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네 손을 내밀라
2004-08-0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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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 한 주간 렘넌트 공동체로 대구에서 세계대회를 했습니다. 상당히 좀 염려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구 날씨가 보통 날씨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한꺼번에 3,500명이라는 인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찌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마침 제가 현장에 가 볼 수 있어서 들어갔다가 너무 놀라운 것은, 아마 지금까지 장소를 빌려서 집회한 중에 그렇게 좋은 환경은 처음입니다. 오히려 춥다고 할 정도로 그 집회장소가 그렇게 시원했어요. 그 날 당일에 등록하면 35만원인가? 그래요. 그래가지고 등록한 사람이 한 100여명 더 들어와서 3,600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참 시원하게 잘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구에 축복해 주시고, 대구에 마귀가 아마 오줌을 쌌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집회장소 중에서 그렇게 주차시설이 좋은 것도 처음입니다. 늘 주차 때문에 곤란했는데, 얼마든지 주차할 수 있고 주차해도 돈도 안 받고, 그래서 참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조금 어려웠던 것은 숙소가 멀리 있어서, 저 팔공산에도 있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서, 심지어 프린스 호텔까지도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렘넌트 공동체의 아이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요.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 먹고 자고 하면 중간에 세어나가기도 하고, 집회 참석하다가도 들어가서 자기도 하고 그럴 것인데 이건 뭐 같이 안 따라 다니면 밥도 못 얻어먹으니까!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완벽하게 참석하고, 집회도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 관계자의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참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요. 처음 초기에 500명 집회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그래요. 그때는 아이들이 말도 잘 안 듣고, 통제도 잘 안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쉬운지 일사분란하게 세운 팀장을 따라서 조용히 아이들이 잘 움직이고 따라 줬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때보다도 훨씬 쉽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니까 질서 의식이 생기고, 아이들이 조용해지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하면서,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새삼 체험했다고 그렇게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렘넌트 공동체!

그래서 우리 목사님들 중에 어떤 한 사람들은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나는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고 그래요. 우리 후대들이 그렇게 튼튼하게 서 가는 것을 볼 때에 내가 지금 할 일이 뭐 있느냐! 할 일 다 했는데!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 그렇게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중, 고등부 거기에는 대학원, 어른까지 그렇게 분포가 되어있죠. 그런데 중, 고등부만 모아서 해도 힘든데, 여러 계층을 모아 가지고 말씀을 전했다 그럴 때에, 그 말씀이 그렇게 심도 깊게 전해지고, 그 말씀을 그렇게 잘 받아들어요. 어른들보다도 더 깊은 이야기를 했는데도, 전부다 하나도 남김없이 그렇게 소화를 하더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쨌든 대구에 렘넌트 공동체 세계대회가 처음으로 이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가 희망이 있습니다. 세계 대회를 치루고 또 그 세계대회가 너무 성공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일하는 모든 아주머니들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보고 놀랍다고 할 정도로! '도대체 이런 단체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아이들이 질서 정연하게!' 그런데 다른 단체에서 모이면 말썽도 피우고, 사고도 나고 그런데요.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조용히 그렇게 끝난다는 것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입이 닿토록 칭찬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칭찬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면,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있는 것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라고 그러는데, 본문에 보면 연약한 한편 손 마른 자가 있는데, 그 한편 손 마른 자를 향해서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고쳐줄까 싶어서 오만가지 음모를 다하고, 또 예수님은 고쳐 주시기 위해서, 그 고쳐주심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으켜 세워 가지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좋으냐? 선을 행하는 것이 좋으냐? 안 그러면 악을 행하는 것이 좋으냐?' 이렇게 모든 청중들에게 양심에 대답하도록 질문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좋고, 선을 행하는 것이 좋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마음은 아니지만 아무 소리도 못했습니다.

그때에 일어서라 한 그 병자를 향해서, '네 손을 내밀라!' 그랬습니다. 그 손을 내 밀었고, 내 밀수 있는 힘을 주셨고, '내 미는 순간에 완전하게 치료되었더라!' 하는 것이, 본문에 말씀입니다. 사실은 이 '공동체'라고 그럴 때에 공동체의 축복은 치료받았다! 안 받았다! 이것보다도 그 이후가 점점 더 크고 엄청난 축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한 두시간 조금 연결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이 공동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핵심입니다.

어떤 면에서 '교인들이 공동체의 의미를 모르면 교인이 될 수가 없다! 옳은 교인이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중직자들이 공동체의 의미를 모르면 피곤해 진다! 특별히 교역자가 공동체의 의미를 모르면 불행하다!' 그래서 이 신학적인 조명을 했던, 대학원에서 류 목사님이 공동체 의미를 조금 강의한 것을 이건 좀 설명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제가 간단하게 내용을 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이 보셨으면 하지만, '김 데보라!' 사실은 '박 데보라'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박씨니까! 그런데 김씨한테 시집갔다고 미국은 성씨를 바꾸어 버리잖아요. 사실은 미국이 여권이 있다고 그러는데 여권이 없어요. 성까지 없어져 버렸는데, 그래서 김씨에게 갔다고 '김 데보라'그랬습니다. 이번에 아마 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습니다 만은,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그 수천 명의 좌중을 기쁨과 심각함으로 인도를 하고,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그걸 보고, '정말 참 잘한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이냐 하면, 너무 잘 알죠. 박성화 목사님이신데 류 목사님이 말씀했으니까, 강단에서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다. 너무 머리가 좋아요. 그래서 류 목사님 교회에서 들어가서 보니까, 뭐 인간적인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한 일들이 많거든요. 하나님 은혜로 되는 일이고, 또 인본주의 안 쓴다 그러니까 이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상당히 많은 경우, 그 아버지가 거침돌이 되었어요. 그래서 류 목사님이 계속 그를 교회에 받아 들여서 이리저리 달래가면서 계속 교회에서 키워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로 통해서 내쳐 버릴 수도 있고, 그렇게 해 버릴 수도 있는데, 저는 우리 교회에 왔을 때도, 뭔가 문제를 가지고 전국적인 이슈가 되어있을 때에도 엄청나게 내가 이야기를 좀 했어요. '당장 그 교회 나와라!'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그 일을 왜 하느냐? 그때 여자 목사 문제로 그럴 때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계속 류 목사님이 품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로 그 딸이 오히려 그 아버지를 통해 보면서 다락방에서 언약잡고 꿋꿋이 서 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아마 사회할 때에 정말 보신 분들은 진짜 잘한다 할 정도로 노래도 잘하고, 참 사회도 잘 보고 그렇게 아마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목사님의 이야기가 뭐냐하면, 지금 서울 종합 예술대학교에서 춤추는 아이들이 너무 잘했다고 할 정도로, 그래서 아마 공연을 임마누엘에서 다시 한번 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구도 한번 초청할까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이름이 '임천주'인데, 그 아이가 대본을 쓰고 작곡하고 그랬다고 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누구냐 하면, 그 어머니가 너무 이상해서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참 정신 문제가 심각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를 계속해서 그 교회에서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를 계속 품는 가운데, 영적 문제를 보면서 이 아들이 그렇게 엄청나게 공부도 잘했고, 서울종합예술대학에서 이번에 놀라운 작품을 쓰고 모든 것을 지휘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하면, 원래 우리 몸에 각 지체가 있다면, 약한 부분을 더욱 감싸고 더욱 보호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발가락이 하나 아프면, 그 발가락 안 다치려고 얼마나 조심하고 감싸잖아요. 이처럼 우리가 공동체라는 의미는 연약한 자일수록 더욱 보호하고, 더욱 감싸고,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공동체의 분위기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렘넌트 공동체!'라고 그러는데, 그 공동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어떻게 이 공동체가 이루어지느냐? 그것을 설명하려고 앞에 서론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뭘 먼저 해야 되느냐? 한번 받아합시다. "구원을 받아라!" 구원문제입니다. 공동체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 심지어는 구원도 이해가 안 된 사람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안되면, 구원 못 받은 자다!' 그렇게 까지 단정할 정도로 지금 공동체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 못 받았다!' 그 속에서 모든 문제가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는 그 속에서 모든 문제가 수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구원받아야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아야 내가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고, 공동체가 형성 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그랬습니다. 구원받았다!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라고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았다고 하면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 성경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 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2절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그랬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뭐로 표현하느냐 하면, 지체로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몸으로, 그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6장 15절에 보면,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있으면, 그리스도의 지체와 함께 연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이것이 다른 것과 연합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중심해서 지체로 표현을 하면서, 이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일 때에, 연약한 부분일수록 더욱 감싸고 더욱 보호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를 쭉 읽어보면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뭐라고 했느냐 하면, '다 입이겠느냐!' 몸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다 손이겠느냐!' 생각만 해도 징그럽죠.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으로, 손으로, 각 지체로, 몸에 붙은 지체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목적과 한 계획을 향해서 공동체가 되어서 움직여 나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 받았을 때에, 구원의 생명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 역사가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로 구원받은 자들의 축복은 공동체의 시작이요, 공동체의 사실은 전부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는 교회가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향해서 '피로 사신 교회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이 있을 때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가 예수를 머리로 해서 한 몸으로 교회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주시고 있습니다. 원래 교회라는 뜻이 헬라어에 '에클레시아'라고 해서 '불러모았다! 세상에서 불러모아 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것이 교회의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구원받은 자들이 들어왔을 때에, 저절로 한 지체가 되고, 한 몸이 되고, 그 몸과 지체를 통해서 공동체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이 생명의 관계로 하지 않으면 우리가 바로 이해가 안 되죠. 그래서 이런 사상을 선교단체에서 먼저 깨닫고 사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설명을 했습니다 만은, 홍정길 목사가 C.C.C전도단에 간사로 있을 때에, 자기교회에 여전도회를 '큰 언니회, 둘째 언니회!'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교회 권사님을 이 목사님이 '큰 누님, 적은 누님!' 이렇게 부르기도 했던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뭐냐하면, 그리스도를 지체로 해서 사실은 그렇게 부르면 정도 더 있을 것 같아요. '큰 누님!' 그러면서 싸울 수는 없잖아요. '적은 누님!'이라면서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남자는 '큰 형님!' 그래서 교회를 형제, 자매라 그랬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성도다! 그것보다도 형제, 자매가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안되겠습니까! 하기야 형제, 자매도 싸우지만... 일단 이렇게 구체적으로 교회를 한 지체로 불러모은 '에클레시아!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그렇게 묶어놓을 수 있는 조건이 뭐냐? 이겁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을 쭉 읽어보면, 그리스도의 지체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이어서 13장에 넘어가면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다!' 그래서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뭐냐하면, 지체가 되고, 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생명 받았을 때에 한 지체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아가페 사랑이다!'그랬습니다. 교회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구원 안 받은 자들은 교회 오면 더 악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구원받아도 복음으로 눈을 열지 않고, 복음으로 보지 않으면 율법화 되고 더 악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좀 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어떻게 하고...' 그러면 우리가 솔직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정말 내가 구원받았느냐!' 돌아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교회 안에 교인들이 사랑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사랑이 가게 되어있어요. 이것은 의무가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해야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나면,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한 지체로서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발가락이 아프면 아프다고 감싸고 하는 것이 의무로 합니까? 그건 저절로 우러나와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발가락이 아프면 움직일 때 안 다치려고 자기도 모르게 전 지체를 동원해서 발가락을 보호하잖아요. 이처럼 한 지체가 되어서 한 교회에 머물게 되면, 연약한 자들을 볼 때에, 혹시 연약한 문제가 있을 때에, 복음에 시각으로 보게 되는 순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복음의 시각으로 인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나도 모르게 미움이 싹트고 있다는 것은 사단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런 축복된 지체 속에 반드시 뭐냐하면, 이것을 잃어버리는 자를 통해서 통로가 되어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의 시각으로, 복음의 눈으로, 생명의 시각으로 한 몸이 되었다는 말하자면, 공동체의 시각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사단은 절대로 교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안 될 때에 교회나 가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회에서 각 가정이 나아올 때에 한가정도 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내 개인, 개인도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밖에 나가서도 개개인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입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진한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또, 나가서 한 가정 한 가정, 이런 공동체들이 모였을 때에, 그 가정 자체가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가 사랑으로 이루어지죠. 여러분 교회를 설명하기보다도 가정을 설명하면 더 잘 알죠. 어떤 면에서 아이가 아프면 밤새도록 잠을 안 자잖아요. 모든 식구들이 거기에 신경을 쓰잖아요. 내 아이가 아프다고 울면 짜증난다고 갖다 버리라는 사람은 없잖아요. 밤새도록 울어도, 모든 식구들이 참고 그 아이를 위로하고 그 아이를 고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하나님이, '한 교회를 세웠다! 한 가정을 세웠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공동체로 세워졌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인간적이고 율법적인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관가에서 잡아가서 법적으로 조치하려고 하는 것을 가서 사정사정하고 데려와서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건 어떤 인간적으로, 율법적으로, 어떤 폼으로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구체적인 아가페의 사랑이 아니면 이것이 이루어질 수 없어요. 그래서 그걸 간증 문으로 쓴 것이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인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오늘 "네 손을 내밀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향해서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그 중에 제일 약한 이 한편 손 마른 자를 향해서, "네 손을 내밀라!" 바리새인들의 공동체를 깨뜨려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공동체는 도저히 성취가 될 수 없죠. 예수 그리스도! 이 공동체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인 것 같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여든 이 공동체는 지금까지 전 세계를 휘어잡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내가 공동체라는 말만 아니고, 공동체라는 의미 속에 엄청난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향해서, 나도 공동체입니다. 가정을 향해서, 나도 공동체입니다. 바로 그 공동체의 조건 속에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있지 않으면 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생명이 아니면 이 공동체가 유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라는 말 이전에 먼저 구원의 축복을 확신하고 확인하며, 그리고 이 사실을 누리는 기도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로 통해서 여러분의 생활의 적은 부분도 이제는 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고,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내 생각과 어떤 율법적인 폼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터져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정말로 교회를 사랑합니다! 정말로 내 교인들을 사랑합니다! 정말로 내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고백되는 생활이 공동체의 진한 고백이 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후대만대에 축복이 약속되어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들은 연약한 한 편 손 마른 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실까 하고 주의 깊게 살피나, 예수님은 선을 행하는 일이 좋은가를 사람들 앞에서 묻고 고쳐주었습니다. 공동체는 이러한 치료 이후에 더욱 더 축복이 커집니다. 교인들이 공동체의 의미를 모르면 진정한 교인이 될 수 없고, 중직자들이 공동체의 의미를 모르면 피곤해지고, 교역자들이 공동체의 의미를 모르면 불행합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가 있을 때 약한 부분을 더욱 감싸고 보호합니다. 발가락 하나가 아프면 그것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더욱 감싸고 보호합니다. 공동체는 연약한 자일수록 더욱 보호하고 감싸는 분위기입니다.

[1]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①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② 구원받지 못하는 속에서 모든 문제가 틀어집니다.
③ 구원받아야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④ 내가 구원받아야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고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⑤ 구원받은 자는 그리스도께 붙은 몸의 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고전12:27)
⑥ 성경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⑦ 구원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⑧ 각 지체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움직여나가고 있습니다.

[2] 교회가 공동체입니다.
① 바울은 교회를 향해서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② 예수를 머리로 해서 한 몸으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③ 에클레시아(교회)는 세상에서 불러 모아 한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④ 교회를 생명의 관계로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⑤ 교회를 형제자매의 관계로 이해하면 더욱 가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⑥ 지체를 하나의 몸으로 묶어놓을 수 있는 조건은 사랑입니다.(고전13)
⑦ 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으로 말미암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⑧ 구원받은 사람들이 복음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습니다.
⑨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교인들이 사랑스럽게 여겨집니다.
⑩ 발가락이 아프면 온 몸으로 주의해서 보호하고 감싸게 됩니다.
⑪ 연약한 사람들을 복음의 눈으로 보며 사랑으로 감싸게 됩니다.
⑫ 이러한 복음과 생명의 시각으로 교회를 바라보면 사단이 틈탈 수 없습니다.
⑬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모두 공동체입니다.
⑭ 아이가 아프면 모든 식구들이 밤잠을 자지 않고 참으며 아이를 위해 애를 씁니다.
⑮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동체로 세워진 개인과 가정과 교회는 특별합니다.

바리새인은 공동체를 깨뜨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오합지졸인 것 같으나 전세계를 휘어잡고 있습니다. 공동체라는 의미 속에 엄청난 조건인 아가페의 사랑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생명이 아니고서는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구원의 축복을 누리고 아가페 사랑이 우리 속에서 터져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교회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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