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믿음이? II
2004-09-1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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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목이 지난주와 똑같이 주보와 나와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렇게 제목을 잡았습니다. 세 복음서에 오늘의 사건을 똑같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긴 구절도 아니고, 5-6절로 똑같이 세 복음서에 오늘의 사건과 일을 기록을 했다는 것은 물론 한번만 기록해도 중요하지만, 세 번다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똑같이 기록했습니다 만은, 여기에 오늘 해당하는 믿음에 대한 언급은 각각 다른 표현으로 예수께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5절에,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랬습니다. 마태복음서에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렇게 표현을 했고, 오늘 본문에 마가복음 4장 40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랬습니다. '믿음이 왜 없느냐?' 그렇게 꾸중하시고, 누가복음 8장 25절에는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주는 이미지가 뭔가 조금 다르게 전달되는 것 같아서 오늘 세 가지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중에서 '(마8:26)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랬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10년, 20년이 지나도 뭐가 안 되느냐?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 속에서 '오직 예수!'가 안 되는 겁니다. 믿음이 적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이 역사와 축복이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을 때에 나오는 표현으로 그렇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유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고 현실적으로 실제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안되니까, 자꾸 우리 마음이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곳으로 방황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어찌해서 유일하냐?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랬습니다. '절대로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없다!' 그래서 많은 종교인이 여기에 다 걸려 들어가요.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부처가 많은 좋은 교훈을 가지고 있고, 마음수양과 인격수양에는 좋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구원은 안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안 된다!' 그랬습니다. 공자나 맹자가 인간사상속에 끼친 영향이 너무 좋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참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고 갔습니다 만은, 그들의 이름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 이 땅의 종교를 갖고 자랑하고 더 나아가서 철학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철학이나 종교가 구원 얻게 못한다! 이것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심어진다고 해도 완전히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구나!' 이 사실이 확실하게 이해되어야 무슨 문제나 무슨 사건을 통해서도 구원자는 오직 주님뿐이니까! 영육 간에 구원이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만 바라보는 외에 정말 구원 주로서 다른 것은 바라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예수님이 구원의 역사 속에 유일성을 말했지만, 그 구원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믿음이 안 생기느냐 하면, 완전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완전합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 해결되었습니다. 완전합니다. 여기에 확실한 믿음이 서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다른 것으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오직 예수그리스도 완전하다! 그리고 그분은 완전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합니다. 그래서 이 완전성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우리가 어떤 문제나 사건이 있을 때에 바로 그리스도로 인도를 받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예수 그리스도는 그저 잠깐 있다가 오늘 한번 내가 부르고 말 이름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여러분이 한번 예수 그리스도로 영생을 얻었다면 그 영생은 영원한 겁니다. 그 영생은 오늘 끝나거나 내일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 인생뿐만 아니라 이 땅과 오는 세대에 영원한 역사를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4절에,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유일한 예수님이시지만, 지금 여러분과 제게 실제로 힘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바로 이분이 지금 여러분과 제게 실제로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실적인 소용과 도움을 주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성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 유일하고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실제로 내 삶과 생활을 구체적으로 인도해 가심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이 땅에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도적으로 비유했어요. '도적이 온 것은 오히려 그 생명을 빼앗는 것이 되지만, 내가 온 것은 너희로 지금 생명을 풍성하게 한다!'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적인 축복성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믿음이 적다는 것은 이것이 안되니까 자꾸 우리가 다른 것으로 기울어지고, 확실한 믿음에 서지 못하는 이런 부분이 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믿음이 있어도 장소가 발라야 됩니다. (눅8:25). 있을 곳에 있어야 합니다. 복음 위에 있지 아니하고, 이때 당시로 율법 위에 거의 믿음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그때 당시의 이야기나 오늘의 이야기나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을 향해서 오늘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아니면 율법 위에 있느냐? 우리는 지금 믿음 그러고, 복음이라고 하지만 복음보다도 율법 위에 믿음을 두었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그대로!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일이 생기면, 옛날습관 그대로 복음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율법 위로, 우리 믿음의 근거를 따지고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말할 때도, 어떤 사람을 말할 때에, "저 사람은 십일조 잘하고 열심히 기도해! 참 믿음이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 사람이 정말 복음으로 바로 선 사람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참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복음 위에 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또 문제가 생기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면 다다!' 복음으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시각이 복음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걸핏하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에 깊이 베여있습니다.
이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심각한 질문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라도 걸핏하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진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돌아갑니다. 습관과 관습과 지금까지 해온 그런 것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기준을 거기에다가 맞추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좋은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율법입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성경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반드시 '내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구나!' 사형선고 받은 것을 확인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통해서, '복음밖에는 구원이 없구나!' 그 율법을 통해서 복음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몽학 선생이요, 길잡이일 뿐이지!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잘 이해 하셔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에 습관이 되어서 걸핏하면 구원 얻을 수 없는 율법으로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7장 19절에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바로 복음입니다. '율법으로는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알면 알수록 허물 투성이요, 율법은 알면 알수록 멸망의 대상이요, 율법은 알면 알수록 소망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통해서 우리가 새 소망이신 복음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율법에 진실한 축복된 방향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에 습관이 되어 가지고, 복음보다도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말이나 보는 시각이나 그 다음에 여러분 자녀나 이웃을 보는 모든 문제가 거의 율법입니다. 입만 열었다고 하면 율법입니다. 정죄 하게 되고, 비판하게 되고, 판단하게 되고... 너희를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자신이 똑같이 판단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오직 이 모든 것을 짊어지시고, 판단과 허물과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못을 박히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정신차려야 됩니다. 그것도 내가 쓸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정신차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요. 오직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막4:40)'에 말씀했죠. 말씀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율법의 믿음이 있다던가 아직 믿음도 온전치 않고, 그 믿음이 확실하게 복음에 완전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 자연적으로 믿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저절로 오는 것이 염려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바로 되어있지 않으면 걱정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이것을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1절에 잘 말씀해 주고 있죠. 벌써 우리 마음속에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생겼다면 믿음이 떠난 겁니다. 그 순간 우리는 흑암의 손에 붙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1절의 말씀은 간단한 것 같으나, 개인신앙을 점검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염려가 왔다! 내가 믿음이 떨어졌구나! 다른 곳에 믿음이 있구나! 내 믿음이 복음이 아니구나! 열심은 내고 있는데, 다른데 열심을 내고 있구나!' 믿음의 기준을 바로 붙잡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떨어지게 되면 모든 일에 근심과 걱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복음이 바로 되면 예수께서 선언하신 것이 뭐냐하면, '네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평강은 어떤 상황과 사건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 자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평강입니다. 오늘 제자들의 사건과 모습을 보면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바닷 물결이 들어왔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보통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잠을 주무시고 있습니다.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바로 죽게 되기 직전입니다. 물이 들어와서 배가 뒤집히기 직전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깨우면서, '어찌해서 우리를 죽게 버려 두십니까! 안 도와주십니까!' 불신앙이 생긴 거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그 함께 있다는 자체가 평강입니다. 어떤 문제나 사건이나 어떤 일이 생겨도 평강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평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안이라 그럴 때에 어떤 상태와 사건을 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평안이라 그럴 때는 평안 그 자체를 강조해야 됩니다. 그 자체를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그럴 때는 누가 있어요? 평강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겁니다. 그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도 우리가 볼 때는 평안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평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사건이, 또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판단과 모든 것이 정확하게 됩니다. 승리의 역사로 인도 받게 되고, 승리의 역사로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오늘 이 시간 이후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찌 믿음이 적느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믿음이 아직까지도 없느냐?'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오늘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주님이 선언합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이 평안이 한 주간도 여러분을 승리로 이끄시는 생명의 주로 역사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복음서에 본문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표현하고, 마가복음 4장에는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표현하고, 누가복음 8장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이 적은 자들아!
①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오직 예수’가 안 되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의 역사와 축복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고, 완전하고, 실제적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④ 행4:12에 보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유일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⑤ 부처나 공자가 많은 좋은 교훈으로 영향을 주고 있지만, 구원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⑥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⑦ 히12:2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만 바라봅시다.
⑧ 요일5:20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고 영생이시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완전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⑨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영원합니다.(히10:14)
⑩ 마1:23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실제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⑪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나와 함께 하셔서 생명을 주고 더욱 풍성히 얻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요10:10)
2.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① 믿음이 복음 위에 있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율법 위에 믿음을 두고 있습니다.
②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 옛날 습관대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③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④ 일을 할 때,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 습관으로 돌아가서 다른 기준에 맞추려고 합니다.
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⑥ 율법은 ‘내가 죽어 마땅하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음을 깨닫게 하여, 나를 복음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할 뿐입니다.
⑦ 율법으로는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으며, 복음으로 말미암아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⑧ 세상의 모든 것을 율법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2.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① 너희가 어찌하여 아직도 믿음이 없어서 염려가 가득하냐? 라는 말씀입니다.
② 믿음이 없는 순간에 사단이 틈타 들어와서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하게 됩니다.(마11:28-30)
③ 복음이 바로 되면, 평강이 있게 됩니다.
④ 풍랑이 일어 바닷물이 배에 들어차는데도 예수님은 깊이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⑤ 제자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깨우며 불평했습니다.
⑥ 어떤 문제나 사건이 생겨도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자체가 평강입니다.
⑦ 평강이 있다는 말은 평강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는 뜻이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⑧ 평안 속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이라야 올바르게 이루어지며, 올바른 판단 속에서 승리의 역사로 인도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8장 25절에,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랬습니다. 마태복음서에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렇게 표현을 했고, 오늘 본문에 마가복음 4장 40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랬습니다. '믿음이 왜 없느냐?' 그렇게 꾸중하시고, 누가복음 8장 25절에는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주는 이미지가 뭔가 조금 다르게 전달되는 것 같아서 오늘 세 가지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중에서 '(마8:26)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랬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10년, 20년이 지나도 뭐가 안 되느냐?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 속에서 '오직 예수!'가 안 되는 겁니다. 믿음이 적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이 역사와 축복이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을 때에 나오는 표현으로 그렇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유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고 현실적으로 실제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안되니까, 자꾸 우리 마음이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곳으로 방황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어찌해서 유일하냐?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랬습니다. '절대로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없다!' 그래서 많은 종교인이 여기에 다 걸려 들어가요.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부처가 많은 좋은 교훈을 가지고 있고, 마음수양과 인격수양에는 좋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구원은 안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안 된다!' 그랬습니다. 공자나 맹자가 인간사상속에 끼친 영향이 너무 좋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참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고 갔습니다 만은, 그들의 이름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 이 땅의 종교를 갖고 자랑하고 더 나아가서 철학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철학이나 종교가 구원 얻게 못한다! 이것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심어진다고 해도 완전히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구나!' 이 사실이 확실하게 이해되어야 무슨 문제나 무슨 사건을 통해서도 구원자는 오직 주님뿐이니까! 영육 간에 구원이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만 바라보는 외에 정말 구원 주로서 다른 것은 바라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예수님이 구원의 역사 속에 유일성을 말했지만, 그 구원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믿음이 안 생기느냐 하면, 완전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완전합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 해결되었습니다. 완전합니다. 여기에 확실한 믿음이 서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다른 것으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오직 예수그리스도 완전하다! 그리고 그분은 완전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합니다. 그래서 이 완전성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우리가 어떤 문제나 사건이 있을 때에 바로 그리스도로 인도를 받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예수 그리스도는 그저 잠깐 있다가 오늘 한번 내가 부르고 말 이름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여러분이 한번 예수 그리스도로 영생을 얻었다면 그 영생은 영원한 겁니다. 그 영생은 오늘 끝나거나 내일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 인생뿐만 아니라 이 땅과 오는 세대에 영원한 역사를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4절에,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유일한 예수님이시지만, 지금 여러분과 제게 실제로 힘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바로 이분이 지금 여러분과 제게 실제로 힘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실적인 소용과 도움을 주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성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 유일하고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실제로 내 삶과 생활을 구체적으로 인도해 가심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이 땅에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도적으로 비유했어요. '도적이 온 것은 오히려 그 생명을 빼앗는 것이 되지만, 내가 온 것은 너희로 지금 생명을 풍성하게 한다!'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적인 축복성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믿음이 적다는 것은 이것이 안되니까 자꾸 우리가 다른 것으로 기울어지고, 확실한 믿음에 서지 못하는 이런 부분이 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믿음이 있어도 장소가 발라야 됩니다. (눅8:25). 있을 곳에 있어야 합니다. 복음 위에 있지 아니하고, 이때 당시로 율법 위에 거의 믿음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그때 당시의 이야기나 오늘의 이야기나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을 향해서 오늘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아니면 율법 위에 있느냐? 우리는 지금 믿음 그러고, 복음이라고 하지만 복음보다도 율법 위에 믿음을 두었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그대로!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일이 생기면, 옛날습관 그대로 복음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율법 위로, 우리 믿음의 근거를 따지고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말할 때도, 어떤 사람을 말할 때에, "저 사람은 십일조 잘하고 열심히 기도해! 참 믿음이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 사람이 정말 복음으로 바로 선 사람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참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복음 위에 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또 문제가 생기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면 다다!' 복음으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시각이 복음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걸핏하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에 깊이 베여있습니다.
이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심각한 질문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라도 걸핏하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진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돌아갑니다. 습관과 관습과 지금까지 해온 그런 것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기준을 거기에다가 맞추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좋은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율법입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성경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반드시 '내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구나!' 사형선고 받은 것을 확인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통해서, '복음밖에는 구원이 없구나!' 그 율법을 통해서 복음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몽학 선생이요, 길잡이일 뿐이지!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잘 이해 하셔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에 습관이 되어서 걸핏하면 구원 얻을 수 없는 율법으로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7장 19절에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바로 복음입니다. '율법으로는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알면 알수록 허물 투성이요, 율법은 알면 알수록 멸망의 대상이요, 율법은 알면 알수록 소망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통해서 우리가 새 소망이신 복음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율법에 진실한 축복된 방향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에 습관이 되어 가지고, 복음보다도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말이나 보는 시각이나 그 다음에 여러분 자녀나 이웃을 보는 모든 문제가 거의 율법입니다. 입만 열었다고 하면 율법입니다. 정죄 하게 되고, 비판하게 되고, 판단하게 되고... 너희를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자신이 똑같이 판단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오직 이 모든 것을 짊어지시고, 판단과 허물과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못을 박히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정신차려야 됩니다. 그것도 내가 쓸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정신차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요. 오직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막4:40)'에 말씀했죠. 말씀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율법의 믿음이 있다던가 아직 믿음도 온전치 않고, 그 믿음이 확실하게 복음에 완전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 자연적으로 믿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저절로 오는 것이 염려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바로 되어있지 않으면 걱정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이것을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1절에 잘 말씀해 주고 있죠. 벌써 우리 마음속에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생겼다면 믿음이 떠난 겁니다. 그 순간 우리는 흑암의 손에 붙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1절의 말씀은 간단한 것 같으나, 개인신앙을 점검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염려가 왔다! 내가 믿음이 떨어졌구나! 다른 곳에 믿음이 있구나! 내 믿음이 복음이 아니구나! 열심은 내고 있는데, 다른데 열심을 내고 있구나!' 믿음의 기준을 바로 붙잡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떨어지게 되면 모든 일에 근심과 걱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복음이 바로 되면 예수께서 선언하신 것이 뭐냐하면, '네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평강은 어떤 상황과 사건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 자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평강입니다. 오늘 제자들의 사건과 모습을 보면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바닷 물결이 들어왔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보통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잠을 주무시고 있습니다.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바로 죽게 되기 직전입니다. 물이 들어와서 배가 뒤집히기 직전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깨우면서, '어찌해서 우리를 죽게 버려 두십니까! 안 도와주십니까!' 불신앙이 생긴 거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그 함께 있다는 자체가 평강입니다. 어떤 문제나 사건이나 어떤 일이 생겨도 평강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평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안이라 그럴 때에 어떤 상태와 사건을 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평안이라 그럴 때는 평안 그 자체를 강조해야 됩니다. 그 자체를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그럴 때는 누가 있어요? 평강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겁니다. 그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도 우리가 볼 때는 평안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평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사건이, 또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판단과 모든 것이 정확하게 됩니다. 승리의 역사로 인도 받게 되고, 승리의 역사로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오늘 이 시간 이후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찌 믿음이 적느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믿음이 아직까지도 없느냐?'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오늘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주님이 선언합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이 평안이 한 주간도 여러분을 승리로 이끄시는 생명의 주로 역사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복음서에 본문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표현하고, 마가복음 4장에는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표현하고, 누가복음 8장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이 적은 자들아!
①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오직 예수’가 안 되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의 역사와 축복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고, 완전하고, 실제적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④ 행4:12에 보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유일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⑤ 부처나 공자가 많은 좋은 교훈으로 영향을 주고 있지만, 구원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⑥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⑦ 히12:2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만 바라봅시다.
⑧ 요일5:20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고 영생이시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완전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⑨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영원합니다.(히10:14)
⑩ 마1:23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실제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⑪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나와 함께 하셔서 생명을 주고 더욱 풍성히 얻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요10:10)
2.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① 믿음이 복음 위에 있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율법 위에 믿음을 두고 있습니다.
②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 옛날 습관대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③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④ 일을 할 때,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 습관으로 돌아가서 다른 기준에 맞추려고 합니다.
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⑥ 율법은 ‘내가 죽어 마땅하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음을 깨닫게 하여, 나를 복음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할 뿐입니다.
⑦ 율법으로는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으며, 복음으로 말미암아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⑧ 세상의 모든 것을 율법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2.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① 너희가 어찌하여 아직도 믿음이 없어서 염려가 가득하냐? 라는 말씀입니다.
② 믿음이 없는 순간에 사단이 틈타 들어와서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하게 됩니다.(마11:28-30)
③ 복음이 바로 되면, 평강이 있게 됩니다.
④ 풍랑이 일어 바닷물이 배에 들어차는데도 예수님은 깊이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⑤ 제자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깨우며 불평했습니다.
⑥ 어떤 문제나 사건이 생겨도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자체가 평강입니다.
⑦ 평강이 있다는 말은 평강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는 뜻이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⑧ 평안 속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이라야 올바르게 이루어지며, 올바른 판단 속에서 승리의 역사로 인도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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