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공동체 이해
2004-08-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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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오늘 "공동체 이해"라고 제목을 삼았습니다. 막상 지난주에 공동체라는 내용을 조금 설명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공동체라는 말이 이해된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입니다. 아니면 이해가 안 돼요. 왜, 이해가 안 되느냐? 공동체 이해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 중에 해결될 문제가 뭐냐? 구원받아야 됩니다. 구원받아야 공동체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 마음을 넓혀서 진지하게 우리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향해서, 또 여러분을 향해서 딱 한가지 목표가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부자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건강해라! 그게 목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지금도, 또 앞으로도 한가지 딱 목표가 있는데 그게 뭡니까? 여러분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 다른 게 없어요. 구원받는 것! 여기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여러분과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오신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류 목사님이 그런 예화를 들었죠. 축구대회에 가면 딱 한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이리차고, 저리차고, 위로 차고, 아래로 차고해도 한가지 목표가 뭡니까? 골을 향해서 목표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 차고, 아무리 개인기가 좋고 해도 골을 못 넣으면 헛일이에요. 그리고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아차 하는 순간에 자기 팀에 골이 들어오면 지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딱 한가지 목표!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전부 다 놓치는 겁니다. 이것이 이해되고 여기에 우리의 초점이 모아지고, 이로 통해서 모든 것이 풀려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안 되는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여러분과 제가 '다락방을 한다! 전도와 선교를 한다! 뭘 한다!'고 야단하지만, 그것은 뛰고, 구르고, 아무리 해도 한가지 놓치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뭡니까? 구원받는 겁니다! 여러분과 제가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겁니다. '구원받았습니까?' 말은 잘하죠. 받아 놓고도 맨 날 빌빌하고,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으면 이게 문제거든요.

바울의 서신서 마다 꼭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구원받은 감격입니다. 감사입니다. 바울 전도가 제가 늘 그런 말씀을 드리지만, 바울의 전도가 그냥 전도하면 복 받는다!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너무 하나님의 나라! 그 구원의 축복이 너무 감사하니까, 그러니까 생명 걸고 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바울이 삼층 천에 갔다온 후에 하늘나라가 너무 좋으니까! '이걸 안 전하면 내게 화로다!' 할 정도로 그렇게 바울의 삶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모든 일에 근거가 구원의 감격으로 시작이 됩니다. 구원의 감사로!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이것이 안되었다면 정말 근본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기초로 돌아간다!' 그 말보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정말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느냐? 받았다면 지금 내 안에 누가 있습니까?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사건, 저런 사건이 있어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비로소 이해가 되는 거죠. 이것이 안되면, 구원의 감사와 구원의 기쁨이 없으면 일이 안 되는 거죠. 교회생활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런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저절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모든 삶이 이해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로 몸에 붙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지체라 그랬습니다. 저절로 되는 거예요. 이것이 안되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먼저 그런 문제죠. 성경에 보면 1만 달란트 빚졌다가 탕감을 받았습니다. 나오다가 열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붙잡고 빚 갚으라고, 안 갚으면 감옥에 집어넣는다고, 이 소식을 주인이 듣고 너무 기가 막혀서, '너도 감옥데 들어가라! 1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다! 그러면 너한테 열 달란트 빚진 것 탕감해 줘야 안 되느냐?'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열 달란트 때문에... 그건 일억을 받은 사람이 십 원을 못 탕감해 주겠냐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 교회 생활이 왜, 안 되느냐? 이게 안되면 사단이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생활에! 그래서 우리가 모든 신앙생활에, 교회 안에서 공동체 생활로 인도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 이해가 되면, 모든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나에게 이상한 짓을 한 사람조차도 나 같은 죄인도 구원받았는데, 저게 문제냐? 여러분 오늘 심각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내게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구원에 문제가 의심스럽습니다. 그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말 구원받은 자라면, 1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라면, 열 달란트 탕감해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사단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일 먼저 기억해야 될 것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몸 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지체가 서로 싸우면 곤란하죠. 그러니 교회에는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상한 사람이 다 모이는데, 그리고 희안한 사람이 다 있는데, 부닥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걸 가지고 내가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로서 구원을 못 누리면, 상처받게 되어있습니다. 교회 와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만큼 멍텅구리 등신이 없어요. 이 말을 하면서도 나도 가끔 등신이 되는데, 정말 우리가 내게 어떤 문제나 사건이 생겼을 때에, 기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 내가 이런 축복과 은혜를 받았는데, 내가 이것가지고 마음상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그래서 목사나 장로나 모든 교인들이 구원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고, 구원에 대한 축복을 잃어버리면 바로 그것이 사단의 통로가 되어버립니다. 사단의 통로가 되어져서 바로 어떤 상황에 빠지느냐 하면,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감동과 감격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뭐가 중심이 되느냐 하면, 자기욕심과 자기생각이 중심이 되게 되어 있어요. 구원에 대한 것이 바로 안 세워지면, 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저절로 교회생활에 목표가 뭐냐? 자기중심적입니다. 아니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목표가 뭡니까? 자기 욕심입니다. 이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목사가 구원받지 못했다! 교회를 애써서 노력하고 헌신한다! 뭐 때문에? 자기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만약에 장로가 구원받지 못했다! 자기 욕심, 자기 생각을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것이 뭐냐? 흑암 세력에 통로가 되어있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대한 감격을 놓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것만큼 불행스러운 일이 없어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정말 그저 간단하게 렘넌트 공동체라고 그랬을 때에, 이 하나의 기관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만은, 먼저 우리 자신이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축복과 은혜에 대한 눈이 열리지 않으면 공동체라는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받은 사람을 불러모은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을 부르신 것이지, 구원 안 받은 사람을 부른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뭘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공동체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공동체로 불러 주셨을 때에 교회에 모든 행함에 조건이 뭐냐하면, 사랑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해서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다고 야단하는데, 그건 문제가 달라요. 여러분 이 사랑은 무슨 사랑입니까? 아가페 사랑! 그래서 여러분 교회의 조건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사실상 사랑이라는 것은 이걸 뒤집어 말하면, 용서의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셨으니, 나도 내가 받은 은혜로 네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척도죠.

그래서 '사랑의 원자탄'을 낸 손양원 목사 같은 경우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기 아들로 삼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죠.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해서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했어요. 원자탄을 맞아보지도 않았는데, 사실상 우리가 원자탄의 위력을 일본으로 통해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만은, 제가 일본에 가서 원자탄이 폭발했을 때에 거기에 상황들을 쭉 설명하고 그림과 사진으로 붙여 놨는걸 보니까 너무 끔찍해요. 쾅하는 순간에 사람이 주루룩 녹아버려요. 이렇게 큰 힘으로, 그게 뭐냐? 아가페 사랑의 힘이요, 능력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라고 하면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것을 못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인간 생각을 가지고 아가페 사랑을 이행할 수 있느냐? 감당할 수 없다!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뭐 예를 들어서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 뺨도 돌려대라! 이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하거든요. 누가 나의 오른편 뺨을 쳐보세요. 당장에 멱살을 잡고, '이놈 왜 때렸느냐?' 이러지! 그렇게 되지를 않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이걸 쭉 하면서 '아, 공동체라는 말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축복이면서도 어렵구나!' 어려우면서도 이것이 있는 곳에는 흑암이 들어오지 못하는 구나! 이것이 희박해 질수록 흑암이 역사 합니다. 그 가정도 교회도 흑암으로 역사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이 식어져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구원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그 다음에 이것이 안되면, 나의 모든 생각과 모든 일들이 범사에 흑암으로 빠져가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조금 비약을 해서 여러분 지금 이 성가대에 앉아있는 분들이 참 수고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 성가대에 앉아있는 분들이 구원의 감격으로, 공동체의 사실적인 축복을 못 누리면서 앉아있다! 이것만큼 괴로운 것이 없습니다. 맨 날 노래는 불러야 되고 성은 나고 괴롭습니다. 여러분 정말 노래부를 때에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이런 은혜를 주셨구나!' 그래서 목사로서 목사가 참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린 것만큼 어리석고 괴로운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왜 그러냐? '하나님이 나를 성도로 불러 주신 것도 감사한데, 거기다가 목사로서 사명을 주셔서 불러주신 것 더욱 감사하다!' 이게 진짜 되어야 되거든요. 그게 안되면 모든 것이 짐입니다. 모든 게 어렵습니다.

장로님들도 똑같습니다. 여러분 무슨 죄가 있다고 걸핏하면 장로님들 욕하잖아요. '장로가 되어 가지고 어쩌란 말이냐고...' 그래도 장로님으로서 구원의 축복과 감격이 없어지면, 그 모든 것이 짐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그렇잖아요. 우리가 지나가면서 느꼈지만, 장로가 되면 이 기관에서도, 저 기관에서도 여러분이 조금 우리 교회 규모가 커지면, 이 기관에서 돈 좀 내 놔라! 저 기관에서도 내 놔라! 또 교회에서도 이 기관에서도 헌금한다! 저 기관에서 헌금한다! 공동체가 되어있지 않으면 헌금하는 자체가 짐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해가 되면, 우리가 헌금하는 자체가 뭐가 되느냐? 축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헌금하는 시간이 즐거워지고, 감사하게 되고 감격하게 됩니다. '하나님, 내가 무엇이 있다고 이같이 지금까지 먹고사는 것도 감사한데, 하나님의 일에 지체를 세우기 위해서 한 지체의 기관인 이 공동체에 내 자신을 들어서 헌금할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러분 진짜 헌금에 감사가 나와야 이게 진짜 축복이 되는 겁니다. 헌금할 때에 꼭 빼앗기는 것처럼, 그 다음에 헌금할 때에 꼭 도적 맞는 것처럼! 차라리 헌금하는 것이 아니고 도적 맞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조금만 이해가 되면 중직자가 되었다는 것! 내가 여기저기 헌금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다는 것!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할 수 있는 자격자로 불렀다는 사실이 조금만 이해가 되면, 거기서부터 축복과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많은 경우 가지고 있으면서도 범사에 다 놓치고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구원의 감격을 상실하면서부터 오는 문제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누가 우리 안에 오십니까? 성령께서 오십니다. 그때부터 나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위해서 어디로 불러요? 교회로 불러주십니다.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목적과, 여러분의 계획과, 여러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이때부터 여러분의 뜻과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모든 것은 간데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계획만이 남아야 되는 거죠.

그러면 이때부터 뭐가 오느냐 하면, 이때부터 여러분과 저를 공동체의 중요한 사역의 조건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비로소 연결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교회 안에서 사랑을 베푼다! 내가 교회 안에서 정말 뜨겁게 이 기관에 저 기관에 정말 감사함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 이 큰사랑의 역사가 뭐로 이루어지느냐? 받아합시다. "내 힘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된다!" 여러분 그래서 나는 교회일 하면서 불평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봅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사단의 통로가 되어 있어요. 교회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이 축복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바로 그렇게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상당히 이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내게 문제가 되더라 구요. 내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 어떻게 이 축복된 역사를 바로 붙잡고 나갈 수 있느냐? 그 길에서 아가페 사랑으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아닙니다. 내 힘으로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전체에 이 공동체 이야기를 하면서 뭘 말합니까? 성령 충만입니다. 여러분 입만 열면 요즘 우리 기도내용이 성령 충만입니다. 그것도 진심으로 해야 해요. 자기 충만은 맨 날 원하면서도, 입으로는 성령 충만! 정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을 이루기 원합니다.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무엇이 사라지느냐? 개인의 욕심과, 개인의 모든 방향이 사라지게 되면 사라지게 되는 만큼 누가 채워져요? 성령으로 그에게 오시고 그에게 역사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가 모든 하는 일들마다, 성령의 충만으로 인도를 받을 때에 비로소 교회의 생활이 사랑의 생활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가페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지, 사람의 역사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 비로소 모든 축복과 역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안되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전부 사단의 통로가 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을 하면 좀 미안할 것 같아서, 내 혼자 가정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하면서 Q.T를 한번 해봤어요. Q.T를 한번 해 봤는데, 공동체의 자격이 없어요. 말로는 부부는 한 몸이라고 그렇지만, 한 몸이 아니라 두 몸이고, 두 몸보다 더 복잡한 독불장군입니다. 여러분 많은 경우 사랑의 공동체가 된다고 그럴 때에,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는 상관없습니다. 이게 성취되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우선 요구하시는 것은, 교회에 여러분을 불렀느냐? '구원부터 받아라! 구원의 감격부터 확인해라!' 이게 안된 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다른 길로 가게 되어 있어요. 사단의 통로가 다른 게 아닙니다. 이것이 안되면 사단의 통로가 되게 되어 있어요. 가정의 공동체로 서느냐?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으로 한 공동체가 되느냐? 여기에 아가페의 사랑으로, 성령의 인도 받는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은 먼저 뭐냐? 구원의 축복과 은혜를 날마다 사건마다 확인해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의 모든 삶이, 모든 서신의 서론이 전부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에베소서 같은 경우에 특별히, '찬송하리로다 창세 전에 나를 선택하시고 선하신 뜻에 따라서 오늘도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찬송과 영광이 그 입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사실자체가 뭐가 이루어 져야 되느냐? 구원의 감격이 없이는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많은 경우 기본으로 좀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과연, '내가 구원받았느냐? 구원받았다면 지금 나의 형편이 어떠냐? 하나님을 찬양하고 정말 내가 이 자리에 선 이 축복과 은혜를 감사하고 있느냐?' 그리고 '이 교회에 앉아있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다! 정말 은혜다!' 내가 지금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됩니다.

여러분 세월은 금방 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불림을 받아서 쓰여질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잠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에게 세계복음화라는 엄청난 이 축복을 약속하고, 여러분 가정과, 여러분과, 여러분 후손들을 불러서 쓰신다는 말만 들어도 감사하고, 녹아져야 됩니다. 세계복음화! 이 사실을 알았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에 내 상황과 문제가 문제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지금 성령이 나와 함께 역사 하시며, 내 상황과 내 모든 문제가 문제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이 세계 복음화의 놀라운 역사 속에 이끌어 가심을 믿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 한번 다시 붙잡고 마침 여러분과 제가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약한 지체를 돕는다!'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이 지체는 몸을 돕습니다. 몸을 세웁니다. 이 지체가 되어 하나님이 세계복음화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일에 쓰시고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주간도 하나님이 지체로 나를 세워놓고, 성취해 가는 말씀의 성취가 날마다 체험되는 기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공동체라는 말은 구원받을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표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풀려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사실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바울도 편지의 앞부분에서 구원에 대해서 꼭 말합니다. 이 땅에서 모든 일의 근거가 구원의 감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면, 지금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계시고,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모든 삶을 공동체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없으면 사단이 틈타게 됩니다.

1. 교회 공동체는 구원의 감격 위에서 유지될 수 있습니다.
①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②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사람으로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야 교회 생활이 기쁨이 됩니다.
③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모든 교회 생활을 자기 유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게 됩니다.
④ 우리는 구원의 축복과 은혜를 깨달아야 공동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공동체로 불러 모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⑥ 구원에 근거해서 세워진 교회의 성립 조건은 용서의 사랑입니다.
⑦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인데, 인간적인 수준에서는 교회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⑧ 사랑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는 구원의 감격으로 유지되지 않을 때 사단이 틈타게 됩니다.
⑨ 교회 안에서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모든 일이 짐이 됩니다.
⑩ 구원의 감격이 있을 때, 봉사와 헌금이 감사와 기쁨이 되고 축복과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2. 성령의 충만으로 아가페 사랑이 있을 때,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성령께서 오십니다.
②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위해 교회로 부르십니다.
③ 교회 공동체에 부름을 받았으면, 부르신 분의 목표를 따라야 합니다.
④ 하나님의 목표를 따라 공동체의 중요한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⑤ 그런데 사랑은 내 힘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⑥ 아가페 사랑으로 교회 모든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은 성령 충만으로 되어집니다.
⑦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중심으로 나아갈 때, 개인의 욕심과 방향이 사라지게 됩니다.
⑧ 성령의 충만으로 인도를 받을 때, 교회 생활이 사랑으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⑨ 성령의 충만으로 아가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단이 틈타게 됩니다.

3. 기본으로 돌아가서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교회 공동체의 삶이 됩시다.
①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은 구원의 감격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②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③ 우리에게 세계 복음화라는 약속 위에 세우신 사실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④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이끌어 가심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⑤ 공동체의 지체로서 몸을 도우며 세계 복음화의 놀라운 일에 쓰임 받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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