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대로(2)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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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 26:18)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마 26:19)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마 26: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마 26: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오늘 제목을 기록된 대로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 속리산에 갔다가 금요일 날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조금 무리가 된 것 같아서, '오늘 강단에 좀 서겠냐?' 그렇게 염려를 했습니다 만은, '하나님은 필요를 채우신다!'고 제가 설교로 말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우선 강단에 설 때에 건강으로 채워 주실 것이 아니냐! 그것을 믿고 섰습니다. 제가 조금 뭔가 원활한 느낌이 안 들더라도 하나님이 필요를 채우셔서 오늘 섰다는 것을 이해하시면, 여러분에게 함께 힘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내용의 말씀이 가룟 유다가 "기록된 대로" 돌출적인, 그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록하신 대로, 하나님이 여기에는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내용이 됩니다. 가장 큰 문제로, 그래서 지난주에 가룟 유다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렸는데, 이 열두 제자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열두 제자 중에 하나다! 그렇게 분명히 신분을 밝혔죠.
14절에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이 열둘 중 하나라고 일부러 이렇게 말씀한 것은, 일반평신도도 아니고,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정말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속에 이 가룟 유다가 나왔다! 그러면서 중요하게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이, 우리가 깊이 신앙고백을 하고, 신앙생활도 연구하고, 또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도 하는 중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배신자가 됩니다. 그뿐 아니고 더 악한 하나님의 그 역사와 계획과 흐름에 악한 자로 쓰임 받게 되는, 이런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것이라는 것을 상당히 저는 개인적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지난주에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을 하면서 다락방도 안하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뭔가 깊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중직자들이나 또 중요한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 뭔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과 방향 맞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가지 아니할 때에, 우리 개인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교회 안에서 우리도 모르게 배신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악행을 하게 되는데 쓰임 받게 되는, 말하자면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에 쓰임 받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나오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 종종 있는 그런 부분들입니다. 열두 제자라! 그러면서 가룟 유다가 나왔다! 그런 배경이거든요. 그래서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이 축복과 그 은혜를 갖고 있는 그 은혜 속에 섰다는 사실을 진짜 감사하지 않으면, 오늘 어떤 면에서 이 감사주일에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룟 유다는 정상은 아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가룟 유다는 머리가 돌았다!" 그럴 것 아닙니까! 어떻게 그 자기 스승을, 특별히 예수님을 팝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게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팔고 내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러면 똑같이 머리가 돈 것이지. 그런데 이 사실이 우리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 이름 가지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흥정하는 대상으로 가룟 유다는 삼았거든요. '내가 예수를 넘겨 줄테니까 얼마 주겠느냐? 은 삼십을 내어라! 더 내어라!' 아마 그렇게 뭔가 모종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축복과 은혜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룟 유다가 팔았으니까! 이것은 돌았다는 정도가 아니고, 이건 보통 일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예수를 내 이익을 위해서 팔아 버릴 수 있고, 예수를 내 이익을 위해서 우리도 잘못 가룟 유다가 행하는 이 사실에 빠질 수 있다는데 대해서 좀 붙잡아야 됩니다. 우리들도 모르게 가룟 유다가 참 많이 나와요.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묵상을 좀 하면서 상당히 조금 뭘 느끼느냐하면, '내가 가룟 유다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걸핏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는 말하면서도 그 속에는 어떤 것이 오느냐 하면, 내 이익과 어떤 내 욕심과 결부시켜서 나가는 일들이 한두 사건들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의 대상이요, 찬송의 대상이요, 영광의 대상이라기보다도, 이익과 욕심의 대상으로 추구하는 사실이 있었다면 이것이 바로 가룟 유다의 삶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어떠한 때에 나도 모르게 사단의 종노릇하게 되는, 이런 엄청난 무서운 재앙에 빠지게 되는 부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금 추수감사주일이다! 추수 감사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데, 감사주일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잘못하면 가룟 유다의 우울증과 가룟 유다의 정신병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했습니다! 신앙생활을 깊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 개인과 그분 자신에게,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단어에 감격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구원과 이 사건에 대해서 눈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어디에 빠지느냐? 예수를 유익의 대상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를 자기도 모르게 어떤 그 욕심의 대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가는 것이 이익이 있으니까 가고, 이익이 없으니까 안가고... 뭐 이런 것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 신앙이 어디로 빠지느냐 하면, 쉽게 말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만은, 자기가 원하는 기도응답이 안나오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오히려 뭔가 이 정신문제로 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다른 종교에서는 자기욕심을 차리는 그것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상이니까, 열심히 자기의 소욕을, 자기의 욕심을 원하고, 자기 생각을 원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도의 주제로 하고, 기도의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여러분들이 뜻하는 대로, 여러분들이 바라는 대로 기도하고 그걸 얻어내고 찾아내는 곳이 아니거든요. 여기서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우리자신도 모르게 내 가정에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욕심내는 것, 내가 필요한 것! 이걸 구하다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교회 다니고 있으면서도 평안함이 없어요. 그러니 이상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해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상당히 여러 곳에서, 우리 성경 속에서도 볼 수 있죠.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엘리야가 뭐가 자기의 원하는 대로, 뭔가 능력도 행하고 했는데, 여기에 구체적인 역사가 안 나타나니까! 하나님 앞에, '내가 죽겠다!' 그러고,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그런데 여러분 벌써 '죽겠다! 하나님 앞에 죽여달라!'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게 벌써 우울증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신문제가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 은혜를 생각하고, 축복의 역사를 생각하고, 구원역사에 눈만 열렸다 그러면 전혀 그런 기도가 나올 수가 없죠.
하나님 앞에서, 예수그리스도 그분으로 통해서 감사하고, 그분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의 축복과 영광을, 또 내가 깨닫고 알았다면 뭐 생각만 해도 늘 감사정도가 아니죠. 감사, 감격 아닙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바울에 대해서 좀 설명을 했습니다 만은, 바울 같은 경우에는 예수를 믿고 다니면서도 천질이 있어 가지고 넘어지기도 하고, 또 안질 때문에 쓰러지고 잘못해서 뭐 고생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살았거든요. 그러면서도 바울 만큼 감사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얼마나 큰가를 알아보겠다고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그렇게 감격했던 것이 바울의 삶입니다.
저는 그 건강이 안 좋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칼빈을 그때 당시의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그랬습니다. 칼빈이 그렇게 온 몸에 얼마나 많은 병들이 있었다고 제가 지금 기억이 안 납니다 만은... 그래서 밥을 먹고도 밥이 가만히 앉아서는 소화가 안되니까, 그 흔들의자에 적어도 20분 정도를 흔들어줘야 소화가 될 수 있는 그런 약 체질입니다. 그런데도 그 칼빈을 통해서, 오늘날 칼빈 이상의 신학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신앙의 고백을 했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오늘날의 정통주의 설교 신학을 세웠던 사람이 칼빈입니다. 그런데 그 칼빈이 그런 어떤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도 만약에 하나님을 섬기고, 정말 구원에 대해서 이 축복과 역사에 바로 눈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우리들이 빠졌던 똑같은 그런 문제에 빠지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오랜 시간 건강이 안 좋으니까, 정신적으로 좀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 하나님의 이 은혜의 역사와 축복의 역사를 칼빈이나 바울이 몰랐다! 그러면, 이게 안 되었다! 그러면, 성경전체는 우울증 적인 기록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전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돌리고... 그저 바울이 쓴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어려웠던 그 빌립보 감옥에 갖혔을 때도, 제일 아름다운 글들이 어떤 글이냐 하면, 빌리보 교회! 빌립보서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다른 게 아니거든요. 내가 바라고, 내가 욕심내고, 내가 이루어 져야 된다고 하는 그런 기도가 들어지지 않았더라도, 바로 기도응답이라는 중요한 핵심이 분명하게 채워졌을 때 그게 뭡니까? 예수그리스도! 여러분 구원받았다! 모든 응답 다 받은 겁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이 오셔서 '내가 구원받았다!' 모든 문제는 이미 해결되고, 모든 기도는 이미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통해서 응답 받았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이해 안 되니까 전혀 다른 곳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면서 체험도 많이 가지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만은,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에 확신과, 그 감사와 그 찬송이 없어지면 여러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어디로 빠지느냐? 자기도 모르게 신앙의 우울증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왜? 이것은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왜 기도해도 안됩니까? 이건 왜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빠져 버립니다. 그렇게 빠져 버리면 자기도 감사가 없어지고, 찬송이 없어지고, 그 가정과 또 가문에 자기를 통해서 감사와 찬송을 해야 할 그런 가족들에게조차 이것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깊이 신앙생활 하는 중에서 중직자가 될수록, 오랜 신앙생활 할수록, 어디로 빠지는냐 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미 중직자로 세웠고, 이미 귀한 신앙인으로 세워졌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응답하셨는데, 응답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초점이 바로 안되어 있으면, 어디로 빠지느냐? 자기도 모르게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얻은 것이 뭐냐?' 신앙생활 속에서 무 응답의 기도 속에, 무 응답의 신앙의 기도로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오래할수록...
그래서 제가 묵은 디이라는 소리를 자주 했는데, 보통 처음에 들어와서는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 기도하고, 마음에 평안도 오고, 확실하게 표나더라 구요. 그런데 이것이 한번, 두 번 되어지니까! 계속 평안함이 오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인지 잘 몰라요. 그러니까 어지간한 그런 것에는 어떻게 하느냐? 욕심과 연결시켜서 기도하고, 그렇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묵은 디이들이 기도가 자칫 잘못하면 무 응답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벌써 1년만 지나도 무 응답의 묵은 디이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 그 기쁨과 감사와 그 찬송이 내게서 사라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예수 믿는다! 기도 응답을 못 받는다! 이런 착각으로 빠져 버릴 수 있습니다.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이런 것이 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실을 가룟 유다가 기록된 대로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뭐라 그랬느냐?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우리가 엄청난 신앙의 고백이 있고, 엄청난 신앙의 축복의 자리에 있는데, 그 신앙의 진짜 핵심을 놓쳐버리게 되면, 이런 엉뚱한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깊이 헌신하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이 가룟 유다의 헌신을 보면, 오늘 상당히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오죠.
제자들에게 '오늘 한사람이 나를 판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근심하면서 '내니이까!' 물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떡에다가 손을 댄 사람이다!' 이렇게 하다가, 이제 가룟 유다가 뻔뻔스럽게 '내니이까!'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네가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딱 지적을 해주었는데도, 제자들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지,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네가 할 일을 빨리 해라!' 그랬을 때에, 가룟 유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한복음서에 보면,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가룟 유다가 회계를 맡았어요. 아마 제자들 중에는 제일 머리가 좋았고, 학식이 제일 많았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죠. 그런데 그 맡아 있으면서 '제자들에게 상당히 신뢰를 받았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타당성 있는 충성을 했다고 그렇게 볼 수 있죠. 심지어는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그 여자를 향해서 아마 불평하게 한 그 앞잡이도 가룟 유다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죠. '이걸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데, 이걸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 그럴 때에 예수님이,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함도 전파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메시아의 신앙에 대한 얼마나 큰 축복을 말씀을 했죠.
이렇게 가룟 유다가 신뢰를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뭐냐하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요. 열두 제자들 속에서 손색없이, 제자들 속에서 가장 유력한, 말하자면 회계를 맡아 가지고 전혀 다른 것 없이 참 열심히 했었습니다. 했는데, 이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이라고는 다른 제자들이 꿈에도 생각 못할 정도로 신뢰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 안에서,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웃들에게는 열심히 신앙생활 한자로 생각되어질 수 있으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방향이 안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안되면, 자기도 모르게 기록된 대로 갈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흑암 세력의 손에 붙잡히게 되고, 여기에 무서운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사실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뭘 생각을 해 보느냐 하면, 정말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산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위대하다! 그러나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방향 안 맞추고 내 욕심에만 맞추어 살아간다면, 그때부터 무서운 결과가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송현 교회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리고 시시각각 어려울 때에, '이건 내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러면 이때쯤 이런 일에 얼마나 불안했을 것인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한번 안다는 그리고 확신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렇게 평안과 안식을 갖게 되는 구나!' 그러나 이 축복의 역사가 고백되는 만큼 어디로? 그 축복을 고백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이 땅이 어렵고 힘들다! 뭐 이런 저런 소리를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상관없습니다. 확실한 신앙고백 속에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 보세요.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이미 약속했고, 이루시는 역사를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뭐 추수감사절, 헌금한번 했다고 축복 받는다! 안 받는다! 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정말 헌신하고 정말 이 시간에 말씀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문제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내 일평생 방향만 잡아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이고, 성령으로 나를 구체적으로 이 험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사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여러분을 통해서 증거 하시기를 원하시니까! 이 증거의 증인으로 여러분이 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여러분과 제가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행1:8)" 뭡니까? 증거 받은 자로 '증인이 되리라!' 약속했습니다! 이 큰 약속을 붙잡고, 우리가 근본 어디에서 틀어졌고, 어디에서 바로 되지 못했는가를 확실히 붙잡고, 오늘 이 가룟 유다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가룟 유다는 기록된 대로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록된 대로 나옵니다! 다 이루어지고 성취됩니다! 그러나 '차라리 가룟 유다는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너무 슬픈 이야기가 나와요.
오늘도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너무 좋은 자리에 있고 너무 축복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딱 중요한 것 한가지 붙잡고 우리가 방향 맞추어 나간다! 이럴 때에 엄청난 은혜로 우리에게 결과가 나올 것인데, 이것이 조금 틀리고 이것이 잘못되어 졌을 때에, 얼마나 잘못된 열매가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여러분 지금 내가 구했을 때에, '왜, 우리는 기도 응답이 없느냐? 이렇게 기도응답이 없느냐?'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게는 무 응답이 기도응답입니다! 아마 제일 큰 응답이 무 응답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필요하다면 그 무 응답이 오히려 몇 배, 몇 만 배로 하나님은 구체적인 방향 맞추는 자들에게 응답의 역사로 임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정말 내 인생의 가장 경배의 대상이요, 그 이름만 들어도 너무 좋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런 정말 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귀중한 축복의 추수감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하나님앞에 축복된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과의 바른관계가 안되면 하나님과 방향과 달라지고 오히려 하나님앞에 배신자로 악행하는 자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에 쓰임받게 된다.
(1) 가룟 유다의 행동은 돌출적이고,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록하신대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2) 14절에 가룟 유다는 분명히 열두제자중의 하나며 평신도가 아니라 열두 제자중의 하나라고 성경은 말한다.
(3) 하나님과의 바른관계가 되어지지 않으면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 역사와 흐름 속에, 더 악한 자가 될 수 있다.
(4) 가룟 유다는 정상이 아니다. 가룟 유다는 머리가 돌았다. 어떻게 자기 스승을 파는가? 왜 그렇게 하였는가?
(5) 깊이 신앙생활하고, 연구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실제로 바르지 않으면, 배신자가 될 수 있다.
(6)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중직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에 우리도 하나님 앞에 배신자, 악행하는 자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
(7) 하나님 앞에 신앙의 축복과 은혜 속에 선 사실에 정말 감사하지 않으면,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2. 나에게 있는 가룟 유다적인 요소가 무엇입니까?
(1) 우리도 가룟 유다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되면 경배의 대상이며 찬송의 대상이며 영광의 대상인 예수님을 내 이익과 유익과 욕심을 위해 흥정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2) 이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있는 가룟 유다적인 요소가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묵상하고 해결되어야 하겠다.
(3) 나도 모르게 걸핏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말하면서 그 속에 내 이익과 욕심을 결부시킨 사건이 많다.
(4)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룟 유다적인 요소가 계속되면 결국엔 사단의 종노릇하는 무서운 재앙으로 빠지게 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5) 오랫동안 신앙생활해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늘 깊이 묵상되지 않고 그로 말미암아 나에게 주신 구원의 축복과 자녀의 축복에 눈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예수를 우리유익의 대상으로 추구하고 교회가 내게 유익이 없으면 안나오게 된다.
3. 가룟유다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기도를 하게 됩니까?
(1)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가 계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기도는 자기욕심과 소욕을 위한 종교인의 기도를 하게 된다.
(2) 바른기도는 내가 뜻하고 바라는것을 기도하여 얻어내는것이 아닌데 이것에 만족이 없으니 교회에 다니면서도 평안이 없게 된다.
(3) 몇 인물을 통해서 이것을 발견할 수 있다.
① 엘리야: 자기가 원하는대로 능력도 행했지만 구체적인 역사 안나타나니 죽여달라고 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벌써 우울증과 정신문제가 왔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구원의 역사에 눈이 열리면 전혀 그런 그도가 나올수 없다.
② 바울: 예수 믿고 안질과 천질로 고생했다. 이러한 환경에 있지만 바울만큼 감사하는 사람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높이와 깊이, 넓이를 알아보겠다고 노력하고 늘 이 사실로 인해서 감사하고 감격했던것이 바울이다.
③ 칼빈: 그는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었다. 많은 병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밥을 먹고, 흔들의자에 20분 있어야 소화되는 약 체질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최고의 정통주의 신학자가 되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축복의 역사에 바른 눈이 열리지 않으면, 현재 우리들이 빠지는 문제에 같이 빠지고, 칼빈의 성경해석은 우울증적인 해석을 했을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속에 모든 기도응답이 다 들어있으며 모든 문제해결이고, 모든 문제는 응답이 된다.
(5) 이것이 안 되면 다른 곳에 빠지게 된다.
(6)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고백이 없으면 신앙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7) 이것이 발전되면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 계속되면서 감사와 찬송이 없어진다.
(8) 하나님이 귀한 중직자로 세웠을 때는 하나님이 모든 응답을 다 주셨다.
(9) 중직자로 봉사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이 안맞추어지면, ‘내가 얻은것이 무엇이냐?’하면서 무응답 신앙에 빠진다.
(10) 신앙생활을 시작할때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해서 평안이 오는데, 계속 평안이 오니까 하나님이 주신것인지 감도 없이 욕심과 연결시킨다. 그래서, 오랜 신앙 생활하는 자의 기도가 무응답으로 빠질 수 있다.
(11) 그리스도를 통한 참 만족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예수 믿고 응답 없는 착각 속에 빠질 수 있다.
4. 엄청난 축복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신앙의 핵심을 모르면 엉뚱한 데로 가게 된다.
(1) 오늘 가룟 유다는 기록된대로 갔는데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2) 예수님께서 가륫 유다가 배신자가 될것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힌트를 많이 주셨고, 심지어는 가룟 유다가 뻔뻔스럽게 예수님을 팔 자가 내니이까라고 말했지만 제자들은 가룟유다가 배신자인지는 꿈에서 생각못했다.
(3) 가룟 유다는 회계를 맡을 만큼 머리가 좋고 학식이 있었고 제자들에게 상당히 신뢰를 받았고 어떤 경우에도 타당성 있는 충성을 했는데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에 대해 이걸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불평의 앞자비 노릇을 했다.
(4) 교회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인정받을 지라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안 되면 기록된 대로 갈 것이다.
(5) 흑암세력에 잡히고 무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6)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하나님과 방향 안 맞추고 내 욕심대로 살면 무서운 결과가 온다.
(7) 확실한 신앙고백 속에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야한다.
5. 예수는 그리스도시고 모든 문제 해결자입니다.
(1) 그 분을 위해 그 분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이다.
(2) 행1:8의 증거자로 증인이 되리라 약속하셨다.
(3) 이 약속을 붙잡고 어디가 틀어지고 잘 못되었는가 확인해야 된다.
(4) 예수님의 말씀은 기록된 대로 성취 된다.
(5)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는 ‘나지 않았다면 좋을 뻔하였다!’ 하셨고, 이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6) 하나님의 방향을 맞추지 않고 나가면, 얼마나 잘못 된 열매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7) 어쩌면 무응답이 기도응답이다.
(8) 하나님이 필요하다면 몇 배, 몇 만 배로 응답의 역사를 주신다.
(9) 예수 그리스도 만이 경배의 대상이고, 그 이름만으로도 감사, 감격해야 된다.
(마 26:18)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마 26:19)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마 26: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마 26: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오늘 제목을 기록된 대로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 속리산에 갔다가 금요일 날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조금 무리가 된 것 같아서, '오늘 강단에 좀 서겠냐?' 그렇게 염려를 했습니다 만은, '하나님은 필요를 채우신다!'고 제가 설교로 말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우선 강단에 설 때에 건강으로 채워 주실 것이 아니냐! 그것을 믿고 섰습니다. 제가 조금 뭔가 원활한 느낌이 안 들더라도 하나님이 필요를 채우셔서 오늘 섰다는 것을 이해하시면, 여러분에게 함께 힘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내용의 말씀이 가룟 유다가 "기록된 대로" 돌출적인, 그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록하신 대로, 하나님이 여기에는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내용이 됩니다. 가장 큰 문제로, 그래서 지난주에 가룟 유다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렸는데, 이 열두 제자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열두 제자 중에 하나다! 그렇게 분명히 신분을 밝혔죠.
14절에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이 열둘 중 하나라고 일부러 이렇게 말씀한 것은, 일반평신도도 아니고,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정말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속에 이 가룟 유다가 나왔다! 그러면서 중요하게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이, 우리가 깊이 신앙고백을 하고, 신앙생활도 연구하고, 또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도 하는 중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배신자가 됩니다. 그뿐 아니고 더 악한 하나님의 그 역사와 계획과 흐름에 악한 자로 쓰임 받게 되는, 이런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것이라는 것을 상당히 저는 개인적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지난주에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을 하면서 다락방도 안하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뭔가 깊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중직자들이나 또 중요한 사명을 맡은 사람들이 뭔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과 방향 맞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가지 아니할 때에, 우리 개인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교회 안에서 우리도 모르게 배신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악행을 하게 되는데 쓰임 받게 되는, 말하자면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에 쓰임 받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나오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 종종 있는 그런 부분들입니다. 열두 제자라! 그러면서 가룟 유다가 나왔다! 그런 배경이거든요. 그래서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이 축복과 그 은혜를 갖고 있는 그 은혜 속에 섰다는 사실을 진짜 감사하지 않으면, 오늘 어떤 면에서 이 감사주일에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룟 유다는 정상은 아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가룟 유다는 머리가 돌았다!" 그럴 것 아닙니까! 어떻게 그 자기 스승을, 특별히 예수님을 팝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게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팔고 내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러면 똑같이 머리가 돈 것이지. 그런데 이 사실이 우리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 이름 가지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흥정하는 대상으로 가룟 유다는 삼았거든요. '내가 예수를 넘겨 줄테니까 얼마 주겠느냐? 은 삼십을 내어라! 더 내어라!' 아마 그렇게 뭔가 모종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축복과 은혜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룟 유다가 팔았으니까! 이것은 돌았다는 정도가 아니고, 이건 보통 일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예수를 내 이익을 위해서 팔아 버릴 수 있고, 예수를 내 이익을 위해서 우리도 잘못 가룟 유다가 행하는 이 사실에 빠질 수 있다는데 대해서 좀 붙잡아야 됩니다. 우리들도 모르게 가룟 유다가 참 많이 나와요.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묵상을 좀 하면서 상당히 조금 뭘 느끼느냐하면, '내가 가룟 유다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걸핏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는 말하면서도 그 속에는 어떤 것이 오느냐 하면, 내 이익과 어떤 내 욕심과 결부시켜서 나가는 일들이 한두 사건들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의 대상이요, 찬송의 대상이요, 영광의 대상이라기보다도, 이익과 욕심의 대상으로 추구하는 사실이 있었다면 이것이 바로 가룟 유다의 삶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어떠한 때에 나도 모르게 사단의 종노릇하게 되는, 이런 엄청난 무서운 재앙에 빠지게 되는 부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금 추수감사주일이다! 추수 감사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데, 감사주일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잘못하면 가룟 유다의 우울증과 가룟 유다의 정신병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했습니다! 신앙생활을 깊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 개인과 그분 자신에게,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단어에 감격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구원과 이 사건에 대해서 눈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어디에 빠지느냐? 예수를 유익의 대상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를 자기도 모르게 어떤 그 욕심의 대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가는 것이 이익이 있으니까 가고, 이익이 없으니까 안가고... 뭐 이런 것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 신앙이 어디로 빠지느냐 하면, 쉽게 말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만은, 자기가 원하는 기도응답이 안나오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오히려 뭔가 이 정신문제로 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다른 종교에서는 자기욕심을 차리는 그것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상이니까, 열심히 자기의 소욕을, 자기의 욕심을 원하고, 자기 생각을 원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도의 주제로 하고, 기도의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여러분들이 뜻하는 대로, 여러분들이 바라는 대로 기도하고 그걸 얻어내고 찾아내는 곳이 아니거든요. 여기서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우리자신도 모르게 내 가정에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욕심내는 것, 내가 필요한 것! 이걸 구하다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교회 다니고 있으면서도 평안함이 없어요. 그러니 이상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해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상당히 여러 곳에서, 우리 성경 속에서도 볼 수 있죠.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엘리야가 뭐가 자기의 원하는 대로, 뭔가 능력도 행하고 했는데, 여기에 구체적인 역사가 안 나타나니까! 하나님 앞에, '내가 죽겠다!' 그러고,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그런데 여러분 벌써 '죽겠다! 하나님 앞에 죽여달라!'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게 벌써 우울증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신문제가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 은혜를 생각하고, 축복의 역사를 생각하고, 구원역사에 눈만 열렸다 그러면 전혀 그런 기도가 나올 수가 없죠.
하나님 앞에서, 예수그리스도 그분으로 통해서 감사하고, 그분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의 축복과 영광을, 또 내가 깨닫고 알았다면 뭐 생각만 해도 늘 감사정도가 아니죠. 감사, 감격 아닙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바울에 대해서 좀 설명을 했습니다 만은, 바울 같은 경우에는 예수를 믿고 다니면서도 천질이 있어 가지고 넘어지기도 하고, 또 안질 때문에 쓰러지고 잘못해서 뭐 고생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살았거든요. 그러면서도 바울 만큼 감사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얼마나 큰가를 알아보겠다고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그렇게 감격했던 것이 바울의 삶입니다.
저는 그 건강이 안 좋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칼빈을 그때 당시의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그랬습니다. 칼빈이 그렇게 온 몸에 얼마나 많은 병들이 있었다고 제가 지금 기억이 안 납니다 만은... 그래서 밥을 먹고도 밥이 가만히 앉아서는 소화가 안되니까, 그 흔들의자에 적어도 20분 정도를 흔들어줘야 소화가 될 수 있는 그런 약 체질입니다. 그런데도 그 칼빈을 통해서, 오늘날 칼빈 이상의 신학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신앙의 고백을 했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오늘날의 정통주의 설교 신학을 세웠던 사람이 칼빈입니다. 그런데 그 칼빈이 그런 어떤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도 만약에 하나님을 섬기고, 정말 구원에 대해서 이 축복과 역사에 바로 눈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우리들이 빠졌던 똑같은 그런 문제에 빠지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오랜 시간 건강이 안 좋으니까, 정신적으로 좀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 하나님의 이 은혜의 역사와 축복의 역사를 칼빈이나 바울이 몰랐다! 그러면, 이게 안 되었다! 그러면, 성경전체는 우울증 적인 기록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전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돌리고... 그저 바울이 쓴 글에서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어려웠던 그 빌립보 감옥에 갖혔을 때도, 제일 아름다운 글들이 어떤 글이냐 하면, 빌리보 교회! 빌립보서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다른 게 아니거든요. 내가 바라고, 내가 욕심내고, 내가 이루어 져야 된다고 하는 그런 기도가 들어지지 않았더라도, 바로 기도응답이라는 중요한 핵심이 분명하게 채워졌을 때 그게 뭡니까? 예수그리스도! 여러분 구원받았다! 모든 응답 다 받은 겁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이 오셔서 '내가 구원받았다!' 모든 문제는 이미 해결되고, 모든 기도는 이미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통해서 응답 받았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이해 안 되니까 전혀 다른 곳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면서 체험도 많이 가지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만은,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에 확신과, 그 감사와 그 찬송이 없어지면 여러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어디로 빠지느냐? 자기도 모르게 신앙의 우울증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왜? 이것은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왜 기도해도 안됩니까? 이건 왜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빠져 버립니다. 그렇게 빠져 버리면 자기도 감사가 없어지고, 찬송이 없어지고, 그 가정과 또 가문에 자기를 통해서 감사와 찬송을 해야 할 그런 가족들에게조차 이것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깊이 신앙생활 하는 중에서 중직자가 될수록, 오랜 신앙생활 할수록, 어디로 빠지는냐 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미 중직자로 세웠고, 이미 귀한 신앙인으로 세워졌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응답하셨는데, 응답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초점이 바로 안되어 있으면, 어디로 빠지느냐? 자기도 모르게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얻은 것이 뭐냐?' 신앙생활 속에서 무 응답의 기도 속에, 무 응답의 신앙의 기도로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오래할수록...
그래서 제가 묵은 디이라는 소리를 자주 했는데, 보통 처음에 들어와서는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 기도하고, 마음에 평안도 오고, 확실하게 표나더라 구요. 그런데 이것이 한번, 두 번 되어지니까! 계속 평안함이 오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인지 잘 몰라요. 그러니까 어지간한 그런 것에는 어떻게 하느냐? 욕심과 연결시켜서 기도하고, 그렇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묵은 디이들이 기도가 자칫 잘못하면 무 응답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벌써 1년만 지나도 무 응답의 묵은 디이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 그 기쁨과 감사와 그 찬송이 내게서 사라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예수 믿는다! 기도 응답을 못 받는다! 이런 착각으로 빠져 버릴 수 있습니다.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이런 것이 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실을 가룟 유다가 기록된 대로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뭐라 그랬느냐?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우리가 엄청난 신앙의 고백이 있고, 엄청난 신앙의 축복의 자리에 있는데, 그 신앙의 진짜 핵심을 놓쳐버리게 되면, 이런 엉뚱한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깊이 헌신하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이 가룟 유다의 헌신을 보면, 오늘 상당히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오죠.
제자들에게 '오늘 한사람이 나를 판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근심하면서 '내니이까!' 물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떡에다가 손을 댄 사람이다!' 이렇게 하다가, 이제 가룟 유다가 뻔뻔스럽게 '내니이까!'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네가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딱 지적을 해주었는데도, 제자들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지,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네가 할 일을 빨리 해라!' 그랬을 때에, 가룟 유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한복음서에 보면,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가룟 유다가 회계를 맡았어요. 아마 제자들 중에는 제일 머리가 좋았고, 학식이 제일 많았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죠. 그런데 그 맡아 있으면서 '제자들에게 상당히 신뢰를 받았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타당성 있는 충성을 했다고 그렇게 볼 수 있죠. 심지어는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그 여자를 향해서 아마 불평하게 한 그 앞잡이도 가룟 유다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죠. '이걸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데, 이걸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 그럴 때에 예수님이,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함도 전파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메시아의 신앙에 대한 얼마나 큰 축복을 말씀을 했죠.
이렇게 가룟 유다가 신뢰를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뭐냐하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요. 열두 제자들 속에서 손색없이, 제자들 속에서 가장 유력한, 말하자면 회계를 맡아 가지고 전혀 다른 것 없이 참 열심히 했었습니다. 했는데, 이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이라고는 다른 제자들이 꿈에도 생각 못할 정도로 신뢰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 안에서,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웃들에게는 열심히 신앙생활 한자로 생각되어질 수 있으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방향이 안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안되면, 자기도 모르게 기록된 대로 갈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흑암 세력의 손에 붙잡히게 되고, 여기에 무서운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사실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뭘 생각을 해 보느냐 하면, 정말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산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위대하다! 그러나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방향 안 맞추고 내 욕심에만 맞추어 살아간다면, 그때부터 무서운 결과가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송현 교회다! 예수는 그리스도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리고 시시각각 어려울 때에, '이건 내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러면 이때쯤 이런 일에 얼마나 불안했을 것인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한번 안다는 그리고 확신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렇게 평안과 안식을 갖게 되는 구나!' 그러나 이 축복의 역사가 고백되는 만큼 어디로? 그 축복을 고백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이 땅이 어렵고 힘들다! 뭐 이런 저런 소리를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상관없습니다. 확실한 신앙고백 속에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 보세요.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이미 약속했고, 이루시는 역사를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뭐 추수감사절, 헌금한번 했다고 축복 받는다! 안 받는다! 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정말 헌신하고 정말 이 시간에 말씀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문제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내 일평생 방향만 잡아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이고, 성령으로 나를 구체적으로 이 험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사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여러분을 통해서 증거 하시기를 원하시니까! 이 증거의 증인으로 여러분이 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여러분과 제가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행1:8)" 뭡니까? 증거 받은 자로 '증인이 되리라!' 약속했습니다! 이 큰 약속을 붙잡고, 우리가 근본 어디에서 틀어졌고, 어디에서 바로 되지 못했는가를 확실히 붙잡고, 오늘 이 가룟 유다를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가룟 유다는 기록된 대로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록된 대로 나옵니다! 다 이루어지고 성취됩니다! 그러나 '차라리 가룟 유다는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너무 슬픈 이야기가 나와요.
오늘도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너무 좋은 자리에 있고 너무 축복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딱 중요한 것 한가지 붙잡고 우리가 방향 맞추어 나간다! 이럴 때에 엄청난 은혜로 우리에게 결과가 나올 것인데, 이것이 조금 틀리고 이것이 잘못되어 졌을 때에, 얼마나 잘못된 열매가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여러분 지금 내가 구했을 때에, '왜, 우리는 기도 응답이 없느냐? 이렇게 기도응답이 없느냐?'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게는 무 응답이 기도응답입니다! 아마 제일 큰 응답이 무 응답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필요하다면 그 무 응답이 오히려 몇 배, 몇 만 배로 하나님은 구체적인 방향 맞추는 자들에게 응답의 역사로 임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정말 내 인생의 가장 경배의 대상이요, 그 이름만 들어도 너무 좋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런 정말 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귀중한 축복의 추수감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하나님앞에 축복된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과의 바른관계가 안되면 하나님과 방향과 달라지고 오히려 하나님앞에 배신자로 악행하는 자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에 쓰임받게 된다.
(1) 가룟 유다의 행동은 돌출적이고,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록하신대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2) 14절에 가룟 유다는 분명히 열두제자중의 하나며 평신도가 아니라 열두 제자중의 하나라고 성경은 말한다.
(3) 하나님과의 바른관계가 되어지지 않으면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 역사와 흐름 속에, 더 악한 자가 될 수 있다.
(4) 가룟 유다는 정상이 아니다. 가룟 유다는 머리가 돌았다. 어떻게 자기 스승을 파는가? 왜 그렇게 하였는가?
(5) 깊이 신앙생활하고, 연구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실제로 바르지 않으면, 배신자가 될 수 있다.
(6)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중직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에 우리도 하나님 앞에 배신자, 악행하는 자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
(7) 하나님 앞에 신앙의 축복과 은혜 속에 선 사실에 정말 감사하지 않으면,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2. 나에게 있는 가룟 유다적인 요소가 무엇입니까?
(1) 우리도 가룟 유다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되면 경배의 대상이며 찬송의 대상이며 영광의 대상인 예수님을 내 이익과 유익과 욕심을 위해 흥정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2) 이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있는 가룟 유다적인 요소가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묵상하고 해결되어야 하겠다.
(3) 나도 모르게 걸핏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말하면서 그 속에 내 이익과 욕심을 결부시킨 사건이 많다.
(4)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룟 유다적인 요소가 계속되면 결국엔 사단의 종노릇하는 무서운 재앙으로 빠지게 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5) 오랫동안 신앙생활해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늘 깊이 묵상되지 않고 그로 말미암아 나에게 주신 구원의 축복과 자녀의 축복에 눈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예수를 우리유익의 대상으로 추구하고 교회가 내게 유익이 없으면 안나오게 된다.
3. 가룟유다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기도를 하게 됩니까?
(1)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가 계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기도는 자기욕심과 소욕을 위한 종교인의 기도를 하게 된다.
(2) 바른기도는 내가 뜻하고 바라는것을 기도하여 얻어내는것이 아닌데 이것에 만족이 없으니 교회에 다니면서도 평안이 없게 된다.
(3) 몇 인물을 통해서 이것을 발견할 수 있다.
① 엘리야: 자기가 원하는대로 능력도 행했지만 구체적인 역사 안나타나니 죽여달라고 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벌써 우울증과 정신문제가 왔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구원의 역사에 눈이 열리면 전혀 그런 그도가 나올수 없다.
② 바울: 예수 믿고 안질과 천질로 고생했다. 이러한 환경에 있지만 바울만큼 감사하는 사람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높이와 깊이, 넓이를 알아보겠다고 노력하고 늘 이 사실로 인해서 감사하고 감격했던것이 바울이다.
③ 칼빈: 그는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었다. 많은 병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밥을 먹고, 흔들의자에 20분 있어야 소화되는 약 체질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최고의 정통주의 신학자가 되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축복의 역사에 바른 눈이 열리지 않으면, 현재 우리들이 빠지는 문제에 같이 빠지고, 칼빈의 성경해석은 우울증적인 해석을 했을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속에 모든 기도응답이 다 들어있으며 모든 문제해결이고, 모든 문제는 응답이 된다.
(5) 이것이 안 되면 다른 곳에 빠지게 된다.
(6)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고백이 없으면 신앙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7) 이것이 발전되면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 계속되면서 감사와 찬송이 없어진다.
(8) 하나님이 귀한 중직자로 세웠을 때는 하나님이 모든 응답을 다 주셨다.
(9) 중직자로 봉사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이 안맞추어지면, ‘내가 얻은것이 무엇이냐?’하면서 무응답 신앙에 빠진다.
(10) 신앙생활을 시작할때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해서 평안이 오는데, 계속 평안이 오니까 하나님이 주신것인지 감도 없이 욕심과 연결시킨다. 그래서, 오랜 신앙 생활하는 자의 기도가 무응답으로 빠질 수 있다.
(11) 그리스도를 통한 참 만족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예수 믿고 응답 없는 착각 속에 빠질 수 있다.
4. 엄청난 축복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신앙의 핵심을 모르면 엉뚱한 데로 가게 된다.
(1) 오늘 가룟 유다는 기록된대로 갔는데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2) 예수님께서 가륫 유다가 배신자가 될것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힌트를 많이 주셨고, 심지어는 가룟 유다가 뻔뻔스럽게 예수님을 팔 자가 내니이까라고 말했지만 제자들은 가룟유다가 배신자인지는 꿈에서 생각못했다.
(3) 가룟 유다는 회계를 맡을 만큼 머리가 좋고 학식이 있었고 제자들에게 상당히 신뢰를 받았고 어떤 경우에도 타당성 있는 충성을 했는데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에 대해 이걸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불평의 앞자비 노릇을 했다.
(4) 교회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인정받을 지라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안 되면 기록된 대로 갈 것이다.
(5) 흑암세력에 잡히고 무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6) 바른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하나님과 방향 안 맞추고 내 욕심대로 살면 무서운 결과가 온다.
(7) 확실한 신앙고백 속에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어야한다.
5. 예수는 그리스도시고 모든 문제 해결자입니다.
(1) 그 분을 위해 그 분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이다.
(2) 행1:8의 증거자로 증인이 되리라 약속하셨다.
(3) 이 약속을 붙잡고 어디가 틀어지고 잘 못되었는가 확인해야 된다.
(4) 예수님의 말씀은 기록된 대로 성취 된다.
(5)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는 ‘나지 않았다면 좋을 뻔하였다!’ 하셨고, 이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6) 하나님의 방향을 맞추지 않고 나가면, 얼마나 잘못 된 열매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7) 어쩌면 무응답이 기도응답이다.
(8) 하나님이 필요하다면 몇 배, 몇 만 배로 응답의 역사를 주신다.
(9) 예수 그리스도 만이 경배의 대상이고, 그 이름만으로도 감사, 감격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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