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앙
2004-05-14 00:00:00
관리자
조회수 32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신 6:1)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신 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우리가 상대방에게 사랑의 고백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할 때에 그 말 한마디에 따라서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하는 것하고, '당신도 사랑합니다!' 하는 것하고 여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고백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오직 당신 내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결혼해 주십시오!' 이렇게 되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칫하면 뭐가 날아올 수 있습니다. 이 상당히 우리가 조심을 해야 되겠죠.
복음성가에도 보면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너 어느 곳에 있던지 주만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그런데 이것을 바꾸어 가지고 '주도 바라볼찌라!' 그렇게 되어진다면 상당히 문제가 오겠죠. 딱 한마디 차이입니다. 한 단어차이! '주만, 주도!' 그런데 그 말 한마디에 따라서 우리에게 느껴지는 어떤 감동은 완전히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 속에서 얼마만큼 유일 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분들의 삶 속에 유일신앙이 얼마나 자리를 잡고 있느냐? 거기에 우리 자신들에 믿음의 분량이라고 볼 수가 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이것이 얼마나 되어 있느냐에 따라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서 이러한 유일 신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이 사실이 되어져야 되는데, 어느 순간에 인가 세상이 지금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인가 자꾸만 우리의 욕심이나 우리의 정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유일 신앙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왜 갈등이 일어납니까? 저는 생각에 이러한 신앙의 갈등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지면 사실상 모든 갈등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목사님, 먹고살아야 되고 돈도 필요한데 오직 그리스도 그래서 되겠습니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가 안되어서 그렇죠. 진짜로 제대로 복음이 되어지고,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지면, 먹고사는 모든 문제는 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우리의 삶 속에 참 복음, 이 그리스도가 되어지면 먹고사는 모든 문제들은 붙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오직 그리스도가 안되어지니까 자꾸만 갈등은 갈등대로, 또 세상 살아가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지금 신앙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고 어렵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설교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큰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질적으로 따라붙었던 것! 그게 뭐냐하면 불신앙입니다. 참 이스라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완전히 망하는 그 순간까지, 그때까지 버리지 못했던 것이 뭐냐하면, 그게 그들의 불신앙입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어서 망했습니까? 불신앙 하다가 망했습니까?' 그렇죠.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역사를 가만히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어서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만나로, 메추라기로, 생수로...
어떤 면에서 다른 곳에서 살 때보다 사실은 먹고사는 문제는 더 풍성하게 내려 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만나가 수두룩하게 앉아 있습니다. 본인이 게을러서 못 먹어서 그렇죠. 조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만나, 메추라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굶어서 죽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뭐죠? 불신앙 하다가, 그들이 40년 동안 철저하게 불신앙 하다가 망했죠. 절대로 굶어서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어 줄 때에, 그 바로 왕이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저놈들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저 광야 속에 들어가면, 거기는 먹을 것도 없고 제대로 살수 있는 곳도 없는데, 다 굶어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로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나, 메추라기, 생수! 하나님께서 풍성 풍성하게 그들의 모든 삶을 그렇게 채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불신앙입니다. 불신앙 하다가 그들이 완전히 망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습니까? 다른 이유가 아니고 불신앙과 더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뭐냐하면, 바로 이 우상숭배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가장 큰 문제가 하나 닥쳐왔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됩니다. 두 가지 다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허용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이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박수, 술객, 무당, 점쟁이를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진멸 해라! 절대로 살려두지 마라!'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사랑을 외치는 하나님께서 다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바로 그 이유는 그들을 살려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이 섬겼던 우상의 세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어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겨야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에게 빠져갑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들이 망하는 그런 표적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너희들은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마라!' 그래서 '박수, 술객, 점쟁이, 모든 무당을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죽여라!'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사실 광야 40년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광야는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습니다. 황량한 벌판이죠. 메말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소망을 둘 수가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면서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죠. 모든 우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알 신상을 위시해서, 몰록, 아스다롯, 아세라, 그리고 또 다곤 이러한 여러 잡다한 우상들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고민의 대상이 뭐냐하면, 바로 이 바알 신입니다. 다른 우상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밀접하게, 그러면서 가장 많이 섬겼던 우상이 뭐냐하면, 이 바알 신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 가나안 정착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완전히 망하는 그 날까지 바알 신은 함께 연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하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양을 키우고, 소를 키우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면서 사회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슨 사회로? 농경사회로!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로 완전히 이제 전환이 되어 졌습니다.
그런데 농경사회로 전환이 되면서 오는 문제가 뭐냐하면, 농사를 지으면 풍요를 기원합니다. '쌀이 잘되고, 또 보리가 잘되고...' 이런 풍성한 그런 곡식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일어난 그들의 우상이 뭐냐하면 바로 바알 신입니다. 이 바알 신은 풍요, 풍성하게 하는 그런 신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민족들이 섬겼던 그 바알 신 있죠, 그 신을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그대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알과의 싸움에서 최고의 절정이 언제냐 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합 시대! 즉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그 아합 시대 있죠. 그때에 이 바알 신이 극성스럽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왕궁 안에 바알 선지 생도를 키우는 그런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그때 당시 얼마나 우상이 난무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이 대목에 대해서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을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 상에 모여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언을 합니다.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여서 머뭇머뭇하겠느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여기서 '어느 때까지...'라는 이 말은 늘 그래왔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딱 중간에 끼여 가지고,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또 어떤 때에는 바알 신을 섬기고, 그래서 싹 눈치를 보다가 어느 곳에 조금 유리하면 하나님께 붙었다가, 때로는 바알에게 붙었다가...
그래서 엘리야가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들이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여서 머뭇머뭇 하겠느냐! 하나님을 택하던지 아니면 바알을 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결단해라!' 속된말로 '하나님도 좋고 바알도 좋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다리 걸쳐서 그렇게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민족 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민족 신으로 섬기고, 그리고 바알은 농사를 지었을 때에 풍요를 기원하는 그런 마음으로 그 신을 섬기고, 그래서 항상 둘 사이에 끼여서 이쪽 저쪽 눈치를 봤던 것이,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불신앙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두 가지를 가만히 보시면 단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유일신앙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불신앙 했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이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우상을 숭배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것을 바라 봤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그들에게 유일 사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들의 실패가 찾아왔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양다리를 걸쳤다가 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청년 유도고입니다. 바울이 말씀을 강론하는데 이 유도고가 어디에 올라갔느냐 하면 창문틀 있죠, 거기에 올라가 가지고 한 다리는 세상으로, 그리고 한 다리는 은혜 받는 장소로... 은혜 받는 장소이면 은혜 받는 장소고 아니면 아예 뭐 나가든지... 그 창문에 끼여 가지고 한 다리는 세상으로, 한 다리는 은혜 받는 장소로, 결국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떨어져서 죽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게 유도고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어정쩡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향해서 나가다가, 그러다가 뭔가 좀 힘들고 어려워지면 또 하나님 찾다가... 그래서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뭔가 좀 깊이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과연 내 자신의 신앙에 본질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까? 때로는 세상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때로는 뭔가 좀 잘못되면 그때서야 또 돌아오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자신들이 약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앙상태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뭔가 하나님께서 막 두들겨 팰 것 같고, 그래서 겁이 나서 제대로 못 가고, 그리고 교회 안에 있자니 뭔가 좀 답답하고, 그래서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지금 이런 모습으로, 어정쩡한 그런 모습으로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이러한 우리 성도들을 향해서, 이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모세가 중요한 선포를 합니다. 특별히 4절에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지금 모세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신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뭐냐하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이 메시지를 듣고 있는 대상들이 누구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2세들이죠.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해야 될 이스라엘 2세들에게 이 모세가 뭐라고 선언을 했느냐 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다!' 유일신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했느냐 하면, '들어라!' 이 '들어라!'하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쐬마'라고 합니다. '쐬마!' 이스라엘이여 들어라! 쐬마! 이 말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고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이 메시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살아난다!' 그래서 '쐬마!' 들으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이 되어졌을 때에 살아났습니다. 유일신앙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을 때에 그들에게 엄청난 축복이 내렸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유일 신앙이 되지 못했을 때에, 자꾸만 세상으로, 육신으로, 우상숭배로, 더 나아가서는 불신앙으로 빠져 갔다는 사실입니다.
이 신명기 서는 모세의 유언적인 설교입니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거든요.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그 가나안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후대들 있죠. 2세들입니다. 이 2세들에게 '너희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르쳐 주겠다! 그 길이 뭐냐하면 유일신앙이다! 오직 하나님, 오직 복음! 이 사실이 되어질 때에 여기에 너희들이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내용이 뭐냐하면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라!' 여러분 이것이 되어졌을 때에 이스라엘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유일 사상이 되지 못했을 때에 그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삶 속에 어느 정도 이 유일 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얼마나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오직 복음과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질수록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복음이 제대로 되지 못한 만큼 자꾸만 갈등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오늘 이 사실이 반드시 확인이 되어져야 됩니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시면 여호수아서 24장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 여호수아서 24장을 읽어보시면 이제 말년을 당한 이 여호수아가 모든 자기네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자리로 불러모으는 그런 역사를 감행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호수아와 더불어서 처음에 막 가나안땅을 점령해 나갈 때는 더 이상 다른 것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서로 정복을 해야 되고 그러니까, 그런 위기와 문제 속에서 전적으로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문제가 왔습니까?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고 어느 정도 평안하게 되었을 때에, 그때에 몰려 들어온 것이 뭐냐하면 우상입니다.
이 여호수아는 이제 세상을 떠나갈 시간이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니까 불안하거든요. 왜냐하면 모든 주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오직 복음, 오직 하나님! 이게 되어져야 되는데, 지금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 몰록, 아스다롯, 아세라, 다곤, 여러 잡다한 이런 우상을 지금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두령들, 모든 대표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선언을 했습니까? '너희들이 아모리 사람이 섬기는 그들의 신들을 택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택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결단해라! 그러나 나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이게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다한 모든 세상 우상에 빠져 가지고,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리로 전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떠나려고 하는 그런 여호수아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너희들이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택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해라! 그러나 나와 내 가정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그때 모든 백성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도 당신이 섬기는 그 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복이 회복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시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한번은 제가 시카고에 전도캠프를 갔을 때에 그때 어떤 청년 하나가 제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왜 기독교는 기독교만 고집합니까? 너무 독선적이지 않습니까!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불교도 있고, 그리고 천주교도 있고, 이슬람교도 있고, 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기독교는 예수만 믿으라고 그렇게 고집을 합니까?' 그런 질문을 제가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현장에서 전도하시다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심심치 않게 대두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한마디로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만일 길이 여러 갈래가 있다면 이쪽도 택할 수 있고 저쪽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길이 하나라면 그 길 외에는 없거든요. 다시 말하면 살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 땅에 진리가 여러 가지가 된다면 사람들은 헤깔립니다. 어느 길을 따라가야 할는지 헤어깔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진리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그리스도!
여러분 어느 정도 이 그리스도가 되어 있습니까? 이 그리스도가 된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참 진리 되신 이 그리스도를 놓치고, 이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자꾸만 다른 잡다한 것들에, 심지어는 우상 숭배 속에 자꾸만 빠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만이라도 제발 이 사실을 바로 깨닫고, 진짜로 우리 자신들을 유일사상 속에, 유일 신앙 속에 제대로만 세운다면 여기에 모든 축복이 회복이 되어지고, 또한 살아나는 이런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시면 변화산 상에서 베드로가 세분을 봤습니다. 예수님, 모세, 엘리야! 이 세분을 봤습니다. 특히 모세하고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흠모하는 최고의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 모세, 엘리야를 함께 봤거든요.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여기에 초막 셋을 지읍시다.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그런데 조금 정신을 차려서 보니까 모세도 안보이고, 엘리야도 안 보이거든요. 나중에 여러분 성경에 확인해 보십시오. 거기 보시면 '엘리야도 떠나고, 모세도 떠나고, 오직 예수만 남았더라!'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아무리 좋고, 모세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의 주인은 아닙니다. 오직 저와 여러분들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이 얼마나 그리스도가 제대로 되어지느냐? 여기에 살아나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무엇 때문에 이 유일신앙이 무너지고 있습니까? 돈 때문에, 세상에 권력 때문에, 여러 가지 그런 화려한 명예 때문에, 지금 가만히 보십시오. 지금 성도들에게 제대로 유일신앙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물질과 명예와 권력, 모든 세상 것들 때문에, 이것 때문에 참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갈등도 일어나고, 신앙생활 자체가 힘들고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여러분 대구에서 일어났던 U대회 사건 잘 아시죠. 저는 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한가지 참 어이없는 상황을 하나 봤습니다. 뭐냐하면 북한에서 응원단들이 많이 왔습니다. 아주 예쁜 여자들이 많이 왔습니다. 우리 대구의 남자들이 완전히 거기에 빠져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더라 구요. 그런데 이제 그들이 와서 숙소에 머물고 있는데, 그 숙소 앞에 플랜카드를 쭉 달아놨습니다. 내용이 뭐냐하면, '당신들이 온 것을 환영한다! 북한 선수단 환영!' 이래가지고 플랜 카드를 달아놓고, 그 플랜카드 바로 옆에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옛날에 김대중 대통령하고 김정일하고 같이 만나서 악수하는 장면 있죠. 그 그림이 플랜카드에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비가 많이 왔습니다. 자연적으로 그 플랜카드가 젖겠죠.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난 그 북한 여자 응원단들이 그걸 바라보면서 질색을 하는 겁니다. '어쩌면 이럴 수 있느냐? 위대하신 우리 김정일 장군님이 비에 맞아 가지고, 이래서 지금 초춰하게 되었는데... 지금 남한 당국에서 뭘 하느냐?' 이래가지고 떼거리로 나와서 막 대모를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비 맞았는데...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김정일 이가 비를 맞았다고 해 가지고, 그 플랜카드를 내려 가지고 손으로 딱고 입을 맞추고, 가슴에 앉고, 꼬이꼬이 접고, 그래가지고 들어가서 그 날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참 하여튼 히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응원단에서 그들이 응원하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수백 명의 응원단들이 그때부터 막 노래를 부르는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들을 줄줄 흘리면서,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동지!' 이래가지고 '김정일 장군 만세!' 노래를 부르는데요, 여러분 누가 시켰다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엉엉 울면서 그렇게 찬양 아닌 찬양을 하더라 구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주체사상! 한 사람을 저렇게 신격화하는 주체사상만 제대로 들어가도 저렇게 울고 떠는데, 과연 지금 내 속에 유일 신앙이 되어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 이게 지금 내 삶 속에 되어 있습니까?' 저는 너무 충격적으로 그 사건을 받아 들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이 없이도 그들을 오직 김정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게 안되고 있습니다. 뭐 때문에 안 되느냐? 우리의 욕심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우리의 명예 때문에, 내 자신의 이름 때문에, 항상 말은 복음이고 입은 복음인데, 우리의 중심이 오직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유일신앙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이게 사는 길입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습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적이 없느니라!' 이 유일 신앙이 제대로 들어갔을 때에 전 세계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역사들이 그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는 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4절, 5절에 "(신 6:4)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아멘! '힘을 다하고, 모든 중심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라!' 왜? 그분은 하나이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게 되기 위해서 6, 7, 8, 9절에 쭉 나와있습니다. '유일 신앙을 제대로 가지기 위해서 내가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세겨라!' 그렇죠. 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해라!' 더 나아가서는 '손목에 매라! 기호를 삼아라! 네 미간에 표로 붙여라! 심지어는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해라!' 뭐를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이신 하나님이다!' 유일신입니다.
오늘 이 유일 신앙으로 돌아갈 때에, 여기에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들이 세상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저런 여러 어려운 일들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에서도 여러분들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붙잡아야 되지 않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복음! 이 사실이 되어질 때에 여러분들의 모든 걸음걸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언약의 말씀을 굳게 잡으시고 이번 한 주간도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녀 사이에 교제를 하면서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당신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매우 기분좋게 만듭니다. 그러나 ‘당신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매우 화나게 만듭니다. 복음성가 중에도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주도 사랑합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의 유일 신앙이 얼마만큼이나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1) 신앙의 갈등은 유일 신앙이 사라지는만큼 생겨납니다.
① 오늘날 성도들에게 유일 신앙이 사라지고,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② ‘오직 그리스도’가 되지 않으면 많은 갈등이 일어납니다.
③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유일 신앙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불신앙과 우상에 빠져 실패했습니다.
④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충분히 공급받았습니다.
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불신앙하며 불평하다가 철저히 망했습니다.
⑥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⑦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동안에도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⑧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바알을 비롯한 우상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⑨ 민족신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풍요의 신으로서 바알을 섬기는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⑩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한 쪽은 세상에, 한 쪽은 신앙에 끼여서 갈등하며 실패하고 있습니다.
(2)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적인 메시지로 유일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② ‘이스라엘아 들어라!(4절)’ - 이것은 들을 때에 산다는 말입니다.
③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4-5절)’
④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는 성공했고, 붙잡지 못했을 때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⑤ 나의 삶 속에는 이 유일 신앙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있습니까?
⑥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점령해 나갈 때는 유일 신앙이 유지되었습니다.
⑦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을 하면서 우상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⑧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택하든지 우상을 택하든지 하라.
나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며 유일 신앙으로 돌아왔습니다.
(3)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신앙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자리잡고 있습니까?
①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본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②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아 계셨습니다.
③ 모세와 엘리야가 아무리 좋아도 그들은 떠나가며, 우리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④ 유일 신앙이 얼마나 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성숙도가 달라집니다.
⑤ 그러나 명예, 돈, 권련 등의 세상 것들 때문에 유일 신앙이 잘 되어지지 않습니다.
⑥ U대회 때 북한 응원단은 김일성 사진이 비에 맞는 것을 보고 손으로 닦고 가슴에 안았습니다.
⑦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할 때 북한 응원단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⑧ 김정일 주체 사상 하나가 들어가도 그것에 따라 울고 웃고 합니다.
⑨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인생을 맡긴 사람들인데, 왜 그리스도 때문에 울고 웃고 하지 못합니까?
⑩ 유일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⑪ 초대 교회가 세상을 정복한 메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름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입니다.
⑫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신 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우리가 상대방에게 사랑의 고백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할 때에 그 말 한마디에 따라서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하는 것하고, '당신도 사랑합니다!' 하는 것하고 여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고백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오직 당신 내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결혼해 주십시오!' 이렇게 되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칫하면 뭐가 날아올 수 있습니다. 이 상당히 우리가 조심을 해야 되겠죠.
복음성가에도 보면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너 어느 곳에 있던지 주만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그런데 이것을 바꾸어 가지고 '주도 바라볼찌라!' 그렇게 되어진다면 상당히 문제가 오겠죠. 딱 한마디 차이입니다. 한 단어차이! '주만, 주도!' 그런데 그 말 한마디에 따라서 우리에게 느껴지는 어떤 감동은 완전히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 속에서 얼마만큼 유일 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분들의 삶 속에 유일신앙이 얼마나 자리를 잡고 있느냐? 거기에 우리 자신들에 믿음의 분량이라고 볼 수가 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이것이 얼마나 되어 있느냐에 따라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서 이러한 유일 신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이 사실이 되어져야 되는데, 어느 순간에 인가 세상이 지금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인가 자꾸만 우리의 욕심이나 우리의 정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유일 신앙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왜 갈등이 일어납니까? 저는 생각에 이러한 신앙의 갈등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지면 사실상 모든 갈등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목사님, 먹고살아야 되고 돈도 필요한데 오직 그리스도 그래서 되겠습니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가 안되어서 그렇죠. 진짜로 제대로 복음이 되어지고,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지면, 먹고사는 모든 문제는 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우리의 삶 속에 참 복음, 이 그리스도가 되어지면 먹고사는 모든 문제들은 붙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오직 그리스도가 안되어지니까 자꾸만 갈등은 갈등대로, 또 세상 살아가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지금 신앙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고 어렵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설교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큰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질적으로 따라붙었던 것! 그게 뭐냐하면 불신앙입니다. 참 이스라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완전히 망하는 그 순간까지, 그때까지 버리지 못했던 것이 뭐냐하면, 그게 그들의 불신앙입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어서 망했습니까? 불신앙 하다가 망했습니까?' 그렇죠.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역사를 가만히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어서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만나로, 메추라기로, 생수로...
어떤 면에서 다른 곳에서 살 때보다 사실은 먹고사는 문제는 더 풍성하게 내려 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만나가 수두룩하게 앉아 있습니다. 본인이 게을러서 못 먹어서 그렇죠. 조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만나, 메추라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굶어서 죽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뭐죠? 불신앙 하다가, 그들이 40년 동안 철저하게 불신앙 하다가 망했죠. 절대로 굶어서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어 줄 때에, 그 바로 왕이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저놈들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저 광야 속에 들어가면, 거기는 먹을 것도 없고 제대로 살수 있는 곳도 없는데, 다 굶어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로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나, 메추라기, 생수! 하나님께서 풍성 풍성하게 그들의 모든 삶을 그렇게 채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불신앙입니다. 불신앙 하다가 그들이 완전히 망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습니까? 다른 이유가 아니고 불신앙과 더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뭐냐하면, 바로 이 우상숭배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가장 큰 문제가 하나 닥쳐왔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됩니다. 두 가지 다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허용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이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박수, 술객, 무당, 점쟁이를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진멸 해라! 절대로 살려두지 마라!'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사랑을 외치는 하나님께서 다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바로 그 이유는 그들을 살려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이 섬겼던 우상의 세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어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겨야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에게 빠져갑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들이 망하는 그런 표적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너희들은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마라!' 그래서 '박수, 술객, 점쟁이, 모든 무당을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죽여라!'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사실 광야 40년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광야는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습니다. 황량한 벌판이죠. 메말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소망을 둘 수가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면서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죠. 모든 우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알 신상을 위시해서, 몰록, 아스다롯, 아세라, 그리고 또 다곤 이러한 여러 잡다한 우상들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고민의 대상이 뭐냐하면, 바로 이 바알 신입니다. 다른 우상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밀접하게, 그러면서 가장 많이 섬겼던 우상이 뭐냐하면, 이 바알 신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 가나안 정착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완전히 망하는 그 날까지 바알 신은 함께 연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하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양을 키우고, 소를 키우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면서 사회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슨 사회로? 농경사회로!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로 완전히 이제 전환이 되어 졌습니다.
그런데 농경사회로 전환이 되면서 오는 문제가 뭐냐하면, 농사를 지으면 풍요를 기원합니다. '쌀이 잘되고, 또 보리가 잘되고...' 이런 풍성한 그런 곡식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일어난 그들의 우상이 뭐냐하면 바로 바알 신입니다. 이 바알 신은 풍요, 풍성하게 하는 그런 신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민족들이 섬겼던 그 바알 신 있죠, 그 신을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그대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알과의 싸움에서 최고의 절정이 언제냐 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합 시대! 즉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그 아합 시대 있죠. 그때에 이 바알 신이 극성스럽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왕궁 안에 바알 선지 생도를 키우는 그런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그때 당시 얼마나 우상이 난무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이 대목에 대해서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을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 상에 모여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언을 합니다.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여서 머뭇머뭇하겠느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여기서 '어느 때까지...'라는 이 말은 늘 그래왔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딱 중간에 끼여 가지고,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또 어떤 때에는 바알 신을 섬기고, 그래서 싹 눈치를 보다가 어느 곳에 조금 유리하면 하나님께 붙었다가, 때로는 바알에게 붙었다가...
그래서 엘리야가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들이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끼여서 머뭇머뭇 하겠느냐! 하나님을 택하던지 아니면 바알을 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결단해라!' 속된말로 '하나님도 좋고 바알도 좋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다리 걸쳐서 그렇게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민족 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민족 신으로 섬기고, 그리고 바알은 농사를 지었을 때에 풍요를 기원하는 그런 마음으로 그 신을 섬기고, 그래서 항상 둘 사이에 끼여서 이쪽 저쪽 눈치를 봤던 것이,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불신앙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두 가지를 가만히 보시면 단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유일신앙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불신앙 했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이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우상을 숭배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것을 바라 봤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그들에게 유일 사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들의 실패가 찾아왔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양다리를 걸쳤다가 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청년 유도고입니다. 바울이 말씀을 강론하는데 이 유도고가 어디에 올라갔느냐 하면 창문틀 있죠, 거기에 올라가 가지고 한 다리는 세상으로, 그리고 한 다리는 은혜 받는 장소로... 은혜 받는 장소이면 은혜 받는 장소고 아니면 아예 뭐 나가든지... 그 창문에 끼여 가지고 한 다리는 세상으로, 한 다리는 은혜 받는 장소로, 결국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떨어져서 죽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게 유도고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어정쩡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향해서 나가다가, 그러다가 뭔가 좀 힘들고 어려워지면 또 하나님 찾다가... 그래서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뭔가 좀 깊이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과연 내 자신의 신앙에 본질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까? 때로는 세상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때로는 뭔가 좀 잘못되면 그때서야 또 돌아오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자신들이 약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앙상태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뭔가 하나님께서 막 두들겨 팰 것 같고, 그래서 겁이 나서 제대로 못 가고, 그리고 교회 안에 있자니 뭔가 좀 답답하고, 그래서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지금 이런 모습으로, 어정쩡한 그런 모습으로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이러한 우리 성도들을 향해서, 이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모세가 중요한 선포를 합니다. 특별히 4절에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지금 모세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신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뭐냐하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이 메시지를 듣고 있는 대상들이 누구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2세들이죠.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해야 될 이스라엘 2세들에게 이 모세가 뭐라고 선언을 했느냐 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다!' 유일신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했느냐 하면, '들어라!' 이 '들어라!'하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쐬마'라고 합니다. '쐬마!' 이스라엘이여 들어라! 쐬마! 이 말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고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이 메시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살아난다!' 그래서 '쐬마!' 들으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이 되어졌을 때에 살아났습니다. 유일신앙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을 때에 그들에게 엄청난 축복이 내렸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유일 신앙이 되지 못했을 때에, 자꾸만 세상으로, 육신으로, 우상숭배로, 더 나아가서는 불신앙으로 빠져 갔다는 사실입니다.
이 신명기 서는 모세의 유언적인 설교입니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거든요.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그 가나안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후대들 있죠. 2세들입니다. 이 2세들에게 '너희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르쳐 주겠다! 그 길이 뭐냐하면 유일신앙이다! 오직 하나님, 오직 복음! 이 사실이 되어질 때에 여기에 너희들이 살아나는 역사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내용이 뭐냐하면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라!' 여러분 이것이 되어졌을 때에 이스라엘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유일 사상이 되지 못했을 때에 그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삶 속에 어느 정도 이 유일 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얼마나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오직 복음과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질수록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복음이 제대로 되지 못한 만큼 자꾸만 갈등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오늘 이 사실이 반드시 확인이 되어져야 됩니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시면 여호수아서 24장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 여호수아서 24장을 읽어보시면 이제 말년을 당한 이 여호수아가 모든 자기네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자리로 불러모으는 그런 역사를 감행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호수아와 더불어서 처음에 막 가나안땅을 점령해 나갈 때는 더 이상 다른 것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서로 정복을 해야 되고 그러니까, 그런 위기와 문제 속에서 전적으로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문제가 왔습니까?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고 어느 정도 평안하게 되었을 때에, 그때에 몰려 들어온 것이 뭐냐하면 우상입니다.
이 여호수아는 이제 세상을 떠나갈 시간이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니까 불안하거든요. 왜냐하면 모든 주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오직 복음, 오직 하나님! 이게 되어져야 되는데, 지금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 몰록, 아스다롯, 아세라, 다곤, 여러 잡다한 이런 우상을 지금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두령들, 모든 대표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선언을 했습니까? '너희들이 아모리 사람이 섬기는 그들의 신들을 택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택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결단해라! 그러나 나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이게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다한 모든 세상 우상에 빠져 가지고,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리로 전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떠나려고 하는 그런 여호수아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너희들이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택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택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해라! 그러나 나와 내 가정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그때 모든 백성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도 당신이 섬기는 그 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복이 회복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시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한번은 제가 시카고에 전도캠프를 갔을 때에 그때 어떤 청년 하나가 제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왜 기독교는 기독교만 고집합니까? 너무 독선적이지 않습니까!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불교도 있고, 그리고 천주교도 있고, 이슬람교도 있고, 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기독교는 예수만 믿으라고 그렇게 고집을 합니까?' 그런 질문을 제가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현장에서 전도하시다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심심치 않게 대두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한마디로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만일 길이 여러 갈래가 있다면 이쪽도 택할 수 있고 저쪽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길이 하나라면 그 길 외에는 없거든요. 다시 말하면 살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 땅에 진리가 여러 가지가 된다면 사람들은 헤깔립니다. 어느 길을 따라가야 할는지 헤어깔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진리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그리스도!
여러분 어느 정도 이 그리스도가 되어 있습니까? 이 그리스도가 된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참 진리 되신 이 그리스도를 놓치고, 이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자꾸만 다른 잡다한 것들에, 심지어는 우상 숭배 속에 자꾸만 빠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만이라도 제발 이 사실을 바로 깨닫고, 진짜로 우리 자신들을 유일사상 속에, 유일 신앙 속에 제대로만 세운다면 여기에 모든 축복이 회복이 되어지고, 또한 살아나는 이런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시면 변화산 상에서 베드로가 세분을 봤습니다. 예수님, 모세, 엘리야! 이 세분을 봤습니다. 특히 모세하고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흠모하는 최고의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 산상에서 예수님, 모세, 엘리야를 함께 봤거든요.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여기에 초막 셋을 지읍시다.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그런데 조금 정신을 차려서 보니까 모세도 안보이고, 엘리야도 안 보이거든요. 나중에 여러분 성경에 확인해 보십시오. 거기 보시면 '엘리야도 떠나고, 모세도 떠나고, 오직 예수만 남았더라!'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아무리 좋고, 모세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의 주인은 아닙니다. 오직 저와 여러분들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이 얼마나 그리스도가 제대로 되어지느냐? 여기에 살아나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무엇 때문에 이 유일신앙이 무너지고 있습니까? 돈 때문에, 세상에 권력 때문에, 여러 가지 그런 화려한 명예 때문에, 지금 가만히 보십시오. 지금 성도들에게 제대로 유일신앙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물질과 명예와 권력, 모든 세상 것들 때문에, 이것 때문에 참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갈등도 일어나고, 신앙생활 자체가 힘들고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여러분 대구에서 일어났던 U대회 사건 잘 아시죠. 저는 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서 한가지 참 어이없는 상황을 하나 봤습니다. 뭐냐하면 북한에서 응원단들이 많이 왔습니다. 아주 예쁜 여자들이 많이 왔습니다. 우리 대구의 남자들이 완전히 거기에 빠져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더라 구요. 그런데 이제 그들이 와서 숙소에 머물고 있는데, 그 숙소 앞에 플랜카드를 쭉 달아놨습니다. 내용이 뭐냐하면, '당신들이 온 것을 환영한다! 북한 선수단 환영!' 이래가지고 플랜 카드를 달아놓고, 그 플랜카드 바로 옆에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옛날에 김대중 대통령하고 김정일하고 같이 만나서 악수하는 장면 있죠. 그 그림이 플랜카드에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비가 많이 왔습니다. 자연적으로 그 플랜카드가 젖겠죠.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난 그 북한 여자 응원단들이 그걸 바라보면서 질색을 하는 겁니다. '어쩌면 이럴 수 있느냐? 위대하신 우리 김정일 장군님이 비에 맞아 가지고, 이래서 지금 초춰하게 되었는데... 지금 남한 당국에서 뭘 하느냐?' 이래가지고 떼거리로 나와서 막 대모를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비 맞았는데...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 김정일 이가 비를 맞았다고 해 가지고, 그 플랜카드를 내려 가지고 손으로 딱고 입을 맞추고, 가슴에 앉고, 꼬이꼬이 접고, 그래가지고 들어가서 그 날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참 하여튼 히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응원단에서 그들이 응원하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수백 명의 응원단들이 그때부터 막 노래를 부르는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들을 줄줄 흘리면서,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동지!' 이래가지고 '김정일 장군 만세!' 노래를 부르는데요, 여러분 누가 시켰다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엉엉 울면서 그렇게 찬양 아닌 찬양을 하더라 구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주체사상! 한 사람을 저렇게 신격화하는 주체사상만 제대로 들어가도 저렇게 울고 떠는데, 과연 지금 내 속에 유일 신앙이 되어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 이게 지금 내 삶 속에 되어 있습니까?' 저는 너무 충격적으로 그 사건을 받아 들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이 없이도 그들을 오직 김정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게 안되고 있습니다. 뭐 때문에 안 되느냐? 우리의 욕심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우리의 명예 때문에, 내 자신의 이름 때문에, 항상 말은 복음이고 입은 복음인데, 우리의 중심이 오직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유일신앙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이게 사는 길입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습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적이 없느니라!' 이 유일 신앙이 제대로 들어갔을 때에 전 세계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역사들이 그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는 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4절, 5절에 "(신 6:4)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아멘! '힘을 다하고, 모든 중심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라!' 왜? 그분은 하나이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게 되기 위해서 6, 7, 8, 9절에 쭉 나와있습니다. '유일 신앙을 제대로 가지기 위해서 내가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세겨라!' 그렇죠. 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해라!' 더 나아가서는 '손목에 매라! 기호를 삼아라! 네 미간에 표로 붙여라! 심지어는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해라!' 뭐를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이신 하나님이다!' 유일신입니다.
오늘 이 유일 신앙으로 돌아갈 때에, 여기에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들이 세상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저런 여러 어려운 일들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에서도 여러분들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붙잡아야 되지 않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복음! 이 사실이 되어질 때에 여러분들의 모든 걸음걸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언약의 말씀을 굳게 잡으시고 이번 한 주간도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녀 사이에 교제를 하면서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당신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매우 기분좋게 만듭니다. 그러나 ‘당신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매우 화나게 만듭니다. 복음성가 중에도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주도 사랑합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의 유일 신앙이 얼마만큼이나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1) 신앙의 갈등은 유일 신앙이 사라지는만큼 생겨납니다.
① 오늘날 성도들에게 유일 신앙이 사라지고,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② ‘오직 그리스도’가 되지 않으면 많은 갈등이 일어납니다.
③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유일 신앙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불신앙과 우상에 빠져 실패했습니다.
④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충분히 공급받았습니다.
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불신앙하며 불평하다가 철저히 망했습니다.
⑥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⑦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동안에도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⑧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바알을 비롯한 우상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⑨ 민족신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풍요의 신으로서 바알을 섬기는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⑩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한 쪽은 세상에, 한 쪽은 신앙에 끼여서 갈등하며 실패하고 있습니다.
(2)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적인 메시지로 유일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② ‘이스라엘아 들어라!(4절)’ - 이것은 들을 때에 산다는 말입니다.
③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4-5절)’
④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는 성공했고, 붙잡지 못했을 때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⑤ 나의 삶 속에는 이 유일 신앙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있습니까?
⑥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점령해 나갈 때는 유일 신앙이 유지되었습니다.
⑦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을 하면서 우상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⑧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택하든지 우상을 택하든지 하라.
나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며 유일 신앙으로 돌아왔습니다.
(3)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신앙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자리잡고 있습니까?
①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본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②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아 계셨습니다.
③ 모세와 엘리야가 아무리 좋아도 그들은 떠나가며, 우리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④ 유일 신앙이 얼마나 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성숙도가 달라집니다.
⑤ 그러나 명예, 돈, 권련 등의 세상 것들 때문에 유일 신앙이 잘 되어지지 않습니다.
⑥ U대회 때 북한 응원단은 김일성 사진이 비에 맞는 것을 보고 손으로 닦고 가슴에 안았습니다.
⑦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할 때 북한 응원단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⑧ 김정일 주체 사상 하나가 들어가도 그것에 따라 울고 웃고 합니다.
⑨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인생을 맡긴 사람들인데, 왜 그리스도 때문에 울고 웃고 하지 못합니까?
⑩ 유일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⑪ 초대 교회가 세상을 정복한 메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름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입니다.
⑫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