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주님의 관심
2005-03-2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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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활절 예배, 먼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부활의 능력이 개인과 가정과 산업의 모든 현장에 충만하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찬양대에서 찬양한 것처럼 세세토록 할 말은 예수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축복과 비밀속에 우리를 세우시고 오늘도 그 일을 이루어가심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부활주일, 2차건축헌금작정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지난한주간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부활절이라면 부활절에 맞는 메시지가 나와야 할 것이고 2차 건축 헌금 작정이라면 거기에 맞는 메시지가 나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기도하면서 생각하면서, 사도행전 메시지가 주일강단을 통해서 계속 나가는 가운데 행7장을 보면서 다른 본문을 읽을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56절 57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스데반의 순교 현장속에 서 계신 사실을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관심이 어디있느냐? 우리 신앙생활속에서 뭔가 일을 많이 하는게 아니라 정말 주님의 관심이 어디있는지 알고 방향맞추어 나갈때에 하나님의 관심과 축복이 따라오게되고 오늘 본문에 서서 스데반의 순교를 보시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을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을 전할때에 우리의 걸음속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어있음을 발견하는 축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중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놀라운 것은 평신도인 스데반이 구약을 완전히 꿰뚫고 정확한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데반의 순교이후에 이스라엘에 큰 전환점이 일어났습니다. 이때까지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가 말씀운동을 진행해 왔지만 성전 율법주의의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스도운동을 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틀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스도운동을 하는데 그 체계로는 하나님이 쓰실 수 없기에 결국은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는데 사도행전 8장에 이스라엘이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사마리아성에 빌립이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하나님의 계획된 순교였고 이 순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이루어가시는데 이 순교를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이 보좌 우편에 서 계신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관심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 동행하게 될 때에 우리인생 자체가 실패할 수 없는 인생이 되어지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실패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실패를 끝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실패를 위해서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든 인류의 구세주되신 예수그리스도, 승리하게 하신 증거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나타내셨는데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동행하면 실패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완벽하게 성령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네 번째로 그분이 앞으로 재림주로 만왕의 왕으로 모든 왕이 그 이름앞에 무릎꿇고 모든 입이 그리스도 이름을 선포하고 그 이름앞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고 했는데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바로 믿고 증거하면 실패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부활절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부활절을 맞이해서 세상에서는 분위기에서 부활절 예배를 띄우고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로 회복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제는 천주교에서 계란을 삶아 아파트 단지에 다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이 지금까지 분위기 속에서 부활절을 넘어 갔었는데 정말로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 언약을 깨달은 자체가 참된 부활의 의미를 바로 깨달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부활절, 부활주일예배로 다시 새롭게 드립니까? 그 부활의 주님을 사실적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는것입니다. 지금 부활하셔서 함께하는, 늘 부활하셔서 삶속에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지만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이 주일만큼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확인하게 하는 것이 부활절 예배입니다.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절기를 주셨습니다. 절기를 주신 이유는 그 절기를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축복을 깨닫고 확인하고 누리라고 절기를 주셨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단이 이 사실을 망각하게 하기에 늘 기억하고 누리라고 주신 것이 절기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활주일로 주님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지금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체험하고 누리고 증거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비밀이 회복되어지는 귀중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부활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초대교회가 그 어마어마한 핍박속에서도 핍박을 이긴 메시지가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이길 정도가 아니라 로마까지 복음화 했던 메시지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모든 사도들이 증거한 메시지가 이 메시지입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기록목적도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바울이 아그립바왕앞에 중요한 변론을 하는 내용입니다. 22절에서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아멘 바울이 말하기를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말하는데 그게 23절에 그리스도가 고난당하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부활에 대한 부분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48절에 다메섹도상에서 힘을 잃고 돌아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힘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아멘 여기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르켜 기록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만에 살아날 것, 고난당하심과 부활하심입니다.
모든 사도들의 말하는 증거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도들을 통해서 세계복음화의 문을 열어가셨습니다. 지금도 이 사실을 믿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부활의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십니다.
부활의 새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자체가 고난중의 고난입니다. 성탄절의 메시지 가운데 저희 목사님이 십자가의 시작이 무엇이냐 했을 때 성탄절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세상속에 오신 그 자체가 고난이였습니다. 죄악과 더럽고 추잡한 인간 세상속에 오신 자체가 고난입니다. 이땅에서 생애를 보내신 것이 고난이였고 최고의 고난의 정점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다 이루었다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가 착함으로 선을 행함으로 흑암의 세력이 꺾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을 다스림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잘 먹어도 흑암의 세력 사단의 세력은 안 꺾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려야 하는데 히브리서 2장 14절에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죽음앞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5절에 보면 모든 인생이 죽음에 매여서 종노릇한다고 했습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 사단의 세력을 꺾어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능력이요 생명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끝났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우리의 삶이 이생뿐이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 잡은 자 사단에 이끌려서 죽음과 무덤까지 이끌려 가셨으나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으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흑암의 권세 사망의 왕인 사단세력이 완전히 깨어진것입니다. 바로 이 축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므로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사단이 인간에게 개입되어 저주와 죽음이 왔었던 인간에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세력이 꺾여지면서 가정과 가문에 개인이 나가는 모든 현장에 흑암이 꺾여지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할때에 새 생명을 얻었단 말이고 그 말은 부활의 생명을 가졌단 말입니다. 이 새 생명의 역사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보좌 앞에 예수님이 올라 가셔야 새 생명의 원천인 성령이 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땅에 있는 것 보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너희에게 축복이라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셔야 새생명인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 새 생명으로 부활의 사건이 내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부활에 대해서 믿어지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부활의 역사를 믿게 하시기 위해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으자 가운데서 살리신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니라. 우리가 생명을 얻었단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살리신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생명이 내 안에 있다면 못할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절대 해결할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이 우리안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이 이룰 축복된 역사를 말씀하셨는데 부활이후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마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막16:15-20 영적인 문제를 치유하라 눅24:13-35 기존신자를 찾아내어 힘을 주라 요21:15-18 후대를 살려라 이일에 행1:8 증인으로 서라 이 자리에 서는 축복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 하십니다.
혹여나 신앙생활하면서 답답한 분이 있습니까.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는데 풀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도하실 축복된 메시지가 부활이후의 메시지 여기에 방향맞출때 모든 인생이 성공하게 되어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최고의 축복 받으면서도 이 사실 알지 못하고 방향잡지 못하여 불신자 보다 더 못한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증거하는 일에 섰던 스데반에게 하나님은 보좌 우편에 서셔서 스데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하나교회가 새 성전의 귀중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이 현장에 증거하기 위해 우리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마음과 중심을 담고 헌신할때에 하나님은 하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이 최고의 일을 진행하시는데 그 최고의 역사속에 뽑히고 참여한 사람은 축복중의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이 비록 순교로 쓰임받았지만 그러나 거기에 뽑혔습니다. 이 현장에서 하나님이 그의 걸음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계복음화 할 교회라면 여러분 마음에 중심을 담고 기도하고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여러분 자손 만대에 축복을 쏟아 부을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에 중심만 가졌는데도 자손만대 복에 복을 더 하셨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누렸던 축복이 무엇입니까. 전무후무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재앙이 떠나갔고 모든 세계선교를 감당할 만큼 지혜와 재물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언약궤의 비밀, 복음전파, 부활의 증인의 비밀을 알았던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희 하나교회가 이 성전 건축을 위해 온 중직자 분들과 장로님들 기도 가운데 계획했고 온 성도들의 함께 소원하여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작년 12월31일 송구영신예배를 위해 처음 이 교회를 들어오면서 나이가 많은 성도님들은 울먹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생애 이 귀한 성전을 건축해서 후대들에게 물려주는 축복된 역사에 서게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마음에 성전짓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 땅과 이 민족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부활하신 사실만이 이 현장을 살릴수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증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일에 마음 중심을 열고 결단하게 될 때에 전도자인 스데반의 걸음속에 보좌 우편에 서셔서 스데반을 받으신것처럼 우리의 걸음걸음속에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기적으로 채우시는 역사를 체험할 것입니다. 승리하는 축복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부활주일, 2차건축헌금작정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지난한주간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부활절이라면 부활절에 맞는 메시지가 나와야 할 것이고 2차 건축 헌금 작정이라면 거기에 맞는 메시지가 나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기도하면서 생각하면서, 사도행전 메시지가 주일강단을 통해서 계속 나가는 가운데 행7장을 보면서 다른 본문을 읽을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56절 57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스데반의 순교 현장속에 서 계신 사실을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관심이 어디있느냐? 우리 신앙생활속에서 뭔가 일을 많이 하는게 아니라 정말 주님의 관심이 어디있는지 알고 방향맞추어 나갈때에 하나님의 관심과 축복이 따라오게되고 오늘 본문에 서서 스데반의 순교를 보시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을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을 전할때에 우리의 걸음속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어있음을 발견하는 축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중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놀라운 것은 평신도인 스데반이 구약을 완전히 꿰뚫고 정확한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데반의 순교이후에 이스라엘에 큰 전환점이 일어났습니다. 이때까지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가 말씀운동을 진행해 왔지만 성전 율법주의의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스도운동을 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틀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스도운동을 하는데 그 체계로는 하나님이 쓰실 수 없기에 결국은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는데 사도행전 8장에 이스라엘이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사마리아성에 빌립이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하나님의 계획된 순교였고 이 순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이루어가시는데 이 순교를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이 보좌 우편에 서 계신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관심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 동행하게 될 때에 우리인생 자체가 실패할 수 없는 인생이 되어지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실패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실패를 끝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실패를 위해서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든 인류의 구세주되신 예수그리스도, 승리하게 하신 증거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나타내셨는데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동행하면 실패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완벽하게 성령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네 번째로 그분이 앞으로 재림주로 만왕의 왕으로 모든 왕이 그 이름앞에 무릎꿇고 모든 입이 그리스도 이름을 선포하고 그 이름앞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고 했는데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바로 믿고 증거하면 실패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부활절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부활절을 맞이해서 세상에서는 분위기에서 부활절 예배를 띄우고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로 회복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제는 천주교에서 계란을 삶아 아파트 단지에 다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이 지금까지 분위기 속에서 부활절을 넘어 갔었는데 정말로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 언약을 깨달은 자체가 참된 부활의 의미를 바로 깨달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부활절, 부활주일예배로 다시 새롭게 드립니까? 그 부활의 주님을 사실적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는것입니다. 지금 부활하셔서 함께하는, 늘 부활하셔서 삶속에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지만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이 주일만큼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확인하게 하는 것이 부활절 예배입니다.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절기를 주셨습니다. 절기를 주신 이유는 그 절기를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축복을 깨닫고 확인하고 누리라고 절기를 주셨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단이 이 사실을 망각하게 하기에 늘 기억하고 누리라고 주신 것이 절기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활주일로 주님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지금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체험하고 누리고 증거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비밀이 회복되어지는 귀중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부활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초대교회가 그 어마어마한 핍박속에서도 핍박을 이긴 메시지가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이길 정도가 아니라 로마까지 복음화 했던 메시지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모든 사도들이 증거한 메시지가 이 메시지입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기록목적도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바울이 아그립바왕앞에 중요한 변론을 하는 내용입니다. 22절에서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아멘 바울이 말하기를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말하는데 그게 23절에 그리스도가 고난당하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부활에 대한 부분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48절에 다메섹도상에서 힘을 잃고 돌아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힘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아멘 여기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르켜 기록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만에 살아날 것, 고난당하심과 부활하심입니다.
모든 사도들의 말하는 증거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도들을 통해서 세계복음화의 문을 열어가셨습니다. 지금도 이 사실을 믿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부활의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십니다.
부활의 새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자체가 고난중의 고난입니다. 성탄절의 메시지 가운데 저희 목사님이 십자가의 시작이 무엇이냐 했을 때 성탄절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세상속에 오신 그 자체가 고난이였습니다. 죄악과 더럽고 추잡한 인간 세상속에 오신 자체가 고난입니다. 이땅에서 생애를 보내신 것이 고난이였고 최고의 고난의 정점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다 이루었다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가 착함으로 선을 행함으로 흑암의 세력이 꺾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을 다스림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잘 먹어도 흑암의 세력 사단의 세력은 안 꺾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려야 하는데 히브리서 2장 14절에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죽음앞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5절에 보면 모든 인생이 죽음에 매여서 종노릇한다고 했습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 사단의 세력을 꺾어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능력이요 생명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끝났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우리의 삶이 이생뿐이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 잡은 자 사단에 이끌려서 죽음과 무덤까지 이끌려 가셨으나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으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흑암의 권세 사망의 왕인 사단세력이 완전히 깨어진것입니다. 바로 이 축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므로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사단이 인간에게 개입되어 저주와 죽음이 왔었던 인간에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세력이 꺾여지면서 가정과 가문에 개인이 나가는 모든 현장에 흑암이 꺾여지게 되어있고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할때에 새 생명을 얻었단 말이고 그 말은 부활의 생명을 가졌단 말입니다. 이 새 생명의 역사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보좌 앞에 예수님이 올라 가셔야 새 생명의 원천인 성령이 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땅에 있는 것 보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너희에게 축복이라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셔야 새생명인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 새 생명으로 부활의 사건이 내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부활에 대해서 믿어지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부활의 역사를 믿게 하시기 위해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으자 가운데서 살리신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니라. 우리가 생명을 얻었단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살리신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생명이 내 안에 있다면 못할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절대 해결할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이 우리안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이 이룰 축복된 역사를 말씀하셨는데 부활이후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마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막16:15-20 영적인 문제를 치유하라 눅24:13-35 기존신자를 찾아내어 힘을 주라 요21:15-18 후대를 살려라 이일에 행1:8 증인으로 서라 이 자리에 서는 축복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 하십니다.
혹여나 신앙생활하면서 답답한 분이 있습니까.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는데 풀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도하실 축복된 메시지가 부활이후의 메시지 여기에 방향맞출때 모든 인생이 성공하게 되어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최고의 축복 받으면서도 이 사실 알지 못하고 방향잡지 못하여 불신자 보다 더 못한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증거하는 일에 섰던 스데반에게 하나님은 보좌 우편에 서셔서 스데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하나교회가 새 성전의 귀중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이 현장에 증거하기 위해 우리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마음과 중심을 담고 헌신할때에 하나님은 하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이 최고의 일을 진행하시는데 그 최고의 역사속에 뽑히고 참여한 사람은 축복중의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이 비록 순교로 쓰임받았지만 그러나 거기에 뽑혔습니다. 이 현장에서 하나님이 그의 걸음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계복음화 할 교회라면 여러분 마음에 중심을 담고 기도하고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여러분 자손 만대에 축복을 쏟아 부을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에 중심만 가졌는데도 자손만대 복에 복을 더 하셨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누렸던 축복이 무엇입니까. 전무후무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재앙이 떠나갔고 모든 세계선교를 감당할 만큼 지혜와 재물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언약궤의 비밀, 복음전파, 부활의 증인의 비밀을 알았던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저희 하나교회가 이 성전 건축을 위해 온 중직자 분들과 장로님들 기도 가운데 계획했고 온 성도들의 함께 소원하여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작년 12월31일 송구영신예배를 위해 처음 이 교회를 들어오면서 나이가 많은 성도님들은 울먹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생애 이 귀한 성전을 건축해서 후대들에게 물려주는 축복된 역사에 서게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마음에 성전짓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 땅과 이 민족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부활하신 사실만이 이 현장을 살릴수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증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일에 마음 중심을 열고 결단하게 될 때에 전도자인 스데반의 걸음속에 보좌 우편에 서셔서 스데반을 받으신것처럼 우리의 걸음걸음속에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기적으로 채우시는 역사를 체험할 것입니다. 승리하는 축복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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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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