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광야 신앙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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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신 11:8)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신 11: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신 11:10)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 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신 11:11)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신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사도행전 7장에 보시면 스데반 집사가 이 모세의 생애를 40년 간격으로, 세 부분으로 이렇게 나누고 있습니다. 애굽의 왕자로서의 40년 생활,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생활, 그리고 마지막 한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영도자로서의 40년! 이렇게 해서 총 세 부분으로, 이렇게 40년 간격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언제 그를 부르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이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에, 다시 말하면 '아주 좋은 환경, 또 힘있고 권력이 있을 때에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이 애굽의 왕자로 있다는 말은 엄청난 힘과 권력이 그 속에 집중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응당히 좋은 환경, 좋은 위치 이런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때에 제대로 쓰임을 받지 않겠느냐? 그런 인간적인 판단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 그렇습니다. 좀 초라하고 부족한 사람보다는 능력 있고, 실력 있고, 또 가진 것도 있고 좋은 위치에 있는 이런 사람들을 뭔가 좀 쓰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이 사람을 쓸 때하고 또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시면, 다윗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이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들을 쭉 읽어보시면 참 재미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이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기 위해서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새의 집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만난 인물이 누구입니까?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속된말로 이 엘리압을 딱 보는 순간에 사무엘이 홀딱 반했습니다. 왜냐하면, 키가 컸습니다. 아주 잘 생겼습니다. 또 너무 용맹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무엘이 엘리압을 딱 보는 순간에 '야, 이 사람 정도면 이스라엘 왕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겠다! 아주 좋은 사람이다!' 그런 판단을 가지고 다짜고짜로 그 머리 위에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왕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머리에 기름을 부어야 되었습니다. 어쨌든 엘리압의 머리에 기름을 딱 부으려고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 손을 막았습니다. '아니다! 그 사람이 아니니까 더 기다리라!'

두 번째 나타난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누구냐 하면 아비나답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아비나답을 보는 순간에도 사무엘이 반했습니다. '저 사람 같으면 이스라엘 왕으로서 손색이 없겠다!' 그렇게 해서 이 아비나답의 머리 위에 또 기름을 부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또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아들이 왔습니다. 그 세 번째 아들의 이름이 삼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머리 위에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이제 지나가시는데...

그런데 사무엘상 16장 7절에 보시면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무엇을 보신다 구요? "중심을 보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 기준하고, 사람이 보는 그 기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의 외모를 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 그 사람이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느냐?' 그 사람의 인간적인 어떤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쓰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 사람이 보는 기준! 전혀 그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애굽에 있는 화려한 모세를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하던 너무 초라하고 너무 부족한 그 모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뒤에 '무디'라는 사람은 이 모세를 두고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모세는 처음 40년 동안에 자기 자신이 아주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40년 동안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존재로 알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40년 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권능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애굽에 왕자로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이 아주 대단한 존재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이 왕자라는 자리는 왕 다음가는, 또 더 나아가서는 왕이 죽고 나면 그 대권을 이어갈 수 있는 너무나도 중요한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서 40년 동안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굽의 왕궁이라는 이 현실하고 미디안 광야라는 이 현실은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 왕궁이라는 현실이 어떻습니까? 손만 벌리면 아무것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최고로 높은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마음먹은 데로, 자기가 생각했던 데로 무엇이든지 손만 벌리면 모든 일들이 착착 진행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신하들, 수많은 백성들이 모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너무 좋은 그런 환경입니다. 여기에 반해서 미디안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황량합니다. 쓸쓸합니다. 답답합니다. 불편합니다. 그리고 전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런 양들이 우글거리는 그런 현실...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하고 답답한 그런 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모세가 이러한 미디안 광야로 쫓겨났습니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러한 미디안 광야로 몰아 넣었겠습니까? 아무런 부족함도 없이, 그리고 풍족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잘 살고있는 모세를 왜 광야로 이렇게 집어넣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다른 교육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물론 애굽의 정치도 필요했습니다. 애굽의 병법, 법률, 모든 지식이 다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모세에게 광야 교육도 함께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광야 40년 이 교육을 통해서 온전한 자로 세워졌습니다. 언 듯 보면 광야 40년 생활이 모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실패한 그런 생애인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애굽의 환경은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손만 벌리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애굽에 살 때는 '야, 성공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미디안 광야로 쫓겨났을 때에 '야, 모세의 인생도 끝났구나! 저렇게 황량한 곳, 그렇게 쓸쓸하고 답답한 곳에서 무슨 인생을 살수 있겠느냐?' 그래서 드러난 이런 상태를 봤을 때는 뭔가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났을 때에, '야, 실패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세는 이 광야 40년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여러분 보십시오. 모세가 왕궁에서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어디서 만났습니까? 광야에서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말씀을 했습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보시면, '광야에서 그를 만나시고' 했습니다. 결국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모세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온전한 자로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 어떻습니까? 사울의 왕궁에 살았을 때는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수시로 죽이려고 하니까요. 우리가 언 듯 보면, '야, 다윗이 왕궁에 살았을 때에 참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의 왕궁에 살 때는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틈만 나면 창을 들어서 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환경 속에서 다윗이 내어 쫓겼던 장소가 뭐냐하면, 그게 유대 광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유대 광야에서 다윗이 중요한 것을 체험합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입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러면서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왜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이 비록 유대 광야로 내어 쫓겼습니다 만은, 그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촉박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답답한 그런 환경이 광야라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대 광야에서 임마누엘이라는 최고의 축복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이 야곱이 형의 눈을 피해서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도망가다가 엎드려서 기도한 곳이 바로 그때 당시에 유대 광야입니다. 그 유대 광야는 사나운 맹수들이 우글거립니다. 사람들이 나타나서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그런 위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힘들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야곱도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런 중요한 축복의 역사가 따라 왔다는 것입니다. 비록 쓸쓸하고, 황량하고, 답답한 벌판이지만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게 되는 이런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내어쫓긴 후에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현실은 참으로 답답했을 것입니다. 왕궁 안에서는 손만 벌리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명령만 하면 착착 진행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막상 이 광야에 들어와서 보니 모든 것이 다 불편합니다. 인간적으로 쓸쓸하고 외롭고 답답합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양들과 함께 무려 40년,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모세가 조금씩, 조금씩 깨달았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절대로 내 힘으로는 되지 않는구나!' 처음에는 자기 힘으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애굽의 왕궁에 살 때는 자기의 권력 자기 힘을 가지고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자기 동족이 핍박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주먹을 가지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만 해도 얼마든지 자기의 힘이나 완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오면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깨닫습니다. '이 세상은 절대로 내 힘으로 살아갈 수가 없구나! 하나님 바라보지 못하면 절대로 실패하게 되어 있구나!' 이 사실을 광야에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이 광야에서 하나님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애굽의 왕궁에서는 자기의 힘만으로 살아 왔지만, 이 광야에 들어와서 배운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세상을 이길 수 없구나! 절대로 세상 속에 내가 살아갈 수 없구나!'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 중요한 원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 세상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고, 지식을 쌓아가고, 권력을 얻으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그렇게 말들 합니다. 심지어는 우리 교회 안에 우리 성도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삶이 내가 사업에 성공했다고 다 되었습니까? 물질을 많이 얻었다고 성공을 했습니까? 높은 위치 권력을 얻었으면 그게 진짜 성공입니까?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 만나지 못한 인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기 없느니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성도!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잘 압니다. 이 바벨탑 시대를 보십시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주장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과 대를 쌓아 가지고 높이 한번 올라가 보자!' 그 말은 '하나님의 권위에 한번 도전해 보자!' 더 궁극 적으로는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우리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래가지고 그들의 쌓았던 성이 뭡니까? 그게 바벨탑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성공이 참된 성공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그들이 쌓는 성을 한번 보자!' 그러면서 그들에게 강림하셨더라! 쉽게 말하면 '그래 잘하는구나! 그래 한번 높이 올라와 봐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후∼' 하고 입김 한번을 불고 나니까, 그 높이 쌓아 올라갔던 바벨탑! 일순간에, 순식간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땅에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되어지는 경우도 사실은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문제가 오고, 결국에는 무너져 내려앉는 이런 현실이 찾아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이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광야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철저하게 하나님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런 모세에게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축복이 찾아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광야라는 곳이 그러면 늘 쓸쓸하고, 늘 답답하고, 늘 부정한 곳입니까? 우리의 인간적으로 광야다! 그것은 '외롭겠다. 쓸쓸하겠다. 참 불편하겠다.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알고 보면 이 광야라는 현실이 그렇게 부정한 곳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생활이 어떠했습니까? 그야말로 풍성한 그런 축복을 누렸습니다. 불기둥을 체험하고, 구름기둥을 체험하고, 만나를 먹고, 메추라기를 먹고, 생수를 먹었던 곳이 어디입니까? 그게 광야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갔을 때에 밤에 너무 추웠습니다. 일교차가 심하기 때문에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고, 그리고 낮에는 막 영상 40도 50도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춥고 덥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밤에 추웠을 때는 하나님께서 불기둥을 세웁니다. 따뜻하게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또 낮에 태양이 막 내리쬐면 하나님께서는 구름 기둥으로 쭉 덮어놓습니다. 그러면 시원하게 그렇게 또 그들이 인도를 받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에,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내려주었습니다. '하나님 과자가 먹고싶습니다!' 그때에 만나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이 마를 때는, 반석만 치면 생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불기둥, 구름기둥, 만나, 메추라기, 반석! 이 모든 것들이 광야 속에서 진행이 된 엄청난 축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만나를 보십시오. 이 만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는 먹지를 못했습니다. 기름지고, 달고, 맛있는 이 과자 그토록 먹고 싶었던 이 만나는 보십시오. 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시점에서 완전히 중단! STOP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맛있는 과자는 어디서 먹었습니까? 광야에서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세 절기 있죠.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이 모든 절기들이 광야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애굽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맥추절은 뭡니까? 애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저놈들 우리 땅에서 벗어나서 광야로 들어서는 순간에 다 굶어 죽을 것이다! 맛 좀 봐라!'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서서 다 죽었습니까? 그 광야 40년 동안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보리를 거두어서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보리를 거두어서 저장까지 했습니다. 이게 수장절입니다. 그러니까 맥추절, 수장절! 이런 엄청난 절기를 경험했던 그 현장이 어디냐? 그게 광야라는 현실입니다. 단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만 제대로 바라보면 가장 풍성한 곳이 그게 광야라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살았습니다. 좀 현실적으로 뭔가 풍성하고, 또 일들이 잘되고 그러면 우리 신앙생활이 다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 모세처럼 광야교육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광야교육에 제일 큰 주제가 뭡니까? '하나님 제대로 바라봐라! 그러면 가장 풍성한 삶이 될 것이다!' 그게 광야라는 현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그 축복들이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 만나, 메추라기, 이 생수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다가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만 제대로 바라보면 가장 풍성한 축복이 광야라는 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광야와 같은 세상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물도 없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추위가 닥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더울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에 자꾸만 원망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인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그런 일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님만 제대로 바라본다면 여기에는 모든 축복이 함께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이 땅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리고 사단이 아무리 악날하게 역사를 해도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바라보는 그 성도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자꾸 우리 성도들이 세상 바라보고, 육신 바라보고, 내 자신 바라보고, 육신 바라보고, 이 엉뚱한 것을 바라봐서 문제죠. 제대로 하나님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전혀 염려가 될 것이 없습니다. 이게 우리 신앙에 가장 중요한 원리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물질 때문에 그리스도 바라보기가 힘드십니까? 자녀들 때문에 그리스도 바라보는 힘이 자꾸만 떨어지십니까? 어떤 분들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지금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언제까지 하나님 바라봅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구요.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이 세상에 언제까지 하나님만 쳐다봐야 됩니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언 듯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늘 바라보지 말고 그냥 열심히 일을 해 가지고 먹고살아야 안 되느냐! 얼마든지 인간적인 그런 판단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먹고살기가 힘들수록 하나님 바라보십시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우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방으로 아무리 빽빽이 둘려 쌓여도 우리가 바라볼 것은 하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로 볼 때에 여기에 모든 문제는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핑계대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제대로 바라보신다면, 그리스도만 제대로 바라보신다면 여기에 세상이 알지 못하는 큰 능력과 큰 축복이 여러분 속에 반드시 임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이제 송현교회 온지 만 10년째 들어섰습니다. 그때에 이제 처음 들어오면서요. 저희집사람하고 같이 이제 중요한 결단을 하나 했더랬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여기에 들어오면서 전임 교역자로 왔으니까, 본격적으로 이제 교역자 생활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뭔가 하나님 좀 제대로 바라보고 뭔가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중심이 서더라 구요. 그래서 이제 집사람 불러놓고 '당신 당장에 병원 근무 사표 내라!'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영대 병원에 이제 간호사로 뭐 오랬동안 그렇게 근무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것 다 치우고 자꾸 우리가 물질 때문에 거기 매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이 복음은 전하는 일에 좀 해가 된다면 그것도 잘못 되었다! 그래서 결단하자!' 이래가지고 사표를 쓰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표를 쓰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간호사로 있으니까 아주 그 수입이 많더라 구요. 저는 그걸 몰랐는데 나중에 결혼을 해 가지고 경력이 쭉 쌓이고 하니까, 한 달에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돈이 거의 뭐 한 200만원 가까이 되더라 구요. 10년 전에 아주 많은 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른 동기들에 비해 가지고 좀 풍족하게 썼습니다. 친구들하고 이제 같이 식사를 하러 가면요. '야, 너희 마누라 돈 많이 버니까, 네가 내라!' 그래가지고 밥도 제가 사고 이래가지고 또 어쨌든 뭐 그런 좋은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물질가지고 자꾸만 내가 생각을 하고 염두에 두면 이 제대로 사역을 못하겠더라 구요. 그래서 '아무리 답답해도 한번 끊어보자!' 이래가지고 사표를 쓰도록 해 가지고 결단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송합니다! 처음에 제가 왔을 때에, 처음 사례 받았을 때에 50만원 받았습니다. 50만원 받았을 때에 그때에 이제 김균태 목사님 계실 때에 물어봤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서는 교역자들 어떻게 헌금 생활을 합니까? 한번 물어봤거든요.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십에 삼조하면 되지!' 이러고 한마디로 끝나요.

그래가지고 '그런 갚다!' 싶어 가지고 50만원 받아 가지고 5만원 십일조, 5만원 십에 이조, 5만원 감사헌금 15만원 떼었습니다. 그리고 5만원은 '내가 책은 사봐야 된다!' 그래가지고 또 5만원 떼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30만원 가지고 그렇게 이제 집안 생활을 쭉 꾸려 나가는데, 이 네 식구가 그게 이제 됩니까! 아무리 계산을 해도 계산이 제대로 안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든든하게 서 있습니다. 지금은 뭐 너무 풍족하게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쨌든 하나님 바라보는 이 훈련만 바로 되어지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굶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광야로 들어서면서 이제는 굶어 죽었다. 이제는 우리의 인생도 완전히 끝났구나 그렇게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로 들어가는 순간에 애굽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의 풍성한 삶이 그들에게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이 광야 같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뭘 체험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체험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풍성하심은 인간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진짜로 내 삶에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만을 정확히 바라볼 때에 거기에 모든 삶에 원동력이 여기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번도 굶은 적이 없습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순간, 순간 물질로도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더라 구요. 그렇다면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삶을 인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믿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옛날에 연속극 보니까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제목이 있는데요 성도는 무엇으로 삽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모든 삶에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바라볼 때에 여기에 온전한 축복의 역사가 우리 속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 바라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 땅에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살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이 사실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이 본문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그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설명을 합니다. 특별히 9절에 보시면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는 땅 가나안땅입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을 뭐라고 설명했느냐 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 했습니다. 그 말은 너무 좋은 땅이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유대 사람들이 살았던 그 땅,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그 땅이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까? 아닙니다. 너무 척박 지고, 곡식도 제대로 되지 않고, 물도 제대로 없는 그런 땅인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향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이유를 11절, 12절에서 설명을 합니다.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신 11:11)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분명히 말씀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더 중요한 사실은 12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이요. 더 나아가서는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그 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바로 바라볼 때에 살아갈 수 있는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이 원리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광야라는 현실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현장입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셔야 됩니다. 이 땅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습니다. 광야같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만 제대로 바라볼 때에 이 광야는 최고의 축복의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 광야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그 첫 번째는 뭐냐하면, 이 광야에서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의 제일 큰 특징이 뭡니까? 제일 큰 영적 문제! 조급합니다. 절대로 잘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신호등이 이렇게 있으면요. 이 막 불이 깜빡, 깜빡 하는데도 막 달려가고, 또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막 후다닥 뛰어가고, 어쨌든 제일 기다리지 못하는 그 민족이 누구입니까? 그게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늘 모세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모세가 광야에 들어갔을 때에 얼마나 조급합니까!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무려 40년입니다. 그 긴 세월동안 홀로 쓸쓸하게 지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치워버려라! 뛰어나가자!' 이래가지고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그 속에서 계속해서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이루어 질 때까지 계속해서 그 광야에서 기다려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이 기다리지 못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몇 사람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이 아브라함이죠. 하나님께서 분명히 네게 아들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디서 난다고 했습니까? 사라의 몸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사라!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이 나오지 않네요! 그래서 기다림에 지친 이 아브라함이 무슨 편법을 사용합니까? 하갈을 불러들이고 그 하갈과 동침하고 그래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물론 아들은 얻었습니다. 아들은 얻기는 얻었습니다 만은, 이삭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조급해서 기다리지 못했다가 영원한 언약의 아들인 이삭을 낳아야 되는데 이스마엘을 놓습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중동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이 시간표를 제대로 기다리지 못하면 반드시 문제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한사람 있죠. 야곱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야곱이 출생할 때에 분명한 예언을 했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원리에 따르면 야곱은 가만히 있어도 장자의 기업, 모든 축복이 함께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기다리지를 못했습니다. 빨리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은 그런 조급함 때문에 결국에는 기다리지 못했다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얼마나 고통을 겪습니까!

모세는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만나 주실 때까지 조용하게 기다렸습니다. 이게 축복을 받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일은 진행하실 때에 조급할 수가 있습니다. 빨리 성공하게 싶습니다. 빨리 무슨 일을 이루어 놓고 싶은 그런 충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고 기다리십시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모세가 광야에서 뭘 배웠습니까? 묵상의 비밀을 배웠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의 비밀입니다. 이 모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뭘 했겠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원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런 척박한 땅에 보냈습니까! 하나님 나는 쓸쓸합니다. 답답합니다. 불편합니다. 왜, 나를 이곳으로 집어넣었습니까!' 처음에는 하나님께 원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모세가 무엇으로 들어갑니까? 묵상 속에 들어갑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는 그 기도의 현장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에는 이런 기다리고 기도했던 모세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광야입니다. 때로는 갈등도 옵니다. 때로는 문제도 옵니다. 심지어는 밥도 먹기 힘든 그런 형편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만 제대로 배운다면 이 광야는 충분히 풍성한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모세는 실수 투성이였습니다. 모순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가라고 했을 때에, '하나님 나는 말도 못하고 입도 뻣뻣하고 혀도 둔합니다!' 말 그대로 말더듬이였습니다. 또 얼마나 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죽어도 안 가겠다는 것입니다. '아론을 붙여줄 테니까 그래도 가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못 갑니다. 얼마나 부정적인 그런 인물이 모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런 모세에게 출애굽이라는 이런 역사를 감당시켰습니까? 모세의 중심 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언약을 잡고 기도하는 이 실제가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들어서 출애굽이라는 큰 역사를 감당케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지금 어렵습니까? 사업이 어렵습니까? 이런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볼 때에 여기에 모든 축복들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모든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이 능력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능력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사실을 믿고 나갈 때에 여기에 풍성한 삶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광야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를 했습니다. 오늘 마찬가지로 여기 앉아 계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십시오. 능력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여기에 이 땅에서의 모든 승리의 비결과 엄청난 축복이 여러분 속에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이 사람을 보는 눈

☞ 스데반 집사님은, 모세의 생애를 애굽의 왕자로서의 40년,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40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때는, 힘있고 권력있는 애굽의 왕자로 있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쓸 때와 하나님이 사람을 쓸 때의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화려한 모세를 부르시지 않고,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는 초라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2] 모세를 광야로 몰아넣으신 이유

☞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몰아넣었겠습니까? 애굽의 교육과 정치를 배운 모세에게 또 다른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 왕궁에서 빠져나와 광야로 달아났을 때, 모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모세는 조금씩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돈을 벌고 지식을 쌓고 권력을 가지고 명예를 얻는다고 성공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결국에는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성도도 결국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오직 철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 모세에게 출애굽을 이끌 수 있는 위대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3] 오직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 광야라는 현실은 사실 그렇게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풍성한 것들을 누렸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수 있었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의 축복들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르게 바라보면 가장 풍성한 곳이 광야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들이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축복이 따라옵니다. 사단이 아무리 역사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하나님의 풍성하심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신양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 모세는 광야에서 '기다림'과 '묵상(기도)'의 비밀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기다릴 때,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철저히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것을 주장하며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려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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