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성을 무너뜨린 복음의 능력(1)
2005-04-0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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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하다보니 제목을 잡아야 하는데 어떤 분들이 설교제목이 깁니다라고 하시면서 한 주일간 제목이라도 붙잡고 기도해야 하는데 너무 길어서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합니다. 오늘도 제목이 깁니다. 그래서 한 주간 제목이라도 붙잡기 위해 제목으로 인사합니다. 사단의 성을 무너뜨린 복음의 능력을 누립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일에 있어서 분명한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먼저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이루어 가시는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실히 붙잡지 못하면 우리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잘 되면 괜찮지만 잘못되면 내가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했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며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무엇을 몰라서 그렇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앞당겨 볼수 있는 눈이 없어서 그런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대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에게 미래를 보는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 우상동네에서 불러내시면서 창12:1-3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복의 근원으로 참된 축복을 얻게 하는 미래에 대한 언약을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셨습니다. 요셉에게도 창 37:1-11 먼저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이 붙잡혀져 감옥에서도 노예생활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목동으로 있을 때에 사무엘을 통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 받으면서 장차 왕될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나가는 걸음속에 다윗의 인생전반이 고통과 어려움이었지만 흔들리지 아니하고 승리하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난주일에 부활주일을 허락하셨는데 부활메세지 전체가 미래를 장악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마28장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이일을 하는 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 바로 미래를 정복하는 메시지입니다. 막16:15-20 너희는 만민에게 가라. 영적 문제가 있는 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치유하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전부 미래를 장악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 우리가 지금 당하는 문제와 사건의 해석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가운데 내게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가 하는 분이 있습니까. 미래를 앞당겨 보는 가운데 가진 문제를 보신다면 그 문제속에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발견되어지고 오히려 감사와 감격이 회복되어집니다. 이 사실을 놓치니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열심히 하는것인데 그것이 종교생활아닙니까. 결국은 실패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기를 목사님 내가 예수 믿었는데 가면 갈수록 더 어렵고 더 힘든데 왜 이럽니까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가지고 당한 문제를 보아야 해답이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 7장의 스데반의 핍박과 죽음을 통해 일어난 문제들, 이것도 미래를 보지 못하면 믿는자에게 왜 이런문제가 있는가 원망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게 된다면 그 속에 귀중한 답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크게 두가지로 말씀드릴것입니다.
첫째가 스데반의 죽음과 초대교회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사마리아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축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볼 것입니다.
오늘 행8장은 보통 역사가 아닙니다. 핍박속에서도 말씀이 더욱 더 증거되어지는 것입니다. 미래를 앞당겨 보는 사람들은 핍박속에서 하나님의 더 큰 축복 바라보며 원망하지 않을 것인데 이 사실 놓치면 문제가 옵니다. 오늘 본문 1절 사울이 그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어느 정도로 핍박이 있었느냐 하니 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무엇 때문에 이런 갑작스런 핍박이 일어났습니까. 행8장에 보니 스데반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정확한 복음을 말하면서 그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이 예수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 않느냐 하는 말에 유대인이 화났습니다. 그 설교로 유대인들이 핍박에 가담하였고 초대교회에 핍박이 이루어졌습니다.
행7장에 그냥 지나칠수 없는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절대 무너질수 없는 사마리아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핍박으로 말미암아 그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던 사마리아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베드로도, 사도들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사마리아 성이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성은 지역적인 벽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인들과 상종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하느냐. 유대인들이 가진 사마리아에 대한 생각은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짐승취급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놀란것입니다. 그 정도로 큰 장벽이었는데 스데반의 순교로 무너졌습니다. 사실 이 장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복음은 있었지만 참된 축복을 회복하지 못했고 사마리아성은 영적인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가 나으니. 복음이 사마리아 성에 증거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성의 사단의 장벽이 어떤것인가 보여주는것입니다.
우리 가정과 가문에 개인사업에 뭔가 막혀 있는것들이 있습니까. 저희 집안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복음을 조금 깨닫고 보니 ‘신’가의 문제가 조금씩 보여집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꼼짝도 못하게 합니다. 똥고집으로 여자들을 꼼짝도 못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큰 소리 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배경이 있으면서 그러면 이해가 될것인데 아무것도 없으면서 여자들을 누르는데 이것이 집안의 내력이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어머니를 많이 강압했습니다. 그러면서 무기력한 부분들, 쉽게 낙심하는 부분들, 이것이 우리집안 내력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부 맡을때에 한 지역에 캠프를 갔는데 영적인 문제들을 보았습니다. 다른 지역은 영적문제가 잠재되어있어 드러나지 않아 잘 모르는데 그 지역은 드러나서 불쌍할 정도였습니다. 그 지역은 고인돌(무덤)을 기념하여유니스코에 등록하여 드러내어 문화재로 장려하고 있고, 고창 성읍이 있는데 성 밟기를 하면서 그것을 통해 개인의 잔병들이 떠나도록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주변으로는 무당집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미 드러난 문제들이 한눈에 들어오는것이었습니다. 뭔가 모르게 복음이 증거되지 않아 마치 사마리아 성에 사단의 장벽으로 둘러쌓인 것처럼 우리 개인과 가정에도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무너뜨리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고백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혹시 여러분 가문에 매인 것이 있다면 풀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결박하는 권세와 함께 묶인 것을 푸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사업하는 가운데 한번씩 실패할수는 있지만 늘 그렇다면 뭔가 묶인것입니다. 그리고 가난의 문제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저주다 싶을 정도로 자녀들에게 전달됩니다. 이런 묶인 것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풀어야 합니다. 핍박을 통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절대 해결될 수 없었던 사마리아 성안에 사단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마리아성 안에 복음이 증거되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문들이 구체적으로 열려졌습니다. 절대 무너질수 없는 장벽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게 된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런 축복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5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습니다. 이땅의 개인과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 뭔가 설명할수 없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는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개인과 국가의 저주와 재앙이 왜 임했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가진것과 상관없이 비참함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오게되고 이땅에서 고생하다가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땅에 있는 동안에 불신자 상태-영적문제, 정신문제, 후손문제, 내세문제로 벌벌 떨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다가 저주와 재앙의 끊을 길이 없는것입니다. 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 3:15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요, 뱀의 머리는 사단의 머리입니다. 창6:14 방주안에 들어오는 자는 그 어떤 홍수속에서도 삽니다. 홍수로 다 죽게 될것인데 방주 안에 들어오면 사는것입니다. 방주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것입니다. 출3:18 희생 제사의 비밀을 말했는데 그 사실이 구체화 된 것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입니다. 언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습니까. 희생제사의 비밀을 알때였습니다. 사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하리라. 포로되어 있다면 전쟁에서 힘내어 승리하라고 해야 할것인데 다른말을 합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모든 저주가 끝났습니다.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저주를 받음바 되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십자가에서 짊어지셨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롬8:2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는 빌 2:9-10 땅 위에 있는것과 땅아래 있는 것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 이름이요, 그 이름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문제와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은 주님만 바라보시도록 하는것입니다. 솔직히 뭔가 내가 의지 할 것이 있으면 그것 의지하지 하나님 바라봅니까. 그래서 문제와 사건을 통해 주님만 바라보고 그 영적힘을 회복하여 세상 살리고 정복하도록 주신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이 증거되는 곳에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6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표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병이 낫기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응답받는 것이 힘이 되면 무너집니다. 병을 낫게하는 것은 불신자들도 할수 있습니다. 병 고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고쳤느냐 하는것입니다. 병낫는 응답으로 기뻐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증거되어지니 도저히 해결되어지지 않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7절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눈에 보이는 역사가 일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할때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고 보이지 않는 흑암세력이 꺾이게 되어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흑암의 세력이 꺾여지게 되어있습니다. 보이는 역사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역사. 여러분 가정에서 예배드릴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때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드릴때 어마어마한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영혼에 뿌리내려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이 자리에 있지만 모든 관계된 곳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진행된 역사를 하고 있을것입니다.
스데반이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의 특징입니다. 스데반이 죽으면서 절대 무너질수 없는 사마리아성벽이 무너지고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전도의 문이 열리고 아프리카에도 복음이 증거되고 그 이후에 핍박자 사울이 돌아오는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예배하는 동안에 엄청난 역사를 진행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로 말미암아 8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해방의 기쁨입니다. 병 나아도 참된 평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안식과 평안이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될때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평안함과 참된 기쁨의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어떤 분과 이야기 하는 가운데 자녀의 영적인 문제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예배에 참여하면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마음이 너무 평안하고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마음이 기쁨이 넘쳐나는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꼭 해결되는 것입니까. 내 마음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이 있다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참된 복음 안에서 참 소망을 발견할때에 기쁨과 참 평안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참된 기쁨이 여러분 가정가정마다 넘쳐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참된 기쁨을 현장에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참된 기쁨이 있습니까. 이 사실 당연히 말하게 되는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 모든 저주와 재앙의 문제 해결하시고 나의 참된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그리스도 그 이름 말하기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말한다면 어려울것인데 내가 사실적인 기쁨과 평안이 있다면 편할것입니다. 말하지 않더라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것이 전도라는 사실입니다. 시대적인 핍박과 어려움 당할 때 문제만 보지 마시고 미래를 앞당겨 보는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오히려 문제속에서 영권을 회복하시고 참된 축복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일에 있어서 분명한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먼저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이루어 가시는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실히 붙잡지 못하면 우리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잘 되면 괜찮지만 잘못되면 내가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했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며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무엇을 몰라서 그렇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앞당겨 볼수 있는 눈이 없어서 그런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대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에게 미래를 보는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 우상동네에서 불러내시면서 창12:1-3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복의 근원으로 참된 축복을 얻게 하는 미래에 대한 언약을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셨습니다. 요셉에게도 창 37:1-11 먼저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이 붙잡혀져 감옥에서도 노예생활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목동으로 있을 때에 사무엘을 통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 받으면서 장차 왕될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나가는 걸음속에 다윗의 인생전반이 고통과 어려움이었지만 흔들리지 아니하고 승리하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난주일에 부활주일을 허락하셨는데 부활메세지 전체가 미래를 장악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마28장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이일을 하는 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 바로 미래를 정복하는 메시지입니다. 막16:15-20 너희는 만민에게 가라. 영적 문제가 있는 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치유하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전부 미래를 장악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 우리가 지금 당하는 문제와 사건의 해석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가운데 내게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가 하는 분이 있습니까. 미래를 앞당겨 보는 가운데 가진 문제를 보신다면 그 문제속에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발견되어지고 오히려 감사와 감격이 회복되어집니다. 이 사실을 놓치니 신앙생활하면서 내가 열심히 하는것인데 그것이 종교생활아닙니까. 결국은 실패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기를 목사님 내가 예수 믿었는데 가면 갈수록 더 어렵고 더 힘든데 왜 이럽니까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가지고 당한 문제를 보아야 해답이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 7장의 스데반의 핍박과 죽음을 통해 일어난 문제들, 이것도 미래를 보지 못하면 믿는자에게 왜 이런문제가 있는가 원망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게 된다면 그 속에 귀중한 답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크게 두가지로 말씀드릴것입니다.
첫째가 스데반의 죽음과 초대교회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사마리아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축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볼 것입니다.
오늘 행8장은 보통 역사가 아닙니다. 핍박속에서도 말씀이 더욱 더 증거되어지는 것입니다. 미래를 앞당겨 보는 사람들은 핍박속에서 하나님의 더 큰 축복 바라보며 원망하지 않을 것인데 이 사실 놓치면 문제가 옵니다. 오늘 본문 1절 사울이 그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어느 정도로 핍박이 있었느냐 하니 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무엇 때문에 이런 갑작스런 핍박이 일어났습니까. 행8장에 보니 스데반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정확한 복음을 말하면서 그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이 예수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 않느냐 하는 말에 유대인이 화났습니다. 그 설교로 유대인들이 핍박에 가담하였고 초대교회에 핍박이 이루어졌습니다.
행7장에 그냥 지나칠수 없는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절대 무너질수 없는 사마리아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핍박으로 말미암아 그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던 사마리아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베드로도, 사도들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사마리아 성이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성은 지역적인 벽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인들과 상종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하느냐. 유대인들이 가진 사마리아에 대한 생각은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짐승취급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놀란것입니다. 그 정도로 큰 장벽이었는데 스데반의 순교로 무너졌습니다. 사실 이 장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복음은 있었지만 참된 축복을 회복하지 못했고 사마리아성은 영적인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가 나으니. 복음이 사마리아 성에 증거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성의 사단의 장벽이 어떤것인가 보여주는것입니다.
우리 가정과 가문에 개인사업에 뭔가 막혀 있는것들이 있습니까. 저희 집안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복음을 조금 깨닫고 보니 ‘신’가의 문제가 조금씩 보여집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꼼짝도 못하게 합니다. 똥고집으로 여자들을 꼼짝도 못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큰 소리 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배경이 있으면서 그러면 이해가 될것인데 아무것도 없으면서 여자들을 누르는데 이것이 집안의 내력이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어머니를 많이 강압했습니다. 그러면서 무기력한 부분들, 쉽게 낙심하는 부분들, 이것이 우리집안 내력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부 맡을때에 한 지역에 캠프를 갔는데 영적인 문제들을 보았습니다. 다른 지역은 영적문제가 잠재되어있어 드러나지 않아 잘 모르는데 그 지역은 드러나서 불쌍할 정도였습니다. 그 지역은 고인돌(무덤)을 기념하여유니스코에 등록하여 드러내어 문화재로 장려하고 있고, 고창 성읍이 있는데 성 밟기를 하면서 그것을 통해 개인의 잔병들이 떠나도록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주변으로는 무당집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미 드러난 문제들이 한눈에 들어오는것이었습니다. 뭔가 모르게 복음이 증거되지 않아 마치 사마리아 성에 사단의 장벽으로 둘러쌓인 것처럼 우리 개인과 가정에도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무너뜨리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가 고백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혹시 여러분 가문에 매인 것이 있다면 풀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결박하는 권세와 함께 묶인 것을 푸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사업하는 가운데 한번씩 실패할수는 있지만 늘 그렇다면 뭔가 묶인것입니다. 그리고 가난의 문제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저주다 싶을 정도로 자녀들에게 전달됩니다. 이런 묶인 것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풀어야 합니다. 핍박을 통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절대 해결될 수 없었던 사마리아 성안에 사단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마리아성 안에 복음이 증거되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문들이 구체적으로 열려졌습니다. 절대 무너질수 없는 장벽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게 된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런 축복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5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습니다. 이땅의 개인과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 뭔가 설명할수 없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는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개인과 국가의 저주와 재앙이 왜 임했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가진것과 상관없이 비참함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오게되고 이땅에서 고생하다가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땅에 있는 동안에 불신자 상태-영적문제, 정신문제, 후손문제, 내세문제로 벌벌 떨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다가 저주와 재앙의 끊을 길이 없는것입니다. 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 3:15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요, 뱀의 머리는 사단의 머리입니다. 창6:14 방주안에 들어오는 자는 그 어떤 홍수속에서도 삽니다. 홍수로 다 죽게 될것인데 방주 안에 들어오면 사는것입니다. 방주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것입니다. 출3:18 희생 제사의 비밀을 말했는데 그 사실이 구체화 된 것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입니다. 언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습니까. 희생제사의 비밀을 알때였습니다. 사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하리라. 포로되어 있다면 전쟁에서 힘내어 승리하라고 해야 할것인데 다른말을 합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모든 저주가 끝났습니다.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저주를 받음바 되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십자가에서 짊어지셨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롬8:2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는 빌 2:9-10 땅 위에 있는것과 땅아래 있는 것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 이름이요, 그 이름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문제와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은 주님만 바라보시도록 하는것입니다. 솔직히 뭔가 내가 의지 할 것이 있으면 그것 의지하지 하나님 바라봅니까. 그래서 문제와 사건을 통해 주님만 바라보고 그 영적힘을 회복하여 세상 살리고 정복하도록 주신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이 증거되는 곳에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6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표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병이 낫기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응답받는 것이 힘이 되면 무너집니다. 병을 낫게하는 것은 불신자들도 할수 있습니다. 병 고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고쳤느냐 하는것입니다. 병낫는 응답으로 기뻐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증거되어지니 도저히 해결되어지지 않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7절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눈에 보이는 역사가 일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할때에 성령이 역사하시고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고 보이지 않는 흑암세력이 꺾이게 되어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흑암의 세력이 꺾여지게 되어있습니다. 보이는 역사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역사. 여러분 가정에서 예배드릴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때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드릴때 어마어마한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영혼에 뿌리내려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이 자리에 있지만 모든 관계된 곳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진행된 역사를 하고 있을것입니다.
스데반이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의 특징입니다. 스데반이 죽으면서 절대 무너질수 없는 사마리아성벽이 무너지고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전도의 문이 열리고 아프리카에도 복음이 증거되고 그 이후에 핍박자 사울이 돌아오는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예배하는 동안에 엄청난 역사를 진행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로 말미암아 8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해방의 기쁨입니다. 병 나아도 참된 평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안식과 평안이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될때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평안함과 참된 기쁨의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어떤 분과 이야기 하는 가운데 자녀의 영적인 문제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예배에 참여하면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마음이 너무 평안하고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마음이 기쁨이 넘쳐나는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꼭 해결되는 것입니까. 내 마음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이 있다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참된 복음 안에서 참 소망을 발견할때에 기쁨과 참 평안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참된 기쁨이 여러분 가정가정마다 넘쳐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참된 기쁨을 현장에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참된 기쁨이 있습니까. 이 사실 당연히 말하게 되는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 모든 저주와 재앙의 문제 해결하시고 나의 참된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그리스도 그 이름 말하기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말한다면 어려울것인데 내가 사실적인 기쁨과 평안이 있다면 편할것입니다. 말하지 않더라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것이 전도라는 사실입니다. 시대적인 핍박과 어려움 당할 때 문제만 보지 마시고 미래를 앞당겨 보는 눈이 열리길 바랍니다. 오히려 문제속에서 영권을 회복하시고 참된 축복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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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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