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분노
2005-08-2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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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세계를 향한 비전과 꿈을 가지고 주 앞에 함께 모여 이 뜻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감사드립니다. 주의 종들의 마음과 생각이 확실하게 열려지게 하시고 주의 뜻을 이루는 일에 반드시 사용되는 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이 교회와 가정 위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새힘을 주시옵시고 오늘도 말씀을 들을때 깨닫게 하는 영으로 오늘도 종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군문으로 학창으로 직장으로 나가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옵소서. 어디에 있든지 그들에게 주의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기회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연약한 것 세우셨으니 주의 말씀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전하는 말씀이 현장에서 성취되는 능력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지난주 자폐아 캠프에 갔다가 은혜로 잘 돌아왔습니다. 그 자폐아 캠프를 보면서 자폐아 어린이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제일 첫 번째 예배를 드릴 때는 전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류목사님이 처음에 개회 예배를 드리는데 무슨말을 하는지 들리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걔들이 책상 위로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내가 있는 책상위로 금방 지나갔는데 그 밑으로 또 뭐가 걸렸는데 그 밑으로 지나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밑에서 고함을 지르고 위에서 고함을 지르니까 전혀 예배 분위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경험되고 그것이 첫번째입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삼일째는 같이 예배를 드렸는데 정상아이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조금 떠든다 싶은 정도이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첫 번예배를 드리면서 정말 기적이구나 이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구나 그리고 난 후에 이번에 제 10차입니다. 5년 동안 진행이되었습니다. 소감을 말하라고 했는데 진짜 겁 없이 멋모르고 시작했던 자폐아 캠프입니다. 갈수록 어렵습니다.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정말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천사도우미가 우리 여 청년인데 멍하게 있는 동안 언제 주먹이 날라와서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없는 중에 얼얼하게 있는데 계속해서 2차 3차 양쪽볼로 날라와서 우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자폐아들의 문제점입니다. 예고가 없습니다. 먼저번에는 두손으로 눈을 찔러서 한 이틀동안 앞이 잘 안보일 정도로 어려움을 당한 천사도우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명으로 한번씩 경험하면 은혜를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은혜를 안받을려고 이번에는 몇 명 가지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갔는데 첫 번째는 간증도 했었는데 요번에는 살살 꾀가 나는지 봉사하기가 싫은지 좀 안왔습니다. 진짜 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근데 이번에는 예배를 드릴때 5년 후입니다. 예배를 드릴때에 정상인이지 자폐아라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 였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한 서너댓줄에서 애가 하나 풀쩍 계속 뛰는데 그거 하나만 표가 나고 바로 내가 앉은 뒤의 아이는 계속 정신없이 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그 아이가 막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잠시 못있었는데 요즘도 잠시 못있는건 마찬가지이지만 몸만 흔들고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그만큼 치료가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고 이번에는 어떻게 진행을 했냐면 그때에 벌써 초등부의 아이들이 5년후에는 아이들이 청년입니다. 어떻게 컸냐면 내 키보다 훌쩍 크고 덩치도 배나 큽니다. 이런 아이들로 변했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과 어린 아이들을 합쳐놓으면 일이 안된다고 합니다. 막 패니까 그런 것은 건강인과 다른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에는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부라고 해서 분리를 해서 양쪽으로 강사를 붙여서 교육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도저히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면 할수 없는 일이고 아무 단체나 할 수 있는 아니고 이것은 오직 다락방에서 이일을 담당할 수 있구나 그것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다락방뿐입니다. 누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에 누구도 난폭한 아이들을 데리고 사역하면서 이제 말한 그런 조금한 일들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철저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번에 비디오로 10주년 기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이것은 도저히 다락방에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도 이 사역을 못합니다. 다락방에서 이것을 5년 동안 이어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이지 사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분노 어떤 때에 분노를 하셨는가 그것이 오늘 성경말씀 13절 14절에 나와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려오심에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상당히 비약까지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안주시면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해가는데 위험한 요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한 요소들 가운데 여러분과 제가 던져두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받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특별히 자폐아 캠프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부모들이 잠시라도 이런 아들을 마음놓고 앉아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늘 끼고 다녀야합니다. 그런데 한번씩 이 자폐아이들을 완전히 내어놓고 자기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자폐아 캠프입니다. 천사도우미에게 맡기고 한 삼일간 완전 맡겨버립니다. 밤에 자는 것도 천사도우미에게 맡기고 잊어버립니다. 이때가 제일 즐거운 시간이라고 합니다. 평생의 한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메시지를 잘듣고 늘 그렇게 신경쓰고 데리고 있던 아이를 맡겨두었으니까 나혼자 아이 어머니들만 모아서 메시지를 하는데 계속 아멘입니다. 정말 그들에게 눈물 겨운 한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 모두에게 있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인가라는 생각이듭니다. 나도 내 자녀를 키우면서 건강한 아이들로 키우고 컸다는 것은 은혜이지 사람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류목사님이 그들의 마음을 찝어내면서 심지어는 먼저번에 눈이 왔을때 자폐캠프를 했을 때 어머니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느냐 그만 이때에 자동차가 미끌려서 둘이 깜박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했을때 정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만큼 한이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습니다. 그다음에 가정의 일을 통해서 얼마나 갈등이있는지 모릅니다. 배우자를 절대로 원망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명을 했는데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기셨다고 생각하고 긍정하고 수긍하라 절대로 배우자를 원망하지 마라. 어떻게 원망을 하는가 씨가 이상해서 그 씨를 받아가지고 그렇게 남편이 원망이 된다고 합니다. 이 가문에 이상한 흐름이 되어가지고 그러면 남편이 뭐라고 하냐면 밭이 옳아야 좋은 것이 나오지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정말 그들이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그렇게 갈등이 많습니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자폐아가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기도없이는 한시도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했습니까. 그저 건강하게 자라라고 기도한 것은 다 잊어 버리고 기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되고 하나님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정말 계속해서 기도를 해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생하는데 우리는 건강한 자녀를 키우면서 기도는커녕 애들을 원망하고 걸핏하며 두들겨패고 벌을 세우고 이런 악독한 일을 했습니다.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변소에 가둔 것도 얼마나 후회가 되든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 기도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도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뭔가 벌을 주고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오늘 어디에도 신약에 보면 예수님이 분노하셨다 분히 여겼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채찍을 들고 성전을 청결하는 속에서도 실제로 분노하셨지만 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분노하셨다는 말씀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분히 말씀하셨다고 나오는 데가 한군데 있습니다. 오늘 바로 본문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곳을 봐도 한번도 안나옵니다. 아무리 핍박을 하고 모함을 해도 이상한 일을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예수님은 한번도 그들에게 격하게 한번도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번 여기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왜 이렇게 오느냐고 꾸짖었는데 예수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어린아이가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오늘날 문화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부모님들도 이 말씀을 오늘날의 문화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부모들이 그리고 어린아이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이 구원을 받는데 방해를 하는 것을 주님이 가장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누구냐면 부모들입니다. 구원받는 일에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어린아이하나를 구원못받게 하는 것은 죄중의 죄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무서운 일입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오늘날의 문화로 이해해서 교회에 데리고 와서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예배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구원을 모르는데 안가르치는 것은 진짜 무서운 것입니다. 1차적으로 묻는 것이 오늘 말씀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42절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던지움이 나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정말 어린이를 맡아있는 부모나 교사나 넓게 말하는 모든 교인들이 혹시라도 어린영혼의 구원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 살일이 없다. 목에다가 연자맷돌을 달아서 바다에 던지라. 요즘 류목사님이 렘넌트를 키울 계획과 그에 대한 구원의 역사에 대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차라리 지구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어린이들을 예사롭게 대하는데 오늘날 문화가 어린이를 내버려두고 키우는 것을 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문화가 사단에게 교묘하게 구원못받게 하는데 여러분야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부모는 먼저 어린아이에게 구원을 구체적으로 가르쳐라. 어릴때부터입니다. 가장 최고의 책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이를 맡겼을때 여러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잠깐 위임시킨 것입니다. 구원받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같이 누릴 수 있도록 위임시킨 역사가 처음역사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다 그가운데서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한 자의 자녀였더니 우리가 구원받는 것처럼 어린아이들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구원의 역사에 구체적인 역사없이는 특별히 가르치는 것 가정에서 가르치는 것도 이것이 구체화된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다가 온 어떤 청년에게 자폐아를 맡기고 예배를 보는데 그것을 전공을 했다고 알려졌는지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부탁을 하냐면 이제 이 아이는 어린아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그 뜻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예배시간에 뛰어다니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베이비라고 했을때 이것은 어린아이와 이것은 어린아이보다 더 어린 유아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서 앉으라고 하니까 조용히 앉았다고 합니다. 너는 어린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하면 미국에도 말못하는 어린이는 매로 다스립니다. 철저하게 매로 다스립니다. 얘들은 지각이 없습니다. 자극을 줘야 교회에 와서도 매로 느낌을 줘야 앉아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말해서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베이비가 아니라 어린아이라고 하니까 와서 앉는다고 합니다.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얘들이 조금커서 말을 알아들으면 어린이입니다. 말로 교육을 시킵니다. 그것이 우리의 문화와 너무 다릅니다. 세계 어느나라도 우리 나라 같은 문화가 없습니다.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게 하고, 그것도 가장 중요할 때 이것이 안 잡히는 것입니다. 크면 더 심해지지 덜해지지는 않습니다. 제가 먼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호주에서 한 세살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식사가 끝날때까지 조용히 앉아있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볼 수 없는 진기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온 목사님이 진기하게 여기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서 강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떻게 우리 문화가 이렇게 어린이때부터 복음을 못 듣게 타락시키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심각하게 부모들이 후회 정도가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부모가 내 어린아이에게 구원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예배에 왔을때 조용히 있을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시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폐아를 보면서 자폐아의 부모가 한번도 기도의 줄을 늦출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단 아이가 보이는 부분마다 죽을 고통이기 때문에, 기도가 없었다면 부모 자신이 견뎌내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신앙이 안되고 고백이 안되면 힘듭니다. 남편들도 어린 아이가 있거든 뱃속의 어린아이만 교육하지 말고... 요즘은 뱃속의 아이들을 교육을 잘합니다. 이상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렘넌트라고 부르고, 뱃속의 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을 아는가 싶지만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아버지를 늘 듣던 목소리이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에서 중요한 것이 모든 남편이 밖으로 돌지 말고 가정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 나라의 어려운 문제가 이것입니다. 고민을 풀어도 밖으로 풉니다. 고민을 풀어도 엉뚱한 술을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쳐먹는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풀고 있습니다. TV를 보면 드는 불만이 왜 이런 것을 내 보내냐는 것입니다. 한국 TV에서는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가서 영락없이 술을 쳐잡수십니다. 나는 그것이 참 보기 싫었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애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가정에 조그만한 무슨일이 생기면 나가서 술을 역시 쳐잡수십니다. 누구를 닮아서?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왜 담배를 피고 싶으냐.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입니까?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입니다. 부모들이 하는 행동을 자기 아이가 가장 먼저 닮습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따라옵니다. 제발 아버지들 가정으로 들어오십시오. 스트레스를 풀어도 가정에서 푸세요. 가정에서 술이 아니라 커피한잔 마시면서 아내와 함께 숨겨진 이야기를 나누며 진지하게 푸세요. 가정에서 서로 다투면서 네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하면 또 누가 가장 먼저 보느냐 하면 내 아이들입니다. 그것도 조금커서 시집장가가면 똑같이 아비의 방식을 닮아서 싸웁니다.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내 아이를 내 아이의 구원을 위해서 정말로 헌신할 수 있다면 남편과 아내가 먼저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무소리 말고 본을 보여주면 자녀는 그대로 큽니다. 그것이 안되면서 혹시 어린아이에게 회초리로 잘못했다고 때리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기 행사나 고치지. 틀립없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반감만 더해지게 됩니다. 속으로 오냐. 어른만 돼봐라. 이 집에 붙어있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집나가는 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부모 싸움에 제일 큰 사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가정에 붙어있지않겠다. 힘만 되면 뛰어나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미련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집나간 아이들이 더 똑똑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이 복음안에서 컸을때 장차 은혜로 이 나라를 빛낼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잘못된 행사로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금 미래 지도자 학교에서 하는 이야기가, 밖에서 학교 생활 중에 류목사님이 부르시면서, 술먹고 그런 것들이 체질이라 안고쳐지니까, 네가 하는 일이 너희 아버지와 똑같은 줄 네가 알고 있나? 그러면 아이들이 놀란다고 합니다. 자기는 안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던 아버지의 술쳐잡수는 그 행동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적하면서 너도 똑같이 된다. 하나님 앞에 서라. 이것이 지금 고쳐지지 않으면 아버지의 망하는 것처럼 너도 망하게 된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놀랍니다. 많은 아이들을 이렇게 불러서 상담하면서 고쳐나간다고 들었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남편도 아내도 집나갈 생각이 있다면 진작회개하시고 가정으로 돌아가세요. 정말 내 가정의 자녀가 귀엽고 아름다운 생각이 들면 복음으로 구체적으로 가르쳐야겠다. 그래서 나는 확신합니다. 그렇게 알고 깨달으면 지금 아이들이 쫓겨나서 하나홀에 가있는데 잘 들으세요. 정말 그 애들을 데리고 와도 예배 시간에는 조용히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교육입니다. 이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세광이를 보면서 느낀 것이 별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타고 나면서 예배를 그렇게 잘 드립니다. 한번 예배를 시작하면 메시지를 듣는 순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옆의 사람이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입니다. 어른 집사님들이 보고 웃고 신기해서 옆으로 보라고 하고... 이런 것을 경험했습니다. 기도해서 낳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예배에 정말 조용히 참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영이는 예배때 자기 마음대로 뛰어다녀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집사람이 말하더군요. 어찌되었든 세광이를 보면서 세살 네 살에 조용히 예배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본보기를 잘하느냐? 전에 대구로 오는데 운전사가 차안에서 담배를 뻐금뻐금피우더라구요. 그런데 옆에 집사람과 내가 안고 대구까지 오는데 그것을 눈으로 똑바로 뚫어지라고 계속 보았습니다. 무심히 생각했습니다. 우리집에 없던 일을 보아서 신기했구나. 그런데 왠일입니까? 대구에 왔는데 대구에 와서 짐을 풀고 정돈하기 전에 바로 길옆에 앉아서 길가의 꽁초를 주워서 그 사람이 하는대로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것을 고친다고 얼마나 두들겨 패고 그래도 안됩니다. 얼마나 혼이 났습니까? 그때 전도사 시절이라, 박전도사 담배피우는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겠죠. 피워도 멋지게 핍니다. 어떨때는 손의 각도 지어가면서,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주워서 포켓에 넣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이 부모가 되어서 하는대로 자식들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쁜 짓은 골라서 정말하고 정확하게 따라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 어릴 때는 머릿속에 들어가있습니다. 지금도 어릴때 노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치부때에 교회에서 노래 가르쳐 준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내가 머리가 이상해져 설교할 때 앞뒤 틀리게 했던 그때도 그것은 기억하더라고요. 시냇물 돌돌돌 흘려흘려 내려와 돌위에 부딪혀 돌돌 흘려서 그 재미난 얘길.. 그러면서 이것이 그때 기억이 그대로 납니다.
여러분, 제가 그때 불렀던 노래를 부르면서 새삼 기억하는것은 복음은 하나도 없어요. 예수는 ‘예’자도 안 들어가는거죠. 진짜 복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장해 가면서 무얼 배우고 살아가겠습니까. 지금 복음이 된것은 꿈같은 얘기구요, 지금 복음이 되어간다는것은 워낙 안 된 부분이어서 나온다 그러면 ‘시냇물 돌돌돌’, ‘가자 어디로 들로산으로’ 가 나옵니다. 복음이 안되는것이 우리의 체질입니다. 지금 새삼스럽게 복음의 체질로 만들려니 모형이 없습니다. 교역자에게도, 교인들에게도, 장로에게도, 전도사에게도 모형이 안 나옵니다.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말 복음으로 서기를 원하지만 뭘 보고 섭니까. 아무것도 복음적인것은 볼게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축복받은 조상이 된다는것은 이런 축복의 복음의 모형이 되자, 조상이 되자 그 얘기 아닙니까. 그걸 안 알아놓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 이상한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이것이 안된다는것은 큰 문제입니다.
오늘도 보니 우리교회 부목사님이 말하기를 “목사님, 우리교회에 선교사 훈련원에 세명 지원했고 신학원도 그렇고 너무 적습니다" 그래요. 죽어도 안 갈려고 그럽니다. 훈련받고 내가 변화되고 하나님의 제자되고.. 중직자들 다 참여하세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죽기전에 적어도 우리후손들에게만은 모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정말 어린이를 키울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속에 들어갑니다. 렘넌트, 말로만 하지 마세요. 기도는 잘 하지요. 렘넌트를 키울수 있는 모형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래서 이번에 신문사에서 요구를 해서 나고야 렘넌트대회 참여한 소감이 무어냐 물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다 좋은데, 좋은 소리 못해서 늘 미안합니다만, 어린아이들만 렘넌트라고 하여 치켜세워놓으니까 어른들이 안 그래도 다 풀이 죽은데다가 완전히 풀이 죽어버렸어요. 어른들을 소외되게 하는것은 렘넌트를 키우는 절차가 아니다, 적어도 어른 렘넌트(Adult Remnant)가 되어야 어린아이들을 키울수 있는것이 아니냐. 그러니 이것좀 생각해야 하는것 아니냐. 천사도 아닌데 마치 천사처럼 만들어놓고..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강단을 올라고 손 잡고 해도 잘 한 것으로 여기고.. 어른들은 마치 아무 소망이 없는것처럼 만들어놓으면 렘넌트가 먼저 죽는다, 나는 생각이 그렇다’ 했습니다. 신문에 나온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류목사님이 정보를 들었는지 핵심때 어른들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더라고요. 여러분이 못 크고 못 일어나고 모델이 안되면 어린아이들 못 섭니다. 똑같은 새끼들을 만드는것이죠, 똑같이 지애비 닮은 놈을 만드는겁니다. 할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예수님의 분노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어린이를 구원받는 일에 장애가 되게 한다는것만큼 주님을 불쾌하게 만드는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다가 우리들을 먼저 이 사실을 이루어야 되는데 본이 되지 못해서 오는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보실때에 어린이 한 생명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느냐. 렘넌트 말만 하지 말고 정말 저들에게 구원을 줄수 있는 본이 되라. 이것이 안되면 우리 예수님이 어른들에 대해 가장 불쾌하게 여길뿐 아니라 분노하게 된다는 그 얘깁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린이를 생각할 때 그냥 자기 마음대로 떠들도록 돌아다니게 하면서 잘 키운다고 하는것은 사단입니다. 어쩌다가 전체 모든 문화가 경제도 그렇고 아이들 교육조차도 사단문화입니다.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가 이제 아이들을 위해 렘넌트 축제를 열고 했는데 첫 번부터 느낀것이 뭔가 우리 문화를 저렇게 따라가게 하지 말자. 뭔가 복음의 문화를 심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문제를 생각도 안해 봤었는데 애들을 풀어놓고 강단에 올려보면서 느끼는것이 똑같이 세상문화 그대로 받아 변형시킨것은 가사만 변형시키고 그대로 따라하는것을 봅니다. 천주교 TV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확실히 장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뭔가 노래문화조차도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어린이들을위해 기도하고 문화를 말한다면 복음의 문화가 창조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닮아만 왔는데 창조되어 나와야 합니다. 전에는 그래도 기독교 배경외에는 노래는 거의 안 되었는데 지금은 기독교 배경의 노래가 별로 힘이 없어요. 이것이 사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차려야 합니다. 다른나라는 벌써 다 먹혀 갔고 지금 한국에까지 이것이 먹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도 똑같이 이제는 일본보다도 더 많이 이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청소년들 정신문제 심각할정도가 아니라 두려운 마음이 생길정도로 심각합니다. 일본아이들이 정신문제로 방에 들어앉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적지 않아요.
이런 엄청난 배경에서 여러분과 제가 참 하나님앞에 어린 아이들을 바로 키워 나가자, 내 자식이라도 바로 키워나가지 않으면 예수님의 분노, 그것이 무서운 죄가 아닙니까. 재앙과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의미에서 여러분은 그 일에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 참 복음의 조상이요,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참 복음의 본이 되는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회나온다는 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를 향해 분노하시는 예수님이 웃을수 있는 축복과 역사에 설때에 모든 일이 축복으로 나온다, 그것이 안되면 재앙과 재난입니다. 그래서 종교생활, 신비주의, 인본주의 생활 아무렇지 않은것 같아도 사단의 배경이 되니 재난과 재앙이 따르는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정말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녀들을 가진 부모로써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한번쯤은 생각해야 할 문제 아닌가 기도 해 보고, 그래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우리를 향한 분노하심이 아니라 기뻐하시는 축복의 은혜를 입는 기쁨과 감격이 한 주간도 계속되어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의 복음의 역사가 모든 문화를 이겨야 하는데도 어쩌다가 모든 문화속에 복음의 역사를 다 뺏기고 사단의 배경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게 되고 청년들이 자라게 되고 우리자신들도 모르게 지금 그 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예수님 분노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 우리 자녀들에게 실제로 복음의 본이 되게 하시고 정말 우리가 복음의 축복된 조상으로 주님앞에 설수 있도록 우리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은혜주시면 할수 있습니다. 영광을 주께 돌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세계를 향한 비전과 꿈을 가지고 주 앞에 함께 모여 이 뜻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감사드립니다. 주의 종들의 마음과 생각이 확실하게 열려지게 하시고 주의 뜻을 이루는 일에 반드시 사용되는 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이 교회와 가정 위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새힘을 주시옵시고 오늘도 말씀을 들을때 깨닫게 하는 영으로 오늘도 종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군문으로 학창으로 직장으로 나가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옵소서. 어디에 있든지 그들에게 주의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기회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연약한 것 세우셨으니 주의 말씀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전하는 말씀이 현장에서 성취되는 능력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지난주 자폐아 캠프에 갔다가 은혜로 잘 돌아왔습니다. 그 자폐아 캠프를 보면서 자폐아 어린이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제일 첫 번째 예배를 드릴 때는 전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류목사님이 처음에 개회 예배를 드리는데 무슨말을 하는지 들리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걔들이 책상 위로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내가 있는 책상위로 금방 지나갔는데 그 밑으로 또 뭐가 걸렸는데 그 밑으로 지나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밑에서 고함을 지르고 위에서 고함을 지르니까 전혀 예배 분위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경험되고 그것이 첫번째입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삼일째는 같이 예배를 드렸는데 정상아이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조금 떠든다 싶은 정도이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첫 번예배를 드리면서 정말 기적이구나 이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구나 그리고 난 후에 이번에 제 10차입니다. 5년 동안 진행이되었습니다. 소감을 말하라고 했는데 진짜 겁 없이 멋모르고 시작했던 자폐아 캠프입니다. 갈수록 어렵습니다.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정말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천사도우미가 우리 여 청년인데 멍하게 있는 동안 언제 주먹이 날라와서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없는 중에 얼얼하게 있는데 계속해서 2차 3차 양쪽볼로 날라와서 우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자폐아들의 문제점입니다. 예고가 없습니다. 먼저번에는 두손으로 눈을 찔러서 한 이틀동안 앞이 잘 안보일 정도로 어려움을 당한 천사도우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명으로 한번씩 경험하면 은혜를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은혜를 안받을려고 이번에는 몇 명 가지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갔는데 첫 번째는 간증도 했었는데 요번에는 살살 꾀가 나는지 봉사하기가 싫은지 좀 안왔습니다. 진짜 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근데 이번에는 예배를 드릴때 5년 후입니다. 예배를 드릴때에 정상인이지 자폐아라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 였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한 서너댓줄에서 애가 하나 풀쩍 계속 뛰는데 그거 하나만 표가 나고 바로 내가 앉은 뒤의 아이는 계속 정신없이 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그 아이가 막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잠시 못있었는데 요즘도 잠시 못있는건 마찬가지이지만 몸만 흔들고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그만큼 치료가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고 이번에는 어떻게 진행을 했냐면 그때에 벌써 초등부의 아이들이 5년후에는 아이들이 청년입니다. 어떻게 컸냐면 내 키보다 훌쩍 크고 덩치도 배나 큽니다. 이런 아이들로 변했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과 어린 아이들을 합쳐놓으면 일이 안된다고 합니다. 막 패니까 그런 것은 건강인과 다른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에는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부라고 해서 분리를 해서 양쪽으로 강사를 붙여서 교육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도저히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면 할수 없는 일이고 아무 단체나 할 수 있는 아니고 이것은 오직 다락방에서 이일을 담당할 수 있구나 그것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다락방뿐입니다. 누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에 누구도 난폭한 아이들을 데리고 사역하면서 이제 말한 그런 조금한 일들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철저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이번에 비디오로 10주년 기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이것은 도저히 다락방에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도 이 사역을 못합니다. 다락방에서 이것을 5년 동안 이어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이지 사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분노 어떤 때에 분노를 하셨는가 그것이 오늘 성경말씀 13절 14절에 나와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려오심에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상당히 비약까지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안주시면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해가는데 위험한 요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한 요소들 가운데 여러분과 제가 던져두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받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특별히 자폐아 캠프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부모들이 잠시라도 이런 아들을 마음놓고 앉아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늘 끼고 다녀야합니다. 그런데 한번씩 이 자폐아이들을 완전히 내어놓고 자기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자폐아 캠프입니다. 천사도우미에게 맡기고 한 삼일간 완전 맡겨버립니다. 밤에 자는 것도 천사도우미에게 맡기고 잊어버립니다. 이때가 제일 즐거운 시간이라고 합니다. 평생의 한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메시지를 잘듣고 늘 그렇게 신경쓰고 데리고 있던 아이를 맡겨두었으니까 나혼자 아이 어머니들만 모아서 메시지를 하는데 계속 아멘입니다. 정말 그들에게 눈물 겨운 한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이 모두에게 있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인가라는 생각이듭니다. 나도 내 자녀를 키우면서 건강한 아이들로 키우고 컸다는 것은 은혜이지 사람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류목사님이 그들의 마음을 찝어내면서 심지어는 먼저번에 눈이 왔을때 자폐캠프를 했을 때 어머니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느냐 그만 이때에 자동차가 미끌려서 둘이 깜박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했을때 정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만큼 한이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습니다. 그다음에 가정의 일을 통해서 얼마나 갈등이있는지 모릅니다. 배우자를 절대로 원망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명을 했는데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맡기셨다고 생각하고 긍정하고 수긍하라 절대로 배우자를 원망하지 마라. 어떻게 원망을 하는가 씨가 이상해서 그 씨를 받아가지고 그렇게 남편이 원망이 된다고 합니다. 이 가문에 이상한 흐름이 되어가지고 그러면 남편이 뭐라고 하냐면 밭이 옳아야 좋은 것이 나오지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정말 그들이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그렇게 갈등이 많습니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자폐아가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기도없이는 한시도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했습니까. 그저 건강하게 자라라고 기도한 것은 다 잊어 버리고 기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되고 하나님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정말 계속해서 기도를 해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생하는데 우리는 건강한 자녀를 키우면서 기도는커녕 애들을 원망하고 걸핏하며 두들겨패고 벌을 세우고 이런 악독한 일을 했습니다.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변소에 가둔 것도 얼마나 후회가 되든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 기도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도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뭔가 벌을 주고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오늘 어디에도 신약에 보면 예수님이 분노하셨다 분히 여겼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채찍을 들고 성전을 청결하는 속에서도 실제로 분노하셨지만 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분노하셨다는 말씀이 안나옵니다. 그런데 분히 말씀하셨다고 나오는 데가 한군데 있습니다. 오늘 바로 본문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곳을 봐도 한번도 안나옵니다. 아무리 핍박을 하고 모함을 해도 이상한 일을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예수님은 한번도 그들에게 격하게 한번도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번 여기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왜 이렇게 오느냐고 꾸짖었는데 예수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어린아이가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오늘날 문화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부모님들도 이 말씀을 오늘날의 문화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부모들이 그리고 어린아이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이 구원을 받는데 방해를 하는 것을 주님이 가장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누구냐면 부모들입니다. 구원받는 일에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어린아이하나를 구원못받게 하는 것은 죄중의 죄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무서운 일입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오늘날의 문화로 이해해서 교회에 데리고 와서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예배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구원을 모르는데 안가르치는 것은 진짜 무서운 것입니다. 1차적으로 묻는 것이 오늘 말씀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42절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던지움이 나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정말 어린이를 맡아있는 부모나 교사나 넓게 말하는 모든 교인들이 혹시라도 어린영혼의 구원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 사람에게 살일이 없다. 목에다가 연자맷돌을 달아서 바다에 던지라. 요즘 류목사님이 렘넌트를 키울 계획과 그에 대한 구원의 역사에 대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차라리 지구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어린이들을 예사롭게 대하는데 오늘날 문화가 어린이를 내버려두고 키우는 것을 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문화가 사단에게 교묘하게 구원못받게 하는데 여러분야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부모는 먼저 어린아이에게 구원을 구체적으로 가르쳐라. 어릴때부터입니다. 가장 최고의 책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이를 맡겼을때 여러분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잠깐 위임시킨 것입니다. 구원받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같이 누릴 수 있도록 위임시킨 역사가 처음역사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다 그가운데서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한 자의 자녀였더니 우리가 구원받는 것처럼 어린아이들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구원의 역사에 구체적인 역사없이는 특별히 가르치는 것 가정에서 가르치는 것도 이것이 구체화된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다가 온 어떤 청년에게 자폐아를 맡기고 예배를 보는데 그것을 전공을 했다고 알려졌는지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부탁을 하냐면 이제 이 아이는 어린아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그 뜻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예배시간에 뛰어다니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베이비라고 했을때 이것은 어린아이와 이것은 어린아이보다 더 어린 유아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서 앉으라고 하니까 조용히 앉았다고 합니다. 너는 어린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하면 미국에도 말못하는 어린이는 매로 다스립니다. 철저하게 매로 다스립니다. 얘들은 지각이 없습니다. 자극을 줘야 교회에 와서도 매로 느낌을 줘야 앉아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말해서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베이비가 아니라 어린아이라고 하니까 와서 앉는다고 합니다.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얘들이 조금커서 말을 알아들으면 어린이입니다. 말로 교육을 시킵니다. 그것이 우리의 문화와 너무 다릅니다. 세계 어느나라도 우리 나라 같은 문화가 없습니다.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게 하고, 그것도 가장 중요할 때 이것이 안 잡히는 것입니다. 크면 더 심해지지 덜해지지는 않습니다. 제가 먼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호주에서 한 세살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식사가 끝날때까지 조용히 앉아있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볼 수 없는 진기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온 목사님이 진기하게 여기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서 강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떻게 우리 문화가 이렇게 어린이때부터 복음을 못 듣게 타락시키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심각하게 부모들이 후회 정도가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부모가 내 어린아이에게 구원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예배에 왔을때 조용히 있을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시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폐아를 보면서 자폐아의 부모가 한번도 기도의 줄을 늦출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단 아이가 보이는 부분마다 죽을 고통이기 때문에, 기도가 없었다면 부모 자신이 견뎌내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신앙이 안되고 고백이 안되면 힘듭니다. 남편들도 어린 아이가 있거든 뱃속의 어린아이만 교육하지 말고... 요즘은 뱃속의 아이들을 교육을 잘합니다. 이상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렘넌트라고 부르고, 뱃속의 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합니다. 무엇을 아는가 싶지만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아버지를 늘 듣던 목소리이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에서 중요한 것이 모든 남편이 밖으로 돌지 말고 가정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 나라의 어려운 문제가 이것입니다. 고민을 풀어도 밖으로 풉니다. 고민을 풀어도 엉뚱한 술을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쳐먹는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풀고 있습니다. TV를 보면 드는 불만이 왜 이런 것을 내 보내냐는 것입니다. 한국 TV에서는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가서 영락없이 술을 쳐잡수십니다. 나는 그것이 참 보기 싫었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애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가정에 조그만한 무슨일이 생기면 나가서 술을 역시 쳐잡수십니다. 누구를 닮아서?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왜 담배를 피고 싶으냐.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입니까?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입니다. 부모들이 하는 행동을 자기 아이가 가장 먼저 닮습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따라옵니다. 제발 아버지들 가정으로 들어오십시오. 스트레스를 풀어도 가정에서 푸세요. 가정에서 술이 아니라 커피한잔 마시면서 아내와 함께 숨겨진 이야기를 나누며 진지하게 푸세요. 가정에서 서로 다투면서 네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하면 또 누가 가장 먼저 보느냐 하면 내 아이들입니다. 그것도 조금커서 시집장가가면 똑같이 아비의 방식을 닮아서 싸웁니다.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내 아이를 내 아이의 구원을 위해서 정말로 헌신할 수 있다면 남편과 아내가 먼저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무소리 말고 본을 보여주면 자녀는 그대로 큽니다. 그것이 안되면서 혹시 어린아이에게 회초리로 잘못했다고 때리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기 행사나 고치지. 틀립없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반감만 더해지게 됩니다. 속으로 오냐. 어른만 돼봐라. 이 집에 붙어있는가. 그래서 아이들이 집나가는 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부모 싸움에 제일 큰 사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가정에 붙어있지않겠다. 힘만 되면 뛰어나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미련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집나간 아이들이 더 똑똑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이 복음안에서 컸을때 장차 은혜로 이 나라를 빛낼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잘못된 행사로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금 미래 지도자 학교에서 하는 이야기가, 밖에서 학교 생활 중에 류목사님이 부르시면서, 술먹고 그런 것들이 체질이라 안고쳐지니까, 네가 하는 일이 너희 아버지와 똑같은 줄 네가 알고 있나? 그러면 아이들이 놀란다고 합니다. 자기는 안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던 아버지의 술쳐잡수는 그 행동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적하면서 너도 똑같이 된다. 하나님 앞에 서라. 이것이 지금 고쳐지지 않으면 아버지의 망하는 것처럼 너도 망하게 된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놀랍니다. 많은 아이들을 이렇게 불러서 상담하면서 고쳐나간다고 들었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남편도 아내도 집나갈 생각이 있다면 진작회개하시고 가정으로 돌아가세요. 정말 내 가정의 자녀가 귀엽고 아름다운 생각이 들면 복음으로 구체적으로 가르쳐야겠다. 그래서 나는 확신합니다. 그렇게 알고 깨달으면 지금 아이들이 쫓겨나서 하나홀에 가있는데 잘 들으세요. 정말 그 애들을 데리고 와도 예배 시간에는 조용히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교육입니다. 이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세광이를 보면서 느낀 것이 별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타고 나면서 예배를 그렇게 잘 드립니다. 한번 예배를 시작하면 메시지를 듣는 순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옆의 사람이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입니다. 어른 집사님들이 보고 웃고 신기해서 옆으로 보라고 하고... 이런 것을 경험했습니다. 기도해서 낳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예배에 정말 조용히 참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영이는 예배때 자기 마음대로 뛰어다녀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집사람이 말하더군요. 어찌되었든 세광이를 보면서 세살 네 살에 조용히 예배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본보기를 잘하느냐? 전에 대구로 오는데 운전사가 차안에서 담배를 뻐금뻐금피우더라구요. 그런데 옆에 집사람과 내가 안고 대구까지 오는데 그것을 눈으로 똑바로 뚫어지라고 계속 보았습니다. 무심히 생각했습니다. 우리집에 없던 일을 보아서 신기했구나. 그런데 왠일입니까? 대구에 왔는데 대구에 와서 짐을 풀고 정돈하기 전에 바로 길옆에 앉아서 길가의 꽁초를 주워서 그 사람이 하는대로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것을 고친다고 얼마나 두들겨 패고 그래도 안됩니다. 얼마나 혼이 났습니까? 그때 전도사 시절이라, 박전도사 담배피우는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겠죠. 피워도 멋지게 핍니다. 어떨때는 손의 각도 지어가면서,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주워서 포켓에 넣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이 부모가 되어서 하는대로 자식들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쁜 짓은 골라서 정말하고 정확하게 따라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 어릴 때는 머릿속에 들어가있습니다. 지금도 어릴때 노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치부때에 교회에서 노래 가르쳐 준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내가 머리가 이상해져 설교할 때 앞뒤 틀리게 했던 그때도 그것은 기억하더라고요. 시냇물 돌돌돌 흘려흘려 내려와 돌위에 부딪혀 돌돌 흘려서 그 재미난 얘길.. 그러면서 이것이 그때 기억이 그대로 납니다.
여러분, 제가 그때 불렀던 노래를 부르면서 새삼 기억하는것은 복음은 하나도 없어요. 예수는 ‘예’자도 안 들어가는거죠. 진짜 복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장해 가면서 무얼 배우고 살아가겠습니까. 지금 복음이 된것은 꿈같은 얘기구요, 지금 복음이 되어간다는것은 워낙 안 된 부분이어서 나온다 그러면 ‘시냇물 돌돌돌’, ‘가자 어디로 들로산으로’ 가 나옵니다. 복음이 안되는것이 우리의 체질입니다. 지금 새삼스럽게 복음의 체질로 만들려니 모형이 없습니다. 교역자에게도, 교인들에게도, 장로에게도, 전도사에게도 모형이 안 나옵니다.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말 복음으로 서기를 원하지만 뭘 보고 섭니까. 아무것도 복음적인것은 볼게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축복받은 조상이 된다는것은 이런 축복의 복음의 모형이 되자, 조상이 되자 그 얘기 아닙니까. 그걸 안 알아놓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 이상한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이것이 안된다는것은 큰 문제입니다.
오늘도 보니 우리교회 부목사님이 말하기를 “목사님, 우리교회에 선교사 훈련원에 세명 지원했고 신학원도 그렇고 너무 적습니다" 그래요. 죽어도 안 갈려고 그럽니다. 훈련받고 내가 변화되고 하나님의 제자되고.. 중직자들 다 참여하세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죽기전에 적어도 우리후손들에게만은 모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정말 어린이를 키울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속에 들어갑니다. 렘넌트, 말로만 하지 마세요. 기도는 잘 하지요. 렘넌트를 키울수 있는 모형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래서 이번에 신문사에서 요구를 해서 나고야 렘넌트대회 참여한 소감이 무어냐 물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다 좋은데, 좋은 소리 못해서 늘 미안합니다만, 어린아이들만 렘넌트라고 하여 치켜세워놓으니까 어른들이 안 그래도 다 풀이 죽은데다가 완전히 풀이 죽어버렸어요. 어른들을 소외되게 하는것은 렘넌트를 키우는 절차가 아니다, 적어도 어른 렘넌트(Adult Remnant)가 되어야 어린아이들을 키울수 있는것이 아니냐. 그러니 이것좀 생각해야 하는것 아니냐. 천사도 아닌데 마치 천사처럼 만들어놓고..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강단을 올라고 손 잡고 해도 잘 한 것으로 여기고.. 어른들은 마치 아무 소망이 없는것처럼 만들어놓으면 렘넌트가 먼저 죽는다, 나는 생각이 그렇다’ 했습니다. 신문에 나온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류목사님이 정보를 들었는지 핵심때 어른들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더라고요. 여러분이 못 크고 못 일어나고 모델이 안되면 어린아이들 못 섭니다. 똑같은 새끼들을 만드는것이죠, 똑같이 지애비 닮은 놈을 만드는겁니다. 할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예수님의 분노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어린이를 구원받는 일에 장애가 되게 한다는것만큼 주님을 불쾌하게 만드는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다가 우리들을 먼저 이 사실을 이루어야 되는데 본이 되지 못해서 오는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보실때에 어린이 한 생명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느냐. 렘넌트 말만 하지 말고 정말 저들에게 구원을 줄수 있는 본이 되라. 이것이 안되면 우리 예수님이 어른들에 대해 가장 불쾌하게 여길뿐 아니라 분노하게 된다는 그 얘깁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린이를 생각할 때 그냥 자기 마음대로 떠들도록 돌아다니게 하면서 잘 키운다고 하는것은 사단입니다. 어쩌다가 전체 모든 문화가 경제도 그렇고 아이들 교육조차도 사단문화입니다.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가 이제 아이들을 위해 렘넌트 축제를 열고 했는데 첫 번부터 느낀것이 뭔가 우리 문화를 저렇게 따라가게 하지 말자. 뭔가 복음의 문화를 심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문제를 생각도 안해 봤었는데 애들을 풀어놓고 강단에 올려보면서 느끼는것이 똑같이 세상문화 그대로 받아 변형시킨것은 가사만 변형시키고 그대로 따라하는것을 봅니다. 천주교 TV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확실히 장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뭔가 노래문화조차도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어린이들을위해 기도하고 문화를 말한다면 복음의 문화가 창조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닮아만 왔는데 창조되어 나와야 합니다. 전에는 그래도 기독교 배경외에는 노래는 거의 안 되었는데 지금은 기독교 배경의 노래가 별로 힘이 없어요. 이것이 사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차려야 합니다. 다른나라는 벌써 다 먹혀 갔고 지금 한국에까지 이것이 먹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도 똑같이 이제는 일본보다도 더 많이 이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청소년들 정신문제 심각할정도가 아니라 두려운 마음이 생길정도로 심각합니다. 일본아이들이 정신문제로 방에 들어앉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적지 않아요.
이런 엄청난 배경에서 여러분과 제가 참 하나님앞에 어린 아이들을 바로 키워 나가자, 내 자식이라도 바로 키워나가지 않으면 예수님의 분노, 그것이 무서운 죄가 아닙니까. 재앙과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의미에서 여러분은 그 일에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 참 복음의 조상이요,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참 복음의 본이 되는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회나온다는 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를 향해 분노하시는 예수님이 웃을수 있는 축복과 역사에 설때에 모든 일이 축복으로 나온다, 그것이 안되면 재앙과 재난입니다. 그래서 종교생활, 신비주의, 인본주의 생활 아무렇지 않은것 같아도 사단의 배경이 되니 재난과 재앙이 따르는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정말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녀들을 가진 부모로써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한번쯤은 생각해야 할 문제 아닌가 기도 해 보고, 그래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우리를 향한 분노하심이 아니라 기뻐하시는 축복의 은혜를 입는 기쁨과 감격이 한 주간도 계속되어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의 복음의 역사가 모든 문화를 이겨야 하는데도 어쩌다가 모든 문화속에 복음의 역사를 다 뺏기고 사단의 배경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게 되고 청년들이 자라게 되고 우리자신들도 모르게 지금 그 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예수님 분노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 우리 자녀들에게 실제로 복음의 본이 되게 하시고 정말 우리가 복음의 축복된 조상으로 주님앞에 설수 있도록 우리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은혜주시면 할수 있습니다. 영광을 주께 돌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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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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