완전히 꺾으시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능력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정복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생명의 역사를 우리에게 주셨다.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마땅히 받아야 될 저주와 죽음과 멸망과 재앙을 완전하게 해결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선지자가 되셔서 여러분과 저를 생명으로 하나님을 새로이 만나게 하시고...

저는 그 선지자를 보통으로 생각했는데 선지자, 선지자! 그랬는데 여러분 선지자로 오셔서 여러분과 저를 완전히 하나님의 만날 수 있는 신분을 바꾸었다는 말씀 워낙 위대한 말씀 워낙 위대한 말씀이라고 그러니까 워낙 이 충격이 잘 안 와요. 왜 그러냐 여러분 우리 이 지금 보통입장으로 왕을 말하자면 대통령을 만나려고 그러면 잘 안됩니다. 적어도 대통령을 만나려고 그러면 장관이 되어야 되고 적어도 대통령을 가서 만나려고 그러면 재벌그룹에 뭔가 총수가 되어야 되고 그렇게 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대통령하고 골프를 치려고 그러면 바로 이런 신분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게 하시고, 바로 그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서 신분을 바꾸어 놓았는데, 뭘 바꾸어 놓았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를 만나겠다! 그랬습니다. 신분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어요. 만나 지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가까운 하나님이 자녀로 우리 신분을 바꾸어 놓고, 그것도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성령으로 사실상 함께 하시는 역사 속에, 우리가 소문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건으로 여러분과 저를 만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엄청난 하늘의 평안과 기쁨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었습니다.

이 축복을 잡고 나니 그때부터 우리 입에서 간단하게 터져 나오는 일이 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구나! 예수 그리스도 참이구나! 영적인 눈을 열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이 그리스도 그 이름만 붙잡으니까 해결되는 구나!' 이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실을 우리가 체험하게됩니다. 이 체험의 농도가 짙을수록,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들을 때마다 감동이 되는 정도가 아니고 감격합니다. 바로 그것이 흑암권세와 사단의 세력을 꺾는 위력이 되고 능력이 된다! 이겁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우리개개인에게 엄청나게 이 사실이 적용되는 순간, 순간 바로 이삭의 모든 일이 형통했던 배경이 이 배경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수양에 대한, 언약에 대한 감각이 짙을수록, 평소에 그런 것이 느껴지는 농도가 짙을수록, 이삭의 하는 모든 일이 한해 농사지으니 백 배나 나와버렸죠. 우물을 파기만 파면, 우물이 펑펑 쏟아 나오죠. 한번도 막혔던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서 모든 사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과 감각이 살아 나오지를 않아요. 그냥 뭐 무심히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저는 그 마음에 뭘 느끼느냐 하면 참 일일이 하나님이 나 같은 성질 때문에 내 같은 사람을 거의 체험을 시키려고 이렇게 만들려고 그러면 한이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는 나대로 위로를 했어요. 우리 송현교회 워낙 사람들이 오래 묵은디이들이 되어 가지고 예수의 이런 체험과 이런 감각이 안 나오니까 나를 통해 가지고 한번 보도록 만들어 주시는 은혜인가 보다! 그렇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보시는 데로...

그래서 정말 예수그리스도 그 은혜가 체험되고 그 은혜가 사실적으로 내게 확인되는 만큼 내게 약속하신 생명의 약속이 그대로 내 생활과 사건에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보여지게 됩니다.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와야 돼요. 그런데 이 감사, 오늘 추수감사 아닙니까! '감사!'라 그럴 때에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가 뭐냐? 그때에 제가 요셉의 대한 내용을 조금 보면서 창세기를 그동안 쭉 읽었어요. 읽는 중에서, 힘이 없으면 읽다가도 언제 눈을 감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렇더라 구요. 그런데 이제 그 상당히 감사한 것은 뭐냐하면, 말씀이 읽고 나면 그 말씀이 쭉 기억이 나요. 이렇게 그게 가장 귀중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읽는 중에서 창세기 50장 17절에 보면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의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요셉이 왜 울었을까? 하는 마음이 상당히 파고들더라 구요. 아버지의 장례를 마쳤습니다. 마치고 돌아 왔는데, 자기 형들이 요셉을 향해서, 자기 동생을 향해서 한 일이 너무 간악하니까! 그러니까 자기 형들의 생각에 뭐냐하면, '저 요셉이 아버지 있을 때는 참았지 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이제 우리는 죽었다. 우리 옛날에 죄를 다시 물어서 우리를 다 죽일 것이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 하면,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요셉이 울었더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왜 울었겠습니까? 저는 요셉이 이때에 형들이 막 그냥 절을 하면서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요셉이 이것을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걸 듣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요셉과 형들 사이에 지난 허물 다 씻어버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을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우리 아버지가 참 은혜롭게 하나님 앞에 가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 형들과 우리 자녀들이 당신의 손을 통해서 이렇게 공양을 받고 이렇게 될 수 있고 우리도 이 높은 자리에서 참 애굽에서 대접받고 살아가게 하심을 너무 감사합니다!' 즐겁고 감사하는 칭찬과 감사! 아마 이걸 듣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너무 처참한 마음으로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요셉은 형들로 생각을 했지, 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형제로 사랑했지 종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왜? 요셉에 전력에 보면 전혀 그런 것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이 죽이지 마옵소서. 당신이 우리를 보호해 주옵소서!' 이럴 때에 요셉은 너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니까, 울었다고 나는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서 요셉이 그 이후에 뭐라고 말씀하느냐 하면, 여러 가지 말씀을 하는 중에서 그 50장 18절 이후에 보면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그렇게 이제 말을 하죠. 그리고 19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중요한 말씀이죠.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그랬습니다. '두려워 하지마소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지, 당신들이 이렇게 한 것이 아니다!' 요셉의 심정 아닙니까!

그 다음에 요셉은 뭐라 그랬습니까? 그냥 당신들에 대해서 호위를 베푼다는 뜻이 아니고 의무로 생각했어요. '내가 당신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세계복음화 아닙니까! 저들은... 그래서 정말 여러분들이 뭘 이해를 하셔야 되느냐? 하나님께 기분 좋으면 감사할 수 있더라 구요. 기분 좋으면 감사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보다도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구원의 감사! 그 다음에 이 구원의 역사 위해서 '전 세계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서 내가 이들을 살리겠습니다. 먹이고 입히겠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못할게 어디 있습니까!' 이런 역사로 요셉이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 앞에서 형들이 '우리가 이 애굽 땅에서 이 축복된 은혜를 당신을 통해서 받게 하셨으니 우리 힘을 합쳐서 세계에 그리고 이 애굽뿐 아니고 참으로 이 세계에 참 이 축복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전하자!' 는 어떤 이런 것으로, 참 감사함으로 고백이 나왔다면 요셉이 얼마나 힘을 얻었겠습니까 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할 때에 '주여 올해 추수가 잘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올해 이것이 잘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감사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나를 살려 두시고, 내 생명을 주시고, 내 가정에 산업과 기업을 허락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나와 내 후손들을 그리고 온 세계에 보내어서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이루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감사하며 고백하게 될 때에 여기에 예수그리스도! 그 언약에 예수 그리스도! 깨달은 이삭에게 가는 곳마다 우물이 터져 나왔던 것처럼, 가는 곳마다 모든 문제가 열려 졌던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애와 주의 종들의 생애를 이같이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대해서 요즘 새삼스럽게 '하나님 교회 건축하는 사건을 통해서 그것으로 끝나지 말게 하시고, 먼저 교회 건축 전에 내 교회가 건축되고, 내 가정 교회가 건축되고, 내 사업에 교회가 건축되고, 내 개인의 교회가 건축되고, 건축되는 과정에서 틀린 생각과 마음이 있다면 완전히 바꾸어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세우셨사오니 세계복음화에 증거 되게 하옵소서. 증인되게 하옵소서!'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일을 위해서 저는 욕심을 부렸던 것이 아니고 원리가 그래요. 300제자! 그랬다가, 제가 계속해서 기도하는 중에 뭐냐하면, 300제자! 저절로 3000제자가 나오더라 구요. 왜, 여러분 300제자! 그러는데 300명이 한사람에 10명씩만 하면 얼마 됩니까? 많이도 안됩니다. 10명씩 제자 삼으면요. 그대로 3000제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 300제자, 이어서 3000제자! 이를 위해서 임마누엘로 성령 충만 먼저 내게 주시고, 이 사실을 먼저 회복하게 하셔서 새 힘주시고, 사실로 임마누엘의 큰 기쁨과 감사와 평강으로 내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영적 문제! 이것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영원한 영적 문제를 해결하신 그분에게 진실한 감사가 나갈 때에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소원이요. 축복입니다.

제가 너무 이 괴로우니까, 걸음 걷는 것조차도 괴롭다 싶어서 순간, 순간 괴로우니까!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슥슥 걸어가는 이런 사람을 보면서 '당신은 참 행복하다!' 싶더라 구요. 여러분 느껴봤습니까! 슥슥 걸어가면서 당신은 참 행복하다! 그리고 뭐냐하면 별로 그렇게 참 아름답지도 못하지만은, 이 병자들이 뭐 이렇게 동산 병원에 있으니까, 걸어가는 사람들이 좀 그런데도, 육체적으로 겉으로는 약간 좀 불구라도, 뭔가 마음에 '당신은 심장은 괜찮겠지!' 싶으니까 그것만해도 영 마음에 '나는 언제쯤 쉽게 호흡하고 쉽게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때마다 뭐가 없으면 답답하냐 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손안이구나!'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 굉장한 답이 온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이 일을 면하게도 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답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나는 깊은 터널 속에서 지금 빠져나가는 중이에요. 하나님의 시간표다! 이럴 때에 그 답답함을 이길 수 있고, 그러면서 옆에서 이제 우리 집 아이가 와 가지고, 희락이가 와서 뭐 어떻고 저떻고 아이들하고 옆에서 웃고 이러더라 구요. 저는 전혀 위로가 안돼요. 전혀 위로가 안됩니다.

여러분 진짜 어려울 때는 옆에서 인간적인 이야기, 육신적인 이야기 도움이 안됩니다.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그래서 흔히 혹시 뭐 아이가 있으니까, 좀 힘이 안 나겠나! 힘은... 귀찮아요. 아무소용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 그로 통해서 영적인 그 하나님이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끊임없이 기도를 자꾸 하는 겁니다.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하시고 지금도 내가 '되었다, 안 되었다. 하나님 꺾어주옵소서. 하지 마옵소서!' 그 말이 아닙니다. 해결되었다! 다 끝났습니다. 그렇게 되는 믿음! 이걸 내가 갖고 확인하는 만큼 뭐냐? 평안이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왜? 두려움이, 호흡이 곤란하니까! 생명에 위협이 오니까! 영적인 것에 눈이 열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엄청난 어려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에 모든 교인들이 우선 육적인 것 잠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그래서 3절기를 참 철저하게 지키라는 것 아닙니까! 유월절! 영혼 구원의 감사! 비로소 맥추절, 수장절! 이게 뭡니까? 육신적으로 오는 것에 대해서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이, 영혼의 구원!

지난 우리 노 동 휘 목사님, 누가복음 17장 11절부터 새벽기도에서 말씀하시는 중에 가다가 제사장에게 이제 열 문둥이가 가다가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니까, 그 말을 듣고 가다가 병이 다 나아버렸어요. 대게 보면 거의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그래요. 병이 나았다! 참 좋다... 그러니 뭐 자기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왜 그러냐 하면, 이 문둥병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에게서는 이것은 죄를 지은 결과로 자꾸 아니까! 그렇게 하니까! 그래서 일반인들은 접촉을 못합니다. 발병하면 제사장에게 보여서, 판정이 되어서 문둥병으로 판정이 되면 별리 시켰습니다. 그 다음에 나았다고 하는 것을, 그것을 또 증거 하여 제사장이 보고 나았다고 판정되면 다시 민간인들하고, 다른 이제 일반인들하고 섞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이러니까, 나았다! 이거거든요. 말씀 믿고 가다가 다 나아 버렸어요. 그런데 그 중에 사마리아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께 찾아와서 너무 감사하다고 사례를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가장 감사한 소원을 다른데 두지 않았습니다. 가다가 말씀 믿었으니까, 말씀을 믿고 나았으니까, '야, 너 믿음 좋다!' 안 그랬습니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아홉은 어디 갔느냐? 너만 혼자 왔느냐! 그러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음이니라!' 진실하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그런 어떤 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내 영혼을 구원하시고, 내 생명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축복에 눈이 열리는 것! 이것이 오늘 여러분과 저의 추수감사절!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안식을 얻고, 참 평안과 안식을 얻고 지금 흑암과 어둠의 세력을 꺾고, 이로 통해서 나와 같이 방황하고 나와 같이 미련한 자들, 언약에 약속을 잡고 마치 이삭에게 보였던 수양에 교훈처럼, 그 믿음이 정말 우리 가슴속에 깊이 체험이 되고 사실이 되어서, 여러분이 가는 곳과 사실 속에, 여러분이 겪었던 조그마한 문제만 연결되면, 수양을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과 연결되면, 그때부터 뭐냐? 실감나는 겁니다. 실감이 납니다.

그래서 마음에 요즘 회개하고있는 부분이 뭐냐하면, 제가 너무 편하고 너무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은혜를 잘 못 받는 사람들에 뭔가 생각을 잘못 이해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 내가 너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바울이 간질환자로, 눈병환자로 돌아다니면서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이 있어요.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증인이시라!' 내 마음속에 '주여, 나는 빚을 졌지만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여기서 다 끝난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불신자 상태에서 막 '결박해라!' 그 문제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그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바라보면, 흑암이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막 눈을 부릅뜨고 '사단 결박 받아라!' 이럴 것 없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그들에게 우리 중심을 가지고 문을 열면 하나님이 역사 하시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정말 이제 남은 때에 '전 세계 복음화' 라는 이런 엄청난 과제를 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축복가지고, 개개인이 소문만 듣지 말고 '정말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실제적인 그 은총에 감사를, 감격이 체험되게 하시옵소서.' 사실로 고백되고 소문으로 고백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고백되도록! 오늘 이 추수감사절 통해서 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또 하나님이 주시는, 새 능력 주시고 명철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지혜를 주시고, 우리와 우리 세계 속에 판단 또 모든 생각도 완전히 흑암에서부터 바꾸어져서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모든 사실을 이루시게 하는 축복된 역사가, 남의 말이 아니라 오늘 나의 고백으로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삭이 형통케 된 배경

☞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이 땅에서 어려움 없이 형통했던 배경은, 그가 누구보다도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렇게도 사랑하고 아끼는 자신조차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번제로 드리고자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멈추시고 이미 예비하셨던 수양을 번제로 드렸던 사건은 이삭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언약의 사건으로 심겨졌을 것입니다.

☞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매달려 죽으심으로 내가 살아났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깨닫게 될 때, 새 힘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의 신분을 바꾸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배경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구나!'라는 것을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삶 속에 적용되는 순간마다 생활 속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케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

☞ 요셉의 형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회상시키며 요셉에게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할 때, 요셉은 울었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듣고 싶었을 것인데, 오히려 형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엎드리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어 우리 가족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라고 형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어떤 좋은 일들에 대한 감사보다도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기뻐하시며, 복음 사역을 기뻐하십니다. 이 배경 위에서 가는 곳마다 형통케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 추수 감사절에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며,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길들을 동행하시며 형통케 하시는 사실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교회 건축 과정을 통해서도 자신과 가정과 현장에 교회가 새로워지는 일들이 먼저 이루어지고, 건축되는 교회를 통하여 세계 복음화의 사역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모든 일들을 형통케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흘리기까지 하여 나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날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걸음마다 찬송하는 인생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로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나와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의 참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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