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아무도 모르는 그날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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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마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 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 24: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 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마 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 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마 24: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 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오늘 제목을 "아무도 모르는 그 날!" 상당히 로맨틱한 소설 같은 그런 제목으로 듣지 마시고, 진짜 이건 삭막하고 또 냉철하고, 엄격한 제목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그 날! 또 하나 더 붙인다면 그 시간 우리 힘으로, 우리 지혜로, 우리의 것으로는 전혀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는 문제들이 뭐냐하면, 이런 문제로 인해서, 이런 어떤 종말에 사건을 통해서 오는 문제가 모든 사람이 모르니까! 무관심해지고 있습니다. 또 모르니까! 타락하고 있습니다. 이게 말세의 현상, 오늘날에 나오는 문제요. 그 다음에 또 모르니까! 반사적으로 억지로 알려고 하다가 보니까! 이 종말론 자들처럼, '언제 온다는...' 이런 어떤 생각에, 그 다음에 또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던져놓아 버리고, 제쳐놓아 버리고, 흰옷입고 교회 앉아있던지, 금식하고 앉았던지, 이렇게 또 역으로 깨닫는 이런 생각을 하는 그런 부류들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우리가 이 말세를 준비할 수 있는 그 준비가 도대체 무엇이냐? 이렇게 한 세 가지로 잠깐 생각을 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건강이 별로 안 좋으니까, 계속해서 늘 종말만 생각하다 보니까, 종말에 대한 무감각이 온 것 같아요. 이제는 어지간해도 별로 그렇게 뭔가 '마지막이구나! 어렵구나! 힘들구나!' 이런 생각이 안 들고 의례적으로 그러려니... 이런 어떤 생각들로 나올 수 있는데, 너무 '말세다! 종말이다!' 이건 뭔가 징조가 어렵다! 뭐 이렇게 나오니까 점점, 점점 이 세대가 어렵고,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시간표가 가까이 오는데도 신 불신간에 종말에 대한 준비가 희미해져버립니다. 감정이 별로 없어져요. 말로는 하는데도, 또 점점 또 희박해지는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아무도 모르는 여기에, 성경이 오늘 말씀할 때에, '오직 아버지만 아시고, 천사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랬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주님이 오시는 날! 재림하시는 날! 그 날과 그 시간! 우리 성도들이 도대체 이 일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본문에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타나는 문제가 뭐냐하면, 32절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뭐냐하면 너무 이제 모르니까 경고를 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나무가, 이때 그 무화과라 그러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대표적인 나무고, 흔한 나무고, 또 볼 수 있는 나무고, 또 어떤 면에서 국화다! 말하자면 나라의 나무다! 할 정도로 그렇게 그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에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이런 면에서 무화과나무를 예로 들었어요.

예로 들었는데 무화과나무가 잎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게 여름입니까? 봄입니까? 가을입니까? 봄 아닙니까! 그러면 뭘 말하느냐 하면, 무화과나무에 잎이 피기 시작하면, '곧 여름이 오겠다!' 그런데 이 종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뭔가 징조가 조금 나오면, '아, 다 되었구나! 이제 금방 오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이겁니다. 잎이 나면 아직까지 주님께서 얼마든지 준비하실 수 있는 시간을 주십니다. '여름이 가까워 왔구나!' 그 다음에 여름이 가까워 오고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언제 입니까? 가을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 말에는 너무 종말에 대해서 준비할 때에 다급하게, 또 너무 종말에 대해서 극적인 상황으로 생각하지 말라!

뭐 요즘 그 이런 어떤 배경 때문에 오는 것이 이 무관심이거든요. 뭐 지진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이 기후변화들이 나오니까! 이 종말론 자들이 또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금방 주님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또 다급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의 교훈을 붙들어라! 잎이 나오면, '아, 여름이 곧 오겠구나! 그러면 가을이 곧 오겠구나!' '그 동안 우리가 어떻게 신실하게 준비해야 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종말 그러고, 마지막날 그러면 굉장히 다급한 그런 느낌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방 뭐 순교자가 나오고, 금방 순교할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 그 신비주의, 특별히 기도 많이 하고 그럴 때는 기도하는 도중에 금방 주님이 오는 것처럼 해 가지고 교회도 안 떠나고, 밤낮 없이 교회 들어와서 자기도 하고, 그러고서는 늘 그런 노래를 불렀잖아요. 저 하늘 높이 구름 한 점 있어도 '주님이 언제 오시냐!' 그러고, 맨 날 하늘 쳐다보고, 주님 오실 날만 기다리고... 그게 정상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어떤 그 메시지로 오늘 또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어떤 징조들이 나오게 될 때에 금방 종말이 안 오고, 금방 이게 안 오니까 어떤 문제가 오느냐 하면, 첫 번째로 '무관심이 온다!' 그랬습니다. 35절에 보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잊어버리니까, 경고를 해 주는 것이죠. 성경에 종말이 온다고 하면 반드시 옵니다. 그런데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그러죠.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이 노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그 대표적인 역사로 노아 때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마 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종말에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내가 이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교회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매주일 변함 없이 교회 와서 메시지 듣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산다는 이 축복이 얼마나 위대한지! 종말에 대한 관념이 없어지면 별로 느낌이 없어요. 여러분 구원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자리에 나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제 앞으로 주5일제가 되면 이 자리에 나올 사람이 더 적어질지도 몰라요. 아니 어떤 면에서 더 많아 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뭐가 되느냐 하면, '내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곧 하나님께서 이 땅이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는 종말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축복이요, 은혜다! 그런데 멸망자의 특징은 '이걸 모른다!' 그랬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홍수가 오는데도 모른다!' 그랬습니다. 이게 특징입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 주변을 조금만 한번 둘러보세요. 전혀 감각 없어요. 그러면서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 어디로 빠지느냐 하면,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간다!' 이것은 쾌락으로 빠진다! 그 말입니다. 방탕과 쾌락으로 빠집니다. 먹어 야죠! 그걸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셔 야죠! 그걸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쾌락을 즐기면서 먹고 마신다!' 요즘 장사는 뭐 먹는장사밖에 잘 되는 게 없다는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죠. 특별히 물장사는 열었다 그러면 물장사인데... 물장사 밖에 안 된다! 그 물장사는 다른 게 아니거든요. '마신다!'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그냥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시고, 취하고, 나자빠지는 겁니다! 말세가 될수록 좋아도 취하고 나자빠지고, 나빠도 나자빠지고, 점점 세계가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에도 세상에 희한한 일이 생겼어요. 폭탄주라고 하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만 생긴 게 아니고, 이게 유행을 해서 세계로 지금 번져나가더라 구요. 외국사람들을 절대로 뭐 취하고 자빠지고 잘 안 그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을 본 받아 가지고, 하여튼 유행은 잘 타요. 뭘 말하고 싶으냐?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이 취향이 점점 방탕하고, 타락하고, 그 다음에 또 어떤 면에서, 거기다가 위로를 삼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대가 어려우니까, 세대가 어렵고 살기 어려우면, 더 절약하고 해야 되는데, 더 먹고 마시고 나자빠집니다. 이게 지금 현재 이 세대의 어려운 문제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조금 준비해야 될 것이, 지금 그 서울에 큰 교회를 비롯해 가지고 어떤 붐이 일어나느냐 하면, 새벽기도 운동이 일어나더라 구요. 왜, 새벽기도 운동이 일어나느냐? 절박할 때에, 사람들이 보통 평상시보다도 절박할 때에, 또 나라가 어렵고 힘들고 살기 힘들 때에, 뭐가 일어나느냐? 막연하게 뭔가 내 미래가 불안하니까,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사람들이 뭐 입시 철에 새벽기도가 가득 차듯이, 이게 지금 이런 붐이 일어나 가지고 새벽기도가 주일날 대예배 못지 않게 모이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엄청나게 모이는 것을 지금 신문에도 나온 것을 제가 봤습니다. 문제는 어렵고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어떻게... 그런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지금 이 시대를 조금 분석해야 됩니다.

분명히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약속하신 대로 선포된 대로 성취됩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냉철하게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안 좋다, 좋다! 이 말이 아닙니다. 나와 야죠! 어려울 때일수록 더 나와 야죠. 나오는데 문제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느냐? 하는 그런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문제가 뭐냐하면, 자칫 우리가 잘못되게 되니까! 저는 그 정서적인 것이 조금 메말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좀 뭔가 이 액션 영화! 그런 쪽으로 잘 봅니다. 그런데 그 액션 영화에 꼭 들어가는 것이 뭐냐하면, 여자가 꼭 끼여있더라 구요. 남자들이 싸우고 그냥 막 때리고 하는데, 거기에 뭐하려고 여자가 꼭 끼여있습니까! 여자가 꼭 끼여있더라 구요. '내가 마지막...'이라는 이런 어떤 관념 속에서, 반드시 어떤 면에서 여자가 끼는 성 문제가 거기에 끼여있더라 구요.

똑같이 지금 '끝난다! 마지막이다!' 이럴 때에, '마지막에 한번 쾌락을 즐기고, 환락을 즐기고 가자!' 이런 어떤 배경인가 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면 마지막 때에 뭐가 문제냐? '성 문란과 성 타락이 따라온다!' 그런 배경입니다. 노아 때를 말하면서 '먹고 마시고' 뭐라 그랬어요? '시집가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 가야죠. 그런데 여기는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것이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뭐냐하면, 이것은 타락하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우리가 조금만 살펴보면요. 지금 성경에 그대로, 타락한 말세의 형편이 그대로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이때 또 호들갑스럽게 우리 교인들이 '끝이구나! 마지막이구나!' 그래서 될 것이 아니고, 이때가 될수록 뭐냐? '주님이 가까이 오셨구나! 우리가 준비할 때이구나!' 정신을 차리고 서야 될 때인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생각을 더러 해 보느냐 하면, 신문만 들고 신문을 좀 읽다가 휙 집어던지면서 '세상 참, 꼬락서니가 희한하게 돌아가는 구나!' 이러거든요. 그러면서 뭐냐하면, 절망적인 말이 툭툭 튀어나와요. 그러면 옆에 있다가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당신이 왜 그러느냐? 절망적인 사건이 온다고 그랬는데, 그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 그 뭐 욕할게 뭐 있냐? 뻔한 것인데... 와야 되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또 그렇거든요. 내가 욕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용기 낼 것도 없어요. '아, 말씀대로 이루어지는구나!' 우리가 정신이 더 차려진다는 것보다도 더 정돈된 마음이 되어야 되죠.

그래서 여러분 말세를 당한 성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상이 되어야 됩니다. 더 정상이 되어야 된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간다! 이것이 세상에서 다가올 때에,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내 가정, 내 자녀, 내 주변을 살펴보세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휩쓸려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그런 관계를 바로 가져야 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가지 문제는 뭐냐하면요. 이 말세가 오게되면 주님이 곧 오신다는 이런 어떤 배경에 기도하면 금방 또 나가게 되고, 모든 생각이 그런 방면으로 나가기 때문에 종말론 자들처럼 어떤 문제가 생기냐하면, '아, 말세가 온다! 주님이 딱 오실 때에 바로 이 시간에 오셨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여러분 예배드리는 시간에 주님이 오시면 좋겠죠. 그런데 저는 성경을 읽어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시간에 오신다! 이런 생각이 잘 안나요. 이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막 계속해서 주님을 기다린다고 흰옷입고 밤새도록 앉아서 찬송 부르고, 그건 종말론 자들이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안 오기 때문에 낙심하고, 그냥 전 다 걷고 집에 돌아가고, 그게 종말론 자들이 한때 안 그랬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어떤 문제를 보여주느냐 하면요. 진짜 주님은 종말에 누구를 구원해 주시느냐? 내 삶에 현장에 신실한 자들을 구원해 주신다! 이런 의미가 훨씬 더 여기에 많아요. 그래서 그 뜻이 뭐냐하면 그 내용이 두 여자가 메를 갈고 있는데, 메를 간다는 것은 삶의 현장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바로 가지고 있는 한 여자는 데려가고 한 여자는 어떻게 합니까? 놔둔다! 들에 있는데도 똑같이 그와 같다!

그래서 여기에 이 말씀을 뭐냐하면, 여러분이 지금 구원받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교회 모여서 예배드릴 때는 잘 몰라요. 얼마나 신앙생활 잘 하느냐? 주일날 여기 와서 앉아 있으면 똑같아 보여요. 우리 장로님들이나, 평신도들이나, 오늘 처음 나온 사람들이나 뭐 속으로 어떤지는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때에 주님이 오시면 다 데리고 가야돼요. 교회 나온 사람, 흰옷을 입었던지 안 입었던지, 그러면 이게 구분이 곤란해요. 어디에서 신앙 생활이 판가름나느냐? 삶에서 나옵니다. 생활 속에서 이게 나오게됩니다. 생활 속에서 내가 얼마나 확실한 삶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삶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이게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전도된다, 안 된다! 여기에 있습니다.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주일날 교회 나온 것을 보고 '전도된다! 전도된다!' 그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특별히 다락방에서 '전도!' 그럴 때에 현장 아닙니까! 한 주간의 현장에서 승리가 우리의 신앙에 승리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말세가 될수록, 주님이 오시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확실히 붙잡아야 될 것이, 내 현장의 삶에서 하나님께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삶에서 예배가 회복이 되어야 됩니다. 삶에서 기도의 생활이 이루어져야 된다! 그런 배경이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40절 말씀에 보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 (마 24: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현장에서,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현장에서 내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바로 하느냐? 그래서 그 현장에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우리는 뭘 합니까? 주일 성수 합니다. 그 현장에서 바로 신앙생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된 장소에, 약속된 시간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겁니다. 모여서 예배드릴 때에 '현장에서 바른 신앙생활 하기 위해서...'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점이 아마 우리가 이해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말세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세에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되느냐? 그래서 그 신앙생활을 어디에서 어떻게 한다는 그 기준에 따라서 삶이 많이 달라져 버려요. 그래서 조금 전에 말씀했던 것처럼, 종말론 자들처럼, 신앙생활을 그런 배경으로 이해하면, 맨 날 교회 모여 가지고, 밖에 나가지고 않고 흰옷입고 앉아 있어야 돼요.

그러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준비해야 되느냐? 성경은 여러 가지 신앙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만은, 오늘 본문에 보면 신앙생활 준비에 대해서 이렇게 쭉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되느냐? '교회 앉아 있는 것이 준비냐? 흰옷입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준비냐? 주님 어서 오십시오 하고 울면서 순교를 기다리는 것이 준비냐?' 그런 말이 아니냐?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가 준비해야 될 것이 딱 하나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죠. 그러면서도 이것을 자꾸 뭔가 이 혼돈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무슨 문제나 사건이 생기면 문제에 메이고, 문제를 따라가고, 문제를 생각하는데, 모든 문제의 근원이 뭡니까? 창세기 3장입니다. 여러분 모든 말세에 어려움이 오고, 문제가 생기고 그럴수록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창세기 3장!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간다는 그 말은 창세기 3장의 이 사단의 유혹과 꼬임으로 통해서 멸망 받았을 때에 바로 해결해주시는 창세기 3장 몇 절입니까? 15절입니다. 누구입니까? 그리스도께로 가라!

그래서 요즘 새삼스럽게 '제2의 합숙시대를 연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지금 강조하고 있는 것이 뭐냐하면, 복음에 뭐를 내려요? 복음에 뿌리를 내리라고 그랬습니다. 복음에 뿌리를 내려라! 그러면서 그 복음의 뿌리를 내리라고 그러면서 비유를 뭐로 들었느냐 하면, 포도가 모든 열매 중에서 아주 유익한 열매인데, 그 포도열매가 사람에게 유익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한10여 년 가까이 자라야 된답니다. 왜 그러냐? 한 10년 정도 자라면 포도뿌리가 깊이 내린 데요. 그러니까 저 밑에 지하수에 이르기까지 내린답니다. 3년, 5년 가지고는 이게 내리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물고, 아무리 메말라도 포도는 메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뿌리를 내려 가지고 충분히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비유를 드는 것을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고 그럴 때에 다른 문제가 아니거든요. 흔히 여러분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고 그럴 때에, 삶에서 모든 문제가 올 때에 누구의 시각으로?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모든 문제가 올 때에 그 문제에 핵심이, 뒤의 배경이 뭡니까? 사단의 배경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보면 바로 어디로 갑니까?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또 그 다음에 단체나, 어떤 가정을 막론하고 '영적 문제가 왔다!' 그럴 때에 바로 뭡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위해서는 뭐가 와야 됩니까?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깊이 뿌리를 내린다!' 이럴 때에, 흔히 복음에 뿌리를 어떻게 내리느냐? 이걸 가지고 갈등하는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만은,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고 그럴 때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 말씀, 설교 말씀 듣는다는 사실자체가, 들려진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입니다. 내가 그 말씀이 들려 질 때에 그 말씀이 내 가슴에 잡혀 져야 돼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우리는 말씀에 뿌리를 내린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드릴 때에, 그 예배에 말씀이 내 가슴에 오지 아니하면 이건 지금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적 문제가 없어진다! 물론 그 가문과 가정을 통해서 내려오는 영적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똑같이 다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는 없다! 이 말이 아닙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 구요. '우리 가정은 깨끗하다! 우리 가정은 여자 문제도 깨끗하다!' 여러분 어느 가정이든지 가문이든지 2대, 3대만 올라가 보세요. 여자 문제 깨끗해요? 첩이 수두룩합니다. 저는 단적으로 한 예를 들었어요. 여러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영적 문제가 무한하게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 영적 문제가 어느 가정이나, 어느 가문이나, 그래서 개개인이 이 배경가지고 다 영적 문제가 내려옵니다. 이때에 영적 문제가 없어지게 되고, 영적 문제가 해결되는 시기가 언제냐 하면, 복음에 뿌리를 확실히 내리는 그때에 비로소 해결됩니다. 그때에 비로소 사라집니다.

안 그러면 예수 믿고 복음에,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그런 믿음에 배경이 안 생기면, 구원받는 문제는 해결될지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흑암 세력에 잡히는 문제는 자기도 모르게 잡혀지게 됩니다. 이게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혹시 '예수 믿었는데 왜 이러냐?' 예수 믿어도 복음에 뿌리를 못 내리면 그렇게 되게 되어 있어요.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 구체적인 상황이 뭡니까? 말씀 듣는 순간, 순간 그 말씀이 내 안에 사실적으로 믿음이 와져야 됩니다.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확신 갖고 그렇게 되면 따라오는 것이 뭐냐? 기도의 뿌리라 안 그럽니까! 기도의 뿌리라 그러는데, 이건 기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생각이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생각이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에 내려오는 모든 영적 흑암의 뿌리들이, 지금 내려오는, 계속해서 내려오는 그 모든 것들이 끊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도 이 사실이 안되어졌을 때에, 되기까지가 어려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이 사실을 붙잡고 여러분 한 주간 이걸 뭐 '뿌리내린다!' 그럴 때에, 오랜 시간이 갈 수도 있습니다 만은, 은혜주시면 한 주간 여러분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영적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려질 수가 있습니다. 누구로? 예수 그리스도로!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이 이런 믿음이 되면, 어떤 문제나 사건도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 세상 모든 문제 해결자 입니다. 그러니 뭐 '전도로 본다! 뭐로 본다!' 상관없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보게되고 여기서 모든 해답이 나오면, 여기서의 모든 응답자체가 전도입니다. 저절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요. 이것이 안되면 자꾸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죠.

그래서 오직 준비해야 될 것은 뭐라 구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교회 와서 흰옷입고 앉아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맨 날 철야하면서, 그러면서 '주님 언제 오십니까?' 물어보면 주님이 귀찮아서 '야, 모르겠다!' 그러십니다. 여러분과 제게 우리 주님께서 딱 한가지 오직 준비할 것,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미래가 다 답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와 지혜도 그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점치러 가야 되고, 이것이 안되면 미래가 불안해지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시각이 열리는 그때부터 여러분 삶과 직장과 생활에 지혜가 오고, 여기에 모든 축복과 역사가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붙잡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런 준비가 된 자들이 '생활과 사건에서 지혜롭게 복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보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 없도다! 이런 자들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그래서 아마 이 말세에 여러분들이 뭔가 '종말을 준비한다! 종말의 신앙이다!' 그럴 때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맨 정신을 차리고, 정신 바짝 차리고, 또 기도한다고, 금식하라고 그래놓으니까! 금식하면 정신이 이상해진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한 하루정도 굶으면 정신이 참 맑아집니다. 맨 날 먹다가, 맨 날 배부르다가 하루쯤 배가 살짝 고파지면 굉장히 정신이 맑아집니다. 그때일수록 누구를? 예수 그리스도! 그때일수록 혼란과 또 어려움에 빠져있는 자들이 묻거든? 예수 그리스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지혜로서는 그 날과 시간을 전혀 알 수 없기에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르니까 무관심해지고, 타락합니다. 한편으로는 억지로 알려고 하다가 잘못된 종말론에 휘말려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말세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세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종말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십시오.
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시며 말세에 대한 경고를 주십니다(32절).
② 종말의 징조들이 나타날 때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③ 너무 다급하게 종말을 바라보게 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④ 다른 한편으로는 징조들이 나타나지만 종말이 바로 닥치지 않으니까 무관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⑤ 종말이 지금 바로 닥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⑥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도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⑦ 종말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축복입니다.
⑧ 멸망당할 자들은 종말의 징조들이 아무리 나타나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쾌락에 빠지게 됩니다.
⑨ 마지막 때에 잘못된 성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⑩ 이러한 때에 주님이 가까이 오셨음을 깨닫고 정신차려서 준비해야 합니다.

2. 삶 속에서 복음적으로 살아가십시오.
① 주님께서 예배드리는 시간에 재림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② 주님은 삶의 현장에서 신실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40-41).
③ 삶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④ 삶에서 예배가 회복되고,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⑤ 현장에서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주일날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로 철저히 나아가는 준비를 하십시오.
① 신앙 생활에 대한 기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② 성경은 언제 주님이 오실지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42-44).
③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한 가지입니다.
④ 모든 문제의 근원은 창세기 3장의 문제입니다.
⑤ 어려움이 생길수록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서 15절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⑥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복음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⑦ 포도도 10여년 정도 자라야 뿌리를 깊이 내려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⑧ 복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말씀에 뿌리를 내려서 모든 일을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⑨ 어떠한 삶의 문제가 오더라도, 사단의 배경과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⑩ 이렇게 되면 모든 생각까지 기도로 바뀌어지고, 가문의 흑암 세력도 꺾입니다.

결론
복음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 가정과 가문의 흑암 세력이 꺾여집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와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깊이 뿌리를 내리면 삶에서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지혜롭게 복음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시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 눅 15:11-24 )

고등학교 다닐때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대항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아이를 많이 괴롭혔습니다. 하루는 잔디에 앉아있는데, 그 친구가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336장 '여러해 동안 주 떠나'의 찬송을 하자 그 아이에게 눈물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사실은 개척교회 목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가난과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이 싫었던 것입니다. 또 아버지의 간섭을 받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속에 타락을 하고 싶은 것이 그의 심정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올때가 있습니다. 모태신앙을 하거나, 수십년간 신앙의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1. 많은 세상의 유혹과, 하나님을 떠나고 싶은 유혹이 들때가 있습니다.
(1) 물질의 유혹에 빠져있을때가 많습니다.
① 그러나 유일신앙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질이 오면 문제가 오게 됩니다.
(2) 화려한 세상의 유혹에 빠질때가 많습니다.
① 롯은 세상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기에,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② 50-60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명예심이 내재될 때가 많습니다.
(3) 하나님을 떠나고 싶다는 유혹이 들때가 있습니다.
① 이 자리에 있는 사실이 답답하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② 복음, 유일신앙이 내안에서 식상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2.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①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많은 노력들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② 니느웨로 가라한 하나님의 명령을 요나가 거역하고 다시스로 나아갔습니다.
③ 결국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결국 증거케 만드셨습니다.
(2)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내놓으실 리가 없습니다.
① 시139편의 다윗은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안에서 벗어나면 엄청난 고통이 오게 됩니다.
① 본문의 탕자도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② 그러나 쾌락은 잠깐이고,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③ 이에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 엄청난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4) 인생의 고통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일어났고,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 사단입니다. (롬 3:23)
① 창 1:27,28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② 사단의 유혹을 받은 인생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권위에 까지 도전하였습니다.
③ 시 2:1-3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칠때, 하나님께서 비웃으시고, 깨어진다 하였습니다.
④ 어항속의 물고기가, 그 사실이 갑갑하여 벗어난다면, 말라 죽게 됩니다.
⑤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때, 모든 저주와 멸망속에 빠지게 됩니다.
(5)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안에 있는 만큼 축복속에 들어옵니다.
①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으면, 잘되는 것도 축복이고, 잘되지 않는 것도 축복입니다.
② 복음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돈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저주일 수 있습니다.
③ 다윗은 모든 부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고백하였고, 욥은 주신 분도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라 하였습니다.
④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면 모든 축복이 오게 됩니다.


결론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축복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복은 우리의 힘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삶속에 하나님의 주권이 어느정도 인정됩니까? 신앙의 축복은 2가지입니다. 우리 삶속에 얼마나 유일신앙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되어질때, 그 이상의 축복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잠시 어려움도 되어지는 과정입니다.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하십시요. 그때 새로운 삶이 되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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