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은 없다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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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 25:16) 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 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오늘 제목이 내 것은 없다. 그랬습니다. 상당히 추상적인 것 같으나 너무 절실한 내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성경에 오늘 말씀을 쭉 읽어보면 계산할 날은 드디어 온다! 이 말씀이 오늘 중요한 또 내용이 되겠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계산할 날은 드디어 오고야 만다!" 이 말하면 여러분 조금 마음에 찡한게 와야 될 겁니다. 늘 그냥 우리 주님 앞에 선다! 뭐 계산하는 그런 것이 있다. 뭐 행한 데로 갚는다! 뭘 한다! 그러면서도 거의 안 죽을 줄 알고 살고, 주님이 안 오실 줄 알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더디 온다! 뭘 온다! 상관없이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그리고 계산할 날은 여러분들이 반드시 옵니다. 드디어 오고야 맙니다. 그때 가서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말세를 좀 바로 살아야 되겠다! 그렇게 또 보고 있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9절에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가장 합당한 때에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반드시 어느 한시간 계산할 날이 오고 심판할 말하자면 우리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오고야 만다는 것을 분명히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어떤 시점에서 오늘 설교제목이 "내 것은 없다!" 그랬습니다. 내 것은 없다! 한번 받아합시다. "내 것은 없다!" 그런데 내 것이 많아요. 거의 내것가지고 살고, 이런 어떤 그 이상한 그런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내 것은 없다라는 것을 시인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때부터 성경에는 뭐가 나오느냐? 충성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어요. 내 것이 있다! 그럴 때는 그것은 충성보다 배짱이 나오고, 이상한 다른 어떤 교만이 나오고, 다른 것이 나옵니다. 그걸 말하자면 내 것이 있다는 바탕에서 일하게 될 때에, 흑암의 세력이 바로 그것을 뚫고 들어오게 되는 부분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조금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달란트를 받는다는 것!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원래 이 달란트라는 것은 재능이라는 말이고 그 다음에 일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기도 하고, 그가 받은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이 달란트를 받는다는 이 문제 속에서 달란트를 받을 때에, '모든 것을 받았다!' 이렇게 되고, 달란트를 받아서 달란트를 바로 사용 못한다는 것은, 이것은 구원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그렇게 치부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 30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이것은 지옥의 고통과 지옥의 죽음을 말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니까 뭐 상급이 있다, 적다! 그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달란트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았다! 그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달란트를 받았다!" 그럴 때에, 구원받았다! 이 달란트와 상관없는 일을 했다! 그럴 때에 이것은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은, 반드시 계산할 날이 옵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설날이 옵니다. 신앙생활을 했느냐? 못했느냐? 그런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심판할 날이 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계산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는 날 우리가 당황하지 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기초가 뭐냐하면, 지금까지 특별히 우리가 복음에서 여러분들이 언제부터 신앙생활이 되느냐? 그럴 때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는 시간부터입니다. 그것이 되는 만큼이거든요. 뭐냐하면 내가 죽는 만큼 신앙이 됩니다. 그것은 내게 없다라는 것이 되는 만큼 신앙이 됩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나는 없다!" 이게 신앙의 기초예요. 반대로 받아합시다. "나는 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에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조금만 이상한 마음 품으면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가고, 그리고 진짜 방향이 조금만 달라지게 되면, 그때부터 충성과 참 신앙의 배경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이 바로 되는 것은 내 것이 없다라는 사실이 사실적으로 인정이 될 때부터 신앙생활이 바로 됩니다.
그 다음에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사는 사건이 바로 이루어지는 그때부터 신앙생활이 바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의 그 위대한 신앙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고백한 것인 역대상 29장 11절에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받아합시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그러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자기 것으로 보이면 이게 문제거든요. 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집안에 있는 것조차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재능과 지혜도 내 것이 아닙니다.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이것이 다윗의 진정한 고백입니다.
참 신앙인의 고백일수록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떤 면에서 욕심이 생기게 될 때에 그 욕심을 억누르면서 고백한 것이, 내가 내 것이다라고 자랑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뭐로 여겼다 그랬습니까? 옛날 성경에는 '똥으로 여겼다!' 할 정도로 완전 배설물로 여겼다고 할 정도로, 이렇게 고백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바울이 똑같은 배경가지고 고백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다윗이 역대상 19장에 다 주의 것이다!
그 다음에 주께로부터 온다! 그렇게 역대 상에 쭉 설명을 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은 로마서 11장에 바로 그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된 것을 볼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로부터 받았고, 주님과 함께 이루어지고, 주님께로 마지막에 돌아간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누구한테서 왔어요?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누구하고 같이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누구한테 갑니까? 하나님께로 갑니다. 이런 모든 것을 배경으로 '내 것은 없다!' 여러분 정말 이 시간 진정한 마음으로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내 것이 있다는 자체가 그게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내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걸핏하면 사람은 섭섭하게되고, 삐치게 되고, 그 다음에 내것가지고 한다 안 한다 제시하게 되고 제게 됩니다. 내 것이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간다!' 아무런 조건을 내걸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고, 또 하나님이 하라 하시고, 그러면 거기에 이유가 생길 수 없고, 충성이라는 것이 여기서 진실한 동기 없는 충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여러분 뭐 섭섭하다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여러분 것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여러분 뭐 속이 상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것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뭔가 내가 안 하면 어떻고... 좀 뭔가 뻐기고 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 것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습니다. 축복하셔도 그런 사람들의 충성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심각한 일은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내 것은 없구나!' 오직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하나님 앞에 일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할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바로 이해되어야 사실적인 신앙생활이 되고, 그리고 뭔가 이게 진실한 감사로, 찬송으로, 신앙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부터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내 것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주의 교회 위해서 조금만 일했다 싶으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빼앗겼다!' 싶습니다. 여러분 헌금도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 감사할 뿐이죠. 내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 받아합시다. "빼앗겼다!" '만원 빼앗겼다!' 이런 식이 됩니다. 절대로 감사가 안 나옵니다. 여러분 '건강도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산다!' 감사합니다! 안 그러면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뭔가 이게 간단한 말 같지만, 엄청난 신앙의 근원을 바로 보셔야 합니다. 왜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느냐? 왜 전도가 잘 안 되느냐? 왜 믿음의 생활이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잘 안 되느냐? 제가 그 합숙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소감을 좀 쓰게 하거든요. 이름을 쓰고 써라 그러니까 좋은 소리만 써서 안되겠어요. 그래서 이제 이름을 쓰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 가지고 써라 그래놓았는데,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하면, 거의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나오더라 구요. 그게 뭐냐하면, '내가 처음에는 기뻤고, 처음에는 감사하고, 처음에는 잘 되었는데, 시간 갈수록 안되더라!' 이겁니다. '지금은 더 안되더라!' 어떤 사람은 합숙에 와 가지고 '새로이 회복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와서 안되더라!' 그럽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안 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여러분 딱 붙잡아야 됩니다. 밝혀 드리겠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먼저 뭐가 안 되느냐? 그리스도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복음 이해라 그러죠.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지금현재 우리의 형편입니다. 거의! 여기 우리가 이제 메시지를 받고, 복음 속에 들어와 있다고 하면서도 정확한 복음 이해가 잘 안되고 있어요. 말하라고 그러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앉았어요. 많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는 안 그런 줄 알았는데, 많아요. 내가 놀랄 정도로...
그래서 여러분 자꾸 뭔가 오늘도 훈련 문제가 나오는데, 훈련을 계속해서 받아야 됩니다. 훈련 안 받으면 여러분 체질이 복음 체질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을 실컷 듣고도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해조차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제가 이제 선교사 훈련원, 신학원을 이렇게 보니까! 우리 교회에서 신학원까지는 그대로 했는데, 선교사 훈련원 안가요. 중직자들부터 안가요. 앞으로 여러분 지교회가 되고, 교회가 커지면 그냥 이런 어떤 수준에서 교회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지교회가 구체적으로 되고, 전도가 구체적으로 일어나야 앞으로, 저기에 한꺼번에 2,050명이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한꺼번에 아무리 많이 해봐야 400명도 채 못 모입니다. 엄청난 숫자가 들어가야 되는데, 그 숫자가 모여지고, 그 숫자를 통해서 정말 대구와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는 교회가 된다! 그럴 때에, 말로 하지말고 거기에는 많은 경우 여러분들의 제자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되어야 되느냐? 먼저 여러분들이 제자가 되어야 됩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렘넌트, 렘넌트!' 렘넌트를 살릴 부모부터 안 된다면 렘넌트 안되게 되어 있어요. 이런 사실들이 여러분 구체화되어져서, 훈련이라 그러면 무조건 받으세요. 하나님이 시간과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기 지교회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전도의 사건이 일어나고 하면, 행정적으로 중직자들이 파송이 되고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뭔가 이 훈련을 못 받으면 파송이 되어져도 할 수가 없습니다. 파송을 붙이도록 되어져서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왜 안 되느냐? 쉽게 복음을 이해했다! 다 아는 것 같지만 체질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복음 이해가 잘 안되어요. 그러니까 실컷 훈련을 받아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복음에 이해,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 쉽게 말해서 우리가 복음에 대한 뿌리를 확실히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자기의 개인문제, 가정문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뭐냐하면요.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복음에, 그리스도에 대한 뭐가 있어야 되느냐?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제가 이 확신의 문제를 가지고 그냥 복음에 확신이 있다! 그렇게 안하고, 복음에 뭐라 구요? '확신!' 정말 마음속에서부터 울어나는 확신이 와야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뭔가 지속이 됩니다. 이것이 안되면, 그저 누구든지 확신이 있다! 다 있죠.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가지고 갈 수 있기 위해서는, 마지막 한가지 중요합니다. 날마다 복음이 체험되어야 됩니다. 날마다 복음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걸 가지고 다른 말로 하면, 날마다 말씀이 내 현장에 체험이 되어야 됩니다. 이 세 가지가 안 오면 지속이 안되게 되어 있어요. 얼마가지 않아서 자기 상처에 부닥쳐 버립니다.
이 감사가 사라져 버리고, 또 말한다면 전도는 되어진다는 말이 꿈같이 느껴집니다. 이런 문제들이 지금 다른 교회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교회가 여기에 본격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회복이 안되면, 큰 교회를 맡겨도 큰 교회를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에 제가 요즘 교회를 실제적으로 건축하는 것을 봐 가면서 뭔가 마음에, 건강은 안 따라지고, 뭔가 조금 고민이 되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러나 이것조차도 내 것은 없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준비를 하면서 굉장히 좀 힘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고, 결단을 좀 하게되는 그런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 주간동안에 계속해서 이 말씀가지고 준비를 하면서, 그러면서 내 것은 없다! 아예 첫 번부터 내 것은 없다! 나는 내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보통 착각이 아니거든요. 이런 면에서 뭔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기대하고,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이것은 내 것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이니까! 여기에 내 것이 첨가될 때는 나의 계획은 적고 좁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이루어진다! 그럴 때에, 여기에는 완전한 축복과 영광이 역사가 되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일이 여러분과 저의 일이요. 또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의 일인데, 사실은 '우리 것이 아니고, 내 것이 아니다!' 이런 배경을 오늘 좀 붙잡아야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주신 말씀 속에서, 이런 어떤 배경에서 세 가지 복음 이해와 그 다음에 복음 확신과 그 다음에 복음 체험! 이런 어떤 그 우리 다락방에서 쭉 말하는 그런 이야기들과 같이 본문에서, 오늘 정말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 받은 종들이 어떤 종들이었느냐? 그것을 좀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19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고 그랬습니다. 뭘 말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다가 먼 곳으로 가셨습니다. 다른 곳에 가셔서, 어디 갔어요?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인이라고 그럴 때는, 우리 예수님의 대한 비유라고 볼 수가 있죠. 돌아오시는데 그것도 금방 아니고 오랜 후에 돌아왔어요. 여기서 많은 경우 제가 지금까지 '지체된다! 더디 온다!'고 하는 그런 배경! 이것 때문에 말세에 대한 준비와 종말에 대한 준비가 흐려지게 되고, 무관심해 지게 되고, 이런 여러 가지 들을 말씀을 드렸죠. 그러나 오늘 또 한번 확인해야 될 것이 반드시 오십니다. 반드시 여러분 회개할 날이 옵니다.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아닙니다. 더 철저하게 옵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똑같이 두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예외이죠. 그리고 그 후에 주인의 칭찬이 다섯 달란트를 준 사람이나 두 달란트를 준 사람이나,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나 두 달란트를 남긴 자나 똑같이 칭찬할 때에 뭐라고 했습니까? '잘했다!' 그 칭찬의 핵심이, 잘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뭐라 그랬습니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라!' 그렇게 축복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정말 복음으로, 지속해서 복음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제일 첫 번째 뭐냐하면,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이 고백이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 두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자연적으로 충성이 되고, 자연적으로 헌신이 되고, 자연적으로 주의 교회에 일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심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주셨느냐?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이냐?'를 확실히 인정하는 사람! 이게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뭘 주셨습니까? 이게 인정이 되어야 돼요.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두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이게 인정이 되는 사람이 그때부터 비로소 뭐냐? 충성이라는 것이 그 뒤에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는 경우에는 거의 뭐가 되느냐? '아무것도 나는 못 받았습니다! 하나님 왜 안 줍니까!'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도,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의 삶은 다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내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받은 게 없습니다!' 이건 사단의 소리예요.
여러분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유혹할 때에 그 유혹한 것이 뭐냐하면, 바로 그런 문제입니다.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분명히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고 뭐냐? '하나만 먹지 말라! 선악과는 먹지 말라!' 그랬는데 사단은 이걸 딱 바꾸어 가지고,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주더냐?'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많이 받고도, '받은 게 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게 충성 못하게 하는 사단의 가장 무서운 근본적인 문제예요.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구원주실 때에 모든 것 다 주셨다!" 받아합시다. "받을 것 하나도 없다!" 더 받을 것 하나도 없다! 진짜입니까?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이 내어놓아라!' 그럽니까! 구원주실 때 다 주셨습니다. 필요한 것,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무슨 생각을 하느냐? 안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나옵니다. 이걸 뭐 모든 문제라 그러니까 그냥 막연한데, 여기에 온갖 소리가 다 나오고, 온갖 불평이 다 나오고, 온갖 문제가 다 나와요. 그래서 교회가 잘못되면 어느 단체보다도 불평 불만의 단체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 종교 생활하던 교회의 어떤 분위기에서 나오는 모든 단체는, 국가에 대해서든지, 어느 단체든지 제일 말 많은 데가 교회이고, 그뿐 아니고 제일 말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도 교인들이고, 제일 말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서도 교인들이다! 그러니까 뭔가 국가에서 교인들을 경시하게 되죠. 너무 감사해야 될 교인들이 이렇게 바뀌게 되는 그때부터 충성은커녕, 완전히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많은 경우, '사단의 종노릇한다!' 기분 나쁘죠. 많이 했어요. 지금도 하고 앉았을지도 몰라요. 거의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요. 또 이런 문제들을 반드시 우리는 해결하고야 마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인정할 때에, 첫 번째로 여러분과 제가 뭘 받았다고 인정해야 됩니까? '구원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시면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뭐 다른 여러 말 할 것 없어요. 이것만 붙잡아도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뭔가 이 '내가 돈 좀 벌기 위해서...' 죽으신 게 아닙니다. 이게 안되니까 뭐냐? 경제생활이 조금만 약해지면,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꾸 그렇게 불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돈 몇 푼 벌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의 근본문제, 원죄문제의 해결 뿐 아니고, 내가 앞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근본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완벽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완벽하게 해결했습니다. 다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고 이 축복된 역사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가정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내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뭐 돈이 없다, 있다! 그러나 '오늘 먹고 잘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지금 뭐 감사할 일이 한 두개입니까? 이런 모든 면을 볼 때에 눈에 띄는 것마다 감사예요.
저 사람을 만나게되고, 저 사람을 알게 되고, 또 저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 다음에 송현교회 앉아 있는 것! 또 여기에 앉아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 전부 감사입니다. 받아합시다. '다 받았다! 안 받은 것 하나도 없다!' 한 개도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뭔가 안 받았다! 여기에 불만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 받았습니다! 이것이 인정 될 때에 비로소 여러분 충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귀의 가장 상투적이 수단이 이것을 못 보도록 막아 놓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는 것마다 다 받은 것 아닙니다! 너무 많습니다.
이건 또 보이는 것이지만, 나는 너무 감사한 것은, 공기에 대해서 그렇게 귀하다! 참 이건 뭐 말로 할 수 없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있거든요. 우리 집에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 게 상당히 많아요. 그 중에 가을철이 되면 사과, 그 맛있는 사과를 못 먹어요. 일단 먹었다 그러면 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넘어가는 모든 통로가 다 쓰리니까! 그러니까 먹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제가 저기 동해에 가 있는 동안에 거기서 내가 이제 사과를 좋아하니까, 식후에 하나씩 깎아서 먹는데, 사과가 그렇게 먹고 싶더래요. 그래서 먹었는데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입도 괜찮고 내려가는 모든 통로도 괜찮아요. 그렇게 괜찮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그러더라 구요. 사과를 버적버적 씹어먹으면서 그러더니만, 여기 와서 사과를 딱 먹는데 달라요. 똑같은 사과인데, 거기서는 괜찮은데 여기서는 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 쓰립니다. 그게 무슨 관계냐? 공기관계입니다.
나는 그렇게, 여러분들이 그냥 무심히 마시는 산소가 엄청난 값어치 아닙니까! 그리고 일단은 제가 그곳에 가니까 소화가 잘 되요. 여러분 산소가 풍성하면 소화가 잘된다는 말만 들었지, 소화가 잘돼요. 여기 오니까 또 달라요. 건강할 때는 잘 모르죠. 지금쯤 이 말하면 꿈같다는 소리로 들릴 겁니다. 나는 너무 절실하게, '아버지, 내게 신선한 공기 주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어제 저녁에도 '당신 밥만 먹으면 이제 산에 올라가 앉아 있으라고...' 그래요. 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주신 은혜가 무한합니다.
보이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뿐 아니지, 이건 뭐 보이지 않는 것은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우리에게 주셨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감사밖에 할 것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끔뻑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 그래도 별로 인가 봐! 왜? 그게 인정이 안되니까!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입이 이만큼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충성이 나올 수 없어요.
여러분 오늘 한번 하나님 앞에 진실한 고백을 해야 됩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것은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자랑하고, 배짱 부릴 일이 하나도 없어요. 뭐 '이것 좋다! 저것 좋다!' 우리가 판단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 사실이 분명히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금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뭘 받았느냐? 가장 확실한 것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건 속일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확실하게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금 이런 일이고, 저런 일이고,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생깁니다. 그래도 받아합시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뭡니까? "자녀입니다!" 진짜입니까! 믿습니까? 오늘 아침에 싸우고 와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 아침에 어떤 일이 생겼더라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가 확인되면 될수록 뭡니까? 충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때 되면 충성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내가 해야되겠다!' 이것보다도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확인될수록 본능적으로 충성이 나온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게 확인 안 되면 본능적으로 충성이 안되어요. 이게 확인되면 여러분 삶 자체가 충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구나! 하나님이 다 하셨구나!' 이러면 내 생활과 삶이 본능적으로,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이게 뭔가 방향이 결정되잖아요. 내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이 나오죠. 그래서 다윗이 이것을 아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하나님께로 드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게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 아닙니까! 내 것으로 아니까! 나를 위해서 쓰고, 내가 쓰고, 내가 뭘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안 받았다!' 싶으니까 늘 불평하고...
제가 그런 비유를 옛날에 좀 많이 드렸습니다 만은, 그 박경남 목사님이 집회하시는 중에서 그런 비유를 들더라 구요. 어떤 과부가 먹을 것이 없는데, 부엌에 가니까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요. 그래서 물을 한 그릇 끊여 가지고, 그걸 판에다가 올려놓고는, 그래놓고는 물을 먹으려고 앉아 가지고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먹을 것이 없는데! 이제 물만 갖다놓고 있으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물을 이렇게 풍성히 주셔서 물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러니까! 먹을 것이 없는데, 물만 떠다놓고 앉아서 그렇게 기도하니까, 눈물이 안 나오겠어요.
그래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했는데, 마침 그때에 집 주인이 뭘 한다고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 울면서 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뭐 '감사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 집에 뭐 감사할 일이 있나?" 싶어서 '아무것도 없는 집에 뭐 도적질해왔나? 뭘 해왔나?' 싶어서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 가지고, 문에 구멍을 뚫어서 봤단 말이죠. 보니까 물을 한 대접 퍼놓고 기도하는데, 감사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인이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가지고, 쌀 한 가마니를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여러분 맹물 떠놓고 감사해도 쌀 한 가마니가 나옵니다. 내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감사가 안 나온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됩니까? 나는 송현 교회 앉아 계신 여러분들이 감사 못한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잡아서 야단 치지도 못하고, 가르쳐도 못 알아듣고, 그러면 곤란하죠.
오늘 진짜 꼭 붙드세요. '하나님,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하나님 내게 구원을 주셨나이다!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셨나이다!' 지혜는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내게 명철을 주셨나이다! 하나님 내게 하나님께로부터 돈을 주셨나이다! 하나님, 내게 형제 자매를 주셨나이다!'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못 받았다!' 싶거든 새벽 기도에 앉아 가지고 받은걸 한번 헤아려보세요. 아마 해가 뜰 때까지 해도 다 못 헤아릴 겁니다. 이게 안되니까 다른 부분들이 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안되면, 사단이 첫 번째로 틈타는 그런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씀을 드리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들이 두 달란트를 남겼던지, 다섯 달란트를 남겼던지,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은 생긴 데로 충성하세요. 한번 받아합시다. "생긴 데로 놀자!" 이게 절실하다 싶어서 이 말을 합니다. 생긴 데로, 주신 데로 충성하세요. 주신 데로 감사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칭찬과 축복을 똑같이 주셨습니다. '너는 많이 했기 때문에 많이 주고, 적게 했기 때문에 적게 준다!' 그 말이 아닙니다. 똑같이 여기에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요. 축복하신 그 중요한 내용이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내게 축복으로 안식을 주셨다!"
핵심에도 안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첫 번째 주신 것이 뭐냐하면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뭘 주었어요? 안식을 주었습니다. 인간이 창조되고 첫 번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 안식입니다. 평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월력을 보면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일요일을 제일 늦게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원래는 일요일이 한 주간에 몇 번째입니까? 제일 첫 번째입니다.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이렇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어떤 생각을 하느냐? 일요일이라 그러면 제일 늦게 되는 줄 압니다. 제일 먼저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제일 먼저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참 충성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 중에 선물이 뭐냐? 돈 몇 푼 더 받았다, 덜 받았다! 이게 아닙니다. 제일 첫 번이 뭐냐? 안식입니다. 참 평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평안이 없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게 아닙니다. 아무리 없고 힘들다! 평안이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모든 삶에 평안으로라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쭉 내려오는 말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에 모든 하나님의 축복이 다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다른 것은 다 놓치더라도, '하나님, 내게 평안주심을 확인하고 돌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확실하게 이 평안 가지고, 한 주간도 진짜 충성하는 귀중한 축복으로 인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지 않을 줄로 알고 살며 주님이 안 오실 것으로 알고 살지만, 계산할 날은 드디어 오고야 맙니다. 그 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바르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은 가장 합당한 때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서 있는 우리에게 ‘내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되겠습니다. 이 사실을 시인하는 순간부터 충성이 나옵니다.
● 달란트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① 달란트는 재능, 일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말합니다.
② 달란트를 받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았다’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③ 달란트를 사용하는 것이 구원과도 관련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30).
④ 달란트를 받을 때 구원받았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계산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⑥ 그 때에 당황하지 않도록 잘 준비해야 합니다.
⑦ 갈2:20의 말씀처럼 내가 죽는만큼, 신앙이 이루어집니다.
⑧ ‘나는 없다’가 신앙의 기초입니다.
⑨ ‘나는 있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교만입니다.
⑩ 신앙 생활이 바르게 되는 것은 ‘내것이 없다’라는 것이 사실적으로 인정되는만큼 이루어집니다.
⑪ 다윗은 대상29:11에서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⑫ 바울은 자기가 가진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⑬ 바울은 롬11:33에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⑭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하나님께로 갑니다.
⑮ 이러한 배경에서 내 것은 없습니다.
내 것이 있다는 자체가 우상입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동안에는 교만과 시기와 질투가 생깁니다.
내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부터 진실한 충성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일할 뿐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교회를 위해서 일할 때 빼앗겼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 왜 신앙 생활이 잘 안되고, 전도가 잘 안됩니까?
① 첫 번째 이유 :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②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③ 훈련을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
④ 그리스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복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⑤ 두 번째 이유 : 이해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⑥ 확신이 있어야 지속이 가능합니다.
⑦ 세 번째 이유 : 날마다 복음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⑧ 날마다 말씀이 내 현장에서 체험되어야 합니다.
⑨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 하나님께 축복받고 칭찬받는 종들은 누구입니까?
① 19절 :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②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로 올라가셨다가 오랜 후에 재림하십니다.
③ 오랜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림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지나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④ 20절 :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⑤ 22절 :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⑥ 주인은 그 두 사람에게 ‘잘 했다’라고 칭찬하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축복했습니다.
⑦ 복음으로 지속해서 살아가는 충성된 사람은 ‘내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⑧ 자연적으로 충성하는 마음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⑨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실을 인정할 때 충성이 따라 나오게 됩니다.
⑩ 우리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⑪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는 것은 사단의 교묘한 전략입니다.
⑫ 하나님은 구원 주실 때에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⑬ 우리가 더 받을 것은 없습니다.
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나, 우리는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⑮ 우리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온갖 불평이 다 나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구원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 충성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해도 감격스럽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며, 마지막 때는 하나님께로 갑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은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나 사건이 생겨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이 확인되는만큼 본능적으로 충성이 나오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것이구나!’라는 고백 속에서 진정한 감사와 충성이 나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 받은 대로 감사하고 충성하십시오.
① 다섯 달란트를 받았든지, 두 달란트를 받았든지 주신 대로 감사하고 충성하십시오.
② 하나님은 칭찬과 축복을 똑같이 주셨습니다.
③ 하나님은 내게 축복으로 안식을 주셨습니다.
④ 사람이 창조되고 첫 번째로 받은 선물이 안식입니다.
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 중의 선물이 바로 참 평안입니다.
⑥ 아무리 없고 힘들어도 평안이 있으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⑦ 주님께로 가면 쉬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마 25:16) 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마 25: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오늘 제목이 내 것은 없다. 그랬습니다. 상당히 추상적인 것 같으나 너무 절실한 내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성경에 오늘 말씀을 쭉 읽어보면 계산할 날은 드디어 온다! 이 말씀이 오늘 중요한 또 내용이 되겠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계산할 날은 드디어 오고야 만다!" 이 말하면 여러분 조금 마음에 찡한게 와야 될 겁니다. 늘 그냥 우리 주님 앞에 선다! 뭐 계산하는 그런 것이 있다. 뭐 행한 데로 갚는다! 뭘 한다! 그러면서도 거의 안 죽을 줄 알고 살고, 주님이 안 오실 줄 알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더디 온다! 뭘 온다! 상관없이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그리고 계산할 날은 여러분들이 반드시 옵니다. 드디어 오고야 맙니다. 그때 가서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말세를 좀 바로 살아야 되겠다! 그렇게 또 보고 있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9절에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가장 합당한 때에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반드시 어느 한시간 계산할 날이 오고 심판할 말하자면 우리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오고야 만다는 것을 분명히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어떤 시점에서 오늘 설교제목이 "내 것은 없다!" 그랬습니다. 내 것은 없다! 한번 받아합시다. "내 것은 없다!" 그런데 내 것이 많아요. 거의 내것가지고 살고, 이런 어떤 그 이상한 그런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내 것은 없다라는 것을 시인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때부터 성경에는 뭐가 나오느냐? 충성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어요. 내 것이 있다! 그럴 때는 그것은 충성보다 배짱이 나오고, 이상한 다른 어떤 교만이 나오고, 다른 것이 나옵니다. 그걸 말하자면 내 것이 있다는 바탕에서 일하게 될 때에, 흑암의 세력이 바로 그것을 뚫고 들어오게 되는 부분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조금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달란트를 받는다는 것!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원래 이 달란트라는 것은 재능이라는 말이고 그 다음에 일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기도 하고, 그가 받은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이 달란트를 받는다는 이 문제 속에서 달란트를 받을 때에, '모든 것을 받았다!' 이렇게 되고, 달란트를 받아서 달란트를 바로 사용 못한다는 것은, 이것은 구원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그렇게 치부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 30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이것은 지옥의 고통과 지옥의 죽음을 말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니까 뭐 상급이 있다, 적다! 그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달란트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았다! 그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달란트를 받았다!" 그럴 때에, 구원받았다! 이 달란트와 상관없는 일을 했다! 그럴 때에 이것은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은, 반드시 계산할 날이 옵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설날이 옵니다. 신앙생활을 했느냐? 못했느냐? 그런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심판할 날이 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계산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는 날 우리가 당황하지 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기초가 뭐냐하면, 지금까지 특별히 우리가 복음에서 여러분들이 언제부터 신앙생활이 되느냐? 그럴 때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는 시간부터입니다. 그것이 되는 만큼이거든요. 뭐냐하면 내가 죽는 만큼 신앙이 됩니다. 그것은 내게 없다라는 것이 되는 만큼 신앙이 됩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나는 없다!" 이게 신앙의 기초예요. 반대로 받아합시다. "나는 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에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조금만 이상한 마음 품으면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가고, 그리고 진짜 방향이 조금만 달라지게 되면, 그때부터 충성과 참 신앙의 배경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이 바로 되는 것은 내 것이 없다라는 사실이 사실적으로 인정이 될 때부터 신앙생활이 바로 됩니다.
그 다음에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사는 사건이 바로 이루어지는 그때부터 신앙생활이 바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의 그 위대한 신앙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고백한 것인 역대상 29장 11절에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받아합시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그러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자기 것으로 보이면 이게 문제거든요. 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집안에 있는 것조차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재능과 지혜도 내 것이 아닙니다.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이것이 다윗의 진정한 고백입니다.
참 신앙인의 고백일수록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떤 면에서 욕심이 생기게 될 때에 그 욕심을 억누르면서 고백한 것이, 내가 내 것이다라고 자랑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뭐로 여겼다 그랬습니까? 옛날 성경에는 '똥으로 여겼다!' 할 정도로 완전 배설물로 여겼다고 할 정도로, 이렇게 고백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바울이 똑같은 배경가지고 고백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다윗이 역대상 19장에 다 주의 것이다!
그 다음에 주께로부터 온다! 그렇게 역대 상에 쭉 설명을 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은 로마서 11장에 바로 그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된 것을 볼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로부터 받았고, 주님과 함께 이루어지고, 주님께로 마지막에 돌아간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누구한테서 왔어요?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누구하고 같이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누구한테 갑니까? 하나님께로 갑니다. 이런 모든 것을 배경으로 '내 것은 없다!' 여러분 정말 이 시간 진정한 마음으로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내 것이 있다는 자체가 그게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내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걸핏하면 사람은 섭섭하게되고, 삐치게 되고, 그 다음에 내것가지고 한다 안 한다 제시하게 되고 제게 됩니다. 내 것이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간다!' 아무런 조건을 내걸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고, 또 하나님이 하라 하시고, 그러면 거기에 이유가 생길 수 없고, 충성이라는 것이 여기서 진실한 동기 없는 충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여러분 뭐 섭섭하다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여러분 것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여러분 뭐 속이 상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것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뭔가 내가 안 하면 어떻고... 좀 뭔가 뻐기고 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 것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습니다. 축복하셔도 그런 사람들의 충성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심각한 일은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내 것은 없구나!' 오직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하나님 앞에 일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할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바로 이해되어야 사실적인 신앙생활이 되고, 그리고 뭔가 이게 진실한 감사로, 찬송으로, 신앙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부터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내 것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주의 교회 위해서 조금만 일했다 싶으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빼앗겼다!' 싶습니다. 여러분 헌금도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 감사할 뿐이죠. 내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 받아합시다. "빼앗겼다!" '만원 빼앗겼다!' 이런 식이 됩니다. 절대로 감사가 안 나옵니다. 여러분 '건강도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산다!' 감사합니다! 안 그러면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뭔가 이게 간단한 말 같지만, 엄청난 신앙의 근원을 바로 보셔야 합니다. 왜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느냐? 왜 전도가 잘 안 되느냐? 왜 믿음의 생활이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잘 안 되느냐? 제가 그 합숙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소감을 좀 쓰게 하거든요. 이름을 쓰고 써라 그러니까 좋은 소리만 써서 안되겠어요. 그래서 이제 이름을 쓰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 가지고 써라 그래놓았는데,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하면, 거의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나오더라 구요. 그게 뭐냐하면, '내가 처음에는 기뻤고, 처음에는 감사하고, 처음에는 잘 되었는데, 시간 갈수록 안되더라!' 이겁니다. '지금은 더 안되더라!' 어떤 사람은 합숙에 와 가지고 '새로이 회복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와서 안되더라!' 그럽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안 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여러분 딱 붙잡아야 됩니다. 밝혀 드리겠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먼저 뭐가 안 되느냐? 그리스도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복음 이해라 그러죠.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지금현재 우리의 형편입니다. 거의! 여기 우리가 이제 메시지를 받고, 복음 속에 들어와 있다고 하면서도 정확한 복음 이해가 잘 안되고 있어요. 말하라고 그러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앉았어요. 많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는 안 그런 줄 알았는데, 많아요. 내가 놀랄 정도로...
그래서 여러분 자꾸 뭔가 오늘도 훈련 문제가 나오는데, 훈련을 계속해서 받아야 됩니다. 훈련 안 받으면 여러분 체질이 복음 체질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을 실컷 듣고도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해조차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제가 이제 선교사 훈련원, 신학원을 이렇게 보니까! 우리 교회에서 신학원까지는 그대로 했는데, 선교사 훈련원 안가요. 중직자들부터 안가요. 앞으로 여러분 지교회가 되고, 교회가 커지면 그냥 이런 어떤 수준에서 교회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지교회가 구체적으로 되고, 전도가 구체적으로 일어나야 앞으로, 저기에 한꺼번에 2,050명이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한꺼번에 아무리 많이 해봐야 400명도 채 못 모입니다. 엄청난 숫자가 들어가야 되는데, 그 숫자가 모여지고, 그 숫자를 통해서 정말 대구와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는 교회가 된다! 그럴 때에, 말로 하지말고 거기에는 많은 경우 여러분들의 제자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되어야 되느냐? 먼저 여러분들이 제자가 되어야 됩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렘넌트, 렘넌트!' 렘넌트를 살릴 부모부터 안 된다면 렘넌트 안되게 되어 있어요. 이런 사실들이 여러분 구체화되어져서, 훈련이라 그러면 무조건 받으세요. 하나님이 시간과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기 지교회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전도의 사건이 일어나고 하면, 행정적으로 중직자들이 파송이 되고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뭔가 이 훈련을 못 받으면 파송이 되어져도 할 수가 없습니다. 파송을 붙이도록 되어져서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왜 안 되느냐? 쉽게 복음을 이해했다! 다 아는 것 같지만 체질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복음 이해가 잘 안되어요. 그러니까 실컷 훈련을 받아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복음에 이해,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 쉽게 말해서 우리가 복음에 대한 뿌리를 확실히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자기의 개인문제, 가정문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뭐냐하면요.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복음에, 그리스도에 대한 뭐가 있어야 되느냐?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제가 이 확신의 문제를 가지고 그냥 복음에 확신이 있다! 그렇게 안하고, 복음에 뭐라 구요? '확신!' 정말 마음속에서부터 울어나는 확신이 와야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뭔가 지속이 됩니다. 이것이 안되면, 그저 누구든지 확신이 있다! 다 있죠.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가지고 갈 수 있기 위해서는, 마지막 한가지 중요합니다. 날마다 복음이 체험되어야 됩니다. 날마다 복음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걸 가지고 다른 말로 하면, 날마다 말씀이 내 현장에 체험이 되어야 됩니다. 이 세 가지가 안 오면 지속이 안되게 되어 있어요. 얼마가지 않아서 자기 상처에 부닥쳐 버립니다.
이 감사가 사라져 버리고, 또 말한다면 전도는 되어진다는 말이 꿈같이 느껴집니다. 이런 문제들이 지금 다른 교회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교회가 여기에 본격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회복이 안되면, 큰 교회를 맡겨도 큰 교회를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에 제가 요즘 교회를 실제적으로 건축하는 것을 봐 가면서 뭔가 마음에, 건강은 안 따라지고, 뭔가 조금 고민이 되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러나 이것조차도 내 것은 없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준비를 하면서 굉장히 좀 힘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고, 결단을 좀 하게되는 그런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 주간동안에 계속해서 이 말씀가지고 준비를 하면서, 그러면서 내 것은 없다! 아예 첫 번부터 내 것은 없다! 나는 내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보통 착각이 아니거든요. 이런 면에서 뭔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기대하고,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이것은 내 것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이니까! 여기에 내 것이 첨가될 때는 나의 계획은 적고 좁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이루어진다! 그럴 때에, 여기에는 완전한 축복과 영광이 역사가 되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일이 여러분과 저의 일이요. 또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의 일인데, 사실은 '우리 것이 아니고, 내 것이 아니다!' 이런 배경을 오늘 좀 붙잡아야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주신 말씀 속에서, 이런 어떤 배경에서 세 가지 복음 이해와 그 다음에 복음 확신과 그 다음에 복음 체험! 이런 어떤 그 우리 다락방에서 쭉 말하는 그런 이야기들과 같이 본문에서, 오늘 정말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 받은 종들이 어떤 종들이었느냐? 그것을 좀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19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고 그랬습니다. 뭘 말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다가 먼 곳으로 가셨습니다. 다른 곳에 가셔서, 어디 갔어요?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인이라고 그럴 때는, 우리 예수님의 대한 비유라고 볼 수가 있죠. 돌아오시는데 그것도 금방 아니고 오랜 후에 돌아왔어요. 여기서 많은 경우 제가 지금까지 '지체된다! 더디 온다!'고 하는 그런 배경! 이것 때문에 말세에 대한 준비와 종말에 대한 준비가 흐려지게 되고, 무관심해 지게 되고, 이런 여러 가지 들을 말씀을 드렸죠. 그러나 오늘 또 한번 확인해야 될 것이 반드시 오십니다. 반드시 여러분 회개할 날이 옵니다.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아닙니다. 더 철저하게 옵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똑같이 두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예외이죠. 그리고 그 후에 주인의 칭찬이 다섯 달란트를 준 사람이나 두 달란트를 준 사람이나,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나 두 달란트를 남긴 자나 똑같이 칭찬할 때에 뭐라고 했습니까? '잘했다!' 그 칭찬의 핵심이, 잘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뭐라 그랬습니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라!' 그렇게 축복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정말 복음으로, 지속해서 복음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제일 첫 번째 뭐냐하면,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이 고백이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 두 달란트를 더 남겼나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자연적으로 충성이 되고, 자연적으로 헌신이 되고, 자연적으로 주의 교회에 일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심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주셨느냐?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이냐?'를 확실히 인정하는 사람! 이게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뭘 주셨습니까? 이게 인정이 되어야 돼요.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두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이게 인정이 되는 사람이 그때부터 비로소 뭐냐? 충성이라는 것이 그 뒤에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는 경우에는 거의 뭐가 되느냐? '아무것도 나는 못 받았습니다! 하나님 왜 안 줍니까!'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도,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의 삶은 다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내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받은 게 없습니다!' 이건 사단의 소리예요.
여러분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유혹할 때에 그 유혹한 것이 뭐냐하면, 바로 그런 문제입니다.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분명히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고 뭐냐? '하나만 먹지 말라! 선악과는 먹지 말라!' 그랬는데 사단은 이걸 딱 바꾸어 가지고,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주더냐?'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많이 받고도, '받은 게 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게 충성 못하게 하는 사단의 가장 무서운 근본적인 문제예요.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구원주실 때에 모든 것 다 주셨다!" 받아합시다. "받을 것 하나도 없다!" 더 받을 것 하나도 없다! 진짜입니까?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이 내어놓아라!' 그럽니까! 구원주실 때 다 주셨습니다. 필요한 것,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무슨 생각을 하느냐? 안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나옵니다. 이걸 뭐 모든 문제라 그러니까 그냥 막연한데, 여기에 온갖 소리가 다 나오고, 온갖 불평이 다 나오고, 온갖 문제가 다 나와요. 그래서 교회가 잘못되면 어느 단체보다도 불평 불만의 단체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 종교 생활하던 교회의 어떤 분위기에서 나오는 모든 단체는, 국가에 대해서든지, 어느 단체든지 제일 말 많은 데가 교회이고, 그뿐 아니고 제일 말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도 교인들이고, 제일 말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서도 교인들이다! 그러니까 뭔가 국가에서 교인들을 경시하게 되죠. 너무 감사해야 될 교인들이 이렇게 바뀌게 되는 그때부터 충성은커녕, 완전히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많은 경우, '사단의 종노릇한다!' 기분 나쁘죠. 많이 했어요. 지금도 하고 앉았을지도 몰라요. 거의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요. 또 이런 문제들을 반드시 우리는 해결하고야 마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인정할 때에, 첫 번째로 여러분과 제가 뭘 받았다고 인정해야 됩니까? '구원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시면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뭐 다른 여러 말 할 것 없어요. 이것만 붙잡아도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뭔가 이 '내가 돈 좀 벌기 위해서...' 죽으신 게 아닙니다. 이게 안되니까 뭐냐? 경제생활이 조금만 약해지면,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꾸 그렇게 불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돈 몇 푼 벌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의 근본문제, 원죄문제의 해결 뿐 아니고, 내가 앞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근본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완벽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완벽하게 해결했습니다. 다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고 이 축복된 역사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가정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내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뭐 돈이 없다, 있다! 그러나 '오늘 먹고 잘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지금 뭐 감사할 일이 한 두개입니까? 이런 모든 면을 볼 때에 눈에 띄는 것마다 감사예요.
저 사람을 만나게되고, 저 사람을 알게 되고, 또 저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 다음에 송현교회 앉아 있는 것! 또 여기에 앉아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 전부 감사입니다. 받아합시다. '다 받았다! 안 받은 것 하나도 없다!' 한 개도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뭔가 안 받았다! 여기에 불만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 받았습니다! 이것이 인정 될 때에 비로소 여러분 충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귀의 가장 상투적이 수단이 이것을 못 보도록 막아 놓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는 것마다 다 받은 것 아닙니다! 너무 많습니다.
이건 또 보이는 것이지만, 나는 너무 감사한 것은, 공기에 대해서 그렇게 귀하다! 참 이건 뭐 말로 할 수 없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있거든요. 우리 집에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 게 상당히 많아요. 그 중에 가을철이 되면 사과, 그 맛있는 사과를 못 먹어요. 일단 먹었다 그러면 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넘어가는 모든 통로가 다 쓰리니까! 그러니까 먹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제가 저기 동해에 가 있는 동안에 거기서 내가 이제 사과를 좋아하니까, 식후에 하나씩 깎아서 먹는데, 사과가 그렇게 먹고 싶더래요. 그래서 먹었는데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입도 괜찮고 내려가는 모든 통로도 괜찮아요. 그렇게 괜찮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그러더라 구요. 사과를 버적버적 씹어먹으면서 그러더니만, 여기 와서 사과를 딱 먹는데 달라요. 똑같은 사과인데, 거기서는 괜찮은데 여기서는 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 쓰립니다. 그게 무슨 관계냐? 공기관계입니다.
나는 그렇게, 여러분들이 그냥 무심히 마시는 산소가 엄청난 값어치 아닙니까! 그리고 일단은 제가 그곳에 가니까 소화가 잘 되요. 여러분 산소가 풍성하면 소화가 잘된다는 말만 들었지, 소화가 잘돼요. 여기 오니까 또 달라요. 건강할 때는 잘 모르죠. 지금쯤 이 말하면 꿈같다는 소리로 들릴 겁니다. 나는 너무 절실하게, '아버지, 내게 신선한 공기 주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어제 저녁에도 '당신 밥만 먹으면 이제 산에 올라가 앉아 있으라고...' 그래요. 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주신 은혜가 무한합니다.
보이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뿐 아니지, 이건 뭐 보이지 않는 것은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우리에게 주셨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감사밖에 할 것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끔뻑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 그래도 별로 인가 봐! 왜? 그게 인정이 안되니까!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입이 이만큼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충성이 나올 수 없어요.
여러분 오늘 한번 하나님 앞에 진실한 고백을 해야 됩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것은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자랑하고, 배짱 부릴 일이 하나도 없어요. 뭐 '이것 좋다! 저것 좋다!' 우리가 판단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 사실이 분명히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금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뭘 받았느냐? 가장 확실한 것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건 속일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확실하게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금 이런 일이고, 저런 일이고,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생깁니다. 그래도 받아합시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뭡니까? "자녀입니다!" 진짜입니까! 믿습니까? 오늘 아침에 싸우고 와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 아침에 어떤 일이 생겼더라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가 확인되면 될수록 뭡니까? 충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때 되면 충성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내가 해야되겠다!' 이것보다도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확인될수록 본능적으로 충성이 나온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게 확인 안 되면 본능적으로 충성이 안되어요. 이게 확인되면 여러분 삶 자체가 충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구나! 하나님이 다 하셨구나!' 이러면 내 생활과 삶이 본능적으로,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이게 뭔가 방향이 결정되잖아요. 내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이 나오죠. 그래서 다윗이 이것을 아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하나님께로 드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게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 아닙니까! 내 것으로 아니까! 나를 위해서 쓰고, 내가 쓰고, 내가 뭘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안 받았다!' 싶으니까 늘 불평하고...
제가 그런 비유를 옛날에 좀 많이 드렸습니다 만은, 그 박경남 목사님이 집회하시는 중에서 그런 비유를 들더라 구요. 어떤 과부가 먹을 것이 없는데, 부엌에 가니까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요. 그래서 물을 한 그릇 끊여 가지고, 그걸 판에다가 올려놓고는, 그래놓고는 물을 먹으려고 앉아 가지고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먹을 것이 없는데! 이제 물만 갖다놓고 있으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물을 이렇게 풍성히 주셔서 물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러니까! 먹을 것이 없는데, 물만 떠다놓고 앉아서 그렇게 기도하니까, 눈물이 안 나오겠어요.
그래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했는데, 마침 그때에 집 주인이 뭘 한다고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 울면서 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뭐 '감사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 집에 뭐 감사할 일이 있나?" 싶어서 '아무것도 없는 집에 뭐 도적질해왔나? 뭘 해왔나?' 싶어서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 가지고, 문에 구멍을 뚫어서 봤단 말이죠. 보니까 물을 한 대접 퍼놓고 기도하는데, 감사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인이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가지고, 쌀 한 가마니를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여러분 맹물 떠놓고 감사해도 쌀 한 가마니가 나옵니다. 내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감사가 안 나온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됩니까? 나는 송현 교회 앉아 계신 여러분들이 감사 못한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잡아서 야단 치지도 못하고, 가르쳐도 못 알아듣고, 그러면 곤란하죠.
오늘 진짜 꼭 붙드세요. '하나님,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하나님 내게 구원을 주셨나이다!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셨나이다!' 지혜는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내게 명철을 주셨나이다! 하나님 내게 하나님께로부터 돈을 주셨나이다! 하나님, 내게 형제 자매를 주셨나이다!'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못 받았다!' 싶거든 새벽 기도에 앉아 가지고 받은걸 한번 헤아려보세요. 아마 해가 뜰 때까지 해도 다 못 헤아릴 겁니다. 이게 안되니까 다른 부분들이 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안되면, 사단이 첫 번째로 틈타는 그런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씀을 드리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들이 두 달란트를 남겼던지, 다섯 달란트를 남겼던지,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은 생긴 데로 충성하세요. 한번 받아합시다. "생긴 데로 놀자!" 이게 절실하다 싶어서 이 말을 합니다. 생긴 데로, 주신 데로 충성하세요. 주신 데로 감사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칭찬과 축복을 똑같이 주셨습니다. '너는 많이 했기 때문에 많이 주고, 적게 했기 때문에 적게 준다!' 그 말이 아닙니다. 똑같이 여기에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요. 축복하신 그 중요한 내용이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내게 축복으로 안식을 주셨다!"
핵심에도 안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첫 번째 주신 것이 뭐냐하면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뭘 주었어요? 안식을 주었습니다. 인간이 창조되고 첫 번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 안식입니다. 평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월력을 보면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일요일을 제일 늦게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원래는 일요일이 한 주간에 몇 번째입니까? 제일 첫 번째입니다.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이렇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어떤 생각을 하느냐? 일요일이라 그러면 제일 늦게 되는 줄 압니다. 제일 먼저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제일 먼저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참 충성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 중에 선물이 뭐냐? 돈 몇 푼 더 받았다, 덜 받았다! 이게 아닙니다. 제일 첫 번이 뭐냐? 안식입니다. 참 평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평안이 없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게 아닙니다. 아무리 없고 힘들다! 평안이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모든 삶에 평안으로라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쭉 내려오는 말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에 모든 하나님의 축복이 다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다른 것은 다 놓치더라도, '하나님, 내게 평안주심을 확인하고 돌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확실하게 이 평안 가지고, 한 주간도 진짜 충성하는 귀중한 축복으로 인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지 않을 줄로 알고 살며 주님이 안 오실 것으로 알고 살지만, 계산할 날은 드디어 오고야 맙니다. 그 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바르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은 가장 합당한 때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서 있는 우리에게 ‘내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되겠습니다. 이 사실을 시인하는 순간부터 충성이 나옵니다.
● 달란트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① 달란트는 재능, 일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말합니다.
② 달란트를 받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았다’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③ 달란트를 사용하는 것이 구원과도 관련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30).
④ 달란트를 받을 때 구원받았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계산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⑥ 그 때에 당황하지 않도록 잘 준비해야 합니다.
⑦ 갈2:20의 말씀처럼 내가 죽는만큼, 신앙이 이루어집니다.
⑧ ‘나는 없다’가 신앙의 기초입니다.
⑨ ‘나는 있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교만입니다.
⑩ 신앙 생활이 바르게 되는 것은 ‘내것이 없다’라는 것이 사실적으로 인정되는만큼 이루어집니다.
⑪ 다윗은 대상29:11에서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⑫ 바울은 자기가 가진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⑬ 바울은 롬11:33에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⑭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하나님께로 갑니다.
⑮ 이러한 배경에서 내 것은 없습니다.
내 것이 있다는 자체가 우상입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동안에는 교만과 시기와 질투가 생깁니다.
내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부터 진실한 충성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일할 뿐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교회를 위해서 일할 때 빼앗겼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 왜 신앙 생활이 잘 안되고, 전도가 잘 안됩니까?
① 첫 번째 이유 :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②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③ 훈련을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
④ 그리스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복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⑤ 두 번째 이유 : 이해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⑥ 확신이 있어야 지속이 가능합니다.
⑦ 세 번째 이유 : 날마다 복음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⑧ 날마다 말씀이 내 현장에서 체험되어야 합니다.
⑨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 하나님께 축복받고 칭찬받는 종들은 누구입니까?
① 19절 :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②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로 올라가셨다가 오랜 후에 재림하십니다.
③ 오랜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림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지나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④ 20절 :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⑤ 22절 :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⑥ 주인은 그 두 사람에게 ‘잘 했다’라고 칭찬하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축복했습니다.
⑦ 복음으로 지속해서 살아가는 충성된 사람은 ‘내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⑧ 자연적으로 충성하는 마음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⑨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실을 인정할 때 충성이 따라 나오게 됩니다.
⑩ 우리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⑪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는 것은 사단의 교묘한 전략입니다.
⑫ 하나님은 구원 주실 때에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⑬ 우리가 더 받을 것은 없습니다.
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나, 우리는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⑮ 우리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온갖 불평이 다 나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구원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 충성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해도 감격스럽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며, 마지막 때는 하나님께로 갑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은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나 사건이 생겨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이 확인되는만큼 본능적으로 충성이 나오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것이구나!’라는 고백 속에서 진정한 감사와 충성이 나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 받은 대로 감사하고 충성하십시오.
① 다섯 달란트를 받았든지, 두 달란트를 받았든지 주신 대로 감사하고 충성하십시오.
② 하나님은 칭찬과 축복을 똑같이 주셨습니다.
③ 하나님은 내게 축복으로 안식을 주셨습니다.
④ 사람이 창조되고 첫 번째로 받은 선물이 안식입니다.
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 중의 선물이 바로 참 평안입니다.
⑥ 아무리 없고 힘들어도 평안이 있으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⑦ 주님께로 가면 쉬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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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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