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속으로!
2004-06-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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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도님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메시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최고의 소원들은 무엇입니까? 물론 개인적으로 조금씩 다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돈을 좀 많이 벌어봤으면 좋겠다!' 그런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들은 '우리 자녀들이 좀 성공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소원들이 있습니다. 좀 개인적으로 바라는 소원들이 조금씩은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님들의 공통적인 소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내가 믿음의 생활, 신앙의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참, 하나님 앞에서 내가 쫌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좀 멋진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 이게 최고의 소원일 것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분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는, '나도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신앙생활 해 보겠다!' 그런 중심들은 다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기에 대한 답변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과연 신앙에 최고의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사실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고, '얼마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 더 나아가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의 말씀으로 제대로 붙잡고 있느냐?' 또 더 말씀을 드리면, '이 말씀이 지금 내 삶 속에서 얼마나 응답이 되어지고 성취가 되어지느냐?' 바로 여기에 따라서 그 성도는 최고의 성도들로 그렇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 잘 나오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게 문제거든요. 물론 좀 죄송한 말씀입니다 만은, 우리가 주일 대예배만으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다 유지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 주일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쭉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때로는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힘든 상황 속에서 그 성도들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무엇입니까? 결국에는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언약을 잡고 제대로 기도할 때, 여기에 최고의 응답과 축복들이 함께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 잘 나오지 못한다는 것!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에,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말씀의 역사 속에, 첫 번째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가 무엇입니까?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 섰다 할지라도 두 번째 문제는, 지금 우리들의 귀에 이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귀에 들려지고, 그 말씀이 내 중심에 언약으로 자리 잡을 때에, 여기에 최고의 응답들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장소에 있어도 그 말씀이 전혀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두 번째 문제는 뭐냐하면,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 지금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 속에 제대로 들려지느냐?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 가슴속에 부딪혀 지느냐? 이게 되어져야 되는데, 그런데 그렇지 못한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제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 제대로 서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말씀이 제 귀에 제대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되니까 평생을 가도 기도응답이 없습니다. 평생을 지나도 말씀에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에 갈등이 일어나고,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만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이 기쁘고 즐거우십니까? 아니면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한번 여러분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확인을 한번 해보십시오. 과연 지금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는 이 자체가 기쁘고 즐거우냐? 아니면 부담되고 힘들고 어렵습니까? 오늘 내 자신에 대한 이 질문이 진지하게 한번 던져 져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했다는 말은 지금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하고 난 후에 그 뒤에 일어난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 동생 아벨을 쳐죽였다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결과입니다. 그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 실컷 예배드리고 이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또 갈등이 일어나고, 또 남을 비방하고, 트집을 잡고 싸운다면, 그때 당시에 가인이나 지금 오늘날의 내 자신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은 응답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도 없습니다. 여기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앉아 계셨을 때에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힘을 얻고, 예배에 성공을 하고, 그래서 이 문을 열고 나섰을 때에 여기에 참 평안의 역사가 찾아와야 되는데, 그런데 보십시오. 실컷 예배를 했는데 돌아갈 때는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고, 신경질 나고, 힘들어 지신다면, 그 문제는 뭐냐하면, 지금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지 못하면,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끈임 없는 불평, 불만 그리고 불신앙! 이런 모습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 당했던 교회 모습에 대해서 제가 누차 말씀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싸우는지요. 교회 들어가면 뭔가 평안하고, '야, 내가 참 잘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문을 열고 이 자리에 들어오실 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까? 바쁘게 오신다고 아무런 생각이 없으신 그런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저 문을 열고 이 자리에 들어와서 딱 앉았을 때에 뭔가 모르게 마음속에 평안이 찾아와야 됩니다. 또 '야, 오늘 내가 참 잘 왔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뭘까?' 여기에 기대가 되어지고, 그러면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순간이 인생 최고의 축복된 시간으로 그렇게 인도가 되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에 그렇지 못했습니다. 늘 싸우고 다투는 그런 교회에서 자라나다 보니까,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얼마나 불안하지 모릅니다. 주일날이 되어졌는데, 싸우는 교회이기 때문에 뭔가 안 올 수는 없고, 안 오면 내가 손해거든요. 그리고 주일 성수는 해야 되겠고,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마음속에 어떤 불안이 있느냐 하면, '언제 싸울까? 언제 큰 소리가 나올까? 언제 방석이 날아다닐까? 언제 멱살을 잡을까?' 여러분 이게 한두 번 있었던 일이라면 제가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게 몇년동안, 수년동안 계속해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순간, 순간 막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죠. 멱살을 잡죠. 그리고 뭐 심한 언성이 오가죠. 그래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전혀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것!
그러다가 한번은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목사님의 일들에 대해서 좀 부정하는 그런 사람들이 자꾸만 목사님을 향해서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한 분이 강대 상에 후닥닥 달려가서 목사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외친 말이 뭐냐하면, 목사님을 향해서 '이 도둑놈아!' 이런 말을 하더라 구요. 제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렇게 멱살을 잡고 외쳤던 분이 누구냐 하면, 제가 어렸을 때에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 저를 가르쳤던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분이 저희들에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야, 너희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목사님 잘 보필하고, 존경하고, 또 목사님을 잘 대접하고... 어쨌든 목사님 잘 대접해라!' 늘 부르짖었던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목사님의 멱살을 제일 처음 잡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분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되던지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그분에게 당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분명히 선생님은 저희들을 향해서 목사님 잘 존경하고, 대접하고, 섬기라고 했는데, 왜, 집사님은 목사님 멱살을 잡았습니까?' 물어봤습니다. 그때에 이 분이 뭐라고 대답한 줄 아십니까? '너도 어른 되어봐라!' 그러더라 구요. 저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이분이 뭐 때문에 나보고 '어른 되어봐라!'고 하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제가 잘 압니다. 왜, 그분이 나보고 '어른 되어봐라!' 그 말을 했겠느냐? 여러분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고 말씀에 성취의 역사가 없으면, 얼마나 신경질 나고 짜증이 나도록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세상에 시달립니다. 얼마나 세상이 각박하고 힘들고 어렵습니까? 돈 버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사람들하고 부딪혀야 되죠. 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습니다. 경기가 지금 자꾸만 불황 속에 빠져갑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힘든 요소들이 없습니까? 그러면 일주일 내내 세상에 시달리다가 주일날 교회에 들어오면 말씀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고 새 힘을 얻어야 됩니다. 그래야 한 주간에 모든 삶들을 슬기롭게 내가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말씀이 귀에 들려지지 않죠. 은혜를 전혀 체험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속에는 갈등과 짜증과 불평과 원망들이 자꾸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주로 매사에 트집을 잡습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불평하는 그런 요소들로 자꾸만 만들어 갑니다. 이유야 어떻든,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혹시 불평이 터져 나옵니까? 자꾸만 사람들을 보면 트집을 잡고 힘들게, 어렵게 몰아넣고 싶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참 기쁨과 평안이 없습니까? 그 말은 지금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겁니다.
잘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아무리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은혜 받고 있으면, 모든 보이는 사물들이 긍정적으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상대적으로 은혜 받지 못하고 자꾸만 갈등이 일어나 보십시오. 그러면 괜히 트집을 잡고 싶고,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나고... 그래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 모습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많은 분들이 옆에 앉아 계시는데 한번 얼굴을 쳐다보십시오. 지금 옆에 계신 분들이 은혜 받고 있는 얼굴입니까? 막 인상을 쓰고 있습니까? 성령 충만이 되어있습니까? 은혜를 지금 받고 있는 것 같습니까? 다시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진짜 은혜 받아야 됩니다. 아니면 너무 너무 화가 나있습니다.
한번씩 이렇게 단 위에 서보면 조금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져 있으면 뭔가 모르게 저도 기분이 좋고, 또 그러면서 말씀이 은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때로는 한번씩 보면, 얼마나 여러분들의 얼굴이 험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신경질이 나 있는지,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이상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괜히 주눅이 들어 가지고 말도 제대로 못합니다. 참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이런 마음을 풀기 위해서 우리가 처음에 시작할 때에, '평안하십시오!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계속 인사하는 이유가 뭡니까? 닫혀진 여러분들의 마음에 문을 활짝 열어 젖혀라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오라는 신호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인상쓰고 앉아 계신다면, 참 여러분 어떻게 은혜를 받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저는 메시지의 제목을 "말씀 속으로!" 이렇게 한번 잡아봤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는 최고의 통로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씀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일이 잘되고, 여러분의 사업이 아무리 번창을 해도 말씀 속에서 은혜 받지 못하는 성도, 그 성도는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여기에 살아나는 길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사업에 실패한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이런 분들은 반드시 말씀 속에 들어오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이런 저런 여러 상처를 안고 있습니까? 상처를 안고 있는 분이라고 할지라도 말씀 속에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이 시간 여러분 속에 뭔가 모르게 염려와 불안과 어떤 공포가 가득 차 있습니까? 이런 분들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불화가 생겼습니까?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끊어졌습니까? 부모 자식간에 관계가 너무나도 힘들고 허물어졌습니까? 이런 분들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또, 어떤 분들은 영적으로 시달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너무 너무 답답하고, 그래서 영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그런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이런 분들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심지어는 지금 여러분들이 사업에 성공하고, 인생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분들도 반드시 말씀 속으로 함께 들어오십시오. 왜냐하면 여기에 사는 길이 있습니다. 진짜로 여러분들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여러분 자신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말씀 속으로 들어와야 됩니까? 매주일 마다, 또 시시때때로 계속해서 말씀이 강단을 통해서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러분들이 이 말씀 속으로 들어와야 됩니까? 오늘 그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 속에 들어와야 될 첫 번째 이유! 이 말씀 속에는 살리는 힘이 들어있다는 것!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렇습니다. 이 히브리서 4장 12절에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 안에서 살리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에스겔서 37장에 보십시오. 거기에 보시면 에스골 골짜기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에스골 골짜기에는 해골 떼가 가득 차 있습니다. 우상 숭배와 불신앙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참하게 멸망한 그들의 모습들이 진지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완전히 해골 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에서 해골 떼가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생명이 없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전혀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런 해골 떼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해골 떼들에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힘줄이 서로 연결되어 졌습니다. 뼈와 뼈들이 서로 만났습니다. 여기에 해골 떼들이 일어나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
그런데 보십시오. 왜, 이 해골 떼들이 살아났습니까? 해골 떼가 의미하는 것을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해골 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런 역사들이 일어났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를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37장 3절에서 6절에 보시면, 왜 죽어서 널부러져 있던 해골 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런 역사들이 일어났습니까? 큰 군대를 이룰 정도로 엄청난 기적들이 그 속에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에스겔서 37장에서 중요하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37장 3절에서 6절 말씀입니다. "(3절)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절)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5절)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6절)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아멘.
여러분 멋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해골 떼! 전혀 생명이 없는 이 해골 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그 해골 떼들이 완전히 살아나는 이 역사!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 보시면, "(4절)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최고로 살아나는 그 소망!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4절)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러면서 "(5절)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능력 있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갈 때에 모든 해골 떼들이 살아나는 이런 축복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힘들고 지쳐 있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소망마저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운 현실이 자꾸만 여러분의 생활 속에,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때에 여러분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있습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속에 살리는 모든 축복들이 함께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든든히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누가복음 24장에 보시면, 스승을 잃어버린 두 제자가 낙심과 실망에 빠져서 힘없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주셨다는 것! 이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누가복음 24장 32절에 보시면,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스승을 잃어버렸습니다. 삶에 모든 소망을 완전히 놓쳤습니다. 이런 두 제자가 투덜투덜 자기의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을 그들에게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느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실망과 절망과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그들의 마음속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엄청난 역사들이 그들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런 살리는 힘있는 말씀 속에 내가 들어왔다! 여기에 여러분의 삶도, 여러분의 인생도, 여러분의 가정도, 모든 것들이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올 때에 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
두 번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0장 6절에서 8절에 보십시오. "(5절)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6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7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성도 여러분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또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 보십시오. 언젠가는 여러분의 눈가에, 또 여러분의 이마에도 주름이 생기고, 그렇게 탄력 있고 윤기 있던 여러분의 모든 피부가 쭈글쭈글 해질 때가 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천년만년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살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살 것이다!' 천만에요. 지금 이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인생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 인생이 늙어서 죽을 때가 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런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내가 받아들이느냐? 우리의 삶 속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지금 건강하시다고 자부하고 있습니까? '나는 남들보다도 참 아름답다!'는 그런 어떤 자존심이 있습니까?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과 10년, 20년 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눈가에는 주름이 생깁니다. 또, 이마에도 주름살이 늘어가겠죠. 그때는 아무리 화장을 덥게, 덥게 칠을 해도 좀 죄송합니다만, 떡 칠을 해도 안됩니다. 아무리 많이 덮어 씌워도 세수만 한번하고 나면 쭈글쭈글해진 우리의 모습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동기 목사님의 사모님 중에서 참 이뿐 사모님이 계십니다. 평소에 참 이뿌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그 가정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갔거든요. 아침 일찍이 갔습니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어떤 여자 분이 '누구십니까?' 하면서 나오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잘못 찾아온 줄 알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목사님!' 그러더라 구요. 그래서 한참 눈을 뜨고 봤습니다. 보니까 아침 일찍이 가서 그런지, 세수를 하고 화장을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눈썹도 없고, 그리고 또 얼굴이 하얗게 백지 장처럼 해서 있고, 그래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얼굴이 이뿐 지를 모르겠더라 구요.
그렇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변하고, 또 늙으면 이 땅을 떠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풀도 마르고 꽃도 시들어 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영영히 서리라 하라!' 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때에 여러분의 인생도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보시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계속해서 강단 메시지를 잡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강단 메시지를 잡고 기도해야 됩니까? 그 강단 메시지를 잡고 계속해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때에, 한 주간에 모든 삶 속에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성취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이 성취되지 않는 다든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분명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세상 것들은 다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성취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꼭 잡으십시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간 문고리를 잡고 나가시는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내내 기도하십시오. 강단에서 선포된 이 말씀을 잡고, 여러분들이 진짜로 제대로 기도하고, 중심을 모으고, 여러분들이 제대로 기도하신다면, 여기에 최고의 응답과 축복들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성도들이 이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하면,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서지 못할 때에 과연 어떠한 일들이 일어납니까? 바로 여기에 대한 답변이 오늘 본문 속에 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서 애가 4장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그 말씀의 역사 속에 제대로 서지 못했을 때에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느냐? 예레미야서 애가 4장 1절에서 4절입니다. "(1절)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2절)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절)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 (4절)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처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서지 못하고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 그들이 멸망했던 그 모습들이 오늘 이 본문 속에서 제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 번째 보십시오. "(1절)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여러분 금이 빛을 잃었습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그 상징물에 하나가 뭐냐하면, 금입니다. 그것도 정금이죠. 그런데 말씀에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지 못했을 때에, 금이 변하여지는 엄청난 고통이 그들에게 찾아왔다는 것!
또, 4절에 보십시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갓난아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젖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됩니다. 그런데 젖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그들의 입천장이 저위에 말라붙었습니다. 젖을 먹어야 사는데, 젖을 먹을 때에 생명이 지속이 되는데, 그런데 말씀에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에, 결국에는 입천장이 달라붙는 끔찍한 고통도 함께 따라 왔다는 것!
또, 3절에 보십시오.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처녀가 타조처럼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3절에 말씀이 상당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제가 TV를 보면서 이런 사건을 하나 목격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하는 그 프로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보니까 어떤 타조농장에 타조가 여러 마리 있는데, 많은 방문객들이 와서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데, 어떤 방문객 한사람이 구경을 하고 그만 문을 잠그지 않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열렸다는 말이죠.
그때에 그 중에 타조 한 마리가 그만 탈출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우리를 벗어난 이 타조가 길거리도 뛰어다니고, 논과 밭에도 뛰어다니고, 심지어는 차들이 왔다갔다하는 도로에도 뛰어들어오고, 어떤 농부들이 한참 밭을 갈고 있는데, 커다란 게 후닥닥 뛰어 다니까 얼마나 사람들이 놀라더라 구요. 그 타조를 보면서 오늘 이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처녀가 타조처럼 돌아다닌다!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봤습니까? 이 타조의 모습! 상상을 해 봤습니까? 이 타조의 걸음걸이가 그렇게 좋지 못합니다. 다리는 가는데다가 덩치는 크죠. 이래서 뒤뚱뒤뚱하는데, 뛰면 진짜로 보기 싫습니다. 그런데 이런 타조의 모습을 처녀로 비유를 했습니다.
처녀의 상징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소곳하고, 단정하고, 정숙한 이미지죠. 그런데 이런 처녀가 타조처럼, 벌망새처럼 그렇게 돌아다니고 뛰어다닌다고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말씀을 듣지 못하고 말씀에 기갈이 일어났을 때에,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의 역사가 처참하게 실패했습니까? 왜, 포로로, 노예로, 속국으로 전락했습니까? 결국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놓쳤을 때에, 미친 타조처럼 그렇게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오늘 묘사하고 있다는 것!
그렇습니다. 자칫하면 우리의 모습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만일 말씀을 놓치고, 말씀 속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 속에 빠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미친 듯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빠져있습니다. 우리의 욕심에 빠져 있습니다. 엄청난 쾌락에 빠져서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게 말씀을 놓친 주의 종들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이 말씀 속에 얼마나 제대로 서 있느냐? 이 중심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 속에서야 됩니다. 이와 동시에 저와 여러분의 현장 속에 말씀운동이 불일 듯이 일어나야 됩니다. 내가 살고, 우리의 가정이 살고, 지역을 살리는 이런 말씀운동! 이 엄청난 역사들이 계속해서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들이 말씀 운동 속에 들어와야 되고, 또 이 말씀운동이 펼쳐질 때에 여기에 여러분 자신도 살고, 여러분의 가정이 사는 이런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말씀운동을 통해서 무엇을 선포해야 되느냐? 반드시 세 가지를 말해야 됩니다. 첫째는 뭐냐하면, 이런 말씀운동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선포하십시오. 이사야 40장 9절에 말씀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말씀운동에 모든 주제입니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 선포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지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에 여기에 살아나는 귀한 역사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주변을 보십시오. 힘들고, 어렵고, 지쳐서 허덕이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살리는 메시지, 바로 그리스도가 증거 될 때에 여기에 현장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선포하십시오. 두 번째는 흑암의 정체를 반드시 이야기하십시오. 이 흑암의 존재는 인생을 망치는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고통과 저주와 멸망 속으로 자꾸만 끌어가는 이 최고의 존재! 이 흑암의 정체를 반드시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흑암을 꺾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 해야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영적 문제에 해결책이 뭐냐? 지금 가만히 보십시오. 온 세상이 시달립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살리는 메시지! 절대로 육신적인 메시지 하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살리는 메시지!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선포될 때에, 그 말씀운동은 최고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운동에 주인공으로 여러분들이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들을 이번 한 주간 우리가 함께 누려야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죽는 길이 아닙니다. 진짜로 사는 길이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 자신들이 말씀 속에 서느냐? 이 말씀 속에 제대로 내 자신이 들어와 있느냐? 여기에 여러분의 인생도 삽니다. 여러분의 영혼도 삽니다.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육신도 함께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 든든하게 서시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분의 현장 속에 이 말씀들이 응답되어지고, 성취되어지는 이 축복들을 함께 누리시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믿음의 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언약으로 붙잡고, 모든 삶에서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지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1. 지금 신앙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이유
①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②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곳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③ 둘째로,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④ 셋째로, 평생을 가도 말씀 성취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⑤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지 못하면, 삶 속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⑥ 우리가 은혜를 받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첫 번째 이유
① 말씀 속에는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습니다.
③ 에스골 골짜기에 해골이 가득했습니다.(겔37:)
④ 우상숭배와 불신앙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처참하게 멸망한 모습들을 나타냅니다.
⑤ 생명이 없는 해골과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생기가 들어가고 살아났습니다.
⑥ 지금 삶이 힘들고 지쳐서 세상을 살아갈 소망마저 흔들리고 있습니까?
⑦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⑧ 괴롭고 답답한 심정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올 때 깨끗하게 해결되어집니다.
⑨ 살리는 말씀이 우리 생활에 들어오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눅24:32)
3.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두 번째 이유
①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②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40:8)
③ 지금 우리의 모습은 건강하고 아름다울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주름이 생깁니다.
④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오면 주름이 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인생을 맡겨봅시다.
4.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세 번째 이유
①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어집니다.
②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③ 우리는 기도할 때, 반드시 성취되어지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5. 말씀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 일어나는 문제들
① 말씀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 본문 말씀과 같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②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합니다.
③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집니다.
④ 보배와 정금같은 백성이 질항아리 같이 여김을 받습니다.
⑤ 정숙한 처녀같은 백성이 사방을 헤매고 다니는 광야의 타조 같이 됩니다.
⑥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게 되는 비참한 고통을 겪습니다.
⑦ 어린 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⑧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입니다.
⑨ 우리도 말씀을 놓치면 이와 같이 인생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⑩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서야 하는 동시에, 현장에 말씀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⑪ 말씀 속에 설 때,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지역이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 운동을 통해 세 가지를 꼭 선포하십시오.
첫째로,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우리가 말씀 운동을 지속적으로 행해 나가면 그 속에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져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둘째로, 흑암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꼭 말하십시오. 인생을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 존재가 흑암 세력입니다. 이런 흑암 세력이 지금도 존재하고 우리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십시오.
셋째로, 영적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주십시오. 지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염려와 불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육신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고, 영적인 이야기를 하십시오. 이때에 살아나는 귀한 축복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으로 들어올 때에 영육간에 살아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말씀 속에서 영육간에 든든하게 서시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분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는, '나도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신앙생활 해 보겠다!' 그런 중심들은 다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기에 대한 답변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과연 신앙에 최고의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사실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고, '얼마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 더 나아가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의 말씀으로 제대로 붙잡고 있느냐?' 또 더 말씀을 드리면, '이 말씀이 지금 내 삶 속에서 얼마나 응답이 되어지고 성취가 되어지느냐?' 바로 여기에 따라서 그 성도는 최고의 성도들로 그렇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 잘 나오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게 문제거든요. 물론 좀 죄송한 말씀입니다 만은, 우리가 주일 대예배만으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다 유지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 주일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쭉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때로는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힘든 상황 속에서 그 성도들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무엇입니까? 결국에는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언약을 잡고 제대로 기도할 때, 여기에 최고의 응답과 축복들이 함께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 잘 나오지 못한다는 것!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에,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말씀의 역사 속에, 첫 번째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가 무엇입니까?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 섰다 할지라도 두 번째 문제는, 지금 우리들의 귀에 이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귀에 들려지고, 그 말씀이 내 중심에 언약으로 자리 잡을 때에, 여기에 최고의 응답들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장소에 있어도 그 말씀이 전혀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두 번째 문제는 뭐냐하면,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 지금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내 속에 제대로 들려지느냐?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 가슴속에 부딪혀 지느냐? 이게 되어져야 되는데, 그런데 그렇지 못한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제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 제대로 서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말씀이 제 귀에 제대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되니까 평생을 가도 기도응답이 없습니다. 평생을 지나도 말씀에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에 갈등이 일어나고,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만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이 기쁘고 즐거우십니까? 아니면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한번 여러분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확인을 한번 해보십시오. 과연 지금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는 이 자체가 기쁘고 즐거우냐? 아니면 부담되고 힘들고 어렵습니까? 오늘 내 자신에 대한 이 질문이 진지하게 한번 던져 져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했다는 말은 지금 말로 하자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하고 난 후에 그 뒤에 일어난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 동생 아벨을 쳐죽였다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결과입니다. 그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 실컷 예배드리고 이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또 갈등이 일어나고, 또 남을 비방하고, 트집을 잡고 싸운다면, 그때 당시에 가인이나 지금 오늘날의 내 자신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은 응답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도 없습니다. 여기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앉아 계셨을 때에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힘을 얻고, 예배에 성공을 하고, 그래서 이 문을 열고 나섰을 때에 여기에 참 평안의 역사가 찾아와야 되는데, 그런데 보십시오. 실컷 예배를 했는데 돌아갈 때는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고, 신경질 나고, 힘들어 지신다면, 그 문제는 뭐냐하면, 지금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지 못하면,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끈임 없는 불평, 불만 그리고 불신앙! 이런 모습들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 당했던 교회 모습에 대해서 제가 누차 말씀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싸우는지요. 교회 들어가면 뭔가 평안하고, '야, 내가 참 잘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문을 열고 이 자리에 들어오실 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까? 바쁘게 오신다고 아무런 생각이 없으신 그런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저 문을 열고 이 자리에 들어와서 딱 앉았을 때에 뭔가 모르게 마음속에 평안이 찾아와야 됩니다. 또 '야, 오늘 내가 참 잘 왔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뭘까?' 여기에 기대가 되어지고, 그러면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순간이 인생 최고의 축복된 시간으로 그렇게 인도가 되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에 그렇지 못했습니다. 늘 싸우고 다투는 그런 교회에서 자라나다 보니까,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얼마나 불안하지 모릅니다. 주일날이 되어졌는데, 싸우는 교회이기 때문에 뭔가 안 올 수는 없고, 안 오면 내가 손해거든요. 그리고 주일 성수는 해야 되겠고,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마음속에 어떤 불안이 있느냐 하면, '언제 싸울까? 언제 큰 소리가 나올까? 언제 방석이 날아다닐까? 언제 멱살을 잡을까?' 여러분 이게 한두 번 있었던 일이라면 제가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게 몇년동안, 수년동안 계속해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순간, 순간 막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죠. 멱살을 잡죠. 그리고 뭐 심한 언성이 오가죠. 그래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전혀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것!
그러다가 한번은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목사님의 일들에 대해서 좀 부정하는 그런 사람들이 자꾸만 목사님을 향해서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한 분이 강대 상에 후닥닥 달려가서 목사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외친 말이 뭐냐하면, 목사님을 향해서 '이 도둑놈아!' 이런 말을 하더라 구요. 제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렇게 멱살을 잡고 외쳤던 분이 누구냐 하면, 제가 어렸을 때에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 저를 가르쳤던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분이 저희들에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야, 너희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목사님 잘 보필하고, 존경하고, 또 목사님을 잘 대접하고... 어쨌든 목사님 잘 대접해라!' 늘 부르짖었던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목사님의 멱살을 제일 처음 잡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분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되던지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그분에게 당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분명히 선생님은 저희들을 향해서 목사님 잘 존경하고, 대접하고, 섬기라고 했는데, 왜, 집사님은 목사님 멱살을 잡았습니까?' 물어봤습니다. 그때에 이 분이 뭐라고 대답한 줄 아십니까? '너도 어른 되어봐라!' 그러더라 구요. 저는 그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이분이 뭐 때문에 나보고 '어른 되어봐라!'고 하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제가 잘 압니다. 왜, 그분이 나보고 '어른 되어봐라!' 그 말을 했겠느냐? 여러분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고 말씀에 성취의 역사가 없으면, 얼마나 신경질 나고 짜증이 나도록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세상에 시달립니다. 얼마나 세상이 각박하고 힘들고 어렵습니까? 돈 버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사람들하고 부딪혀야 되죠. 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습니다. 경기가 지금 자꾸만 불황 속에 빠져갑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힘든 요소들이 없습니까? 그러면 일주일 내내 세상에 시달리다가 주일날 교회에 들어오면 말씀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고 새 힘을 얻어야 됩니다. 그래야 한 주간에 모든 삶들을 슬기롭게 내가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말씀이 귀에 들려지지 않죠. 은혜를 전혀 체험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속에는 갈등과 짜증과 불평과 원망들이 자꾸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주로 매사에 트집을 잡습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불평하는 그런 요소들로 자꾸만 만들어 갑니다. 이유야 어떻든,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혹시 불평이 터져 나옵니까? 자꾸만 사람들을 보면 트집을 잡고 힘들게, 어렵게 몰아넣고 싶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참 기쁨과 평안이 없습니까? 그 말은 지금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겁니다.
잘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아무리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은혜 받고 있으면, 모든 보이는 사물들이 긍정적으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상대적으로 은혜 받지 못하고 자꾸만 갈등이 일어나 보십시오. 그러면 괜히 트집을 잡고 싶고,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나고... 그래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 모습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많은 분들이 옆에 앉아 계시는데 한번 얼굴을 쳐다보십시오. 지금 옆에 계신 분들이 은혜 받고 있는 얼굴입니까? 막 인상을 쓰고 있습니까? 성령 충만이 되어있습니까? 은혜를 지금 받고 있는 것 같습니까? 다시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진짜 은혜 받아야 됩니다. 아니면 너무 너무 화가 나있습니다.
한번씩 이렇게 단 위에 서보면 조금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져 있으면 뭔가 모르게 저도 기분이 좋고, 또 그러면서 말씀이 은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때로는 한번씩 보면, 얼마나 여러분들의 얼굴이 험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신경질이 나 있는지,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이상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괜히 주눅이 들어 가지고 말도 제대로 못합니다. 참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이런 마음을 풀기 위해서 우리가 처음에 시작할 때에, '평안하십시오!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계속 인사하는 이유가 뭡니까? 닫혀진 여러분들의 마음에 문을 활짝 열어 젖혀라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오라는 신호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인상쓰고 앉아 계신다면, 참 여러분 어떻게 은혜를 받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저는 메시지의 제목을 "말씀 속으로!" 이렇게 한번 잡아봤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는 최고의 통로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씀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일이 잘되고, 여러분의 사업이 아무리 번창을 해도 말씀 속에서 은혜 받지 못하는 성도, 그 성도는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여기에 살아나는 길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사업에 실패한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이런 분들은 반드시 말씀 속에 들어오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이런 저런 여러 상처를 안고 있습니까? 상처를 안고 있는 분이라고 할지라도 말씀 속에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이 시간 여러분 속에 뭔가 모르게 염려와 불안과 어떤 공포가 가득 차 있습니까? 이런 분들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불화가 생겼습니까?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끊어졌습니까? 부모 자식간에 관계가 너무나도 힘들고 허물어졌습니까? 이런 분들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또, 어떤 분들은 영적으로 시달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너무 너무 답답하고, 그래서 영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그런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이런 분들도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심지어는 지금 여러분들이 사업에 성공하고, 인생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분들도 반드시 말씀 속으로 함께 들어오십시오. 왜냐하면 여기에 사는 길이 있습니다. 진짜로 여러분들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여러분 자신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말씀 속으로 들어와야 됩니까? 매주일 마다, 또 시시때때로 계속해서 말씀이 강단을 통해서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러분들이 이 말씀 속으로 들어와야 됩니까? 오늘 그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 속에 들어와야 될 첫 번째 이유! 이 말씀 속에는 살리는 힘이 들어있다는 것!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렇습니다. 이 히브리서 4장 12절에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 안에서 살리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에스겔서 37장에 보십시오. 거기에 보시면 에스골 골짜기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에스골 골짜기에는 해골 떼가 가득 차 있습니다. 우상 숭배와 불신앙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참하게 멸망한 그들의 모습들이 진지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완전히 해골 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에서 해골 떼가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생명이 없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전혀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런 해골 떼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해골 떼들에게 생기가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힘줄이 서로 연결되어 졌습니다. 뼈와 뼈들이 서로 만났습니다. 여기에 해골 떼들이 일어나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
그런데 보십시오. 왜, 이 해골 떼들이 살아났습니까? 해골 떼가 의미하는 것을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해골 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런 역사들이 일어났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를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37장 3절에서 6절에 보시면, 왜 죽어서 널부러져 있던 해골 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런 역사들이 일어났습니까? 큰 군대를 이룰 정도로 엄청난 기적들이 그 속에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에스겔서 37장에서 중요하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37장 3절에서 6절 말씀입니다. "(3절)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절)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5절)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6절)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아멘.
여러분 멋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해골 떼! 전혀 생명이 없는 이 해골 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그 해골 떼들이 완전히 살아나는 이 역사!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 보시면, "(4절)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최고로 살아나는 그 소망!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4절)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러면서 "(5절)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능력 있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갈 때에 모든 해골 떼들이 살아나는 이런 축복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힘들고 지쳐 있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소망마저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운 현실이 자꾸만 여러분의 생활 속에,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때에 여러분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있습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속에 살리는 모든 축복들이 함께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든든히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누가복음 24장에 보시면, 스승을 잃어버린 두 제자가 낙심과 실망에 빠져서 힘없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주셨다는 것! 이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누가복음 24장 32절에 보시면,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스승을 잃어버렸습니다. 삶에 모든 소망을 완전히 놓쳤습니다. 이런 두 제자가 투덜투덜 자기의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을 그들에게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느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실망과 절망과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그들의 마음속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엄청난 역사들이 그들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런 살리는 힘있는 말씀 속에 내가 들어왔다! 여기에 여러분의 삶도, 여러분의 인생도, 여러분의 가정도, 모든 것들이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올 때에 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
두 번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0장 6절에서 8절에 보십시오. "(5절)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6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7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성도 여러분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또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 보십시오. 언젠가는 여러분의 눈가에, 또 여러분의 이마에도 주름이 생기고, 그렇게 탄력 있고 윤기 있던 여러분의 모든 피부가 쭈글쭈글 해질 때가 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천년만년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살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살 것이다!' 천만에요. 지금 이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인생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 인생이 늙어서 죽을 때가 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런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내가 받아들이느냐? 우리의 삶 속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지금 건강하시다고 자부하고 있습니까? '나는 남들보다도 참 아름답다!'는 그런 어떤 자존심이 있습니까?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과 10년, 20년 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눈가에는 주름이 생깁니다. 또, 이마에도 주름살이 늘어가겠죠. 그때는 아무리 화장을 덥게, 덥게 칠을 해도 좀 죄송합니다만, 떡 칠을 해도 안됩니다. 아무리 많이 덮어 씌워도 세수만 한번하고 나면 쭈글쭈글해진 우리의 모습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동기 목사님의 사모님 중에서 참 이뿐 사모님이 계십니다. 평소에 참 이뿌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그 가정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갔거든요. 아침 일찍이 갔습니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어떤 여자 분이 '누구십니까?' 하면서 나오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잘못 찾아온 줄 알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목사님!' 그러더라 구요. 그래서 한참 눈을 뜨고 봤습니다. 보니까 아침 일찍이 가서 그런지, 세수를 하고 화장을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눈썹도 없고, 그리고 또 얼굴이 하얗게 백지 장처럼 해서 있고, 그래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얼굴이 이뿐 지를 모르겠더라 구요.
그렇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변하고, 또 늙으면 이 땅을 떠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풀도 마르고 꽃도 시들어 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영영히 서리라 하라!' 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때에 여러분의 인생도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보시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계속해서 강단 메시지를 잡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강단 메시지를 잡고 기도해야 됩니까? 그 강단 메시지를 잡고 계속해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때에, 한 주간에 모든 삶 속에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성취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이 성취되지 않는 다든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분명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세상 것들은 다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성취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꼭 잡으십시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간 문고리를 잡고 나가시는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내내 기도하십시오. 강단에서 선포된 이 말씀을 잡고, 여러분들이 진짜로 제대로 기도하고, 중심을 모으고, 여러분들이 제대로 기도하신다면, 여기에 최고의 응답과 축복들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성도들이 이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하면,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서지 못할 때에 과연 어떠한 일들이 일어납니까? 바로 여기에 대한 답변이 오늘 본문 속에 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서 애가 4장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그 말씀의 역사 속에 제대로 서지 못했을 때에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느냐? 예레미야서 애가 4장 1절에서 4절입니다. "(1절)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2절)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절)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 (4절)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처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서지 못하고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 그들이 멸망했던 그 모습들이 오늘 이 본문 속에서 제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 번째 보십시오. "(1절)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여러분 금이 빛을 잃었습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그 상징물에 하나가 뭐냐하면, 금입니다. 그것도 정금이죠. 그런데 말씀에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지 못했을 때에, 금이 변하여지는 엄청난 고통이 그들에게 찾아왔다는 것!
또, 4절에 보십시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갓난아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젖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됩니다. 그런데 젖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그들의 입천장이 저위에 말라붙었습니다. 젖을 먹어야 사는데, 젖을 먹을 때에 생명이 지속이 되는데, 그런데 말씀에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에, 결국에는 입천장이 달라붙는 끔찍한 고통도 함께 따라 왔다는 것!
또, 3절에 보십시오.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처녀가 타조처럼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3절에 말씀이 상당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제가 TV를 보면서 이런 사건을 하나 목격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하는 그 프로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보니까 어떤 타조농장에 타조가 여러 마리 있는데, 많은 방문객들이 와서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데, 어떤 방문객 한사람이 구경을 하고 그만 문을 잠그지 않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열렸다는 말이죠.
그때에 그 중에 타조 한 마리가 그만 탈출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우리를 벗어난 이 타조가 길거리도 뛰어다니고, 논과 밭에도 뛰어다니고, 심지어는 차들이 왔다갔다하는 도로에도 뛰어들어오고, 어떤 농부들이 한참 밭을 갈고 있는데, 커다란 게 후닥닥 뛰어 다니까 얼마나 사람들이 놀라더라 구요. 그 타조를 보면서 오늘 이 본문이 생각났습니다. 처녀가 타조처럼 돌아다닌다!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봤습니까? 이 타조의 모습! 상상을 해 봤습니까? 이 타조의 걸음걸이가 그렇게 좋지 못합니다. 다리는 가는데다가 덩치는 크죠. 이래서 뒤뚱뒤뚱하는데, 뛰면 진짜로 보기 싫습니다. 그런데 이런 타조의 모습을 처녀로 비유를 했습니다.
처녀의 상징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소곳하고, 단정하고, 정숙한 이미지죠. 그런데 이런 처녀가 타조처럼, 벌망새처럼 그렇게 돌아다니고 뛰어다닌다고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말씀을 듣지 못하고 말씀에 기갈이 일어났을 때에,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의 역사가 처참하게 실패했습니까? 왜, 포로로, 노예로, 속국으로 전락했습니까? 결국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놓쳤을 때에, 미친 타조처럼 그렇게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오늘 묘사하고 있다는 것!
그렇습니다. 자칫하면 우리의 모습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만일 말씀을 놓치고, 말씀 속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 속에 빠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미친 듯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빠져있습니다. 우리의 욕심에 빠져 있습니다. 엄청난 쾌락에 빠져서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게 말씀을 놓친 주의 종들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이 말씀 속에 얼마나 제대로 서 있느냐? 이 중심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 속에서야 됩니다. 이와 동시에 저와 여러분의 현장 속에 말씀운동이 불일 듯이 일어나야 됩니다. 내가 살고, 우리의 가정이 살고, 지역을 살리는 이런 말씀운동! 이 엄청난 역사들이 계속해서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들이 말씀 운동 속에 들어와야 되고, 또 이 말씀운동이 펼쳐질 때에 여기에 여러분 자신도 살고, 여러분의 가정이 사는 이런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말씀운동을 통해서 무엇을 선포해야 되느냐? 반드시 세 가지를 말해야 됩니다. 첫째는 뭐냐하면, 이런 말씀운동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선포하십시오. 이사야 40장 9절에 말씀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말씀운동에 모든 주제입니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 선포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지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에 여기에 살아나는 귀한 역사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주변을 보십시오. 힘들고, 어렵고, 지쳐서 허덕이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살리는 메시지, 바로 그리스도가 증거 될 때에 여기에 현장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선포하십시오. 두 번째는 흑암의 정체를 반드시 이야기하십시오. 이 흑암의 존재는 인생을 망치는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고통과 저주와 멸망 속으로 자꾸만 끌어가는 이 최고의 존재! 이 흑암의 정체를 반드시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흑암을 꺾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 해야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영적 문제에 해결책이 뭐냐? 지금 가만히 보십시오. 온 세상이 시달립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살리는 메시지! 절대로 육신적인 메시지 하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살리는 메시지! 이 세 가지가 제대로 선포될 때에, 그 말씀운동은 최고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운동에 주인공으로 여러분들이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들을 이번 한 주간 우리가 함께 누려야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죽는 길이 아닙니다. 진짜로 사는 길이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 자신들이 말씀 속에 서느냐? 이 말씀 속에 제대로 내 자신이 들어와 있느냐? 여기에 여러분의 인생도 삽니다. 여러분의 영혼도 삽니다.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육신도 함께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 든든하게 서시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분의 현장 속에 이 말씀들이 응답되어지고, 성취되어지는 이 축복들을 함께 누리시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믿음의 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언약으로 붙잡고, 모든 삶에서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지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1. 지금 신앙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이유
①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②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곳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③ 둘째로,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④ 셋째로, 평생을 가도 말씀 성취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⑤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지 못하면, 삶 속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⑥ 우리가 은혜를 받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첫 번째 이유
① 말씀 속에는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습니다.
③ 에스골 골짜기에 해골이 가득했습니다.(겔37:)
④ 우상숭배와 불신앙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처참하게 멸망한 모습들을 나타냅니다.
⑤ 생명이 없는 해골과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생기가 들어가고 살아났습니다.
⑥ 지금 삶이 힘들고 지쳐서 세상을 살아갈 소망마저 흔들리고 있습니까?
⑦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⑧ 괴롭고 답답한 심정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올 때 깨끗하게 해결되어집니다.
⑨ 살리는 말씀이 우리 생활에 들어오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눅24:32)
3.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두 번째 이유
①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②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40:8)
③ 지금 우리의 모습은 건강하고 아름다울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주름이 생깁니다.
④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오면 주름이 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인생을 맡겨봅시다.
4.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세 번째 이유
①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어집니다.
②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③ 우리는 기도할 때, 반드시 성취되어지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5. 말씀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 일어나는 문제들
① 말씀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 본문 말씀과 같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②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합니다.
③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집니다.
④ 보배와 정금같은 백성이 질항아리 같이 여김을 받습니다.
⑤ 정숙한 처녀같은 백성이 사방을 헤매고 다니는 광야의 타조 같이 됩니다.
⑥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게 되는 비참한 고통을 겪습니다.
⑦ 어린 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⑧ 말씀 속에 들어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입니다.
⑨ 우리도 말씀을 놓치면 이와 같이 인생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⑩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서야 하는 동시에, 현장에 말씀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⑪ 말씀 속에 설 때,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지역이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 운동을 통해 세 가지를 꼭 선포하십시오.
첫째로,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우리가 말씀 운동을 지속적으로 행해 나가면 그 속에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져야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둘째로, 흑암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꼭 말하십시오. 인생을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 존재가 흑암 세력입니다. 이런 흑암 세력이 지금도 존재하고 우리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십시오.
셋째로, 영적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주십시오. 지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염려와 불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육신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고, 영적인 이야기를 하십시오. 이때에 살아나는 귀한 축복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으로 들어올 때에 영육간에 살아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말씀 속에서 영육간에 든든하게 서시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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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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