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혜
2005-08-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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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살릴 선교사입니다.
몇주간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다가 오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자리가 허전한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하나홀에서는 꽉차다가 여기에 들어와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좀 있습니다. 속히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메시지를 들고 율법과 은혜라고 제목을 잡았습니다. 이 메시지가 나가게 되는 배경 속에는 신학적인 원리가 숨어있기 때문에 주일 강단에서 그 원리를 말하기는 그렇고, 메시지를 하는 중에서 율법과 은혜가 저절로 설명되어지길 원합니다. 메시지를 들을때에 하나님이 은혜로 자신 개인개인이 은혜받는 시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율법과 은혜라는 제목으로 이 강단에 섰습니다. 사실상 어렵고 힘든 난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은혜로 살고 어떻게 살아야 율법으로 사느냐? 그 한계가 어디까지냐? 누구에게도 이 질문이 마음에서 시원하게 답해지는 일이 없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메시지듣는 동안에 율법이 무엇이고, 은혜가 무엇인가 저절로 설명되어지는 시간이 되게 해주옵시고,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처음 온 자나 어린 아이나 오래된 자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고 역사되는 승리의 역사가 있게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루어지고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영광을 주 앞에 돌립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군문으로, 직장으로 학창으로 나가 있는 자들, 멀리 외국에 나가있는 자들에게 같은 은혜주시옵소서. 어디있던지 참 복음의 눈이 열리며 복음을 통해서 진실한 감사가 날마다 삶에서 터져나오는 기쁨있도록 은혜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지금까지 들은 메시지의 결론이 되겠고, 그 결론 속에서 여러분과 제게 실제로 얼마나 적용이 되는가?하는 것이 오늘 설교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깨닫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압니다. 마음에 베어있을 줄 압니다. 그것이 주권입니다. 이 주권은 끝이 없습니다. 지난 과거에도 끝이 없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시간이 되면 이 세상 생활에서 불러세워서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또 하나님이 은혜주신 자들을 끝까지 보장해주신다. 이것이 주권의 개념입니다. 이것이 어떤 면에서 우리 나라의 운명개념과 같이 설명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것은 망하는 시간표이고, 하나님의 계획은 복을 받는 시간표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복음없이 무엇을 하면 할수록,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끝에 가서는 영원한 지옥과 멸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사단이 가는 그곳을 그들도 함께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작은 멸망과 죽음이지만, 그 비참이 영광으로 바꾸어집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선택 속에서 나타나는 구원입니다. 그 멸망과 죽음과 영원한 고통속에 있어야 할 여러분과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고 마음을 갖고 묵상해야 할 부분이 구원문제입니다. 이게 영원전부터 여러분과 저에게는 구원에 하나님의 주권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나기도 전에 계획하셨다. 그래서 나기도 전에 벌써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약속하셨다. 구약의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약의 그 약속된 메시야를 보냈다. 구약에는 메시야의 그림자만 붙들어도 구원받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경우 제사제도, 피 흘리는 제도를 세웠습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에는 꼭 양의 피, 심지어는 비둘기의 피라도 흘려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 피 흘리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게 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실체가 오셨습니다. 그 실체가 어디서 이 축복의 역사를 완성하느냐? 십자가에서 실제로 피를 흘려주심으로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약속의 직책을 완수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이 믿는다의 시초입니다. 그래서 어저께 핵심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복음이해가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복음이해는 듣기 싫어도 늘 들어야 합니다. 왜 듣기 싫으냐? 이해가 안되었다. 이해가 되었다 정도가 아니라 복음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기도가 진행되기 시작하고 기도가 체험되면 더 하나님의 인도가 실제로 체험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되기까지 귀가 따갑고 싫도록 계속하라. 이것이 어저께 핵심 메시지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시작하면 이 말부터 하고 시작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 이 구원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다섯가지 기둥. 칼빈주의. 칼빈주의라기보다도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전적인 타락입니다. 쓸모없는 인간들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 직분자, 중직자들 하나님 앞에 진짜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깨닫는 능력도 없고 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이 복음이 되어야 진실한 헌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정말 주의 일을 하면서 내 생애를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는 그러한 헌신의 개념이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만 일하면 다른 것이 나오고 이상한 것이 나옵니다. 이 사실이 비로소 이루어져야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이 구원의 역사를 누리면서 다음부터 하나님의 인도로 출발이 됩니다. 출발되기 직전에 나라는 부분을 진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계속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는 사람을, 나라는 인간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고 할 때에 첫 번째로 무능자다! 여러분과 저는 무능자입니다. 무능자 정도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의 축복과 역사를 누리게 하였다. 이것은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무능자.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속에서 여러분과 저를 헌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웠다. 진짜 기적 정도가 아닙니다. 늘 감사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어쩌다가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성가대가 되었고, 장로가 되었습니까? 무능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 그렇게 세워졌다? 이것이 안되면 교회 헌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하나님의 인도가 되어지지 않습니다. 나를 보는 눈이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의 시작이 나를 보는 눈입니다.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첫 번째로 나를 보는 눈입니다. 구원받았는데 이것이 열리지 않았다고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병들어 있거나 구원이라는 사실 자체를 이해를 못했거나 체험이 안되었거나 이런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잘 안되어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다음으로 오는 것이 갈라디아 2장 20절이 와야 해결이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안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서 시작이 되었다. 여기에서 여러분과 제가 모든 문제가 풀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때에 모든 문제가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저주와 재앙이 그냥 완전 끝났다?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 체질이 안되어서 사단의 역사와 계속 같이 노는 체질이 되지 않고 이것이 되고 이것이 되지 않으면 나라는 축복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속에서 와야하는 것이 내 모든 저주와 재앙. 그리고 모든 것은 끝났다. 모든 어두운 것들을 끝났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이 좋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 안되면 누림이 안되고 구원이 되질 않습니다. 구원받은 후에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되면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무슨 계획이냐? 내가 어려움당했다고 할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이구나. 이것이 보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게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시기 위한 귀중한 과정을 주셨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보여지기 시작해야합니다. 조금만 문제오면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합니까? 이렇게 나가면 구원이라는 사실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사실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합니까? 그보다 더 어려워야 정신을 차릴지 모릅니다. 여러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안되면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고해도 절대로 못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이 바탕속에서 구원과 나라는 눈이 열리게 될 때에 모든 것이 나에게 닥쳐오는 문제와 시험들이라도 어렵다 힘들다가 아니라 전부 하나님이 나를 일으키시기위한 축복해주시기 위한 계획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구체적으로 확립되어 질 때 자연적으로 복음안에서 누린다는 것은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누린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누린다고 하는 사람 중에 내 눈에 정말 누린다 정말 저 사람이 누릴까 하는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진짜 누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복음이 되면 그런 열매가 안나옵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면 이것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나라는 것,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열심히 할 수록 신비주의로 빠집니다. 신앙의 중심이 그렇게 빠집니다. 열심히 할 수록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앞의 나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할 수록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에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배우는 도중에 왜 우상에게 절하고 기도해도 응답이 오는냐 왜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는데도 기도하고 열심히 하는데 왜 응답이 오는가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응당히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 속에 살고 우상사상 안에 열심히하면 응답이 와도 누구의 응답이냐하면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종교생활 하는데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옵니다. 그것이 응답을 받고난 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 뒤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생활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자가 하나님 앞에 기도가 되어지는 역사가 이루어질때야 내가 이 자리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저절로 축복하시는 역사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체질과 삶을 바꿔가면서 인도를 받느냐 여기에 우리 모든 응답이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나옵니다. 믿은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된다면 정말 축복입니다. 감사해야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믿은 사람이 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문제는 이런 신비주의의 역사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이 율법주의 그 내용이 우리 예수님의 설명 속에 잠깐 담겨져 있습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은 일과 사건이 생기면 일단 남을 판단하는 눈이 열립니다. 나는 안보이니까 내가 주인이 바로 안되어있으니까 일단 남을 판단합니다. 그런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판단할 때 나를 봐라 다른 사람에게 뒷끝를 보기 전에 내한테 들보를 봐라 이 문제가 성경에 계속 나오는 문제입니다. 복음이 되었다 복음을 누린다하면 일단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나에게 왜 이런 문제가 생기나고 하면서 나를 보는 눈이 열립니다. 모든 사건 속에서 나를 보는 눈이 안보이고 율법으로 살아왔고 성장해오는 과정에 있다면 참 문제인 것이 결국에는 원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많은 사람에게 대하면서 교회를 지금까지 지켜오면서 느끼는 것은 거의가 사람들이 은혜를 원망으로 바꾸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사람을 키워놓으면 결국 그 사람은 배신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키우는 것이 무섭다 차라리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괜찮은데 사람을 키우는 것이 겁난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저는 많은 경우 우리 교회에서 은혜를 잘 받고 신앙적으로 성장해 왔는데도 어느순간 적은 문제 작은 문제가 부딪히면 내가 왜 이런 문제를 생겼느냐 하나님이 왜 이런 문제를 주었는가 그러면서 나를 봐야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서 축복은혜 속에 세워졌는가를 감사해야합니다. 원망으로 나왔다면 그러면 당장 흑암에게 붙잡힙니다. 그 열매가 결국 잘 커서도 사단의 인도를 받는 비참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사단의 통로가 되느냐는 자기합리화.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이를 고쳐야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문제가 생기면 잘했다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바로 서게되면 나오는 것이 나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이 점이 잘못되었구나를 알아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제가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잘못된 문제를 지적해줘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을 못느낍니다. 그것이 사단의 통로가 이미 열렸습니다. 그 역사의 배경은 자연적으로 같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오래 묵었으나 중직자나 새신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의 통로가 열려지면 지혜가 어두워지고 다른 열매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정말 피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은혜를 받아야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자연적으로 인본주의로 그 다음에 설명할 것도 없이 자만주의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 다음에 패배주의 이 위의 것이 내려오면서 결과가 패배주의 낙심하게 됩니다. 신앙에 낙심이 들어가면 바로 사단이 역사합니다. 낙심은 불신앙 중의 불신앙입니다, 낙심이 따라오면 절대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흑암의 역사가 바로 들어오게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한다고 하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우리는 낙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해서는 안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낙심, 불신앙하니까 낙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인데 낙심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무리 실패 속에 들어갔다할지라도 또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면 되는데 이것이 안된다는 하나님은 진짜 그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사단은 금방 좋아해서 옛날 나랑 친구였는데 이제야 돌아오느냐 어서오라고 합니다. 패배주의 낙심입니다. 그러니까 무능해 지는 것을 알고 갈라디아2장 20절을 알고 나게되면 모든 것이 전부 내게 일어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다 낙심될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 이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제가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정말 내게 낙심이 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속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붙잡았습니다. 끝까지 낙심이 들어오면 물리치면 은혜로 낙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죽으면 천당에 가는 것이고 안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단한 생각속에서 나를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그냥 듣고 넘기기 쉬운데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정말 부닥치는 내용입니다. 바로 나라는 것에 눈이 열리면 여기에 오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는데 이제 말씀한 것처럼 그런 어떠한 배경을 바로 깨닫고 내가 누구냐 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눈이 뜨이게 되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낙심하게 되면 성령의 인도를 받다가도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이 빗나갑니다. 떨어져서 죽을 때가 되면 또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간신히 일어납니다. 이것이 늘 반복이 됩니다. 근데 이것이 어느정도 떨어졌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는 시간이 있다가 떨어지면 괜찮은데 금방 떨어집니다. 냄비처럼 바르르 끓었다가 식었다고 또 끓었다가 식었다가 참 하나님이 인간을 보실 때에 오래참으신다는 그 말이 참 위대한 말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저 인간은 될 수가 없다 벌써 내팽겨칩니다. 벌써 이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도록 내 쫒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시니까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정말 인간의 본성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냥 오다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그러다가 어느 수준에 오면 어느 수준에서 어느 정도 이어진다는 것은 나를 구체적으로 이제 보게 될 때에 내가 나를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는 은혜없이는 못하는 구나를 알게되고 기도하게 되고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가 되어집니다. 이것이 깨어지면 금방이다는 것을 다른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다른 곳으로 빠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7렘넌트를 비교하면서 어느 사람도 환경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셉도 그러했고 다윗도 그랬고 어떤 의미에서 가장 악한 환경 속에서 너끈히 이겨나가는 것이 나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구체적인 역사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면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면 나라는 존재가 저절로 서게되는 배경은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서게됩니다.중직자 훈련을 받고 있는데 시험을 쳐서 임직을 받게 됩니다. 한시간 맡으라 하던데 맡게되면 이런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람이 뽑았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절대로 하나님앞에 서야 그가 지속적으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금방 사단의 인도를 받아요 그사람들이 사단의 인도를 받으면 어떤사람보다 무섭습니다.사단이 교회에 누구를 가장 먼저 공격하느냐 첫째로는 목사요 둘째는 당회요 세 번째는 집사요
그런데 제가 많이 느끼는것은 당회가 사단의 공격을 많이 받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가 다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회원들은 당회할 때 진짜 기도하고 여러분들도 당회한다고 그럴때 그날 진짜 기도해주세요.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인간의 역사로 희안한 일들이 다 나옵니다. 여기에서 다나오죠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자만주의 패배주의 다 나옵니다. 시간갈수록 많이 느낍니다.
하나님앞에 서라! 내가 뽑힌것은 목사님이 도와줘서 뽑혔다? 절대로 아닙니다.내가 떨어진것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뽑히지 않았다? 아닙니다. 투표하고 나가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하나님앞에 못섰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앞에 설때 당연스럽게 사람 자연적으로 사람 앞에. 어느 사람앞에 서던지 깨끗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서는 것이 이해가 되고 사실이 되어야 사람 앞에 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삶과 생활과 사람이 멋이 있어야 한다. 그 인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품이 세계복음화의 인품입니다. 바울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인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세계복음화라고 하면서 희한한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라도 좋습니다만, 행동도 이상하게 합니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되면 아무렇게나 살면 되는 줄 압니다. 복음의 인격은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받으면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사람 앞에 떳떳히 서야 합니다. 다음으로 사람앞에 서면 사단앞에 서야 합니다. 사단앞에서 설설 기는 사람은 앞에서 아무리 잘되었다고 하여도 삶이 사단에 이용물이 되고 맙니다. 사단앞에 섰을 때에 사단이 겁나서 금방 도망가는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사단이 벌벌 떨면서 절대로 범접하지 못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오는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사단 앞에서. 사단 앞에 선다고 할 때에는 사단 앞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나를 보고 금방 떠나는, 정말 저 사람과 나는 같이 가까이도 못하겠다. 이렇게 되어져야 결국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계속해서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나라는 것이 바로되어서 나가면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 5가지 확신입니다. 말로 앵무새처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와 지는 것입니다. 다섯가지 확신 속에서 구원의 확신이 첫 번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나라는 것에 대한 눈에 열립니다. 구원이 되면 갈라디아서 2:20 이 초점입니다. 나라는 인간은 바울처럼 날마다 죽노라. 나라는 것이 얼마나 무능하고 하나님 앞에 인도받는 일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깊어질 수록 나를 보는 눈이 열립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볼때에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열리지게 될 때에 잘못했다. 잘했다.는 율법적인 시각에서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때에 은혜의 시각에서 보여집니다. 저 사람이 저렇다. 자기를 보면서 얼마나 괴롭겠느냐? 정말 사단의 손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느냐? 이런 눈이 열려야 하는데, 저 사람이 저렇다고 할 때에 때려죽일 놈이다는 식으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나라는 눈이 열려지게 되고 성령의 계속적인 인도를 받는. 그러면서 자칫 성령의 인도를 놓치게 되는 배경이 나라는 눈이 잘못 자기 욕심이나 자만이나 패배주의나 낙심으로 떨어질 때에 이것이 떨어집니다. 금방 다른 곳으로 빠집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설수가 없습니다. 말은 주권주권하면서도 따라가는 것 같이 하면서도 결국은 떨어집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서 성령의 인도받는 제일 중요한 것이 나를 보는 눈이 열리고 다른 사람 보는 눈이 비로소 열려지게 될 때입니다. 교회에 제일 큰 문제가 나를 보고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을 감사합니다. 문제가 안되는데. 결국은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어떻게 저 사람이 저럴 수가 있느냐?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목사에게 상처를 받고, 사모에게 상처를 받고 장로에게 상처를 받고 장로끼리 상처를 받는 것은 이것이 안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 자리에 세운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상처가 올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상쇄할 정도가 아닙니다. 그때 나오는 것이 이들로 성령의 인도받고 할 때에 감사라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할 때에 원망이 나왔다? 사단의 배경입니다. 그 사람이 그때부터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전부다 사단의 이용물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이 배경을 바로 봐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사단 앞에. 이것이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 다섯가지 확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확신! 요한복음 1:12.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 권세를 주었다는 말을 상당히 재미있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푼수다. 권세를 푼수로, 수준으로, 자격으로 이해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푼수라고 하면 반필을 푼수라고 합니다. 이것을 잘 이해를 못하면 자기의 수준에 맞는 푼수, 분수. 이것이 사투리인데 사투리 개념이 잘 안되면 이해가 잘 안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자리에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흑암에 대해서 꺾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권세가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권세라기 부르기 보다는 푼수다. 그렇게 이해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때부터 기도의 눈이 열립니다. 기도의 확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 그러면 할 말이 없죠? 모든 문제가 그곳에서 다 끝나는 것입니다. 계시록 8:3-5.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기도가 체험되기 시작하면 비로소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가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가 보여집니까? 그럼 문제가 달라집니다. 걱정, 근심,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해결이 다됩니다. 그뿐 아니라 내게 연약하고 잘못된 부분이 사람마다 많습니다. 그때마다 내 부족한 것 하나님 앞에 내 놓습니다. 그런데, 잘못 이해하면 나라는 것에 대해서 죄책으로 나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오.라고 하면 죄책이 될 수 있습니다. 내탓이오!라고 하면 모든 짐을 자기 혼자 지는 것 같습니다.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죽일 놈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죄의 하나님입니다. 사죄의 확인! 하나님 앞에 나가면 실패와 멸망 속에서도 구원해주신다.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렘넌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이해시켜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 어떠한 실패가 와도 하나님 나갈 수 있도록! 성공과 실패는 바로 거기에 달려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결국 이런 사람들은 승리하게 됩니다. 다섯가지 확인의 마지막은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 와서도 하나님의 계획이요. 여러분 앞에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떤 시험과 환란, 걱정, 문제가 와도 그곳에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승리의 확인!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망할 수가 없습니다. 망해야될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망할 수 없는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감사해야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정말 내 속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해도 불평하는 인간은 벌써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다른 것에 인도받는 문이 열려버렸습니다. 내 자신을 보면서 어떤 문제를 당하던지. 주여! 감사합니다. 그런 문제를 당할때에 나를 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정신차려서 서보니 이 엄청난 자리에 세운 것 감사합니다.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불평한 자신을 하나님이 불평하십니다. 머 저런 인간이 있어! 정말 하나님의 역사. 구원에 대해서, 주권에 대해서 마지막 흑판에 쓰면서 쉽게 여러분의 두뇌에 남아있으라고 이것도 그리고 저것도 그리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 저를 놓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승리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이것도 믿을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믿어지는 귀중한 은혜가 여러분과 제게 넘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실패할 수 없는 인간으로 구원의 역사속에 세운 축복의 인간으로 우리는 불평할 수 없는 인간의 자리에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역사 속에서 주님의 뜻이 확실히 이루어지고 그 영광 속에서 주의 종들 영원까지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주의 역사 오늘도 복음을 듣고 돌아가는 자들에게 새 힘으로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로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몇주간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다가 오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자리가 허전한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하나홀에서는 꽉차다가 여기에 들어와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좀 있습니다. 속히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메시지를 들고 율법과 은혜라고 제목을 잡았습니다. 이 메시지가 나가게 되는 배경 속에는 신학적인 원리가 숨어있기 때문에 주일 강단에서 그 원리를 말하기는 그렇고, 메시지를 하는 중에서 율법과 은혜가 저절로 설명되어지길 원합니다. 메시지를 들을때에 하나님이 은혜로 자신 개인개인이 은혜받는 시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율법과 은혜라는 제목으로 이 강단에 섰습니다. 사실상 어렵고 힘든 난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은혜로 살고 어떻게 살아야 율법으로 사느냐? 그 한계가 어디까지냐? 누구에게도 이 질문이 마음에서 시원하게 답해지는 일이 없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오늘 메시지듣는 동안에 율법이 무엇이고, 은혜가 무엇인가 저절로 설명되어지는 시간이 되게 해주옵시고,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처음 온 자나 어린 아이나 오래된 자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고 역사되는 승리의 역사가 있게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루어지고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영광을 주 앞에 돌립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군문으로, 직장으로 학창으로 나가 있는 자들, 멀리 외국에 나가있는 자들에게 같은 은혜주시옵소서. 어디있던지 참 복음의 눈이 열리며 복음을 통해서 진실한 감사가 날마다 삶에서 터져나오는 기쁨있도록 은혜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지금까지 들은 메시지의 결론이 되겠고, 그 결론 속에서 여러분과 제게 실제로 얼마나 적용이 되는가?하는 것이 오늘 설교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깨닫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압니다. 마음에 베어있을 줄 압니다. 그것이 주권입니다. 이 주권은 끝이 없습니다. 지난 과거에도 끝이 없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시간이 되면 이 세상 생활에서 불러세워서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또 하나님이 은혜주신 자들을 끝까지 보장해주신다. 이것이 주권의 개념입니다. 이것이 어떤 면에서 우리 나라의 운명개념과 같이 설명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것은 망하는 시간표이고, 하나님의 계획은 복을 받는 시간표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복음없이 무엇을 하면 할수록,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끝에 가서는 영원한 지옥과 멸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사단이 가는 그곳을 그들도 함께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작은 멸망과 죽음이지만, 그 비참이 영광으로 바꾸어집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선택 속에서 나타나는 구원입니다. 그 멸망과 죽음과 영원한 고통속에 있어야 할 여러분과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고 마음을 갖고 묵상해야 할 부분이 구원문제입니다. 이게 영원전부터 여러분과 저에게는 구원에 하나님의 주권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나기도 전에 계획하셨다. 그래서 나기도 전에 벌써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약속하셨다. 구약의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약의 그 약속된 메시야를 보냈다. 구약에는 메시야의 그림자만 붙들어도 구원받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경우 제사제도, 피 흘리는 제도를 세웠습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에는 꼭 양의 피, 심지어는 비둘기의 피라도 흘려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 피 흘리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게 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실체가 오셨습니다. 그 실체가 어디서 이 축복의 역사를 완성하느냐? 십자가에서 실제로 피를 흘려주심으로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약속의 직책을 완수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이 믿는다의 시초입니다. 그래서 어저께 핵심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복음이해가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복음이해는 듣기 싫어도 늘 들어야 합니다. 왜 듣기 싫으냐? 이해가 안되었다. 이해가 되었다 정도가 아니라 복음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기도가 진행되기 시작하고 기도가 체험되면 더 하나님의 인도가 실제로 체험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되기까지 귀가 따갑고 싫도록 계속하라. 이것이 어저께 핵심 메시지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시작하면 이 말부터 하고 시작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 이 구원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다섯가지 기둥. 칼빈주의. 칼빈주의라기보다도 이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전적인 타락입니다. 쓸모없는 인간들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 직분자, 중직자들 하나님 앞에 진짜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깨닫는 능력도 없고 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이 복음이 되어야 진실한 헌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정말 주의 일을 하면서 내 생애를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는 그러한 헌신의 개념이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만 일하면 다른 것이 나오고 이상한 것이 나옵니다. 이 사실이 비로소 이루어져야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이 구원의 역사를 누리면서 다음부터 하나님의 인도로 출발이 됩니다. 출발되기 직전에 나라는 부분을 진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계속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는 사람을, 나라는 인간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고 할 때에 첫 번째로 무능자다! 여러분과 저는 무능자입니다. 무능자 정도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의 축복과 역사를 누리게 하였다. 이것은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무능자.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속에서 여러분과 저를 헌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웠다. 진짜 기적 정도가 아닙니다. 늘 감사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어쩌다가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성가대가 되었고, 장로가 되었습니까? 무능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 그렇게 세워졌다? 이것이 안되면 교회 헌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하나님의 인도가 되어지지 않습니다. 나를 보는 눈이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의 시작이 나를 보는 눈입니다.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첫 번째로 나를 보는 눈입니다. 구원받았는데 이것이 열리지 않았다고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병들어 있거나 구원이라는 사실 자체를 이해를 못했거나 체험이 안되었거나 이런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잘 안되어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다음으로 오는 것이 갈라디아 2장 20절이 와야 해결이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안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서 시작이 되었다. 여기에서 여러분과 제가 모든 문제가 풀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때에 모든 문제가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저주와 재앙이 그냥 완전 끝났다?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 체질이 안되어서 사단의 역사와 계속 같이 노는 체질이 되지 않고 이것이 되고 이것이 되지 않으면 나라는 축복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속에서 와야하는 것이 내 모든 저주와 재앙. 그리고 모든 것은 끝났다. 모든 어두운 것들을 끝났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이 좋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 안되면 누림이 안되고 구원이 되질 않습니다. 구원받은 후에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되면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무슨 계획이냐? 내가 어려움당했다고 할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이구나. 이것이 보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게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시기 위한 귀중한 과정을 주셨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보여지기 시작해야합니다. 조금만 문제오면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합니까? 이렇게 나가면 구원이라는 사실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사실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합니까? 그보다 더 어려워야 정신을 차릴지 모릅니다. 여러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안되면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고해도 절대로 못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이 바탕속에서 구원과 나라는 눈이 열리게 될 때에 모든 것이 나에게 닥쳐오는 문제와 시험들이라도 어렵다 힘들다가 아니라 전부 하나님이 나를 일으키시기위한 축복해주시기 위한 계획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구체적으로 확립되어 질 때 자연적으로 복음안에서 누린다는 것은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누린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누린다고 하는 사람 중에 내 눈에 정말 누린다 정말 저 사람이 누릴까 하는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진짜 누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복음이 되면 그런 열매가 안나옵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면 이것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나라는 것,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열심히 할 수록 신비주의로 빠집니다. 신앙의 중심이 그렇게 빠집니다. 열심히 할 수록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앞의 나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할 수록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에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배우는 도중에 왜 우상에게 절하고 기도해도 응답이 오는냐 왜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는데도 기도하고 열심히 하는데 왜 응답이 오는가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응당히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 속에 살고 우상사상 안에 열심히하면 응답이 와도 누구의 응답이냐하면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종교생활 하는데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옵니다. 그것이 응답을 받고난 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 뒤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생활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자가 하나님 앞에 기도가 되어지는 역사가 이루어질때야 내가 이 자리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저절로 축복하시는 역사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느냐 되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체질과 삶을 바꿔가면서 인도를 받느냐 여기에 우리 모든 응답이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나옵니다. 믿은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된다면 정말 축복입니다. 감사해야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믿은 사람이 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문제는 이런 신비주의의 역사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이 율법주의 그 내용이 우리 예수님의 설명 속에 잠깐 담겨져 있습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은 일과 사건이 생기면 일단 남을 판단하는 눈이 열립니다. 나는 안보이니까 내가 주인이 바로 안되어있으니까 일단 남을 판단합니다. 그런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판단할 때 나를 봐라 다른 사람에게 뒷끝를 보기 전에 내한테 들보를 봐라 이 문제가 성경에 계속 나오는 문제입니다. 복음이 되었다 복음을 누린다하면 일단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나에게 왜 이런 문제가 생기나고 하면서 나를 보는 눈이 열립니다. 모든 사건 속에서 나를 보는 눈이 안보이고 율법으로 살아왔고 성장해오는 과정에 있다면 참 문제인 것이 결국에는 원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많은 사람에게 대하면서 교회를 지금까지 지켜오면서 느끼는 것은 거의가 사람들이 은혜를 원망으로 바꾸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사람을 키워놓으면 결국 그 사람은 배신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키우는 것이 무섭다 차라리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괜찮은데 사람을 키우는 것이 겁난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저는 많은 경우 우리 교회에서 은혜를 잘 받고 신앙적으로 성장해 왔는데도 어느순간 적은 문제 작은 문제가 부딪히면 내가 왜 이런 문제를 생겼느냐 하나님이 왜 이런 문제를 주었는가 그러면서 나를 봐야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서 축복은혜 속에 세워졌는가를 감사해야합니다. 원망으로 나왔다면 그러면 당장 흑암에게 붙잡힙니다. 그 열매가 결국 잘 커서도 사단의 인도를 받는 비참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사단의 통로가 되느냐는 자기합리화. 어떤 문제가 있어도 이를 고쳐야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문제가 생기면 잘했다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바로 서게되면 나오는 것이 나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이 점이 잘못되었구나를 알아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제가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잘못된 문제를 지적해줘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을 못느낍니다. 그것이 사단의 통로가 이미 열렸습니다. 그 역사의 배경은 자연적으로 같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오래 묵었으나 중직자나 새신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의 통로가 열려지면 지혜가 어두워지고 다른 열매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정말 피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은혜를 받아야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자연적으로 인본주의로 그 다음에 설명할 것도 없이 자만주의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 다음에 패배주의 이 위의 것이 내려오면서 결과가 패배주의 낙심하게 됩니다. 신앙에 낙심이 들어가면 바로 사단이 역사합니다. 낙심은 불신앙 중의 불신앙입니다, 낙심이 따라오면 절대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흑암의 역사가 바로 들어오게됩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한다고 하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우리는 낙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해서는 안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낙심, 불신앙하니까 낙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인데 낙심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무리 실패 속에 들어갔다할지라도 또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면 되는데 이것이 안된다는 하나님은 진짜 그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사단은 금방 좋아해서 옛날 나랑 친구였는데 이제야 돌아오느냐 어서오라고 합니다. 패배주의 낙심입니다. 그러니까 무능해 지는 것을 알고 갈라디아2장 20절을 알고 나게되면 모든 것이 전부 내게 일어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다 낙심될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 이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제가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정말 내게 낙심이 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속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붙잡았습니다. 끝까지 낙심이 들어오면 물리치면 은혜로 낙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죽으면 천당에 가는 것이고 안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단한 생각속에서 나를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그냥 듣고 넘기기 쉬운데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정말 부닥치는 내용입니다. 바로 나라는 것에 눈이 열리면 여기에 오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는데 이제 말씀한 것처럼 그런 어떠한 배경을 바로 깨닫고 내가 누구냐 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눈이 뜨이게 되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낙심하게 되면 성령의 인도를 받다가도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이 빗나갑니다. 떨어져서 죽을 때가 되면 또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간신히 일어납니다. 이것이 늘 반복이 됩니다. 근데 이것이 어느정도 떨어졌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는 시간이 있다가 떨어지면 괜찮은데 금방 떨어집니다. 냄비처럼 바르르 끓었다가 식었다고 또 끓었다가 식었다가 참 하나님이 인간을 보실 때에 오래참으신다는 그 말이 참 위대한 말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저 인간은 될 수가 없다 벌써 내팽겨칩니다. 벌써 이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도록 내 쫒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시니까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정말 인간의 본성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냥 오다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그러다가 어느 수준에 오면 어느 수준에서 어느 정도 이어진다는 것은 나를 구체적으로 이제 보게 될 때에 내가 나를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는 은혜없이는 못하는 구나를 알게되고 기도하게 되고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가 되어집니다. 이것이 깨어지면 금방이다는 것을 다른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다른 곳으로 빠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7렘넌트를 비교하면서 어느 사람도 환경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셉도 그러했고 다윗도 그랬고 어떤 의미에서 가장 악한 환경 속에서 너끈히 이겨나가는 것이 나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구체적인 역사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면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면 나라는 존재가 저절로 서게되는 배경은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서게됩니다.중직자 훈련을 받고 있는데 시험을 쳐서 임직을 받게 됩니다. 한시간 맡으라 하던데 맡게되면 이런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람이 뽑았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절대로 하나님앞에 서야 그가 지속적으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금방 사단의 인도를 받아요 그사람들이 사단의 인도를 받으면 어떤사람보다 무섭습니다.사단이 교회에 누구를 가장 먼저 공격하느냐 첫째로는 목사요 둘째는 당회요 세 번째는 집사요
그런데 제가 많이 느끼는것은 당회가 사단의 공격을 많이 받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가 다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회원들은 당회할 때 진짜 기도하고 여러분들도 당회한다고 그럴때 그날 진짜 기도해주세요.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인간의 역사로 희안한 일들이 다 나옵니다. 여기에서 다나오죠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자만주의 패배주의 다 나옵니다. 시간갈수록 많이 느낍니다.
하나님앞에 서라! 내가 뽑힌것은 목사님이 도와줘서 뽑혔다? 절대로 아닙니다.내가 떨어진것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뽑히지 않았다? 아닙니다. 투표하고 나가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하나님앞에 못섰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앞에 설때 당연스럽게 사람 자연적으로 사람 앞에. 어느 사람앞에 서던지 깨끗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서는 것이 이해가 되고 사실이 되어야 사람 앞에 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삶과 생활과 사람이 멋이 있어야 한다. 그 인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품이 세계복음화의 인품입니다. 바울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인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세계복음화라고 하면서 희한한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라도 좋습니다만, 행동도 이상하게 합니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되면 아무렇게나 살면 되는 줄 압니다. 복음의 인격은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받으면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사람 앞에 떳떳히 서야 합니다. 다음으로 사람앞에 서면 사단앞에 서야 합니다. 사단앞에서 설설 기는 사람은 앞에서 아무리 잘되었다고 하여도 삶이 사단에 이용물이 되고 맙니다. 사단앞에 섰을 때에 사단이 겁나서 금방 도망가는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사단이 벌벌 떨면서 절대로 범접하지 못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오는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사단 앞에서. 사단 앞에 선다고 할 때에는 사단 앞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나를 보고 금방 떠나는, 정말 저 사람과 나는 같이 가까이도 못하겠다. 이렇게 되어져야 결국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계속해서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나라는 것이 바로되어서 나가면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 5가지 확신입니다. 말로 앵무새처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와 지는 것입니다. 다섯가지 확신 속에서 구원의 확신이 첫 번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나라는 것에 대한 눈에 열립니다. 구원이 되면 갈라디아서 2:20 이 초점입니다. 나라는 인간은 바울처럼 날마다 죽노라. 나라는 것이 얼마나 무능하고 하나님 앞에 인도받는 일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깊어질 수록 나를 보는 눈이 열립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볼때에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열리지게 될 때에 잘못했다. 잘했다.는 율법적인 시각에서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때에 은혜의 시각에서 보여집니다. 저 사람이 저렇다. 자기를 보면서 얼마나 괴롭겠느냐? 정말 사단의 손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느냐? 이런 눈이 열려야 하는데, 저 사람이 저렇다고 할 때에 때려죽일 놈이다는 식으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나라는 눈이 열려지게 되고 성령의 계속적인 인도를 받는. 그러면서 자칫 성령의 인도를 놓치게 되는 배경이 나라는 눈이 잘못 자기 욕심이나 자만이나 패배주의나 낙심으로 떨어질 때에 이것이 떨어집니다. 금방 다른 곳으로 빠집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설수가 없습니다. 말은 주권주권하면서도 따라가는 것 같이 하면서도 결국은 떨어집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서 성령의 인도받는 제일 중요한 것이 나를 보는 눈이 열리고 다른 사람 보는 눈이 비로소 열려지게 될 때입니다. 교회에 제일 큰 문제가 나를 보고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을 감사합니다. 문제가 안되는데. 결국은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어떻게 저 사람이 저럴 수가 있느냐?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목사에게 상처를 받고, 사모에게 상처를 받고 장로에게 상처를 받고 장로끼리 상처를 받는 것은 이것이 안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 자리에 세운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상처가 올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상쇄할 정도가 아닙니다. 그때 나오는 것이 이들로 성령의 인도받고 할 때에 감사라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할 때에 원망이 나왔다? 사단의 배경입니다. 그 사람이 그때부터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전부다 사단의 이용물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이 배경을 바로 봐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사단 앞에. 이것이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 다섯가지 확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확신! 요한복음 1:12.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 권세를 주었다는 말을 상당히 재미있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푼수다. 권세를 푼수로, 수준으로, 자격으로 이해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푼수라고 하면 반필을 푼수라고 합니다. 이것을 잘 이해를 못하면 자기의 수준에 맞는 푼수, 분수. 이것이 사투리인데 사투리 개념이 잘 안되면 이해가 잘 안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자리에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흑암에 대해서 꺾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권세가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권세라기 부르기 보다는 푼수다. 그렇게 이해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때부터 기도의 눈이 열립니다. 기도의 확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 그러면 할 말이 없죠? 모든 문제가 그곳에서 다 끝나는 것입니다. 계시록 8:3-5.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기도가 체험되기 시작하면 비로소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가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가 보여집니까? 그럼 문제가 달라집니다. 걱정, 근심,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해결이 다됩니다. 그뿐 아니라 내게 연약하고 잘못된 부분이 사람마다 많습니다. 그때마다 내 부족한 것 하나님 앞에 내 놓습니다. 그런데, 잘못 이해하면 나라는 것에 대해서 죄책으로 나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오.라고 하면 죄책이 될 수 있습니다. 내탓이오!라고 하면 모든 짐을 자기 혼자 지는 것 같습니다.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죽일 놈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죄의 하나님입니다. 사죄의 확인! 하나님 앞에 나가면 실패와 멸망 속에서도 구원해주신다.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렘넌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이해시켜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 어떠한 실패가 와도 하나님 나갈 수 있도록! 성공과 실패는 바로 거기에 달려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결국 이런 사람들은 승리하게 됩니다. 다섯가지 확인의 마지막은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 와서도 하나님의 계획이요. 여러분 앞에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떤 시험과 환란, 걱정, 문제가 와도 그곳에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승리의 확인!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망할 수가 없습니다. 망해야될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망할 수 없는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감사해야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정말 내 속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해도 불평하는 인간은 벌써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다른 것에 인도받는 문이 열려버렸습니다. 내 자신을 보면서 어떤 문제를 당하던지. 주여! 감사합니다. 그런 문제를 당할때에 나를 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정신차려서 서보니 이 엄청난 자리에 세운 것 감사합니다.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불평한 자신을 하나님이 불평하십니다. 머 저런 인간이 있어! 정말 하나님의 역사. 구원에 대해서, 주권에 대해서 마지막 흑판에 쓰면서 쉽게 여러분의 두뇌에 남아있으라고 이것도 그리고 저것도 그리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 저를 놓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승리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이것도 믿을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믿어지는 귀중한 은혜가 여러분과 제게 넘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실패할 수 없는 인간으로 구원의 역사속에 세운 축복의 인간으로 우리는 불평할 수 없는 인간의 자리에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역사 속에서 주님의 뜻이 확실히 이루어지고 그 영광 속에서 주의 종들 영원까지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주의 역사 오늘도 복음을 듣고 돌아가는 자들에게 새 힘으로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로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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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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