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시험 받으심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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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오늘 제목을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았다니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만은, 많은 경우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하면서도 예수님과 나와는 별로 인간적인 어떤 상관없는 관계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만이 강조가 되고, 이런 것이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여기서는 여러분과 저와 똑같은 육을 가지신, 완전한 육체를 가지신 누구라 구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부분은 4복음서에 다 나와있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공관복음에서 다 나와있는데, 특별히 마태복음서에서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 상세하게 4장 1절부터 11절까지 그 다음에 누가 복음서는 주로 예수님의 하신 사역, 일 중심으로 기록을 했는데,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내용들은 다 생략을 하고 간단하게 12절부터 기록되어 있죠.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이건 시험을 다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께 천사들이 수종들었다는 이런 배경을 처음 시작을 해 놓고는 중간에 시험받는 과정은 기록에서 빼고 마지막에 승리에 시험하신 예수님께 힘으로 은혜로 성령의 구체적인 이 축복을 가지고 일하셨다는 사실을 여기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오늘 긴 시간 말씀을 드릴 수는 없으나, 상당히 예수님이 시험 받으셨다는 배경은 아주 중요한 배경입니다. 제가 마태복음 4장을 강해 할 때에 상세하게 강해를 했습니다 만은, 일단은 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뭐냐하면, 사단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누구라 그랬어요? 예수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사단은 뭘 모르게, 뭘 안되게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미 오셔서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 사단이 역사 하는 것이 뭐냐하면, 예수를 그리스도 되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많은 경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수님이 내게 뭐가 되어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그게 이해가 잘 안 되는 분들이 신앙이 안돼요. 거기서 이제 신앙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은 잘 믿는데, '예수님이 내게 진짜 그리스도시구나!'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 뭔가 이 복음에 대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그런 상황들을 잘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예수께서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을 진작에 죽이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이시니까 죽을 수도 없고, 죽인다고 해서 죽여지는 것도 아니고, 또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거니까! 사단은 날 때부터 예수님을 아예 메시아로 오신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고, 예수를 죽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은 예수님께서 30년 동안을 잘 사셨습니다. 건강하게! 그리고 난 후에 이제 막상 예수님이 공생에 들어가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직전에 마귀는 최고의 발악을 하죠. 그 최고의 발악이 뭐냐하면, 예수님이 메시아의 자격을 상실하게 하는 겁니다. 메시아의 자격!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과 저의 진짜 구원주가 되시기 위해서는 메시아가 되어야 되거든요. 메시아가 되셔야 되는데, 메시아에 대한 자격을 상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뭐가 인정이 안 되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취해야 될 그런 본성들을 부정하도록 만드는 거죠.
그래서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럽니다. 이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건 뭐냐하면, 시험하기 위해서 이건 약올리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이것도 못하겠지!'
여러분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러면서 뭐라 그랬어요? 이스라엘 광야에는 제가 그 광야에 가보니까 모래가 아니고 거기에는 주로 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제 널려있는 돌을 보면서, 그 돌들도 우리나라처럼 뾰족한 돌보다도 맨들 맨들한 빵처럼 생긴 돌맹이들이 많아요.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 하면, '네가 이 돌들을' 뭐로 만들어 먹으라 구요? '떡을 만들어 먹어라!' 배고플 때에 아주 교묘한 그런 요구죠. 또 그런 시험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육체를 자지시고 오셨기 때문에, 완전한 육체라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40일을 밤낮으로 주렸다. 이건 뭐 말할 수 없죠.
아마 여러분들이 뭐 예수님이 지금 돌로 떡 되게 해 먹으라는 사단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하냐 하는 것은, 하루만 굶어보면 알아요. 하루까지 갈 것도 없어요. 한끼만 굶었다! 그러면 헐떡거립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한끼만 배고픈 시간을 조금만 지나가면 전부 짜장면 집밖에 안보이고, 전부 음식점밖에 안 보입니다. 거기다가 40일을 굶었다! 말할 것도 없어요. 이런 중에서 '네가 하나님이 아들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그 다음에 거기다가 비아냥거림으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할 수 있지 않느냐! 뭐 때문에 고생하느냐? 이 돌 가지고 떡 되게 해서 먹어라! 배고프게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느냐?' 이건 누가복음서에서도 똑같은 그런 배경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뭘 사단이 부정시키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과 저의 진짜 구속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 이 자격이, 이 두 인성과 신성이 같이 되어야 메시아의 자격이 되는 겁니다. 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경우 설명을 드렸지 만은, 짐승인 소의 생각이나 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제일 좋은 길이 소가 되는 겁니다. 다른 게 없잖아요. 그리고 중매쟁이가 옳게 되려고 그러면 신랑측도 신부측도 잘 알아야 됩니다.
나는 중매를 해 가지고 되어진 적이 잘 없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아예 중매부탁을 하면 하지 마라 그럽니다. 왜냐하면 내가 중매해 가지고 되는 일이 거의 없더라 구요. 중매하려고 하면 양쪽 사정을 완전히 다 알고 적당하게 덮을 건 덮고, 치켜올릴 것은 치켜올리고... 이래야 되는데, 나는 중매를 하려고 그러면 목사의 양심이라 그러고 있는 데로 다 이야기해버리고... 그래버리면 일이 안되거든요. 사정과 상황을 알아서 맞추어서 잘 연결시켜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하게 될 때에, 저에게 중매하시는 분이 아주 가까운 친구 목사님이셨는데, 얼마가 귀가 솔깃하도록 칭찬을 하는지, 속았는지 안 그러면 잘했는지 모르지만, 일단은 귀가 솔깃해 가지고 결혼을 했어요. 했는데 반은 다 틀려! 딱 뭔가 구미에 맞는 것만 딱 이야기 해 가지고 연결했더라 구요. 그때 신학교 다닐 때인데,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때에 2년만 더 참았으면 목사 되어서 결혼했으면 더 잘 할껀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내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딱 뭔가 맞는 이야기만 골라 가지고 양쪽에 해 주더라 구요. 그러니 내가 반 속았다 그러면, 저쪽에도 가만히 들어보니까 반 속았어요. 그런데 그것을 늦게 야 알았습니다 만은, 심지어는 이야기를 한다면 어땠느냐 하면, '앞으로 박 전도사 한국에 살 사람이 아니다! 반은 한국에 있고 반은 외국에 다닐 아주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 진주에서 꼬시켜서 여기까지 왔어요.
문제는 뭘 말하고 싶으냐 하면, 중매쟁이도 양쪽을 모르면 이게 중매가 안돼요.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원수가 되었어요. 말하자면 사단에 속아서 완전히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참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될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사실과 인간의 상황과 인간의 실정이 체험되지 아니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구체적인 사실을 겪으면서, 성경은 히브리서에 뭐라고 그랬느냐? '우리의 고난과 우리의 고통을 체휼 했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직접 여러분의 어렵고 괴롭고 힘든 모든 부분들을 예수님께서 직접 체휼 하셨다는 그 말은, 경험하셨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사실적으로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셔서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40일을 금식하면서 이제 이 부분을 통과해 나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그리스도의 역사에 상당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죠. 그러면서 뭐냐? '네가 하나님이 아니냐?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막말로 해서, '너는 인간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돌 가지고 떡 해먹어라! 그래서 하나님인 것을 증거해라!' 이게 그럴듯한 사단의 유혹이죠. 그럴 때에 예수께서 여기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그래서 물리쳤습니다. 문제는 인성을 부정해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사단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시험받을 때에 뭐 육체적인 욕심이다, 뭐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건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사단이 예수를 뭐가 안되도록? 메시아가 안되도록, 메시아의 자격을 상실하도록, 그래서 인성을 부정하도록, 이렇게 해서 묘하게 시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까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이 이해되고 또 이것이 확인된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전도에 중요한 내용이, 설명이 뭡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그래서 왕으로 오시고, 제사장으로 오시고, 선지자로 오시고, 그리고 그분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몸을 던지시고 십자가에서 속죄를 완성하시고 다 이루었다 그러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이 사실이 여러분과 저의 개인 인간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돼요. 아무리 믿고 싶어도, '예수님이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시다!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그건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성령으로라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성령이 내 안에 오지 않으면, 구원이 완성이 안 된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죠. 여러분들의 어떤 지능과 지혜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뭘 이해하셔야 되느냐 하면요. 영적 문제가 있다고 할 때에, 성령의 역사 없이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았지만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이해되어지지 않습니다.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복음편지를 요즘에 한두 시간 1학기에 담당 강사님이 일이 생겨서 대신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은, 거기서 강조하는 것이 처음 초기에 뭐냐하면, 초기에 '복음 편지를 가서 읽어줘라!' 그 다음에 읽어주면 누가 역사 하느냐? '성령이 역사 하신다!' 여기에 다락방의 강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설명을 많이 붙이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오랫동안 하지 마라!' 상당히 강조했어요. 왜 그러냐? 만약에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오는 사람이 복음편지를 읽어주고 들려줘도 못 깨닫습니다. 그걸 알아듣지 못해요. 영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교회 앉았지만 설교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설교말씀이 들려진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설교말씀이 거의 가슴으로 와서 느껴진다는 정도가 아니고 '깨달아 진다!' 이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건 지혜와 지식으로 이해가 안되게 되어 있어요. 왜? 성령으로 아니고는 예수를 뭐라 그랬습니까? 주시라 할 수가 없어요. 도저히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이해가 안되면 복음편지를 가지고 나간다던가, 다락방 할 때에 말해놓고 못 깨달을까 싶어서 또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저도 설교할 때에 어떤 경우에는 기도하고 나올 때는 괜찮은데, 기도 안하고 나오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하는 배경이 뭐냐하면, 말해놓고 틀림없이 못 깨달았지 싶어서 또 말을 한번 더 하는 겁니다. 말해놓고는 또 미심 적어서 또 한번 말을 더하는 겁니다. 그러니 말이 많아져요.
딱 한마디면 끝나는 겁니다. 누가 역사 합니까?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이게 이해가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에 오셔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나의 구주시구나!' 이것이 말씀을 듣는 동안에 깨닫고, '모든 문제 해결자구나!' 그게 지혜와 지성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확인이 오는 겁니다. 아니면 아무리 해도 허황된 이야기로 밖에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많이 강조했던 것이 뭐냐하면, '많은 말을 하지 마라! 20, 30분 안에 끝내라! 그리고 읽어만 줘라!' 그 배경이 뭐냐? '성령이 역사 하시면 이루실수 있다! 성령이 역사 해야 된다!' 그런 배경이 되겠죠.
이렇게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이제 공생에 들어가기 직전에 중요한 사단의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 방해를 받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제일먼저 '네가 하나님이 아니냐!'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인성을 부정하는 그런 시험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똑같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못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시대마다 똑같은 배경입니다. 초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못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이걸 인정 못한 것이 유대 배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가만히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내가 유대나라에 살고 있었다 그러면 똑같은 배경이다! 똑같은 어려움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보면,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1)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2)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요셉의 아들이고, 그 형제들도 우리와 같이 있고, 저게 사람인데 어떻게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그라느냐? 그 이야기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죠.
만약에 제가 어느 날 여러분 앞에서 비유를 든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어떻게, 저 사람이 하나님이냐! 저 사람 누나는 누구고, 또 형은 누구고, 다 우리하고 같이 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그라느냐?' 이 말과 똑같은 그런 배경입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그랬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이냐! 지금 사람으로 와 있으면서, 사람으로 우리와 똑같이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게 초대교회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배경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는 뭐냐하면,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십자가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오시고, 그렇게 하신 중에서 뭐가 또 문제냐 하면, 그 다음에 후대 신학적인 문제가,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냐! 예수님은 인간이지!' 그래서 지금 많은 신학에 흐름이 뭐냐하면, 지금 자꾸 흐르면서 예수님을 본받아 이러는 부분들이 전부 배경이 어떤 면에서 인간이라는 배경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근대신학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으로 강조를 더하지, 하나님으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안 믿으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항상 역사 속에 예수는 어느 시기에는 하나님으로만, 예수는 어느 시기에는 인간으로만, 자꾸 그렇게 몰아갑니다. 이게 사단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시다! 믿습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입니까? 성경에 쭉 보면 전부 나와있는 사실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했지만 전부 인간적인 역사로 쭉 설명된 이런 일들이 많으니까, 예수님이 하나의 인간에 모형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를 인간이라는 선상에 놓고 이해를 하려고 하는 신학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지금은 예수를 참 메시아로 믿도록 하는 교회가 얼마나 되느냐? 참 메시아로 믿도록 하는 그런 신학교가 얼마나 되느냐? 저는 이점에 있어서, 그래서 뭐 좋다, 나쁘다! 이전에 참 전도에 눈이 안 열리는 이상, 이게 이해가 안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뭔가 인간으로 와서, 인간의 어떤 역사는 상당히 희미해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으로 이게 오히려 더 많은 접근이 나오죠.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사단이 교묘하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그때부터 그리스도 되심을 막아 놓는데, 그 막아놓은 첫 번째 수단과 방법이 뭐냐? 인성과 신성 중에 한가지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성과 예수님의 신성! 그걸 쉽게 말해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다!' 그렇게 믿도록 하는 것을 사단은 막아 버렸어요. 오늘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것을 믿을 수 없는 믿음으로는 메시아의 신앙이 안되어요. 그리스도의 뿌리가 내리지 못합니다.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해요. 이 사실이 오늘 우리가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일을 위해서 사단은 집요하게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어느 한쪽으로, 반드시 인성을 부정하거나 신성을 부정하거나... 그래서 예수님이 뭐가 되는 것을? 메시아 되는 것을, 그리스도 되심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리스도 되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그런 술수가 바로 이 시험 속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에 들어서자 말자 마태복음서에 이것만 딱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이 문제를 승리하셨다!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그러면서 진행시켜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또 중요하게 깨달아야 될 부분이 뭐냐하면, 마태복음도 그렇고, 누가복음도 그렇고, 한결같이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런데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누구한테 시험을 받아요?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흔히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그 다음에 문제가 여러 가지 모든 성경에 문제가 이해가 안 되죠. 여러분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여러분과 저는 누구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요? 이걸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럽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과 어떤 문제나 어떤 배경 속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좀 해봤어요. 뭐냐하면, 뭐든지 볼 때마다, '사단 결박 받아라!' 그러고 '사단 물러가라!' 그러고 '사단, 사단!' 그러면, 오히려 성령의 인도 받는 것보다도 사단에 눌리는 것이 더 많다 싶어요. 뭐든지 보면, 왜 그러냐 하면, 사단에 눌리는 것에 강박관념이 차라리 안 오겠나! 그럴 것 같아요. 아무리 사단이 인도하고, 사단이 역사하고, 사단이 뭐 어떻다 할지라도 성령에 인도입니다. 여러분 궁극적으로 뭐냐?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 없이 여러분과 저를 절대로, 뭐 사단이 시험하거나 사단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시험이라든가, 뭐 어려운 문제라든가, 뭐 힘든 상황이라든가, 뭐 어떤 여러 가지 문제도 꼭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뭐라 그랬습니까? 시험을 당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험은 준다 그랬어요, 안 준다 그랬어요? '안 주신다!' 그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어려울 때에 어떤 기도를 많이 했느냐 하면, '하나님, 내게 이 어려움을 주실 때에는 이길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셨기 때문에 주시는 것 아닙니까! 이기든지, 안 그러면 감성으로든지, 느낌으로든지,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걸 이길 수 있기에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 '지금도 이 시험과 이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간섭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그걸 믿는 것하고 안 믿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그래서 시험에 빠진다는 것은 뭐냐? 이걸 못 믿을 때에 빠진다고 그렇게 봅니다. 안 그러면 빠질 이유가 없고, 빠질 필요가 없죠.
여기서 유념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오늘 마가복음서에 보면, 바로 그 앞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잖아요. 임하자 즉시 어디로 메시아가 이끌려 갑니까? 시험받으러 갔다! 그래서 마태복음서는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성도에게 닥치는 어려운 문제라든가, 성도에게 닥치는 어떤 사건이나 일은 성령에 역사다! 그 말은 쉽게 말해서 기도에 응답이요, 바로 기도가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순간이다! 역사다! 그것이 여기에 나오는 그런 배경입니다.
우리가 메시지 속에서 늘 듣죠. 요셉이 창세기 37장 1절 이후부터 비전이 나오고,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이 나오잖아요. 약속했는데 그 언약을 이루는 방법은 요셉이 꽃방석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이루어집니까? 노예로 팔려 가는 것! 그 다음에 감옥에 들어가는 것! 그 다음에 억울한 곳으로... 그래서 여러분 기도 응답 중에 가장 큰 응답이 뭐냐? '잘된다!' 이것보다도 어떤 면에서 노예로 팔려 갈 때도 '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구나!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응답 중에 응답입니다.
그래서 이제 바울이 늘 말한 것이 이런 인용을 많이 하잖아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다 된다!' 그랬습니다. 뭐냐하면 여러분과 제가 근본적인 배경을 가지지 못하면 흔들리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내게 닥치는 모든 문제나 모든 사건은 응답의 역사요, 또 지난번에 금요 자체전도학교 메시지에 '해답의 눈'이라고 그러더라 구요. 뭐 해답, 응답 복잡하니까... 문제는 여러분과 제게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요셉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큰 총리가 되게 하시고, 세계복음화 하게 하시는 방법이 뭐냐? 노예로, 그 다음에 감옥에 억울함으로... 그런데 우리는 이걸 못 참는 겁니다.
시험에 빠지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이걸 못 견뎌요. 그래서 조금만 뭐하면 억울하다! 조금만 뭐하면 괴롭다! 조금만 뭐하면 아프다! 조금만 뭐하면 슬프다!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게 지금 응답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인데, 이 과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은 훌륭하다는 것보다도 바로 이런 점입니다. 뭔가 머리에 뿔이 달려서 훌륭한 것이 아니고, 문제나 사건이 왔을 때에,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구나!'
그래서 다윗 같은 경우에는 시몬이 정죄 하고 막 저주할 때에, '내 아들 압살롬도 나를 배신했는데 하물며 사울에 후생인 네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오히려 이로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긍휼을 베풀어주실 수도 있지 않느냐!' 이게 다윗의 생각입니다. 여러분 훌륭한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이런 부분입니다. 시험이나 고통이나 모든 문제가 왔을 때에, '이것이 왜,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누가 이런 일을 하느냐? 무엇 때문에 하느냐?' 이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아뢸 수 있는 믿음! 그게 훌륭하다! 그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축복과 은혜가 약속이 되어져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또 단체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시련과 시험이 없이 성공했다는 것은 절대로 거짓말입니다. 있을 수가 없어요. 어떤 면에서 혹독한 시련이 있을수록 위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성공한 사람들, 훌륭하게 된 사람들, 간증을 듣는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저 사람은 어째서 저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그래서 간증 초청을 해 보세요. 똑같이 뭘 말하느냐? 거의 고생 간증이죠. '내가 이런 과정에 있었다!' 들어보세요. 열이면 열 명, 다 죽을 고생을 하면 죽음도 가릴 수 없는 영광이 나오고, 고생이 없으면 고생이 없는 만큼 평범하게 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말세를 당하고, 뭐 여러 가지 어려운 가정과 개인이 당하게 될 때에 문제는 하나님 앞에 뭐 '축복을 받았다, 안 받았다!' 좋은 환경과 좋은 일이 있고 좋은 사건이 생겨서 자꾸 축복을 받았다! 그렇게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면 인간이 안돼요. 그리고 여러분 뭔가 이 송현교회 왔다! 축복만 받았다! 그러면 교인이 안돼요. 송현교회 왔다! '이상하게 시험 들고, 어렵고, 힘들고, 병들고, 이상하더라!' 그게 되는 겁니다.
교인들은 뭐냐하면, '이 교회 왔더니만 뭐 안 되는 게 이렇게 많냐!' 그러고 '예수 믿으니 안 되는 게 이렇게 많냐!' 성령이 임했다. 그때부터 뭐가 와요? 시험받으러 어디로 끌고 갔어요? '광야로 끌고 갔더라!' 그랬습니다. 거기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이게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래서 저는 잘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죠. 내가 극한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뭐가 찾아오느냐 하면, 낙망이 찾아옵니다. 절망이 옵니다. 어떻게 견뎌내느냐! 어떻게 사느냐! 그러면 낙심이 찾아오고 낙망이 생기면 반드시 오는 것이 뭐냐? 뒤따라서 불신앙이 오는데, 불신앙이라는 그 배경이 뭐냐하면 흑암에 배경입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어려운 부분은 오랜 병고에 시달린 사람은 뭐가 어려우냐? 낙심이 오게 되면, 반드시 오는 것이 뭐냐? 영적 문제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정신문제예요. 그때에 중요합니다.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을 이렇게 먹고, 저렇게 먹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달라지는 것이냐?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영적 문제 오면 나한테는 뭐가 약점이냐 하면, 호흡이 곤란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와요. 여러분이 혹시 이런 것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밤중에 답답한 마음이 오면 내가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창문을 열기도 하고,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소리 지르고 싶은 생각도 나고, 이러니 이제 미치는 거죠. 그런데 그때에 뭐냐하면, '그래도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 하면서 조금만 여유를 갖게 되면, 그게 사라지게 됩니다. 뭘 느끼게 되느냐 하면요. 막 숨이 가플 때에 심호흡하라고 그럽니다. 호흡을 천천히 하라고 그럽니다. 마음을 급하게 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마음만 조금, 하나님이 그래도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다!' 그러면서 호흡을 천천히 몇 번만 가다듬어 버리면 해결이 됩니다. 이게 안되면 사정없이 빠져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뭔가 영적 문제가 있다, 없다! 이전에 이런 어떤 영적인 배경에 역사들이 누구에게나 오기 때문에, 정말 복음 없다 그럴 때에, 복음 없이 산다는 것은 답답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조금만 마음을 내가 어느 방향으로 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 다음에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좋은 일만 생긴다!' 그건 우상숭배에서 요구하는 것이고, 우상숭배에서 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게 될 때에 성령으로 이끌려 여러분과 제게 더 뭐하기 위해서? 메시아로 축복하시기 위해서, 그 다음에 본문에 나온 말씀처럼, 13절 말씀에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내가 잠시 잠깐 성령에 이끌려서 시험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이어서 오는 것이 뭡니까?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여러분과 제게 무한한 가능성이 어디서?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저에게 함께 하심으로, 그 함께 하시는 무한한 능력이, 구체적인 역사가 사실적으로 임하게 되는 이런 역사를 약속을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좀 정리를 하셔야 될 것이, 많은 경우 우리가 너무 고질적으로 다 지금 굳어져 있는 것이 뭐냐? '예수 믿으면 잘된다! 축복 받는다! 전도하면 축복 받는다!' 그런 어떤 배경 속에서, 축복이라는 것이 우리 개념에서 뭔가 '잘된다! 어려움이 없다! 힘든 일 없다!' 이런 것으로 자꾸 끌고 갑니다. 여러분들이 일단은 뭐냐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그럴 때에, 성령으로 어디로 가야돼요? 광야로 가야 됩니다. 광야로 가면, 거기서 끝나느냐? 진짜 축복은 그 다음 너머 있습니다.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광야에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고자 원하시는 그 축복과 역사를 거기서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 좀 과장되게 표현을 하면, 아프면서 '이 재미없이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느냐?' 아파야,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은, '성령이 귀 있는 자에게 들리게 할 찌어다!' 여러분 진짜입니다. 성공만 계속해나가면 허탈감이 옵니다. 그러나 시험에서 승리하는 역사가 나오면 기쁨과 감격이 나옵니다. 내가 내 생애 속에서 한번이라도 시험에 승리하는 경험이 있다! 그러면 그 인생은 계속해서 그런 승리가 연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승리한 사람은 허탈감이 나와서 나중에 자살해 죽어버립니다. 제 말이 지나친 말로 들리지 모르지만, 여러분과 제가 말세를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세대를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를 연단 해 가시면서 인도해 가실 것인가?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그래서 고난이 없고 고통이 없는 사람들은, 고난이 오고 시험이 오면 좌절에 빠져 버립니다. 어려움에 빠져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옛날 같지 않아서 학교에 가든지, 어디 가든지, 뭐 왕따 당하고, 어려움을 못 견디고, 못 참고, 그렇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어릴 때에 너무 귀엽게 홀로 키워서 그래요. 어릴 때 좀 고생을 시켜요. 고생을 시킨다는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지 마시고, 인간적으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연단을 시켜야 됩니다. 어릴 때에 너무 이렇게 붙들어놓으면 커서 조금만 문제 생기면 좌절에 빠져버립니다.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커서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도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그룹 사장이 노 대통령 말 한마디에 물에 빠져 죽었다고 그러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백 번, 천 번 이상한 말 들어도 그대로 나가야지! 그런 이야기 듣고 죽으려고 그러면 나는 백 번, 천 번 죽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말세에 여러분과 저를 어떻게 훈련 시켜야 될 것인가?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기쁨은 어디에서? 여러분 승리에서의 허탈보다도, 문제나 시험에서 또 승리하고 감격이 오잖아요. 그 다음에 또 고통과 아픔에서, 또 승리하고 감격이 오잖아요. 감사가 오고 그때마다 뭐냐? 그때마다 신앙에 확인과 확신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구나! 하나님은 역사 하시는 구나!' 이게 없는 사람은 잘되고 이러다가 조금만 안되면 심지어는 그렇잖아요. 옛날 이야기 아닙니까... '교회 왔더니만 집에 도둑놈이 들어와 가지고 물건을 다 가지고 갔다!' 그러고는 홀딱 빠져 가지고, '내가 교회가면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되는데, 왜 도둑이 드느냐!' 나는 도둑 몇 번 당했는데, 교회 예배드리다가 우리 집이 몇 번 털렸는데, 사택이 지금 정보문서실에 있을 때에, 제1호로 그때 결혼 때 받은 제일 큰 선물이, 그때는 녹음기가 없었어요. 라디오 녹음기를 지금 현재 정보문서실에서 도둑맞았어요. 애지중지 아꼈었는데, 그뿐 아니고 예배드리다가 몇 번 우리 집에 와서 파카도 털리고, 하긴 가지고 갈게 별로 없어서 가지고 갈 것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오다가오다가 없으니까, 지금은 오지도 않아요.
뭘 말씀드리고 싶으냐 하면,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시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더니, 성령의 역사를 받았더니, 성령의 은혜를 받았더니, 이런 어려운 문제가 오는구나!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수중에서 나를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구나! 연단 해 주시는 구나!' 저는 요즘 뭘 느끼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축복을 주시려고 저기 새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사람을 반 죽였다가 살렸는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있고, 하여튼 얼마나 큰 축복을 주시려고 우리 교회에 여러 가지로 연단과, 또 시련과, 또 그 다음에 사람관계 속에서, 인간관계속에서 여러 가지로, 그 다음에 그런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사건을, 저는 '왜,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느냐?' 이것보다도 하나님이 어떤 축복과 은혜를 주시려고 이런 은혜를, 이런 연단을, 이런 역사를 이루시는가! 마음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달라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년 건드려 봐도 안 돼! 2년 건드려 봐도 안 돼!' 지금 몇 년이냐? 6년입니다. 저는 6년 동안 얻은 것이 있다 그러면, 이런 부분에서 분명히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좋은 일이 생겼다기보다도 어려운 일을 통해서, 또 한번 극복하고, 또 한번 극복하는 동안에 전에는 승리하고 좋은 일로 뭔가 이렇게 해버리면 허전해 집니다. 여러분 반드시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면 허전한 게 아닙니다. 승리가 됩니다. 감사가 옵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이야기를 하죠. 우리 은순기 권사님 아들 최종환 장로님이 4차인가 사시에 합격해 놓고는 와 가지고, 나는 감회가 클 줄 알고 그때는 그 집사도 안되었을 때인데, '최 선생님 마음이 어떻냐?'고 물으니까! 나는 즐거운 고백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만 하는 말이, '허무합니다!' 이러더라 구요. 요즘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여러분 세상 성공이라든가, 세상뿐 아니고 성공은 차라리 허무감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고통과 고난에서 그걸 극복하고, 그걸 승리할 때는 허무감보다도 뭐가 따라와요? 승리감과 감사함과 찬송함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나도 모르게 따라옵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지었을 때에, 누구든지 그렇게 고백이 될 겁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했다! 지금 보니까 꼭대기가 거의 다 올라가고 한번씩 지나가면서 들어가지는 않는데, 왔다갔다 보면서 뭐냐? 자꾸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다!' 여러분과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다! 주님의 역사구나! 이것이 점점 감사로...
그리고 이 축복과 역사 속에 세운 여러분 아마 더 큰 축복과 역사 위해서 건축하는 동안에 더 큰 시련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뭐라 구요? 하나님의 은혜로다! 극복하는 감격과, 그 다음에 그런 어떤 것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뭘 주느냐? 그런 그릇을 만들어놓고, 거기다가 부어주시는 겁니다. 저는 얼마 안올렸을 때에 밑바닥 까는 것에도 얼마나 철근을 넣어 가지고 깔고 안 그랬습니까! 보통 집은 그렇게 안 깔거든요. 여러분 높이 올릴수록 밑바닥은 충분히 다져 놓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세계를 살리려고, 밑바닥 다진다고 하나님께서 고생 많이 했어요. 내가 고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고생 많이 하셨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이 엄청난 세계 복음화의 역사를 향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 붙잡고,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과 일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계획 붙잡고 정말 축복하시기 위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확인하는 감사와 기쁨이 또 한날도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단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도록 시험합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육체를 가지신 사람입니다.
-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부분은 4복음서에 다 나와있습니다.
- 마태복음에서는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 마가복음에서는 시험받으신 구체적인 내용들은 생략하고, 승리하셨다는 내용만을 간단하게 기록했습니다.
- 사단은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막을 수 없으니까,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 ‘예수님이 그리스도다’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예수님이 공생애로 들어가기 직전에 사단은 최고의 발악으로 메시야의 자격을 상실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 예수님이 메시야의 자격을 상실하도록 사단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 사단은 예수님께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말하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했습니다.
- 예수님은 완전한 육체를 가지셨기 때문에 40일을 밤낮으로 주리신 후에 몹시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 사단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진정한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서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을 부정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 중매쟁이도 양쪽을 모르면 중매를 할 수 없습니다.
-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참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모든 현실을 다 겪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40일을 금식하면서 이 부분을 통과해 나가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 사단은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해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지 못하려고 했던 것이 사단의 시험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쳤습니다.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도록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이 이해되고 확인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성령으로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심을 믿고 설명을 많이 붙여서 오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 성령으로가 아니면, 예수님을 주(主, Lord)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 보통 이해시키기 위해서 반복해서 말하며 설득시키려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단의 방해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성을 부정하는 시험이었습니다.
- 예수를 그리스도로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이나 인성을 모두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초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요4:60-)
-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의 인간으로만 볼 뿐이지,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이 모든 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십니다.
-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 예수님을 참 메시아로 믿도록 하는 교회와 신학교가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할 때 마음의 아픔이 큽니다.
-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믿도록 하는 것을 사단은 막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믿을 수 없으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뿌리가 내릴 수 업습니다.
- 사단은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정하도록 해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도록 해왔습니다.
■ 성령의 인도 속에서 시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려 사단의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마4:1)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나는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갑니다.
- 어떠한 문제와 상황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 아무리 사단이 역사해도,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 그래서 성도에게 있어서는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성도는 시험을 당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시험을 받지는 않습니다.
- 내가 이길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 시험을 나에게 주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 시험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자, 즉시 시험을 받으러 나가셨습니다.
- 성도에게 닥치는 어려운 문제나 사건은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것은 바로 기도의 응답이요, 기도가 허락되는 순간입니다.
- 요셉이 비전과 약속을 받은 후에, 꽃방석에서 성취를 맛본 것이 아니라 험하고 어려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 성도가 어려움에 들어갈 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 바울도 너희의 아뢸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했습니다.
- 성도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과 문제는 응답의 역사요, 해답의 눈입니다.
-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이 시험일 경우도 많은데, 괴롭다고 투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훌륭한 성도는 문제나 사건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 다윗이 피난하며 욕을 먹을 때, 노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우리에게는 사건과 문제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하는 수준이 요구됩니다.
- 혹독한 시련이 있을수록 위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훌륭한 사람들의 간증은 고생 간증입니다.
- 말세에 좋은 일로만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성령이 임하자, 시험을 받기 위해서 광야로 이끌려가셨습니다.
- 그 때,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 성령께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극한 어려움에 빠지면, 낙망이 찾아오고, 뒤따라서 불신앙이 옵니다.
- 오랜 병고에 시달린 사람에게 낙심이 오게 되면 반드시 영적 문제가 옵니다.
- 성령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마음과 생각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 마음이 조금만 바른 방향으로 흐르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 하나님은 시험으로 나를 연단하신 후 승리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 잠시 성령에 이끌려서 시험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 수종드는 축복이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무한한 능력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 많은 경우, 예수 믿으면 세상적으로 잘 된다는 개념이 굳어져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야하고, 결국에는 천사들이 수종드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 ‘아파야 살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성공만 계속되면 허탈하게 되지만, 시험에서 승리하게 되면 기쁨과 감격이 나옵니다.
- 한 번만이라도 시험에서 승리하게 되면, 인생 전체가 놀랍게 변화됩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연단해서 인도해 가실 것인가를 잘 알고 계십니다.
- 고난이 오고 시험이 올 때, 좌절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나를 연단하여 정금같이 만드실 것입니다.
-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렵게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신 후에 승리하도록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마음과 생각에 새기십시오.
- 고통과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때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오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막 1:13)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오늘 제목을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았다니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만은, 많은 경우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하면서도 예수님과 나와는 별로 인간적인 어떤 상관없는 관계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만이 강조가 되고, 이런 것이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여기서는 여러분과 저와 똑같은 육을 가지신, 완전한 육체를 가지신 누구라 구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부분은 4복음서에 다 나와있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공관복음에서 다 나와있는데, 특별히 마태복음서에서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 상세하게 4장 1절부터 11절까지 그 다음에 누가 복음서는 주로 예수님의 하신 사역, 일 중심으로 기록을 했는데,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내용들은 다 생략을 하고 간단하게 12절부터 기록되어 있죠.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이건 시험을 다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께 천사들이 수종들었다는 이런 배경을 처음 시작을 해 놓고는 중간에 시험받는 과정은 기록에서 빼고 마지막에 승리에 시험하신 예수님께 힘으로 은혜로 성령의 구체적인 이 축복을 가지고 일하셨다는 사실을 여기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오늘 긴 시간 말씀을 드릴 수는 없으나, 상당히 예수님이 시험 받으셨다는 배경은 아주 중요한 배경입니다. 제가 마태복음 4장을 강해 할 때에 상세하게 강해를 했습니다 만은, 일단은 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뭐냐하면, 사단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누구라 그랬어요? 예수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사단은 뭘 모르게, 뭘 안되게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미 오셔서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 사단이 역사 하는 것이 뭐냐하면, 예수를 그리스도 되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많은 경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수님이 내게 뭐가 되어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그게 이해가 잘 안 되는 분들이 신앙이 안돼요. 거기서 이제 신앙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은 잘 믿는데, '예수님이 내게 진짜 그리스도시구나!'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 뭔가 이 복음에 대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그런 상황들을 잘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예수께서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을 진작에 죽이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이시니까 죽을 수도 없고, 죽인다고 해서 죽여지는 것도 아니고, 또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거니까! 사단은 날 때부터 예수님을 아예 메시아로 오신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고, 예수를 죽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은 예수님께서 30년 동안을 잘 사셨습니다. 건강하게! 그리고 난 후에 이제 막상 예수님이 공생에 들어가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직전에 마귀는 최고의 발악을 하죠. 그 최고의 발악이 뭐냐하면, 예수님이 메시아의 자격을 상실하게 하는 겁니다. 메시아의 자격!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과 저의 진짜 구원주가 되시기 위해서는 메시아가 되어야 되거든요. 메시아가 되셔야 되는데, 메시아에 대한 자격을 상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뭐가 인정이 안 되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취해야 될 그런 본성들을 부정하도록 만드는 거죠.
그래서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럽니다. 이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건 뭐냐하면, 시험하기 위해서 이건 약올리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이것도 못하겠지!'
여러분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러면서 뭐라 그랬어요? 이스라엘 광야에는 제가 그 광야에 가보니까 모래가 아니고 거기에는 주로 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제 널려있는 돌을 보면서, 그 돌들도 우리나라처럼 뾰족한 돌보다도 맨들 맨들한 빵처럼 생긴 돌맹이들이 많아요.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 하면, '네가 이 돌들을' 뭐로 만들어 먹으라 구요? '떡을 만들어 먹어라!' 배고플 때에 아주 교묘한 그런 요구죠. 또 그런 시험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육체를 자지시고 오셨기 때문에, 완전한 육체라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40일을 밤낮으로 주렸다. 이건 뭐 말할 수 없죠.
아마 여러분들이 뭐 예수님이 지금 돌로 떡 되게 해 먹으라는 사단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하냐 하는 것은, 하루만 굶어보면 알아요. 하루까지 갈 것도 없어요. 한끼만 굶었다! 그러면 헐떡거립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한끼만 배고픈 시간을 조금만 지나가면 전부 짜장면 집밖에 안보이고, 전부 음식점밖에 안 보입니다. 거기다가 40일을 굶었다! 말할 것도 없어요. 이런 중에서 '네가 하나님이 아들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그 다음에 거기다가 비아냥거림으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할 수 있지 않느냐! 뭐 때문에 고생하느냐? 이 돌 가지고 떡 되게 해서 먹어라! 배고프게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느냐?' 이건 누가복음서에서도 똑같은 그런 배경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뭘 사단이 부정시키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과 저의 진짜 구속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 이 자격이, 이 두 인성과 신성이 같이 되어야 메시아의 자격이 되는 겁니다. 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경우 설명을 드렸지 만은, 짐승인 소의 생각이나 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제일 좋은 길이 소가 되는 겁니다. 다른 게 없잖아요. 그리고 중매쟁이가 옳게 되려고 그러면 신랑측도 신부측도 잘 알아야 됩니다.
나는 중매를 해 가지고 되어진 적이 잘 없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아예 중매부탁을 하면 하지 마라 그럽니다. 왜냐하면 내가 중매해 가지고 되는 일이 거의 없더라 구요. 중매하려고 하면 양쪽 사정을 완전히 다 알고 적당하게 덮을 건 덮고, 치켜올릴 것은 치켜올리고... 이래야 되는데, 나는 중매를 하려고 그러면 목사의 양심이라 그러고 있는 데로 다 이야기해버리고... 그래버리면 일이 안되거든요. 사정과 상황을 알아서 맞추어서 잘 연결시켜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하게 될 때에, 저에게 중매하시는 분이 아주 가까운 친구 목사님이셨는데, 얼마가 귀가 솔깃하도록 칭찬을 하는지, 속았는지 안 그러면 잘했는지 모르지만, 일단은 귀가 솔깃해 가지고 결혼을 했어요. 했는데 반은 다 틀려! 딱 뭔가 구미에 맞는 것만 딱 이야기 해 가지고 연결했더라 구요. 그때 신학교 다닐 때인데,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때에 2년만 더 참았으면 목사 되어서 결혼했으면 더 잘 할껀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내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딱 뭔가 맞는 이야기만 골라 가지고 양쪽에 해 주더라 구요. 그러니 내가 반 속았다 그러면, 저쪽에도 가만히 들어보니까 반 속았어요. 그런데 그것을 늦게 야 알았습니다 만은, 심지어는 이야기를 한다면 어땠느냐 하면, '앞으로 박 전도사 한국에 살 사람이 아니다! 반은 한국에 있고 반은 외국에 다닐 아주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 진주에서 꼬시켜서 여기까지 왔어요.
문제는 뭘 말하고 싶으냐 하면, 중매쟁이도 양쪽을 모르면 이게 중매가 안돼요.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원수가 되었어요. 말하자면 사단에 속아서 완전히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참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될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사실과 인간의 상황과 인간의 실정이 체험되지 아니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구체적인 사실을 겪으면서, 성경은 히브리서에 뭐라고 그랬느냐? '우리의 고난과 우리의 고통을 체휼 했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직접 여러분의 어렵고 괴롭고 힘든 모든 부분들을 예수님께서 직접 체휼 하셨다는 그 말은, 경험하셨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사실적으로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셔서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40일을 금식하면서 이제 이 부분을 통과해 나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그리스도의 역사에 상당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죠. 그러면서 뭐냐? '네가 하나님이 아니냐?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막말로 해서, '너는 인간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돌 가지고 떡 해먹어라! 그래서 하나님인 것을 증거해라!' 이게 그럴듯한 사단의 유혹이죠. 그럴 때에 예수께서 여기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그래서 물리쳤습니다. 문제는 인성을 부정해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사단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시험받을 때에 뭐 육체적인 욕심이다, 뭐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건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사단이 예수를 뭐가 안되도록? 메시아가 안되도록, 메시아의 자격을 상실하도록, 그래서 인성을 부정하도록, 이렇게 해서 묘하게 시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까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이 이해되고 또 이것이 확인된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전도에 중요한 내용이, 설명이 뭡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그래서 왕으로 오시고, 제사장으로 오시고, 선지자로 오시고, 그리고 그분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몸을 던지시고 십자가에서 속죄를 완성하시고 다 이루었다 그러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이 사실이 여러분과 저의 개인 인간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돼요. 아무리 믿고 싶어도, '예수님이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시다!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그건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성령으로라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성령이 내 안에 오지 않으면, 구원이 완성이 안 된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죠. 여러분들의 어떤 지능과 지혜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뭘 이해하셔야 되느냐 하면요. 영적 문제가 있다고 할 때에, 성령의 역사 없이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았지만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이해되어지지 않습니다.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복음편지를 요즘에 한두 시간 1학기에 담당 강사님이 일이 생겨서 대신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은, 거기서 강조하는 것이 처음 초기에 뭐냐하면, 초기에 '복음 편지를 가서 읽어줘라!' 그 다음에 읽어주면 누가 역사 하느냐? '성령이 역사 하신다!' 여기에 다락방의 강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설명을 많이 붙이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오랫동안 하지 마라!' 상당히 강조했어요. 왜 그러냐? 만약에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오는 사람이 복음편지를 읽어주고 들려줘도 못 깨닫습니다. 그걸 알아듣지 못해요. 영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교회 앉았지만 설교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설교말씀이 들려진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설교말씀이 거의 가슴으로 와서 느껴진다는 정도가 아니고 '깨달아 진다!' 이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건 지혜와 지식으로 이해가 안되게 되어 있어요. 왜? 성령으로 아니고는 예수를 뭐라 그랬습니까? 주시라 할 수가 없어요. 도저히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이해가 안되면 복음편지를 가지고 나간다던가, 다락방 할 때에 말해놓고 못 깨달을까 싶어서 또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저도 설교할 때에 어떤 경우에는 기도하고 나올 때는 괜찮은데, 기도 안하고 나오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하는 배경이 뭐냐하면, 말해놓고 틀림없이 못 깨달았지 싶어서 또 말을 한번 더 하는 겁니다. 말해놓고는 또 미심 적어서 또 한번 말을 더하는 겁니다. 그러니 말이 많아져요.
딱 한마디면 끝나는 겁니다. 누가 역사 합니까?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이게 이해가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에 오셔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나의 구주시구나!' 이것이 말씀을 듣는 동안에 깨닫고, '모든 문제 해결자구나!' 그게 지혜와 지성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확인이 오는 겁니다. 아니면 아무리 해도 허황된 이야기로 밖에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많이 강조했던 것이 뭐냐하면, '많은 말을 하지 마라! 20, 30분 안에 끝내라! 그리고 읽어만 줘라!' 그 배경이 뭐냐? '성령이 역사 하시면 이루실수 있다! 성령이 역사 해야 된다!' 그런 배경이 되겠죠.
이렇게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이제 공생에 들어가기 직전에 중요한 사단의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 방해를 받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제일먼저 '네가 하나님이 아니냐!'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인성을 부정하는 그런 시험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똑같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못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시대마다 똑같은 배경입니다. 초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못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이걸 인정 못한 것이 유대 배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가만히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내가 유대나라에 살고 있었다 그러면 똑같은 배경이다! 똑같은 어려움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보면,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1)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2)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요셉의 아들이고, 그 형제들도 우리와 같이 있고, 저게 사람인데 어떻게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그라느냐? 그 이야기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죠.
만약에 제가 어느 날 여러분 앞에서 비유를 든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어떻게, 저 사람이 하나님이냐! 저 사람 누나는 누구고, 또 형은 누구고, 다 우리하고 같이 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그라느냐?' 이 말과 똑같은 그런 배경입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그랬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이냐! 지금 사람으로 와 있으면서, 사람으로 우리와 똑같이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게 초대교회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배경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는 뭐냐하면,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십자가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오시고, 그렇게 하신 중에서 뭐가 또 문제냐 하면, 그 다음에 후대 신학적인 문제가,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냐! 예수님은 인간이지!' 그래서 지금 많은 신학에 흐름이 뭐냐하면, 지금 자꾸 흐르면서 예수님을 본받아 이러는 부분들이 전부 배경이 어떤 면에서 인간이라는 배경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근대신학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으로 강조를 더하지, 하나님으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안 믿으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항상 역사 속에 예수는 어느 시기에는 하나님으로만, 예수는 어느 시기에는 인간으로만, 자꾸 그렇게 몰아갑니다. 이게 사단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시다! 믿습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입니까? 성경에 쭉 보면 전부 나와있는 사실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했지만 전부 인간적인 역사로 쭉 설명된 이런 일들이 많으니까, 예수님이 하나의 인간에 모형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를 인간이라는 선상에 놓고 이해를 하려고 하는 신학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지금은 예수를 참 메시아로 믿도록 하는 교회가 얼마나 되느냐? 참 메시아로 믿도록 하는 그런 신학교가 얼마나 되느냐? 저는 이점에 있어서, 그래서 뭐 좋다, 나쁘다! 이전에 참 전도에 눈이 안 열리는 이상, 이게 이해가 안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뭔가 인간으로 와서, 인간의 어떤 역사는 상당히 희미해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으로 이게 오히려 더 많은 접근이 나오죠.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사단이 교묘하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그때부터 그리스도 되심을 막아 놓는데, 그 막아놓은 첫 번째 수단과 방법이 뭐냐? 인성과 신성 중에 한가지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성과 예수님의 신성! 그걸 쉽게 말해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다!' 그렇게 믿도록 하는 것을 사단은 막아 버렸어요. 오늘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것을 믿을 수 없는 믿음으로는 메시아의 신앙이 안되어요. 그리스도의 뿌리가 내리지 못합니다.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해요. 이 사실이 오늘 우리가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일을 위해서 사단은 집요하게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어느 한쪽으로, 반드시 인성을 부정하거나 신성을 부정하거나... 그래서 예수님이 뭐가 되는 것을? 메시아 되는 것을, 그리스도 되심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리스도 되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그런 술수가 바로 이 시험 속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에 들어서자 말자 마태복음서에 이것만 딱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이 문제를 승리하셨다!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그러면서 진행시켜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또 중요하게 깨달아야 될 부분이 뭐냐하면, 마태복음도 그렇고, 누가복음도 그렇고, 한결같이 마태복음 4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런데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누구한테 시험을 받아요?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흔히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그 다음에 문제가 여러 가지 모든 성경에 문제가 이해가 안 되죠. 여러분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여러분과 저는 누구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요? 이걸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럽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과 어떤 문제나 어떤 배경 속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좀 해봤어요. 뭐냐하면, 뭐든지 볼 때마다, '사단 결박 받아라!' 그러고 '사단 물러가라!' 그러고 '사단, 사단!' 그러면, 오히려 성령의 인도 받는 것보다도 사단에 눌리는 것이 더 많다 싶어요. 뭐든지 보면, 왜 그러냐 하면, 사단에 눌리는 것에 강박관념이 차라리 안 오겠나! 그럴 것 같아요. 아무리 사단이 인도하고, 사단이 역사하고, 사단이 뭐 어떻다 할지라도 성령에 인도입니다. 여러분 궁극적으로 뭐냐? 하나님의 주권이라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 없이 여러분과 저를 절대로, 뭐 사단이 시험하거나 사단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시험이라든가, 뭐 어려운 문제라든가, 뭐 힘든 상황이라든가, 뭐 어떤 여러 가지 문제도 꼭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뭐라 그랬습니까? 시험을 당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험은 준다 그랬어요, 안 준다 그랬어요? '안 주신다!' 그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어려울 때에 어떤 기도를 많이 했느냐 하면, '하나님, 내게 이 어려움을 주실 때에는 이길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셨기 때문에 주시는 것 아닙니까! 이기든지, 안 그러면 감성으로든지, 느낌으로든지,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걸 이길 수 있기에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 '지금도 이 시험과 이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간섭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그걸 믿는 것하고 안 믿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그래서 시험에 빠진다는 것은 뭐냐? 이걸 못 믿을 때에 빠진다고 그렇게 봅니다. 안 그러면 빠질 이유가 없고, 빠질 필요가 없죠.
여기서 유념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오늘 마가복음서에 보면, 바로 그 앞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잖아요. 임하자 즉시 어디로 메시아가 이끌려 갑니까? 시험받으러 갔다! 그래서 마태복음서는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성도에게 닥치는 어려운 문제라든가, 성도에게 닥치는 어떤 사건이나 일은 성령에 역사다! 그 말은 쉽게 말해서 기도에 응답이요, 바로 기도가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순간이다! 역사다! 그것이 여기에 나오는 그런 배경입니다.
우리가 메시지 속에서 늘 듣죠. 요셉이 창세기 37장 1절 이후부터 비전이 나오고,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이 나오잖아요. 약속했는데 그 언약을 이루는 방법은 요셉이 꽃방석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이루어집니까? 노예로 팔려 가는 것! 그 다음에 감옥에 들어가는 것! 그 다음에 억울한 곳으로... 그래서 여러분 기도 응답 중에 가장 큰 응답이 뭐냐? '잘된다!' 이것보다도 어떤 면에서 노예로 팔려 갈 때도 '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구나!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응답 중에 응답입니다.
그래서 이제 바울이 늘 말한 것이 이런 인용을 많이 하잖아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다 된다!' 그랬습니다. 뭐냐하면 여러분과 제가 근본적인 배경을 가지지 못하면 흔들리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내게 닥치는 모든 문제나 모든 사건은 응답의 역사요, 또 지난번에 금요 자체전도학교 메시지에 '해답의 눈'이라고 그러더라 구요. 뭐 해답, 응답 복잡하니까... 문제는 여러분과 제게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요셉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큰 총리가 되게 하시고, 세계복음화 하게 하시는 방법이 뭐냐? 노예로, 그 다음에 감옥에 억울함으로... 그런데 우리는 이걸 못 참는 겁니다.
시험에 빠지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이걸 못 견뎌요. 그래서 조금만 뭐하면 억울하다! 조금만 뭐하면 괴롭다! 조금만 뭐하면 아프다! 조금만 뭐하면 슬프다!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게 지금 응답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인데, 이 과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은 훌륭하다는 것보다도 바로 이런 점입니다. 뭔가 머리에 뿔이 달려서 훌륭한 것이 아니고, 문제나 사건이 왔을 때에,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구나!'
그래서 다윗 같은 경우에는 시몬이 정죄 하고 막 저주할 때에, '내 아들 압살롬도 나를 배신했는데 하물며 사울에 후생인 네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오히려 이로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긍휼을 베풀어주실 수도 있지 않느냐!' 이게 다윗의 생각입니다. 여러분 훌륭한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이런 부분입니다. 시험이나 고통이나 모든 문제가 왔을 때에, '이것이 왜,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누가 이런 일을 하느냐? 무엇 때문에 하느냐?' 이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아뢸 수 있는 믿음! 그게 훌륭하다! 그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축복과 은혜가 약속이 되어져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또 단체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시련과 시험이 없이 성공했다는 것은 절대로 거짓말입니다. 있을 수가 없어요. 어떤 면에서 혹독한 시련이 있을수록 위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성공한 사람들, 훌륭하게 된 사람들, 간증을 듣는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저 사람은 어째서 저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그래서 간증 초청을 해 보세요. 똑같이 뭘 말하느냐? 거의 고생 간증이죠. '내가 이런 과정에 있었다!' 들어보세요. 열이면 열 명, 다 죽을 고생을 하면 죽음도 가릴 수 없는 영광이 나오고, 고생이 없으면 고생이 없는 만큼 평범하게 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말세를 당하고, 뭐 여러 가지 어려운 가정과 개인이 당하게 될 때에 문제는 하나님 앞에 뭐 '축복을 받았다, 안 받았다!' 좋은 환경과 좋은 일이 있고 좋은 사건이 생겨서 자꾸 축복을 받았다! 그렇게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면 인간이 안돼요. 그리고 여러분 뭔가 이 송현교회 왔다! 축복만 받았다! 그러면 교인이 안돼요. 송현교회 왔다! '이상하게 시험 들고, 어렵고, 힘들고, 병들고, 이상하더라!' 그게 되는 겁니다.
교인들은 뭐냐하면, '이 교회 왔더니만 뭐 안 되는 게 이렇게 많냐!' 그러고 '예수 믿으니 안 되는 게 이렇게 많냐!' 성령이 임했다. 그때부터 뭐가 와요? 시험받으러 어디로 끌고 갔어요? '광야로 끌고 갔더라!' 그랬습니다. 거기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이게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래서 저는 잘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죠. 내가 극한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뭐가 찾아오느냐 하면, 낙망이 찾아옵니다. 절망이 옵니다. 어떻게 견뎌내느냐! 어떻게 사느냐! 그러면 낙심이 찾아오고 낙망이 생기면 반드시 오는 것이 뭐냐? 뒤따라서 불신앙이 오는데, 불신앙이라는 그 배경이 뭐냐하면 흑암에 배경입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어려운 부분은 오랜 병고에 시달린 사람은 뭐가 어려우냐? 낙심이 오게 되면, 반드시 오는 것이 뭐냐? 영적 문제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정신문제예요. 그때에 중요합니다.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을 이렇게 먹고, 저렇게 먹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달라지는 것이냐?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영적 문제 오면 나한테는 뭐가 약점이냐 하면, 호흡이 곤란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와요. 여러분이 혹시 이런 것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밤중에 답답한 마음이 오면 내가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창문을 열기도 하고,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소리 지르고 싶은 생각도 나고, 이러니 이제 미치는 거죠. 그런데 그때에 뭐냐하면, '그래도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 하면서 조금만 여유를 갖게 되면, 그게 사라지게 됩니다. 뭘 느끼게 되느냐 하면요. 막 숨이 가플 때에 심호흡하라고 그럽니다. 호흡을 천천히 하라고 그럽니다. 마음을 급하게 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마음만 조금, 하나님이 그래도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다!' 그러면서 호흡을 천천히 몇 번만 가다듬어 버리면 해결이 됩니다. 이게 안되면 사정없이 빠져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뭔가 영적 문제가 있다, 없다! 이전에 이런 어떤 영적인 배경에 역사들이 누구에게나 오기 때문에, 정말 복음 없다 그럴 때에, 복음 없이 산다는 것은 답답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조금만 마음을 내가 어느 방향으로 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 다음에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좋은 일만 생긴다!' 그건 우상숭배에서 요구하는 것이고, 우상숭배에서 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게 될 때에 성령으로 이끌려 여러분과 제게 더 뭐하기 위해서? 메시아로 축복하시기 위해서, 그 다음에 본문에 나온 말씀처럼, 13절 말씀에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내가 잠시 잠깐 성령에 이끌려서 시험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이어서 오는 것이 뭡니까?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여러분과 제게 무한한 가능성이 어디서?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저에게 함께 하심으로, 그 함께 하시는 무한한 능력이, 구체적인 역사가 사실적으로 임하게 되는 이런 역사를 약속을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좀 정리를 하셔야 될 것이, 많은 경우 우리가 너무 고질적으로 다 지금 굳어져 있는 것이 뭐냐? '예수 믿으면 잘된다! 축복 받는다! 전도하면 축복 받는다!' 그런 어떤 배경 속에서, 축복이라는 것이 우리 개념에서 뭔가 '잘된다! 어려움이 없다! 힘든 일 없다!' 이런 것으로 자꾸 끌고 갑니다. 여러분들이 일단은 뭐냐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그럴 때에, 성령으로 어디로 가야돼요? 광야로 가야 됩니다. 광야로 가면, 거기서 끝나느냐? 진짜 축복은 그 다음 너머 있습니다.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광야에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고자 원하시는 그 축복과 역사를 거기서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 좀 과장되게 표현을 하면, 아프면서 '이 재미없이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느냐?' 아파야,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은, '성령이 귀 있는 자에게 들리게 할 찌어다!' 여러분 진짜입니다. 성공만 계속해나가면 허탈감이 옵니다. 그러나 시험에서 승리하는 역사가 나오면 기쁨과 감격이 나옵니다. 내가 내 생애 속에서 한번이라도 시험에 승리하는 경험이 있다! 그러면 그 인생은 계속해서 그런 승리가 연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승리한 사람은 허탈감이 나와서 나중에 자살해 죽어버립니다. 제 말이 지나친 말로 들리지 모르지만, 여러분과 제가 말세를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세대를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나를 연단 해 가시면서 인도해 가실 것인가?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그래서 고난이 없고 고통이 없는 사람들은, 고난이 오고 시험이 오면 좌절에 빠져 버립니다. 어려움에 빠져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옛날 같지 않아서 학교에 가든지, 어디 가든지, 뭐 왕따 당하고, 어려움을 못 견디고, 못 참고, 그렇게 되는 배경이 뭐냐하면, 어릴 때에 너무 귀엽게 홀로 키워서 그래요. 어릴 때 좀 고생을 시켜요. 고생을 시킨다는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지 마시고, 인간적으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연단을 시켜야 됩니다. 어릴 때에 너무 이렇게 붙들어놓으면 커서 조금만 문제 생기면 좌절에 빠져버립니다.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커서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도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그룹 사장이 노 대통령 말 한마디에 물에 빠져 죽었다고 그러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백 번, 천 번 이상한 말 들어도 그대로 나가야지! 그런 이야기 듣고 죽으려고 그러면 나는 백 번, 천 번 죽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말세에 여러분과 저를 어떻게 훈련 시켜야 될 것인가?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기쁨은 어디에서? 여러분 승리에서의 허탈보다도, 문제나 시험에서 또 승리하고 감격이 오잖아요. 그 다음에 또 고통과 아픔에서, 또 승리하고 감격이 오잖아요. 감사가 오고 그때마다 뭐냐? 그때마다 신앙에 확인과 확신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구나! 하나님은 역사 하시는 구나!' 이게 없는 사람은 잘되고 이러다가 조금만 안되면 심지어는 그렇잖아요. 옛날 이야기 아닙니까... '교회 왔더니만 집에 도둑놈이 들어와 가지고 물건을 다 가지고 갔다!' 그러고는 홀딱 빠져 가지고, '내가 교회가면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되는데, 왜 도둑이 드느냐!' 나는 도둑 몇 번 당했는데, 교회 예배드리다가 우리 집이 몇 번 털렸는데, 사택이 지금 정보문서실에 있을 때에, 제1호로 그때 결혼 때 받은 제일 큰 선물이, 그때는 녹음기가 없었어요. 라디오 녹음기를 지금 현재 정보문서실에서 도둑맞았어요. 애지중지 아꼈었는데, 그뿐 아니고 예배드리다가 몇 번 우리 집에 와서 파카도 털리고, 하긴 가지고 갈게 별로 없어서 가지고 갈 것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오다가오다가 없으니까, 지금은 오지도 않아요.
뭘 말씀드리고 싶으냐 하면,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시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더니, 성령의 역사를 받았더니, 성령의 은혜를 받았더니, 이런 어려운 문제가 오는구나!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수중에서 나를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구나! 연단 해 주시는 구나!' 저는 요즘 뭘 느끼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축복을 주시려고 저기 새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사람을 반 죽였다가 살렸는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있고, 하여튼 얼마나 큰 축복을 주시려고 우리 교회에 여러 가지로 연단과, 또 시련과, 또 그 다음에 사람관계 속에서, 인간관계속에서 여러 가지로, 그 다음에 그런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사건을, 저는 '왜,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느냐?' 이것보다도 하나님이 어떤 축복과 은혜를 주시려고 이런 은혜를, 이런 연단을, 이런 역사를 이루시는가! 마음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달라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1년 건드려 봐도 안 돼! 2년 건드려 봐도 안 돼!' 지금 몇 년이냐? 6년입니다. 저는 6년 동안 얻은 것이 있다 그러면, 이런 부분에서 분명히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좋은 일이 생겼다기보다도 어려운 일을 통해서, 또 한번 극복하고, 또 한번 극복하는 동안에 전에는 승리하고 좋은 일로 뭔가 이렇게 해버리면 허전해 집니다. 여러분 반드시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면 허전한 게 아닙니다. 승리가 됩니다. 감사가 옵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이야기를 하죠. 우리 은순기 권사님 아들 최종환 장로님이 4차인가 사시에 합격해 놓고는 와 가지고, 나는 감회가 클 줄 알고 그때는 그 집사도 안되었을 때인데, '최 선생님 마음이 어떻냐?'고 물으니까! 나는 즐거운 고백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만 하는 말이, '허무합니다!' 이러더라 구요. 요즘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여러분 세상 성공이라든가, 세상뿐 아니고 성공은 차라리 허무감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고통과 고난에서 그걸 극복하고, 그걸 승리할 때는 허무감보다도 뭐가 따라와요? 승리감과 감사함과 찬송함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나도 모르게 따라옵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지었을 때에, 누구든지 그렇게 고백이 될 겁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했다! 지금 보니까 꼭대기가 거의 다 올라가고 한번씩 지나가면서 들어가지는 않는데, 왔다갔다 보면서 뭐냐? 자꾸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다!' 여러분과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다! 주님의 역사구나! 이것이 점점 감사로...
그리고 이 축복과 역사 속에 세운 여러분 아마 더 큰 축복과 역사 위해서 건축하는 동안에 더 큰 시련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뭐라 구요? 하나님의 은혜로다! 극복하는 감격과, 그 다음에 그런 어떤 것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뭘 주느냐? 그런 그릇을 만들어놓고, 거기다가 부어주시는 겁니다. 저는 얼마 안올렸을 때에 밑바닥 까는 것에도 얼마나 철근을 넣어 가지고 깔고 안 그랬습니까! 보통 집은 그렇게 안 깔거든요. 여러분 높이 올릴수록 밑바닥은 충분히 다져 놓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세계를 살리려고, 밑바닥 다진다고 하나님께서 고생 많이 했어요. 내가 고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고생 많이 하셨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이 엄청난 세계 복음화의 역사를 향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 붙잡고,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과 일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계획 붙잡고 정말 축복하시기 위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확인하는 감사와 기쁨이 또 한날도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단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도록 시험합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육체를 가지신 사람입니다.
-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부분은 4복음서에 다 나와있습니다.
- 마태복음에서는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 마가복음에서는 시험받으신 구체적인 내용들은 생략하고, 승리하셨다는 내용만을 간단하게 기록했습니다.
- 사단은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막을 수 없으니까,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 ‘예수님이 그리스도다’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예수님이 공생애로 들어가기 직전에 사단은 최고의 발악으로 메시야의 자격을 상실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 예수님이 메시야의 자격을 상실하도록 사단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 사단은 예수님께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말하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했습니다.
- 예수님은 완전한 육체를 가지셨기 때문에 40일을 밤낮으로 주리신 후에 몹시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 사단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진정한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서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을 부정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 중매쟁이도 양쪽을 모르면 중매를 할 수 없습니다.
-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참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모든 현실을 다 겪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40일을 금식하면서 이 부분을 통과해 나가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 사단은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해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지 못하려고 했던 것이 사단의 시험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쳤습니다.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도록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이 이해되고 확인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성령으로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심을 믿고 설명을 많이 붙여서 오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 성령으로가 아니면, 예수님을 주(主, Lord)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 보통 이해시키기 위해서 반복해서 말하며 설득시키려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단의 방해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성을 부정하는 시험이었습니다.
- 예수를 그리스도로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이나 인성을 모두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초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요4:60-)
-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의 인간으로만 볼 뿐이지,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이 모든 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십니다.
-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 예수님을 참 메시아로 믿도록 하는 교회와 신학교가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할 때 마음의 아픔이 큽니다.
-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믿도록 하는 것을 사단은 막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믿을 수 없으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뿌리가 내릴 수 업습니다.
- 사단은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정하도록 해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도록 해왔습니다.
■ 성령의 인도 속에서 시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려 사단의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마4:1)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나는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갑니다.
- 어떠한 문제와 상황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 아무리 사단이 역사해도,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 그래서 성도에게 있어서는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성도는 시험을 당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시험을 받지는 않습니다.
- 내가 이길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 시험을 나에게 주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 시험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자, 즉시 시험을 받으러 나가셨습니다.
- 성도에게 닥치는 어려운 문제나 사건은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것은 바로 기도의 응답이요, 기도가 허락되는 순간입니다.
- 요셉이 비전과 약속을 받은 후에, 꽃방석에서 성취를 맛본 것이 아니라 험하고 어려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 성도가 어려움에 들어갈 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 바울도 너희의 아뢸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했습니다.
- 성도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과 문제는 응답의 역사요, 해답의 눈입니다.
-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이 시험일 경우도 많은데, 괴롭다고 투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훌륭한 성도는 문제나 사건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 다윗이 피난하며 욕을 먹을 때, 노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우리에게는 사건과 문제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하는 수준이 요구됩니다.
- 혹독한 시련이 있을수록 위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훌륭한 사람들의 간증은 고생 간증입니다.
- 말세에 좋은 일로만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성령이 임하자, 시험을 받기 위해서 광야로 이끌려가셨습니다.
- 그 때,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 성령께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극한 어려움에 빠지면, 낙망이 찾아오고, 뒤따라서 불신앙이 옵니다.
- 오랜 병고에 시달린 사람에게 낙심이 오게 되면 반드시 영적 문제가 옵니다.
- 성령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마음과 생각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 마음이 조금만 바른 방향으로 흐르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 하나님은 시험으로 나를 연단하신 후 승리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 잠시 성령에 이끌려서 시험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 수종드는 축복이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무한한 능력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 많은 경우, 예수 믿으면 세상적으로 잘 된다는 개념이 굳어져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야하고, 결국에는 천사들이 수종드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 ‘아파야 살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성공만 계속되면 허탈하게 되지만, 시험에서 승리하게 되면 기쁨과 감격이 나옵니다.
- 한 번만이라도 시험에서 승리하게 되면, 인생 전체가 놀랍게 변화됩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연단해서 인도해 가실 것인가를 잘 알고 계십니다.
- 고난이 오고 시험이 올 때, 좌절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나를 연단하여 정금같이 만드실 것입니다.
-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렵게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신 후에 승리하도록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마음과 생각에 새기십시오.
- 고통과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때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오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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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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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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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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