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죽음
2004-11-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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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요한의 죽음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배경으로 해서 그동안 여러분들이 앞으로 우리교회, 또 이동해서 하나교회에 대한 비전들을 함께 조금 생각해 보고, 또 그동안 제가 복음을 증거한다고 하면서 우리 교회가 아직 어떤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한탄도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한 자괴감도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정의 내지는 방향설정도 좀 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 교회에 가면 새로운 인물도 선정을 해야 되고, 그렇다면 선정하는 배경에 대해서도 뭔가 지금부터 우리가 마음으로 준비를 해야 됩니다. 어디에다가 포인트를 좀 두어야 되겠는가! 그런 것도 생각을 좀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교육자분들도 제가 오늘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물러앉는다 해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지속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시스템을 좀 구축을 해 나가야 되겠다! 그래서 이미 당회에 제가 설명을 드렸습니다 만은, 아마 여러분들도 지금쯤 오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을 또 한번보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조금, 은혜는 들뜬 마음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만은, 오늘 말씀은 정말 좀 차분한 마음으로, 사리에 맞는 것을 바로 붙잡을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를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이라 그랬는데, 제가 이 세례요한의 죽음이라는 이 단어를 놓고 좀 생각을 해 봤어요.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주를 위해서, 정말 복음을 위해서 죽었을 때는 '순교'라는 말을 썼는데, 굳이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죽음'이라 그렇게 썼더라 구요. 쭉 성경을 나누는 과정에 있어서 야고보도 순교라 그랬고, 스데반도 순교라 그랬고...
그런데 그 앞에 명제를 달 때에, 세례요한은 앞에 세례요한의 죽음이라 그렇게 붙였더라 구요. 상당히 이 죽음이라는 의미를 두고 순교라는 말을 두고 좀 생각해 봤습니다. 왜, 굳이 성경에서 세례요한이 엄청난 그런 일을 했고, 또 예수님께서도 칭찬한 '사람이 낳은 사람 중에 이보다 더 큰이가 없다!' 그렇게 칭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뭐라 그랬느냐? '천국에서는 지극히 적은자도 저보다 낫다!'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뭔가 뒤에 붙였더라 구요. 도대체 오늘 우리가 중요하게 이 순교와 죽음에 대한 말씀 속에서 뭔가 주시려고 하는 의미를 좀 붙잡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먼저 보면 복음이 없는 자들의 오해입니다. 세례요한에 대한 복음이 없는 자들의 오해! 그 다음에 세례요한에 대해서 이 오해가 지속해서 어떤 것까지 나오느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까지 나옵니다. 먼저 누가복음 9장 7절에 보면,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절)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절)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그랬습니다.
이 세례요한에 대해서 왕도 이렇게 엄청난 평가를 했습니다. 마치 죽은 자가 부활한 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그걸 세례요한이다! 헤롯이 죽였던 그 세례요한이 다시 부활했다! 이럴 정도로 엄청난 그런 것들이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기를 세례요한에 대해서 엘리야가 나타났다! 혹은 선지자 중에 하나가 나타났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오늘 성경에서 보면, 누가 복음 9장 9절에서 말한 것처럼, "(9절)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분명히 말했어요. 헤롯왕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할 때에 그 행동 한 것을 도의에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지적을 해 주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부인을 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잘못되었다!' 그랬을 때에 축하연에서 그 딸을 내어 보내어서 춤을 추면서 너무 분위기를 기쁘게 하니까 헤롯왕이 그 모든 좌중 앞에서, '네 소원이 뭐냐? 나라에 반이라도 들어주겠다!' 그런데 이 여아가 헤로디아에게 가서 이 말을 하니까, '너는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 해라!' 왜 그러냐 하면, 헤롯왕이 세례요한이 자기에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그럴 때에 분해서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 말이 참 맞거든요. 의인이라서 죽이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 헤로디아, 곧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자기 아내를 삼았었던 그 여자가 자기 딸을 보내어서 춤을 추게 하고, 그러면서 너무 헤롯이 마음에 흡족해서 '나라에 반이라도 주겠다!' 그랬을 때에 한 말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의 헤로디아 딸이 뭐라고 그랬느냐? '세례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아 주시오!' 그랬거든요. 그러니 헤롯이 근심하면서도 한말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세례요한의 시신을 제자들이 찾아가서 장사를 지냈다!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내용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에, 이 세례요한은 그때 감히 왕에게 직언을 할 수도 없고, 또 하게 될 때에 어떤 영향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직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직언을 하기 전에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면서 정말 엄격하게 율법을 행치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질타했습니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율법으로 질타하는 그 말을 듣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엄청난 변동이 일어났죠.
그래서 이런 어떤 배경들을 갖고 지금 '세례요한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할 정도로 그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대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 11장 11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그랬습니다. 중요한 말은 한 마디로 말해서,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가면 세례요한 못지 않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복음을 깨닫고, 복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것이 제일 우선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 이전에, 복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율법에 대가입니다. 세례요한은 그 율법으로 생명까지 내어 걸었습니다. 말하자면 정의와 도의를 위해서 내어 걸었습니다. 그래서 그 정의와 도의를 위해서 생명까지 내어 걸었던 세례요한의 죽음을 성경은, 복음을 향한 복음을 위해서 죽는 것과 구별해서 '죽음'이라 그렇게 표현을 했더라 구요. 그러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자가 낳은 자중에 이 보다 더 큰 자가 없다!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자가 없다!' 그렇죠. 그런데도 여기서 분명히 말합니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그랬습니다. 천국에는 뭐로 들어갑니까? 언약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그 언약으로 천국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천국에서는 언약으로 하나님의 축복에 서 있는 자들이 받고 누릴 축복에 대한 비중을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오늘 이렇게 보면 도덕적으로, 그 다음에 여러 모양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 위대하다!' 그렇게 안 되어도 좋습니다. 성경에서 오늘 말씀한 것은,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붙잡아야 될 것이 여러분과 제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하신 약속을 딱 잡고 그 약속 위해서 생애를 걸었다. 그런 사람을 말해서 죽었다! 그런 의미로, 그 언약 때문에 죽었다! 그럴 때에 성경은 뭐라 그랬습니까? 스데반의 '죽음'이 아니고, 뭐라 그랬어요? '순교'라 그랬습니다.
저는 이 세례요한을 보면서 참 위대한 인물이다! 정말 인간적인 어떤 관점에서 볼 때는 예수님의 평가대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맞는 말이죠. 생명을 내어 걸고 감히 왕 앞에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다윗 왕이 잘 못된 일을 저지른 비슷한 범죄죠. 여자를 취했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직접 임하셔서 그 선지자를 통해서 말했죠. 그럴 때에 다윗 왕은 그 앞에서 완전히 굴복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섰던 기록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약 위에 서 있는 자! 그리고 이 언약을 위해서 생명을 걸은 자! 그렇다면 뭐냐? 언약에 가치를 정말 중요하게 확인하고 그 언약을 붙잡고 내 전 생애를 바로 드릴 수 있다! 여기에 모든 가치가 부여되는 겁니다. 축복이 부여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조금 이해를 해야 될 것은, 우리가 체질이 지금까지 언약보다도 어디에 비중을 더 두고 있느냐? 율법이라는 것에 우리는 체질적으로 비중을 더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언약을 잡고, 하나님 앞에 언약에 대한 어떤 가치 때문에 생명을 걸었다기보다도 정의와 의와 도를 위해서 바른말하고, 이러면 훨씬 인기가 좋고 훨씬 더 어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정직하고, 인간이 뭘 바로 하고, 법을 잘 만들고 뭘 한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언약을 놓친 것은 다 껍질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저 교회에 간다 그럴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여러분과 내가 못한다! 좋습니다. 생각이라도 소원이, '주여, 복음에 증인되게 하옵소서! 이 복음 위해서 내가 못한다면 내 후손이라도 정말 몸으로 마음으로 이 언약에 대한 실제적인 역사를 이루어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 소원 가지고 나가는 이 것만이라도 먼저 형성되어야 됩니다.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뭐 '잘한다! 못한다!' 그런 문제가 아니죠.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가,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지킬 것을 믿습니다 만은, 우리 인간이 연약해서 잘 받들지 못하고, 연약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주의 종을 붙들어 주셔서 지금까지 오게 하신 아버지, 또 하나님의 교회를 지금까지 역사 하시고 부흥케 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능력과 권세로 이제 새 교회로 가는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게 복을 주시옵소서. 이 일에 우리에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하시고, 성령에 충만함이 있도록 날마다 이 일에 새로워질 수 있도록 역사 해 주옵소서. 목사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정말 교인들을 아끼고, 당당한 교인으로 만들 수 있게 하시고, 교인들은 정말 목회에 함께 순종하며, 함께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말씀 따라서 전심을 다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선교와 전도! 우리가 비록 몸으로 움직이지 못할 지라도, 나의 마음속에 소원이라도 나의 후손들에게 선교와 전도에 대한 확실한 소원을 심어주고, 심고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이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모든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는 순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엄청난 일을 했고, 예수님도 크게 칭찬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우리는 복음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 헤롯 왕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부활했다고 여길 정도로 세례 요한은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2)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그것을 과감히 지적했었습니다.
(3)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특별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를 감옥에 가두기만 했을 뿐 더이상 해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4)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는 외침에 뉘우치고 돌아올 정도로, 세례 요한은 위대한 존재였습니다.
(5)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 율법의 정의를 위해 살았던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서 더 큰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인정받았습니다.
(7) 천국에서는 율법의 정의 보다 복음을 위해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8)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하신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9) 율법의 정의를 위해 죽은 세례 요한에게는 ‘죽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0) 복음의 약속을 위해 죽은 스데반에게는 ‘순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1)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언약’을 붙잡고 ‘언약’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12) 율법에 더 비중을 많이 두고 살아왔던 우리들의 체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13) 우리는 복음의 언약을 마음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우리 교회도 복음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 교회 전체가 복음 중심으로 진행되어 나가야 합니다.
(2) 교회 행정이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3) 교회 인사도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복음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복음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져 나가야 되겠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복음을 가슴에 안고 모든 성도들이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어 나아갑시다. 우리 모두 떳떳한 목회자, 당당한 교인이 되도록 합시다. 전도와 선교 때문에 축복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됩시다.
그리고 이제 새 교회에 가면 새로운 인물도 선정을 해야 되고, 그렇다면 선정하는 배경에 대해서도 뭔가 지금부터 우리가 마음으로 준비를 해야 됩니다. 어디에다가 포인트를 좀 두어야 되겠는가! 그런 것도 생각을 좀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교육자분들도 제가 오늘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물러앉는다 해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지속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시스템을 좀 구축을 해 나가야 되겠다! 그래서 이미 당회에 제가 설명을 드렸습니다 만은, 아마 여러분들도 지금쯤 오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을 또 한번보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조금, 은혜는 들뜬 마음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만은, 오늘 말씀은 정말 좀 차분한 마음으로, 사리에 맞는 것을 바로 붙잡을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를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이라 그랬는데, 제가 이 세례요한의 죽음이라는 이 단어를 놓고 좀 생각을 해 봤어요.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주를 위해서, 정말 복음을 위해서 죽었을 때는 '순교'라는 말을 썼는데, 굳이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죽음'이라 그렇게 썼더라 구요. 쭉 성경을 나누는 과정에 있어서 야고보도 순교라 그랬고, 스데반도 순교라 그랬고...
그런데 그 앞에 명제를 달 때에, 세례요한은 앞에 세례요한의 죽음이라 그렇게 붙였더라 구요. 상당히 이 죽음이라는 의미를 두고 순교라는 말을 두고 좀 생각해 봤습니다. 왜, 굳이 성경에서 세례요한이 엄청난 그런 일을 했고, 또 예수님께서도 칭찬한 '사람이 낳은 사람 중에 이보다 더 큰이가 없다!' 그렇게 칭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뭐라 그랬느냐? '천국에서는 지극히 적은자도 저보다 낫다!'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뭔가 뒤에 붙였더라 구요. 도대체 오늘 우리가 중요하게 이 순교와 죽음에 대한 말씀 속에서 뭔가 주시려고 하는 의미를 좀 붙잡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먼저 보면 복음이 없는 자들의 오해입니다. 세례요한에 대한 복음이 없는 자들의 오해! 그 다음에 세례요한에 대해서 이 오해가 지속해서 어떤 것까지 나오느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까지 나옵니다. 먼저 누가복음 9장 7절에 보면,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절)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9절)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그랬습니다.
이 세례요한에 대해서 왕도 이렇게 엄청난 평가를 했습니다. 마치 죽은 자가 부활한 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그걸 세례요한이다! 헤롯이 죽였던 그 세례요한이 다시 부활했다! 이럴 정도로 엄청난 그런 것들이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기를 세례요한에 대해서 엘리야가 나타났다! 혹은 선지자 중에 하나가 나타났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오늘 성경에서 보면, 누가 복음 9장 9절에서 말한 것처럼, "(9절)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분명히 말했어요. 헤롯왕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할 때에 그 행동 한 것을 도의에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지적을 해 주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부인을 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잘못되었다!' 그랬을 때에 축하연에서 그 딸을 내어 보내어서 춤을 추면서 너무 분위기를 기쁘게 하니까 헤롯왕이 그 모든 좌중 앞에서, '네 소원이 뭐냐? 나라에 반이라도 들어주겠다!' 그런데 이 여아가 헤로디아에게 가서 이 말을 하니까, '너는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 해라!' 왜 그러냐 하면, 헤롯왕이 세례요한이 자기에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그럴 때에 분해서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 말이 참 맞거든요. 의인이라서 죽이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 헤로디아, 곧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자기 아내를 삼았었던 그 여자가 자기 딸을 보내어서 춤을 추게 하고, 그러면서 너무 헤롯이 마음에 흡족해서 '나라에 반이라도 주겠다!' 그랬을 때에 한 말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의 헤로디아 딸이 뭐라고 그랬느냐? '세례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아 주시오!' 그랬거든요. 그러니 헤롯이 근심하면서도 한말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세례요한의 시신을 제자들이 찾아가서 장사를 지냈다!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내용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에, 이 세례요한은 그때 감히 왕에게 직언을 할 수도 없고, 또 하게 될 때에 어떤 영향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직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직언을 하기 전에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면서 정말 엄격하게 율법을 행치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질타했습니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율법으로 질타하는 그 말을 듣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엄청난 변동이 일어났죠.
그래서 이런 어떤 배경들을 갖고 지금 '세례요한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할 정도로 그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대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 11장 11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그랬습니다. 중요한 말은 한 마디로 말해서,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가면 세례요한 못지 않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복음을 깨닫고, 복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것이 제일 우선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 이전에, 복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율법에 대가입니다. 세례요한은 그 율법으로 생명까지 내어 걸었습니다. 말하자면 정의와 도의를 위해서 내어 걸었습니다. 그래서 그 정의와 도의를 위해서 생명까지 내어 걸었던 세례요한의 죽음을 성경은, 복음을 향한 복음을 위해서 죽는 것과 구별해서 '죽음'이라 그렇게 표현을 했더라 구요. 그러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자가 낳은 자중에 이 보다 더 큰 자가 없다!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자가 없다!' 그렇죠. 그런데도 여기서 분명히 말합니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그랬습니다. 천국에는 뭐로 들어갑니까? 언약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그 언약으로 천국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천국에서는 언약으로 하나님의 축복에 서 있는 자들이 받고 누릴 축복에 대한 비중을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오늘 이렇게 보면 도덕적으로, 그 다음에 여러 모양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 위대하다!' 그렇게 안 되어도 좋습니다. 성경에서 오늘 말씀한 것은,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붙잡아야 될 것이 여러분과 제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하신 약속을 딱 잡고 그 약속 위해서 생애를 걸었다. 그런 사람을 말해서 죽었다! 그런 의미로, 그 언약 때문에 죽었다! 그럴 때에 성경은 뭐라 그랬습니까? 스데반의 '죽음'이 아니고, 뭐라 그랬어요? '순교'라 그랬습니다.
저는 이 세례요한을 보면서 참 위대한 인물이다! 정말 인간적인 어떤 관점에서 볼 때는 예수님의 평가대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맞는 말이죠. 생명을 내어 걸고 감히 왕 앞에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다윗 왕이 잘 못된 일을 저지른 비슷한 범죄죠. 여자를 취했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직접 임하셔서 그 선지자를 통해서 말했죠. 그럴 때에 다윗 왕은 그 앞에서 완전히 굴복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섰던 기록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약 위에 서 있는 자! 그리고 이 언약을 위해서 생명을 걸은 자! 그렇다면 뭐냐? 언약에 가치를 정말 중요하게 확인하고 그 언약을 붙잡고 내 전 생애를 바로 드릴 수 있다! 여기에 모든 가치가 부여되는 겁니다. 축복이 부여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조금 이해를 해야 될 것은, 우리가 체질이 지금까지 언약보다도 어디에 비중을 더 두고 있느냐? 율법이라는 것에 우리는 체질적으로 비중을 더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언약을 잡고, 하나님 앞에 언약에 대한 어떤 가치 때문에 생명을 걸었다기보다도 정의와 의와 도를 위해서 바른말하고, 이러면 훨씬 인기가 좋고 훨씬 더 어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정직하고, 인간이 뭘 바로 하고, 법을 잘 만들고 뭘 한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언약을 놓친 것은 다 껍질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저 교회에 간다 그럴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여러분과 내가 못한다! 좋습니다. 생각이라도 소원이, '주여, 복음에 증인되게 하옵소서! 이 복음 위해서 내가 못한다면 내 후손이라도 정말 몸으로 마음으로 이 언약에 대한 실제적인 역사를 이루어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 소원 가지고 나가는 이 것만이라도 먼저 형성되어야 됩니다.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뭐 '잘한다! 못한다!' 그런 문제가 아니죠.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가,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지킬 것을 믿습니다 만은, 우리 인간이 연약해서 잘 받들지 못하고, 연약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주의 종을 붙들어 주셔서 지금까지 오게 하신 아버지, 또 하나님의 교회를 지금까지 역사 하시고 부흥케 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능력과 권세로 이제 새 교회로 가는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게 복을 주시옵소서. 이 일에 우리에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하시고, 성령에 충만함이 있도록 날마다 이 일에 새로워질 수 있도록 역사 해 주옵소서. 목사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정말 교인들을 아끼고, 당당한 교인으로 만들 수 있게 하시고, 교인들은 정말 목회에 함께 순종하며, 함께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말씀 따라서 전심을 다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선교와 전도! 우리가 비록 몸으로 움직이지 못할 지라도, 나의 마음속에 소원이라도 나의 후손들에게 선교와 전도에 대한 확실한 소원을 심어주고, 심고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이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모든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는 순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엄청난 일을 했고, 예수님도 크게 칭찬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우리는 복음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 헤롯 왕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부활했다고 여길 정도로 세례 요한은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2)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그것을 과감히 지적했었습니다.
(3)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특별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를 감옥에 가두기만 했을 뿐 더이상 해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4)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는 외침에 뉘우치고 돌아올 정도로, 세례 요한은 위대한 존재였습니다.
(5)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 율법의 정의를 위해 살았던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서 더 큰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인정받았습니다.
(7) 천국에서는 율법의 정의 보다 복음을 위해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8)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하신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9) 율법의 정의를 위해 죽은 세례 요한에게는 ‘죽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0) 복음의 약속을 위해 죽은 스데반에게는 ‘순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1)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언약’을 붙잡고 ‘언약’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12) 율법에 더 비중을 많이 두고 살아왔던 우리들의 체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13) 우리는 복음의 언약을 마음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우리 교회도 복음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 교회 전체가 복음 중심으로 진행되어 나가야 합니다.
(2) 교회 행정이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3) 교회 인사도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복음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복음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져 나가야 되겠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복음을 가슴에 안고 모든 성도들이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어 나아갑시다. 우리 모두 떳떳한 목회자, 당당한 교인이 되도록 합시다. 전도와 선교 때문에 축복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됩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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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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