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제자를 부르심
2004-10-2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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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목을 예수님의 "제자를 부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 여기에 모든 답이 다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느냐? 이것은 성경을 통해서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만은, 한가지 중요한 것은 많은 말씀을 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요구하시고, 또 병자들의 대화를 통해서 들어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기 전에 반드시 요구한 사항이 있어요. 그것은 마가복음 5장 34절에서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믿음입니다. 그 다음에 마가복음 5장 36절에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두려워할 사건과 상황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믿기만 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반드시 예수님이 치료하시기 전에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믿어라! 믿기만 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요구하는 야이로나 또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말을 보면, 5장 23절에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그렇게 요구를 했습니다. '구원 얻게 해 주옵소서!' 5장 28절에도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그렇게 혈루증 여인이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어떤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얻게 되느냐? 또 어떤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되느냐?' 여기에 대해서 조금 언급을 했죠.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여기에 숙달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체질이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신비적인 믿음은 물론 아닙니다. 또 인본주의 믿음도 아닙니다. 이것이 너무 숙달이 되고, 너무 습관화되어서 우리가 구원 얻는 믿음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자꾸 이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구원 얻는 믿음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이고 언약입니다. 이미 받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생명 받았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겁니다. 그런데 종교로 자꾸 화하게 되는 거죠. 그 다음에 우상으로, 미신으로 자꾸 빠지게 됩니다. 자꾸 인본주의로 신비주의로 빠지게 되죠.

여러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야곱 같은 인물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을 했거든요. 야곱에게 분명히 약속을 했지만, 부도 주실 것을 약속했고, 하나님이 이 모든 약속을 언약으로 주셨지만, 야곱이 그것을 분명히 가지고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하실 것은 믿었지만,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습니다. 라반을 속이고, 그 다음에 축복을 쟁취하고 부자 되기 위해서, 양이 새끼 밸 때에 알록달록하게 하기 위해서 뭐 신풍나무 껍질을 벗겨 가지고 별 짓을 다하고, 그건 그때 당시에 미신이었거든요. 자기도 모르게 그때 당시에 풍속 속에 빠져있던 미신을 최대한 동원해서, 벌써 언약의 약속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이 약속해 놨지만, 그걸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에 현장에서는 어디로 빠졌느냐? 자기가 지금까지 습관화되어 있던, 그리고 그때 당시에 모든 종교적인 배경, 미신 배경, 이게 체질화되어서 나오게 된 것을 볼 수 있거든요.

이걸 야곱에게 돌리지 말고, 여러분을 한번 돌아보세요. 지금 예수 믿어도 옛날에 우상 섬기던 체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걸핏하면 이리로 돌아갑니다. 우리 의식 속에 이것이 떠나지 않는가 봐요. '저 사람은 참 잘생겼다! 관상이 좋아서 잘사는가 보다! 저 사람 참 잘생겼다! 코가 커서 안 굶어 죽는가 보다!' 거의 이런 식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언약을 잡고 언약이 성취되는 생명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생활은 계속해서 옛날 종교, 우상, 미신에 빠져있는 겁니다. 못 빠져 나와요.

그래서 지금 계속해서 우리가 이 언약을 확실히 붙잡는 일을 강조하면서 뭐냐? 언약에 뭘 내리라고 그랬습니까? '뿌리를 내려라!' 자꾸 뿌리를 내려라! 이게 안 되거든요. 뿌리를 내린다고 내린 것이 어디로 가느냐? 나도 모르게 미신으로 뿌리를 내리고, 언약을 잡는다는 게 그리로 돌아가는 갑니다. 이래서 우리 삶의 현장에 늘 이로 통해서 뭐가 썩이느냐? 흑암에 세력이 들어오는 통로가 자꾸 열리는 겁니다. 노력은 하고, 애를 쓰고 있는데도 뭔가 되는 게 안되고 자꾸 어려워지게 되는, 그러면서 이런 문제에 빠졌을 때에 원망을 누구한테 하느냐? '하나님, '내가 그렇게 애쓰고, 힘쓰고, 하나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랬는데, 왜 이럽니까? 힘쓰고 애써도 다른 것으로 애쓰는데... 그 언약의 뿌리를 완전히 내리지 못해서, 여기에서 사사건건이 자꾸 삐뚤어지고, 흑암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열리고, 그리고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다른 짓을 하고 있는 사건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있다는 배경입니다. 정말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냥 복음에 뿌리를 내리라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이건 진짜 여러분이 마음속에 새겨야될 뿐 아니라, 뼈 속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을 한다해도 복음이 아니거든요. 복음으로 안나갑니다. 그리고 '복음, 복음!' 그러다가 무슨 문제에 부닥치면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데로 빚나가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이런 배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민족은 예수 믿어도 참 어려운 것은, 우리 민족전체의 민족사가 미신에 민족사입니다. 요즘 보세요. 잘 살려고 애를 쓰고 노력한다는 것이, 별 짓을 다합니다. 나는 TV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뭐 문화재라고 그러고 하는 것이 완전히 귀신 놀음입니다. 그래서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잘 살려고 바라는 것이 그게 기적입니다. 참 하나님 앞에 먼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게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조차 이게 안되거든요.

늘 이런 말을 하면 생각이 나요. 부흥회 하는 도중에도 목에 짚을 감고 있으니까! 왜 그러냐니까? '딸꾹질이 나서 이렇게 하면 괜찮다고...' 할머니였습니다 만은, 그게 오랫동안 몸에 밴 체질들이 완전히 미신세계에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이 종교적이라고 해도 좀 점잖은 겁니다. 말하자면 '율법적이다!' 이것도 점잖습니다. 율법적이 된다고 해도 그래도 괜찮아요. 어떤 면에서 그것도 발전 된 겁니다. 율법이 아니라 전부 미신입니다. 거의! 이 배경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금 영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본다는 것 보다, 뼈저리게 느껴야겠습니다.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복음에 뿌리를 놓치고 언약에 뿌리를 놓치면, 금방 다른 통로가 열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안타까워서 늘 눈만 뜨면, '주 예수 그리스도!' 백 번 불러 봐야 문제 생기면 또 다른 데로, 종교로 미신으로 또 흘러버립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래도 주 예수 그리스도! 흘려 버려도, 또 주 예수 그리스도! 왜 우리 속에 복음이 아니고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가 우리 4전도회 부부 치유를 하면서, 우리 집사람과 제가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살아도 안 변하는 것이 있어요. 아무리 서로 서로 맞추려고 애를 쓰는데 안 변하는 것이 뭐냐? 입맛입니다. 결정적인 문제만 생기면 옛날에 내 입맛으로 돌아가 버려요. 우리 집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옛날로 돌아가 버리고, 그것이 고쳐지지 않아요. 그건 이해한다고 될 일이 아니거든요. 또 용서해서 될 일도 아니고, 이런걸 어떡합니까? 이것은 복음으로 고쳐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부문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이 문제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복음으로 해결해 보면, 부분간에 문제는 문제될 것이 없어요. 이게 안되고 있어요. 왜?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돌아가 버리는데, 자기는 옛날 친정에 살던 때로 돌아가 버리고, 나는 옛날 시골에 살던 때로 돌아가 버리고... 이런 면에서 밥맛조차도 그렇거든요. 나는 옛날 물고기를 찌지는 데로 돌아가 버리고, 우리 집사람은 옛날에 먹던 미꾸라지 탕으로 돌아가 버리고, 추어탕이라 그러죠. 그게 도저히 합일이 안돼요. 하나가 안돼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우리 자신의 식성조차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어디로 돌아가느냐? 복음으로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으면, 여러분은 찌들리고 찌들린 이런 배경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계속해서 복음을 듣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훈련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면, '나는 이 정되면 되었다!' 천만에 말씀, 문제가 생기면 또 옛날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이점에서 여러분 지금 이 시간까지 오게 된 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그래서 붙어만 있으라고 안 그랬습니까! 일단 붙어있으면 붙어있는 동안에는, 인도 받고 끌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여기서 조금만 내가 자만하고, 뭔가 조금이라도 '이젠 되었다!' 그러면 그 순간에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체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자가 되는 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그럴 때는, 예수님의 이름만으로도 끝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예수님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 권세를 알게되는 순간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죠. 그 안에서 다 꺾이게되는 문제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구원을 얻는 믿음이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지난주에 말씀을 여러 가지로 했습니다 만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마디로 키를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한 마디로 말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성령에 인도를 받는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인도를 지금 못 받고 있으면 뭐로 돌아갑니까? 옛날로 돌아갑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지금 내 안에 누가 계신다는 겁니까? '성령이 계신다!' 그 이야기입니다. 구원받았다고 그러면 문제가 생겨도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돼요.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한 것이, 아파도 슬퍼도 좋아도 기뻐도 그 순간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면 내가 어떤 환경의 문제나 사건이든, 문제가 여기서 해결되는 거죠. 왜?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어떤 문제나 사건 속에서도 성령의 인도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뭐로 인도됩니까? '과정일 따름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문제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문제는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응답으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생활과 삶에 방향들이 자연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흑암과 죄악의 권세에서부터 나를 완전히 뽑아내고 해방했습니다. 그리고 해방하고는 그 권세가 떠나버렸습니까? 아닙니다. '내주 한다!' 그랬습니다. 이 사실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믿는 것을 뭐라고 그럽니까? '믿음!'이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완전 하나님이 벌써 해결해 놓으신 그 역사와 축복을 믿으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중요한 요구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령의 역사가 계신다고 그럴 때에, 성령의 내주와 그 역사 속에 놀라운 사건이 생기게 되는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해요.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이 뭐 '성령 받았다!' 할 것 없이 조용히 한번 점검을 해 보세요. 뭐냐하면,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면 제일먼저 영의 변화가 옵니다. 이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흔히 여러분이 '무슨 일이다! 무슨 일이다!' 말하지만, 전부 영적인 문제에서 터져 나온 사건이거든요. 영의 변화라고 그럴 때에 이게 근본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축복을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이것은 변화 전에 내 본래 모습니다! 그게 마귀의 자녀!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마귀에게 완전히 소속 된 거죠. 그래서 여기서 오는 것이 불신자의 6가지 상태가 전부 나오는 것이죠. 운명에 빠져있고, 저주와 죽음의 시간표들이 쭉 이어져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불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그 가정에서 이런 모든 저주와 운명과 죽음에 빠져서 나타나는 시간표일 따름이지, 문제는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완전히 해결되는 길이, 먼저 이 영적인 변화가 구체적으로 흑암의 세력이 꺾이고 말하자면, 지금까지 아비 노릇하던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고 누가 와야 됩니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이 영적인,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영원토록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성령이 왔다갔다했습니다. 왔다가 갈 때는 또 다른 것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약속하신 바대로 성령을 보내실 때에 그 성령은 한번 임하시게 되면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받아합시다. "한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다!" '한번 성령이 임하시면 영원토록 성령이 나와함께 하십니다!' 문제와 사건이 '있다, 없다!' 상관없이! 그래서 조금만 문제 생기면, '내가 왜 이러냐? 성령이 떠났는가 보다!' 자기 마음이지! '하나님이 떠났는가 보다!' 자기마음이지! 하나님의 성령은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고아와 같이 영원토록 버려 두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나옵니다. 생활에 차이가 엄청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축복과 역사를 약속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 사실이 여러분과 제게 이미 어떻게 되었어요? 이루어졌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믿고 안 믿고 대답을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죠. 제자가 되는 일에, '이걸 믿느냐? 예, 믿습니다!' 정도가 아니고 확실하게 여기다가 뿌리 내려야 되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내가 사단의 손에 빠져있으면 내 상태가 어떤 상태냐? 여러분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거든요. '어떤 상태냐?' 그럴 때에, 로마서 3장 13절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사단의 손에 빠진 사람들의 형편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다른 소리가 나가요.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좋은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이 남에게 독이 되고 해가 됩니다. 여하튼 이상한 것은, 남의 안 좋은 소리 들으면 기분 좋고, 좋은 소리 들으면 이상하게 시기가 나오고... 이게 인간의 본래 모습입니다. 내 주인이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아비 사단!'이라 그랬습니다. 여기서 못 벗어난 모든 문제들이 이렇게 허무한 세상으로, 참 죽음과 고통의 세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임해져 있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절)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게 뭡니까? 사단의 역사 속에 빠진 상황과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과 저의 현 주소입니다. 18절에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절)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결국은 인생이 잘 살든, 못 살든 뭡니까?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망과 죽음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뭐 세상종말이 어떻다고 하지만, 인간 종말은 누구에게든지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저주 속에 살아가는 인간 형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저주 속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뭐냐? '죽었다!'가 아니고, '잔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 소망이 확실히 이루어지게 되는 순간에 우리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다고 그래가지고 이단들처럼 죽어서 썩어져 가는 시체를 갔다놓고 부활한다고 기다리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왜? '죽어도 살겠고!'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나라에서는 영원히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왜 안 죽으려고 그럽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소망이 없어요.

아무리 잘 믿어도 안 죽으려해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데요. 일평생 목회하고 은퇴한 목사님들이 모인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 가서, '목사님들에게 천국 가셔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기분 나쁘다고 그러고, '목사님 얼굴 참 좋습니다! 아주 오래 사시겠습니다!' 이러면 막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답니다. 본성이에요. 왜? 우리도 모르게 이런 습관과 관습 속에서, 이런 어떤 배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모든 부분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 웃지만 똑같습니다. 내일 죽는다 그러면 좋아할 사람 하나도 없어요. 통곡하고 탄식하고... 어떤 면에서 '내일 죽는다!' 기뻐해야 됩니다. '주여, 어쩌다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가게 되었습니까!' 이래야 되는데, 죽어도 이게 안돼요. 맨 날 죽는다 그러고, 조금 어떻게 암이라고 그러면 그냥 죽는다고 그럽니다.

예, 이해합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고 죽지 아니할 사람들입니다. 여유를 가지세요. 너무 힘들게 사는데, 이것이 우리도 모르게,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음이니라!'하는 현재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 속에서 우리가 빠져나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우리의 영적인 상황이 완전히 변해야 됩니다. 어떻게? 나를 지배하고 여러분을 지배하는 것은 사단의 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사실이 인식되면 문제될 것이 없어요.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어떤 역사 속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이 역사가, 영에 변화가 먼저 왔다 그러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영적으로 영이 변화가 되면 마음과 생각이 바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과 생각이 바꾸어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죠. 전도와 선교라는 것에 눈이 안 열렸을 때에 마음하고, 그래서 우리가 조금 미안한 이야기입니다 만은, 이걸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 기존 신자들과 만나면 우리 마음과 생각이 그들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절실하게 실감합니다. 성령이 나를 지배하시면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에 보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영적으로 변화가 오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달라집니까? 더럽게 달라집니까? 너무 축복된 역사로, 평안과 안식으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얼마나 놀라운 역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의 첫 번째 축복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제일먼저 오는 것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잠 못 자던 사람도, '너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평강이 있으면 잠 잘 자는 거죠. 맨 날 복잡한 생각으로 충만하던 사람이 평안이 있으면 모든 것이 조용합니다.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누가? 하나님의 평강이! 이렇게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면 따라오는 것이, 삶은 저절로 바꾸어집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게 바꾸어지기 전에 사단이 지배하고 있던 때에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꾸어지는데, 갈라디아서 5장 18절에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를 받으면 여기서 모든 해답이 나오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언제 일어나느냐? 이게 또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것은 우리가 겪어봤던 데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할 때에, 정말 영접했을 때에,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뭘 주었어요? '권세를 주셨느니라!' 여기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전도캠프하고 전도할 때에, 자꾸 영접시키려고 그러는데, 너무 영접시키려고 애를 쓰다 보니까 부작용이 오히려 나올 수 있는데, 하나님이 인도를 받아야 돼요.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없이는 영접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택한 자들이나 하나님이 계획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영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작업하십니다.

그래서 전도의 역사 속에 이제 중요하죠.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사!' 바로 중요한 역사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그때부터 그 사람에게 소망이 생기고, 그를 보는 여러분과 저의 눈은 소망의 눈으로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될 때는 소망이 없어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다른 것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번 전도캠프의 이야기 속에서 뭐냐하면, 여러분이 전도해 봤잖아요. 전도할 때에 잘 듣는 것 같아도 절대로 안 듣는 사람이 있어요. 왜? 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를 못해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자기 임의로 그게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다른 것이 지배하고 있어요. 다른 것이! 그러니 여기서 해방 받는 사실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어요. 이 사실을 알고 바로 영접을 시키게 되면 성령께서 이 일을 작업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 일을 이루십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응답의 역사가 나오게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영접시킬 때에 임의로 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성령의 역사 속에 영접이 나와야 합니다. 내 힘으로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캠프에 나갈 때에 절대로 '내가 노력해서 얻는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생명 얻을 자에게 붙이셨다!' 이렇게 되어야지!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하겠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 창세기 3장이죠. 그래서 인간은 복음만으로 여기서부터 헤어날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그 순간부터 인간은 뭔가 모르게 본성으로, 그 잃어버렸던 향수 때문에 종교에 빠지고, 본성으로 선행에 빠지고, '뭔가 내가 선행을 하면 좋은데 갈 것이다!' 그게 본성이에요. 안 믿는 사람도 돈 벌어서 악한 짓 하면 할수록 더합니다. 부모에게 잘못하면 잘못했을수록 죽은 후에 선행을 하려고 더 애씁니다.

이런 때에는 더 문제가 심각해지죠. 그 다음에는 철학으로도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상한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 더 흑암에 통로가 된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사건 속에서 복음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인간의 뿌리가 없어지지 않으면, 그냥 종교와 선행과 이상하게 율법이라든가, 이런 어떤 배경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가 이해된다면 비로소 이 모든 현실과 사건에서부터 해방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제자를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뭘 줬습니까?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실제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때 드러난 모든 문제에 초점들이 각종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여졌던 것이 오늘 본문에 역사입니다. 왜? 이 사건의 배경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먼저 우리가 이해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어떤 이름이기에 우리는 문제만 생기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우리의 인생을 의탁하고 살아가느냐? 의탁해도 어째서 괜찮으냐? 어째서 의탁하는 사람이 축복이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먼저 그 뜻이 뭐냐? '예수, 여호수아, 여호와!' 그런 뜻입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 말입니다. '예수 이름만 불러도 구원 얻는다!' 그 말입니다. '예수, 여호와의 구원이시다!' 이 말은 멸망이 아니고, 바로 그 이름 자체가 구원이시다! 모든 인간이 멸망 중에 있기 때문에 구원이 첫째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랬습니다. 멸망 중에 모습이 어떤 것이냐? 3장 13절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이게 우리의 삶에 현장입니다. 멸망의 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고 그래도 항상 뭔가 이 배경에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다고 그러면 여기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이는 데로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 앞에 오게 되거든요.

그러면 예수보다는 그 이름이 뭐냐하면, 두 번째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그런 뜻이죠. 어떤 문제나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도, 내가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내게 지금 이 사건 속에서도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셨구나!' 이게 이해가 되면, 그 다음에 문제가 달라지죠. '하나님만이 멸망의 세력에서 건지신다! 하나님만이 새 생명을 주신다!' 임마누엘의 배경에 이런 뜻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럴 때에,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있는 것이 뭐냐하면, '예수!' 그럴 때에,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랬는데, 이 말이 첫 번째 뭐냐? '예수님은 여호와 곧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그럴 때에, 그리스도는 직분을 말하지만, '예수'라 그럴 때에, 예수 그분은 바로 신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분이시다! 같은 분이다!' 이게 이해가 잘 안 되는 사람이 많아요. 예수는 누구시라구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자꾸 옛날에 이걸 이해시키기 위해서 인간 비유를 댔는데도 잘 안돼요. 왜? 소새끼는 송아지고, 말 새끼는 망아지고, 크면 뭐가 됩니까? '소가 된다!' 망아지를 소로 보는 사람이 없어요. 망아지는 망아지지! 그런데 결국 한 통속입니다.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배경이 뭐냐? '하나님이시다!' 그 배경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근본적으로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특별히 여기서 본격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이, 빌립보서 2장 6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의 본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 몸을 비어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다! 그 배경입니다. '동등하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그랬습니다. 비로소 이것이 이해가 되면 뭐가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라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권세가 나옵니다.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창조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냥 말하는 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창조주이십니다! 못할 것이 없고, 못 이루실 것이 없습니다!' 이게 안 믿어지는 거죠. 여러분과 제게, '예수 그리스도 못 하실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걸 믿고 기도하는 것과 안 믿고 기도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건 게임이 안 되는 거죠. 여러분과 제게 이런 축복과 역사를 약속해 주었습니다. 지금 믿으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내게 닥치는 모든 문제와 사건들에서 비로소 기도라는 것이 여기서 나올 수가 있는 것이죠.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를 주로 많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권세, 마태복음 28장 18절 20절은 하늘과 땅의 권세, 마태복음 9장 6절에 죄를 사하는 권세, 골로새서 1장 13절에 흑암의 권세에서 건지시는 권세, 요한복음 3장 27절에 심판에 권세, 요한복음 16장 24절에 기도응답의 권세, 이런 여러 가지 권세들을 제가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성경은 거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비유해놓았습니다. 왜?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게 되는 그때부터 창조주의 역사가 나오는데, 그게 안 믿어지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구체적으로 당신이 창조주에 하나님의 권세로 여러 가지 일을 다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해결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증거가 오늘 여러분과 제게 뭡니까? 성령의 임하심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서' 성령의 역사 속에 항상 누구의 증인? 이 권세에 증인이 되리라! 뭘 안주면 증인이 못됩니까? 증거 안주면 증인 못 돼요. 여러분과 저를 세워놓고는, 하나님이 '증거 주시겠다! 증인이 되라!' 약속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증인이 되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세계 복음화의 마음에 문이 열리게 되는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했습니다. '증거를 주시겠다! 증인이 되도록 하시겠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부터 뭐냐? 이 증거의 역사 속에서 바로 성령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이 나오고, 성령으로 기도할 때에 하늘의 권세가 구체적으로 이 땅에 이루어지고 역사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간단한 겁니다. '예수님의 이 증거를 한 몸에 갖고 세계를 향해서 증거 하는 증인이 되겠다!' 그 약속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예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현실적인 증거로 누구를 보냈어요?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도 그 성령의 역사와 증거 잡고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약속을 마음껏 이루어나가시는 축복의 역사로 인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문제의 해결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병을 고치기 전에 반드시 요구한 것은 믿음입니다. 딸의 치료를 요구하는 야이로나 혈루증을 앓은 여인은 구원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종교적인 믿음이나 신비적인 믿음이나 인본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원 얻는 믿음으로서, 그것은 생명이요 언약입니다. 또한 구원 얻는 믿음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야곱은 약속된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서 삶의 현장 속에서 세상적인 배경으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에게서도 이러한 세상적인 모습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언약을 확실히 붙잡기 위해서 언약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오직 복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1. 구원 얻는 믿음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영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흑암과 사망에서 완전히 해방하고, 내주하십니다.
② 성령의 내주와 역사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③ 자신의 영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④ 이것은 창세기 3장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을 말합니다.
⑤ 한 번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십니다.(요14:16)
⑥ 성령의 내주와 인도를 믿는만큼 삶의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⑦ 사단에 빠진 사람들의 형편은 결국 저주와 사망에 이릅니다.(롬3:13)
⑧ 창3:16-18의 말씀이 사단에게 붙잡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⑨ 잘 살든 못 살든 사단의 저주 속에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 사망과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⑩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잔다’고 표현하심으로 죽음이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⑪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이겼으므로, 삶에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어집니다.
①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마음과 생각이 평안과 안식으로 변화되어집니다.(빌4:7)
② 예수 믿는 사람들의 첫 번째 축복은 평강입니다.
③ 마음과 생각이 바뀌면 삶은 저절로 바뀌어집니다.
④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해답이 나옵니다.(갈5:18)
⑤ 성령의 인도 속에서 해답을 얻는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할 때 일어납니다.
⑥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영접하는 축복이 일어납니다.
⑦ 전도 사역을 할 때 성령의 역사 속에서 영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⑧ 진리에서 떠난 사람은, 종교나 선행이나 철학 등을 통해서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이루고자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⑨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통해서만 현실의 모든 문제로부터 해방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⑩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병자들을 고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이름은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1)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이 있습니다.
① 모든 인간이 멸망 중에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가장 먼저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2)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뜻이 있습니다.
① 나의 모든 사건 속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3)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① 빌2:6에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예수님은 못 하실 것이 없는 창조주이시기에 그의 이름에서 권세가 나옵니다.
③ 죄를 사하는 권세, 흑암 세력에서 건지시는 권세, 심판의 권세, 기도 응답의 권세 등이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에서 나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아서, 성령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의 증인이 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증거를 주셔서 증인이 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증거를 한 몸에 가지고 세상 속에서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는 증거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축복의 역사로 인도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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