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감격있는 신앙생활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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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엡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나라 근대사에 가장 감격적인 일이 있다면 8.15 해방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일제 36년 동안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주권도 잃어버리고 또 마음대로 활동도 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다른 외세에 의한 어떤 큰 고통을 계속해서 겪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8.15해방을 통해서 나라의 주권을 되찾게 되고 또 자유를 얻은 그 기쁨, 너무 큰 감격을 우리가 체험을 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이 8.15해방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 나갔던 그런 사람들, 얼마나 그들 속에 이 감격이 북받쳤겠느냐! 한번 우리가 상상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역사에도 이러한 감격의 기쁨들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사건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4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애굽에 종살이를 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은 것 마음대로 자지 못하고 온갖 노력을 감당해야 되는 이런 애굽의 고통스러운 사건, 처참한 치욕스러운 이런 사건들이 430년 동안 그렇게 지속이 되어졌더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애굽으로부터, 이 바로의 손으로부터 해방을 받았다! 얼마나 그들의 마음속에 이런 감격이 차 올랐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애굽을 출발해서 홍해 바다 속을 건너갑니다. 애굽에서 이제 나왔습니다 만은, 제일 큰 난관이 무엇입니까! 그 난관이 홍해라는 큰 바다가 또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꺼번에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지금 바로 뒤에는 바로의 군사들이 얼마나 많은 군사를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겠다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이런 진퇴 양란의 어려움 속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모세의 지팡이로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이 지팡이를 들어서 홍해 바다를 쳤을 때에 그 바다가 완전히 갈라지고, 그러면서 이 바다 속에 벽이 생겨나는 그리고 그 속을 통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도저히 건너지 못할 그런 홍해바다 아닙니까! 그렇다고 배나 많습니까! 전혀 그렇지 못한 이런 상황 속에서 이제 바다가 갈라지고 벽이 형성되고 그 바다 속을 수백만,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속을 쭉 통과를 해서 갔다. 얼마나 그들의 마음속에 감격이 일어났겠습니까! 이 바다 벽을 보면요. 고기가 막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또 그 위에는 파도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다 속을 통과해서 갔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감격을 그들이 체험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이 출애굽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감격을 체험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큰 사건이 뭐냐하면,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갔죠. 그런데 그 세월이 또 짧지는 않습니다. 무려 7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런 포로로서 또 노예로서 속국으로서 그렇게 살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벨론 포로에서 그들이 해방을 받았다는 사실, 그러면서 시편 126편에 보시면 이런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을 받으면서 그 사실에 대한 감격, 이 기쁨을 노래로 표현을 합니다. 거기에 뭐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 꾼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제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면서 얼마나 기뻤던지 '우리가 꿈을 꾸는 것 같았도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너무 좋은 일을 만나면, '이게 생시냐 꿈이냐?' 그런 말을 하죠. '이게 꿈이냐?'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얼마나 그들의 마음속에 큰 감격이 일어났던지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만큼 감격이 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속에 이러한 신앙의 감격들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아가고 있지만은 별로 감격이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대학에 입시에 성공하면 감격이 일어납니다. '야, 내 아들이 대학에 합격을 했구나! 참 좋다!' 이런 감격들이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사들인 이 주식 값이 폭등해 가지고 막 뛰어 올라갔다! 얼마나 좋아 가지고 팔짝 팔짝 뛸 겁니다. 그만큼 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일이 이렇게 잘 되어 나갈 때는 감격이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감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얼마나 힘쓰고 노력을 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감격! 이 감격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 감격 없는 신앙이 되면 무 덤덤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차갑고 냉냉한 그런 상태로 변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감격 없이 살아가는 라우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차웁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로다' 여러분 이것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너희들이 미지근하여 차웁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그러면서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최고의 저주가 그들에게 쏟아 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회복을 해야 되겠습니다. 세상과 육신 속에 빠져서 더 이상 헤매지 말고 실제적인 감격의 축복! 진짜로 내가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감격이 내 속에 있느냐! 이 사실이 되어질 때에 우리의 영도 살고 우리의 육도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제목을 '감격이 있는 신앙생활'이다. 이렇게 제목을 잡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감격적인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 그래서 오늘 감격 있는 신앙 생활이 어떤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여러분 속에 구원의 감격을 꼭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4절과 5절입니다.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했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러분 이 사실을 진짜로 믿으십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0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로다 전에는 너희들이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감격,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세상에 나보다 훌륭하고 똑똑하고 잘 난사람, 더 많이 배우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다 마다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초라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순간, 순간 이 감격이 터져 나오더라 구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이 땅을 살아가면서 무엇에 감격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여러 가지 조건들을 봐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가장 근본적인 감사, 가장 소중한 감사는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이게 여러분 속에 터져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씩 이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옵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축복 속에 들어왔습니까! 그래서 다윗 같은 사람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내심을 감사합니다.' 이런 감격을 하나님께 찬송을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 늘 기쁨이 충만하십니까! 늘 감격이 일어나십니까! 하나님 어쩌다가 내가 이런 축복 속에 들어왔습니까! 이런 감격이 계속해서 일어납니까! 신명이 33장 29절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여기에서 분명히 말씀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전혀 자기 것이 없습니다. 전혀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인도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인도해 주셨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감격을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금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구원의 감격을 놓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바쁘게 돌아갑니다. 또 세상에 빠져서 완전히 피멍이 들어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며 사는데, 이 구원의 비밀, 이 감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점점 세상과 육신 속에 빠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자녀, 이 구원의 감격을 꼭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입니다.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감격을 가장 확실하게 누릴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이 예배드리는 시간입니다. 왜냐? 이 예배시간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선포되는 시간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 성취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23절에 보시면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을 때 TV앞에 빠져있는 이런 사람을 찾지 아니하십니다.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등산을 즐기는 그런 사람을 찾지 안으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낮잠 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여러분 속에 신령과 진정으로 여러분의 중심을 드려서 예배드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감격이 있는 성도! 그 성도를 하나님은 찾으신다! 했습니다. 이 사실이 되어 질 때에 최고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됩니다. 생명 걸고 신앙을 지켜 나갔던 그 초대교회 있죠. 그 초대교회 신앙으로 그렇게 돌아가야 됩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의 예배를 지켰습니다. 화형을 당하고 맹수들의 밥이 되고 십자가의 형틀에 매여 죽임을 당해 가면서도요. 계속해서 그들은 이 예배를 소중히 하고 생명을 걸고 이 예배시간에 참석을 했더랬습니다.

루마니아에 어떤 처녀가 하나 있습니다. 이 처녀가 예배를 드렸다는 이유로 결혼식 날에 체포가 되어졌습니다.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그 결혼식에 주인공이 되어 졌다! 얼마나 축복된 시간입니까! 그런데 그때당시 루마니아는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그런데 예배드렸다는 이유 때문에 결혼식 날 신부가 하얀 드래스를 입고 수갑에 채였습니다. 그리고 그 공산당원들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끌려가면서 마지막 남긴 말이 뭐냐하면, '나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비록 육신의 결혼은 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왜? 처형을 당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끌려가는 그 마당에 중요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영원하신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진정한 예배의 감격이 그 속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 인생의 운명이 어디에서 갈라집니까? 바로 예배라 볼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인과 아벨이 운명이 어디에서 갈라졌습니까? 예배에서 갈라졌습니다. 한 사람은 피의 언약을 드렸습니다. 한 사람은 전혀 그렇지 못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피 언약을 드린 아벨은 영원한 축복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어떻습니까? 영원한 멸망과 저주 속에 빠져 갔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 때에 우리가 예배드린다고 다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앉아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뭐 주일 대예배 한시간만 참석하면 되지 않느냐! 뭐 그렇게 시간 바치고 정성 바치고 돈 바치고 그렇게 하느냐! 뭐, 주일 대예배 딱 한번 참석해 준 것도 감지덕지해라!' 그런 식으로 아주 떳떳하게 말하는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드리는 이 장소에 앉아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내 속에 참된 예배의 감격이 있느냐! 이게 되어져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내가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못난 죄인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왔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여러분의 가슴에 뜨거운 불이 쏟아 오를 수 있는 그런 감격... 이게 안 되어지면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이 자리에 앉아 계셔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진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이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까! 내가 진짜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이 사실이 안 되면요. 여러분들이 2시간, 3시간 이 자리에 앉아 계셔도 하나님하고는 완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참된 구원의 감격! 그러면서 예배의 감사가 함께 여러분 속에 터져 나와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이 말만해도 여러분의 가슴이 뜨거워지십니까! 그리스도라는 이 말만 들어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십니까! 어느 순간에 인가 이런 감격들이 사라졌습니다.

처음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가슴이 북받쳐 오르고 그러면서 마음에 감격이 일어났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여기에 모든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런데요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아무리 그리스도라는 이런 말을 들어도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지, 그냥 이 자리에 나왔지!' 그런 마음으로 지금 자꾸만 변질되어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식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과의 예배, 이 예배를 꼭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성도들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힘을 쓰고 노력을 해도 아무리 여러분들이 똑똑하고 훌륭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떨어지면 그 인생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금요일 메시지 때에 '영적 침체'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이 침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침'이라는 말은 가라앉는다는 말입니다. 침전! 깔아 앉는다는 말이거든요. 또 '체'라는 말은 막힌다는 말입니다. 체증! 교통체증이 났다는 말은 차들이 막혔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가 음식을 먹었을 때에 체했다는 말은 위에 막혔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침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라앉고 막혔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실패가 찾아옵니다. 비록 세상 적으로는 좀 못나고 세상 적으로는 좀 부족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면 그 인생은 삽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 적으로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 영적인 이런 관계가 무너지면 그 인생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라앉고 막혔다는 말은, 영적 침체가 되어 졌다는 말은 지금 이 순간 예배가 안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 예배가 되고 있습니까! 예배가 되고 있다는 말은 그냥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진짜로 하나님을 향해서 내 마음에 문이 열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귀에 들려 지십니까! 영적으로 침체가 되면요.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뭔가 영적으로 침체가 되어 졌을 때에 여기에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 졌을 때에 여기에 큰 문제가 이제 몇 가지 나타나는데 그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배가 지겨워집니다. TV볼 때에는 2시간, 3시간 아무런 문제없이 다 봅니다. 또 좋은 책이 있으면요. 네댓 시간 금방 지나갑니다. 친구들하고 어떤 계모임이 있으면요. 뭐 5시간, 6시간 하루종일 놀아도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주일 대예배 한시간, 이 예배는 어떻게 그렇게 지겨운지! 어쨌든 이 한시간 예배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시계 늘 한 네댓 번 정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고 빨리 좀 안 마치나! 무슨 놈의 설교가 저렇데 기냐! 찬송도 왜 저렇게 오래 하느냐!' 그래가지고 얼마나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집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지 평안해야 되는데... 그렇죠. 나가야지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내가 심각한 문제가 왔다는 말이거든요. 어쨌든 영적으로 침체가 되어지고 이 예배가 안될 때에 첫 번째로 나타나는 현상! 반드시 예배는 지겨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징은 찬양이 사라집니다. 한 3절까지 있는 것은 그런 대로 이제 괜찮은데 5절까지 있으면요. '누가 이렇게 5절까지 지겹게 지어 놓았느냐!' 여기다가 사회자가 좀 은혜가 되어 가지고 '한번 더 부릅시다!' 하면은 때려죽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듭니다. 혹시 그럴 때 없습니까? 웃으시는 것 보니까, 좀 그런 경험들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옛날에 그 다락방 초창기 때에 우리 예배에 우르르 몰려갔지 않습니까! 한시간, 두시간 그것도 막 복잡한 자리에 앉아 가지고 얼마나 찬송을 오래 불렀습니까! 그때 솔직히 그런 감정이 들더라 구요. 무슨 시간을 이렇게 많이 가지느냐! 이래가지고 찬송도 안 부르고 엉뚱한 생각도 하고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에 대한 감격이 사라지면요. 찬송가 5절까지 부르는 것도 힘들고 '한번 더 부르자!' 그러면요. 막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그런 충동도 들고 하여튼 예배가 안 되면 찬양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가대원들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만은, 참된 예배의 감격 없으면요. 찬송을 불러도 덤덤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은혜도 안 되죠. 내 자신도 문제가 오죠. 그러니까 찬송을 하고도 영적인 더 큰 문제가 내 자신에게 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예배의 감격이 있느냐! 그러면 찬송이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용솟음 치게 되어 있습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를 늘 찬송하겠네' 이 사실이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예배의 감격이 떨어지면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수표는 막 왔다 갔다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가면 어떻게 해야지...' 온갖 구상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귀에는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상 지식은 들어오고 말씀은 들어오지 않습니까! 내 영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현상입니다. 세상 것 다 던져두고 하나님 말씀 단 한마디라도 여러분 속에 진지하게 제대로 들려지면, 그 인생은 살아납니다. 식었던 영이 살아나고 육적인 힘을 얻고 모든 세상살이가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살기에는 너무나도 바쁜데 전혀 귀에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 그런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이 들려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가슴을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기도가 안됩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실 때에 단 5분이라도 집중적으로 기도가 되어졌습니까?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참된 예배의 감격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5분을 집중 못합니다. 아니 단 1분이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진지하게 기도가 되어진다! 그 성도는 어디에 갔다 놓아도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안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예배의 감격이 안 되면 감사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예배가 지겨워지죠. 찬양이 사라졌습니다. 말씀이 전혀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여기다가 기도는 아예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감사와 감격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진지하게 여러분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내가 지금 예배가 바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말씀이 들려지고 찬송이 확 터져 나오고 그러면서 뭔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이 기도의 역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영적 침체현상!' 절대로 내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예배를 통해서 더 큰 감사와 감격이 여러분 속에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입니다. 기도의 감격을 꼭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왜 기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분명히 기도해야 되는 줄 알고 또 기도는 주님의 분부고 그래서 기도해야 된다는 그런 마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도가 되지 않습니까 기도가 안 되는 이유! 왜, 그렇습니까? 대개의 경우 '내가 게을러서 기도를 못한다'는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이 말은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아니 목사님 내가 게을러서 기도가 안됩니다!' 그래서 이제 갖다 붙이는 말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도다!' 하여튼 뭐 같다 붙이는 데는 명수입니다. 잘 붙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게을러서 기도를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말이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언뜻 들어보면요. 지극히 정상적이고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을 해 보시면 게을러서 기도 못한다는 말은 순 거짓말입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사실은 게을러서 기도 못하는 것이 아니고 교만해서 기도를 못하는 겁니다. 교만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쉽게 말씀을 드리면요. 기도 없이도 내 자신 스스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교만입니다. 영적 교만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한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배짱 좋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기도 안하고도 살수 있는 사람! 진짜 제일 뻔치 있고 제일 배짱 좋은 성도가 누구냐? 기도 없이도 살아 갈 수 있다는 사람!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인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은 진짜 배짱 좋습니다. 무슨 베짱이 그렇게 좋아 가지고 그렇게 기도 안 하십니까!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단 5분이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내 중심을 드릴 수 있는 이런 기도가 되어지고 있습니까? 이 기도가 되어져야지 영적으로 우리가 힘을 얻게 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험난합니까! 창세기 3장이라는 이 현실이 기도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세상에 현실입니다. 그런 속에서도 전혀 기도 안하고, 또 기도 안 해도 전혀 마음에 가책도 없고 그냥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문제가 오고 어떤 큰 사건들이 생겨났을 때에 그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도의 능력이 우리 속에 차고 넘칠 때에 그때부터 올바른 신앙생활이 되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습니다. 아니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하는 말이 '당신이 죽고 더 이상 살지 못할 때니까 당신의 집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끝장나는 그런 판국에 지금 나왔습니다. 만일입니다. 만일, 천사가 여러분에게 나타나 가지고 '누구야, 너는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지 못한다! 자녀들에게 유언하고 또 집안에 재산 정리하고 이제 나하고 하나님께 가자!' 이래 되어졌을 때에, 쉽게 말하면 사형 선고가 떨어졌을 때에 여러분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그렇게 되시겠습니까! 그래서 뭐 얼마든지 아멘 할 수 있는데, 우리 젊은 사람들은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형선고가 떨어졌을 때, 그때에 나타나는 반응 거의 다가 '하나님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래서 히스기야도 대성 통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한 2년 반전입니다. 그때에 이제 저희 집사람이 난소 암이라는 그런 판명을 받았을 때에 참 그때에 그 기분이 말로다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내가 죽는다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만은 막상 옆에 있는 집사람이, 아내가 죽는다고 했을 때에 그때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그 마음의 상태... 너무 답답하더라 구요. '하나님, 왜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 가정입니까! 왜 내 아내입니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요.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구요. 마찬가지로 히스기야라는 이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던지 하나님 앞에 대성통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이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엎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벽을 향하여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벽을 향했습니다. 이 벽을 향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더 이상 세상 바라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사람 바라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권력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외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자 없으십니다. 하나님 나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전심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열왕기 하서 20장 5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분명히 말씀을 했죠.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여러분 히스기야처럼 눈물 있는 기도가 있으면 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각박하고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바라보는 이 눈물의 기도! 진정으로 내 가슴속에서 쏟아 오르는 이 눈물의 기도가 있었을 때에 모든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답답하고 어려운 일들이 있으십니까!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까! 내가 내 기도를 들었고 내 눈물을 보았노라 눈물이 있는 기도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아십니까! 야베스가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가 얼마나 괴로웠습니까! 얼마나 답답한 현실에 빠져 있었습니까! 그런데 이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눈물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드린 이 기도가 되어 졌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 속에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기도의 감격을 꼭 회복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의 감격을 꼭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요나서 2장에 보시면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왕을 위시해서 백성들이 수많은, 12만 명이나 되는 그런 니느웨 백성들이 한꺼번에 다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장면을 누가 봤습니까? 요나가 봤습니다. 그때에 이 요나의 심정이 어떠했습니까! '참, 감사하구나! 어떻게 저런 불신자들, 우리가 개같이 취급을 했던 저 니느웨 백성들이 이렇게 돌아올 수 있느냐!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뜨거운 감격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그런데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에 요나의 마음 문이 완전히 닫혔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 원수나라, 니느웨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래가지고 성경에 보시면 요나가 심히 분하고 화를 냈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요나의 마음속에 전도와 선교라는 이런 감격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현장에서 불신자들이 돌아왔을 때에 '아멘 할렐루야! 진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 저주와 재앙에서 건져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이런 북 받히는 감격이 여러분 속에 일어나야 됩니다.

불신자가 돌아오던지 말든지, 예수를 믿든지 말든지, 그냥 그렇게 버려 두시면 참된 전도자의 감격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현장에 들어갔을 때에 진짜로 믿지 않는 그런 불신자들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그런 삶에 감격이 여러분 속에 일어날 때에 참된 사명자로 쓰임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전도의 감격이 없으면, 선교의 감격이 없으면 인생의 큰 위기가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의 뜨거운 감격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 사실! 진짜 우리가 안타까워해야 됩니다.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이런 충만한 감격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통분하고 땅을 쳐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네 가지 감격 꼭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구원의 감격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이것 이상으로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예배의 감격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예배의 현장 속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생명이 지금 여러분 속에 역사 하는 시간, 이게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의 감격을 회복해야 됩니다.

세 번째는 기도의 감격입니다. 눈물이 있는 기도가 있습니까! 언약 잡은 기도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네 눈물을 보았고 네 기도를 들었느니라 네 근심을 내가 없게 하노라!' 중요한 응답의 역사가 여러분 속에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사명! 전도와 선교의 감격! 이 네 가지 사실이 되어질 때에 그 성도는 최고의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왜 그렇게 차갑고 냉냉 합니까? 여러분 자신을 한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 속에 진짜로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감격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 차갑고 냉냉 해져 있습니까! 싸늘하게 식어져 있습니까! '하나님 오늘 이 순간 내 마음속에 뜨거운 감격이 일어나게 하시고 전도와 기도와 예배와 구원의 감격이 내 속에서 용솟음치게 하옵소서.' 이게 여러분들의 기도 제목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들이 첫 사랑을 회복해라!' 우리가 처음 예수 믿을 때에 얼마나 감격해 있었습니까! '하나님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습니까!' 진짜로 감사합니다. 이런 감격과 그런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이런 감격과 사랑이 자꾸만 식어져 갑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너의 첫 사랑을 회복해라!' 오늘 이 시간, 이 사랑을 꼭 회복하시고 여러분 속에 뜨거운 감격들이 하나님께로 향해서 이렇게 일어날 수 있도록 세밀한 인도 받으시고 또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격

☞ 430년 동안 애굽에서 지내며 고통을 겪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받았을 때 얼마나 큰 감격이 넘쳤겠습니까? 또, 우상을 숭배하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로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받았을 때 얼마나 큰 감격이 넘쳤겠습니까? 이러한 신앙의 감격이 우리 속에도 있습니까?


[2] 감격있는 신앙 생활을 회복합시다.

☞ 오늘날 우리는, 세상 일이 잘 되어 나갈 때는 잠시 감격을 느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감격은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세상과 육신 속에 빠져서 더 이상 헤매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감격있는 신앙 생활을 회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① 구원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 가치없고 보잘 것 없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격하는 모습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사실로 인하여 늘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② 예배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찾아 나서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와 그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을 때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이 열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음성으로 들려졌었는데, 어느 새 영적 침체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예배 시간이 지겹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찬양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까? 감사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것들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③ 기도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교만의 증거입니다. 전 인생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겸손한 믿음이 있다면,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연약을 절실히 느끼며 근심되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간절한 눈물의 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습니다.

④ 전도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 십 이만 명의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그 모습을 보며 감격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요나는 오히려 심히 분해하며 화를 냈습니다. 요나의 마음 속에는 전도와 선교의 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감격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여집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감격, 예배의 감격, 기도의 감격, 전도의 감격이 회복되어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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