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나의 하나님
2004-05-14 00:00:00
관리자
조회수   24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마 27: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마 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마 27:48)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마 27:49)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 27: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마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 27: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마 27: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우리 갈길 다간 후에 보좌 앞에 나아가 왕의 왕께 경배하며 면류관을 드리리..."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 언약 속에 여러분과 제가 섰습니다. 오늘 이 찬송을 일부러 제가 부른 것은, 그동안 찬송을 제가 못했습니다. 호흡이 안되고, 또 음성이 올라가지를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얼마 전부터 치료를 해주셔요. 그래서 어제 저녁에도 찬송을 한번 부르면서, 가정예배 드리면서, '당신 음성이 너무 좋다! 찬송한번 더 하자!'고 그러더라 구요. 또 한곡 불렀죠. 부르고 나니까, '너무 좋다! 또 한번 더 하자!'고 하더라 구요. 또 한 곡 불렀어요. 그러고 나니 나도 좋은 것 같아요. 음성이 잘 올라가는 것 같고 별로 모르고 살았는데, 또 한곡 더 부르자고 그래가지고 어제 가정예배 드리면서 네 곡인가 불렀습니다.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보다도 가정예배 찬송 부르다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잘 없는데, 우리 집사람도 눈물 흘리고 저도 눈물 흘리고,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간다! 그런 확신이 들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그래서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에게 '지금 병들에 있어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 가시는 구나!' 우리가 지금 건축하고,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고난받고 어려움 중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은 지금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왜?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본문에서 제목을 뭐라고 잡았느냐 하면, '나의 하나님'이라고 그랬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기에 나의 하나님이라고 나오는 배경이 46절에,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지난주에 '그리스도냐? 바라바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걸 알지 못할 때에 종교에 빠지고, 일찍이 예언하고 일찍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 성취를 알지 못하고, 바라바를 선택했던 이스라엘의 고통과 그 후손의 저주와 그 후손들의 처절한 모습을 우리가 봤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종교 생활에 빠져 있는 것, 우리도 알지 못하게 그리스도보다도 바라바를 선택하는 것, 그러면서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붙잡고, 언약을 붙잡고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자아의식! 결국은 종교입니다. 내 노력, 내 감정, 내 생각, 내 느낌, 여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은 믿고 살아가나 저주와 재앙과 사단의 통로에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통 속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난 헌신하는 청지기 주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믿음대로 되라!' 특별히 금년도에 작정하고 헌신하는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경제에 축복할 수 있는 먼저 내게 그릇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소한 십일조, 그리고 우리는 선교헌금의 십이조! 이런 기준조차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구요. 그리고 또 제가 지난번에 건축헌금을 하시고 3년이 지났는데, 건축 헌금에 대한 이렇게 헌신하는 과정을 쭉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참 우리 자신들의 그릇이 너무 작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 이 '축복, 축복!'을 말로 하면서도 정말 하나님 앞에 이 진실한 헌신이 왜 안 되는가! 그런 생각이 좀 드는 그런 마음을 느꼈어요.

무슨 생각이냐 하면, 그게 믿는 마음인지, 안 믿는 마음인지는 모르지만, 물론 사정이야 다 어렵다 그렇지만 건축헌금을 하고 난 후에 3년 동안 만원도 안낸 사람이 있어요. 헌금을 작정해 놓고, 내가 마음에 무슨 배짱으로 예수 믿는지 모르겠다싶어요. 받아합시다. "배짱 좋다!" 나는 이게 이해가 안 되요. 이건 핀잔 이전에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느냐?' 싶은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종교생활 걷어 치워야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리고 내가 세계를 살릴 세계복음화의 위대한 건축에 동참했다! 이게 안 믿어지는가 봐요!

그래서 상당히 제가 그걸 보면서 찹찹한 마음이 들더라 구요. '예수가 그리스도다! 구원받았다! 참 감사하다!' 그렇게 나올 리가 없죠. 그렇다면 그러면 근본 우리가 다시 기초로 돌아간다기보다도 근본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깨닫고, 정말 저주와 영원한 멸망 속에서 해방 받았다! 이 사실이 조금만 이해된다기보다도 조금만 믿어져도 달라집니다.

여러분 이것을 제가 말씀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현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믿는다 그러고,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고 그래도, 역시 우리가 지금까지 붙잡혀 있는 흑암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현장입니다. 우리가 교회 다닌다 그러면서도 현장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그러면서도 믿음 없어요. 어떤 면에서 열심을 내는 것 같아도 불 신앙입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 배경이 지금 우리가 잡혀있는 배경이거든요. 이것이 우리가 '현장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는 예수님께서 이 고백을 하실 때에 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분이 최후에 처절할 고통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마지막 부르짖는 모습이 뭐냐하면, '왜, 나를 버리십니까?' 이건 여러분들이 지금 십자가에 대한 고통을 그냥 우리가 미화해서 자꾸 바라보니까 별로 못 느끼지만, 예수님이 지금 당하시는 이 최후의 십자가상의 고통은, 그건 말로 할 수 없는 겁니다!

왜? 너무 고통스러운 형벌이기 때문에, 노예들 말하자면 죄수들 중에 특별히 아주 흉악한 죄수들에게만 지웠던, 로마인들에게는 십자가형틀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장! 바로 그 현장은, 예수님께서 이 고통의 현장에서 최후의 절망의 그리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그런 고통의 호소를 말하면서도 예수님께서 딱 붙잡고 계시는 그 한가지 내용이 뭐냐하면, 언약입니다.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구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여러분 여기에 여러분과 제게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당신이 직접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리고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지 아니하시면 안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 왜, 처절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고통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왜, 하나님이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 그게 지금 여러분과 제가 처해있는 같은 이유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이런 고통을, 이런 괴로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의 약속하신 그 역사를 이루셔야 하는 이 뼈아픈 괴로움을 왜 하나님이 당하셔야 하고, 이루셔야 하느냐? 그게 바로 여러분과 저의 현장에 문제예요. 이 현장에는 우리 주님이 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사단의 배경을 여러분과 제가 똑같이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이 오랜 기간, 벌써 한 5,6년을 계속해서 이 고통을 당하면서 어떤 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면서 그러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내가 아프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뭐가 어려우냐 하면, 영적 문제가 오는 것이 어렵습니다. 여러분 아마 오랜 기간동안 고통을 당하고, 잠깐 감기한번 걸리는 데도 어려운데, 이게 오랜 기간 되니까 영적 문제가 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어저께 제 손이 부어있는 때인데, 같이 점심 식사하러 나가있는 동안에, '목사님, 손발이 다 부었습니다!' '부은들 어떻고, 안 부은들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까지 해야죠!' 이러니까, 가만히 쳐다보더니만 뭐라고 하느냐? '목사님 대단합니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들었죠.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래도 견딘다기 보다도 뭔가 어떤 그 믿음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참 존경스럽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보통으로 들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맞아!' 견디기 힘든 영적 문제가 올 때는 밤에 잠을 못 자거든요. 벌떡 일어나서 옥상에 올라가기도 하고,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서 계속 사단을 꺾어야 합니다. 계속 그리스도 없으면 안 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그냥 그 아마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여러분이 아마 당해보지 않으면 상상이 안될 것 같아요. 상상하기 힘든 영적 싸움을 하는 겁니다. 내가 '이 복음을 몰랐고 위대한 그리스도의 역사를 몰랐다!' 그러면 꺾이는 겁니다. 그건 뭐 사정없는 거죠. 잡혔다! 사정없는 거죠.

어떤 때는 그런 영적 문제가 올 때는,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정도 계속 기도하는 동안에, 온몸에 땀이 나면서 하나님이 승리의 새로운 기쁨을 주시는 그런 때가 있어요. 그때까지 깊은 영적 문제와 비상한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번 두 번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떤 면에서 밤이 두렵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이 한번 두 번 올 때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으나, 내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지금도 이런 중에도 위로가, 참 위로가 있었던 것이 뭐냐하면, 이런 중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때부터 그 시간을 별로 그렇게 힘들지 않게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우리 교우들 중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이런 병고로 현장에서 영적 문제를 느꼈지만, 실제로 나와 같은 병을 통해서 오는 영적 문제로 시달리는 사람도 있지만, 사건이나 일의 어려움을 통해서도 영적 문제가 옵니다. 여러분 모든 사건과 일에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통해서 똑같이 어렵다는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왜, 문제가 오느냐? 그게 사단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영적 문제가 옵니다.

그래서 통계를 그렇게 보잖아요.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 약 한 10%정도입니다. 그냥 정신병원에 입원은 안 했지만, 직장생활은 겨우 하고 있으면서도 표나게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한 20-30%정도 돼요. 통계적으로 그렇게 되면 거의 한 30%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 정신 문제로 고통을 당한다는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입원하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30%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70%는 정신병원에 안가고 시달리고 있지 않은 것 같아도 염려와 걱정과 근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걸 뭐라고 그럴까요? 이건 정신병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정신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이런 사람들이 70%입니다. 그게 다 말하자면 100% 시달린다고 봐야죠.

왜, 그렇습니까? 현실적으로 사단에게 잡혀 있습니다. 이 흑암에 실질적으로 잡혀 있는 그런 분들이 다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나는 괜찮은 것같이 뭔가 이 괜찮다!' 그렇게 보여질지는 모르지만, 한번 조금만 따져보세요. 받아합시다. "나는 정상적인 정신병자이다!" 말이 안되지만 말이 되는 것이 이겁니다. 다 정상인인데, 전부 정신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세요. 약간만 건드려 보세요. 이상하게 막 성질이 나오고, 폭발이 나오고, 히스테리가 나오고...

나는 우리 집에서 그 때에 그 호흡이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중에도, 뭔가 이 영적 문제에 막 시달리고 이런 것을 내가 못 봤거든요. 그게 참 은혜다 싶어요. 그런데 몇 일전에 내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대화하는 동안에 내가 짜증을 좀 내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막 그냥 생전에 안 그랬는데, 돌아버리더라 구요. '아, 저 사람도 돌았구나! 정상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 집 한 사람뿐인 게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에 전부 돌기 직전입니다. 조금만 건드리면...

왜? 지금도 흑암, 지금도 사단이 역사 합니다. 사건과 일을 통해서 여지없이 영적 문제에 빠졌다는 정도가 아니고 빠져있어요. 고통과 재난과 재앙으로 어려움으로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이 다른 길이 없어요.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흑암 세력과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셔야 하는데, 그 깨뜨리시는 길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이건 십자가의 고통을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되는 과정을 겪어야 흑암 세력을 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완성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는 겁니다.

저는 이런 어떤 배경에서 뭘 느끼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십자가 지시는 고통을 겪어야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다 이루었다!' 선언이 나왔습니다. 여러분과 제게 지금 당하는 사건과 일들, 고통, 괴로움, 그 일을 당할 때에 우리는 흔히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정말 처절하게 고통에서 부르짖는 속에서도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지금 여러분과 제게 나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구나! 이 믿음 가질 때에 아니 이 믿음이 여러분과 저뿐 아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그 교회를 건축하면서 제가 '사람과 직장과 개인과 가정에 교회를 회복해 주시옵시고...' 이 기도를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데, 어느덧 제 마음에 뭐냐하면, '맞아!' 어떤 면에서 내가 당신들을 대신해서 아프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바로 대형 교회를, 큰 교회를 건축했다! 내가 지금까지의 생각과 지금까지의 마음이나 지금까지의 어떤 힘으로 큰 교회에 갔다! 꼴이 안 되는 겁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큰 교회를 짖기 전에 먼저 누구부터 바꾸어야 됩니까? 하나님이 '박 목사부터 바꾸어야 되겠다!' 그게 마음에 너무 많이 와 닿아요. 내가 지금까지 어떤 좁은 생각, 수용 못하는 생각, 이것 가지고는 일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힘으로는 큰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없다!

그래서 어쩔 때에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나는 이 말씀을 보면서, '맞아, 내가 고백할 문제구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나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는 것 같은 이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가시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맞아, 나는 대형교회에 가서 강단에 섰을 때에 지금 이 모습으로는 안 되겠구나! 이 생각으로는 안되겠구나!' 이 생각이 내 마음에 들면서, '주여,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가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지금도 성취되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이 나와야 됩니다. 절망대신에 믿음이 나와야 뭐가 나옵니까? 믿음이 생겨야 용기가 나옵니다. 믿음이 생겨야 지혜가 나옵니다.

나는 새로운 교회에 가는 성도들로 여러분들이, 또 새로운 하나님의 영육 간에 축복해주실 귀중한 그런 백성들로 새 교회에 간다고 그럴 때에 장로님을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특별히 중직자들에게 하나님이 지금의 모습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경제적으로 아니면, 또 여러 가지 모든 문제로 지금 돈이 펑펑 남아돌아 가지고 그렇게는 안 할 것 같습니다. 왜? 어려움 속에서, 어저께 핵심 메시지 속에서 경제가 부족하다!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에 눈이 열리면,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된다고 그랬습니다.

돈이 없어야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으로 돌아갑니다. 돈이 있으면, '아, 돈이 있구나! 잘 돌아가는구나! 참 우리 계획한 것이 잘 되어 가는구나!' 이렇게 될 겁니다. 돈이 없어야 하나님 앞에 매어 달리고, '하나님 계획이 어디 있습니까?' 이럴 것 아닙니까! 여러분 큰 교회를 맡기실 때에,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연단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교회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짖고 여러분과 저를 교회 속에서 세계를 살릴 제자로 세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냥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역사 속에 큰 일을 한 사람 치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아무런 고통 없이 조용하게 큰일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죽다 살아야 큰일을 합니다. 일부러 고생을 하겠다고 뛰어들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이 큰일을 맡기실 때는, 큰 일을 맡길 연단을 하고 맡기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너무 잘 알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고 알기는 너무 잘 알면서도 큰일을 맡기려고 연단하면 죽는다고 소리지릅니다.

요셉도 하나님이 세계를 살릴 일꾼으로, 렘넌트로 키우고 세우기 위해서 그냥 놔둔 것이 아닙니다. 노예로... 그러면 뭘 말하려느냐하면, '우리가 노예로 들어가서 뭔가 주인에게 인정받았으니까 기적이구나! 야, 하나님의 은혜 받았다!' 그럴지 모르지만, 그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로 끌고 가서 딱 물을 가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로 가서 물을 갈라내신 이유는 그 백성을 어디로 끌고 가기 위해서? 가나안 땅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워낙 이스라엘 백성이 못 믿으니까! 안 믿으니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믿고 나가면 그렇게 보일 필요도 없죠.

그래서 핵심에서 그런 배경이 안 나왔습니까!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도, 요단 강물이 갈라지는 것도, 그게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불 신앙하는 사람들은 뭐냐하면, 그게 일이 일어나면 좋다고 막 박수치고, '야! 기적 봤다고... 하나님이 역사 했구나! 감사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워낙 안 믿으니까, 요단강을 갈라 가지고 '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구나!' 어디까지? 가나안까지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 나가는 도중에, 중간에 뭔가 좀 위로할 수 있는 기적들이 일어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문제들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이 이제 우리에게 크게 역사 하신다! 위로 받을 수 있죠. 그러나 받아합시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그 부분입니다. '의심하느냐? 내가 능력이 없어 못하는 게 아니다! 힘이 없어 못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과 저를 세계 복음화에 귀중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제자들로 삼으시기 위해서 목표를 두고 이끌고 가실 때, 워낙 불 신앙하니까! 이렇게도 달래보고, 저렇게도 달래보고... 그래서 조금 조금 기적도 나고, 뭐 하다가 안되면 이렇게도 해보고...

제가 이렇게 뭔가 고통하면서 보니까 어려운 것이 대게 어려우면 무슨 기도가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 살려주이소, 살려주이소!' 나도 모르게 이 호흡이 힘들고 그럴 때에, '하나님, 살려 주이소, 살려주이소!' 그러면 또 신기하데요. 또 힘이 나요. 편안해 지고, 또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웃음이 나와요. '이게 인간이구나!' 조금 위로 받는 것! 거기에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내 뜻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뜻을 못 봐요. 오늘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절망하고 외치는 것 같지만, 이 속에서 예수님은 뭘 봅니까? 나의 하나님, 그 뜻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었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즘 메시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는데도 응답하신 것을 보는 눈이 없어서 문제다!' 그랬습니다. 요셉이 세계를 살릴 꿈을 꾸고, 해와 달과 별이, 열한 별이 절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여러분 이게 뭡니까? 요셉이 언약 속에 들어가고, 언약을 이루는 기도의 첫 번째 성취가 노예로 쫓김을 받는 겁니다. 여러분 이해하셔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께서 원대한 축복의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여러분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때에, 그 기도가 응답되는 첫 번째 형상들이, 문제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밖에 고난일수도 있고,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응답에 눈이 열리면 그 순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기뻐할 수밖에 없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눈이 열리지 않으니까, 원망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이 마지막 창세기 45장에 자기형들 앞에서 뭘 말했습니까? '형님들이여, 나를 판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당신들 앞서 나를 보냈나이다!' 여러분 노예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 모든 것이 요셉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그 언약을 이루는 기도에 뭡니까? 응답이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조금만 우리가 눈을 뜨게 되면, 오늘 당하는 현실의 모습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향한 엄청난 언약을 이루시는 응답의 역사입니다. 이 축복에 눈이 열리면 바울의 말한 것처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나올 수밖에 없어요. 이게 안되면 거꾸로 되는 겁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처음 송구영신예배 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윗이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때에 그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는 뭡니까? 첫 번째 응답이 핍박이 있고, 사울에게 쫓김 받는 것이었고, 그리고 원한 가진 자, 빚진 자, 억울함을 당한 자들의 장관이 되는 모습을 우리가 보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약속을 성취시켜 나가는 과정 속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응답을 못 본다! 이것이 우리도 모르게 불 신앙으로 빠져 가는 문제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은 잡으셨습니다.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흑암과 사단의 권세는 완전히 깨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십자가 지시기 위해서 고난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셔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영원한 저주와 재앙에서부터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똑같이 지금 그 과정 속에 서서 나가고 있습니다. 고통이나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올 때에 우리는 절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받아하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십니까?" 누가 하십니까? 나의 하나님이 하고 계십니다. 그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은혜와 약속을 이미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눈을 열어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과정 속에 서있으면서도, 축복을 안 주신다고 고함치고 살아가는 불 신앙!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완전히 추방될찌어다!' 결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 세대에, 이 민족과 이 세계를 구원을 놀라운 축복의 사명을 가지고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나의 하나님이신 당신이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사람들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흑암 세력에 붙잡혀 있습니다.
- 신앙한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붙잡고 언약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노력, 내 감정, 내 생각에 빠집니다.
-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며 살아가나 저주와 재앙의 사단의 통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 하나님 앞에 설 때,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제의 축복을 하실 수 있는 우리 자신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면, 우리의 그릇은 충분히 커질 것입니다.
- ‘예수가 그리스도요 내가 구원받았다’고 고백한다면, 우리의 그릇은 변회되어집니다.
-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해방받았다’는 사실이 조금만 이해되어도 우리의 그릇은 달라집니다.

2. 예수님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약속을 붙잡고 계셨습니다.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최후의 처절한 고통에서 마지막으로 부르짖었습니다.
- 십자가의 고통은 도저히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십자가의 고통이 다가오는 순간에 예수님께서 붙잡고 있는 것은 바로 ‘약속’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다’는 약속을 확인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왜 그 처절한 고통을 주셨습니까?
- 메시야의 약속을 이루셔야 하는 뼈아픈 괴로움을 하나님께서 당하셔야 하고, 이루셔야 합니까?
- 우리의 현장 때문입니다.

3. 지금도 흑암 세력에 잡혀 있기 때문에 영적 문제가 옵니다.
- 몸이 아플 때, 아프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문제가 오는 것이 어렵습니다.
- 그 영적 문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 견디기 힘든 영적 문제가 올 때는 밤중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단을 결박해야만 합니다.
- 상상하기 힘든 영적 싸움을 하면서, 복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임을 깨닫습니다.
-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그러한 중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 병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일의 어려움을 통해서도 영적 문제가 옵니다.
- 정신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약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 정신 병원에 입원하지는 않았지만, 직장 생활을 겨우 하며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20~30%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 어떤 면에서 정신 문제로 고통을 당하여 병원을 찾으려는 사람은 30% 정도에 불과합니다.
- 나머지 70%는 염려, 걱정, 근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따라서 100% 모든 사람들이 시달린다고 보아야 합니다.
- 현실적으로 사단에게 잡혀왔기 때문입니다.
- 흑암에 실질적으로 잡혀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입니다.
- 우리는 모두 정상적인 정신병자입니다.
- 그래서 약간만 건드리면, 이상하게 성질이 나오고, 폭발하고, 히스테리를 부립니다.

4.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다른 길은 없습니다.
-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흑암 세력을 깨뜨려야 합니다.
-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을 거쳐야 흑암 세력을 꺾는 일이 완성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십자가를 지시는 고통을 겪어야 메시야로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 지금 당하는 고통과 괴로움 중에서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나의 하나님’이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 그것이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는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 교회를 건축하면서, ‘개인, 가정, 직장에 교회를 회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큰 교회를 짓기 전에 박 목사부터 바꾸시려는 계획을 깨닫습니다.
- 지금까지의 힘으로는 큰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하는 이 순간에 나를 만들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 이 사실을 깨달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 믿음이 생겨야 용기와 지혜가 나옵니다.
- 새 교회로 옮겨갈 때에, 지금의 모습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경제가 어려운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목적은 교회를 짓는 것이 아니라, 교회 속에서 우리를 세계를 살릴 제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 역사 속에 큰 일을 한 사람 치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한 사람이 없습니다.
- 일부러 고생을 하겠다고 뛰어들 필요는 없으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일을 맡기시기 전에 연단을 하십니다.
- 요셉도 세계를 살릴 일꾼으로 세우기 위해서 그냥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 홍해를 가르신 이유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목적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 기적 자체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워낙 믿지 않으니까, 가나안까지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 위로받을 수 있는 기적이나 사건이 일어날 때, 믿음이 적은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 세계 복음화의 일꾼으로 세우시는 과정 중에 이런 저런 사건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 나의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사실을 믿고 나아갑시다.
- 예수님께서 절망하고 외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의 하나님’을 붙잡고 계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데도 응답을 볼 수 있는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 요셉이 꾼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첫째로 요셉이 노예로 쫓겨났습니다.
- 하나님께서 원대한 축복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응답되는 첫 번째 현상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고난일 수 있습니다.
-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아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 요셉은 자기 형들 앞에서 ‘하나님이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요셉이 꾼 꿈이 성취되어지는 응답이었습니다.
- 우리의 현실은 엄청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응답입니다.
- 다윗이 메시야 왕국을 건설할 때, 그 첫 번째 응답이 사울에게 쫓김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 다윗은 먼저 원한 가진 자, 억울한 자의 장관이 되었습니다.
-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성취시켜가는 과정 가운데 응답을 보지 못하므로 불신앙에 빠지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흑암과 사단의 권세는 완전히 깨졌습니다.
- 하나님은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그를 영원한 그리스도로 세우셨습니다.
- 고통과 어려움이 올 때 절망하지 마십시오.
- ‘나의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 놀라운 사명으로 세우셨으니, ‘나의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